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 4장
4장 우리의 무대가 세계인 이유
40 자서전 깊은 산중에 작은 오솔길을 만든 평화의 천사들 1.mp3
깊은 산중에 작은 오솔길을 만든 평화의 천사들
우리가 죽기 전에 자손들에게 반드시 남겨주어야 할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전통이고 또 하나는 교육입니다. 전통이 없는 민족은 망하고 맙니다. 전통이란 민족을 이어주는 혼이며, 혼이 없는 그 민족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이 교육입니다. 자손에게 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그 민족 또한 망합니다. 교육은 새로운 문물을 통해 세상을 살아나가는 힘을 얻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교육을 통해 살아갈 지혜를 배웁니다. 글을 모를 때에는 누구나 어리석을 수밖에 없지만 교육을 받고 나면 세상의 지혜를 이용할 줄 알게 됩니다.
교육은 세상의 문리를 이해하는 영특함을 가져다줍니다. 자손들에게 우리가 수천 년간 이어온 전통을 전해주는 한편 새로운 문물을 교육시키는 것은 민족의 앞날을 열어가는 일입니다. 물려받은 전통과 새로운 문물은 생활 속에서 적절히 융합되어 독창적인 문화로 재탄생합니다. 전통과 교육은 어느 것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두 가지를 적절히 융합시키는 지혜도 교육에서 얻어집니다.
나는 무용단을 만들면서 리틀엔젤스 예술학교 (이후 선화예술학교로 교명 변경)도 함께 세웠습니다. 학교를 만든 이유는 우리의 이상을 예술을 통해 세계로 널리 연결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에게 학교를 운영할 힘이 있는지 생각하는 것은 두 번째 문제였습니다. 나는 우선 실행에 들어갔습니다. 뜻이 분명하고 좋은 일이면 마땅히 시작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늘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며 사람을 사랑하는 교육을 하고 싶었습니다.
나는 선화예술학교를 만들면서 '애천愛天, 애인愛人,애국愛國'이란휘호를 아주 크게 썼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사람이 "한국의 고유문화를 세계에 자랑한다고 하면서 어떻게 나라 사랑을 맨 꼴찌로 만들었소?" 하고 물었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이 하늘을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하는 일을 했다면 그 사람은 이미 그것으로 애국을 한 것입니다. 애국은 저절로 완성된 겁니다" 하고 대답해주었습니다.
전 세계의 우러름을 받는 사람은 벌써 한국을 세계만방에 드러낸 것입니다. 세계 여러 나라에 나가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보여주면서도 리틀엔젤스는 한번도 '코리아'를 외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리틀엔젤스의 춤을 보고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 마음 속에는 '문화와 전통의 나라, 한국'이란 이미지가 확실하게 뿌리를 내렸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리틀엔젤스는 다른 누구보다 한국을 세계에 널리 알리며 애국을 한 셈입니다. 선화예술학교 출신으로 세계적인 성악가가 된 조수미와 신영옥, 그리고 세계 최고의 발레리나가 된 문훈숙과 강수진의 공연을 볼 때마다 마음이 흐뭇해집니다.
리틀엔젤스는 1965년 미국 공연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세계를 누비며 한국의 아름다운 전통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영국 왕실에 초대되어 엘리자베스 여왕 앞에서 공연을 했고 미국 독립 2백 주년 행사에 초대되어 워싱턴 캐네디 센터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미국 닉슨 대통령 앞에서 특별 공연도 하고 서울올림픽 문화예술 축전에도 참여했습니다. 리틀엔젤스는 이미 세계적으로 이름난 평화의 문화사절입니다.
1990년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만나 회담하고 떠나기 전날 밤, 리틀엔젤스의 공연이 있었습니다. 공산주의의 최전선인 모스크바 한복판에 한국의 어린 소녀들이 선 것입니다. 한복을 입은 천사들은 우리 춤을 끝내고 난 뒤 그 고운 목소리로 러시아 민요를 불렀습니다. 객석에서 '앙코르'가 연발되어 도통 무대를 내려올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미리 준비한 합창곡을 다 부르고서야 내려왔습니다.
객석에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부인인 라이사 여사가 앉아있었습니다. 당시 한국과 러시아는 정식 수교를 맺지 않은 상태였는데, 그런 나라의 문화 공연에 대통령의 부인이 참석한 것은 무척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라이사 여사는 객석 앞자리에 앉아 공연 내내 뜨거운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라이사 여사는 공연이 끝나자 무대 뒤로 찾아와 리틀엔젤스 단원들에게 직접 꽃다발을 안겨주며 "리틀엔젤스야말로 평화의 천사들입니다. 한국에 이토록 아름다운 전통문화가 있는 줄 몰랐습니다. 공연을 보는 동안 내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꿈을 꾸는 듯했습니다" 하고 한국 문화의 우수함에 거듭 찬사를 보냈습니다. 여사는 리틀엔젤스 단원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끌어안고 "My Little Angels!"라고 말하며 빰에 입을 맞춰주었습니다.
1998년에는 순수 민간 예술단체로는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해 3차례나 공연을 했습니다. 귀여운 신랑각시춤도 추고 화려한 부채춤도 추었숩니다. 공연을 보는 동안 북한 사람들의 눈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 여성의 사진이 신문기자의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지요. 북한의 김용순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은 리틀엔젤스의 공연을 보고난 뒤, '깊은 산중에 작은 오솔길을 냈다고' 칭찬했습니다.
리틀엔젤스가 한 일이 바로 그렇습니다. 그동안 등 돌렸던 남북한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공연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증명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정치가 세상을 움직인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문화이고 예술입니다. 사람들의 마음 가장 깊은 곳을 울리는 것은 이성이 아닌 감성입니다. 받아들이는 마음이 바뀌면 사상이 변하고 제도가 변합니다. 리틀엔젤스는 우리의 전통문화를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서로 다른 세상 사이에 오솔길을 만드는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나는 리틀엔젤스를 만날 때마다 '마음이 고와야 춤이 곱다. 마음이 고와야 노래가 곱다. 마음이 고와야 얼굴이 곱다'라고 말합니다. 참된 아름다움은 내 안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리틀엔젤스가 그토록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준 것은 우리 춤 속에 녹아있는 우리의 전통, 우리의 정신문화가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리틀엔젤스가 받은 박수갈채도 결국은 우리의 전통문화가 받은 박수갈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