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야, 우리를 단련해다오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 3장)

훈독왕 | 20190902175205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 3장


3장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사람


첨부파일 자서전 상처야 우리를 단련 해다오 1.mp3


상처야, 우리를 단련해다오


사람들은 내가 전하는 새로운 진리를 향해 이단이라며 돌을 던졌지만, 유대교의 땅에서 나신 예수님 역시 이단이라는 죄를 뒤집어쓰고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그러니 내가 받는 핍박이 그리 아프고 억울할 것도 없었습니다. 내 몸에 가해지는 고통이야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교회를 두고 벌어지는 이단 시비는 억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초창기부터 우리 교회를 연구한 신학자들 중에는 독창적이고 체계적인 새로운 신학이라며 기쁘게 받아들인 사람이 더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를 둘러싼 이단 시비가 그렇게 크고 요란하게 확대된 것은 신학적인 문제라기보다는 현실적인 상황에서 빚어진 것이었습니다.


우리 식구들은 대부분 다니던 기성교회를 떠나 우리 교회로 온 사람들입니다. 바로 그 점이 우리 교회가 기성교회의 적이 된 원인이었습니다. 이화여대의 양윤영 교수가 잡혀가서 조사를 받는 도중 김활란 총장을 비롯한 팔십여 명의 기독교 목사들이 우리 교회를 비난하는 내용의 투서를 경찰에 보낸 일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해서가 아니라 기득권층의 막연한 두려움과 위기감, 그리고 극단적인 파벌주의가 몰고 온 명백한 탄압이었습니다.


새로운 가르침을 전하는 우리 교회에는 여러 종파의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내가 아무리 "여기엔 또 왜 왔소? 당장 당신들 교회로 돌아가시오!" 하며 반협박조로 쫓아내도 금세 다시 돌아왔습니다.


나를 찾아 모여드는 이들은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습니다. 학교 선생님 말도 안 듣고 부모님 말씀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내 말은 잘 들었습니다. 돈을 주거나 밥을 주는 것도 아닌데 내 말만 믿고 나를 찾아왔습니다. 그 이유는 내가 그들의 답답한 마음에 길을 터주었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알기 전에는 나 또한 하늘을 봐도 답답하고 옆의 사람을 봐도 답답했으니 그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했습니다. 답이 구해지지 않아 끙끙거리게 했던 인생의 모든 의문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으면서 씻은듯이 사라졌습니다. 나를 찾아오는 청년들은 내가 전하는 이야기 속에서 평소 가슴에 품고 있던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비로소 얻었기 때문에 나와 함께 가는 길이 고달프고 힘들어도 우리 교회로 온 것입니다.


나는 길을 찾아 열어주는 사람입니다. 붕괴된 가정을 찾고 종족을 찾고 나라를 찾고 세계를 찾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길을 안내하는 사람입니다.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도 모두 그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나와 함께 하나님을 찾아가길 바랐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뭐가 잘못되었다는 것인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 뿐인데 세상의 온갖 박해와 비난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단 시비에 휘말리는 어려움 속에서 나를 더욱 힘겹게 한 것은 당시의 아내였습니다. 그녀는 부산에서 재회한 후부터 친정 식구들과 몰려다니며 이혼을 졸라댔습니다. 교회를 당장 그만 두고 세 식구가 단란하게 모여 살든지 아니면 이혼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내가 갇혀있던 서대문형무소까지 찾아와 이혼서류를 들이밀며 도장을 찍으라고 협박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평화세계를 이루는 데 결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들이 어떤 모욕을 주든지 묵묵히 참고 견뎠습니다.


그녀는 우리 교회와 식구들에게도 말할 수 없는 횡포를 부렸습니다. 나를 욕하고 함부로 대하는 것이야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지만 교회와 식구들에게까지 행패를 부리는 것은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그녀는 수시로 우리 교회에 들이닥쳐서는 식구들에게 욕을 퍼붓고, 교회 기물을 부수고, 교회 물건을 맘대로 내다 없애는 것은 물론 인분을 끼얹기까지 했습니다. 그녀만 나타나면 예배를 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결국 서대문형무소를 나오자마자 그들이 내민 이혼장에 도장을 찍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 신념을 지킬 새도 없이 등 떠밀려 이혼을 당한 것입니다. 


전 아내를 생각하면 지금도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그녀가 그렇게까지 된 데는 기독교 집안이던 처가와 기성교회의 부추김이 컸습니다. 혼인하기 전에는 그렇게 야무지던 여인이 변해버린 것을 생각하면 세상의 편견과 고정관념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이혼의 아픔과 이단으로 손가락질 당하는 서러움을 겪었지만 나는 조금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아담과 해와가 지은 원죄를 속죄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가는 내가 감당해야만 할 일들이었습니다. 본래 해가 뜨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고 합니다. 나는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하는 것으로 어두움을 이겨냈습니다. 잠깐 눈을 붙이는 시간을 빼놓고 하루의 모든 시간을 기도하는 데 바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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