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 3장
3장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사람
48 자서전 그을린 나뭇가지에도 새싹은 핀다 1.mp3
그을린 나뭇가지에도 새싹은 핀다
갑작스레 들이닥친 치안국 특수정보과 형사들은 나를 중부경찰서로 끌고 갔습니다. 병역법 위반죄로 잡혀가는 게 어이없고 기가 막혔지만 잠자코 잡혀 갔습니다. 나는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면서도 제대로 항변 한마디하지 못하고 꾹 참는 나를 보고 '무골충'이라 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이 또한 내게 주어진 길이라 생각하고 참고 또 참았습니다. 그것이 내게 주어진 뜻을 향해가는 길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나는 그 길을 가야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내 삶의 이유였기에 절대로 좌절하지 않고 그럴수록 어느 누구 앞에서도 떳떳하게 행동했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경찰들이 나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습니다. 조서를 쓸 때면 내가 먼저 어떻게 쓰라고 가르쳐줬습니다. "당신 이 말은 왜 안 써? 거기에다 이렇게 써야 하는 거야" 하고 말하면 다들 뒤로 넘어갔습니다. 내가 가르쳐준 대로 조서를 쓰다보면 한 구절 한 구절은 분명 맞는 말인데도 본래 의도했던 내용과는 정반대가 돼버렸습니다. 그러면 경찰들이 화가 나서 조서를 북북 찢어버렸습니다.
1955년 7월 13일, 나는 중부경찰서로 연행된 지 엿새 만에 또다시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서대문형무소였습니다. 쇠고랑을 찼지만 부끄러울 것도 섭섭할 것도 없었습니다. 감옥살이는 내가 가는 길에는 아무런 방해도 되지 않았습니다. 격분의 심정을 자극하는 탄탄한 동기가 되었지 나를 좌절시키는 함정이 되지는 않았으니 도리어 나로서는 장사 밑천을 번 셈입니다. '감옥에서 사라질 내가 아니다. 난 죽을 수 없어. 이건 해방의 세계를 향해 도약하기 위한 발판일 뿐이다'라고 생각하며 옥살이를 이겨냈습니다.
악한 것은 망하고 선한 것은 흥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고 하늘의 법입니다. 아무리 똥감태기 안에 들어갔다 하더라도 순수하고 참된 마음을 잃지 않는다면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내가 쇠고랑을 차고 갈 때, 지나가는 여자들이 곁눈질을 하며 얼굴을 찡그렸습니다. 음란한 사이비 교주이니 보기도 역겹다는 표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겁날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었습니다. 더러운 말로 나와 교회를 희롱해도 나는 결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나라고 어찌 아픔이 없겠습니까? 겉으론 당당한 척했지만 목이 메고 뼈끝이 사무치게 서러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내가 이렇게 감옥에서 사라져버릴 사나이가 아니다. 나는 반드시 다시 선다. 확실히 다시 선다" 하고는 이를 악물었습니다. '그 모든 아픔을 내 안에 숨긴 채 안고 가는 거다. 교회의 모든 짐을 내가 지고 가는 거다'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졌습니다.
내가 잡혀 들어가면 교회가 망해 당장 식구들이 뿔뿔이 흩어질 줄만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형무소에 들어가 있는 동안 교회 식구들이 하나같이 나를 면회하러 날마다 찾아왔습니다. 서로 먼저 면회를 하겠다며 다투기도 했습니다. 아침 8시가 되어야 면회가 시작되는데 우리 식구들은 새벽부터 형무소 담장에 줄을 서서 기다렸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욕하면 욕할수록 내가 외로우면 외로울수록 나를 위로하고 나를 위해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점점 더 많아졌습니다.
면회 온 교회 식구들을 내가 다정하게 맞아준 것도 아니었습니다. "부산스럽게 오긴 뭐 하러 와?" 하고 핀잔을 주기 일쑤였습니다. 그래도 눈물을 줄줄 흘리며 나를 따랐습니다. 그런 것이 믿음이고 사랑입니다. 내가 말을 번드르르하게 잘해서 좋아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사랑을 알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입니다. 우리 식구들은 그 진심을 알아주었습니다. 내가 쇠고랑을 차고 재판을 받으러 다닐 때 나를 찾아 이리저리 몰려다니던 식구들을 죽어도 잊지 못합니다. 피고석에 앉은 내 모습을 보며 훌쩍거리던 그 얼굴들은 언제나 내 기억 속에 있습니다.
"어떻게 사람을 미치게 해도 저렇게 미치게 할 수 있나?"
형무소 간수들이 몰려드는 우리 식구들을 보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저 사람이 자기 남편도 아니고 여편네도 아니고 자기 아들도 아닌데 어떻게 저렇게 지성일 수가 있나?" 하고 감탄도 하고, "뭐 문 선생이 독재자이고 착취하는 자라더니 그게 모두 헛소리였구먼" 하고 생각을 바꿔 우리 식구가 된 사람도 있었습니다. 결국 형무소에 갇힌 지 석 달 만에 무죄로 석방되었습니다. 내가 석방되던 날, 형무소장과 과장들이 모두 정중하게 배웅해주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석 달 만에 우리 식구가 되어있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내게로 돌아선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가까이에서 가만히 지켜보니까 소문하고는 전혀 딴판이더라는 겁니다. 세상의 요란한 헛소문이 오히려 전도에 도움이 된 셈이었습니다.
잡혀갈 때는 모든 언론과 세상이 시끄럽게 난리더니 막상 무죄로 풀려나올 때는 잠잠했습니다. 신문 한 곳에만 '문 총재 무죄 석방'이라는 단 석 줄의 단신이 실렸을 뿐입니다. 나에 대한 흉악한 헛소문은 전국에 떠들썩하게 알려졌지만 그 소문이 몽땅 엉터리였다는 사실은 조용하게 묻혀버린 것입니다. 식구들은 "선생님,분하고 억울해서 못살겠어요" 하며 나를 보고 울었지만 나는 그저 침묵하며 그들을 달랬습니다.
그러나 헛소문으로 인해 손가락질 받고 희롱 받던 아픔을 잊지는 않았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나를 몰아세워 삼천리 반도에 내 한몸 설 자리가 없어도 모두 참아넘겼지만 그 슬픔은 오늘날도 가슴 한쪽에 오롯이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비바람에 부대끼고 불에 그을리더라도 절대로 타서 죽는 나무는 될 수 없었습니다. 그을린 나뭇가지에도 봄이 되면 새싹은 돋는 법입니다. 강한 신념을 마음에 품고 떳떳하게 걸어가다보면 세상도 분명히 나를 알아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