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친구가 된 고생 왕초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 2장) u

훈독왕 | 20190902170233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 2장


2장 눈물로 채운 마음의 강



노동자의 친구가 된 고생 왕초 

서울에서처럼 도쿄에서도 안 가본 데 없이 구석구석 돌아다녔습니다. 친구들이 닛코日光와 같이 경치 좋은 곳을 구경 갈 때에도 홀로 남아 도쿄 시내 곳곳을 걸어다녔습니다. 겉은 번드레했지만 도쿄시내에도 가난한 사람들 천지였습니다. 나는 집에서 보내주는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모두 나눠주었습니다. 


그 시절은 모두들 배가 고팠습니다. 유학생들 중에는 고학생이 많았습니다. 나는 한 달치 식권이 나오면 모두 들고 나가 고학생들에게 주며 "먹어라, 마음껏 먹어라" 하며 다 써버렸습니다. 나는 돈을 버는 것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아무데라도 가서 노동을 하면 밥은 먹을 수 있었으니까요. 돈을 벌어서 형편이 어려운 학생의 학비를 도와주는 것도 나의 낙이었습니다. 그렇게 남에게 도움을 주고 밥을 먹이면 온 몸에서 힘이 펄펄 났습니다. 


내가 가진 돈을 모두 나눠준 다음에는 리어카로 배달하는 일을 했습니다. 도쿄 시내 27개 구역을 리어카로 누비고 다녔습니다. 불빛이 화려한 긴자銀座 사거리에서 리어카에 전신주를 싣고 가다 뒤집혀 사람들이 혼비백산 달아난 적도 있습니다. 덕분에 지금도 도쿄 구석구석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꿰뚫고 있습니다.


나는 노동자 중의 노동자요, 노동자들의 친구였습니다. 땀내와 지린내가 진동하는 그들처럼 나 또한 노동판에 나가 진땀을 흘리며 일했습니다. 그들은 나의 형제였고, 그래서 지독한 냄새도 싫지 않았습니다. 새까만 이가 열을 지어 기어가는 더러운 담요도 그들과 함께 덮었습니다. 때가 켜켜이 낀 손도 주저 않고 마주 잡았습니다. 땟국물이 흐르는 그들의 땀 속에 끈끈한 정이 있있습니다. 나는 그 정이 구수하니 좋았습니다. 


나는 주로 가와사키川崎 철공소와 조선조에서 막노동을 했습니다. 조선소에는 '빠지'라고 부르는 석탄을 실어 나르던 통통배가 있습니다. 우리는 세 사람씩 조를 짜서 새벽 1시까지 석탄120톤을 빠지에 싣는 일을 했습니다. 일본사람들이 사흘 걸려 할 일을 한국사람들은 하룻밤에 해치웠습니다. 한국사람의 본때를 보여주려고 무조건 열심히 했습니다.


막노동판에는 노동자의 피땀을 갉아먹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노동자들을 직접 관리하는 조장이란 자들이 흔히 그렇습니다. 그들은 노동자들이 힘들여 번 돈의 3할을 떼어 자기 주머니를 채웠지만 힘이 없는 노동자들은 항의 한번 못했습니다. 조장은 약한 자를 괴롭히고 강한 자에게 빌붙는 인간이었습니다.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던 나는 삼총사 친구들을 불러모아 조장을 찾아가 "일을 시켰으면 시킨대로 돈을 지불하라!고 대들었습니다. 하루로 안 되면 이틀,사흘, 될 때까지 따지고 들었습니다. 그래도 영 말을 듣지 앉자 내 큰 덩치로 발차기를 해 조장을 날려버렸습니다. 나는 본래 말이 없고 유순한 사람이지만 화가 나면 어릴 적 고집쟁이 기질이 살아나 확 걷어차버리기도 잘합니다. 


가와사키 철공소에는 유산탱크가 있었습니다. 노동자들은 유산탱크를 정화하기 위해 탱크 속에 직접 들어가 원료를 쭈욱 흘려 보내는 일을 했습니다. 유산이 얼마나 독한지 그 속에서는 15분 이상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노동자들은 밥을 위해 목숨을 내놓고 일했습니다. 밥이란 목숨과도 바꿀만큼 그렇게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늘 배가 고팠지만 아무리 배가 고파도 나를 위해 밥을 먹지는 않았습니다. 밥을 먹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매끼니마다 배고픈 이유를 스스로에게 따져 물었습니다. '진정으로 피땀 흘려 일했는가? 나를 위했는가, 공적인 일을 위했는가? 하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밥 그릇을 대할 때마다 "너를 먹고 어제보다 더 빛나고 공적인 일을 해줄게" 하면 밥이 나를 보고 웃으며 좋아했습니다. 그럴 때 밥 먹는 시간은 무척이나 신비롭고 기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배가 고파도 굶었으니 하루 두 끼를 온전히 찾아 먹는 날도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본래 먹는 양이 적어서 하루 두 끼로 견딘 것은 아닙니다. 한창 젊은 나이라 나도 먹기 시작하면 끝이 없었습니다. 큰 그릇에 담긴 우동을 열한 그릇까지 먹어봤고 닭고기 계란덮밥을 일곱 그릇이나 먹은 적도 있습니다. 그렇게 식성이 좋은데도 점심을 거르고 하루에 두끼만 먹는 습관을 서른 살이 넘도록 고집했습니다. 배가 고픈 것은 그리움입니다. 나는 배고픈 그리움이 무엇인지 잘 알지만 세계를 위해서 밥 한 끼쯤은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새 옷을 입어본 적도 없습니다. 아무리 추워도 방에 불을 때지 않았습니다. 몹시 추울 때 신문지 한 장은 비단이불처럼 따뜻합니다. 나는 신문지 한 장의 가치를 잘 압니다.


어떤 때는 아예 시나가와品川의 빈민굴에서 살기도 했습니다. 누더기를 뒤집어쓴 채 잠들고 햇빛이 좋은 한낮이면 이를 잡으며 거지들이 얻어온 밥을 나눠 먹었습니다. 시나가와의 거리에는 떠돌이 여자들도 많았습니다. 한 명 한 명 사연을 들어주다보니 술 한 모금 마시지 못하는 내가 어느새 그들의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버렸습니다. 술을 마셔야 본심을 털어놓는다는 것은 공연한 핑계입니다. 술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그녀들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내 마음이 진심인 것을 알게 되자 그녀들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일본에서 공부하는 동안 나는 정말 별의별 일을 다했습니다. 빌딩의 소사小使 노릇도 했고 글을 대신 써주는 필생筆生 노릇도 했습니다. 노동판에 나가 노동을 하고 현장감독도 했으며 남의 사주를 봐주기도 했습니다. 궁하면 글씨를 써서 팔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공부하기를 게을리하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그런 것이 모두 나를 단련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별의별 일을 다 하고 별의별 사람을 다 만나보았는데, 그런 과정을 통해서 사람에 대하여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 덕분에 사람을 척 보면 '아, 무엇을 하는 사람이겠구나', '아, 좋은 사람이구나' 하고 대번에 알 수 있었습니다. 내 머리가 이렇다 저렇다 생각하기 전에 내 몸이 먼저 알아버리는 것입니다.


지금도 나는 사람이 바로 되려면 서른 살 이전에는 고생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나이에는 인생 밑바닥에 닿는 절망의 도가니에 한번 쯤 빠져봐야 합니다. 절망의 나락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내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아하!" 하고 함성을 지르면서 "오늘의 절망이 없었더라면 내가 이런 결심을 할 수 없었을 텐데" 하고 마음을 다지게 됩니다. 절망 속에서 함성을 지르며 빠져나와야만 새로운 역사를 쓰는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사람은 한 곳만 바라봐서는 안 됩니다. 위도 볼 줄 알고 아래도 볼 줄 알며 동서남북도 모두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생애가 다 같은 70년, 80년이 아닙니다. 한번밖에 없는 인생인데 그 기간에 성공하느냐 못하느냐는 내 눈이 잘 보느냐 못 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잘 보려면 경험이 많아야 합니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라도 여유 있는 인간미와 융통성 있는 자주성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인격자란 한번 올라갔다가 급히 내려가는 삶에도 익숙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한번 올라가면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해서 그 자리를 지키려고 안간힘을 씁니다만 고인 물은 썩기 마련입니다. 위로 올라갔더라도 아래로 내려와 때를 기다렸다가 더 큰 정상을 향해 올라갈 줄 알아야 수많은 사람이 우러르는 위대한 인물, 위대한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서른 살이 되기 전 젊은 시절에 이런 경험들을 다 해봐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청년들에게 세상의 온갖 일들을 경험해보라고 권합니다. 백과사전을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모두 섭렵하듯, 세상의 모든 일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을 때 비로소 자기의 주관이 서는 것입니다. 주관이란 바로 자신의 뚜렷한 주체성입니다. "전국을 다 돌아봐야 나를 꺾을 사람이 없고 나를 당할 자가 없다" 하는 자신감을 얻은 후에 가장 자신 있는 것을 하나 붙들고 냅다 밀어붙이는 겁니다. 일생을 그렇게 살면 반드시 성공합니다. 성공할 수밖에 없습니다. 도쿄에서 거지 노릇을 하면서 나는 이런 결론을 얻었습니다. 


나도 도쿄에서 노동자들과 같이 먹고 자면서, 또 거지들과 배고픈 서러움을 함께 나누면서 고생왕초, 고생철학박사가 되어보고 나서야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서른 살 이전에 고생왕초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생왕초, 고생철학박사가 되는 것이 하늘나라의 영광을 독차지하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