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를 사랑하면 소가 보인다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 1장)

훈독왕 | 20190824213331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 1장


1장 밥이 사랑이다


첨부파일 24 자서전 소를 사랑하면 소가 보인다 1.mp3


소를 사랑하면 소가 보인다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알고 넘어가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 탓에 뭐라도 대충대충 넘어가는 법이 없었습니다. '저 산은 이름이 무엇일까, 저 산에는 무엇이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기면 반드시 가봐야 했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동네방네 이십 리 안팎에 있는 산꼭대기란 산꼭대기는 모두 올라가 봤습니다. 그 너머까지도 안 가본 곳이 없습니다. 그래야 아침 햇빛 비치는 저곳에 무엇이 있다는 것이 머릿속에 그려져 맘 편히 바라보지, 모르는 곳은 바라보기도 싫었습니다. 내 눈에 보이는 것, 그 너머에 있는 것들을 모두 알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산에 다니면서 안 만져본 꽃이며 나무가 없습니다. 눈으로만 보는 건 성에 차지 않아 꽃이건 나무건 만져보고 냄새를 맡아보고 입에 넣어 씹어봤습니다. 그런데 그 향기와 촉감,맛이 너무 좋아서 온종일 수풀에 코를 박고 있으라고 해도 싫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자연이 좋으니 밖에만 나가면 집에 가는 것도 잊어버리고 산과 들을 쏘다녔습니다. 해가 지고 날이 어둑어둑해져도 무서운 줄 몰랐습니다.


  누나들이 산나물을 캐러 갈 때면 내가 앞장서서 산에 올라 산나물을 뜯었습니다. 덕분에 맛좋고 영양가 있는 나물도 종류별로 줄줄 꿰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씀바귀를 좋아했는데 양념장에 무쳐서 고추장 비빔밥에 넣어 먹으면 맛이 일품입니다. 씀바귀를 먹을 때는 입에 넣고 숨을 딱 멈춰야 합니다. 그렇게 한 박자 뜸을 들이는 사이에 씀바귀의 쓴 맛이 날아가고 달콤한 맛이 우러나는데 그 박자를 잘 맞춰야만 아주 맛있게 씀바귀를 먹을 수 있습니다.


  나무타기도 좋아해서 우리 집에 있던 2백 년 된 커다란 밤나무를 주로 오르내렸습니다. 멀리 동구 밖까지 시원하게 탁 트인 전망이 얼마나 좋았는지 꼭대기에 올라가면 내려올 줄을 몰랐습니다. 때로 는 한밤중까지 올라가 있으면 바로 손위의 누나가 잠도 자지 않고 쫓아나와 위험하다며 난리를 쳤습니다.

"용명아, 제발 내려와라. 밤 늦었는데 이제 들어와서 자야지."

"졸리면 여기서 자면 되지."


  누나가 뭐라 해도 나는 밤나무 가지에 앉아 꿈쩍도 안 했습니다. 그러면 나를 지키다 화가 난 누나가 "야, 원숭이! 빨리 내려와!" 하고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마 내가 원숭이 띠여서 그렇게 나무타기를 좋아했는지도 모릅니다. 밤나무에 밤송이가 주렁주렁 매달리면 부러진 나뭇가지로 밤송이를 툭툭 건드리며 뛰어다녔습니다. 그러면 밤송이가 후드득 땅 위로 떨어져 내리는데, 이 놀이도 정말 신이 났습니다. 시골에서 자라지 않은 요즘 아이들은 이런 재미를 모르니 참 안되었습니다.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도 나의 관심 대상이었습니다. 어쩌다 예쁘장한 새가 날아오면 수놈은 어떻게 생겼고 암놈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여 요리조리 살펴보고 연구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나무나 풀, 새의 종류를 알려주는 책이 없었기 때문에 직접 자세히 살펴보는 도리밖에 없었습니다. 철새가 가는 곳을 따라 산을 이리저리 뒤지고 다니느라 밥을 굶는 것도 예사였습니다.


  한번은 까치가 어떻게 알을 낳는지가 하도 궁금하여 아침저녁으로 까치집이 있는 나무를 오르내렸습니다. 그렇게 매일같이 나무에 오르내리니 정말로 알을 낳는 것도 보게 되고 까치와도 친구가 되었습니다. "깍깍깍깍!" 까치도 처음에는 나만 보면 죽겠다고 깍깍거리며 야단을 치더니 나중엔 가만히 있었습니다.


  주변의 풀벌레도 내 친구였습니다. 해마다 늦여름이면 내 방 앞의 감나무 꼭대기에서 쓰르라미가 울었습니다. 여름 내내 맴맴거리며 귀 따갑게 울어대던 매미소리가 뚝 끊기고 쓰르라미가 울기 시작하면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이제 곧 무더운 여름이 끝나고 시원한 가을이 온다는 소식을 전하는 울음이기 때문입니다.


  "쓰르 쓰르르르..."그렇게 쓰르라미가 울 때마다 나는 감나무를 올려다보며 생각했습니다. '아암,기왕에 울 거면 그렇게 높은 데서 울어야 동네 사람들이 다 듣고 좋아하지. 구덩이에 들어가 울면 누가 알게 뭐람.' 그런데 알고 보니 매미도 쓰르라미도 모두 사랑을 하기 위해 우는 것이었습니다. "맴맴맴...쓰룩쓰룩..." 이 모든 소리가 모두 짝을 부르는 신호라는 것을 알고나니 벌레소리가 들릴 때마다 웃음이 절로 났습니다. "오냐, 사랑이 그립단 말이지? 열심히 울어서 좋은 짝을 찾아보아라." 이렇게 세상 만물과 친구가 되어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법을 조금씩 깨우쳐갔습니다.


 고향집에서 십 리만 나가면 황해였습니다. 조금만 높은 곳에 올라도 바다가 훤히 보일 정도로 가까웠습니다. 바다로 가는 길목에 물웅덩이들이 연달아 있고 그 가운데로 개울물이 흘렀습니다. 나는 구정물 냄새가 나는 물웅덩이를 뒤져 뱀장어와 참게를 잘도 잡았습니다. 별의별 데를 다 쑤셔서 고기를 잡다보니 어디에 어떤 고기가 사는지 훤히 알았습니다. 

  뱀장어는 본디 엎디어있는 걸 싫어해서 구멍으로 숨어듭니다. 머리를 구멍에 처박고 몸뚱이를 미처 다 넣지 못해 꼬리가 살짝 삐져나와 있기 일쑤입니다. 꼬리처럼 보이는 걸 쑤욱 잡아 빼면 영락없습니다. 게 구멍 같은 곳에 꼬리를 뺀 채 뱀장어가 길게 숨은 것입니다. 집에 손님이 오셔서 뱀장어찜이 먹고 싶다 하면 십오 리 길을 내처 달려가 뱀장어 댓마리씩 잡아오는 건 일도 아니었습니다. 여름방학이 되면 하루에 뱀장어 40마리 이상씩은 만날 잡아왔으니까요.


  내가 유일하게 싫어한 일이 있었는데, 바로 소를 먹이는 일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소를 먹이라고 하시면 건너 동네 들판에 소를 매어놓고는 달아나버렸습니다. 한참을 달아나다 걱정이 되어 돌아보면소는 여전히 그 자리에 매여있습니다. 반나절이 지나도 자기를 먹여줄 사람이 나오지 않으면 소는 '음매~' 하고 울었습니다.


  멀리서 소 울음소리가 들리면 내 마음이 짠해 '저놈의 소, 저거, 저거...' 하고 애가 탔습니다. 배고프다며 나를 찾는 울음소리를 모른척 하려니 내 마음이 오죽했겠습니까? 그래도 저녁 늦게 찾아가면 화를 내며 자기 뿔로 나를 받아넘기지 않고 반가워했습니다. 그런 소를 볼 때마다 사람도 큰 뜻 앞에서는 소 같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직하게 때를 기다리면 좋은 일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집에는 내가 참 사랑하던 개가 있었습니다. 어찌나 영리한지 학교에서 돌아올 때쯤이면 집 밖 멀리까지 마중을 나왔습니다. 나를 보고 반가워하면 늘 오른손으로 만져줬더니 내 왼편으로 왔다가도 쓱 돌아서 오른편으로 와서 얼굴을 비벼댔습니다. 그러면 나는 오른손으로 얼굴을 쓱쓱 만져주고 등을 쓸어주었습니다. 안 그러면 낑낑거리며 따라와 내 주변을 빙빙 돌았습니다. '요 녀석아, 사랑이 무엇인지 너도 아는구나. 그리 사랑이 좋으냐?'


  동물들도 사랑을 다 압니다. 암탉이 병아리를 까기 위해 알을 품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알을 품은 암탉은 눈을 심각하게 뜨고 누가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제 발을 구르면서 온종일 앉아있습니다. 암탉이 싫어하는 줄 뻔히 알면서도 나는 닭장을 수시로 들락거렸습니다. 내가 닭장에 들어가면 암탉은 성이 나서 목을 꼿꼿이 세우고 노려봅니다. 그럼 나도 물러서지 않고 암탉을 노려봅니다. 하지만 하도 닭장을 드나들자 나중에는 암탉도 나를 아예 못 본 척했습니다. 하지만 알을 지키느라 발톱을 길게 내밀고 신경을 곤두세웠지요. 


한번쯤  휭하니 날아서 나를 쪼아버릴 법도 한데 알때문에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애만 태웠습니다. 일부러 암탉 가까이 가서 깃털을 건드려도 꿈쩍도 안 합니다. 배의 털이 다 빠지도록 지키고 앉아 병아리를 탄생시킵니다. 그렇게 사랑으로 단단히 뭉쳐있으니 알을 품은 암탉의 권위는 수탉도 마음대로 못합니다. '천하의 누구라도 건드리기만 해봐라, 가만 안 둔다' 하는 천하의 대왕지권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암탉이 알을 품고 지키는 게 사랑이듯 돼지가 새끼를 낳는 것도 사랑입니다. 돼지가 새끼를 낳는 것도 따라다니며 지켜보았습니다. 어미 돼지가 '꿍!' 하고 힘을 주면 새끼 돼지가 '미끌' 떨어지고, 또 '꿍!' 하고 힘을 주면 또 한 마리가 '미끌' 하고 나왔습니다. 고양이도 개도 마찬가지입니다. 눈도 못 뜬 새끼들이 '응!' 하고 세상에 나오면 얼마나 기쁜지 웃음이 절로 났습니다. 그렇지만 동물들의 죽음을 보는 일은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도살장이 있었습니다. 소가 도살장으로 들어서면 어느 틈에 백정이 나와서 소를 팔뚝만한 쇠망치로 쾅 내려칩니다. 그 큰 소가 벌러덩 쓰러지면 다음 순간 가죽을 벗겨내고 다리를 떼어냅니다. 생명이 참 모진 것이, 다리를 떼어낸 뒤에도 잘린 그 자리가 계속해서 벌렁대는 겁니다. 그걸 보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는지 엉엉 울었습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좀 남다른 데가 있었습니다. 신통력이 있는 것처럼 남들이 알지 못하는 걸 곧잘 알았습니다. 어려서부터 내가 비가 온다고 하면 영락없이 비가 왔습니다. 집 안에 앉아서는 '오늘 저 윗동네 아무개 할아버지 편치 않겠는 걸' 하면 틀림없었습니다. 그러니 여덟 살 때부터 동네방네 선봐주는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신랑 각시 사진 두 장만 갖다주면 다 알았습니다. '이 결혼은 나빠'라고 내가 말했는데도 결혼을 하면 전부 깨져 나갔습니다. 그렇게 연분을 맺어주는 일을 아흔이 되도록 했으니 이젠 그 사람이 앉는 것, 웃는 것만 쓱 봐도 다 알게 되었지요.


  지금 누나가 무얼 하는지도 골똘히 생각해보면 다 알 수 있었습니다. 정신을 모으고 집중해보면 다 보였습니다. 그래서 누나들은 나를 좋아하면서도 무서워했습니다. 내가 자기들 비밀을 다 알고 있으니까요. 대단한 신통력 같지만 사실 이건 별로 놀랄 일도 아닙니다.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개미도 장마가 질 걸 알고 미리 피하지 않습니까? 사람도 자기 갈 길을 미리 알아야 합니다.그걸 아는 게 그리 어려울 것도 없습니다.  


  까치둥지를 자세히 보면 바람이 어디서 불어올지 알 수 있습니다.바람이 어디서 불어오겠다 싶으면 까치는 그 반대편에 입구를 척 만들어놓습니다. 나뭇가지를 물어다 얼기설기 역은 다음 빗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진흙을 물어다 둥지 아래위로 바릅니다. 그러고는 나뭇가지의 끄트머리를 모조리 한 방향으로 몰아놓습니다. 마치 처마처럼 빗물이 한 군데로만 흐르게 하는 겁니다. 까치도 그렇게 자기를 살리는 지혜가 있는데 사람한테 왜 그런 재주가 없겠습니까?


  아버지랑 소시장에 가서 "아버지, 저 소는 나쁘니 사지 마세요. 좋은 소는 목덜미가 잘 생기고 앞발이 튼튼하고 뒤와 허리가 튼실해야 하는데, 저 소는 영 아니에요"라고 하면 반드시 그 소는 안 팔렸습니다. 아버지가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하시기에 "나는 어머니 배속에서부터 배워 나왔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물론 그냥 한 소리였습니다.


  소를 사랑하면 소가 보이는 법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힘이 센 건 사랑이고, 제일 무서운 건 정신통일입니다. 마음을 침착하게 가라앉히면 마음 깊은 곳에 마음이 가라앉는 자리가 있습니다. 그 자리까지 내 마음이 들어가야 합니다. 마음이 거기에 들어가서 자고 깰 때에는 정신이 아주 예민해집니다. 바로 그때 잡다한 생각들을 물리치고 정신을 집중하면 모든 것이 통합니다. 의심이 나면 지금이라도 당장 해보십시오.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은 그들을 가장 사랑하는 데에 속하려 합니다. 그러니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으면서 소유하거나 지배하는 것은 가짜이므로 언젠가는 토해내고 맙니다.

첨부파일첨부된 파일이 1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