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의 친구가 되어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 1장) u

훈독왕 | 20190824210348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1장 밥이 사랑이다


 모든 이의 친구가 되어


 나는 마음에 정한 것이 있으면 당장 실행에 옮겨야지, 그러지 못하면 잠을 못 잤습니다. 어쩔 수없이 날이 밝기를 기다려야 되면 밤새도록 잠도 못 자고 담벼락을 긁어댔습니다. 하도 긁어대 바람벽이 다 헐고 밤새 흙부스러기가 수북하게 쌓일 정도였습니다. 억울한 일이 있으면 밤에 잠을 자다 말고 뛰쳐나가 그 애를 불러내 한바탕 싸움을 벌이기도 했으니, 이런 아들을 키우느라 우리 부모님도 마음고생깨나 하셨습니다.


  특히 잘못된 행동을 보아넘기지 못해 마치 동네 해결사라도 되는 것처럼 아이들 싸우는 데는 모두 끼어들어 시시비비를 가려주고, 잘못한 아이에게 호통을 치곤 했습니다. 한번은 동네에서 제멋대로 횡포를 부리는 아이의 할아버지를 찾아가 "할아버지, 댁의 손자가 이러이러한 잘못을 했으니 단속 좀 해주세요" 라고 당차게 충고를 한 적도 있었습니다.


  행동은 거칠어보였지만, 실상 나는 정이 많은 아이였습니다. 늦게까지 할머니의 빈 젖을 만지며 잠들기를 좋아했는데 할머니도 나의 이런 어리광을 내치지 않으셨습니다. 시집간 누나네 집에 놀러가서 사돈 어른을 붙들고 떡 해달라 닭 잡아 달라고 졸랐는데도 미움을 받지 않은 것은 내 마음 속에 따뜻한 정이 있다는 것을 어른들이 아셨기 때문입니다. 특히 나는 동물을 돌보는 일에 유별났습니다. 집 앞 나무에 둥지를 튼 새들이 물을 먹을 수 있도록 웅덩이도 만들어주고, 곳간에서 좁쌀을 가져와 마당에 훌훌 뿌려주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사람이 접근하면 도망가던 새들도 밥 주는 사람이 사랑을 주는 사람이란 걸 알아봤는지 언젠가부터는 나를 보고도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물고기를 길러볼 요량으로 고기를 잡아다 웅덩이에 넣어두었습니다. 먹이도 한 줌 넣어주었는데 이튿날 일어나보니 다 죽어있었습니다. 잘 키우고 싶었는데 힘없이 물에 떠오른 모습을 보니 얼마나 기가 막힌지 온종일 운 적도 있습니다.


  아버지는 양봉을 수백 통이나 하셨습니다. 커다란 벌통에 벌집의 기초가 되는 원판 소초를 촘촘히 박아놓으면 거기에 벌들이 밀을 물어다가 둥지를 틀고 꿀을 저장합니다. 호기심 많던 나는 벌들이 집 짓는 구경을 하려고 벌통 한가운데에 얼굴을 들이밀었다가 벌들에 쏘여 얼굴이 맷방석만 하게 부풀어 오른 적도 있습니다.

벌통의 원판을 내 멋대로 빼돌려 크게 야단을 맞은 일도 있었습니다. 벌이 집을 다 지으면 아버지는 원판을 모아 켜켜이 쌓아두는데, 그 원판에는 벌들이 만들어놓은 밀랍이 묻어 있어 기름 대신 불을 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그 비싼 원판을 웽가당 뎅가당 짓이겨서는 석유가 없어 불을 못 켜는 집에 촛불이라도 켜라며 나눠준 것입니다. 그렇게 제멋대로 인심을 쓰다가 아버지한테 정말 혼쭐이 났습니다.


  열두 살 때 일이었습니다. 그때는 마땅히 놀이라 할 만한 게 없어 기껏해야 윷이나 장기 아니면 투전이 전부였습니다.


  나는 여럿이 어울려 노는 것을 좋아하여 낮에는 윷놀이나 연날리기 등을 하고 저녁에는 동네 투전판을 들락거렸습니다. 한 판에 120원을 따는 것이었는데 웬만하면 세 판이나 땄습니다. 섣달 그믐날이나 정월보름날은 투전판의 전성기였습니다. 그런 날이면 순사가 와서 보고도 잡아가지 않았습니다. 나는 어른들의 투전판이 벌어지는 곳에 가서 한숨 자고 새벽녘에 딱 세 판만 끼어들었습니다. 그렇게 딴 돈으로 조청을 독째 사다가 너도 먹고 물러가라, 너도 먹고 물러가라하면서 동네 아이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절대 그 돈을 나를 위해 쓰거나 나쁜 짓을 하는 데 쓰지 않았습니다. 매부들이 집에 오면 지갑에 든 돈을 마음대로 꺼내 썼습니다. 그래도 좋다고 미리 허락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매부 돈을 꺼내 불쌍한 애들한테 말눈깔 사탕도 사주고 조청도 사주었습니다.


  어느 동네든 잘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못사는 사람도 있기 마련입니다. 못사는 친구들이 도시락으로 조밥을 싸오는 것을 보면 차마 내 밥을 먹지 못하고 친구의 조밥과 바꿔 먹었습니다. 나는 잘살고 드센 집 아이들보다는 어렵게 살고 밥을 못 먹는 아이와 더 친했고, 무슨 짓을 해서라도 그 아이의 배고픔을 해결해주고 싶었습니다. 그게 바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놀이였기 때문입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모든 사람의 친구, 아니 친구 이상으로 깊은 마음을 나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삼촌 중에 욕심 많은 이가 한 분 있었습니다. 동네 한복판에 삼촌네 참외밭이 있었는데 여름이면 달콤한 냄새때문에 밭을 지나던 동네 아이들이 안달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삼촌은 길가의 원두막을 지키고 앉아 참외를 한 개도 나눠주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내가 "삼촌, 내가 언제 한번 참외를 원 없이 가져다 먹어도 되지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삼촌은 "그럼, 그렇고 말고" 하고 선선히 대답했습니다. 나는 "참외 먹고 싶은 애들은 포댓자루 하나씩 들고 밤 열두 시에 우리집 앞으로 모두 모여라!" 하고는 아이들을 불러모았습니다. 그러고는 삼촌네 참외밭으로 몰려가서 " 너희들 마음대로 아무 걱정 말고 한 고랑씩 다 따라" 고 했습니다.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참외밭으로 뛰어들어가 순식간에 참외 몇 고랑을 모조리 따버렸습니다. 그날 밤 배고픈 동네 아이들은 싸리밭에 앉아 참외를 배가 터지도록 먹었습니다.


  이튿날 삼촌네는 난리가 났습니다. 벌집을 쑤셔놓은 듯한 삼촌댁을 찾아갔더니, 삼촌은 나를 보자마자 "이놈, 네가 한 짓이냐? 참외농사를 헛수고로 만든 게 바로 네놈이란 말이냐?" 하며 펄펄 뛰셨습니다. 나는 삼촌이 뭐라고 야단을 쳐도 기죽지 않고, "삼촌, 원없이 먹어도 된다고 하셨잖아요. 동네 아이들이 참외를 먹고 싶어하는 그 마음이 바로 내 마음이에요. 먹고 싶어하는 아이들한테 참외 한 개씩 나눠줘야겠어요, 절대로 안 줘야겠어요?"하고 따져 물었습니다. 그러자 화가 나서 펄펄 뛰던 삼촌도 "그래, 네가 옳다" 하며 물러서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