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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사랑하면 통일이 됩니다
24 자서전 6-3 소련 땅에 종교의 자유를 허락하십시오 1.mp3
소련 땅에 종교의 자유를 허락하십시오
다윈의 진화론은 검증된 진리가 아닙니다. 정신이 물질에서 비롯된다는 그들의 사상은 뿌리부터 잘못된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이며 모든 존재는 정신과 물질의 양면을 지닌 통일체입니다. 한마디로 공산주의 이론과 사상은 그릇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나는 일본유학 시절에 공산주의자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그들 역시 조국광복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은 좋은 친구들이었지만 그들과 나는 근본적으로 생각이 달랐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조국이 광복된 후 각자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공산주의의 유물사관을 반대하는 사람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승공운동을 벌였고, 소련 공산주의의 세계 적화 전략에 맞서 자유세계를 수호해야 한다고 역대 미국 대통령들에게 직언을 한 적도 있습니다. 내 행적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공산국가에서 나를 제거하려고 테러를 시도하기도 했지만, 나는 그들을 미워하거나 원수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나는 공산주의의 사상과 이념을 반대하는 것이지 그 사람들을 미워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공산주의자들까지도 하나로 끌어안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냉전시대의 끝자락인 1990년 4월 소련 모스크바에 들어가 고르바초프를 만나고 그 이듬해 11월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을 만난 것은 단순히 목숨을 건 모험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늘의 뜻을 전하기 위해 내가 가야할 숙명이었습니다. 모스크바Moscow를 영어로 발음하면 머스트 고must go였기 때문에 가지 않으면 안 될 곳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공산주의에 대해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볼셰비키 혁명 이후 60년이 지나면 서서히 멸망의 징조가 나타나다가, 70년이 되는 1987년이 되면 기진맥진해 쓰러질 것을 예감했습니다. 1985년 댄버리교도소에 면회를 온 시카고 대학의 저명한 정치학자인 몰턴 캐플런 박사를 만나자마자 8월 15일이 되기 전에 ‘소련 공산주의의 종언’을 선포하라고 했습니다.
캐플런 박사는 "공산주의의 종언을 선포하라니요? 어떻게 그렇게 위험한 일을 …" 하며 영 내켜 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타는 불꽃이 가장 화려한 것처럼 당시는 공산주의 몰락을 예견할 만한 징조가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세를 넓히던 시절이었으니 겁을 집어먹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만에 하나 엉뚱한 선언이 되어버리면 학자로서의 명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것은 자명한 일이었습니다.
"레버런 문, 공산주의가 몰락한다는 당신의 이야기는 믿습니다. 하지만 아직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니 ‘공산주의의 종언’이라는 말보다는 ‘공산주의의 쇠퇴’라고 둘러 말하면 안 되겠습니까? "
그의 말에 나는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겁이 나도 확신이 있을 때는 용기를 내서 죽을힘을 다해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캐플런 박사, 그게 무슨 소리요? 공산주의 종언을 선언하는 것은 그만큼 분명한 뜻이 있기 때문이요. 당신이 공산주의의 종언을 선언하는 날, 공산주의는 그만큼 힘을 잃게 될 텐데 어찌 망설인단 말이요? "
결국 캐플런 박사는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평화교수아카데미 총회에서 ‘공산주의 종언’을 선포했습니다. 감히 누구도 생각할 수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그 당시 중립국인 스위스의 제네바는 소련국가보안위원회KGB의 주무대로 수만 명의 KGB 요원들이 세계를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하고 테러를 벌이는 곳이었습니다. 더구나 대회가 열렸던 인터컨티넨탈 호텔은 소련 대사관과 마주보고 있었으니 캐플런 박사가 얼마나 겁이 났을지 충분히 알만하지요. 그러나 몇 년 후 그는 최초로 공산주의의 종언을 예언한 학자로서 무척이나 유명세를 탔습니다.
나는 1990년 4월에 모스크바에서 열린 세계언론인대회에 참석했습니다. 뜻밖에도 소련 정부는 공항에서부터 국가원수급 대우를 해주었습니다.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모스크바 시내로 들어갔습니다. 내가 탄 자동차가 평소에는 아무도 사용하지 못하고 대통령과 국빈들만이 지나갈 수 있는 노란색 황금 길 위를 달렸습니다. 당시는 아직 소련이 붕괴되기 전인 냉전시대였는데도 반공주의자인 나를 극진히 대접해주었던 것입니다.
나는 세계언론인대회에서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를 칭찬하면서 그 혁명은 반드시 무혈혁명이어야 하며 마음과 영혼의 혁명이어야 한다는 내용의 연설을 했습니다. 세계언론인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모스크바를 방문한 것이었지만 사실 내 마음은 고르바초프 대통령과의 만남에 쏠려있었습니다.
당시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이 성공하면서 소련 내에서 고르바초프의 인기는 매우 높았습니다. 그만큼 미국의 대통령은 열 번이라도 만날 수 있는 나였지만 고르바초프를 만나기는 어려운 때였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를 만나서 할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에 꼭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가 소련을 개혁해 공산세계에 자유의 바람이 일어났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개혁의 칼은 그의 등을 겨누고 있었습니다. 이대로 가면 곧 큰 위험에 빠지고 말 것이었습니다.
“그가 나를 만나지 않으면 천운을 탈 길이 없고, 천운을 타지 못하면 오래 갈 수 없어.”
내가 염려하는 이야기가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귀에 들렸던지 그는 바로 이튿날, 모스크바의 크레믈린 궁전으로 나를 초청했습니다. 소련 정부에서 보내준 리무진을 타고 크레믈린 궁전 깊숙이 들어갔습니다. 대통령 접견실로 들어가 우리 내외가 앉고 그 옆으로 소련의 전직 각료들이 둘러앉았습니다. 얼굴 가득 환한 웃음을 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자신의 페레스트로이카가 어떻게 성공하고 있는지를 열심히 설명했습니다. 그리고는 밀실로 들어가 두 사람만의 특별회담을 가졌습니다. 나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 말했습니다.
"대통령께서는 페레스트로이카로 이미 훌륭한 성공을 거두고 계시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한 개혁을 할 수 없습니다. 지금 당장 소련 땅에 종교의 자유를 허락하십시오. 하나님 없이 물질세계만을 개혁하려 한다면 페레스트로이카는 반드시 실패합니다. 공산주의는 이제 곧 끝납니다. 이 나라에 종교의 자유를 불어넣는 것만이 나라를 구하는 길입니다. 이제는 러시아를 개방한 용기로 전 세계평화를 위해 일하는 세계의 대통령이 되어야 할 때입니다. "
종교의 자유라니, 전혀 예상치 못했던 말이 튀어나오자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적잖이 당황하며 얼굴을 굳혔습니다. 그렇지만 독일 통일을 허락한 사람답게 곧 굳어진 얼굴을 풀며 내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였습니다. 나는 곧바로 “한국과 소련은 이제 서로 국교를 맺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의 노태우 대통령을 꼭 초청해주십시오” 하며 말을 이었습니다. 덧붙여 한국과 소련이 수교하면 어떠한 점들이 좋은지도 일일이 설명해주었습니다. 내 이야기를 모두 들은 후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전에 없이 확실한 어조로 약속을 했습니다. “한소 관계는 순조롭게 발전할 것으로 확신합니다. 나 역시 무엇보다도 한반도의 정치적인 안정과 긴장 완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과의 수교는 시간문제일 뿐 아무런 장애도 없습니다. 문총재가 제안하신 대로 노대통령도 곧 만나도록 하겠습니다.”
그날 나는 고르바초프와 헤어지면서 내 손목시계를 풀어 그의 손목에 채워주었습니다. 마치 옛 친구를 대하듯 스스럼없는 내 태도에 당황하는 고르바초프를 향해 “대통령께서 지금 추진하고 계시는 개혁정책이 어려움에 봉착할 때마다 이 시계를 보면서 나와의 약속을 생각하면 하늘이 분명히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나와 약속한 대로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그해 6월, 샌프란시스코에서 노태우 대통령을 만나 한소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90년 9월 30일 한국과 소련은 86년 만에 역사적인 국교를 맺었습니다. 물론 정치는 정치가가, 외교는 외교관이 할 일이지만 때로 오랫동안 막힌 물꼬를 트는 일에는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종교인의 역할이 더 효과적이기도 합니다.
그로부터 4년 뒤에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서울을 방문해서 한남동의 우리 집을 찾았습니다. 그때는 이미 쿠데타로 권좌에서 물러나 야인이 되어있을 때였습니다. 1991년 8월 페레스트로이카에 반대하는 반개혁파의 쿠데타가 일어난 후 그는 공산당 서기장직을 사임하면서 소련 공산당을 해체시켰습니다. 공산주의자인 그가 자기 손으로 공산당을 없애버린 것입니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우리가 정성껏 준비한 불고기와 잡채를 젓가락으로 맛있게 먹었습니다. 후식으로 나온 수정과를 칭찬하면서 “한국의 전통음식이 무척 훌륭합니다.”라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습니다. 권좌에서 물러난 고르바초프와 라이사 여사는 그새 많이 변해있었습니다. 모스크바대학교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강의하던 철저한 공산주의자라이사 여사의 목에서 십자가 목걸이가 반짝였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위대한 일을 해내셨습니다. 소련의 서기장직 자리는 내놓으셨지만 이제 평화의 대통령이 되셨습니다. 당신의 지혜와 용기 덕분에 전쟁 없이 세계평화를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계를 위해 가장 크고 영원하고 아름다운 일을 하신 겁니다. 하나님의 일을 대신하신 당신은 평화의 영웅입니다. 러시아의 역사에 길이 남을 이름은 마르크스도 아니고 레닌도 아니고 스탈린도 아니고 오직 미하일 고르바초프뿐입니다.”
나는 전쟁 없이, 피 흘리는 일 없이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의 해체를 이룩한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의 결단을 높이 치하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레버런 문, 나는 오늘 대단한 위로를 받고 갑니다. 그 말씀을 들으니 힘이 납니다. 나의 남은 인생을 세계평화를 위한 사업에 헌신하겠습니다.”라며 내 손을 굳게 잡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