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6장 사랑하면 통일이 됩니다
32 자서전 6-1 인간을 선하게 만드는 종교의 힘 1.mp3
인간을 선하게 만드는 종교의 힘
1990년 8월 2일 이라크의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무력 침공했습니다. 지구의 화약고라 불리는 페르시아 만에 전쟁이 터진 겁니다. 전 세계가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갈 때, 나는 ‘기독교 지도자와 이슬람교 지도자를 만나 이 싸움을 말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즉각 양쪽에 연락을 취했습니다. 그 땅이 우리나라와 아무 상관이 없더라도 죄 없는 사람이 목숨을 잃는 전쟁은 있는 힘을 다해 말려야 했습니다.
이라크 침공이 일어나자마자 우리 교회 식구를 중동에 보내 각 종단의 지도자들을 모아 중동회담을 제안했습니다. 중동지역과 별 관계도 없는 내가 나서서 중동회담을 제안한 이유는 종교인이라면 마땅히 세계평화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었습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싸움은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분쟁에 비할 것이 아닙니다. 종교전쟁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습니다.
나는 부시 대통령에게 절대로 아랍권과 전쟁을 벌여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를 상대로 싸움을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들은 나라 위에 종교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라크가 공격을 받으면 아랍권이 모두 뭉치게 됩니다. 그래서 이라크 침공이 벌어지자마자 시리아, 예멘의 종단장들을 모아 부시와 절대로 전쟁하지 말라는 취지의 긴급회의를 열었습니다. 미국이 이기든 이라크가 이기든, 폭탄을 쏟아부어 집과 들과 산을 다 부수고 귀중한 생명이 피 흘리며 죽어간다면 무슨 보람과 낙이 있겠습니까?
중동지역에 위기의 조짐이 보일 때마다 우리 식구들은 전 세계의 유명 NGO와 함께 목숨을 걸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찾아갑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곳으로 우리 식구를 보내는 일이 편치는 않습니다. 브라질의 뜨거운 햇볕 아래서 밭을 갈고 아프리카의 난민촌을 방문하면서도 내 마음은 중동의 화약고로 달려간 식구를 향합니다. 그리고 하루빨리 세계에 평화가 정착되어 우리 식구를 죽음의 땅으로 보내는 일이 없기를 기도합니다.
2001년 뉴욕의 세계무역센터가 두 동강 나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세상에서는 이를 두고 이슬람교와 기독교 사이에 일어날 수밖에 없는 문명의 충돌이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이슬람교와 기독교는 충돌과 대립의 종교가 아닙니다. 둘은 하나같이 평화를 중시하는 종교입니다. 이슬람 세력은 과격하다는 생각이 편견인 것처럼 이슬람교와 기독교는 다를 것이라는 생각도 편견일 뿐입니다. 종교의 본질은 똑같습니다.
1994년 우리는 전 세계 종교학자 40여 명을 모아 『세계경전』을 편찬했습니다.『세계경전』은 기독교와 이슬람교, 불교를 비롯한 세계 주요 종교의 경전에 등장하는 단어들을 비교 연구한 결과물입니다. 그런데 작업을 끝내고 보니 그 많은 종교의 가르침 중에서 73퍼센트는 모두 같은 말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나머지 27퍼센트만이 각 종교의 특징을 나타내는 말들이었습니다. 이것은 전 세계 종교의 73퍼센트는 동일한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터번을 두르고 염주를 목에 걸고 십자가를 앞세우는 겉모습은 다르지만 우주의 근본을 찾고 창조주의 뜻을 헤아리는 것은 모두 같습니다.
사람들은 서로 취미만 같아도 좋은 친구가 됩니다. 태어난 고향만 같아도 몇 십 년 같이 지낸 사이처럼 말이 통합니다. 그런데 무려 가르침의 73퍼센트나 같은 종교들끼리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서로 통하는 것들을 이야기하며 손을 잡으면 될 일을 서로 다른 것들만 내세우며 비판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평화와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그 평화와 사랑을 놓고 다툼을 벌입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사는 곳에 대규모 폭격을 가하면서도 평화를 내세웁니다. 팔레스타인의 아이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데도 그들은 평화를 위한 전쟁이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믿는 유대교 역시 평화의 종교입니다. 이슬람도 마찬가지입니다.『세계경전』을 만들면서 우리가 얻은 결론은 세계의 종교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신앙을 가르치는 일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잘못된 신앙은 편견을 부르고 편견은 싸움을 부릅니다.
9.11테러 이후 테러리스트로 낙인찍힌 이슬람인도 우리처럼 평화를 바라는 사람들입니다. 오랫동안 팔레스타인의 지도자였던 아라파트 역시 평화를 바라는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1969년 팔레스타인민족해방기구plo의 의장이 된 후 가자지구와 요르단 강 서안을 팔레스타인 독립국으로 선포했습니다. 1996년 선거를 통해 팔레스타인의 대통령이 된 그는 하마스 등의 과격단체들의 활동을 막으면서 중동의 평화를 지키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중동문제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그와 직접 접촉하여 대화를 한 것이 12차례나 됩니다.
아라파트의 집무실을 찾아가는 길은 험난합니다.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삼엄한 경비병들 사이를 지나 적어도 세 차례 이상의 몸수색을 거쳐야만 겨우 들어갈 수 있습니다. 터번을 몇 겹으로 둘러쓴 아라파트는 우리 식구들을 만나면 웃으면서 “웰컴” 하고 인사를 건넵니다. 그러한 관계는 하루이틀에 구축된 것이 아닙니다. 그동안 우리가 중동평화를 위해 쏟은 정성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목숨을 걸고 분쟁지역에 들어가 종교지도자들과 관계를 맺기까지 우리는 피나는 노력을 했습니다. 돈도 많이 들고 힘도 많이 들었지요. 그래서 마침내 우리는 아랍과 이스라엘 모두에게 신뢰를 얻어 중동분쟁이 일어날 때마다 중재역할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내가 처음 예루살렘에 발을 디딘 것은 1965년이었습니다. 당시는 ‘6일 전쟁’이 일어나기 전이라 예루살렘이 아직 요르단의 영토일 때였습니다. 나는 예수가 빌라도의 재판정에 끌려가기 전에 피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올렸던 감람산을 찾았습니다. 그곳에는 이미 감람교회가 세워져있었습니다. 나는 예수가 기도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을 2천 년 된 감람나무를 어루만졌습니다. 그리고 그 나무에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를 의미하는 세 개의 못을 박으며 그들이 하나 되는 날을 위한 기도를 올렸습니다.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가 하나 되지 않는다면 평화세계는 결코 도모할 수 없습니다. 감람나무에 박힌 세 개의 못은 아직도 남아 있고 평화세계는 여전히 요원합니다.
세상은 유대교와 이슬람교, 기독교로 나뉘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지만 실상 뿌리는 하나입니다. 문제는 예수를 둘러싼 해석입니다. 2003년 5월 19일 우리는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려드렸습니다. 그리고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넘기고 받은 은 30냥으로 샀다는 피밭 땅에 예수님이 달리셨던 십자가를 묻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12월 23일 종교와 교파를 초월해서 전 세계에서 모인 3천여 명의 평화대사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람들 1만 7천여 명이 예루살렘의 독립공원에 모여 예수님의 머리에서 가시관을 벗기고 평화의 왕관을 씌워드렸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모인 2만여 명이 함께 종교와 종파를 떠나 인류의 평화를 위한 행진을 벌였습니다. 그날 아라파트는 저녁 8시에 맞춰 팔레스타인의 모든 집 앞에 불을 밝히게 함으로써 우리의 평화대행진에 동참했습니다. 전 세계에 인터넷으로 생중계된 그날의 행진을 통해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복권되셨으며 서로 반목하던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교가 화해하는 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예루살렘에는 이슬람의 메카인 사우디아라비아의 메디나 다음으로 가장 큰 이슬람 사원인 알악사 모스크가 있습니다. 그곳은 마호메트가 승천했다고 하는 장소로 이슬람교도가 아니면 절대로 들어갈 수 없는 곳이지만 우리를 위해서만은 그 문을 활짝 열어주었습니다. 그들은 평화대행진을 마친 기독교인들과 유대교 지도자들을 사원 깊숙한 곳까지 안내했습니다. 이슬람 역시 평화를 사랑하는 종교입니다. 우리는 편견과 아집으로 굳게 닫혔던 금기의 문을 열고 이슬람을 소통의 세계로 이끌어내는 일을 한 셈입니다.
물론 인간은 평화를 좋아하지만, 한편으로는 싸움을 좋아하기도 합니다. 순하디순한 소에게 싸움을 붙이고, 닭들이 벼슬을 곤두세우고 날카로운 부리로 연한 살점이 떨어져 나가도록 물어뜯고 싸우는 것을 보고 즐기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는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놀거라’ 라고 말합니다. 결국 전쟁을 일으키는 근본 원인은 종교나 인종이 아닌 사람의 심성입니다. 모든 것이 사람의 문제입니다. 현대인들은 모든 분쟁의 원인을 과학이나 경제 탓으로 돌리기를 좋아하지만 정작 근본적인 문제는 인간 자체에 있습니다.
인간을 선하게 만드는 것, 싸움을 좋아하는 인간의 악한 본성을 없애주는 것이 바로 종교입니다. 세계의 모든 종교를 돌아보십시오. 다들 평화로운 세계를 이상으로 합니다. 모두 하늘나라를 바라고 유토피아를 꿈꾸며 극락세계를 염원합니다. 부르는 이름은 서로 다르지만 인간이 꿈꾸고 바라는 세계는 모두 같습니다. 이 세상에 수많은 종교가 있고 그보다 몇 배나 많은 종파가 있지만 그들이 바라는 것은 하나입니다. 그들이 지향하는 목적지는 천국이며 평화의 세계입니다. 인종과 종교로 갈기갈기 찢긴 마음을 말끔히 치유하는 따뜻한 사랑의 나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