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천주부모 (후천시대와 천지인참부모)

훈독왕 | 20190623153214

후천시대와 천지인참부모


제 1 장 천주부모


천주부모가 누구냐 하면 무형의 하나님이다. 그 하나님은 혼자서는 계실 수 없다. (472-10, 2004.10.5)


1. 새 시대에 어떻게 살 것이냐


1) 새 시대에는 제1원인을 규명해야

종교면 종교, 철학이면 철학, 과학이면 과학이 전부 제1원인을 규명하자는 것입니다. 원인을 규명하지 않고는 안 됩니다. 원인이 없으면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제1의 원인과 제2의 결과는 반드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뿌리와 같은 원인의 규명에 대해서 미분명한 기반에 서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은 신이 없느냐, 있느냐의 문제가 됩니다.
오늘날 인간의 가치는 무한한 세계에서도 그 기준을 잡을 수 없을 만큼 위대한 것입니다. 그런 인간의 인격관이 맹목적이고 우연한 자리에서 형성될 수 있느냐 이거예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의 내가 아무리 날고뛰고 발전했댔자 그것은 동기의 발발, 즉 그 동기가 나타내는 하나의 결과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 그 동기를 넘어선 오늘의 나 자신은 있을 수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내 존재라는 것은 근원과 일치될 수 있는 그 자리의 존재성을 지녔지 진화적 과정의 연결적 단계를 달리하는 돌연변이라는 논리의 형성에 기인해서 존재하는 걸로는 볼 수 없는 것입니다. (145-174, 1986.5.4)


공산주의자들은 모든 존재의 기원을 물질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질에서 시작했다는 거예요. 그러면 물질은 어디에서 나온 것입니까? ‘그건 원래 있는 것이다.’ 그런 논리를 세우고 있습니다. 그것이 있는 데는 그 기원이 있어야 될 텐데 말이에요. 그 있는 것이 멍텅구리로 있지를 않습니다. 모든 질서와 법도 하에 움직이고 있는 겁니다.
태양계만 보더라도 하나의 태양을 중심삼고 9개의 위성이 돌고 있습니다. 또 지구를 중심삼고 달이 돌고 있습니다. 그거 왜 그러냐? 가만히 정착해 버리지 왜 돕니까? 관계를 원만화시키기 위해서는 돌지 않고는 안되는 것입니다. 주고받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냥 그대로 있어 가지고는 관계가 맺어지지 않습니다.
반드시 주고받는 인연 가운데 관계가 맺어지기 때문에 태양계와 같은 것이 1천억 개나 되는 대우주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자기 스스로 원만한 내용을 갖춰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대우주권의 관계로서 확대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삶이 나를 중심삼은 삶이 아닙니다. 대우주와 관계를 맺고 대우주의 가치와 더불어 일체화되기 위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고 있다는 사상적 근거가 없는 것입니다. 벌레나 동물과 같이 그저 한 세상 살아가는 겁니다. 그저 시작도 모르고 끝도 모르는 가운데 살고 있는 인간의 허황됨! 그와 같은 자리에 서 있기 때문에 인간은 탄식과 고통의 자리에 머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그렇게 됐느냐 하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타락이 무엇이냐? 근본과 하나 못 된 것입니다. 떨어졌는데, 무엇에서 떨어졌느냐? 근본과 하나된 자리에서 떨어졌다 이거예요. 근본이 누구예요? 하나님입니다.(147-226, 1986.9.28)


인간이 자기중심이 되고 사상이 각각 달라진 먼 원인은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잃음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상실했으며 하나님의 말씀(眞理)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가치(眞善美)의 근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가치의 터전이며 절대가치는 모든 덕목의 근본, 즉 통일가치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진리의 근본이며, 따라서 절대진리인 것입니다. 또 통일적인 진리입니다. 인간 타락으로 하나님을 잃어버림으로써 절대가치와 절대진리를 상실했고 통일가치와 통일진리를 잃었습니다.
절대가치와 절대진리에서 절대가치관이 세워집니다. ‘관(觀)’은 관점이요, 견해요, 이론입니다. 따라서 오늘의 세계적 혼란을 수습할 방안은 절대적 가치관을 확립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122-299, 1988.11.25)


절대적 가치는 지식이 아니라 사랑, 정서와 결부시켜서 생각해야 됩니다. 사랑만이 그 자체가 목적이며, 완성이며, 최고의 가치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베푸는 사람이 기쁘고, 그것을 받는 사람도 기쁜 것입니다. 원래 사랑은 본성으로 느낌으로써 싹이 트고 체휼되는 것이지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의 세계는 인식을 통해서 개발되지만, 정(情)의 세계는 그렇게 개발되지 못 합니다. 그런고로 절대가치는 지식의 차원이 아닌 절대사랑의 차원입니다. 그런 점에서 제1원인자는 우리의 인식권 내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정서적 차원에서 감응하고 체휼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02-59, 1978.11.25)


절대가치라는 말을 학자세계에서는 인정 안 합니다. 연구라는 것은 상대적 가치를 개발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기 스스로가 발전하고, 발전한 그 기반 위에서 자기 권위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절대가치라는 것을 결정해 놓으면, 그것이 공식화되기 때문에 학자들이 연구할 무엇이 없습니다. 자기가 개척해 가면서 명예를 세우는 그런 것이 다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상대적 가치세계의 학문기반을 추구해 나왔지 절대가치의 결정적 기반을 연구해 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이 학자세계에서는 꿈같은 얘기입니다.
그러나 지금 서구사회에서는 우리의 절대가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단계에 들어왔습니다. 신을 추방해 버리고 보니 종교의 몰락시대에 들어와 가지고 가치가 몰락하고, 사회의 역사적 전통이 전부 다 무너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유물론적 견지에서 공산주의가 휩쓸지만, 공산주의 자체도 앞으로 노동자와 농민 제일주의를 가지고는 세계를 지도할 수 없다 이겁니다. 노동자와 농민 제일주의로 하게 되면, 지식세계는 거꾸로 돼야 된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문제를 두고 볼 때, 학자들이 어려움에 부딪칠 수 있는 단계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계에 어떤 가치적 평가를 할 수 있는 하나의 모델이 있어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시대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래서 절대가치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는 단계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170-272, 1987.12.4)


공산주의 사상은 철두철미 하나님을 부인하는 데서 출발했습니다. 하나님이 없으니 절대가치가 있을 수 없고, 절대가치가 없으니 선악의 기준이 없습니다. 거기에서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한다.”는 공산혁명의 원리가 나온 것입니다.
공산주의는 과학의 힘을 가지고 신을 부정했습니다. 공산주의만이 과학적이라고 했고, 과학의 발달은 신과 종교 그리고 모든 신화를 미신(迷信)으로 추락시킬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리고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면 20세기의 과학이 공산주의가 예언한 대로 신과 종교 그리고 신화를 지구상에서 말살했느냐? 아닙니다. 정반대로 20세기의 과학이 과학적임을 자랑하던 공산주의를 19세기의 미신으로 추락시키고 말았으며, 오히려 하나님의 증거자가 돼 가고 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19세기까지의 우주관은 우주가 더 쪼갤래야 쪼갤 수 없는 절대고체(絶對固體;窮極粒子)로 이뤄져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에 근거해서 공산주의가 “우주의 근본은 물질이다.”라는 유물론을 주장한 것입니다.
그런데 20세기의 원자물리학은 19세기의 우주관을 완전히 뒤집어엎었습니다. 왜냐하면 물질이 무형의 에너지에서 왔음이 증명됐고, 에너지와 물질은 상호변형적이며 상호교류적임을 부인할 수 없는 진리로 밝혀놓았기 때문입니다. 20세기의 첨단을 가는 원자물리학에서는 우주의 형성이 우주 안에 어떤 의지 없이는 될 수 없다는 데로 의견을 모아 가고 있으며, 과학의 인과관계 법칙에 따라 우주의 삼라만상은 우연의 소산이 될 수 없고, 따라서 우주 속에 태초부터 존재하는 제1원인의 실재가 점점 명백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164-188, 1987.5.15)


2) 참사랑의 절대적인 진리


진리는 하나일 뿐만 아니라 그것은 자연과 인간세계를 지배하는 하나의 원리입니다. 자연계에 있어서 그 원리는 만물만상의 근원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그 원리는 영성(靈性)과 육성(肉性)의 조화를 통한 인격을 완성하고 진선미를 실현하도록 인도하는 참사랑의 절대가치입니다.
본인은 지금까지의 신본주의나 인본주의 혹은 물본주의 주장들이 상호 화해할 수 없는 가치들의 상충만이 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절대가치의 미완성적이고 일면적인 표현이요, 불완전한 주장이라고 봅니다. 인간과 현실세계의 여러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주의나 주장들을 뛰어넘어 전체를 수습할 수 있는 절대가치, 하나의 원리를 찾아야 합니다.
절대가치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까지 이릅니다.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수긍하는 것은 자연계 및 인간계에 항구적인 하나의 보편적 원리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바탕 위에서 상대적인 것으로 나타나는 가치들은 절대적 가치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170-267, 1987.11.27)


하나님이 절대가치의 정의를 세우는 데 무엇을 중심삼고 절대가치의 결론적 정의를 세울 것이냐? 지식이 아니고, 생명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주체이기 때문에 생명은 필요 없다고 그럽니다. 생명은 자기 것이라고 하지만, 사랑이라는 것은 자기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사랑이라는 것은 상대적 관계에서 이뤄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그러면 이 우주의 절대적 가치라는 것, 사랑을 두고 상대적 개념을 이야기한다면 절대가치의 결론이 안 나지 않소?” 할 지 모르겠으나 아닙니다. 절대가치는 절대가치인데 종적 기준에 있어서의 절대가치입니다. 하나님이 주체가 되고, 우리는 대상인데 그림자와 같이 정오만 되면, 그림자가 없는 것 같지요? 대상은 대상인데 수직적 대상이 있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횡적 대상으로 전개되는 거예요. 거기서부터 우주의 구성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179-229, 1988.8.12)


세계의 평화는 개인의 평화로부터 시작하여 가정적 평화를 거쳐 사회와 국가의 평화로 확대된 뒤에 마침내 수립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절대사랑과 절대가치에 대하여 언급하고자 합니다. 진선미의 가치는 사랑을 터로 하고 형성됩니다. 예컨대, 사랑의 실천은 선으로 평가됩니다. 즉, 사랑이 실천될 때 선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인 절대사랑을 실천할 때 절대선이 나타나게 되는 것은 자명합니다.
평화를 위해서 절대사랑을 실천하는 개인의 행위는 선입니다. 마찬가지로 평화를 위해서 사랑을 실천하는 가정의 행위도 선입니다. 사회나 국가 혹은 세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말하면 개인, 가정, 사회, 국가를 막론하고 진정한 평화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절대 진(眞), 절대 선(善), 절대 미(美)를 실현해야 되는 것입니다. 특히, 절대적인 선의 실천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그렇게 되면 질서를 문란케 하고 파괴하는 어떤 악의 요소도 개입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진선미의 정신적 가치는 사랑을 터로 하고 성립하기 때문에 절대사랑, 즉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고서는 절대적인 진선미가 실현될 수 없습니다. 이런 절대가치가 실현되지 않는 곳에 진정한 평화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류의 참된 평화를 위해서는 절대사랑이 실천돼야 합니다. 그러나 절대사랑이 실천되기 위해서는 먼저 절대사랑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110-252, 1980.11.27)


과학이 인간생활에 있어서 단순한 수단이나 목적일 수만은 없습니다.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실현하는 데 있습니다. 인간은 영(靈)과 육(肉)의 결합체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육적 생명을 바탕으로 해서 가치 있는 인생, 곧 사랑과 진리와 선과 미의 생활을 하게 돼 있습니다.
말하자면, 과학기술은 영적 생활에 부합되고 육적 생활에 필요한 것입니다. 따라서 가치 있는 생활을 강조하지 않거나 무시하는 과학은 가치관의 파괴를 가져오며, 오늘날과 같은 공포와 불안의 현실로 이끄는 것입니다.
이 불안한 현실에서 인간을 구하는 것은 진정한 가치관을 추구하고 발견함으로써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과학은 말할 것도 없이 절대가치에 기인하는 가치관에 일치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 절대가치는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냐?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며,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한 진리와 선과 미가 곧 절대가치입니다. 결국, 과학기술의 악용에 따르는 피해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은 과학 자체가 하나님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같은 방향에 그 기술을 응용할 때입니다. (106-53, 1979.11.23)


지금 내가 하는 것이 뭐냐? 세계 종교의 통일입니다. 그리고 과학자대회입니다. 지금까지 종교를 반대하던 과학자들이 이제는 차원을 달리해 가지고 종교를 인정하지 않으면 안되게 됐습니다. 지금까지 과학에서 상대적 가치는 인정했지만 절대적인 가치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상대적 가치가 추구되는 절대적 가치는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절대적 가치가 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순환이 벌어진다는 겁니다. 절대가치를 중심삼고 운행합니다. 운행은 평면적인 운행이 아니라 구형적인 운행입니다. 우주는 진리의 핵을 중심삼고 돌게 돼 있습니다. 그렇게 논법을 세워 나가야 됩니다.
그리고 절대적 가치는 그 자체에서 끝이 아닙니다. 그건 순환할 수 있는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개인적 순환, 가정적 순환, 종족적 순환, 민족적 순환, 국가적 순환, 세계적 순환, 천주적 순환으로 들어간다 이겁니다. 그렇게 딱 정리돼 있습니다. (165-253, 1987.5.27)


하나님이 제일 높은 자리에 혼자 계신다면 재미가 있겠어요, 없겠어요? 하나님이 혼자 제일 꼭대기에 떠억 버티고 있으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어떤 부잣집 할아버지가 있는데, 그 할아버지가 그 나라의 주권자이자 세계의 대통령이 됐다고 합시다. 혼자 영광과 행복 그리고 권세를 쥐었다 이겁니다. 그런데 혼자 방에 버티고 앉아 가지고 ‘허허’ 하고 웃는다면, 그 사람을 보고 뭐라고 그래요? 미쳤다고 그러지요? 그건 볼장 다 봤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고독단신 독수공방하면서도 아주 조그만 종이에다가 바늘 끝으로 쓸 수밖에 없는 글자를 써넣고 혼자 그걸 바라보고 있다면 그때는 미쳤어요, 안 미쳤어요? 아무리 작은 대상이라도 그것은 하나님 앞에 절대가치를 지니는 것입니다. 그건 무슨 말이냐 하면, 절대자 앞에 세워진 대상이라면 절대적인 가치를 지녔다는 뜻입니다. (41-147, 1971.2.14)


하나님은 최고의 분이요, 절대자이신데 그 절대자가 바라는 목적은 절대적인 것이요,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을 중심한 세계의 어떤 주의나 인간들이 바라는 어떤 목적보다도 절대적인 입장에 선 내용이 돼야 하는 것입니다. 비로소, 거기에서 인류가 바랄 수 있는 참된 목적을 결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 외에 인간만의 목적을 중심삼고 나오는 것은 우리 인생이 타당한 목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 개인을 두고 볼 때, 어떻게 해야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냐? 인간에게는 하늘땅을 대표해서 자기 자신이 전체 앞에 더 높아지고자 하는 개인의 욕망이 있습니다. 그 욕망은 무엇 때문에 우리에게 그런 작용을 하느냐? 인간은 세계를 다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고, 자기가 중심이 되어 세계 인류를 끌고 가고 싶어하고, 자기가 누구보다도 최고의 자리에 서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 자체를 보면, 인간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귀결되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바라시는 목적이 인류가 바라는 목적이 돼 가지고 안팎으로 들어맞을 수 있는 새로운 목적의 세계가 오늘 이 지상에 나타나면, 그때야말로 역사시대에 있어서 새로운 인간으로 바랄 수 있는 소망의 때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41-323, 1971.2.28)


하나님은 절대적이요, 하나의 사상을 가진 분이기 때문에 신앙세계는 자연히 하나님을 중심삼은 하나의 사상권으로 흡수되어 들어가야 합니다. 고차적인 사상은 저급한 사상을 흡수함으로써 하나의 체계를 세워 수습해 나가는 것입니다.
신앙세계에 어떤 하나의 사상체계가 있으면, 그것을 강으로 말하면 지류와 같은 것입니다.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보면, 남쪽으로 흘러가는 강인데도 불구하고 북쪽으로 흘러가기도 합니다. 그렇게 멋대로 흘러가지만 점점점 흘러감에 따라 대해(大海)로 들어가는 입구에 이르게 됩니다. 그것이 본류(本流)를 거쳐 통합되는 결과를 맞아 가지고 대해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때는 하나의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60-262, 1972.8.18)


3) 우주의 법도대로 살아야
지구성과 우주를 비교해 보라구요! 우리가 눈으로 보는 먼지 하나만 못하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살면서 네가 잘났느니 내가 잘났느니, 잘사니 못사니 그래야 백 년도 못 가 가지고 어떻게 돼요? 70, 80년 죽자살자하면서 살다가 없어지는 겁니다.
그런데 지구가 없어져요?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는 것입니다. 한 바퀴 공전을 하면서 자체가 돌아갑니다. 그런 이중적인 활동을 못 하면 죽습니다. 그러면 지구가 해를 한 바퀴 도는 데 365일이 걸리는데 거기에서 1초라도 틀렸다가는 우주가 깨져 나갑니다. 얼마나 과학적인지 모릅니다. 여러분이 그런 공식적인 생활을 합니까? 그러면 45억 년이나 걸린 지구성이 1년에 1초씩만 틀려도 45억 초가 걸리면, 이미 지구가 다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날아가 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얼마나 엄격한 법도에 의해서 움직이느냐 이거예요. (382-286, 2002.6.23)


2백억 광년 이상 되는 대우주가 돕니다. 사커 볼(soccer ball;축구공) 모양으로 돌며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정착해 있지를 않고 우주는 돕니다. 돌면서 공식법도에 해당하는 수리적인 법을 통해 가지고 한 치도 어긋남이 없이, 천 년이 가도 한 치도 차이가 없이 맞아 돌아갑니다. 그런 우주의 왕초 양반이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 나라에 가서 살겠다는 것이 제멋대로 살아 가지고 되겠어요?
눈이 제멋대로 움직입니까? 두 눈이 깜빡깜빡 같이 움직이지, 하나는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고 또 하나는 좌우로 왔다갔다합니까? 올라가도 같이 올라가고, 옆으로 가도 같이 가고, 돌아도 같이 돌지요. 천년만년 역사가 가더라도 변하지 않습니다.
숨 쉬는 게 변하고 듣는 게 변합니까? 참 신비롭습니다. 못된 어미 아비의 아들딸이 태어나더라도 병신 아들딸이 안 태어납니다. 어떻게 눈, 코, 귀 등 오관을 다 갖춰서 태어납니까? 그게 자기들의 힘이 아니고 우주의 힘입니다. 우주의 법도에 맞출 수 있는 사람이 돼야 되겠기 때문에 거기에 맞게끔 모든 것이 갖춰져 가지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게 귀한 것입니다.
그 몸뚱이를 자기의 이익으로 팔아먹을 수 있습니까? 몸 마음이 지금 싸우고 있는데, 그 전쟁을 말리지도 못하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 가운데 몸 마음이 싸우지 않는 사람은 손 들어 봐요! 싸웁니다. 그거 하나 못 되게 되면 천국 못 갑니다.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것을 통일교회에서 이론적으로, 과학적으로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그거 못 하는 녀석들은 저나라에서 선생님을 못 따라옵니다. (382-291, 2002.6.23)


걸을 때 어떻게 걷습니까? 사람은 어떻게 돼야 서느냐? 수직이 있어야 되고, 상하가 있어야 되고, 좌우가 있어야 되고, 전후가 있어야 됩니다. 그것들의 균형이 맞아야 구형이 되는 것입니다. 구형이 돼야 아무렇게 돌더라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그 자체 그대로 남아 있고, 영원히 누구나 다 보호해 줍니다. 천운이 그래야 보호해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조금만 틀리면 고통이 생깁니다. 우주력이 몰아낸다 이겁니다.
그런 공식법도로서 운동하는 중앙자리에 서서 살고자 하는 것이 존재물들의 존재양상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종교, 관념의 세계에서 말해도 맞고 운동법칙의 과학세계에서 언급해도 맞는 말입니다. (381-70, 2002.6.11)


인간의 행복과 불행의 기원이 어디에 있습니까? 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우주의 법도에 보조를 맞추어 나가면, 하나님이 거기에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19-292, 1968.3.10)


만일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법으로 지어 놓고 그 법을 무시하면, 하나님은 법을 지배할 수 있는 하나님이 못 됩니다. 법을 세웠으면 법을 지킴으로 말미암아 법을 주관할 수 있는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법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하나님이 된다는 겁니다. 법을 반대하면, 그 법을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하는 것입니다. 법을 지켜야 그 법이 하나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112-73, 1981.4.1)


법을 왜 행해야 되느냐? 그리고 모든 질서를 왜 지켜야 되느냐? 질서가 나를 구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실천하게 되면, 질서 내에 있는 사람으로서 그것을 따라가는 사람은 하나님 대신 존경받고 센터로서 위함을 받는 것입니다. 보호와 찬양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에게 “천법을 지켜라!” 하는데, 왜 그렇습니까? 천법이 무엇이냐? 천법을 지킴으로 말미암아 천법권 내에 속해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보호하는 것이요, 그 법을 지키고 나면 그들 모두가 찬양하는 것입니다. 법을 지키면, 그 법이 내 것이 됩니다. 또 내 것이 될 뿐만이 아니라 그것이 나를 보호하고 나를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거 얼마나 멋져요! 얼마나 멋진 얘기고, 얼마나 멋진 사실이고, 얼마나 멋진 자리냐 이겁니다.
만약 그 법을 다 지킨 사람을 누가 참소하게 되면, 전체가 “이놈의 자식아!” 하면서 보호하는 겁니다. 그가 공격을 당하게 되면 보호를 해 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것이다 하는 걸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니 그 법이 있는 세계는 어디를 가더라도 환영합니다. 천법이면 천법을 중심삼고 하늘나라가 있다면 하늘나라 어디를 가더라도, 몇 천년 몇 만년 선조가 있고 수많은 법이 꽉 찼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지킨 사람으로서 갈 때는 환영한다는 것입니다. (112-73, 1981.4.1)


4) 사랑과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이상은 어디서부터 시작하느냐?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위해서 투입하는 데서만이 이상이 현현하는 것이요, 참된 사랑이 형성되는 것이요, 참된 행복과 평화가 형성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야, 대상아! 너는 나를 위하라!” 하는 입장에 서게 되면 하나될 수 없습니다. 전부가 그런 사상을 세웠다가는 어떻게 되겠어요? 전부가 위하라는 입장에 서게 되면 갈라지는 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의 왕 되는 하나님이 이상적 요건을 성립시킬 수 있는 기원을 어디에 두었느냐 하면 위해서 존재하라는 원칙에 둔 것입니다.
주체가 대상을 위해서 존재하는 원칙에 두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위해서 존재하는 원칙을 세우는 데서만 참된 사랑이 발견될 수 있습니다.
왜 그러냐? 하나님이 원칙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서만 참된 이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행복도 거기에서만, 평화도 거기에서만, 참된 자유도 거기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위해 존재하는 원칙이 참된 사랑, 참된 이상, 참된 평화, 참된 행복과 참된 자유의 기원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기 바랍니다. (77-318, 1975.3.23)


참다운 이상, 참다운 사랑, 참다운 평화를 이루는 데 있어서 대상이 주체를 위하는 데 그 이상적 기원을 둘 것이냐? 아니면, 주체가 대상을 위하는 데 그 기원을 둘 것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신 하나님께서 그 이상적 기원을 주체가 되는 자기 앞에 대상이 위하라고 하는 입장에 세웠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하나님이 그러함과 동시에 모든 사람도 자기가 어떤 대상 앞에 주체의 입장에 있으면 자기를 위하라는 입장에 서게 될 것입니다.그렇게 된다면 하나될 수 있는 길이 막혀 버립니다. 분립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하나가 될 수 있고, 평화의 기원이 될 수 있는 그 길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 자신뿐만 아니라 참다운 인간은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다운 사랑, 참다운 이상, 참다운 평화와 행복도 위하는 자리를 떠나서는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천지창조의 근본원칙이었다는 사실을 우리 인간들은 몰랐습니다. (75-378, 1975.1.1)


하나님은 한 분이지요? 절대자이시고 한 분입니다. 그 한 분이 완성의 기준을 자기 자신에게 두었겠느냐? 그랬다가는 큰 일 나는 것입니다. 기쁨과 행복이라는 것은 혼자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도 상대적 관계를 두고 말하는 겁니다. 어머니와 자식 간에 둘이 하나되는 데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평화라는 말 자체, 평평히 화한다는 자체는 벌써 상대성을 안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평화나 행복이라는 말은 독자적인 입장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권과의 관계를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혼자서 행복합니까?” 하나님께 그렇게 물어볼 때, “그렇고 말고!” 한다면 문제입니다. “천지만물을 왜 지었소? 이 만 우주를 왜 지었소?” 하고 묻는다면, 하나님이 어떻게 대답하시겠어요? 하나님이 고독하기 위해서, 슬프기 위해서, 어렵기 위해서 지은 것이 아닙니다. 기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이 무슨 예술품 같은 것을 만들 때 어떻습니까? 물론 공장에 나가서 일당을 받기 위해 일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걸 넘어 가지고 생명을 투입할 정도의 어려움이 많습니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그 가치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증진되는 겁니다. 불어난다는 것입니다. (136-104,1985.12.20)


인간들끼리는 이상적인 세계 혹은 참되고 영원한 사랑의 세계를 이룰수 없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영원하고 불변한 절대자가 계신다면 그 절대자를 통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 분이 있다면, 그분은 하나님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분은 영원하고 불변하며 유일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그분이 바라는 이상도 그럴 것이고, 사랑도 그럴 것이며, 평화와 행복도 그럴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사랑이니, 이상이니, 평화니, 행복이니 하는 말들은 혼자서 성립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하나님이라도 혼자서 사랑해서는 뭘 하고, 이상이 있으면 뭘 하고, 평화와 행복을 가지면 뭘 하느냐? 상대가 없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우주 가운데 하나님 앞에 상대적인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사람 이외에는 없다고 우리는 단정하게 됩니다.
그렇게 보게 된다면 하나님의 이상이니, 사랑이니, 행복이니, 평화니 하는 것들을 성사시키는 데 있어서 우리가 없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그런 가치적 존재인 것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74-161, 1974.11.10)


이상의 세계는 창조의 목적이 실현돼야 하는 세계요, 신을 닮아야 하는 세계입니다. 항상 인간은 사랑이 넘치는 조화롭고 평화로운 생활을 원하고 있으며, 부단히 새로운 것을 창조하면서 환경을 개선해 나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창조는 제조(製造)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창의적(創意的)인 활동 전체를 말하는 것으로 항상 새로운 것을 창안(創案)해 내고 계획하고 개선하고 생산하는 등의 활동 전부를 말합니다.
그런데 신(神)은 통일적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도 통일적이어야 하며 사회생활도 통일적인 것이 아니면 안됩니다. 즉, 사랑하면서 창조하고 창조하면서 사랑하는 통일적인 인간과 통일적인 세계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인간은 눈부신 과학적 발전을 이뤄 놓음으로써 창조적 생활면에서는 신을 닮았다고 할 수 있으나 사랑의 생활에 있어서는 전혀 신을 닮지 못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슬픔과 고통 그리고 불행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랑은 조화이기 때문에 사랑이 없는 곳에 조화가 있을 수 없으며, 조화가 없는 곳에 평화나 행복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가지가지의 비참상(悲慘狀)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인간도 신을 닮은 이상적인 생활과 이상적인 세계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바꾸어 말하면 신이 원하고 인간의 본심이 원하는 이상적인 인간은 창조적이면서도 신을 중심한 사랑을 실천하는 선한 인간인 것이며, 또 신과 인간이 바라는 이상적인 세계는 환경을 개선하는 창조적 활동이 계속되면서 개인과 개인, 국가와 국가 사이에 사랑이 차고 넘치는 대조화의 통일세계입니다. 그 같은 새로운 타입의 인간들이 새로운 통일세계에서 생활할 수 있게 될 때, 비로소 오랫동안 인간을 괴롭혀 오던 일체의 슬픔이나 고통 혹은 싸움이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65-259, 1972.11.13)


영원한 내용의 본질 같은 성품, 속성이 무엇이겠느냐 할 때는 사랑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나 그리고 아들딸 4대가 살 때 할아버지에게 “그렇소?” 하고 물어도 “그래!”, 아버지에게 물어도 “그래!”, 부부끼리 서로에게 물어도 “그래!”, 아들딸도 “그래!” 합니다. 전부가 그렇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동서남북의 가정, 나라의 가정 전체에게 물어도 “옳소!” 하고, 그 답을 하나님도 좋아해야 전체의 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무엇을 중심삼고 좋아하겠느냐 할 때 사랑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라는 분은 무엇을 중심삼은 중심존재냐? 절대적인 사랑을 중심삼은 중심존재라고 포괄적인 결론을 내리더라도 반대할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195-59, 1989.11.5)


하나님은 어떤 존재냐? “나 하나님은 지극히 높으니까 우주에서 나와 같은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고 그러면, 그 하나님은 낙제입니다. 자신은 높지만, 자신을 잊고 저 지옥 밑창에 있는 사람까지도 사랑하려고 허덕이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어떤 게 하나님이에요? 높은 것만을 사랑해야 하나님의 자격을 갖겠어요, 지옥 밑창까지도 자기를 잊고 사랑하겠다고 하는 속성을 가져야 하나님의 자격을 갖겠어요? (95-184, 1977.11.13)


2. 참사랑의 창조주를 알고 있는가


1) 천주부모(하나님)는 어떤 분이신가


우리가 우주의 근본을 찾아 들어가면 하나님께 귀착하는데, 그분은 남성격과 여성격의 두 가지 성품을 소유하고 계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주 출발의 원인이 어떻게 돼 있습니까? 하나님에 대해서는 아직 모른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남자와 여자, 주체와 대상으로 돼 있습니다. 광물계의 분자를 보면 양이온과 음이온으로 구성되어 있고 식물계는 수술과 암술, 동물계는 수컷과 암컷, 그리고 인간은 남자와 여자로 돼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수많은 박사, 수많은 학자들이 있지만 이것 하나 생각해 낸 사람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부정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의 부모, 조부모, 또 조부모, 그리고 인류의 조상되는 분과 더 나아가서는 우주의 근본이 되시는 하나님께 물어봐도 전부 동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철칙입니다. 이 진리야말로 우주가 억만 년 지나도 원리원칙으로 남기 때문에 철칙입니다. (279-243, 1996.9.15)


하나님(천주부모)은 누구냐 하면 이성성상으로 계시며 남성격과 여성격을 합해 가지고 중화적 자리에 서 있는 분입니다. 중화적 자리에 서 있지만 격으로는 남성격으로 있는 분입니다. 중화적 존재의 입장에서 남성격으로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존재도 여성 남성으로 돼 있는데, 하나님이 거기에 남성격 주체로 서 있다는 것입니다.
광물세계는 플러스 이온과 마이너스 이온의 성상 형상이 있고, 식물세계는 수술 암술의 성상 형상이 있고, 동물세계는 수놈 암놈, 인간세계는 남자 여자, 하늘땅을 중심삼고는 하늘과 땅이 있습니다. 전부 다 상대적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이성성상의 중화적 존재이면서 격으로는 남성격 주체가 돼 있다는 것입니다. (404-144, 2003.1.31)


공자가 아무리 인의예지(仁義禮智)는 인성지강(人性之綱)이라고 했다 하더라도 하늘나라의 법에 통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인격적 신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우리 원리에서 하나님의 존재성에 대해서 총결론을 내린 것이 무엇이냐? 문 총재가 머리가 좋아서 결론을 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냐? ‘이성성상의 중화적 존재이며, 격에 있어서는 남성격 주체다.’ 전체를 다 말했습니다. 그 결론을 짓기 위해서 얼마나 고민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들은 앉아 가지고 그저 뭐 “이성성상의 중화적 존재지!” 하지만 말이에요. 하나님은 모든 것이 화할 수 있는, 화합이 될 수 있는 중화적 존재고 격위에서는 남성격으로서 중심을 중심삼은 뼈가 돼 있다는 것입니다. 살이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뼈가 없으면 살의 형태를 구성할
수 없습니다. (458-39, 2004.7.6)


통일교회에서는 하나님이 어떻게 계시느냐 할 때 이성성상의 중화적 존재라고 하는데, 그렇게 갖다 붙인 것이 아니고 우주의 근본을 파헤친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은 성상과 형상,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중화적 존재입니다. 중화적 존재로만 있으면 온전했댔자 그것도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중화적 존재만 있고 대우주와 더불어 운동할 수 없으면, 그 자체도 혼자는 존속 못 합니다. 상대이상권에서만 운동하는데, 운동하지 않는 존재는 없어지는 것입니다. (470-25, 2004.9.23)


모든 세계의 돌고 운동하는 것은 공중에 떠 있습니다. 별도 공중에 떠 있고, 이 지구성도 공중에 떠 있고, 태양계의 1천억 배나 되는 대우주도 무한한 공중에 떠 있다는 것입니다. (양 손바닥을 벌렸다가 마주치시며) 공명돼야 큰소리가 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성성상의 중화적 존재다.’ 중화적 존재라는 것은 형체가 없습니다. 형체가 안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성성상의 중화적 존재요, 격으로는 남성격 주체의 존재다 이겁니다.
무형의 하나님으로서는 모든 기원이 될 수 없습니다. 상대권이 이뤄지지 않으면 존재하는 물건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과부가 혼자 살아 가지고는 아기가 없습니다. 남자도 홀아비 혼자 살아 가지고 암만 아기를 낳으려고 해도 아기가 없습니다. (437-81, 2004.2.9)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사랑이고, 또 하나님이 어떤 존재냐? ‘이성성상의 중화적 존재다.’ 문 총재가 미쳐 가지고 그런 말을 한 줄 알아요? 총론입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성성상을 모릅니다. 하나님은 중화적 존재고, 격위에 있어서는 어떤 격위입니까? 사람의 격, 인격! 모양을 갖출 수 있는 당당한 자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격위에서는 남성격 주체다.’ 영원히 주체자, 플러스 가운데 주체가 되는 것이다 이겁니다.
그러면 남성격 주체라는 말은 상대를 선유조건(先有條件)으로 인정하고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남자라는 말은 여자를 선유조건으로 하는 말입니다. 여자에게 맞게 남자를 지었어요, 남자에게 맞게 여자를 지었어요? 선유조건으로 볼 때, 남자가 먼저 태어나기 전에 여자에 맞게끔 본떠서 만들었기 때문에 창조는 여자부터 시작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458-108, 2004.7.7)


우리 통일교회는 선유조건으로서 남자가 필요한 것은 무엇 때문이냐? 남자가 생겨난 것은 여자를 선유조건으로, 먼저 모델로 하고 남자가 생겨났기 때문에 생겨난 자체를 두고 보면 남자는 첫째로 태어난 것이 아니고 둘째 번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그걸 몰랐다는 겁니다.
그래, 남자가 제멋대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남자가 어떻게 태어났느냐? 여자를 중심삼고, 여자에 맞게끔 태어났다 이겁니다. 지금까지 그런 개념이 없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이게 절대적입니다. ‘남자를 하나님이 짓게 될 때는 여자에게 맞게끔 지었다. 여자 때문에 남자를 지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 첫 번 창조의 착지, 출발은 여자로부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남성격 주체예요, 여성격 주체예요? 중화적 존재라고 할 때는 그게 빠지지만, 주체와 상대의 관계를 두고 볼 때 하나님은 남성격 주체니까 여성격 모델을 중심삼고 자기가 여성에 맞게끔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성성상의 중화적 존재이면서 격으로는 남성격 주체라고 하는 것입니다. (457-221, 2004.7.3)


하나님은 이성성상의 중화적 주체로 계십니다. 하나님께는 플러스 성상이 있고, 마이너스 성상이 있습니다. 플러스 성상과 마이너스 성상은 물론 하나가 돼 있지만, 하나된 그 기준에서 평화의 경지가 벌어집니다.
그것은 몸 마음과 마찬가지인데, 우리의 몸 마음이 완전히 하나돼야만 고충을 느끼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도 플러스 성상과 마이너스 성상이 완전히 하나되는 그 경지에서 비로소 사랑이 출발하는 것입니다. (76-41, 1975.1.19)


이성성상은 따로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중심삼고 영원히 하나된 절대적인 가치의 기준을 가져야 됩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이성성상의 중화적 주체로 계시는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은 막연히 홀로 있는 분이 아닙니다. 상대와 더불어 일치되기 위한 주체적인 입장에 계시는 분입니다. 그러면 그 하나님과 일치되기 위한 상대적 입장에 있는 것이 누구냐? 사람입니다. (51-164, 1971.11.21)


하나님과 인간, 아담 해와를 연결시키는 것은 오로지 사랑입니다. 사랑 외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대등한 상대적인 내용을 갖춘 완성한 사람이 둘이 합칠 때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절대적으로 하나밖에 없습니다. 절대적인 사랑은 둘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담 해와가 성숙하여 결혼하는 그 순간은 종적인 사랑의 일치와 더불어 외적인 몸을 가진 하나님의 몸과 같은 입장에서 하나됨과 동시에 내적인 하나님이 아담 해와에게 임재해 가지고 사랑을 중심삼고 안팎이 완전히 하나되는 때입니다. 그 외에는 하나님과 인간이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이상하시던 키포인트,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이 사랑의 기점을 중심삼고 모든 인류가 태어나게 돼 있고 발전하게 돼 있습니다. (138-245, 1986.1.24)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하면 남성격의 실체를 가진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상은 상대를 찾자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같이 이 전체 우주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횡적이라는 거예요. 동서남북을 중심삼고, 횡적인 자기의 면적을 중심삼고 운동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것이 아담 해와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아담 해와가 그런 사랑의 전통을 세우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233-59, 1992.7.30)


천지를 창조하기 전에 하나님은 어떻게 계셨느냐? 여러분, 이성성상의 주체라는 말을 알지요? 이성성상의 주체는 무엇을 중심삼고 주체냐? 거기에 사랑을 빼놨습니다. ‘참사랑을 중심삼은 중화적 주체이시다.’ 하나님은 이성성상의 중화적 존재이시며 격(格)에 있어서는 남성격 주체적 존재시다 이거예요. 거기에 무엇을 중심삼고 주체가 돼 계시고, 무엇을 중심삼고 중화적 존재시냐? 참사랑입니다. (196-128, 1989.12.31)


2) 창조의 동기는 참사랑


하나님이 왜 계시느냐? 무엇 때문에 계시려고 하느냐? 사랑 때문에 계시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상대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사랑의 상대를 창조해야 됐습니다. 창조의 본질적 이상을 사랑을 중심삼고 창조를 시작했다는 것을 그 동안 우리가 몰랐습니다. 모든 피조세계는 사랑 때문에 창조됐습니다. (208-235, 1990.11.20)


하나님을 모르면 안되고,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모르면 안됩니다. 그 창조목적과 하나님을 알고 난 후에는 하나님이 왜 지었느냐 하는 입장을 알아야 됩니다. 왜 지었느냐? 하나님도 사랑을 통해서 해방을 받는 것입니다. 사랑의 뜻을 이루려면 혼자 못 이루는 것입니다. (451-250, 2004.5.30)


무엇 때문에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했느냐? 돈 때문이 아닙니다. 지식때문이 아닙니다. 권력 때문도 아닙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창조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돈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지식의 왕, 권력의 왕입니다.
그런 입장에 계시는 하나님한테 부족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돈을 가지고 하나님을 유혹할 수 없습니다.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을 판단할 수 없고, 권력을 가지고 하나님을 컨트롤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참사랑입니다. (362-151,2001.12.12)


하나님은 사랑 때문에 인간을 창조했는데, 하나님이 왜 사랑 때문에 인간을 창조했느냐? 하나님 혼자서는 고독한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천년만년 살고 싶어서 인간을 창조했다 이겁니다. “초가삼간이더라도 양친부모 모셔 놓고 천년만년 살고 지고…” 그러지요?
이상적인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초가삼간보다 더 작은 데 들어가 가지고도 천하를 품고 숨을 쉬고 사는 것이 놀라운 것입니다. 그 집이 작은 집이에요? 하나님이 들어가 계시면 하늘나라의 왕궁이요, 우주의 왕궁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319-305, 2000.3.23)


만일 절대자인 하나님이 혼자 있다면, 그 하나님이 있는 자리는 행복한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혼자 있으면서 기뻐하고, 웃고, 좋아하고 그런다면 그 하나님도 정상적인 하나님이 아닐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아무도 없는 데서 그러면 이상하지만, 조그만 상대 하나를 보고 ‘하하하’ 웃으면서 좋아하게 된다면 그것은 정상적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 존재가 얼마나 귀한가를 알아야 됩니다. 불행이니 비참이니 하는 말들은 상대가 없는 데서 시작되는 것들입니다. (52-311, 1972.2.3)


아무리 능력이 많은 하나님도 혼자서는 외롭습니다. 여기 잘난 미남자가 혼자 늙어 죽도록 산다면 얼마나 비참하고, 얼마나 불쌍하고, 얼마나 외로워요!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은 뭐냐? 자기 소망의 상대, 돈이 아니고 금력이 아니고 지식이 아닌 참사랑의 상대를 필요로 하는 것이 일반 타락한 인간의 보편적인 생각이라고 할진대는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 역시 고독한 왕 중의 왕이 됐다고 할 때는 고독한 왕의 자리를 해방시켜 줄 수 있는 상대가 필요하다는 것은 이론적인 결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왜 천지를 창조했느냐 하면, 사랑의 상대를 찾기 위해서 창조했다고 할 때 답이 돼요? 되면 박수해요, 박수! (404-300, 2003.2.6)


이 우주는 대우주입니다. 태양계만 하더라도 얼마나 커요! 태양계가 1천억 개 들어갈 수 있는 대우주입니다. 생각해 보라구요! 빛이 1초 동안에 3억 미터를 갑니다. 태양 빛이 얼마나 빨라요! 1초 동안에 지구를 일곱 바퀴나 돌 수 있는 빠른 속도로 가는 것이 210억 년 걸려도 갈 수 없을 만큼 먼 거리의 우주를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우주를 창조한 하나님이 방대한 세계를 무엇 때문에 지었느냐?
대우주를 품고 남을 수 있는 사랑 때문에 지었는데, 사랑의 상대인 아담 해와로 말미암아 그 인연을 결실하려고 했는데 아담 해와가 없어짐으로 말미암아 모든 피조세계가 하나님의 내적 심정을 타격할 수 있는 슬픔의 상징물이 됐다는 사실! 하나님이 얼마나 슬프겠나 생각해 보라구요. (355-52,2001.10.3)


하나님이 왜 세상을 창조했느냐? 하나님이 창조주인데, 창조주가 무엇을 필요로 해요? 오늘날 기성교회가 말할 때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절대적인 분이다.” 하는데, 하나님이 혼자 있어서 행복할 수 있습니까? 여기 아저씨들, 나이 많은 분들, 혼자 있는 것이 행복해요? 살다가 할머니든지 며느리든지 죽어 보라구요. 혼자서 살게 된다면 얼마나 외롭고 얼마나 기가 막힌 거예요! 혼자는 영원히 사랑을 찾을 수 없습니다.
또 사랑이 없어 가지고는 상대가 필요치 않습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는 어디나 할머니도 좋고, 할아버지도 좋고, 젊은 남녀 모든 수십억 사람도 다 좋지만 사랑이 없게 될 때는 그 상대가 나와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내가 태어난 것은 무엇 때문에 태어났느냐? 사랑 때문에, 사랑을 위해서 태어났다고 해야 서서 다니는 것이 앉을 수 있고, 싸움판에 나갔던 것이 살림살이에 들어와서 쉬고, 상대하고 의논도 할 수 있고, 집도 지을 수 있는 놀음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냐? (433-274, 2004.1.28)


하나님도 혼자 있으면 외로우니까 사랑의 대상을 찾아야 됩니다. 그 사랑의 대상이 누구냐? 요즈음 말하기를 원숭이가 사람의 조상이라고 하는데, 누가 여러분에 대해서 원숭이 손녀나 원숭이 조카 혹은 원숭이 상대라는 말을 하면 좋아할 사람이 있습니까? 천 사람이면 천 사람 다 기분 나빠 가지고 싸우려고 할 것입니다. 원숭이가 사람이 될 게 뭐예요?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이 시작됐습니다. 하나님도 사랑 때문에 존재하기 시작한 겁니다. 우주의 존재기원이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할 때 환경을 만들었는데 사랑을 위해서 존재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 환경 가운데는 주체 대상이 없는 것이 없습니다.
광물세계도 분자면 양이온과 음이온이 있어 가지고 전부 다 주고받습니다. 그렇게 주고받는 운동을 하는 것은 자기 존재의 본성을 중심삼고 하나되기 위한 힘의 작용, 그들 나름의 사랑의 작용입니다.
그래서 운동하지 않는 존재가 없습니다. 운동하지 않으면 퇴화해서 사라져 버립니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원히 존속하기 위해서는 운동을 해야 됩니다.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가 역사와 더불어 그 대신 존재가 나와 가지고 서로 운동할 수 있는 틀이 가정입니다. 그건 불가피합니다. 그건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도 그런 운동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259-204, 1994.4.10)


중요한 문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사랑을 필요로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어떻게 찾을 수 있느냐? 아무리 하나님이라고 하더라도 사랑은 혼자서 할 수 없습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이기 때문에 절대로 혼자서는 사랑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부모의 사랑을 가진 주인이 되는 데 있어서 아들딸이 없으면 주인이 안 됩니다. 그러면 사랑의 부모가 될 수 있는 길은 영원히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습니다. 아무리 부모의 사랑을 체휼하고 싶다고 생각하더라도 아들딸을 낳지 않으면 1대로 끝입니다. 뿌리도 없고, 줄기도 없고, 가지도 없고, 잎도 없고, 꽃도 피울 수 없어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사랑의 상대가 없으면 수수작용, 운동이 계속되지 않습니다. 그 운동이 영원히 계속되려면 자기가 끌어당기려고 하면 안 됩니다. 서로가 밀어주려고 해야 됩니다. 그렇게 서로가 위해주면 점점점 커집니다. (362-152, 2001.12.12)


누구든지 아들딸이 없으면 아들딸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남편도 없으면 남편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무엇 때문에 하나님이 상대를 창조했느냐? 사랑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절대적인 것입니다. 이상이라든가, 행복이라든가, 자유라고 하는 것은 혼자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상대적인 관계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혼자서 행복합니까?
은행에 있는 돈을 다 가진다고 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상대와 더불어 행복한 것입니다. (317-104, 2000.2.19)


하나님도 혼자로서는 절대로 사랑의 이상을 이룰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복중기, 유아기, 청소년기, 부부, 부모, 조부모, 여왕이라는 8단계의 주인이 돼야 합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을 타락 때문에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이 그 8단계 사랑의 모델을 세워야 했는데 타락 때문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만들어 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의 모델이 돼 가지고 아들딸을 갖게 돼 있는 것입니다. (317-104, 2000.2.19)


3) 창조는 투입에서 시작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할 때 하나님 자신 한 분밖에 없었습니다. 혼자 있던 하나님이 투입하라고, 투입시키라고 하는 놀음을 했다면 우주가 생겨날 수 있었겠습니까? 우주의 출발은 하나님 자신의 투입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투입하는 데서부터 우주의 생성이 가능했다는 원칙을 알아야 됩니다. 주입이 아니라 투입에서부터 우주가 생성하기 시작했다는 논리를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백만한 것을 만들고 기억하면 백 이상 것은 못 만듭니다. 백을 투입하고 잊어버려야 됩니다. 천을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만을 투입하고도 잊어버려야 우주가 존속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것을 영원히 계속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잃어버립니다. 그러면서 피조세계는 커지고 커지면서 축적해서 큰 것이 됩니다.
마지막에는 하나님이 완전히 진공상태와 같이 됩니다. 그러면 온 우주가 따라갑니다. 그 진공상태와 같은 곳으로 모든 피조물의 핵심센터가 들어가는 것입니다. (278-197, 1996.5.24)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할 때 하나님 자신을 위하라고 지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체로서의 사랑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상대가 없으면 안되겠기 때문에 상대에게 하나님 자신의 전체를 투입한 겁니다. 마음의 대상체가 몸인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대상체가 인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내적인 본질 요소를 모두 인간 앞에 투입했다는 겁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있는 정성을 다해 가지고 투입 안 한 것이 없습니다. 나중에는 사랑까지 투입해 가지고 사랑으로 완전히 충만하게 될 그 날을 기다리며 지었습니다. (146-17, 1986.6.1)


본래 하나님은 아무것도 없는 세계에서 “내가 말하면 된다.”고 믿은 것입니다. 되는 데도 무엇 때문에 된다고 믿었느냐? 틀림없이 사랑의 실체를 이루기 위해서 자기에게 있는 모든 정성을 다 퍼붓고, 퍼붓고, 퍼부었던 것입니다. 정성을 다해서 지은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절대신앙, 절대사랑, 절대복종한 것입니다.
복종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의 의식까지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완전히 투입해서 잊어버려 가지고 더 투입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순이 남아 있을 때는 봄이 되면 싹이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런 무엇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다 정지되고 없어졌지만, 순이 남아 있어 가지고 봄이 되면 다시 또 출발하겠다는 마음이 영원히 계속할 수 있는 입장에 있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327-304, 2000.7.30)


어디서 우주의 근본이 나왔느냐? 하나님이 있다면, 하나의 중심이 있으면 중심에서 투입하고 투입하는 데서부터 우주가 존속하는 것입니다.
존재의 시작은 어떤 주체로부터 투입하므로 말미암아 상대적 세계가 현현하게 된 것입니다. 투입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주입이 아닙니다. 우주의 근본은 끌어당기는 게 아니고 투입입니다.
대우주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린 것입니다. 무한히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린 놀음을 해 가지고 대우주의 형성이 벌어졌습니다. (268-11, 1995.2.7)


하나님은 사랑을 무한히 투입해 가지고 최고의 이상적 사랑의 대상을 찾기를 원하기 때문에 아직까지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걸 생각하면 복귀섭리, 구원섭리의 역사를 철폐해 버려야 됩니다.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창조라는 건 투입의 시작입니다. 자기가 끌어당기는 것이 아닙니다. 투입의 반대가 주입입니다. 자기에게 주입하는 것은 악마요, 파탄 분자입니다. 하나님이 상대 앞에 투입하니 만큼 그걸 잘 받아가지고 고맙고 감사해야 됩니다. “눈물이 날 만큼 고마워라!” 이래 가지고 자기의 감사하는 눈물과 사랑의 마음을 보태서 주입해야 되는 것입니다.
주체는 투입이요, 대상은 주체로부터 받은 것에 고마운 마음을 플러스시켜 가지고 주입함으로 말미암아 본래의 주체를 자극하는 것입니다. 그 고마움의 도수가 크면 클수록 하나님께 사랑의 자극, 사랑의 충동을 주게 됩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더 보태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더 보태 주니 자꾸자꾸 커 가는 것입니다. (269-103, 1994.11.7)


하나님이 사랑의 대상을 찾기 위해서 창조한 사상은 무엇이냐?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주 발생의 기본적인 사상입니다. 그런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반대가 됐습니다. 하나님은 상대를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고 완전 투입해 가지고 보다 나은 제2의 상대를 만들려고 하는데, 인간은 타락해서 자기를 중심삼고 상대를 희생시키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타락한 세계는 개인주의가 세계 판도로 퍼져 가지고 지상지옥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것이 현세입니다. (254-26, 1994.2.1)


우주의 발생은 어디서부터 시작됐느냐? 투입에서 시작됐느냐, 주입에서 시작됐느냐? 위해주고, 그 다음에는 잊어버립니다. 위해주고 기억하는 것이 아니고 잊어버립니다. 자꾸 위해주고 위해줄수록 사랑의 상대가 자기보다 높아질 수 있습니다. 주고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 컨셉입니다. 기억하면 정지됩니다.
그렇게 볼 때 어떤 존재든지 자기 사랑의 상대는 자기보다 더 낫기를 바랍니다. 그게 공식입니다. 그것이 십 배예요, 백 배예요? 어느 걸 원해요? 백 배가 되고 무한정한 백 배, 영원한 백 배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사랑의 상대는 여자에게는 남편이요, 아들입니다. 그 외에 없습니다. 남자에게는 아내와 자녀입니다. 그러니까 전부 다 상대적입니다.
남자는 여자를 원하고, 여자는 남자를 원하고, 그 남자 여자가 하나돼 가지고는 자녀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엇갈려 있습니다.
그러려면 어디서 통일이 벌어지느냐? 남자가 남자를 주장하는 데서는 없는 것입니다. 여자가 여자만 주장하는 데서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투입에서부터 우주창조가 시작됐기 때문에 남자는 상대에 대해서 무한히 투입하고, 그 상대도 무한히 투입하는 데에서부터 하나되는 길이 시작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같이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데에서 통일될 수 있습니다. (267-300, 1994.12.27)


세상의 모든 전부가 운동을 안 하는 것이 없습니다. 움직이게 될 때, 어디서부터 시작하느냐? 여러분은 다 받기를 바라지요? 돈을 끌어당기기를 바라지요? 그것이 옳은가, 아닌가는 우주의 원칙에서부터 헤쳐 나가야 됩니다. 원칙이 그렇다면 하나님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기 시작할 때 받겠다고 당기는 힘을 가지고 창조했겠어요, 주는 힘을 가지고 창조했겠어요? 주는 힘입니다. 투입하는 힘입니다. 그게 쉬운 것입니다.
여러분, 밀가루를 반죽할 때 어떻습니까? 밀가루 반죽을 밀면, 밀가루가 밀려 나간 것이 나중에는 말려 가지고 들어옵니다. 그것을 끌어당기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것이 운동입니다. 우주적인 운동의 발생은 주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모든 이론적인 기반에서 그 운동을 수수작용(授受作用)이라고 합니다. 수수작용이라는 말은 받고 주는 거예요, 주고 받는 거예요? 주고 받을 때는 뿌듯하지만, 받고 못 주면 창피한 것입니다. (239-222, 1992.11.23)


하나님이 맨 처음 출발한 공식은 어디나 다 맞게 마련입니다. 높고 높은 귀한 것을 바라면서 사랑의 대상을 위하여 투입하기 시작한 것이 창조이니, 주체가 된 그분도 그랬기 때문에 대상인 나는 그걸 받아 가지고 감사의 눈물, 고마운 마음을 돌려줌으로 말미암아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적 가치가 나에게 결실되는 것입니다. (265-217, 1994.11.21)


이 땅 위에서 사랑의 호흡기관을 마련해야 됩니다. 하나님과 같은 호흡기관을 준비하려니 참사랑을 중심삼고 투입하고 잊어버려야 되고 위하는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사랑의 호흡기관이 갖춰질 때 육신을 벗고 나와 가지고 자유분방한 우주를 날며 살 수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한계적 생활권 내에서 무한계적 생활권, 제한적 세계에서 방대한 세계로 확장되어 자유분방하게 살 수 있는 게 인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도 별나라 다 가고 싶지요? 여러분이 순회할 수 있는 순회 코스입니다.
그러니까 문 총재는 참사랑을 중심삼고 본연적 부모의 사랑을 통해 가지고 연결될 수 있는 기관, 영원한 하나님의 세계에 가서 호흡할 수 있는 그런 기관을 만들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창조 당시에 하나님이 주입을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투입했다는 것입니다. 출발이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같이 닮아야 되겠으니, 하나님이 부모이니만큼 부모의 갈 길을 따라가야 되겠으니 우리도 투입하는 생활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투입하는 생활, 위해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자기 사랑의 상대인 인간이 몇 천만 배 더 훌륭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렇게 위하고 위할 수 있는 상대를 찾아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렇게 위하고 위하고 또 위할 수 있는 생활을 하게 되면 하나님과 같은 호흡기관이 생겨납니다. (274-104, 1995.10.29)


참사랑이 존재의 기원입니다. 남자 여자는 참사랑을 중심으로 해서 완성됩니다. 완성된 완전한 남자는 참사랑을 중심으로 해서 생명을 투입하고 잊고 또다시 투입하고 싶어하는 남자입니다. 사탄은 그런 사람을 따라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 하나님과 같기 때문입니다.
심신을 어떻게 통일시키느냐? 위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같이 상대세계에 대해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사랑을 가지고 가면, 양심은 틀림없이 육신을 통합해 하나님의 일체권에 도달할 수 있게 됩니다. 양심은 제2의 하나님입니다. 사랑의 상대이기 때문에 제2의 하나님입니다. (258-347, 1994.3.16)


하나님의 창조가 사랑을 위해서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본질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상대도 그것을 받기 위해서는 같이 투입해야 됩니다. 위에서 투입하고, 아래에서 투입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천지가 합덕, 하나되는 것입니다. 천지를 품고 움직일 수 있는 사랑으로 하나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위대한 힘이 있습니다. (237-130, 1992.11.13)


4) 창조의 비밀


① 우주는 하나님 속성의 전개
창조는 어떻게 된 것이냐? 하나님의 성품을 전개시킨 것입니다. 상징적이요, 형상적이요, 실체적인 내용의 급에 있어서는 다르지만,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가지고 생겨났습니다. 그런데 그 생겨난 것이 무엇을 중심삼고 생겨났느냐? 무엇을 중심삼고 살게 돼 있느냐? 여기에 있어서의 하나의 본질적인 기준은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중심삼고, 모든 피조물이라는 것은 광물세계나 식물세계나 동물세계나 할 것없이 사랑을 중심삼고 돌면서 살게 돼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195-11, 1989.11.1)


하나님을 닮아서 중화적 존재가 되고 격위에서는 남성격이라는 것은 남자, 수놈이 언제나 중심이고 생명의 씨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암놈이 생명의 씨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수놈 암놈의 모든 전부가 사람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곤충도 수놈 암놈, 거기에도 콘케이브(concave; 오목한)와 콘벡스(convex; 볼록한)가 있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무형의 하나님 자신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어떻게 계시느냐? 주류 속성이 있습니다. 이 손이면 손도 속성이 있고, 모든 지체에 속성이 있습니다. 눈에는 눈 속성, 코는 코 속성 등 수많은 지체의 구성이 중심상대를 이뤄 가지고 운동하는 형태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반드시 그런 존재는 주체와 대상의 관계로 돼 있습니다.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독자적인 입장에 떨어져 가지고 조상이 되는 것은 없습니다. 그것이 중화적이고, 화합을 해야 됩니다. 중화가 되어 화합을 해 가지고 어디 가든지 뗄 수 없습니다. 지옥에 가더라도 그렇게 가야 그 지옥이 중화적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떨어지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파괴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이 본래의 이성성상의 중화적 존재가 됐다는 사실은 놀라운 것입니다. 그 다음에 격위에서는 무엇이냐 하면 남성격 주체가 돼 있습니다. 남성격이기 때문에 무형의 하나님이 중화적 존재로서 남성적 실체를 중심삼고 보이는 모든 것은 곤충세계도 중화적 존재, 격위에서는 남성격 주체로서 뼈가 언제나 하나님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 하나님을 닮았어요.
그래, 곤충세계도 수놈 암놈이 물고 싸웁니다. 그 수놈 암놈들이 좋아 가지고 상대적으로 돼야 붙습니다. 수놈 마음대로 하고, 암놈 마음대로 합니까? 암놈도 맞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 “아이고, 내 뼈에 맞지 않는다.” 할 때는 강제로 하다가는 둘 다 없어집니다. 파괴했다가는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첫사랑을 잘못하게 되면, 그 사람은 일생이 비참한 것입니다. 돈 때문에 팔려 간 여자들, 돈이 없어지면 불쌍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식 때문에 결혼한 사람들은 지식이 없어지면, 세상을 알게 되면 재미가 없어 갈라지는 것입니다. 정치의 힘 때문에 결혼한 사람들은 힘의 균형이 떨어질 때 갈라지는 것입니다. 그건 다 돈을 사랑하고, 만물을 사랑하고, 권력을 사랑하고, 지식을 사랑하는 패들이니 진짜 사랑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본연의 원칙이 중화적 존재가 돼야 합니다. 플러스와 마이너스, 주체와 대상이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습니다. 미국 여자들이라도 미국 남자가 싫게 되면 동양 남자라도 찾아야 됩니다. 어디 가서 중화, 화합할 수 있는 사람과 결혼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눈을 보면 눈이 좋아하고, 냄새를 맡아도 코가 좋아하고, 입이 웃고, 귀가 웃고, 살이 웃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맨 처음에 성상의 자리는 뼈와 같이 돼 있었고, 형상은 살과 같이 돼 있던 것입니다. 그때는 무형이었으니만큼 실체 구상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이렇고, 인간은 이렇다는 것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랬기때문에 그냥 그대로 크면 무한히 클 수 있었고, 작으면 무한히 작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숨을 쉬더라도 ‘후우’ 하고 내쉴 때 천 년도 내쉴 수 있고, ‘흐흡’ 하고 만 년도 들이쉴 수 있습니다. 그 천 년이라는 것이 하루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백 년을 열 번 해야 천 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걸 참아야 됩니다. 인내가 필요합니다. 인내의 왕이니 그 모든 게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들이쉬는 것도 열 번 해야 천 년이 되는 것입니다. 열 번 했던 것에서 또 열 번 하려면, 그것이 하나를 중심삼고 10분지 1, 거기까지 안 가더라도 하나님의 살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세포도 그것과 마찬가지로 운동을 합니다. 그래, 천 년이라도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한번 사랑하면, 그 사랑의 맥이 생기게 되면 온 우주를 대표하는 맥이니만큼 그런 운동작용을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화산맥을 중심삼고 봐도 주류 맥이 있는 그 옆에 지류가 돼 있으면, 그것도 다 운동을 하지요? 마찬가지입니다. (419-64, 2003.10.1)


통일교회에서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서 성상(性相)이니 형상(形狀)이니 하는 말, 하나님이 이성성상(二性性相)으로 돼 있다는 말은 놀라운 것입니다. 그걸 심었습니다. 창조가 뭐냐?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내적 성상과 외적 형상을 심은 것이 창조입니다. 두 성품의 존재를 심었기 때문에 나타났습니다. 그렇게 심었기 때문에 열매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니 남자만으로도 영원히 미완성이요, 여자만으로도 영원히 미완성입니다. (146-98, 1986.6.1)

환경 가운데는 주체와 대상이 있습니다. 그것이 공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물세계, 식물세계, 광물세계를 보더라도 어떻게 돼 있습니까? 광물세계도 플러스와 마이너스입니다. 분자를 보게 되면, 양이온과 음이온으로 운동하는 것입니다. 식물도 수술과 암술, 동물도 수놈과 암놈, 인간도 남자와 여자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와 같은 환경 가운데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됩니다. 그런 주체와 대상이 없으면 운동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이 우주는 오늘날 과학자들이 말하기를 힘으로 돼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힘이 한꺼번에 나오느냐? 부부 사랑의 힘도 한꺼번에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힘이 먼저냐, 작용이 먼저냐 하는 게 문제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젊은 사람들도 먼저 부부 사랑의 힘이 나오기 전에 눈이 맞아야 됩니다. 작용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눈이 맞고, 말이 맞고, 생각이 맞고, 듣기가 좋고 그래야 됩니다. 그런 여러 가지 액션이 합해 가지고 사랑의 힘이 나와서 결혼까지 가는 것입니다. 힘이 있기 전에 작용이 있습니다. 작용은 혼자 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됩니다. 그게 공식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우주에서는 주체와 대상이 있어 가지고 작용해서 힘을 구성하는 것입니다. 모든 전부가 상대적 관계를 중심삼고 운동하게 돼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주체만 있든가 하나만 없더라도 그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모든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작용을 하는 데는 그 나름의 사랑을 해서 둘에게 플러스가 되는 입장이 아니고는 운동은 계속되지 않는 것입니다. 한쪽이라도 마이너스가 되면 완전히 사라져 버립니다. (268-11, 1995.2.7)


천운이 있습니다. 우주에 공약적으로 보호하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 자체에 수호의 능력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천운도 스스로 보호할 수 있는 본능과 같은 작용이 있는데, 그것을 천운이라고 합니다. 그 천운은 무엇을 보호하느냐 하면 완전히 플러스 마이너스가 하나된 존재를 보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전부가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관계로 돼 있습니다.
전부 다 둘로 돼 있습니다. 창조의 환경에 있어서 절대적입니다. 공식으로 돼 있습니다. 환경에는 반드시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있습니다.
그러면 플러스는 뭐고, 마이너스는 뭐냐? 플러스는 영향을 끼치는 것입니다. 마이너스는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주체와 대상의 개념, 중심과 상대의 개념이 나오는 것입니다. 무엇이 중심이고, 무엇이 주체냐? 주체는 반드시 영향을 줘야 됩니다. 영향을 주는 사람이 주체가 되고, 영향을 받는 사람은 객체가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그렇습니다. 그것이 하나 안 돼 가지고는 발전의 기대가 없습니다. (263-161, 1994.8.16)


② 사랑하기 위해 생겨난 우주

우주가 어떻게 생겨났느냐 할 때 사랑의 개념을 표준으로 해서 지어졌기 때문에 모든 것은 그 사랑 앞에 화동할 수 있는 인연을 따르게 돼 있으니, 모든 것이 그 사랑 앞에 화동하려면 주체 대상의 관계가 없어서는 안됩니다. 혼자는 사랑을 못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체 대상의 개념을 중심삼고 사랑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전 우주는 쌍쌍제도로 돼 있다 이겁니다.
광물세계도 전부 다 끼리끼리 쌍쌍으로 돼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걸 대해 “야, 너! 이리 와서 이것하고 합해라!” 해도 그 명령을 안 듣습니다. 그건 하나님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딱 원칙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이상은 반드시 주고받을 수 있는 소성의 내성 외성이 화합할 수 있는 인연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작동을 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소모요, 손실입니다.
이렇게 우주는 쌍쌍제도로 돼 있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 천지창조는 사랑의 표제를 중심삼고 됐기 때문에 모든 것이 그렇다는 선생님의 말은 이론적입니다. (182-123, 1988.10.4)


우주에 있어서 남자 여자의 개념, 수놈 암놈의 개념, 수컷 암컷의 개념, 플러스 마이너스의 개념이 뭐냐? 광물계로부터 식물계와 동물계를 포함해서 모두 다 이 개념을 중심삼고 존재하기 시작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곤충세계도 수컷 암컷으로 돼 있는데, 그 수컷 암컷이 성을 중심삼고는 남성 여성입니다.
그러면 남자 여자의 상대적 개념을 왜 세웠느냐? 쌍쌍제도로 이 우주가 돼 있는 사실이 무엇 때문이냐? 그것은 남자와 여자, 동물세계의 수놈 암놈, 곤충세계의 수컷 암컷, 광물세계의 플러스 이온 마이너스 이온이 전부 다 합하는 초점을 중심삼고 말하는 것입니다. 급은 다르지만 사랑이라는 개념을 중심삼고 우주가 조성됐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수놈 암놈, 남자 여자 등 상대적인 관계를 가진 것들이 왜 태어났느냐?
사랑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천지를 왜 창조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사랑 때문에 창조했다는 논리를 세울 수 있습니다. 사랑 때문에 창조한 것입니다. 광물세계에서 플러스 이온과 마이너스 이온을 중심삼고 “마이너스 이온, 네가 절대 필요한 것이 뭐냐?” 할 때 “절대 필요한 것이 플러스 이온이오.” 하고, “플러스 이온, 네가 절대 필요한 것이 뭐냐?” 할 때 “마이너스 이온이오. 그 외에는 나 상관없소.”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원에 나가 보라구요. 풀 속에 요만한 곤충들이 있는데, 그 곤충들도 수놈 암놈이 있어서 위해 가지고 서로 살아가게 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 곤충세계가 무엇을 중심삼고 존재하기 때문에 그러냐? 사랑을 중심삼고 존재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사랑 때문에, 사랑을 위해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놈은 암놈을 찾아야 되고 암놈은 수놈을 찾아야 되고, 수컷은 암컷을 찾아야 되고 암컷은 수컷을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217-181, 1991.4.16)


광물세계와 식물세계 그리고 동물세계의 모든 것이 수놈과 암놈을 중심삼고 엮어져 있습니다. 수놈 암놈들을 중심삼고 끌고 나오는 그것이 천년만년, 몇 억만년 오면서도 변함이 없이 계속되더라 하는 걸 알아야 됩니다. 그게 뭐냐 하면 차원은 다르지만 사랑이라는 개념입니다. 사랑이라는 개념을 중심삼고 후계자를 남기면서 나오는 것이 모든 자연계에 남아져 있는 중심법칙입니다.
그러면 사람이라고 예외일 수 있느냐?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자 여자로 돼 있으니 사랑을 중심삼고 앞으로 보다 훌륭한 후손을 남기는 것이 변함없는 원칙입니다. 이것만은 누가 점령할 수 없고 이것만은 누가 혁명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떠냐? 하나님은 무엇을 원하느냐?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것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원하는 사랑과 인간들이 원하는 사랑이 다를 수 없습니다. 동물세계는 횡적인 사랑을 표시하면서 역사를 지내 왔는데 인간은 종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의 표준적 사랑을 중심삼고 박자가 맞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189-256, 1989.3.5)


우주창조의 내용은 사랑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모든 존재는 하나님과 인간의 큰 축을 중심삼고 상응적, 대응적 위치에 있어서 돌아가면서 세포적인 입장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님을 대해서, 인간을 대해서 반대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급한 것이 제일 바라는 것은 뭐냐? 최고급 존재의 사랑의 축에 결착하는 것입니다. 그게 최고의 의지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크나큰 사랑의 심정을 가지고 자기를 먹어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먹더라도 사랑을 가지고 먹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상대가 되는 주인의 세포 활동에 자극을 주는 요소로서 이동해 가지고 존재하고 싶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걸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키스를 하는 여자의 입술이라든가 남자의 입술의 세포가 되고 싶다고 하는 것입니다.
남자 여자의 생식기는 하나님의 사랑에 연결되는 중심기관입니다.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미국의 호모라든가 레즈비언 같은 그런 게 아닙니다. 여자로서 여자를 중심삼고 살게 돼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인으로서 남자를 위하여 살아야 되는 것이 여자의 길입니다.
왜냐? 태어나게 될 때, 사랑이라는 관념이 먼저 있었습니다. 사랑의 관념이 없었다고 하게 되면, 암컷 수컷의 관념을 설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광물의 세계도 플러스 이온과 마이너스 이온이 있는데, 이것이 수컷 암컷과 같습니다. 곤충의 세계도 수컷 암컷으로 돼 있습니다. 동물세계도 수컷 암컷으로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도 남자와 여자지요? 수컷 암컷의 관념이전, 그것이 태어나기 전에 사랑이라고 하는 관념이 있어 가지고 사랑을 중심삼고 그것이 하나되게끔 된 것입니다. 그것이 수컷 암컷의 관념입니다.
이 사랑의 관념이 없었다면, 수컷 암컷은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어느 쪽이 처음이냐 하면, 수컷 암컷이 처음이 아닙니다. 사랑의 감성과 관념이 처음입니다. 철학에 있어서 관념과 실재의 문제는 세계적인 싸움의 토대가 돼 있지만 지금은 모두 무너져 버린 것입니다. 사랑의 개념으로부터 태어난 여자가 여자 때문에 태어난 게 아니고, 남자가 남자 때문에 태어난 게 아닙니다. 사랑을 위해 태어난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남자의 중심사상과 여자의 중심사상은 모두 사랑입니다. 그 이외에는 없습니다. 돈이 아니고, 지식이 아닙니다. (218-338, 1991.7.1)


사랑은 보이지 않습니다. 개념이자 관념입니다. 보이는 것은 실재(實在)입니다. 오늘날 철학사조에 있어서 관념과 실재의 문제를 두고 이분화되어 서로 싸우지요? 사랑은 둘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사상이 나오는 것입니다. 몸 마음이 갈라진 것의 통일이 벌어집니다. 유심·유물로 갈라진 것의 통일이 벌어집니다. 원칙적인 창조과정의 개념을 중심삼고 볼 때, 남자 여자라는 것은 사랑에 맞게끔 태어난 것입니다. (227-268, 1992.2.10)


사랑이라는 개념이 있어서 남녀가 갈라졌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사랑이 일치된 거기에서는 자극을 느끼지 못하니까 그것을 분립시켜 가지고 자극을 느끼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이 무형의 하나님의 실체의 모든 내용이 유형의 실체 내용으로써 전개된 것입니다. 무형의 성상과 형상의 실체권이 유형의 실체권인 형상체와 성상체로서 전개된 것입니다. 그것이 다시 성상체와 형상체로서 무형의 실체가 되려면 하나가 돼야 합니다. 하나님이 실체로 계시기 때문에 무형의 성상과 형상의 사랑으로 하나돼야 합니다. 사람도 남자와 여자가 하나된 대상과 실체가 될 때 하나님의 사랑의 상대가 되는 것입니다. (253-249, 1994.1.30)


③ 사랑으로 노래하는 우주
이 우주의 핵, 다시 말하자면 역사의 흐름과 모든 우주의 핵은 도대체 무엇이냐? 하나님이 중심삼고 움직이지 않을 수 없는 그 핵이 무엇이냐? 하나님이 이상하는 기점, 그분이 아버지라면 자녀가 바라는 기점은 같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우주의 축을 이루고 있는 힘인데, 그 힘이 참사랑의 힘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수님들도 자기들의 학문과 지식을 절대시하고 있지만, 그 지식이 어디로 가느냐? 그 귀결점이 어디냐? 무엇을 축으로 하고, 그 다음에는 어떤 방향을 통해서 갈 것이냐? 그게 문제입니다.
지식이 제일이냐? 지식으로 만유 존재물의 공통분모를 삼을 수 있겠느냐? 없습니다. 지식으로는 방향성 감각을 자극하고 촉구시킬 수 있는 힘을 갖지만, 전체의 중심이 되는 핵의 작용으로 동화시킬 수 있는 원동력은 갖추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권력, 권세예요? 그 권세의 방향은 어디로 갈 것이냐? 그것이 우주의 공통분모가 될 수 있겠느냐? 아닙니다. 그 다음에는 황금만능의 시대를 말하고 있습니다. 소위 미국의 실용주의자들은 공산주의도 황금능력을 중심삼고 소화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건 사상을 모르는 사람이 하는 말입니다. 돈, 황금이 모든 문제해결의 공통분모가 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정치, 경제, 문화의 어떤 여건도 우주 전체의 공통분모가 돼 가지고 그것을 통해서 전부다 연관지을 수 있게 하는 동기가 되는 자체들이 될 수 없다고 결론을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내세운 공통분모가 뭐냐? 그것은 사랑이라는 겁니다.
우주에 사랑의 축이 몇 개냐? 운동하는 모든 것은 반드시 축을 가지고 있습니다. 축을 중심삼고 운동하지 않는 것은 방향감각과 위치감각을 상실해 버립니다.
지구가 도는 데도 누가 설정해 주지는 않았지만 축을 중심삼고 돌고 있는 것입니다. 예외일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이 생활하는 데도 자신은 모르지만 인생이란 자기 목표의 축을 중심삼고 돌면서 생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주의 공통분모, 운동이라든가 종합이나 분열 혹은 발전적인 모든 감각 전체에 있어서의 공통분모가 돼 가지고 연결될 수 있는 그 기점이 무엇이냐? 그것은 지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게 뭐냐? 사랑입니다. (137-50, 1986.1.1)


얼굴을 보게 되면 눈썹이 죽어 있어요, 살아 있어요? 머리카락은 어때요? 살아 있으니까 자꾸 큽니다. 세포는 살아 있어요, 죽어 있어요? 살아 있습니다. 세포가 자체의 한계선까지 지내고는 번식해야 됩니다. 번식 못하면, 내가 죽어 버리는 것입니다.
살아 있다는 사람, 나 자신이 오랫동안 살 수 있는 동기는 뭐냐?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참사랑이 동기입니다. 영원한 참사랑을 뿌리로 했기 때문에 죽지 않고 수수작용을 할 수 있는 입장, 주고받을 수 있는 입장의 인연이 돼 가지고 모든 사지백체가 자랍니다. 손톱도 자라는데, 그걸 자르면서 “이야, 나보다 낫구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란다는 것은 뭐냐? 그 자람의 조상은 뭐냐 하면 하나님의 참사랑입니다. 참사랑이 남자 여자의 이성으로 갈라져 분립체가 된 것입니다. 그 다음에 남자 여자의 참생명 참혈통을 중심삼고 하나돼 가지고 참사랑·참생명·참혈통이 천년만년 존속케 하는 것입니다. 풀 한 포기도 몇 억만년이 됐습니다. 몇 억만년 동안 하나님의 본질적 그 자체를 중심삼고 투입한 본연의 사랑, 본연의 생명, 본연의 혈통의 인연을 연이어 왔기 때문에 존속하는 것입니다. (427-273, 2003.12.8)


태평양, 오대양이 아무리 넓다고 하더라도 깊은 곳으로 말미암아 썩지 않습니다. 그래서 태평양도 4천5백 마일을 중심삼고 흑조(黑潮)가 있어서 순환하는 것입니다. 물도 흘러가는 것이 사랑 때문입니다. 물도 강수가 있고, 약수가 있지요? 물이 강한 물이 있습니다. 공기도 찬 공기와 더운 공기가 있습니다.
그 물이 화합해 가지고야 운동이 벌어지고, 그러면 천지창조의 본심·본성·본질적인 사랑의 운동법을 따라 가지고 상징과 형상이 운동합니다. 무형의 형태도 마찬가지로 운동을 하는데, 그럼으로써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 그리고 혈통적 인연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높은 곳의 것은 낮은 데로 흘러가야 됩니다. 동쪽은 서쪽으로 흘러가고, 서쪽은 동쪽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원칙으로 볼 때 존속하는 생명체가 참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쌍쌍제도로 돼 있어서 씨를 낳게 되면 해마다 새로운 씨를 따먹는 것입니다. 춘하추동이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고마운 것이지요. (427-279, 2003.12.8)  


우주를 하나로 만들 수 있는 내용, 하나님을 중심삼고 주체와 부체가 하나될 수 있는 내용이 뭐냐? 그건 하나님의 힘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창조능력, 만물을 지을 수 있는 물질적인 요인으로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참사랑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참사랑을 중심삼아야만 하나님이 핵을 울릴 수 있고, 그 핵을 울리게 될 때 우주가 공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주 전체가 형성된 자체를 바라보게 될 때 반드시 공명적인 주체와 대상의 관계로 존재한다는 논리를 세울 수 있습니다. 그것이 맞지 않으면, 우주가 상대적 관계에 있어서 핵을 중심삼고 공명의 환경을 이룰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주 자체도 공명될 수 있는 외적 내적인 요소, 주체 대상을 갖춰야 되는 것입니다.
이 피조세계를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을 위주한 모든 전체가 피조세계인데 인간은 남자 여자가 있고, 동물은 수놈 암놈이 있고, 식물에는 수술 암술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분자에는 플러스 이온과 마이너스 이온, 원자에는 전자와 양자 등 전부가 이렇게 돼 있습니다. 왜 이게 이렇게 돼 있느냐 이겁니다. 전부 다 공명적인 내용을 갖추어 가지고 우주와 더불어 화합할 수 있고 공명될 수 있는 통일권을 바라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의 모든 것은 쌍쌍제도의 존재권을 벗어나서는 완성이니, 이상이니, 희망이니, 소망이니 하는 것들이 없습니다. 그 말은 뭐냐 하면 쌍쌍기반의 통일이 이뤄지지 않는 곳에서는 자유도 없는 것이요, 희망도 없는 것이요, 소망도 없는 것이요, 평화도 없다는 것입니다. (226-78,1992.2.1)


우주를 볼 때 사랑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야, 광물세계도 사랑의 노래를 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야, 광물세계도 사랑의 말을 하고 사랑의 노래를 하는구나!” 얼마나 멋져요! 사실이 그렇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바위가 얘기를 하고 땅이 얘기를 하고 노래를 합니다.
무엇을 위해서? 하나님이 지으신 사랑의 이상을 찾아가기 위해서, 사랑이상의 완성을 위해서입니다. 그것들이 낮은 급이지만 사랑이 그리워서 노래하고 사랑을 찾아서 영원히 운동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자연은 인간 아담 해와가 이상적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랑의 표본물들이요, 사랑을 교시하는 교재입니다. 그런 자연박물관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사랑을 가르쳐주기 위한 박물관입니다. 그것은 사람의 사랑을 완성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전부가 그런 것입니다. 광물계도 “어서 사랑을 완성하소!” 하고, 식물계도 “사랑을 완성하소!” 하고, 동물계도 그러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전부 다 그렇게 사랑을 중심삼고 주인 된 사람이 완성돼 가지고 지으신 주인인 하나님의 사랑까지 완성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모든 것이 충만한 가운데서 사랑을 갖고 살고 하나될 수 있는 세계가 되기 때문에 그걸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완성과 동시에 인간 사랑의 완성, 우주 사랑의 완성이 이뤄져야 비로소 전부가 “아, 행복하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131-125, 1984.2.20)


④ 위하여 사는 아름다운 세계
우주의 존재 질서는 위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고 있습니다. 참다운 이상, 참다운 사랑, 참다운 평화의 세계는 하나님의 창조이상인 동시에 인간의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이상의 기원, 행복과 사랑의 기원은 상대를 위하여 사는 데 있는 것입니다.
우주를 보면, 어느 존재물도 그 자체만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동물계는 식물계를 위하여, 광물계와 식물계는 동물계를 위하여, 또 그 모두를 합한 만물들은 인간을 위하여 존재합니다. 그러면 인간은 누구를 위하여 존재합니까? 인간은 하나님을 위하여 존재합니다. 하나님은 또 만물들을 성장 발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위하는 것이 존재세계의 기본 질서인고로 그 누구도 위하는 존재로 태어난 것이지 자신만을 위해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남자가 태어난 것은 남자 때문이 아니고 여자를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거기서부터 참사랑이 시작됩니다. 그렇게 참된 것은 위하는 데에서부터 기원을 찾아야 합니다. 참된 부모의 사랑, 참된 자식의 효도, 참된 부부의 사랑도 상대를 위하는 데에서부터 기원을 찾게 됩니다.
그 공식을 적용한다면 참된 부모는 자식을 위해 있는 것이요, 참된 효자는 부모를 위해서, 참된 국민은 나라를 위해서, 참된 주권자는 국민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그 모두에 참이 있고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135-233, 1985.8.20)


투입하고 잊어버림으로 말미암아 자기를 넘는 상대가 얻어집니다. 그 진리는 위대한 발견입니다. 자녀들이 그것을 알면 잘못된 길로 나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십니다. 아버지가 그렇게 하십니다. 과거의 성인들, 자기 형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기를 위해 온 서자 같은 사람들은 형입니다. 많은 형들이 자기를 구하기 위해서 희생되어 갔습니다.
그들이 무슨 보답을 원한 것이 아닙니다. 투입하고도 잊어버리고 갔기 때문에 그들의 모든 것을 모아서 지금의 자기가 구성된 것입니다. 그 말은 지금까지 투입한 모든 가치 이상이 돼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상대가 본체 이상이 되기를 원해서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갔기 때문에 하나님보다도 더 훌륭한 자신이 되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창조세계의 주체와 객체가 갖춰야 할 자세입니다. 간단한 내용입니다. 그 내용을 평생 안고 살게 되면 어느 정도 훌륭해질지 생각해 보라구요. 그냥 지나가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가계의 훈시와 마찬가지이고, 회사의 사훈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눈도 위하여 살고 있습니다. 눈이 자기를 위해서 봐요? 누구를 위해서 봐요? 상대를 위해서입니다. 코가 자기 나름대로 호흡하는 게 아닙니다. 전체를 위해서 호흡합니다. 폐를 중심으로 해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호흡을 하는 것이지 코 자체를 위해서 호흡하는 것이 아닙니다. 입도 마찬가지입니다. 입을 위해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를 위해, 전체를 위해 입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두 그렇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259-60, 1994.3.24)


모든 것이 위하여 존재합니다. 눈이 자기를 위해서 생겨나지 않았습니다. 상대를 위해서입니다. 코도 그렇고, 입도 그렇습니다. 입, 코, 눈이 부부생활에 있어서 자기를 위해서 얼마나 입이 변명했고, 얼마나 눈을 부라렸고, 얼마나 코가 냄새난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서 살아 왔다고 생각하면 큰일 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적인 세계의 이상실체와 자기와는 관계를 가질 수 없습니다. 관계를 가진다고 하더라도 자기를 인정하면 인정할수록 반비례해서 상대의 세계는 줄어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 내용으로 봐서 문선생은 체험으로부터 결론을 내려서 ‘위하여 존재하는 세계’를 잊지 말라고 하는 겁니다. 멋진 결론입니다.
여자의 것은 여자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남자를 위해서입니다. 그렇지 않다고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습니다. 이름밖에 없는 여자라고 해서 부끄러운 게 아닙니다. 어디든지 조화가 가능한 거예요. 할머니한테도, 어머니한테도, 할아버지한테도, 친척의 아주머니나 아저씨한테도 조화가 될 수 있습니다. 여자라고 하는 중심성을 크게 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권의 폭이 점점점 넓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주창조의 원칙에 근본을 둔 공식적인 기반에 연결되는 것이기 때문에 확장되어 가는 것입니다. (255-144, 1994.2.27)


사랑은 위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 때 하나님을 위해서 만든 게 아니라 사람을 위해서 만들었습니다. 사랑의 원칙을 위해서 만든 겁니다. 인간이 자랄 때까지, 인간이 성숙할 때까지는 위하는 입장에서 하나님이 길러 왔습니다.
남자가 생겨나기를 여자를 위해서 생겨난 것입니다. 존재의 기원이 위하는 데서부터 된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남자가 남자 때문에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여자가 태어난 것도 자기 때문에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자기라는 주관성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자의 유방이 큰 것은 자녀 때문이고, 궁둥이가 큰 것도 후손 때문입니다. 여자의 음부는 남자의 것입니다. 여자의 것입니까? 그것이 잘못됐습니다. 여자 때문이 아니라 남자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남자의 것입니다. 그 주인이 남자입니다. 남자의 것은 주인이 여자입니다. 엇바꿔졌기 때문에 교류할 수 있는 작용을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위하여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걸 몰랐어요. “아이고, 내가 제일이다!” 하는 관념을 혁명해야 되겠습니다. (137-72, 1986.1.1)


인간은 위하여 태어났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도 그렇습니다. 하나님도 위하여 창조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의 상대자가 자신보다 낫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남편이 자기보다 몇 십배, 몇 백배 훌륭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지요? 자기의 자식도 그러기를 바라지요? 자기에게 제일 가깝고,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보다 가치 있고 보다 귀한 것이기를 원하는 마음을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디에서 왔느냐 하면 하나님한테서 왔습니다. 하나님도 같습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백 퍼센트를 투입하고 만들었다면, 거기서는 백퍼센트의 존재밖에 안 나옵니다. 백 퍼센트를 투입하고 스톱한 경우에는 백퍼센트의 상대밖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의 상대가 자기보다 몇 억배 훌륭하기를 원하니까 백 퍼센트를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리기를 천번 만번 하시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 의해서 무한한 가치의 상대자를 창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최고 이상의 상대를 맞이하는 것이 절대 불가능합니다.
그렇게 볼 때 하나님 자신도 위하여 산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탕감복귀가 문제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마음대로 한다면 하루에도 천하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원수라는 개념을 가질 수 없습니다. 창조할 때 원수라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원수라는 개념이 생겨났는데 처분해 버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 자신이 절대적인 창조주의 입장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원수는 천사장입니다. 원수인 천사장도 복귀해 가지고 천국에 데려가야 하기 때문에 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맞고 변상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도 위하여 존재합니다. 우주의 모든 것이 위하여 존재한다고 하는 논리를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 전략 전술이 틀림없이 역사상에서 승리권을 남겨왔다고 하면,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공인 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현재에 있어서 여러분이 그런 생활을 해서 망하게 된다면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것이 되지만, 그런 생활을 사방팔방의 환경에 있어서 함으로 인해서 점점점 커지는 경우에는 하나님이 있다고 하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친구가 20명 있다고 합시다. 10년, 20년의 오랜 친구들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을 위하라고만 하면 친구들이 점점점 떨어져 가요, 불어 가요? 떨어져 갑니다. 그러나 20년, 30년 동안 전체 20명을 위하여 산 경우에는 모두 훌륭한 친구들이 될 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족과 형제들도 모두 모여들어 많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라의 대통령은 나라를 위하여 사는 자가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대통령이 될 때는 엄청난 문제가 생깁니다.
현실 사회에 있어서도 그런 사람이 중심자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중심자가 되느냐? 위하여 사는 사람, 보다 위하여 사는 사람이 중심자가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영원히 우주의 중심자가 된다고 하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250-40, 1993.10.11)


하나님의 사랑, 본연의 사랑은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사랑, 생명을 바칠 수 있는 사랑입니다. 자기 생명을 넘어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거 왜 그래야 되느냐? 본래 이 우주가 창조된 것은 생명 때문이 아닙니다. 사랑 때문에 지어졌기 때문에 사랑이 먼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에 부합될 수 있는 생명이지, 생명에 사랑이 부합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생명을 희생해서 사랑하는 것, 생명을 넘어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게 하늘의 사랑이요, 우주와 통할 수 있는 사랑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사랑이 우주의 본질이기에 사랑을 중심삼고 우주를 창조했습니다. 모든 생겨난 것의 생성원인이 사랑이상을 중심삼은 것입니다.
사랑이상을 중심삼고 하나님도 존재하고, 모든 존재가 그렇게 돼 있는데 그 사랑이 어떤 사랑인가를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자기 존재를 희생시켜서라도 사랑의 길을 세우려고 하는 것이 우주 본연의 이상적 주체사상입니다. (132-152, 1984.5.19)


3. 천주부모가 인류를 창조하신 이유


1) 천주부모에게 필요한 것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기쁨입니다. 기쁨을 누리시고자 인간과 세상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쁨은 홀로 느낄 수 없습니다. 기쁨을 누리시려면 반드시 대상 혹은 짝이 필요합니다. 주체와 대상이 서로 상대기준을 이루어 주고받을 때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최고의 기쁨은 사랑을 주고받을 때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대상으로 지으시고 그 대상과 더불어 무한한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영원히 기쁨을 누리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창조목적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창조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첫 인간조상으로 일남일녀를 지으셨으니, 성서에서는 이들을 아담과 해와라고 부릅니다. 그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의 완전한 기쁨의 대상이 되어 사랑을 주고받으며 선한 자녀를 번식했더라면 그 가정이 확대되어 사회가 되고, 그 사회가 발전하여 국가가 되며, 그 국가는 세계로 발전되어 지구에 아담의 일족으로 충만하고, 이 땅 위에는 하나님의 선과 사랑을 완성한 기쁨의 세계가 이뤄졌을 것입니다. 그 세계를 지상천국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100-241, 1978.10.19)

왜 하나님이 창조했느냐? 자극적이요, 충동적인 사랑을 느끼기 위해서 창조했습니다. 사람만 결혼식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도 결혼식을 합니다. 우레가 나는 것이 공기와 공기끼리 부딪쳐서 나요, 무슨 돌이 부딪쳐서 나요? 이야, 그거 얼마나 신기해요! 검은 구름 가운데서 ‘와르릉!’ 하면, 천지가 진동하고 야단입니다.
또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번개가 번쩍하는 것입니다. 공기와 공기가 번개를 유치할 수 있고 소리를 낼 수 있어요? 그게 전기의 장난입니다.

사랑의 힘과 마찬가지입니다. 전기가 장난할 때, 우레가 날 때는 무섭지요? 위에서부터 내려오다가 옆으로 호르륵 가는 것입니다. 이 땅이 어스(earth;접지)가 되기 때문에 땅을 찾아 내려오게 돼 있지 거꾸로 가는 것은 없습니다. 그런 것을 다 알고 보면 “자연의 결혼식을 하는구만!” 그럽니다. (423-38, 2003.10.25)


사랑은 혼자서 느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눈에도 안 보이지만 사랑 자체가 혼자서는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느낄 수 있게 돼 있지만 상대가 없으면 느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자신도 사랑의 본체이지만 상대적인 존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니까 절대권을 갖고 계시는 하나님이 그것을 만드시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실체, 사랑의 실체상대를 창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지만, 사랑의 보이지 않는 실체를 상대적으로 느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상대적인 존재를 만나지 않으면 사랑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사랑이 나타나지 않으면, 상대도 기뻐하지 않는 것입니다. (442-202, 2004.3.11)


여러분도 몸과 마음이 하나되게 될 때는 충격을 못 느낍니다. 심적 고통이라든가 육적 고통을 느끼지만, 몸과 마음이 하나되게 될 때는 수평위에 있어 가지고 원만한 기쁨을 느낍니다. 그런 중화적 존재로 계시고 격에서는 남성격, 인격적 신이 되기 위해서 남성격으로 계시는 것이 하나님의 본래 속성을 중심삼은 존재의 실상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보이지 않는 중화적 존재, 보이지 않는 남성격 주체가 어떻게 자극을 느끼느냐? 보이지 않는 것끼리 화합하는 것을 갈라 가지고 실체를 창조하기 위한 것이 아담 해와입니다. 그러면 이성성상의 중화적 존재를 누구 앞에 전수해 주느냐? 아담 앞에 전수해 줍니다. 완전히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이성성상의 중화적 성품을 투입하고, 격에서는 남성격을 투입하는 것입니다.
왜 남성격을 투입해야 되느냐? 생명의 출발이 남성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닮을 수 있는 주체의 남성격을 이루기 위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는 실체를 가지고 투입해 만든 것이 아담이었습니다. (400-65, 2002.12.27)


하나님도 커 나왔습니다. 아담 해와를 지을 때까지는 다 커 가지고, 한바퀴를 다 돌아 가지고 우주를 포괄할 수 있는 자리에 들어왔기 때문에 지은 것입니다. 무형인 하나님은 실체대상권과 관계를 맺지 않고는 안되는 것입니다. 무형세계의 중심은 종적이므로 한 점밖에 없기 때문에 번식할 수 없습니다. 영계에 가서는 번식을 못 합니다.
하나님은 실체권을 연결시켜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우리 원리의 총론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은 어떤 존재로 계시느냐? 이성성상의 중화적 존재로 계시고 격위에서는 남성격을 갖춘 존재라고 했습니다. 그건 위대한 말입니다. 하나님이 이성성상의 중화적 존재로서 몸 마음이 하나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쌍태와 마찬가지입니다. 참사랑을 중심삼고 뼈와 가죽같이 된 것입니다. 뼈가 있으면 반드시 가죽이 생기는데, 뼈에는 기름이 있어 가지고, 거기에 연골 같은 것이 연결돼서 모든 것이 연결될 수 있는 경계선이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뼈와 같은 하나님의 무형의 실체, 마음적 기준과 가죽과 같은 것을 포괄해 가지고 비로소 참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시작서부터 하나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복중의 어린아이로 비유한다면, 아버지와 어머니의 정자와 난자가 하나되어 가지고 아버지의 정자는 뼈가 되고 어머니의 난자는 가죽이 돼서 어머니의 자궁에 들어가서 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도 보이지 않는 세계에 있어서 무형의 존재를 중심삼고 참사랑의 길을 닦아 나온 것입니다. (445-268, 2004.4.19)


하나님은 이성성상의 중화적 존재요, 격위에서는 남성격 주체라고 했습니다. 무형의 신이 이성성상의 중화적 존재로 돼 있는데, 이성성상 자체가 체를 입기 위해서 남성격 주체를 중심삼고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모양을 보이게 해 가지고 아담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뼈와 같은 것이요, 해와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몸뚱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단계 낮아진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는 하나님으로 나타난 것이 창조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주체냐? 보이지 않는 것이 주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이성성상의 중화적 존재가 하나 안 되면 안됩니다. 여자와 여자끼리에 있어서 자기가 주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무형의 주체 대상의 상대적 중화적 존재로서 중화, 화해서 하나되는 것이요, 격위에서 하나님 자신은 뼈입니다. 무형의 하나님이 체를 입지 않으면 상대가 없기 때문에 체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 창조였다 이겁니다. (419-64, 2003.10.1)


뼈가 있어야 되고, 살이 있어야 되고, 가죽이 있어야 됩니다. 그게 소생·장성·완성이다 이겁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대상의 관계로 지었는데, 무형의 신으로서는 그 주인이 될 도리가 없습니다. 영계에서는 천주부모입니다. 하늘나라의 집, 보이지 않는 세계의 집 가운데 주인으로 돼 있지만, 그런 주인으로서는 사랑이라는 것을 찾을 수 없습니다. (458-39, 2004.7.6)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짓기 전까지 이성성상의 중화적 존재의 그 마음 된 것을 영계의 하나님이 아담에게 집어넣어 가지고 창조했는데, 창조목적이 뭐냐 하면 체를 쓰기 위한 것입니다. 체가 필요하니 체를 써야 됩니다. 체가 없으면 평면적으로 주고받을 수 없고, 마음도 체가 있어 가지고 상하와 전후좌우로 한꺼번에 주고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체를 입게 하려고 무형에서 이성성상의 중화적 존재를 그냥 그대로 아담에게 집어넣었는데, 아담 혼자면 안됩니다. 아담의 갈빗대를 빼 가지고 여자를 탄생시킨 것이 정(正)에서 분(分)이 된 것입니다. 정반합(正反合)이 아니라 정분합(正分合)입니다. 공산주의의 논리는 정반합의 논리를 말하지만 이건 정분합입니다. (421-173, 2003.10.17)


2) 하나님의 성전


신비스러운 경험을 못 해서 그렇지, 계시를 받고 깊이 들어가게 되면 하나님이 이 속에서 대답을 합니다. “하나님!” 하고 불러보면 “이 자식아, 왜 불러?” 하고, “어디 있소?” 하면 “어디 있긴 어디 있어? 제일 사랑의 뿌리, 생명의 맨 뿌리, 혈통의 맨 뿌리에 있지!” 그런다는 것입니다. 공중에 있지 않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집입니다.
아들은 부모가 들어가 살 수 있는 사랑의 집이고, 남편은 아내가 들어가서 살 수 있는 사랑의 집이고, 아내는 남편이 들어가서 살 수 있는 사랑의 집이고, 형님이 있으면 동생은 형님이 들어가서 살 수 있는 사랑의 집이요, 형님도 동생이 들어가서 살 수 있는 사랑의 집입니다.
‘집 주(宙)’ 안에 있는 이것(由)은 무슨 ‘유’ 자예요? ‘자유(自由)’ 할 때의 ‘유’ 자 아니에요? 사방(口)에 통하는 것입니다. 이것( )을 보면 거꾸로 십자가를 세운 것입니다. 이 땅(田)에 이래 가지고 거꾸로 여기 붙여 놓은 것입니다. 천주(天宙), 이것은 두 사람의 집입니다. 하나님의 집도 되고, 아담 해와의 집도 되고, 할머니 할아버지의 집도 되고, 어머니 아버지의 집도 되고, 내 집도 되고, 천세만세 수많은 인류 개개인의 집이 되는 것입니다.
천세만세 같은 집과 같은 가치의 사랑을 해서 하나되어 가지고 천상으로 이양해 가는 것이 이상적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완성한 가정입니다. 그 가정에서부터 자유가 있는데, 타락해 가지고 행복이 없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행복하려면, 할아버지 할머니에 있어서 오목 볼록이 깨지지 않고 꽉 붙들고 천년만년 요동하지 않아야 됩니다. 어머니 아버지도 그것이 틀어지면 왱가당 댕가당하지요? 아들딸도 그러면, 3대가 전부 다 녹아나는 것입니다.
이 철칙 같은 천리의 궤도에 일치될 수 있는 모델적인 환경 여건을 어떻게 땅 위에서 충족시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무슨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것을 메우고 가겠다고 하는 것이 인생의 행로, 가정을 거느리고 사는 생애의 목적이느니라, 아멘! 

‘천주’는 누구나 들어와 살 수 있는 집입니다. 온 세계의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딸인데, 하나님의 가정 식구라고 하는데 그 하늘땅의 집에는 어느 누구나 같이 들어가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지구성에 있는 모든 집이라는 것은 흑인 백인 할 것 없이 누구든지 다 같이 살 수 있는 것입니다. (358-66, 2001.11.1)


천주라고 하게 되면 하나님이나 땅 위에 있어서 부자지관계·부부관계·자녀관계의 전부가 같이 살 수 있는 집이라는 것인데, 천주라는 것은 다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사람 몸뚱이도 성전(聖殿)이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을 보게 된다면,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그랬습니다. 성전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들어와 살 수 있는 집입니다. 두 사람, 내적 사람과 외적 사람이 하나돼야만 하나님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눈도 둘이 하나돼야만 완전한 눈이 형성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계는 쌍쌍으로 돼 있습니다. 이 우주는 쌍쌍이 서로서로 하나되어 가지고 잘 살 수 있는 서로의 집이라는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가 사랑할 수 있는 집입니다. 또 아내는 남편이 들어와 살 수 있는 사랑의 집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몸과 마음이 하나 안 되게 되면, 문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둘이 하나된 그 가운데는 반드시 중심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중심을 무엇이 모시느냐? 참사랑입니다. 참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부모의 사랑이 연결되고 핏줄이 연결돼 있습니다. 모든 우주가 생겨나게 된 존속의 근원인 것입니다. 참사랑 때문에 이 우주가 생겨났고, 참사랑 때문에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한 것입니다. 그런 참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도 사람이 있어야 됩니다. 사람이 없어 가지고는 사랑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360-216, 2001.11.16)


인간이 완성해서 성년이 되면, 그때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들어와서 사랑을 만듭니다. 하나님이 좋아함과 동시에 아담이 좋아하는 격동적인 사랑을 하나님이 할 수 있다 이겁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최고의 신성한 성전(聖殿)입니다, 성전. 거룩할 성(聖) 자예요. 그래서 참사랑 가운데는 어디나 하나님이 들어가 계십니다.
왜 인간이 참사랑을 좋아하느냐? 참사랑만 가지면, 벌써 하나님이 거기에 계십니다. 주인이 있게 마련입니다. 아담 해와가 성년이 되어 사랑할 때 아담 해와의 몸은 우주를 창조한 하나님이 그 속에 들어와서 최고의 신성한 성전을 이루는 거룩한 곳이 됩니다. (128-325, 1983.10.2)

내 마음 가운데 들어와 계시는 하나님과 내가 사랑으로 하나되면 나는 무엇이겠습니까? 아들이라면 하나님의 아들이고, 아내라면 하나님의 아내입니다. 하나님과 내가 주고받아서 하나만 되면 그도 나요, 나도 그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복음 14장 20절에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과 나는 하나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고귀한 것이 인생입니다. 사람은 무엇이냐 하면 실체를 쓴 하나님의 몸입니다. 하나님의 실체를 쓴 몸이기에 인간은 외적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이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39-340, 1971.1.16)


아기들은 전부 어머니 몸의 분신체입니다. 피, 살, 뼈 할 것 없이 전부 어머니 것을 나누어 가지고 태어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실체요, 자기의 몸, 제2의 나이기 때문에 사랑 안 할 수 없어요.
아담 해와가 하나님한테서 갈라져 나왔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하기 전의 아담 해와는 하나님을 대해서 만질 수 있고 볼 수도 있었지만 타락한 후의 아담 해와는 하나님을 만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고, 생각도 할 수 없이 됐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기가 차요! (313-219, 1999.12.19)


우리의 마음은 몸의 집이요, 몸은 마음의 집인 동시에 사랑의 집입니다. 남편은 아내의 사랑의 집이요, 아내는 남편의 사랑의 집이요, 부모는 자식의 사랑의 집이요, 자식들은 부모의 사랑의 집입니다.
이런 가정적 이상을 중심삼고 큰 것이 작은 것을 흡수하여 보다 큰 것을 향해 발전해서 최후에는 하나님 가운데 들어가 살 수 있는 일체, 사랑을 중심삼은 하나의 일체가 되어 정착할 수 있는 집, 안식의 집에서 살 수 있는 해방된 하늘의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314-257, 2000.1.9)


3) 하나님의 몸


천지창조는 왜 했느냐? 무형의 하나님으로서는 실체세계의 주인이 못 됩니다. 무형의 하나님으로서는 스승도 못 됩니다. 무형의 하나님이 돼 가지고는 아버지도 못 됩니다. 실체의 아버지가 못 되는 거예요. 그러니 체를 입어야 됩니다. 하나님도 체가 필요합니다. 실체의 주인이 되고, 실체의 스승이 되고, 실체의 아버지가 돼야 하기 때문에 체를 입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천지창조를 했느냐? 체를 가진 피조세계, 전부 다 쌍쌍으로 돼 있는 세계를 만든 것은 하나님 성품 속에 있는 마음 그 자체를 하나님도 보고 싶었기 때문에 그걸 전개해 놓은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도 사람처럼 체를 입고 싶어했다는 것입니다. 그 체를 입기 위해서 어떻게 했느냐?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집이었던 것입니다. (197-52, 1990.1.7)


돈도 하나님이 창조할 수 있고, 지식도 다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식의 왕이고, 권력의 왕입니다. 모든 걸 다 갖췄는데, 뭐가 필요하냐?
하나님은 절대적 사랑의 주체인데, 절대적인 사랑의 주체 앞에 절대적인 사랑의 상대가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절대적 상대가 없다는 것입니다. (401-224, 2003.1.7)


하나님이 짓지 않았으면 타락도 없었고, 짓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 아니에요? 지었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입니다. 무엇을 지었어요? 원리적으로는 지었다는 것이 누구예요? 아들딸인데, 아들딸이 크면 무엇이 돼요? 아버지 어머니가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아들딸만 아버지 어머니가 되기를 바랐겠어요? 아들딸이 아버지 어머니가 되면, 하나님은 어떻게 돼요?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뭐라고 불러요? 아들딸이 아버지 어머니가 됐는데, 하나님의 기분이 어떻겠어요? (330-48, 2000.8.12)


아담 해와가 아버지 어머니가 된다고 할 때, 하나님은 무엇이 돼요? 할아버지가 되는데 그 할아버지라는 말이 기분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그것이 근본입니다. 아담 해와가 아버지 어머니라는 말을 듣기 전에 하나님도 아담 해와로부터 아버지 어머니라는 말을 듣고 싶었겠어요, 안 듣고 싶었겠어요?
아버지는 있지만, 어머니가 없잖아요? 아버지 어머니라는 역사가 어디에서부터 출발해야 되느냐? 하나님에서부터예요, 아담 해와부터예요? 아담 해와부터입니다. 하나님이 같은 아버지 어머니의 자리에 설 수 있다면, 하나님은 무형의 신이고 이성성상이기 때문에 아담의 마음 가운데 들어가고 해와의 마음 가운데 들어가서 사랑하게 되면, 아담 해와가 아버지 어머니가 되면 누구의 아버지 어머니예요? 인류의 아버지 어머니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도 아버지 어머니의 자리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330-49, 2000.8.12)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마음 가운데 들어가서 영원한 하나님의 생명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영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담만으로는 일생밖에는 안 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아버지 어머니의 자리가 출발을 먼저 해 가지고 그 영원한 사랑과 일체됨으로 말미암아 이 땅 위의 아담 해와도 영원한 생명체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관계가 아담 해와의 한 몸에서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적인 하나님이 아담과 하나되어 가지고 사랑하면, 그 사랑은 아담의 사랑이자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중으로 돼 있습니다. 내적인 사랑은 종적으로 서게 되고, 몸적인 사랑은 횡적으로 돼 가지고 90각도에서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영육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90각도니만큼 여러분의 몸은 하나님의 보이는 몸이요, 하나님은 여러분의 보이지 않는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생이라는 것은 생각할 필요도 없고, 그 자체가 영생하는 것입니다. 천국이 따로 나눠지는 것이 아니고, 천국 가겠다는 말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천국권 내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330-50, 2000.8.12)


왜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창조했느냐? 그게 문제입니다. 왜 창조했느냐? 그것은 번식을 위해 창조했습니다. 자손을 늘리기 위해 창조했습니다. 자손을 번식시켜서 뭘 하느냐? 그것은 천국 국민을 늘리기 위한 것입니다.
영계에 가서도 번식이 가능하냐? 절대 못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은 수직으로서 일점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일점에 서는 수직적인 것입니다. 수직으로 내려오는데, 그 수직에는 번식의 길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왜 아담 해와를 창조했느냐? 평면권에 있어서 번식시킨 아들딸들을 영계로 데리고 가서 천국의 국민, 영원한 국민을 만들기 위해서 번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생산지는 지상입니다. 남자 여자의 몸을 빌려서 가능한데, 그것은 아기들의 생산공장이다 이겁니다. 영계에서는 아기를 낳지 못합니다. (182-258, 1988.5.27)


왜 인간을 창조했느냐? 하나님의 아들딸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만들기 위해서 창조했습니다. 영계에는 번식이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체를 써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중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종적인 마음의 하나님이고, 몸적인 하나님은 타락하지 않은 완성한 참부모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90각도를 중심삼고 만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제일 고민했던 것이 뭐냐? 결착점이 어디냐 이거예요. 하늘이 가르쳐주지를 않습니다.
결착점을 알기 위해서 동삼(冬三)에 솜바지저고리를 입고 통곡하면서 눈물을 짤 수 있을 만큼 기도를 하고 다 그런 것입니다. (424-30, 2003.11.1)


왜 하나님이 창조했느냐? 하나님이 사랑의 왕이 되고, 사랑의 스승이 되고, 사랑의 부모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그 자리를 완성시키는 것은 하나님 혼자 안 되는 것입니다. 동기와 내용은 갖췄지만, 방향성이 결정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방향성 결정은 누가 하느냐 하면 사람들이 해야 됩니다.
하나님도 사랑이 옳은가, 그른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사랑하는 아들딸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끔 갖추어 줘야만 비로소 사랑의 부모의 주인 자리에 설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사랑의 부모의 자리를 흠모하며 그것을 찾기 위해서 재창조의 역사를 천년만년이고 계속해야 됩니다. 백 번 천 번이고 돌고비 자리를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해방과 석방이라는 말이 영원히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반드시 상대적 존재가 사랑의 완성의 낙인을 찍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입장을 누가 결정해 주느냐 하면 어머니 아버지가 하는 것이 아니고 아들딸이 하는 것입니다. (456-68, 2004.6.25)


하나님도 아들딸이 체(體)를 입고 오느니 만큼 체를 입어야 됩니다. 무형의 하나님으로서는 저나라의 왕이 될 수 없기 때문에 그 체를 입은 아담 해와가 저나라에서 하나님의 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사랑의 대상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3대 목적의 체를 입어야 되고, 사랑의 대상을 찾아야 되고, 그 다음에는 하늘나라의 백성을 번식하기 위해서 평면도상에서 상대세계의 면적이 필요하기 때문에 상대적 하나님의 실체대상을 세운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딸을 낳아서 천국에 입양시키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였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근본문제입니다. 지금까지 미지의 근본문제였습니다. 철학은 뭐냐 하면 하나님을 발견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발견하는 게 뭐예요? 하나님과 일체가 되고 사랑해 가지고 모든 걸 갖고 있는데, 무슨 시시한 껍데기 같은 말을 해서 뭘 해요? 행차 후의 나발과 마찬가지입니다.
종교가 가야 할 곳, 인간이 가야 할 곳 전부가 그 기점을 중심삼고 해결돼야만 태평왕궁, 태평왕자의 태평생활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264-153, 1994.10.9)


우리가 새로이 결의해야 할 것은 뭐냐? 하나님의 마음 가운데는 하나의 마음밖에 없습니다. 하나의 마음, 하나의 몸뚱이, 그 다음에는 하나의 생각입니다. 일심·일체·일념의 생각으로써 천지만물을 지었는데 누구를 위해서 지었느냐 하면 인간을 위해 지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을 닮을 수 있는 효자,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닮을 수 있는 충신, 하나님의 세계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닮을 수 있는 성인, 천주 앞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닮을 수 있는 성자의 도리를 결실할 수 있는 지상의 주인들이 돼야 한다는 것이 역사적 총결론입니다. (393-128, 2002.10.3)


4) 참부모가 되기 위하여


① 인류의 참된 부모
하나님의 본래의 창조목적은 선한 부모를 중심삼아 선한 가정을 세우고, 그 가정을 중심삼고 선한 형제들을 세우고, 또 그들을 연결하여 선한 종족을 편성하고, 그들로 하여금 선한 민족을 창건케 하여 새로운 세계를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이었으나 인간의 타락으로 그 창조의 위업은 목적했던 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또 본래 하나님이 바라셨던 천지 앞에 참된 남자와 참된 여자의 가치도 나타날 수 없게 돼 버렸습니다. 가정을 이룰 수 있는 참된 남자와 참된 여자의 모습, 이 천지간에 하나님이 세워서 자랑할 수 있는 모습을 아직까지 보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한입니다.
그러면 타락한 인간을 하나님은 어떻게 구원섭리를 해 나갈 것이냐? 지금 이 세계에는 신앙생활을 하는 수많은 민족과 국가가 있지만, 그 가운데 하나님이 찾고자 하시는 창조본연의 세계의 참다운 남자의 모습과 참다운 여자의 모습을 갖춘 사람이 있느냐 하면 없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 해와를 잃어버린 후 참된 남자와 참된 여자를 아직까지 만나지 못했습니다.
제아무리 훌륭한 인간이고, 제아무리 선한 인간이라고 하더라도 타락한 조상의 피를 이어받아 태어났고 타락으로 인한 근원적인 슬픔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그 슬픔의 기준을 넘어설 수 없고 타락의 한(恨)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즉, 인간은 사탄의 참소권을 벗어날 수 없는 사탄의 주관권에 머물러 있는 인생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19-86, 1967.12.31)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으면, 하나님은 누구냐? 그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하나님은 누구냐? 하나님은 참사랑을 중심삼고 볼 때 종적인 아버지입니다. 그래서 참사랑, 참생명, 참혈통이 그냥 그대로 나에게 전수되는 것입니다.
그 수직적인 관계의 내용을 전수받은 것이 마음입니다. 마음이 곧다고 하지요? 마음이 종적인 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과 핏줄을 종적으로 이어받은 것입니다. 종대뿌리, 종대 순입니다. 거기에는 스승이 필요 없습니다. 주인이 필요 없습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여러분의 참된 본심의 마음이 주인 중의 주인이요, 스승 중의 스승이요, 부모 중의 부모입니다.
그러면 몸뚱이는 뭐냐? 몸뚱이는 종적인 하나님, 내적 부모 앞에 횡적인 외적 부모입니다. 횡적인 참사랑을 중심삼은 부모가 종적인 부모를 중심삼아 가지고 합하는 것입니다. 그 몸뚱이가 마음과 합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되고, 공명되는 것입니다.
내가 제일 고심한 문제가 뭐냐 하면, 그게 어떻게 합덕을 하느냐 하는 거였습니다. 이론적으로 그걸 해결해야 됩니다. 종적인 하나님과 횡적인 인간이 어떻게 몇 도에서 합덕하느냐? 그걸 놓고 고심한 것입니다. 고심해 가지고 깨달은 것이 뭐냐 하면, 참사랑이라는 것은 최직단거리를 통한다는 것입니다.
참사랑이 뭐예요? 타락한 세상의 사람들을 봐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 만날 때는 가시덤불이 있든 뭐가 있든, 째지든 뭐하든 직행하는 겁니다. 그렇지요? 타락한 인간의 사랑도 그런데, 본질적인 하나님의 사랑은 말할 나위도 없는 것입니다.
직단거리를 통하기 때문에 위로부터, 아버지로부터 자식을 대하는 사랑길, 참된 사랑의 접촉점은 수직선 외에는 없습니다. 직단거리니까 수직입니다. 91도만 돼도 길어지고, 93도면 찌그러집니다. 90도 외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밖에 없습니다. 둘도 아닌 하나입니다. 참사랑이 연결될 수 있는 수직적 기착점은 한 점밖에 없느니라! 왜 그러냐? 직단거리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수직선인 것입니다. (200-293, 1990.2.26)


축은 모든 표면의 중심이 됩니다. 내려오는 모든 곳이 수직적인 중심입니다. 어디든지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인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류는 종적인 참사랑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평등한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구형을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연결된 점은 중심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진정한 구형일 수 없습니다. 무엇 때문에 구형을 원하는지 알겠어요? 구형은 어느 곳이나 축의 자리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자 여자는 90도가 되는 자리에서 만나야 됩니다. 그래서 평면적인 참부모의 혈통하고 종적인 혈통을 받아 가지고 나타나는 것이 마음과 몸으로 돼 있어 가지고 내 마음은 종적인 참사랑의 대표자가 되는 것입니다. 마음은 종적인 참사랑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종적인 사랑, 종적인 생명, 종적인 혈통을 뜻합니다.
평면적인 부모도 마찬가지입니다. 평면적인 참사랑, 평면적인 참생명, 평면적인 참혈통이 중심과 연결돼서 내가 태어났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완전히 종적인 사랑을 상속받았습니다. 그런 나의 마음입니다. 지금까지 어떤 종교도 마음을 못 찾았습니다. 무엇이 마음이냐?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이제 레버런 문이 나타나서 세상에 명백하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무엇이냐? 참사랑을 상속받은 것입니다. 창조주의 사랑, 생명, 혈통을 상속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얼마나 귀하냐! 창조주의 사랑의 상대입니다. 사랑의 상대는 둘이 아닙니다. 영원토록 하나뿐입니다.
그건 평면적으로 90도로 연결됩니다. 그것은 이상적이고 본연적인 하나의 자리입니다.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절대적인 자리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발견해야 됩니다. (193-68, 1989.8.20)


핏줄이 연결되지 않으면, 부자지관계가 연결 안 됩니다. 올바른 핏줄을 갖고 있어요? 하나님이 볼 때 제멋대로 살았으니 그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이라면 어때요? 하나님 자신이 올바른 핏줄을 갖고 싶겠어요, 요즘에 말하는 잡다한 프리섹스의 그것을 갖고 싶겠어요? 물어 볼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도 올바른 핏줄을 갖고 싶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도대체 무엇 되기 위해서 인류를 창조했느냐 이거예요. 인류의 참된 부모가 되기 위해서 창조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참된 사랑과 참된 생명과 참된 핏줄이 연결돼야지 하나만 빼놓아도 완성이 안 됩니다. (361-77, 2001.11.20)


② 참부모란 무엇인가
하나님이 천지창조를 하신 것은 무엇 때문이냐? 하나님께도 몸과 마음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있습니다. 뭘 보고 알아요? 우리의 마음과 몸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영계에 가도 하나님은 안 보입니다. 하나님은 볼 수 없습니다. 몸이 없습니다. 물론, 영적으로 마음과 몸 같은 것이 있지요. 환광(幻光) 같은 것, 그런 것이 있긴 하지만 실제의 몸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왜 창조를 했느냐? 창조는 하나님이 자기의 몸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집이라고 한 것입니다. 종적인 참된 하나님이 필요한 동시에 횡적인 참된 하나님이 필요하다 그말입니다. 이걸 모르면 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타락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됐어요? 하나님이 종적인 마음을 가진 것같이 인간도 완전한 마음을 가졌지만 완전한 몸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여러분도 완성한 마음은 가졌지만 완성한 몸을 못 가졌습니다. 똑같습니다.
진짜 하나님이 어디에 나타나느냐? 우리가 하나님의 혈통을 상속한 후 나타납니다. 타락 때문에 사탄의 혈통이 된 것입니다. 이걸 잘라내야 됩니다. 그래서 참사랑의 종적 중심인 하나님을 찾아야 됩니다. 그분이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참부모가 도대체 뭐냐? 횡적 하나님의 자리가 참부모의 자리입니다.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가까워요!
전부 하나님을 하늘만 보고 찾지요? 그렇지 않아요. 내 마음속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중에 있던 이 사실을 완성시킬 수 있는 기준을 여러분이 실제 살고 있는 현실에서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이 됐다는 놀라운 사실에 감사해야 됩니다. (179-59, 1988.7.3)


타락한 이후 지금까지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에 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몸은 사탄의 사랑, 사악한 사랑에 연결돼 있습니다. 아담 해와가 사탄의 사랑을 중심삼고 마음과 몸이 하나됐고, 그것이 모든 인간에게 상속된 것입니다. 그래서 자동적으로 사탄이 온 우주를 점령하게 됐습니다. 우주의 주인이 사탄이 된 것입니다. 그걸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어떻게 내 마음에서 참사랑의 연결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냐? 하나님, 참부모의 사랑이 아니면 찾을 길이 없습니다. 여러분의 마음과 몸이 진실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임하실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사탄에 속해 있습니다. 참부모에 의해서 우리가 참사랑에 연결돼야 합니다.
여러분의 혈통이 참부모에 연결돼서, 거기서부터 여러분의 인생이 시작돼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운명입니다.
하나님은 종적인 참사랑의 부모요, 아담 해와가 완성되면 그 자리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자동적으로 하나님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때에 아담과 해와는 횡적인 참사랑의 부모가 되는 겁니다. 거기서 하나님과 아담 해와가 사랑으로 하나되어 가지고 자녀를 갖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하나님의 생각과 아담 해와의 생각이 같게 됩니다. 하나님은 마음적인 자리, 아담 해와는 육적인 자리가 됩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마음이 있을 뿐만 아니라 육신도 있습니다. (184-73, 1988.11.13)


창조주는 종적인 참사랑을 중심삼은 부모요, 아담 해와는 참사랑을 중심삼고 90도를 맞춘 자리에 선 참사랑을 중심삼은 횡적인 부모입니다. 그 두 부모가 어디 가서 합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90각도를 맞춘 중앙에서 딱 달라붙게 되면, 우주는 거기서 영원합니다.
참아버지를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뭘 몰라 가지고 “왜 통일교회에서는 참부모라고 하느냐?” 그러는 겁니다. 세상에, 내가 참부모의 이름을 붙여 가지고 얼마나 욕을 먹었는지 알아요? 나는 한 번도 내가 참부모라고 가르쳐 준 적이 없습니다. 어떤 애비가 “내가 네 애비다.” 그러나요? 벌써 자식은 애비라는 걸 아는 겁니다. 할아버지는 벌써 자식의 이름을 부르면서 아무개의 애비라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래서 애비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자기가 애비라고 하는 그건 가짜 애비입니다. 난 애비라고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애비라고 하고, 하나님도 내가 기도해 가지고 애비라고 하겠다고 하지 않았는데 애비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나도 몰라요. 통하는 사람이 그러더라구요. 그래서 배웠지요. “음, 이런 것이 애비로구만!” 하고 말이에요. 그 애비라는 것, 참부모라는 말을 알겠어요? (185-198, 1989.1.8)


하나님이 누군가를 확실히 알고, 참부모가 누군가를 확실히 알고, 하나님과 참부모가 원하는 것과 하나님이 인류 혹은 만우주를 지으신 창조목적이 어떻다는 것을 확실히 앎으로 말미암아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거예요. 해결되는 그때에 있어서 형제가 갈라질 수 있어요, 부부가 갈라질 수 있어요, 부모가 갈라질 수 있어요? 또 인류와 하나님이 갈라질 수 있느냐? 없다는 거예요. 왜? 숙명적이기 때문입니다. (360-184, 2001.11.16)


5) 하나님이 아버지이신 이유


하나님이 누구냐? 참사랑을 중심삼고 타락하지 않은 부모가 생겼더라면, 하나님은 우리의 종적인 아버지입니다. 참사랑을 중심삼은 종적인 내 아버지가 하나님입니다. 틀림없는 말입니다. 이건 위대한 발견입니다. 그 종적인 하나님 앞에 백 퍼센트 90도를 갖출 수 있었던 참부모, 본연의 참사랑을 중심삼고 완성해야 했던 인류의 참부모가 아담 해와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의 혈통에 횡적인 부모의 사랑, 부모의 생명, 부모의 혈통이 합해져 하나되어 천지합덕이 이뤄져서 조화의 열매로 맺혀진 것이 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는 종적인 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종적인 사랑을 이어받은 종적인 내가 양심입니다.
그 다음에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중심삼고 태어날 수 있었더라면 그렇게 태어날 수 있었던 횡적인 내가 몸입니다. 그 둘은 절대적으로 화합합니다. 상충이 없습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90각도가 틀어진 것입니다. (198-302, 1990.2.5)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냐? 우리 양심을 중심삼고 종적인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종적인 아버지로 계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아담 해와는 누구냐? 참부모 이상은 뭐냐? 횡적으로 완전히 90각도가 돼 가지고 하나될 수 있는 자리에 있는 그런 횡적 실체를 쓴 참된 사랑의 부모가 아담 해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이 땡 울리게 되면, 아담 해와의 사랑은 자동적으로 하나되게 돼 있습니다.
종적이라는 말은 자동적으로 횡적이라는 말을 인정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지요? 횡적이라는 말은 자동적으로 종적이란 말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심이 바르다고 하지요?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은 종적인 기준을 표준해서 하는 말입니다.
종적으로 제일 높은 것은 우리 마음입니다. 아무리 좋은 일을 많이 하더라도 자꾸 하라고 그럽니다. 마음은 독재가입니다. 언제까지 그래요?
세계를 점령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할 때까지입니다. 그럴 때까지 인간의 욕망은 끝나지 않습니다. 그걸 모르고 있습니다. “우주의 제일 귀한 것을 점령했으니 이젠 아무것도 필요 없어!”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77-217, 1988.5.20)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는 것인데, 아버지라고 하는 정의는 혈통적 관계가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혈통적 관계가 있기 전에 어머니 아버지의 생명의 결탁이 이뤄져야 됩니다. 혼자서는 혈통이 이뤄지지 않습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핏줄이 연합할 수 있기 위해서는 어머니 아버지라는 생명의 결합이 있어야 합니다. 생명이 하나돼야 합니다. 무엇에 의해서? 사랑에 의해서. 사랑을 중심삼고 생명이 하나되어 가지고 동화된 거기서 제2의 생명을 이어받을 수 있는 모든 요소를 전수받아 태어난 것이 자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혈통 가운데는 생명이 있고, 그 생명 가운데는 사랑이 있고, 또 혈통 가운데는 사랑이 있고, 사랑이 있는 곳에 생명이 있고, 사랑이 있는 곳에 혈통이 있습니다. 사랑이 움직이면 남자나 여자나 피가 끓어요. 생명이 약동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명이 있는 데는 반드시 사랑이 있어야 됩니다. 생명에는 반드시 힘이 있습니다. 피가 동한다는 것입니다.
그 3요소는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하늘하고 화합해서 우리 생명의 기원이 돼 가지고, 그것을 혈통을 통해서 이어받아 나온 사람들이 타락하지 않은 인간세계의 본연의 사람인 것입니다. 그 본연의 사람의 머리카락이든 무엇이든 모든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과 혈통, 그리고 우리 인류의 참부모의 사랑과 생명과 혈통의 종합적 화신체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양심이 있는 것입니다. 양심은 그런 종적인 부모를 이어받은 것입니다. 부모를 닮은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세상에 보게 되면, 부모를 닮지 않은 자식이 없습니다. 닮는다는 것입니다. 종적인 사랑과 생명과 혈통을 이어받아 가지고 종적인 부모를 닮아 난 것이 우리 마음입니다. 종적인 나예요. 그것을 지금까지 종교세계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양심이 종적인 나인데, 그게 어디서 왔다구요? 종적인 사랑에서 왔습니다. 여러분, 사랑은 직단거리를 통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고 하면, 그 사랑이 머물 수 있는 곳은 수직선 외에는 없습니다.

수직선은 모든 측정의 기원입니다. 수직이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부가 수직을 닮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수직으로 서서 다닙니다. 동물과 다른 것이 그것입니다. 사람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이어받을 수 있는 소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만이 하나님의 영생적 소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종적인 하나님의 참사랑으로부터 인연된 내 자신이라는 것을 긍정하게 될 때, 거기에는 자동적으로 영생이 존립하는 것입니다. 그건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 다음에는 횡적인 부모의 생명과 사랑과 혈통을 이어받은 것이 몸입니다. 몸뚱이는 횡적 세계와 접하는 것입니다. 몸뚱이는 반드시 만물세계, 지구성에 있는 모든 요소를 흡수해야 되고, 마음은 영적인 세계의 요소를 흡수해야 됩니다. 그렇게 두 세계 생명의 요소를 흡수해 가지고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입니다. (198-249, 1990.2.4)


종적인 부모의 피 살을 이어받아서 난 것이 여러분의 양심입니다.
양심이 무엇인지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핏줄을 받았기 때문에 양심은 교육이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몸뚱이는 악마의 핏줄을 받았기 때문에 시정해야 됩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양심적, 본연적 핏줄을 이어받기 때문에 교육이 필요 없습니다. 공명하게 돼 있습니다. (132-210, 1992.7.6)


몸뚱이가 하는 일을 마음세계에 속일 수 없습니다. 벌써 안다는 것입니다. 본래 내 자신이 양심의 명령을 받아 하나되어 가지고 절대 순종해야 할 것이 몸뚱이를 태어나게 한 하나님의 창조목적인데, 원수와 관계를 맺어 가지고 원수의 사랑과 원수의 생명과 원수의 핏줄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과 관계없는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양심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돌아간다는 것을 압니다. 양심이 원하는 대로 하게 되면, 결국은 누구든지 하나님을 찾아 가지고 하나님의 동산에 가서 정문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러 가게 돼 있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불법적인 존재인데 불법적인 존재는 천륜, 천리, 천법 앞에 남아질 수 없습니다. 어차피 주인을 찾아가려고 하고, 또 주인이 찾아와서 본연의 자리에 돌려놓으려고 하기 때문에 그것을 막을 사탄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어차피, 돌아갈 것을 아는 것입니다. (423-14, 2003.10.25)


왜 양심이 있느냐 하면 종적 사랑의 부모인 하나님과 하나되기 위해서이고, 왜 몸뚱이가 있느냐 하면 횡적 사랑의 참부모와 하나되기 위해서 있습니다. 얼마나 귀해요! 그래서 ‘이상적인 나’ 하면 종적인 마음에 충만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횡적인 나에게 충만한 참부모의 사랑을 받을 수 있어서 두 부모의 사랑을 받게 될 때입니다. 그것이 이상적 나라는 걸 알아야 됩니다. (183-334, 1988.11.9)

그와 같은 두 분의 부모를 통해 가지고 사랑을 이어받은 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나 여자나 사랑을 안 가진 사람이 없습니다. 남자나 여자나 부모의 혈육을 이어받았고, 부모의 생명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남자 여자 전부가 사랑을 갖고 있고, 생명을 갖고 있고, 혈육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돼 있느냐 하면 하나는 종적이요, 하나는 횡적입니다. 그런 생명권을 맞추기 위해서 남녀가 결혼하는 것입니다. 결혼식 날이 뭔가 하면 천지를 소유하는 날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이 무엇이냐? 종적인 하늘로부터 이어받은 나, 하나님의 사랑과 혈통을 통해서 이어받은 내적인 나라는 것입니다. 즉, 종적인 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몸뚱이는 뭐냐?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나와 90각도에 선 나입니다. 그래서 타락하지 않은 참된 부모의 사랑과 생명 그리고 혈통을 이어받아 태어났으면 몸 마음의 두 사람으로 돼 있는 것입니다. 하나는 내적인 하나님을 중심삼은 인격, 하나는 몸적이고 횡적인 부모를 중심삼은 인격입니다. (196-322, 1990.1.12)


하나님은 종적인 부모입니다. 영원히 떨어질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 하나님, 종적인 부모하고 같이 된 횡적 부모, 사랑으로 하나된 그 횡적 부모를 달리 모셔야 되겠어요, 같이 모셔야 되겠어요? 그거 부모와 같이 있어야 됩니다. 그 부모를 모시는 것이 영원한 세계에서 하나님, 종적인 참부모를 모시기 위한 훈련입니다.
하늘나라는 사랑의 세계입니다. 사랑의 세계는 공기가 사랑으로 돼 있습니다. 그거 다 적응하기 위한 곳이 가정입니다. 미국 남자들처럼 “아이고, 여편네를 얻으면 불편해! 혼자 살아야 돼. 아파트도 혼자 살게 만들면 얼마나 멋져!” 하면 지옥 갑니다. 질식해 죽는 것입니다.
참사랑의 개념에는 준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마음대로 한다는 게 아닙니다. 준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집에서 하는 것처럼 쉬운 것이 아닙니다. 어려운 길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하기에는 어려운 세상 같지만, 위하는 길이 가장 이상적인 세상입니다. 종적으로 그 위에 전후좌우로 이상적인 세계가 내려옵니다.
얼마나 좋은 가정적 환경이에요? 훈련을 해야 됩니다. 훈련을 하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남편하고 영원히 살아야 되고, 부모를 영원히 모시고 자식을 영원히 사랑할 수 있는 가정을 연장해서 나라, 나라를 사랑하듯이 세계, 세계를 사랑하듯이 하늘땅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183-334, 1988.11.9)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 참부모는 어디에 있느냐 할 때는 참사랑이 내 종적 마음과 하나되고, 횡적 참사랑이 내 몸과 하나된 마음, 사랑이 깃들은 내 마음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마음과 같은 존재고, 참부모는 몸과 같은 존재다 이겁니다. 거기에서 태어났습니다. 그 두 세계에서 태어난 게 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 가운데 하나님이 있다. 하나님은 나와 같이한다.” 이겁니다.
그런 입장이 확실해야 “아하, 하나님을 버릴 수 없고 참부모를 버릴 수 없는 나로구나! 하늘부모를 모시고 참부모님을 모시려면 절대 하나 안 되면 안 되는구나!” 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영원히 하나돼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마음이 영원하니 내 몸뚱이도 영원하다 이겁니다. 참사랑에서만 영원한 생명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어머니의 사랑과 아버지의 사랑을 대표했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습니다. 부모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부모가 여러분을 부정할 수 없고, 여러분이 부모를 부정할 수 없듯이 하나님을 부정할 수 없고,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반드시 부모를 모셔야 됩니다. 부모하고 갈라질 수 없습니다. 어머니의 복중에서 10개월 동안 보호받고 태어나 가지고 부모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커 가지고는 남자와 여자로서 결혼해 가지고 하나님을 대표한 사랑을 소유할 수 있는 부모의 자리에 나가고, 또 자식을 낳아 가지고 참사랑을 하다가 가게 되면 영원한 세계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 가운데 태어나 가지고 사랑으로 살다가 사랑으로 천국 가게 돼 있는 것입니다. 가정을 사랑해 가지고 영원으로 가는 것입니다. (183-334, 1988.11.9)


6) 창조이상의 핵심


우주의 근본이 무엇인지 알고 싶지요? 그거 기도하고 물어보면, 답변은 간단합니다. 우주의 근본은 부자의 관계다 이겁니다. 부자의 관계라는데 우리 아버지하고 나하고 잇는 것이 우주의 근본이다 그말입니다. 관계라는 것은 어머니 아버지도 아니고 자녀도 아닙니다. 그러면 부자의 관계를 영원히 깰래야 깰 수 없게 절대적으로 하나로 만들 수 있는 관계가 무엇이냐? 무엇이 그렇게 만드느냐? 그것이 참사랑입니다.
문 선생이 그런 결론을 내리고, 그리고 하나님께 물어봤습니다. “요런 게 아니요?” 하니까 “너 그거 어떻게 알아! 나보다 낫다.” 그러시더라구요.
그 말이 맞지 않아요? 부자의 관계, 그 관계가 무엇이냐? 부자의 관계를 영원히 갈라놓을 수 없는 힘이 참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참사랑은 혼자 이루지 못한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말하기를 하나님은 참사랑의 주체이시기에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한다고 그럽니다. 천만에! 하나님 자신도 관계할 수 있는 대상이 없게 될 때는 하나님이 제일 귀하게 여기는 사랑을 세울 수 없습니다. (182-61, 1988.10.14)

창조이상의 중심은 무엇이냐? 중심모태, 중심핵이 뭐냐? 창조를 왜 했느냐? 창조이상의 중심핵이 뭐냐?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생명이 있었다 이겁니다.
그 다음엔 하나님의 핏줄, 혈통문제가 있습니다. 왜냐? 하나님은 혼자만 가지고 안됩니다. 제1대, 2대, 3대, 4대를 연결시켜 가지고 확대시키기 위한 내용이 있기 때문에 핏줄이 필요하다 이겁니다. 나라는 것은 어떤 거예요? 타락이 없었더라면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 그리고 핏줄과 직결됐을 것입니다. 나라는 것은 역사적인 모든 혈통의 열매입니다. 주식회사와 마찬가지입니다.
근원이 사랑이고, 근원이 생명이고, 근원이 핏줄이었으니 결과에 와도 같아야 됩니다. 그러니 사랑이 있어야 되고, 생명이 있어야 되고, 그 다음에 핏줄이 있어야 됩니다. 그걸 찾는 것입니다. 혼자 안 되겠으니 쌍쌍조직, 상대이상이 필요합니다.
그게 뭐냐 하면 절대적 공식입니다. 상대하고 연결 안 돼 가지고는 번식이 없습니다. 그러면 왜 그게 필요하냐? 쌍쌍의 과정을 거쳐야 우주의 근본 되는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의 핏줄과 생명권을 소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혼자는 안 됩니다.
사랑은 종적으로 갑니다. 사랑과 생명 그리고 핏줄이 합해 가지고 종적인 역사를 엮어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수직이 됩니다. 지그재그가 아닙니다. 이상적인 게 뭐냐 하면 수직의 종(縱)입니다. 참사랑은 직단거리를 통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때 돌아가서 만나요? 그저 쉭 간다구요. 그러니까 사랑을 중심삼은 혈통이라는 것은 전부 수직선에 쭉 연결돼야 할 텐데, 여러분 조상들의 라인은 어때요? 그게 문제입니다.
성경에 보게 되면, 우리는 타락했다고 합니다. 타락했다는 게 뭐냐? 이파리 하나가 떨어지거나 가지 하나가 부러졌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데 뿌리, 뿌리까지 달라졌다는 겁니다. 원래 타락하지 않았으면 인류의 조상 아담 해와가 참부모가 되어 참된 사랑과 참된 생명 그리고 참된 핏줄에 연결되어 가지고 참부모가 됐을 것입니다. 그게 창조이상에 일치된 것입니다. (201-110, 1990.3.27)


우주의 근본은 사랑과 생명 그리고 혈통입니다. 하나님 자신도 사랑의 주체요, 생명의 주체요, 혈통의 주체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우리 인간이 사랑을 느끼지 못합니다. 레버런 문도 사랑을 갖고 있지요, 생명을 갖고 있지요, 혈통을 갖고 있지요? 그거 다 자기 혼자는 모릅니다. 그러나 상대가 나타나면, 사랑의 주파가 옵니다. 생명이 꿈틀거리는 거예요. 피가 끓어요. 그게 누구를 닮아서 그러냐 이겁니다. 근본이 없는 데서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자 여자가 왜 결혼을 해요? 사랑 때문입니다. 무슨 사랑? 절대적인 참사랑입니다.
부자의 관계는 어느 누가 가를 수 없고 혁명할 수 없습니다. 부자의 관계는 절대적입니다. 거기에 흐르는 사랑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그런 관계가 절대적이라면 어머니하고 아버지는 절대적이어야 되겠어요, 상대적이어야 되겠어요? 어머니 아버지도 절대적입니다. 그 어머니 아버지와 아들딸의 관계가 절대적이기 때문에 어머니가 떠나고 아버지가 떠나도, 아들딸은 차 버려도 삥삥 돌아가면 돌아갔지 떠날 수 없습니다.
요즘의 가정을 중심삼고 보면, 어머니 아버지가 자식들을 버리고 떠나는 놀음을 하고 야단이지요? 또 남편 아내 둘이 사는 데 있어서도 절대적 사랑이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요즘은 결혼하고 일주일도 못 가서 이혼하는 패들이 있습니다. 그게 참부부예요? 그건 가짜 부부입니다. (196-317,1990.1.12)


하나님은 무형으로 계시는 분이기 때문에 실체의 형상을 가진 아버지 어머니가 안 돼 가지고는 형상의 자녀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체를 입어야 합니다.
창조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첫째는 아담이 몸으로써 영계에 가서 무형의 하나님이 체를 입는 것이고, 둘째 번은 체를 입음으로 말미암아 진동적인 충격이 옵니다. 말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말 한마디가 있으면 음악을 맞춰야 됩니다. 그 충동적인 자극에 기쁨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셋째 번은 하나님은 중심축을 가진 수직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면적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마음을 떠나서는 일을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자신을 두고 볼 때 한 점밖에 없는 축에는 번식의 터전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왜 몸뚱이가 필요하냐? 동서남북 360도를 중심삼고 면적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걸 통해 가지고 하나님은 종적인 아버지가 되고, 완성한 아담 해와가 90각도로 하나되어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과 참부모의 사랑, 하나님의 생명과 참부모의 생명, 하나님의 혈통과 참부모의 혈통이 합덕을 해야 됩니다. (132-210, 1992.7.6)


종적인 참부모와 횡적인 참부모의 참사랑은 항상 가장 빠른 속도로 최단거리를 통과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으로부터 지상에 내려오는 참사랑은 최단거리인 수직선으로 내려옵니다. 남녀간의 사랑 역시 최단거리로 통과하여 수평선을 형성합니다. 수직적인 참사랑이 수평적인 참사랑과 만나게 될 때, 그 교차점은 절대적으로 90도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기타의 다른 방법으로는 그 사랑의 선이 교차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참사랑을 중심으로 하는 종적인 참부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종적인 부모이기 때문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과 매우 친밀하십니다. 완전한 인류의 조상, 즉 아담과 해와를 참부모로서 영접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수직적인 참사랑과 참부모의 수평적인 참사랑 간에 90도의 교차점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두 분의 참부모가 계십니다. 그분들로부터 우리는 참사랑, 참된 생명, 참된 혈통을 받습니다. 그것이 참사랑과 완전히 공명하는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입니다. (201-212, 1990.4.9)


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했느냐? 첫째는 사랑의 상대를 찾고, 둘째는 체를 입기 위한 것이었고, 셋째는 백성을 번식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창조한 3대 목적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둘째 번은 왜 그러냐?
아들딸이 영계에 가는데, 영계에서 아버지가 되려는데 그 아버지도 몸뚱이가 있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체가 있어야 됩니다.
셋째 번은 백성을 만들기 위해서, 자녀를 번식하기 위해서입니다. 백성을 만들어야 됩니다. 영계에서는 종적 세계이기 때문에 아들딸을 못 낳습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하나님과 참사랑을 통해서 하나되면 그냥 천국 갑니다. 구세주가 필요 없습니다. 그냥 들어가는 것입니다. 내 나라요, 우주가 우리 나라라는 것입니다. 영계가 내 나라입니다. 종적인 마음과 횡적인 몸이 참사랑으로 하나된 그 자리가 출발점입니다.
우리는 그 점에서 태어난 결과체입니다. 몸 마음이 참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입니다. 타락함으로써 참사랑을 잃었어요. 그게 문제입니다.
몸 마음의 상극이 벌어졌습니다. 사탄이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어떻게 가느냐? 그게 종교의 길입니다. 그걸 종교의 힘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탄세계와 정반대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래야 사탄이 분립됩니다. 그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201-123, 1990.3.27)


7) 인류의 참조상


원리에 보면 구원섭리라는 말이 있는데, 구원섭리라는 말은 영적인 하나님의 뜻이 지상에 나타나지 못한 것을 나타나게 하는 뜻도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지상에 나타날 수 있는 중심적 존재가 어떤 존재냐 하면, 그건 물론 피조물을 대표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하면 죄가 없고, 하나님이 최초에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완전히 기뻐할 수 있는 사람, 완전히 기뻐할 수 있음과 동시에 완전히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완전히 사랑할 수 있음과 동시에 하나님이 영원하심과 같이 영원히 같이 살고 싶은 사람입니다. 그 사람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누구냐? 도대체 그 사람이 누구냐? 여러분이 그 사람이 됐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돼 있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냐 하면 우리 인간 종지조상(宗之祖上), 우리 인간의 첫 번째 되는 조상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 조상의 이름을 성경에서 가르치기를 아담과 해와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담 해와를 지어 놓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시간이 며칠만이 아니라 영원히 기뻐할 수 있고, 영원히 사랑할 수 있고, 영원히 살고 싶은 실체세계의 중심적인 참된 부모다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의 완성기준, 뜻이 바라는 목적의 기준이다,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인일체를 이뤄 천지합덕, 우주합일을 이루면 하나님은 내적 하나님이고 아담 해와는 외적 하나님, 하나님은 내적 참부모고 아담 해와는 외적 참부모, 하나님은 창조주부모이고 아담 해와는 피조주부모가 됩니다. 그런 내적 외적 두 부모가 인간의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신인애일체의 그 자리가 참사랑의 자리와 참혈통의 자리가 되고, 거기가 우리 혈통의 뿌리가 되는 것입니다. (78-54, 1975.5.4)


에덴동산에서 무엇을 잃어버렸어요? 아담과 해와를 잃어버렸습니다.
아담과 해와는 인류의 참조상이 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인류의 참조상을 잃어버렸으니 참조상을 복귀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격, 인류의 참아버지격이었습니다. 그리고 성신은 어머니신, 인류의 참어머니입니다. 그와 같이 참아버지와 참어머니를 영적으로 세워 놓고, 그를 실체적인 형상으로 이 땅 위에 나타내려는 것이 재림의 목적입니다.
인류 앞에 참다운 아들딸이 나타나는 때가 끝날이거늘, 그때는 어떤 때인가? 참조상을 잃어버림으로 타락한 후손이 되고 참부모와 혈통적인 인연을 맺지 못했으니, 반대의 경로를 통해서 에덴동산에서 잃어버린 아들딸을 찾는 때입니다. 거꿀잡이 역사, 복귀역사로서 인연을 맺어 그들을 양자로 승진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7-116, 1959.7.26)


본래 에덴동산에서 참조상인 참부모가 생겨나야 했는데, 인간의 타락으로 6천 년이 지난 지금에야 비로소 하나님이 재림시대를 중심삼고 참조상을 찾아 놓은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탄세계 앞에 승리한 하나의 남자가 생겨나서 하나의 해와를 재창조한 기준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성혼식을 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6천 년 전에 참인류의 조상의 자리에 세워질 수 있었던 기준을 복귀한 것입니다.
수많은 타락의 자식들이 번식된 6천 년 만에야 거꿀잡이로 참부모가 생겨난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참부모의 배를 거쳐 나와 거듭나야 되겠기에 기독교인들은 거듭나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참부모를 잃은 고아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인류를 고아들이라고 말한 것입니다(요한복음 14:18). 부모가 없는 고아들이니 제아무리 잘 믿더라도 양자밖에 될 수 없습니다. (19-164, 1968.1.1)


타락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딸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딸을 찾아야 됩니다. 아담 해와를 사탄이 빼앗아 갔으니 찾아와야 되는 것입니다. 인류의 거짓부모가 생겨났으니 인류의 참조상을 만들어 내지 않으면 안됩니다. 6천 년 전에 사탄 마귀가 인간을 결혼시켰는데, 6천 년 후에라도 어느 한 때에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 가지고 결혼을 시켜주지 않고는 하나님의 뜻이 이뤄질 수 있는 길이 생겨나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고맙게도 성경의 맨 마지막의 결론이 뭐냐 하면 어린양 잔치를 한다는 것입니다. 신랑 되는 메시아가 와 가지고 신부 되는 아내를 맞는 것으로 끝나 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본래의 뜻대로 하나님을 중심삼고 선한 형제의 전통, 하나님을 중심삼고 선한 부모의 전통, 하나님을 중심삼고 선한 부부의 전통을 이루어 죄 없는 아들딸을 낳아야 됩니다.
그것을 중심삼고 죄 없는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편성하여 다 접붙이는 역사를 해 가지고 하늘나라, 본래의 뜻의 세계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복귀역사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74-76, 1974.11.12)


기독교의 중심은 예수님이고, 예수님의 중심은 사랑입니다. 그러면 사랑의 중심은 무엇이냐? 사랑의 중심은 신랑 신부입니다. 즉, 어린양 잔치입니다. 그러므로 어린양 잔치는 신랑 신부로 치러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랑 신부의 중심은 참아버지 참어머니입니다. 그것을 기독교인들은 지금까지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구주의 입장이요, 아버지의 입장으로서 자식을 구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종으로 보내면 종만큼 사랑하십니다. 또 양자 혹은 성신을 시켜서 구주를 보냈으면 양자나 성신만큼 사랑하십니다. 그런 하나님은 누구보다도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아버지로 계시는 하나님 대신자로서 예수님을 보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참아버지였습니다. (19-164, 1968.1.1)

성경에 보면, 여인은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했습니다(딤전
2:15). 그것은 오늘날 땅에 사는 부인들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해와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해와가 타락하지 않고 인류의 참조상이 됐다면 이 땅 위에 선한 아들딸을 낳았을 텐데 타락하여 사탄의 자식을 낳았으니, 해와가 다시 해산하지 않으면 인간들이 구원을 못 얻는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신은 그 사명을 짊어지고 오늘날 만 인류를 붙들고 해산하는 수고를 다 하고 있습니다. 그 해산이 다 끝나야만 해와가 구원되고, 성신의 사명이 끝나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 그렇게 돼 있습니다. (9-138, 1960.5.1)


하나님을 중심삼은 참부모가 이 땅에 출현해야 하는데, 그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재림사상입니다. 하나님의 직계 아들이 신랑으로 와서 신부를 찾아야 합니다. 6천 년 전 에덴동산에서 한 남자와 여자의 결혼식을 하려고 했던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깨져 버렸으니 천신만고해서라도 그것을 청산해야 합니다. 6천 년 사연을 다 청산하고 이 땅에서 혼인날을 맞이하는 그 날이 어린양 잔칫날, 즉 주님이 재림하는 날입니다. 그 날이 있어야 되겠어요, 없어야 되겠어요?
어린양 잔칫날은 흑인에게도 필요하고, 백인에게도 필요하고, 한국 사람에게도 필요한 것이요, 젊은이나 늙은이 할 것 없이 온 인류에게 다 필요한 날이요, 영계의 영인들까지도 필요한 날입니다. 영인들도 끝날에 부모를 모시지 않으면 천국에 못 들어가는 것이니 그들에게도 어린양 잔칫날은 필요한 것입니다. 천국은 아버지가 자기 처자를 데리고 들어가는 곳입니다. 하늘의 법도가 그렇게 돼 있습니다. (20-39, 1968.3.31)


6천 년 기나긴 역사는 하나님이 창조하셨던 잃어버린 인류의 참조상인 아담과 해와를 다시 찾는 역사입니다. 인류의 참다운 조상이 될 수 있는 아담 해와를 찾아 세우는 것이 어린양 잔치요, 그것이 이뤄지는 때가 재림의 이상시대입니다. 6천 년 역사는 타락하여 쓰러진 아담 해와를 다시 세워 나오는 역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죽은 아담 말고, 쓰러진 아담 말고, 사탄이 침범하던 아담 말고, 6천 년전 하나님 앞에서 사랑을 받던 그 아담 해와의 입장, 죽지 않고 살아남았어야 했던 아담 해와와 같이 돼야 하는 것이 오늘날 성도들의 입장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하나를 붙들고 나오는 데는 하나님의 6천 년 역사가 연결돼 있습니다. (8-316, 1960.2.21)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가 둘이기를 원해요, 절대적으로 하나이기를 원해요? 하나이기를 원합니다. 형제를 다른 사람으로 대신해서 갖다 세울 수 있어요? 그건 절대적으로 안 됩니다. 자기 부모를 절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부자관계를 부정할 수 없는데 부부관계를 부정하면, 거기서 부정의 전통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부자의 관계를 부정하면, 부부관계를 부정하는 원칙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건 절대 안 되는 것입니다. 절대적입니다. 어느 누구도 마음대로 변경할 수 없습니다. 그게 공식입니다. 남편이나 아내를 바꿀 수 없습니다.
어떻게 바꿀 수 있어요? 어느 누구도 부모의 자리, 자녀의 자리, 형제의 자리를 바꿀 수 없습니다. 아무리 바꾸고 싶어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걸 바꿀 수 있는 이론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절대적입니다. 그런 공식을 확실히 알고 지상에 있는 동안에 모든 것을 청산지어야 됩니다.
그런 사랑을 권력과 바꿀 수 있어요, 돈으로 살 수 있어요? 돈이 문제가 아니고 권력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 것을 알고 자신만만하게 천하에 군림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메시아사상입니다. 메시아사상은 종적 부모, 횡적 부모, 전후의 형제자매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는 세 가지의 사랑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이 그것입니다. (195-292, 1989.12.10)


본래 아담이 하나님의 뜻 앞에 완성됐더라면, 그 완성된 아담 해와는 인류의 참조상입니다. 인류의 참된 조상이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시조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인간세계 앞에는 하나님이 경륜하고 하나님이 창조이상으로 세우고자 했던 참조상을 잃어버렸습니다. 인류의 참조상을 잃어버렸습니다.
제아무리 잘나고, 제아무리 호강하는 사람, 천하를 다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타락한 조상의 혈통을 받고 태어났습니다. 너나할 것 없이 마찬가지입니다. 그게 제일 원통한 일입니다. 타락한 시조를 가진 인류는 지옥을 향해서 맹진하고 있나니, 그걸 가로막는 참조상으로 와 가지고 참자녀로 품어 줄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 본연의 주인, 본연의 부모를 찾아 온 것이 인류역사입니다. (154-259, 1964.10.3)


사람의 조상이란 인류의 아버지를 말합니다. 그러나 아버지 혼자서는 자식을 낳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인류의 어머니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인류의 어머니 아버지가 참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조상이 타락함으로 거짓조상이 되어 망하게 됐습니다. 그러므로 다시 참조상이 생겨나야 됩니다. 참조상을 통해야만 하나님 앞에 돌아갈 수 있습니다. (20-334, 1968.7.14)


하나님과 인류가 부자지관계가 되지 않았습니다. 참부모님도 지금까지 그 일을 인연 맺기 위해서 나왔는데, 그것은 어디에서부터 결정돼야 되느냐? 여러분 축복가정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축복가정에서부터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참부모를 인류의 조상과 같이 모셔야 됩니다. 내적 외적 부모를 모시고 사랑과 생명과 혈통을 이어 가지고 본연의 양심적 수평기준, 수평으로 설 수 있는 그 뿌리가 90각도를 맞춰서 정착하는 그런 가정이 돼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냐? 아담은 누구냐 하면 가정의 조상이요, 가정의 근본입니다. (337-239, 2000.10.27)


하나님은 무형의 신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습니다. 저나라에 가서도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체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지은 만물세계는 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무형의 신이 체를 입을 수 있는 상대적인 존재를 필요로 해서 만물을 창조했기 때문에 완성된 아담 해와는 하나님의 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도 ‘우리의 몸이 성전이 된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한 것입니다. 우리 몸이 성전이 돼 있습니다.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집입니다.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첫 번째 집이 남자는 아담이고, 여자는 해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첫 번째 남자와 첫 번째 여자가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조상이 살고, 조상이 출발한 나라가 조국이 됩니다. 즉, 조상과 연결된 그 나라가 조국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한국이 조국이다.” 하게 될 때는 조상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242-166, 199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