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하나님의 성전 (후천시대와 천지인참부모-제1장-3절 천주부모가 인류를 창조하신 이유)

훈독왕 | 20190610101718

후천시대와 천지인참부모-제1장-3절 천주부모가 인류를 창조하신 이유



2) 하나님의 성전


신비스러운 경험을 못 해서 그렇지, 계시를 받고 깊이 들어가게 되면 하나님이 이 속에서 대답을 합니다. “하나님!” 하고 불러보면 “이 자식아, 왜 불러?” 하고, “어디 있소?” 하면 “어디 있긴 어디 있어? 제일 사랑의 뿌리, 생명의 맨 뿌리, 혈통의 맨 뿌리에 있지!” 그런다는 것입니다. 공중에 있지 않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집입니다.
아들은 부모가 들어가 살 수 있는 사랑의 집이고, 남편은 아내가 들어가서 살 수 있는 사랑의 집이고, 아내는 남편이 들어가서 살 수 있는 사랑의 집이고, 형님이 있으면 동생은 형님이 들어가서 살 수 있는 사랑의 집이요, 형님도 동생이 들어가서 살 수 있는 사랑의 집입니다.
‘집 주(宙)’ 안에 있는 이것(由)은 무슨 ‘유’ 자예요? ‘자유(自由)’ 할 때의 ‘유’ 자 아니에요? 사방(口)에 통하는 것입니다. 이것( )을 보면 거꾸로 십자가를 세운 것입니다. 이 땅(田)에 이래 가지고 거꾸로 여기 붙여 놓은 것입니다. 천주(天宙), 이것은 두 사람의 집입니다. 하나님의 집도 되고, 아담 해와의 집도 되고, 할머니 할아버지의 집도 되고, 어머니 아버지의 집도 되고, 내 집도 되고, 천세만세 수많은 인류 개개인의 집이 되는 것입니다.
천세만세 같은 집과 같은 가치의 사랑을 해서 하나되어 가지고 천상으로 이양해 가는 것이 이상적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완성한 가정입니다. 그 가정에서부터 자유가 있는데, 타락해 가지고 행복이 없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행복하려면, 할아버지 할머니에 있어서 오목 볼록이 깨지지 않고 꽉 붙들고 천년만년 요동하지 않아야 됩니다. 어머니 아버지도 그것이 틀어지면 왱가당 댕가당하지요? 아들딸도 그러면, 3대가 전부 다 녹아나는 것입니다.
이 철칙 같은 천리의 궤도에 일치될 수 있는 모델적인 환경 여건을 어떻게 땅 위에서 충족시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무슨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것을 메우고 가겠다고 하는 것이 인생의 행로, 가정을 거느리고 사는 생애의 목적이느니라, 아멘! 

‘천주’는 누구나 들어와 살 수 있는 집입니다. 온 세계의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딸인데, 하나님의 가정 식구라고 하는데 그 하늘땅의 집에는 어느 누구나 같이 들어가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지구성에 있는 모든 집이라는 것은 흑인 백인 할 것 없이 누구든지 다 같이 살 수 있는 것입니다. (358-66, 2001.11.1)


천주라고 하게 되면 하나님이나 땅 위에 있어서 부자지관계·부부관계·자녀관계의 전부가 같이 살 수 있는 집이라는 것인데, 천주라는 것은 다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사람 몸뚱이도 성전(聖殿)이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을 보게 된다면,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그랬습니다. 성전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들어와 살 수 있는 집입니다. 두 사람, 내적 사람과 외적 사람이 하나돼야만 하나님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눈도 둘이 하나돼야만 완전한 눈이 형성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계는 쌍쌍으로 돼 있습니다. 이 우주는 쌍쌍이 서로서로 하나되어 가지고 잘 살 수 있는 서로의 집이라는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가 사랑할 수 있는 집입니다. 또 아내는 남편이 들어와 살 수 있는 사랑의 집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몸과 마음이 하나 안 되게 되면, 문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둘이 하나된 그 가운데는 반드시 중심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중심을 무엇이 모시느냐? 참사랑입니다. 참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부모의 사랑이 연결되고 핏줄이 연결돼 있습니다. 모든 우주가 생겨나게 된 존속의 근원인 것입니다. 참사랑 때문에 이 우주가 생겨났고, 참사랑 때문에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한 것입니다. 그런 참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도 사람이 있어야 됩니다. 사람이 없어 가지고는 사랑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360-216, 2001.11.16)


인간이 완성해서 성년이 되면, 그때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들어와서 사랑을 만듭니다. 하나님이 좋아함과 동시에 아담이 좋아하는 격동적인 사랑을 하나님이 할 수 있다 이겁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최고의 신성한 성전(聖殿)입니다, 성전. 거룩할 성(聖) 자예요. 그래서 참사랑 가운데는 어디나 하나님이 들어가 계십니다.
왜 인간이 참사랑을 좋아하느냐? 참사랑만 가지면, 벌써 하나님이 거기에 계십니다. 주인이 있게 마련입니다. 아담 해와가 성년이 되어 사랑할 때 아담 해와의 몸은 우주를 창조한 하나님이 그 속에 들어와서 최고의 신성한 성전을 이루는 거룩한 곳이 됩니다. (128-325, 1983.10.2)

내 마음 가운데 들어와 계시는 하나님과 내가 사랑으로 하나되면 나는 무엇이겠습니까? 아들이라면 하나님의 아들이고, 아내라면 하나님의 아내입니다. 하나님과 내가 주고받아서 하나만 되면 그도 나요, 나도 그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복음 14장 20절에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과 나는 하나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고귀한 것이 인생입니다. 사람은 무엇이냐 하면 실체를 쓴 하나님의 몸입니다. 하나님의 실체를 쓴 몸이기에 인간은 외적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이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39-340, 1971.1.16)


아기들은 전부 어머니 몸의 분신체입니다. 피, 살, 뼈 할 것 없이 전부 어머니 것을 나누어 가지고 태어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실체요, 자기의 몸, 제2의 나이기 때문에 사랑 안 할 수 없어요.
아담 해와가 하나님한테서 갈라져 나왔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하기 전의 아담 해와는 하나님을 대해서 만질 수 있고 볼 수도 있었지만 타락한 후의 아담 해와는 하나님을 만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고, 생각도 할 수 없이 됐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기가 차요! (313-219, 1999.12.19)


우리의 마음은 몸의 집이요, 몸은 마음의 집인 동시에 사랑의 집입니다. 남편은 아내의 사랑의 집이요, 아내는 남편의 사랑의 집이요, 부모는 자식의 사랑의 집이요, 자식들은 부모의 사랑의 집입니다.
이런 가정적 이상을 중심삼고 큰 것이 작은 것을 흡수하여 보다 큰 것을 향해 발전해서 최후에는 하나님 가운데 들어가 살 수 있는 일체, 사랑을 중심삼은 하나의 일체가 되어 정착할 수 있는 집, 안식의 집에서 살 수 있는 해방된 하늘의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314-257, 200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