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천시대와 천지인참부모-제1장-2절 참사랑의 창조주를 알고 있는가
4) 창조의 비밀
④ 위하여 사는 아름다운 세계
우주의 존재 질서는 위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고 있습니다. 참다운 이상, 참다운 사랑, 참다운 평화의 세계는 하나님의 창조이상인 동시에 인간의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이상의 기원, 행복과 사랑의 기원은 상대를 위하여 사는 데 있는 것입니다.
우주를 보면, 어느 존재물도 그 자체만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동물계는 식물계를 위하여, 광물계와 식물계는 동물계를 위하여, 또 그 모두를 합한 만물들은 인간을 위하여 존재합니다. 그러면 인간은 누구를 위하여 존재합니까? 인간은 하나님을 위하여 존재합니다. 하나님은 또 만물들을 성장 발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위하는 것이 존재세계의 기본 질서인고로 그 누구도 위하는 존재로 태어난 것이지 자신만을 위해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남자가 태어난 것은 남자 때문이 아니고 여자를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거기서부터 참사랑이 시작됩니다. 그렇게 참된 것은 위하는 데에서부터 기원을 찾아야 합니다. 참된 부모의 사랑, 참된 자식의 효도, 참된 부부의 사랑도 상대를 위하는 데에서부터 기원을 찾게 됩니다.
그 공식을 적용한다면 참된 부모는 자식을 위해 있는 것이요, 참된 효자는 부모를 위해서, 참된 국민은 나라를 위해서, 참된 주권자는 국민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그 모두에 참이 있고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135-233, 1985.8.20)
투입하고 잊어버림으로 말미암아 자기를 넘는 상대가 얻어집니다. 그 진리는 위대한 발견입니다. 자녀들이 그것을 알면 잘못된 길로 나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십니다. 아버지가 그렇게 하십니다. 과거의 성인들, 자기 형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기를 위해 온 서자 같은 사람들은 형입니다. 많은 형들이 자기를 구하기 위해서 희생되어 갔습니다.
그들이 무슨 보답을 원한 것이 아닙니다. 투입하고도 잊어버리고 갔기 때문에 그들의 모든 것을 모아서 지금의 자기가 구성된 것입니다. 그 말은 지금까지 투입한 모든 가치 이상이 돼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상대가 본체 이상이 되기를 원해서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갔기 때문에 하나님보다도 더 훌륭한 자신이 되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창조세계의 주체와 객체가 갖춰야 할 자세입니다. 간단한 내용입니다. 그 내용을 평생 안고 살게 되면 어느 정도 훌륭해질지 생각해 보라구요. 그냥 지나가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가계의 훈시와 마찬가지이고, 회사의 사훈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눈도 위하여 살고 있습니다. 눈이 자기를 위해서 봐요? 누구를 위해서 봐요? 상대를 위해서입니다. 코가 자기 나름대로 호흡하는 게 아닙니다. 전체를 위해서 호흡합니다. 폐를 중심으로 해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호흡을 하는 것이지 코 자체를 위해서 호흡하는 것이 아닙니다. 입도 마찬가지입니다. 입을 위해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를 위해, 전체를 위해 입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두 그렇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259-60, 1994.3.24)
모든 것이 위하여 존재합니다. 눈이 자기를 위해서 생겨나지 않았습니다. 상대를 위해서입니다. 코도 그렇고, 입도 그렇습니다. 입, 코, 눈이 부부생활에 있어서 자기를 위해서 얼마나 입이 변명했고, 얼마나 눈을 부라렸고, 얼마나 코가 냄새난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서 살아 왔다고 생각하면 큰일 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적인 세계의 이상실체와 자기와는 관계를 가질 수 없습니다. 관계를 가진다고 하더라도 자기를 인정하면 인정할수록 반비례해서 상대의 세계는 줄어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 내용으로 봐서 문선생은 체험으로부터 결론을 내려서 ‘위하여 존재하는 세계’를 잊지 말라고 하는 겁니다. 멋진 결론입니다.
여자의 것은 여자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남자를 위해서입니다. 그렇지 않다고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습니다. 이름밖에 없는 여자라고 해서 부끄러운 게 아닙니다. 어디든지 조화가 가능한 거예요. 할머니한테도, 어머니한테도, 할아버지한테도, 친척의 아주머니나 아저씨한테도 조화가 될 수 있습니다. 여자라고 하는 중심성을 크게 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권의 폭이 점점점 넓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주창조의 원칙에 근본을 둔 공식적인 기반에 연결되는 것이기 때문에 확장되어 가는 것입니다. (255-144, 1994.2.27)
사랑은 위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 때 하나님을 위해서 만든 게 아니라 사람을 위해서 만들었습니다. 사랑의 원칙을 위해서 만든 겁니다. 인간이 자랄 때까지, 인간이 성숙할 때까지는 위하는 입장에서 하나님이 길러 왔습니다.
남자가 생겨나기를 여자를 위해서 생겨난 것입니다. 존재의 기원이 위하는 데서부터 된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남자가 남자 때문에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여자가 태어난 것도 자기 때문에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자기라는 주관성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자의 유방이 큰 것은 자녀 때문이고, 궁둥이가 큰 것도 후손 때문입니다. 여자의 음부는 남자의 것입니다. 여자의 것입니까? 그것이 잘못됐습니다. 여자 때문이 아니라 남자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남자의 것입니다. 그 주인이 남자입니다. 남자의 것은 주인이 여자입니다. 엇바꿔졌기 때문에 교류할 수 있는 작용을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위하여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걸 몰랐어요. “아이고, 내가 제일이다!” 하는 관념을 혁명해야 되겠습니다. (137-72, 1986.1.1)
인간은 위하여 태어났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도 그렇습니다. 하나님도 위하여 창조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의 상대자가 자신보다 낫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남편이 자기보다 몇 십배, 몇 백배 훌륭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지요? 자기의 자식도 그러기를 바라지요? 자기에게 제일 가깝고,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보다 가치 있고 보다 귀한 것이기를 원하는 마음을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디에서 왔느냐 하면 하나님한테서 왔습니다. 하나님도 같습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백 퍼센트를 투입하고 만들었다면, 거기서는 백퍼센트의 존재밖에 안 나옵니다. 백 퍼센트를 투입하고 스톱한 경우에는 백퍼센트의 상대밖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의 상대가 자기보다 몇 억배 훌륭하기를 원하니까 백 퍼센트를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리기를 천번 만번 하시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 의해서 무한한 가치의 상대자를 창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최고 이상의 상대를 맞이하는 것이 절대 불가능합니다.
그렇게 볼 때 하나님 자신도 위하여 산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탕감복귀가 문제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마음대로 한다면 하루에도 천하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원수라는 개념을 가질 수 없습니다. 창조할 때 원수라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원수라는 개념이 생겨났는데 처분해 버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 자신이 절대적인 창조주의 입장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원수는 천사장입니다. 원수인 천사장도 복귀해 가지고 천국에 데려가야 하기 때문에 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맞고 변상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도 위하여 존재합니다. 우주의 모든 것이 위하여 존재한다고 하는 논리를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 전략 전술이 틀림없이 역사상에서 승리권을 남겨왔다고 하면,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공인 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현재에 있어서 여러분이 그런 생활을 해서 망하게 된다면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것이 되지만, 그런 생활을 사방팔방의 환경에 있어서 함으로 인해서 점점점 커지는 경우에는 하나님이 있다고 하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친구가 20명 있다고 합시다. 10년, 20년의 오랜 친구들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을 위하라고만 하면 친구들이 점점점 떨어져 가요, 불어 가요? 떨어져 갑니다. 그러나 20년, 30년 동안 전체 20명을 위하여 산 경우에는 모두 훌륭한 친구들이 될 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족과 형제들도 모두 모여들어 많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라의 대통령은 나라를 위하여 사는 자가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대통령이 될 때는 엄청난 문제가 생깁니다.
현실 사회에 있어서도 그런 사람이 중심자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중심자가 되느냐? 위하여 사는 사람, 보다 위하여 사는 사람이 중심자가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영원히 우주의 중심자가 된다고 하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250-40, 1993.10.11)
하나님의 사랑, 본연의 사랑은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사랑, 생명을 바칠 수 있는 사랑입니다. 자기 생명을 넘어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거 왜 그래야 되느냐? 본래 이 우주가 창조된 것은 생명 때문이 아닙니다. 사랑 때문에 지어졌기 때문에 사랑이 먼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에 부합될 수 있는 생명이지, 생명에 사랑이 부합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생명을 희생해서 사랑하는 것, 생명을 넘어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게 하늘의 사랑이요, 우주와 통할 수 있는 사랑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사랑이 우주의 본질이기에 사랑을 중심삼고 우주를 창조했습니다. 모든 생겨난 것의 생성원인이 사랑이상을 중심삼은 것입니다.
사랑이상을 중심삼고 하나님도 존재하고, 모든 존재가 그렇게 돼 있는데 그 사랑이 어떤 사랑인가를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자기 존재를 희생시켜서라도 사랑의 길을 세우려고 하는 것이 우주 본연의 이상적 주체사상입니다. (132-152, 1984.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