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태평성대 참사랑의 주인 - 제1절 평화왕국을 창건하는 길
2) 참가정의 절대가치관 上
역사상 전무후무한 귀한 천운의 시대를 열어 가면서 하늘은 이제 우리에게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절대가치적 삶을 살라는 천명을 내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인이 여러분에게 전하는 이 메시지는 여러분만이 아니고 60억 인류 전체에게 선포하는 소명(召命)적 천명이며 선택의 여지가 없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과연 무엇으로 이 엄청난 섭리적 후천시대를 열고 천일국 절대가치적 주인의 위치를 확보할 수 있겠습니까? 하늘을 중심한 절대가치관을 상실한 오늘의 세계는 온갖 죄악과 혼란으로 방향감각을 잃은 채 표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늘이 오늘 본인을 통해 밝혀 주는 천비(天秘)는 절대가치관의 신천신지(新天新地)인 후천시대를 맞는 천일국 주인들이라면 반드시 알고 실천해야 할 절대가치관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무엇이겠습니까?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도 홀로 독처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기에 먼저 천주는 인간을 위한 환경창조의 일환으로 창조하시고 그 터 위에 당신의 절대사랑의 대상으로 창조하신 것이 인간입니다.
하나님은 그 대상 된 인간이 하나님 자신보다 더 훌륭하고 큰 존재가 되기를 바라셨기 때문에 인간을 당신의 자식으로 지으신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부모는 자식들이 자기들보다 더 잘되고 훌륭해지기를 바라지 않습니까? 그것이 모두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주신 부모의 사랑입니다.
자식으로 지은 인간이 성장하고 완성하여 당신으로부터 축복결혼을 받고 참된 자녀를 번식하여 참되고 영원한 이상천국(理想天國)을 이루어 사는 것을 보고 기쁨을 느끼고 싶었던 것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이었던 것입니다.
사랑의 주인이 되는 길은 먼저 상대를 위해 자신을 철저히 희생하고 투입하는 참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열리게 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도 먼저 당신이 절대신앙, 절대사랑, 절대복종의 기준을 세워 놓고 백 퍼센트 투입했던 것입니다. 상대권을 절대가치권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사랑의 주인은 혼자서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대상을 통하여 성립되는 것입니다.
이 절대적 가치권의 사랑의 원리 앞에서는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식이 없으면 영원히 부모가 사랑의 주인이 될 수 없듯이 하나님 자신이 절대사랑의 주인 자리에 서기 위해서는 그 상대권인 인간을 절대사랑의 가치권에 세워야 했던 것입니다. 절대주체와 절대대상의 가치관이 생겨나 완성을 보는 것입니다.
우주의 질서를 보면 크다고 하여 무조건 작은 것을 희생시키고 취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헬레니즘에 바탕을 둔 약육강식을 통한 적자생존의 이론은 근본적으로 틀린 것입니다. 위해서 존재하고 참사랑으로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절대복종의 대상으로서 주체적 사랑의 주인으로 완성시키려는 절대가치관을 그들은 간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참사랑을 배제하고 나면 투쟁의 개념만 남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원리는 투쟁을 통한 생존과 발전이 아닙니다. 주체와 대상의 관계 속에서 상호 수수작용을 하면서 절대가치관을 향해 조화와 통일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소(小)는 대(大)를 위해 희생을 할망정 그것을 투쟁으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상호발전을 위한 투입이 돼야 하는 것입니다. 개인은 가정을 위해, 가정은 국가를 위해, 그리고 국가는 세계를 위해 양보하고 희생을 감수하는 것이 어찌 투쟁이라고 하겠습니까? 이처럼 절대적 가치권은 먼저 서로 상대를 참사랑의 주인격으로 세워주는 참사랑의 완성을 성사시켜 주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생활 속에서 이기적인 개인주의적 사고나 행위는 철저히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 이것은 타락성의 뿌리와 같은 것으로 모든 악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개인적 차원의 이기주의 행동이나 집단 개인주의적 행위나 마찬가지입니다.
참사랑의 절대가치관의 정신과는 정반대의 길입니다. 남을 위해 희생하고 베푸는 대신 자기를 위해 남을 희생시키고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파렴치한 행위입니다. 타락으로 야기된 인간의 몸 마음의 싸움 속에 교묘히 파고들어 사탄이 인류에게 심어 놓은 독버섯입니다. 일신(一身)의 영달과 안위를 위해 보기에 아름답다고 하여 한번 취하고 나면 중독에 빠져 일생을 고생해도 빠져나오기 힘든 악의 덫입니다.
우리의 몸을 놓고 보아도 우리 것이라고 주장할 부분이 하나도 없습니다. 부모의 사랑으로 태어난 우리는 99.999퍼센트가 어머니의 뼈와 피와 살입니다. 나머지 0.001퍼센트는 아버지의 정자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거기에서 어떻게 ‘내 것’을 주장할 수 있으며 이기적 개인주의에 대한 명분을 찾아낼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사지백체는 모두가 어머니의 연장(延長)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즉, 우리 몸의 모든 요소는 이미 부모의 정자와 난자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예외가 없습니다. 전과 후를 놓고 생각해 보십시오! 전(前)이라는 말을 하게 된다는 그 자체가 벌써 후(後)를 선유조건으로 인정하고, 위라는 말도 아래를 먼저 인정해야 성립되는 말입니다. 좌라고 할 때는 우를 전제하고 하는 말입니다.
같은 이론으로 남자라는 말도 여자라는 존재가 선유(先有)하기에 성립되는 것입니다. 즉, 남자는 여자 때문에 태어난 것이며, 여자는 남자를 위해 태어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자가 없으면, 여자가 필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여자가 없으면 남자는 생존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결국 자기 때문에 태어난 것은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다. 모든 존재물은 상대를 위해 존재하고 작용하는 것입니다. 상대적 관계로 이상향을 향하게 창조됐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오관을 놓고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눈이 눈 자체를 보기 위하여 생겨났습니까? 눈, 코, 귀, 입, 손 모두가 상대를 위해 생겨났습니다. 그렇다면 그 오관을 총동원하여 생명을 유지하고 활동을 계속하게 하는 그 힘은 무엇이겠습니까? 참사랑의 가치관을 완성시키려는 힘입니다. 우리의 오관은 참사랑의 실천을 위해 생겨난 도구일 뿐입니다.
이처럼 자기를 위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위해서 베풀고, 사랑으로 희생하고, 복종으로 사랑의 주인을 완성시키는 생(生)이야말로 하나님의 창조이상에 부응하는 삶인 것입니다. 상대를 위해 창조함을 받았으니 마땅히 상대를 위해 살아줘야 하는 것이 천리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참사랑의 절대가치가 출발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에 인류의 조상 되는 아담과 해와를 창조하시면서 그들에게 생식기를 함께 허락하셨습니다. 무엇 때문이었겠습니까? 그들이 성장하여 완성하면 그들을 결혼시켜 죄 없는 자녀를 번식케 하고 당신의 창조이상인 지상천국을 아담 당대에 이 땅 위에 완성하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문제는 그들의 타락에 있었습니다. 타락으로 인하여 거짓사랑, 거짓생명, 거짓혈통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과 혈통을 보존하고 전수해야 할 그들이 반대로 사탄의 혈통을 받고 사탄 혈통의 전수자(傳受者)로 전락하고 만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무가치적 존재가 된 그들을 에덴동산에서 쫓아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본래 아담은 지상계에서 하나님의 몸이 되고, 해와는 신부가 되었어야 했는데 타락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몸과 마음과 이상을 병들게 만들어 원수가 되었으니 그것을 바라보시던 하나님의 심정이 오죽 비통했겠습니까! 타락은 스스로를 매장하는 무덤입니다. 남의 것을 빼앗아 가는 도적행위입니다. 타락은 프리섹스의 뿌리가 되었고 이기적 개인주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의 주변을 한번 둘러보십시오. 극도의 이기적인 개인주의, 분수에 넘치는 사생활의 추구, 그리고 청소년들의 프리섹스 풍조가 만연되어 있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정의 존엄함과 가치를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 모두들 육신의 향락을 쫓다가 급기야는 마약 중독자가 되거나 에이즈 환자가 되어 비참하게 생을 마치고 있지 않습니까?
인간의 본심은 극도의 개인주의나 육신의 쾌락만을 쫓는 어처구니없는 방탕길을 원치 않습니다. 우주와 국가, 동네와 이웃, 그리고 가정에서 부모형제의 사랑을 받으며 살고 싶어하는 것이 하늘이 준 본심이 지향하는 삶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정반대의 길로 치닫다 보니 양심은 불타 버리고 본심과의 상충을 느끼게 되어 차라리 약을 먹든가 자살하는 길을 택하고 있는 사건이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가고 있는 오늘의 현실이 아닙니까? ‘심은대로 거둔다’는 역사적 증언이 맞아떨어지는 것을 목격하게 되는 오늘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에덴동산에서 무슨 씨를 심었습니까? 프리섹스의 시드(seed;씨), 즉 불륜적인 성관계의 씨를 심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타락직후 하체를 가렸던 것입니다.
수확기인 끝날에는 반드시 세계적으로 청소년들의 프리섹스 풍조가 만연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탄은 무질서한 성관계를 통해 단 한 사람도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발악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전 인류를 망가뜨려 지상지옥을 만드는 것이 사탄의 목적입니다. 어린 아이들도 부모가 숨겨 놓은 과자를 훔쳐 먹다가 들키면 손을 가리고 입을 가리는 것이 본성의 작용입니다. 만일 그들이 선악과를 따먹었다면 따먹은 손이나 입을 가려야지 왜 하체를 가렸느냐는 것입니다. 그것만 보아도 타락은 음란으로 저질러졌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혈통관계 때문에 하나님도 어찌할 수 없는 비극이었습니다.
여러분, 천국과 지옥이 어디에서 갈라지는지 아십니까? 공중입니까, 교회당입니까, 국가입니까? 아닙니다. 바로 여러분의 생식기가 천국과 지옥을 갈라놓은 분계선이 된 것입니다. 그것이 천지를 뒤집어 놓는 인류 역사상 최대의 비극을 저지르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생식기를 눈먼 장님처럼 방향을 잃은 채 마구 사용하게 되면 지옥행이요, 반대로 그것을 하나님의 절대사랑의 가치기준에 맞추어 쓰게 되면 천국 가는 것입니다. 어느 누가 이 사실을 부정할 수 있습니까? 의심이 가면 본인이 천리를 발표해 놓은 원리강론을 숙독해 보시고, 그래도 의심이 풀리지 않으면 하늘 앞에 매달려 기도해 보십시오. 반드시 그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레버런 문의 가르침을 받고 이제는 세계의 수천 수만 젊은이들이 프리섹스를 철폐하고 앱솔루트 섹스(absolute sex), 즉 절대사랑을 주창하는 순결운동이 산불처럼 번져 가고 있습니다. 프리섹스가 자기의 욕망과 사탄을 중심삼은 거짓사랑인 반면에 절대사랑은 하나님을 중심삼은 참사랑인 것입니다.
많은 문학작품들과 언론매체들이 역사적으로 프리섹스를 자극하고 부추기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정치인, 경제인, 문인, 언론인, 종교인, 철인 등 모든 분야의 지도자들이 한 목소리로 앞장서서 인류의 망국병 프리섹스를 몰아내야 할 것입니다.
세계평화를 위한 초석을 놓는 것도 참사랑의 절대가치관을 창출해 내는 아담가정이요, 세계평화로의 길을 파괴할 수 있는 것도 아담가정입니다. 그래서 조상 된 아담가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본인이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의 간판을 내리고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간판을 내건 것도 이제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옥이 되어 버린 이 세계를 무슨 수로 바꿀 수 있겠습니까? 참된 사랑을 중심한 화합과 통일의 실천만이 유일한 절대가치관을 찾는 길입니다. 참사랑의 주인인 하나님의 속성은 영원, 불변, 유일, 절대적인 기준에 서 있기 때문에 우리도 그대로 본받아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개인의 속성을 가졌으면 그것도 속성이 절대, 유일, 불변, 영원한 하나님의 속성을 대신해 가지고 본을 받아서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은 왜 좋은 것입니까? 그것은 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본연의 자유 활동의 기지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보기에는 아무리 초라해도 빛나는 참사랑의 핵을 지닌 심정으로 맺어진 인간들로 이뤄진 본연의 가정이 되었을 때 인간은 물론 하나님까지도 자유롭게 느끼시는 것입니다. 사랑이 결여된 자유는 참된 자유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어느 집에 손님으로 갔을 때 부자유스러움을 느끼는 것은 아직 그 집과 깊은 사랑의 인연을 맺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즉, 사랑의 인연이 사방성(四方性)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어색하고 부자유스러운 것입니다.
그렇다면 본연의 가정에서 최고 최상의 가치는 무엇이겠습니까? 본연의 부모입니다. 본연의 부모는 왜 좋은 것입니까? 영원한 사랑의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중심으로 한평생을 관계 맺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자리에 계시는 분이 바로 본연의 부모입니다. 우리가 태어나서 가장 먼저 기쁨을 주고받는 상대가 본연의 부모인 것입니다. 따라서 본연의 부모는 우리의 기쁨의 주체이자 대상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기쁠 때 가장 먼저 기뻐해 주시고, 우리가 슬플 때도 누구보다 먼저 슬픔의 눈물을 흘리는 분이 우리 본연의 부모입니다. 그래서 부모없는 자식을 고아라고 부르며, 고아는 불쌍한 사람으로 취급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가 본연의 가정에서 가장 귀한 가치적 존재가 될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조건적인 사랑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본연의 사랑을 주고받는 부부여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처음부터 하늘이 준 절대적이고 영원한 차원의 사랑관계를 갖고 시작된 사랑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부부라는 절대적 차원의 인연을 바탕으로 한 상대관계에서 맺어진 본연의 사랑이 되면, 그 사랑이야말로 가정에 행복과 기쁨을 안겨 주는 근간(根幹)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이상적 본연의 부부관계가 부부관계 그 자체로서만 끝나게 되면 절대적 가치를 내포한 영원한 행복과 기쁨이 될 수 없습니다. 부부 앞에는 반드시 본연의 자녀가 있어야 된다는 뜻입니다. 부부끼리만 둘이서 행복하게 살겠다고 자식을 낳지 않아 보십시오. 인류는 2대를 넘기지 못하고 멸종당하고 말 것입니다. 본연의 자식으로부터 돌아오는 사랑을 받고 살 수 있어야 참된 부부로서 본연적인 부모의 자리까지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으로 귀하고 중요한 것이 본연의 부모를 위한 자식의 사랑입니다. 절망이 아니고 내일의 소망으로 싹틀 수 있는 이상적인 환경을 그리워하면서 밝고 긍정적인 자세로 자식이 본연의 부모를 위해 희생하고 사랑할 수 있다면, 그 사랑은 가정의 행복을 위한 순수하고 진실한 가치로서의 본연의 사랑이 될 것입니다.
그렇듯 본연의 가정에서 3대권을 이루고 본연적인 부모의 자식을 위한 희생적인 본연의 사랑과 본연적인 부부간의 참된 사랑, 그리고 본연적인 자식의 본연적인 부모를 위한 참된 사랑이 완벽하게 구비된 본연의 가정이 있다면 그 본연의 가정은 인간세계에서 가장 이상적인 참가정이 될 것입니다.
세상에서 어떤 사람을 두고 행복한 사람이라고 합니까? 행복의 기준을 무엇으로 삼고 있느냐는 말입니다. 외적으로 남이 갖지 못하는 능력이나 권세를 가졌다고 하여 행복한 사람입니까? 모두가 부러워할 만큼 많은 돈을 갖고 있어서 행복한 것입니까? 세계적인 석학이 되어 만인이 부러워하는 자리에 올랐다고 하여 행복한 것입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그 어떤 외적인 조건도 인간의 행복을 영원을 두고 보장해 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행복을 찾아가는 조건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행복 그 자체는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결국 사랑하는 본연의 부모가 있고, 참사랑으로 맺어진 본연의 부부가 있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본연의 자녀가 있을 때 그 가정에서 참된 행복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천국은 어떤 곳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창조원리에 의하면 천국은 먼저 이 지상계에서 완성돼야 합니다. 인간은 육신을 쓰고 지상에서 천국생활을 하다가 자연스럽게 육신을 벗으면 영계의 천국으로 자리를 옮겨 영생하도록 창조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