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나 자신 - 天和堂(천화당)

훈독왕 | 20200106111810

天和堂(천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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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나 자신


인생에 있어 많은 경우 우리는 만족하지 못하고 좌절한다. 번민에 빠지게 된다. 만약 이기적이거나 자기 중심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면, 나는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분명하게 구별하게 된다. 나보다 훨씬 많은 수의 타인들이 있으며, 그들은 모두 나와 대항하고 있고, 따라서 스스로에게 불리한 게임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스스로를 다른 사람들로부터 철저하게 분리시켰기 때문에 나는 스스로를 보다 많이 보호해야 하고, 보다 많은 보호막으로써 방어해야 하며, 더 많은 자만과 이기적 자아로 무장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나는 계속하여 세상의 다른 사람들과 긴장과 전쟁의 관계 속에서 살게 된다. 그들은 모두 내 발목을 잡기 위해 안달하며, 나와는 늘 경쟁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나를 질투하고 있다.


여기에서 다른 사람들과 자신 사이에 큰 구분을 두면 둘수록 우리가 공통된 인간성을 가지고 있음을 잊게 된다. 즉 우리가 모두 하나님의 자녀이며, 내면에 본심과 순수하고 이타적인 마음이 있다는 것을 잊게 된다. (아버님은 거짓 사랑을 '이기적' 혹은 자기 중심적인 것으로, 참사랑과 '사심 없는 마음’을 전적으로 행복을 추구하며 다른 사람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것으로 정의하신다.) 모든 것이 '나'로부터 근본적으로 분리된다면 나는 그들을 해칠 수 있고, 그들 위에 군림하게 되며, 그들을 착취하고 순간적인 즐거움을 위해 그들을 이용하고, 그리고 최악의 경우 나는 그들을 살해할 수도 있다. 나는 마음속으로 타인들을 나의 삶으로부터 철저하게 배제시키고 다른 사람을 미워하거나 원한을 갖는 것, 내가 가진 문제에 대해 상대를 비난하는 것 등을 정당화시키거나 합리화시킬 수 있다. 이는 통일주의자에 반하는 분리주의자이다.


 어디에서부터 타락성 근성, 즉 미움, 질투, 시기, 분노 등이 일어나는가를 생각해 보자.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완전히 분리시킬 때 그들과 파괴적인 경쟁관계에 놓이게 된다. 나는 이기적인 자아를 더 많이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주위에 요새를 쌓고, 세계가 침입하려 하기 때문에 더 높은 벽과 더 많은 방해물 등을 쌓아야 한다고 끊임없이 되새기는 것이다. 누군가 나보다 더 많이 가지게 되면 질투심에 싸이게 된다. 본능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을 자신보다 열등하다’ 거나 '어느 정도 비슷하다’ 거나 '우수하다' 라고 심판하게 된다. 사람들을 구분하고 마음속에 계층화시키는 것이다.


누군가를 나보다 '열등하다' 라고 판단하게 되면 희열을 느끼며 자만심과 오만함이 스멀스멀 기어 들어오다. 어떤 사람이 자신과 ‘다소 비슷하다' 라고 판단되면 즉시 강력한 경쟁의식 속에 사로잡힌다. 또한 어떤 사람이 보다 ‘우월하다' 라고 생각되면, 물론 그것은 가장 기분 나쁜 경우로서 자신감이 약화되며, 그들이 가진 것에 대해 질투와 시기심이 샘솟고, 내게 없는 것을 그들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화가 나며 미움이 싹트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자만심, 경쟁심, 미움, 분노 등을 본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자기 중심적이며 이기적 자아로 가득 찬 것, 다른 사람에 대항하는 자신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기인하는 것들이다.


신학적으로 말하자면, 이것이 아담 해와 타락의 원인이 된 바로 그것이다. 천사장 누시엘은 아담에 대해 질투와 분노를 느꼈을 때 최초의 분리주의자가 되었다. 누시엘은 하나님의 사랑과 애정을 놓고 아담과 해와를 경쟁 상대로 보았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됨을 느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천사로서 사랑하고 계심을 잊었던 것이다. 그는 아담이 가진 것을 가지고 싶은 강렬한 욕망을 느꼈다. 그는 자기 중심적인 마음으로 가득했으며, 따라서 모든 것은 그와 대항하게 되었다. 배신감을 느꼈으며,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한정된 느낌을 갖게 되었다. 누가 이 모든 것의 원인을 제공하였느냐? “그것은 바로 아담과 해와(다른 사람)인 것이다. 아담과 해와의 잘못이다. 그들이 질투하게끔, 시기하게끔 탐욕스럽게 되도록 강요한 것이다” 라고 누시엘은 합리화시켰다.


불행하게도 이것은 현재 우리 자신의 생활과 별반 다르지 않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우리도 이와 똑같은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자만에 찬 견해에서 비롯되는 것이요, 다른 이들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완전히 분리시키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이런 의식은 그 자체가 다른 사람들을 해치고 원망하는 것을 정당화시킨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의 가족으로서 상호 연결되어 있음을 인정하는 '통일주의'에 반하는 '분리주의'인 것이다.


우리가 자신과 타인을 별개의 두 존재로 가르는 '분리주의자'적인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가정해 보라! 실제로 다른 사람 안에서 우리 자신을 본다고 생각해 보라! 모든 것을 단지 하나 또는 둘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인 동시에 둘, 즉 함께 보는 것이다. 자신의 독특함을 인지함과 동시에 또한 인간으로서의 유사성을 알고 우리 모두가 하나임을 알아야 한다. 만약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을 온전히 존중할 수 있게 되며, 우리와 같은 개체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존엄성을 그들에게도 부여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 아래 하나의 가족, 우리는 분리주의가 아닌 통일주의를 수련하고 있다.


그들과 우리 자신을 둘로 나누지 않았기에 그들의 서로에 대해 진실로 기뻐하고 한마음으로 즐거워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무지하고 자신만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차 있으므로, 우리는 그들과 스스로를 구분하며 행복해하는 다른 사람들을 질투하고 시기하며 원망을 하기도 한다. 또한 우리가 가진 자기 중심적 견해를 그들에게 투사하여 그들도 역시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할 것이라고 짐작하고 그들을 '이기적' 이거나 그들 자신만을 생각하는 사람들로 간주하기도 한다. 그러나 만약 우리 모두가 상호 연결되어 있고 서로의 운명의 일부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면, 즉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한 가족으로 화합해야 함을 알게 될 때에는 성공한 사람에게 진실된 축하를 보낼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자신과 남을 근본적으로 분리하는 ‘분리주의자' 가 아니기에 우리는 그들과 라이벌 또는 경쟁관계에 놓이지 않는다. 그들 속에서 우리 자신을 볼 수 있기에 그들의 행복을 통해 우리도 행복을 느낄 수 있고 그들의 성공을 통해 기쁨을 맛볼 수 있다. 자녀의 성공을 보며 우리는 기쁨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질투하거나 미워하는 사람들의 큰 성공을 우리는 어떻게 느끼는가? 타인을 적(敵)이라고까지 과장해 가며 자신으로부터 분리해 놓은, 스스로가 쳐 놓은 덫을 피해야만 한다.


그렇게 된다면 세상은 더 이상 우리에게 대항하지 않으며, 우리의 발목을 잡지 않고 오히려 우리를 위해 우리와 함께 일하게 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좋은 직업을 가지거나 좋은 점수를 받고 대회에서 일등 하는 것 등을 보며 기쁨을 느끼게 된다. 그들과 함께, 그들을 통해 우리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인간 모두가 고생 대신 영원한 행복을 찾고자 하는 (원리의 출발점이기도 한) 공통된 인간성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분리시키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그들이 느끼는 희열을 경험하게 되고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는 친밀함과 진실된 마음으로 그들과 함께 즐거워할 수 있다.


나 자신이 행복(일시적이거나 쉽게 사라지는 쾌락이 아닌 지속적인 행복과 희열)을 찾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다른 개개인의 존재도, 심지어 하나님까지도 같이 나눌 수 있는 행복을 찾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될 때에 비로소 우리는 공통의 우주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인종이나 국적 또는 외모 등에 상관없이 서로가 서로를 닮아 있음을 목격하게 된다.


 그러나 만약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분리시키고 자기 중심적인 의식을 갖게 되면, 우리의 동기는 재빨리 다른 사람이 아닌, 오직 나만을 위한 행복으로 바뀌어 간다. 우리가 자기 중심적이 아닌 통일주의 즉 이타적인 것을 수련하면,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행복을 소원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을 어떤 조건 없이 완전하게 존경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그들이 겪는 역경이나 성공에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참부모의 사랑을 경험하게 된다. 이와 같은 세상 또는 활동은 현재의 것과는 매우 다를 것이다.


 스스로를 수련하여 자신의 약함과 부정직의 영역을 좀 더 정확히 볼 수 있게 되면 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어떤 일에 만족하며 즐거워하는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이 모여 수군대며 자신을 비웃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가정해 보자. 일시에 행복한 기분이 사라지고 방어 심리가 떠오를 것이다. 그 순간 여러분의 약간의 단점과 불안정함을 본 사람들에 대한 미움과 공포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반응하는 대신, 그들 역시 나와 같은 일로 힘들어하고 있음을 스스로에게 상기하면서 “고통이 아닌 기쁜 마음을 항상 유지하기를 바랍니다. 자신에게는 물론 남에게도 편안한 마음으로 친절을 베푸시길 바랍니다”라고 말하며 동정적이 되는 것은 어떨까?


나는 개인적으로 누군가로부터 심판받거나 비난받는다고 느껴질 때면 위와 같은 기도를 하곤 했다. 자비와 동정을 베풀었을 때 나는 방어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복수심이 일었던 마음이 진정되는 자신을 발견했다. 나를 비평하는 사람을 위해 그와 같은 기도를 드렸을 때 내게는 분노와 미움이란 반응의 열차 대신 내적인 차분함과 평화의 감정이 찾아왔다.


불행하게도 노여움, 미움과 같은 괴로운 감정들은 이기적인 자아를 키운다. 다른 사람을 향해 화를 내거나 심판적 행위를 할 때, 우리는 즉시 자신과 상대를 둘로 나눈다. 우리는 피해자이며, 상대는 가해자이다. 우리는 상대로부터 스스로를 분리시킨다. 상대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며, 우리 자신은 매우 결백하다. 물론, 극악무도한 잘못을 행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빨리 멈추게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분노와 복수심으로부터가 아닌 상대를 위한 전문가적 기질과 동정심의 발로이어야 한다.


흔히, 자신감과 이기주의가 혼동된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실수인데, 나 역시 과거에는 이러한 실수를 범했었다. 가슴을 한껏 젖히고 뽐내며 걷는 사람들은 내가 알기에 가장 겁이 많으며 불안정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열등하다고 구분지어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거나 종종 자신보다 우월한 범주 속에 넣고는 그들을 향한 질투, 시기, 분노, 미움 등을 자신의 거만과 자만이라는 가면 속에 감추기도 한다. 그들은 그들의 이미지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자 하며, 불행히도 스스로를 강화시키기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하기도 한다.


따라서 그들은 항상 가장(假裝)된 삶을 산다. 하나님과 그들 자신과 세상 앞에 거짓된 자신의 모습을 늘 지탱해야만 한다. 만약 그것이 무너지게 되면 정신적 영양실조로 무기력해진 그들 자신의 모습이 뻔히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영적 스테로이드가 주입된 근육 뒤에 숨은, 가냘프고 비참한 정신과 몸을 지닌 겁쟁이라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나 또한 인생의 어떤 시기에는 그와 같았다.)


건강에 대해 이야기할 때 육신의 건강만을 말할 수는 없다. 우리가 육체적인 스테로이드를 복용해서는 안되듯이 정신적인 스테로이드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 스테로이드는 우리를 크게, 강하고 힘 있게 보이게 하거나 잠시 유연하고 건장한 근육을 만들어 줄 수 있을지는 모르나, 그 기운이 다해 없어지고 나면 약의 부작용으로 인해 신장과 폐가 상하고 호흡기와 순환기가 상처를 입는 등 몸이 망가지는 것이다. 영적인 경우도 이와 같다. (안타깝게도 영적인 길에서도 이와 비슷한 함정들이 많이 있으므로 이런 비유를 들고 있는 것이다.)


자신은 그 같은 종류의 사람이 아니라고 부인할지 모른다. 그러나 내 견해로는 적어도 스스로를 정확히 볼 수 있어야만 하며, 그러면 영적으로 이와 비슷한 독성의 물질들을 얼마나 많이 복용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우리는 비밀리에 숭배의 대상을 만들어 구체화시킨 자아에의 중독자이이며 탑닉자이다. 우리가 매우 고통스럽고 불쾌한 것이지만, 이러한 사실을 알고 인정할 때 진정한 수련은 싹트게 된다. 문제가 있음을 알고서야 그것을 고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그러나 단순히 “자, 나는 이제 그것을 인정할 만큼 강해!! 나는 겁쟁이가 아니야” 라고 말하며(인정하며) 자신의 변화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문제를 인정하기만 하고 고쳐 나가지 않는 것은 단순히 자신의 정직을 그럴 듯한 모습으로 만드는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으로 스스로에게 정직한 사람은 문제를 인정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것에 관계하여 더 낫게 고쳐 가는 사람이다.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는 것은 첫 단계일 뿐이다. 정신 건강을 위한 기초 단계에 불과하다. 질병을 예상할 수 있을 뿐이다. 다음 단계로, 자신이 지니고 있는 병과 중독성의 뿌리를 뽑기 위한 고생스러운 일에 우리 자신을 최대한으로 투입해야 한다.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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