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마취제 - 天和堂(천화당)

훈독왕 | 20200105170108

天和堂(천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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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마취제


숨을 쉼으로써 우리에게는 새로운 생명의 기회가 주어진다. 그러나 얼마나 자주 우리는 그 사실을 잊고 스스로의 환상에 열중하며, 따라서 호흡을 할 때마다 깊은 기도를 드리며 현실에 충실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는가? 만약 친구로부터 300달러의 선물을 받는다면 고마워서 몇 번이고 인사할 것이다. 하물며 생명을 받은 것에 대해서는? 숨 한 번 쉴 때마다 그것을 주신 이에게 넘치도록 감사해야 하는 것 아닌가?


미세하지만 강력하고 크나큰 선물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 우리 자신을 깊게 할 때 우리의 눈과 마음과 심정을 깊게 할 때, 우리는 보다 잘 조율될 수 있다. 종종 큰 선물이나 은혜일수록 미묘하여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외적이며 물질적인 선물은 보통 내적인 감사함의 표현이다. 진정 가치 있는 선물은 내적인 마음인 것이다. 비록 보이지는 않는다 해도.


‘승리는 세부적인 것에서 온다'는 말이 있다. 좋은 관계와 믿음 그리고 작은 사랑은 작은 것에서부터 생긴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하는 작은 일들, 작은 희생에서부터 싹튼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를 이유가 없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감사함, 기도생활, 매번의 호흡을 느끼며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위해 애쓰는 것 등 이런 것들이 하나님과의 역동적인 관계를 강화시키는 것이다.


다른 많은 의미 있는 관계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 참부모님과의 관계를 위해서도 투자를 해야 한다. 서로 자신을 투자하지 않는 부부를 상상할 수 있는가? 마음이 서로 떨어져 사는 부부들은 머지않아 이혼하게 마련이다. 의미 있고 지속적인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투자, 즉 영적인 계좌에 입금을 시켜 놓아야만 한다. 통장에서 늘 찾아 쓸 수만은 없다. 믿음과 관심이라는 계좌가 제로(0)가 된다는 것은 투자한 것이 더 이상 없다는 것이다.


길을 걸으며 발 아래 피어나는 꽃들을 보지 못하는가? 우리를 떠받치고 있는 흙을 보지 못하는가? 산과 계곡을 따라 우리를 감싸듯 불고 있는 바람을 느끼지 못하는가? 우리를 그리워하는 구름을 보지 못하는가?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가?


본질적으로는 이렇게 간단한 것이다. 깨어 있으라! 그러나 간단하고 기본적인 일이야말로 하기 어려운 것이다. 우리는 원수를 사랑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우리의 배우자에게 귀를 기울이려 하나,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인가? 실행 하기가 쉬운가?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구속하기를 원하지 않는가? 우리의 나약함을 아는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 놓은 모든 벽과 장애물을 무너뜨리기란 쉽지 않다. 그것들을 모두 부수고 벗겨서 하나님 앞에 마치 타락하기 전 아담 해와가 그러했듯이 그 어떤 것도 숨김없이 완전히 있는 그대로를 보일 수 있는가?


우리는 스스로 항상 마취제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같다. 술은 안 마실지 몰라도 환상과 자신이 기뻐하며 만든 자아상 등의 정신적 술은 마시고 있다. 그 술은 코카인이나 다른 매우 위험한 마약과 같이 뇌에서 도파민과 에피네프린이라는 호르몬을 방출하여 우리를 '대단한’ 존재로 느끼도록 한다.


스스로를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이러한 환상에 빠져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는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야”, “나야말로 참된 고생이 무엇인지 아는 유일한 사람이지” 혹은 “나는 깨달음을 얻은 완전한 존재야” 라고 말한다. 강하게 부인하고 싶겠지만 우리는 그러한 환상, 마음을 마취시키는 '몽롱한 환상' 에 사로잡혀 있다. 사탄은 우리가 ‘취하고 자기 중심적인 꿈에 빠지는 것을 좋아한다.


실제로 사람을 죽인 일은 없을지라도 분노 가운데 자신이 질투하고 있는 사람들을 죽이고 싶어할지 모른다. (오 세상에!) 그들을 미워하고, 그들이 실패하고 고생하기를 바라며, 또한 우리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손해나는 일인지를 보여 주고 싶어한다. 그들이 실수라도 하게 되면 자신이 옳았다며 마음껏 비웃는다. 그들이 비참한 상태에서 고생하는 모습을 보며 음흉한 즐거움을 맛본다.


 우리는 우리의 실제 모습과 외적으로 치장되어 나타난 모습 사이에서 오는 큰 괴리감을 알지 못함으로써 스스로에게 거짓을 말하고 있는지 모른다. 자신의 환상 속에서 아름답게 만들고 채색해서 비밀스럽게 숭배하고(안시일이 아닌 평상시에도) 있는 이기적 자아로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지 모른다. 남의 돈은 훔치지 않을지 모르나 산만한 가운데 또는 남에게 보이고자 기도할 때 우리 자신으로부터 에너지와 시간을 도둑질하고 있다.


이와 같은 것들이 모두 사악함의 음료이며 와인이며 마약이다. 악마가 우리에게 그것을 주는 이유는 그것들이 매우 미묘하고 내적인 것이라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감시망에도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그것들에 취해 있고 마취되어 있다. 그렇지 않은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똑똑히 보아야 한다. 악마가 우리를 마취시키고 있음을, 우리가 그의 잔을 마시고 있음을, 아름다운 요부, 술, 두려움, 분노와 미움으로 우리 마음이 유혹되고 있음을 겸손하게 인정해야 한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아야 하며, 그런 후에야 변화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우리가 병이 들면 그 병을 고치기 위해 아픈 부위를 들춰봐야 하며, 벽 뒤에 숨거나 거울이 아닌 그림자 뒤에 숨어서 진실된 자신을 보지 못하는 것은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 만약 스스로 앞에 또는 다른 사람과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담과 해와가 벗은 것이 부끄러워 몸을 가렸듯이 우리 자신의 부끄러움을 무화과나무 잎으로 가리고 숲 속으로 숨는 것과 같다.


우리가 이러한 마취제들에 의존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면, 이제 하나님과의 진실되고 깊은 영적 관계를 방해하고 있는 자신의 습관이나 병적인 심리 상태 등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더 이상 거짓된 삶을 살지 않게 되므로 큰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맛보게 된다. 우리는 진리 되시는 하나님과 우리의 참된 본성을 대하는 진실되고 참된 존재가 된다.


마약은 뇌 속에서 절정감을 유발하며 한편으로 자신에게 관대한 환상을 심어 준다. 이기적 자아를 살찌우는 이것은 뇌에서 화학성분을 끌어내 중독성 있는 '절정감’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그렇게 얻은 기분은 곧 사라져 버리고 우리는 또 다른 ‘절정’을 찾아 나서게 된다. 이렇게 우리가 분노, 미움, 원한과 두려움 등의 마약에 중독되는 것을 사탄은 좋아하는 것이다. 자, 이제 우리 스스로를 조절하기가 얼마나 쉬워졌는가! 만약 우리가 스스로를 강화시키려는 것을 막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더 의지하고 필요로 하게 되며, 마침내 분열되어 불안정해지며 사악한 것에 의해 조절되기 쉬워진다.


한편,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어리석게도 스스로를 위대하다고 인정하고, 깨달음에 이른 성인(聖人)이라고 믿으며, 이 사람 저 사람들이 자신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모든 마취제들을 보라! 구성원들이 모두 이렇게 스스로 큰 자만심에 취해 있는 사회를 상상해 보라.


그 사회는 공포와 질투 그리고 미움으로 가득할 것이다. 사람들은 스스로 만들어 놓은 자아상과 그것을 위협하는 모든 존재를 인정해야 할까 봐 늘 두려워하며 살게 될 것이다. 스스로의 문제점을 외면함으로써 자신과 남을 기만하고 있는 자신의 성향을 인정하기보다는 차라리 거짓 삶을 사는 것이 나아 보인다. 우리는 어떤 문제에 대해 더 많거나 적어도 동등한 비율의 원인을 제공해 놓고도 얼마나 많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비난해 왔던가! 모든 것은 겉치레적인 찬사에 숨겨지며, 사람들의 화려한 정신적 망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금기시된다. 모든 사람이 스스로에게 부정직하게 살고 있으므로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진실해질 수 없다.


우리는 '빛의 천사' 도 아니며, 깨달음을 얻지도 못했고, 완전하지도 않다. 그렇다고 천명하는 사람들도 실제로 그럴 가능성은 없다. 그들은 깨달음과 완전은 끊임없는 노력과 중생의 과정일 뿐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와 같이 어리석고 중독성이 강한 마음에 빠져서는 안된다. 우리는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인간이다. 인간이라는 것 자체만으로 감사할 수는 없는가?


개인적으로 나는 위대해지거나 역사적인 인물 또는 빛의 천사가 되고 싶은 욕심은 없다. 나는 가장 소박한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는 그러한 겸손함을 지니고 싶다. 하반신 불구가 아닌 정상적인 걸음을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겨울 저녁 아름다운 노을을 감상하며, 봄철 꽃향기에 취할 수 있으며, 들에서 노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을 들으며, 아내의 눈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숨을 쉬는 순간마다 하나님을 느끼며 새 생명을 주신 은혜에 머리 숙여 깊이 감사하고, 참부모님과 이 땅에 같이 살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내겐 충분하다.


'평범한 사람이 하나님과 하나되거나 깨달음을 얻으면 현자(賢者)가 되고, 현자가 깨달음을 얻거나 하나님과 일체가 되면 평범한 사람이 된다'는 말이 있다. 희망, 정열, 그리고 탐욕 속에서 소위 사람들이나 대중매체가 말하는 잘사는 길, 성공의 길이라고 인정하는 것을 찾고자 할 때 우리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기본적인 것을 간과하고 있다.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관계, 즉 하나님과의 조용하면서도 힘 있는, 살아 있는 관계를 잊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성공하면 하나님과 깊고 진정한 관계를 가질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다른 여느 관계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면 할수록 때때로 믿음의 관계를 유지하기가 힘들다고 하더라도 더 많이 받으며 축복이 되어 돌아옴을 의미한다. 하나님과 참부모님과의 개인적인 관계 속에서 오는 축복과 은혜는 무궁무진하다. 우리는 하나씩 단계적으로 깨닫게 될 것인데, 이것은 매우 정상적이며 당연한 과정이다.


아마도 우리가 처음 발견하는 축복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계심을 아는 데서 오는 안도감일 것이다. 평화롭고 기쁜 마음을 지닐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감사해야 할 하늘의 축복이다. 나아가 우리의 나약함과 부족함을 알고 인정할 수 있는 극도의 정직함의 힘과 용기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큰 힘과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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