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 결론 : 개인적 단계 - 天和堂(천화당) - 심신통일(MBU) u

훈독왕 | 20200311060514

天和堂(천화당) - 심신통일(MBU)


헌신


수련을 통해서 얻어진 마음의 평화와 통일, 미덕이 있다면 다른 사람을 위하는 데 쓰이기를 기원합니다. 참된 자아로부터 참사랑의 심정이 빛나서 하나님의 빛과 사랑을 영계 육계의 모든 존재에게 전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고통받는 사람들이 참되고 영원한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참된 사람이 될 것을 맹세합니다. 이 수련을 하나님과 참부모님 그리고 모든 인류에게 바칩니다. 아멘, 아멘, 아멘!


기본적인 수련에서는 몸 마음의 통일을 안정화시키는 훈련을 한다. 우리가 알 수 있듯이 명상을 시작하면 처음에는 몸과 마음의 통일이 불안정하다. 몸은 여기에 있는데 마음은 저기로 가 있다. 하나가 되지 못한다. 혼란의 악마가 몸 마음의 통일을 무너뜨린다.


이 수련에서는 자신을 심판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에게 정직해야 한다. 여기서 혼돈하지 말아야 할 것은 자신에게 정직하다는 것이 ‘느껴지는 - 자신과 - 자신의 - 모든 - 결점을 - 그대로 - 받아들이며 - 더 - 나아지려고 - 노력하지 않는’ 종류의 감상주의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정직함은 큰 용기와 때로는 자신의 부족함을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하지만 항상 희망을 위한 자리는 남겨 놓고 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선물' 을 가슴에 품고 자기 중심적인 것을 줄여 가는 희망을....


자신을 향한 심판은 말하기를 “너는 실패했어! 비난받아 마땅해” 하는 반면, 자신에 대한 솔직함은 “실패할 수도 있어. 그것을 정확히 알고 인정해. 그러나 그것을 고쳐서 앞으로 나아가자” 라고 말한다. 심판의 자리에서는 더 나아질 희망이 없는 반면 정직함에는 내적인 겸손과 인내, 실수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여유가 있다.


근본적인 단계에서는 강력한 원리를 수련한다. 자신에 대한 지배력을 되찾고 주의를 기울이고(우리가 평상시에, 특히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행 동과 상반되는) '그냥 지나가게’ 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원리를 수련한다. 수련이 잘 안 되거나 마음이 방황할 때면 즉시 반응하여 자신을 실패자로 심판하는 대신 그저 그 상태를 마음속으로 자각한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화를 낸다면 노여움이 들어와 우리 자신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즉 노여움이 주체가 되며 우리는 대상이 된다. 그리하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노여움(이것 역시 질투나 시기, 미움, 원한 등과 마찬가지로 괴로운 상태라고 할 수 있다)에 의해 주관을 받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그 노여움을 마음속으로 인지하고 꼬리표를 붙이게 되면 그것을 인식하게 될 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 노여움을 없앨 수 있게 된다. 우리 자신이 주체가 되고 노여움이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마음에 대한 지배력과 조절력을 되찾게 된다. 그리고 이제 우리 자신을 조절할 수 있으므로 화가 ‘그냥 지나 가도록’ 선택할 수 있으며, 다시 호흡으로 돌아갈 수 있다. '다시 새롭게 되는’ 수련을 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조절할 수 있는 이 간단한 수련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 보라. 우리가 좀 더 주의를 기울이고, 해로운 감정 등을 그냥 지나가게 하며, 새로 시작하는 것을 배울 수 있다면 우리 및 다른 사람들의 생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인생에서 힘든 일을 겪은 뒤 자기 연민이나 우울에 빠진다거나 자신과 타인에 대해서 폭력적으로 변하는 대신, 분노와 좌절과 흥분과 미움에 수동적으로 점령되는 대신, 그 감정들을 적극적으로 인지할 수 있고 그것들을 지나 가게 하여 신선한 시작으로 옮겨갈 수 있다면 실제적으로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가! 갱 조직의 한 명이 모욕을 참지 못해 총을 꺼내 다른 사람을 겨누었을 때, 만약 그가 모욕이란 감정에 정착하지 않고 자신의 이기적인 자아를 방어하려는 경향과 불안정함에서 오는 두려움을 인지하여 그것을 그냥 지나가게 하고 새롭게 시작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심신통일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이것은 '자극’ 과 '반응' 사이에 공간을 마련해 준다. 어떤 종류의 자극은 우리를 몹시 격앙시켜서 우리는 화가 난 나머지 언어폭력이나 물리적인 구타, 그 외의 공격을 통해 그 화를 표출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충분히 심신통일 수련을 한다면 그러한 자극이 왔을 때 그 자극과 ‘싸우거나 도피하는’ 반응 사이에 '호흡' 할 수 있는 여유를 만들 수 있다. 우리는 ‘마음 비우기 기술' 을 이용하여 폭력적이고 괴로운 심리 상태에 대해 주체의 입장에 설 수 있으며, 그럼으로써 고통스러움에 지배받는 대신 그것과 일정한 거리를 둘 수 있게 되며, 자신의 마음에 대한 지배력을 되찾게 된다. 우리는 다시 호흡으로 마음의 중심으로, 일상적인 생활로 돌아감으로써 간단하게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게 된다. 평화롭게 되기를 선택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수련으로는 세계를 돕거나 폭력을 막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상상해 보라. 사람들이 화를 내거나 다른 사람을 해치려 할 때, 만약 모든 사람들이 그 분노를 생각하고 객관화시켜 분노와의 사이에 거리를 두며 그것을 지나가게 하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만 있다면 이 세계는 정말로 다르게 바뀔 것이다. 이것이 우리 자신의 심신통일을 실현함으로써 오는 강력한 힘이다. 또한 이것은 참아버님께서 심신통일을 선교 활동의 중심적 주제로 삼으시는 이유이기도 한 것이다.


 이것이 가장 근본적이며, 명상적인 기도 훈련이며, 결코 간과되어서는 안되는 점이다. 이 훈련을 하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을 마음에 두고 하나님을 알아 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걷고 있을 때에 다른 수천 가지의 잡다한 생각에 마음을 빼앗기기보다는 우리가 걷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깊이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조그맣고 간단한 일상에서조차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깊은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 설거지를 하는 동안에도 물을 인지하고, 접시의 질감을 느끼며, 우리가 어떻게 서 있고 숨을 쉬는지 등에 대해서 알아차릴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깨어서 인식하고 살아갈 기회를 주고 계심을 알 수 있다.


이 수련은 우리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이며 자기 중심적인 상태에 의해 조정 받고 있는지, 사탄이 얼마나 교묘하게 우리를 유혹하고 있는지 좀 더 정확히 알게 해 준다. 동시에 그러한 상태를 연마할 수 있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이 훈련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이곳이 바로 하나님의 집을 지을 수 있는 터전이기도 하다. 따라서 튼튼한 기반을 다지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한다.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데 지름길은 없다. 항상 마음에 새기고 심정적이 되어야 한다. 영적인 안테나를 세우자!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니.


결론 : 개인적 단계


심신통일 훈련의 출발점은 우리가 분열되어 있고 집중력이 결여되어 있으며 악마의 책략에 쉽게 넘어가는 나약한 존재라는 현실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시작한다. 인식론적으로 불완전한 존재임을 이해하는 것이다. 인간은 '유한' 이며, 하나님은 ‘무한' 이다. 혹자는 이것을 '긍정적' 이 아닌 '비관적' 이라고 비판할지도 모른다. 물론 우리가 결점만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거나, 또는 그렇게 믿고 싶어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말이 될 것이다.


 심신통일 훈련은 이와는 정반대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불완전함을 알기에 우리는 희망을 가지고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마음에 새기거나 발전시켜야 할 그 무엇도 없다면 우리는 정체되어서 부패될 것이다. 이것이 내게는 더 비관적으로 들린다. 자신의 약함을 알기에 정신적 육체적으로 보다 더 건강한 개인이 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이다.


어떤 수련은 개개인이 지닌 자아 관념을 고양시키고, 이기적인 자아를 어루만지며, 기분 좋은 특효약을 제조하며, 병들어 있는 자신을 보지 못하도록 마취시킨다. 그러나 여기에서 오는 결과란 임시적이고 순간적인 즐거움뿐이다. 우리들의 문제는 계속 남아 다시 떠오르며 우리를 이전의 사이클로 잡아당겨 영적인 약함을 가리기 위해 더 많이 의례적인 말만을 하게 할 뿐이다.


우리가 어떤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 심판적이지 않고 동정적으로, 마치 의사처럼 할 수 있다면 그 문제를 다룰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많은 잘못된 망상의 근원을 식별함으로써 우리 자신과 우리의 영향력 아래 있는 사람들이 참되고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데 방해가 되는 고질적인 병을 뿌리뽑을 수 있다.


이 수련을 통해서 솔직함과 용기를 얻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진실하고자 하는 결심을 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참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하는 길에 있어서는 언제나 진실되어야 한다. 보다 진실되고 보다 사랑하고 보다 정직하고 보다 현실적인 자신이 되도록 끊임없이 노력한다면, 우리의 마음과 가정과 이 세계에 천국을 구현할 수 있다.


하나님은 항상 그 자리에 계시며 우리를 치료하고 도와주신다. 우리는 그저 조용히 자신을 가다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침묵의 교류에서 나오는 지혜를 들어야 한다. 내 경우 가장 심오하고 깊은 경험은 이른 새벽 훈독회가 시작되기 전 참아버님과 말 한마디 없이 조용히 앉아 있을 때 오곤 했다. 그 침묵 속에서 나는 자녀들이 부모로부터 흔히 듣기를 바라는 그 어떤 말(사랑과 칭찬의 말 등)을 기대하는 이기적인 희망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또한 그 깊은 침묵의 순간에, 나는 하나님께서 가장 가까이 계심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가끔 이와 같은 고요함에 감동되어 아버님과 함께 눈물을 흘린 적도 있으며, 때로는 너무나도 겸손한 침묵과의 깊은 교감으로 나도 모르게 머리 숙여 나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곤 하는 것이었다.


 그 고요함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발견한다. 칭찬받기만을 바라고 고귀한 존재가 되기를 원하는 모습을 본다. “이렇게 열심히 기도를 하니 나는 훌륭한 사람이야.” 또는 “친구들은 드라마를 보는 시간에 나는 이런 노력을 하고 있으니 내가 얼마나 놀라운지 알겠지?” 등의 말을 한다. 내적인 나약함을 가리기 위해 칭찬받기만을 갈구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의 약함을 정확히 보는 훈련을 해야만 한다. 댐에 생긴 균열들을 보지 못한다면 조만간 밀려드는 파도에 우리는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침묵의 순간 속에서, 귀담아 듣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불완전함과 이기적인 경향을 볼 수 있고, 또한 듣는 것(겸손한 마음이 인도하는 대로 자신을 맡기는 것)을 배울 수 있다.


겸손이란 큰 힘이다. 겸손함이 수동적임 또는 할머니의 온화한 행동으로 잘못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겸손은 신 (神) 앞에 선 인간으로서 인식론적인 우리의 부족함을 근본적으로 이해하는 데서부터 온다. 이것을 기도 생활의 출발선으로 정한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어떤 교훈도 그것이 기분 좋거나 가혹한 것이거나 관계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지혜 그리고 은혜의 가르침과 축복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깨어 있고 주의를 기울이며 알아차려야만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깊은 위로를 드리는 것이요, 진정한 마음으로 참부모님을 모시는 것이다. 나의 바람은 우리 모두가 우리의 능력뿐 아니라 약함을 앎으로써 자신에게 보다 솔직해지며 하나님, 참부모님과 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가는 개인적 부활의 과정을 시작하는 것이다. 인생에서 순간 순간마다 하나님의 선물을 느끼고 새로운 감사함으로 채우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제나 조금 더 수련에 임하기를, 좀 더 수련에 임하기를, 좀 더 수련에 임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