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 天和堂(천화당) u

훈독왕 | 20200303124141

天和堂(천화당)



영적인 길이란 자기 중심적 방법으로 자신에 대해 좋은 느낌을 갖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진실된 심정과 솔직함으로 우리가 지니고 있는 병적인 질병과 문제, 다른 사람을 향한 미움과 불안, 하나님과의 관계 부족, 내적인 나약함 등을 직접 마주하는 것이다. 병을 판단할 수 있는 의사가 되어야 한다(진단).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며(병인론(病因論)), 병을 확인하여 나아가며(질병의 회복에 대한 예후), 치료를 계속해야 한다(치료 요법).


우리는 중병에 걸린 것을 지금 막 발견한 사람과도 같이 처음에는 깜짝 놀라 모든 것을 부정하려 한다. 처음에는 믿고 싶지 않으나 천천히 병의 실체를 손에 쥐게 된다. 우리는 병을 인정할 때 역설적이게도 더 큰 자유, 나약함을 보고 고칠 수 있는 자유로움을 얻는다. 그 내적인 자유를 잘 키우고서야 비로소 진실로 깊고 감사하게 삶을 대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때때로 문제와 골칫거리를 잊기 위해 사탄의 마취제나 술 혹은 와인 등을 사용하고자 하며, 때로는 고통을 마비시켜 편안한 감정으로 바꿔주는 영적 스승에게 의지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다시 강조하건대, 우리는 강하고 성숙되어야 한다. 숙련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아버님의 말씀을 들으며 즐거워하는 이유이다. 아버님은 솔직하시고 분명하시며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충격을 주신다. 아버님은 메시아로서 기대되는 말씀과 인식을 뛰어넘어 충격을 주신다. 아버님은 고위 인사나 성직자들 앞에서도 소리치시며 전혀 부끄럽지 않게 '절대 성 (性)에 대해 말씀하신다. 또한 깊은 통찰력으로 우리의 마음을 꿰뚫어 우리가 지닌 이기적인 모습에 일격을 가하시고 심지어 수치스러운 말씀, 평화를 위해서라면 배우자와 아이들을 팔아 공산주의자와도 결혼할 수 있어야 한다거나 발가벗고도 아무 부끄럼없이 거리를 뛸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도 아무렇지 않게 하시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서 매우 극단적인 문구들을 문자적으로 다룰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다른 종교의 훈련 방법을 비교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아 한 가지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아마도 참아버님께서는 다음의 선불교의 도사와 같은 입장에서 터무니없어 보이는 말씀을 하셨을 것이다. 선불교의 도사는 제자들을 일깨워 주기 위해 판독하기 힘들어 보이는 “부처를 만나거든 그를 죽여라”고 말했는데, 그것은 우리가 지닌 환상을 깨고 신성하고 순수한 본성으로부터 스스로 분리시켜 놓은 감정적 육체적 심리적 영적인 모든 장벽과 장애 요소를 벗어 버리라는 의미심장한 뜻인 것이다.


우리가 지닌 문제점들을 용감하게 직시해야 함을 다시 강조한다. 깊은 동정심과 솔직함과 진실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한다. 진리의 옷을 입어야 한다.


일단 진실되기를 수련하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과 연결된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이 진실(진리)이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길을 따라 영적으로 정화시키고 치료하며 궁극적으로 우리의 치유자이신 하나님, 은혜와 용서, 새 생명과 새 관계를 허락하시는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기 위해 수련하는 동안 내내 하나님의 보호와 도움을 받는다.


세상이 자신을 중심삼고 돌고 있다고 믿으며 자기만을 중심한 생활을 하면 실망만을 맛보게 될 뿐이다. 세계에 대항하여 싸우는 것이 '나' 라면, 나는 언제나 희생자가 되며 싸움에서 패할 것이다. 나는 '저기에 있는 저들보다 확실히 수적(數的)으로 불리하다. 만약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구분하고 나누어 분리주의자가 된다면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나는 점진적으로 그러나 분명하게 스스로를 고립시키게 된다.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밖에 있는 ‘저들’ 에게 지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자신과 이기적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 더 많은 벽과 방어와 보호막을 쳐야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들이 자신보다 더 위대하고 더 크고 더 부유하게 보이며, 곧 그들이 가진 것에 탐욕을 느끼게 된다. 그들이 가진 것을 빼앗고 싶어지며, 그런 후에야 마음의 안정을 얻고 즐거움을 느낀다. 그러나 곧 더 부유하거나 더 성공했거나 단순히 자신보다 행복해 보이는 또 다른 사람들을 보게 되면 다시 질투하고 분노하고 미움을 키운다. “어떻게 그들이 그렇게 행복할 수 있지? 내가 이렇게 고생하며 치열한 삶을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그들은 너무도 쉽게 살고 있잖아?” 라고 묻는다. 나는 더 많은 것을 원하고 그래서 잠시 동안 부유해질 수도 있으며, 곧 사라져 버리고 말 즐거움을 누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자존심과 우월감에 불과하다. 잠깐의 즐거움은 곧 사라지고 나는 불행한 마음으로 혼자 남아 다시금 내가 ‘가진 것’을 다른 사람의 그것과 비교하며 현재의 상태에 대해 세상을 원망한다.


나는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분리할 수 없다. 나는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다. 부모가 낳아 주었기에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부모가 함께 하지 않았다면 '나' 라는 존재는 있을 수 없다. 만약 그분들이 어떤 한순간 떨어져 있었다면, 이 자리에는 나 대신 다른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나는 태어난 후 태양과 달, 바람, 비, 땅을 일구는 농부, 배설물로 땅을 기름지게 하는 동물 등등에 의해 영양을 공급받으며 성장해 왔다. 내가 태어나기까지 있어야만 했던 수많은 것들을 생각해 보면, 그것은 정말로 기적과 같은 일이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걸을 수 있다는 것도 기적이다. 생각해 보면, 나의 존재 자체가 하나의 기적이다.


어떤 것도 우리 자신과 분리될 수는 없다. 우리는 과거에 살다 간 모든 조상들에 의한 산물이며, 동시에 앞으로의 후손들에게 물려줄 혈통을 지니고 있다. 과거와 미래가 우리와 떨어진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이곳에 함께 있는 것이다. 사후(死後)에 우리의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 서식 동물들에게 영양분이 되어 줄 것이다. 우리의 삶과 자연의 세계, 태양, 달, 우주 등의 생명은 모두 같은 한 분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다.


 우리는 만물의 일부이며, 만물 역시 우리의 일부이다. 우리가 그러하듯이 다른 모든 존재들도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왜 다른 사람에게 기울이는 관심이 곧 우리 자신을 위한 관심이 되는가에 대한 설명이다. 우리가 자기 중심적이며 분리주의적인 행동을 한다면 스스로를 분리시켜 외톨이가 되어 끊임없는 갈등과 긴장의 삶을 살게 된다. 그러나 자신이 하나님과 피조세계, 즉 모든 인간과 만물들과 얼마나 깊게 얽혀 있는가 하는 것(통일주의의 실천)을 깨달을 수 있다면 짓눌렸던 마음은 편안해지고 그 광활한 관계 속에서 우리는 자유로워진다.


계속하여 하나님, 만물과 더불어 일체를 이루어 살게 되면, 작고 제한되었던,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고 느꼈던 자아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나면 모든 사람들 그리고 피조물과 친밀함을 느끼게 된다. 햇빛과 비로부터 식물과 동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자연으로부터 받지 않은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를 지켜 주고 보호해 주는 많은 것들과 온정적인 사람들에 의해 양육되어 왔음을 알게 된다. 하나님 아래 하나의 가족으로서의 인간애를 느낄 수 있고, 부모에게 있어 자식의 존재와도 같이 우리가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중요하고 귀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똑같이 귀함을 깨달아야 한다. 그들이 스스로를 모든 것 또는 모든 사람과 경쟁관계로 보는 잘못되고 한정된 분리주의적 인식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것을 보면 슬픔을 느낄 수 있어야 하며, 그들에 대한 사랑을 지닐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의 삶을 존중하며 그러나 동정심을 가지고 그들이 자기 중심적이 되어 좌절과 불쾌함을 느끼는 세상을 떠나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온갖 노력을 다해 도와야 한다. 그러나 우선 우리 자신이 자기 중심적인 세계관을 떨쳐 버려야 한다. 그런 후에야 하나님과 세계와 연관성이 없다고 느끼는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 모래 늪에 두 사람이 빠졌을 경우 다른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빨리 그 속에서 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둘 다 사라질 것이다.


 이것이 몸 마음의 통일이 결정적이고 심오하며 현실적이고 변화를 줄 수 있는 이유이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내면에 잠재된 사악한 자신과 마주해야만 한다. 왜 이 세상에 평화가 없는지 근본적인 이유를 다루어야 한다. 왜 우리 자신의 마음속에, 배우자와의 관계 속에, 혹 친구간, 가족간, 사회간, 국가간, 세계 속에 평화가 없는 것인가?


만약 우리가 계속하여 허위 속에 산다면, 본질적인 참의 생활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우리 자신과 우리 주변에 고통을 주는 것이 된다. 참아버님께서는 항상 '참' 이라는 단어를 쓰신다--참사랑, 참부모, 참된 남편·아내, 참형제, 참자녀, 참사람 등등. 그러나 참아버님의 제자로서 우리는 얼마나 참됨을 수련하며 구체화시키고 있는가? 우리의 삶에 얼마만큼의 진실됨이 있는가?


 말은 쉽게 하지만, 생활은 참되게 못하기에 우리는 고통 속에서 신음한다. 우리는 참부모나 참형제가 되지 못하고 있으며 자신에게 거짓을 행하고 있다. 우리는 사탄의 책략에 빠지기도 하고 감질나게 만드는 마술과 묘기에 유혹되어 살아가고 있다. 나 또한 그러했음을 잘 알고 있다.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자신이 처한 진실, 즉 하나님과 자신 앞에 벗은 모습 그대로, 가공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먼저 직시해야만 한다. 그런 다음 병적으로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과정이 뒤따른다. 만약 죽어 가는 분재가 있다면 먼저 그 질병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만 한다. 그 문제를 무시하고 약간의 페인트칠만으로 얼버무릴 수는 없다. 잎들은 시들어 가고 뿌리는 위험에 처해 있다. 나타난 문제들을 정확히 봐야 한다. 뿌리에 비해 가지들이 너무 자라 나뭇잎까지 충분한 영양분이 올라가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가? 저 안 깊숙이까지 영양은 잘 공급되고 있는가? 기생충이 있거나 뿌리가 다치지는 않았는가? 많은 경우 우리는 시들어 가고 있다. 나 역시도 한 때 그러했다. 많은 경우 공허함과 절망감에 휩싸인다. 자기 중심적인 것을 비우고 하나님의 동정과 은혜로 자신을 채우는 대신 거대한 이기심을 손에 꼭 쥔 채, 우리의 살과 뼈는 서서히 죽어 가고 있다.


 깊이 들여다보면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러기에 참아버님께서 ‘참' 또는 '진실된, 참된, 진짜의' 라는 단어를 사용하시는 것은 매우 통렬한 것이다. 그 단어는 우리가 중심하고 가야 할 길을 근본적으로 정확히 지적해 주신 것이기에 강력한 힘을 지닌다. 우리는 말과 행동만 참되게 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정신과 마음속에서도 참된 생활을 해야 한다. 이것이 몸 마음 통일이다. 참된 모습이 되는 것, 이것이 심신통일 수련이다.


스스로에게 진실되지 못하다면 절대로 평화를 맛보지 못한다. 세상에 대해 진실되지 못하다면 세상은 언제나 우리를 심판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진실되지 못하다면 결코 하나님과 의미 있는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없다.


영적인 길은 언제나 즐거우며 '기분 좋은 것만이 아니라 거친 것이다. 나는 여러분들을 달콤한 말로 취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 이런 종류의 달콤함이 주는 '기분 좋음’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순식간에 사라져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용감하게 분열된 몸과 마음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동정심을 가지고 정직하고 현실적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나는 내 자신을 '깨달음' 을 얻었거나 완성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자신을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으로 생각하지는 않으며, 그보다는 뭐랄까, 건강식품을 만드는 요리사쯤으로 여긴다. 나는 여러분이 먹고 있을지 모르는 '나쁜’ 음식을 구별해 내고 최대한 ‘좋은’ 음식을 제공해 줌으로써 도움을 줄 수 있다. 몸에 나쁜 음식을 좋다고 말하거나 몸에 좋은 음식이 항상 최고의 맛을 낸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는 가능한 최고의 건강식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여러분을 대신해 운동을 하거나 매일 권장량의 적절한 야채와 채소를 먹게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건강과 체력유지를 도와줄 방법과 운동을 조언해 줄 수는 있다.


나는 현재 섭리가 어느 정도 진행되어 가고 있는지 알고 싶을 때마다 하나님께 여쭤볼 수 있는 하나님의 전화번호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이 알고 싶을 땐 참아버님께로 주의를 집중하면 된다.


아버님께서는 가자 지구(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수도)에 가라고, 몸과 마음을 통일하라고, 또 초종교간 평화를 이루라고 지시를 하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여러분이 가자 지구에 있거나 종교 지도자들과의 화합을 위해 어느 수도에 모여 있는 동안 몸과 마음이 통일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나 또한 나 자신의 삶에도 같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지만, 지금 이 순간 나는 최고의 건강식이며 가공하지 않은 천연적인 이스트 가든 성지로부터 온 신선한 몸 마음 통일 (MBU) 음식을 만들려고 한다.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건강하기를, 그리고 건강하게 만들기를(자신과 가족, 종족, 사회, 민족, 세계, 우주, 하나님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