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和堂(천화당)
생각의 열차 - “모두 타세요"
기도를 하다 보면 마음이 흩어지곤 한다. 예외 없이 모두들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여러 가지 잡념들이 들어온다. 집중이 깨어진다. 마음이 이들 잡다한 생각들에게로 전속력으로 달려가 붙으며, 그것들과 화동하고, 결국 그것에 빠지게 된다.
이 분열 속에 많은 에너지가 낭비된다. 잡념이 마음속에 들어오게 되면, 그것은 기차와도 같아서 기차역에 멈추어 모든 승객들을 불러 태운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생각의 열차' 에 오르며 계속하여 다른 생각의 열차로 갈아타고 있는지, 그리하여 결국은 공상이라는 땅에 다다르고 있는지에 대해서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생각의 열차는 또한 침묵의 기도 중에도 다가온다.
우리가 마음을 가라앉히려 노력할 때면 과거 또는 미래에 대한 생각의 열차가 종종 우리를 차지해 버린다. 과거의 어떤 일 때문에 자신 또는 남을 비난하며 그것을 계속 잡고 있다. 그 일을 계속 반복해 생각하며 분노와 두려움과 미움이 그 속에서 샘솟듯이 일어나는 것을 느낀다. 다른 한편으로는 미래에 대한 공포 또는 실패하거나 적절한 대우를 받지 못할 것을 염려하는 두려움에 갇혀 버린다.
과거나 미래 중에서 어느 생각의 열차에 있든지, 우리는 가장 중요한 장소인 현재에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현재' 라는 순간만이 우리에게는 실제적인 것이며, 그것은 무한하여 계속적으로 아름다운 보물을 하나씩 내보이며 매 순간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으며, 미래는 아직 감추어져 있다. 만약 우리가 지금 이곳에 머물지 않는다면 과거를 가지 못하게 잡고 있을 뿐 아니라 미래를 위해 더 나아지지도 못하는 것이다. 시간은 항상 '지금' 만이 있을 뿐이다.
수련을 할 때, 지난 어떤 일을 후회하거나 자신의 조절력 부족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더 많은 불행이 오지는 않을지에 대한 두려움에 떨기도 할 것이며, “언젠가는 더 나은 사람이 되겠지” 또는 “앞으로 이 태도를 바꿀 거야” 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에 머물며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또 우리를 가두고 있는 태도를 변화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대신, 우리는 과거의 경험 그리고 미래에 대한 공상과 두려움을 꼭 잡고 있다. 불행하게도 이것으로는 과거를 극복할 수도 없고, 더 나은 미래를 창조할 수도 없다. 늘 과거 또는 미래에 살고 있으므로 현재 우리들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는 어울릴 수가 없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이러한 생각의 열차를 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열차에 올라 우리의 이기적 자아는 과거의 일과 미래의 꿈과 관계 맺으며 즐거워한다. 나는 그때 행복할 수 있었는데 이렇게 불행해진 이유는 그녀가 이렇게 저렇게 했기 때문이야 라고 말하며 '~ 했었어야 했는데' 의 게임을 하거나, 또는 “내가 열심히 했다면 최고가 되었겠지만 정말이지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어” 라고 말하며 노력이 부족했던 것을 정당화시키곤 한다.
우리는 마음에 떠오르는 대로, 그것이 우리에게 나쁜 행동을 했다고 생각되는 사람이건, 우리에게 역경을 주는 외적인 환경이건 상관없이 희생양을 만들어 모든 현재의 환경과 고난에 대한 비난의 화살을 돌린다. 이와 같이 우리는 과거에 묶인 죄수로서 현재 고난의 상태를 외적 환경의 결과로 설명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결실적으로 우리는 모두 얼마간의 스트레스를 받으며 고생하고 있다. 그것은 육체적인 배고픔이나 질환보다는 정신적인 고통과 고뇌일 것이다. 우리는 지나간 과거에 대해 계속하여 우리 자신이나 또는 누군가를 탓하고 있고, 그러므로 미래에 한계를 지우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과 저것은 할 수 없어” 또는 “난 저것은 도저히 할 수 없을 거야” 라고 말하며 '할 수 없음' 의 게임을 하는데, 이것이 스스로에게 정신적인 한계를 부과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러한 사고 방식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짓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다고 믿으면 할 수 있으며, 그렇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이다. (스트레스로 가득 찬 현 세상에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마음의 평화에 다가가는 사람은 '지쳐 쓰러지는' 일이 보다 적을 것이요. 더 많은 심적 인내와 명백함을 소유하게 된다.)
우리가 수련을 통해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려 노력할 때, 즉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주고 계시는 것을 느끼지 못하도록 마비시키는 온갖 종류의 분열과 혼동을 멈추려 노력할 때, 사탄은 안절부절못하게 된다. 사탄은 편집증적인 집착을 가지고 우리를 유혹하고 정신을 흐트러뜨리며 방해할 온갖 종류의 생각들을 보내는 것이다.
그 생각의 열차는 즐거움, 두려움, 시기, 분노, 미움 등 수많은 다양한 것들을 싣고 온다. 침묵하고 있다고 해도 처음에는 전혀 고요해지지 않는다. 마음은 꽤 소란스럽다.
그렇지만 절망하지 말라! 그 소음은 곧 가라앉을 것이다. 마치 모든 폭풍도 언젠가는 끝나듯이 생각의 열차 역시 사라진다. 생각의 열차를 타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 자체로 이미 그것을 주관할 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자유롭게 기차에서 내릴 수 있다. 만약 내리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이 기차에서 저 기차로 바꿔 타게 될 것이며, 이 연결이 너무도 자연스러워 사탄은 수련과 기도를 해야 할 시간 전체를 빼앗아 갈 것이다.
우리는 생활 속에서 얼마나 많이 즐거움에 집착하는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칭찬할 때, 또는 자신 스스로를 '훌륭하다' 고 느낄 때 우리는 한껏 고양된다. 그러나 때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끼기도 하여 사람들에게 우리의 경이로움을 인정해 달라고 강요하고,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 칭찬하지 않는다고 화를 내기도 한다. 그리고는 우울해진다. 보통 우리는 이와 같이 기복이 심한 사이클 속에 있다. 다른 사람에게서 칭찬을 들으면 자신감이 생기고, 그렇지 않으면 자기 불신감이 드는, 의기양양함과 의기소침함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기쁘거나 우울하거나 상관없이 생각의 열차에 대해 인식하게 되면, 그것들이 영원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지나가는 것에 불과하다. 즐거움을 느낀다면 그런 기분에 빠져들기만 할 것이 아니라 그 기쁨을 경험하며 동시에 자신과 다른 사람을 더 기쁘게 할 수 있는 보다 지속적인 가치에 대해 생각하는 훈련을 할 수 있다. 이와 비슷하게 의기소침함을 느끼게 될 때에는 자기 연민에 빠져들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생각이 곧 사라질 것이라는, 즉 언제나 희망이 있다는 것을 교훈으로 배울 수 있다.
우리의 감정 상태가 큰 기쁨이거나 깊은 슬픔이거나 지나가는 것임을 아는 것만으로도 놀랄 만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특별한 순간의 즐거움이 영원하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더 깊은 감사와 성숙함으로 그 기쁨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마찬가지로, 힘든 일이 닥치게 되면 머지않아 새 날과 새 기회가 올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이겨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탄은 어리석지 않다.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시간을 낭비하고 우리의 정신적 에너지, 영적인 에너지를 탕진하기를 종용한다. 사탄은 가장 아름답고 빛나 보이며 감질나게 하는 생각의 열차를 보내 우리를 '망상의 세계', '지옥의 도시’ 또는 '자기 중심적인 곳' 으로 데려가려 한다. 만약 일상적으로 이러한 열차를 타게 되면 우리의 정신은 사탄이 제일 좋아하는 상태가 되어 몸과 마음이 분열되고, 쉽게 질투하고 화내며, 미워하고 욕심부리며, 남을 무시하게 된다.
우리는 과거에 경험했던 영적인 체험을 기억하며 그와 같은 경험을 다시 하기를 갈구하곤 한다. 한 형제는 하나님을 만났던 영적 체험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 날은 하루 종일 하나님의 사랑이 자기 몸 전체를 감싸는 충만함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그 다음날 그 느낌은 사라졌으며, 그 후 30년간 그는 또 다른 그와 같은 경험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즉시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다시는 그와 같은 경험을 기대하지 마세요. 왜 하나님으로부터 그런 일을 원하고 기대하며 또 기다리고 있는 거지요? 당신이 기다리는 것은 어떤 상상할 수 없는 굉장한 경험일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지난번과 같은 것을 경험하게 해 주신다 하더라도, 그것이 과거의 것보다 더 크지 않는 한 당신은 그것을 느끼지 못할 거예요. 왜냐하면 당신의 기대가 이미 너무도 커져서 그것과 비교할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것들은 빛을 잃게 될 뿐이지요. 그러니 기대를 접으세요!"
지난날 참아버님과 어떤 좋은 경험을 했다고 하자! 그것이 얼마나 근사했는지 상기하면서 그러한 경험을 또 계속하게 되기를 갈구한다면, 참아버님께서 어떤 축복을 내려 주신다고 해도 우리는 그것을 깨닫지 못할 것이다. 지난번에 참아버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았다면 계속하여 칭찬 받기를 원하겠지만 그와 같은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커져 가고 있는 우리가 기대하는 것이 충족되지 않으면 사랑받지 못한다고, 관심 밖에 있다고 느끼게 되며, 쉽게 비난히고 적의(敵意)와 미움의 생각을 갖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기대도 갖지 않는다면, 만약 참아버님으로부터 어떤 칭찬이나 사랑도 기대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은 기분 좋은 놀라움의 대상이 될 것이다. 만약 아버님으로부터 칭찬의 말씀을 듣게 되면 감사함을 느끼고 그것을 그대로 지나가게 할 것이다. 아버님으로부터 어떤 비평을 듣게 되면 그것으로부터 배우고 그것을 또 그대로 지나가게 할 것이다. 우리가 배우자나 친구, 참아버님, 혹은 하나님으로부터 자기만을 중심한 비이성적인 기대를 가진다면 불행히도 우리가 만나게 되는 것은 실망과 좌절뿐이리라.
그러므로 수련을 함에 있어 중요한 것은 언제나 초심(初心)을 가지는 것이다. 하루하루 새로운 날을 맞이할 때마다 새로 시작하는 초심자가 되어 보자! 왜 숙련자가 되기를 갈구하는가? 숙련자들은 스스로의 기술에 노예가 된다. 그들은 자신이 모든 것에 숙달했다고 느끼며, 더 이상 자신을 개방하거나 성장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진정한 숙련자는 언제나 초심자가 된다. 그들은 언제 어디서나 배우고자 하며, 따라서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다.
초심자들은 언제나 신선하며, 그들에게 배움의 지평선은 무한하다. 예를 들어 프로 운동선수들은 새로 시작하는 사람과 같이 신선함과 긴장감을 가지고 오늘을 훈련해야 함을 잘 알고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근육이 쇠약해져 결국 경기에서 패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숙련자들은 그들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덫에 걸리기 쉽다. 이런 점에서 참아버님은 진정한 숙련자이시다. 참아버님께서는 하나님 앞에 언제나 새로 시작하는 학생이시기 때문이다. 심지어 작은 아기로부터도 많은 것을 배운다고 말씀하신다.
심신통일에 대해 가르칠 수 있는 복된 시간을 가질 때면 나는 늘 스스로에게 그것이 가장 필요한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상기시키곤 한다. 스스로가 소위 어떤 분야의 전문가라고 믿는 것은 유혹적이고 황홀한 것이다. 이것이 죽음의 덫이다. 나는 내가 얼마나 많이 수련을 하고 있는지, 얼마나 많이 앞서 있는지 등에 대한 생각에 갇히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다. 이것들이야말로 이기적인 자아로 가는 함정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기꺼이 초보자가 되려는 의지와 신선함과 개방성을 지니고 새로운 날, 새로운 순간, 새로운 수련의 과정을 맞이하는 것이다.
나는 늘 사람들에게 묻곤 한다. “왜 숙련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초보자가 되는 것이 훨씬 더 나은데....” 나는 스스로가 깨달음 또는 완전에 이르렀다든지 가장 높은 의식의 경지에 도달하였다고 믿는 여러 사람을 만나 보았는데, 그때마다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초심자가 되십시오.” 우리가 '완성' 이라는 의식에 갇히게 되면 자기 중심적이 되고, 다른 사람들이 모자라게 보이며, 따라서 우리는 악마가 될 수 있는 잠재성을 지니게 된다. 즉 모든 것을 비교하는 놀음을 하게 되며, 인간의 상호 연결성에 대한 의식이나 동정심은 즉시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초심으로 남아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과 참부모님 그리고 우리 주위의 사람들 앞에 늘 걸음마를 시작하는 초보자이며 배우기를 원하는 학생으로 남는다면, 우리는 계속 배우고 성장하는 부(富)를 갖게 될 것이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스스로 위대하다는 인식의 창살에 갇혀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이들에게 도움이 되기보다는 해가 될 것이다. 따라서 주의를 기울여 수련하고 수행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직시(直視)하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아라!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인정하는 것 또한 수련의 한 과정이다. '수련한다'는 것은 우리가 습관적으로 타곤 하는 '열차'가 무엇인지 깨닫는 것이다. 깨어서 생활하는 시간의 3분의 2 이상에 해당하는 시간들을 생각의 열차를 탄 채 보내고 있는데도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가 그동안 어떻게 생활하고 있었는지 볼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소위 '깨어 있는 혼동'의 상태에서 주로 살고 있음을 보여 준다. 여러 가지 독성에 노출되어 있으며 우리 마음은 더러운 기름때로 얼룩져 있음을 보게 된다. 자신의 에너지를 심신통일을 이루거나 강화하는 데에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생각의 열차를 다루며 참사랑을 강화시키는 데, 심오하고 사려 깊은 정신적 생활을 강화하는 데 우리의 에너지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몸 마음 통일은 하나의 과정이며, 인내심과 부지런함이 요구된다. 역기를 드는 것에 비유해 본다면 1000파운드 역기를 들기 위해서는 10파운드 무게부터 시작해서 점차 20, 50, 100, 180파운드 등의 무게로 늘려 들어야 한다. 아쉽게도 여기에 지름길이란 없다. 가을에 열매를 거두어들이기 위해선 봄에 해야 할 일이 많은 법이다.
가을이 오고 나서 씨를 심으려 하지 마라! 그것은 헛된 일이다. 건강하고 조화로운 몸과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생각의 열차' 라는 감정의 강물에 떠 있는 낙엽과도 같아서 강의 흐름에 의해 전적으로 조정되고 있다. 그러나 심신통일을 통해서 우리는 바위와 같이 굳고 안정적이 되며, 더 이상 마음의 파도에 이리저리 떠밀려 다니지 않게 될 것이다.
악마적인 것을 천사적인 것으로, 혼란한 생각의 열차를 몸 마음 통일로 바꾸기를 원한다면, 우리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자신을 조용히 가라앉히고 스스로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모든 종류의 생각의 열차를 직시하며 간단하게도 인내심과 전문가적 태도를 지니고 관찰하는 것이다. 유혹당한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어떤 종류의 종착역에 도착할 것인가? 이기적 자아를 확장시키고 정당화시키는 곳인가? 두려움의 종착역인가? 자신과 상대방에게 미움과 상처를 주는 곳인가? 우리는 도대체 어디로 끌려가고 있는 것인가?
잘 보고 듣게 되면 알게 될 것이다. 졸지 말라! 보고 싶은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있는 그대로를 주의 깊게 보아야 한다. 진실되고 정직하라! 본성을 지닌 '본연의 모습'이 되어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지혜의 침묵으로부터 배우라!
심신통일은 이토록 결정적인 것이다. 아버님께서 말씀하실 때마다 몸 마음 통일의 중요성을 강조하심을 알고 있을 것이다. 왜? 몸과 마음이 나누어져 있다는 것은 결국 세계가 나누어져 있다는 것이다. 국가와 사회와 가정이 나누어져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몸 마음이 분열된 개개인이 모여서 분열된 가정, 분열된 사회·국가·세계를 만들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보고 계시는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비통하시겠는가!
우리가 자신만을 중심하고 위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마음과 몸이 통일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신통일 운동과 훈련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아직 유아적이며 철이 안 들었다는 명백한 신호이다. 우리는 수련을 통해서 어떤 성숙한 모습을 만나게 된다. 그것은 산과 푸른 하늘, 심지어 폭풍우까지도 비추고 있는, 맑은 호수가 지닌 고요함과 같은 것이다. 그 호수는 비바람에 의해 부딪치고 공격받을지 모르나 언제나 그러하듯 그대로 고요하며 먼지와 혼돈이 다 가라앉기를 기다릴 뿐이다.
우리는 가장 근본적인 원천, 즉 끊임없는 에너지와 영감(靈感), 그리고 평화의 원천이신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시작할 수 있다. 임시로 영감을 얻거나 동기를 유발시키는 말이나 경험이 아니다.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만약 우리가 흥분되고 들뜬 것에서부터 에너지를 받으려고 하면 그것은 외로움과 절망의 다른 한 편에서 사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 종류의 에너지는 지속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에너지는 보다 근본적이고 안정적이며 믿을 만한 것에서부터 찾아야 한다.
그 에너지는 하나님과 참부모님과의 개인적인 관계에서 찾을 수 있는 안정감과 기도 생활과 깊은 명상 속에서 오는 것이며, 그것은 우리의 탐욕을 잠재우고 요란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도록 도와준다. 심신통일의 과정에서 우리는 참아버님께서 말씀하신 평화를 실천하며, 따라서 단지 배우는 것이 아니라 실천함으로써 아버님의 말씀과 더욱 깊은 관계를 맺게 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마치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하나님과 깊은 교감을 나눌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올라타서 왕래하며 탐닉하였던 생각의 열차가 무엇이었는지 듣고 알아야만 한다. 이러한 과정이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를 분리시킨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한 첫 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