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和堂(천화당)
자녀들과의 화합
우리가 이해해야 할 첫 번째 것 중의 하나는 아이들과 어른들의 차이는 1미터 거리밖에 안 된다는 사실이다. 자녀들을 양육함에 있어서는 더욱 큰 인내심과 무조건적인 사랑, 용서하는 마음 등이 필요하며 미움과 원한 등에 대한 조절훈련을 더 해야 한다. 많은 경우 부모들은 분개하여 자녀들의 자유와 사회적 생활을 빼앗곤 하는 것이다.
종종 아이들은 너무 작고 미숙한 것 같아 보이기에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존재로 취급당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장기적인 결정에 관여하는 전두피질과 같은 뇌의 부분은 20대 중반의 나이가 되어서야 발달한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부분의 뇌, 특히 감정을 느끼는 부분의 뇌는 어른들과 똑같이 발달한다.
어린이들은 우리로 하여금 인생의 '작은 일들’ 을 가슴에 담도록 해 준다. 나는 내 자녀들이 매일 아침 기운차고 상쾌한 에너지에 넘쳐 새 날을 맞이하는 것을 보고 많은 영감과 기운을 얻곤 한다. 아이들과 함께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 할 때면 아이들은 내게 자연스럽게 흐르는 사랑과 젊음의 순수를 떠올리게 한다. 아이들의 상상과 속삭이는 말 한마디 속에 피어나는 유머와 장난스러움에서 그들이 순간 순간을 얼마나 생생하게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자녀를 키운다는 것이 결코 만만한 것은 아니다. 한번은 내 아들 하나가 다른 형제에게 이름 대신 '늙은이’ 또는 '겁쟁이’라고 불렀던 적이 있었다. 또한 숙제를 하다가 잘 안 되곤 하면 엄마를 그와 같이 부르곤 했다. 처음에 아내는 다른 사람을 '늙은이’ 나 겁쟁이'로 부르지 않도록 하는 규칙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 아들이 얼마나 창의력이 풍부한지 규칙의 목록에 있지 않은 다른 이름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아내가 정한 규칙이 소용없어졌다.
우리는 같이 이 문제에 대해 의논하였는데, 나는 하면 안되는 온갖 ‘규칙과 약속들’을 만드는 대신 소위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덕목’을 가르칠 것을 제안했다. 왜냐하면 규칙은 몇 가지 특정한 일에만 한정되기 때문이다(엄마를 ‘할머니’ 라고 부르지 말 것 등). 특정한 규칙들은 내 아들의 경우와 같이 또 다른 이름을 지어서 부르게 하며, 그에 따라 우리는 다른 규범을 또 만들어야 하고, 따라서 끊임없이 1) 규칙의 효과를 감소시키며 2) 아이들로 하여금 목록에 올려져 있지 않은 이름들을 더 열중하여 찾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대신 미덕을 가르치자고 제안했던 것이다.
내가 다도(茶道)를 즐기는 이유를 설명하였는데, 그것은 그 안에서 네 가지의 덕목인 조화, 존경, 순수, 그리고 평온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차 한 잔을 대접하면서도 서로 화합할 수 있다. 손님과 더불어 조화를 이루게 되면 서로 존경하는 마음이 일어난다. 다도 의식에 참여하는 동안 기구, 마음과 의도 등의 순수성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 세 가지의 미덕이 실현되면 마지막 미덕인 평온함은 자연적으로 따라오는 것이다.
다도는 학생들에게 조화를 이루고,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며, 마음과 몸을 순수하게 하고, 자신과 다른 사람을 평온하게 하는 덕목을 자연스럽게 가르쳐 준다. 그러면 이 미덕은 인생의 모든 분야에 걸쳐 영향을 끼칠 것이다. 비록 차를 마시는 의식 자체는 딱딱하고 의례화되어 있으나 여기에서 얻는 미덕은 단순히 다도를 넘어 인생의 다른 많은 부분에도 적용될 수 있다.
같은 방법으로 우리는 아이들에게 두 가지 덕목을 강조하기로 결정했다. '자신과 다른 사람을 존중하라' 는 것과 ‘용서하고 잊어버리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것이다. 다행히도 이 덕목은 크게 도움이 되었다. 아이들이 새로운 별명을 짓거나 다른 사람을 모욕하려 할 때면 우리는 그저 “다른 사람을 존중해야지”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며 불평하려 할 때는 우리는 “용서하고 잊어버리고 전진해야지” 라고 말하곤 한다. 이 덕목은 폭이 넓어서 여러 다양한 경우에 충분히 적용되었으며, 또한 어떤 변화된 상황에도 탄력적이고 유동적으로 쓰일 수 있다.
규칙과 규범에 얽매이는 대신 우리 아이들은 스스로 이 두 가지 덕목을 다양한 경우에 적용해 나갔다. 자녀 중 한 명이 숙제가 힘들어 쩔쩔매며 “나, 이거 못 해요” 혹은 “이것에는 자신이 없어요” 하며 울먹일 때면 우리는 “자신을 존중해야지. 너는 잘 할 수 있단다” 라고 대답해 준다. 이들 덕목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오히려 부모인 우리가 매우 유용하고 효과적인 도움과 힘을 받곤 한다.
다른 일화 한 가지가 더 기억난다. 다른 형제들은 모두 친구 집에 놀러 가고 한 아들만이 우리 부부와 함께 집에 남아 있을 때의 일이다. 그 녀석은 형제들이 같이 가자고 하고 또 우리 부부도 같이 가서 놀기를 권고했으나 한사코 우리와 집에 남아 있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그런데 다른 형제들이 떠나자마자 아들 녀석은 그들이 모두 게임을 하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거라며 울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1년 전 그 친구 집에 갔을 때 비디오 게임을 하지 못하게 제지 받았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작년에는 네가 너무 어렸기 때문이라고, 그러한 불평은 사리에 맞지 않는 것이라고 꾸짖는다고 해도 아들 녀석에게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들이 어른들과 비슷한 감정적 스트레스를 심하게 느끼고 절망에 싸여 있을 때 우리는 그의 입장이 되어 들어 주었다. 두 사람이 같은 경험을 한다고 해도 어떤 사람은 오랫동안 절망감에 빠져 있는가 하면, 다른 한 사람은 각오를 새롭게 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따라서 우리는 아들이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이해하며, 앞의 미덕에 대해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며 그의 입장에서 들어 줄 뿐이었다.
우리는 아들에게 1년 전 비디오 게임을 안 빌려 주고 못 하게 했던 그 친구를 ‘용서하고 잊어버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가 친구에게 같은 종류의 불편함을 주는 일을 구상하고 있을 때 우리는 단순하게 “용서하고 잊어버리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단다” 라고 말했다. 그 덕목은 그 안에 사람들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여러 가지 불만을 다 감싸 안을 수 있을 만큼 원대하다.
이것은 자녀들에게는 물론 부모들에게도 많은 노력과 결심을 요구하는 덕목이다. 우리는 모두 이 작은 덕목의 힘을 느끼게 되었으며, 부모로서 자녀들이 점점 자라 성숙을 향한 길을 갈 때 진정으로 가르쳐 주고 싶은 것, 그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에도 기억할 수 있는 덕목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물론 어른이 되어서도 ‘자신과 남을 존중하라'와 '용서하고 잊어버리고 앞으로 나아가라' 는 성공을 위한 매우 중요한 덕목이 될 것이다.
여기서 나는 자녀들과 더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들을 겪고 있는 부모들에게는 위와 같은 예들이 기껏해야 하찮은 것에 불과하리라는 것을 인정한다. 어떤 사람이 내게 말하길, 화 내지 않고 인내심을 가지라는 의견은 훌륭하지만, 당신은 아직 자녀들을 키우는 것이 얼마나 버거운 일인지 경험해 보지 않았을 거라고 했다. 또 그녀는 내게 “아침에 들어와서 어젯밤 어디에 있었는지에 대해 뻔한 거짓말을 내 눈앞에서 하고, 나와는 어떤 것도 함께 하지 않으려는 딸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이 뭐겠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가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무능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 특별한 순간에 그녀는 화 내는 것을 선택했으며 대학생 나이의 딸을 때리고 싶을 정도로 분노하였다. 또한 그녀는, 만약 화내지 않고 잘 해 준다면 그 딸은 그녀의 머리 꼭대기까지 기어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왜 격노하는 것과 할머니와 같은 인자함 사이의 두 가지 선택만을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또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은 무한한 창조성, 그리고 무한한 혁신적인 능력과 자유를 지닌 참된 존재이지요. 당신이 생각하는 두 가지의 극단적인 선택 사이에는 당신이 생각하지 못한 수많은 보다 균형 잡힌 반응들이 있으며, 또 그 속에서 당신은 무한한 자유를 찾을 수 있어요. 당신 말대로 만약 당신이 극도의 화를 낸다면 딸과의 관계를 해치게 될 것이고, 또 극단적으로 수용적이 되는 것 역시 관계를 해치게 되리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딸에게 자신은 물론 남에게 영향을 끼치는 행동에 대해서는 가르치려 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적절한 반응을 찾고자 하는 의지와 자유 속에서만 무한한 능력과 창조성이 나올 수 있는 겁니다. 극단적인 반응 사이에서 올바른 균형 잡힌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계발시켜야만 합니다. 당신과 마찬가지로 대학생 나이의 딸도 자유의지를 소유하고 있는 거예요. 자녀를 양육하는 것은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지만,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 이상의 힘을 지니고 있어요.
우리가 무능하고 어떤 선택권도 없다고 느낄 때면, 우리를 갈등하게 만들고 무능하게 만든 원인으로 외적인 환경이나 우리 자녀들을 비난하게 되지요. 그러나 무수히 많은 종류의 선택과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우리 안에 있음을 깨닫는 순간, 우리가 단지 혁신적이고 창의적이 될 수 있는 내적인 능력을 모르고 있었다는 간단한 사실에 마주치게 됩니다. 인생에서 마주치게 되는 모든 경험 속에는 반드시 선택과 기회라는 것이 있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모두 적절한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기술과 능력을 계발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책임이라는 거지요. 무한한 자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을 선택할 수 있고, 그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깨닫는 겁니다. 이것은 외적인 환경이나 갈등을 희생양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로 책임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려운 것인 동시에 우리 자신이 이렇게 저렇게 행동할 수 있는 선택의 자유로움과 무한한 창의성과 혁신적인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자유로움을 알게 해 주는 것입니다.”
나는 그녀가 딸과 함께 적어도 다음의 두 가지 일을 해 볼 것을 조언했다. 1) 모든 가족이 함께 모여 저녁을 먹을 것, 또는 1주일에 한 시간만이라도 함께 하는 등 가족간의 모임을 가질 것. 2) 한 달에 한 번, 적어도 두 달에 한 번이라도 다른 형제들은 제외한 채 그 특정한 딸과의 만남을 가질 것. 물론 내가 이것을 제안했을 때 그녀는 즉시 그것은 불가능한 계획이라고, 그 딸은 그녀와 어떤 것도 같이 하려 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딸과의 관계 속에서 엄마가 이렇게 저렇게 하라는 것을 딸이 그대로 따르는 상사와 직원 같은 관계가 지속되는 한 이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딸과의 관계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몇 분의 침묵이 흐른 후 그녀는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렇다면 그것은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딸 또한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환경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는 그녀가 살아 있음을, 그녀의 딸 또한 살아 있음을, 그리고 둘 다 건강함을, 둘 다 무한히 창조적 혁신적이고 자유로우며, 같이 힘을 합칠 경우 서로에게 '마음의 평화' 를 만들어 내고, 하지 못할 일이 없으리라는 것을 상기시키면서 둘이 같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보라고 했다. 그녀는 노력해 보겠다고 했다. 나는 노력만 할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만들어 볼 것을 권고했다. 성공적인 관계란 단지 노력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쌍방에서 원하는 관계를 창조하고 만들어 가는 과정인 것이다. 당신에게는 자신과 상대의 무한한 자유와 창조성과 천재성을 깨달을 힘이 있으며, 당신만이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 속에 내재되어 있는 잠재성을 믿지 않으며, 또 자신의 불운을 타인의 탓으로만 여기며, 그럼으로써 얼마나 뒤쳐지는 생활을 하고 있는가? 우리 부부가 자녀들에게 가르쳤던 것들은 단지 어린 시절뿐 아니라 전 일생을 통해 실천해야 할 매우 중요한 덕목이었다. 그 덕목은 여러 다른 환경에 적용될 때, 심지어 어린이들이 스스로에게 또는 친구들에게 간단히 반복해서 쓸 때마다 더 한층 힘을 발휘한다. 친구들이 다른 사람들을 비난할 때면 우리 아이들은 말하곤 한다. “용서하고 잊어버리고 전진해” 라고.
하나의 수련으로써 배우자와 함께 앞으로 자녀들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부딪치게 될 다양한 환경을 헤쳐 나가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덕목을 떠올려 보자. 장기적으로 자녀를 어떤 종류의 사람으로 만들고 싶은지 생각해 보자. 몇 가지 덕목의 예를 든다면 성실성, 자신과 남에게 정직하기, 대우 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우하기, 생활 속에서 중용(中庸) 실천하기 등이 있을 수 있다. 어느 정도 구체적이며 실질적인 덕목을 찾도록 노력하자. 대부분의 덕목들이 위대한 종교 전통들의 기본 정신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기본 정신을 갖지 못한다면 그 이상의 진전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배우자와 함께 시간을 내어 자녀들에게 가르치고자 원하는 것, 그리고 우리 자신이 배우고 실천하고자 하는 몇 가지 덕목들에 대해 논의해 보자.
이것들을 요약하여 자녀들에게 그 덕목들을 가르치고 또 스스로 실행해 보라. 여기에 자녀들의 나이와는 관계없이 자녀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쉬우면서도 여러 가지로 변형 가능한 세 가지 덕목을 덧붙여 본다.
1) 자녀들과 꾸준히 같이 할 수 있는 가족간의 전통을 만들어라. 만약 가족이 멀리 떨어져 산다면 여름마다 가족끼리 만나는 모임을 갖거나 매주일 게임 등을 하며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내 경우에 어렸을 때는 형제들, 그리고 지금은 아내와 자녀들과 함께 일요일 새벽 경배식이 끝난 후 다과(茶菓)의 시간을 갖는다.
2) 자녀들이 부모와 함께 산다면 적어도 하루에 한 끼는 전 가족이 모여 함께 식사를 하라. 만약 떨어져 산다면, 일주일에 몇 번은 식사를 함께 하기 위해 자녀들을 부르라.
3) 자녀들 중 한 사람씩과 사적인 데이트 시간을 만들어 그들과 함께 의미 있는 추억 만들기에 시간을 투자하라. 자녀들은 형제들이나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아닌 단독으로 부모와 개인적인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에 굉장한 즐거움을 가지며 그 때를 오랫동안 기억한다.
심신통일은 진정하고 심각한 통일교회 신도들의 종교적 훈련임을 명심하고 영적인 훈련의 정의를 넓혀 더욱 더 수련에 정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