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갑니다! - 天和堂(천화당)

훈독왕 | 20200109221621

天和堂(천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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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갑니다!


참아버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출발점은 모든 피조물의 부모 되신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것이며, 그 기반 위에 하나님을 모시고 살 수 있는 참가정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 먼저 각 가정의 개개인이 인격을 완성해야만 합니다. 개인은 세대를 통해서 이어져 온 타락성을 벗고 인격완성을 향해 가야 합니다. 즉, 마음과 몸의 갈등에서 승리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계 평화는 완성된 인격, 즉 하나의 심정과 하나의 마음과 하나의 생각을 지닌 각 개인으로부터 피어날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를 이룬 사람에게는 욕심과 시기, 질투, 미움 등 모든 악의 요소를 초래하는 타락성은 결코 발붙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2004.3.23. 워싱턴 DC, 미국 국회에서 하신 참아버님 말씀: "평화시대개문 선포대회" (pp.1-2))


이것이 통일교인으로서 가야 할 출발점이다. 마음과 몸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왜 참아버님께서는 이것을 계속하여 강조하시는가? 우리는 어떻게 마음과 몸을 통일할 수 있는가?


게임으로 이 일련의 수련을 시작해 보자. '열까지 세기' 라는 게임이며, 규칙은 다음과 같다. 숨을 크게 들이마신 다음 내쉰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하나' 라고 센다. 다시 숨을 크게 들이쉰 다음 내쉰다. 그리고 속으로 '둘' 이라고 센다. 이런 식으로 ‘열’ 까지 센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맨 처음 시작하는 순간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온전히 숨 쉬기에만 몰두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단 하나의 생각도 해서는 안된다.


만약 호흡에 대해서 생각한다면 그것도 '생각' 에 속한다. 일곱까지 세고는 “세 번만 더하면 되겠구나” 라고 생각하는 것도 역시 '생각' 에 속한다.


왜 이런 게임을 하는 것일까? 이 게임을 해보았다면 논리적이거나 지적(知的)으로가 아닌 경험적으로 무엇인가 심오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방금 몸과 마음이 얼마나 분열되어 있는지 목격하였다. “그래, 열 까지만 세면 되겠구나” 라고 말하지만, 마음은 그것을 따라 주지 않는다. 대부분 셋이나 넷까지 세면 생각 속으로 빠져 버리곤 할 것이다(자신에게 솔직하다면 말이다). 저녁 반찬으로 무엇을 사야 할지, 누구에게 전화를 걸어야 할지 등등에 대한 생각들로 말이다. 사탄이 들어와서 조화를 깨고 분열을 조장하는 것이다.


나는 통일교회 식구들에게 종종 이렇게 묻곤 한다. “열까지 세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세계 평화를 이룰 생각을 하지요?” 세계 평화에 대해서, 통일에 대해서 평화의 매개체가 되겠다고 말하면서도, 막상 참아버님께서 “몸 마음 통일된 사람 손 들어 봐요” 라고 물어보실 때면 아무도 손을 들지 못하는 것이다. 개인의 몸과 마음이 분열되어 있는 한 가족과 민족과 세계의 갈등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참아버님의 말씀을 생각할 때, 세계 평화를 이루어야 하는 우리들에게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하나되지 않고서는 완전한 인격을 이룰 수가 없으며, 몸과 마음의 통일 없이는 완전한 개인으로 구성되어 있는 참된 가정도 만들지 못하며, 우리 자신의 몸과 마음을 통일하지 않고서는 세계의 화합과 위하여 사는 생활도 불가능해진다.


 그러나 이것은 지적(知的)인 면을 통해서 배워지는 것이 아닌데, 이유는 간단하게도 이것은 소유할 수 있는 지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이것은 반드시 '되어야’ 하는 개념이다. 그것도 한두 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1초간 평화롭다고 해도 그 후에 평화는 곧 사라져 버린다. 평화란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내적 외적으로 평화로울 때만이 우리 자신과 남에게 평화와 행복을 가져올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내적인 평화(우리는 여기에서 자신의 노력 부족을 정당화시킴으로써 자기 중심적이라는 비평을 듣는다)와 외적인 평화는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얽혀 뗄 수 없으며, 우리는 평화를 선택할 힘이 있어야 한다.


언젠가 나는 아버님께 가장 귀중한 한 글자의 한자(漢字)를 말씀해 주실 것을 부탁드렸었다. 나는 이 한자가 통일교인들의 모습과 생활에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감사하게도 아버님께서는 수십만 개의 글자 중에서 하나의 글자를 주셨는데, 그것은 사랑도 헌신도 복종도 아닌 ‘정성 성(誠)’ 이었다. 이 글자에는 말(言)이라는 의미와 이루다(成)라는 의미가 복합되어 있다. 간단하게 말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말한 것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평화와 사랑에 대해 말만 하는 것은 소용없으며 평화가 이루어져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야 하는데, 온전히 그렇게 되는 것이 본질적인 것이다. 그렇게 되면 평화나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 나설 필요가 없어지는데, 그것은 이미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서 명백해지며 따라서 세계 안에서 실질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것이 통일교인으로서 몸 마음의 통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이다.


만약 싸우고 있는 몸과 마음이 평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이 또 하나의 문제가 된다.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시작하려는 것이다. 이 일은 수련에 관한 일이다. 이것은 통일교인들에게 보다 알맞은 수련이 될 것이다. 각 수련 과정은 '성찰' '수련' 그리고 '헌신' 으로 구성되어 있다. 몸과 마음의 통일을 위한 수련은 필수적이다. 하나님의 중심으로 가는 길이다. 정성 성(誠), 말을 이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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