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우주의 근본은 사랑이다 ② - ㉮ ㉯ (천성경 - 제11권 우주의 근본 - 제 1 장 우주의 근본 질서)

訓讀王 | 20181115190705

천성경 - 제11권 우주의 근본 - 제 1 장 우주의 근본 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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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인간은 만우주의 사랑의 중심


   ㉮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 지었다


사람의 가치가 얼마나 크냐? 하나님이 지팡이를 짚고 천년만년 그리워할 수 있는 존재가 사람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보니까 요것이 우주의 근본이다 이겁니다. 이것이 안팎 관계가 됐으니, 종횡의 사랑의 세계관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상하관계와 좌우관계가 되니까 종횡의 사랑의 세계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 중심에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마음의 깊은 골짜기에 하나로 단단히 묶어 줄 수 있는 그 자리는 종횡의 중심입니다. 요걸 묶어 놓지 않으면 종횡의 기준이 사랑의 이상형으로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종적인 것이 아무리 있다 하더라도 횡적인 것은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이렇게 안 지을 수 없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48-224)


하나님은 절대적인 창조의 관을 소유한 절대자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가치의 대상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땅 위의 피조만물 가운데 그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가치로 보면, 상대적 존재란 하나님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존재입니다. '상대적 가치'란 말이 좀 어려운 말이지만 말입니다. 상대적 가치라는 것은, 상대라는 말을 중심삼고 그 대상의 가치라는 것은 하나님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줘 봐야 하나님 혼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남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을 투입하고 하나님 자신의 힘을,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입니다. 소모전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대상의 가치적 존재로 지은 것이 인간입니다. 이와 같이 절대적인 가치의 존재가 인간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그런 관을 두고 가치적인 존재로 인간을 지으신 것입니다. (68-134)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 때문에 지었습니다. 인간은 왜 지음 받았느냐? 사랑 때문에 지음받았습니다. 인간이 만물과 다른 것은 하나님의 아들딸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직계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대상자로 지음받았다 이겁니다. 이것이 인간의 특권입니다. (132-245)


1590  

사람이 누구를 닮았느냐?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사랑을 원하는 것도 결국은 사람과 마찬가지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은 이상의 창조세계라는 것은 실체를 중심삼은 사랑의 표시가 형상으로 나타나고, 형상의 표시가 상징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원리에서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사랑을 중심삼고. 그 실체가 기뻐하면 그 형상되는 것도 자동적으로 기뻐하고 그 형상되는 존재가 기뻐하면 상징적인 것도 자동적으로 기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작용을 무엇이 하느냐? 사랑만이 한다는 것입니다. (166-36)


만물지중(萬物之衆)에 유인(唯人)이 최귀(最貴)라 했습니다. 만물 중에 인간이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중심이냐? 사랑을 중심삼고입니다. 지식이라든가, 돈이라든가, 권력이라든가 하는 것들은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기 때문에 그런 것들은 언제든지 만들 수 있고,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것은 혼자서는 못 찾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혼자서는 못 갖습니다. 사랑은 반드시 상대를 통해서 나타나고 이루어지게 되어 있지, 혼자서는 하나님이라도 못 이룬다는 것입니다. (272-275)


하나님이 천지를 누구를 위해 지었느냐? 하나님을 위해 지은 것이 아닙니다. 사랑의 대상을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누구입니까? 만물지중(萬物之衆)에 유인(惟人)이 최귀(最貴)라 했습니다. 사람만이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 지어졌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본질적 내용을 분석해 볼 때, 속성에는 상속권이 있고 동위권, 동참권이 있기 때문에 사랑에 접하면 아무리 높은 하나님, 아무리 위대한 하나님, 아무리 우주적인 하나님이라고 해도 사랑에 놀아나는 것입니다. (179-148)


오늘날 통일교회의 가르침은 하나님도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제아무리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한 전권의 하나님이라도 사랑은 상대적으로 찾아오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사랑의 상대권을 갖춰야 합니다. 그 상대가 아담 해와입니다. (121-173)


하나님이 아무리 훌륭하고 절대자고 전지전능한 분이라 하더라도 혼자서는 좋은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행복이란 명사는, 혹은 좋다는 형용사는 혼자서 설정되는 말이 아닙니다. 반드시 상대적 관계를 갖춘 자리에 있어야, 좋고 행복하다는 말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혼자 있으면서 행복하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라도 혼자서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노래를 잘 부르는 음악가가 있어서 혼자 노래를 불렀다고 합시다. 행복하겠습니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상대가 있어야 합니다. 주고받는 것이 있어야 좋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좋다!'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 혼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65-20)


1591   

㉯ 인간성장의 길은 하나님 자신의 전개과정


인간 창조란 하나님 자신이 커 온 것을 실제로 재차 전개시켜 나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이 흥미를 느끼고, 자극을 느끼는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화가가 걸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자기 내적인 소성을 전부 실제 형상으로 전개시키는 것입니다. 자기 뼛속 깊은 데까지 짜내서 투입하는 것입니다. (225-198)


인간의 완성은 어디에 있느냐? 남자면 남자 자체로 완성할 길이 없고, 여자면 여자 자체로 완성할 길이 없습니다. 그것은 전부 다 반제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남자와 여자가 완전히 하나된 사랑을 중심삼고만이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아담이 완성하는 데는 누가 절대 필요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절대 필요한데, 하나님은 종적으로 절대 필요합니다. 
아담이 완성되려면 종횡의 인연을 가져야 합니다. 종횡의 사랑의 인연을 갖지 않으면 회전운동, 구형운동이 불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횡적으로 아담에게 절대 필요한 것은 해와입니다. 마찬가지로 해와에게도 절대 필요한 것이 아담입니다. (145-319)


아담 해와를 두고 하나님이 사랑한 것이 뭐냐? 아담 해와가 아들딸로 자라 왔다는 것은 하나님도 그렇게 자라 나왔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도 아기와 같은 때가 있었고, 형제와 같은 때가 있었고, 부부와 같은 때가 있었고, 부모와 같은 때가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창조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형의 하나님입니다. 무형의 하나님이 그렇게 커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형제같이, 부부같이, 또 아들딸같이 그렇게 창조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254-274)


아담 해와를 하나님이 지었다면, 어떤 단계로부터 지었는가? 아담 해와를 장성한 사람으로 지었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아기로부터 지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기를 밴 어머니가 품어 키우는 것과 마찬가지의 과정을 거쳐서 지었다는 논리를 세우지 않고는, 이 모든 3단계의 질서를 통한 존재의 형성이라는 것을 설명할 도리가 없습니다. 유아기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장성기가 있었고, 완성기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천리의 도리입니다. (225-198)


아담 해와에게 유아기가 있었는데, 그 유아기는 어떤 유아기였겠는가? 무형의 하나님이 무형의 세계에서부터 유형의 과정을 거쳐 올 수 있는, 아기의 존재를 품고 키웠다는 논리로부터 시작해야 됩니다. 
그러면 아기가 태어나 자라서 성숙해 가지고 결혼할 수 있는 자리까지, 부모가 될 수 있는 자리까지 어떻게 나가느냐? 하나님이 청년기․장년기․노년기와 같은 과정을 거쳐온 사실을, 하나님이 자라던 무형의 과정을 실체로 보기 위한 존재가 자녀라는 것입니다. 이런 논리가 형성되어야 부자일신(父子一身)이라는 논리가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는 종적이고, 하나는 횡적이니, 종횡일신(縱橫一身)의 이론을 취할 수 있습니다. (225-198)


1592  

사랑하는 부부, 아담 해와가 자녀를 낳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무형 실체가 성상 형상으로서 사랑을 가지고 하나되어 창조하고 부모 입장에 선 것과 같습니다. 제1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는 제2 창조주로 만든 아담 해와가, 실체의 제2 하나님의 입장에 선 아담 해와가 다시 아들딸을 갖고 낳음으로써 부모 입장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어린 자녀를 통해 실체 아담 해와의 유아시대․형제시대․부부시대․부모시대 등 하나님의 지나간 과거를 또다시 실체로서 전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만지고 싶고 사랑하고 싶은 것입니다. 자녀는 제2의 자기 자신입니다. (258-240)


결혼한 부부의 자리는 엄청난 자리입니다. 역사시대에 인류가 소망하던 자녀로서의 희망봉이 꽃피는 자리요, 형제로서 꽃피는 자리요, 부부로서 꽃피는 자리입니다. 이래 가지고 부부로서 사랑했던 하나님이 창조를 시작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아들딸을 낳은 거기서부터 아담 해와가 창조하는 것입니다. 실체적 창조주의 입장이 되어 나를 중심삼고 평면적 창조주의 입장에서 아들딸을 낳은 것입니다. 제3 창조주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는 자녀를 하나님 대신 실체 부모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자녀를 양육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보이지 않는 무형의 하나님이 자녀를 양육하던 것을 내 실체로 느끼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커 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자녀시대․형제시대․부부시대․부모시대로 발전해 나왔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과거사를 중심삼고 자기 아들딸을 낳아 키우면서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아기시대의 제1 창조주, 무형의 창조주의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제2 창조주, 볼 수 있는 창조주의 자리에서 아기를 키우고 형제로 키워서 부부를 이루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아들딸로서, 형제로서 키워 오던 것과 마찬가지로 무형의 내적인 모든 요구의 실상을 실체적으로 아담 해와를 통해서 평면도상에서 보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아들딸입니다. (263-148)


하나님이 창조주로서 역사적 내정적인 원칙을 중심삼고 존재의 기원으로부터 지금까지 성장한 과정을 실체적으로 전개해 나오는 과정이 아담 해와 창조과정입니다. 그러면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아주 작은 세포가 합해져서 큰 세포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기가 열 달 동안에 자라는 과정을 거쳐 나가면서 남자 여자의 형태로 갈라져 나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되느냐? 그렇지 않으면 생명 유전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논리에 대해 해석할 방법이 없습니다. 유전적 내용을 어떻게 전개시키느냐 하는 논리를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본질적인 무형의 형태와 유형적인 형태의 본질이, 일체적 내용의 인연을 중심삼고 횡적으로 전개될 것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1593  

다시 말하면 주체 앞에 상대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내적 성상은 외적 형상과 모든 근원적인 면에서 영합도 되고, 통할 수 있는 내연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태어나서 자라는 과정은, 보이지 않는 무형의 신이 실체를 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내적인 모든 존재가 표현되어서 나타나니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가 나타난 실체라는 것입니다. 무형의 실체가 유형의 실체로 전개되느니만큼 거기에 모든 전부를 투입해야 됩니다. (225-198)


하나님이 사랑을 찾아가는 대상을 만들려고 할 때 누구를 닮게 만들겠습니까? 하나님 닮게 만듭니다. 그 하나님을 닮게 만든다면, 하나님 가운데 있는 것처럼, 남자 성품이 있어야 되고 여자 성품이 있어야 됩니다. 자기를 닮았는데 자기 본성상에서부터 전부 다 빼내서 보이지 않는 성상, 보이지 않는 생각의 형태를 실체로 전개시킨 것이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의 창세기에 나오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했다는 말이 맞는다는 것입니다. (170-140)


하나님과 인간이 박자가 맞아서 화동할 수 있는 기쁨의 박자 앞에, 모든 것이 자기 모양대로 음률을 맞출 수 있고, 자기 모양대로 상징적으로 형상적으로 춤을 추고 이럴 수 있는 기쁨의 세계가 본연의 동산입니다. 그렇게 되면 만물도 '아하, 내가 태어난 보람이 있구나!' 이럴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과 인간이 사랑의 잔치를 하는 잔칫날에 동참할 수 있는 인연을 가지고, 그 기쁨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이 피조세계의 지극히 작은 만물이 바랄 수 있는 소원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166-36)


아무리 진리라 해도 진리의 핵심이 뭐냐? 돈도 아니요, 권력도 아니요, 지식도 아닙니다. 사랑입니다. 본질적 사랑은 종적인 곳에 있는 것이요, 진리적 사랑은 횡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물을 보아 하나님을 알지니,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형상이니 아담 해와를 보아서 하나님을 안다는 겁니다. 왜? 아담 해와는 종적인 참사랑의 대상적 주체이기 때문에, 이를 둘 다 완전히 딱, 남자 여자의 사랑을 동서남북을 통해서 세계의 축을 갖다 맞추게 될 때는, 하나님과 영계가 통하고 만세계가 다 통한다는 것입니다. (179-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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