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절과 의식 (천성경 제7권)

훈독왕 | 20170626172212

제7권 예절과 의식


제 1 장 하나님에 대한 모심의 예법


 1)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야 한다

  ① 하나님과 인간은 부자의 관계

인연 가운데 표준이 되는 인연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맺어진 부자의 인연입니다. 이 인연에서 비롯된 심정은 어떠한 존재의 권한에 의해서도 굽혀질 수 없는 영원하고 불변하고 유일한 것입니다.
또 이 심정의 권한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권한을 가지고 나타나게 될 때 모든 존재물은 그 앞에 머리 숙일 수 밖에 없으며, 이 심정의 권한을 가지고 움직일 때 만천하는 따라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우주의 철칙입니다. (7-105)

하나님이 창조 당시 이상으로 삼고 바랐던 참된 사랑, 위대한 사랑을 중심삼고 인간과의 사랑관계를 맺어 하나될 수 있는 신인애일체(神人愛一體)의 가정을 이루었더라면, 오늘날 우리들은 천국이니 지옥이니 하는 것을 염려할 것 없이 그냥 그대로 천국으로 다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장소가 어디냐? 사랑이 교차되는 중심, 생명이 교차되는 중심, 이상이 교차되는 그런 중심에서 만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사랑과 생명과 이상이 한 자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가면 하나님도 사랑이요 나도 사랑이요, 하나님도 생명이요 나도 생명이요, 하나님도 이상이요 나도 이상이 된다 이겁니다. 그것을 결정지을 수 있는 최초의 인연과 최초의 통일의 장소가 부자관계가 이루어지는 자리가 아니면 있을 수 없습니다. 이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69-78)

여러분, 부자일신(父子一身)이라는 말이 도대체 무엇을 중심삼고 하는 말입니까? 그것은 사랑을 빼 놓으면 안 됩니다. 사랑과 생명과 혈통이 연결돼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요건이 필요해요. 부자일신이라고 할 때 거기에는 반드시 사랑과 생명과 혈통이 연결되어야 됩니다. (199-346)

말로서 맺어지는 부자의 관계, 예약만으로 맺어지는 부자의 관계는 필요없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아버지의 뜻을 위하고 뼈살이 녹아나는 고통 속에서도 참고 승리하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과 부자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2-234)


---974---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그 최고의 자리는 어떤 자리냐? 그 자리는 바로 아들의 자리요, 딸의 자리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천정(天情)이 있고, 우리 인간에게는 인정(人情)이 있습니다. 이 인정과 천정이 서로 합할 수 있는 귀결점이 되는 자리는 절대자인 하나님도 원하고 인간도 원하는 단 하나의 자리, 즉 한 부모를 중심으로 한 아들딸의 입장에서 서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자리입니다.
본래는 아담 해와가 서로 최고로 기쁜 가운데서 최고의 생명력이 발휘되고, 최고의 힘이 합하고, 전체의 이상력까지 합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사랑의 꽃이 피어야 됩니다. 그래서 꽃과 같이 피어 가지고 그 향기가 온 천하를 덮고도 남을 수 있고, 하나님이 그 꽃을 바라보고 꽃의 향기를 맡으면서, 스스로 거기에 취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을 하나님은 꿈꿨던 것입니다.
아담과 하나님이 하나되어 서로 사랑이 넘치게 될 때, 아담은 하나님이 될 수 있습니다. 아담이 사랑으로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될 때에 하나님은 아담에게 거(居)하십니다. 성경에도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聖殿)인 것과 하나님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54-131)

하나님은 여러분과 가까이 계시고, 누구보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염려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세상에는 육친의 사랑이 제일 큰 줄 알고 있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그 보다 더 크고 깊으며, 세상의 그 어떤 인간적인 사랑보다도 깊고 큰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의 품에 안기어 아버지를 부를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고 '아버지의 서러움을 내가 알겠나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입장에서 하나님의 내적인 심정을 체휼하는 참된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아들딸이 되어 하나님을 모신 천국을 소유한다면, 그 천국은 어느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것입니다.(2-234)
부자일신이라는 사랑의 논리권 내에서는, 아버지의 것은 아들의 소유가 되는 겁니다. 남편의 것은 아내의 소유가 되는 겁니다. 사랑을 중심삼고는 상속권이 영원히 보장되는 것입니다. 참된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자로서 인연을 맺은 아들딸이 되었다면, 그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의 몸도 내 몸이요, 사랑도 내 사랑인 동시에 지으신 모든 것도 내 것이 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가운데는 천하를 점령하겠다는 본성의 욕심이 남아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인간에게 공통적으로 분배해 준, 우주를 소유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딸의 권한을 이어 주기 위한 선물이었더라 이겁니다. (199-346)


---975---

  ② 일체된 생활을 해야 한다

모든 종교에서는 보는 것을 함부로 보지 말고, 듣는 것을 함부로 듣지 말고, 말하는 것이나 대하는 것을 함부로 하지 말라고 합니다.
보는 것도, 듣는 것도, 말하는 것도, 느끼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전부 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해야지, 자기 중심삼고 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66-231)

여러분은 하나님을 모신 자로서 기쁠 때 하나님을 얼마나 기쁘게 해드렸습니까? 여러분이 배고플 때 밥을 먹으면서 느끼는 고마움 이상 하나님을 모셔드렸습니까? 여러분은 좋은 것을 먹을 때나 입을 때, 그리고 슬플 때나 어려울 때에도 항상 하나님을 모셔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에 기억될 수 있는 사연들을 남겨 놓아야 합니다. (17-291)

나의 의식과 직관과 감각기관 일체까지도 아버지의 것이요, 내가 느끼고 의식하는 전체가 아버지의 것이라는 관(觀)이 결정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지 않는 한, 심정을 통해 움직이는 하늘을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8-294)

인간은 누구라도 심정적으로 하나님과 하나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자식된 인간은 바로 심정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12-346)

우리가 말을 하고, 보고, 느끼고, 또 감정적으로 체감(體感)하는 일체(一切)도 하나님을 중심삼고 인연된 것이어야 합니다. (53-239)

우리는 하나님을 모시고, 부모를 모시고 사는 겁니다. 말을 해도 그렇고, 행동을 해도 그렇고, 자나 깨나 모시는 생활을 해야 됩니다. 이런 컨셉(concept;개념)만 가지면 24시간 사탄이 침범할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161-231)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첫마디 말을 하늘 앞에 바치고, 집을 나설 때도 첫걸음을 오른발로 내디디며, 하늘 앞에 바쳐야 합니다. 평소의 습관이 이렇게 된다면, 여러분의 생활은 시의생활(侍義生活)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들은 원칙적인 기준에서 생활태도를 취해 나가야 합니다. (17-296)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 느끼는 모든 감각, 동작이 하나의 목적을 중심삼아 언제나 직선상에 귀일(歸一) 될 수 있어야 됩니다. 그점을 상실하게 되면 뜻과 나와는 관계맺을 수 없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57-237)

천국은 모시는 생활을 한 것을 자랑하는 곳입니다. 그러면 그 천국은 어떠한 자가 가는 곳인가? 주를 믿고 복을 받기 위해 복을 앞세워 나가는 자가 가는 곳이 아닙니다.
천국은 모시기 위해 심정적으로 준비하는 생활을 한 자들이 가는 곳입니다. 준비하는 기간에 죽는다 해도 모심의 생활을 남기고 기쁘게 갈 수 있는 자가 가는 곳입니다. 거기에 부활이 있는 것입니다. (8-304)


---976---

이제는 삼합(三合;하나님, 참부모, 여러분)이 일치되어야 합니다. 보조를 맞추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생사를 결정할 수 있는 내용이 달려 있기에, 삼자가 일치되는 점에서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점에 생명의 부활권이 있습니다. 그점이 하나되고 참부모와 여러분이 하나되어 일치될 수 있는 연결점입니다. 거기서 일심통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뜻과 일치된 생활을 해야 합니다. (31-321)

하루 24시간의 생활권내에서 내가 보고 듣고 했던 모든 일들은 무엇을 위해 보고 들은 것이냐? 하나님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보고 들어야 되고 느끼는 것도 하나님을 위해 느껴야 합니다. 우리가 지상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천상세계의 생활과 연결시켜 생활해야 합니다. (35-284)

매일같이 그리워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시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그리워하든 항상 그리움에 사무쳐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밤 12시만 되면 '야야! 자자!'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걱정을 끼쳐 드리는 사람입니다. 천국은 밤과 낮이 없습니다. 심정의 인연을 안고 나올 때는 밤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17-293)
본래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된 후에는 나 중심삼고 살고, 나 중심삼고 생각하고, 나 중심삼고 사랑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걸 확실히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때는 자기를 중심삼고 생각하고 자기를 중심삼고 사랑해도, 그것은 하나님을 중심삼은 생각이 되고 하나님 중심삼고 사랑하는 것이 됩니다. 그것이 원칙이라는 겁니다. (92-166)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과 인연 맺기 위해서 얼마나 정성들였느냐 하는 것이 자신의 재산입니다. (50-288)

여러분들은 눈물의 골짜기에서 아버지를 부를 때 응답받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눈물짓는 자리에서 '아버지' 할 때 '오냐 내가 여기 있으니 참아라', 피 땀 흘리는 고통이 사무치는 자리에서 '아버지여!' 할 때 '내가 참았으니 너도 참아라' 하시고, 죽음이 닥쳐오는 그 순간에도 '내가 있으니 안심해라' 하는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여러분들이 돼야 합니다.
그런 자리에서 얼마나 아버지를 모셨으며, 얼마나 아버지와 더불어 의논했으며, 얼마나 아버지와 더불어 살았느냐 하는 게 문제가 되지, 영광의 자리에서는 아버지를 아무리 불러봐야 문제가 안 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아직까지 아버지께서 영광의 날을 보시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11-102)

'아이고, 나 배고파! 아이고, 밥 밥 밥!' 이러는데 그거 누구를 위해서 먹겠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위해 먹겠다고 그래야 합니다.


---977---

어떻게 해서 하나님을 위해 먹는 것이라 하느냐? 내가 하나님의 완전한 성전이 되었다면 하나님의 성전인 '내가 배고프면 내 안에 계시는 하나님이 밥을 먹자고 하신다.' 이렇게 생각하라는 겁니다. 그렇게 밥을 먹으면 그 밥은 거룩한 밥이라는 겁니다. 밥이 밥님이 되는 겁니다. (92-166)

 2) 모심의 마음가짐과 태도

  ① 모심으로 생활의 천국화 이룩

하나님은 망상적이고 관념적인 하나님이 아닙니다. 추상적인 하나님이 아닙니다. 생활적인 주체성을 지니고 늘 우리가 살고 있는 생활의 주인으로서 함께 있는 것입니다. 모심만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공동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공동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하나님입니다. 꿈같은 얘기입니다. (168-72)

하나님을 마음 가운데 모시고, 우리 인간이 몸 자리에서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기원을 만들지 않고는, 이 악마의 세계를 청산할 길이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모심의 시대, 시의(侍義)의 구원시대라고 보는 겁니다. 모심으로 구원받는 겁니다. 하나님은 저 공중에 동떨어져서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 생활권내의 주체자로서 하나님을 모셔야 됩니다. (144-231)

여러분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하루에 몇 번이나 자각합니까? 24시간 가운데 몇 번이나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느낍니까? 모심으로 구원을 받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24시간 가운데 한두 시간 정도 모셔 가지고 되겠습니까?
공기보다도 절박하게 필요한 것이 하나님입니다. 물보다도 절박하게 필요한 것이 하나님입니다. 밥보다 더 귀한 것이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렇게 느껴져요? (33-214)
이제부터 여러분들은 모심의 생활을 해야 됩니다. 지금까지의 신앙생활은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신앙생활이었지만 앞으로는 모심으로 구원을 얻는 시대입니다. 본래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을 모심으로써 우리가 갈 길을 가는 것입니다. 모시는 데는 여러분의 생활과 마음으로 더불어 모셔야 됩니다. (161-218)

모심의 생활을 해야 할 우리입니다. 소망의 천국은 맞이했으나, 모시고 실천하면서 생활할 수 있는 천국은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즉 생활적인 면에서 주체되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6-193)

우리가 이렇게 배우고 듣고 모심의 생활을 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6천년 동안 인류가 허덕여 나온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경에 흐르고 있는 하나님의 사정을 알고 하나님의 심정을 알기 위해서입니다.


---978---

민족이나 국가는 말할 것도 없고 개개인을 놓고도 부모의 심정을 갖고 대하고, 상처를 당하고 유린을 당하고 배척을 받고 찢기며 나오신 그 하나님이 내 아버지라는 것을 알기 위해서입니다. (8-235)

성약시대는 사랑의 시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할 수 있는 겁니다. 지금까지의 종교시대에는 사랑을 허락치 않았기 때문에, 고차적인 종교는 결혼을 허락치 않았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96-117)

하나님은 우주의 중심존재이시므로 그 앞에 가까이 가면 천년만년 주관받더라도 더 주관받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모심의 도리가 그렇게 돼 있기 때문에, 오늘 우리 인간도 그러한 자리에서 주관받을 수 있으면, 그 이상의 행복이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습니다. (77-308)

믿음의 의니, 행함의 의니, 모심의 의를 추구하는 것은 왜냐? 의롭지 않고는 선악을 분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악한 세계와 선한 세계가 갈라지지 않습니다. 그 라이처스니스 스탠다드 포인트(righteousness standard point;선의 기준점)가 되는 것이 뭐냐?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믿는 것과 같이, 하나님이 행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이 모시는 것과 같이, 언제나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건 왜 그래야 되느냐?
사탄은 하나님과 같이 의로운 자에 대해서는 참소할 수 없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믿고, 하나님이 행하고, 하나님이 생활하는 모심의 환경에 처해 있으면 사탄이 간섭할 수 없습니다.
사탄권 내에 있더라도, 그런 환경에서 하나님과 같이 할 수 있는 의로운 기준이 벌어지면, 사탄은 거기서 후퇴하는 것입니다. (161-218)

행함의 구약시대가 지나가고, 믿음의 신약시대가 지나가고 모심의 성약시대만이 있는 게 아닙니다. 성약시대가 되더라도 행함이 필요하고 믿음이 필요하고 모심의 생활도 다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것은 소생, 장성이 있고 장성 위에 완성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그건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입니다. (161-218)

통일교회에서는 모심으로써 구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시의(侍義), 즉 모심으로써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춘하추동 양복을 해 입는 남자들이 있으면 아버지께도 해드려야 됩니다. 그분이 체(體)를 가진 분이 아니기 때문에 대신 정성을 모았다가 한 절기가 되면, 그 모은 정성을 누가 보나 안 보나 자기 혼자 교회를 위해 하나님을 모시는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연보궤에 드리게 되면, 그 정성은 법궤에 쌓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관념적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체화(體化)되고 표현될 수 있는 생활이 되어야 됩니다. (48-261)


---979---

모심의 생활은 왜 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한 것입니다. (78-30)

지금까지의 신앙생활은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었지만 앞으로는 모심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본래 타락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을 모심으로써 우리가 갈 길을 다 가는 것입니다. 믿기는 뭘 믿어요? 모시고 생활함으로써 다 되는 겁니다. 모시는데는 여러분의 생활과 마음으로 더불어 모셔야 됩니다. (150-213)

이제는 개인이면 개인으로서 하나님을 모시는 생활, 가정이면 가정으로서 하나님을 모시는 생활, 교회면 교회로서 하나님을 모시는 생활, 혹은 이 나라 이 민족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모심의 기준을 어떻게 새로운 전통으로 설정해 놓느냐 하는 것이 문제됩니다. (38-7)

통일교회시대는 부모님 시대입니다. 하나님이 땅에 임할 수 있고, 하나님이 오실 수 있는 길을 닦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오시게 될 때 모심으로써 구원을 얻는다는 말이 성립되는 겁니다. 역사는 그렇게 발전하는 것입니다. (177-85)

모심의 자리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슬퍼해 나오셨던 하나님을 위로해 드릴 수 있고 슬픈 정성의 사연에 동참할 수 있는 내용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것을 소개하고 그에 따르는 탕감조건을 하나님 앞에 세우기 위해 나온 것이 복귀원리입니다. (17-227)

여러분들은 모심의 생활을 해야 됩니다. 그러면 모심의 생활은 왜 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먼저 모셔야 됩니다. 하나님을 모셔야 된다는 겁니다. (78-30)

  ② 법도를 어기면 노여워하신다

하나님을 모시는 데에는 법도가 있습니다. 그 법도를 어길 때에 하나님은 노여워하십니다. (17-287)

여러분은 생활 속에서 법도를 지킬 줄 알아야 됩니다. 하늘이 요구하는 천국의 법도를 지키고, 또 천국 법도를 지킬 줄 아는 동시에 천국생활을 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천국생활을 할 줄 아는 동시에 천국의 사랑으로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슬퍼하시는 것을 항상 감별하면서 사는 사람은 악한 사람이 되려 해도 될 수 없고, 하늘의 법도에 어긋나려 해도 어긋날 수 없습니다. 그런 남자는 아무리 미인이 유혹하더라도 안 넘어갑니다. 거기에 동화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40-274)

오늘날 가정을 탈피하는 불행한 청년 남녀가 많은 원인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천륜의 법도에 일치된 사랑이 상실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정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그 가정에 좌정(座定)시킬 수 있는 천지부모가 현현하여야 되는 것입니다. (21-128)


---980---

주체를 위한 대상의 자리는 불평이 있을 수 없습니다. 불평하는 것은 망동입니다. 파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길은 불평을 불허합니다. 감사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걸 알아야 됩니다. 하늘은 언제나 주체로 계시기 때문에 주체와 더불어 상관된 운명을 가지고 그를 이탈하는 생활의 법도, 생활의 형태는 있을 수 없습니다. (58-310)

천리는 순서를 올바로 지키는 데서 성립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체와 대상 관계에서 하늘은 절대적인 주체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 주체를 무시하는 사람은 대상이 못됩니다. 절대적인 주체 앞에 절대적인 대상이 되려니 절대적으로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은, 가정에 들어가 사랑하는 것까지도 전부 대상과 주체 입장에 서 가지고 하늘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일체가 그런 것입니다. 그런 가정은 망하지 않습니다. (58-310)

최후에 남아질 것은 뭐냐? 하나님 플러스 인간, 신인(神人), 신인의 삶의 길, 신인 생활관입니다. 인생관도 마찬가지로 신인 인생관, 신인 세계관 그것이 막연하게 하나님을 대해 사람이 알 수 있는 정도의 자리가 아니라, 사람이 영원히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자리입니다.
왜? 하나님과 사람은 본래 떨어져서는 안 될 자리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떨어지지 않았어야 할 자리, 그 이상의 자리에 도달해야 합니다. 그런 자리에서 신인(神人)이 하나된 생활적인 무대, 세계적인 무대를 요구하고 나서야 하는 것입니다. (65-127)

승리적인 주관권을 세우기 위해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은 절대적인 신념을 갖고 모심의 생활을 중심삼아 일체적인 입장에서 생활해 나가야만 승리적 기대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복귀의 길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14-237)

주체를 위한 대상의 자리는 불평이 있을 수 없습니다. 불평은 망동이요, 파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길은 불평을 불허합니다. 감사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걸 알아야 됩니다. 하늘은 언제나 주체로 계시기 때문에 주체와 더불어 상관된 운명을 가지고 그를 이탈하는 생활의 법도나 형태는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58-310)

 3) 참아버님의 하나님 섬기는 법

  ① 지성감천(至誠感天)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라는 말은 무슨 말이냐? 그것은 생명을 바치라는 말입니다. 그 이상은 무엇이 있어요? 마음을 다하라는 것은 생명을 내놓으라는 말입니다. 뜻을 다하라는 것도, 정성을 다하라는 것도 생명을 내놓으라는 말입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있지요? 지성의 한계점, 내마음의 끝이 어디겠어요? 생명을 걸고 정성을 들이라는 겁니다. 목을 내놓고 죽을 각오를 하고 정성을 들이는 사람은 하나님이 모른다고 하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38-242)


---981---

생명을 내놓는 데는 억지로 내놓는 것이 아니라, 미칠듯이 좋아하면서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생명을 내놓을 바에는 울면서 내놓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시겠어요, 아니면 좋아서 미칠 것 같고, 죽어도 좋다고 하면서 춤을 추면서 내놓는 것을 좋아하시겠어요? 어떤 겁니까? (48-114)

선생님이 마루바닥에 엎드려 기도할 때는 눈물이 마르지 않았습니다. 여기(무릎)에 굳은 살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 하는 말이 있잖아요? 하나님을 위해 공을 들여야 됩니다.
하나님이 그리워서 미치리만큼 사무친 경지에까지 들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이 땅이라면 뭐 하루에 천만 번 왔다 가고 싶은 마음이 있으나, 그런 땅이 아니기 때문에 할 수 없어서 선생님을 보낸 겁니다. 그런 무엇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선생님을 사랑하지 않고는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괜히 그렇게 정(情)이 가요? 눈물을 흘리며 기도할 때에 동삼(冬三)에 솜바지저고리를 전부 다 눈물로 적실 때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기가 막혔겠나 생각해 보십시오. 칼을 꽂아 놓고 담판 기도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60-212)

여러분, 여기에 다이아몬드 광(鑛)이 있다고 합시다. 자기만 아는 그런 곳이 있으면 어떻게 하겠어요? 그것을 위해서 자기 가정도 팔아야 될 경우가 생길 것입니다. 부인을 팔아 수많은 가정을 구한다면, 그건 죄가 아닙니다. 자식을 팔아 나라의 수많은 아들딸을 구한다면 그것 또한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팔아서는 안 됩니다. 그 광산이 나라와 민족을 살릴 수 있는 길이요, 세계 만방의 인간들이 살 수 있는 길이라 할 때는 부인과 자식을 팔았다고 해서 역사 앞에 죄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를 살리기 위해, 세계를 살리기 위해 부인이나 자식을 파는 것은 안 될 것 같지만 오히려 세계가 찬양할 수 있는 보화의 근원이 깃들 수 있는 것입니다. (21-314)

밥을 먹으나 물을 마시나 앉으나 서나 누구를 대하나 부모님 앞에, 하늘 앞에 온 심정을 보일 수 있는 것으로 만점입니다. 지식이나 학식이 많아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나 아무개 박사요!' 그러고 살겠습니까? 그것 필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내가 어떻게 인도할 수 있느냐? 단 하나의 길은 '지성이면 감천' 이것 외에는 없습니다. (22-28)

선생님의 일생 모토는 '하나님의 대변인'이었습니다. 오늘부터는 여러분이 대변인이 되어 주기를 부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대역자(代役者)가 되고, 하나님의 대신 존재가 되고,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대사자(代死者)기 되어 주기를 바랍니다. (9-7)


---982---

엄청난 역사적인 종말시대에 누구도 신임할 수 없는 고독한 자리에 계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가 신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면 그 이상 바랄 것이 있겠습니까? 죽어도 좋다는 겁니다.
내 육신이 물이 되어 흘러간들 무슨 한이 있고 가루가 되어 날아간들 무슨 한이 있느냐 이겁니다. 세상에는 개돼지처럼 죽어가는 무가치한 인생이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죽은 자는 개도 안 뜯어 먹는 것입니다. (62-140)

불평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불만 가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내가 불평하면 부모님이 얼마나 아플까? 그분의 사정을 내가 알고 그분의 전통을 이어받을 수 있는 한 순간이 내 앞에 찾아들어오면 그것을 이어받고 그분을 따라가면서 그분을 위로하겠다.'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서 눈물짓는 그 자리에 하늘이 같이하는 겁니다.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울고, 부모님을 위해 울어야 됩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제단이요, 통일교회의 모심의 생활이라는 걸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114-281)

하나님의 사랑과 더불어 산다고 하였으니, 이제 여러분의 생활 목표는 어떠해야 하는가? 사랑의 심정을 가지고 모심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손수건을 대해 경배해도 우상 숭배가 아닙니다.
사랑의 심정을 가지고 머리 숙이는데 그 무엇이 지배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의 영광을 초월하여 심정으로 경배드리면 사탄이 더 그러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천주의 심정을 통해 나가는데는 우상이 없는 것입니다. (9-174)

  ② 효자의 길

선생님은 배가 고파 지쳐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염려하는 그 길을 내가 앞놓아 갈 것이냐, 짊어질 수 있는 십자가의 길이 있다면 어떻게 그 길을 갈 것이냐, 하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이러한 길을 가려고 준비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은 모심으로 구원받는다고 하는 것을 알면서도 뻔뻔스럽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런 마음에서 멈추면 안 됩니다. (13-216)

선생님이 무엇을 하시는지 모르면 밤잠이 안 와서 한밤중에라도 뛰어와서 물어보고 갈 수 있는 그런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모심으로 구원받는다고 했습니다. 선생님은 하나님에 대해 언제나 그렇게 삽니다. 촌분(寸分)도 방심하지 못합니다. (21-68)

여러분은 시의시대, 즉 모심의 생활을 하는 시대에 있어서 정확한 중심을 두고 나가야 됩니다. 하나님을 모시는 데에는 법도가 있습니다. 그 법도를 어길 때에는 하나님은 무척 노여워하십니다.


---983---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가 자식의 말 한마디에 가슴에 못이 박혔다 빠졌다 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도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노여움이 많으신 분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노여움을 사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선생님도 선생님대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려고 합니다. (17-287)

여러분도 여러분을 생각해 주는 사람을 찾아가지요?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하나님을 점령할 수 있는 길은 누구보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위해 봉헌하겠다고 하는 그 사람을 중심삼고 하나님은 찾아가는 겁니다. (9-160)

선생님은 하나님 앞에 솜바지저고리가 다 젖도록 기도한 적이 몇 번인지 모르고, 칼을 가지고 뱃가죽을 찌르며 맹세한 적이 몇 번인지 모르며,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서 마음을 굳게 다짐한 적이 몇천만 번인지 모릅니다. (19-19)

인간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첫째 계명인데, 사랑하는데는 죽도록 사랑해야 됩니까, 일시적으로 사랑해야 됩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을 죽도록 사랑할래요, 죽도록 사랑하지 않을래요? 벼락을 맞아 죽더라도 사랑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죽도록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죽도록 사랑해야 된다면 죽기 전까지는 못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37-25)

여러분은 눈이 뭉그러지고 코가 메이도록 울면서 그리워해야 합니다. 사람이 너무 울면 가슴이 아픕니다. 그만큼 사무치게 그리워해야 합니다. '아버지!' 하고 부르는데 있어 사형장에 끌려가는 아들의 입장에서 아버지를 부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요, 다른 먼 나라로 떠나는 아들의 입장에서 애절하게 아버지를 부르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를 부를 때 그런 기준 이상이 되어야 됩니다. (50-288)

백두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거기에 반석을 갈아 밭을 일궈 가지고 감자를 심어 그 감자로 하나님을 봉양할 수 있어요? 그거 해야 합니다. 그 때는 소가 없어서 사랑하는 아내를 소 삼아 밭을 일구었다면 벼락을 맞겠어요, 안 맞겠어요? 아내를 소 삼아서 밭을 일군다 할 때 하나님이 '야야 ! 그만 둬라!' 한다면 하겠어요?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고 네 정성을 다하라!' 했으니 하겠어요? 해야 합니다. (37-25)

여러분은 현재 어디에 있습니까? 밤이나 낮이나, 언제 어디 가든 선생님과 더불어 보조를 맞추어 살고 있습니까? 지금까지 선생님은 이 머리 가지고 살아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하나님이 가는 방향에 보조를 맞추면서 모든 생명을 다 투입하며 살아온 것입니다.
선생님은 하루하루의 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는 반드시 하나님께 기도해서 해결합니다. 주먹구구식으로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43-33)


---984---

이 길을 가기 위해서는 미욱해야 됩니다. 충신들은 어떻게 보면 미욱한 사람들입니다. 조금은 미련해 보입니다. 곰같은 성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팔을 잘리고도 '아이구, 여기 덜 잘랐다, 더 잘라라!' 하는, 그와 같은 미욱한 점이 있어야 합니다. 곰이나 멧돼지는 총에 맞아서 걸리적거리는 부분이 있으면 그 부분을 입으로 잘라 버리고 도망갑니다. 죽음은 나중에 생각하고 우선 걸리적거리는 것을 잘라 버립니다. 그런 미욱한 무엇이 있어야 됩니다. 충신 열사는 미욱해야 합니다. 조금은 어리석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26-143)

하나님을 해방해야 합니다. 참된 하나님의 권위를 중심삼고 이상경에서 인류 시조와 함께 무한한 행복을 찬양하며 살 수 있는 가운데 모심을 받으면서 지내실 하나님이 이렇게 비참하게 됐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우리의 손으로 해방시키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제안입니다. 그러한 내용이 종교계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지극히 기쁜 소식입니다. 복음 중의 복음입니다.
이렇게 볼 때, 불교를 세우신 분도 하나님이요, 유교를 세우신 분도 하나님이요, 회회교를 세우신 분도 하나님이요, 기독교를 세우신 분도 하나님이시니, 모든 종교가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 합니다. (176-221)

선생님은 지금까지 뜻을 위해 고생해 나왔고, 지금도 자나깨나 그 길을 가고 있습니다. 선생님을 가까이에서 모셔 보지 못한 사람은 선생님을 잘 알지 못합니다. 선생님은 자다가 눈만 뜨면 엎드려 기도합니다. 왜 그러한 생활을 하고 있느냐? 이 한밤에도 세계에 널려 있는 사랑하는 자녀들이 나를 의지하며 하나님을 위해 기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정성으로 같이하지 못하더라도 거기에 못지 않게 박자를 맞춰 줘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선생님이 잠을 잘 때에는 모르니까 하나님께서도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 시간에는 자식이 고단해서 잠자게 되면 아버지가 지켜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대신 기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26-138)

레버런 문은 어떤 사람이냐? 한 가지 재간 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미욱하게 그저 똑바로만 가는 사람입니다. 아, 입을 좀 다물고 적당히 돌아가면 될텐데, 왜 자꾸 욕먹게끔 작용을 하고 그러느냐는 겁니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받아야 한 고개를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지요? 그러면 왜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끊어 버리고 가야 되느냐?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에 이끌리면 곧게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곧은 길을 찾아 오셨기 때문에 곧게 가야 된다는 겁니다. (97-257)

하나님이 그렇게 외로운 분이고, 하나님이 그렇게 고독한 분이시기에 내가 죽는 날까지 그의 뜻과 그의 소원을 하나라도 풀어 주고, 그 분야의 한 터전이라도 확대시켜 하나님을 위할 수 있는 사람을 모으는 것이 사명인 줄 알고 나온 것입니다.


---985---

욕을 먹어도, 매를 맞아도 복수할 줄 모르고 사랑으로 참아나온 것은 하나님의 자식으로 태어났기 때문이고, 그분의 뜻을 세워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 전통을 어떻게 세우느냐를 생각하면서 비틀걸음으로 혹은 허리를 꾸부리고 배밀이를 해 가면서 이것만은 남겨야 된다고 하며 싸워 나온 것입니다. (82-47)

인간은 자기가 섰다고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가 세워 놓아 봤자 넘어진다 이겁니다. 그렇지만 인간이 세워 주지 않더라도 하늘이 세워주면 반드시 된다는 겁니다. (155-242)

참부모가 하는 것이 무엇이냐? 모든 것을 승리해 가지고 하나님의 마음 깊은 데까지 찾아 들어가서 한을 해원하고, 그 승리권을 지상에 이루는 겁니다. 그러한 참부모가 출현했다는 것을 여러분은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235-21)

여러분은 뜻길을 걸어 나오면서 얼마나 심각해 봤어요? 선생님은 일생 동안 그런 길을 걸어온 것입니다. 처자도 모릅니다. 하나님만이 알아요. 고독단신 외로운 사나이가 가는 길을 그 누구도 모르는 가운데 하나님이 협조해서 놀랄만한 실적을 가지고 오늘날 이 사회에 문제를 제시했고, 또 피폐해 가는 이 민주세계의 사상권 내에 새로운 파급을 제시하는 문제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된 것도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같이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82-45)


---986---

제 2 장 참부모에 대한 모심의 예법


 1) 참부모님은 축복가정의 중심

  ① 참부모님의 아들딸이 되려면

여러분은 이제 참부모하고 같이 살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부모는 할아버지 입장이고, 자기 어머니 아버지입장이고, 자기들은 장자의 입장이라는 겁니다. 이것이 다른 겁니다. 3대가 걸쳐 같이 산다는 결론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같이하고, 참부모가 나와 같이하고, 자기 부모가 같이하는 걸 느끼고 살아야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없다, 죽었다.' 하는 생각을 할 수 없는 시대에 들어왔습니다. (131-97)

일체를 부모와 더불어 상관하고, 부모와 더불어 결정하고, 부모와 더불어 의논하고, 부모와 더불어 해결해야 합니다. (73-61)

좋은 음식을 먹거나, 좋은 옷을 입을 때는, 그냥 먹고 입어서는 안 됩니다.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께 먼저 돌려 드려야 됩니다. 길을 걸을 때에도 우편에는 아버지를, 좌편에는 어머니를 모시고 가야 됩니다. (24-181)

부모의 사랑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느냐? 부모님이 사랑하는 모든 것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야 사랑받는 것입니다. 가정으로 말하면 자기 부모에게 사랑받기를 원한다면, 그 아들은 부모님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고 나서 사랑받아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을 안하고 사랑받으려는 사람은 도둑놈입니다. 부모가 귀하게 여기는 것을 전부 다 자기가 왱가당댕가당 마음대로 인수해서는 사랑 못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이 하는 대로 따라 하고, 선생님이 가는 대로 따라가라는 겁니다. 통일교회의 전통을 이어받으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님이 하는 대로 여러분이 하라는 겁니다. 선생님도 가정을 버리고 부모를 버리고 이 길을 걸어 왔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순종하며 가야 됩니다. (49-214)

참부모와 여러분들은 일체의 관계를 맺어야 하고, 영원히 그 관계가 변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과 세계 171)


---987---

여러분은 선생님의 피와 땀의 대가로 사온 사람들입니다. 선생님의 몸을 주고 사온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선생님과 같은 일을 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식구들을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공약합시다. (11-164)

사탄이 하늘을 배역(背逆)하고 천지의 법도를 그르쳤기 때문에, 여러분이 하늘을 지지하는 천사의 입장에 서서 하늘 앞에 충신의 도리를 세워야 합니다. 그러면 거기서부터 비로소 새로운 복귀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앞장세우는 것입니다. (25-203)

하나님의 심정을 느끼지 못하고 눈물로 갈라진 아담이기 때문에 눈물로 합해야 하고, 눈물로 갈라진 가인과 아벨의 원한을 눈물로 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길이 아니면 합할 길이 없습니다. 세계적으로 남자들 중에 선생님을 보고 싶어하면서 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그러한 사람 있어요? 이 엉터리들…. 옛날에는 다 그렇게 나왔습니다. 초창기에도 다 그렇게 했습니다.
통일교회에 다니는 부인들이 선생님을 따르니까 남편들이 자기 옆에 안 온다고 야단하고, 이와 반대로 여자들도 남편들이 선생님을 따르니까 자기 옆에 안 온다고 야단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남자들도 선생님이 보고 싶으면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통일교회 천국시대에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실체의 하나님 입장에 서 있는 참부모가 그리워서 울어야 합니다. 자꾸만 보고 싶어 해야 합니다. 밥이라도 한 그릇 지어 놓고, 물이라도 한 그릇 떠 놓고 모시고 싶어 해야 합니다. 그런 간절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눈물이 앞설 수 있는 심정을 갖고 있으면 되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선생님을 중심삼고 심정일치가 되고 선생님과 같이 호흡함으로써 선생님의 인격 기준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선생님의 과거와 거기에 얽힌 사연이 어떻게 되어 있는가를 알게 되고, 나아가 그것을 상속받고 인계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38-75)


  ② 참부모님을 얼마나 모셔 봤는가?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한 방법은 시대마다 달랐습니다. 즉, 구약시대에는 제물을 드림으로, 신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믿음으로, 성약시대에는 참부모를 모심으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20-340)

에덴동산에서 아담 해와는 타락을 했고, 그 타락권 내에서 살았기 때문에 직접적인 모심의 생활을 못 해본 겁니다. 모심의 내용을 하지 못한 인간들은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타락의 혈통을 받아 생활했을망정 복귀의 노정을 탕감해 놓고 지상에서 실체를 쓰고 아담 해와가 모시지 못한 참부모를 모시고, 하나님을 모시고 살고 갔다는 조건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시민권을 얻게 되는 겁니다. (150-213)


---988---

내가 사랑해야 할 만물의 부모 앞에 효자가 되지 못했고, 나를 낳아준 부모 앞에 효자가 되지 못했고, 영계와 하나님 앞에 효자가 되지 못했지만 선생님을 중심삼고 참부모를 모심으로 말미암아 효자의 자격을 대신 부여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악착같이 따라가야 된다는 겁니다. (105-88)

참부모를 멀리 대하게 될 때에는 나라의 국왕이요, 가까이 대할 때는 부모입니다. 그렇게 돼 있다는 겁니다. (150-213)

여러분은 선생님을 위해 얼마나 기도하고, 얼마나 보고 싶어 했습니까? 진정으로 보고 싶어 하고 진정으로 기도하고 진정으로 사모하였다면, 이 몸뚱이 보는 것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23-52)

밥을 먹을 때에도 '아버님, 먼저 드시옵소서!' 해야 합니다. (11-218)

여러분이 아버님을 모실 수 있는 그때 그 시간이 오면 어떻게 할 것이냐? 어떻게 효도를 할 것이냐? 그리고 어떤 모습으로 아버님을 모실 것이냐를 생각해야 합니다. (17-293)

기도실을 마련해 놓고 선생님 사진 놓고 천번 만번 경배하라는 겁니다. 옛날 재림주를 모시기 위해 준비하던 허호빈씨 단체 같은 데서는 매일 3천 번 경배를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한 번 해보라는 겁니다. 바느질도 올 하나씩 하나씩 손으로 했습니다. 재봉틀로 하면 불경하다고 말입니다. 그렇게 정성을 들여도 부족한 것입니다. (1988. 5. 15. 본부교회)

여러분이 거울을 보면서 이 눈이 얼마나 부모님이 보고 싶어 눈물을 흘렸고, 이 입이 부모님의 해원성사를 얼마나 외쳐 봤으며, 이 손이 얼마나 부모님의 땅에서 피를 흘리고 일해 봤으며, 내 몸이 으스러지도록 부모님이 원하는 터전 위에서 일해 왔느뇨?
'그것을 못한 것이 한입니다!' 할 수 있는 마음을 느끼면서 그 길을 찾아가는 것이 행복한 길이요, 그 길에서 하늘과 더불어 인연을 맺는 것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누가 지배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부모뿐이요, 그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는 사람도 부모뿐이요,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사람도 부모뿐입니다.
그리고 부모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아들 외에는 없습니다.
부모의 소망은 부모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아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173-10)

여러분이 생각하는 하나님에 대한 모심의 생활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을 일체로 생각하고, 부모님을 일체로 생각하고 생활하는 모든 것이 일체가 되어 내가 산다면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인 동시에 참부모의 것이요, 참부모의 것은 참부모의 나라의 것이요, 참부모의 나라의 것이 되면 내 것이다.' 이런 관념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989---

이 우주도 참부모의 것이요, 이 집도 참부모의 것이요, 나라도 세계도 참부모의 것이기 때문에, 나는 참부모의 아들이니까 모든 것은 내 것이다 하는 결론이 나오는 겁니다. (161-231)

선생님 드린다고 집에서 쑥떡을 만들어 그 떡이 더러움 탈까봐 풀지도 않고 본부까지 와서 보란 듯이 풀어 보니, 떡이 쉬어 시퍼런 곰팡이가 슬어 있었던 적도 있었어요. 떡에 시퍼런 곰팡이가 피고 구더기가 생겨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 떡은 먹지는 못해도 억천만금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록 정이 든다는 것입니다. (33-113)

사랑은 우둔하고 미욱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옆에서 누가 보든지 말든지 상관 않는다는 것입니다. 누가 볼 것을 의식하는 사랑은 한계권 내의 사랑입니다. 누가 보든 말든 의식하지 않는 그런 경지의 사랑이 얼마나 우직하고 미욱하냐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두메산골에서 캔 도라지를 선생님 앞에 가져와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영계에 가면 그를 해방시킬 수 있는 좋은 재료가 되는 것입니다. (33-113)

여러분은 선생님이 고생한 이야기를 하면 그것이 내가 당한 것같이 느껴지고, 가슴이 아프고, 슬프고, 눈물이 나고, 억울해 하고, 분해 하고, 이렇게 동감할 수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을 동감시키게 하기 위한 재료가 선생님의 고생입니다. (38-101)

선생님을 알았다고 하지 말라. 선생님은 원리밖에 모른다. 원리원칙에 입각한 사람만을 안다. (뜻길 말씀의 장)

선생님이 한 석 달 동안만 매일같이 여러분들 집에 가면 어떻겠습니까? '아이고 지겨워!' 하면서 싫어할 것입니다. 안그러겠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선생님이 이런 저런 할 얘기가 참 많습니다. 그런 것을 다 알고 있는 선생님이 기가 막히겠습니까, 트이겠습니까? 기가 막힌다는 말이 그래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여러분은 자기 위신도 모르고 처신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것을 교육시켜야 합니다. (26-299)

선생님이 살아 있을 때에는 선생님의 역사를 안 쓰지만, 선생님이 죽은 다음에는 선생님의 역사를 쓸 게 아닙니까? 그러므로 원리에 공인될 수 없는 일을 했다면 큰일 날 것입니다.
왜 이렇게 살았느냐 하는 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원리적 내용이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만약 이것이 안 된다면 지금까지 이루어진 것을 몽땅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임자는 어렵다는 겁니다.


---990---

 2) 참부모님을 사랑하고 자랑하자


  ① 참부모님은 인류 전체의 소망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참부모가 뭐냐? 타락하지 않았으면 하나님이 종적인 사랑이 되고, 아담 해와는 하나님의 몸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몸과 같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뼈와 같고, 아담 해와는 몸과 같은 거다 이겁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도 마음이 있고 몸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내적인 자리에서 내적인 부모가 되고 아담 해와는 외적인 자리에서 외적인 부모가 되는 겁니다. 내적 외적 부모가 하나된 그 자리에서 사랑으로 엮어져 내적 부모를 모시게 되고 외적 부모를 갖게 됩니다.
하나님과 인간과의 사랑의 결탁에 의해 참부모, 즉, 완성한 인간이 성사될 것이었다 이겁니다. 사랑과 결탁 안 되게 되면 완성인간이 없다는 겁니다. (133-86)

참부모는 무엇을 해야 되느냐? 사탄세계의 뿌리되는 그릇된 혈통을 바로잡아야 되고, 그릇된 생명을 돌이켜 놓아야 되고, 그릇된 사랑의 길을 바로 열어야 됩니다. 성경에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고 했는데, 그런 역설적인 논리가 왜 나와야 되느냐? 사탄세계는 죽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1987. 10. 4. 본부교회)

여러분은 참부모의 진짜 아들딸입니까? 참자녀는 무엇을 중심삼고 말하는 거예요? 참혈통입니다. 물론 참사랑을 통해 인연되지만 이루어지기는 참혈통을 통해 연결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혈통을 통해 연결된 것은 어머니 아버지를 닮는 것입니다. 그래, 여러분은 선생님을 닮았어요?
여러분의 눈은 새파랗고 나는 새까맣고 머리카락도 다릅니다. 머리카락이 전부 하얗습니다. 나는 동양사람이고 얼굴이 판판합니다. 닮는 데에 있어서는 제일 골자만 닮습니다. 골자만 닮는데 뭘 닮느냐 하면, 사탄을 이기는 것하고, 하나님을 절대로 사랑하는 것만 닮습니다. 그것만 닮는다는 겁니다. 그래 가지고 사탄을 주관하여 컨트롤한다는 것입니다. (1987. 11. 8. 본부교회)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얼마만큼 사랑해야 되느냐? 근본문제로 돌아가는 겁니다. 사탄세계의 사랑의 흔적이 있는, 그 사랑이 물든 자리에서 사랑하면 안됩니다. 그 이상이라야 됩니다. 여러분이 사탄세계에서 태어난 어머니, 아버지, 처자 그 누구보다도 더 사랑해야 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하기를 '네 처자를 나보다 더 사랑하면 나에게 합당치 않고, 네 에미나 애비를 나보다 더 사랑하면 나에게 합당치 않다.'고 한 겁니다. 전부 그런 결론을 내린 겁니다. 그러면서 나중에는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고 했습니다. 십자가를 져야 된다고 했습니다. 반대로 끌고 가는 힘을 누르고 넘어가려니 십자가입니다. 여기에서 비통한 눈물을 흘려야 됩니다. (1988. 6. 1. 본부교회)


---991---

참부모란 어떠한 존재냐? 참부모는 모든 전체의 소망의 상징입니다. 타락한 인류 앞에 절대적인 소망의 상징인 것입니다. 그는 역사적인 결실체요, 시대적인 중심이요, 50억 인류가 살고 있는 오늘날 이 세계 국가권의 중심입니다. 참부모는 앞으로의 이상세계로 연결될 수 있는 미래선상에 있어서의 출발점입니다. (35-237)

만민이 소원하는 것은 무엇이냐? 세계 국가를 맞기 전에 참부모를 맞이하려는 것입니다. 누구로부터 출발하고 싶어하느냐? 여러분의 새로운 아들딸은 여러분의 핏줄을 통해 태어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참부모님의 핏줄을 통해 태어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부모는 새로운 미래의 출발점이 된다는 것입니다. (35-237)

오늘날 하나님은 무엇을 원하고 계신가 하면, 이 말세 시대에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을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완전히 심정적이며 종적으로 복귀된 완성된 사나이, 다시 말해서 메시아로서 또다시 나타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완성된 아담을 대신하고 완성된 해와를 대신하는 중심인물이 나와야 합니다. (35-237)

성약시대는 하나님 자체가 참부모의 모습을 하고 만민 앞에 나타나게 됩니다. 통일교회가 정치에 의한 어떠한 힘을 투입하더라도 주관당하지 않는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인 것입니다.
살아있는 하나님을 우리가 직접 눈으로 보고, 감각을 가지고 체휼할 수 있는 권내에서 체험을 거듭하면서 나가는 것이 우리 통일교회의 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세계 286)

인간의 소원은 참부모를 만나는 것입니다. 죽음길을 가더라도 만나야 할 사람이 참부모라는 것입니다. 역사를 다 잃어버리고, 시대를 다 잃어버리고, 자기의 후손을 다 잃어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참부모를 만난다면 역사를 찾는 것이요, 시대를 찾는 것이요, 미래를 찾는 것입니다. 이런 분이 바로 참부모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35-237)
참부모라는 그 이름 세 자를 생각할 때, 참부모로 말미암아 역사가 치리되고, 참부모로 말미암아 새로운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기원이 생겨나고, 참부모로 말미암아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내적인 인연이 결정되고, 참부모로 말미암아 외적인 세계를 점령하고 있는 사탄을 정복하여 비로소 하나님을 해원성사해 드릴 수 있는 중심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부모와 더불어 살고, 참부모의 명령을 받들어 행동할 수 있는, 이 놀라운 은사에 여러분이 먼저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43-144)

여러분이 참부모와 완전히 하나될 때 국가가 있는 것이요, 종족도 있는 것이요, 민족도 있는 것이요, 가정도 있는 것입니다. 천지의 모든 영광의 가치를 종합한 실체 기준이 참부모입니다.


---992---

참부모를 세상의 돈과 바꾸겠습니까? 자기 생명을 주고 바꿀 수 있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옛날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디를 가더라도 참부모를 모시기 위해 대한민국을 찾아와야 합니다.
여러분의 아들딸도, 천세 만세의 후손들도 그래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30-237)

모든 것은 어디에 귀결되느냐? 참부모를 만나는 데 귀결되는 것입니다. 인류의 참부모가 나타나는 것이 역사의 소원이요, 국가의 소원이요, 섭리의 소원입니다.
그래서 그런 참부모가 나타나는 때는 역사상에 한 번밖에 없는 정점을 이루는 때요, 전무후무한 때인 것입니다. 영원한 세계를 두고 보면 인간의 일생이라는 것은 숨 한 번 쉬는 기간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세계 105)

  ② 가정마다 참부모님 존영 모시기

오늘 이후 여러분들은 선생님의 사진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떠한 고난에 처한다고 하더라도 무사히 견뎌낼 수 있도록 보호해줄 것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급의 바로왕으로부터 탈출시켜 가나안으로 인도하기 위해 이적기사를 행할 때, 장자가 환난을 당해 병들어 죽었지만 양의 피를 문설주에 칠한 집은 그 환난이 모두 피해 갔던 것입니다. 영계는 우리 인간들의 모든 행동을 볼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보호해 주기도 하는 것입니다. (130-290)

문총재가 유명합니다. 나라를 위한 애국자란 말은 다 인정하고 있습니다. 또 내가 한 공적에는 천하가 다 머리 숙입니다.
그리고 '저 사진을 건 이상 저분 앞에 있어서는 부처끼리 싸움 함부로 못해!' 하고, 아들딸 앞에도 '야야, 저 문선생 앞에선 안돼!' 하게 된다면 그거 나쁠 게 뭐 있어요? 자기 부모 사진 이상 모심으로 조상들이 와서 조상으로 모시는 겁니다. 또한 조상들이 와서 그 집을 모실 수 있는 제단이 되는 겁니다.
그럼으로써 천상세계에서 복받을 수 있는 길이 있기 때문에 새로 3시가 되면 자기들은 자지만 전부 일가 주변에 삿(邪)된 악마들을 모두 쫓아내는 것입니다. (1991. 8. 25. 본부교회)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서 나올 때 문설주에 피를 발라 화를 면한 것과 마찬가지로, 사진을 갖고 있으면 그런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영계는 선생님 사진을 암만 포켓에 넣어 두었더라도 압니다. 이렇게 작은 조건이 문설주에 피를 바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132-190)

선생님의 미소는 모나리자 미소만큼이나 신비한 데가 있다는 경험을 했을 겁니다. 어떤 때에는 이렇고, 또 어떤 때에는 저렇고. 수십만 가지의 모습으로 보이는 이 신비로운 모습이 영계가 여러분을 협조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경험을 대부분이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993---

영계의 영인들은 다 선생님을 잘 아는데, 이 사진을 보면 영계가 좋아하겠어요, 나빠하겠어요? 여러분의 조상들이 이것을 매개체로 해서 연결될 수 있습니다. 그런 좋은 재료로 알기 바랍니다. (132-190)

이제 레버런 문의 명성은 국경을 넘어섰습니다. 도처에 있는 위정자들 가운데는 서재에 레버런 문의 사진을 걸어 놓고 추앙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습니다.
윤박사도 내 사진 갖다 걸었나? 매일 인사 하나? 매일 키스해? 열정적이어야 됩니다. 키스해야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실례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해서 키스를 해줌으로 영계에 간 사람들이 내가 키스하는 바람에 동참권, 동위권을 갖게끔 하기 위해 이런다고 할 때 하나님이 '노'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냐, 네 말이 맞다!' 한다는 겁니다. 어때요, 윤세원? 그래 보시지. (171-239)

부모님 사진 붙이고 통일교회 깃발만 달면 그것은 하늘나라 권속이 되는 겁니다. 하늘나라 권속 만들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깃발 다는 것 저주하다가 벼락 맞은 사람 많잖아. 참 신기하지. 선생님을 손가락질하다 손에 병나 가지고 며칠밤 기도하고 회개하고야 낫고. 그런 일이 벌어지잖아? 왜? 천운이 찾아오는데 개인 운세로 막을 수 없습니다. 숙명적인 길입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들고 있을 때 그걸 바라본 사람은 다 살았습니다. 통일교회 기(旗)를 바라봐 가지고 갈 적마다 경배하고 올 적마다 경배하고 사진보고 갈 적마다 경배하고 올 적마다 경배하면 산다는 겁니다. (1991. 8. 25. 본부교회)

통일깃발을 다는 것은 지나가던 교인들이 배가 고프거든 여기 들어와서 쉬라는 표시이고, 점심때면 점심이라도 먹고 가라는 표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손님을 대접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됩니다. 부모님을 대신해서 그런 준비를 해야 되는 겁니다. 그러니 방도 있어야 되고….
그런데 부모님이 안 오니 손님을 부모님 대신 모시겠다는 겁니다. 이 사상은 하늘의 최고의 기준 앞에 평준화 사상을 연결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한 뜻에서 손님을 하나님같이, 부모님같이 모시라는 겁니다. 그런 사람은 복을 받습니다. (169-217)


 3) 참부모님 모시는데도 법도가 있다

  ① 시의시대의 법은 최고의 법

여러분들이 거동하는 것, 앉는 것, 모든 것이 법제화되어야 합니다. 선생님을 대할 때의 인사법 같은 것도 법제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을 대할 때의 인사법, 그거 다 있을 것 아니예요? 안 그렇겠어요? 사회에도 그런 법이 있는데 그럴 거 아니예요? (31-276)


---994---

오늘날까지의 인륜 도덕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부부는 유별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삼강오륜의 초석으로 지금까지 내려왔으나 이것이 역시 바뀌어지고 있습니다.
이렇듯 기존의 관습이나 규범 등이 자연적으로 바뀌어지는 기세가 사회환경에, 생활환경에 침투해 들어오는 날이 끝날이라는 겁니다. 메시아가 이 땅 위에 나타난다 할진대 그분은 이 문제를 수습해야 합니다. (11-19)

타락한 습관에 대한 모든 것을 시정하기 위한 새로운 법이 있을 것 아닙니까? 우리 앞에는 수많은 법적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것을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66-297)

한국의 예법에 어른으로부터 뭘 받을 때에는 양손으로 받게 돼 있습니다. 그것은 수평이 돼야만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받는 것은 수직을 통해 90도로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인심(人心)은 천심(天心)이라 하지요? 우리의 모든 규례는 양심의 도리에 따라 상대적으로 빚어져 나온 것이기 때문에 수평이 돼야 됩니다.
또 길을 가더라도 동양사상은 어른이 먼저 서야 됩니다. 왜? 먼저 나왔으니까. 그렇게 환경을 맞추려고 그런다는 것입니다. 나중된 사람은 나중에 서고, 높은 것은 높은 것으로, 낮으면 낮은 것으로, 앞의 것은 앞의 것으로, 뒤의 것은 뒤의 것으로, 위의 것은 위의 것으로서 전후를 갖추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관은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영원불변하는 겁니다. (185-271.168-252)

한 나라의 군왕과 신하 사이에도 매일 아침 조회가 있는 것입니다. 한국 가정을 보면, 아침에 부모가 일어나면 부모님께 먼저 인사를 드립니다. 이런 것이 한국의 법도가 아니예요? 여러분은 역사시대를 탕감하기 위해서는 법 중의 법, 효도하는 법이면 효도하는 법 중에서도 최고의 법도를 세워야 하고 , 국가에 있어서도 최고의 기준을 넘어설 수 있는 법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31-275)

세상에는 부모가 죽어 3년상을 치를 때에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상식을 올리고, 나갈 때나 들어올 때 영좌(靈座)에 고(告)하여 인사하는 법도가 있지 않으냐 이겁니다. 여러분은 그 이상 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지금 하는 것이 뜻적으로 볼 때 하늘의 격식(格式)에 딱 맞춘 생활이냐? 어림없다는 것입니다. (31-275)

가정의 전통을 세우는 가장 빠른 길은 선생님이 살아 있을 때 하는 것입니다. 원래는 매일 아침 목욕재계하고 10리 밖에서 걸어와 선생님께 경배드려야 합니다. 이런 전통을 세우지 못하면 자기의 후손들의 길이 막히게 됩니다. (21-88)


---995---

통일교인들 중에 선생님이 가끔 영화 구경간다고 '우리들도 영화 보러 가야지.' 합니다. 천만에요. 옛날에는 선생님이 극장 앞에 돌아다녀 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훈련을 거쳐 그런 자리에 가더라도 내가 더럽힘을 받지 않고 지배받지 않는 자주적인 인간이 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하는 대로 다 하겠다고…. 내가 지방에 갔는데 어떤 녀석이 내가 반말을 한다고…. 이런 시시껄렁한 패들이 있습니다. 내가 반말 할 때까지는 어린 삼척동자까지도 섬기고 경배하고 하나님 앞에 모심의 생활을 했던 몸입니다. 뜻을 알고 나면 선생님이 자기들에게 경어를 쓰면 거북해서 얼굴을 들고 말을 못합니다. 깍듯이 대해 줘보라고요, 얼마나 거북한가? (57-277)


  ② 인간이 귀한 것은 인륜도덕 때문

로마법이 현재 세계법의 기초가 되고 있지만, 인륜도덕은 어디까지나 양심을 근거로 합니다. 법보다는 양심이라는 것입니다. 양심의 기초는 선(善)입니다. 선을 표준하는 것입니다. 선을 벗어나서 잘못될 때는 양심이 그 잘못된 것을 시정해 갑니다. 그리고 양심에 일치될 수 있는 보편적인 사회체제를 형성하려니 법령도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니 결국 인륜은 어디에 근거를 두느냐? 천륜에 근거를 두는 것입니다. (33-44)

인륜은 무엇을 통해 형성되느냐 하면, 정(情)을 통해 형성됩니다. 가족 관계라든가, 도덕관념이라든가 사회제도라든가 질서라는 것은 전부 다 정서적인 면입니다. 정을 먼저 느낀 그것이 오래 됐든가, 차원이 높든가 하면 거기에 머리 숙이게 됩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인륜 형성의 동기는 정(情)에서부터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데서 인륜은 시작됩니다.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데서 참다운 인간관계는 성립되는 것입니다. (64-124)

여러분은 부모를 좋아하고 필요로 합니다. 언제나 부모를 만나고 싶어하고 같이 있고 싶어 합니다. 그건 왜, 무엇 때문에? 연령으로 봐도 차이가 있고, 질서적 단계를 봐도 상하의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예(禮)를 갖춰 존경하고 효도를 해야 합니다. 이런 모든 사회생활의 인륜 도덕적인 내용을 갖춰 상하관계에 있어서 하나는 주체요 하나는 대상의 자리에 서야 합니다. 여기에는 어떤 면에서 효자가 되려면 순종이나 복종이란 내용을 개재시켜 가지고 내가 만나고 싶어해야 된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자관계입니다. (112-251)

인간이 귀한 것은 인륜도덕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륜은 사람과 사람 관계를 말합니다. 한 사람을 두고는 인륜이라는 말을 안 합니다. 인륜이란 말은 두 사람 이상이 되어야 성립됩니다. 남자와 여자가 결혼한 가정에서부터 사회의 윤리라는 말이 성립되는 겁니다. 윤리는 인간관계의 도리요, 법칙입니다. (136-208)


---996---

우주의 일월성신의 창조의 법칙, 즉 천도에 의해 종적질서의 체계를 이루고 있는 것과 같이, 가정에 있어서도 조부모․부모․자녀로 이루어지는 종적 질서와 형제 자매로 이루어지는 횡적 질서의 체계가 세워지는 동시에, 상응하는 가치관, 즉 규범이 성립됨을 밝혀야 할 것입니다. (122-304)

우리는 초민족적, 초국가적인 새로운 전통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그 전통을 우리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라는 대로 전통의 상대적 기반을 닦아 나가야 됩니다. 여러분들의 습관성이나 과거의 풍습, 현재 성행하는 유행이라든가 하는 것에 보조를 맞추는 것이 아닙니다. 완전히 다르다는 걸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보면 모든 전체가 하모니가 되게 돼 있다는 겁니다. 어색한 데가 없게끔 자연스러우면서도 전부 다 화합하는 데에서 그것이 하나의 자극적인 동기가 될 수 있게 돼 있지, 그렇게 보기 싫은 데 주목하게 안 돼 있다는 겁니다. (66-299)


---997---

제 3 장 예배와 교회 생활예절

 1) 교회에 대한 올바른 인식

  ① 교회는 말씀, 인격을 종합하는 곳

교회가 가야할 목적은 하나님의 나라를 찾아 세우는 것입니다. 교회를 찾아 세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래 가지신 창조이상은 나라를 중심삼고 하나의 세계를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교회가 가야할 목적지는 그 나라를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86-12)

앞으로 교회시대는 지나갑니다. 인류가 바라는 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타락권내에서 복귀의 운명 길을 갈 때 필요한 것이지, 새로운 때를 맞게 되면 교회시대는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교회 활동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이름을 가지고 사회에 적응하고, 사회를 개혁하고, 사회 확청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 나라와 민족, 또는 세계에 살고 있는 인류가 하지 못하는 개척자의 사명을 하는 것입니다. 이 길이 지금 여러분들이 가야 할 길입니다. (28-222)

교회는 과거, 현재, 미래의 인연의 본거지입니다. 그런고로 탕감조건을 성립시키는 매개체요, 말씀과 인격과 심정을 종합하는 곳이 됩니다. (20-314)
교회는 천지를 연결하는 지성소입니다. 교회는 세계로 가는 문호이며, 모든 사람들이 상부상조의 인연을 갖게 하며, 국가 존망의 영적 지주가 됩니다. 교회는 영적 생활의 원천으로써 매일 매일 생활의 힘을 보급해 줍니다. (20-314)

가정에 충성하기 전에 교회에 충성하고, 사회에 충성하기 전에 교회에 충성해야 원칙입니다. 교회가 주체요 가정과 사회는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어디에 서느냐? 주체의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주체의 자리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대상은 동서남북 사방에 있어서 360도 회전이 되어야 하지만, 주체는 중심 딱 한 곳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절대적인 권내의 자리입니다. 둘이 아닙니다. 중심이 둘이 될 수 있어요? 이것이 왔다갔다하면 망할 가능성이 많은 것입니다. (25-162)


---998---

기독교인들은 전지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시기에, 천번 만번 죄를 지어도 용서해 주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교회에서 기도하고 나오기가 무섭게 싸움을 합니다. 교회란 죄 지은 후에 회개하는 회개당이 아닙니다. 그렇게 많은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라면 왜 에덴동산에서 사탄이 한 번 지은 죄는 용서하지 못하시느냐는 말입니다. 그럴 것 아닙니까? 또, 사탄이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이 있었다면 회개했을 것입니다. 천번 만번 눈물을 흘리며 회개를 했을 것입니다. (19-161)

교회가 하나에서 둘로 갈라지고 둘에서 넷으로 갈라지고, 이렇게 세 번만 갈라지면 하나님은 떠납니다. 천리원칙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가정적으로 모입니다. 은혜 있는 사람은 가정적으로 모입니다. 교회에 안 갑니다. 가정에 엎드려 기도합니다. 그렇게 되나 안되나 두고 보라구요.
통일교회의 목적이 뭐냐? 인류를 대해 가지고 하나님하고 메시아하고 지구성에서 춤을 추고 사탄까지도 다 복받게 한번 해보자는 겁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길이니 얼마나 위대해요? 그곳까지 가자는 게 통일교회입니다. 자, 말을 들어 보니까 통일교회가 어떻고, 이단이고, 무슨 사교고 하지만, 우리는 콧방귀도 안 뀝니다. 거룩한 사람들이 길 가는데 동네 개가 짖더라,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80-257)

끝날인 이 시대에 통일교회가 하여야 할 사명은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이뇨? 인류의 소원이 무엇이뇨?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이뇨? 인류의 사정이 무엇이뇨? 하나님의 심정이 무엇이뇨? 인간들의 심정이 무엇이뇨?'하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나온 교회입니다. 그런 세계를 가르쳐 줄 수 있고, 천 사람 만 사람 다 교육시킨다고 하게 되면, 이 이념권내의 세계는 통일이 안 되려야 안 될 수가 없습니다. (151-237)

  ② 교회는 가정의 연장이다

'나는 누구 때문에 교회에 간다. 나는 내 사랑하는 아들딸 때문에 교회에 간다. 혹은 사랑하는 남편 때문에 아내 때문에 교회에 간다.' 하는 자들은 다 못 넘어 갑니다. 누구 때문에 가느냐 하면, 하나님 때문에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내 하나님으로 모시기 위해, 하나님의 사랑을 내 사랑으로 찾기 위해, 교회에 가는 것입니다. (8-162)

공적인 교회는 자기의 집보다 더 귀합니다. (15-271)

교회를 통해 천국은 연결됩니다. 가정은 교회를 통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 고로 교회는 가정이 승리할 기반이며, 가법(家法)을 결실시키는 곳이며, 인격을 인정받는 곳이며, 천국생활의 훈련장이 됩니다. (21-350)


---999---

'얼굴이 잘 생기고 젊은 사람이라야 전도한다.' 천만에요. 교회라는 것은 가정의 연장입니다. 가정의 연장이라는 걸 알아야 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어야 되고, 아주머니가 있어야 되고, 아저씨가 있어야 되고, 젊은 사람도 있어야 되고…. 교회에 전부 다 젊은 사람만 있다면 이것은 병폐입니다. 이걸 빨리 시정해야 되겠다는 것이 선생님의 생각입니다. 윗사람을 모실 줄 알아야 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하나님 대신이고, 어머니 아버지는 부모이고, 자기와 아들딸까지 4단계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부모, 나, 이렇게 되면 단계로 보면 3단계라는 것입니다.
이 운명권을 벗어날 수 없는 인생살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자기 부부, 아들딸, 이것이 3단계를 줄을 넷 그어야 세 단계가 나오지요? 그러니까 7수 기준이기 때문에 이것을 묶지 않고는 3단계가 안 나온다는 겁니다. 이걸 묶지 않으면 전부 다 제멋대로 엇갈리는데…. 3단계가 나오려면 이걸 묶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생활에서 하나님으로부터 공인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서지 못한 사람은 사회생활에서 하나님을 대신한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내적인 교회생활에서 하나님의 공인을 받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들의 교회에 대한 관념을 생각해 보게 될 때, 교회에 모여 집회하는 그 시간이 얼마나 귀하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공적 집회에 대한 관념이 희박하기 때문에 뜻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에 대해서도 희박해지는 겁니다.
내적으로 자기가 설 수 있는 자리가 어떻다는 것을 확실히 모르기 때문에 외적 기준도 확실치 않다는 겁니다. (22-36)

어떤 사람을 보면 교회생활은 잘 하는데 사회생활은 못하는 사람이 있고, 또 사회생활은 잘 하는데 교회생활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사회생활은 잘 하지만 교회생활을 못하는 사람은 열매를 갖출 수 있는 요인과 그 내용이 없습니다.
교회생활은 잘 하지만 사회생활을 못하는 사람과, 사회생활은 잘 하지만 교회생활을 못하는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이 더 나으냐 할 때, 교회생활 잘 하는 사람이 낫습니다.
결실의 요인을 갖춘 사람은 내일의 희망을 가지고 움직여 나갈 수 있지만, 결실의 요인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결실과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36-20)

여러분은 혈통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딸인 것을 증거하고, 진리를 통해 하나님의 아들딸인 것을 증거하고, 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딸인 것을 증거하고, 일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딸인 것을 증거할 수 있는 기준을 찾아 세워야만 합니다. 이 기준을 찾아 세우지 못하면 교회에 나와 신앙생활하는 것은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습니다. (3-40)

가정과 교회와 사회의 삼각권(三角圈)을 중심삼고 볼 때, 여러분은 가정을 중심한 생각이 강합니까, 교회를 중심한 생각이 강합니까? 아니면 사회를 중심하고 자기 출세하기 위한 생각이 강합니까? 여러분은 어떤 것이 더 강한 지 생각해 보십시오.


---1000---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협조해 주고 동정해 주겠습니까? 교회를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 대신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구해주는 것입니다. (42-169)

인격자가 되기 위해서는 조직적 훈련이 필요합니다. 집단적인 교회생활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즉, 전체적인 이념이나 제도를 통할 수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그런 관문이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9-8)

여러분이 지금까지 습관적으로 살아온 사회생활 전체와 교회를 중심삼고 생활한 전체를 놓고 볼 때, 어느 것이 내적이냐 하면 교회생활이 내적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얼마만큼 내적 생활의 가치기준을 세워 나왔느냐? 혹자는 뜻을 중심삼고 간다고 하면서도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이 뜻이 될 것이다.'라며 자기 멋대로 생각합니다. 그런 곳에 하나님이 계실 수 있겠어요? (22-38)

통일교회를 반대하는 사람이 교회에서 밥을 먹고 가더라도 웃으면서 보내라는 겁니다. 절대 먹는 것 가지고 인색하게 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통일교인이 아닌데 와서 밥을 먹는다고 해서 누가 밥을 먹느냐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지금까지 팔도강산의 그 누구도, 통일교인은 물론이요 통일교인이 아닌 누구라도 여기에 와서 밥을 먹고 갔을 것이다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애기이고, 제일 싫어하는 것은 다 죽게 된 할아버지 할머니입니다. 극과 극입니다. 하늘의 운동이 뭐냐 하면, 극과 극을 포섭하기 위한 운동이 아니냐는 겁니다. 애들과 하나되려고 하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짚고 와서 놀다가 밥을 먹고도 가고, 이래 놓으면 그곳은 흥하는 곳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할아버지 할머니의 친구가 되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여러분한테 미쳐 가지고 밤잠을 안 자고, 자기집 좋은 뜨락, 청마루, 고래등 같은 집을 남겨 놓고 교회 대청마루에 와서 자겠다고 하게 되면 그곳, 그 단체, 그 사람이 있는 곳은 흥청흥청 흥한다는 것이 원칙입니다.
할머니가 찾아와서 '여기 교회장 있소?' 할 때, 바라보면서 '없어요, 없어!' 하면 벌받는다는 것입니다. '교회장 어디 갔어요?' 할 때 '왜 그래요, 할머니? 나이 많은 할머니는 필요 없어요.' 이래 보라구요. 하나님이 볼 때에 '그놈의 자식, 너는 어디서 나왔어?' 이렇게 걸린다는 것입니다.
나이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를 부정하는 것은 어머니 아버지를 부정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니 나이 많은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를 잘 봉양해야 효자입니다.


---1001---

 2)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최고의 경외의식

  ① 예배시간은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목적은 하나님이 원하는 나라를 찾고 인류를 구하는 데 목적을 두지 않으면 안 됩니다. 기독교가 안식일을 지켜 온 것은, 이날을 거룩히 지킴으로 나 자신이 승화돼 가지고 나 자신을 생각하는, 즉 구원의 목적을 가중시키는 데 주력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가 안식일을 지키는 목적은 나의 구원의 길을 촉진시키는 것도 있겠지만, 더 나아가서 전체를 구원하고, 앞으로 하나님 섭리의 나라와 세계를 구하기 위한 목적을 가중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보다 책임 높은 하나님의 소원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69-240)

예배 드리는 시간은 제사를 드리는 시간입니다. 자기 과거를 하나님께 속죄해야 합니다. 고로 예배시간은 자유가 없는 시간입니다. (11-163)

예배시간은 밀려오는 사탄의 어떠한 권한도 막아내고 아버지 앞에 승리의 영광을 돌려드리겠다고 약속하는 시간입니다. (6-263)

예배드리는 그 시간은 원수와 일격전을 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자리입니다. (9-296)

예배시간에 일찍 온 만큼의 시간은 하나님을 위해 바친 시간이기 때문에 천금 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가치가 있습니다. 예배시간만큼은 하나님께 바치는 시간이기 때문에, 그 시간에 늦게 나온다는 것은 하나님을 도둑질하는 것이 됩니다.
예배는 제시간에 나와서 드려야 합니다. 그럼으로 해서 그만큼 하나님 앞에 면목도 세울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어제보다 나은 마음을 가지고 하늘 앞에 가까이 갈 수 있지만, 늦게 오면 기도할 때 눈을 꿈벅꿈벅거리면서 선생님이 무슨 말씀하실까 하고 그렇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처량하기 짝이 없어 보입니다. (36-125)

하나님을 찾아 나가 모시는 자리에 예복을 안 입고 참석할 수 있습니까? 겉모양의 예복이 아닙니다. 심정의 예복입니다. 이렇게 모인 여러분들의 그 마음에서 말씀과 더불어 찬송과 더불어 감격된 심정이 흘러 나온다면 하늘은 여러분들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타락한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추방될 때 눈물 흘리며 쫓겨났지만, 여러분은 눈물을 흘리되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웃는 얼굴로 하나님과 상봉해야 합니다. 슬픔의 눈물도 흘려 보지 못한 자가 기쁨의 눈물부터 흘리면 안 됩니다. (9-296)


---1002---

예배시간을 위해 사흘 전부터 마음을 조여가면서 준비해야 됩니다. 만민의 행복을 빌어주고 만민이 소생할 수 있는 부활의 권한과 생명의 인연을 연결시키겠다고 몸부림치며 교회문을 들어서야 하고, 하나님 앞에 목이 메이는 마음을 가지고 예배에 참석해야 합니다. 그래도 부족할 텐데 여러분은 오히려 장돌뱅이보다 더 뻔뻔스럽다는 것입니다. (20-284)

주일날 예배 때에는 목욕재계하고 하나님 앞에 경배 드리고, 성지에 찾아가서 기도해야 합니다. 비록 찾아드는 사람이 없을망정 하나님이 그 부락을 굽어살피고 동역할 수 있는 심정적인 터전을 닦아 놓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혼자 기도하며 눈물 흘리는 그 자리는 절대 외롭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같이하시니 절대로 외롭지가 않다는 겁니다. 3년이상 여러분들이 정성을 들였는데도 그 동네에서 찾는 자가 없다면 그 동네는 망하는 것입니다. (17-293)

예배에 오더라도 그저 생각없이 오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마음을 다하고, 하루 이틀 정성을 들이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빛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것이 클수록 하늘이 자기를 보호해 주고 지켜주는 것입니다. 아내가 보이지 않는 마음으로 남편을 하루종일 생각하다가 보이는 얼굴로, 입으로 웃게 될 때 영광의 빛이 난다는 겁니다. 그 웃는 얼굴은 남편을 끌어당기는 매혹적인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앞으로는 예배드리는 것도 설교 형식이 아니라 보고 형식으로 해야 합니다. 보고의 내용은 그 가정이 자랑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가정 전체가 와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잘한 가정을 보고는 본을 받고, 못한 가정을 보고는 잘되게 이끌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가정천국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가정천국을 먼저 이루지 못하면 지상천국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먼저 교회생활에 철저해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식적인 예배시간을 엄수해야 되겠습니다. 공식적으로 참석해야 하는 시간에 모범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1-269)

하늘 앞에 나아가는데 약속은 절대적으로 엄수해야 됩니다. 약속을 안 지키는 사람이 무슨 은혜를 받겠어요? 그런 사람은 가다가 말아 버립니다. 앞으로 선생님은 여러분들이 움직이는 대로 지도하겠습니다. 싫으면 그만두세요. 누가 망하나 보잔 말입니다.
주일날 공적 집회 출석에 본이 되어야 합니다. 예배 출석에 자녀들이 부러워서 따라오고 싶도록 부부가 정답게 같이 와야 합니다. 10시 이전에 교회에 와서 주일날을 준비해야 합니다. (회보 1-3)

예배시간은 사탄과 싸움하는 때입니다. 단독 결판하는 때인 것입니다. 그런데 잠을 자서 되겠어요? 그런 자가 있으면 흔들어 깨워야 합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하고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말하셨듯이, '옆구리에 한방 때려 넣어라.' 그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선생님은 예배 때 자는 자가 있으면 그냥 두지 않습니다. (15-121)


---1003---

정성들여야 할 사람들이 예배시간에 늦게 오면 되겠어요? 그런 사람은 부끄러워서 얼굴도 들 수 없는 죄인 중의 죄인이라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시간을 잘 지키겠다고 다짐하고 남보다 더 많은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시간도 안 지키면서 '오! 하늘이시여!' 할 수 있어요? 정성은 남이 알게 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 와서 정성을 들이려면 차를 타고 올 것이 아니라 걸어와야 합니다. 여기 와서 기도할 것이 아니라 기도를 하고 와서 더 간절한 기도를 해야 됩니다. 정성은 이렇게 들이는 것입니다. (42-235)

하늘은 간절히 사모하고 애쓰는 사람을 대해 주십니다. 아무나 막 찾아가서 대해 주시는 하늘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만은 절대로 엄수해야 합니다. 앞으로 시간을 어기면 앞에 세워 놓고 창피를 줄 겁니다. (11-133)
원래는 예배 시간이 넘으면 문을 잠가버려야 됩니다. 늦게 온 사람들을 모아 놓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여러분들을 모아 놓고 어느 기준까지 끌어 올리려니 두 시간 세 시간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내가 하늘 앞에 기도하고 각오했던 심정적인 기준에 연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11-132)

하나님 앞에 나가는데 시간이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입니다. 때를 못 맞추면 망하는 겁니다. 때를 못 찾으면 망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성별된 환경을 요구하고 성별된 마음을 요구하는데, 시간도 못지켜 가지고 뒤꽁무니에서 찬송을 부르고 있습니다. 하늘은 그런 찬송 원치 않으십니다. (11-133)

공식적인 예배시간은 잘 지켜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틀림없이 발전합니다. (31-271)


  ② 밤예배, 새벽집회, 철야정성

밤예배에 주력하라. (10-249)

토요일 밤엔 교회에서 철야를 해야 한다. (17-347)

앞으로 집회는 밤에 많이 할 것입니다. 어둠의 세계를 헤쳐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일을 하기 위해선 간절한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11-247)

밤예배는 전도를 해 가지고 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의 위신이 안 섭니다. 예배 시간에는 인도자보다 먼저 와 있어야 합니다. (10-250)


---1004---

남 잘 때 실컷 자고, 먹을 것 다 먹고 편안히 와 앉아 가지고 예배보면 좋을 텐데 왜 새벽같이 예배봐? 왜 새벽같이 예배보겠어요? 남과 달라야 된다 이겁니다. 어떠한 종교 집단이나 신앙자들과 같아서는 안 됩니다. 달라야 됩니다. (84-194)

내가 새벽 세 시에 모아 놓고 일년이고 몇년이고 전통을 세워 잠을 재우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은 나태해지면 안 됩니다. 편안해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편안한 세계에서는 발전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국가든지 새로운 부흥이 벌어져 거기에 자만하고 도취하게 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51-280)

낮에는 일해야 되기 때문에 종교 일은 밤에 해야 됩니다. 밤이 효과적입니다. 그리고 새벽에 가르쳐 줘도 효과적입니다. 그래서 한 번 왔던 사람이 안 올 수 없어서 집에서 도망을 해 올 수 있게끔 만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자신이 그렇게 돼야 됩니다. 동기가 없는데 결과가 있어요? 지금까지 그렇게 안 했으면 보다 더 열심히 하고 더 잘 하라는 것입니다. 다른 방법을 연구해서라도 하라는 겁니다. (97-196)

12시가 넘어 첫닭이 우는 소리 들을 때까지 말씀을 전해 보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신비스러운가. 조용하고 고요한 밤에 동네의 개들이 짖는 소리를 들어가면서 말씀을 전해 보라는 것입니다. 마치 광명한 햇빛을 찾아 새로운 인생 길을 타개하고 가는 것과 같고, 등대빛을 찾아 새로이 항해하는 선장과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는 겁니다. 주위가 온통 신비로 꽉찬 세계를 혼자 가는 듯한 용감한 모습, 씩씩한 모습, 장엄한 모습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심정적인 유대를 가지려면 밤 시간을 중심삼고 지도하라는 것입니다. 밤이나 새벽에 이러한 활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습니다. (29-196)

밤, 깊은 밤은 신비성이 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흥회를 할 때 낮에 부흥회를 하는 것보다 밤에 부흥회 하는 것이 더 은혜롭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낮에는 우리의 모든 감정이 분산되기 때문입니다. 시청각은 오관으로 느낄 수 있는 모든 감각이 전부 분산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밤은 그렇지 않고 오히려 집중됩니다. 모든 것이 나를 포위해 나를 두드러지게 하고, 그런 권내에 내가 자동적으로 서기 때문에 밤에는 하나님과 더불어 은혜 역사를 하기 쉽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역사를 잘해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29-196)

새벽에 일어나면 나의 하루 생활이 아버지 앞에 감사의 실체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서 꽃이 피어 있는 봄동산처럼 자유스런 동산에서 아버지께 나를 세워 섭리하실 수 있는 소망의 결실체가 되겠다고 하고, 낮이 되어 일터에 나가면 소망의 결실체가 자라나는 여름절기와 같이 한 발 더 발전하여 하나님께서 같이하는 가치로 나타날 수 있는 존재가 되겠다고 해야겠습니다.


---1005---

또 저녁이면 모든 전체를 집약시켜 하나의 결심을 아버지 앞에 바칠 수 있는 가을절기와 같은 때이기 때문에 제물될 수 있는 자리에 서겠다고 하고, 겨울절기에 해당하는 밤이면 생명력을 지녀서 하나님과 내재적(內在的)인 부자의 기원을 맺어 모든 가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자신이 되겠다고 해야 합니다. 그렇게 1년 365일을 승리의 날로 만들면서 감사하는 생활을 하는 사람이면 그 사람은 아버지와 관계를 맺고 사는 생활이 보람있는 생활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29-340)

여러분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취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초창기에는 밤새워 말씀을 듣고 말씀하는 것이 일쑤였습니다. (97-209)

뭐 잠자는 시간을 계산해 가지고 '오늘은 못 잤으니 내일은 더 많이 자야지.' 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은 그러지요? '주일 아침은 금식이니 토요일 밤에 밥을 더 많이 먹자.' 그렇게 하는 금식은 하나마나입니다.
오히려 금식을 안하는 게 낫다는 것입니다. 금식을 한다고 전날 밥을 많이 먹게 되면 배가 더 고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먹어 위를 늘렸다가 별안간 확 비우게 되니 배가 더 고프지 별 수 있어요? (44-161)


 3) 교역자가 가져야 할 자세

  ① 교역자는 공적(公的)이어야 한다

천 사람 이상을 거느리는 사람은 영계의 감정을 받고 세워진 사람입니다. (18-223)

자신을 갖고 책임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도 내가 자신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자신에 앞서 하나님이 좋아서, 하나님이 찾아가는 그 사람을 좋아해야 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 심정을 어떻게 갖고 나서느냐 그게 문제였습니다. 그 심정만 통하면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을 좋게 하고 슬픈 사람을 위로할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70-175)

참목자는 자기가 참목자라고 하지 않습니다. 어느 때나 묵묵히 하나님의 뜻과, 모든 만상을 자신의 마음에 품고 나아갈 뿐이지 자신의 입장을 변명하지 않습니다. (3-210)
공적인 일을 위해 피곤한 줄 모르고 뛰다 언제 자는지 모르게 축 늘어져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몸이 얼마나 거뜬한지 모릅니다. 그런 것을 보게 되면 '야, 하늘 길은 이렇게 가는 것이 원칙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아이고, 어저께는 세 시간밖에 못 잤으니 오늘은 다섯 시간, 여섯 시간은 자야 할텐데…'라고 생각하면서 잠을 자고 일어나게 되면 허리가 아프고 온 몸이 천근 만근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그런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1006---

책임자는 아무리 피곤해도 먼저 눕는 게 아닙니다. 다 뉘어 놓고 누워야 됩니다. 기도를 할 때에도 맨 나중까지 해야 하며,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도 못 먹고, 못 입고, 못 살면서 정성을 들여야 하는 것이 책임자의 입장입니다. 그렇게 하면 망하라고 해도 망할 수 없는 것입니다. (33-169)

선생님은 정성 들이는 사람에게는 꼼짝 못합니다. 지금까지 교회를 지도해 나오면서 두 사람이 있으면 그 두 사람 가운데 누가 잘났느냐 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에는 얼굴이 잘난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어디로 향하느냐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즉, 사적이냐 보다 공적이냐 하는 것을 본 것입니다. (31-260)

아침에 첫발을 내디딜 때에도 공적인 발걸음인지 사적인 발걸음인지 반성해야 됩니다. 그리고 하루의 일을 끝내고 자리에 누울 때 공적인 하루를 보냈는지 사적인 하루를 보냈는지 반성해야 합니다. 혹은 일년을 중심삼고 공적인 생활을 했는지 사적인 생활을 했는지, 일생을 중심삼고 공적이었는지 사적이었는지 반성해야 합니다. (39-76)

공직에 있는 사람은 불쌍합니다. 있는 정성을 다 했지만 행여 뜻 앞에 실수를 해 나로 말미암아 천년 공적이 틀어지면 어떻게 될 것이냐? 그런 심정으로 생활하는 것입니다. (46-55)

지나가는 세월과 더불어 흘러가선 안 됩니다. 새로운 날을 준비해 전진하는 무리가 되지 못하면 광야에서 독수리 밥이 됩니다. 우리는 역사적 개척자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개척자는 어려운 환경을 뚫고 내일을 향한 소망 앞에 준비태세를 갖추어 나가야 합니다. (1986.5.6)

일단 책임을 지고 나면 다음에는 전투요 투쟁입니다. 네가 꺾이느냐, 내가 꺾이느냐 하는 싸움을 해야 됩니다. 그 싸움에서 여러분은 여러분 일대에 적어도 반대 입장에 있는 세 사람 이상을 자연 굴복시킬 수 있는 터전을 다져야 됩니다.
여러분은 우선 이론에 대한 지식을 가져야 되고, 그 다음엔 된다는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자기의 생각이 미치지 않고, 자기의 신념이 미치지 않으면 자기 것이 되지 못하고 남에게 빼앗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내가 실천을 해서 다져진 기반은, 뿌리를 단단히 박고 이룬 터전은 그 이상의 힘을 가하고, 그 이상의 신념을 가하기 전에는 절대 빼앗을 수 없습니다. (19-39)

책임을 지기 전에 어떤 마음을 가져야 되느냐?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면 생명과 바꾸겠다는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문제의 핵심을 해결하는 해결점이 생기게 됩니다. (19-142)


---1007---

'인간으로 할 수 있는 최대 노력을 다했습니다. 밤이나 낮이나 일체의 모든 마음, 지극 정성을 다 바쳤습니다.' 할 수 있는 자리, 하늘이 봐도 그 이상 할 수 없다고 하는 자리에서 떠나게 되면 그 사람이 그 자리에서 일을 다 못했더라도 일한 가치 이상을 하늘은 보답해 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56-33)

교회장은 그 지방의 제사장입니다. 잠을 못 자면서도 복을 빌어 주어야 합니다. 뭇사람을 살려 주기 위해 제물(祭物)을 다루어야 하니 정성들이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제사에는 실체(교회장)와 주인(하나님)이 하나(一體)되어야 응답이 있습니다. (9-80)

제사는 누가 관리하느냐? 제사장이 관리합니다. 제사는 객(客)이 관리해선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적인 회합 자리를 중요시하지 않는다면 발전을 못합니다.
제물 앞에 선 제객(祭客)들은 머리를 숙여야 되는 것이 천법(天法)입니다. 그 제단에는 하나님이 임재하셔서 간섭하시는 것입니다. 심정적으로 오늘 이 제단 앞에 나는 정열과 모든 힘과 노력을 다 바친다 하게 될 때에는, 자기 일생에 없는 성심성의를 다해 가지고 입을 열 때는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제물은 심각한 자리에서 바쳐지는 것입니다. 일생 동안 진탕 먹고 웃고 춤추며 살다가 무덤에 가면 복이 될 게 뭐 있어요? 그런 사람의 무덤에는 풀이 날 뿐이겠지만, 나라를 위해 피를 흘리고 죽은 사람의 무덤에는 그 나라가 살아 있는 한 꽃이 필 것입니다. (46-347)

통일교회 선생 되기 쉬운 것이 아닙니다. 지극히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죄인같이 죄수의 옷을 입고 형장길을 걸어가는 그런 기분이지만, 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형무소 생활 못 해봤기 때문에 모를 것입니다. 호화스러운 집에 살고 있지만 내가 그집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초막에도 살 수 있는 사람입니다. 초막에도 살 수 있는 훈련이 돼 있습니다. 옷을 벗어 쥐고 노동판에 가면 일등 노동자가 될 수 있는 훈련을 한 사람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가서 붙들고, 환경을 전부 다 수습해 가지고 거기에서 눈물을 짓고 친구가 될 수 있는 이런 심정적 훈련을 한 사람입니다. (85-43)


  ② 식구 지도는 정성으로

교인(식구) 그리워하기를 첫사랑의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1981.11.19)


---1008---

핵심요원은 밤을 새워서라도 정성을 들여 길러야 합니다. 그렇게 3일간만 정성들인다면 그 사람은 일생을 두고 잊지 못할 은혜의 인연을 맺습니다. 시간이 늦어 피전도자가 돌아가게 되더라도 전도자가 오히려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하면 영계에서 협조해 줍니다. (23-249)

먼저 자기 자신이 뜻에 취해야 그것이 상대방에게도 전달되는 것입니다. (23-249)

선생님이 식구를 기르기 위해 천신만고(千辛萬苦)하던 놀음을 여러분도 하라는 것입니다. 밤에 온 손님이 있거든 무릎 꿇고 하늘의 복을 빌어 주고, 낮에 온 손님에 대해서는 안방으로 초대해 자기 친척보다 더 반가운 손님으로 대해 주고, '우리 집은 이런 집이다.' 하는 가풍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그런 가풍을 세워 놓으면 그 사람들이 누구를 위하겠어요? 다른 사람 대접하는 전통을 가진 사람들이 교역자 밥을 굶기겠어요? 교역자에게 밥을 굶기고 복받겠다는 녀석들은 입에 모래알이 들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22-342)

밤을 새워 가며 이야기해도 재미있게 해야 됩니다. 밤 12시가 넘어 새벽 2시, 3시가 되었는데 '가면 좋겠다. 좀 자야 할텐데 …' 이런 마음 있으면 다 도망가는 것입니다. 새벽 3시, 4시가 되더라도 '안 갔으면 좋겠다. 시계가 멎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자리에 인연되었다가 가면 영(靈)은 압니다. 영(靈)은 미안해서 밥을 먹자마자 궁둥이가 돌아서려고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런 일을 했습니다. (56-51)

누구를 만나도 만난 그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더욱이 하늘을 중심삼고 만난 사람이면 절대 그 인연을 잊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교회에 나오다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잘라버리거나 저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떨어져 나갔다고 해도 그 사람과 맺었던 인연만은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42-136)

식구가 떨어져 나갔다고 낙망해서는 안 됩니다. 이상한 것은 한 식구가 나가면 그 사람과 성격도, 말하는 것도, 걸음걸이까지도 비슷한 사람이 들어옵니다. 어떤 면으로 보더라도 신기할 정도로 나간 그 사람과 너무도 닮은 사람이면서도 모든 면에서 월등히 나은 사람들이 들어옵니다. 그런 것을 볼 때, 정성들인 것은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42-136)

만일 나쁜 것이 있으면 나쁜 것을 당장에 처리하지 말라는 겁니다. 나쁜 것이 있더라도 그 나쁜 것을 좋을 수 있는 조건을 찾아가면서, 나쁜 것을 보류해 가지고 처리할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됩니다. 만일에 1년 전에 잘못된 것을 보고 잘라버렸다면 그 사람은 완전히 죽었겠지만, 1년, 2년, 3년 잘라버리지 않고 보류해 두어 그것을 가외로 생각하면서 처리하게 된다면 1년, 2년, 3년 이후에는 그 사람이 살 수 있는 길도 있는 것입니다. (72-313)


---1009---

새로 들어온 식구를 사랑하면 탕감조건을 빨리 세울 수 있습니다. 교회가 발전하지 못하는 원인은 식구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서로 사랑하고 화목하라고 하셨습니다. (18-40)

교회 초창기 때 한국에서 식구 기를 때에는 잠도 자지 않았습니다. 일대일(一對一) 작전을 했습니다. 한 사람을 놓고 강의할 때 백 사람, 천 사람 놓고 강의하는 것과 같은 생각으로 했습니다. 그 한 사람에게 수천, 수만 명이 달려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슨 명령을 해도 들을 수 있는 그러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만큼 정성들여 그럴 수 있는 동기를 만들어 주어야 됩니다.
여러분은 흠모의 심정을 지닌 식구들을 얼마나 만났어요? 선생님은 그런 사람 수두룩하게 만났어요. 땅 끝에서 찾아와 선생님께 경배하잖아요! 그건 왜? 선생님이 땅끝까지 사랑의 심정적 줄을 던졌기 때문에, 벌써 전기를 통해 봤기 때문에 방향을 안다는 겁니다. 그래야 됩니다.
지도자가 되려면 진정으로 병자를 치료하는 의사의 입장이 되어야 됩니다. 병든 사람의 심령 상태가 저하될 때에는 밤이나 낮이나 시간을 가리지 않고 더불어 눈물을 흘리면서 심령을 치료해 주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영적 지도자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생명을 살려주기 위해 며칠 밤을 새워 봤느냐? 생명을 구하기 위해 얼마나 바쁜 걸음을 해 봤느냐? 그런 것이 앞으로 영계에 가면 표창의 대상이 될 것이고 인격적인 기준이 될 것입니다. (42-169)


  ③ 남녀 문제와 공금에 엄격해야 한다

남녀 문제에서 잘못되면 앞으로 용서가 없습니다. 용서보다도 하늘이 원치를 않습니다. 타락이 뭐예요? 성문제를 자아주관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 아니예요? 남자에게 있어 제일 문제가 의식주 문제, 성욕, 그 다음에는 물질에 대한 욕망, 욕심, 이런 것들이 죄악의 뿌리입니다. 그걸 주관 못하는 사람은 책임자가 못되는 겁니다. (194-72)

남녀 문제가 큰 원수입니다. 이것이 세상을 망치고 천지법도를 어겼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자신이 없는 사람은 축복의 자리에 나가서는 안 된다는 말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여러분이 파탄시켜 저나라에서 걸리게 될 때에는 난 모릅니다. 내 책임이 아닙니다. 걸리는 날에는 벗어날 길이 없다는 겁니다. 이를 악물고라도 탈선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120-202)
앞으로 남녀 문제에 대해서는 각별히 주의해야 되겠습니다. 남자나 여자나 둘이 좋아한다는 말 남기는 사람은 앞으로 절대 책임자가 못 됩니다. 그건 해주면 안 되게 돼 있습니다. (67-55)


---1010---

남녀 문제에 대해 확실히 해야 되겠습니다. 책임자는 이 원칙에 엄격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해받는다는 겁니다. 변명할 도리가 없습니다. 여기에서 한번 그 문제에 걸려버리면, 영원히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66-220)

종교 배후에는 언제나 남녀 문제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신령한 집단이 반드시 남녀 문제에 부딪쳤습니다. 그거 왜 부딪치느냐? 해와가 타락할 때 자기 남편 아담과 천사장을 상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끝날에 와 가지고 여자는 두 남자를 대해 선악을 판단하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자가 종교에 입문하여 수도하게 되면, 남자에게 최후의 고개에서 미인이 나타나서 유혹하는 것입니다. 만일 거기에 넘어가는 날에는 천길 만길 벼랑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138-240)

교역자들은 지금 아들딸들을 키우고 있는데, 비양심적인, 양심의 가책을 받는 놀음을 하고, 혹은 공금을 함부로 쓰고…. 차라리 굶는 게 낫다는 겁니다. 굶으면 하늘과 땅이 동정합니다. 굶는 사람을 동정 안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자식도 굶을 때 먹여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죽게 된 사람을 언제나 동정해 줘야 하는 것이 인정의 원칙이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살인범이 형장에서 사형을 당하게 될 때, 그에게 '너 마지막 소원이 뭐냐?'고 물으면서 그때만은 들어주잖아요? 그러니 슬프고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을 동정해 줘야 되는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6-146)

통일교회 간부들 가운데 공금이나 물질에 대한 것을 잘못 다루고 인정에 의해 자기 가정을 중심삼고 공금을 쓰며 심정적으로 유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아들딸 앞에 독약을 배급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틀림없습니다. 사탄세계에서 이것이 걸리는 것입니다. 공금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것이냐? 공적으로 어떻게 결정해서 처리할 것이냐? 앞으로 통일교회 교역자들은 일대 혁신을 해야 합니다. (46-61)

영계법(靈界法) 가운데서 제일 무서운 게 공금 횡령과 공적인 사람 푸대접하는 것입니다.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책임자라든가 하나님이 보낸 사람을 푸대접하면 나라가 걸리고 세계가 걸리는 겁니다. (96-130)

인간 생활에 있어서 물질을 소홀히 하지 말고, 공금을 잘 다뤄야 됩니다. 또 자기가 출세했다고 해서 사람을 마음대로 인사조치할 수 없는 겁니다. 공금을 잘못 다루면 하늘나라의 헌법에 걸리는 겁니다. 자기가 출세해서 들어간 곳에 자기 원수의 아들딸이 있다고 해서 딴 데로 뽑아 돌려서 죽을 자리에 보내게 되면 문제가 벌어집니다. (196-213)



---1011---

선생님이 공금을 쓸 때에는 전체를 염려하는 마음으로 씁니다. (19-266)

앞으로는 공사(公私) 문제를 철저히 해야 되겠습니다. 공금은 사탄이 풀어 놓은 독약입니다. 그런 공금을 잘못 사용하다가는 망하는 것입니다. 그 공금으로 일은 벌어지는 것입니다. 간신도 거기에서 나오게 됩니다. 그것 때문에 나라가 망하기도 하고, 나라를 팔아먹기도 하는 것입니다. (33-125)

내가 피땀을 흘려 벌어놓은 이 돈을 함부로 못 씁니다. 함부로 쓰는 날에는 팔족(八族)이 아니라 자기 선조까지 걸립니다. 무서운 겁니다. 하나님이 인(印)을 친 돈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무원들이 나라의 국고금(國庫金)을 잘라먹으면 벌을 받지만 하나님의 공인을 받은 하늘공금을 잘라 먹으면 천벌 받는 겁니다. (85-141)


 4) 설교는 은혜와 감동이 있어야 한다

  ① 설교의 실제

설교는 여인이 해산하는 고통을 느끼는 것과 같은 자리에서 설교해야 합니다. 정신을 전부 다 거기에 집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설교 단상에 설 때는 해산부(解産婦)가 산실(産室)에 들어가는 느낌이 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경지에 가면 준비가 필요없습니다. 설교 내용이 문제가 아니고 그런 심정이 돼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96-168)

설교하는 시간은 어떤 사람을 천국에 들어가게 하느냐 지옥에 들어가게 하느냐 하는 경계선이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통일교회에 대해 궁금했는데 한 번 가보자!' 하고 교회에 왔는데 '그 설교가 뭐야?' 그렇게 되면 그 한 사람을 완전히 모가지 자르는 것입니다. 공판정에 판사가 선고하는 그 시간보다 더 심각한 자리가 설교하는 자리입니다. (96-168)
사람에게 있어서 제일 하기 힘든 것이 앞에 나와 말씀하는 것입니다. 사람들 앞에 나와 얘기를 하면 모든 사람이 주목합니다. 갑(甲)은 갑대로, 을(乙)은 을대로, 병(丙)은 병대로, 혹은 김씨면 김씨, 박씨면 박씨 등 자기들 나름대로 전부가 듣고 비판이나 판단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 앞에 나와 말하는 사람은 참 힘들다는 겁니다. (39-150)

교역자는 설교에 대한 것을 늘 보충하고, 특히 교인들에게 필요하고 도움될 수 있는 것을 언제든지 공급해 주어야 됩니다. (56-12)

영적 지도자는 체휼신앙이 없어 가지고는 일을 못하는 것입니다. 책을 봐 가지고 설교 준비하고, 책을 봐 가지고 설교하고 그러는데 그 책 가운데 하나님이 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신령한 가운데 계시기 때문에 신령을 통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76-151)



---1012---

여러분이 설교할 때, 그 제목으로 옛날에 한 번 했다는 것을 식구들이 알면 기분 나쁘게 생각합니다. 그것은 사람이 춘하추동 사계절에 따라 변화를 느끼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아침이라고 해서 기분이 항상 좋은 것이 아닙니다. 아무 걱정 없는데도 유난히 우울한 날이 있다는 겁니다.
아침 햇살도 밝고 상쾌한 날씨인데도 자기 스스로 우울할 때가 있다는 겁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해결되느냐 ? 갑자기 이것을 변동시키는 자극적인 것이 없거든 더 우울한 자리로 찾아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반대적일 수 있는 새로운 자극을 준다든가, 혹은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직접적인 새로운 자극을 일으켜서 보충해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이 해결 방안을 세워 하루 하루의 생활을 조절해 나가지 못하면, 앞으로 뭇 인간들의 심령을 지도할 수 없을 것입니다. (56-12)

새로운 것을 제시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자극을 주어야 합니다. 기도를 해서라도 보충해야 됩니다. 그래서 안 되면 생명을 걸고서라도 담판을 지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30-126)

준비 못한 설교를 해 가지고 은혜를 못 줄 때는, 안간힘을 다하고 안 되게 될 때는 돌아들어와서 그저 대성통곡하는 시간이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부끄러운 겁니다. 자기의 부끄러움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발전하는 것입니다. (96-168)

아침밥을 먹을 때 새밥 먹지요? 새맛이 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설교할 때에도 새것으로 해야 됩니다. 영적인 면에서 새로운 무엇, 보양제(補養劑)라 할까, 그런 것을 공급해 가지고, 거기에 가미(加味)시켜 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조미료를 쳐서 신맛이라도 내고, 짠맛이라도 내고, 그렇지 않으면 쓴맛이라도 내 가지고 새맛을 내야 합니다. (75-176)

은혜를 못 주고는 설교를 한 시간 하고 왔으면 세 시간 회개해야 됩니다. 여러분 그걸 알아야 됩니다. 설교를 잘못해 은혜 못 주고 그럴 때는 3배 이상 회개해야 됩니다.
한 생명을 위해 생명의 물을 주어야 되고 가꿔 주어야 될텐데, 물을 준 것이 아니라 물을 빼앗고 땅을 뒤집어 놓고 왔다면 그 책임을 져야 됩니다. 그들이 돌아간 후에도 오늘의 말씀을 중심삼아 가지고 은혜를 베풀어야 된다는 겁니다. (1969.5.12)

주일날만 되면 '성경은 어디를 볼까? 찬송가 나오너라, 성가 나오너라!'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러지 말라는 겁니다. 사람들에 대한 산 재료를 중심삼고, 성경에서 그와 같은 역사를 빼 가지고 그 사람의 일과 성경의 내용을 대조해 가면서 재미있게 설교를 하는 겁니다.


---1013---

그러면 듣는 사람이 자기 일을 말하니까 홀딱 반하는 것입니다. 좋아하는 겁니다. 책보고 하려고 생각지 마십시오. 사람에게서 책도 나오는 것입니다. 사람 자체가 책의 원본(原本)이란 것을 알아야 됩니다. (46-265)

교역자는 고생을 많이 해야 됩니다. 인생 수련을 많이 해야 됩니다. 불쌍한 노동자로부터 거지, 혹은 고급 관리, 혹은 권세권(權勢圈)에 있는 자리까지 한 때 경험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래 가지고 그런 상황을 중심삼고 그런 때에 공적 입장에서 겪었던 사실, 그런 걸 놓고 자기가 체험한 얘기가 실감이 나는 겁니다. (1969.5.12)

  ② 참아버님의 설교

선생님은 설교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보다도 식구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많이 갖습니다. '아버지! 이들을 이끌어 올려야 되겠는데 어떻게 합니까? 이것입니까, 저것입니까?'하고 정성을 모은 다음 마음의 명령대로 설교합니다. (9-81)

선생님은 설교를 위해 준비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산 체험으로 사실을 말할 때는 모두 감동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16-345)

한 때 선생님은 함흥에서 굴을 뚫는 일을 했습니다. 배가 너무 고픈 가운데 일을 하니 곡괭이를 움켜쥔 손이 올라가지 않고 정신마저 기진맥진해 있었습니다. '점심시간이다!' 하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 소리가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그 때의 밥! 그 밥을 먹기 위해 곡괭이를 땅에 박고 돌아서는 그 순간의 기분, 선생님에게는 그와 같은 산 역사의 재료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30-152)

비참했던 복귀의 사연들이 나를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청사(靑史)에 길이 빛날 자료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간직한 보화를 끌어모을 수 있는 그날까지 가야 됩니다. 그런 수난의 사실을 세계 만민 앞에 털어놓고 이야기하면, 다른 내용으로 한 시간 설교하는 것보다 이 내용으로 10분만 이야기하면 통곡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처럼 좋은 설교 내용이 어디에 있겠느냐 이겁니다. (30-152)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면 설교 준비 하지 않았다고 걱정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런 훈련도 필요합니다. 내가 유명한 사람을 만나게 되면 하루에 열 번 이야기할 때도 있습니다. 그 때는 장소에 따라 다 내용이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다 준비해 가지고 하나요? 그럴 때의 마음은 완전히 제물로서의 자각을 하는 겁니다. '나'라는 것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존재의식이 없는 것입니다. 소유관념도 없는 것입니다. 완전히 바쳐지는 자리에 서면 하늘이 같이해 주는 겁니다. (60-348)


---1014---

여러분들이 언제나 주의해야 할 것은 선생님이 지금 어느 방향으로 통해 나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보조를 맞추어 나가는 것이 여러분이 설교하는 데 있어 제일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은사를 베풀 수 있는 동기가 되는 겁니다.
선생님이 이 시간에 무엇을 위해 무슨 일을 하는지 알려고 하고, 상대적으로 심정적 기준을 선생님과 일치시키기 위해 내 마음을 끌어올려서 선생님 마음을 어떻게 대신할 수 있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선생님 앞에 상대적 입장에서 움직이게 되면 천운(天運)은 거기에 찾아오는 것입니다. (60-349)

주일날 설교할 때는 심각할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들 같으면 밤잠을 못 잡니다. 어떻게 잠을 잘 수 있어요? 남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주사(注射)를 놓는 것입니다. 강장제 주사 놓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식구들에게 일주일 동안의 약을 주고 강장제 주사를 놓아야 되는 겁니다. 생명을 다루는 의사가 생명이 경각에 달린 사람에게 주사할 때 심각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런 입장에서 지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壇)에 나설 때는 형장(刑場)에 나서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59-33)

설교할 때는 땀을 흘려야 됩니다. 뒷골에 땀이 흘러야 된다는 겁니다. 눈물과 땀이 없으면 안 됩니다. 그건 철칙입니다. (1969.5.12)

설교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선생님이 일생 동안 설교한 200권이 넘는 설교집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영계에 가서 문답하게 될 때 '난 보지도 못하고 읽지도 못했소.' 그러겠어요? 영어로 아예 번역을 안 시킬 것입니다. 이거 안 읽고 가면 큰일납니다. 지도자들이 이걸 안 읽으면 큰일나는 겁니다. (173-76)


 5) 헌금은 법도에 맞게 드려야 한다

  ① 십일조 드리는 법

공금에 대해 엄격해야 합니다. 십일조는 철저히 해야 합니다. 자기 총수입에서 십(十)의 일조(一條)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 바쳐야 됩니다. (11-218)

십일조는 소유하고 있는 물질 중에 십분(十分)의 일(一)을 하나님께 바침으로써 전체를 바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버지께 전체를 바치지는 않지만 그 가운데 하나를 정성들여 바침으로써 남은 아홉도 거룩한 물건으로 취급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십일조를 바치며 사는 사람은 절대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날이 가면 갈수록 그의 창고가 불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31-239)

정성들여 십일조만 해보면 절대 굶어죽지 않습니다. 그 후손이 물질에 대한 궁핍을 당하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십일조 드리기 위해 정성을 들여라, 그것이 신앙의 본질입니다. 적당히 하면 되겠거니 하는 것은 통하지 않습니다. 제물은 내 생명 대신으로 바치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일 귀한 것을 바쳐야 됩니다. (63-338)


---1015---

탕감을 하기 위해 물건을 조건으로 삼습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하늘 앞에 바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9수는 타락세계의 수(數)요, 10수는 이것을 벗는 수요, 하늘세계의 수입니다. (10-217)
레위 족속이 치리(治理)하는 교회 제단 앞에 열한 지파는 전부 다 십일조를 바쳐야 됩니다. 앞으로 십일조 안 바치면 교인이 아닙니다. 원래는 십(十)의 삼조(三條)를 바쳐야 됩니다. 하나는 자기 나라를 위해서, 하나는 세계를 위해서, 하나는 교회를 위해서…. 십의 삼조를 바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가는데 생활의 십일조를 내는 것은 절대적입니다. 그걸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고 침범하면 안 되는 겁니다. 왜 그러냐 하면 9는 삼삼은 구(3×3=9), 이것을 사탄이 지금까지 지배했다는 겁니다.
사탄이 지배하는 이 땅 위에 이 9수를 하늘앞에 맡겨 연결시킴으로써 하나님이 주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10수를 찾아 놓을 수 있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을 믿고 9수를 끌고 들어가면 이 9수권(九數圈) 내의 모든 소유권을 사탄세계에서 분리해 낼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십일조라는 말이 나왔다는 겁니다. (150-299)

복귀도상을 넘어가는 과정에 있는 우리는 십일조가 아니라 십의 삼조까지 할 각오를 해야 됩니다. 하나는 나라에 바치고, 하나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 베풀어야 합니다. 복귀과정에서는 안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또 하나는 하늘나라에 바쳐야 됩니다. 십의 일조라는 것은 하늘의 책임을 맡은 사람으로서 절대 침범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그러면서 효성을 다해야 하는 겁니다.
여러분이 헌금할 때 뭘 사먹다 남은 돈으로 헌금하겠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돈은 더러움을 탄 것입니다. 또, 시장에 가서 뭘 사다가 남은 돈으로 헌금을 하게 되어도 하나님은 거기에 같이하시지 않습니다. (48-86)

제물은 남이 남긴 것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것은 더러움을 탄 것입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이면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정한 곳에는 못 가게 하는 겁니다. (30-133)

앞으로의 모든 물건은 최후로 세계의 물건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세계적인 하나님의 것이요, 세계적인 참부모의 것이 되고, 세계적인 참자녀의 물건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물건을 그런 물질로 복귀시켜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것을 철저히 느껴야 되겠습니다. (23-336)

자기가 쓰는 데서 얼마 헌금해 가지고 그것으로 교회를 지탱한다는 것은 지극히 좋은 것 같지만 나쁜 겁니다. 하나님 앞에 바치는 것은 자기 생활보다, 자기 전체보다도 먼저 해야 될 텐데, 그거 몇 퍼센트 바친다는 그 관념으로 인해 자기 생활이 위주요, 하나님이 다음 단계에 서는 것이 상습화 되기 쉽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둘째가 되고 맨 꼴래미로 가 버립니다. 그럴 것 같아요, 안 그럴 것 같아요? (96-101)


---1016---

여러분이 헌금을 하게 될 때는…. 아이들이 주일날 아침에 교회에 갈 때 '엄마, 아빠, 나 연보, 연보!' 하게 되면 뭐 얼마짜리 주면서 '야야, 연보다. 주일학교 연보 해라!' 이래요. 하나님이 거지예요? 교회 목사가 거렁뱅입니까? 그런 목사, 그런 교회는 안됩니다.
헌금은 자기 재산의 핵(核)을 드려야 됩니다. 자기 금고의 제일 깊은 곳에 넣어두고 정성들여 준비해야 됩니다. 추수하는 가을이 되어 모든 곳간에 곡식을 거둬 들일 때도 십일조를 따로 쌓아 둬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일년동안 아들딸 일가가 합해 가지고, 정성을 들여서 사랑의 마음을 겸해 가지고 제물로 바쳐야 되는 겁니다. (166-71)

제물 드렸다가 제물 찾아가는 법은 없는 겁니다. 찾아가는 도리가 없습니다. 그것은 더 높은 데를 위해, 그 책임자가 더 높은 데를 위해 쓰면 그것으로 되는 것입니다. 낮은 데를 위해 쓰지 않습니다. 여러분을 위해 안 써도 된다 그말입니다. (125-188)

우주를 창조하고 절대전능하신 하나님에게 거지한테나 던져 주는 그런 돈 가지고 좋아하면서 ' 아, 복받을 패들이여! 너희들은 사랑스런 종교인이다.' 하고 내세울 수 있어요? 사탄 앞에 위신이 서겠느냐 말입니다. 연보대를 돌리면서 돈내라고 합니다. 그건 간판 붙은 거지나 마찬가집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좋아하지 않는 겁니다. (96-101)

여러분이 선생님에게 헌금을 하고 그러지만 선생님은 그 돈을 받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안 받는 주의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모으기 위해 무슨 일을 했느냐? 그것을 내가 알고 그것에 대해 부끄럽지 않은 주체적인 입장에 서지 않고는 못 받는 것입니다. 마음 자세가 그렇기 때문에 주고 나서도 또 주고 싶은 마음이 하나님에게 깃드는 것입니다.
정성들인 헌금이나 예물을 대할 때 그 가치를 모르고 대하다가는 정성들인 예물에게 심판당한다는 사실을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군왕도 자기 처신을 잘못하다가는, 즉 정성들인 사람을 함부로 대하다가는 망하게 됩니다. 정성드리는 사람을 잘못 대하다가는 하늘의 역적으로 몰리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정성 드리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8-143)

사적인 물질을 공적인 물질보다 더 중요시하는 사람은 천도에 위배되는 사람입니다. 사적인 자기의 인격을 공적 인격보다 더 중요시하는 자리는 뜻에 위배되는 자리입니다. (51-291)


---1017---

기성교회에서 헌금하는 걸 뭐라 그러나요? 거 뭐 주머니 가지고 다니지요? 우리 교회도 헌금을 그렇게 받아? 뭐 무슨 조리대 가지고 받아? 나갈 때 다 저 문 앞 헌금함에 모아 놓는 겁니다. 정성들이고 은혜받고 가는 대가로서 감사헌금 하게 말입니다. 안낼 사람들은 돌아가고…. 그 시시한 돈 받아 가지고, 그것 하늘이 원치 않습니다. 정성어린 돈, 어머니 아버지 주머니에 있던 돈 그냥 못합니다. 전부 다 자기 몸에 3일 이상 지녀 가지고 성별하고 헌금해야 됩니다. 점심 한끼 값도 못 되는 것을 어디에 헌금을 해요? 자기 생명 재산을 전부 털어넣어야 될 텐데도 불구하고 …. (166-319)

맨 처음 것은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숫것은 하나님 앞에 바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숫것이 없는 데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활습관을 그렇게 해 나가야 됩니다.
십일조는 제일 정성들인 숫것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제물입니다. 제물을 드리는데는 숫것을 드려야 합니다. 아들을 제물로 드린다면 어떤 아들을 제물로 드려야 되겠어요? 미운 아들? 소망이 없는 아들? 그런 아들은 제물이 안 되는 것입니다. 제일 좋은 아들이어야 합니다. 왜 그러냐? 제물은 '나' 대신이기 때문입니다. (48-85)

지금 자기가 갖고 있는 물건, 혹은 자기 소유의 재산은 자신이 잠시 관리하는 과정에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관리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가 잘 관리해서 봉헌해 드려야 할 이 만물은 참부모의 품을 거쳐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게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것임과 동시에 참부모의 것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23-334)

복귀노정의 원칙적인 기준으로 볼 때, 만물은 먼저 인류 시조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것이지만 하나님이 인간 앞에 내려주신 축복의 기준을 중심삼고 볼 때, 인간 시조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타락하지 않은 선(善)의 부모의 것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23-332)

타락은 자기 것을 만들려 하고 자기가 소유하려고 한 데에서 연유됩니다. 하나님과 메시아가 오시는데 이와 같이 했다가는 반드시 사탄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종의 도리를 통해야 하는데, 언제나 번번히 타락한 세계의 그러한 고질된 사연이 남아지게 마련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소유를 하나님을 위해 쓰자고 할 때 어떻게 하겠어요? 나는 꿈에도 내가 벌어들인 것을 내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30-10)


---1018---

'내 것은 네 것이요, 네 것은 나라의 것이요, 나라의 것은 세계의 것이요, 세계의 것은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의 것은 나의 것이다.' 하는 이것이 우리의 주류사상입니다. 먼저는 물질 축복시대를 거쳐 인간 축복시대가 오고, 그런 다음에 하나님을 위주로 한 심정 축복시대가 오게 되어 있습니다. (12-59)

지금까지 인간이 복귀되는데 만물이 얼마나 많은 공헌을 했는지 모릅니다. 또한 만물과 인간이 하나되지 못하면 아버지 앞에 갈 수 없습니다. (20-326)


  ② 생활에도 십일조가 있다

교회의 십일조 생활도 식구가 열 가정이 있으면 인도자 한 사람을 먹여 살려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천민권(天民權)을 가질 수 없습니다. 열 사람이 살면 하늘 사람 한 사람을 부양(扶養)하여야 합니다.
십일조는 모든 면에 있습니다. 학교도 열 교실 중에 한 교실은 불쌍한 자녀들을 위한 무료 봉사의 교실로 써야 되는 겁니다. 앞으로는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 시간까지도 십일조 해야 되는 것입니다.
과거와 같이 무슨 물질만이 아닙니다. 만일에 가족이 열 사람 있으면 한 사람을 내 놓아야 됩니다. 그런 기준으로 나아가야 됩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 식구는 십일조 못하면 안 됩니다. 십일조 못하는 사람은 식구가 아닙니다. 이건 의무적입니다. 천적인 의무란 말입니다.
주일은 십일조의 날이니 나의 날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명령대로 복종할 날인 것입니다. 하늘의 것을 내 것으로 쓰고자 하는 것이 죄입니다. 내 자식 중의 하나를 하늘 앞에 바쳐야 하며, 그럴 수 없으면 남의 자식이라도 공부를 시켜 하늘 앞에 드려야 합니다.
국수 한 그릇을 먹더라도 혼자 먹어서는 안 됩니다. 하늘아버지를 모시고 있는 자로서 혼자 먹기 미안하거든, '동반해 계신 아버지 앞에 나 혼자 먹을 수밖에 없으니 민망합니다' 하며, 아버지가 같이 참여하는 조건을 세워 가지고, 반드시 부모를 먼저 대접하는 입장에 세워 놓고 살아가야 된다 이겁니다. 옷을 사 입어도 혼자 못 사입습니다. 그런 생활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150-301)


  ③ 탕감기금

타락인간이 부모를 죽인 죄, 자녀를 죽인 죄, 만물을 잃어버린 죄를 어떻게 탕감할 것인가. 유다가 예수님의 몸을 팔아 나그네의 묘지를 샀습니다. 고로 탕감기금으로 성도들이 머물 수 있는 집을 마련해야 됩니다. 원래는 본부를 사야 합니다.
열두 제자가 팔았기 때문에 4년에 12,000원을 헌금해야 합니다. 탕감기금은 돈 중에도 제일 귀한 돈을 바쳐야 합니다. 이 기금 헌납은 아버지와 형(아벨)을 죽인 죄를 피 대신 탕감기금(기본적인 돈)으로 대신하는 것이고, 자녀들에게 있어서는 아버지와 형의 피값이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그 기금에 더 보태어 성전(聖殿)을 지어야 합니다. (1964.5.12. 본부교회)


---1019---

탕감기금은 정성을 들여서 갚아야 합니다. 탕감기금은 먹을 것을 먹지 않고, 입을 것을 입지 않고 정성을 들여, 남의 손을 거치지 말고 자신이 직접 내야 합니다. 이 탕감기금을 전통으로 하여, 우리의 후손들도 전부 이 고개를 넘어야 합니다.
이것을 다하게 되면 국가의 운세는 넘어갑니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천길 만길 속에 샘이 끓고 있어 구멍만 뚫으면 폭발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남들이 모르는 가운데 이러한 거룩한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 제관(祭官)으로서의 책임을 지고서 제물을 바칠 수 있어야 합니다. (14-97)

한 사람의 그릇된 행동으로 인해 참아버지로 오신 예수님을 이 지상에서 몰아낸 입장이 되어 하나님의 섭리는 사방 팔방으로 완전히 막혀 버렸습니다.
이것을 탕감하는 조건으로 4년간 3수에 해당하는 금액을 예수님을 팔아먹은 그 실체 값으로 하나님께 되돌려 드려야 합니다. 4년간이라는 것은 동서남북에 맞먹으며, 한국에서는 1년에 3천원 씩 4년간에 걸쳐 낸다는 조건으로 1만 2천 원을 헌금합니다. (1966.2.2. 동경교회)

우리는 하늘과 땅의 원한을 풀고 이 땅에 막혀 있는 성을 허물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자리를 닦아 나오며 희생한 도인들을 중심한 본부를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이 탕감기금은 세계적인 탕감을 하는 것입니다. 탕감기금은 피와 땀을 흘리며 정성을 모은 것으로 내야 합니다. 은행에 저금했던 것을 찾아서 내면 안 됩니다. (14-977)

주님은 역사의 탕감조건을 세우고 피흘리는 길을 걸었습니다. 그래서 하늘 땅의 원한을 풀었습니다. 그러나 자녀들이 한을 못 풀었으니 이것을 풀도록 하기 위한 조건이 탕감기금입니다. 부모는 승리하였으나 자녀들이 침범을 당하게 되었으므로 승리하신 부모의 기반 위에 부모를 팔았던 한을 해원성사해야 합니다. 탕감기금을 납입해야 비약적 발전이 옵니다. 자녀가 아무리 부모를 맞이했고 하늘 땅을 가졌다 하더라도 참부모가 흘린 피의 한을 풀지 않으면 안 됩니다. (1964.6.14. 대구교회)

식구들은 탕감기금을 솔선해서 납부해야 합니다. 눈물과 땀과 피의 한을 탕감할 조건을 세워 승리해야 또 새로운 섭리가 있게 됩니다. 민족적인 기반 위에 국가적인 역경을 헤쳐 나가야 합니다. 선생님은 한국 민족이 가장 불쌍하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우리 민족이 가장 비참한 위치에 있어야 주지 않고 탕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워 나가고 있습니다. (14-73)

탕감기금은 돈 중에서 제일 귀한 돈입니다. 이 기금에 일화가 많아야 합니다. 비참한 일이 많아야 합니다. (14-69)

유다가 예수님을 팔았던 피값으로 나그네의 묘지를 샀습니다. 고로 탕감기금으로 성도들이 머물 수 있는 집을 마련해야 됩니다. 원래는 본부를 사야 합니다. (14-69)


---1020---

 6) 하나님은 공적 기도를 받으신다

  ① 인사하는 데도 인사법이 있지 않느냐?

신앙자는 보다 큰 것을 위해 공적인 기도를 해야 합니다. (28-271)

선생님은 흥남 감옥에서 3년 가까운 세월을 보냈지만, 그 가운데에 몇몇 식구들을 위한 기도는 밥먹을 때부터 잠잘 때까지 안 해준 적이 없었습니다. 설령 떨어져 나간 사람일지라도 그를 위해 계속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러면 영적으로 선생님을 찾아와 처량하게 눈물을 흘리며 보고를 하는 것입니다.
육신이 약해 어쩔 수 없이 선생님을 떠나게 되었다고 인사를 하며 떠나는 비참한 정경은 동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떠나갔어도 그 사람 위해 기도해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왜냐? 그 사람이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갔기 때문에 계승자가 나올 때까지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한 정성의 토대만 남아 있으면 아무리 식구가 떨어져 나갔다 해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뜻있는 사람을 보내 주십니다. (42-163)

내가 고문을 당해 피를 토하며 쓰러지더라도 '하늘이여, 이 피를 보고 나 때문에 눈물 흘리지 마시옵소서. 이것은 부끄러운 피가 될 것이고, 탄식에 젖은 원한의 눈물이 될 것이어늘 여기에 하늘이 동정하는 것을 원치 않사옵니다.'라고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옥에 가게 되더라도 기도를 안 하는 것입니다. 심정세계에 있어서는 그렇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26-20)

세상에서 인사를 하는 데는 법이 있지 않느냐? 기도하는데도 연구를 해서 하라. (뜻길)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 기도하게 되면 먼저 하나님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을 위해 기도할 줄 알아야 역사적인 심정을 압니다. 그 다음에 천지 창조 이후 지금까지 기독교계의 훌륭한 뜻을 대신해 싸워 나온 수많은 사람들을 대신하여 기도해 줘야 합니다.
타락 이후 아담 해와로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선지자들이 걸음걸음을 나가면서 '그들에 맺혀진 한을 해원하는 제물이 되게 하시옵소서!' 하고 이것이 다 끝난 후에 사랑하는 아들딸을 위해 기도하고 그 다음 자기를 위해 기도하는 겁니다. 천법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1959.10.8)

눈물을 흘리며 뼛골이 녹아나는 심각한 경지에 들어가서 일대 일로 판가름을 지으라는 것입니다. 내가 눈물지을 때 하나님이 눈물짓고, 하나님이 눈물지을 때 내가 눈물짓는 그런 자리에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과 주고받을 수 있는 경지에 들어가야 됩니다. 무슨 일이든 그래 가지고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기도를 해야 합니다. 뿌리가 있어야 합니다. 그 뿌리가 기도입니다. (31-290)


---1021---

정성을 들이는데는 '절대 믿습니다' 하는 자리에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절대 믿습니다' 뜻이면 뜻을 대해 '절대 믿습니다' 하는 자리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 자리에서만 하나님이 협조하시는 것입니다.
기도하면서도 시시하게 기도가 이루어질지 안 이루어질지 의심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아버지여! 나만 남았나이다. 내가 아니면 이 나라가 없어지고 이 세계가 없어질 것이온데, 아버지여, 당신이 6천년 동안 수고해 오신 이 한 경지에, 이 경계선에 나 혼자 남았나이다.
당신이 성취시킬 뜻 가까이 있는 자가 나밖에 없잖습니까? 나라는 존재가 이렇게 중요하지만 저는 아직 갖추지 못하였습니다. 그래도 그러한 저에게 명령하셨으니 제가 그럴 수 있는 조건, 그럴 수 있는 기반을 갖추어 전체 이 민족을 대신하겠습니다. 이것이 복귀섭리가 아니옵니까?'라고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기도는 목적 완성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입니다. (9-197)

기도할 때는 맨 처음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 다음은 세계를 위해 기도하고, 다음에는 하나님의 해방을 위해 기도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편안한 자리에 계신 줄 알아요? 자기가 할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세상의 운세가 어떻게 돌아가는 줄도 모르면서 '오 주님, 나 천국 보내 주소서' 하고 있습니다. (14-65)
책임자로서 본질적인 원리적 궤도를 어떻게 가야 되느냐 하는 걸 알아야 됩니다. 그러니 기도를 해야 됩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좋아하느냐? 또, 식구를 위해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내가 식구와 더불어 얼마나 관계를 맺느냐? 이것이 둥그래지게끔…. 그걸 위해서 기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복받으면 하나님을 버립니다. 복받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좀 살게 되면 떨어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찾아드리겠다는 관점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세계에 복을 내려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1983.5.1)

스승을 스승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아버지 앞에 기도를 하더라도 떳떳하게 '아버지여, 당신의 아들딸이 왔사옵니다. 당신이 만나고 싶어하시던 아들딸이 왔사옵니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놓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누가 보든지 안 보든지 내 할 일은 내가 해야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약속을 잘 지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밤이나 낮이나 전체를 위해 기도해야 그것이 산 기도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가 원하는 기도가 달라지고 제목이 달라지면서 발전하는 겁니다. 지금 때가 어떤 때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이면의 생활을 기도생활을 통해 갖춰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104-111)


---1022---

선생님도 자연을 좋아하고 혼자 있는 시간을 가장 취미로 삼고 있습니다. 고요한 밤을 참 좋아해요. 그러나 그런 얘기를 안 하지, 선생님에게 그런 게 없겠어요? 여러분들에게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그런 생활의 풍부한 저변 기반을 닦을 수 있는 것도 기도 이외에 길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104-111)

복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자기의 심정적 자세에 따라 복이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하고 정성 들이는 게 뭐예요? 정성들이고 '아멘' 하고 나와 가지고, 우는 애기 있으면 궁둥이를 발길로 차고 들이 제기고 이런다면 그 집안을 암만 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기도, 간절한 기도를 했으면, 간곡한 마음과 아름다운 마음으로 환경을 처리해 가지고 기도하는 기준의 상대적인 자리에서 그 결실을 맺을 수 있는 자세를 준비해야 됩니다.
오늘날 기성교인들, 찬송 부르고 예배 보면 하늘나라 가요? 천만에! 교회에 갔다 와 가지고 싸움질하고 주먹질이며 별의별 짓 다 하고는 하늘나라 가겠어요? (233-210)

  ② 참부모님 이름으로 기도한다

기도할 때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하는데 참부모가 뭐냐? 그 말을 선생님과 어머니만을 두고 생각지 마십시오. 보다 높은 차원에서 세계를 품고 민족 감정이나 국가 감정을 넘어서 만민을 진실하게 하나같이 사랑할 수 있는 어머니 아버지라는 경지의 참부모 기준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도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33-143)

지금 때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하는 때가 아닙니다. 지금 때는 이름 구원시대가 아닙니다. 실체 구원시대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렇게 기도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필요한 것이지 예수님의 이름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라는 말은 천 개 만 개 있습니다.
그러나 실체는 하나뿐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니 하늘나라에는 예수님 실체를 타고 가야지, 이름을 타고 가겠습니까? (13-63)

통일교회에서는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않습니다. 통일교회에 처음 들어온 사람들은 '어이쿠, 참부모가 뭐야? 뭔데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하나?' 하고 생각할 것입니다. 여러분, 참부모가 뭔지 알아요? 참부모란 에덴동산에서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천세 만세에 자랑할 수 있는 조상을 말하는 겁니다.
그런데 세워진 인류의 조상이 타락했기 때문에 새로운 조상이 있어야 하나님 또한 새로운 조상을 중심삼고 섭리하기 때문에 새로운 조상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치가 딱 맞는 것입니다.


---1023---

예수님 한 분으로는 통하지 않기에, 예수님과 성신을 통해야 합니다. 예수는 아버지 신이고 성신은 어머니 신이니 타락한 인간들은 누구나 부모의 인연을 통하지 않고는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통일교회는 예수 이름으로 기도 안합니다. 부모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부모도 참부모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 뜯어고쳐야 되는 것입니다. 뜯어고쳐야 되는 걸 모르고 있으니까 주춧돌을 바로잡으라는 것입니다. 이걸 떡 비뚤게 해 놓고 거기에 들어가서 살자고…. 태풍이 불었다간 옥살박살이 납니다. (48-228)


 7) 전도는 사랑찾기 운동이다

  ① 전도는 제2의 나를 만드는 것

전도가 뭐예요? 길을 가르쳐 주는 겁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을 가르쳐 주니 그 얼마나 위대한 겁니다. 본성의 인간을 보고 ' 너 어디로 갈 거야?' 하고 물으면, '아이구! 세계를 통해 하늘나라로 돌아가야 되겠다' 그런다는 겁니다. 그 길을 개척해 주니 얼마나 멋지냐는 겁니다. 핍박을 받고 그저 뭐 받고 뭐 받고…. 언제나 세계를 통해서 하늘로 돌아가는 겁니다. (117-102)

내가 생명을 바쳐 악을 굴복시키면 하나님의 사랑이 나에게 옵니다. 이것은 공식적입니다. 저울 추와 마찬가지입니다. 한 쪽이 내려가면 다른 한 쪽은 올라가게 되는 겁니다. 악을 많이 제거하면 선이 올라가고, 악을 많이 갖게 되면 선이 내려가는 것입니다. 악을 제거하는 만큼 사랑을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 나를 더 사랑하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라는 것은 하나님을 더 사랑한 만큼 하나님의 사랑을 더 받는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사랑했으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40-243)

여러분이 봄을 맞이하는데, 전도하는 게 뭐예요? 전도해서 뭘 하자는 거예요? 여름날을 맞자는 겁니다. 더 좋은 날에 있어 가지를 뻗게 하고 잎을 뻗게 해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하자는 겁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어때요? '아이구, 나 3년동안 전도했기 때문에 이제 집에 돌아가 가만히 있어도 되지.' 그러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것이 열매맺더라도 그 열매를 증거할 수 있는 생명의 여력을 갖지 않으면, 동삼삭(冬三朔)의 북풍한설(北風寒雪)이 몰아치게 될 때는 말라붙어 쭈그러드는 것입니다. (1968.3.1)

전도는 제2의 나를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18-186)

아무리 시대적인 하루의 생활이라도 전도하는 그 하루는 영원과 관계를 맺는 겁니다. 그런 질서의 기틀 위에 우리의 한 조각 한 조각의 행동이 전체, 혹은 영원과 관계를 맺고 그것이 없어지지 않고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152-219)


---1024---

전도하면 기쁩니다. 반면에 전도하지 않으면 기쁨이 오지 않습니다. 선생님도 이 일을 안 하면 괴롭기 때문에 합니다. 전도를 하면 욕먹고 나서도 기쁜 것입니다. (19-22)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체험하게 되면, 전도하지 말래도 전도하게 됩니다. 전도하는 일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열 사람이 있다면, 그들을 놓고 진지하게 대화하면 열 사람이 새로운 사람이 됩니다.
그러고 나서 교회에 와서 기도해 보라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그들이 발전할 때, 반드시 나 자신도 발전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 올라가는 겁니다. (30-154)

영계에 가면 자랑할 것이 전도밖에 없습니다. 영계는 돈많이 가졌다는 것은 자랑할 거리가 안 됩니다. 또 세상에서 권력을 가졌다고 자랑할 수도 없습니다. 생명을 얼마만큼 살려 주었느냐, 이것이 자랑이 됩니다. 갑이면 갑, 을이면 을, 혹은 종족을 초월하여 수많은 민족을 새로운 생명과 관련시켜 얼마만큼 살려 주었느냐? 그것이 재산이 됩니다. 재산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30-148)

영계에는 없는 것이 없어서 그리울 것이 없지만, 가장 그리운 것이 있다면 참된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사람을 양육하기 위해 공을 들인 그 공신은 천상세계에서 당연히 영광의 아들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자랑할 것은 전도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30-148)

여러분은 전도 대상자를 놓고 밤을 새워 통곡하며 기도해 봤어요? 자기의 어머니 아버지가 죽은 이상으로 슬퍼하면서, 혹은 사랑하는 애인이 죽은 이상으로 슬퍼하면서 통곡해 보았느냐는 것입니다. 안 해봤으면 해봐야 됩니다. 밤을 새워 가면서 통곡을 해야 합니다.
하나의 생명을 살릴 수만 있다면 그 무엇도 아까운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돈이나 옷이나 집이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사람을 사랑하기에 미쳐야 합니다. (34-270)

여러분이 교회 나올 때는 자기 부모 처자를 전부 다 데리고 나오라는 겁니다. 형님 누나 다 데리고 나와야 됩니다. 여러분이 어머니 아버지, 사촌이나 사돈의 팔촌까지 전도하기 위해 얼마나 피눈물을 흘려 봤느냐? 한 생명을 끌어주기 위해 밤을 새우면서 정성을 들여 기도하면서 얼마나 몸부림쳐 봤느냐?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처한 환경에서 중심이 되어야 됩니다. 여러분이 중심이 되어 나가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41-90)

전도를 하려면 사람들의 심리를 연구해야 합니다. 표정이나 걸음걸이만 보고도 저 사람이 좋아하겠는지, 싫어하겠는지 알아야 됩니다. 그 사람의 감정을 공식적으로 감정(鑑定)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42-174)


---1025---

전도 나가게 될 때 돈이 없어서 못 나간다는 얘기 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돈 갖고 나왔어요? 하나님이 복귀역사를 돈 갖고 했어요? 생명을 갖고 한 겁니다. 피 갖고 한 겁니다. 그래서 기독교 역사는 피로 탕감한 역사입니다. 피 갖고, 생명을 갖고 한 것입니다. 돈 갖고 한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그런 마음을 갖고 나가면 하늘이 역사하리라고 나는 믿습니다. (154-210)

전도 나갈 때에는 돈을 가지고 나가지 말아야 합니다. 심정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27-267)

여러분이 전도를 하러 나간다 할 때 그냥 가 가지고는 안 됩니다. 얼마만큼 정성을 들여 가지고 나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을 전도하는데 일주일이나 한 달, 혹은 일년, 이년, 삼년은 걸릴 것이다 하면 그 기간 동안 정성들여야 합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밥을 먹으나, 자나 깨나, 오나 가나, 혹은 쉬거나 어떠한 행동을 하더라도 일체의 마음을 가지고 그 사람 앞에 완전히 전부 주어 보라는 것입니다. 완전히 주면 완전히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입니다. (42-228)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얼마만큼의 정성을 통해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는데 있어 얼마만큼의 정성을 통해 사랑하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이것이 영계에 가서 인격이 되는 것이요, 영광의 터전이 된다는 것입니다. (42-228)

전도하기 위해 밤을 새워 봤어요? 선생님은 밤도 많이 새워 봤습니다. 저나라에서 물어볼 것입니다. 전도하기 위해서 몇 밤이나 새워 봤느냐고. 여러분은 모든 힘을 다 바쳐 전도해야 합니다. (10-252)

투망으로 고기잡을 때, 추가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 마리라도 더 잡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추와 같은 입장이니 사탄권 내에 있는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더 하늘편으로 이끌어오고 싶은 마음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12-19)

다른 사람을 전도할 수 있는 정도까지 길러 놓아야 됩니다. 이렇게 되면 여러분은 전도한 사람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29-196)

정성들여서 얼마나 하늘이 협조하는가 보십시오. 땅에서 자기의 친척과 친지를 전도하지 않으면 저나라에 가서 그들의 참소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18-134)

전도를 하는데도 딱 장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라는 겁니다. 효과적으로 하라는 겁니다. 옛날에는 전도를 가든가 어디 가더라도 아무 준비 없이 다녔지만 이젠 준비하고 다니라는 겁니다. 정성들이고 다녀야 합니다. 옛날과 달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102-45)

여러분은 '산 인간'의 철학을 탐구해야 합니다. 항상 내가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을 선생님한테로 또는 여러분에게 인도해 올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 사람들이 여러분에게로 끌려 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기 위한 오직 한 가지 방법이 있는데, 선생님이 그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을 섬기는 정신입니다. 인간에게는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있을 때는 언제든지 그 쪽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본성이 있습니다. (52-276)


---1026---

사람을 찾기 위해서 봄 절기와 같은, 여름 절기와 같은, 가을 절기와 같은, 겨울 절기와 같은 지방에 가서 눈물과 피땀을 흘리겠다고 생각해야 됩니다. '내가 봄 절기의 사람, 여름 절기의 사람, 가을 절기의 사람, 겨울 절기의 사람, 춘하추동의 사람을 사랑하고 가겠다. 또 겨울 절기의 사람, 저 소련 사람까지도 사랑하고 가겠다.' 해야 합니다. 그러고야 자기 상대를 사랑할 수 있는 겁니다. 그게 복귀의 프로세스(process:과정, 방법)라는 겁니다. (96-152)

정성을 들여 주었는데 그가 말을 안 듣는다고 외로워 하거나 슬프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천리원칙이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절대로 서럽거나 외롭지 않습니다. 때가 가까워 오기 때문에 봄바람이 불어올 것입니다. 그러나 정성을 들여 주었는데 그것을 받지 않은 사람에게는 가을바람이 불어올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의 때가 가까워 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42-174)

  ② 수련과정과 7일 금식

통일교회는 2일 수련과 7일 수련, 21일 수련, 40일 수련을 합해서 원칙은 6개월 이내에 70일 수련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은 말씀이요, 법 조항입니다. 그래야 통일교회가 어떻다는 것을 압니다. 120일 수련을 받으면 통일교회의 위신과 체면을 세울 수 있는 정회원이 됩니다. 2일부터 120일 수련까지를 제도화해 놓았기 때문에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공통입니다.
끝날에는 3대 심판을 거쳐야 합니다. 3대 심판은 진리 심판과 인격 심판과 심정 심판입니다. 여기서 교리는 진리입니다. 이 3대 심판을 거쳐야 참부모와 인연을 맺는 자리에 참석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영계에 갈 때, 일주일 이상 하늘을 위한 금식을 하지 못했을 때에는 저나라에 가서 입적을 못하게 됩니다. 왜? 하나님은 6천년 복귀역사 노정에서 수고했으니 그것을 생각하면서 금식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7일 금식기간이 있습니다. 그것이 여러분들을 고생시키자는 것이 아니라 하늘 앞에 육신을 쳤다는 조건을 세우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육신을 쳐야 합니다. 우리 인간들이 '이 원수의 몸, 이 놈의 고깃덩이야! 그 속에 피가 준동하고 있구나' 하면서 칼로 찔러야 할 것을 고맙게도 예수님께서 대신 찔림을 당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남겨 주셨습니까? 예수님의 피와 살을 남겨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예수님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17-182)


---1027---

 8) 탕감과 봉사와 헌신 생활

  ① 탕감길을 가야 한다

통일교인들은 탕감의 길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건 복귀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아, 나는 복귀하는 것은 좋지만 탕감은 싫어!' 이런 말은 없습니다. 어떤 것이 먼저예요? 복귀가 먼저예요, 탕감이 먼저예요? 여러분은 복귀를 좋아하고 탕감은 싫어 하지만 하나님은 반대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편입니까? 하나님 편이예요, 사탄 편입니까? 이것을 확실히 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복귀를 좋아하지만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는 복귀를 좋아할 수 없다는 겁니다. 탕감을 통과한 후에 복귀됩니다. (116-127)

탕감이라는 말을 알면 모두가 제일 좋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탕감이 없으면 복도 없습니다. 통일교회에 무한한 황금덩이가 뭐냐 하면 탕감입니다. 탕감은 죽음을 무릅쓰고 모든 것을 희생하고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놀라운 낱말입니다. (1978.2.26)

책임분담과 탕감은 하나는 오른쪽 입장이고 하나는 왼쪽 입장인데, 하나는 오른다리와 같고 하나는 왼다리와 같은 것입니다. 양다리와 같은 책임분담과 탕감복귀를 연결해 놓지 않고는 전진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 생각해 봤어요? 탕감 싫지요? 하나님도 섭리도 다 싫지요? 오늘부터는 새로이 밥먹는 것을 잊어버리더라도, 자는 것을 잊어버리더라도 자기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걸 잊어버리더라도, 이걸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그렇게 심각한 것입니다.
하나님도 이걸 통하지 않으면 안 되고, 레버런 문도 이걸 통하지 않으면 안 되고, 전세계도 이것을 통하지 않으면 못 간다는 겁니다. 안 통한다는 겁니다. 모두 그냥 통과하고 싶지요? 박사나 교수 자리를 그냥 해먹을 수 있어요? 그 코스를 거쳐서 박사가 돼야 박사를 해먹지, 그냥 해먹을 수 있어요? 거치지 않으면 그건 가짜입니다. (124-106)

탕감조건은 자기 자신이 세워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대신 세워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타락은 주관권을 잃은 것을 의미합니다. 복귀를 위해서는 남들이 어떤 관심을 가지고 말하더라도 자기 자신의 확고한 주체성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남들은 어떤 길을 가든지 내 갈 길은 바쁩니다. 옆에서 무슨 말을 하더라도 거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습니다. 밤에 잠잘 시간이 없습니다. 자리잡고 편히 앉아서 밥을 먹을 여유도 없습니다. 그와 같은 절박한 심정을 갖지 않고서는 복귀의 길을 갈 수가 없습니다.


---1028---

병난 사람이 병을 낫게 하기 위해서는 약이 써서 먹기 싫더라도 먹어야 됩니다. 우리가 약을 살펴보면 좋은 약은 맛이 씁니다. 쓴 것이 진짜 약이 된다는 것입니다. 탕감조건을 세우는 것은 쓴 약을 먹는 것처럼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탕감조건을 세우지 않으면 복귀될 수가 없습니다.
천국은 하나님을 절대적인 중심으로 모시고 그를 통해 사랑의 인연을 맺고 사는 곳입니다. 이 근본을 바로세우기 위해서 하나님은 구원섭리를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를 내세우게 되면 절대 안 되는 것입니다.
구원의 길은 탕감하여 복귀하는 길입니다. 탕감이란 타락한 경로를 따라서 거슬러 가는 것입니다. 거꾸로 가는 것입니다. (216-16)

  ② 봉사와 헌신

참사랑의 길은 어떻게 닦을 수 있는 것이냐? 헌신, 봉사, 그리고 희생을 통해 닦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재창조 코스임을 뜻하는 겁니다. 재창조 코스에서 여러분은 희생을 치러야 하는데, 그런 탕감의 길이 봉사의 길이 되는 것입니다. 희생의 길을 통해야 합니다. 우리가 탕감의 길을 걸어 가야만이 하나님 편에 설 수가 있습니다. 탕감의 기대 위에서 여러분들이 하나님 편에 설 수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탕감의 길을 통과해야 합니다. (146-264)

어느 쪽이 주체이고 어느 쪽이 대상이냐? 누가 따라가야 할 자리에 있고 누가 이끌고 가야 할 자리에 있는 것이냐? 하나님은 그것을 정확하게 알고 계시는 겁니다. 하나님은 아십니다. 그게 하나님 편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내려다보니 항상 둘이 싸우고 있는데, '어느 것이 내 편이 될 것이냐?' 하면 이미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은 '음, 허허허…' 하십니다. '내 편이 되는 사람은 항상 희생하고 헌신 봉사하는 자리에 서는 사람이다. 그런 편에 서 있는 쪽이 정의를 위해 싸우는 쪽이며, 나는 그 무리를 선택할 것이다' 하십니다. 항상 중심은 희생하고 봉사하는 겁니다. (147-87)

통일교회는 위해서 가는 길을 취해라, 위해서 살라, 위해 태어났다 하는 천리(天理)를 가르치는 곳입니다. 천국 가는 공식은 간단합니다. 하늘과 땅을 사랑하였다는 조건만 있으면 됩니다. 이것을 위해서 고생해야 합니다. 아직까지 진정으로 일한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선한 길을 가는 사람들은 언제나 희생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희생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남을 위하라!'하는 것이 이익보는 게 아니라 희생입니다. 자기 투입입니다. 투입하는 데는 극단에 달할 수 있는 그 기준까지 투입하라는 겁니다. 생명까지도 바치라는 겁니다. (78-61)


---1029---

통일교회 주류 사상이 무엇이냐? 위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위해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위해 존재하는 날에는 민족이 반대하더라도 세계를 위해 살 수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이렇게 나온 것입니다. (77-302)

손님 대접 많이 하고 외부 사람에게 신세 많이 지워준 사람이 있는 자리는 사탄이 넘어올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37-329)

여러분을 희생시키고 여러분을 고생시켜서 이 사랑에 공헌할 수 있는 공헌자를 만드는 것은, 세계를 대표한 사랑의 결실을 가져오는데 공헌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고, 인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 운동을 지금 하고 있다는 걸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을 만들고 인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 통일교회의 목적입니다. 인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82-53)

세계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겠다는 사람은 거지와 같은 모습이라도 부끄럽지 않은 것입니다. 통일교회 무리는 빵떡을 먹든, 보리떡을 먹든, 물을 마시면서도 '아 오늘 아침 냉차가 진수성찬보다 맛있군!' 하며 입맛을 쩍쩍 다시면서도 '감사합니다' 하게 되면 천하가 운다는 겁니다. 천하를 위해 그런 입장에 서면 주체가 없으니까 천하가 자기보다 더 낮은 것이기 때문에 천하가 달라붙는 것입니다. (61-210)

옛날에는 소를 붙들고 '이랴낄낄' 해 가지고 논 갈 때 기분 나쁠 때가 많잖습니까. 소 궁둥이를 갈기며 '이놈의 소야, 너 왜 이래? 내가 있는 정성을 다 해서 요 한 때를 써 먹으려고 길렀는데 이거 왜 말을 안 들어?' 하면서 회초리로 사정없이 갈기고 그렇게 하는 것보다도 '야, 겨우내 잘 쉬던 너를 인사도 하지 않고 봄날에 끌어내어 가지고 잘 먹이지도 않고 일 시켜서 미안하다.'고 생각하고, 소보다 더 참는 마음을 갖고 '철버억 철버억' 하면 도리어 하늘이 보게 될 때 그 사람을 더 가까이 한다는 겁니다.
약삭빠르게 싹싹하고 임시 처변을 잘하는 것보다도 순정을 가지고 복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게 복된 마음을 갖고 복된 생활을 해야만 복이 찾아오게 마련이라는 겁니다. (127-89)

세계는 보다 더 큰 섭리를 위해 탕감의 목적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한다고 생각하게 될 때, 자기 일족이 아사하는 것을 보고 가슴 아파하고 마음에 상처를 입는 것보다 그 이상으로 그것을 알고 하나님을 받아들여야 될 것입니다. 그러한 한 날에 있어 어떠한 십자가의 길이 오더라도 그 십자가상에서 기도하고, 누구보다도 고생의 길을 가겠다고 다짐해야 될 것입니다. 투입하고 투입하며 잊어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229-208)


---1030---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폭발적이고도 자극적인 힘을 가지고 뜻의 세계를 향해 끊임없이 가고자 하는 여력이 있습니까? 그런 마음이 있다면 하나님이 여러분과 같이 하신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반면에 그런 힘이 없다면 하나님이 여러분과 분리되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32-21)

역사 이래 하나님의 뜻을 따르던 수많은 종교들은 자기 스스로를 부정하는 놀음을 했습니다. '희생 봉사하라!' 이게 왜 그런지를 지금까지 몰랐다는 겁니다. 그것은 본연의 세계가 위할 수 있는 본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세계에 가기 위해서는 그 곳에 갈 수 있는 훈련과 준비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됩니다. 따라서 고차적인 종교일수록 희생 봉사를 강요한 것은 역사시대에 하나님이 역사과정을 통해 섭리해 왔다는 역사적인 사실임을 여기에서 공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공인할 수 있습니다. (77-270)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이 솟구치고 인류와 더불어 자기 생명을 나누고 싶어하는 마음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이 하늘에 속해 있음을 증거하는 것이로되, 자체를 위주한 사랑과 자체의 가치를 자랑하는 생명력으로서 끝난다면 자신에게서 이미 하나님은 이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의 갈 길은 하늘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를 위주한 한계점에 도달할 것입니다. (32-21)

여러분은 하나님과 사탄의 작전법을 모르고 있습니다. 맞고 빼앗아 나오는 길이 아벨이 가는 길입니다. 사탄은 먼저 치기에 이긴 것 같지만 나중에는 가지고 있는 자기의 선한 것까지 플러스시켜 가지고 돌려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악한 편이라는 것은 상대를 쳐서 점령했더라도 흥하는 것이 아니라 악한 가운데 있는 선한 것까지 빼앗기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찰떡을 쳐 가지고 넘겨 주었다가 그것을 찾아올 때에는 찰떡에 보숭이(고물)가루를 묻혀 오는 것과 마찬가지의 역사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한 때에는 악이 성해 선을 치는 자리에 서지만 그런다고 하늘이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56-85)
한 순간 한 순간 필사의 결의를 하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찾아 오신 이 한 때를 무의미하게 잃어버리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것은 천년사를 두고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지닌 것이니, 이것을 놓치면 큰일납니다.
이 세상을 모두 잃어버리고 찾았던 것을 다 놓치더라도 이것만은 절대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내 생명이 없어지더라도 이것만은 남기고 가겠노라고 다시 한번 다짐하면서 온갖 정성을 다 들이며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26-14)


---1031---

 9) 식구간의 법도와 예절

  ① 식구는 천정으로 맺어진 인연

통일교회 교인들을 우리는 식구라고 말합니다. 식구라는 것은 형제의 인연을 갖춰야 되고, 부모의 심정을 같이 물고 태어나야 합니다. 그래야만 식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같은 부모를 갖고, 같은 형제의 인연을 가져야 합니다. 부모의 생활과 습관과 전통을 그냥 그대로 상속받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늘이 기뻐할 수 있는 가정형태를 갖춰야 합니다. 그래야만 식구가 이뤄진다는 겁니다. (155-211)

오늘날 우리들은 손에 손을 쥐어잡고 모였습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생소한 남남끼리 모였습니다. 우리들에게는 피가 통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에게는 천정(天情)이 통하고 있습니다. 출발이 거룩했기 때문에 결과도 거룩해야 될 것이 아니냐! (67-325)
우리가 갖고 나온 인연은 입체적인 인연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지금까지 역사상에 있었던 어떠한 사상을 기조로 해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정과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기조로 해서, 본성의 인격을 표준으로 해서 시작된 인연인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인연의 핵심이기 때문에 절대시 해야 하는 것입니다. (49-206)

우리는 다른 인연을 따라 모인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형제가 아닌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형제가 아닌 사람들이 모여 가지고 육신의 형제들을 지배해야 합니다. 그게 다르다는 겁니다. 형제 아닌 사람들이 자기 육신의 형제를 지배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여러분의 집은 여러분과 인연이 없는 것입니다. 사실 그것은 자기가 직접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형제들에게 보다 더 잘해야 되는 것입니다. (49-209)

식구를 대할 때에는 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주의하고, 또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18-43)

식구가 어떠한 어려움이 있고, 어떠한 환경에 부딪쳐 고난을 당할 때 서로서로 자기가 당한 것과 같은 심정으로 동정하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은 식구를 비난하고 식구를 모해하는 것을 보고는 못 견디는 사람입니다. 세계를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그 사랑을 어디서부터 해야 되느냐? 우리끼리부터 해야 되는 것입니다. 동서남북에서 가려져 가지고 하나의 인연을 따라 모인 우리 끼리끼리 서로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보지 않으면 못사는 것입니다. 만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인연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그래도 이 악한 세상과는 다른 무엇을 지니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49-62)


---1032---

우리는 멋진 사람들입니다. 세계가 부러워하고 하늘땅이 부러워하고 영계의 모든 성인과 현철들이 부러워할 수 있는 당당한 삶의 생애를 걸어 가고 있는, 하늘이 버릴 수 없고, 하늘이 칭찬할 뿐만 아니라 찾아와서 사랑하겠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배경과 내용을 지니고 사는 멋진 사나이들입니다. (171-29)

선한 조상을 가진 후손이 여기에 있으면 선조들이 적극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여러분들이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 있는 여러분이 신나고 멋지게 싸워 가는 곳곳마다 백전백승의 전적을 세울 때에 영계에서는 영원히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여러분이 되면 잡신(雜神)이 나오다가도 놀라 자빠질 겁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선조들은 여러분을 상감마마 모시듯이 모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느낌을 느껴야 합니다. (14-21)

6천 년의 결실체가 낙과처럼 익지 못하고 떨어져서야 되겠습니까? 그저 바람 불까 걱정하면서 '아이구, 내가 떨어질 것 같다. 조금만 더 불면 떨어지겠는데, 선생님, 흔들지 말고 가만 놔 두어야 됩니다.' 해서 되겠습니까? 여기에 그런 패도 있을 것입니다.
반면에 '선생님이 도끼로 들이치고 가지를 마음대로 흔들어도 가지가 찢어져 나가기 전에는 절대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는 무리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패에 속합니까? 바람 불까 봐 걱정하는 패들입니까? 흔들어도 안 떨어지는 패입니까? (46-155)

여러분이 여기에 온 목적이 무엇이냐? 그것은 어떠한 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근본문제를 해명하고 절대자로부터 인정을 받고 확정을 받아 그 절대자 앞에 설 수 있기 위하여 온 것입니다. (11-224)

  ② 식구간에 가인 아벨 관계가 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을 중심삼고 볼 때 가인 아벨이 누구냐 하면, 횡적으로 먼저 들어온 사람이 아벨이고, 종적으로 새로 들어온 사람이 아벨입니다. 종횡관계를 두고 볼 때, 횡(橫)이 종(縱)을 중요시 해야지, 종이 횡을 중요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49-214)

아벨이 되는 비결이 뭐냐? 전통을 지키는 것입니다. 죽임을 당하면서도 반발하지 않는 사람이 아벨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됩니다. 예수를 어린양이라고 했지요? 그러니 설사 찔림을 당하더라도 반발하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49-214)

아벨은 가인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으로 자연 굴복시켜야 합니다. 피눈물로써 사랑하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누구보다 더 높은 사랑을 해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굴복시킬 수 없으니 복귀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기성교회를 위해, 대한민국을 위해, 이북을 위해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지금 이북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34-283)


---1033---

아벨은 무엇을 해야 되느냐? 3대 복귀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첫번은 가인을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다음에는 부모를 해방시켜 줘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을 해방시켜 드려야 합니다. 이렇게 3대 사명이 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사탄세계를 해방시켜 주지 않고는 부모가 나오지 못하고, 부모를 해방시켜 드리지 못하면 하나님이 해방을 못 받습니다. 이 3대 해방권의 책임을 해야 할 것이 아벨의 사명입니다. (58-68)

교회를 중심삼아 누가 아벨이고, 누가 가인인가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두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한 사람은 아벨이요 한 사람은 가인이라는 것, 세 사람이 있으면 두 사람은 아벨도 될 수 있고 가인도 될 수 있는데, 가장 중심적인 아벨과 가인이 있다는 것, 이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분별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3-206)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지 않고 갈라져서는 안 됩니다. 한편은 바른손이고 한편은 왼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내 하나님인 동시에 네 하나님이시요, 나를 사랑할 뿐만 아니라 너를 사랑하는 하나님이시라는 믿음의 입장에서 서로서로 아벨적인 존재를 찾아 모시며 가인적인 입장을 피해 최대의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만일 그러한 사람이 되지 못하면 어느 때든지 한 번은 하늘의 심판에 걸리고 만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겠습니다. (3-206)

가인과 아벨은 어떠한 자리에서 결정되느냐? 가인과 아벨은 편안하고 좋은 자리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인과 아벨이 필요한 것은 무엇 때문에 필요한 것입니까? 그것은 탕감복귀하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탕감복귀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제물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34-91)

하나님은 아벨을 어떠한 자리에서 결정하느냐?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는 자리에서 결정하는 것입니다.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는 자리는 하나님과 일체된 자리인데, 그 자리는 기쁜 자리가 아니라 가장 슬픈 자리, 가장 어려운 자리입니다. 다시 말하면 죽고자 하는 자리, 가장 비참한 자리에서 하나님과 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34-51)

  ③ 누가 아벨이고 누가 가인인가

통일교회 교인들 중에 '어, 내가 먼저 들어왔기 때문에 아벨이고 나중에 들어온 사람은 가인이니, 나를 섬겨라!' 하는 이런 미치광이들이 있습니다. 아벨은 어떠한 것이 아벨이냐?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사람이 아벨입니다. 보다 공적인 사람이 아벨입니다.


---1034---

가인은 무엇이냐? 사탄편입니다. 사탄은 자기를 생각하는 데서부터 출발한 것입니다. 아벨은 자기를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을 생각하는 데서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 됩니다. (58-68)

먼저 들어왔더라도 자기 욕심을 부리는 사람은 가인입니다. 자기 생각이 앞서는 사람은 가인입니다. 선생님은 이런 원칙에서 사람을 대합니다. 아무리 오래 된 식구라도 그 심통이 자기를 위하게 될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지금은 할 수 없이 내가 그냥 두지만 때가 되면 보따리를 싸게 해서 쫓아낼 겁니다. 먼저 들어왔다고 해서 아벨이 아닙니다. 사적인 기준이 앞서는 것은 가인이요, 자기보다 공적인 문제, 하늘을 더 생각하는 것이 아벨입니다. (58-68)
여기 통일교인들 끼리끼리 형제를 결정하는데 먼저 들어온 사람은 아벨의 입장인 동시에 가인이고 나중에 들어온 사람은 가인의 입장인 동시에 아벨입니다. (24-348)

원리적인 입장에서 아벨은 중심입니다. 이 중심 가운데에는 하나님이 들어가 계셔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아벨이 되었습니까? 아벨이 되기 위해서는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여 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일체가 되려면 하나님께서 하라는 대로 다 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라는 것을 다 하지 못하면 아벨이 되지 못합니다. 아흔 아홉 가지를 다 했더라도 한 가지를 못하면 아벨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34-46)

통일교인 가운데 어떤 사람이 가인이냐? 머리를 치켜들고 남을 시켜먹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가인입니다. 그러면 아벨은 누구냐? 책임 다하려고 하는 사람이 아벨입니다.
본래는 먼저 들어온 사람들이 가인인데도, 먼저 들어온 녀석들이 아벨 노릇을 하려고 꺼떡거립니다. 그것은 자승자박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아무리 별의별 놀음을 다 해도 원리원칙대로 안 하면 선생님이 안 써주는 것입니다. (49-214)

아벨은 어떠한 존재이고 가인은 어떠한 존재냐? 원리로 보아 단적으로 말한다면, 가인은 자기에게 걱정이 있으면 그 걱정을 남에게 뒤집어 씌우려고 하는 사람이요, 아벨은 자기 걱정도 있지만 남의 걱정까지 도맡겠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 차입니다. (62-189)

어떠한 사람이 아벨이고 가인이냐 하면, 침해(侵害)를 받는 사람이 아벨이고 가해(加害)를 하는 사람이 가인입니다. 예를 들어 부모 앞에 두 아들이 있는데, 큰아들은 나이가 많고, 작은아들은 나이가 적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부모의 의논상대라든가 모든 면에 있어 부모를 대신할 수 있는 아들은 맏아들뿐이라 하더라도, 이 맏아들이 작은아들이 아무 실수도 하지 않고 잘못도 없는데도 작은아들에게 손을 대면 부모는 큰아들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작은아들 편에 서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사회에서 적용되는 선악의 비판기준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해를 입히는 사람이 가인이 되는 것입니다. (56-85)


---1035---

교회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정성을 들이는 사람을 보고 '저 사람 남달리 유난하게 저게 뭐야?' 하며 흉을 보면 벌써 그는 가인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됩니다. 가인 아벨은 그렇게 갈라지는 것입니다. 죄 없는 자리에서 비판받는 사람, 피해를 당하는 사람은 반드시 아벨이 되는 것이요, 비판하는 사람, 가해를 하는 사람은 가인이 되는 것입니다. (56-85)

말을 하더라도 남에게 이익을 주는 말을 하는 사람은 아벨이 되는 것이요, 해를 끼치는 말을 하는 사람은 가인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남에게 이익을 끼친다는 것은 이익을 주는 것이지만, 자기 이익을 위해 무엇을 한다는 것은 해를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에게 이익 되게 하는 자리는 공적인 자리요, 자기 이익을 위한 자리는 사적인 자리입니다. 이렇듯 공(公)과 사(私)를 중심삼고 아벨과 가인, 선과 악은 갈라진다는 것입니다. 이걸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56-85)

보다 공적인 존재가 아벨입니다. 통일교회 교인 중에 먼저 들어왔으니 아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먼저 들어왔어도 공적인 입장에 서지 못하면 가인입니다. 틀림없이 가인입니다. 가인도 자기가 먼저 태어나긴 했지만 아벨보다 공적인 입장이 못 되었기 때문에 아벨을 따라야 했던 것입니다.
통일교인 가운데에도 먼저 들어왔다고 떡 버티고 앉아서 '내가 먼저 들어왔으니 아벨이다.'라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나중에 들어온 사람보다 공적인 자리에 서지 못하면 가인입니다. 아벨적인 존재는 보다 공적인 입장에 선 사람입니다. (31-165)

선생님이 한 생애를 다 바쳐 자기의 이익보다 공적인 이익을 위해 희생했고, 그런 재료면 재료, 양(量)이면 양을 많이 투입한 것이 숨겨져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자연히 추앙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게 원리이고 천운입니다. (64-81)

아벨의 완성은 개인적 아벨의 완성, 가정적 아벨의 완성, 종족적 혹은 민족․국가․세계적 아벨의 완성의 터전을 이어 나가지 않고는 세계천국 복귀라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 것을 아는 우리들은 밤이나 낮이나 찾아오는 그날그날들을 이 원칙을 적용시키고, 이 원칙의 발전을 연결시키기 위해 쉬지 않고 달려갈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사람을 왈(曰) 하늘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64-81)


---1036---

 10) 타인과의 관계

  ①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말라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1970년까지 본부에서는 누구든지 지나가다 배고픈 사람은 밥먹고 가라고 한 것입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주는 것은 인간의 도리입니다. 얻어 온 밥이라도 나누어 먹는 것이 도리입니다. 쌀독에 쌀을 두고 지나가는 배고픈 사람이 밥을 얻어먹는다고 타박하면, 그 집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불쌍한 사람을 보면 도와주기 위해 모든 것을 다 갖다 주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주고 싶은 마음,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욕심을 갖게 될 때에는 하나님도 찬양하십니다. 자기만 먹고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전부가 좋게 하기 위해서, 현재는 고통스럽더라도 미래에 잘 살게 해주기 위해 욕심을 내는 것은 좋은 겁니다.
공밥 많이 먹여서는 안 됩니다. 공밥을 먹이는 동시에 공적인 마음을 많이 써야 된다는 겁니다. 그것이 복받는 놀음입니다. 공밥을 많이 먹임과 동시에 공적인 마음을 많이 쓴 사람, 그런 사람은 누구도 싫어하지 않습니다. (56-37)

사람을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고 했지요? 그건 반드시 그런 것입니다. 죽을 때 한을 품고 원망하는 그 원망을 받는 사람은 오래 못 가는 겁니다.
사람 대하는 것을 시덥잖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의무적인 과정에서는 부활의 역사가 안 일어납니다. 재미가 나야 됩니다. 밤 가는 것도 모르고 밤을 새고, 천국이 이곳밖에 없다 하는 곳에서만 천국 갈 수 있는 가치가 발견됩니다. 그렇잖아요? 나무도 완전히 밀착돼야 접붙여지지 않느냐 말입니다. (75-177)

선생님은 우리가 굶더라도 찾아온 사람들에게 잘해 주려고 합니다. 그들이 백 만큼의 기준의 도를 닦았으면 그 백 기준 이하로 해주다가는 우리가 막혀버립니다. 심판받는 겁니다. 그럴 때는 배 이상 삼 배, 오 배, 십 배 이상 해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주었다고 해서 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하늘이 탄복한다는 겁니다. '저 녀석 하늘보다 낫구만!' 그런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보면, 되는 집은 개가 똥을 싸도 그 집 마당 귀퉁이에 와서 쌉니다. 그런데 주인이 '아이고 이놈의 개새끼들, 이 동네 개들은 왜 전부 다 우리집 뜰안에 와서 똥을 싸노?' 이렇게 불평하는 사람은 복을 쫓는겁니다. '어서 와라 싸라, 어서 와!' 그래야 되는 겁니다.
싸우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둘 다 좋게 될 때는 싸우는 겁니다. 하나가 망할 때는 싸워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싸우더라도 내 편을 만들고 교육을 시키기 위해 싸워야지, 원수되기 위해 싸워서는 안 되는 겁니다.


---1037---

줄 때는 부모의 마음을 가지고 주어야 합니다. 자기의 욕망과 야심을 가지고 주어서는 안 됩니다. 아버지께서 그러셨기 때문에 여러분도 그래야 합니다. (11-268)

사람을 사랑하는데는 아까워 하지 말라, 무엇을 투입했는지 기억하지 말라, 더 주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먹을 것이 좋은 게 생겼을 때, 숨어 혼자 먹는 사람이라면, 에이, 급살맞을 자라는 겁니다. 먹을 것이 있으면 그걸 먹지 않고 두었다가, 내가 먹지 못하더라도 주고 싶고, 혼자 못 먹겠다고 하며 식구들을 생각하고,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그러한 부모의 마음을 갖춘 자가 돼야 되는 것입니다. (70-166)

주는데는 어떻게 줘야 되느냐 ? 먹다 남은 찌꺼기를 줘서는 안 됩니다. 먹다 남은 찌꺼기를 주면, 먹고 나서도 기분 나빠 침을 뱉습니다. 떡을 주더라도, 다섯 개가 있으면 다섯 개 가운데 이것 저것 들었다 놓았다 하다가 줄 때는, 차라리 안 주는 것보다 더 기분 나쁘다는 것입니다. 남에게 주는데 다섯 개가 있으면 절반쯤 그냥 집어 주면 그래도 고맙다고 하지, 이것 저것 집었다가 주면 신세를 지는 사람이 신세지고 나서 평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는 데에는 하나님과 더불어 부모의 마음으로 주라는 겁니다. (60-170)

  ② 타인과의 관계

오늘날 사람들은 사람에 대해 너무나 무관심합니다. 횡적 관계에 있어 횡적인 인연을 중심삼고 서로 존중하는 일이 적습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사람에 대해 전부 다 귀찮아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귀찮아지면 도의 길을 가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일치된 사람이 돼 가지고 만물 세계, 혹은 이 세계 앞에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한 자로서 전체를 대해 정서적인 기준에서 횡적 관계를 넓히고 맺어 나가는 것이 신앙인들이 해야 할 생활이라고 보는 겁니다. 생활에서 이것이 맺어져야 합니다. 생활에서 이것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여러분들이 그러한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 가지고 대인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82-275)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은…. 저 뭣인가 당구를 치게 되면 다마끼리 마주쳐 가지고 이리 가고 저리 가고 하지요? 그것이 재미입니다. 사람 사람의 만남도 그와 같은 작용을 한다는 겁니다. 그것이 마주치면 잡아당겨 하나되었다가 밀어내는 그런 기분이 든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축구공을 차더라도 그 공이 올라가고 내려가고 이렇게 변화무쌍해야 좋지 않아요?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우리가 오관을 통해 느끼는 감각의 일체를 통합하여 이 생명, 또는 사랑과 어느 정도로 관계를 맺고 사느냐 하는 것에 따라 인간으로서 얼마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느냐 하는 문제가 좌우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우리 자신들이 생명력과 가중된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대인관계를 맺고 사회생활을 해 나왔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에 그런 자리에 서 있지 못하다 할진대 그것은 정지하는 것이 아니면 후퇴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32-19)


---1038---

하나님이 복귀섭리를 해 나오시는 데에는 우리 대한민국만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 인류를 다 필요로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고 나오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가장 중요한 목표였습니다. 우리가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모인 무리라 하면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서 관심을 가지고 대할 줄 알아야 됩니다. 모든 사람들을 대할 때 욕심을 가지고 대해서는 안 됩니다. (33-143)

선하게 되기 위해서는, 악을 남의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아픔으로 느끼고 밤을 새워 가면서 그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해 주고, 그들의 죄를 위해 속죄의 제사를 드리는 마음을 갖고 살아야 됩니다. 그런 사람은 악한 사람에게 본성의 중심존재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34-130)

좋은 사람은 소년도 좋아하고, 청년도 좋아하고, 장년도 좋아하고, 늙은 사람도 좋아할 줄 알아야 됩니다. 또, 자연을 대해 사람이 주체적인 입장에 섰다면, 그 주체적인 사람은 봄도 좋아하고, 여름도 좋아하고, 가을도 좋아하고, 겨울도 좋아하는 것입니다. (72-102)

사랑하는데 더욱 사랑하고 존경하고 공경해야 할 사람은 나이 많은 사람입니다. 젊은 사람은 만나기만 해도 되겠지만, 활동하기도 부자유스럽고 힘도 부족해 제삼자의 신세를 져야 할 노인들에게는 사랑도 해주어야 하고 동정도 해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풍조를 이 사회에서는 볼 수 없습니다. (25-289)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젊은이만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사랑하는 데에는 나이 많은 사람부터 어린 사람까지 모든 사람을 다 사랑해야 됩니다. 요즈음 청년들을 보게 되면, 나이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지 않으려 하는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나이 많은 사람도 사랑해야 되고, 젊은 사람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그리워하는데에 있어서 어떠한 단체보다도 강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은 모임이라 할진대는 반드시 온 세계에 사랑의 열매로 남아질 겁니다. 나무들이 무성하게 동산을 덮었을 때에는 어느 것이 소나무이고, 어느 것이 사철나무인지 분간하기가 힘듭니다. 그렇지만 가을이 되고 겨울이 되면 드러납니다. 겨울에 앙상한 가지와 줄기만이 보이는 가운데 푸른 나무가 보인다면 그것은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그것은 새로운 인연이 맺어지는 것을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1039---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첫째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둘째 계명은 인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웃 동네가 아닙니다. 인류를 사랑하라는 겁니다. 인류가 형제요, 이웃입니다.
교만은 원수입니다. 교만과 고집은 사탄의 본질이요, 사탄의 요소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교만 대신 겸손, 고집 대신 화합을 해야 합니다. 화이유친(和而有親)입니다. 이 사람도 좋게 해주고, 저 사람도 좋게 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어 여기에서부터 모든 일이 통하게 되는 겁니다. 이 사람 저 사람 둘이 하나가 되지 않으면 더 큰 것이 나오지 않는 겁니다. 화합하지 않으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사탄의 본질에는 시기와 질투 같은 것들도 있지만 교만과 고집은 우리에게는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37-132)


---1040---

제 4 장 축복가정의 전통과 생활예절

 1) 축복가정의 생활법도

  ① 가법과 예절이 바로서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함부로 살아왔고, 말도 함부로 해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가정에도 규율을 세워야 되겠습니다. 부모가 성이 난다고 자녀에게 마음대로 몽둥이를 들어 때리고 '이놈의 망할 자식아!' 하는, 세상적인 속된 말을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제 모두가 일신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말부터, 태도부터, 생활부터 일신된 입장에 서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28-252)

습관성 있는 가정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가정은 사위기대를 이룰 수 있는 기점입니다. 여기에는 가정의 일체화가 요구됩니다. 하나님이 바라는 본래의 기준 앞에 일치되어야 합니다. (21-76)

종가집이 흥하려면 선조로부터 내려온 가법이라든가 예법을 잘 받아들이고 실천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 '그까짓 것 뭐 될 대로 되라지, 그것이 나하고 무슨 상관이야!' 하는 사람은 종가집 자손이 될 수 없습니다. 만일 그런 사람은 종손으로 태어났다 하더라도 종손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21-252)
우리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순수한 혈통을 어떻게 보유할 것이냐가 문제입니다. 타락할 혈통이 아니라 순수한 혈통을 여하히 보존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를 위해 진심으로 염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오염되지 않은 에덴동산에서도 타락하였는데, 이 죄악세계에서 깨끗해진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죄악세계에서 태어난 부모는 고생을 하더라도 축복받아 태어난 아이들에게는 오염되지 않은 환경을 만들어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들이 희생되더라도 2세들을 위해 그러한 환경을 빨리 준비해야 되겠다고 하는 것이 선생님의 생각입니다. 서둘러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세계 550)

죄의 세계에서 해방받으려면 한국 국민이지만 내가 한국 국민이라는 관념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한국 국민이라 생각하기 이전에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하늘 백성이다. 하늘 사람이다.' 하는 관념을 가져야 합니다. 세계가 쓰고 있는 언어, 입고 있는 옷, 신고 다니는 신발, 여자들이 쓰고 있는 화장품, 이러한 풍습과 습관 속에 스며든 죄의 근성을 무자비하게 끊을 수 있는 비수(匕首)를 가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죄의 세계에서 해방받을 수 있는 생활입니다. 세상의 역사․습관․환경의 악습(惡習)에서 승리하지 않고는 죄의 세계를 주관할 길이 없습니다. 참된 사람이 되고 싶고, 참된 나라를 찾고 싶고, 천국 가기를 원한다면, 환경적인 모든 악조건에서 해방받아야 됩니다. (통일세계 1978.6)


---1041---

습관적이고 세속적인 가정이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은 이렇지만 훗날에는 잘될 것이다.'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미 완전해야 합니다. 현재가 문제입니다. 과거와 현재가 완전해야 미래도 완전할 수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도 이러한 한날을 갖지 못한 것이 타락의 증거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가 일치될 수 있는 자리가 이상적인 자리입니다. 현재를 바쳐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땅 위의 영원한 발판이 될 수 있겠는가, 이것이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이것이 역사적인 종합점입니다. (21-77)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복귀를 이룬 후에 멸망당했던 것은 그들이 기존 환경에 동화되고 습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보다 잘살고, 잘먹고, 사치하는 생활에 모든 정신을 쏟았기 때문에 멸망을 당했던 것입니다. 이방인이라 해도 부잣집이면 결혼을 했습니다. 또한 권력을 탐했고, 지식을 좋아했습니다. 그들은 결국 기존 가나안 문화에 동화되고 선민의 정신을 팔아먹었기 때문에 멸망했던 것입니다. (통일세계 1986.4)

습관은 제일 고질인 나쁜 버릇이라는 겁니다. 여러분이 결혼 후 아이들을 기르면서 습관적인 생활을 하게 되면, 그것이 몸에 굳어 버립니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는 특별한 정성이나 기도를 할 시간이 없는 겁니다. 아이들이 곁에서 떠들어 대니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30-125)

이제부터는 비수를 가지고 자를 것은 자르고 해부할 것은 해부해야겠습니다. 여러분 마음대로 해 가지고 안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천국을 이루어야 할 교회이기 때문에 개인이 아니라 가정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생활에서 본이 못 되는 사람은 세계적인 지탄을 받을 것입니다. 온 천주적인 지탄을 받을 것입니다. (30-230)

축복이란 책임을 하고야 귀한 것입니다. 남자는 주먹질, 여자는 입질을 하면 안 됩니다. 세상적인 욕을 해서는 안 됩니다. 무엇인가 달라야 합니다. 즉, 가정은 소교회(小敎會)입니다. 하늘의 대행기관으로 해야 합니다. 하늘이 찾아가고 싶은 가정이 돼야 합니다. 최소한 세 가정은 한 살림을 해야 합니다.
특별히 오늘을 기해서 말해주고 싶은 것은, 첫째 많은 사람들이 왕래할 수 있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인화(人和)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리고 둘째는 하늘 가정끼리 단결해야 합니다. 최소한 삼위기대 된 가정끼리만이라도 완전히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1965.10.24)


---1042---

우리는 개인 위주가 아니고, 가정 위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가정만 중심삼고 모든 것을 청산짓는 것이 아니라 전부 연결지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옛날 홀로 도(道)의 생활을 하던 때의 노력 가지고는 안 됩니다. 옛날에 노력했던 것의 몇 배 이상 노력하겠다는 결의와 각오를 첨부시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악을 대해 도전해 나가는 생활은 까딱하면 지치고 후퇴하기 쉽습니다. 가정을 가졌을 때는 혼자일 때보다 몇 배 노력해야 합니다.
가정은 중심을 잡은 자리입니다. 우리는 현실을 피할 수 없습니다. 전후․좌우․상하의 관계를 가정에서 이루어야 합니다. 과거의 신앙 형태 가지고는 안 됩니다. 과거의 일방적인 신앙 태도 가지고도 안 됩니다. (27-85)

가정의 전통을 세우고 축복가정은 가법(家法)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의 교육 기준과 가정의 규범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 만일 부모가 잘못했다가 자녀들의 추궁을 받으면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② 함부로 살아서는 안 된다

개인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는 것을 확실히 규명해야 하고, 또 가정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는 것도 확실히 규명해야 합니다. 지난날 막연하게 살아온 생활을 이제부터는 구체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18-178)

하나님을 위해 말없이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을 희생하게 될 때는 하나님이 나를 옹호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내 편이 됩니다. (191-15)

여러분의 가정은 사랑의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사랑을 중심삼은 공적인 부부가 되고,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들을 중심삼은 사적인 부부나 부모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모가 하늘 가는 길에서 탈선하지 않으려고 온갖 정성을 다하면 자식들이 절대로 불효하지 못합니다. (27-88)

가정을 복귀해야 합니다. 그 이상의 전도는 없습니다. 부부가 새벽에 일어나서 자녀의 손을 붙들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아버지나 어머니가 어디 가고 없을 때 자식들이 부모를 기다리면서 그리워하고 노래할 수 있어야 합니다. (21-88)
혼자일 적에는 기도하면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정에서는 반대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십자가를 지고 본연의 기준까지 뚫고 나가야 합니다. 혼자는 객차와 같고 가정은 기관차와 같습니다. 개인이 실수한 것을 복귀하는 것은 간단합니다. 그러나 가정적으로 실수하면 파탄입니다. (27-86)


---1043---

자식들이 '우리 아빠 좋아! 우리 엄마 좋아!'하고 아빠 엄마 좋아하는 걸 볼 때, 그렇게 좋아하고 자랑하는 그것이 자식들의 안식의 보금자리입니다. (회보 18-3)

가정을 중심삼고 아버지가 '얼' 하면 아들도 '싸', 아들이 '얼' 하면 아버지도 '싸' 할 수 있는 기반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자식이 있다 한들 나라가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나라가 없으면 일등이고 뭐고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29-73)

축복가정은 모든 사람들의 소망의 표적입니다. 그러나 부과된 책임을 다 하지 못하면 낙망의 가정이 됩니다.


 2) 신앙생활로 본이 되는 가정

  ① 신앙생활이 자녀 교육이 된다

주일날 예배시간 전에 먼저 나와 준비하는 사람 몇 명이나 되는지 생각해 보세요. 찬송가를 다 부르고 설교시간이 딱 되면 그때에 맞추어 들어옵니다. 그런 사람을 어떻게 뜻을 따라가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아무리 변명해도 공적 생활을 하지 못하고 사적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소망을 걸고 기대할 아무런 내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새로이 뜻 앞에 각성하고, 공적 생활의 철저화, 사적 생활의 모범화를 결의하고 나서야 되겠습니다. (31-271)

축복가정들은 빠짐없이 예배시간 전에 와서 예배에 참석하는 수많은 생명들에게 은혜의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은혜를 끼쳐 주어야 됩니다. 그리하여 목회자가 단에 나서기 전에 심정적 기반을 만들어 뒷받침해 주게 되면, 설교를 하는데 있어 식구들의 간절한 표정을 바라보고 자극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요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교회는 발전합니다. (31-271)

공식적인 기념일이나 집회가 있으면 그것을 생명시 하고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렇지 않은 가정은 축복가정으로서 낙제가 됩니다. (31-271)

예배시간을 맞이하기 위해 새벽부터 정성을 들여 그날을 하나님 앞에 바쳐 드리는 것을 생활화하는 것을 자녀들한테 교육해야 할텐데도 불구하고, 자기들이 할 것 다 하고…. 뜻 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기도를 하나, 정성을 들이나, 원리 공부를 하나, 전도를 하나, 아무 것도 안해 가지고서 되겠습니까? 주일날 예배시간이 10시 30분이면 10시 30분, 그 시간에 맞게 참석하기 위해서는 9시 30분이나 10시에는 출발을 해야 예배시간 전에 도착할텐데, 시간이 다 된 다음에 집에서 출발해 가지고 예배중에 들어와서 슬그머니 앉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반드시 비판받는 것입니다. 아무리 부모의 입장에서 자녀를 교육해봤자 먹혀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31-269)


---1044---

부모가 뜻생활에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기도생활이라든가 가정예배라든가 어떤 면으로든지 열심있는 신앙생활하는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야 할 것입니다. 또 경배시간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인식시켜 주어야 합니다. 그 시간에는 경배식만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뜻을 중심삼고 부모로서 자녀들을 교육시켜야 합니다. (31-269)

축복가정은 하늘을 모시는 생활에서 본이 되어야 하고 헌금, 경배식, 전도 등을 생활화 해야 합니다. 주일은 일주일을 절약하고 계획했다가 식구들이 기뻐할 수 있는 내용을 주는 날입니다. 또 주일에는 함께 모여서 준비해 온 음식을 나누어 먹고 각 가정이 서로 자기 남편이나 아내를 자랑해야 합니다. (21-88)

새벽경배, 정성, 예배시간을 엄수하지 못하면서 자기 아들딸이 잘되기를 바라면 안 됩니다. 따라서 선생님을 중심삼고 사위기대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후손을 세우려면 부모가 잘해야 합니다. (27-86)

축복가정은 주일이나 공적 집회 참석에 본이 되어야 합니다. (31-271)

식구는 어디를 가더라도 먼저 거룩한 곳, 즉 성지나 교회를 먼저 찾든가 그렇지 않으면 그런 조건이라도 세워야 합니다. 여러분 각자는 개인이로되 개인에만 머무를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또 여러분 각자는 선조의 입장에 서야 합니다. (17-86)

각 가정은 흰 방석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깨끗한 장소를 준비해서 그 방석에 앉아서 정성들이는 시간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17-87)

자나깨나, 먹으나, 쉬나, 보나 뭘 하든 전부 다 뜻을 중심삼고 해야 됩니다. (73-61)

정성을 다해 여러분의 부모를 전도해야 하겠습니다. 한 뜻 앞에 같이 하늘의 축복을 받아 축복가정의 울타리를 만들게 되면 그 이상의 행복이 없는 것입니다. (16-329)

  ② 기도생활은 밥먹는 일보다 더 중요

기도를 해야 됩니다. 기도시간을 정할 때는 새벽에 해보고, 아침에 해보고, 점심에 해보고, 저녁에도 해보고, 밤에도 열시에 하든지 열두 시에 하든지 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다년간 기도생활을 해봐서 몇시에서 몇시까지 기도하는 것이 자기에게 제일 맞는 시간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알아 가지고 자기에게 맞는 시간에 정성을 들이라는 것입니다.
될 수 있으면 은혜 기준이 높은 사람을 중심삼고 같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은혜받는 것입니다. 만일 남편이 자기보다 은혜의 기준이 높고 신앙생활도 모범이 되면 그 남편으로 말미암아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은혜를 받게 되면 남편이 세상에 없는 미남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또 남편이 아내를 통해 은혜를 받게 되면 그 아내가 그렇게 미인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여자 중에 제일이라는 것입니다. 원래 부부는 그래야 됩니다.


---1045---

그래서 눈만 뜨면 바라보고 싶고, 밤을 새워 가면서 속닥속닥 얘기하고 싶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망하는 일이 아니라 흥하는 일입니다. (31-288)
밥먹는 시간이 하루에 얼마나 되나요? 한 시간 반은 되지요? 하루에 평균 한 시간 반을 밥을 먹고 삽니다. 영적인 일은 밥먹는 시간보다 더 많이 투입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건 선생님이 지금까지 다년간 신앙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겁니다. (70-171)

기도는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기도함으로 힘을 받습니다. 기도함으로 앞으로 이 문제가 어떻게 벌어진다는 전망을 다 가르쳐 줍니다. '어떠한 일은 어떻게 하고 어떤 일은 어떻게 하는 것이다.' 하고 가르쳐 줍니다. 그걸 알아야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기도로써만이 그 길을 개척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가 밥먹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들이 가야 할 길은 어차피 헤쳐 나가야 할 길이요, 생활할수록 우리의 힘만 가지고는 불가능한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자는 기도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1975.5.5)

기도하십시오. 기도는 심정의 보급창고입니다. 시간이 없으면 하는 일을 통해서라도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27-89)

빨래를 하면서도, 길을 가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창고에 자꾸 쌓여야지 비면 안 되는 것입니다. (27-87)

늘 기도하는 생활을 하지 않고는 뜻길을 못 갑니다. 여러분은 생활하는데 있어 돈을 생각하지 말고 뜻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27-88)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빽(back)을 가질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됐습니까 ? 하나님을 빽으로 삼으려면 항상 하나님이 같이 하고 여러분들이 하나님과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 돼 있어야 합니다. 강아지 새끼 모양으로 어미 품을 떠나서 혼자 다니다간 어미의 보호를 못받는 것입니다. (1978.10.8)

  ③ 축복가정은 족장

1968년도에 430가정을 축복할 때 선생님이 지시한 바와 같이 종족적 메시아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 사명을 해야 합니다. 선생님을 중심삼고 협회에 36가정이 조직되어 있듯이, 김씨면 김씨 가문에서 먼저 축복받은 가정을 중심삼고 김씨 가문의 36가정형이 있어야 됩니다. 36가정이 못되면 12가정형의 조상이라도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들이 여러분 씨족의 조상이 되어 새로운 지파 편성을 해야 됩니다. 그것이 12지파형인데, 그것을 형성하면 그 12지파권 내에 전부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직계 종족입니다. (1985.12.18)


---1046---

현재의 축복가정들은 전통의 조상이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종족 앞에 메시아적 가정이 되어야 전통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축복가정을 중심삼고 종족이 이루어져 나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종족적인 메시아로서의 사명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의 교회는 족장을 중심삼고 이루어집니다. 축복받은 사람들은 전부 족장들입니다. (214-15)

이제 새로운 가정과 종족의 기반을 닦았기 때문에 종족복귀라는 역사적으로 놀라운 혜택권내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에게는 아버지 어머니에게 전도할 수 있고, 형님 누나 앞에 전도할 수 있는 때가 도래한 것입니다.
복귀역사가 가정을 찾기 위한 것인데 다른 가정을 복귀시키는 것보다 자기 혈육을 통해 복귀하면 얼마나 빠르겠습니까? 여러분이 부모나 형제들을 전도하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은 선생님 일대에 있어서는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세계 624)

여러분은 그 기반 위에서 여러분 당대에 종족적 기반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영광입니까? 이것을 알고 감사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면 그 가정이 책임추궁을 안 받겠느냐 말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책임도 책임이지만 이제는 그 가정이 종족적 메시아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16-314)

지옥이란 곳은 한 번 걸려들면 벗어날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자기의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친척이 지옥에 간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합니다. 그저 어떻게 되겠지, 하고 그만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부모가 진짜 지옥에 간다고 생각해 보세요. 세상의 감옥에만 들어간다고 해도 울고불고하면서 별의별 짓을 다 해서라도 끌어내려고 하는 것이 인정이거늘, 하물며 천정으로 맺어진 아들딸이 자기의 부모와 친척, 형제와 자매 모두가 영원히 나올 수 없는 감옥에 간다는 것을 안다면 그렇게 하겠어요? (126-16)

축복가정의 남자는 예수님의 실체 입장이고, 여자는 성신의 실체 입장입니다. 즉 예수와 성신이 이스라엘 민족을 구하겠다고 나선 것처럼 살아서 이 민족을 구하겠다고 주저하지 않고 나선 입장이 바로 축복가정의 입장입니다. 그러므로 축복가정은 종족적인 메시아로 출발할 수 있습니다. (200-24)

여러분은 가정을 이끌고 이스라엘 땅을 찾아가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에게는 그런 책임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12지파가 자기가 분배받은 땅을 찾아가야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이제 가정을 이끌고 종족적인 터전의 상속지를 찾아가야 합니다. (24-307)


---1047---

여러분들을 종족적 메시아로 보낸 것은 뭐냐? 옛날에는 예수님이 영계에서 이 지상에 종적인 과정을 통해 보냈지만, 오늘날 문총재는 하늘을 대표한 하나님 자리에서 종족을 대표할 수 있는 메시아형의 수만 가정을 세계에 파송한 겁니다. 이제는 안 망합니다. 1989년 1월 3일 오후 2시 30분에 종족적 메시아를 선포한 것입니다. (1989.1.8. 본부교회)

종족적인 메시아는 일대(一代)에 있어서 종족을 중심삼고 역사적인 고향을 안내하는 선봉자라는 걸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모세와 같이 출애급의 선봉자인 걸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맹목적이 아닙니다. 모세는 뭘 모르고 했지만 나는 구체적으로 다 알고 있습니다. 이론적으로 다 알고 있습니다. 고향을 찾아가야 됩니다. 그러나 가인을 찾지 않고는 고향에 못 들어간다는 겁니다. (1992.1.26. 본부교회)

왜 종족적 메시아로서 책임분담을 다해야 하는가? 첫째 이유는 여러분들의 부모를 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제1의 아담의 입장이고, 여러분은 제2의 아담의 입장에 있습니다. 부모를 복귀하여, 재창조하여 아담의 사명을 완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둘째 이유는, 여러분들은 고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종족적 메시아의 사명을 다함으로 자신의 고향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은 종족적 메시아의 책임분담을 다해야 하는 이유는 아담가정의 완성을 위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종족을 교육해야 하는 것입니다. (1991.5.2. 이스트가든)

개인이 안식하려면 가정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되겠기 때문에, 지금까지 통일교회는 가정을 찾기 위해 싸워 나온 겁니다. 또 가정이 안식하려면 종족권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종족이 울타리가 되어 불어오는 바람과 그 외의 모든 것을 막아줄 수 있는 책임을 대신하는, 그런 무대를 만들지 않고는 편안한 가정에서 생존할 수 없는 겁니다.
그러려면 친척들을 중심삼고 족장(族長)이 되라는 것입니다. 족장이 되면 싸움이 일어나도 동네방네 친척들이 일선에 나가서 싸우기 때문에, 족장은 작전을 지휘하면서 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선생님은 종족적 메시아의 사명을 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국가적 메시아의 사명을 하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세계에 나가서 전도를 하게 되면 국가적 메시아의 사명을 하는 겁니다. (1972.5.18. 대구교회)

여러분들은 김씨면 김씨 가문의 메시아와 마찬가지 사명을 해야 됩니다. 김씨 가문(金氏家門)이면 김씨 가문, 박씨 가문이면 박씨 가문에 있어서, 하늘나라를 창건하는데 이 종족을 대표해서 '내가 메시아다.'라고 생각하라는 겁니다. 구주(救主)라고 생각하라는 겁니다. 김씨 가문을 구해주는 구세주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체 김씨 가문을 대신하여 제사장적인 책임을 해야 됩니다. (1965.10.31. 대구교회)


---1048---

이제 최후에 남은 종착지가 뭐냐? 해결 방법은 뭐냐 이겁니다. 모든 벽을 다 헐고 처방을 하는데 이와 같은 혜택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 종족적 메시아가 되라 이겁니다, 종족적 메시아. 요것만 끝나면 개인적 참소조건, 가정적 참소조건, 종족적 참소조건, 민족적 참소조건, 국가적, 세계적 참소조건을 제시할 그 무엇도 다 없어진다 이겁니다. (1989.3.19. 세계선교본부)


 3) 참사랑으로 위해 사는 생활

  ① 왜 위해 살아야 되는가?

우주를 만든 하나님, 법도를 세운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우주를 통해 누구보다 위해 사는 대표적인 자리에 선 분입니다. 그분이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을 만나려면 위해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지식의 대왕이지만 지식 가지고 오라고 하지 않습니다. 능력의 대왕이지만 능력 가지고 오라고 하지 않습니다. 권력에 대한, 돈에 대한, 물질에 대한 주인이요, 대왕이지만 그것을 가지고 오라고 하지 않습니다. 위해서 살다오면 전부가 내 곁에 올 수 있다고 하는 겁니다. (133-16)

남을 위해 주고 또 주는 것은, 재창조하는데 있어 하나님이 창조시에 자체를 소모시키던 입장과 일치됩니다. 나를 투입한다는 것은 제2의 나를 만들기 위한 것으로, 하나님이 창조할 때 자신을 투입하신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재창조역사는 탕감복귀노정이고, 탕감은 재창조역사를 통해 하기 때문에, 자신을 투입해야만 재창조가 벌어집니다. 때문에 희생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것이 이론적인 결론입니다. (82-240)
하나님은 독재자가 아닙니다. 하나님도 인간을 위해 투입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 앞에 있는 것은 인간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년만년 하나님을 따라 가려고 합니다. 위하는 천리의 우주 존재세계 앞에 자기 스스로의 존재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위해서 존재해야 합니다. 위하는데서만 동서양을 통할 수 있고 고금을 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주해 움직이는 것은 악을 가져 오지만, 전체를 위해 움직이는 것은 발전을 가져 옵니다. 이걸 알아야 됩니다. 전체를 위해 가는 데는 모든 것이 문을 연다는 겁니다. 개인도 문을 열고, 가정도 문을 열고, 종족도 문을 열고, 민족도 문을 열고, 세계도 문을 열고, 하늘나라도 문을 열고, 모든 것이 문을 열고 환영한다는 것입니다.
참된 인생이 가는 길에 하나의 공리로 세워야 할 것은 위해서 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디나 통할 수 있는 원칙이고 이건 만고불변입니다. 과거․현재․미래가 없기 때문에 위해 살라는 말입니다. 여기에 공자님이나 예수님이나 석가모니나 마호메트와 같은 성인이라는 사람 앞에 하나님이 나타나서 '당신들 어떻게 생각하오?' 하면 '그게 옳습니다!' 하겠어요, '옳지 않습니다!' 하겠어요? 그게 우주의 법칙입니다. 그것이 인간이 사는데 있어 참된 모습으로 살 수 있는 하나의 법이다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1049---

역사적인 전통으로 남길 수 있는 실적은 무엇이냐? 희생정신에 의한 위해서 산 실적만이 오늘날의 세계에 남아져 왔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성인으로, 역사적인 위인으로, 혹은 충신으로 남아졌습니다. 그러한 희생정신 밑에서만이 공적이 남아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희생하는 것은 공적을 남기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전부를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하고 뿐만 아니라 왔다 간 과거․현재․미래의 인류를 사랑해주는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옥에 간 영인들까지 해방해 주는 운동을 하는 하나님이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진리의 길을 가야 되고, 생명의 길을 가야 되고, 사랑의 길을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위대하더라도 위하는 기반이 없으면 모든 것이 따라 오지 않습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은 자연히 주체가 됩니다. 참생명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레버런 문 사상이 금후 21세기에 있어 주체사상으로 등장할 수 있는 것은 지금까지 '자기를 위하라!'는 세계에서 반대로 '위해서 살겠다.'는 세계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논리적 관에 있어 그 반대의 세계가 현현할 가망성이 있는 불가피한 결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망은 통일교회밖에 없습니다. 자기를 위해 살겠다는 세계가 아니고 위해서 살겠다는 이 무리의 뒤를 21세기 이후의 수천, 수만 년 세계는 따라 갈 것입니다. 위하라고 하는 세계는 안 따라갑니다. 싫다고 하는 겁니다. (169-87)

어떻게 통일이 되느냐? 선생님은 어떻게 통일하느냐? 주먹으로, 힘으로, 돈으로 권력으로, 지식으로? 아닙니다. 사랑을 중심삼은 위하는 자리에서 만사는 해결되는 겁니다. 결론은 간단하지요? 참사랑을 중심삼고 위해 가는데 있어서 악마의 세계가 하늘나라로 재창조되어 나간다는 결론입니다. 그거 이론적입니다.

  ② 위해 사는 자가 중심이다

우리 통일교회는 잘먹고 잘살면서 가자는 거예요? 못먹고 고생하면서 가자는 거예요? 잘먹고 잘살자는 거예요, 못먹고 고생하자는 거예요? 누구를 위해서요? 통일교회 문선생을 위해서요? 하나님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녹여내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42-33)

내가 저 사람을 굴복시키는 방법은 싸워서 이기려 하지 말고, 저 사람을 위해 내가 부모의 자리에서 먼저 생각해 주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내가 이긴다라는 겁니다. 3년만 위하면 틀림없이 내 말을 잘 듣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그렇습니다. 자기 안방 문까지 열고 '네 마음대로 우리 집에 들어와도 좋다.' 전부 다 그러는 겁니다. 그러한 우주의 원칙적인 작용이 이 본심을 움직이고 있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103-139)


---1050---

하나님의 자리와 부모의 자리는 어떤 자리냐? 먼저 생각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보다 먼저 생각해 주시는 겁니다. 부모는 나보다 먼저 생각해 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좋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체입니다. 둘이 산다고 할 때, '아, 저 식구가 해야 할 일을 내가 해줘야 되겠다.'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분입니다. 그런 사람이 중심입니다. 위해 주는 사람이 센터가 되는 겁니다. (103-139)

상대가 조그만 것으로 나를 사랑하고 위해 주었으면 나는 그 이상의 것으로 돌려보내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은 자꾸 확대해 들어가는 겁니다. 확대 확대하면서 시일이 가면, 일생 동안 그러다 보면 이것이 나라를 넘고 세계를 넘고 영원한 세계, 천국을 넘어 천상세계를 넘어간다는 겁니다. (119-326)

사람은 왜 높은 걸 좋아하느냐? 다양한 것과 인연맺을 수 있기 때문에 높은 곳을 좋아합니다. 왜 낮은 걸 싫어하느냐? 단순해진다라는 겁니다. 다양한 관계에서 멀어진다라는 겁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귀한 사람은 높은 이상, 높은 관, 높은 것과 관계를 맺겠다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귀한 사람이다 하는 개념을 여기서 찾아낼 수 있습니다. (129-308)

보다 위해야 합니다. 보다 위하는 것이 뭐냐? 보다 위하는 사람이 책임자가 되는 것입니다. 열 사람 가운데 누가 중심이 되느냐 하면, 그 열 사람을 위해 사랑을 하고 위하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에게는 열 사람이 다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 위하는 게 나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주인이, 중심자가 된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천리가 그렇습니다. 위해 사는 것이 나쁜 줄 알았는데 이것이 센터가 되기 위한 것이요, 책임자가 되기 위한 것이요, 모든 것을 상속받기 위한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해 살라고 하는 걸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나쁜 게 아닙니다. 손해나는 것이 아닙니다. 장사 중에 이런 장사가 없습니다. (132-276)


---1051---

 4) 부모가 세워야 할 사랑의 법도

  ① 부모는 친구보다 가깝게

부모는 자식을 위해 있습니다. 만일 부모를 위해 부모가 있다면 부모라는 말이 안 나옵니다. 앞으로 통일교회의 원리를 중심삼고 윤리관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부모는 어떻게 있어야 되느냐? 자식을 낳은 부모는 자식을 위해 있어야 됩니다. 그것이 윤리의 제일조입니다. 그것은 설명이 필요없습니다. 아들을 위해 있고자 하는 자리가 불행한 자리가 아니라 행복한 자리입니다. (141-19)

자기 자식에게 그릇되게 가르치는 부모는 없습니다. 스승은 제자에게 그릇되게 가르칠 수도 있습니다. 원수의 입장에 있는 스승이라면 망하게 가르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스승은 두 종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형제도 두 종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부모는 오직 하나입니다. 아무리 악한 부모라 하더라도 자식에게는 올바로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28-85)

여러분 자신은 누구의 것입니까? 부모의 것이자 아들의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부모는 누구의 것입니까? 부모는 자녀의 것인 동시에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은 먼저 하나님의 것이 되고 자녀의 것이 된 후에 자신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를 공경하는 그 법도가 땅 위에 남아 있고 인간 생활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부모를 공경하고 자식을 사랑하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부모가 없으면 고아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아 보고 자식을 사랑해 보십시오. 그래야 '나'라는 사람이 사방(四方)을 가릴 줄 알고 위도 아래도 가릴 줄 아는 것입니다. (18-209)

자녀들이 '천하에 우리 부모밖에 없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계의 사람들이 한국으로 모범가정을 찾아 방문할 것입니다. 그때에 보여 줄 것이 있고 할 말이 있어야 합니다. (21-87)

아버지는 친구 중의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 친구보다도 아버지가 나타나게 되면 친구를 버리고 아버지에게 달려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스승 중의 스승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우리 아버지는 대통령보다도 낫다. 제일이다. 하나님 다음 간다.' 이렇게 생각해야 됩니다. '어떤 친구하고도 못 바꾸는 우리 아버지다. 어떠한 스승을 주고서도 못 바꾸는 우리 아버지다. 내가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면 버렸지 아버지는 못 버린다.' 이렇게 돼야 합니다. (148-39)

선생님은 어디 갔다가 집에 들어와서는 반드시 자는 애기들의 얼굴을 쓰다듬어 줍니다. 부모 노릇하기가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럼으로 해서 '우리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듯이 나도 아들딸을 사랑해야 되겠다.'고 하는 것을 자동적으로 심어주게 됩니다. 또 '우리 아버지가 세계에서 제일이다!' 하는 것을 알게 해야 합니다. (22-206)

사람들은 누구나 훌륭한 아들을 갖고 싶어 합니다. 그러면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교육하면 된다고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교육은 일생 동안 해야 됩니다.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부모가 정성들여 키운 자식에게 가문을 맡길 때, 그 대신자로 세울 때는 부모의 마음과 일치되게끔 하여, 그 부모의 인연을 따라가게 하면서 대신자로 세우는 것이 상례(常例)입니다. (24-257)


---1052---

부모가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 뼛골이 녹아나도록 고생을 하지만 힘든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피살을 깎아 주고, 그 값어치가 얼마인지 장부에 치부해 둡니까? 안 합니다. 오히려 몽땅 주지 못해서 안타까워하는 것입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그냥 그대로 생활적인 인연만을 통해 하는 사랑이 아니라 뼛골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인 것입니다. 잊으려야 잊을 수 없고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사랑의 마음을 부모는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의 여력이 남아있는 한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식과 생명의 인연이 맺어져 있다는 것을 느낄 때 부모에게서는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자연적으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저애는 내 아들이니까 사랑하겠다는 의식적인 마음이 앞서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보다 그 인연보다도 앞선 자기의 생명력이 자식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들이 가정 생활에서 잘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32-15)

가정에서 일어나는 시시비비(是是非非)는 남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 남자는 가정의 중심적 권위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21-87)

  ② 전통을 상속해 주는 부모

선생님이 염려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통일교회의 이름을 후세에 남길 것인가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선생님의 전통을 이어받은 사람들을 후세에 남길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전통을 중요시하라는 교육을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35-161)

미래에 대해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거냐? 내가 잘사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후손을 교육해야 됩니다. 후손 앞에 남겨 줘야 됩니다. 지금까지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나 자신도 그렇지만 여러분도 불쌍한 길을 걸어 왔습니다. 피난민으로서 자리를 못 잡았습니다. 광야노정을 걸어 왔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정착해야 되겠고 정착하려면 싸워서 이겨야 됩니다. 가나안 칠족을 멸하듯이 싸워 이기지 않으면 정착이 없습니다. 이 민족을 중심삼은 싸움에서 이겨야 됩니다. (통일세계 1975.11)

자녀들을 교육시킬 때, 너희들은 엄마 아빠처럼 돼야 한다고 교육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전도기간 중 못먹고 못살더라도, 남루한 옷을 입었더라도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후대에게 천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교육자료가 될 것입니다. (통일세계 1976.12)


---1053---

고생은 멋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추만대의 후손이 자랑할 수 있는 전통을 세워 놓아야 합니다. (14-92)

우리 축복가정의 아들딸들이 3대를 어떻게 선생님과 같이 살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3대가 같이 공신이 된다면 천하에 없는 저 천상세계의 공신(功臣)이 된다는 것을 생각해 봤어요? 그러니까 자기의 아들딸을 안고 지금부터 교육하고 그런 사상을 집어넣기에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135-16)

전통을 남겨야 되고, 그 다음엔 선하고 훌륭한 후손을 남겨야 합니다. 졸장부의 후손이 아니라 강하고 담대한 훌륭한 후손을 남겨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 나라는 망할 운세권에 있다 할지라도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망할 자리에서 새로운 은인이 나타나는 것이요, 쫓기는 자리에서 새로운 승리의 깃발이 따라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남겨야 할 그 전통이 대한민국뿐 아니라 만민이 기뻐할 수 있는 전통이 돼야 하고, 선한 후손도 남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못하게 될 때 하늘 앞에 가져갈 예물이 없게 됩니다. (214-22)

부모는 죽더라도 천도는 남기고 가야 합니다. 그 가정은 무엇을 위해 있는가? 자기 자녀를 위해 있다고 하더라도 먼저 하나님을 위하고 나라를 위해야 합니다. 그것이 결국에는 자기 자녀를 위하는 길인 것입니다. 그래야만 자녀들이 하나님의 운과 세계의 운과 함께 하고 나라의 운과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축복받아 낳은 귀한 자녀들이, 고생을 하더라도 그 자녀들에게 박자를 맞추지 말고, 하나님과 세계와 나라의 운세에 박자를 맞추어야 합니다. (21-87)

여러분은 일대(一代)를 위해 사는 가정이 되지 말고 세계와 영원을 위해 사는 가정이 돼야 합니다. 또, 사랑의 터전을 넓혀서 만민의 심정을 모아 촛불을 피우고 향불을 피워서 축수를 드리고, 하늘과 땅, 만민과 공동의 인연을 맺고 살다가 죽겠다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가정이 되면 어떤 환난이 닥친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그 가정을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하늘이 종자로 남겨 놓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세계 594)


 5) 부부가 지켜야 할 예절

  ① 부부는 생활의 동반자

한 번 결혼을 한 후에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결혼하여 가정을 지닌 운명길은 생명을 걸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통일세계 1982.11)

사랑이 이루어지는 순간부터 여러분은 둘이 아니고 하나인 것입니다. 부부가 되면 독자적인 행동은 할 수 없으며, 연대책임을 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세계 544)


---1054---

개인이 망하는 것은 괜찮지만 가정이 망해서는 안 됩니다. 남편에게 있어서는 아내 되는 사람이, 아내에게 있어서는 남편 되는 사람이 세계에서 제일 필요한 사람입니다. 서로 권고해 주면서 지팡이가 되고 동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27-87)

부인은 직장에서 돌아오는 남편에 대해 저녁상을 차려 주는 것으로 남편에 대해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저녁상 머리맡에 앉아 사랑의 밀어를 나누며 오순도순한 시간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처음 만났을 때 다정하게 속삭이던 그 음성으로, 사랑의 모습 그대로 하루의 노고를 위로해 준다면, 남편의 피로는 씻은 듯 가실 것이며 사랑 또한 깊어갈 것입니다. (통일세계 1982.2)

여자는 원래 남자의 평균 목소리 이하의 목소리를 내야만 합니다. 여자는 그 목소리가 사랑의 속삭임 같아야 합니다. (사보 39-5)

선생님이 칠십이 다 된 몸으로 바다에 나가겠다고 어머니에게 이야기하면, 어머니는 바다에 나갈 모든 준비와 정성을 다해 줍니다. 바다에 나가 하룻밤 자고 올 준비까지 해주면서 바다에 나가는 뜻이 이루어지기를 빌어 주기까지 합니다. 이 얼마나 멋있고 아름다운 내조자의 모습입니까? (통일세계 1986.11)
남편이 돌아와서 저녁도 들지 않고 말도 하지 않고 코를 골고 자 버린다면, 그 코고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 코고는 소리 이상으로 우는 소리가 자기의 가슴으로부터 끓어오르는 여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 가정을 보고 싶은 것이 선생님의 소원입니다. 만약 그런 것을 보지 못한다면 선생님의 고생은 헛된 것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의 육천 년의 희생은 헛된 희생이 되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35-192)

남편이 순회 간다는데 '갔다 오소. 나는 피곤하니 잠이나 자야겠소.' 해서는 안 됩니다. 남편이 순회 갔다 올 때까지 아내도 정성들여야 합니다. 자식들도 그 부모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부인은 남편을 출세시켜야 합니다. 내조를 잘해야 합니다. (21-79)

부부 사이에서 남편이 하는 일을 간섭하지 말라고 했다고 아내가 간섭을 안 하면 됩니까? 아내도 남편과 대등한 자리에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남편이 없을 때는 아내라도 그 자리에 나설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31-210)

남편을 만나면 좋을 줄 알았더니, 나쁠 때도 있다는 겁니다. 좋은 것만 바라면 안 되는 겁니다. 24시간 계속 햇빛만 쬐면 되겠어요? 밤이 있어야지. 높으면 낮아지는 것이 원칙이 아니겠습니까? (30-143)


---1055---

아내는 못산다고 슬퍼하지 말고 못 입었다고 서운해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남편이 못 입은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속으로 미안하게 생각하는 곳에 깊은 사랑이 담겨 있고 다이아몬드보다 값지고 귀한 보물이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1984.1.1. 하나님의 날)

남편이 누워 자고 있으면 왜 이렇게 잠만 자느냐고 하며 일으켜 줄 수 있는 아내가 되기를 권고하고 싶습니다. (12-89)

조금만 위로해 주면 여자는 금방 화가 풀립니다. (206-4)

부부가 서로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나를 몰라 준다'고 하는 그런 시시한 싸움을 해서는 안 됩니다. 싸움을 하더라도 뜻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자기 아내의 생일이 되거든, 그 동네 아주머니들을 데려다가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내를 위해 그들 앞에 춤이라도 추고 노래라도 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983.5.5)

자기 아내나 집에서 같이 사는 사람의 발걸음 소리만 듣고도 그에게 좋은 일이 있는지 나쁜 일이 있는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자기 아내가 방에 척 들어오면 '당신 왜 기분이 좋지 않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내는 언제 보지도 않았는데 벌써 남편이 다 알고 있으니 할 말을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 잼대를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게 되면 알 수 있게 됩니다. (42-174)

사랑을 많이 가진 남편은 그 집안에서 욕을 하더라도 이것은 다 사랑의 자극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이 없는 남편의 한마디 말은 그 한 마디가 살을 에이는 것 같은 파괴의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있으면 매를 치더라도 좋지만 사랑이 없는 곳에는 무엇이든지 싫은 것입니다. (185-16)

  ② 부부는 신앙의 동역자

여러분이 농촌에 나가 일할 때에도 혼자 나가서 그냥 일하게 안 되어 있습니다. 부처가 함께 그날의 일을 하나님 앞에 보고하고 나가서 일을 시작하고, 마치고 돌아와서도 하나님 앞에 보고하고 나서 밥을 먹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것을 모두 규범화시키는 하나님을 표준한 생활이 얼마나 엄격한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자에게도 여자로서 지켜야할 가정생활의 규범이 있고, 남자에게도 남자로서 지켜야할 가정생활의 규범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엄청난 천적인 규범을 체계화시켜 가지고 생활하는 것이 여러분들이 가야할 노정인데도 불구하고 그 노정을 못가게 되면 어림도 없다는 겁니다. (31-276)

걷는 데도 남자는 바른발을 먼저 내딛고, 여자는 왼발을 먼저 내디뎌야 하는 것입니다. 어디 가서 앉을 때도 남자는 동쪽에 앉고, 여자는 서쪽에 앉는 것이 원칙입니다. 밥상을 놓는 것, 옷을 거는 것 등 모든 일에 방식이 있는 것입니다. (1969.11.15)


---1056---

남자는 여자를 위해서 내려다보고, 여자는 남자를 아래서부터 차츰차츰 올려다 봐야 합니다. 여자는 물 흐르는 쪽을 올려다보지 말고, 흐르는 아래쪽을 내려다 봐야 합니다. 물 흐르는 쪽을 향해 올려다 보는 여자는 바람 피울 형입니다. 원래 남자가 앉을 자리를 여자가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옷장을 쓸 때에도 남자가 바른편이면 여자는 왼편의 것을 써야 하고, 남자가 위면 여자는 아래를 써야 합니다. 예를 들어 남자의 저고리(상의) 위에 여자의 치마나 속옷을 놓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남자 옷 위에 여자 옷을 얹어서는 안 됩니다. (사보 39-5)

책임자의 부인은 남편이 문을 나설 때 절대 바가지를 긁지 말아야 합니다. 아내가 바가지를 긁음으로 인해 남편 한 사람의 가슴을 흐리게 한 파도는 세계를 흐리게 하는 것입니다. 바가지를 긁으려면 저녁에 긁어야 합니다. 그러면 모든 문제가 밤사이에 모두 해결될 것입니다. 남자는 아침에 싸우러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 남편을 위해 아내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서비스를 잘해야 합니다. (27-88)

남편에게 맞고서도 감사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남편으로서 아내 한 번 못때려 보면 되겠습니까? 고맙습니다.' 하고 말입니다. (27-88)

부부간에 한 쪽이 기울면 심정과 정성으로 보충해야 합니다. 분을 바르고 향수를 뿌려서라도 여자는 언제든 아름다워야 합니다. 여자는 정서생활에 있어서 빚지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남편의 몸이나 의복 등에 대해 항상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남편이 집에 들어왔을 때 피곤해 보이면 세숫물도 떠다 주고, 양치질할 준비도 해 주고, 발도 씻어 주고, 머리도 빗겨 주고 해야 한다는 겁니다. 여자의 웃음은 집안의 꽃입니다. 원만한 가정을 이루려면 여자는 희비극의 일등 배우가 되어야 합니다. 남편이 기쁠 적에도 완전히 녹여 놓고, 슬플 적에도 완전히 녹여 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27-88)

옷은 적어도 3일에 한 번씩은 갈아입어야 합니다. 머리도 그렇게 자주 감아야 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미소를 지어야 합니다. 미소는 마음의 꽃입니다. 언제나 꽃을 피우고 향기를 풍겨야 합니다. 머리 모양이나 화장으로 상대를 테스트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얼굴이나 모양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기쁘게 하지 못한다면 취미로 그것을 대신해야 합니다. 음악이라든가 모든 예술을 총동원해라도, 잡지같은 것을 보고서라도 여자의 생리에 대해서 설명해줘도 좋고, 문학 서적도 읽고 나서 그것을 설명해줘도 좋은 것입니다. 남편이 어린애같이 치마폭에 싸여서 살게 해 주어야 합니다. (27-88)


---1057---

부부는 이왕 만났으니 양팔 붙잡고 죽든지 살든지 함께 가야 합니다. 이왕에 갈 바에는 멋지게 가야 한다는 겁니다. (27-89)

결혼한 이후에 있어 여러분은 마음대로 행동할 수 없습니다. 결혼 이후에 어디로 가야 하느냐면 하나님의 사랑을 맡아야 합니다. 인간이 남자, 여자로 태어난 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은 부부가 되어 하나됨으로써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이 이성성상에 의해 분립된 실체이므로 분립된 실체가 합성일체화되기 위해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가야 합니다. (14-209)

축복가정들이 애기를 품고 사랑할 줄 알거들랑 그 아들딸이 무엇 때문에 태어났느냐 하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 때문에 태어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라는 인연을 통해서 태어났습니다. 남편이 귀하고 아내가 귀해서 비밀리에 무슨 이야기를 하든간에 그 상대가 자기들 끼리 만난 상대가 아닙니다. 공적인 천도를 앞에 놓고 만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개재시켜 놓고 만난 사람입니다. 그러한 자기들이 비참해지면 비참해질수록 하나님이 비참해지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151-30)

가정적인 기반을 닦는데 있어 남편에게 부인이 마음을 맞춰 주면 복을 받는 것이요, 부인에게 남편이 마음을 맞춰 주면 복을 받는 것이요, 자녀들이 하나되면 복을 받는 것입니다. 지금은 가정 구원시대인 것입니다. (12-261)

여자는 천도에 따라 순응해서 여자로서 가야 할 길을 가야 합니다. 남편이 같이 죽자고 하면 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죽더라도 저나라에 가서 같이 살면 됩니다. 남편의 명령을 절대시하고 남편의 명령에 순종한 뒤에는 해방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인륜 세계의 도덕관에 있어서 악한 타락권내에 있다 하더라도 삼강오륜을 중심삼고 순응하는 사람들은, 절대 순종이라는 기준을 세운 사람들은 다시 해방될 수 있는 길이 여전히 남아있는 겁니다. (26-265)


 6) 자녀를 신앙적으로 키운다

  ① 품에 품고 천법을 가르쳐야

여러분은 여러분의 아들딸에게 무엇을 말해 줄 것입니까? 여러분은 공적인 삶, 그것도 모범적인 공적인 삶을 삶으로써 여러분의 아들딸에게 보여주고, 그 전통을 이어받을 수 있게끔 교육시켜야 됩니다.
사람은 원래 자기 부모에게 교육받게 되어 있습니다. 학교에 가서만 교육을 받는 게 아닙니다. 특히 전통을 이어받는 교육은 학교에서는 배우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세계 659)

자식들은 모든 가치를 부모를 통해 찾습니다. 가정에서 자라고 있는 자녀는 누구를 닮느냐? 부모를 닮습니다. 그 자녀들이 누구를 따라가느냐 ? 부모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24-133)

잘못이 있을 때 자녀를 낳으면 그 잘못은 유전됩니다. (17-351)


---1058---

가법을 마련해야 합니다. 애기들의 교육기준 등 가정의 규범을 만들어야 합니다. 잘못했다가 자식의 추궁을 받으면 할 말이 없습니다. (회보 1-2)

자녀를 교육하기 위해 부모가 먼저 실천해야 됩니다. 부모가 본이 되어 뜻 앞에 충성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부모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자녀들이 일언반구(一言半句)도 대꾸하지 않고 경외(敬畏)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자녀들이 따라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자기가 알고 있는 뜻과 원리를 중심삼고 볼 때, 교회생활을 하는데 있어 부모가 본부에서 지시하는 원칙을 등한시 하고 그 지시에 따라 생활을 하지 않으면서 자녀들에게만 원리원칙대로 생활하라고 하면 코웃음을 친다는 것입니다. (31-268)

부모는 무슨 짓을 하든지 아들딸이 통일교회의 정도(正道)를 가게 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도 정도를 가야 합니다. 자기가 먼저 가고 나서 자식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자식을 교육시키기 위해 자기가 먼저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런 다음에 자식을 교육시켜야지, 자기는 하지도 않고 교육시키려고 하는 것은 천도(天道)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얘기하는 모든 것은 선생님이 먼저 실천해서 승리의 기반을 닦고 난 다음에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믿어지지 않으면 기도해 보세요. 거짓말인지 사실인지 기도해 보라는 겁니다. (23-322)

기도를 할 때에도 내가 이렇게 하니 내 자식도 이렇게 하도록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자기가 먼저 표준이 된 후에야 자식을 그러한 위치에 세울 수 있습니다. 자신이 먼저 그러한 위치에 서면 하나님은 그 자식도 같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우리를 중심하고 그 방향을 돌려놓지 못하면 영계에 가서 책임 추궁을 받게 될 것입니다. (13-103)

자녀들을 교육시킬 때, 너희들도 엄마 아빠처럼 돼야 한다고 교육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30-87)

자식은 부모의 심정을 배우는 것입니다. (30-87)

자기 자식을 가르칠 때 '너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만 하지 말고,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길을 거쳐서 뭐가 되라!'고 해야 합니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책임을 다하고 형은 형으로서 책임을 해야 합니다. 누나는 누나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참된 남성과 참된 여성의 길을 갈 수 있는 인연을 가려 나갈 줄 아는,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여러분이 되어야 순리적인 노정을 거쳐 한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길이 생겨날 것이 아니겠습니까? (통일세계 1973.9)


---1059---

'아버지'란 말은 무서운 말입니다. '참'이 아니고서는 자식을 먹여 살릴 수 없는 것입니다. 자식에게 피의 공적과 선한 것을 먹여야 합니다. 잘못된 것을 먹을 때는 눈물을 흘리면서 지도해 주어야 하고 복을 빌어 주어야 하는 것이 부모입니다. 그래야 부모는 자식에게 신세를 지지 않는 것입니다. (14-92)

앞으로 여러분은 부모로서 자식을 품고 천법을 따라가야 됩니다. 여러분의 생활이 아무리 괴롭고 아무리 어려움에 부대끼며 살더라도, 자식에게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됩니다. 절대 안 됩니다. 자녀들을 교육시킬 때 어떻게 하면 뜻 대한 사명을 다하는 사람으로 교육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젖먹이 아이에게 젖을 먹일 때에도 이러한 생각을 하며 먹여야 합니다. (12-134)

여러분이 '그 집안은 괜찮은 가문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기준이 되어 있다고 해도 그 집안의 자식들은 무엇이든지 조심해야 합니다. 훌륭한 가문에서 자라난 아들들은 무엇이든 조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한 발짝을 옮기더라도 조심해야 하고,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조심해야 하고,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조심해야 합니다. 예법이 복잡하다는 것입니다. 위엄이 있는 집안에서는 자식을 교육할 수 있는 자료가 많이 있습니다. 어른 대할 때, 형제를 대할 때, 부모를 대할 때 어떻게 하라고 자라는 아이들을 모아 놓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42-17)

  ② 신앙교육이 더 중요

자녀들의 신앙교육이 학교교육보다 더 중요합니다. 아버님의 생각은 뜻을 중심삼은 생각이고, 여러분들의 생각은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믿고 행하는 자에게는 창의력이 생깁니다. (사보 42-12)
축복가정의 자녀는 심정교육을 통해 인격자로 기르고, 규범교육을 통해 자랑스러운 선민으로 기르고, 천재교육을 통해 하늘이 준 재능을 100% 발휘시켜 뜻 발전에 기여해야 합니다.
공부를 할 때 왜 피곤을 느끼느냐? 자기를 위해 공부를 하기 때문에 피곤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삼천만이 죽고 사는 문제가 여기 한 페이지에 달려 있고 한 문구(文句)에 달려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한 단어를 가(加)함으로 말미암아 삼천만이 살고 한 단어를 감(減)함으로 삼천만이 망한다는 마음으로, 더욱 정성들여 그 한 단어를 가하겠다는 심각한 마음으로 공부해 보라는 겁니다.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심각한 자리에서 있었던 일을 잊을 수 있어요? 생명을 걸고 하라는 겁니다. 여러분이 쿵쿵거리는 심장의 고동소리를 느낄 때가 있지요? 심각하면 그렇습니다. 그런 심각한 자리에서 여러분이 결심한 것을 잊을 수 있어요? 머리 나쁘다는 것도 다 정도문제라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고학을 통해 학업을 했습니다. 호랑이는 새끼들에게 야성을 길러 산중의 왕으로 키우기 위해서 가혹한 시련과 혹독한 훈련을 시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쇳덩이도 불에 달굴수록 강해진다는 원리도 자녀들을 교육시키는데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합니다. (통일세계 1982.11)


---1060---

부모가 생활이 어려워서 마음껏 물질적 혜택을 가질 수 없다면, 뼛속에서 스며 나오는 사랑의 마음을 가져 자식을 위하게 될 때 그들이 부모에게 빚을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효자는 가난한 사람의 가정에서 많이 나오는 것입니다.
부모가 그런 전통을 남겨 놓았기에 그 자식이 빚 안 지겠다고 노력하고, 그렇게 될 때 부모도 보람을 느낍니다. (통일세계 1975.10)

 7) 형제간의 우애

부모한테 아들딸 둘밖에 없다면 어떻겠습니까? 아들을 두고 볼 때 그에게는 누나가 필요하고 또 형이 필요하지요? 또 딸에게는 오빠가 필요하고 언니가 필요합니다. 또 그들에게는 남동생과 누이동생이 필요합니다. 형님이 있어야 되고, 누나가 있어야 되고, 남동생 누이동생이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다 갖추어지지 않으면 불행한 것입니다. 여동생․남동생․누나․오빠 다 갖추어져 완전히 하나되는 가정은 하나님이 보호하십니다. 이것이 씨족과 민족과 국가의 기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형과 누나는 동서를 말하고, 남동생과 여동생은 남북을 말하는 것이니, 그것이 완성되면 입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법도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법도가 자리를 잡게 될 때 평화의 기원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20-40)

부모의 마음은 자기를 위하는 마음보다도 형제끼리 더 위하는 것을 원합니다. 부모를 돌보지 못하더라도 '어머니 조금 기다려요. 나 동생 사랑하고 오겠소.' 하면 '그녀석, 앞으로 쓸만한 녀석이다.' 이럽니다. 그렇지요? (78-41)

형제를 부모 이상 사랑하겠다는 사람은 천국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사람입니다. 형제를 부모같이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여기에서 벗어나는 겁니다. 그 도리의 근본을 깨우쳐 보면 간단합니다. 그것을 몰라 지금까지 못한 겁니다. 우리 식구식구들끼리 하나되느냐, 못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부모 앞에 효도 못하는 자리에 섰으면 부모를 위해 자기가 정성들인 것을 부모 대신 자기 식구를 위해 주라는 겁니다. 그러면 부모에게 효도한 이상의 것으로써 하늘이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런 사람은 반드시 복받습니다. (78-41)

천국에 가는 길은 형제를 하나님과 같이 사랑하는데서 열립니다. 여러분들은 선생님을 따라가고자 하는데, 그 마음으로 형제를 따라 같이 가려고 노력해 보라는 겁니다. 이렇게 볼 때, 천국에 제일 높게, 빠르게, 좋게 인도하는 자는 하나님도 아니요, 선생님도 아니요, 형제라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부모와 부부의 사랑을 능가하는 사랑을 가지고 노력하는 자는 최고의 사랑의 주체자로서 상대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184-60)


---1061---

동생 하나가 잘못되게 되면 모든 형제들이 붙들어 주고, 어머니 아버지가 사랑하는 그 가정이 얼마나 아름다운 거예요? 어머니 아버지는 '후대의 우리 하나님이오!' 이런다는 겁니다. 그거 왜 그러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통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가정에서 그렇게 사랑으로써 어머니와 같이 사랑하고, 어머니가 아버지를 위해주는 그런 사랑이 되게 되면, 그 가정은 하나님이 같이하고, 그 아들딸은 미래에 하나님의 대신자가 된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184-63)

형제는 무엇이냐? 같은 사랑의 동참자입니다. 부모의 사랑의 같은 동역자란 겁니다. 그러니 이게 서로 싸울 수 있어요? 싸울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른손 들 때는 아버지 손, 왼손 들 때는 어머니 손, 바른발 들 때는 아버지 발…. 우리 선진이에게 '이 발이 누구 발이냐?'하고 물어보면, 바른발은 아버지 발이고 왼발은 어머니 발이라고 그러더라는 겁니다. 그거 참 맞다는 겁니다. 그거 왜 그러냐? 벌써 사랑을 중심삼고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106-80)

오빠의 자리에서 동생을 사랑하고 동생의 자리에서 오빠를 사랑하는데 그냥 사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부모를 개재시켜 가지고 어렸을 때 부모의 품에서 자라던 것을 중요시하면서 사랑해야 됩니다. 부모와 자녀가 하나된 기반에서 연결된 형제라야 하는 겁니다. 그래야 커가면서 같이 올라가는 것입니다. 국민학교, 중학교를 쭉 그렇게 올라가는 겁니다. (236-11)

세상을 암만 돌아다녀 봐도 가정에 있는 형제의 사랑, 피를 나누어 갖고 태어난 형제애 같은 것은 없는 것입니다. 사회에 나가 가지고 자기 형제 이상 가까운 사람이 있어요? 가까워 졌다가도 갈라집니다. (228-199)

형제가 많으면 밥을 먹어도 한 그릇 가지고 둘이 나눠 먹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밥 한 그릇밖에 없다고 싸움하는 것이 아닙니다. 형제가 많아 어렵게 살더라도 ?내가 밥을 굶더라도 누나 줘야겠다. 동생 줘야 되겠다.? 이런 사랑의 마음을 가지면 얼마든지 좋다는 겁니다. (112-195)

형제를 통해서 국민이 형성되고 인류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형제는 전후를 표시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살이 되는 겁니다. 이것이 납작하게 있다가 살이 붙은 것입니다. 거기에서 원형이 생기는 것입니다. 원형을 만드는 것이 형제요, 형제가 확장되어서 국민이 되는 것입니다. 형제애라는 것은 세계애(世界愛)와 통하는 것입니다. 많은 형제들이 자라는 가정은 세계의 인류를 품고 이상적인 천국, 지상천국과 천상천국을 만드는 모델과 같은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형제는 여기에서 확장되는 것입니다. (235-268)


---1062---

 8) 근검절약, 검소한 가정생활

  ① 검소한 생활

아내 되는 사람은 남편을 위하고, 자식된 사람은 부모를 위하고, 또 부모는 가정을 위하고, 할아버지 할머니도 가정을 위하고, 손자도 가정을 위하고, 이렇게 사랑으로 서로 위해 일하는 것이 행복한 것이 아니겠어요? 모든 식구들이 내 것을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고 우리 것을 만들겠다고 노력하는, 할아버지도 안 쓰고 절약해서 우리 것 만들려고 하고, 어머니 아버지도 우리 것을 만들기 위해 안 쓰고 절약하고, 아들딸도 그렇고 온 가족이 우리 것을 확대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그 집은 번창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돈을 안 쓰고 절약하여 전체를 위하는 데서부터 이런 사랑의 보금자리는 확대되는 것입니다. 이런 가정들을 중심삼고 사회나 세계로 퍼지게 될 때 이상 실현이 가능한 것이지 자기 것, 자기 중심삼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167-206)

소유권은 하나님에게로 돌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아무것도 안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검소한 생활을 하는 겁니다. 일가족이 가방 하나 메고 어디든지 가서 살 수 있는 시대가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한 성서의 문구가 일리가 있다는 겁니다. (229-7)
확고한 경제적 기반을 어떻게 닦아 놓느냐? 우선 절약해야 됩니다. 그래서 절약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강조해도 안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물질을 자유롭게 주고받을 수 있는 환경에서도 책임을 못해 몰리는 날에는 통일교회는 제2차 수난의 길을 가야 합니다. (24-98)

우리 선교사들은 서구문명 사회의 어떤 호화스런 요소들을 필요로 하지 않을 만큼 훈련되어 있습니다. 우리들이 새로운 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슬리핑 백 문화'입니다. 우리 젊은이들은 어디를 가든지 낯설어하지 않을 것입니다. 통일교회 선교사 집은 호화가구 없이 제일 검소한 살림도구만이 있는 채 발견될 것입니다. (130-278)

  ② 절약정신

모든 면에 모범이 되어야 됩니다. 잘먹고 잘살고 풍부하게 사는 것이 절대 모범이 아닙니다. 이것을 절제있게 해 가지고 필요 적절하게, 불가피하게 필요 적절한 소모를 하는 것이 모범적 생활이다, 하는 걸 알아야 됩니다.


---1063---

선생님은 주일날에는 할 수 없이 이렇게 정장을 하지만 될 수 있는 대로 옷을 입을 때 넥타이를 안 매고 지냅니다. 집에 있을 때는 재킷을 안 입고 스웨터 같은 것을 간단히 입으려고 합니다. 서구사회에서 넥타이 값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해 보십시오. 핀까지 전부 다 합치면 이게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걸 못하고  노타이(no tie)로 세계를 생각하며 일생 동안 산 사람하고 넥타이를 하고 세계를 생각하지 못하고 산 사람이 영계에 갈 때 누가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가겠나 생각해 보십시오.
금식을 해 보니 시간이 얼마나 많은지 알겠지요? 세 끼 밥먹는 시간이 얼마나 많이 잡아먹고 있다는 걸 알것입니다. 또 정신적으로도 사과 하나 얻어먹겠다고 전부 다 냉장고를 열고 들여다보고, 콜라 하나 마시려고 왔다갔다하는 그런 정신적 소모가 얼마나 많겠어요? 식사 때만 먹는 습관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러면 병도 안 나고 건강해진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매일같이 목욕하는 걸 찬성 안 합니다. 건강에도 좋지 않습니다. 3일에 한 번씩 하는 걸 원칙으로 합니다. 땀을 흘려서 할 수 없이 하는 겁니다. 매일 하면 그거 얼마나 물이 많이 소모되느냐는 겁니다. 건강에도 나쁘다는 겁니다. '으! 선생님은 야만인이다.' 하겠지만 야만인이라 해도 좋다 이겁니다. 에덴동산의 하나님도 아담과 해와도 야만인이었습니다. 옛날에 요즘과 같은 변소가 있었어요? 휴지가 있었어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그런 걸 감사하고 이렇게 해서라고도 이 세계를 살려야한다는 겁니다.
밥을 먹더라도 옛날과 달라야 됩니다. 변소에 가더라도 옛날과 달라야 됩니다. 요즈음에 기차를 타고 가다가 변소에 가게 되면 휴지가 달아매어져 있습니다. '에라 이렇게 쓴다고 누가 보나?' 이러면서 함부로 쓰기도 했을 겁니다. 남의 것이니까 와르륵 와르륵 한꺼번에 쓱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 그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절약해 가지고 한 번에 해야 됩니다. 달라져야 됩니다. (57-179)

배가 고파 밥을 먹더라도, 식기(食器)에 밥을 가득 담아 먹지 말고 5분의 2를 제해 버린 5분의 3을 먹고 만족할 수 있는 기준을 가지라는 겁니다. 그래야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무엇이든지 절약할 줄 알아야 됩니다. 최고로 절약해서 얼마 가지고 살겠느냐? 이런 훈련을 해서 최소한 3개월 동안은 각자 기록, 자기 스스로의 최대 한계점까지 해봐야 됩니다. 그렇게 해 가지고 어떻게 되는가 보자는 겁니다. (57-179)

하나님의 뜻을 위해, 이 나라의 복귀를 위해 한 푼이라도 절약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니 경제적 관리에 있어 일층 더 절약할 수 있는 길을 우리는 개척해야 되겠다는 것이 선생님의 생각입니다. (71-267)

선생님은 앞으로 생활비 절반만 가지고 살게 하려고 합니다. 코카콜라 같은 것, 과일도 못 먹게 하려고 그럽니다. 식당에서도 보면 여러분들은 먹는 것이라면 자기 마음대로 들어와 그저 무엇이든지 갖다 먹더구만. 돼지처럼 먹습니다. 절약에는 별거 없습니다. 입는 것, 먹는 것, 사는 것에 있어서 절약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96-130)


---1064---

우리 식구들은 저런 넥타이는 매지 말라는 겁니다. 그거 외부 사람들에게 오해받을까봐 하지 말라는 건 아니지만, 될 수 있는 대로 그런 면에서 절약해야 되겠습니다. 자, 그럼으로 거기서 위대한 혁명의 기지(機智)가 폭발된다는 겁니다. 미국에 있어서 절대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94-174)

내가 돈이 많다고 어떤 사람은 백만장자라고 그러지만, 나는 24시간 쉬지 않고 피땀을 흘려 단 한 닢이라도 절약하여 모은 돈을 다 세계에 펼쳐 놓고는, 뭐 문서짜박지 하나 나한테는 없습니다. 인감도장 하나도 없습니다. 내가 정성껏 모은 이 돈을 누가 갖다 마음대로 소화시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같이 합니다. 아시겠어요? (101-137)
남 잘 때 자지 않고 남 쉴 때 쉬지 않고, 남 먹을 때 먹지 않고 절약을 해 가지고, 남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 생각은 본시 그렇습니다. (103-219)

그렇게 아끼고, 절약하고, 고생해서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후대를 위해 좋은 일을 하자는 겁니다. 그래서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 사상을 지니자는 겁니다. 십년 그런 사상의 전통을 남기고, 백년 동안 그런 사상의 전통을 남기고, 천년 동안 그런 사상의 전통을 남기게 될 때에는,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추대받는 민족이 되는 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원칙으로 지도하려는 것이 선생님의 사상입니다. 당하고 있는 현재에서는 제일 나쁜 사상으로 볼 수 있지만 두고두고 보면 이 사상만이 남아지고 이 사상만이 승리한다고 보기 때문에 이런 길을 취하기 시작했습니다. (109-82)

'돈을 아껴라!' 할 때 내가 부자되기 위한 것보다 나라를 살리기 위해 아끼는 게 공적(公的)입니다. 내가 부자 되기 위해 아끼는 게 아닙니다. 나라를 살리기 위해 아끼는 겁니다. 미국에 대해서 '미국은 절약해라! 아껴라!' 하는 것은 세계를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미국은 세계에서 세금을 제일 많이 걷는 나라인데, 세계를 위해 세금을 많이 걷었으면 세계 앞에 존경받는다는 것입니다.
그거 미국 국민을 위해 했다면 미국 국민도 정부를 반대하고 세계도 반대하는 겁니다. 세계를 망치는 유행이요 문화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런 세계를 위해 내가…. '반대를 받더라도 레버런 문이 가는 길이 정당한 길이다.' 이렇게 보는 겁니다. 내가 듣고, 말하고, 내가 하는 모든 것이 다 그렇다는 겁니다. (111-233)


---1065---

 9) 일상생활의 예절

  ① 옷

옷을 거는 것도 전부 다 원리적으로 걸어야 됩니다. 남자의 옷은 오른쪽, 여자의 옷은 왼쪽. 옷을 넣더라도 남자의 옷은 위에 넣고, 여자의 옷은 아래에 넣고, 그게 원리적입니다. 전부 다 그런 훈련이 필요합니다. 여러분들, 이런 소리 처음 듣지요?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남자 옷을 전부 다 밑창에 넣고 여자의 옷만 위에 넣게 되면 그게 뭐예요, 원리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1984.5.3. 이스트가든)

자, 옷을 벗을 때도 바지를 먼저 벗고 재킷을 위에 놓아야지 웃옷을 먼저 놓는 거 아닙니다. 그런 원리적 생활로써 환경을 정리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남자 신발은 오른쪽, 여자 신발은 왼쪽, 또 두 칸 밖에 없는 한 집에 살 때는, 남자 신은 위에 여자 신은 아래, 그걸 전부 다 원리적으로 정리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1984.5.3. 이스트가든)

여자들은 옷을 입을 때 어떤 것을 먼저 입나요? 웃옷을 먼저 입나요, 아래옷을 먼저 입나요? 여자는 아래옷부터 입는 것이 원칙입니다. 원리가 아래옷부터 입는 겁니다. 남자도 물론 그렇지만…. 남자는 가끔 웃옷을 먼저 입어도 괜찮다고 보는 겁니다. 그게 원리적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것을 전부 다 알고 생활부터 정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원리가 생활철학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1984.5.3. 이스트가든)

  ② 얼굴

얼굴은 생긴대로 그냥 있는데 그 표정을 어떻게 하느냐 ? 이건 여러분들이 습관적으로 조정해야 됩니다. 이빨이 옥니면 될 수 있는 대로 자꾸 웃지 말라는 겁니다. 그거 왜 그래야 되느냐? 여자가 그러면 독사의 이빨같이 보인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여자들은 절대 입을 벌리고 웃지 말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될 수 있는 대로 입을 벌리지 말고 웃으라는 것입니다. (1984.5.3. 이스트가든)

여자들이 '하하하'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자들은 꽃입니다. 꽃이 필 때에는 소리없이 피지 확 피나요? 살랑살랑 핍니다. 그런 여자가 여성답지 '하하하'가 아닙니다. 서양 사람들은 '허허허' 하는데, 남자라면 또 몰라도 여자는 꼴불견입니다. 진짜 꼴불견입니다. 암만 서양 여자들이라도 우리 무니(Moonie)들은 그러지 말아야 합니다. (75-26)

웃음이라는 것은 참 묘합니다. 살짝 웃는 것도 웃는 것입니다. 웃으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모든 것이 둥글어져 나갑니다. 영감이 크게 웃게 될 때, '허허허' 하고 계속 올라가지 않고 꼬부라지면 '걸걸걸' 합니다. 왜 꼬부라져요? 이상하잖아요? 올라가면서 웃지, 왜 꼬부라지느냐는 겁니다. 둥글어져야 되기 때문입니다. 해쭉 웃게 될 때에는 입이 살짝 웃지만, '하하하' 하고 웃게 될 때에는 입이 둥글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둥글게 웃는 사람 중에는 악한 사람이 없습니다. 지금 관상학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재미있지요? (173-242)


---1066---

자, 여러분들은 웃을 때 눈 따로 코 따로 웃나요, 다 같이 웃나요? 눈이 웃고 코가 웃는데, 입이 이런 사람은 먹는 것이 궁(窮)합니다. 또, 코가 안 웃고 뻣뻣이 있으면 아들딸과 손(孫)이 귀합니다. 또, 웃기는 웃는데 이렇게 눈이 안 웃는 사람은 정(情)이 없다는 겁니다. 전부 다 이렇게 활짝 웃고, 크게 웃어야 됩니다. (96-232)

  ③ 머리

남자들도 여자들처럼 머리를 잘해야 됩니다. 화장을 하는 것도 그렇고, 머리도 자기가 봐 가지고 가르마를 왼쪽을 타느냐 오른쪽을 타느냐를 알아야 됩니다. 서양도 그렇고 동양도 그렇고 전부 다 왼쪽을 탑니다. 서양풍이지만 대개 왼쪽을 가르는 겁니다. 그러나 오른쪽을 크게 하는 것이 좋다는 겁니다. 이걸 여자들이 잘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96-232)

  ④ 손톱과 발톱

선생님이 서양에 와 가지고 제일 무서운 것이 여자 앞에 가는 겁니다. 손톱만 보면 이건 뭐 위험스럽습니다. 선생님은 손톱이 언제나 이렇게 짧습니다. 이것이 필요합니다. 조금만 길면 손톱과 발톱을 자릅니다. 손톱과 발톱 자르는 것이 취미입니다. 손톱 기르는 여자들은 일을 안하겠다는 여자들입니다. 아, 그것 가지고 타이프를 칠 때 어떻게 치겠나 ? 난 그걸 볼 때 '그건 거리의 여자다.'라고 생각합니다. 돈을 안 주면 손톱을 가지고 '확!' 돈 달라고 말입니다. 난 그렇게 생각합니다. (96-232)

여자들이 양말을 벗을 때 발톱이 길어서 늘어나면 안되는 겁니다. 서양 여자들은 발톱이 길면 아파서 안되겠구만. 하이힐 신을 때 아플 겁니다. (96-232)

  ⑤ 걷는 것

걸음은 단정히 걸어야 됩니다. 서서 걷는 것이 균형이 잡혀야 된다는 것입니다. 서서 걷는 것이 균형이 돼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안전하게 걸어야 됩니다. 어떤 사람 보게 되면 이렇게 걷고, 이렇게 걷고…. 척 서 있는 것이 균형이 잡혀야 됩니다. 그러한 것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96-232)

여자가 등이 구부러지면 안 됩니다. 남자들도 그렇지만. 침대생활하는 여자들 보면 가슴이 휘어 있는데 이것은 안 되는 겁니다. 머리에서부터 바로 설 수 있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앉을 때에도 언제나 똑바로 앉는 연습을 해야 됩니다. 남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여자는 앉을 때에 궁둥이를 깊숙히 앉아야 됩니다. 이게 안 되게 되면 전부 다 허리가 구부러지는 겁니다. 걷는 모양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걷는 모양. 이게 중요한 것입니다. (96-232)


---1067---

  ⑥ 앉는 모양

여자들이 어디에 가서 앉을 때 동양같은 데서는 절대 기대 앉지 못하게 합니다. 남자는 그것을 허락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자는 궁둥이가 커서 앉으면 자동적으로 편안하다는 것입니다. 남자는 궁둥이가 작고 상체가 크기 때문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앉을 때, 특히 여자들이 기대어 앉게 되면 애기에게 지장이 있는 겁니다. 임신하면 큰일난다는 겁니다. (96-232)

  ⑦ 자는 것

서양에서는 잠자는 매너가 어떻게 돼 있어요? 엎드려서 자요, 옆으로 자는 거예요? 잠을 잘 자야 됩니다. 자는 게 고와야 된다는 겁니다. 코를 고는 것도 덩치가 큰 남자들이 코를 골아야지 여자가 코를 골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여자가 하는 건 '쌕쌕쌕' 작게 그래야 됩니다. 여자가 골면 곤란하다는 겁니다. 그럴 때 목을 숙일수록 소리가 더 납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러니 될 수 있는 대로 베개를 이렇게 목이 높아지도록 대는 겁니다. 그게 필요합니다. (96-232)

여자들이 남편이 자는데 들어와야 할 때는 옆으로 삭 들어와야 됩니다, 옆으로 돌아서 말입니다. 남편이 먼저 자는데 여자들이 '왁' 하고 들어오면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살짝 옆으로…. 그게 필요합니다. (96-232)

  ⑧ 건강

건강이 제일입니다. 아무리 아픈 데가 있어도, 감기가 들어도 건강한 기분을…. 자기의 표정을 봐 가지고 다른 사람이 뭘 알 수 없는 표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조금만 감기가 걸려도 아픈 표정 하고, 조금만 어려워도 어려운 표정 하는데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자가 걱정스러워 해도 그거 왜 그러시느냐고 하면서 위로할 수 있는, 언제나 건강한 표정이 필요합니다. (96-232)

  ⑨ 말

동양에서는 여자의 말이 담을 넘게 되면 그 집안 망한다고 그럽니다. 남자가 '왕왕' 하면 자연적으로 담 넘어가게 돼 있습니다. 여자는 말이 작습니다. 본래 그렇게 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담을 넘어가게 되면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에, 그 여자 데리고 살다가는 망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벌써 여자가 말하는 소리 들으면, 대번에 압니다. 저 사람이 어떻게 살 것이다, 고달프게 살지, 복받고 살지, 사랑받고 살지, 그걸 압니다. 그래서 여자의 음성이 중요합니다. 그런 것 생각들 안 해봤지요? (96-232)


---1068---

말은 말만으로, 행동은 행동만으로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전부 하나님의 아들딸 위(位)에 세워져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말하고 행동하고, 하나님의 딸로서 말하고 행동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91-73)

여러분들은 심정에 없는 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걸립니다. 천법에 걸린다는 겁니다. (91-97)

여러분이 말은 순식간에 하지만 그 한 마디를 잘못하게 되면 그것이 1년까지 갑니다. 한 순간 잘못 말한 것을 1년동안 청산시키는 놀음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43-111)

사랑을 중심삼고 하는 말은 아무리 욕을 해도, 무슨 말을 하더라도 이것은 흥할 뿐이요, 발전할 뿐이요, 전부가, 우주가 좋아할 뿐이라는 겁니다. (91-91)


 10) 순결에 대한 가르침

  ① 사춘기에는 계율을 잘 지켜라

여러분, 사춘기가 되면 이성에 눈을 뜨게 되고 전체의 생각이 그리로 집중되지요? 모든 세포작용이 그리로 다 집합되는 것입니다. (108-233)

사춘기가 된 청소년들을 보면 눈이 '깜짝깜짝' 하고, 오색의 옷을 입고 궁둥이 싸매 가지고 다니는 겁니다. 궁둥이 크면 큰일납니다. 흉이 될까봐 그저 작게 하고 나가 다니는 겁니다. 여러분, 사람들에게 있어서 지혜와 모든 육적 작용을 백 퍼센트 활용할 수 있는 때가 사춘기 때입니다. 세포 전부가 작용하는데 백 퍼센트 합니다. 그 때만이 백 퍼센트 활동한다는 겁니다. 여자들이 예쁘장한 것, 알록달록한 것을 왜 입으려고 그래요? 그게 전부 다 신호등과 마찬가지입니다. (144-202)

요즘 세상에는 별의별 바람이 다 부는데, 이 천지에서 통일교회 패들은 절대 휩싸여서는 안 됩니다. 요놈의 사춘기(思春期)가 '생각 사(思)'자 사춘기(思春期)가 아니라 '죽을 사(死)'자 사춘기(死春期)입니다. 여러분, 요걸(思春期) 택할래요, 요걸(死春期) 택할래요? (57-159)

예수님은 사춘기가 있었겠어요, 없었겠어요? 예수님에게도 사춘기가 있었겠지요? 예수님에게도 사춘기가 있었는데 무슨 사춘기? 이 ('생각 사'자) 사춘기를 걸어갔겠어요, 이 ('죽을 사'자) 사춘기를 걸어갔겠어요? 어떤 사춘기를 걸어갔겠어요? 아무한테나 휘파람을 '휙' 불고 신호하는 그런 사춘기가 아닙니다. '생각 사'자 사춘기를 걸어갔다는 것입니다. (57-159)

우선 여러분들은 사춘기를 잘 보내야 됩니다. 살고자 하는 것은 이것(思春期)이요, 죽고자 하는 것은 이것(死春期)입니다. 죽고자 해서 이것을 벗어나면, 한 바퀴 뒤집어 놓으면, 180도 돌려 놓으면 사춘기(死春期)가 변해서 사춘기(思春期)가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죽은 사춘기를 통해서 소망의 봄날, 새로운 산 봄날인 신랑 신부의 사춘기를 향해 찾아 나온 것입니다. 그것이 기독교의 신랑 신부의 역사입니다. (57-159)


---1069---

인간의 타락이 뭐냐? 하나님을 중심삼고 봄날을 못 맞이한 것입니다. 봄날이 오게 되면 효자 되겠다는 녀석들이 자기들만 봄날을 맞이해요? 부모를 중심삼고 '어머니, 아버지! 오늘은 봄입니다. 우리 같이 나가서 오늘을 즐깁시다' 이래야 효자지, '어머니, 아버지! 오늘은 봄인데 봄에는 낮잠 자는 것이 적당합니다.'라고 해놓고, 떡 낮잠 자게 해 놓고 자기들 끼리끼리 가서 노래 부르고 춤추고 하는 녀석들이 효자예요? 불효자일 뿐만 아니라 때려죽일 자식입니다. 그렇지요? (57-159)

타락이 뭐냐? 하나님을 중심삼아 하나님 편에 있어서는 사춘기(死春期)로 시작한 것입니다. 죽을 사(死)자 사춘기입니다. 사춘기(死春期)역사가 시작된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고자 하는 자에게는 봄이 오는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이런 놀음을 지금까지 해 나오는 것이 기독교 역사입니다. (57-159)

오늘날 틴에이저(teenager;십대)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그게 뭐예요? 이건 뭐 플러스(+)나 마이너스(-)나 어디든지…. 눈이 뒤집어져 가지고 막 돌아다니려고 한다는 겁니다. 그럼으로 사회에 파탄을 가져오고 자기 자체에 파탄을 가져온다는 겁니다. 또, 사춘기에는 변하는 때이기 때문에 누가 한 마디만 해도 '에이!' 해 가지고…. 전부 다 그렇다는 겁니다. 막 변할 때이기 때문에 막 돌아다니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질서를 따라 상황을 바라보면서 가야 된다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이것을 정리해야 됩니다. 꼼짝도 안 하는 걸 다 정리해야 됩니다. 자, 선악 가운데 악은 뭐냐? 파괴하기 위한 것입니다. 아무런 보호작용이 성립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118-197)

사춘기 때는 여자나 남자가 위험한 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춘기에 자리를 잘못 선택하면 일생을 망칠 수 있다는 것이요, 잘 선택하면 일생을 흥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문제가 벌어지는 겁니다. (124-120. 50-270)

오늘날 청소년들이 부모를 반대하고 가정을 파탄시키는 것은, 이 법도에 있어서 질서를 파탄시키기 때문에 악입니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가정이 파괴되고, 사회가 파괴되고, 국가가 파괴되고, 인간이 파괴되니 이것은 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춘기 때는 힘을 내 가지고 영화에 나오는 그 스릴 있는 장면을 실천해보고 싶기도 하다는 겁니다. 그게 무엇이 나쁘냐고 하는 겁니다.
하지만 그러한 방종이 벌어져 환경을 파탄시켜버리는 놀음이 벌어지기 때문에 제재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여러분들의 지성이 다 밝아져 사회의 체험과 환경적인 모든 것을 컨트롤할 수 있는 그 때에는 되어도 지금은 안 된다는 겁니다. (117-184)


---1070---

여러분은 지금 한창 피어나려고 하는 꽃봉오리가 좋아요, 활짝 핀 꽃이 좋아요? 선생님은 활짝 핀 꽃이 좋은데? 여러분이 바로 피어나려고 하는 사람들입니까? 피어나는데 있어서는 네 마음대로 활짝 피라는 것입니다. 남의 힘에 의해 피지 말고 네 마음대로 그리하여 활짝 피라는 겁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여러분들이 자연스럽게 자라 자연스럽게 사춘기를 지나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활짝 피어서 사랑하고 싶은 남편을 맞아야 된다는 겁니다. 피지도 못한 채 찌그러져서는 안 됩니다. 잎이 떨어지고 가루가 떨어져 피는 꽃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자들도 활짝 피어야 됩니다. (47-88)

아직 피지도 않은 봉오리인데 편지하고 연애질이나 하는 그런 못된 녀석들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활짝 피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게 될 때, '야! 순수히 본성적으로 피었구나. 향기를 맡아보니 숫것이구나'라고 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희망이 많다는 겁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숫것을 원하시겠어요, 찌그러진 것을 원하시겠어요? 그럼 여러분은 어때요? 숫것을 원해요, 찌그러진 것을 원해요? 타락한 여러분도 숫것을 원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더 원할 게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순정을 가지고 활짝 피어서 오늘날 타락한 세계에서 슬픔의 고비에 걸리지 말고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가치 있는 여러분이 되어 주기를 바라는 겁니다. (47-88)

  ② 나는 하늘의 자녀다

󰡒저희들은 아버지의 아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진정으로 아버지의 혈통을 이어받은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의 심정이 저희의 심정과 인연 맺고 아버지의 심장의 동맥이 저희의 심장의 동맥과 인연되는 일체적인 관계를 이루어, 아버지가 가시는 길이 저희의 길이요, 아버지의 사정이 저희의 사정이요, 아버지의 뜻이 저희의 뜻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27-270)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20대에 가까운 청소년으로서 더럽혀지지 않고 물들지 않은 거룩한 순정을 고이 꽁꽁 싸 가지고 어디에 갖다 놓을 것이냐? 하늘이 제일 기뻐할 수 있는 그 제단 앞에 놓아 가지고 하나님이 기뻐하고, 그 다음에는 자기와 같은 순정을 가진 사나이와 여자가 만나서 하나님이 같이 묶어질 수 있는 거룩한 터전이 신랑 신부가 만나는 자리인데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그런 가치를 모르고 있습니다. (64-84)


---1071---

자기의 몸은 귀한 것입니다. 이것을 더럽히지 말고 효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은 그 몸을 가지고 책임성 있게 사탄의 사망권으로부터 탈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은 인간으로서의 최고의 목적이며 또 그것이 기준인 것입니다. 창조원리로서 말하면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15-202)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순종(純種)이 못 되었으니까 순종이 되기 위해서는 순종(順從)해야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말을 안 들으면 패서라도 순종하는 법도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입니다. 그래서 통일교는 모든 종교의 중심이 되는 종교라는 것입니다. (33-332)

이제 순종의 씨를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씨를 쪼개면 그 씨의 중심은 배젖입니다. 배젖의 중심은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골통을 쪼개보면 그 중심이 뭐예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겁니다. 씨의 중심, 즉 뿌리가 될 수 있는 동기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나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 내 비록 보기에는 초라하고 육신은 5, 6척도 못 되지만, 이 사나이의 붉은 마음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넘친다.' 그래 봤어요? (33-332)

지상이 귀중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은 몸을 정히 보전(保全)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순종하는 깨끗한 마음, 순종하는 깨끗한 몸이 어버이에 대해 참된 효도가 되는 것입니다. (15-201)

첫사랑의 마음을 갖고 하나님 앞에 가야 되는 것입니다. (129-149)

저나라에서 첫사랑과 더불어 간 사람이 하늘나라에서는 최고의 자리에 간다 하는 걸 알아야 됩니다. (129-135)

이 땅에 사는 사람으로서 천국갈 수 있는 사람은 첫사랑을 중심삼고 살고, 첫사랑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첫사랑 때문에 죽고 살겠다 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첫사랑을 잘해야 됩니다. (128-85)


 11) 성별의식의 생활화

  ① 성염

※ 성염은 1960년 3월 16일(음력) 참부모님의 성혼하신 날을 기점으로 처음 성염을 만들어 사용함. 이로부터 모든 가정은 성염을 사용하여 생활과 환경을 성별하는 생활을 했다.

성염(聖鹽)은 누룩과 같습니다. 물건을 샀을 때에 성별(聖別)하고, 바깥에서 생활을 하다가 집으로 들어올 때에도 울타리에서(대문에서) 성별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9-78)


---1072---

성별한 것은 사탄세계에 내어주지 말아야 합니다. 단 불가피할 때에는 왼손으로 주어야 합니다. (9-78)

성별할 때에는 '성부․성자․성신과 참부모와 나의 이름으로 성별하나이다!'라고 하면서 성염을 십자(北南 東西의 順)로 뿌린다. (9-78)

성별한 부동산 등을 처분해야 할 때에는 단계를 통해 허락을 받고 처분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9-78)

우리 식구들이 성별해 들어가는 땅으로 모든 땅을 점점 점령해 나가야 합니다. (9-78)

여러분은 어디 가서 앉을 때 소금을 뿌리고 앉아요? 속으로 '후 후 후' 하고 세 번 부는 조건을 세우면서 앉으라는 것입니다. 사탄세계에 미남자가 있으면, '아이구, 미남자하고 한번 살아보자' 그런 생각 하지 말고 미남자가 손을 한 번 쥐었더라도 '후' 하고 불어버려야 됩니다. 소금을 뿌려야 된다는 겁니다. 속으로 '후후후' 하고 세 번 불라는 것입니다. 소금을 세 번 뿌리라는 겁니다. (170-233)

우리 식구들은 모든 것을 성별해야 됩니다. 성별하는데 성염을 뿌려 가지고 성별하는 것은 별 문제가 없지만, 밥을 먹고 국수를 먹고 물을 먹고, 그럴 때에 언제 성염을 가지고 그렇게 하겠어요? 그러니 앞으로는 어떻게 하느냐? 예수님이 부활한 후에 '훅-' 불면서 성령을 받으라고 했던 것과 같습니다. 아담을 지어 놓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실체의 새생명을 탄생시킨 것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는 여러분도 생명의 실체를 대신하여 물을 먹든가 밥을 먹든가 할 때에는 불고 먹어야 된다는 겁니다.
한국 풍습이 묘하다는 겁니다. 물 같은 것 먹어도 불어서 먹습니다. 또 불고 앉습니다. 그것은 하늘이 이 민족 앞에 실천할 수 있는 자연적인 양심을 움직여 가지고 우리에게 하나의 풍습으로 남아지게 한 것입니다. 이것이 다 우연히 된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으로 언제나 그런 성별을 해야 됩니다. 우리는 3시대, 소생․장성․완성, 6천 년의 기나긴 시대를 3시대로 거쳐오면서 더럽힌 것을 성별하기 위해 세 번 불고 먹어야 된다는 겁니다. 어디를 가나, 여러분이 소변을 보더라도 한결같이 해야 된다는 겁니다. 어디를 가든지 다 해야 된다는 겁니다. (150-222)

  ② 성초

   ㉮ 심정초
※ 심정초는 1961년 1월 5일에 만드시어 축복가정에게 전수. 심정초는 참부모님을 상징하므로 하나님의 심정을 위로하고 뜻 성취를 다짐하는 기도를 할 때 사용한다.


---1073---

󰡒아담은 타락 이후 참된 생명과 사랑(심정)의 원천을 잃어버렸습니다. 인간은 당신을 심정적으로 계속 실망시켜 왔습니다. 이러한 실패로 말미암아 당신은 타락 인간을 복귀하기 위해 몸부림쳐야만 했습니다. 당신의 노고를 마음속에 간직하면서 우리들 각자는 복귀된 아담의 위치에 올라가기 위한 일념으로 살아왔습니다. 만물을 복귀하기 위한 우리의 결심을 더욱 굳히게 하옵소서.
이 심정초가 탈 때마다 이 불꽃이 당신의 심정을 위로하게 하시고,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한 우리의 헌신이 당신에게 기억되게 하옵소서. 우리들이 이 심정초에 불을 붙이고 기도할 때마다 복귀역사에 있어서 우리 자신들의 결심을 더욱더 강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 해산초
※ 해산초는 예진님의 탄생시로부터 시작. 36가정이 결혼 생활을 시작한 이후 참부모님이 각 가정으로 전수해 주셨다.

󰡒저는 이제 참부모님께서 36가정들에게 전수해 주신 전통적인 해산초를 각 가정에 다시금 전수해 주려고 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해산초를 본래 참부모님께서 가지셨던 해산초의 상징으로 사용했사오니, 이 가정들에게도 같은 내용을 지닐 수 있는 해산초를 갖게 하시옵소서. 당신의 이름과 영광을 가지고 기도하오니, 자녀들을 해산하는 동안 이 해산초가 타게 될 때 영적인 분위기를 성스럽게 해주시고, 사탄이 일절 접근하지 못하도록 해주시기를 기도하나이다.󰡓

   ㉰ 애천초
※ 애천초는 1984년 5월 16일에 참부모님이 만드셨고, 5월 20일에 축복가정에게 전수해 주셨다. 애천초는 인류에 대한 사랑의 표시로 심정초와는 달리 한 쌍으로 되어 있다.

초는 자체가 희생하여 빛을 발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중심으로 인류가 하나되기 위해서는 희생해야 된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불이 붙는 것은 초도 아니요, 심지도 아닙니다. 초와 심지가 합해서 불을 붙여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주체와 대상인 부부가 서로 희생할 때 빛을 발한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거기에는 사탄이 존재하지 못합니다. (132-104)

애천초를 중심삼고 통일심정권에 완전히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정리됩니다. (132-107)

󰡒사랑하는 하나님! 애천일을 정한 이 승리의 표적을 꺼지지 않는 촛불로써 상징하였사오니, 여기에 부모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이 함께 하시옵고, 이 초의 빛이 비치는 곳마다 그 자리의 불과 더불어 하나된 그 가정에는 평화가 깃들고 당신의 사랑의 주관권이 연결되어서 어두운 세력을 막아내고, 모든 불의의 조건들을 막아내고, 불화의 근원을 방지할 수 있는 승리의 거룩한 초가 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것을 사랑하고, 특별히 기도하는 곳곳마다 당신이 언제나 같이 하시고 부모님이 같이 하시고 온 영계와 육계가 사랑의 통치권을 가지고 임하시어 보호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리옵니다.


---1074---

이제부터 시작되는 이 애천초 위에 당신의 영광과 더불어 역사에 길이길이 연결될 수 있게끔, 그리하여 천국이 완성될 때까지 계속할 수 있게끔 축복하오니 받아 주시옵소서. 부모님의 이름으로써 기도하며 선포하였나이다, 아멘.󰡓 (132-105)

   ㉱ 통일초
※ 통일초는 1995년 9월 5일부터 1996년 1월 2일까지 참어머님께서 참자녀님과 함께 밤 12시에 통일초를 켜 놓고 120일 동안 정성드린 것이 기원이 된다.

이번에 아버님께서 9월 5일부터 미국 순회강연을 하시고, 나도 일본에서 강연을 했습니다. 나는 집을 나올 때 모일 수 있는 아이들을 모두 모아 놓고 이렇게 의논했습니다. '아버님이 다시 인류를 끌어안기 위해 아메리카를 상대로 제일선에 나가셔서 말씀을 주시려고 하신다. 그러니 우리들도 함께 정성을 드리자'고 했습니다. 모두 한 마디 이의도 없이 다 그러자고 했습니다. 아이들은 각자 따로 떨어져서 공부하고 있지만 어떤 환경에 처해 있더라도 밤 12시가 되면 촛불을 켜 놓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내년 1월 2일까지 120일간 정성을 드리도록 했습니다. (참어머님 말씀)

내가 오늘 가지고 온 초가 있습니다. 이것을 전수합니다. 이 초를 전수받고 여러분은 참부모님 앞에 자랑스러운 아들딸로서, 이 지상에서 열매를 맺는 자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럼으로써 여러분과 함께 천국에 이르기를 원합니다. 오늘부터 정성을 드리는 기대를 참부모님 가정의 자녀들과 함께 하는 것으로 확대하시고 여러분이 어려워도 그 대열에 함께 동참할 수 있는 같은 심정으로 책임을 다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초는 하나이지만 이것은 3개의 초가 하나로 된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참자녀님들의 사랑이 들어 있습니다. (패밀리 1995.11)

󰡒이 통일초를 연결하고 난 후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타는 심정으로 당신 앞에 충성과 사랑의 마음을 가지게 하시고, 전인류를 불태울 때까지 사랑의 마음 변치 않기를 거듭 다짐하고 약속하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인생을 살아가는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아버님, 격려하고 지켜 주시옵소서. 생명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하는 훌륭한 자들이 될 수 있도록 다시 한번 축복해 주시옵소서.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1075---

 12) 축복가정의 일상 생활 의례

  ① 경배식

초하루는 새벽 다섯 시에 각 가정에서 부부가 함께 본부를 향해 경배해야 합니다. 기쁜 분위기 속에서 해야 합니다. 일요일에도 새벽 다섯 시에 해야 합니다. 그때에는 일주일 동안의 모든 생활을 보고해야 합니다. 일요일이 어서 돌아오기를 바라는 기쁨의 날이 되어야 합니다. (13-104)

경배식은 일요일 아침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래는 매일 해야 하는 겁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본부를 향해 경배식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공식적인 예식입니다. 그러나 매일 그렇게 하다보면 부작용이 있기에 부작용을 피하려니 그 조건을 걸어 놓고 주일과 초하루 새벽에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원래는 매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새벽경배시간만이라도 하늘과 직선상에 서야 합니다. 그 시간은 참으로 심각한 자리입니다. 그 시간에 1초만 늦어도 회개해야 합니다. 또 그 시간엔 마치 성만찬 때 하는 것같이 성물로 사탕 한 알씩이라도 준비했다가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새벽경배, 정성, 예배시간을 엄수하지 못하면서 자기의 아들딸이 잘되기를 바라면 안 됩니다. 선생님을 중심삼고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리고 후손을 세우려면 부모가 잘해야 합니다. (21-86)

  ② 가정예배

부모가 뜻생활에 모범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가정에서의 기도생활이라든가, 가정예배라든가 어떤 면으로든 지지 않는 신앙생활을 자녀들에게 보여야 할 것입니다. 또 경배시간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인식시켜 주어야 하겠습니다. 그 시간에는 경배식만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뜻을 중심삼고 부모로서 자녀들을 교육시켜야 합니다. (31-266)

자기 일족을 중심삼고 가정예배를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환경을 넓혀 나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공식집회 참석 여부가 문제가 될 것이요, 그 다음에는 공식 활동에서의 책임 수행 여부가 문제가 될 것이요, 그 다음엔 가정 생활에서 자녀들 앞에 부모로서 모범이 되었느냐 못 되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될 것입니다. (236-72)

  ③ 훈독회

훈독회는 모든 축복가정의 부처끼리라도 해야 됩니다. 매일 아침에 한 시간씩. 만일 아침에 못하면 저녁에 자기 전에 12시에라도, 1시에라도 해야 합니다. 나는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남미 순회할 때에도 12시가 넘어서 고단하더라도 그것을 실천한 겁니다. 하루라도 빠질 수 없습니다. 알겠어요?


---1076---

《축복가정과 이상천국》을 읽어야 합니다. 이 책은 축복가정의 내용을 전부 다 가르쳐 주고, 이상천국의 내용을 전부 다 가르쳐 준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것을 두고 싸워 나온 승리의 기반을, 하이웨이를 닦아 놨으니, 여기에 고속도로를 세워가지고 여러분이 전부 다 자동차가 되고, 휘발유가 되고… .자동차로 이것을 최고의 스피드로 달려야 되겠어요.
시간만 나면 훈독회를 해야 합니다. 혼자라도, 화장실에 있어도 훈독회, 하루에 몇 시간이라도 어디를 읽었는지 기록해 두고, 주머니에 말씀책을 넣어두고 항상 훈독회를 해야 합니다.
훈독이란 말을 다시 써봐요. 말씀 언(言)변에 이렇게 해 놓고는 이게 뭐야? 강(川)이야. 말씀이 강 옆에 가면 뭐요? 하나님 말씀이 곧 내를 만난겁니다. 이것을 보면 소생․장성․완성입니다. 독(讀)자는 말씀 언(言)변에 팔 매(賣)자입니다. 팔아야 됩니다. 갖고 있으면 큰일납니다. 팔지 않으면 주라는 것입니다. 물건을 쌓아 놓고 썩히면 벌받는다는 겁니다.
《뜻길》을 읽고 《원리》를 읽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축복과 이상가정》이라든가, 지금까지 선생님이 하신 말씀 가운데 중요한 말씀은 사탄세계와 대치해 가지고 싸워 나왔던 승리의 기록이기에 모두 다 읽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우리 통일가에 있어서는, 부모님과 하나되기 위해서는 부모님의 역사적 기념인 과거, 현재에 싸워오는 모든 내용이 전부 다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그 내용과 하나될 수 있으면서 여기에 있는 이 말씀과 더불어 상대적인 기분을 닦아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를 중심삼고, 가정을 중심삼고, 자기 일족 7대까지, 그리고 이것을 횡적으로는 160가정, 180가정을 중심삼고 완전히 하나되어서 말씀을 정착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 말씀은 선생님이 한 게 아닙니다. 선생님이 말한 것이 아니라 하늘이 선생님을 통해 하신 말씀들입니다. 그 말씀은 여러분이 어디서 언제 듣더라도 마음이 동(動)하기 시작합니다. 마음이 감동받으면 몸뚱이에 일대 혁명적 변화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 힘이 있습니다. (1998.2.1. 본부교회)

모임이 있을 때에는 공부해야 합니다. 밤이나 낮이나 시간만 있으면 공부해야 합니다. 몇백 번, 몇천 번 읽어 가지고 내것이 될 때까지 내가 그 상대적 실체권을 가질 때까지…. 이제부터 그런 놀음을 하는 겁니다.
통일교인들은 앉아 있으면 병납니다. 병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열심히 읽고 시험치고 노력하는 겁니다. (1997.10.31. 이스트가든)

훈독회는 내가 천신만고 일생에 쌓은 모든 보물함을 민족 앞에 풀어주는 겁니다. 누구에게나 전부 다. 번역도 하지 말라고 그랬습니다. 번역 못합니다. 내 민족 앞에 통고할 때까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아시겠어요? (290-58)


---1077---

  ④ 가정맹세

인간은 본래 맹세한 내용(가정맹세문)의 인연을 갖고 태어났으므로 이 맹세 안에서 살고 죽어야 합니다. 아무런 가책 없이 이 맹세문을 읽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11-164)

앞으로 여러분은 자기 가정에서 일요일에는 전부 다 경배식을 해야 됩니다. 이게 뭐냐 하면, 축복받은 사람들의 선언식입니다. 이 가정은 사탄이 침범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가정맹세를 외우는 겁니다. 가정맹세, 그건 뭐냐 하면 사탄세계와 관련이 없다는 선포입니다. 일주일 동안에 별의별 놀음을 다 한 전부를 청산지어줄 수 있는 하나의 선포식입니다. 그러니 빠지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11-164)


 13) 축복가정의 제사

  ① 조상숭배법은 본래 하늘법

옛날 충신들 가정에서는 좋은 것이 생기면 먼저 나랏님 앞에 드렸습니다. 이것이 한국의 충신들의 생활법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의 예법은 그 어떤 나라에도 없는 천국의 중심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유교에서는 공자의 가르침을 따르는데, 그 공자의 가르침을 중심한 예법을 보면 천법에 가까운 것이 많습니다. 앞으로 여러분들 후손들이 여러 분들을 대해 제사 지내게 해야 합니다. 아직까지는 생활규범이나 장사지내는 절차 등이 우리 원리를 중심삼고 정해지지 않았지만 앞으로 그 예법이 나오게 되면 그때부터는 아무렇게나 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무슨 내용이든 하나님이 같이해 주신다는 믿음을 갖고 자신의 환경을 극복하고 뿌리를 깊이 박아 어떤 풍상에도 자랄 수 있는 생명력을 지녀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께서 법을 세우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안 될 때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31-292)

고향에 가서 뭘 할 거예요? 우선 무덤부터 정성들여 가꿔야 됩니다. 고향 가서 종손 책임을 못 했으면, 한국 풍습이 조상들을 잘 모시는 것이니까 비석도 해 세우고, 우리 할아버지가 이 동산을 사랑하셨는데, 내가 와서 이 황폐된 땅 위에 나무를 심고, 우리 할머니가 좋아하던 이상동산을 만들고, 동네를 깨끗이 단장하고, 나로 말미암아 고향산천이 찬양할 수 있는 이런 모습을 만들어 놓겠다 할 때, 기분이 어때요? 그렇게 해 놓으면 고향에서 왕초가 되겠나요, 안 되겠나요? 왕초란 말이 나쁜 말이지만 지금 이 뜻은 좋은 의미의 선한 일에 왕이 되고 대장이 되는 것입니다. (1991.8.29. 국제연수원)

여러분은 전부 선조들의 얼굴을 대신 쓰고 나온 역사적인 부활체입니다. 그 역사가 얼마나 되느냐? 몇십만 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긴 역사과정을 결국은 나 하나 만들기 위해 수고했다는 것입니다. 김씨면 김씨라는 나 하나를 탄생시키기 위해서 수많은 선조들이 왔다 갔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역사적인 결실체입니다.


---1078---

조상들 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됩니다. 조상들이 나라를 사랑한 것보다 사랑해야 됩니다. 사랑은 100퍼센트를 주게 되면 120퍼센트가 돌아오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하면 할수록 없어지지 않습니다. 역사를 움직여 나온 것입니다. (1988.7.22. 한남동공관)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셨으면 성묘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덤에 묻혔다고 하고 성묘를 해야 됩니다. 그리고 내 일대에 할머니 할아버지 모시지 못한 한을 오늘로서 속죄하라는 것입니다. (220-268)

조상들이 죽은 날이 되면 전부 다 오는 겁니다. 그리고 조상을 위해 제사상을 차려 놓고 제사합니다. 선생님의 사진을 모신 그 방에서 하게 되면 절을 해도 죄가 아닙니다. 떡을 하고 제사 지낸다고 해서 죄가 되는 것 아닙니다. (212-64)

통일교회는 조상들을 섬기는 것을 허락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이제 그 전통을 이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앞으로 참부모를 중심삼고 반대의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세상 나라, 세상 전통이 아닙니다. 하늘 부모, 하늘 나라, 하늘 조상을 섬기는데 있어서 그 계대를 이은 주류사상적인 전통적 혈족들을 천년만년 모실 수 있는 왕토가 되는 겁니다. 왕을 모시는 영원한 태평성대를 주가할 수 있는 그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그나라에서 살다가 가야만 여러분 어머니 아버지, 일가, 일족이 천국으로 직행하는 것입니다. (220-157)

선민권과 혈통을 중요시해야 됩니다. 선민권은 장자권입니다. 한국은 장자의 나라입니다. 한국이 족보를 사랑하는 민족이 된 것도 다 혈통을 받아가기 위해 그런 것입니다. 조상을 숭배하고 조상들께 제사를 지내는 것이 나쁜 게 아닙니다. 앞으로 유교사상 이상 부모를 존경할 때가 오는 것입니다. (226-250)

우리 통일교회는 제사를 지내도 괜찮아요? 해방이로구만! 이제부터는 제사를 지내도 괜찮습니다. 지금까지는 제사 지내는 걸 하늘이 원하지 않았습니다. 조상을 숭배하는 한국의 법이 하늘의 법입니다. 세계에서 독특한 민족입니다. 한국만이 그런 것입니다. (240-7)

제사 드릴 시간은 장손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벽 한 시에 하던 것을 아침 다섯 시에도 할 수 있습니다. 아침 다섯 시에 하려고 하던 것을 사정에 의해 아침 일곱 시에도 할 수 있고 낮에도 할 수 있는 겁니다. 누가 그것을 결정하느냐 하면 돌아간 할아버지, 조상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장손이 결정하는 겁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장손이 결정한 시간에 와야 제삿상을 대할 수 있는 것이지, 그게 싫으면 못 대하는 겁니다. 땅이 중심입니다.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게 둘이 하나되어야 됩니다. (231-125)


---1079---

제사할 때에는 삼촌, 사촌, 팔촌, 증조 할아버지가 있더라도 장손을 먼저 세우는 겁니다. 한국의 전통적 문화배경에 조상을 존중시하는데 있어서 장손을 내세운 것을 보게 될 때, 이 민족은 장자권을 존중시하는 민족이었다는 겁니다. (197-275)

부모 앞에 효도했으면 죽은 다음에 제사 안 드려도 괜찮습니다. 사진 놓고 산 어머니 아버지와 같이 그날을 기억하면 되는 겁니다. 영계에 무슨 경계선이 있어요? 이제는 묘지까지 안 가고 집안에 모여 산 부모와 같이 모시고 잔치하고 축하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묘지에 안 가더라도 축하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 아버지의 무덤은 자기가 사는 동산에 만들어야 됩니다. 서양에서는 교회당에다 묻지요? 그 어머니 아버지 무덤 앞에 부끄러운 행동을 하면 안 됩니다. 돌아가신 어머니 아버지가 충고하는 겁니다. 사랑의 정의에 어긋나는 것이 있으면 직접 조상들이 쫓아와서 책하는 것입니다. (206-231)

지금까지 기독교에서 제사를 못 지내게 한 것도 일리가 있는 겁니다. 제사는 하나님과 온 인류의 참부모가 받아야 됩니다. 윗대의 조상들이 하늘에서 먼저 섬김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타락함으로 그것을 지금까지는 금지해 나왔지만, 이제 복귀시대에 있어서 축복받고 그랬으니, 앞으로 조상들을 모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223-208)


 14) 축복가정의 평생의례

  ① 출산

사랑하는 아들과 사랑하는 딸이라는 것은 지극히 귀한 것입니다. 하늘 땅의 지극히 귀한 보물입니다. 그건 돈 주고도 못 사고 세상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보물입니다. 하나님에게도 그렇고, 어머니 아버지에게도 그렇습니다. 아들딸을 바꿀 수 있어요? 아들딸은 하나님이 주신 귀한 선물입니다. (165-100)

아기를 보면 신비롭습니다. 그런 거 생각하면 신비롭다는 겁니다. '야! 이 녀석이 어떻게 나왔나?' 하고 말입니다. 얼마나 신비로운가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들이 그렇게 사람을 만든다면 어떻게 돼요? 그건 몇천 년 걸려도 못 만든다는 겁니다. (118-289)

여러분들이 태어날 때, 어머니 복중에서 나올 때 얼마나 힘들었다 하는 걸 기억하고 있어요? 하나님은 왜 아기를 낳을 때 이렇게 낳게 했어요? 그저 쉽게, 말하듯 쉽게, 맛있는 음식을 먹듯 쉽게, 향수 냄새가 나듯 쉽게, 뭐 그저 좋아서 입을 벌리고 '하하하' 하고 애기를 낳게 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왜 그렇게 안 낳고 땀을 흘리며 죽는다 산다 하는 경계에서 낳게 했어요? 왜 그렇게 했어요, 어째서? 빛나는 사랑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107-43)


---1080---

그 죽을 경지에서 눈알이 튀어나오고, 모든 것이 다 깨지고 천지에 이거 야단났구나 하는 경지에서 아기가 '으앙' 하고 울며 나오면 눈이 번쩍 뜨이는 겁니다. 아픈 것은 순식간에 없어지는 겁니다. 어렵게 낳았기 때문에 그 어려운 것보다도 더 사랑하는 겁니다. '아, 아이고'이러지요. 그게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107-43)

딸은 낳은 지 7일 째 되는 날에 봉헌하고, 아들은 8일 째 되는 날에 봉헌식을 행합니다. (11-82)

  ② 축복

여러분은 참부모와 완전한 인연을 맺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인연을 맺어 주기 위한 것이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세계 369)

축복이란 하나님과 함께 하나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되면 전체를 얻게 됩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 주체가 가지고 있는 전체를 받는 것이 됩니다. (통일세계 1982.11)

축복의 자리는 어떤 자리냐? 축복의 자리는 세계에서 제일 좋은 자리입니다. 그 축복의 자리는 누구와 관계맺어야 되느냐? 여러분은 자기 자체로 완성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님의 사랑에 의해 완성되는 것입니다. 자식이 부모의 품에서 태어나면 잘났든지 못났든지 그 부모의 형태를 닮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통일교회에서는 참부모의 도리를 가르쳐 줍니다. 그것이 여러분에게는 복 중의 복입니다. (27-292)

축복을 해준다는 것은 하늘의 전권을 옮겨 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7-86)

축복은 천지에서 가장 귀한 것입니다. 동시에 지극히 두려운 것입니다. 만일 부부가 서로 딴 생각을 한다면 그것은 상대를 유린하는 것이 됩니다. (35-301)

여러분들로부터 먼저 선한 조상, 땅, 나라가 생기는 것입니다. 고로 축복받은 사람은 눈만 뜨면 천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축복은 남에게 복을 나눠주기 위한 것입니다. 타락으로 더럽혀진 혈통을 계승한 것을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을 하지 않으면 원죄를 벗을 수 없고, 원죄를 벗지 않으면 참자녀로서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단계에 올라갈 수 없습니다.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타락으로 인하여 생긴 원죄를 벗는 혈통 전환, 즉 혈육을 교환하는 식이 성주식(聖酒式)입니다. (35-301)

성주(聖酒)에는 사탄의 참소가 없는 만물의 요소가 모두 들어 있습니다. 그 성주를 받고, 참부모와 하나가 된 자기 자신을 더럽히는 행위를 하면 사탄보다도 더 두려운 입장에 서게 됩니다. 사탄은 장성기 완성권을 더럽히고 유린하였는데, 축복받은 자가 잘못되면 완성기 완성권에서 하나님의 실체를 범한 죄가 남게 되므로 영원히 용서받지 못합니다. 이것은 실로 두려운 일입니다. (29-308)


---1081---

결혼식은 바로 사랑의 전수식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부모가 살듯이 여러분도 부모의 사랑을 하나님의 사랑 대신 받아 가지고 이렇게 살라!' 하는 사랑의 전수식이 결혼식입니다. (31-279)

축복받은 사람은 영계에 가서도 선생님이 영원히 책임을 집니다. 선생님이 주관하고 지도합니다. 축복이란 이와 같이 선생님과 영원한 인연을 맺는 것이기도 합니다.
축복을 받고 잘못되면 반드시 탕감이 있습니다. 틀림없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용서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는 무서운 곳입니다.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새로운 축복, 새로운 가정을 위한 탕감조건을 여러분들이 세울 수 있게 해주고, 여러분의 무거운 짐을 책임지려고 해 왔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책임을 수행하 였음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이 천법을 범하였다고 한다면, 그 죄는 몇십 대의 자손에까지 걸리는 무서운 것입니다.
축복의 과정을 통과한 사람과 이미 영계로 간 많은 사람과의 가치는 어떻게 다르겠습니까? 신앙의 기준으로 볼 때 그것은 상대가 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천적(天的)인 은혜를 저버리게 될 경우에는 사탄이 여러분을 참소하게 됩니다. 천사장은 장성 기준에서 사탄이 되었지만, 여러분은 완성 기준에서 타락했기 때문에 사탄이 심판하게 됩니다.

  ③ 승화식

오늘날 인간이 죽어간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몰랐던 겁니다. 그것은 슬픔이 아닙니다. 차원이 낮은 세계에서 차원높은 세계로 사랑의 다리를 통해 이동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통일교회는 죽음을 승화(昇華)라고 합니다. 차원 높이 승화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그건 사랑에서만이 가능합니다. (137-309)

타락하지 않았으면 사람이 죽는 것이 행복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죽음을 슬픔으로 맞는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승화식이라고 합니다. (199-294)

통일교회에서는 죽어서 장사하는 것을 승화식이라 합니다. 죽은 사람을 붙들고 우는 것을 보면 죽은 영이 탄식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무지해 가지고 내 갈 길을 밧줄로 당겨서 못가게 만들어 놓는다.' 하는 겁니다. 그런 것을 알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는 승화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거룩히 비상천(飛翔天)한다는 겁니다. 사랑의 힘을 가지고 밀어 주어야 됩니다. 잡아당기지 말고 밀어 주어야 됩니다. (199-101)


---1082---

승화식이란 말은 흥진군으로부터 나왔지요? 애승일이라는 것의 그 애승(愛勝)이 뭐냐? 사망을 이기는 것입니다. 남들 같으면 어머니도 몸부림을 치고 배밀이하며 통곡할 수 있는 일이지만, 어머니가 눈물 흘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3일 이내에 이 식을 해줘야 되는 것입니다. 사망을 이겼노라고 선포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는 승화식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사망을 넘어 기쁨을 향해 가는 겁니다. 승화식을 거쳐 가는 사람들은 영계의 모든 골짜기를 휘익 넘어가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지 못한 녀석들은 가 가지고 중간에 머물지만…. 그걸 알아야 됩니다. 승화식이란 흥진군으로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212-64)

흥진군이 감으로 이 사망의 담을, 죽음의 담을 헐어 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승화식입니다. 죽음이 낙담이나 낙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도약을 하는 겁니다. 승화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가져서는 안 되는 겁니다. 죽음은 이런 자연순환 법도에 의해 오는 겁니다. 더 좋은 세계로 옮겨 주기 위한 절차인 것입니다. (196-255)

내 아들 흥진이가 돌아갔는데도 눈물 안 흘렸습니다. 영계에 가는 것이 슬픈 게 아닙니다. 해방의 나팔소리와 함께 천국 깃발을 들고, 보무(步武)도 당당하게 백전백승해 가지고 천하의 금의환향하는 깃발을 들고 민족과 인류의 환성을 받으며 당당하게 들어갈 수 있는 환고향(還故鄕) 길입니다. 슬픈 것이 아닙니다. 통일교회에서는 울지 않습니다. 그걸 뭐라고 그래요? 승화식이라고 합니다. (227-215)

우리 장모되는 분도 돌아갔지만 통일교회는 장례식이라고 안합니다. 뭐라 그러나요? 승화식. 승화되는 겁니다. 횡적인 세상에서 살다가 종적(縱的)인 세계의 활동무대로, 무한한 세계로 가는 겁니다. 사탄세계에서는 울고불고하면 악령들이 오고 그러지만 그런 자리는 악령이 찾아오지 못합니다. (195-154)

그래, 통일교회에서 장사를 뭐라고 그러나요? 승화식이 뭐예요? 변화해서 한 단계 올라간다 그겁니다. 이번에 우리 할머니 돌아가실 때에도 나 울지 않았습니다. 그의 갈 길을 가려 주기에 바빴지 울지 않았습니다. 효자라면 그 이상의 효자가 어디 있어요? (196-9)
통일교회는 죽은 후에 장사(葬事)도 그렇게 안 합니다. 승화식(昇華式)입니다. 어디에 갈 줄 알고 삽니다. 세상에 무서운 것이 어디 있어요? 천하에 무서운 것이 어디에 있어요? 죄악된 세계, 혼란된 세계에 있어서 자주적인 중심의 형태를 갖추어 가지고 천지의 도수를 맞추어서 하나님의 사랑권 내의 수직의 자리에 들어가게 됩니다. 왜 수직의 자리에 들어가느냐? 그 자리에는 그림자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완성입니다. 그 다음에 이게 돌게 되기 때문에 도는 환경 전체가 수직화 됩니다. 남자 중심삼고 여자가 하나되면 그 남자와 여자를 중심삼고 그 환경은 전부 다 행복권(幸福圈)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198-86)


---1083---

 15) 기념일을 맞는 마음자세

  ① 기념의식의 의의

공적인 날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렇게 전통을 세워 놓아야 후손들의 생활의 전통을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공적인 날은 하늘이 기뻐하는 가운데 모든 것을 서로 함께 나누고 즐겁게 지내야 합니다. 이 날은 가정을 기준으로 하여 하늘적인 법도를 세워나가는 날입니다.
인간이 타락한 이후 역사과정을 통한 이 인간세계에 나타난 기념일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탄이 좋아하는 날들로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나라가 독립한 날을 기념한다든가 세계적인 무슨 행사를 하는 모든 날들은 모두 타락권 내에서 치러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92-250)

원리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이 가장 바랄 수 있는 축하의 날, 희망의 날이 있다면 그날은 자기가 난 날도 아니요, 자기가 결혼한 날도 아니요, 자기 나라를 잃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라를 찾은, 혹은 국가가 독립한 날도 아니라는 겁니다. 여러분, 그걸 알아야 됩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제일 희망하는 날, 바라는 날이 있다면 하나님의 날, 부모의 날입니다. 그날들이 땅 위에 생겨나는 그것만이 우리의 전체 소원이 됐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날과 참부모의 날이 시작되게 되면 그다음엔 자녀의 날도, 만물의 날도 자연히 연결되는 것입니다. (92-250)

오늘날 이 땅 위에 사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날을 본 사람이 없고, 참부모의 날을 본 사람이 없고, 참자녀의 날을 본 사람이 없고, 참만물의 날도 보지 못했다는 겁니다. 일년 365일이라면 365일이 연결되는 모든 날들 중에 제일 중요한 날이 무슨 날이냐 하면, 지금 말하는 섭리사에 나타난 이런 날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그날은 날 중에 왕같은 날이요, 그런 해가 있다면 해 중에 왕같은 해라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92-250)

통일교회에서 우리가 기리고 있는 명절이나 기념일들은 사탄세계와 싸워 피나는 투쟁을 통해 성취한 섭리적인 승리의 날인 겁니다. 절대적인 승리의 성취를 기념하는 날인만큼, 하나님과 참부모님에 대한 고마움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날을 맞아야 합니다.


---1084---

  ② 의식을 위한 예복은 단정히

선생님은 최상의 높은 자리, 하늘 보좌에 가는데, 여러분들은 다 따라올 수 없는 것입니다. 축복이라는 귀한 것을 받았기 때문에 문은 열려 있지만 가려야 갈 수 있는 예복을 못 입었습니다. 잔칫집에 가는데 예복 입고 가야 할 것 아니예요? 신랑의 들러리로 가는데 촌 농부 바지 입고 가서 돼요? 거기에 맞는 단장을 하고 그 자리에 가 서야 그 환경의 환영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지, 그것에 반대되면 추방당하는 겁니다. '이놈의 자식아, 저리 비켜!'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누구나 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 그냥 올 수 없습니다. 반드시 예복을 갖추고 와야 합니다. (212-226)

제물은 그 사람의 생명을 대신하고, 그 사람의 이념을 대신합니다. 제물로 드릴 물건을 살 때에는 값을 깎지 말고 조금이라고 더 주어야 합니다. 예복감을 살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37-2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