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가정 (천성경 제4권)

훈독왕 | 20170626165542


제4권 참가정


제 1 장 창조 본연의 참가정

 1) 아담과 해와를 통한 하나님의 뜻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간단한 것 같지만 정작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고 하는 질문을 받게 되면 대답하기가 지극히 어려운 것입니다. 또 오늘날까지 많은 신앙자들이 '하나님이시여, 뜻을 이루소서!'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현재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잘 모르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고, 그 뜻을 위해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은, 하나의 모순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성약Ⅰ-298)

통일교회에서 보는 하나님의 뜻, 곧 레버런 문이 알고 있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이 이 우주를 만든 창조이상(創造理想), 즉 창조목적(創造目的)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만물을 창조할 때 반드시 목적을 가지고 창조하셨기 때문에, 그런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 목적의 중심이 누구냐? 아담과 해와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창조의 이상을 실현하는 것, 곧 아담과 해와를 중심삼은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이상실현(理想實現)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사위기대(四位基臺)를 이루는 것입니다. 사위기대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의 사랑권에서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도록 완전히 하나로 일치되어 이상적인 부부를 이루고, 그들이 자녀를 번식함으로써 이루어지는, 하나님을 중심한 가정의 기대를 말합니다. 이 사위기대가 조성되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아담과 해와가 부부의 사랑으로 일체가 되어, 하나님의 사랑권(圈)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됩니다. (성약Ⅰ-298)

인간조상을 통한 하나님의 이상은 무엇이었는가? 그 이상은 이상적인 남자와 이상적인 여자가 결합하여 이상적인 가정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이상적인 가정을 이루는 중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닙니다. 가정이란 결국 부모와 자녀, 부부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묶음인데, 그 묶음의 중심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아 부부가 결합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아 가정을 완성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성약Ⅰ-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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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창조목적이 무엇이냐? 아담과 해와를 지어 놓고 그냥 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를 만든 것은,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늙어 죽게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이들이 장성하여 서로 이성에 대한 상대적인 심정을 통하여 하나님을 중심한 인류의 참된 지상천국을 건설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한 사랑의 보금자리를 만들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남성인 아담은 하늘을 대표하고, 여성인 해와는 땅을 대표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둘이지만 그들이 횡적으로 하나되면, 하늘과 땅이 통일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두 사람이 통일하고 나면, 천주는 당연히 통일이 되는 것입니다. (성약Ⅰ-299)


 2) 하나님께서 절대로 필요로 하는 것

하나님께서 왜 피조세계를 창조하셨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피조세계를 통해서 기쁨을 누리시고자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절대자라 하지만 기쁨을 홀로 느낄 수는 없습니다. 기쁨은 상대가 있어야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시는 것은 지식도 아니요, 돈도 아니며, 권력도 아닙니다. 하나님 자신이 절대적이며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제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하나님이 만드신 것을 따라가거나 넘어설 수는 없습니다.
방대한 우주는 질서 속에 법도에 따라 운행되고 있습니다. 인간의 생각과 과학이 미칠 수 없는 방대한 우주를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또한 운행하시고 계신 것을 생각할 때, 하나님은 절대적인 과학자이시기도 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 가운데 하나님과 상대가 되는 힘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힘은 전지전능하며 절대적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영원불멸한 자존의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한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돈도 아니요, 지식도 아니요, 권력도 아닌 그 무엇을 바라고 계시겠느냐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이냐가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절대 필요로 하는 것은 오직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인 동시에 하나님께도 절대 필요한 것, 바로 참사랑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혼자서 사랑을 받으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자신이 사랑을 마음대로 할 수 있지 않겠느냐 하겠지만, 천만에요! 하나님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참사랑을 나눌 수 있는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성약Ⅰ-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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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절대적인 분이시라면 그 절대적인 분이 왜 인간을 지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돈 때문에 지은 것도 아니요, 지식 때문에 지은 것도 아니요, 권력 때문에 지은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기 때문에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은 아버지이고, 인간은 아들딸이라는 것이 하나의 축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 축이 만일 연결됐더라면, 인간과 하나님이 사랑으로 일체된 관계를 무엇이 작용해도 절대 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연의 사랑에다가 줄을 매고 그 사랑의 맛을 본 사람이 갈라질 것 같습니까?
벌은 봄에 꿀맛을 보게 됩니다. 꿀을 빨고 있는 벌의 꽁무니를 잡아당기면 그것이 빠지더라도 그 벌은 꿀에서 입을 떼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그 맛을 느낀다면 어떻겠습니까? 가다가도 되돌아와서 또다시 거기에 붙으려고 할 것입니다.
이 축의 사랑에 연결된 만유가 작용하는 기준이 되어 있으면, 인간의 가정은 개인적으로 완성된 남성과 여성이 하나되어서 사랑을 중심삼은 가정의 현현히 벌어집니다. 더 나아가 이 사랑을 축으로 해서 이루어진 종족의 현현, 민족의 현현, 세계의 현현히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성약Ⅰ-305)


 3)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의 상대자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는데,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 때문에 이 세상을 만들었느냐고 묻는다면, 하나님은 틀림없이 '좋아서…'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좋아서, 곧 기쁘기 때문에 그 기쁨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좋은 상태, 곧 기쁨은 어떻게 해서 얻어지느냐 하면, 사랑의 형태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사랑의 실현을 통해서 기쁨을 얻으려고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결론을 우리는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실현을 위해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었습니다.
인간과 만물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으로 하나되어 화기애애한 사랑의 세계를 이루는 것을 보고 기뻐하시기 위해서, 그리고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으로 하나의 참된 부부의 인연을 맺고, 하나의 참된 사랑의 가정과 종족․민족․국가․세계를 이루는 것을 보고 기뻐하시기 위해서, 그리고 그러한 인간과 사랑으로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사랑의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 피조세계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었습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이상이었던 것입니다. (성약Ⅰ-302)

하나님의 꿈은 단 한 가지, 사랑의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랑의 이상실현은 하나님 혼자서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이나 행복, 기쁨 등은 한 개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이 없이는 절대로 성립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약Ⅰ-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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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절대적 존재이시지만, 사랑의 상대가 될 수 있는 존재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상대자는 바로 인간인 것입니다.
인간이 완성된 사랑을 가지고 사랑의 상대자로서 하나님 앞에 나타날 때, 하나님은 행복한 하나님, 기쁨의 이상을 찾은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성약Ⅰ-303)

하나님에게는 인간이 왜 필요한 것인가? 하나님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인간이 왜 필요한 것인가 하는 물음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끼리 영원히 보고 좋아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하나님이 사람을 영원히 좋아할 수 있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인간은 이렇게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의 상대자라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를 창조하신 그 날부터 하나님은 영원무궁토록 아담과 해와를 보고 보고 또 봐도 더 보고 싶고, 있고 있고 또 있더라도 더 있고 싶고, 살고 살고 또 살더라도 더 살고 싶은 대상들로 사랑하고 싶어하셨습니다. 그럴 수 있는 대상을 갖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이상입니다. (성약Ⅰ-306)


 4) 아담과 해와를 창조하신 목적

구약 성경 창세기 1장 27절을 보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는데, 일남 일녀를 지으셨다'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귀납적으로 추리하면, 하나님은 하나의 남성과 하나의 여성을 합한 분이시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이 혼자 있어서는 안 되겠기에 대상을 필요로 해서 이 세계를 창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어진 것이 하나의 남자요, 하나의 여자인 것입니다. (성약Ⅰ-307)

하나님은 첫째, 체(體)를 입기 위해서 아담과 해와를 창조하셨고, 둘째로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서 아담과 해와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아담과 해와가 완성하여 둘이 하나될 수 있는 사랑의 실체가 되면, 하나님이 임재(臨在)하여 인류의 완전한 사랑의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형상적 실체부모가 된 아담과 해와가 실체의 자녀를 번식함으로써 이상세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을 통해서 영계와 지상세계가 연결되기 때문에, 영계와 지상세계를 연결시키기 위한 목적으로도 인간을 지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랑을 중심삼고 아담과 해와에게 임재하심으로서 인류의 참된 부모, 실체의 부모로 계시다가, 아담과 해와가 저나라에 가면 영계에서도 아담과 해와의 형상으로 체(體)를 쓰시고 부모의 자리에 현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것이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이해하시길 바랍니다. (성약Ⅰ-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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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 무형의 하나님이 실체상을 갖기 위해 아담과 해와를 창조하셨던 것입니다. 마음 속에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아담과 해와가 완성하여 결혼하고 자녀를 낳으면, 하나님은 내적인 아버지가 되고 아담은 외적인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아담은 하나님을 완전히 닮게 됩니다.
하나님을 닮은 아담과 해와가 인류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었다면, 그 모습을 통해 언제나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이 역사를 통해 인지될 수 있을 것이었습니다. (성약Ⅰ-309)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지으신 목적은 둘이 사랑하여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담은 아담을 위해서, 해와는 해와를 위해서 지으셨던 것이 아닙니다. 아담은 해와를 위해서, 해와는 아담을 위해서 지으셨던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 자신의 사랑과 기쁨을 위해서 아담과 해와를 지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를 지은 것은 지식․권력․돈 때문이 아닙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지식․돈․권력 등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오직 사랑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성약Ⅰ-308)

하나님께서 아담과 해와를 지은 것은 지식을 주기 위한 것도 아니고 권력을 주기 위한 것도 아니며, 많은 재물을 주어 잘살게 하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그들을 창조한 목적은 사랑의 실체로 세우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성약Ⅰ-308)


 5) 아담과 해와의 첫사랑의 시기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를 보고 '따먹지 말라'고 했던 것은 그들이 사랑할 수 있는 시기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성장기에 있었기 때문에 성숙할 때까지 기다리라는 율법이었던 것입니다. (성약Ⅰ-310)

인간은 사춘기를 바라보면서 한 때를 중심삼고 나왔습니다. 그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곧바로 남자 여자가 하나되어 사랑을 하면 되는데 왜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까? 사랑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성숙할 수 있는 사춘기 시기까지의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 기간까지 과정적인 요건을 갖춰야 합니다. (성약Ⅰ-312)

그러면 아담과 해와가 교육받을 수 있는 자세가 무엇이냐? 하나님과 아담과 해와는 부모 자식지간이니까 그 부모가 가는 곳에는 언제나 따라가야 하고 주관을 받아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 입장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본연의 자세를 이탈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분이시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그분을 따르고 복종했어야 했습니다. (성약Ⅰ-311)

아담과 해와는 만물의 영장으로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정해 준 기간, 즉 영육기간과 아울러 성숙해지는 때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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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도 아담과 해와에게 생육하고 번식하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육체와 영인체가 온전히 성장한 다음에 부부가 되어 사랑하고 아들딸을 번식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는 신체적으로 성숙해지면서 함께 다니게 되었는데, 함께 다니다가 깜짝 놀랄 광경을 보면, 해와가 '어마, 무서워!' 하면서 아담의 품에 안기거나 뒤에 숨는 일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해와는 아담 품에 안기면서 무섭던 마음이 놓이고 편안함과 함께 아담으로부터 강렬한 이성적 충동을 받게 됩니다. 아담 또한 그 느낌이 싫지 않으면서 해와로부터 자신과는 다름에서 오는 성적 충동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럴 때 아담과 해와 가운데 성적인 동작은 어느 쪽이 먼저 취했느냐? 무섭다고 아담 품으로 뛰어든 해와였습니다. 그때부터 점차적으로 그들의 사랑의 접촉이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피조세계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하고 피조세계를 사랑의 조직체로 만들어 하나님께 연결시켜야 했습니다. 그런 임무를 가진 아담과 해와는 어떤 자세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사랑을 공유하여야 하는가를 생각했어야만 했습니다. 이 사랑의 문제는 지극히 중대한 것으로서 그들의 생사를 가름하는 것이 되기도 합니다. (성약Ⅰ-311)

사랑은 어디서부터 출발하는가? 개성을 완성하는 데서부터입니다. 원리로 보면 개성을 완성한 후에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춘기를 거쳐 이성을 대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 천지의 조화에 일치하고 통과할 수 있는 책임을 짊어질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사랑의 인연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해와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사랑은 무슨 사랑이었느냐? 천지의 모든 만물을 통일시킬 수 있는 자리에서의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주체적인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사랑은 주체적이고 필연적인 사랑이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필연적인 사랑을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성약Ⅰ-317)


 6) 모든 존재는 사랑을 통해서만 완성된다

개체 완성이란 마음과 몸이 본래 하나님이 지으신 사랑의 바탕 위에서 완전히 하나된 가운데 성장하여 성숙하도록 수수작용을 영속시켜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사랑을 중심하여 출발하고 사랑을 중심하여 성숙되고, 그 위에 사랑의 싹이 터서 열매를 맺어야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사랑의 기대가 서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로 사랑의 연분을 가지고 임재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성숙되지 않게 되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바탕을 조성할 수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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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피조물은 사랑의 법도를 따라 창조되었고 또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식물을 보더라도 꽃이 피면 꽃 속의 수술과 암술이 수수작용 즉, 순환운동을 함으로써 열매를 맺게 됩니다. 동물세계도 그렇고 인간세계도 사랑의 순환운동에 의하여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모든 피조물들은 사랑의 관계를 거쳐서 완성되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존재는 사랑을 통해서만이 완성될 수 있다 하겠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의 핵과 일치하는 자리에 섰을 때 몸과 마음이 일체를 이루게 되며, 하나님의 사랑권 내에 몸과 마음을 일체화시켜 들어가게 되면 성숙한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타락하지 않는 본연의 인간으로서 개인 완성이 출발하게 됩니다. (성약Ⅰ-314)

마음과 몸에 있어서, 마음은 하늘을 중심삼고 몸은 세상을 중심삼고 있는데, 이런 마음과 몸이 하나되었다고 할 때, 그 이념을 무슨 이념이라고 합니까? 천주주의 이념이라고 합니다. 천주주의가 뭔지 아십니까? 하늘과 땅, 즉 무형세계와 유형세계가 일체가 되는 자리를 이루어 가자는 주의가 천주주의입니다.
이 천주를 지배하려면 지배하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과 몸이 일체가 되지 않고 되겠습니까? 일체가 되지 않으면 여기서 망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중심삼고 마음과 몸이 일체가 될 때, 하나님은 내적 하나님이고 자기는 외적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하나되느냐 하면,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입니다. (성약Ⅰ-314)

아담은 하나님과 하나가 돼야 합니다. 이를 결부시키는 것은 사랑입니다. 존재세계의 평면적인 대표자는 인간이며, 입체적인 대표자는 하나님입니다. 이것을 영원히 결부시키는 중심이 바로 사랑이라는 끈입니다.
육체를 가진 인간이 하나님과 일체를 이루게 될 때, 그의 심정과 감정은 무한한 체휼경(體恤境)과 행복감에 취하게 됩니다. 결국 사랑에 의해서 하나님과 인간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에 의해서 인간과 세계가 하나가 되며, 하나님의 창조목적 이상세계의 실현은 여기서부터 출발되는 것입니다. (성약Ⅰ-307)

아담과 해와는 16, 17, 18세가 되면 자연히 사춘기가 되어 이성의 눈이 뜨이게 됩니다. 꽃이 활짝 피었을 때 사람이 그 향기에 취하듯이 아담과 해와가 성숙하면, 이성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향취에 하나님도 함께 걸려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아담과 해와의 몸과 마음, 이 셋이 하나되면 우주의 핵이 생겨나고, 모든 사랑을 컨트롤할 수 있는 본 궤도에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탈선했습니다. 탈선하지 않았으면 완전히 하나되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되었으면 하나님도 떠나실 수 없고, 아담과 해와도 떠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자손손 연결되고 종족․민족․국가․세계를 이뤘을 것입니다. 여기가 멋있는 세계, 지상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성약Ⅰ-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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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인간들이 자랑할 수 있는 가장 큰 자랑거리

하나님은 한 사람의 남성과 한 사람의 여성을 창조했습니다. 그리고 완성한 상태에 이른 후에야 그들로 하여금 하늘적인 결혼생활을 하게 하고 한 쌍의 하늘적인 부부로 세우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로 하여금 최초의 남편과 최초의 아내가 되게 하여 천국 건설을 시작하려고 계획하셨던 것입니다. 만일 그것이 실현되었더라면 '생육하고 번성하라' 하셨던 하나님의 축복은 그 때에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자녀를 번식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하셨던 것입니다. 그랬다면 그들의 자녀도 죄가 없는 완전한 인간이 되었을 것입니다. (성약Ⅰ-319)

그들은 또 어떻게 될 수 있었을까요? 죄는 절대로 인류에게 계승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한 자녀들을 둠으로써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을 중심한 참아버지와 참어머니가 되어 인류의 참부모가 되었을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고 완성의 자리까지 나갔다면 아담과 해와는 개인 완성뿐만 아니라 우주사적인 완성을 했을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한 새 가정이 출발되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가정으로부터 씨족․종족․민족․국가․세계가 이루어졌다면 하나님을 모신 하나의 대가족 사회가 됐을 것입니다. 이러한 대가족 사회의 중심은 하나님과 아담입니다.
그래서 그 세계에서는 하나님을 중심한 아담가정의 생활이나 일생의 노정이 역사적 전통으로 남습니다. 그의 생활 방식․풍습․관습, 그리고 생활적인 배경이 역사적 전통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얽혀진 전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생명의 근원이요, 모든 이상의 원천이기에 그 품을 떠나려 해도 떠날 수 없고, 떠난다 해도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타락한 이 세계에서도 부모 밑에 살다가 그 품을 떠나거나 형제의 곁을 떠나면, 항상 외로움을 느끼고 부모 형제를 그리워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와 같이 생명과 이상의 주체이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엉켜 있다면, 그 품을 떠날 수 없는 것입니다. 떠나면 외로워지고 슬퍼져 기쁨이 있을 수 없으니, 하나님의 사랑권 안에서 하나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인간들이 자랑할 것이 있다면, 첫째는 하나님은 내 아버지라는 것이요, 둘째는 자기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들딸이라는 것이요, 셋째는 자기들은 하나님이 창조한 우주의 상속자라는 것일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사람들은 부잣집 사위만 되어도 크게 자랑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내 아버지이시고 그 아버지의 사랑을 완전히 받을 수 있다면, 그 이상 더 큰 자랑거리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성약Ⅰ-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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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을 중심한 이상가정을 이루었더라면 하나님의 뜻은 성취되었을 것이고, 아담 가정은 위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아래로는 인류 조상의 입장에서 하나의 결합된 사랑의 기점(基點)을 마련할 수 있는 가정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 가정은 하나님이 창조한 아담과 해와의 이상(理想)의 완성을 위해 사랑의 결합으로써 일체를 이룰 수 있는 터전이 되었을 것입니다. (성약Ⅰ-320)


 8) 참가정으로서 전통을 세웠어야 할 아담가정

인간 시조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여러분은 누구의 아들딸로 태어났을까요? 당연히 하나님의 아들딸로 태어났을 겁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의 진정한 아들딸이 됩니다. 오늘날과 같이 원수들 앞에 농락당하고 원수들에게 지배당할 수 있는 종족이 아니며, 원수들 앞에 참소받을 수 있는 무리가 아닙니다.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하나님의 아들이요,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의 전권 전능을 대표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 아들을 중심으로 가정을 이루게 될 때, 그 가정은 온 우주의 존재가 굴복하여야 할 하나님의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 가정을 이룬 종족이 움직여나가는 데 있어서는 온 피조만물 전체가 그들을 옹위하고 그들에게 흡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한 연고로 인간들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기는커녕 원수들에게 농락받는 무리가 된 것입니다. 인류의 시조가 본래 하나님의 법도를 어기지 않고, 하나님과 영원히 일체 되었으면, 그 일체 된 사랑의 인연 가운데에서는 그 누구도 그들을 데려갈 수가 없습니다.
이미 아들딸로 태어났고, 또 이미 장성한 후에 그들을 보고 '야, 너의 아버지가 누구냐?' 하면 설명을 하고 그것을 부정시킬 수 있는 이론이나 학설이 없는 것입니다. 총칼을 들이대도 안 되는 것입니다. (성약 1-330)

만일 타락이 없었더라면 에덴동산에 하늘의 첫가정이 세워졌을 것이며, 그 가정은 사탄의 참소와는 아무런 관계 없이 하나님의 주권하에 번영하였을 것입니다. (성약Ⅰ-330)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받는 아들과 딸로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결합했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아들딸을 낳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참다운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에서 남편으로서의 전통, 아내로서의 전통, 아들로서의 전통, 딸로서의 전통을 세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가정의 전통이 확립되었다면 하나님의 뜻은 성사되었을 것입니다. (성약Ⅰ-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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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의 뜻대로 완성해서 축복을 받아 가정으로부터 시작되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야 했습니다. 그들의 완성은 참사랑을 중심하고 이뤄져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아담과 해와가 횡적인 상태를 이루었다면 창조목적의 세계가 출발했을 것이고, 그 세계는 확장되어 우주에까지 이르렀을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부부일체를 이루어 하나되는 전통 속에 하나의 세계를 이루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성약Ⅰ-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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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가정을 중심한 사랑의 법도

 1) 가정을 중심한 하나님의 사랑의 법도

이 땅 위에 역사가 벌어진 이후에 어느 누가 부모를 중심삼은 참다운 사랑, 부부를 중심삼은 참다운 사랑, 형제를 중심삼은 참다운 사랑을 해 보았습니까? 참다운 사랑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이 3대 사랑이 인간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관을 초월할 수 있는 영원한 실존적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3대 사랑이 결합하게 될 때 인간은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완전하면 행복도 완전한 것이요, 이것이 결여되면 불행이 깃드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없는 사람이 행복합니까? 어머니가 없는 만큼 불행한 것입니다. 또 아버지가 없는데 행복합니까? 아버지 없는 사람은 아버지 있는 사람이 부럽습니다. 행복하다는 것은 부러운 것이 없어야 합니다. 사랑도 부러운 게 없어야 합니다. 부러운 것이 있으면 행복하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없어도 행복할 수 없고, 어머니가 없어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남자가 아무리 배포가 크고 큰소리쳐도 여자가 있어야 합니다. 아내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 부부끼리 재미있게 살다가 남편이 훌쩍 가게 되면 부인은 눈물을 흘립니다. 남자가 없어도 안 되고 여자가 없어도 안 되는 것입니다.
또 부부끼리 아무리 정이 있게 산다 하더라도 아들딸이 없으면 불행합니다. 아들만 필요합니까? 아들딸이 다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를 들어 부모한테 아들딸 둘밖에 없다면 어떻겠습니까?
아들을 두고 볼 때에 그에게는 누나가 필요하고 또 형이 필요합니다. 또 딸에게는 오빠가 필요하고 언니가 필요합니다. 또 그들에게는 남동생과 누이동생이 필요합니다. 형님이 있어야 되고, 누나가 있어야 되고, 남동생과 누이동생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다 갖추어지지 않으면 불행한 것입니다. 여동생․남동생․누나․오빠 다 갖추어져 완전히 하나되는 가정은 하나님이 보호하십니다. 이것이 씨족과 민족과 국가의 기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나를 중심하고 아버지․어머니․형님․누님․그 다음엔 남동생․여동생, 거기다 나까지 합하면 7명입니다. 그래서 7수가 완성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완성이란 사랑을 두고 말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찌하여 7수가 완성수냐? 무엇 때문에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지창조가 7수를 중심삼고 완성되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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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내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3수는 하늘 수요, 4수는 땅 수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3수는 아버지․어머니․나 해서 3수입니다. 그러면 4수는 무엇을 말하느냐? 형제자매들을 합한 것이 4수입니다. (선집 20-40)

7수가 완성수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성부 성자 성신은 하나님을 중심삼은 아담과 해와를 말하는 것입니다. 성부는 상하, 즉 종적인 인연을 말하는 것이요, 부모의 사랑은 하늘땅을 대신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중심으로 볼 때, 형과 누나는 동서를 말하고, 남동생과 여동생은 남북을 말하는 것이니, 그것이 완성되면 입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법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의 모든 법칙도 수리에 입각한 공식법도에 적용되지 않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법도에서 근원된 창조원리적인 개념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법도가 자리를 잡게 될 때 평화의 기원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정선 5-18)


 2) 가정에 3대가 공존해야 하는 이유

할아버지․할머니․시어머니․시아버지․시누이․손자까지 같이 살자는 겁니다. 사는 데는 센터를 중심삼고 소생․장성․완성, 3대가 정착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만 사랑하지 말고 할아버지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겁니다. 아버지 어머니 위에 할아버지를 놓고 사랑할 줄 알아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겁니다.
그러면 왜 남편이 없으면 안 되느냐? 왜 부모가 없으면 안 되느냐? 왜 아들딸이 없으면 안 되느냐? 그것들이 있어야 하나님을 모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있어야 되고, 아들딸이 있어야 된다는 것은 원칙입니다. 부모가 필요하고, 그 다음엔 부부가 필요하고, 아기가 필요합니다.
그걸 왜 필요로 하느냐? 하나님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부모가 필요하고, 남편이 필요하고, 자식이 필요하다는 논리가 성립되는 겁니다.
왜 부모가 필요하고, 남편이 필요하고, 자식이 필요한지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모르면 안 됩니다. 내가 아래에도 가야 되고, 센터에도 가야 되고, 위에도 가야 되고, 옆으로도 가야 되고, 사방으로 가야 합니다. 아무리 손자라고 하더라도 사랑을 가지고 할아버지를 좋아하게 되면 '아이구, 좋아라! 좋아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는 본연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 본연의 사랑을 중심삼고 이런 가정편성을 표준 하는 일을 해왔습니다. 종교세계를 통해서 이런 내용을 비로소 교육했다는 사실은 놀라운 것입니다. (선집 12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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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죽으면 아내가 왜 우느냐? 아들딸이 없으면 왜 우느냐? 섭섭해서 우는 것이 아닙니다. 우주의 근본원칙은 동서사방을 전부 다 갖추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즉 우주 존재의 힘은 상대이상을 옹호하는 힘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부 다 주고 받습니다. 남북이 주고 받고, 북극과 남극이 주고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별과 별이 주고 받는 것입니다. 상대가 없어서는 존재하지 못합니다.
완전히 하나된 이상적인 존재는, 즉 완전히 주고 받는 존재는 이 우주가 옹호한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유지할 수 있게끔 그것을 옹호하는 천운이 감도는 것은 원칙이라는 것입니다. 전부 다 그것을 협조하는 것입니다. 아들딸이 없어도 안 됩니다.
오늘날 서구에서는 아들딸이 필요 없다는 주의로 나가고 있지만 정말 필요 없는지 두고 보십시다. 영계에 가 보라는 것입니다. 내가 서 있는 데에는 반드시 위가 있고 아래가 있는 것입니다. 3수를 통해야 되는 것입니다. 3단계를 거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이 다 3단계로 되어 있습니다. 부모를 모셔야 되고, 부부가 있어야 되고, 자녀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녀가 없어 가지고는 천리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딱 갈라 놓으면 남성 3단계, 여성 3단계인데, 이것을 합해 가지고 통일적인 3수의 형태를 갖추어 이상세계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즉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고, 아버지 어머니가 있고, 자기가 있어야 이상적이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가정윤리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선집 70-76)


 3) 부모는 곧 사랑의 기원

고아는 부모와 인연을 맺을 수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을 받고 싶어합니다. 그 사랑의 이상형은 부모입니다. 그런 부모의 사랑을 받고 싶어도 받지 못하고, 또 부모에 대해 사랑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고아보다도 백 배 천 배 못난 사람이라 하더라도 부모를 모시고 효도하며 살 수 있는 사람은 고아들에게 뽐낼 수 있는 것입니다. '너 어머니 아버지 있니? 없지. 얼굴이 잘생겼으면 뭘 해? 부모도 없으면서' 하고 으스대는 거라구요. 또 '나는 못나고 병신이 됐지만 넌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지 않니?' 이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선집 39-232)
부모가 대관절 뭐냐? 힘으로도 세계 챔피언이고 머리도 세계적인 챔피언인 아들이, 혹 같은 존재인 아버지 어머니쯤이야 한 손가락으로 그어 버리고 마음대로 다 하면 될 텐데 왜 무엇 때문에, 마음대로 못 하느냐?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힘으로도 제일이고, 머리로도 제일이니 힘 가지고 '야 이놈들아' 할 수 있고, 머리 가지고도 그렇게 할 수 있지만 그러지 못한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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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원이 어디냐? 사랑이 어디서부터 나오느냐? 자기에서부터냐? 아닙니다. 그건 부모로부터 나옵니다. 사랑의 기원은 자기가 아니고 부모이기 때문입니다. 원인을 몰라보는 결과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는 주인이 자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 못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모 앞에 와서는, '예, 어머님 아버님, 그렇습니다' 하는 겁니다.
부모가 '네가 아무리 이름이 높고 힘이 세다 하더라도 어머니 아버지 앞에서는 해야 할 도리에 어긋나는 것은 안 된다' 하면 '예 예 예, 어머님 아버님, 그렇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왜냐?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주체요, 자식은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주체는 대상을 위하고, 대상은 주체를 따라야 하는 것이 천리원칙입니다. 이것을 파탄시키는 날에는 그 집안은 몽땅 무가치한 결과로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천리원칙이라는 것은 아무리 무식한 인간이라 해도 천성을 따라 태어났기 때문에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외적으로 힘이 센 챔피언이라 하더라도 부모 앞에서는 머리를 숙여야 하는 것입니다. (선집 50-135)

인간세상은 힘의 싸움이 계속 되고 있고, 지식의 싸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직 사랑의 싸움을 할 수 있는 때가 안 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 지도자들은 말세가 되면 자기 때가 온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말세가 되면 주먹의 힘이나 지식의 힘은 다 지나가고 사랑의 힘만 남는 것입니다. 그런 최후의 세계적인 패권시대, 그때가 바로 끝날이 되는 것입니다.
힘센 형님이 집에 들어와서 대장 노릇 할 수 있느냐?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힘센 형님도 집에 들어와서는 대장 노릇을 하지 못합니다. 링에서는 세계적인 챔피언이 될 수 있어도 집에 들어와서는 대장이 못되는 것입니다.
또 박사학위를 몇 백 개 가진 형님이라도 집에 들어와서 대장 노릇을 할 수 있느냐? 할 수 없습니다. 왜 없느냐? 부모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선집 50-135)


 4) 형제자매가 필요한 이유

형제가 왜 있느냐? 형제가 왜 필요하냐 하면, 남자는 계집애 동생이나 누나를 보면서 '우리 엄마가 그렇게 자랐구나!' 하는 걸 알게 되고, 또 여자는 오빠나 남동생의 짓궂은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가 자란 과정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게 형제애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형제를 아버지와 어머니를 사랑하듯이 사랑하는 걸 배워야 합니다. 배우지 않고는 사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형제들을 어머니 아버지가 자라던 그때의 모습으로 알고,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저나라에 가서도 어느 때든지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부끄럽지 않고 사랑할 수 있는 주인이 되기 위해서 형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형제들이 어머니 아버지보다도 그들 형제끼리 더 사랑하는 게 좋으냐, 덜 사랑하는 게 좋으냐? 더 사랑하는 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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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러냐? 아들딸한테 어머니 아버지의 자랄 때의 모습을 보여 줘 그들을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했다는 입장을 세우기 위한, 사랑을 중심삼고 인연된 그런 형제들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그 다음엔 부모에게 있어서는 아들딸이 많으면 많을수록 어머니가 생각하기를 사내애들이 저렇게 짓궂게 자라는 걸 보면서 '아, 우리 남편이 자랄 때 저랬구나' 하고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애들을 사랑하는 것은 만나기 이전의 남편을 사랑하는 입장이 되는 것입니다. 또 남자는 '아이고, 저 계집애를 보니까 아내가 저랬겠구나! 어렸을 적 아내의 모습을 보여 주는구나' 하고 배운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아내의 전체를 사랑했다는 조건이 성립된다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아이고! 남자 아기만 사랑하고 여자 아기는 사랑하지 마' 그러지 않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아들딸 사랑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차등 없이 사랑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전부 다 이렇게 형제를 두는 것은 가정에 아름다운 사랑의 원화(圓和), 둥근 구형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어머니 아버지는 형제들을 똑같이 대해 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모든 부모가 다 그렇습니다. 그러니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어머니를 미워하는 것보다 더 큰 죄입니다. 이것이 가정교육에 있어서 제1조입니다. (선집 184-60)

지금까지 여러분들 형제끼리 싸움하고 '뺑' 해서 나왔으면 가서 잔치라도 해 흐뭇하게 해주고 용서해 달라고 하면서, 우리 어머니 아버지 사랑하듯이 사랑하자고 그래야 합니다. 형제가 어머니 아버지 대신이니까 남아진 어머니 아버지를 모시겠다고, 형제가 못살면 내가 도와주고 어머니를 위해 주던 것같이 위해 준다면, 그것보다 아름다운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천국이 시작되는 겁니다. (선집 184-65)


 5) 할아버지는 집안에서 하나님 위치

오늘날 미국 제도는 전부 다 젊은 사람들의 천국이지 할아버지 할머니 천국이 아닙니다. 어린애들의 천국이 아니요, 할아버지 할머니의 천국이 아니요, 젊은 청년 남녀들의 천국이기 때문에 전부 다 망하는 지옥 구덩이를 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본연의 형태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선집 107-328)

미국 가정에서는 할아버지가 아들네 집에 갈 때 전화를 하고 갑니다. 사람이라면 어떤 것을 좋아하겠느냐? 여러분들은 어떤 것을 좋아하겠습니까? 아름다운 며느리가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사랑스런 마음을 가지고 사랑하는 남편보다 더 좋은 것을 사 주려고 하면 그게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사랑스럽겠느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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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며느리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쭈글쭈글한데도 불구하고 자기 사랑하는 남편에게 사다 주는 것 이상의 기쁨으로 사다 주는 그 장면이 얼마나 멋지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할아버지 할머니는 감추어 둔 모든 것을, 사랑에 관한 모든 것을 전부 다 준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나이를 많이 먹은 할아버지가 누구냐? 하나님입니다. 그러니까 그 할아버지를 위하는 사랑을 자기 할아버지한테서 배우는 것입니다. 이런 전통을 배워 하나님 할아버지의 모든 비밀창고에 있는 사랑의 보물을 내가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멋지냐는 것입니다. (선집 107-329)

세상에서 제일 경험 많고, 경력이 많은 하나님이 누구냐 하면, 할아버지 할머니입니다. 나이가 많으니까 잠을 많이 안 잡니다. 그러므로 '야, 우리 집에서 할아버지는 자지 않고 지켜 주는 하나님이구나! 우리를 지켜 주니 그렇게 늙으셨구나! 주름살을 보니 늙으셨구나!' 그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게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런 할아버지 할머니, 나이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신다면 불도 안 나고 도둑도 안 맞는다는 것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잠 안 자면 뭘 할 것이냐?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 아들딸에게 복 주시오, 복 주시오' 하고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다가 '야, 아무개야! 너 오늘 나다니다가는 위험하다. 말 들어라' 이렇게 다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오늘은 나가지 마라! 싸움하지 마라! 아들아 어디 가지 말고, 딸아! 며느리야! 오늘은 멀리 가지 마라' 이렇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손자들에게 그런 할아버지 할머니가 필요하겠습니까,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사랑을 가지면 할머니 할아버지도 춤추고, 어머니 아버지도 춤추고 형제끼리도 춤춘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형태를 갖추고 사는 사람은 우주가 보호한다는 것입니다. 누가 그 사람을 죽이려 하면 자동적으로 우주가 막아 준다는 것입니다. (선집 107-327)
부모는 손자를 어디에 보내려면 반드시 할아버지의 승낙을 받아야 합니다. 부모 마음대로 못 합니다. 할아버지가 하나님의 입장이 되는 것입니다. (선집 107-326)


 6) 조부모와 손자와의 관계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손자가 집에 들어와서 '아이구, 할아버지 할머니 어디 갔어?' 하면 어때요?
어머니 아버지도 앉아 있고, 자기 형제들도 많은데 들어오자마자 '할아버지 할머니 어디 갔어!' 한다면 그게 어울려요, 안 어울려요? 그건 어울리지 않습니다. 말도 반말로 합니다. '할아버지 어디 갔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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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그 말을 생각해 볼 때, 지금 80세가 넘어선 할아버지 할머니인데, 이건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녀석이 대담하게 버티고 서서, 아버지 어머니도 다 있고 형님 누나가 자기보다 더 훌륭한 분인데, 거기서 버티고 서서 '할아버지 할머니 어디 갔어!' 해도 전부 다 눈이 휘둥그래져서 '야, 요놈아! 요 녀석아! 뭐야?' 하고 책망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건 왜이겠습니까? 보통 같으면 말이에요, 다른 데서 다른 사람이 그랬다면 '우리 할아버지께 대고 너 그럴 수 있어?' 하고 야단칠 텐데 손자가 버티고 서서 그런 얘기를 하면 좋아합니다. '그래, 그래. 할아버지 보고 싶어?' 하고 묻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할아버지에 대해서 '어디 갔어?' 하는 것이 떡을 달라고 하는 거예요, 밥을 달라고 하는 거예요? 그 내용이 문제입니다. 내용이 뭐냐 하면, 할아버지를 보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그렇게 보고 싶어하는 것은 좋은 거예요, 나쁜 거예요? 그건 좋은 것입니다.
천하가 보고 싶어하고 또, 보고 싶은 동시에 그 다음엔 무엇 때문이에요? 가만히 사방을 둘러보면, 형님을 가만 보고 누나도 다 가만 보면 지금 그 무릎에 가서 좀 앉고 싶은데, 요리 바라보고 저리 바라봐도, 형님 눈치를 가만히 보고 가서 3분만 앉게 되면 밀어낼 것이 뻔합니다. 또, 아버지도 가만히 보니까 바쁘고 피곤한 아버지…. 그거 다 경험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가서 궁둥이를 대고 10분만 앉아 있어도 싫어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렇게 감각이 빨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를 가만히 보면, 할아버지같이 나이 많은 사람들은 무릎에 앉으면 한 시간을 앉아도 가만 있고 두 시간을 앉아도 가만 있는 겁니다.
그렇게 앉더라도 집안 식구들 가운데서 제일 자기를 많이 품어 주는 겁니다. 품어 주고 '요 녀석 코가 어떻고, 요 녀석 귀가 어떻고…' 하면서 만져 주는 것이 싫지 않습니다. 다듬어 주고, 쓰다듬어 주고, 만져주고, 어떤 때는 안 만져보는 데 없이 다 만져보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싫지 않습니다. 그게 얼마나 근사해요? 얼마나 멋지냐 말입니다. 그건 나무 맨 꼭대기가, 나무 종대 꼭대기가 뿌리와 하나되겠다는 그 말과 통하는 겁니다. 그러면 종대 뿌리하고 종대 순하고 좋아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거기에 달린 모든 뿌리와 모든 가지는 좋아하지 않으려 해도 좋아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걸 생각해 봐야 합니다. 종대 순하고 종대 뿌리하고 좋아하게 되면, 그것은 뭐냐 하면 모든 전체를 품을 수 있는 인연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볼 때, 뿌리 중에서 종대 뿌리가 집안에서 누구라구요? 손자, 장손이다 그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할아버지는 언제나 눈을 뜨고 장손을 올려다보고 내려다본다 이겁니다. 이걸 알아야 됩니다. (선집13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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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의 참된 의미

우리 동양 교훈 가운데에서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것 참 좋은 말입니다. 집이라 하게 되면 거기는 물론 사람이 중심이 돼 있습니다. 할아버지․할머니․부모․자식 이렇게 있는데, 그것만이 아닙니다.
집 자체는 만물을 축소시켜 놓은 것입니다. 여기에 다 모여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 내 집 하면 보통 '거기는 어머니 아버지가 있는 곳이고, 처자가 있는 곳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집 하면 그것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고, 그밖에도 집이 있고, 뜰이 있고, 모든 것을 축소시킨 것 가운데 환경이 잘 어울려 있습니다. 그래야 기분이 좋다는 것입니다. 어울리지 않는 환경에,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면 기분도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서로 마주보면서 웃는 모습은 젊은 부부가 좋아서 '꽥꽥꽥' 하고 '헤헤헤' 하며 웃는 모습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허허허' 하며 주름살 잡힌 할아버지 할머니가 웃는 웃음은 멋지다는 것입니다.
몰라서 그렇지 전부 다 화합하는, 서로가 상응하는 입장에서 웃는 그 할아버지 할머니의 웃음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화동한다는 것입니다. 할아버지 웃음은 깊은 웃음으로 '허허허' 하는 그런 것입니다. 손짓을 해도 동작은 굼뜨지만 넓고, 높고, 깊고, 크게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상․중․하의 3단계로 연결되어서 모든 조화가 벌어져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화라는 것은 일선상의 두 점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두 점을 통과하는 것을 선이라고 하는데, 두 점만으로는 조화의 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직선인데 조화는 무슨 조화가 있겠어요? 까부라지고 꼬부라지고 이래야 조화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3점 이상을 거치는, 여기에 조화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있는가 하면, 중간에 아버지가 있고, 그 다음에는 그 아래가 있습니다. 대개 우리 가정을 두고 4대로 잡는 것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그 다음엔 자기 부부, 그 다음엔 아들딸이 있습니다.
층층시하(層層侍下)라는 말이 있잖아요? 층층시하가 몇 층이 되느냐? 암만 하더라도, 물론 4대, 5대까지 사는 집안이 가끔 있을 수 있지만 보통은 4대에요, 4대. 할아버지, 아버지, 그 다음에는 우리, 아들딸 이렇게 돼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 통일교회 원리는 3단계에요, 3단계. 소생, 장성, 완성. 그래서 '화(和)'하는 집안,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 했는데 가화면 왜 만사성이냐?
가화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고 했는데, 그거 왜 그랬을까요? 말하기 좋아서? 시적으로 읊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닙니다. 아니라는 겁니다. '가화' 이것은 할아버지 할머니를 중심한 4대가 위로 아래로, 동서남북으로, 전후좌우상하로 화합해 가지고 웃음꽃이 피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선집13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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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가정은 천국의 중심모형


 1) 가정은 모든 존재의 중심모델

사람은 반드시 공간의 세계에 서게 되면 상하가 필요하고, 좌우가 필요하고, 전후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내 존재 위치가 확정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상하를 바로 갖추고 있느냐, 좌우․전후를 바로 갖추고 있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모양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상하․좌우․전후관계, 그리고 가정의 문제나 나라의 문제, 세계의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공식은 하나입니다.
개인을 중심삼고 상하․좌우․전후가 있듯이 가정에서도 부모와 자식이 있어야 하고, 남편과 아내가 있어야 하고, 형제자매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라에도 나라의 주인을 중심삼고 모든 가정이 동서의 문명, 남북의 문명을 다 품고, 그 다음에 세계의 만민을 형제 자매와 같이 품어 결국 하나의 가정모델을 이루는 것입니다.
모델은 똑 같습니다. 그리고 나 자신이 그 모델의 중심입니다. 자기가 있은 후에는 자기 가정이 있어야 되고, 나라와 세계와 하늘 땅, 그리고 하나님까지 나아가야 된다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여러분은 우주의 중심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을 뿐 아니라, 모두 다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주에 있어 그 핵과 같은 것이 가정 개념입니다. 하늘을 부모로 보게 되면 땅은 자녀입니다. 동서를 보게 되면 동쪽은 남자를 상징하고 서쪽은 여자를 상징하기 때문에, 여자는 결혼함에 따라 어디든지 남편의 위치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서쪽이 태양빛을 받아 빛날 때 동쪽과 같은 가치를 지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형제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장자인 형님을 중심삼고 역사할 때 동생들이 협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부자지관계에 있어야 되고, 부부관계, 그리고 형제관계에 있어야 합니다.
즉 이 세 관계가 한 점에 있어야 합니다. 그 중심점은 하나입니다. 상하․좌우․전후의 중심이 달라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 중심점이 틀리게 되면 상하, 좌우, 전후관계의 균형이 다 깨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상․하․좌․ 우․전․후 그리고 하나의 중심점까지 모두 7수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7수를 이룬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중심삼고 완전한 참사랑으로 하나되어 이 모든 전부가 완전히 구형을 이루어 조화와 통일을 이루는 가정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럭키 세븐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런 관점에서 일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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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랑이 영원히 변치 않는 한 이 중심핵도 변치 않고 영원히 돌게 되어 참가정 이상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또한 모든 것이 핵으로부터 연결되기 때문에 이 중심핵으로부터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모두 다 동등입니다. 할아버지가 원하면 손자가 반대하지 않고, 아들딸도 그것을 원하게 되어 3대가 모두 함께 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할아버지․할머니․부부․아들․딸 전부 중심에 맞추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중심삼고 볼 때, 부자지관계도 하나이어서 일체라고 말하고, 부부관계도 일체라고 말하고, 형제지간도 일체라고 합니다. 한 몸입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이러한 관계를 일체라고 하느냐 하면 사랑의 중심인 하나님의 참사랑을 중심삼고 말하는 것입니다. 참사랑을 중심삼고 부모와 자식이 하나가 되고, 부부도 한 몸이 되고, 형제지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의 가치가 동등해 집니다. (성약 Ⅰ-57)


 2) 가정은 우주 사랑을 접할 수 있는 사랑의 교재

우주는 뭐냐? 피조세계의 모든 것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딸이 사랑의 이상을 찾아 나갈 수 있도록 교재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전부 다 상대적 구조입니다.
광물도 주체와 대상의 관계로서 작용합니다. 원자도 그렇습니다. 양자와 전자가 주체와 대상의 관계로서 작용합니다. 작용하지 않고는 존속할 수 없습니다. 운동을 하지 않고는 영속, 존속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는 인간을 중심삼고 그 중점에 도달할 수 있도록 창조된 세계라는 것입니다. (선집 137-59)

우주는 무엇이냐? 가정을 확대한 것입니다. 가정의 사랑을 완전히 이룬 가정을 보게 되면, 상중하(부모․부부․자녀)가 있고, 좌우가 있고, 전후가 있습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그래서 상하를 말할 때는 부모와 자녀를 말하고, 좌우를 말할 때는 남편과 아내를 말하고, 전후를 말할 때는 형제를 말합니다.
이러한 전체가 무엇으로 하나 되느냐? 힘으로도 지식으로도 돈으로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떤 것으로 할 수 있느냐? 사랑입니다. 틀림없는 진리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구형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상중하는 우리 가정에 있어서 무엇이냐? 사랑의 교재입니다. 우주 사랑을 접할 수 있는 사랑의 교재입니다. 그와 같은 것을 사회에 가서 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랑해야 되느냐? 예수님도 '이웃사랑을 내 몸과 같이 하라'고 했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냐? 막연합니다. 세상에 나가서 할아버지를 대할 때는 여러분의 할아버지같이 대하라는 것입니다. 어머니같이 대하고, 아버지같이 대하고, 아들과 같이 대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나가게 되면 전부 다 그렇게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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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중하와 전후좌우의 사람이 세계라는 전시장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사람 박람회가 세계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그러한 사랑을 가지고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으면 그 가운데 하나님이 같이 합니다. (선집 128-23)

천국이 뭐냐? 자기 가정과 같이 세계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곳이 천국이요, 그런 사람이 천국 백성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어머니 아버지․자기 아내․형제․자녀, 이 4대가 뭐냐? 하늘나라의 백성으로서 사랑을, 우주의 참사랑을 체험하기 위한 교재로서의 가정입니다. 교재로서 나에게 가르쳐 주는 기반이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선집 129-98)

우리는 우주의 사랑을 배우지 않고는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교본이나 경전과 같은 걸 만들어 '네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하라. 지상에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는 영계의 할머니 할아버지를 대표해서 보냈기 때문에 그 할머니 할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은 전체를 사랑하는 것으로 해주마' 하고 공약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네가 어머니 아버지를 지극히 사랑하는 것은 이 세계의 수많은 어머니 아버지를 대표하는 교본과 같이 사랑하는 모델로 삼았으니 전체를 사랑했다는 조건으로 삼아 주마. 또 남자로서 여자를 사랑했다는 것은 세계의 남자가 세계의 여자를 대표적로 묶어 사랑했다는 것으로 세워주마'라고 합니다.
또 그 다음은 '네 아들딸을 사랑한 것으로 전체 아들딸을 전부 다 사랑했다고 해주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은 그 훈련을 받는 훈련소입니다.
경전에 의한 세계 사랑의 훈련과정인데, 그 훈련을 받은 사람에게 이제는 세상에 한 번 나가 여러분의 할아버지 할머니 대신 세상 할머니 할아버지를 사랑할 수 있느냐 할 때 '예스'한다면 그건 세계를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선집 130-273)


 3) 사랑의 왕국에 입적하기 위한 사랑의 수련장

사랑의 왕국을 이루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랑의 이상세계를 발전시켜 세계화시키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할 때 국민학교 졸업으로부터 대학 학․박사 졸업까지 패스할 수 있는 실험장이 어디냐 하면 가정입니다.
가정을 확대하면 세계입니다. 세계를 가만 보면 할아버지 할머니 사는 세계, 그 다음에 아저씨 아줌마들이 사는 세계, 오빠 누나 같은 사람들이 사는 세계, 청소년들이 사는 세계, 아이들이 사는 세계가 있습니다. 그러니 노년으로부터 장년, 중년, 청년, 소년들이 사는 이곳이 모양이 클 뿐이고 수가 많을 뿐이지 가정을 확대시켜 놓은 것입니다. (선집 147-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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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최소 단위의 수련소요, 교재입니다. 거기에는 할아버지급, 어머니급, 부부급, 형제급이 다 있습니다. 이것을 할머니 할아버지 혹은 어머니 아버지 연령, 그 다음엔 자기 연령, 아들딸 연령으로 확대시킨 것이 세계 인류입니다. 이 인류를 자기 아내와 같이 사랑하고 부모와 같이 사랑하고 아들딸과 같이 위해 살 수 있는 가정만이 천국을 상속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상속받을 수 있는 특권이 여기 있다는 것입니다. (선집 143-285)

가정은 죽을 때 하늘나라나 평화의 왕궁에 입적할 수속권을 받을 수 있는 사랑의 교과서입니다. 가정이 사랑의 수련장이라는 것입니다. 이 가정을 확대한 것이 세계입니다.
할아버지와 같은 세계가 있고, 할머니와 같은 세계가 있고, 아버지 어머니와 같은 세계가 있고, 남편과 같은 세계가 있고, 아내와 같은 세계가 있고, 아들딸과 같은 세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대하면 곧 세계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가정을 사랑하듯이, 그 가정을 중심삼고 하나님을 사랑하듯이 전세계 사람을 사랑하면, 그것이 천국으로 가는 똑바른 길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 첫째 계명입니다.
둘째는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하면 다 끝나는 것입니다. 그것을 못하면 아무리 수양을 해도 다 헛된 것입니다. 종교가 도를 아무리 닦는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사랑할 줄 모르고, 인류를 사랑할 줄 모르고, 만우주를 사랑할 줄 모르면 전부 다 낙제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전체 우주를 축소시킨 수련소와 같은 공식 과정의 사랑을 체험해 가지고 확산시켜 세계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훈련장으로 이어받은 것이 여러분이 자란, 어머니 아버지가 사는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아내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부모를 사랑하고, 자기 아내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아들딸을 사랑하고, 자기 아내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인류를 사랑하고, 자기 아내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면 다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 아내를 버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모두를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랑받은 모든 사람들이 자기 아내를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이상 영광스러운 자리가 어디 있느냐? 자기 아내를 사랑하려거든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선집 14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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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가정은 천국의 모형 교과서

자녀의 자리에 있는 사람은 어떤 운세를 받아야 되느냐? 조부모와 부모의 운세를 이어받아야 합니다. 조부모는 왜 필요하냐? 과거를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조부모는 과거의 산 역사를 대표합니다. 그 다음에 부모는 현재를 대표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자녀들은 미래를 상징합니다. 거기엔 동서도 들어가 있고, 남북도 들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전체의 중심입니다. 조부모의 중심, 부모의 중심, 자녀의 중심, 하나님의 중심, 이 모든 게 참사랑을 중심삼은 것입니다. 그래서 할아버지를 사랑하고 할아버지를 존경하는 것은 과거를 전부 다 이어받고 과거 세상을 배우는 것입니다.
아버지에게서는 현재를 배우는 것이요,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미래를 배워 나가는 것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를 통해 가지고 무엇을 이어받느냐? 참사랑을 이어받는 것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나이는 많지만 두 분이 참된 사랑에 하나되어 있고, 어머니 아버지가 하나되어 있으니 우리들도 저와 같이 되어서 미래를 이어받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대 참가정이 되지 않고서는 미래를 이어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가정의 이 셋을 볼 때, 그것은 우주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우주의 사랑은 현재와 미래를 대표한 참가정에 있는 것입니다. 동물세계를 보더라도 암놈을 사랑하고 숫놈을 사랑하는데, 이것은 우주의 사랑을 배울 수 있는 교과서입니다.
할머니가 없으면 불안정합니다. 할아버지가 없어도 불안정하고, 어느 쪽이 없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그냥 그대로 하늘나라로 옮겨 가는 것입니다. 조부모, 어머니 아버지, 자녀가 그냥 그대로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참조부모를 사랑하고, 참부모를 사랑하고, 참자녀․참가정․참국가․참우주를 사랑한 사람이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그것의 모형 교과서가 가정입니다. (선집 162-140)
가정은 천국을 이룰 수 있는 교재입니다. 하늘이 만들어 놓은 교재입니다. 세계에 있는 할아버지 연령의 사람을 전부 자기 할아버지와 같이 사랑하면 그 사람은 천국에 가게 돼 있습니다.
자기 부모 연령과 같은 사람을 자기 부모와 같이 사랑하면 어디를 가도 통합니다. 만국공통입니다. 영계에 가도 경계선이 안 생긴다는 것입니다. 만국의 젊은 사람을 자기 아들딸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면, 그는 열두 진주문이 있고 방향이 있어도 천국 어디든지 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이라는 것은 천국과 인연맺게 하기 위한 교재입니다. 그걸 나라에 적용하면 애국자가 되는 것이요, 세계에 적용하면 성인이 되는 것이요, 하늘땅을 중심삼고 하게 되면 하나님의 아들딸, 성자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다 그런 욕심을 갖고 있습니다. (선집 137-78)

여러분은 오색 인종의 아들딸을 품고 그 손자손녀들을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참된 사랑을 가지고 참된 부모로서 세계인을 사랑하는 가정의 주인이 됐다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한 본연의 부모의 인연 가운데서 참사랑의 가정기준을 대표할 수 있는 자리에 섬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선집 176-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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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가정은 3시대의 사랑이 결집된 핵심체

역사를 품고, 시대를 품고, 미래를 품을 수 있는 것이 가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6천 년을 거쳐오면서 찾아온 최후의 기점은 무엇이냐? 가정입니다. 그 가정은 사랑이 연결된, 사랑으로 전부 다 결속된 가정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모두다 여기에 주관을 받는 것입니다. 근원적인 사랑, 절대적인 사랑과의 관계를 떠날 수 없습니다. 이런 가정을 만드는 것이 하나님께서 창조 당시에 아담과 해와에게 준 본래의 사명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남자 아담, 여자 해와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결합한 새로운 가정을 꿈꾸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남녀를 세우신 제 일차적인 출발의 기원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을 찾아 가정권 내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이 세상에서 충족을 느낄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서 살아야만 천국도 무사 통과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이 세계도 넘어설 수 있습니다. (선집 30-86)

사랑의 가정권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이어야 합니다. 부모는 역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요, 부부는 시대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며, 자녀는 미래를 대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한 시대에서 한 상대를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계를 대하시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여기에서 부모와 부부와 자녀가 일치하여 천주를 대표해서 우리의 사랑을 본받으라고 할 수 있고, 후손들에 대해서 우리를 따르라고 할 수 있고, 내심으로나 외심으로 주장할 수 있는 마음의 본향, 천정이 통하는 그곳은 천지에 기억될 것입니다. (선집 30-80)

지금까지 하나님이 무엇을 찾아오셨느냐? 주체를 찾아 나오신 것이 아닙니다. 이상적인 대상을 찾아 나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본받았고, 당신이 지은 세계의 안팎의 내용을 갖추고 있는 것을 찾아 나오신 것입니다.
이런 결과적인 하나의 기점이 무엇이냐? 가정입니다. 가정보다 우주를 대표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부모와 하나되는 것은 역사와 현실이 만나는 것입니다. 여기서 '나'는 부모를 사랑하므로 과거를 사랑할 수 있고, 상대를 사랑하므로 현실을 사랑할 수 있고, 자녀를 사랑하므로 미래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3시대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가지 사랑이 결집된 핵심체가 바로 가정입니다. (선집 30-80)

그러면 천국생활은 어디서부터냐? 가정입니다. 다른 곳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은 가정을 입체적으로 확대시킨 것 뿐이지, 가정권을 벗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여러분들이 자기의 아내나 남편을 품을 때에는 이것은 세계의 남성과 여성이 하나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세계 인류를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울 수 있는 자리가 바로 이 가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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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은 그렇게 살아갈 길을 찾아가야 합니다. 부모를 사랑하는 것은 역사와 현재를 연결시키는 것이요, 하나님께서 찾아오실 수 있는 길을 닦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역사적인 존재와 시대적인 나를 연결시키는 것, 즉 과거와 현재를 하나 만드는 것이 부모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또, 자기를 중심삼고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현실과 미래를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랑을 천년만년 찬양하게 하려는 사상이 통일사상입니다. (선집 30-83)


 6) 가정은 심정적인 훈련장소

우리는 심정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혹은 세계적인 모든 권위를 갖추었다 하더라도 심정적인 기쁨을 표시 할 곳이 없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거느리는 사람들이나 각료들, 혹은 추종하는 사람들에게는 심정적인 만족을 느낄 수 없습니다. 그것은 가정에서 느껴야 합니다. 가정에 돌아와 가지고 부부가 서로를 통하여 기쁨을 느끼고, 또 자녀를 통하여 기쁨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기쁨을 다른 사람에게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기쁨은 제 1차적인 기쁨이지 2차적인 기쁨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계를 전부 복귀했다 하더라도 가정이 없는 하나님은 기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가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집 25-86)

가정에서는 부모를 중심삼아야 하고, 사회를 대표하는 교육기관에서는 선생을 중심삼아야 합니다. 부모는 자기를 젖 먹여서 키우고, 즉 생리적인 발전을 돕고 이래서 정서적인 면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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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학교는 뭐냐? 사회적인 생활, 앞날의 생활무대를 중심삼고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가정이 정서적인 훈련장이라면 학교는 사회에 있어서의 실험적인 훈련장입니다.
사회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어디 가서 귀결되느냐? 나라에 귀결됩니다. 나라에는 나랏님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전부 다 대통령을 그리워하고 대통령과 가까이 있으려고 하는 이유가 뭐냐? 가정으로부터 사회까지 모든 것을 알고 나서 그 다음엔 어디로 가느냐 하면, 더 큰 데로 가는 것입니다.
대통령을 하게 되면 소생 장성 단계를 넘어서 세 번째 단계의 열매입니다. 씨가 뿌리에서부터 시작해 순환작용을 해서 갈라집니다. 갈라져 여기서 종합해 가지고 꽃이 피어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도 나라를 위한 귀중한 동량, 인재를 양성해 나라에 필요한 사람을 길러야 하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하는 공부가 뭐냐? 훈련입니다. 그러므로 학교는 훈련장소, 실험장입니다. 훈련은 실전이 아니라 준비단계입니다. 준비를 잘못하면 안 됩니다.
가정은 뭐냐? 심정적인 훈련장소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심정적으로 훈련하는 장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을 가지고 형제와 같이 학교에서 살아야 되고, 정을 가지고 나라에서도 형제와 같이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부모의 그런 교육은 학교를 위한 교육이요, 사회를 위한 교육이요, 나라를 위한 교육이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는 정서적인 모든 것을 자식들 앞에 전수해줘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산 것과 마찬가지로 가정에서는 이렇게 살아야 되고, 사회에서는 이렇게 살아야 되고, 나라를 위해서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정서적 바탕을 만들어줘야 하는 것입니다. (선집 180-130)

여러분이 가정을 두고 볼 때, 집이 좋고 그 주위환경이 좋다고 해서 좋은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아무리 환경이 나쁘고 집이 초라하더라도 그것을 안식처로 삼고, 거기에 자기의 사연과 생애와 생활의 모든 기준을 인연맺고자 하는 가정이 좋은 가정인 것입니다. 거기에는 부모와 자식간에 서로 위해 주는 심정이 있습니다. 이것이 추억의 본향이요, 모든 생활의 동기가 되기 때문에 우리 생활에서 행복을 좌우하는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선집 29-17)


 7) 인간의 영원한 본향은 가정

가정, 가정은 좋은 곳입니다. 왜 좋으냐? 엄마 아빠가 있어서 좋은 곳이며, 누나 오빠가 있어서 좋은 곳이며, 동생이 있어서 좋은 곳이며, 친척이 있어서 좋은 곳입니다.
그래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본향 땅,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의 심정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나라보다도 고향을 더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에 살면서도 그리워하는 곳은 고향입니다. 대한민국을 좋아하면서 대한민국에 살고 싶어하면서 또 대한민국에 살면서도 그리워하는 곳은 어디냐? 고향입니다. 고향. 고향입니다.
고향은 어떤 곳이냐? 내 심정을 사방으로, 입체적으로 몽땅 끌어올려 놓는 곳입니다. 그 심정은 무엇이냐? 사랑으로 얽어매는 것입니다. 위로는 어머니 아버지가 얽어매고, 좌우로는 부부의 인연이 얽어매고, 아래로는 아들딸, 친척이 입체적인 사랑으로 꽁꽁 얽어매고 있는 곳이 본향입니다.
사람은 사랑을 중심삼은 행복의 기점을 최고로 바라보기 때문에 본향을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본향은 어디일 것이냐? 이 지구성에 있어서 하나님의 본향 땅은 어디일 것이냐? 이거 생각해야 할 문제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이라면 이 땅위에서 살아갈 수 있는 기점을 반드시 마련하였을 것인데, 그 기점이 어디냐?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그 기점을 마련하기 위해 어떻게 준비해 나오셨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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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가정을 마련할 수 있는 본향의 기점이 될 수 있는 곳은 어디일 것이냐? 딴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진짜 아버지로 아는 아들이 있는 곳입니다. 즉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는 아들, 독생자가 있는 곳입니다. 또한 그러한 딸이 있는 곳입니다.
그리하여 그 아들딸이 결혼을 해서 완전한 가정을 이루는 곳입니다. (선집 23-151)

그러면 그 본향 땅에는 누가 계셔야 되느냐?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부모가 계셔야 되고, 형제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는 만나고 싶은 분이 있어야 합니다. 또 거기에는 같이 살고 싶은데, 일순간만 봐 가지고 되겠습니까? 잠깐 만나 봐 가지고 되겠습니까? 그들을 만나 보고 그들과 같이 사는데는 영원히 영원히 같이 살더라도 싫증이 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 곳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곳이 오늘날 종교에서 지향하는 천국인 것입니다. (선집 23-81)

오늘날 우리가 본향 땅을 그리워하는 것은, 그 고향에는 그 누구보다도 가까운 부모가 있고, 형제가 있고, 친척이 있어서 언제나 나를 이끌어 주고, 또한 내가 언제 어느 때 찾아가더라도 나를 옛날과 같이 맞아 주고, 내가 어려움을 당하면 그 어려운 사정을 동정하며 위로해 주고 나를 기쁘게 맞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것이 없다면 본향이 그립고 좋아서 찾아가더라도 간절히 사모하던 당시의 심정은 없어지고 도리어 탄식의 조건들을 가지고 돌아오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본향 땅에는 반드시 맞아 줄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선집 23-80)


 8) 가정은 천주주의를 완결시키는 최종기준

모든 것은 하나에서 많은 것으로 갈라져 가지고 결국 하나의 큰 것으로 종합됩니다. 곧 하나에서 여러 가지로 갈라졌다가 하나로 통합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또 갈라져 가지고 보다 더 큰 것이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가정이 있는데 형태는 통합되기 전과 같습니다. 가정은 부부를 이룬 곳이요, 그 부부를 하나로 만드는 곳입니다. 종족은 가정을 하나로 만드는 곳이요, 민족은 씨족들을 하나로 만드는 곳입니다.
민족들이 합해서 하나의 국가 앞에 전부 들어갑니다. 여기에 있어서는 어디까지나 가정이 중심이 됩니다. 이 가정을 전개시키면 횡적인 세계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가정을 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가정을 복귀할 수 없으면 세계를 복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그 가정을 중심으로 천주주의를 이루어야 합니다. 천주는 하늘땅을 총합한 것입니다. 하늘땅은 인간에 있어서 몸과 마음과 같습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의 주체가 있으면 하나의 상대가 필요한 것처럼 하나의 남자에게는 하나의 여자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하나되는 것이 가정입니다. 이 하나의 가정을 중심삼지 않고는 하나님의 사랑의 기반이 잡히지 않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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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주의라는 것은 몸과 마음을 합한 후 하나님의 사랑의 본체가 되는 가정을 이루어 그 이념을 영계와 육계에 연결시키는 주의입니다. 천주의 주자는 집 주(宙)자입니다. 집 주. 그래서 천주주의란 말을 쓰는 것입니다. 천주는 무형세계와 실체세계를 합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와 어떤 관계가 있느냐? 우리는 가정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가정에서 하나되지 못하고서는 천주주의와는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가정이 천주주의를 완결시키는 최종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평화의 노래를 부르지 못하고 행복을 찬양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 지상에서나 영계에 가나 불행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선집 26-189)

천국은 어디서부터 이루어지느냐? 우리들의 가정에서부터 이루어집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슨 주의냐? 가정주의입니다. 우리가 표방하는 천주주의(天宙主義)는 하늘 천(天)자에 집 주(宙)자, 즉 하늘집주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천주라는 뜻이 확실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66권은 전부 다 이상적인 가정을 소원한 말씀입니다. 또 만민이 소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상적인 아내를 전부 맞이하는 것입니다.
또한 여자로 태어나서 가장 소원하는 것은 이상적인 남편을 만나는 것입니다. 여자가 아무리 학박사가 되어서 세계에 큰소리를 친다 해도 그의 소원은 이상적인 남자를 만나는 것입니다. 사랑할 수 있는 이상적인 남자를 만나서 복스러운 아들딸을 낳는 것입니다. 이것이 행복의 뿌리입니다. 통일교회의 이상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출발도 가정이요, 결론도 가정입니다. (선집26-103)

그러면 천주주의는 어떤 주의냐? 참부모주의입니다. 결국 이 두 주의는 부모의 주의입니다. 이것은 우리집 주의요, 우리나라 주의요, 여러분 개인의 주의입니다.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세계는 누구의 주의가 되느냐? 아담의 주의가 될 것입니다. 그 아담주의가 바로 참부모주의입니다. 아버지 어머니주의라는 것입니다. 이 이상의 다른 주의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심정적인 문제를 이 본연의 이상적인 가정의 테두리 안에서 참부모라는 이념을 중심삼고 하늘주의와 결부되게 해야 합니다. 이런 이념으로 제도화된 가정의 인연이 남아 있는 한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 (성약 Ⅰ-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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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사랑을 중심한 인생행로


 1) 인간은 왜 태어났는가

생명이 먼저냐, 사랑이 먼저냐 할 때 서로 먼저라고 할 수 있는데, 과연 어느 것이 먼저이겠습니까? 사랑이 먼저입니다. 우주의 근본이 존재 기원에 앞서서 사랑의 유통이 없어서는 존재가치가 나올 수 없습니다. (성약Ⅰ-1062)

우리의 생명의 기원이 어디서부턴가를 보게 되면, 생명이 먼저냐 사랑이 먼저냐가 문제입니다. 이제까지 이것을 분간하지 못했습니다. 생명이 먼저가 아니라 사랑이 먼저입니다. 먼저 된 것 앞에 다음 되는 것은 순응해야 되기 때문에 사랑을 위해서는 생명을 바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이렇게 이것은 수습해 놔야 합니다.
그러면 인생이 참되게 살 길이 어디냐가 나옵니다. 인생이 사랑에서 태어났으니 사랑의 길을 가야하고, 사랑을 위해서 죽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소우주가 아니라 대우주가 환영할 수 있는 사랑을 찾아서 하나님이 공인하고, 천사세계가 공인하고, 만물이, 더 나아가 우리 부모가 공인할 수 있는 대우주의 가운데로 나고, 그 가운데서 사랑하고 죽어가는 것이 인생이 태어난 목적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인간이란 자기가 희망해서 태어난 존재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아버지 어머니의 희망에 의해서 태어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희망에 의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하나님 대신인 부모의 사랑을 통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하나님 대신인 부모의 사랑을 통해서 새로운 생명체로 태어난 것이 '나'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전체를 창조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주의 사랑 모두를 받아 전우주의 중심적인 존재로 태어난 것이 바로 '나'입니다.
사랑에 의해서 태어나고, 사랑에 의해서 키워지고, 사랑에 의해서 살고, 또 사랑을 남기는 것이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목적입니다.
자기의 가정에서 우주의 중심인 사랑의 명을 다하는 것만이 가장 가치 있는 일입니다.
사람이 왜 태어났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지식이나 권력 때문에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사랑 때문에 태어났고, 또 사랑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면 사랑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위대한 것이냐? 그것은 생명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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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은 부모의 사랑 가운데서 난 것입니다. 돈을 세거나 지식을 추구하는 데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이처럼 사랑 가운데 태어났으니 사랑으로써 결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부부가 하나되어 아들딸이라는 상대가 있을 때 완전한 것입니다. 인간 자신도 사랑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존재는 사랑을 바탕으로 살아간다고 하겠습니다. 모든 만물도 그 존재의 시작이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출발하고 있습니다.
만물의 존재가 사랑을 바탕으로 시작되었다 할진대, 피조세계의 중심존재인 인간은 더더욱 사랑으로 출발한 존재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사랑에서 출발하고 사랑에 의하여 완숙되어 지기 때문에 사랑의 기준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성약Ⅰ-1062)


 2) 사랑을 중심한 창조 본연의 삶

인간 존재의 원인은 무엇이겠습니까? 인간 존재의 원인은 사랑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 존재의 목적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인간 존재의 목적은 사랑의 이상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사랑을 원인으로 존재하게 되었으니, 사랑의 기대를 이루어서 확장시키고 연결하여 완성시키는 것이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즉 출발이 사랑이니 목적도 사랑으로 도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적 관계에 있는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중심하고 하나되어 전후 좌우 상하로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절대적인 존재를 확정하고, 아무리 절대적인 목적을 확립했다고 하더라도 거기에서 기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살고 생활하는 것이 기뻐야 합니다.
생활하는 것은 목적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 목적을 성취했다 할 때 거기에는 존재 그 자체 이상의 새로운 무엇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를 중심삼고 볼 때에 이들에게 무엇보다도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사랑만이 이것과 연결시킬 수 있는 행복의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목적을 아무리 잘 세웠다고 하더라도 그 목적을 주관할 주체적인 사랑의 권위를 세우지 못하게 될 때에는 또다시 새로운 목적을 추구해야 합니다. 목적의 한계점이 사랑보다 위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살아가고 있습니까? 먹기 위해서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혹은 일하기 위해서, 또는 아무런 목적도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인간은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 사랑을 위해서 산다고 한다면 얼마나 멋있는 대답이겠느냐 말입니다. 인간은 사랑의 열매로 태어나고, 사랑하면서 살다가 영원한 사랑인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는 것이 창조 본연의 삶인 것입니다. (성약Ⅰ-1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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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태어나서 사랑 가운데서 자라다가 그 다음에 다시 다른 차원의 사랑으로 연결되는 것은 부모의 사랑을 떠나 상대의 사랑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소생적 사랑이라고 할 수 있고, 부부의 사랑을 장성적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부끼리 아무리 사랑을 하더라도 자녀가 없으면 사랑의 완성을 볼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완성적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을 거치는 과정이 인생살이의 근본이요, 하나님의 창조적 사랑 이상의 근본 길입니다. (선집 48-12)

생명은 사랑에서부터 태어납니다. 사랑에서부터 태어나 가지고 부모에게 사랑을 받다가 사랑으로 성장해 가지고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서 또 사랑하고 그 사랑 속에 죽어가니, 이것이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슬픔과 고통이 있을 수 없는 것이 본래의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본래의 우주의 근본 자리는 사랑을 중심삼고 종합적으로, 종횡으로 동시에 결합할 수 있는 기준이 됨으로써 부모의 사랑과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이 결합할 수 있는 근본자리가 됩니다. 그 자리는 온 우주가 집중하는 자리가 되며, 온 우주 세포의 방향이 집중하는 자리가 됩니다. 영계의 모든 신(神)들이 전부 여기에 집중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자리를 아무도 침범하지 못하도록 보호하게 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자리가 파괴당하면 큰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온전히 보호받기 위해서는 어떠한 형태가 필요한 것인데, 그 형태가 통일교회의 용어로서 사위기대(四位基臺)라는 것입니다. (성약Ⅰ-1066)


 3) 인간의 영원한 생명의 요소는 사랑

인간은 태아로 있을 때는 어머니로부터 공급되는 영양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사랑을 공급받았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렇듯이 지상에서 살고 있는 인간들도 우주(자연)로부터 물질적인 영양을 공급받을 뿐 아니라 생명의 본질적 요소인 사랑을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식물이 태양빛을 생명의 요소로 흡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들에게는 사랑이 생명의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영원히 사랑과 더불어 흠모하면서 살 수 있는 지상천국이나 천상천국이 건설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 사랑으로 태어났으며, 태어나서는 사랑을 받으면서 어린 시절에 성장하게 됩니다.
그러나 얼마쯤 성장하게 되면 부모의 사랑만으로는 부족하게 되며, 형제간의 사랑과 종족의 사랑을 중심하고 횡적인 사랑을 넓혀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즉 천지간의 모든 사랑을 받으면서 성숙되어 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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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사춘기 때에 접어들면 이성간의 사랑을 갈구하게 되는데, 이성간의 사랑을 함으로써 종합적인 사랑권에 진입하게 되어 비로소 사랑의 센터를 찾아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남자나 여자가 가는 길은 사랑 때문에 있으며, 사랑을 위해서 있습니다. 나의 길은 사랑의 길입니다. 사랑을 얻기 위해서,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사랑의 환경권을 이루기 위해서 가는 것입니다. 여자가 화장을 하거나 맛사지를 하는 것도 사랑 때문입니다. 원하는 것도 일을 하는 것도 모두 사랑 때문인 것입니다. 고귀한 사랑을 얻기 위해서 고난을 이겨내고 가는 것입니다. (성약Ⅰ-1066)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부모의 사랑을 받는 것이며, 부모가 생존해 있는 한 소년시대․청년시대․장년시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아 성장(成長)하게 되면 횡적인 부부(夫婦)의 사랑이 각자에게 벌어지기 마련입니다.
결혼이 뭐겠습니까? 남자는 여자에 대해 몰랐던 것을 배우기 위한 것이요, 여자는 남자에 대해 몰랐던 것을 배우기 위한 학교에 입학하는 것입니다. 모든 학점이 A플러스가 되어야 남편도 좋아하고 아내도 좋아할 것입니다. 아들딸을 낳는 것은 세계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한 것입니다. 아들딸이 없으면 미래와 연결되지 않습니다. 미래의 세계와 연결할 수 있는 교육의 재료로 아들딸을 준 것입니다.
그리고 조상들이나 할아버지, 할머니 앞에 효도하는 것은 영계로부터의 교육을 받기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이 모든 것이 연결됩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남편과 아내, 아들딸이 한 사랑을 중심으로 전부 연결돼 있는 것입니다.
인체의 혈관같이 영계의 천만 대 조상까지도 올라갔다가 내려올 수 있고, 먼 후손까지도 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곧 영계의 조직이요, 우주의 조직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것이 여기에 정복당하고 맙니다. 사랑의 종이 되고 사랑의 노예가 되는 것이 최대의 행복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약Ⅰ-1066)


 4)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것일까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한 번 알아보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을 무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마치 따스한 봄날에 하늘에는 흰구름이 두둥실 떠있고, 땅에는 아지랑이가 아른거리고, 벌레가 나돌고, 개미들도 세상 구경하겠다고 발랑발랑 기어나왔다 들어갔다 하고, 졸졸졸 흐르는 개울가에는 버들강아지가 움트고, 개구리가 봄날의 새노래를 부르고, 떼를 지어 날아드는 벌나비를 반기는 그런 환경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환경에 취해서 잠이 드는 것 같은데 잠은 들지 않고 기분 좋아서 영원히 좋다 할 수 있는 그런 맛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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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찾으시는 이상상대(理想相對)를 중심삼고 느끼는 기분은 나비가 날고 벌이 날아드는 꽃동산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요, 나빠요? 이 둔한 남자들은 그것을 모를 겁니다. 기분 좋다는 것입니다. 반가운 사람을 만나게 되면 손을 꽉 쥐고 악수를 합니다. 악수할 때 반갑다고 '아하, 이거 오래간만이군' 하면서 손을 꽉 잡으면 기분이 좋아요, 나빠요? 기분 나쁘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에라, 이자식아'하면서 발로 차버리라는 것입니다. 반가우면 손을 꽉 쥐어요, 안 쥐어요? 여러분은 그렇게 하면 좋아합니까? "좋아합니다." 좋아하고 싶은 것이지 좋아하기는 뭘 좋아해요? 알아야 좋아하는 것이지 모르면서 어떻게 좋아합니까? 그렇게 좋아하며 잡으면 손을 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기 있는 아가씨들, 시집가서 남편이 자기를 사랑해 주면 기분이 어떨지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사람은 솔직해야 합니다. 사랑해 준다면 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예 남편 옆에 딱 붙어 가지고 사는 겁니다. 남자가 소 앞발 같은 손으로 여자 손을 꽉 잡아 주는 것이 좋습니다.
영화를 보아도 그런 영화를 보고 싶어합니다. 여자가 남자에게 '아이구, 당신 손은 참으로 곱소' 하면 기분 나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영원한 것입니다. 사랑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하나된다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커플(Couple;한쌍)을 이루어 사랑을 하면 딱 맞붙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까지는 안 되겠지만 이 이상의 심정까지 간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을 가지고 산다면 하나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생각해 보세요. 전부 다 하나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남녀지간에 사랑하게 되면 별의별 일이 다 벌어집니다. 그렇지요? 그러나 하나님을 찾아갈 수 있는 길을 알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진짜 맛보면…. 그 하나님의 사랑은 세상에 어떤 것과도 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을 맛본 사람이 있다면 어떠한 고난도 그를 점령하지 못하고, 어떠한 슬픔도 그를 점령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절대적인 해방의 권이 있을 게 아니겠습니까? 이것을 찾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성약Ⅰ-1068)

하나님의 사랑은 크게 3대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그것은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입니다. 이 3대 사랑이 하나로 일치되는 중심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173-278)


 5) 사랑과 기쁨의 상속을 위한 하나님의 축복

하나님에게 있어서 제일 영광의 새아침은 육(體)을 쓸 수 있는 때입니다. 그 다음에는 사랑할 수 있는 사람(부부)을 갖는 때이고, 그 다음에는 손자를 사랑할 수 있는 때입니다. 아들딸보다 손자를 사랑할 수 있는 때가 더 영광의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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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하나님이 아담을 지어 놓고 얼마나 좋았더냐 하는 것을 어떻게 가르쳐 주었을까요? '야! 내가 이렇게 좋았다' 하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아들딸을 낳음으로 말미암아 가르쳐 줄 수 있습니다. 알겠어요? 사람이 어렸을 때는 부모의 사랑이 어떻다는 것을 모르지만, 나중에 가정을 이루어서 아기가 생기게 되면 부모의 사랑이 어떻다 하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부모가 나를 키울 때 사랑했구나 하고 알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가 배우자를 얻는 날이 영광의 날이고, 그 다음엔 그 아들이 자녀를 보는 날이 영광의 날입니다. (성약Ⅰ-936)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 합니다. 부모의 사랑을 알고 부모를 모실 줄 알아야 하며 남편의 사랑을 알고 남편을 모실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식의 사랑을 알고 자식을 모실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식에게 명령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셔 볼 줄도 알아야 합니다. 이해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식이 없어 가지고는 미완성 상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자식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모릅니다. 또 남편이 못 되어 보고서는 아내를 알 수 없고, 아내가 못 되어 보고는 남편을 알 수 없습니다. 자식도 부모가 될 때까지는 부모의 사랑이 어떤 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들딸 없으면 참된 부모가 못 되는 것입니다. (성약Ⅰ-937)

부모가 자식의 결혼을 원하는 것은, 자식들에게 부모의 사랑을 모두 상속해 주고 싶고 전수해 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어버이는 죽어 가면서 후손에게 그 실체를 남겨 놓습니다. 그러므로 후손이 필요한 것입니다.
사랑은 영원히 계속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인간의 최고 원망(願望)이므로 만민이 쌍수를 들고 상속하고자 합니다. 그 사랑을 남겨 놓음으로써 영계에서도 당당히 하나님 앞에 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사랑을 완수할 수 있는 곳이 가정입니다. 가정을 통해 천국으로 간다는 것은, 곧 사랑의 일체권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원리 원칙을 따라 나가야 합니다. 봄이 되면 씨를 뿌리고, 여름이 되면 무성해지고, 가을이 되면 열매를 맺고, 겨울이 되면 모든 것을 정리하여 새로운 생명의 근원을 자기 내심에 지녀야 합니다. 그래야 재봉춘하게 되면 또다시 이것이 심어질 수 있는 씨앗이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앞으로 여러분들이 부모가 되어 여러분과 같은 아들딸을 낳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아들딸을 여러분과 같이 키워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들딸이 없으면 왜 섭섭합니까. 그것은 서클라인(circleline)을 형성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새들이 새끼들에게 먹이를 주는 것을 보면, 어미의 지극한 사랑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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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인들은 모르겠지만 동양에서는 어른들보다 아이들을 좋아합니다. 어른들을 향해서는 깍듯이 공경하지만 아들딸들에게는 지극한 사랑을 아끼지 않습니다. 아들딸을 낳고 길러 봄으로써 부모가 자식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인간들은 누구나 결혼을 한 후에 자녀들을 낳고 길러봐야 합니다. 그래야 자식 사랑과 부모의 사랑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서양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들딸을 낳고 기르기를 기피하고 있습니다. 아들딸이 자신들이 결혼하고 이혼하는데 방해가 된다는 생각 때문에 자기 자식 갖기를 꺼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태어나서 사위기대를 이루지 못하면,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는 심정을 알지 못하므로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약 Ⅰ-937)


 6) 사랑의 센터를 찾아가는 인생행로

인간은 사랑으로 낳고, 부모의 사랑 가운데 크다가 횡적으로 사랑을 넓혀가면서 성숙하게 됩니다. 횡적인 사랑은 이성의 상대를 만나 일 단계 완성하게 되는데, 천지의 사랑을 대표할 수 있는 기준에 들어가면, 그 열매로 자식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자식은 핵심적 심정의 자리에서 생겨난 사랑의 결과로서 태어나게 됩니다.
남자와 여자가 심정적 사랑을 주고 받을 때 태어난 아들은 사랑의 핵심으로 통하는 길을 만들어 주는데, 그 센터로 통해서 가면 바로 하나님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사랑의 열매로 자식을 가짐으로써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고 나아가 인간을 창조하셨던 사랑을 체휼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부모의 사랑으로 태어나 받았던 사랑을 자식을 사랑해 봄으로써 부모의 심정을 체휼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쏟아 나온 사랑은 물질적인 사랑이 아니라 본질적인 사랑인 것입니다.
천지가 변하여도, 역사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사랑인 것입니다. 부모가 되어 자식을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이 인간을 어떻게 사랑하여 오셨는가를 미루어 짐작하게 되고, 체험을 통해서 확인하게 됩니다. 부모가 되어 자식을 사랑함으로써 부모가 나를 어떻게 얼마만큼 사랑했는가를 느끼고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늙은 부모에 대해 더욱 공경하고 사랑으로 효도의 도리를 다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부모의 자격도 없을 뿐 아니라 자식에 대한 사랑도 위선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인간은 부모가 되어 자식을 사랑해 봄으로써 하나님이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여 왔는가를 느끼고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보다 진실로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자식에 대한 사랑보다 늙은 부모를 더욱 사랑해야 하고, 늙은 부모보다 하나님을 더욱 사랑해야 하는 것이 사랑의 질서이고 법도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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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태어날 때 사랑으로 태어났으며, 태어나서는 사랑을 받으면서 어린 시절을 성장하게 됩니다. 그러나 얼마 쯤 성장하게 되면, 부모의 사랑만으로는 부족하게 되며, 형제간의 사랑과 종족의 사랑을 중심하고 횡적인 사랑을 넓혀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즉 천주간의 모든 사랑을 받으면서 성숙되어 가는 것입니다. 특히 사춘기 때에 접어들면 이성간의 사랑을 갈구하게 되는데, 이성간의 사랑을 함으로써 종합적인 사랑권에 진입하게 되어 비로소 사랑의 센터를 찾아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천지는 구형세계이기에 횡적인 사랑을 주고 받아 돌면서 원형을 일차적으로 이루게 됩니다.
특히 이성을 상대자로 택해서 사랑을 주고 받을 때, 결실을 보게 되어 자식을 갖게 되고 부모가 되는데, 이때 서로가 상호간에 사랑을 주고 받아 돌게 되면, 횡적인 사랑에 이어 종적인 사랑도 이루게 되어, 구형세계를 이룸과 동시에 사랑의 센터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운동을 통해서 생겨난 사랑의 센터는 모든 피조세계의 존재의 핵이기도 합니다. 지구가 존재하는 것도 이 사랑의 센터를 중심하고 운동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센터는 운동을 계속할 수 있는 무한한 힘이 모인 곳입니다. 이처럼 사랑의 구형을 통해서 생겨나는 센터는 그 자리에 바로 하나님이 계시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사랑에 의하여 창조되고 존재하며, 하나님의 사랑의 센터를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사랑의 용광로이신 것입니다. (선집126-243)


 7) 3시대를 가는 인생노정

인간은 어머니 뱃속에 있다가 태어나, 일정기간을 땅에서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기 마련입니다.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는 어머니 뱃속에서 10개월을 보냅니다. 뱃속에 있을 때 어린 태아의 자유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영양을 탯줄로 이어받고 자라면서 두 손가락을 폈다 움츠리거나 입을 벌렸다 오무렸다, 두 발로 버둥대는 것이 전부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 태아는 어머니 뱃속이 자유천지이며 생의 전 영역일 것입니다. 그 태아가 10개월 만에 세상에 태어나 자라게 되는데, 그 이후의 세계가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지상세계이며 인간 사회인 것입니다. (성약 Ⅰ-1071)

사람이 왜 태어났느냐? 사랑을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부모의 사랑에 뿌리를 박고 복중에서, 어머니 아버지의 보호와 사랑의 품인 복중에서 자라다가 20세까지 철모르고 부모로부터 진자리 마른자리 다 탓하지 않고 추한 것을 추한 것인 줄 모르고 다 기쁨으로 소화시킬 수 있는 사랑 가운데서 자라다가, 사랑의 상대자를 만나서 서로 위하는 천리의 사랑에 접붙여야 합니다. 그런 일생 과정을 가다가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만큼이냐 하는 것을 체험해야 하나님의 대상 사랑의 실체권이 완성되기 때문에 아들딸을 낳아 가지고 사랑하게 하는 것입니다. (선집 143-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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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태어난 인간은 우주를 태아적 어머니의 뱃속에 비유되는 삶과 같이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우주 어머니 품속에서 인간 백 년의 생애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태아가 어머니 뱃속 밖의 인간 세상을 몰랐듯이 오늘 지상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은 죽음 이후의 무형 실체 세계에 대한 실재를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짐작하여 어머니 뱃속에서 인간 세계에 대해 알지 못했지만 실재하는 것을 확인하고서 사후세계도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심증을 가질 뿐인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간이 사후세계에 대한 심증적 존재 여부에 상관없이 확실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후세계는 인간이 감지할 수 있는 오관 작용 밖에 있기에 종교를 통한 믿음으로 불신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약Ⅰ-1071)

인간에게는 3시대가 있습니다. 동물계에도 수중시대가 있고, 육지시대가 있고, 공중시대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이 3시대를 거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요, 모든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려면 사람도 수중시대가 있어서 어떤 존재보다도 완전한 생활체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 다음엔 육지시대가 있어서 어떤 동물보다도 최고의 자격을 가진 존재여야 합니다. 그 다음엔 공중시대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날개가 없습니다. 날개가 없는데 어떻게 날 수 있느냐? 그 날아 다니는 어떠한 새보다도, 어떠한 곤충보다도 높이 날 수 있고 멀리도 날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돼야 하느냐? 그것은 실체인 육신 가지고는 안 됩니다. 암만 뛰어봐야 얼마 못 갑니다.
그렇지만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고 하나님이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주관권이라든가 상대적 자리에 서려면 그 활동무대가 하나님과 같아야 합니다. 오늘날 전기나 빛으로 말하자면, 빛의 속도는 1초 동안에 30만 킬로미터를 갑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 빠른 작용을 할 수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것은 바로 영인체입니다. (선집 112-202)

우리들이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이 세상만 있는 것이 아니고 영계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가야 할 곳, 우리가 가서 살아야 할 곳이 어디냐? 영계입니다. 영계란 사랑의 공기가 충만한 영원한 세계입니다. 때문에 일생은 영원한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선집 14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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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지상생활은 영계의 박자를 맞추기 위한 훈련장소

본인은 영계의 체험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인데, 영계는 사랑의 성분으로 뒤덮여 있는 곳입니다. 지구는 공기로 뒤덮여 있지만 영계는 사랑으로 쌓여 있는 곳입니다. 인간은 땅에서 공기를 마시고 가스를 뿜어내지만 영계는 사랑을 마시며 살게 되어 있습니다. 영계는 오늘날 인간의 속된 사랑을 중심삼고 주고 받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영계에서 주고받는 사랑은 참된 사랑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영계에 가보면 그 세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즉 부모․형제 자매․부부․자녀에 대한 사랑을 충분히 가진 자, 즉 가정생활에서 깊은 사랑의 경험을 한 사람은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어디든지 아무 제한없이 어느 방향으로라도 갈 수 있습니다. 그 반대로 사랑의 경험이 없는 사람은 속이 좁고, 영계에서도 자기 혼자 고립되어 있고, 자유가 전혀 없습니다.
부자간의 사랑은 종적인 관계이고, 부부간의 사랑은 횡적인 관계이고, 형제 자매간의 사랑은 선회하며 에워싸는 관계인 것입니다. 이 세 관계는 서로 다릅니다. 그러므로 지상에서 이 세 가지의 서로 다른 방법으로 깊은 사랑의 경험을 가져야만 제한없이 종적, 횡적, 원으로 선회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부모가 일찍 돌아감으로 인해 부모의 사랑을 맛보지 못한 사람은 매우 중요한 사랑의 경험을 못 했기 때문에 다소 비극적인 사람이며, 같은 식으로 가정생활, 즉 부부관계를 경험 못 한 자는 생의 중요한 부분이 부족하기 때문에 영계에서는 매우 초라한 사람이 됩니다.
또한 형제 자매가 없는 사람은 모든 분야의 결핍으로 완전한 생을 살 수 없으므로 영계에서 초라한 입장에 처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왜 결혼해야 되느냐?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을 체험하기 위해서 결혼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왜 필요하냐? 그러한 사랑의 공기가 충만한 곳이 영계입니다. 영계의 박자를 맞추기 위한 훈련을 하기 위해서 가정을 가져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못 느끼고 가는 사람은 저나라에 가서 박자를 맞출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랑의 공기를 맡을 수 있는 코가 없는 사람과 같다는 것입니다. (성약Ⅰ-1067)

여러분은 아버지 어머니에게서 태어났습니다. 그 다음에 더욱 근본적인 것은 아버지 어머니 뱃속을 빌어서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났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우주의 부모를 통하고 육신의 부모를 통해서 참부모를 찾아가게 됩니다. 육신의 부모는 통과의 부모입니다. 그래서 죽음의 순간은 참된 부모를 만나러 가는 환희의 시간입니다.
거기에는 참된 부모의 참된 사랑이 있습니다. 그곳을 천상천국이라고 합니다. 그곳의 구성요소는 사랑이며, 그곳은 부모의 사랑으로 충만해 있습니다. 그 사랑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봉사와 희생의 원칙 아래 일방적인 법도를 통할 수 있는 사랑입니다. 거기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우주를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해야 합니다. 지상생활은 그러한 사랑을 위한 훈련 장소입니다. (성약Ⅰ-1072)

이 땅 위에 있는 생활이 얼마나 중요하냐? 한 번밖에 없습니다. 순간인데 한 번밖에 없습니다. 지상생활을 영생에 비유하면 이것은 한 점에 불과합니다. 너무나 짧은 순간입니다. 이 순간의 때에 육신생활을 넘어 영계를 위해서 준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선집 20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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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장 창조 본연의 남녀사랑


 1) 창조 본연의 남녀사랑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이 세우려던 뜻과 일치하느냐, 또 하나님이 인간에게 원했던 그 기준에 일치하느냐가 문제됩니다. 남자와 여자가 사랑할 때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모델적인 사랑과 일치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최초의 남자 여자가 사랑으로 하나됐다면, 그것은 사랑을 중심삼은 우주의 모델이 되었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하나님도 인간 앞에 그러한 사랑을 원했을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도 마찬가지로 서로 상대에게 그러한 사랑을 원했을 것입니다. 그와 같은 참사랑은 우주핵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미터법과 같은 하나의 표준형이 되는 것입니다. (성약Ⅰ-335)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은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사랑은 하나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남녀가 서로 그리워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소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곧 남녀가 사랑으로 하나된 자리에 하나님이 임재하시기 때문입니다. (성약Ⅰ-336)

이성성상의 모체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남자와 여자의 존엄한 가치를 찬양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귀한 가치를 더더욱 찬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남자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여자가 있고, 그의 대상인 여자의 마음 속에도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남자가 있어서 함께 기리게 될 경우에는 하나님도 그것을 보고 기뻐하실 것이며, 온갖 만물도 서로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서로 포옹하는 기쁨의 내용이 하늘과 땅이 함께 기뻐하는 가치가 됩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좋아하여 포옹하는 그것 자체가 우주가 일체를 이루는 자리가 됩니다. 하나님의 이상 가운데 이루어지는 창조 본연의 모습은 그러합니다. 원래 남자는 자신이 기뻐할 수 있는 여자를 맞이하고, 여자 역시 자신이 기뻐할 수 있는 남자를 맞이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 한계를 넘어서서 하나님도 기뻐하고 모든 만물이 기뻐하는 만남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 세상의 모든 존재물이 그 부부를 위해 동원되고 그들에 의해 주관받기를 원하게 됩니다. 새들은 그들을 위해 노래를 부르고, 나비는 기뻐하며 나풀나풀 춤을 추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사람도 기뻐하며, 온갖 만물도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입장을 이루어 인간 조상이 역사를 출발시켰더라면 그야말로 창조 본연의 이상세계가 되었을 것입니다. (성약Ⅰ-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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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남자와 여자가 태어난 이유

본래 남자가 태어난 본뜻이 어디에 있느냐!
여자 때문에 태어났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반대로 여자는 여자 때문에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남자 때문에 태어났다는 사실을 스스로가 확신하지 못 하면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천지 창조의 대주재이신 하나님이 창조의 원칙으로 했기 때문에, 그 원칙을 따라가지 않고는 선하고, 참되고, 행복하고, 평화스러운 세계 혹은 사랑과 이상의 세계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자는 남자를 만나려고 태어났고, 남자는 여자를 만나려고 태어났지요? 이것이 최고의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원칙을 따라서 축복권을 찾아 나가야 합니다. 최고의 진리권을 이탈하는 것은 최고의 악입니다. (성약Ⅰ-338)

남자와 여자는 생리적으로 전부 다 반대입니다. 여자들은 일방적인 데 비하여 남자들은 삼방 사방적입니다. 또, 여자들은 집 안에만 있지만 남자들은 이리저리 세상을 돌아다닙니다.
이와 같이 성격이 전부 다 반대입니다. 이러한 주체적인 남성과 상대적인 여성이 무엇을 중심삼고 하나되느냐?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입니다. 인간과 하나님을 하나되게 하는 것도 사랑입니다.
남자가 태어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학문이나 돈, 권력 때문이 아닙니다. 여자 때문입니다. 여자 때문에 남자가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남자의 골격이 여자보다 큰 것은 자기만 벌어먹고 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녀와 아내를 벌어먹이기 위해서입니다.
남자가 갖고 있는 기관과 여자가 갖고 있는 기관은 서로 틀립니다. 그것을 누구 때문에 갖고 있습니까? 그것은 자기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닙니다. 남자의 것은 여자 때문에 생겨났으므로 여자의 것입니다. 여자의 것은 물론 역으로 남자의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해 봤어요? (웃음 ….) 웃을 얘기가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의 사랑의 상징이 무엇이냐? 사랑의 종착지점이 어디냐? 남녀를 한몸으로 이루게 하는 성기관(性器官)입니다.
그것은 사랑을 중심삼고 마음과 몸이 완전히 합할 수 있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남자가 가지고 있는 것이 남자의 것이 아니요, 여자가 가지고 있는 것이 여자의 것이 아닙니다. 남자는 여자의 것을 가지고 있고, 여자는 남자의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태어나기를 자기 때문에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상대 때문에 태어났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왜 남자와 여자가 지구상에 태어났느냐? 서로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은 지혜의 대왕이시기 때문에 사랑의 기관을 서로 바꿔 주었다는 것입니다.
남자의 것이라고 해서 그 주인이 남자가 아닙니다. 여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인을 남겨 놓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한 사람은 사랑을 위반한 것에 대한 심판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법 중에서 가장 무서운 법의 벌을 받는다는 것을 안다면, 자기 아내를 두고 감히 딴 생각을 할 수 있습니까? 반대로 부인들은 남편을 놔두고 다른 생각할 수 있습니까? (성약Ⅰ-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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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남자와 여자는 서로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

여러분, 사랑은 절대로 필요한 것이지요? 그렇지요? 그 사랑에 절대 필요한 요소는 인간입니다. 남자와 여자입니다. 여자에게는 남자가 필요하고 남자에게는 여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얼마나 필요하냐? 대한민국보다도, 세계보다도,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보다도 더 필요한 것입니다. 또한 여자가 없으면 백 년 이내에 인류는 전부 다 멸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남자가 아무리 천하를 통일했다고 으스대더라도 여자가 없다면 백 년 이내에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자는 절대 필요합니다. (성약Ⅰ-340)

'사람' 하게 되면 남자, 여자를 말하게 됩니다. 한 남자를 두고 보면 여자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요, 여자를 두고 봐도 남자가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남자 스스로가 자기가 원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지만, 그 남자 앞에 필요한 그 여자도 자기가 원해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태어나고 보니 남자가 됐고 여자가 된 것입니다.
남자로 태어날 때 여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태어났어요, 모르고 태어났어요? 태어나 가지고 보니 남자 혼자라면 기분이 나쁠 것 아니예요? 또, 여자로 태어나고 보니 여자 혼자라면 기분 나쁠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러니 여자가 태어날 때 남자가 있는 것을 알고 태어났어요, 모르고 태어났어요? 나는 비록 모르고 태어났지만, 나를 낳아 준 분은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여자로 태어난 것은 나를 필요로 하는 남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남자로 이렇게 태어난 것은 나를 필요로 하는 여자가 있기 때문에 남자로 태어난 것입니다. 그렇지요? 다 알고 그렇게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성약Ⅰ-340)

남자에게 절대 필요한 존재는 여자입니다. 하나님을 절대 필요로 하기 전에 여자란 상대적 존재가 있어야 합니다. 인류 역사가 불행했던 것은 남자들이 절대 필요의 존재로서 여자를 바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여자에게 있어서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가 남자라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참사랑의 맛을 느끼기 위해서는 이상권을 가져야 하는데, 남자에게는 여자가 필요하고 여자에게는 남자가 절대 필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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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랑을 위한 절대적 남자와 여자는 일심노력에 의하여 맺어지며, 절대적 남자와 여자가 하나로 맺어졌을 때는 하나님이 두 사람 가운데 임재하게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참사랑으로 맺어진 부부가 헤어지는 것은 하나님도 싫어하기 때문에 절대적 남자와 여자의 사랑은 영원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지만, 그 절대적 존재도 홀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한 남자가 미남이고 건강한 사람이라 해도 여자 없이는 그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자신의 미모나 건강에 취해서 사는 남자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흉물스러운 존재일 뿐입니다. 그렇게 자아 도취에 빠져 사는 남자가 세상에 많다는 것이 문제이고, 역사가 비극으로 흘러 온 원인이기도 한 것입니다. 자기 도취에 빠져 돌아가는 세상을 개선하고 변화시켜 나오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였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성약Ⅰ-341)


 4) 사랑은 상대로부터 온다

사랑은 혼자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사랑은 어디서 나오는 것입니까? 나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상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상대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내가 머리를 숙이고 상대를 위해야 되는 것입니다. '위하여 살라'고 하는 천리가 여기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지극히 고귀한 것이 나에게로 찾아오는데, 그것을 받으려면 높이고 위해야 한다는 '위하는 철학'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사랑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란 것은 자기 혼자서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남자가 혼자 있을 때 사랑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남자 앞에 상대가 되는 여자가 나타나야 사랑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처럼 상대가 나타나야 비로소 사랑이 생겨납니다.
부모의 사랑이 좋고 부부의 사랑이 좋다 할 때, 진짜 사랑은 자기를 중심삼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이란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남편으로부터, 아내로부터 사랑이 생겨나는 것이요, 아들로부터, 형제로부터 사랑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상대가 사랑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성약Ⅰ-342)

사랑은 어디서부터 나오느냐? 상대로부터 나타납니다. 상대가 못생기고 미우면 사랑도 후퇴하려고 하고, 상대가 곱고 좋으면 사랑의 작용도 그만큼 빨라집니다. 상대의 말(言語), 아름다움(美), 냄새, 맛 등 상대의 요소에 따라 사랑의 작용이 결정되게 됩니다.
사랑의 근거지는 어디냐? 사랑의 근거지는 내가 아닙니다. 사랑이라는 명사는 상대적 관념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상대가 없게 될 때는 제아무리 미남자라도 혼자는 사랑할 수 없기 때문에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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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근거지는 내가 아닙니다. '사랑은 나로부터다' 하는 것은 사탄이 지금까지 이용한 말입니다. 사랑의 근거지는 내가 아닙니다. 사랑의 근거지가 자기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사고방식을 전부 다 뜯어고치지 않고는 미래의 역사도 발전이 없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부인은 부인대로 자기가 중심이요, 남편은 남편대로 자기가 중심이라고 해 가지고 서로가 위하라 하니 파탄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근거지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있기 때문에, 그 사랑을 내가 갖기 위해서는 내 자신이 그 사랑 앞에 희생해야 합니다.
사랑은 반드시 희생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또 사랑은 극복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오늘날 사탄 세계를 극복할 수 있는 내용은 이 천지간에 딴 곳에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랑의 원칙을 따라 가지고만 찾을 수 있겠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랑을 딱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자비라는 말도 사랑이 없이는 안 나오는 것입니다. 인(仁)이라는 말도 혼자로는 나오지 않습니다.
자비나 인이라는 말도 전부 다 상대적인 개념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성약Ⅰ-343)


 5) 이성간에 사랑의 조화를 이루면

남자는 하늘을 상징하고, 여자는 땅을 상징합니다. 두 사람이 합하여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릅니다. 남자의 근육은 울퉁불퉁하고 여자는 미끈합니다. 남자는 수염이 나는데 여자는 수염이 나지 않습니다. 목소리도 다릅니다. 남녀를 비교해 보면 상대적인 것이 어울립니다. 조화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이란 육적 구조를 볼 때 좌우로 상대적입니다. 반반을 딱 붙여 놓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높기만 하거나 낮기만 한 것이 좋습니까? 조화를 이루는 것이 좋습니다. 수평선을 중심으로 아래는 어류가 살고, 위에는 포유류, 조류 등이 살고 있습니다. 여자는 한 달에 한 번씩 생리를 합니다. 달을 중심삼고 조수가 바뀌는 것 같이 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호흡작용과 같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조화를 이루어 평형선(平衡線)을 이루어야 합니다.
올라가고 내려가고 도는 각종 시설이 구비된 디즈니랜드를 사람들이 왜 좋아하느냐 하면, 우주가 그렇기 때문입니다.
남자끼리 화동(和動)하는 것과 남자와 여자가 화동하는 것 중에 어느 편이 기분이 좋겠습니까? 남자와 여자가 화동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주가 그렇기 때문입니다. 우주가 음양의 조화를 이루어 화동하기 때문에 박자를 맞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약Ⅰ-344)

이성간에 사랑의 조화를 이루면 하나의 원형운동을 이루게 됩니다. 이성이 사랑으로 일체가 되고 사랑의 열매를 맺게 되면, 하나님은 내려오고 인간은 올라가게 되어 중앙에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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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이 원형의 구심점이 되어 구형운동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구심점에서는 사방 어디든지 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구심점은 사랑의 조화가 이루어지는 곳이고, 생명이 태동하는 자리이며, 평등주의와 공동주의의 시발점인 것입니다. 그곳에는 사랑의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주의 모든 작용과 포용하는 힘은 사랑인 것입니다. (성약Ⅰ-345)

인간에게 있어서 사랑은 영원한 것이며, 둘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 사랑으로 맺어지면 지상에서 백년해로를 해야 하고, 죽어서도 영원히 함께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몸은 둘이지만 하나되어 돌아감으로써 일체가 되는 것입니다.
두 몸이 하나되면, 하나님과 같이 돌게 되어 사랑의 사위기대를 이루게 되니, 그것이 바로 사랑의 이상세계인 것입니다. 거기에는 거짓 사랑이 침범할 수 없으며, 오직 참사랑만이 임재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남자와 여자가 축복을 받아 완성된 자리를 이루면 하나님은 언제나 찾아오시게 됩니다.
사랑의 사위기대를 이루게 되면 상대편을 몸을 통하여 마음까지 사랑하게 되고, 마음을 사랑하게 되면 몸까지 따라오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성약Ⅰ-346)


 6) 참사랑에 취한 본연의 인간

이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것이 무엇입니까?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것은 참사랑입니다. 참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합니다.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면 그 외의 길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참사랑의 길이며, 참사랑의 길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통해 보고 듣고 먹고 만져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인간도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의 입맞춤을 받았다면 내부가 폭발할 것 같은 희열을 느낄 것입니다. 하나님의 바람은 여기에 있는 것이지, 다이아몬드나 보석을 소유하였다고 해서 기쁘다고 하시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약Ⅰ-381)

인간의 일신을 본다면 인체는 오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오감의 인식에 의하여 참사랑을 느끼고 확인하게 되어 있습니다. 눈이 참사랑을 향해 있다면, 그 눈은 참사랑에 물들어 취하게 되어 있습니다.
취한 눈동자의 색깔이 얼마나 아름답게 빛나겠습니까? 참사랑에 빠져 있는 사람의 미소짓는 입술은 얼마나 황홀하겠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인간의 오감이 참사랑에 취해 움직이는 모습, 하나님을 향해 움직이는 오감의 조화가 얼마나 아름답겠는가를 상상해 보십시오.
그러한 아름다움을 통한 기쁨을 하나님 혼자서는 체험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아름다움은 상대가 있어야 체험하게 되는 것으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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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랑에 취한 눈동자를 매만져 보고 싶고, 입술에 입맞춤하고 싶으며, 마음의 선율을 한 번 켜 보고 싶은 아름다운 남자와 여자가 있다면, 하나님은 어떠하시겠습니까? 참사랑의 해와가 있다면 해와의 심정세계를 한 번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실 겁니다.
아름다운 해와의 심정세계, 심정권이 얼마나 넓고 깊은가를 확인하고 싶은 충동을 가지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천지를 창조하신 것 이상으로 아름다운 내용을 소유한 아담과 해와의 심정세계를 여행하시고 싶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사랑의 인간에 대하여 우주를 여행하는 것 이상으로 그 심정세계를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실 것이 확실하며, 참사랑의 아담과 해와의 심정세계를 영원히 떠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신 이후 인간의 참사랑에 빠져 사랑의 미아가 되었다면, 세상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인간 가운데 하나님이 거하시게 될 것이니,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되어 만들어낸 세계는 기쁨과 아름다움이 충만한 세계일 것이 분명합니다. (성약Ⅰ-382)

참사랑이 완성됐다면 감응의 하나님께서는 그 참사랑에 홀딱 빠져도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참사랑 가운데서라면 어떤 일이 생겨나도 마냥 좋아하실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참사랑의 세계에서 인류가 산다고 한다면 일생동안 후회 없는 행복된 삶이 될 것입니다. 또한 세상에 전쟁의 역사도 없을 것이며, 불만이나 불행이 없는 세계가 되었을 것입니다. (성약Ⅰ-383)


 7) 사랑은 극히 자연스러운 데서 이루어진다

선생님이 어렸을 때 있었던 이야기인데, 어느 날 새를 한 쌍 잡아다가 둘의 부리를 입맞추는 놀음을 한 적이 있습니다. 둘이 입맞추는 것을 보기 위해 울타리를 마련하고 먹이도 주면서 관찰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서로 사랑하고 즐겁게 노래하는 것을 보고싶은 어린 마음에서 그랬던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자연의 이치를 밝히 알기 위한 하나의 호기심어린 실험 같은 것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마냥 짓궂기만 한 행동들을 계속했던 것입니다.
사랑은 자연스런 가운데 이루어진다는 것을 오랜 뒤에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사랑은 자연스런 가운데, 최고의 자유스런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진실한 사랑인 것입니다. 선생님이 사랑에 대해서 바로 알기는 오랜 실험을 거친 결과였습니다. (성약Ⅰ-353)

사랑의 가치를 잃은 사람을 대학교육을 시킨다고 무엇이 달라지겠습니까? 그들은 모두가 지식을 쌓을 뿐이고, 개인주의자가 될 것이고, 물질주의 신앙자만 만들어 낼 뿐인 것입니다. 된장찌개는 뚝배기에 담아야 제 맛을 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격수양도 사랑을 바탕으로 해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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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문명의 꽃은 미술적 조화를 갖춘 바탕 위에 꽃피워야 합니다. 구운 갈비는 접시에 담아야 하고, 된장국은 뚝배기에 담아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텁텁하고 구수한 된장국 맛은 한 번 맛들이면 어디 가나 잊을 수 없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구수하면서 텁텁한 맛 같은 사랑에 한 번 맛들이면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달기만 한 인스턴트 식품은 금방 싫증을 느끼는 것처럼, 사랑도 인스턴트 식품처럼 아무 곳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참사랑이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요즈음은 인스턴트 식품 같은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도처에 널려 있는데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향수탕에 들어가 목욕한다고 해서 사랑이 깊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시골에 살면서 냉수에 몸담가 씻어내고 잠자리에 드는 부부의 사랑이 더욱 순수하고 오래가며 깊어지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부부가 키스를 하기 위해서 이를 닦는다고 하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사랑이 아니며, 치약냄새 때문에 그 사람만이 갖는 고유한 체취를 맛볼 수 없을 것입니다. 이를 닦고 키스하는 사람을 보고 있으면 그 사람이 사랑의 맛을 보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치약냄새를 맛보기 위한 것인지 모를 정도입니다. (성약Ⅰ-354)

여러분들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면 포옹하고 싶고 입맞춤도 하고 싶은 것은 자연적인 이성간의 본능인 것입니다. 내가 환경과 접하고 있는 것은, 이 우주를 좋아하기 위해서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상대를 찾아 세우기 위한 인간의 자연스런 행위인 것입니다.
모든 인간이 상대적 이념 아래서 남자는 여자를 대하고, 여자는 남자를 대할 때 여기에는 사랑의 질서를 위반하는 행위나 사건은 없을 것입니다. 참된 사랑의 질서는 상대적인 이념을 바탕으로 남자와 여자가 만날 때 생기는 것입니다. (성약Ⅰ-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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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장 사춘기의 변화와 참된 결혼


 1) 결혼의 의의

결혼은 행복한 궁전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의식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결혼은 인륜의 대사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시공을 초월하여 인간사에 있어 가장 위대한 것이며, 결혼은 그러한 사랑을 드러내고 확인하는 의식인 것입니다.
왜 결혼식을 축복받는다고 하느냐? 우리 원리를 두고 볼 때,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지 않고 완성하였더라면 축복의 자리에 나갔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의 실체대상(實體對象)으로서 하나님이 주체가 되시면 그들은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사랑의 주체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대상적인 입장의 사랑을 연결시킬 수 있는 그 터전으로서 개성을 완성하여 결혼함으로 말미암아 축복은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완성은 결국 결혼을 말하는 것이요, 결혼은 하나님의 사랑의 현현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결혼이 없었다면 오늘날 인류 세상에 있어서의 사랑이라는 것이 시작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주인은 누구냐? 인간이 아니고 하나님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 가운데 나타나게 될 때,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자랑이 되며 하나님적 사랑으로서 이것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혼자 있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 관계가 형성될 때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남자가 사랑을 이루려면 남자 혼자만으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와 같이 아담과 해와가 비로소 사랑으로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난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성약Ⅰ-356)

천지간의 모든 이치가 주체와 대상으로 이루어졌듯이 남녀가 결혼하는 것도 천지간의 이치인 것입니다. 남자가 오른쪽이라면 여자가 왼쪽이 되므로 우주간의 횡적인 관계를 이루기 위함이요, 남자가 주체라면 여자가 그의 대상이 되므로 하나님과의 종적인 상하관계를 이루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결혼이란 남자만을 위함도 아니요, 또 여자만을 위함도 아닌 천리의 법도를 맞추기 위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성과 여성이 서로 다른 모양을 갖추고 있습니다. 천리의 법도를 맞출 수 있도록 생겨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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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라는 것은 사랑하는 두 사람이 외로울 때 위로하고, 기쁠 때 함께 기뻐하고 어려울 때 도와줄 수 있는 상대적 위치에서 주고받으며, 하나님 앞으로 가는 데에 있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바탕으로 생활하기 위하여 결합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결혼생활입니다.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하늘에 만들지 아니하시고 땅 위에 만든 것은 평면적 기준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횡적으로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즉,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조성하여 횡적으로 하나되게 될 때는 주체되는 하나님과 둘이서 하나된 사랑이 종적인 사랑의 인연을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지극히 중요합니다. (성약Ⅰ-357)


 2) 결혼은 왜 하는가

남자는 여자를 찾아가기 위해서 태어났고 여자는 남자를 찾아가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여자와 남자는 둘이 합하여 보다 차원 높은 하나님의 사랑에 접하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혼자는 그 사랑에 접하지 못합니다. 혼자 접하더라도 그것은 일방적입니다. 입체적이고 구형적인 사랑에 접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녀가 보다 높은 차원의 입체적인 사랑권 내에 점핑하기 위해서 결혼하는 것입니다.
본연의 세계에 있어서 남자 여자가 하나되면 될수록 그 힘의 작용에 있어서는 위대한 중심이 생겨나 구형이 되는 것입니다. 횡적으로 연결되면 될수록 종적인 힘의 사랑의 모체가 연결돼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몸과 마음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성약Ⅰ-359)

결혼은 왜 하는 것이냐? 천국가는 데 도움이 되기 위해서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천국 가려면 결혼하지 않으면 못 가니까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 갈 자격자가 되기 위해서는 결혼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천국 갈 자격이 뭐냐? 하나님을 닮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해야 닮는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내 사랑으로 만드는 것이요, 하나님이 하는 말을 내 말로 할 수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세계를 대해서 '인류야! 너는 천국 가야 된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천국 가기 위해서는 하나님같이 내가 인류를 사랑해 가지고 데려간다' 그러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람이요, 하늘편의 사람이요, 천국 갈 수 있는 후보자다 하는 결론은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날에는 결혼할 자격이 된다 그말입니다. 자! 결혼을 왜 한다구요? 천국 가기 위해서. 그리고 인류를 위해서.
남자 앞에 있는 그 여자는 하나님의 딸이요, 인류의 딸인 것을 남자들은 알아야 합니다. 인류가 사랑하는 여성으로서 사랑할 수 있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딸로서 사랑할 수 있으면 남편될 자격이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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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그 반대입니다. '저건 내 남자야' 하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 남자라고 하기 이전에 하나님의 아들이요, 인류의 남성을 대표한 남자라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인류가 사랑하는 이상 사랑할 수 있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이상 사랑할 수 있는 여성이 되면 됩니다.
그래서 내가 남자로서의 오른발이 되고 여자로서의 왼발이 돼 가지고 인류를 위하고 하나님을 위한 사랑의 발자국을 가정을 통해서 옮겨 놓을 것이다 하는 생각을 가지고 결혼을 해야 합니다. 결혼의 목적은 남자와 여자의 마음의 세계를 일치시키자는 것이요, 남자와 여자의 사랑의 완성을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했다는 것은 그러한 증거를 보이겠다고 선포한 것입니다. 결혼 생활을 통해서 사랑의 완성과 마음의 완성을 이루었다면 가정의 이상을 실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죽을 때 이것을 이루었다면 틀림없이 천국 간다는 것입니다. (성약Ⅰ-360)


 3) 참된 결혼관

본래 몸과 마음이 완전히 하나된 아담과 해와가 종적으로 완전히 성숙되어 신랑 신부로서 하나님 앞에 기쁠 수 있는 대상권을 이루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적 사랑에 의한 가정이 형성되었다면, 그것이 본래 에덴에서 타락하지 않고 이루었을 완성권이었습니다.
그 완성권에 나타난 아담과 해와가 되었더라면 그 자리는 어떠한 자리냐? 축복받는 자리입니다.
복 중에서 제일 귀한 복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다음엔 하나님의 창조의 권한을 인계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을 중심삼고 아담과 해와를 창조했던 것같이 창조적 권한을 부여받는 것이 자녀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왜 자녀를 사랑하느냐? 하나님의 창조위업을 횡적으로 실체권에서 이어받은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아담과 해와를 지어 놓고 하나님이 기뻐하던 그 기쁨을 대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은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주관하신 것과 같이 만물을 주관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횡적인 입장에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관권을 부여했습니다.
그 권한을 가지고 질서적인 단계에 머무를 수 있는 그런 세계가 이상적인 천국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혼하는 그 시간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상속받고 재창조의 권한과 주관권을 완성권에 서서 이어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식이란 것은 사랑의 현현을 말함과 동시에 창조권과 주관권을 부여받는 것입니다. (성약Ⅰ-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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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결혼관은 우주 방석을…. 우주 방석 알아요? 우주에서 제일 좋은 비단이 뭔가? 양단인가? 양단 이불 포대기를 펴 놓고 신혼생활을 하는 것보다도 우주 양단 이불을 펴 놓고 그 가운데서 사랑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소유권을 내 일대에 결정하는 순간이라는 것입니다. 아, 내 당대에 소유가 오나니 여자라는 동물의 소유가 결정된다.
그 여자는 어떤 여자냐? 우주의 반이다! 이놈을 잡아채는 날에는 내 꽁무니에 우주가 달려온다. 생각해 봐요. 또 여자는 왜 결혼을 해야 되느냐? 남자한테 붙어 가지고 절반(180도)과 절반이 합해 가지고 둘이 우주의 가치에 대등한 작용권을 만들기 위해서 결혼한다! 이렇게 생각할 때 통일교회 사상이 멋지다는 것입니다.
결혼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를 위해서 한다는 신조를 가져야 합니다. 결혼할 때 잘난 사람, 예쁜 사람 얻겠다고 하는 것이 잘못된 생각입니다. 인간은 남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원칙을 알았다면, 결혼을 할 때에도 상대를 위해서 한다는 관념을 가져야 합니다.
아무리 못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미인보다 더 사랑하겠다는 신념을 가지는 것이 원칙적인 결혼관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상대를 하나님같이 사랑하고, 인류같이 사랑하고, 이 세계 누구보다도 더 사랑할 수 있다는 관념이 서지 않고는 하늘나라에 복귀되지 못합니다. 한 남성으로서 한 여성을 사랑할 줄 모른다면 하나님과 인류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결혼은 누구 때문에 하느냐 하면 인류를 위한 것입니다. 인류의 공동의 이익을 위한 것입니다. 세계를 대표한 것입니다. 그 남자는 세계를 대표한 남자이고, 여자는 세계를 대표한 여자입니다. (성약Ⅰ-363)


 4) 사춘기란 어떤 때인가

여러분, 사춘기 시절에는 천하의 왕자가 되는 기분입니다. 모든 것을 자기를 중심삼고 뒤집어 가지고 생각하는 시절입니다. 이렇듯 사춘기 시대는 반박하는 시대이기에 자기를 몰라주면 얼마든지 다른 길로 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청소년들의 문제가 세계적인 문제가 된 것입니다.
사춘기 때는 무슨 일이든지 자기를 중심삼지 않으면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기하고 관계를 맺었을 때는 그것이 아무리 미미한 것이라 해도 신난다는 것입니다.
20세 전후 되는 아가씨들을 가만히 보면 말이에요, 괜히 '히히히히…' 하고 웃습니다. 가을에 잎이 다 떨어진 감나무에서 홍시가 뚝 떨어지는 것을 보고도 하하하 웃습니다.
그것은 뭔지 모르게 통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전부 다 자기와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최고의 감정이 유발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춘기라는 것은 모든 것에 접해 가지고 인연맺을 수 있는 전환점입니다. 그건 왜 그러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남성과 여성을 완전히 백 퍼센트 하나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창조본성이 바탕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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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어여쁜 아가씨도 사춘기는 단 한 때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때는 꽃 중의 꽃이요, 일생에 가장 귀한 때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 혼자 살지' 하고 생각하는 여자가 있어요? 그건 여자가 아닙니다.
또한 남자들 중에서도 허우대가 멀쩡해 가지고 좋고 좋은 이팔청춘에 자기 혼자 살겠다고 하는 녀석 있어요? 그런 때에는 반드시 상대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를 닮아서 그렇겠습니까? 하나님을 닮아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지 않은데 그런 사람이 나올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일생의 가장 귀한 때인 이팔청춘에 상대를 찾아 나서는 것은 남자나 여자나 마찬가지입니다.
제일 꽃다운 시기, 꽃이 활짝 핀 청춘시대가 언제냐 하면 사춘기 시대입니다. 그 시기가 바로 18세부터 24세까지의 7년 간입니다. 이 7년 간은 일생에 둘도 없는 꽃다운 사랑의 꽃이 필 시기입니다. 한 번밖에 없는 꽃다운 이 시절이 얼마나 귀해요?
여러분, 함박꽃을 알지요? 그 꽃봉오리에 색다른 노란 꽃송이가 있지요? 그것이 몇 꺼풀로 되어 있겠어요? 꽃잎으로 전부 다 꽁꽁 싸여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헤칠 수 있어요? 쉽게 헤칠 수 없도록 꽁꽁 싸여 있습니다. 이와 같이 남자나 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붉은 사랑, 노란 꽃과 같은 그 사랑의 봉오리, 그 사랑의 봉오리를 어느 때에 활짝 피울 것이냐? 천지의 조화 가운데 아름다움이 가장 잘 드러나는 때가 그 시기입니다. 인간으로 볼 때에도 최고로 피는 때입니다. 하나님의 걸작품이 되어 제일 중심의 절정으로서 반짝이는 기간입니다. 자라면서 제일 꽃다운 시절, 제일 아름다운 시절이 청춘시절입니다.
그 청춘기의 모습이 최고의 꽃봉오리 같은 시기입니다. 그걸 흠뻑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안방에 초대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랑을 할 수 있는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안방에 초대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걸 알았다면 여러분은 남자면 남자로서 그런 준비를 해야 합니다. (성약Ⅰ-367)


 5) 사춘기에 일어나는 신체적 변화는 무엇 때문인가

소년기에는 막연한 꿈 속에서 건강하게 자라기만 바라지만, 사춘기가 되어 신체적으로 생리적 변화가 생기게 되면 이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눈동자는 호기심과 아름다움으로 반짝 빛나게 됩니다.
몸도 멋을 부리기 위해 옷을 맵시있게 차려입게 되고 얼굴을 보다 예쁘게 하기 위해 다듬기에 여념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때에 입술을 보면 그가 사춘기에 접어들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여자들에게 있어서도 사춘기에 접어들면 월경이 시작되고, 신체적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엉덩이가 커지고, 가슴이 툭 튀어나오고, 입술이 붉어지며, 눈동자가 신비스럽게 빛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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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여자들의 변화는 왜, 누구를 위해서 오는 것이냐? 여자의 신체적 변화는 직행하던 길을 빙글빙글 돌아가기 위한 변화인 것입니다. 빙글빙글 돌아갈 수 있는 운동을 시작하기 위한 변화란 것입니다. 직행하는 길에는 아무런 조화가 없는 것입니다. 직행길은 두 번 왔다갔다 하면 모든 것이 소모되고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직행길을 왔다갔다하고 나면 환경을 파괴할 뿐이지, 환경의 조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환경의 조화와 보존을 위해서는 돌아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돌아가야 합니다. 돌아가는 데는 자기 혼자 돌아갈 수 없으므로 상대를 중심삼고 돌아가야 합니다.
돌아가는 데는 상대와 부딪쳐야 돌아갈 수 있습니다. 상대자와 부딪치면 자동적으로 반작용이 일어나 돌아가는 운동이 시작됩니다. 이것은 천지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여자가 신체적으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상대자와 만나 돌아가기 위해서입니다. 부딪치면 돌아가기 위한 힘이 생겨나게 됩니다. 여자가 화장을 하고 예쁘게 단장하는 것은 자신을 위하기보다 상대를 위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아름답게 차려 입은 여자를 보게 될 것 같으면 남자를 보는 눈이 유달리 빛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자기의 상대를 찾기 위해, 자신을 다듬고, 가꾸기 때문에 자연적 현상의 발로라 하겠습니다. 멋있는 남자를 만나기 위해, 이상적인 남자를 만나기 위해 가슴 조이며 쏘다니게 됩니다.
여러분만한 사춘기의 처녀와 총각이 서로 만나 이야기 할때는 가슴이 뛰는 것입니다. 뛰죠? 뛰어요, 안 뛰어요? 몰라요? 뛴다고 하면 안 뛴다고 할래요? "뜁니다."
그것 보세요. 흥분하지요? 그리고 흥분하게 되면 심장에 변화가 옵니다. 그런데 그 마음이 하나님을 중심삼지 않고 반대의 입장에 서면 악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은 누구를 중심삼느냐?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을 중심삼은 마음과 심정이 하나될 수 있는 자리에 올라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러한 입장에서 한 생애를 지내야 할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은 사랑을 중심한 이상과 희망을 갖지 않고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최후의 자리에서 빛날 수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성약Ⅰ-367)


 6) 사춘기의 첫사랑

사춘기에는 사랑을 찾아 몸과 마음이 충동을 일으키게 됩니다.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들 멋대로 돌아다닙니다. 마음의 눈과 몸의 눈이 하나되어 움직입니다. 또 사랑의 코를 가지면 평소에 싫어하던 냄새까지 좋아지게 됩니다. 사랑의 입을 가지면 평소에 싫어하던 맛까지도 좋아지게 됩니다. 밤을 새우면서까지 사랑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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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대상은 만지면 만질수록 더 만지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춘기가 되어 사랑의 감정에 휩싸일 때는 눈이 이상해지고, 모든 것을 좋게 보려고 합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사랑의 총을 쏘면 사랑이라는 탄알이 상대의 심장에 박히게 되는 것입니다. 남자의 그런 사랑, 여자의 그런 사랑을 원하는 사람은 손들어 보십시오. 사랑은 소화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맛있게 먹을 수 있고, 모든 것을 다 소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진실한 사랑을 가졌다면 아무리 추남이라 할지라도 미남으로 보이게 됩니다. 사랑은 놀라운 것입니다. 그래서 잘났든 못났든 사춘기 시절에 맺은 첫사랑을 남자든 여자든 영원히 잊지 못합니다. 죽기 살기로 좋아하는 애인이 있는 여자가 부모의 반대로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갔다면 그 여자는 일생동안 행복하겠어요, 불행하겠어요?
그 여자는 자기가 처음 사랑을 했던 남자가 설령 코가 찌그러지고 눈이 못생겼다 하더라도 꽃과 같이 좋아 보이는 것입니다.
부모가 정해 준 남자는 외모로 보나 학벌로 보나 천 사람이면 천 사람이 다 좋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고, 옛날에 마음속으로 속삭이며 사랑하던 남자는 지지리도 못났는데도 불구하고 그 첫사랑의 남자가 좋은 것입니다.
첫사랑은 몽땅 점령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주체가 누구냐? 하나님입니다. 사랑의 주체가 하나님이기 때문에 사랑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원래 첫사랑은 하나님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타락입니다.
해와가 누구하고 사랑했습니까? 천사장하고 했습니다. 그런데 좋아하면서 사랑해야 하는데 얼굴을 찡그리고 울면서 사랑했다는 겁니다.
여러분, 타락할 때 해와가 '아이구 좋아라! 선악과를 따 먹으니 참 맛있다, 맛있어' 했겠습니까? 해와가 천사장한테 겁탈을 당할 때, 그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양심의 가책을 받고 싫어하면서 천사장의 유혹에 끌려들어갔다는 것입니다. 모든 세포가 기뻐가지고 꽃이 상춘을 바라듯 사랑해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세포가 사그라지고 심정이 사그라진 자리에서 찡그리고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만일 타락하지 않았다면 첫사랑을 누구하고 했겠어요?첫사랑을 하나님과 했을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한 첫사랑에는 첫사랑이 전부 다 응어리져 있는 것입니다. 첫사랑을 중심삼은 부모의 사랑, 첫사랑을 중심삼은 부부의 사랑, 첫사랑을 중심삼은 자녀의 사랑,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과 뿌리가 딱 붙어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같이 몇 천 년의 역사적인 거리를 두고 개인복귀니 가정복귀니 하는 단계를 거쳐야 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한꺼번에 왕창 달라붙는 사랑입니다.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이 한꺼번에 다 달라붙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성약Ⅰ-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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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결혼의 적기-사랑은 어느 때부터 연결되는가

전지 전능한 하나님은 인간에게 있어서 화려하게 꽃필 수 있는 시간을 만드셨으니, 그 시기가 청춘시대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청춘시대를 중심하고 자신의 행복을 가꾸어 나가도록 지으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존재하는 동일이상적 인간 세계에 있어 남녀가 화려한 청춘시기에 행복해질 수 있는 관문으로 결혼이라는 축복을 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상대적 이상을 거치지 않으면 존재가치가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있어서 성장한 후에 축복을 받아 결혼을 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섭리인 것입니다. (성약Ⅰ-371)

사랑은 어느 때부터 연결되느냐? 사랑의 힘은 언제부터 밀어 주느냐? 남녀도 사춘기를 맞아 모든 기관이 백 퍼센트 완성권에 도달하게 될 때 정지 상태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포화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운동이라는 것은 반드시 포화선을 거칩니다. 그러한 후에 정지하던가 더 돌던가 하게 됩니다. 그런 포화 상태에 들어가 가지고 정지합니다. 그러면 포화상태로 들어가기 전단계가 뭐냐 하면 사춘기입니다. 사춘기라고 하는 것은 내 육체 발육에 있어서 모든 기관이 왕성한 시기를 말합니다. 기구로 말하면 공기가 없어 찌부러진 상태에서 공기를 집어넣어 팽팽하게 돼 가지고 터지기 직전에 간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조금만 더 들어가면 터집니다.
그 터지는 것이 뭐냐? 그것이 사랑이 완성돼 가지고 터지는 것이면 얼마나 좋겠어요? 마찬가지로 사람도 18세 쯤 되면 고무풍선같이 팽팽해집니다. 그래서 터지기 직전 입장에 가서 거기에서 멋지게 영원히 굴러갈 수 있습니다.
영육이 완전한 일체를 이룰 때는 본연의 사랑이 우리들 가운데 찾아올 때입니다. 타락한 세계에서 인간들의 경우도 사춘기 때란 영과 육체의 세포가 화합하는, 평형선상에서 설 수 있는 시기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춘기 때의 영과 육체의 세포들은 모든 문을 열고 반겨 맞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한 사춘기 때는 인간 세상을 바라보는 데 있어 기쁨과 행복만이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하게 되면 행복해지고, 사랑에 취해서 느끼는 감정은 진짜 요지경이라고 해서 빨리 경험해 보겠다고 달려든다면 그것은 큰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의 문은 때가 되어야 열리는 것이고, 문이 열리는 때를 기다려 들어가야 합니다. 자신이 사랑의 주인이 되었다고 했을 때 당당하게 열어야 하는 것입니다.
결혼 적령기가 언제쯤이라고 보십니까? 마음과 몸이 가장 왕성한 힘을 가질 때가 결혼 할 수 있는 최적기라 하겠습니다. 청년기를 넘어서면 점차 기운이 쇠퇴해지기 때문에 아무리 순정을 지녔다고 해도 상대자를 구하기가 힘들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약Ⅰ-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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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완성한 사람, 즉 완성한 남자와 여자가 있게 되는 자리는 어떠한 자리냐? 하늘의 공적인 뜻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고, 마음과 몸이 완전히 하나되어 하나님을 주체로 모실 수 있는 자리입니다.
이런 자리에 있게 될 때, 완성된 아담과 해와의 입장에 서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이 가정을 이루어 출발하는 것이 역사적인 출발인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적인 인생행로의 첫출발이라는 것입니다. (성약Ⅰ-378)


 8) 몸과 마음이 일치된 사랑

여러분, 3점 알아요? 3점. 이 3점이 하나될 수 있는 점은 하나님과 아담과 해와가 하나될 수 있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와 하나될 수 있는 자리는 그들의 마음과 몸이 일치하는 자리입니다.
남자는 마음과 몸이 주체와 대상의 관계로 이루어졌는데, 마음과 몸은 종과 횡의 작용을 계속함으로써 존재의 힘을 발생시킵니다.
여자 역시 마음과 몸이 종과 횡의 관계를 이루고 있어서 존재의 힘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남자나 여자 모두 종과 횡의 상대적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그 힘은 사랑인 것입니다. 사랑만이 마음과 몸의 이상적 관계를 영원히 이룰 수가 있습니다.
가난한 촌부로서 시골에서 김을 매고 농사를 짓는 자리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 촌부에게 마음과 몸에 부풀어 오르는 사랑의 정열이 타오르게 된다면 마음의 오관(五官)과 육(肉)의 오관이 완전히 합해져서 더 없는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에게 임할 수 있는 안착점을 여러분이 가지고 있다면, 시계추의 진동처럼 하나님의 가슴이 한 번 출렁하면 여러분 가슴이 한 번 출렁, 그래서 여러분과 하나님이 함께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한 번 돌기 시작하면 자꾸 돌아갑니다. 갈수록 가중된 힘, 원심력이 작용해서 가정을 사랑해라, 사회를 사랑해라, 국가를 사랑해라, 세계를 사랑해라 하고 요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몸과 마음이 하나된 가운데 사랑의 문이 열릴 수 있는 때가 가까워지면, 여러분 자신의 마음이 우주에 공명되어서 소설가나 시인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주제로 시나 소설을 쓸 수 있는 것은 사랑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엮어 가는 자질을 발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사랑의 눈을 뜨게 되면, 자신의 몸과 마음은 우주 속에서 입체적인 관계를 맺고 싶어집니다.
그리하여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미소를 짓게 되며, 봄동산에 피어나는 꽃 속에 아름다움을 겨누어 보고 싶어 한 송이의 꽃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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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나 여자가 왜 사랑을 좋아하느냐? 인간의 몸뚱이는 대략 1억조 개나 되는 세포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세포들이 언제 전체가 작동을 하느냐 하면 사랑을 할 때인 것입니다. 인체의 모든 세포를 움직일 수 있는 때가 바로 남녀가 사랑을 하는 때임을 알아야 합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돼 가지고 그리워하는 눈물을 흘리게 되면 뼈가 울어댑니다.
동물의 경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암소가 발정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먹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맙니다. 그때는 모든 신경이 그것 하나만을 원하게 만듭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몸과 마음이 하나된 자리에서 사랑하고 서로 그리워하게 되면 몸 속에 움직이지 않는 세포가 없습니다.
세포 일체가 본래의 방향감각을 잃어버리고 하나로 집중됩니다. 이렇게 해서 상대를 만나게 되면 폭발하게 됩니다. 그 폭발하는 힘은 엄청난 힘이 됩니다.
그렇게 사랑해서 뭐 하자는 거냐? 하나님을 닮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에 동참할 수 있는 자리에 나서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을 같이 느끼자는 것입니다. (성약Ⅰ-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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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장 참된 부부의 사랑


 1) 창조 본연의 부부관계

하나님은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이성성상으로 계십니다. 이것을 플러스로 분립시킨 것이 남자인 아담이요, 마이너스로 분립시킨 것이 여자인 해와입니다.
1남과 1녀는 무형이신 하나님의 실체대상으로 나타난 아들딸입니다. 남자는 하나님의 플러스(+)성품을, 여자는 하나님의 마이너스(―)성품을 대신한 실체대상입니다.
창조이념은 양성(兩性)의 중화체(中和體)로 계시는 하나님의 성상(性相)을 이성(二性)으로 분립했다가 다시 하나님의 본성상(本性相)을 닮은 모습으로 합성일체화(合成一體化)하는 것입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는 각각 하나님의 일성(一性)을 닮아 나왔습니다. 따라서 이들 1남 1녀의 결합은 하나님의 플러스(+) 성품과 마이너스(―)성품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닮은 중화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인간의 두 사람, 즉 부부는 하나님의 전체를 표상하는 결합체입니다.
남자는 하나님의 플러스(+) 성품을 대신함으로써 참아버지의 분신이 되고, 여자는 하나님의 마이너스(―) 성품을 대신함으로써 참어머니의 분신이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각각 하나님의 대신자이기도 합니다. 부부가 사랑으로 하나되는 것은 천주(天宙)를 품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우주적인 상봉입니다. 남편은 많은 남성을 대표하여 나타난 존재인즉 남편인 동시에 아버지의 대신이요, 오빠의 대신이며, 아내는 많은 여성을 대표하였은즉 부인인 동시에 또한 어머니를 대신하며, 동시에 누나를 대신하고 있는 것이니,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지 않으려 해도 존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남자는 하나님의 양성적 형상이요, 여자는 하나님의 음성적 형상입니다. 부부는 천하를 한 보자기에 싼 것과 같습니다. 고로 부부는 하나님의 이상적인 사랑의 심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남자는 하늘을 상징하고, 여자는 땅을 상징합니다. 두 사람이 합하여 조화를 이루고 평행선을 이루어야 합니다. (성약 Ⅰ-868)

부부라는 것은 자기 하나에 국한된 부부가 아닙니다. 하늘 땅을 대표한 부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남자와 여자의 사랑의 완성이 우주의 완성입니다. 이 사랑이 깨지는 날에는 우주의 질서가 파괴되고 종적인 세계가 다 결딴나게 됩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좋아하여 포옹하는 그것 자체가 우주가 일체를 이루는 자리가 됩니다. 하나님의 이상 가운데 이루어지는 창조 본연의 모습은 그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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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남자 여자로 태어난 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은 부부가 되어 하나됨으로써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이성성상에 의해 분립된 실체이므로, 분립된 실체가 합성일체화되기 위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려면 남자와 여자가 사랑으로 하나되어야 합니다. 남자와 여자가 하나되지 않고는 하나님의 사랑을 만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만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동위권에 머무르게 되는 것입니다.
동위권이란 하나님 옆에 설 수 있는 자리를 말합니다. 부부가 사랑을 중심삼고 완전히 하나된 터 위에 하나님 사랑을 중심하고 하나되게 되면, 그 부부는 하나님의 자리까지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가진 모든 것이 나의 소유권 안에 들어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힘은 이처럼 놀라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동참적 권위를 허락함과 동시에 그들은 하나님이 가지신 전체의 소유권한을 전수받게 되는 것입니다.
아담의 소원은 천주를 지배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담이 품고 사랑한 부부의 가치는 세계의 중심가치를 대신했던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은 하나님이 지은 본연의 사람, 즉 본연의 남자와 여자를 중심한 그 사랑이 얼마나 거룩하고 가치가 있는가를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성약 Ⅰ-969)


 2) 부부의 사랑이 필요한 이유

여러분은 천국이 어떤 곳이라 생각하십니까? 천국은 한마디로 말해 완성된 사람이 들어가 사는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천국은 참된 사랑을 지닌 완성된 사람이 들어가는 곳이라면, 그 참사랑을 지닌 사람이란 어떤 사람이겠느냐? 인간은 남자와 여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상적 사랑의 완성이 지상에서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느냐를 두고 볼 때, 남자와 여자를 떠나서는 이뤄질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완성된 사랑의 주체성을 지닌 남성과 여성이 아니고는 하나님의 사랑이 완성될 수 없습니다. (성약 Ⅰ-951)

참가정은 가정천국을 이루어야 합니다. 가정천국을 이루게 되면 틀림없이 지상천국이 이루어집니다. 왜 그러냐? 미래의 천국에 대한 실감을 현재의 입장에서 자극시키려니 불가피하게 상대가 필요한데, 가정에서 상대로 말미암아 그 자극을 받음으로써 미래의 천국이념을 오늘의 생활 감정에서 체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체득하기 위해서 부부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 자극으로 말미암아 부부가 영생할 수 있습니다. 발전은 자극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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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사랑은 이상천국을 건설할 수 있는 자극을 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미래의 기쁨을 현재권 내로 끌어다가 자극을 주어 가지고 추진력을 보급시켜 그 자리까지 가게 하는 것이 부부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 가운데는 나라의 사랑도 들어가 있고, 세계의 사랑도 들어가 있고, 하나님의 사랑도 들어가 있습니다. 따라서 그 사랑은 어디든지 무사통과입니다. 결국 천국에는 서로 사랑하는 부부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서 그런 사상을 가지고 서로 사랑하는 부부는 언제나 천국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이 네 마음 속에 있다'했지요? 그렇지만 오늘날 통일교회에서는 '네 가정에 천국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천국을 이룰 수 없다 할 때는 통일교회의 뜻이 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할 수 있다 할 때는 그 뜻이 이루어집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들은 원리를 중심삼고 정도의 길을 가려 가야 되겠습니다. (성약 Ⅰ-875)

앞으로 천국을 이루려면, 그 부부끼리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결혼한 남자는 세계의 모든 여자들을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세계 모든 여성 가운데서 대표적인 반려자로서 내가 아내를 빼낸 것이다'이렇게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또 여자들은 자기 남편이면 남편에 대해 그냥 한 사람의 남편으로서가 아니라, 온 세계 남성들 가운데 대표적으로 빼낸 사람이 남편이라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여자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면, 한 남자를 사랑하되 그 남자 한 사람만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세계 남성을 대표한 남자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 남성은 아버지를 대표하고, 오빠를 대표하고, 남편을 대표한 것입니다.
그것은 뭐냐? 남편을 아버지와 같이 생각해야 되고 더 나아가서는 할아버지같이 생각하고 그 다음엔 오빠같이 생각하고 동생같이 생각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인연을 통해 가지고 아버지를 사랑하고 할아버지를 사랑하고 오빠를 좋아하고 사내 동생을 좋아할 수 있는 그러한 여자라야만 상대를 얻을 수 있지, 아버지도 싫고, 오빠도 싫고, 할아버지도 싫고, 동생도 싫고, 다 싫고 그저 내 남편만 좋아한다는 건 하나님의 공약을 벗어난 자리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면, 전 세계 인류 남자도 전부 다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내포해 가지고 그 결실과 같은 남성을 내가 품고 사랑하는 것은 인류 남성을 대표해서 사랑하는 것이라는 관을 가져야 합니다. 내 어버이와 같이 내 오빠와 같이 내 동생과 같이 만국을 초월하여, 국경을 초월하여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되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할 수 있고 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사상입니다. (성약 Ⅰ-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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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이상적인 부부의 관계

참된 남편은 '나는 태어나기를 당신을 위해 태어났으니 당신을 위해서 살고, 죽기를 당신을 위해서 죽을 것이다'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참된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와 같이 상응하면서 스스로를 넘어서 상대를 위하는 원칙을 지닌 가정이라면, 이 가정은 이상적인 가정이요, 행복의 가정이요, 평화의 가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남자가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남자가 태어나게 된 동기는 남자 자신에게 있는 게 아니라 여자 때문에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여자가 없으면 남자가 태어날 수 있어요? 그 반대로 여자는 무슨 아름다운 화장을 하고 내가 미국의 무슨 배우라고 자랑해 봤자, 그 여자는 여자 때문에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남자는 어깨가 크고 여자는 궁둥이가 커야 잘 맞게 돼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사랑의 아내, 참된 이상적인 행복한 그 아내와 남편은 어디 있느냐?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서로를 위하고, 또 그런 마음이 일치될 때 이상적인 부부가 나옵니다.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이런 원칙을 두고 볼 때, 이상적인 사람 또는 행복하고 선한 사람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느냐 하면, 자기를 위해서 살려고 하는 데서는 찾을 수 없으며 남을 위해 살겠다고 하는 데에 근거를 두고 찾아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위해 생명을 바칠 수 있고, 아내는 남편을 위해 생명을 바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부부는 하나님의 사랑권 내에 연결되어 직접적인 보호를 받기 때문에 타락이 있을 수 없습니다. (성약 Ⅰ-882)

남자들은 자기 부인 사랑하기를 세상의 어떤 남자가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사랑해야 합니다. 여자들도 자기 남편 사랑하기를 세상의 어떤 여자가 남편 사랑하는 것보다 더욱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이 참가정을 이룬 부부가 지켜야 할 사랑의 윤리인 것입니다.
참된 부모는 자식을 위해 살고 죽습니다. 거기에는 사랑이 성립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참된 사랑의 아내와 남편, 행복한 아내와 남편은 서로가 서로를 위하고 사랑으로 하나될 때 나올 수 있는 것이며, 또한 그것이 이상적인 부부입니다.
신랑 신부는 돈이나 권력, 명예를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본연의 사랑을 중심삼고 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부부관계에 있어서는 남편이 돈을 벌어 올 때에 힘이 생겨납니다. 부인은 남편이 벌어 온 돈을 보고 힘이 나고, 힘이 나는 부인을 보고 남편도 힘이 나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돈을 벌지 못하면 불안하고 부부관계가 깨어지기도 합니다. 참된 부부는 하나님을 중심하고 사랑의 일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참된 부부는 사랑을 중심삼고 점진적 발전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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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남편을 위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는 가운데, 두 부부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정을 꾸며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 사랑하는 데도 하나님 대신자로서 남편이면 남편, 아내면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인간적인 자리에서 사랑하게 되면, 서로 부족한 면이 나타나게 되어, 결국에 가서는 이혼하는 사태까지 일어나게 됩니다.
요즘에 제주도 색시들이 시집갈 때 논 밭을 주게 되면 가져가서 수속할 때 색시 이름으로 한다나요, 언제나 남편과 헤어지면 내 것이라 주장하기 위해서. 그거 참 이상적 부부지요? 돈을 써도 이것은 남편 돈, 이것은 내 돈, 돈을 가져도 빤질빤질한 것은 내 돈, 구겨진 돈은 남자 돈….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돈 보따리를 펼쳐 놓고 쓰더라도 '어떻게 됐소?' '내가 썼지' '그래? 좋은 데 썼구먼. 쓸수록 좋고' 이래야 되는 것입니다.
입을 바르르 떨면서 에이구 또 썼구만…. 이것은 낙제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주더라도 무한히 줄 수 있고, 언제나 마음대로 깊은 곳이나 낮은 곳이나, 밤이나 낮이나 주고 받을 수 있게 될 때에 행복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려야 줄 수 없게 될 때는 불행한 것이요, 받으려야 받을 수 없게 될 때도 불행한 것입니다. (성약 Ⅰ-882)


 4) 하나님도 취할 수 있는 참된 부부의 사랑

우리 개개인은 몸과 마음이 상충되어 있으니, 마음을 중심삼고 몸을 하나로 만들어 마음 가운데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상대적 기반을 조성해야 합니다.
이런 남자와 여자가 축복을 받아서 완전한 사랑을 주고받으며 기쁨을 누릴 때 하나님이 보시기에 지상에 핀 꽃과 같다는 것입니다. 또 그들의 사랑으로 인하여 이루어지는 모든 조화 만상은 하나님께 향취와 같은 것입니다.
이와 같은 아름다운 꽃과 향취 속에 하나님은 살고 싶어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찾아올 수 있는 터전이, 곧 부부 사랑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모든 만물과 우주가 화동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과 길을 가르쳐 주는 것이 통일교회요, 통일교회의 원리입니다. (성약 Ⅰ-889)

하나님께서 최고로 좋아하는 멜로디가 무엇이냐 하면, 남자 여자가 서로 좋아서 기뻐하는 영원한 부부의 웃음소리인 것입니다. 그런 부부가 세상을 이해하여 품을 수 있고, 우주 전체를 수용할 수 있는 마음으로 삶을 영위할 때 웃음은 자연발생적이 됩니다.
그런 남녀의 아름다운 모습이 하나님 앞에 한 송이 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것은 단순한 이상이나 추상이 아닙니다. 본래의 세계를 말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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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끼리는 앞산을 바라보면서도 저 산이 생겨난 것이 누구 때문인가를 물어 보고, 온 우주를 생각하면서도 이 우주가 생겨난 것이 누구 때문인가를 물어 봅니다. 그러면 나 때문인 동시에 너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부부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이 우주가 생겨난 목적을 성사시키는 것이, 주체적인 목적을 중요시하는 것이 부부가 하나되는 길입니다. 부부는 마음을 중심삼고, 인격을 중심삼고, 사랑을 중심삼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부부는 같은 길로 가는 것입니다. 시골뜨기 아가씨라도 장관하고 결혼하면 어떻게 됩니까? 같은 길로 가는 것입니다. 그 시골뜨기 여자가 초등학교도 못 나왔다 할지라도 모든 사람이 장관 사모님이라고 하면서 머리를 숙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부는 같이 가는 것입니다. 부부에게 그대 사랑이 따로 있고 내 사랑이 따로 있습니까? 그대 사랑이자 내 사랑인 것입니다. 네 사랑이자 내 사랑인 것입니다. 진짜 사랑은 온 몸이 하나되고, 심정과 핏줄이 전부 다 하나되어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 부부입니다. 부부 없는 세상이라면 사는 맛이 있어요?
사랑하는 부부간의 대화를 볼 것 같으면, 세상의 어떤 시나 그림보다 아름다운 것입니다. 또 '사랑하는 사람끼리, 우리끼리, 우리 둘이서' 하는 말은 얼마나 아름답고 멋있는 말입니까? 좋기는 다 좋은데 그 중에서 제일 좋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상대자밖에 없습니다. 내가 '애야'하고 부르게 되면 상대적으로 '네에'하고 대답하고, '야'하고 부르면 '응'하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사랑하는 아내를 다정스럽고 부드럽게 '여보오' 부르면 다정하고 부드럽게 '왜 그래요' 하고 대답을 합니다. 하지만 퉁명스럽게 부르면 똑같이 '왜 불러' 하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산울림과 마찬가지로 다 상대적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에 취한 사람들의 웃음을 보면 그것도 상대적입니다. 남자는 웃을 때 눈을 더욱 크게 뜨는데, 여자는 웃을 때 지그시 감습니다. 남편의 눈이 커지고 아내의 눈이 점점 작아지면 그들 부부는 사랑에 취한 행복한 부부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약 Ⅰ-888)


 5) 보면 볼수록 더욱 보고 싶은 게 부부의 사랑

남자가 행복한 때는 어느 때이고, 여자가 행복한 때는 어느 때라고 여러분은 생각하십니까? 둘이 상대를 이루어 사랑을 주고받을 때를 행복한 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남자가 여자를 대할 때, 주먹을 휘두른다거나 물리적 힘을 동원한다면 그들 부부는 결코 행복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남자가 여자를 대할 때, 힘으로 품안에 안고 보호하면서 사랑할 때 여자는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간의 사랑은 힘만으로도 안 되고, 마음으로 사랑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힘으로 확인해 주었을 때, 여자는 진정한 행복감을 맛볼 수 있을 것이고, 또한 여자가 남자를 대해 몸과 마음으로 사랑을 돌려줄 때 진실로 행복한 부부가 될 것입니다. (성약 Ⅰ-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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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는 항상 자극이 필요합니다. 행복은 자극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자극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항상 먹는 밥도 먹을 때마다 배가 고파야 맛이 새로운 것처럼 부부간의 사랑도 마찬가지로 항상 새로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부인과 남편이 서로 보면 볼수록 더욱 보고 싶고 온종일 함께 있고 싶어야 합니다. 사랑은 서로 그리워할 때 가치가 있습니다.
입이 있으면 입을 벌리고, 눈이 있으면 눈을 벌리고 사랑을 달라고 해야 사랑을 주는 사람도 기분이 좋지, 멍청하게 있으면 사랑이 오다가도 도망간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심각하지 않고 소극적으로 나올 때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습니까?
여러분들은 사랑하는 사람끼리 같이 있는 것이 좋습니까, 떨어져 있는 것이 좋습니까? 가까이 있을수록 좋습니다. 왜 그래요? 모든 것이 한꺼번에 작용하기 때문에 좋다는 것입니다.
제일 좋은 것이 무엇이냐? 먹는 것입니까? 배고플 때 밥을 보면 좋다고 먹지만 그런 것은 일시적이라는 것입니다. 실컷 먹고 나서 또 먹을 것을 주게 되면 싫어합니다.
그렇지만 자기가 사랑하고 있는 사람에 대해서 만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나는 잊어버릴래. 싫어!' 하는 사람이 있어요? 봐도 봐도 자꾸 보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보아도 또 보고 싶고, 또 보아도 또 보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가 네가 앞에 서고 내가 뒤에 서고 하면서 수레바퀴같이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통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랑을 알고 난 아내는 남편의 가슴에 머리를 묻고 오수를 즐기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것은 행복에 취해서 정신을 바로 가질 수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무섭고 징그럽게 보이던 남자가 결혼하여 남편이 되고 나서는 보고 싶어서 하루에도 몇 번이고 보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여자입니다. 그래서 전화를 하여 점심시간에 잠깐 집에 다녀가라고 불러내기도 합니다. 사랑을 안 남자도 마찬가집니다. 틈만 있으면 아내의 무릎을 베개삼아 잠자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점심시간이나 커피를 마실 시간이나 할 것 없이 시간만 나면 집으로 달려오곤 합니다.
또 결혼하기 전에는 '그런 것이야 여자가 할 일이지, 어디 사내 대장부가 할 일이야' 하면서 안 하던 짓도 아내가 원하기만 하면 서슴없이 하곤 합니다. 이런 것들이 사랑을 알고 난 남자와 여자에게 흔히 일어나는 변화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시고 축복해 주실 때 부부가 행복해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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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축복의 문을 열고 들어선 부부는 둘이 속삭이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나는 당신을 만나기 위해 이렇게 기다려 왔습니다. 나의 생명은 당신을 통해서 그 가치를 꽃피울 것입니다. 당신을 사랑하기 위하여 태어났고, 또 오늘을 위해 기다려 왔습니다' 등등. 서로가 찬양하는 달콤한 이야기뿐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사랑의 밀어만큼 달콤한 것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부부가 잠자리에 들어서도 속삭이는 밀어는 세상의 모든 피로와 미움을 녹이는 청량제가 되는 것입니다. (성약 Ⅰ-894)


 6) 부부사랑의 발전과정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의 중보로 만났을 때, 어떻게 사랑의 표현을 하느냐? 사랑의 발전과정을 보게 되면 첫째 입이고, 둘째 가슴이며, 셋째가 생식기입니다. 여자가 처음으로 남자를 만나 사랑을 시작하기 전에 부끄러움을 느끼고는 숨기는 것은 입이기에 손으로 입을 가리는 것입니다.
사랑이 입맞춤으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점차 성숙해지면 그 결실로 아들딸이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자에게 있어 생식기는 사랑의 성소인데, 그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는 남편만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남편이 부인의 사랑의 성소를 열 수 있는 열쇠를 두 개나 그 이상 가지고 있다면 그 남편은 사탄입니다.
또 부인의 성소가 남편이 가지고 있는 열쇠로만 열려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아무 열쇠를 가지고도 열린다면 그 역시 사탄인 것입니다. 남편이 가진 사랑의 열쇠가 부인의 성소를 열고 들어가면, 거기서 세상에서 가장 값지고 가치 있는 아들딸이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아들딸의 가치는 세상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의 결정체인 것입니다. 아들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인류 조상인 아담과 해와를 창조하셨던 심정을 체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아들딸을 보면서'이리 보아도 내 사랑, 저리 보아도 내 사랑…'하고 노래하며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태어난 아기가 무슨 짓을 해도 밉지가 않고 마냥 좋은 것은 그 아기가 자기의 피와 살로, 그리고 사랑으로 만들어진 분신체이기 때문입니다. 오줌을 싸고, 똥을 누고, 코를 흘려도 마냥 귀엽고 사랑스럽기만 한 것입니다. 그런 것들 속에 사랑이 녹아 있기 때문입니다. (성약 Ⅰ-894)

남편과 부인의 관계에서도 사랑이 강력한 힘으로 맺어졌다면, 상대가 무슨 짓을 하거나 어떤 일을 해도 기쁘고 사랑스러워야 하는 것입니다. 남편 몸에서 나는 냄새가 싫다고 한다거나 부인이 하는 몸짓이 싫다고 생각하거나 느끼는 것은 둘 사이에 완전한 사랑이 이루어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부부는 목적을 위해, 이해관계로 맺어졌기 때문입니다. 결혼 후의 가정생활은 하나님을 한가운데에 모시고, 그 하나님이 함께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관계가 되어야 진정한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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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가 결혼하여 서로 사랑하는 일은 본래 부끄러워 해야 할 일도 아닙니다. 이것은 가장 존엄한 일이며 신성하고 아름다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계율을 범하였기 때문에 사랑의 역사는 죄악으로 인해 수치스런 방향으로 흘러나왔습니다.
에덴동산에서 벌거벗고 춤추는 것을 누가 보았겠습니까? 그러니 사람이 없는 곳에서는 그런 일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방에서 부부가 벌거벗고 춤춘다고 그것이 걱정할 일입니까? 그러나 남들이 보는 앞에서 그런다면 그것은 사회에 지탄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부부끼리야 벌거벗고 춤 아니라 무슨 짓을 해도 누가 상관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축복가정들도 둘이 벌거벗고 춤도 추라는 것입니다. 부부끼리 하는데 무슨 상관입니까? 세상에 남자 여자가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우리 둘밖에 없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정성들이는 그 여자밖에 없다는 생각 속에 정성들이는 것이 원리입니다. (성약 Ⅰ-891)

진실한 행복이란 상대자와 함께 사랑에 취해서 웃고 노래하며 속삭이는 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연인으로부터 속삭이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 하겠습니다. 귓가에 대고 사랑을 속삭이는 것은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행복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약 Ⅰ-371)


 7)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왜 슬픈가

남편을 잃게 되면 여자는 왜 우느냐? 그리운 사람을 잃었기 때문에 슬퍼서 울게 된다는 그런 막연한 이유 때문만이 아닙니다.
사랑은 사방성(四方性)을 갖춰야 합니다. 그러면서 입체적으로 전후 좌우와 상관성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랑이기 때문에 남편은 그 여인과 좌우 편에서 상대로서 사랑의 사방성을 이루게 되는 것이고, 따라서 이러한 아내는 남편이 없음으로 말미암아 전우주가 보호하는 그 자리에서 보호를 받을 수 없게 되는 자리로 떨어지게 되니, 우주로부터 받는 힘이 고통으로 느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보면 왜 좋으냐? 혼자만 있을 때는 우주의 구형적(球形的)인 사방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기준에 서지 못했는데, 상대가 있음으로써, 그 상대와 주고받는 횡적인 사랑의 관계를 맺고, 종적인 우주의 힘과 접선할 수 있는 자리를 갖게 됨으로써, 우주의 보호력에 의해서 그 상대를 갖는 자는 무한히 기뻐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아내를 보면 온 정신이 통일되고 그 아내밖에 보이질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게 되고 함께 어우러져 돌아가는 것입니다.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좋아하는 그런 일을 무엇 때문에 하느냐? 보호권을 확대하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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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레버런 문을 반대하지만, 그런 레버런 문이 미국에 가서 미국의 젊은이들과 밤을 새워가며 그들을 교육시키고 운동을 시키면서 때로는 그들과 함께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즐기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보호권 확대가 나와 관계되기 때문입니다.
우주 보호권 확대작용이 나와 더불어 시작하기 때문에 반대를 받고 감옥에 들어가게 된다고 해도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 밀고 나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행복을 노래하고 뭐가 어떻다고 해도 혼자 사는 것이 행복합니까? 부부가 살다가 한 사람이 죽으면 슬프다고 엉엉 웁니다.
혼자서 자기의 갈 길을 준비할 수 있겠습니까? 왜 짝이 없으면 불쌍하다고 합니까? 천지가 기뻐할 수 있는 모든 중요한 날들 앞에 불합격자이기 때문입니다.
천지 법도의 규율 앞에 틀어졌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그 법도를 통해서만 천지의 운세는 돌아가고, 행복의 요건과 그 동기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슬프다는 것은 그만큼 법도에 멀어졌기 때문이며, 그러한 슬픔의 기준에 한해서는 천지 법도가 순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기쁘고 좋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 사람을 세계에서 환영해 주는 자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슬픈 것은 쫓겨나는 자리입니다. 기쁨과 슬픔이 그렇게 갈리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부부가 같이 살다가 한 사람이 먼저 죽으면 울게 됩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하면, 이 우주의 공법 앞에 불합격한 기준에 해당하면 이 우주의 공적인 힘이 그 사람을 밀어내게 되고, 또 그렇게 될 때에 슬픔의 강도가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기쁨은 어떻게 생기느냐? 그러한 우주 공법에 일치되는 자체가 되면 우주의 힘이 그를 안으려고 합니다. 그 힘이 크면 클수록 강하게 부여안게 되고, 강하게 안으면 안을수록 그는 그 내적인 중심에 들어가게 되기 때문에 기쁨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슬픔과 기쁨은 어디에서 벌어지느냐? 여러분 자신에게서 벌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힘의 원칙, 즉 우주의 공법을 중심삼고 벌어집니다.
그러면 그 우주의 공법이 무엇이냐? 남자와 여자가 맨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일치되어 가는 길이요, 또한 이 길이 천운이 가는 길입니다.
혼자서 가는 것이 아니라 남자 여자가 일치되어, 즉 부부가 일심이 되어 가는 길입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이런 말 들어 봤습니까? 그러므로 서로 싸우고, 울고불고, 죽겠다고 야단법석인 사람들은 빨리 제거당합니다. 공적 법도권 내에서 합격품이 아닌 불합격품으로 간주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어디로 갑니까? 쓰레기통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그것을 알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즉각적인 슬픔을 느끼는 것입니다. (성약 Ⅰ-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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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영원히 죽을 때까지 이루어야 할 부부의 사랑

부부가 서로 사랑하는데 있어서 언제까지 사랑하겠느냐고 누군가 물었을 때, 젊었을 때까지만 사랑하겠다면 기분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어느 때까지 사랑하기를 바라느냐? '영원히'이기도 하지만 죽을 때까지, 그 다음에 영원히 사랑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영원은 미래를 중심삼고 전체를 대신하는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사랑하겠다는 것은 자기의 모든 것을 전부 주어 사랑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영원히'는 전체적이요, '죽을 때'까지는 몽땅 사랑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좋아하는 것입니다.
여기 아가씨들은 이제 시집가게 되면 남편에게 틀림없이 '당신, 날 사랑하오?' 하고 물어볼 것입니다. 사랑한다고 하면 '나를 몽땅 사랑하오, 조금 사랑하오?' 이렇게 물었을 때 몽땅 사랑한다고 대답해야 기분 좋아한다는 겁니다. 남자도 그렇다는 겁니다. 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조화가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결혼할 때 서로 죽도록 사랑하겠다고 합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할 때 그냥 죽도록 사랑한다고 하는 말과 '죽 -'하고 10년, 100년, 억만 년 하다가 '도록 사랑한다'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을 원합니까? 그냥 '죽도록 사랑한다'는 말을 원합니까?
여기 여자들 대답해 보세요. 그냥 '죽도록 사랑한다'는 말보다 '죽 -'하고 억만 년 하다가 '도록 사랑한다'는 말을 하면 더 좋아할 것입니다. 이것이 십 년, 백 년, 이렇게 길수록 더 좋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만나 가지고 '죽 -' 그 다음에 10년이 지나 가지고도 '죽 -' 또 50세가 넘어 가지고도 '죽 -도록 사랑한다'고 할 때,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그 아내는 자기 영감님이 어찌나 좋은지 모른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입니다. 배가 나와서 뒤뚱거리더라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성약 Ⅰ-884)

참된 아내, 참된 남편은 어떤 사람인가? 사람은 어느 정도 성숙하면 가정을 이루게 되는데, 자기의 상대를 영원한 사랑의 상대로 생각하고 첫사랑과 더불어 날이 가면 갈수록 그 첫사랑에 플러스되는 사랑의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 가정적인 사랑이 확대되어 종족을 이루어 영원히 사랑을 확대시켜 나갈 수 있는 영원한 사랑의 실체들로서 묶어지게 될 때, 그러한 부부는 참된 부부요, 참된 아내와 남편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런 부부가 하나님의 사랑에 동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약 Ⅰ-882)

아내의 눈에는 남편이 최고이며 제일로 보여야 합니다. 남편의 눈에도 아내가 그렇게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첫사랑으로 맺어진 인연이 최고의 인연입니다. 남이야 무슨 소리를 하든지 최고입니다. 이런 것은 몇 억 원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계를 자기가 영원히 가질 수 있다면 이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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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그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내는 남편을 잘 따르고 잘 받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문학 작품이나 영화의 한 장면에만 나와서는 안 됩니다. 현실에서 일생 동안 그렇게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최고의 역사와 최고의 문화가 엎질러졌기 때문에, 선생님은 그런 세계를 세우기 위해서, 그렇게 살기 위해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 나왔던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이상적 부부란 어떠한 부부냐? 최고의 예술을 실체로 전개시킬 수 있는 부부입니다. 최고의 문학을 실체로 전개시킬 수 있는 부부인 것입니다. 최고의 이상, 세계 최고의 문화세계를 접하기 전에 최고의 사랑으로 부부가 주고받는 달콤한 사랑이 세계 최고의 예술작품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자체가 최고의 문학작품이요, 그 자체가 문학의 실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약 Ⅰ-8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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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장 참된  부모의 사랑


 1) 무엇이든 주고싶어 하는 부모의 마음

자식을 낳아 길러 본 부모들은 알 것입니다. 애지중지하는 그 아들딸을 통하여 복을 받고 싶고 행복도 느끼고 싶을 것입니다. 또한 기뻐하고 복받을 수 있는 기준이 있으면 그 아들딸에게 영원히 남겨 주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한 소망의 마음을 가지고 그 아들딸이 고이 자라, 만국으로부터 추앙을 받고 만세에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기를 타락한 인간도 바라고 있습니다.
밤이나 낮이나 그 아들딸이 상처를 입을까 보호하고, 애달픈 심정으로 초조해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타락한 부모의 마음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품 안에서 젖을 먹여 키우는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 자식이 똥 싸고 오줌을 싸서 냄새가 나더라도 사랑으로 그 환경을 잊어버릴 수 있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타락한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사랑의 주체 되시는 하나님께서 본연의 심정을 통하여 아담과 해와를 사랑하고 싶었던 그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겠습니까?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여러분들이 애기를 품고 키울 때에 잠자리에서 노래를 불러주고 혼잣말로 얘기도 해주며 잘되기를 바라는 그 마음은, 부모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못나고 부족한 부모라도 그 자식에게 결함이 있으면, 부모의 마음은 그 가슴이 몽땅 젖도록 최고의 고통을 겪는 것이요, 이것이 풀어지면 그 고통에 비례한 만큼 기쁨이 동반되는 것입니다. 타락한 부모의 마음도 그러한데 하나님의 마음이야 어떠하시겠습니까? (선집 20-209)

부모는 아들이 죄를 지어서 감옥에 가면 '이놈의 자식 잘 갔구나' 그러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식을 용서하고 눈물을 흘리며 사랑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부모의 사랑이 귀하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 아들이 사형수가 되어서 죽는 시간이라면, 아들이 사형받는 시간을 어머니가 안다면 통곡할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법을 다 변경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아들을 구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 있다면 무슨 모험이라도 생명을 바쳐 하겠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 변치 않는 사랑을 갖고 있기 때문에, 부모의 사랑은 귀하다는 것입니다. 자기 몸을 치고 자기 몸을 잃어가면서, 자기를 희생해 가면서 자식을 위해서는 죽음까지도 불사하는 것이 부모의 심정입니다. (선집 9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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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는 자식을 사랑해 주게 될 때 '내가 너에게 며칠 날 고무신 사 주고 옷 사 주고 너를 위해서 피땀을 흘렸는데, 그 가치는 몇천 몇백 몇십 원이다'하며 치부(置簿)합니까?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데는, 세상의 왕궁의 왕자 왕녀 이상 해주고 싶지만, 그 이상 해주고 싶은 마음을 느끼는 자리에서, '내가 정성을 다해도 이것밖에 없으니 미안하다' 한다는 것입니다.'그 이상 더 좋은 것 해줄게' 하는 마음을 부모는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의 사랑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걸 알아야 합니다. 주고도 부족함을 느끼고, 사랑하고도 덜 사랑한 것이 있지 않겠나 하며 더 사랑하고 싶은 마음, 주고 나서 섭섭하고 안된 마음, 이러한 것이 있기 때문에 이것은 영원한 사랑과 통하는 본질에 속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의 출발의 전통적 동기입니다. (선집 60-84)

부모는 자식을 대함에 자기의 제일 좋은 것을 전부다 주고파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이것은 누구를 닮아서 그러냐 하면, 하나님을 닮아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자식 되는 사람이 진짜로 나타나면 그에게는 자기보다 더 귀한 것을 주고 싶어하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선집 56-147)


 2) 자식이 더 낫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

여기 중년 이상 되시는 여러분들에게 '옛날 젊은 시절에 자기의 상대를 구하는 데 있어서 자기보다 못난 사람을 구하고 싶었습니까, 아니면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구하고 싶었습니까?'하고 묻는다면, 대답은 그 누구나 동일할 것입니다.
못난 사람이 아니라 잘난 사람입니다. 그것은 동서양의 누구를 대해서 물어도 그러한 결론이 내려질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사랑하는 부모가 자식을 대할 때는 그 자식이 부모 된 자기보다도 못나기를 바라는 부모가 없는 것입니다.
어떤 미남 미녀가 결혼을 해서 첫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기의 얼굴이, 그 부모의 얼굴에 비하면 이것은 아무것도 아닌, 생기고 싶은 대로 생긴 얼굴이라 해도, 그 부모에게 당신의 아기는 당신보다도 잘생겼다고 칭찬하면 칭찬할수록 그 부모는 기분이 아주 좋아지는 것입니다.
부모의 심정이란, 아주머니의 얼굴이 잘생겼다고 하더라도 그 아주머니가 안고 있는 아기를 보고 지나가던 사람이 '야! 그 녀석 엄마보다 몇천만 배나 더 잘생겼군'하면 좋아합니다. 그건 엄마는 그 아기보다 몇천만 배 못생겼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말을 듣고 '뭐라고? 나보다 몇천만 배 잘생겼어? 그럼 나는 몇천만 배 더 못생겼다는 얘기 아니야?'라고 하면서 대드는 엄마는 없습니다. 그저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그렇게 하는 마음이 누굴 닮았겠느냐? 어머니는 결과적 존재이지 동기적 존재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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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아버지보다 못하기를 바라는 집안이 있다면, 그 집안은 망하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대통령인데 아들은 그보다 못하게 될 때는 그런 형태로 몇 대를 가게 되면 그 집안은 점점 망하는 것입니다. 맨 나중에는 쥐구멍을 찾는 신세가 됩니다. 그래, 자식이 아버지에게 '내가 아버지보다 못하면 되겠습니까?' 하면 아버지가 '예끼 이놈!'하겠느냐, '오냐 그래라'하겠느냐? 후자를 택하는 것입니다. (선집 41-283)

어떤 부모도 가정의 책임을 맡기기 위해서 자기의 후계자를 내세울 때는 자기보다도 못한 자를 후계자로 세우기를 원치 않습니다. 왜 그러냐? 자식이 자기보다 나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부모는 절대로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나라를 중심삼고 볼 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라의 주권자는 자기 이상의 후계자가 나오기를 바라는 주권자가 되어야 합니다.
가정에 있어서나 국가에 있어서나 그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보다 훌륭하고, 자기보다 모든 것을 더 갖추고 있는 후계자가 나오기를 바라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의 변천을 초월하여 영원에 가까운 요구조건입니다.
부모의 사랑이 영원히 지속되기 위해서는 그 전통을 계승한 누군가가 있어야 합니다. 분명히 자녀들이 상속자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그러한 전통의 상속자가 되도록 교육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전통을 보다 높은 가치로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이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각 세대마다 기존 전통의 중요함을 인식해야 하고, 그 전통을 계승할 뿐만 아니라, 미래를 향해서 발전시켜야 합니다.
그러한 전통은 항상 자기의 자녀들이 자신들보다 더 낫기를 열망하는 부모들이 있는 참된 가정에서만 출발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열망을 가진 부모들은 끊임없이 자녀들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격려해 줄 것입니다.
그러한 부모들은 자녀들이 그들보다 더 훌륭하게 될 수 있는 그날을 고대하며, 자녀들에게 가능한 한 최선의 여건을 마련해 주고자 정성을 다할 것입니다. 이러한 부모들은 자녀들의 행복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할 것이며, 심지어는 자녀들을 부모보다 더 훌륭하게 만들어 주는 방향으로 기꺼이 강요하기도 할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이 자기보다 나을 때 행복을 느낍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로 태어났다가 자기보다 못한 아들딸을 낳게 되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면목이 없어집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상 자기 아들딸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자녀도 이러한 생각을 할 때 자동적으로 사랑의 세계는 나타나고 천국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성약 Ⅰ-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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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부모의 사랑은 만고불변의 사랑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사랑의 그 기원적인 동기는 어디서부터 시작했느냐? 남자 여자를 중심삼은 사랑은 변하는 사랑인데, 거기서 태어난 아들딸을 중심삼은 사랑은 왜 변하지 않느냐? 이것은 그 남녀를 중심하는 사랑에서 되어진 사랑이 아닙니다. 변하지 않는 사랑은 횡적인 부부의 인연으로 되어진 것이 아니라, 종적인 어떠한 흐름의 기원을 통하여서 관계되어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 종적인 주체가 누구냐? 그런 주체를 우리는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그 사랑은 부부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랑이 아닙니다. 그 사랑 앞에 내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하는 입장에 서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끊으려 해도 끊을 수 없습니다. 횡적인 인연으로서 어떻게 터치(touch)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그 사랑은 만고불변입니다.
오늘날 민주사회에 있어서, 개인주의 사상이 팽배한 이 때에, 자식들이 하는 말이 신시대와 구시대는 차원이 다르다고 하지만, 자식들은 그렇게 변했지만, 그 부모의 마음은 구시대니 신시대니 부르짖는다고 해서 '너 그러니 나 그러자'하게 되어있지 않습니다. 부모의 사랑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동물도 그렇습니다. 새끼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는 자기의 생명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선집 48-155)

그러면 그런 사랑은 어디에서 왔느냐? 나 자신이 제1의 어떤 상대적인 결과의 존재라면, 그것은 제1의 어떤 힘의 인연 가운데서 온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으로서는 터치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사랑을 혁명하자! 혁명의 기수가 되자!'하는 사람 보았어요?
만약에 어떤 부모가 이 사랑을 혁명해서 인류역사를 개조해 버리겠다 해 가지고 '나는 부모는 부모지만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나섰다고 합시다. 그렇지만 그 부모는 자식의 배꼽이 떨어지는 순간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자연적으로 발생할 것입니다. 모든 생물은 어떠한 고하(高下)를 막론하고 자기 새끼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데 생명을 투입해서, 생명을 고임돌 삼아 가지고도 하고 싶어하는 작용이 있는 것을 보게 될 때, 만고불변에 가까울 수 있는 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그것은 절대성(絶對性)을 찾아 나가는 데 있어서 절대 그 자체는 못 되지만, 인간 앞에 제일 가까운 고임돌은 될 수 있습니다. 단 하나의 발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이것이 인간세상에 있어서 그래도, 역사를 보게 될 때 영원한 발판이 되어 있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부모의 사랑은 어디에서 왔느냐? 그것은 아버지에게 어떠한 권고를 받아서 배운 것도 아니요, 자기 상대에게 충고를 받아 배운 것도 아니요, 자기 자신이 그래야겠다고 생각해서 나온 것도 아닙니다. 자연히 그리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자연히 그리 되는 데서 성립되는 것입니다. (선집 48-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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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적인 사랑을 분석해 보면 사랑에는 혁명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참사랑에 해당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시조 때부터 사람이 자식을 사랑한 마음이나 수 천 년 후의 후손인 우리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똑같은 것입니다. 또한 수 천 년 후에 우리의 후손들이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도 같을 것입니다.
사랑에는 발전도 없고, 종식도 없습니다. 혁명의 요건이 필요치 않은 순수한 것이 참사랑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은 어떠한 것이냐? 하나님이 어떤 존재를 절대적인 기준의 자리에 세워 놓고, 그의 존재성을 인정하고, 그를 사랑하신다면, 그 사랑은 더 이상 혁명이 필요치 않는 사랑입니다. (선집 18-12)


 4) 모든 것을 희생하는 부모의 사랑

사랑은 홀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생명이 투입되지 않고는 사랑이 성립되지 않는 것입니다. 부자관계의 사랑을 두고 보더라도 거기에는 생명의 인연이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생명의 인연이 남아 있는 한, 생명의 인연 속에서 소원을 갖고 있는 한 거기에는 반드시 사랑의 인연이 남아지는 것입니다.
생명의 인연을 떠나 가지고는 사랑의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에는 반드시 생명의 인연이 투입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 생명을 얼마만큼 투입해 가지고 사랑하느냐에 따라, 보다 가치있게 느끼느냐, 안 느끼느냐 하는 문제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선집 32-15)

예를 들면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그냥 그대로 생활적 인연만을 통해서 하는 사랑이 아닌, 뼛골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인 것입니다.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고, 끊으려 해도 끊을 수 없는, 사랑의 마음을 부모는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의 여력이 남아 있는 한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식과 생명의 인연이 맺어져 있다는 것을 느낄 때, 부모에게서는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자연적으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저 애는 내 아들이니까 사랑하겠다는 의식적인 마음이 앞서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보다도, 그 인연보다도 앞선 자기의 생명력이 자식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들이 가정생활에서 잘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선집 32-15)

그러면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할 때, 천년만년 주고도 또 주고 싶은 그런 마음을 끊임없이 갖고 계신 분입니다. 그런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 것이지, 주고 나서 '야, 요거 몇 냥 몇 전이다'라고 하시는 장사꾼 하나님이라면 그런 하나님은 필요없습니다. 만민은 왜 하나님을 좋아하면서 따라가야 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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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왜 좋아해야 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하나님은 만민을 위하여 모든 것을 주시고 또 주시면서도 부끄러워 하시며 '지금은 이것밖에 안 되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라, 몇백 배 몇천 배 더 좋은 것을 줄 터이니…' 하시면서 오늘 현재에 주신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주면서도 미래에 더 좋은 것을 주겠다는 약속을 하시며 주실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고 계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분과 더불어 있으면 비록 못 먹고 못 살더라도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못 먹는 자리에 들어간다면 미래의 소망 된 자극이 현실권 내에 충격적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도리어 새로운 결심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면서도 부끄러워하는 자리, 그런 부모를 가진 자식이 '엄마'하고 끌어안게 되면 몸만 끌어안겠습니까? 얼마나 고맙겠습니까?
그 자리는 미래를 위해 서로 위로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자리입니다. 절망이 같이하는 것이 아니라, 내일의 소망을 현재의 자극으로 여기고, 서로 결의하고, 서로가 맞부딪쳐 가지고 격려할 수 있는 폭발적인 자리가 바로 그런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비참한 것이 아닙니다.
미래에 대한 자극을 끌어들여 가지고 현실권내에서 가치를 찬양할 수 있는 자리는 그러한 사랑권내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랑권내에 사는 사람은 불행이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선집 36-291)

부모는 사랑하는 자식에 대해서 전체를 희생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하나님은 하나님을 위해서 투입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자신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해서 있겠다는, 상대를 위하는 하나님의 자리에 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을 위해서 있겠다고 하면, 그건 참된 사랑이 아닙니다. 자기를 전부 다 자식한테 희생해 가지고 그 자식과 더불어 있겠다고 하는 데서 사랑이, 생명이, 희망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선집 69-62)


 5)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절대적이다

선생님이 어렸을 때 새 둥지를 많이 보았습니다. 새 둥지를 보려고 올라가 보게 되면 어미가 와서 쪼아댑니다. 결사적입니다. 한 번만이 아닙니다. 쳐 버리면 맞고 날아가면서도 또 옵니다. 이걸 볼 때, 자기 생명을 넘어서 사랑하는 새끼를 보호하려는 동물세계의 힘이 있는 것을 부정하지 못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을 위해서 생명을 투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참된 사람입니다. 진짜 선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사랑을 뿌리로 해 자기 생명을 던져가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하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거기에는 주체적 선이 있는 것이요, 상대적 선의 논리를 세울 수 있는 겁니다. 이것은 만고불변입니다. (선집 18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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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국 댄버리교도소에 있을 때 재미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비탈길을 테니스 코트로 닦기 위해 매일 불도저로 미는 작업을 했는데, 오랫동안 했습니다. 작업을 하다가 중지하기도 하고, 또 우기(雨期)가 되면 건기(乾期)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한 두서너 주일 우기가 지난 후 작업을 하는데, 거기에 물새가 새끼를 쳤습니다. 그 곳에는 죄수들이 운동 삼아 걷는 코스가 있는데, 거기서 불과 3미터 떨어진 곳에 물새가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 물새 빛깔이 얼른 봐서는 알아볼 수 없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은 모릅니다. 그 보호색이 얼마나 잘 되었는지 모릅니다. 알을 낳아 까기 전까지는 사람들이 다니면서도 몰랐습니다. 엎드린 모습을 옆에서 보면 까만 자갈돌 빛깔 같은 보호색이어서 몰랐습니다. 그러다 새끼가 부화되어 뭘 물어다 먹이다 보니 소리가 '찍찍' 나게 되어 다 알게 됐습니다. 짓궂은 녀석들은 별의별 놀음을 다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 물새가 자기 새끼들에 대해서 얼마나 보호력이 있는가 하면, 먹이를 구해서 물고 올 때 절대 자기 새끼 가까이 날아오지를 않습니다. 딴 곳에 내려서 새끼 있는 곳까지 기어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매일 방향이 다르더라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방향을 달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새끼를 키웁니다.
이 새끼들이 점점 자라게 되면 사람이 그 옆에만 가도 어미가 쪼아대며 야단입니다. 새끼를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누가 그렇게 가르쳤느냐? 그게 우주의 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축으로 하여 모든 물이 평면적 위치에 있기 때문에 위치는 낮지만 그 평행선상의 기준은 변함이 없게 되어 있습니다. (선집 136-23)

꿀벌이 꽃송이를 찾아다니다가 꿀맛을 봤다 하게 될 때에는, 다리로 파고 들어가서 꽁무니를 떡 내밀고 빨아먹습니다. 선생님은 벌에 대해 잘 압니다. 꿀맛을 보는 벌을 핀셋으로 잡아당기게 되면 꽁지가 쑥 빠지더라도 안 떨어집니다. 참사랑은 그런 사랑입니다. 자기 생명까지도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계산해서 얼마 이익이 되니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까지도 버리면서 잊어버리고 갈 수 있는 길이 참사랑의 길입니다.
부모는 그 길을 갑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는 자식이 사지에 들어가게 되면 자식을 위해서 죽을 자리에 가려고 합니다. 사랑 앞에 자기 목숨을 묻고 가려고 하는 것이 부모 마음입니다. 그 사랑이 참사랑입니다.
어떤 사람이 세상에서 자랑할 수 있는 금은보화를 가졌고, 피땀 흘려서 엄청난 재산을 모았는데, 자식이 죽을 운명에 처하게 되면, 그 자식을 살리기 위해서는 외적인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자기 생명까지 희생시켜서라도 살리려고 합니다. (선집 34-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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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끝이 없는 부모의 사랑

우리가 사랑이라는 것을 중심삼고 볼 때에 부모가 자식을 향한 사랑의 한계점은 어디일 것이냐? 부모는 자식이 어릴 때에만 사랑해 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생애를 통해서, 더 나아가 영원을 통해서, 사랑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보람을 느낄 수 있으며,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더욱 가치를 느낄 수 있는 부자관계가 맺어진다면, 무한한 힘과 무한한 자극과 무한히 새로운 그 무엇이 그 관계권내에서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성약 Ⅰ-1019)

어머니의 사랑이나 아버지의 사랑은 인간세계에 있어 가장 위대한 사랑 가운데 하나입니다. 세상에서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도 자기 자식 앞에서는 꼼짝을 못 합니다.
부모의 사랑은 자식 앞에 있어 무조건적이고 무한정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사랑의 모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큰 고아들은 무엇보다 부모의 사랑을 갈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아들은 잠자는 집이 있고, 먹을 것이 있다고 해도, 그들 가슴 속에 항상 부족함과 그리움이 있는데, 그것이 뭐냐 하면 부모의 사랑입니다.
여러분은 사랑하는 부모의 자녀로 태어났습니다. 그리하여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랐습니다. 나이가 많건 적건, 부모는 그 자식을 언제나 사랑하기 마련인 것입니다. 만약 70세가 된 아들이 있다 하더라도 옛날 자기가 기르던 그 기준을 가지고 자식을 바라보는 것이 부모의 마음인 것입니다. 연령은 많아져도 심정은 점점 가까워지고, 아들 대한 책임이 커질수록 아들을 위하는 마음은 더 넓어지는 것을, 우리는 세상에서 자식 대하는 인연을 보게 될 때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성약 Ⅰ-1020)

부모가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 뼛골이 녹아나도록 고생을 하지만 힘든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피살을 깎아주고 그 값어치가 얼마인지 장부에 치부(置簿)해 둡니까? 안 하지요? 오히려 몽땅 주지 못해서 안타까와 하는 것입니다.
여기 아주머니들도 그렇지요?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데, 먹지 않으면 왜 안 먹는가 하고 안타까와 합니다. 그것이 사실은 호스를 갖다 대고 자기의 피와 살을 뽑아가는 것이 아닙니까? 어떻게 보면 도둑 중에서 최고의 도둑이 아니예요? 그래도 그 어머니는 아이가 젖을 안 먹으면 안타까워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도 좋아하느냐? 사랑의 법도이기 때문입니다. (성약 Ⅰ-1021)

어머니의 젖가슴을 파고드는 아기들을 볼 때 부모는 사랑을 중심삼아서 사랑을 촉감하고, 또 그 아기를 품음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행복보다도 천지가 평화의 경지에 들어가기 때문에 전체의 분위기가 좋은 자리에서 싹튼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 아기가 아무리 극성스러워도 어서어서 해라 할 수 있는 아량의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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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부모는 자식을 무한하게 사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그 아기가 호스를 갖다 대고 피와 살을 빨아가는 원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어머니로서의 새로운 소망의 자극, 남편에 대한 새로운 자극, 그 아기로 말미암아 찾아지는 새로운 것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때에는 통하는 그 무엇이 있습니다. 그 경지는 누가 좌지우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약 Ⅰ-1021)


 7) 부모의 사랑은 모든 사랑의 기준이요, 전통이 된다

무엇보다 부모의 사랑이 처음인 것입니다. 그 사랑을 동기로 해서 그 사랑에서 원만히 자란 사람이라면, 사랑이 어떻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사랑하기 때문에 부모 사이에 사랑이 어떻다는 것을 부모를 두고 배우게 됩니다. 그것이 자식들에게는 둘도 없는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체휼하는 것은 부모를 가진 자리가 아니고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자녀 사이의 사랑은 어떠해야 하느냐? 무엇을 기준으로 해서 사랑해야 하느냐?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랑하듯이 형제들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누구로부터 배우느냐 할 때, 그것은 부모에게 배워야 합니다. (성약 Ⅰ-1018)

아들딸들이 어머니 아버지에 대해서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세계에서 제일 좋은 분이다. 하나님을 대신하는 존재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부간의 변함없는 마음과 사랑이 한결같은 것을 보고 자녀들이 '그 사랑을 본받아 자녀 된 우리도 하나되자!' 할 때 이상적인 가정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또한 어린이가 성장하여 사춘기가 되면 마음과 심정이 하나되는 상대를 찾아가게 됩니다. 이것은 결혼을 통해서 이룰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상대방을 지극히 존중하고 사랑과 심정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남자가 가야 할 길이요, 여자가 가는 길입니다.
그래서 어머니 아버지도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사랑에 일치되고 자식들도 부모를 닮아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사랑에 일치될 수 있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형의 자리에 선 사람이 자기를 희생시켜 가며 부모 대신 동생들을 사랑하는 것이 사랑의 질서요, 전통입니다. 형님이란 자리는 형제들 가운데 제일 고생을 많이 해야 될 책임이 있는 자리입니다.
부모의 입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식을 대신해 가지고 자식들보다 더 고생하는 자리가 부모의 자리입니다. 부모가 사랑을 중심삼고 자식을 위해서는 눈물이 교차되는 자리라 할지라도 떠나고 싶어하지 않는다면, 자식들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 부모를 따라가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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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되게 될 때 천태만상으로 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간에 사랑을 하는 것도,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을 본받아서 형은 동생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하며 일원화된 가정은 가정애가 꽃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또 사회애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나아가 민족을 사랑하는 민족애가 됩니다. 이와 같이 사랑하면 세계애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부모의 사랑을 받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부부인 아버지 어머니가 서로서로 의지하고, 서로서로 사랑하는 그 동기가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므로 그 동기를 중심삼고 형제끼리 서로 사랑하는 그 사랑은 변치 않을 것입니다.
그것을 중심삼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생각하며 생활할 때, 올바른 사회 환경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보면 그 가정이 소생이요, 사회가 장성이요, 국가가 완성입니다. 반드시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가정과 가정을 전부 다 합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속에서 사랑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국가의 범위에서도 하나로 합쳐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사회는 여러 계층으로 갈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회사에는 사장이란 대표자가 있지요? 그렇지요? 국가의 책임자가 지금 몇이에요? 하나지요? 하나의 책임자가 있게 됩니다. 이렇게 모양은 통일되는 것이고 형체만 커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갈라져 있으면서도 하나되는 것이 사위기대의 원칙입니다. (성약 Ⅰ-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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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 장 참된 자녀교육


 1) 부모는 자녀에게 무슨 교육을 해야 하는가

부모는 아들딸에게 무슨 교육을 해야 되느냐? 지식 교육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의 교육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하나되는 교육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좋아하는 어머니 아버지고, 또 어머니가 좋아하는 아버지고, 아버지가 좋아하는 어머니고, 둘 다 좋아하는 동시에 내가 좋아하는 어머니 아버지고, 어머니 아버지가 좋아하는 나라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태초에 아담과 해와도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 앞에 사랑의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의 기원이 어디냐? 인간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부모이기 때문에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의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그 아담과 해와의 가치기준 설정은 어디서부터 되어지느냐? 하나님의 사랑교육에서부터입니다.
그러면 사랑교육을 받는 데는 어느 때까지냐? 아버지가 아는 모든 가치의 기준을 헤아릴 수 있을 때까지, 다시 말하면 성숙할 때까지는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라야 합니다.
그런데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자랐다는 기록이 성서에 없습니다. 사랑받았다는 얘기는 없고, 기분 나쁘게 타락했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이거 산통이 깨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의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랑의 교육을 받아야 했던 아담과 해와는 사랑의 기준이 있었느냐? 없었다면 하나님의 이상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사랑의 교육기준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천국에 가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천국에 가서는 그런 교육을 못 받습니다.
이 땅에서 교육을 받고 살다가 가야 합니다. 이 땅에서 그 교육을 안 하면 큰일나는 것이요, 안 받으면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그 교육이 무엇이냐? 천국은 심정의 세계입니다. 교리의 천국이 아니요, 교파의 천국이 아니라 심정의 천국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 위에서 백성과 교인을 찾고자 하시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아들딸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어떠한 아들딸을 만들기 위해서냐? '내 마음이 이렇구나' 하면서 그 심정을 토로할 수 있는 아들딸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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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아담과 해와가 교육을 받으려면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되느냐? 부모와 자식간이니까 부모가 가는 곳에는 언제나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가게 되면 어디까지나, 언제나 따라가야 합니다. 부모가 산에 오르면 산으로 따라가고, 골짜기로 내려가면 골짜기로 따라가고, 굴 속으로 들어가면 굴 속으로 따라가야 합니다. 언제나 부모와 같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만일에 하나님이 아들과 떨어져야 한다면 떨어질 수 있겠어요? 하나님은 절대적인 분이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보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분이기에 좋아해도 절대적으로 좋아합니다. '뭐 하나님, 오겠으면 오고 말겠으면 말고, 거 어디 있겠으면 있고 말겠으면 말고' 그러면 안 됩니다. 절대적이어야 합니다. (선집 51-71)

만일 하나님과 안팎으로 하나된 자리에 있으면 배우지 않고도 전부 박물군자(博物君子)가 된다는 것입니다. 연구해 가지고 아는 것보다도 더 그렇다는 것입니다. 천지가 어떻게 되어 있느냐, 영계가 어떻게 되어 있느냐, 인생살이가 어떻게 되어 있느냐? 태어나는 모든 곤충 새끼도 나면 먹을 것을 찾아가는데, 만물의 영장이 배움으로 먹을 것을 찾고, 죽을 것 살 것 아는 것이 아닙니다. 척 벌써 대하면 알게 돼 있습니다.
그렇게 멋진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런 사람이 못 된 것은 타락 때문입니다.
타락을 했을망정 주체와 대상 관계에서 본성은 역시 작용을 하고 있습니다. 작용하는 이 사이에는 지금까지 쌓여 온 더러운 것들이 덮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빼어 버리면 점점 작용이 강해질 것입니다. 완전히 빼내 버렸다 하는 날에는 확 터지는 겁니다. 그럴 수 있는 길을 지금까지 인간들은 추구해 나왔습니다. (선집 56-153)


 2) 부모는 자녀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진리의 내용이 무엇이냐? 진리의 내용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자기의 어머니 아버지를 대신할 수 없고, 진리의 내용이 아무리 좋다고 할지라도 자기의 남편을 대신할 수 없고, 또 자기의 처나 아들딸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진리 중의 최고의 진리가 무엇이냐? 그것은 부모요, 부부요, 자녀입니다. 그 이상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진리의 중심은 뭐냐? 사랑입니다. 이러한 원칙을 중심삼고 볼 때, 최고의 진리의 중심은 무엇이냐? 사람들이 하나님은 진리의 본체요, 선의 본체요, 사랑의 본체요, 생명의 본체라고 하는데, 그것이 무슨 말입니까? 다 같은 말입니다. 진리가 성립되려면 사랑과 생명이 없이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참된 진리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자신의 생명 안에 진리에 대한 의욕과 욕망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욕망은 자신의 인격 기준과는 상대적인 입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핵심이 무엇이냐? 생명의 본체, 사랑의 본체, 진리의 본체는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우리 인간의 아버지인 동시에 어머니입니다. 핵심은 부모입니다. (선집 21-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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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우리의 가장 귀한 유산이 뭐냐? 하나님의 사랑과 참된 부모의 사랑을 자녀에게 상속해 주는 것이 가장 위대한, 이 세상에 없는 상속입니다. 하나님을 잘 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다는 걸 잘 소개해야 합니다. 그걸 모르니까 하나님을 대신해 하나님같이 사랑하고, 하나님을 자기 부모로 대신해 찾을 수 있는 그런 부모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선집 93-336)

우리 통일교회는 뭘 하자는 것이냐? '최고의 사랑을 위해서 죽자. 하나님과 인류와 세계를 위해 죽자'하는 것입니다. '이런 작용도 사랑을 위해서 시작됐고, 이런 방향도 사랑을 위해서 시작됐고, 이런 목적도 사랑을 위해서 시작됐다. 남자 여자도 사랑을 위해서 시작됐고, 어머니 아버지도 사랑을 위해서 시작됐고, 아들딸도 사랑을 위해서 시작됐고, 우주의 모든 것도 사랑의 선물을 위해서 시작됐다'하는 것을 가르칠 때, 이 이상의 교육이 없습니다. 이렇게 살고 간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 앞에 가기에 부끄럽지 않을 것입니다. (선집 93-191)

축복가정들을 보면 자기 2세들에게 '공부해라'합니다. 자기 아들딸에게 공부하라고 해서 그 아들딸이 효자가 되고 충신이 되는 게 아닙니다.
어림도 없습니다. '통일교회에서 어머니 아버지는 고생을 했지만 나는 그런 길을 안 가!' 이럴 수 있습니다. 그걸 소화시킬 수 있는 사랑의 도리를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 아버지가 아들딸을 끌고 다니며 밥을 굶으면서도 동네를 사랑하고,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고 눈물짓고, 이런 것이 철모를 때는 나쁜 줄 알았지만, 철들게 될 때는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제일이다' 하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는 자기 자식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기 자식을 버리고라도 나라를 사랑하겠다, 하나님의 뜻을 위하고 인류를 구하겠다고 한 사실을 철이 들면 들수록 안다는 것입니다.
멋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자식을 염려한다고 그 자식들이 잘되지 않습니다.
사랑의 양식을 먹여서 키워야 합니다. 사랑으로 갈 수 있는 방향 감각을 가르쳐 줘야 합니다. 철이 들면 들수록, 나이가 들면 들수록 거기에서 황금판을 발견할 때, 한 점의 금밖에 없는 산인 줄 알았는데, 파고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그 산 자체가 금덩어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선집 13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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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부모가 먼저 본을 보여 줘야 한다

자녀를 교육하기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실천해야 합니다. 부모가 모범이 되어 뜻 앞에 충성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부모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자녀들이 일언반구도 대꾸하지 않고 부모를 경외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녀들이 따라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늘의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가르쳐 주는 데는 부모가 먼저 본보기가 되어야 합니다. 자식에게 효도하라고 가르치기 전에 먼저 효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먼저 하늘의 법도에 따라 효자가 되고 효녀가 되어야만 거기에서부터 하늘의 전통적 효의 인연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가정에서 효도하듯이 너도 효도해야 되고, 아버지가 나라를 위해서 몰리면서도 투쟁의 역사를 엮어 온 것과 같이 너도 충신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쳐야 합니다. (선집 30-113)

부모가 자식에게 효도하라고 가르쳐 주어 가지고 효자를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효도하겠다는 마음이 우러나오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것은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을 두고 영향을 미쳐야 합니다.
여기에서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 아버지가 하는 대로 자식이 따라올 수 있도록 생활로써 자식에게 본을 보여 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실천하는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선집 29-99)

자기 자식을 가르칠 때는 '너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만 하지 말고,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길을 거쳐서 뭐가 되라고 해야 합니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책임을 다하고 형은 형으로서 책임을 해야 합니다. 누나는 누나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참된 남성, 참된 여성의 길을 갈 수 있는 인연을 가려 나갈 줄 아는,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여러분이 되어야 순리적인 노정을 거쳐, 한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길이 생겨날 것이 아니겠습니까? (성약 Ⅰ-1041)

부모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어머니 아버지가 서로 사랑하는 것처럼 형제끼리 서로 사랑할 수 있게 가르치는 동시에 내가 나라를 사랑하니, 너희도 나라를 이렇게 사랑하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게만 되면 다른 교육이 필요 없습니다. 기도를 할 때에도 내가 이렇게 하니 내 자식도 이렇게 하도록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자기가 먼저 표준이 된 후에야 자식을 그러한 위치에 세울 수 있습니다. 자신이 먼저 그러한 위치에 서면 하나님은 자연히 그 자식도 그와 같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에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중심하고 그 방향을 돌려놓지 못하면, 영계에 가서도 책임 추궁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성약 Ⅰ-1040)

여러분 가정에서 자식들이 우리 엄마 아빠는 세계의 어떤 왕궁의 왕이나 왕후보다도 훌륭하다고 생각하게 해야 합니다. 또한 자식들에게 어머니 아버지의 사이가 천하에 없는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축복가정 여러분이 그런 전통을 세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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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자랑스러운 어머니 아버지다'라고 할 수 있도록 자식들의 골수에 그 전통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 세상의 부모들을 보면 자식들이 그 옆에서 '엄마 아빠 왜 싸워! 왜 싸워?' 하는데도 난장판을 벌입니다.
그때에 눈물을 보이지 않은 여러분의 가정에서 자란 자식들이 그런 세상의 모습을 보고 '과연 우리 엄마 아빠는 세상에서 제일이구나! 참으로 훌륭하고 거룩하신 분이구나'하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여러분은 자식들에게 본을 보여야 합니다. 자식들의 뼛골에서 흘러나오는 심정을 통하여 동경을 받을 수 있는, 부모의 인연을 세워 가지고 말없는 가운데 하늘의 가훈, 가법을 세워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자식들도 후대에 있어서 우리 엄마 아빠 같은 입장에 서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약 Ⅰ-1042)


 4) 부모는 친구 중의 친구요, 스승 중의 스승

사랑이라는 것은 어디서부터 오느냐? 사랑은 자기로부터 오는 법이 없습니다. 사랑이란 상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상대가 없게 될 때는 사랑도 올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을 중심삼고 보면 남자 앞의 여자도 상대적이요, 또 부모 앞의 자식도 상대적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상대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것을 '삼대상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삼대상 사랑을 체휼하지 못한 자는 완전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했다는 자리에 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를 만들어 놓고 좋아했듯이, 나도 아들딸을 낳아 놓고 그 만큼 기뻐하자' 이것이 통일교회 원리의 가르침입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를 지어 놓고 '이제부터 세계를 주관하겠구나. 우리 집이 세계 중심 가정이 되겠구나. 어서 커라 어서 커라'하면서, 희망을 가지고 보호 육성하는 가운데 기쁨과 만족을 느끼면서, 그들이 자라서 결혼할 날을 바라시던 것이 하나님의 소망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버지 어머니는 아들딸을 잘 길러 훌륭한 상대를 골라 좋은 부부를 맺어 주어야 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좋은 부부를 맺어 주면 그 집이 흥하는 것입니다.
친구 중의 친구가 누구냐? 이웃 동네의 더벅머리 총각이 자기 아들딸의 친구가 아닙니다. 친구 중의 친구가 누구냐 하면, 바로 아버지 어머니입니다. 이렇게 돼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친구보다도 더 좋아하는 부모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친구 중의 친구요, 스승 중의 스승이 되어야 합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야야, 너 그렇게 하면 안 돼!'라고 하고, 선생님은 '야 이놈아, 안 하면 종아리 때린다. 그렇게 하면 안 돼' 하면서 교육하면 안 됩니다. 사랑의 교육을 해야 합니다. '야 야, 너 그러면 되겠니?' 하면 '그래, 내가 이렇게 하면 아버지 어머니가 슬퍼하니까 안 되겠지'라고 할 수 있게 교육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모는 자식의 친구 중의 친구요, 스승 중의 스승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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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동산에 있는 아담과 해와에게 친구가 있었어요? 아담에게 친구가 있었다면 해와밖에 없었습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천사장하고는 친구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천사장은 종입니다. 그런데 잘못 친구 삼았다가 망한 것입니다. 그러니 부모는 스승 중의 스승이요, 친구 중의 친구요, 사랑 중의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은 하나님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니까 결국 상대 사랑도 누구로 말미암은 것이냐 하면, 부모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야 야, 너희들이 좋아하는 것은 너희들 때문이 아니라 부모의 은덕으로 말미암은 것이다'라고 할 때 자녀들은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나를 이렇게 길러 이런 상대를 얻어 주지 않았다면 큰일날 뻔했다' 이래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연애결혼은 낙방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교육은 누구로부터 받아야 되느냐? 부모로부터입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하나되어 비둘기같이 재미있게 구구구구 사랑하는 것을 보고, 그것을 본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야,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저렇게 좋아하는 것을 보니까 나 혼자는 외로워. 나도 우리 어머니 아버지같이 구구구구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상대가 필요하다.'
이렇게 돼야 되고, 부모는 그렇게 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 아들딸들이 아버지 어머니가 하던 놀음을 반복하게 되니 세계는 선한 세계가 되는 것이요, 인류역사는 선한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 이것을 하자는 것입니다. (선집 57-119)


 5) 사랑의 채찍

요한계시록에 보면 차든지 덥든지 해야지 미지근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사랑의 세계에서 미지근한 태도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마음을 가지면 매를 들어도 좋다는 것입니다. 자식을 기를 때 사랑을 주었는데도 잃어버렸을 때는 차갑게 대해 줘야 할 때도 있습니다. 잘못했을 때 여러분이 꾸지람을 안 해주면 자식들은 분별력을 잃게 됩니다. 선생님이 좋아 보여도 다른 한편으로는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악에 대해서는 무자비합니다. 그러나 선에 대해서는 몇천 도의 용광로처럼 뜨겁습니다.
최근에 미국의 어느 학교에서 선생이 학생을 때렸다는 이유로 감옥에 갔다는 말을 들었을 때, '미국은 이제 망했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진해서 때려서라도 선한 방향으로 이끌어 달라고 해야 합니다.
한국의 속담에 미운 사람에게는 떡 한 개 더 주고, 예쁜 사람에게는 매를 들라는 말이 있습니다. 올바른 전통을 이어가게 하기 위해서는 할 수 없습니다. 부모님의 채찍이 아픈 것을 잊고, 그 사랑 앞에 눈물 흘릴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사람이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상금을 주는 것이 아니고, '이 녀석아, 왜 그랬어?' 하고 도리어 혼을 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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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동네 총각 같으면 잘못해도 모르는 체 하겠지만 자기 자식 같으면 '종아리 걷어!' 해 놓고 때리면서 '이 녀석아 그것 잘한 거야, 못한 거야?'라고 하게 됩니다.
그것은 때리는 것보다도 더 많이 생각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생각해 주는 것보다 더 때리면 그것은 죄입니다. 자기가 생각해 주는 것보다 더 때리면 원수가 됩니다. 원수 중에도 큰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몽둥이를 든 것보다 더 사랑하지 못하는 자리에서 때렸다가는 전부 다 깨져 나갑니다.
그렇지만 그 이상 사랑하는 자리에서 때리면 괜찮습니다. 즉 사랑을 열만큼 하고 다섯만큼 채찍으로 때리면, 다섯만큼의 사랑이 남아 있으니까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자식이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자식을 회개시키기 위해서는, 옛날 사랑하던 그 사랑보다도 더 큰 사랑을 갖고 나타나서 사랑하게 되면, 그 불량배 같은 자식이라도 회개하고 돌아설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식에 대해서 자기가 길러온 공을 자랑하면서 자식을 세 번만 나무라면, 그 자식은 보따리를 싸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자식에 대해서 뼛골이 녹아나는 눈물을 흘리며 더 큰 사랑을 가지고 사랑하게 될 때, 그 자식은 돌아서는 것입니다. 더 큰 사랑은 작은 사랑을 전부 다 소화 통합시킬 수 있는 주동성이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자식이 피곤해 한다고 공부하지 말라는 부모는, 진짜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매를 때려서라도 잠자지 말고 공부하라고 해야 합니다. 왜 그런가? 지금 잘되자는 게 아니고 미래에 잘되자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의 미래에 큰 꿈을 걸고 그러는 것입니다.
자녀를 낳고 기르는 데에 있어서 참사랑으로 낳고 길러야 합니다. 그리하여 가정이 하나되고, 가정을 중심삼고 나라를 사랑하면 그를 애국자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는 자식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교육을 시키고 올바르게 크라고 '사랑의 매'를 들기도 합니다. 잘못했다는 이유로 부모에게 꾸중을 듣거나, 매를 맞았다고 하여 불만을 갖거나 항의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을 교훈으로 삼아서 은연중 자중하면서 반성하고 고군분투 노력하여 잘못된 점을 고쳐 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바르게 성장하여 하나님이 계시는 센터에 접근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성약Ⅰ-1027)


 6) 공부는 무엇 때문에 하는 것인가

공부하고 싶어서 학교 가는 학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전부 다 처음에는 할 수 없어서 다니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초등학교 학생들은 부모가 무서워서 할 수 없이 다니는 것이지, 공부하고 싶어서 다니지 않습니다. 맨 처음에는 다 그렇다는 것입니다. 할 수 없이 다니다 보면, 나중에는 그 맛을 알고 배우기 위해서 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머니 아버지가 놀라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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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맛을 느끼고, 그런 자극적인 내용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는, 공부하는 데에 재미를 붙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 재미라는 한 자체를 두고 볼 때는 나쁜 것입니다.
그렇지만 공부해 보니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기 때문에 거기에 맛을 들여 공부하는 것입니다. 공부하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공부함으로써 자기가 활동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입니다. (선집 36-120)

학교 가는 학생을 대해 부모는 말하기를 '열심히 공부하라!'고 합니다. 그거 쉽지 않은 길입니다. 고통스러운 길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미래를 위해 준비하라는 예고입니다. 교수들이 단에 서서 제자들을 열심히 가르치는 것도 미래를 위한 준비입니다. 농부가 논밭에 나가서 열심히 일하는 것도 미래를 위한 준비입니다. 이 나라에 천국을 건설하기 위한 준비입니다. (선집 147-205)

여러분은 학교에 무엇 때문에 갑니까?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여 어디에 쓰려고 합니까? 그것은 행복을 위해서일 것입니다. 행복은 사랑을 빼놓고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학교에 가는 것은 사랑의 길을 단축시키기 위해서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인간에게 있어 행복의 문이 열릴 때, 그것은 결혼이라는 것입니다. 행복의 문을 열기 위해서 공부를 하는 것은 매우 좋은 방법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공부가 돈을 벌기 위해서, 권력을 갖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면 잘못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공부는 참사랑을 할 수 있도록 배우는 것이어야 합니다. 처녀들이 대학에 가서 학사가 되려는 그 이유가 뭐냐? 좋은 신랑을 얻겠다는 것입니다.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어떤 남자가 아무리 훌륭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그의 가정이 하나되지 않았다면, 그 남자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성약 Ⅰ-372)

공부하는 것도 참된 남성을 만나 참된 어머니가 되기 위해서라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참된 어머니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나라를 위해서 공부해야 하며, 남편을 참된 남편으로 모셔 참된 남편을 모시는 참된 아내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내가 되지 못하면 참된 남편을 모실 수도 없고, 참된 아들을 가질 수도 없는 것입니다. 여자는 참된 아내가 되어 한 가정의 주부로서 남편과 백년해로해야 하는 것입니다. 시집 잘 가기 위해서 공부한다면, 대학 출신들은 전부 다 부부가 백년해로해야 되지요?
그런데 백년해로하는 사람이 많아요, 이혼하는 사람이 많아요? 알아보나마나입니다. 일자 무식자들이 더 오래 잘 산다는 것입니다. 남자나 여자가 태어나서 오랜 교육기간을 거쳐 성숙한 인격자가 되는 것도 사랑의 이상적 상대자를 만나 행복한 생활을 갖기 위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요즈음 세상에서는 결혼의 상대자를 만나기 위해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결국은 훌륭한 상대자를 갖기 위한 것이고, 상대자와 아름다운 사랑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다 보면, 재물도 따르고 명예도 따르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성약 Ⅰ-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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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참된 부모와 스승의 가르침

부모는 자기의 아들딸을 위해서 일합니다. 자기가 먹기 위해 일을 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자식이 많은 부모가 농촌에서 혹은 노동판에서 힘든 일을 할 때, 가난하지만 지게를 짊어지고 김을 매고 밭고랑, 혹은 논에서 호미질을 하는 것은 천년만년 자식의 행복을 위한 것입니다.
부모의 이마에서 흐르는 수고의 땀방울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 땀의 결실이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과 더불어 엉키게 되면, 거기에는 새로운 창조의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밭에서 김을 매고, 노동판에서 지게질을 해도, 그의 발걸음에는 새로운 역사가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선집 25-97)

우리나라에 사천만 민중이 살고 있지만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도 많이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에서도 그 누구보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10년, 20년 이상 지속되는 부모가 있다면, 거기에는 효자가 안 나올 수 없습니다. 아들과 딸들은 그 부모의 얼굴만 봐도, 손만 봐도 자기들을 위해 수고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뼛골에서 우러나오는 부모의 사랑을 느끼게 될 때, 거기에서 오랜 세월의 깊은 사연이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그처럼 자식으로 하여금 나라를 위해 공헌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그 부모는 국가적인 부모, 혹은 세계적인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이 부모님의 소원을 이루어드려야 되겠다는 심정에 사무쳐서 공부하게 될 때, 새로운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그러한 감정과 느낌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공부를 한다 해도 제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부모가 자식에게 '내가 너를 사랑하고, 너를 위해 애쓰고, 너를 위해 수고하여 땀을 흘리는 것은, 나를 생각하지 말고, 이 나라를 더 사랑하라는 뜻에서이다' 하는 애국지사의 심정을 가지고 교육하면, 그런 부모 밑에서 사랑의 교육을 받은 자식은 부모가 원하는 애국지사가 되기 위해서 노력할 것입니다. 그는 부모님의 사랑을 회상할 때마다 사천만 민족을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민족을 위하는 입장에서 공부를 할 것이며, 자기의 민족이 비참함을 당할 때는 자기의 부모 이상으로 비참함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입장에 선다고만 해서 애국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입장에 서서 이루어 놓은 터전이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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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야 그것이 국민이 천년만년 흠모할 수 있는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다 지나갑니다. 이러한 모든 문제를 생각할 때 심각합니다. 여러분의 학교에 어떻게 하든지간에 자기 제자들에게 올바른 사상을 인계시키기 위해 애쓰는 스승이 있다면, 그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운명을 염려하면서 여러분의 손을 붙들고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권고할 것입니다.
'나를 위해 순응하지 말고 나라에 대해 순응하라. 나를 위해 잘하는 것보다 나라를 위해 잘하기를 바란다' 하고 말입니다. 이런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은 그 스승이 이루지 못한 뜻을 이루어 놓을 것입니다. 이렇게 스승은 자기의 생애를 바쳐서 제자들을 위하여 정성들이고, 부모는 자신의 가치보다도 국가와 세계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면서 자식을 위해 정성을 들이면, 그 스승의 제자와 그 부모의 아들딸들은 동량지재(棟梁之材)가 될 것입니다. (선집 25-98)


 8) 세계와 더불어 살 수 있는 교육

종교는 마루 되는 가르침입니다. 하나님의 마루 되는 가르침은 인류를 가르치고 인류를 사랑해 보자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참된 부모는 자식에 대해서 세계가 좋아하고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인륜은 부모를 사랑하고 부부끼리 사랑하고 자녀를 사랑하라고 가르칩니다.
여러분은 누구 때문에 부모를 사랑해야 하는가 생각해 봤어요? 누구 때문에 부부끼리 사랑해야 하며, 누구 때문에 자녀를 사랑해야 하는가를 생각해 봤어요? 사랑하는 것을 책임져주시는 주인공을 잃어버린 인간입니다. 하나님은 무한한 사랑을 말씀하셨습니다. 최후에 남아질 것은 사랑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워하는 목적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누구 때문에 사랑합니까? 하나님 때문입니다. 하나님 때문에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 때문에 사랑하는자, 죽어 보십시오, 어디로 가는지. 여러분이 자식을 낳아서 젖을 먹이며 귀엽다고 하지만, 누구 때문에 귀여워합니까? 그것은 하늘땅을 대신하여 귀여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나라 이 세계 때문에, 하나님 때문에 귀여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따른 천륜의 운세는 세계를 넘어 천지를 포용하기 위하여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인연을 통해 태어난 아들딸을 나 때문에 사랑한다면 그것은 용납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식을 품고 젖을 먹이는 아주머니들, 하늘땅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딸을 품는다는 사무친 심정으로 자기 아들딸을 품어야 합니다.
여러분, 복 받기를 원합니까? 영생하기를 원합니까? 그러려면 공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식을 교육하는 데 있어서 내 아들딸로만 사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계인을 위한 제물적인 아들딸로서 사랑하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식을 품에 안고 젖을 먹일 때는 이 지구상의 인류를 대표한 어머니의 입장에서 인류를 대표한 어린아기에게 젖을 준다는 마음으로 먹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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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자기 자식에게만 예쁘다고 젖을 먹일 것이 아니라, 남의 자식도 내 자식 같다는 심정으로 대하는 어머니가 되어 보십시오. 그런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자라나는 아기들은 반드시 위대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당장은 안 되더라도 1대, 2대를 거쳐 나가는 동안 반드시 그 후손 가운데 세계를 지배할 수 인물이 탄생할 것입니다. 이것이 공식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훌륭한 어머니들은 자식을 품에 안고,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선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어려운 입장에서도 참을 수 있어야 한다고 그 자식에게 가르칩니다. 그것은 어머니들이 선은 망하지 않는다는 천리를 통했기 때문입니다.
선은 무엇 때문에 움직이는 것이겠습니까? 나 때문이 아닙니다. 밥을 먹는 것도 나 때문에 먹는 것이 아니라 천주 때문에 먹어야 합니다. 장가가는 것도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뜻을 위해서 가야 하는 것입니다.
세계를 목표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경험을 하는 것도 세계를 중심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은 멋이 없는 사람 같지만 멋이 있는 사람입니다. 70년 내지 80년의 눈깜짝하는 일생을 넘어서면 영원히 사는 길이 있는데, 인간은 그것을 모르고 사는 것입니다.
영원히 사는 세계의 시간권 내에 들어가서 그 세계와 연결시킬 수 있는 길을 안다면 그 영원은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밥은 조밥을 먹고 옷은 비록 허름한 보자기 같은 것을 둘러쓰고 앉았더라도 세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옛날에 집이 이랬을 때 이런 사람은 이렇게 이렇게 살아 이렇게 되었다'고 할 수 있는 폭 넓고 끊임없는 화제거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라면, 그곳에 있는 아이들은 우수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성약 Ⅰ-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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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 장 복귀해야 할 인류의 참가정


 1) 하나님의 구원섭리의 목적

하나님에게 제일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느냐가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뭐라고 해요? 하나님은 참사랑의 왕이시고 주인이십니다. 만일 참사랑의 왕이 되시며 신랑되신 분이 하나님이라면 상대자 되는 황후가 필요하다는 말이 절대적 원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 절대적인 그분 앞에 참사랑의 상대가 될 수 있는 분이 누구겠느냐 하고 묻게 된다면, 그것은 참된 인간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일체가 될 아담과 해와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돈을 필요로 하고, 지식을 필요로 하고, 권력을 필요로 하지만, 아내가 없다면 다 허사입니다. 남편에게는 아내가 필요하고 자식이 필요하고, 아내는 남편이 필요하고 자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사랑의 대상이 사는 곳이 가정이라는 곳입니다.
양심의 욕망을 꽉 채울 수 있는 사랑의 주체이신 하나님을 모시고, 그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인 남자와 여자가 하나되어, 그 사랑 안에서 아들딸을 가져 행복하게 잘살 수 있는 그 가정이야말로, 하나님의 참사랑을 중심한 지상천국의 첫 출발의 기지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도 사랑하는 상대가 자기보다 몇 천만배, 무한대의 가치있는 존재로 나타나기를 소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자기의 사랑하는 상대가 무한한 가치의 존재가 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참된 인간인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 남자와 여자가 타락하지 않고 완성해야 할 바로 아담과 해와였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성약 Ⅰ-79)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아담 가정의 참어머니와 아들딸들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이 가질 수 있는 참아들딸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참사랑을 중심하고 혈통적인 인연을 가질 수 있는 하나님의 가정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부모로 말미암아 거짓 사랑과 거짓 생명과 거짓 혈통의 인연을 맺음으로써 우리 몸 마음의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아담과 해와가 원수가 되었습니다. 아담의 아들딸들 간에 살육전이 벌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렇게 된 것을 복귀하기 위한 구원섭리는 복귀섭리이기 때문에, 잃어버린 참된 몸 마음이 하나된 아들딸로서 절대적으로 하나되는 부부, 아들딸이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참사랑을 중심삼고 완전히 하나되어 하나님과 영원히 같이 살 수 있는 참가정을 이루어, 신부종교격인 기독교와 연결시켜 하나님과 혈연관계를 맺음으로써, 하나님의 참사랑으로 통일된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를 다시 편성해야 된다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섭리의 완성인 것입니다. (성약 Ⅰ-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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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종교를 세운 목적이 무엇이겠어요? 하나님이 제일 사랑하는 아들딸, 하나님의 뼈와 살이 하나될 수 있는 그런 사랑하는 아들딸 중심삼은 사랑하는 가정․종족․민족․국가를 형성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메시아는 어떤 분이냐 하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참사랑을 뿌리로 하고 비로소 지상에 찾아오셔서, 모든 종교들이 바라는 이상을 완성할 분이 재림 메시아라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참부모가 되어, 잃어버렸던 참사랑을 중심하고 참된 생명과 참된 혈통을 온 땅 위에 이상가정으로서 찾자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섭리의 목적이었습니다. (성약 Ⅰ-80)


 2) 사탄의 소유물이 된 아담가정

아담과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그들을 참다운 인류의 조상으로, 인류의 부모로, 당신의 아들딸로 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 앞에 둘도 없는 아들딸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아들딸로 대할 수 없는 자리에 서버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또 아담과 해와가 장성한 후에는 부부로 축복하여 위로의 대상으로 삼으시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아들딸로서의 위로의 대상이 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신랑 신부로서도 위로의 대상이 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바라시던 소원이 큰만큼 그들에게 무한한 가치를 부여하고 바라보셨던 것인데, 그들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자녀로서 위로해 드리는 심정을 느끼지 못했고, 신랑 신부로서, 즉 부부로서 위로해드리는 심정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해와가 미래에 소망의 조상으로서, 만인류 앞에 하나의 군왕으로서, 하나님 앞에 충효의 도리를 세우는 입장이 되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하나님 앞에 그들은 위로의 대상이 되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성약 Ⅰ-327)

타락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습니까? 가정에서 타락한 것이 무엇입니까? 선악과를 따먹은 것입니까? 가정적으로 타락할 수 있는 것은 사랑일 수밖에 없습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했겠습니까? 선악과를 따먹어서 원죄가 생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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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 죄라는데 선악과가 무엇이기에 천대 만대 후손이 죄인이 됐겠습니까? 이것은 혈통적 관계입니다. 혈통적으로 죄의 뿌리를 심어 놓으면 유전 법칙에 의해 영원히 가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것은 사랑 문제뿐입니다.
그릇된 사랑이 타락의 원인입니다. 불륜(不倫)한 행음관계(行淫關係)에 의하여 해와는 천사장과 하나가 되었고, 아담은 다시 천사장과 하나된 해와와 하나됨으로써 아담과 해와는 결국 하나님을 중심한 것이 아니라, 천사장을 중심한 부부관계를 맺고 가정을 이루게 되었기 때문에, 아담과 해와의 후손인 모든 인간은 사탄의 핏줄을 이어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본래의 아담과 해와의 아들은 하나님의 장자와 차자가 되었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해와가 불륜(不倫)한 정(情)으로 천사장과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그의 아들인 장자와 차자는 사탄의 소유물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본래 창조이상 가운데에서 사랑은 소유(所有)를 결정짓게 만듭니다. 사랑의 관계를 맺으면 그 사랑을 중심한 주체와 대상은 반드시 서로서로의 소유권을 갖게 되는 것이 원리입니다.
따라서 이런 원리적인 기준에서 살펴볼 때, 해와가 천사와 불륜한 사랑의 인연으로 타락하게 되었으므로 해와의 후손으로 태어나는 인간들의 소유권은 천사장인 사탄에게 있게 되었던 것이고, 사탄은 그 소유권을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창조이상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타락한 부모가 됨으로 말미암아 원죄 있는 자녀를 번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타락한 아담과 해와의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민족․국가․세계로 발전해 나온 것이 인류역사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 이후 오늘날까지 하나님의 본연의 뜻을 완성한 입장에 선 참된 부모의 이상이 남아져 내려온 것입니다. 그리고 참된 부모를 중심삼은 참된 가정과 참된 종족․민족․국가․세계는 아직까지도 이상(理想)으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성약 Ⅰ-325)


 3) 타락인간의 소원

인간 조상 아담과 해와는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타락된 혈통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바라는 본연의 이상세계, 타락하지 않은 그 세계에서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 하나님의 직계혈통을 받아 아들딸을 낳아야 할 참부모가 되지 못하고, 사탄과 인연을 맺어 죽은 자식을 낳은 사탄의 괴수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날 인류는 전부 거짓부모를 만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짓부모의 혈통을 부정하고 참부모를 만나야 합니다.
타락인간의 소원은 하나님의 아들을 만나는 것입니다. 가인의 아들로 태어난 억울함을 지니고 탄식하며 하나님의 참아들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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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개인적인 하나님의 아들, 가정적인 하나님의 아들을 찾으려면 인류가 얼마나 고생하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국가적 기준의 아들권을 대표한 메시아를 보내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들이 메시아를 맞는 날에는 개인적인 하나님의 아들․가정․종족․민족․국가적인 하나님의 아들까지 찾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국가적인 아들까지 찾을 수 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 주기 위한 것이 메시아의 강림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타락의 인연을 지니고 태어난 우리들은 사탄의 참소조건을 초월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을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만나고 난 다음에는 부모를 만나야 합니다. 여러분은 타락한 부모는 가졌지만 타락하지 않은 참된 부모는 갖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참된 부모를 찾아야 합니다. 그 다음엔 부모의 가정을 찾아야 합니다. 부모의 가정을 찾은 다음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찾은 다음에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타락 인간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형제를 찾아야 되고, 아버지를 찾아야 되고, 어머니를 찾아야 되고, 내 집을 찾아야 되고, 내 고향을 찾아야 합니다. 이러한 길을 걸어가야 했던 게 이 땅의 인류였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부모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들딸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하고 서로 사랑하는 가정을 이루게 되면,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할 수 있는 환경에서 사랑의 노래를 부르면서 자동적으로 번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는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한 민족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이 그러한 가정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종교를 통해서 그러한 가정의 기준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을 찾기 전에는 종족이나 민족․국가․세계는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이상․소원․희망이 무엇이냐고 할 때, 다음과 같이 결론지어 말할 수 있겠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을 내 아버지로 모시는 것이 최대의 희망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아들딸이 되는 것이요,
세 번째는 하나님이 소유하고 계신 전부를 상속받는 것입니다. 그 이상 더 큰 인간의 소원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약 Ⅰ-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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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복귀의 최종 목표는 아담가정을 복귀하는 것

복귀의 목표는 아담가정 복귀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가 타락한 즉시 구원섭리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나 가인이 아벨을 살해하여 아담 가정을 중심한 구원섭리는 노아 가정으로 옮겨졌습니다.
하나님은 노아 가정을 중심으로 하여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홍수 심판으로 멸망시키고, 사탄의 침범조건을 넘어선 가정을 세워 지상섭리의 기반을 구축하고자 하셨습니다. 그것이 다시 아브라함․이삭․야곱을 거쳐 모세 시대로 옮겨지고 예수께로 이어져서 우리의 시대까지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귀섭리의 최종 목표는 잃어버린 아담 가정을 찾아 세우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무엇을 찾아 오셨느냐? 주체를 찾아 나오신 것이 아닙니다. 이상적인 대상을 찾아 나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본받았고, 당신이 지은 세계의 안팎의 내용을 갖추고 있는 것을 찾아 나오신 것입니다.
이런 결과적인 하나의 기점이 무엇이냐? 가정입니다. 가정보다 우주를 대표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역사 전체가 무엇으로 귀결되느냐 하면, 물질과 자녀와 부모, 다시 말하면 가정의 기준으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주의 근본입니다. 부모가 없어 가지고는 자녀가 태어날 수 없습니다. 부모로부터 태어난 자녀가 부모를 중심삼고 만물을 주관해야 합니다. 아담과 해와도 만물을 주관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부 다 한꺼번에 적용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6천 년 동안 복귀섭리를 하신 것이 무엇을 찾기 위한 것이냐? 한 나라를 찾기 전에, 혹은 민족과 교회를 찾기 전에 뭘 찾아야 했느냐? 가정입니다. 즉 자기의 상대를 찾고 가정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한 나라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가정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체의 근본이 뭐냐 하면 가정입니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의 가정이 파괴되었으니 이것을 복귀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타락하지 않은 아담 대신으로 오셔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둘째 아담으로 오신 분입니다.
인류의 첫째 조상인 아담은 타락한 조상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본연의 뜻을 세우기 위해 타락하지 않은 참조상으로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런 참조상을 중심삼고 아담 가정을 찾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인류 시조가 타락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시조가 타락할 때 혼자만 타락했습니까, 둘이 타락했습니까? 둘이 다 타락했습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타락을 하더라도 혼자만 타락했다면 문제는 간단합니다. 혼자만 타락했다면 하나님은 창조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다시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 가정에서부터 출발하느냐? 모든 사건이 가정에서부터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즉 아담과 해와의 가정에서부터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린 것도, 천사세계를 추방한 것도. 만물세계를 잃어버리고, 인간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인간의 사랑을 잃어버린 것도 모두가 아담 가정에서 남자와 여자가 잘못 만났기 때문입니다. 오늘날까지 종교단체, 특히 기독교에서 목표로 하여 신앙해 온 개인의 구원은 완성이 아니라, 첫 단계의 시작에 불과한 원초적인 구원인 것입니다.
구원의 목표는 가정 구원을 단위로 하는데, 그 가정 구원의 기반이라는 것은, 세계를 지도할 수 있고, 세계의 구원까지 책임질 수 있는 가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심정권이 확립된 가정을 이루는 것이 신앙생활의 최고의 이상이 되어야 합니다. (성약 Ⅰ-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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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예수님이 이루셔야 할 복귀의 가정

예수님은 무엇 하러 오셨느냐? 가정을 찾으러 오셨습니다. 구원의 역사는 복귀역사입니다. 병이 났으니 병을 낫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러면 구원은 무엇이냐? 가정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것을 다시 찾는 것입니다. 다시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잃어버린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가지 않으면 찾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인간이 가정을 찾아야 되느냐? 예수님은 어찌하여 가정을 찾으러 와야 되느냐? 이것은 본래의 가정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병이 났으니 병을 고쳐야 합니다. 즉 타락을 했으니 복귀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성약Ⅰ-484)

하나님은 원리 원칙을 따라 운행하시는 분임을 알아야 합니다. 아담을 잃어버렸으니 사탄세계에서 다시 찾아와야 합니다.
아담이 잘못하여 남편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담이 해와를 지배하고 차지할 수 있는 자리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해와를 사탄세계에 빼앗겼습니다. 그래서 사탄세계에서 다시 찾아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해와를 다시 찾아오려면 싸우지 않고 되겠어요?
나라의 기반으로부터 교회의 기반, 종족의 기반, 가정의 기반을 하나님은 준비하셨습니다. 그래서 요셉 가정을 세우셨고, 사가리아 가정을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요셉 가정의 예수와 사가리아 가정의 세례 요한이 하나되었다면, 짧은 기간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믿었다면 어떻게 되느냐? 또, 세례 요한의 누이동생을 예수님이 신부로 맞아들였다면 어떻게 되었겠느냐? 뜻이 이루어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말을 하면 기독교인들이 당장 반대하겠지요? 큰일났다고 야단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반대해 봐야 소용 없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반대하고 있지만 영계(靈界)에 가 보면 레버런 문이 거짓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원래는 아담과 해와가 실체의 아버지 어머니로서 일체를 이루어 가지고 하나님의 창조이상인 가정 완성, 즉 사랑의 가정이상을 완성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을 완성시키기 위해 예수님이 오셔야 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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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예수님은 오셔서 신랑의 자리에서 신부를 맞이하셔야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일치되어 가지고, 에덴동산에서 타락하지 않고 완성할 수 있었던 본연의 아담의 자리를 복귀하여, 그 사랑으로 묶어지는 날에는 그 누구도 다시는 타락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하면, 남성 완성의 기준과 여성의 기준을 세워 놓고,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가정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가정이 이루어졌습니까? 하나님의 가정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알았고, 또 믿었습니다.
그러나 유대 민족의 불신으로 예수님을 위한 이스라엘 민족의 4천 년 역사의 기반과 유대교가 무너졌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비참하게 돌아가셨습니다. 이런 기가 막힌 예수님의 사정을 지금까지 누가 알았습니까? 아무도 몰랐습니다. 오늘 이 문이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해주니 여러분이 알게 된 것입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예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신랑 되신 예수님은 신부 되시는 참어머니를 찾아 세워놓지 않으면, 하나님의 가정 완성이 불가능합니다. 예수님의 가정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하나님의 뜻은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가정을 찾지 못하면, 나라도 찾을 수 없고 세계도 찾을 수 없으니까 예수님도 이 땅에 와 가지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가정을 이루려 했습니다.
그러니 하나의 신랑으로 신부를 찾아야만 합니다. 한 남자를 중심삼고 참부모도 생겨나고, 참된 부부도 생겨나며, 참된 형제도 생겨날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을 결정적으로 이루겠다고 예언한 것이 어린양 잔치 때 신랑 신부를 맞자 하는 것입니다. (성약 Ⅰ-490)


 6) 재림주님을 중심한 복귀의 가정

복귀의 가정은 어떠한 가정이냐? 역사적인 소원의 실체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6천 년 동안 이 한 가정을 찾기 위해 섭리하셨습니다. 이 역사적인 소원의 실체가 어디에서 이루어져야 하느냐? 바로 이 현세의 현실사회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미래에 이루어져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역사적인 소원의 기준이요, 현세 만민의 소원의 기준입니다. 인류의 과거․현재․미래의 소원의 기준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나 왔다 갔던 수많은 성인 현철들도 이 가정을 그리워했습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이 신부를 맞이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복귀의 가정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다시 찾아야 할 복귀의 가정, 그것은 인류가 소망하는 가정입니다.
6천 년 역사 속에서 믿고 나오던 수많은 종교 지도자들이 수많은 원수의 집권자들이나 위정자들에게 희생당하면서도 간절히 소망한 것은 주님이 오셔서 그들의 한과 원수를 갚아주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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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들의 원수를 갚는 데는 주님 혼자서는 안 됩니다. 혼자 할 수 있었으면 벌써 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하늘 가정이 나와야 합니다.
하늘 가정이 편성되어 땅 위에 새로운 발판을 닦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심정의 다이나마이트를 가지고 사탄세계를 폭파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성약 Ⅰ-494)

복귀의 가정이라 했으니 그 복귀된 가정의 중심은 누가 되느냐? 하나님이 찾으시는 참된 아들딸로 이루어진 하나의 가정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이기 때문에, 그 가정의 중심은 하나님의 진정한 아들딸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누구겠습니까? 이 우주를 상속받을 수 있는 전권을 가지고 오시는 분입니다. 그분이 재림주입니다. 그 재림주가 와서 가정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한이 무엇입니까? 아담과 해와가 에덴동산에서 참된 아버지 어머니로서 참된 가정을 이루어 역사를 출발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은 인류의 한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한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목적은 그러한 가정을 세워 가지고 이 지상에 평화의 왕국을 창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가정이 깨져 나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6천 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한을 품으시고, 복귀의 역사를 되풀이해 오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한의 고빗길을 수없이 밟고 넘어 지금까지의 역사를 이루어 오신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역사를 책임지고 해결짓기 위하여 오시는 분이 재림주입니다.
그러면 재림주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가정을 이루는 데도 공중에서가 아니라 땅에서 이루어야 합니다. 그래야 거기에서 종족이 나오고 민족이 나오며, 국가가 나오고 세계가 나오는 것입니다. 오시는 예수님은 반드시 하나님이 바라시는 가정을 세워야 하는데, 그 가정은 참가정이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인류는 참된 사랑을 추구해 나왔습니다. 어차피 거짓된 사랑의 형태가 가정이나 사회에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만민이 공유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인류 전체가 바라는 최대의 사랑을 중심삼은 하나의 참된 가정이 출현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정이 나오지 않고는 종족을 편성할 수 없는 것이요, 그러한 민족이 나오지 않고는 국가나 세계를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이 인류 앞에 제시한 구원섭리에서 인간이 대할 수 있는 최고의 기준과 신으로서 바라는 최고의 이상적 기준점은 가정에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성약 Ⅰ-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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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통일교회는 본연의 참가정을 찾기 위한 곳

역사시대의 모든 종교는 지금까지 무엇을 해 왔는가? 지금까지 남자 하나를 다시 찾아 나온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종교는 상대의 인연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나가다가는 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남자 하나를 찾아 나오는 역사시대에 있어서 남자를 찾았다고 할 수 있는 기준까지 가게 되면, 그 후에는 여자를 찾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뭘 하는 곳이냐 하면, 가정을 찾는 교회입니다.
지금까지 종교의 목적은 개인을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통일교회는 개인의 구원보다 가정의 구원을 목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구원을 하되 가정을 구원하고, 천국을 가되 자기 혼자 안 간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구원관은 남편은 천국에 보내고, 부인은 지옥에 보내자는 것이 아닙니다. 둘 다 천국에 가자는 것입니다. 또한 어머니 아버지를 지옥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 아버지를 모시고, 또 아들딸도 데리고 천국에 가자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자기가 사랑하는 가정, 자기가 사랑하는 종족까지 몽땅 데리고 천국에 갈 수 있는 도리를 가르쳐 주는 종교이기 때문에, 다른 종교와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종교는 독신생활을 강조했지만, 통일교회는 가정을 중요시하는 것입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가는 것입니다. 그 가정은 세계를 위한 가정이요, 하나님을 위한 가정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교인들이 가야 할 길이요, 금후에 여러분이 생활해 나가야 할 길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성약 Ⅰ-485)

법을 초월하고, 제도를 초월하고, 환경의 모든 배경을 초월하고, 자신까지 초월하여 영원히 같이 있고 싶어하는 인연을 맺고자 하는 것이 부모의 사랑이요, 부부의 사랑이요, 자녀의 사랑인 것입니다. 이것을 무시한 사회 제도가 있을 수 없으며, 이것을 무시한 국가는 형성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개인 구원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 구원을 원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개인 구원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 구원을 이루자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이 점이 다릅니다. 모든 인간들이 최후에 가져야 할 공통적인 목표요, 가야 할 공통적인 관문이 무엇이냐? 나라도 아니요, 세계도 아닙니다. 공산주의 세계도 아니요, 민주주의 세계도 아닙니다. 공산주의 세계가 있기 전에 본연의 가정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민주주의 세계가 있기 전에 민주주의 세계를 창건할 수 있는 본연의 가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여기에 대한 질서가 어디에 있었으며, 여기에 대한 교육이 어디 있었으며, 여기에 대한 목적 기준이 어디에 있었던가? 이런 결정적인 기준이 이 땅 위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타나기 전에는 평화의 왕국, 평화의 이상국가, 평화의 나라는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바라는 것은 이런 이상적 가정, 본연의 가정, 살아야 할 가정, 만나야 할 가정, 찾아야 할 가정이 이 지구상에 반드시 나타나 인류 역사와 더불어 운명을 같이할 수 있는 한 때가 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땅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가 이루어지는 것이요, 안식의 복지, 안식의 보금자리가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성약 Ⅰ-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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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통일식구 소원은 무엇이냐? 복귀의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원도 여기요, 만국의 평화의 기원도 여기요, 천상천하의 행복의 기점도 여기요, 하나의 섭리의 기점도 여기요, 하늘 땅이 뒤집어지는 천지개벽의 기점도 여기요, 모든 인생의 가치의 근원도 여기요, 소망의 출발점도 여기입니다. 전부 다 여기입니다. 그러면 복귀 가정의 중심은 누구입니까? 참조상입니다. 참조상은 참부모입니다. (성약 Ⅰ-496)


 8) 참가정주의와 참부모종교

타락한 부모의 인연으로 하나님에게서 이탈된 전통을 받아 이 세계가 이 모양이 됐습니다. 그러니 참부모가 와서 새로운 주의를 세워야 합니다. 그것이 무슨 주의이겠습니까? 세계주의겠습니까? 천주주의겠습니까? 참가정주의입니다. 참가정주의가 나오지 않고서는 세계주의가 못 나옵니다. 이 참가정주의의 대표자는 하나님의 참된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심정적인 모든 것을 상속받는 내정적인 상속자요, 외형적인 상속자, 그리고 만물 소유권의 상속자가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상속받을 수 있는 분이요, 몸을 상속받을 수 있는 분이요, 만물을 상속받을 수 있는 분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아들이라야 하나님의 대신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아들이 와야 비로소 천국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참가정주의는 무슨 주의입니까? 참가정주의는 하나님의 사랑주의입니다. 간단하지요? 사랑이 없으면 제아무리 세계 제일이라고 배통을 내밀고 다녀도 그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참가정주의는 부모가 가면 아들딸은 부모의 뒤를 영원히 따라가는 주의, 또 형님이 가면 동생이 영원히 따라가는 주의, 동생이 가면 형님이 영원히 따라가고, 형님의 나라가 있으면 동생의 나라도 따라가겠다고 하는 주의인 것입니다. (성약 Ⅰ-501)

하나님의 사랑주의는 어떤 주의냐? 국경을 초월하고 이 모든 평면적인 세계를 초월하여 서로 주고 받는 데 있어서, 서로가 주는 것을 먼저 하려 하고, 받는 것을 나중에 하려 하는 주의입니다. 그런 주의의 세계가 앞으로 올 이상세계입니다. 이상세계는 무슨 큰 권세를 가지고 '이놈들아!' 하고 호령하는 세계가 아닙니다. 이상세계라는 것은 자동적으로 마음이 움직여서 하나님의 사랑에 화할 수 있는 만민 형제주의 세계입니다.
앞으로 그러한 세계가 될 것입니다. 앞으로는 가정구세주 종교가 나와야 합니다. 그것이 참부모주의입니다. 참부모 종교입니다. 참부모 종교라는 것은 사위기대를 이루는 참부모 생활종교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버지 어머니가 그 가정 아들딸의 구세주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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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계시록 맨 나중을 보게 되면, 복귀역사가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복귀의 원칙이 있었기 때문에 성경 끝장에 복귀의 내용을 집어넣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7절을 보면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대가 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신부와 성신이 무엇인지 알겠습니까?
신부는 주님의 아내 되는 것이며 성신은 영적인 것이니, 여기에서 영육이 합한 어머니가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아버지로서 남성이므로 여성 가운데서 어머니를 찾아서 새로운 세계로 구원해야 합니다. 이것을 기독교인들은 모릅니다. 가르쳐 주겠다고 해도 싫다고 하고, 도리어 이단이라고 하니 기가 막힐 따름입니다. (성약 Ⅰ-502)

천주주의는 무엇이냐? 가정을 두고 말하면, 내가 살고 있는 가정에 금은 보화가 천하를 꽉 채우고도 남을 만큼 있다 하더라도 거기에 취해 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잊어버리고 언제든지 하나님의 사랑에 취해 살 수 있는 그런 가정입니다. 아들의 것은 부모의 것이요, 부모의 것은 하나님의 것으로 고스란히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천주주의는 어떤 주의냐? 참부모주의입니다. 결국 이 두 주의는 부모의 주의입니다. 이것은 우리 집 주의요, 우리나라 주의요, 여러분 개인의 주의입니다. (성약 Ⅰ-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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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 장 가정은 영원한 행복의 터전


 1) 가정이 왜 좋은가

가정이 왜 좋으냐? 가정에서는 사랑을 서로 자유롭게 주고받을 수 있는 터전이 되어 있어서 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자기 고향을 그리워하고 부모와 형제가 있는 곳을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선집 38-238)

가정은 좋은 곳입니다. 왜 좋으냐? 엄마 아빠가 있어서 좋은 곳이며, 누나 오빠가 있어서 좋은 곳이며, 동생이 있어서 좋은 곳이며, 친척이 있어서 좋은 곳입니다. 그래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본향 땅,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의 심정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나라보다도 고향을 더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에 살면서도 그리워하는 곳은 고향입니다. (선집 23-151)

여러분! 가정이 왜 좋습니까? 그것은 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자유활동의 기지가 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자유스럽게 활동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보기에는 아무리 초라해도 빛나는 사랑의 핵을 지닌 그런 내적인 인간으로 이루어진 사회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자유롭습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아요? 어느 집에 손님으로 가면 부자연스럽지요? 왜 그래요? 그것은 사랑의 인연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인연이 사방성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어색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인격의 길입니다.
한 가정을 중심삼고 제일 좋은 것이 무엇이냐 할 때, 그 제일 좋은 것은 여러분 자신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정에서의 최상의 가치는 무엇일까요? 부모(父母)입니다. 여러분 한 개인을 두고 보더라도 여러분에게 어떤 권력이나 지식, 또는 명예나 돈도 귀중한 것이 될 수 있을 테지만, 그 모든 것보다도 더 좋은 것으로 '부모'이외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여러분의 아내나 남편이 될 것이고, 또 그 다음에는 여러분의 자녀가 될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의 가정에서 여러분의 부모나 아내, 그리고 자녀들보다도 더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이 있습니까?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 왜 부모가 좋은 것이 될까요? 그리고 또 남편과 아내, 그리고 자녀가 왜 좋은 것이 될까요?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사랑, 이것은 자식에게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됩니다.
그리고 형제간의 우애(友愛)라든가, 자녀가 부모에 대해 가지는 효성의 마음도 한 가정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선집 112-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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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집에서 제일 좋은 분이 누굽니까? 부모지요? 왜 부모가 제일 좋습니까? 사랑을 중심으로 한평생을 관계맺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은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가 될 것입니다. 그 남편과 아내가 어떤 조건적인 사랑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사랑, 이 사랑이 비록 절대적으로 하늘이 준 영원한 사랑과 밀접하게 관계된 사랑이 아니더라도 부부간의 상대적 관계에서 맺어질 수 있는 사랑이 된다면, 그 사랑이 그 가정에 행복과 화목을 가져오는 가장 좋은 것이 아니겠느냐고 보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부모에 대한 자식의 사랑, 부모를 위한 자식의 사랑입니다. 절망이 아니라 내일의 소망으로 싹틀 수 있는 이상적인 환경을 그리워하면서 밝고 긍정적인 자세로 자식이 부모를 위해 희생하고 사랑할 수 있다면, 그 자식의 사랑은 그 가정의 행복을 위한 순수하고 진실한 가치로서의 사랑이 될 것입니다.
이렇듯 부모의 참된 사랑과 부부의 참된 사랑, 그리고 자녀의 참된 사랑이 완벽하게 구비된 가정이 있다면, 그 가정은 우리 인간세계에서 가장 이상적인 가정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성약 Ⅰ-914)


 2) 가정은 영원한 행복의 터전

인간생활에서 어떤 사람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할 때, 무엇을 기준으로 하여 행복하다고 말합니까? 외적인 어떠한 능력․권세․권위를 가졌다고 행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또한 남부럽지 않을 만큼의 돈이 있다고 해서 행복한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또 세계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어서, 세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해서 그가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결코 그것만으로 사람이 행복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선집 23-11)

어떤 사람이 이만하면 천상천하에 부러울 것이 없다고 행복을 노래한다 하더라도 그런 외적인 것은 행복이 될 수 없습니다. 행복을 찾아가는 조건은 될 수 있지만 행복 그 자체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결정되어야 행복을 느낄 수 있느냐? 사랑하는 부모가 있고, 부부가 있고, 자녀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어느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만이라도 없으면, 거기에 해당하는 비례적인 슬픔을 느낄 것이요, 비례적인 불만이 그 가슴 가운데 남아지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성약 Ⅰ-913)

이 땅의 모든 인간들이 일반적으로 행복의 터전은 가정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가정에는 부모가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부모 없는 자식을 고아라고 부르며, 그 고아는 불쌍한 사람으로 취급받습니다. 가정에는 부모가 있는 동시에 부부의 인연이 있습니다. 부모가 없는 것도 불쌍한 것이지만, 부부 중 한 사람이 없는 것도 불쌍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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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사랑스럽게 지내던 부부라 할지라도 사랑하는 배우자를 잃게 될 때는 더없이 비참하고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부부가 자녀를 갖지 못하면, 그것 역시 불행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선집 23-11)

가정에는 반드시 부모가 있고 처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가정이 행복의 터전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류를 찾아 나오는 목적도 하나님 자신의 행복을 모색하기 위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 자신이 행복의 터전을 찾아 나오는 데에는 인간을 떠난 자리에서는 그러한 이상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과 더불어 관계를 맺어야 그 일치점을 가져올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정서적인 모든 내용을 갖춘 자리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역시 그러한 자리에서 행복을 느끼겠다는 것입니다.
행복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이냐? 콧노래를 부르며 맞을 수 있는 그런 환경은 어디서부터 오느냐? 가정에서부터 오는 것입니다. 가정의 행복은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또 심정, 사랑이 없어도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부모 앞에 자녀가 없게 될 때는 부모의 행복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자녀에게 부모가 없어도 자녀의 기쁨은 없다는 것입니다. 혹은 어떤 남성이 있으면 상대 되는 여성이 없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여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떠한 부부가 있으면 그 부부의 소원은 그들이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놓고 보다 높은 차원에서 사랑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부 앞에는 반드시 자녀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의 가정이 이루어지는데, 위로는 부모가 계시고, 아래로는 자녀가 있어야 하며, 또한 부부가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의 가정은 종과 횡으로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를 중심삼고 하나가 될 것인가?
인간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인간들만으로는 보다 높은 가치를 추구할 수 없기 때문에 절대적인 사랑의 주체가 있다면, 그 주체를 중심삼아 부모는 하나되기를 바랄 것입니다. 거기서 부부와 자녀가 그 주체를 중심삼아 사랑으로 일체를 이룬 자리가 행복의 자리이며, 소망의 자리가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로 귀결시키고 보다 가치적이요, 자극적인 면으로 통괄시켜야 하는데, 그것은 우리 인간의 사랑만으로는 안 되고 절대적인 입장에서라야 가능한 것입니다. (성약 Ⅰ-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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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가정은 천국 완성의 기본단위

우리 가정과 천국은 유형이 같습니다.
우리 집에는 부모가 있고, 부부가 있고, 자녀가 있고, 형제가 있습니다. 우리 집은 사랑으로 하나 만들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통일이 이뤄질 수 있고, 생명이 연결될 수 있고, 이상을 실현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부부의 사랑을 존중할 수 있고, 부모의 사랑을 존중할 수 있어야, 천국 갈 수 있는 자격자가 될 수 있습니다.
조부모는 부모 앞에 사랑을 상속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어느 사랑을 부정해도 천국은 이뤄지지 않습니다.
자기 부부끼리 사랑하는 이상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하고, 자기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하는 이상 할아버지 할머니를 사랑해야 한다는 결론입니다. 이것이 모든 천국의 핵심이 되고 이상적 모토가 된다는 것입니다. (성약Ⅰ-946)

천국의 기점은 개인이 아니요, 국가가 아닙니다. 가정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신랑 신부의 인연을 찾아 이 땅에 오시는 것입니다. 개인이 천국의 기점입니까? 가정이 천국의 기점이라는 것입니다. 가정은 천국완성의 기본단위입니다.
천국은 한 번 가보면 되돌아가고 싶지 않고, 열 번 백 번 만나도 또 만나고 싶은 그분이 계시는 곳입니다. 만인이 공통으로 그곳을 가고 싶어하고, 그분을 보고 싶어하고, 그분과 같이 살고 싶어한다면 세계는 통일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개인의 기대가 서고, 그 다음에 가정의 기대가 서고, 그 다음에 민족․국가․세계로 뻗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성약Ⅰ-942)

천국이 어디 있느냐? 공중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자식지간에 주고받는 그 생활적인 무대를 키우고, 또 그 가운데 있는 모든 피조물을 우리의 생활에 이용하고 우리의 이상의 조건으로 이용하는 재미, 그 재미를 백 퍼센트 누릴 수 있는 곳이 천국입니다. (성약 Ⅰ-945)

여러분의 가정은 하늘나라의 주권을 대신한 입장임을 알아야 합니다. 부모는 주권을 대신하는 것이요, 자녀는 국민을 대신하는 것이요, 물질은 그 나라의 땅을 대신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모에게 효하는 것이 나라에 충하는 것이요, 부모에게 효하는 것이 성인의 도리를 다하는 길과 통하는 것입니다. 지금 가정이 별의별 추태스러운 것의 기원이 되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가정이 거룩한 터전이 되기를 바라보고 나오고 계십니다.
인간들은 반드시 가정을 가져야 합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보면, 가정에는 부모가 있고, 자식이 있고, 물질이 있습니다. 그러면 구약시대․신약시대․성약시대에 있어서의 종적인 역사 전체를 횡적으로 전개시켜서 대신할 수 있는 실체가 무엇이냐? 만물과 자녀와 부모입니다. 즉, 부모와 자식과 그들의 소유물입니다. 이것들은 가정의 한 울타리 안에서 필요한 것들입니다. (성약 Ⅰ-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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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둘이 하나되는 데서만 부부천국은 이뤄집니다. 하나된 것을 그 누구도 뗄 수 없으며, 갈라지거나 떨어질 염려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사랑을 찾았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찾았다면, 여러분의 마음과 몸이 완전히 하나되어, 하나님의 사랑이 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부부천국이 생겨나고, 가정천국을 이뤄야 합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완전히 하나돼 사랑하게 되고, 그 아들딸도 어머니 아버지 같은 대상을 얻어야 가정천국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플러스가 되고, 딸이 마이너스가 되면, 가정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성약 Ⅰ-943)


 4) 사랑의 이상 실현은 가정에서부터

사랑의 이상 실현은 어디서부터 해야 되느냐? 우리 통일교회에서부터? 나라에서부터? 세계에서부터? 세계를 아무리 통일했다 하더라도 자기 가정을 통일하지 못한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사랑의 이상 실현은 가정에서부터 해야 합니다. 가정은 행복의 보금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 천국을 이루려 오셨던 예수님이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라고 하신 것도 가정을 표준하고 한 말입니다.
가정에는 누가 있느냐? 첫째는 부모가 있고, 둘째는 자녀가 있고, 셋째는 부부가 있고, 그 다음에는 형제가 있습니다. 그러면 가정은 무엇으로 얽혀 있느냐? 사랑으로 얽혀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을 무엇으로 하나 만들 수 있느냐?
사랑으로 하나 만들 수 있습니다. 사랑은 변함이 없기 때문에 조부모의 사랑이 하나될 수 있고, 부모의 사랑이 하나될 수 있고, 부부의 사랑이 하나될 수 있습니다. 사랑에는 통일성이 개재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사랑에는 사람의 생명의 동기가 같이 되어 있기 때문에 할아버지 할머니의 생명이 연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상이 여기에 연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조부모는 부모에게 상속해 주는 것입니다. 즉, 자녀에게 상속해 주는 것입니다.
조부모의 자녀는 부모요, 부모의 자녀는 우리입니다. 이와 같은 사랑을 중심삼은 곳이 천국입니다. 여기에서 어느 것을 부정해도 천국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주체요, 과거․현재․미래를 통합할 수 있는 분이기 때문에 자기 부부끼리 사랑하는 이상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해야 되는 것이요, 자기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하는 이상 할머니 할아버지를 사랑해야 합니다.
남자는 하늘을 상징하고, 여자는 땅을 상징합니다. 남자는 주체이기 때문에 누구의 간섭을 받는 것을 싫어합니다. 여자는 사랑하기보다도 사랑받기를 좋아합니다. 남자는 하늘을 상징하고, 여자는 땅을 상징하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가 하나되는 것은, 우주가 하나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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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써만 우주를 주관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랑으로써만 우주의 주체가 될 수 있고 자기 상대를 우주보다 더 크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하늘과 땅, 이 두 세계를 연결할 수 있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지상에서 사랑으로 엮어진 삶을 산 사람은 천국에 가게 됩니다. 사랑을 중심삼은 세계가 영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개개인이 완전히 하나되면 자동적으로 남자와 여자는 하나되게 되어 있고, 완전한 부부가 생겨나게 되면 하늘땅은 통일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고 싶어하느냐 하면, 사랑은 남자와 여자 둘 사이에서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참된 남자와 참된 여자가 사랑하는 곳에 계시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그 사랑이 영원할 수 있고, 그 사랑이 영원한 통일을 이룰 수 있고, 그 사랑이 영원한 생명을 지닐 수 있고, 그 사랑이 영원한 이상을 지닐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랑을 찾는(잡는) 자는 모든 것을 점령할 수 있습니다. 참된 사랑을 중심삼고 이루어진 가정의 목적은 가정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천국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우주가 하나되기 위한, 이런 목적에 일치하기 위한 표준을 중심삼아서 가정에서부터 민족․국가․세계․천주까지 확대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선집 48-10)


 5) 천국은 가정단위로 들어가는 곳이다

천국이란 무엇이냐? 극락 또는 천당 간다고 하지만 자기 혼자 가는 곳이 아닙니다. 자기 부모와 형제가 다 같이 가야 하는 곳이 천국입니다. 천국 가는 비결이 무엇이냐? 천국은 개인만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 단위로 들어가야 합니다. 가정 단위로 들어가야 될 뿐만 아니라 족속을 거느리고 들어가야 합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 앞에 많은 족속을 가졌다는 것은 복받은 것입니다.
어떤 가정에 아들딸이 많고, 재물이 풍성하면, 복받은 가정이라고 그러지요? 이처럼 복받고 천국에 들어가려면 개인이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가정 단위로 들어가야 합니다.
하늘나라에는 절대 개인적으로는 못 들어갑니다. 선생님이 알아보니 천국은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이 믿고 있는 그런 망상적인 곳이 아니었습니다.
본래 천국은 가정단위로 가게 되어 있는 곳입니다. 가정이 가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가정이 가는 겁니다. 아버지 어머니 아들딸이 같이 가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같이 살 수 있는 곳이 이상적인 세계인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지옥 가고, 어머니는 천국 가고, 누나는 지옥 가고, 동생은 천국 가고, 그렇게 되면 자기가 천국 갔다고 해서 좋겠습니까? 천국은 가정으로서 가는 것입니다. 가정이 가는 것입니다. (성약 Ⅰ-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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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이란 인간이 타락하지 않고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품에서 성혼을 해서 하나님이 좋아하는 아들딸,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손자들을 맞아 하나님의 사랑을 받다가 그 가족이 모두 함께 들어가는 곳입니다.
자식이 못 들어가도 자신만 들어가면 천국입니까?
그러나 낙원은 아무리 정다운 부부나 부모 자식이라도 헤어져서 들어가는 곳입니다. 가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 곳이 천당입니까? 부모를 모시고 온 가족 모두가 들어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주고받을 수 있는 그 세계가 천국입니다. 아들은 지옥에서 죽겠다고 야단하고 있는데, 부모는 천국에서 잘살면 되겠어요? 그런 곳이 천국입니까?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천국은 혼자 들어가는 천국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 들어가는 천국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볼 때 남자와 여자가 갈라져 들어가는 곳이 천국이냐? 아닙니다. 둘이서 들어가는 곳이 천국입니다.
아버지가 들어가면 어머니도 들어가고, 부모가 들어가면 자식도 같이 가는 곳이 천국이라는 겁니다. 천국에 엄마 아빠가 같이 가야지, 아빠는 천국가는 데 엄마는 지옥 가면 천국이 되겠습니까? (성약Ⅰ-949)

본래 창조원칙에 의한 천국은 가정을 중심삼고 들어가는 곳입니다. 부모가 들어가고 자식도 들어가고 자기 일가 전체 문중이 들어가야 행복한 것이지. 부모는 지옥 가고 자식만 천국 가면 그것이 무슨 천국이겠습니까?
그러므로 통일교회가 앞으로 천국 갈 수 있는 길을 닦는 데 있어서 가정적인 기준을 닦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천국에 못 갑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기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역사적인 참소 기준, 시대적인 참소 기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성약Ⅰ-950)

본래 하나님은 남편은 천국에 들어가고 부인은 지옥에 들어가도록 창조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창조 당시의 이상의 주인공들 즉 아버지와 어머니와 아들과 딸이 종족을 이루고 민족을 이루고 나라를 이루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지옥이 생긴 것입니다. (성약 Ⅰ-949)


 6)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왜 슬픈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왜 슬픈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그것을 즉각적으로 느끼게 되는데, 그것은 이 우주에 가득차 있는 초인적인 힘의 작용으로 인해서입니다.
사람은 자기에게 이 힘이 들어오면 들어올수록 하나님과의 종적 관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우주적인 힘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그 힘이 자기에게서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떠난 결과를 즉각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통한 사실입니다. 내가 완전한 합격품이 되어야 하는데, 그로 말미암아 불합격품으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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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생은 완성을 추구합니다. 그런데 그와 반대되는 불합격 요소를 갖게 될 때는 거기에 비례하는 요건을 우주의 힘이 몰아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고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성약Ⅰ-901)

사랑하는 부모를 잃어버리면 말할 수 없는 비통함을 느껴야 효자입니다. 부모도 자식을 잃어버리면 비통함을 느낍니다. 부부끼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후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천년만년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남편이나 아내가 죽으면 슬퍼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주의 원칙은 부모와 부부와 자녀 3단계가 하나되어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위기대를 형성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우주의 원칙에 의해 불합격자는 합격권 내에서 추방되기 때문에 고통과 슬픔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내가 죽으면 남편이 왜 눈물을 흘리겠습니까? 제3목적인 아들딸을 얻을 수 있는 길이 깨졌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못 다 이루면 쓰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울 수밖에요.
전기를 보면 양(+)전기와 음(―)전기가 있는데, 이 둘 중 하나가 없어지면 나머지 것도, 아무 작용을 못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가는 길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성약 Ⅰ-903)

자기 아들딸이 없으면 불행을 느끼는 것입니다. '아들딸이 없으면 부부끼리 사이좋게 지내면 되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천리법도가 사위기대 원칙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하나되었으면, 반드시 아들딸을 낳아서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주의 공법입니다. 사위기대를 이루지 못하면 합격이 안 되는 것입니다. 또한 아들만 있어서도 안 됩니다. 아들만 있으면 아들에 대한 사랑의 맛은 알지만, 딸에 대한 사랑의 맛은 모르는 것입니다.
여러분, 꿀맛이 어떻다고 누가 설명을 해서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설명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설명하기 전에 직접 입을 벌려 가지고 먹여주고 나서 이것이 꿀맛이라고 가르쳐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들이 없으면 왜 섭섭하고 불행하다고 하는 것이냐는 것입니다. 딸만 가진 사람은 아들을 가진 사람을 보게 되면 세상에 그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합니다. 서양 사람들은 그런 면에서 조금 둔합니다. 그들은 개인주의 사상을 강조하다 보니 그런 감정들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잃어버렸기 때문에 다시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 그것을 다시 찾기 위해서 동양사상에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남편이 있고, 아내가 있고, 아들딸이 있는 가정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들이 완전히 하나되어 처음부터 목적지점까지 천운과 보조를 맞추어 나가게 되면 이 가정은 영생한다는 것이지, 혼자서는 영생 못 하는 것입니다. 설령 영생을 한다 하더라도 영원한 세계에서 고생이라는 보따리를 싸 가지고 다니게 됩니다. 행복이라는 요건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성약 Ⅰ-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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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가정을 통해 인간이 가야 할 천도

인간은 자기 부모를 사랑하듯이 이웃 동네의 부모를 사랑하고, 자기 할아버지를 사랑하듯이 이웃 동네 할아버지를 사랑해야 되고, 자기 아들딸을 사랑하듯이 이웃 동네의 아들딸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야 상하관계가 벌어지고, 좌우가 벌어지고, 전후관계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벌어져야 이 종적인 심정의 기준이 자리잡아 가지고 천도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실천하자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그걸 실천하기 때문에 이상적 가정건설이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라는 곳은, 그 종적인 기반을 횡적으로 사방화시킬 수 있게끔 해나가는 곳입니다. 그 수가 많을수록 좋은 것입니다. 왜 많으면 좋으냐? 가정시대에서 종족권으로 넘어가고, 종족권에서 민족권으로 넘어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도를 많이 할수록 천적인 기반이 자기를 통해서 벌어졌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인격적 가치의 기준이 전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종적 중심에서 뭘 해야 되느냐? 이것을 횡적으로 재현시키자는 것입니다. (선집 70-152)

엄마와 아빠가 하나되는 날에는 그 가정은 발전하는 것이요, 자식과 부모가 하나되는 날에는 보다 차원 높은 가정으로 발전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가정과 친척간에 하나되는 날에는 어떻게 될 것이냐? 거기에는 새로운 민족 정기가 발발될 것입니다.
그것이 더 높은 차원을 향해 가자고 할 때는 환경적으로 전부 결속되어 국가 기준까지 충신의 혈족으로 남아질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성약 Ⅰ-921)

이제 선생님도 오래 안 가서 할아버지가 됩니다. 여러분도 이제 늙게 되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아들딸로 태어나 결혼해서 어머니 아버지가 되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가는 그 것이 일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할머니 할아버지, 그 다음엔 어머니 아버지, 그 다음엔 자기 부처, 그 다음엔 아들딸, 이것이 인생이 가는 공식적 노정이니, 이것을 사랑하지 않으면 천도에 어긋난다는 것입니다. 이걸 근본적으로 묶어 놓지 않으면 세계를 수습할 길이 없습니다.
서양에 가 보면 할머니 할아버지들 불쌍합니다. 그들은 동양풍습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모릅니다. '아! 동양사상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하나님과 같이 모시고, 칠십 팔십 노인한테 아들이 가서 전부 다 문의하고, 그러니 그 얼마나 좋겠느냐' 그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할머니 할아버지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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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누구냐? 그 분도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할아버지보다 나이 많은 분이 하나님이요, 애기들보다도 더 젊은 분이 하나님이기 때문에 사람 전체를 사랑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이가 많다면 제일 많은 분이요, 미래에 대한 청춘이라면 누구보다도 청춘입니다. 그분을 내가 사랑하려니 그 가운데 있는 그 어떤 인류도 내가 사랑해야 되고, 역사시대에 영계에 가 있는 그분들도 그 권내에서 지금 희망을 찾고 살려고 하기 때문에 그분들까지도 사랑해야만, 하나님을 따라서 사랑할 수 있는 길을 찾아간다 하는 것이 이론적입니다. (선집 70-152)


 8) 통일교회는 가정천국을 이루자는 것

내가 지금 교회를 안 짓는 것은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러는 것입니다. 교회에 많은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교회에서부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입니다.
가정 즉 신랑 신부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여자는 남자를 보기 위해서 태어났고, 남자는 여자를 보기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아기가 잠에서 깨어 처음 눈을 뜨면서 부르는 것이 '엄마'입니다. 아기가 엄마를 부르는 것 이상으로 남편은 아내를 불러야 합니다. 이렇게 불러 보지 못한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또 부인도 남편 이상으로 그렇게 불러야 합니다. 서로가 그럴 수 있는 부부로 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금실지락(琴瑟之樂)의 부부로서 서로를 그렇게 부르며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천 년 만 년 산다면 늙어도 청춘이 부럽지 않다는 것입니다. (성약 Ⅰ-944)

남자와 여자는 말씀의 시대를 거치고 실체의 시대를 거친 후에야 상봉의 한날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봉의 한날이 이루어진 후에야 천국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상봉의 그날에는 그의 마음이 내 마음이요, 그의 심정이 내 심정이요, 그의 모습이 나의 모습이요, 그의 어려움이 내 어려움이요, 그의 상처가 나의 상처로 느껴질 수 있는 경지에까지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 경지에 들어가서 그의 마음도 내 마음이요, 그의 심정도 내 심정으로 되어야 천국가정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땅에서 완결되어야 천국가정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참사랑이 무엇이냐?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입니다. 사랑은 서로서로가 희생하는 전통을 갖추지 않으면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깨지는 법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희생하기 때문에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인연은 깨지지 않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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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진정한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라난 아들딸이라면 자기 부모에게 절대로 불효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대해 '당신은 나를 위했다'는 입장에서 서로가 더 위해 주고 더 희생하는 자리가 넓어지게 될 때, 그 가정에는 복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정이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복지인 것입니다.
천국생활은 어디서부터냐? 가정입니다. 다른 곳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은 가정을 입체적으로 확대시킨 것뿐이지, 가정권을 벗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자기의 아내나 남편을 품을 때에 이것은 세계의 남성과 여성이 하나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세계 인류를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울 수 있는 자리가 바로 이 가정입니다.
이제 선생님은 가정에 대한 규범, 천국가정으로서 가져야 할 생활에 대한 규범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조직은 가정조직입니다. 가정을 위주로 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우리 통일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도 설교 형식이 아니라 보고 형식으로 해야 합니다. 보고의 내용은 그 가정이 자랑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가정 전체가 와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잘한 가정을 보고는 본을 받고 못한 가정을 보고는 잘 되게 이끌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가정천국을 건설하자는 것입니다. 가정천국을 먼저 이루지 못하면 지상천국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성약 Ⅰ-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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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 장 참가정을 찾아서


 1) 자기를 위해서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개인주의가 어디 있습니까? 자기에게 있어서 자기만을 주장할 부분이 하나도 없습니다.
자식이 부모님의 사랑으로 어머니의 뱃속에서 난자로부터 자라서 태어날 때 99.999%는 어머니의 뼈와 피, 살입니다. 그리고 0.001%인 아버지의 정자 하나가 합해져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자기라는 개념이 있을 수 없습니다. 누구나 태어날 때 자기 자신만이란 개념은 없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잘났다는 사람도 자기 혼자 잘나게 됐다고 말할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뼈나 피, 살 전부가 어머니 뱃속에서 물려받은 것입니다. 이 몸의 중요한 부분들은 어머니 몸의 연장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 몸의 모든 요소는 난자와 정자에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외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주의란 있을 근거가 없습니다. (성약Ⅰ-61)

위라는 말이 생겨날 때에는 아래를 인정하고 하는 말입니다. 위라는 것만 가지고 개인주의가 성립될 수 있습니까? 개인만이라는 개념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오른쪽이라고 하는 것은 왼쪽이라는 것을 전제하고서 하는 말입니다. 전후를 보더라도 전(前) 하게 되면 후(後)를 먼저 인정하고 하는 말입니다.
남자라는 말도 혼자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여자를 선유조건으로 삼고 하는 말입니다. 이것은 누구 한 개인의 말이 아니라 우주적인 사실입니다. 남자는 왜 생겨났습니까? 남자들은 흔히 자기 혼자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고들 하지만, 남자는 여자 때문에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여자가 없으면 남자는 필요없습니다. 절대적으로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자기 때문에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오관을 보십시오. 내 눈이 내 눈을 보기 위해서 생겨났습니까? 코나 귀․입․손도 모두 상대를 위해서 생겨났습니다. 오관을 총동원해 집중하게 할 수 있는 그 힘이 뭐냐 하면 참사랑입니다. 눈․코․입, 그리고 손은 참사랑을 위해 생겨난 참사랑의 도구입니다. 자기를 위해서 생겨난 것이란 하나도 없습니다.
반면에 남의 것을 자기 것으로 하는 사람을 도둑이라고 합니다. 남의 것을 가져다가 자기 것으로 써먹는 사람이 도둑 아닙니까? 그러니 여자를 위해서 태어난 남자의 오관과 몸을 자기 멋대로 쓰는 사람은 도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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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여자는 무엇이 서로 다릅니까? 성기관(Sexual Organ)을 포함한 그 몸이 우선 다릅니다. 그러면 남자의 성기관은 누구에게 절대로 필요합니까? 남자의 성기관은 여자를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성기관이 하나는 오목이고 하나는 볼록인데, 왜 그렇게 됐습니까? 둘 다 뾰족하게 되든가, 둘 다 납작하게 될 수도 있는데, 왜 그렇게 다르게 생겼습니까? 모두 상대를 위해서입니다.
남자 것은 여자가 절대 원하고, 여자 것은 남자가 절대 원합니다. 절대로 여자 것이 남자 것이고, 남자 것이 절대로 여자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걸 점령함으로 말미암아 사랑을 안다는 것입니다. 둘이 하나되는 것과 같은 경험을 통해서만 최고 높은 경지의 사랑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이러한 사실을 절대로 부정할 수 없습니다. 누구나 다 인정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둘이 완전히 하나되는 그 자리에서 이상적인 부부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바로 그 자리에 절대사랑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절대적으로 변하지 않는 그와 같은 사랑의 자리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성약Ⅰ-62)


 2)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지성소

하나님의 속성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절대적이고 유일하신 분이며 영원불변하신 분입니다. 그렇다면 사랑의 주인은 누구일까요?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닙니다.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사랑을 통해서만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에게나 인간에게나 사랑이 절대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사랑은 과연 어떤 사랑일까요? 하나님은 절대적 사랑을 원하십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절대적 사랑, 유일한 사랑, 불변의 사랑, 영원한 사랑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우리 인간도 절대․유일․불변․영원한 사랑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다 하나님을 닮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성소가 어디냐? 사랑이 깃드는 타락 이전의 남녀의 성입니다. 이곳이 하늘의 지성소입니다.
사랑이 무엇이냐? 사랑은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지성소입니다. 사랑을 통하여 타락한 세상을 깨끗이 청소해야 합니다. 타락한 것은, 인간이 사춘기를 잘 넘겨야 하는데 그 시기를 넘기지 못하고 탈선한 것을 의미하는 것임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인간 조상 해와가 먼저 천사장과 영적으로 불륜의 관계를 맺음으로써 타락했고, 그로 인하여 해와가 아담과의 육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육적으로 타락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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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죄의 혈통이 후대 인간들에게까지 유전되어 오고 있습니다.
사탄의 흔적이 남아 있는 자리에는 하나님이 절대로 임재하실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인간 사회에서도 두 번째 결혼했을 때, 전 남편을 못 잊어하는 아내를 좋아할 리 없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탕감복귀를 통해서 인간들이 죄를 청산짓게 하여 구원섭리를 해 오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랑의 빛깔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됩니까? 밤에는 까맣고, 낮에는 하얗고, 저녁 때쯤이면 노랗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랑의 빛깔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랑의 중심 빛깔에는 평화와 통일 그리고 인류의 평등사상을 이룰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지성소에 함부로 들어가다가는 불에 타서 죽고 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사랑의 이념이 멋지지 않습니까?
오늘날 미국 사회에 있어서 사랑의 빛깔은 한마디로 역겨운 죽음의 빛깔입니다. 남녀간의 사랑을 통해서 영원한 창조이상의 세계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축복을 받을 때까지 남녀가 사랑의 지성소를 정결하게 지켜야 하고, 한 번 사랑을 하면 계속해서 지켜 나가야 하는데, 미국인들은 사랑의 지성소를 침범하는 악당들이요, 악녀들인 것입니다.
결혼을 축복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미국의 남녀는 사랑의 눈이 멀어서 앞을 보지 못하는 환자들 뿐입니다. 미국 사회가 이대로 나간다면, 내일에 대한 소망도 없고, 절망만이 가득할 뿐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성이 상실된 인간들로 말미암아 자멸하고 말 것이 불을 보듯 뻔한 것입니다. (성약Ⅰ-347)

통일교회는 6천 년 간 감춰진 사랑의 섭리를 알았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하고 창조이상을 완성하기 위해 축복의 발판을 넓혀 나온 것입니다.
축복을 통해서 사랑의 지성소를 만들어 왔던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생명이 새롭게 생겨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성약Ⅰ-346)


 3) 남자의 주인은 여자, 여자의 주인은 남자

주체와 대상 즉 양성과 음성이 하나되는 데도 무엇을 중심삼고 하나되겠습니까? 키스하는 것으로 입니까? 사랑은 개념이지 실재가 아닙니다. 사랑이 정착할 수 있는 실재가 무엇입니까? 남자가 남자 되고, 여자가 여자 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생식기입니다. 그것 싫어하는 사람 있어요? 좋아한다면 얼마나 좋아합니까? 지금까지는 그것이 좋지 않은 것으로 생각했더라도 이제부터는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미래의 세계는 어떤 세계일까요? 생식기를 절대적으로 귀하게 여기는 세계가 된다면, 그 세계가 좋은 세계일까요, 나쁜 세계일까요? 흥하는 세계일까요, 망하는 세계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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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가장 중요하게 정성들여 만드신 곳이 어디겠어요? 눈이나 코요? 심장이겠어요? 아니면 두뇌일까요? 이것들은 전부 죽어 없어진다구요. 사실이 그렇지 않습니까?
세계 평화통일을 위한 가정연합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도덕과 종교 등 모든 분야를 완전히 초월하고 생식기가 하나되어 하나님까지도 박수로 환영할 수 있는 사람이 사는 세계가 있다면 어떤 세상이 되겠습니까?
남자와 여자가 태어날 때 그들의 생식기 주인은 누구입니까? 남편의 생식기 주인은 아내이고, 아내 것의 주인은 남편입니다. 생식기의 주인이 서로 엇바뀌어 있는 것을 몰랐습니다. 간단한 진리입니다. 이것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천년만년 역사가 아무리 흘러도 이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모든 남자들은 그것이 자기들 것이라고 생각하고, 또 모든 여자들도 그것이 자기들 소유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세상이 이렇게 망해 가는 것입니다.
서로들 주인을 잘못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모두들 사랑은 절대적이고 영원한 것이라며 꿈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그 영원한 사랑의 주인이 뒤바뀐 것을 확실히 안다면 세상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수많은 박사, 수많은 학자들이 있지만, 이것 하나 생각해낸 사람이 없습니다.
자, 여러분은 부정할 수 있어요? 여러분의 부모, 조부모 또 증조부모 그리고 인류의 조상 되는 분과 더 나아가서는 우주의 근본 되시는 하나님께 물어보아도 전부 동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철칙입니다. 이 진리야말로 우주가 억만 년 지나도 원리 원칙으로 남기 때문에 철칙입니다.
그리고 이 철칙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되면, 옳은 사람과 그른 사람의 판정을 받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의 타락도 알고 보면 바로 이 철칙을 어긴 데서부터 연유된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는 자신들의 생식기가 자신들의 소유인 줄로 착각한 것입니다. 문제가 틀어져 우주의 어디에서도 공인 받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추방해 버린 것입니다. 광물계나 식물계나 동물계의 수컷과 암컷도 모두 사랑의 상대를 위하여 자기의 성기를 보관하고 있다는 것을 아담과 해와가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생식기는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 것일까요?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을 찾기 위해서 그처럼 수놈과 암놈으로 생겨났다는 말입니다.
모든 남녀가 자기들에게 소속된 생식기가 알고 보니 자기 것이 아니고 주인이 자기의 상대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 우리 모두는 머리를 숙이고 겸허한 자세로 사랑을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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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상대가 없이는 오지 않습니다. 상대로부터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위하지 않는 곳에는 사랑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절대 위하는 곳에서 절대사랑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성약Ⅰ-53)


 4) 사랑에는 발전도 혁명도 없다

사랑에는 발전도 없고 어떤 혁명도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은 원형 그대로가 완전한 것이고, 불변한 것이며, 영원한 것이며, 절대적인 것입니다. 사랑은 발전도 없고 혁명도 없는 것입니다. 사랑이 영원하고 완전하다는 것은 만고 불변의 진리입니다.
그런데 사랑이 발전한다고 생각하여 시험해 보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인 것입니다. 사랑을 생활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미국은 그런 의미에서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미국의 미래를 축복해 주실 리 없으며, 미국 스스로가 망하지 않으면 선생님이 사랑의 폭탄을 터뜨려서라도 망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사랑이 생활의 한 방편이나 수단으로 이용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약Ⅰ-351)

남편은 아내가 처음 사랑했던 모습으로부터 어떠한 혁명이나 발전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여자가 남편에 대해 바라는 소망이기도 합니다.
처음 사랑을 출발하던 그 순수한 모습을 간직하기 바라는 것은 남편이나 아내 모두의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순수한 사랑에 그 어떤 색깔이 가미되는 것을 바라지 않으며, 혁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순수한 사랑 그 자체가 영원토록 보존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 왜 이혼이란 문제가 생겨나게 될까요? 이혼한 사람이나 이혼을 하겠다는 사람 모두가 처음에는 너무나도 사랑하는 관계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이혼을 하게 된 사유는 여러 가지이겠지만 결국 무엇인가 달라졌다는 것이고, 둘 사이가 변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결국 그들은 사랑을 지키고 가꾸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사랑 그 자체는 변하지 않았지만 사람의 마음이 변한 것입니다. (성약 Ⅰ-352)

한 남녀가 부부를 이루었다면 너와 나 사이에 불변적인 통일을 어떻게 이루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렇게 하나된 자리에서 행복을 노래하게 될 때 그것이 영원한 행복입니다.
이상적인 애정도 역시 변치 않는 주체적인 무엇을 갖는 데서만이 그러한 기준이 설정될 것입니다.
결혼한 때에는 그 남자가 미남이라고 해서 좋아했는데, 그 남자가 한 주일이 지난 후에 사고가 나서 몸이 병신이 됐을 때, 이혼하자고 하며 나서는 것은 참사랑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건 가짜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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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선진국가의 백인들은 세계를 주도하고 움직이는 높은 자리에 있고, 흑인들은 대부분 피지배자로서 낮은 자리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데는 그 농도에 있어 백인과 흑인의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누가 누구의 지배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또 그것은 영원히 변치 않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나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과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은, 진짜 사랑하는 사람들 끼리끼리의 사랑하는 마음은 역사가 아무리 변동되고, 발전하고, 혁명의 과정을 거쳐오고, 거쳐간다 하더라도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약Ⅰ-351)


 5) 여자는 절개, 남자는 지조

여러분은 지금 사랑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돼 있나요, 없게 돼 있나요? 길거리에서 남자가 휙 부르는데 따라가게 되어 있어요, 안 되어 있어요? 안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렇게 따라가지 않게 게 돼 있지요? 그런 소질을 갖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때가 올 때까지 자기 몸을 잘 보호해야 합니다. 순정을 도깨비같은 남성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길거리에 꺼떡꺼떡거리고 쓸데없이 돌아다니는 남자들은 전부 다 도깨비입니다. 자기의 운명을 그런 남자에게 맡기겠어요? 이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일생에 한 번밖에 없기 때문에 한 발짝 잘못 딛는 날에는 자기의 일생이 왔다갔다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것은 남자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여자에게 절개를 지키라고 했지만, 앞으로는 남자도 절개를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복귀될 게 아니겠어요? 아무리 세상이 악하고 아무리 세상이 각박하더라도, 여러분은 가야 할 정상적인 길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청춘시대에 순정을 잃어버렸던 아담과 해와의 한을 밟고 탕감할 수 있는 귀한 때인 사춘기에 순정을 더럽혀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 순정을 깨끗하고 귀하게 보존해 가지고 '천세 만세 혼자 가더라도 사랑이 유린되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하는 지조와 결의를 가져야 합니다.
어떤 남자들은 자기 아내가 있어도 예쁜 여자를 보면 자기 아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두 마음을 가진 남자를 가리켜 도둑의 심보를 가졌다고 말합니다.
두 마음으로부터 시작한 것이 사탄이니 두 마음을 가진 남자를 가리켜 사탄이라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사탄이나 다른 것이 없습니다. (성약Ⅰ-349)

남자도 절개를 지켜야 할 때가 오는 것입니다. 남자가 절개를 지키지 않고 잘못하게 되면 그 문중이 뜻 앞에 중죄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감님들이라고 해서 바람을 피워도 괜찮게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남자가 잘못하면 그 문중이 망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통일사상을 알게 되면 그럴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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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는 남자도 절개를 지켜야 하는 시대입니다. 남자도 절개를 지켜 역사적인 순결의 전통을 남겨야 합니다.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는 의식은 그의 순결한 피와 살의 전통을 세우기 위함입니다.
'여자는 절개, 남자는 지조(배짱)'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뜻(사랑)을 이루기 위한 절개요, 목적을 이루기 위한 지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자는 절개라고 했기 때문에 하나의 사랑밖에는 몰라야 되고, 남자는 지조라고 했으니 한 목적만을 위해서 정진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를 중심삼고 볼 때, 자기가 갈 길을 알고 지조와 절개를 지켜야 했는데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타락했던 것입니다.
남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여자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 '완전히 사랑했다. 시작부터 끝까지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을 했다'고 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또 여자는 그런 자리에 서기 위해서 자기 몸을 꽁꽁 잘 봉해야 합니다. 함박꽃처럼 수많은 꽃잎이 겹겹으로 싸여 있듯이 꽁꽁 묻어 두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봄절기라는 천지 조화의 때를 맞아 거기에 화합하여 가지고 새로운 인생을 출발해야 합니다. 이것을 잘 해야 합니다. (성약Ⅰ-350)


 6) 타락은 프리섹스의 뿌리요, 개인주의의 조상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 아담과 해와를 창조하시면서 그들에게 생식기를 함께 허락하셨는데, 무엇 때문에 그러셨겠습니까? 그들이 성장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결혼시켜 주겠어요, 안 시켜 주겠어요?
문제는 그들의 타락에 있습니다. 타락 때문에 핏줄이 달라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신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의 몸이 되고 부인격에 있어야 할 아담과 해와가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 자신의 몸과 이상을 병들게 만들고 원수가 되었으니, 그것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심정이 오죽했겠습니까?
타락은 스스로를 매장하는 무덤입니다. 남의 것을 빼앗아가는 행동입니다. 다시 말해서 타락은 프리섹스의 뿌리가 되었고, 개인주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오늘 미국은 어떤 나라입니까? 극도의 개인주의, 분수에 넘치는 사생활 추구, 프리섹스까지 넘쳐납니다. 이런 것을 하나님이 좋아하시겠습니까? 극도의 개인주의가 추구하는 게 무엇이겠습니까? 그들의 말대로라면 하늘과 땅․세계․국가․사회․가정 심지어는 할아버지 할머니까지도 다 내팽개쳐버리고 부모와 형제도 잃어버린 채 집시나 히피가 되어 멋대로 방황하다가 비 오고 눈 오면 갈 데가 없으니, 자살하여 일생을 마치자는 얘기가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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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인간의 본심은 극도의 개인주의나 어처구니없는 사생활 보장을 원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주와 국가, 동네와 마을 그리고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살고 싶어하는 것이 우리의 본심이 원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반대의 길을 가다보니 양심이 불타버리고 본심과의 상충을 느끼게 되어 차라리 약이라도 먹고 자살하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 스스로 목숨을 끊는 현상이 점점 늘어가는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진리가 맞아떨어지는 것을 목격하는 셈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에덴동산에서 무슨 씨를 심었습니까? 프리섹스 시드(Free Sex Seed), 즉 절제 없는 성관계의 씨를 심었어요. 그것을 부정할 수 있어요? 그랬기 때문에 그들이 하체를 가렸던 것입니다.
어린아이들도 부모가 숨겨놓은 귀한 과자를 홈쳐먹다 들키면 숨기는 게 본성의 작용이 아닙니까? 만일 선악과를 따먹었다면 그 따먹은 손이나 입을 가려야지 왜 하체를 가렸느냐는 말입니다. 타락은 음란으로 저질러졌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디서 천국과 지옥이 갈라지는지 알아봅시다. 공중입니까? 어디겠어요? 바로 여러분의 생식기입니다! 심각한 일입니다. 이것이 천지를 뒤집어 놓았습니다.
어느 누가 부정할 수 있습니까? 레버런 문이 발표한 원리책의 타락론에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의심이 가면 하나님께 물어보십시오. 여러분들로서는 꿈에도 상상할 수 없는 내용과 이론을 갖고 체계를 잡아 놓은 레버런 문의 원리책을 반대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생식기를 눈먼 장님처럼 방향을 잃은 채 사용하게 되면 지옥행이요, 반대로 이것을 하나님의 절대사랑에 기준을 맞추어 쓰게 되면 천국 높은 곳에 가는 것입니다. 깨끗한 결론입니다. (성약Ⅰ-49)

그러므로 앱솔루트 섹스(절대순결)는 하나님을 중심한 것이고, 프리섹스는 자기와 사탄을 중심한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많은 문학작품이나 미디어를 통해 프리섹스를 자극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우리 모두는 정치인이나 경제인․문인․언론인들과 하나가 되어 앞장서서 프리섹스를 막아야 합니다. 프리섹스는 완전히 없어져야 합니다. (성약Ⅰ-63)


 7) 절대순결과 참가정운동을 통한 세계평화 실현

지금 청소년 문제가 심각한 문제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해와가 청소년기에 그늘 아래서 음란으로 타락을 하여 프리섹스를 심었기 때문에, 추수기인 끝날에는 반드시 세계적으로 청소년들의 프리섹스 풍조가 만연하게 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끝날에 하나님은 사탄이 무엇을 원하는지 아시는 것입니다. 사탄은 프리섹스를 통해서 단 한 사람도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다시 말해서 전 인류를 완전히 망가뜨려 지상지옥을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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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지상지옥이 되어가는 세계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따라서 이처럼 지상지옥이 된 이 세계와 180도 다른 정반대의 길을 찾아가면 천국 가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재림주가 와서 이 세상을 구해주는 데도 바로 이러한 180도 반대의 길을 가르쳐 주어 하늘나라로 인도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프리섹스의 길과 180도 다른 정반대의 길이 어떤 길입니까? 거짓 부모가 나타나서 만들어 놓은 길이 프리섹스의 길이기 때문에 참부모가 나타나서 이 잘못된 길을 바로잡아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간섭하실 수 없습니다. 이 땅의 그 어떤 주권이나 군사력․경제력․정치력을 가지고도 손댈 수 없는 문제입니다. 거짓 부모로 말미암아 야기된 것이기 때문에 참부모가 칼을 들어 수술해 내지 않으면, 인류는 구제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죄를 지은 자가 그 죄를 탕감해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결혼을 잘못하여 혈통이 180도 틀어졌기 때문에 참부모가 와서 결혼시켜 가지고 180도 원상으로 돌려줌으로써 천국 가는 길을 열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 타락이 사랑으로 말미암아 성립되었기 때문에, 인류는 참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이 참사랑을 어떻게 되찾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참사랑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음란으로 타락했다는 뜻입니다. 즉 생식기를 중심삼고 그릇되었기 때문에 이를 되찾으려면 그 반대로 올바르게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릇된 사랑이 에덴동산에서 심어졌기에 끝날 추수때에 그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이 청소년 문제입니다. 그래서 성(sex) 혼란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청산하는 것은 절대순결(absolute sex)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앱솔루트 섹스 개념으로만 가정파괴를 방지하고 청소년 윤락을 막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에게 기대한 것이 무엇이었겠습니까? 절대순결, 사랑을 기대했던 것입니다. 앱솔루트 섹스가 있는 곳에는 절대순결 부부가 탄생하게 되며, 자동적으로 프리섹스, 호모, 레즈비언이라는 말이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절대순결 사랑찾기 운동을 세계적으로 펼치기 위하여 레버런 문은 일생을 바쳐 수난길을 극복해 왔고, 이제는 승리의 팡파르를 울리며 세계를 호령할 수 있는 때가 되었기 때문에 하늘 앞에 감사하는 바입니다.
세계평화를 향해 갈 수 있는 초석을 놓는 것도 가정이요, 세계평화로의 길을 파괴할 수 있는 것도 가정입니다. 인류의 희망과 행복의 기틀이 파괴된 곳이 아담 가정이었습니다. 따라서 오늘 이처럼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을 창설하여 여러분의 가정도 이제는 사탄세계와 180도 다른 각도로 갈 수 있는 길을 열게 된 것을 하늘 앞에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길이 아니고서는 자유도 행복도 이상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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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이제 절대순결 생식기․유일 생식기․불변 생식기․영원 생식기를 중심삼고 이것을 기반으로 하여 하나님을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이 기관이 사랑의 기반, 생명의 기반, 혈통의 기반, 양심의 기반이 되어야 하고, 여기서부터 참된 가정이 참된 국가와 참된 세계로 연결됨으로써 평화세계, 이상세계가 형성될 것입니다.
어디를 가시든지 TV나 기타 언론기관을 통하여 레버런 문의 말씀을 전해 보십시오.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지옥이 된 이 세계를 과연 무슨 힘으로 바꿀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 즉 절대․유일․불변․영원의 기준에 세워 살아가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우리 생식기의 본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성약Ⅰ-51)

본 훈독 성약말씀은 《문선명 선생 말씀선집》 233권 중에서 각 장의 주제에 맞는 말씀들을 부분 발췌하여 편집해 놓은 것으로 인용되어진 말씀 단락의 근거는 아래 범례와 같이 기록하였다.

<범  례>
․(성약Ⅰ-298) : 《축복가정과 이상천국》 제Ⅰ권 298페이지
․(선집181-85) : 《문선명 선생 말씀선집》 제181권 85페이지
․(정선12-138) : 《문선명 선생 말씀 주제별 정선》 제12권 138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