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경 - 제5권 지상생활과 영계 - 제 2 장 죽음과 영계
제 2 장 죽음과 영계
2) 죽음에 대한 이해
① '돌아간다'는 말 뜻
틀림없이 영계는 있습니다. 틀림없이 영계는 있고, 우리 인간은 어차피 영계로부터 태어났기 때문에 영계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한국 말 가운데 재미있는 말이 돌아간다는 말입니다. 어디로 돌아가느냐? 공동묘지로 가는 것은 돌아가는 게 아닙니다. 출발하였던 본처(本處)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 출발이 공동묘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멀고 먼 역사의 기원을 넘어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돌아간다는 것은 한국 사람으로 태어나서 한국 사람으로 돌아가는 걸 말하는 게 아닙니다. 한국 사람으로 죽었지만 한국 사람으로 돌아가는 그 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류 조상의 근원 세계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그건 무엇을 말하느냐? 창조주가 계시다면 그 창조주가 계시는 곳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출발했으니 거기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우주는 순환작용을 합니다. 산에 쌓여 있던 눈이 녹게 되면 조그만 계곡을 통해서 흘러가고, 많은 지류를 통해서 대해로 흘러들어갑니다. 대해로 들어가게 되면 그것이 수증기가 돼서 다시 돌아갑니다.
순환운동을 합니다. 돌아가면 어디로 돌아가느냐? 더 높을 수 있는 곳으로, 더 좋을 수 있는 곳으로 돌아가기를 원합니다.
어느 누구도 작아지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자연계의 운동법칙이라는 것은 작용하면 작아지게끔 되어 있습니다. 작용하면 점점 작아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굴려 보더라도 그것이 영원히 구르지 않습니다. 빨리 구르다가 점점 약해져 정지하게 됩니다. (114-269)
578
② 우리가 가야 할 곳
우리가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이 세상만 있는 것이 아니고 영계가 있습니다. 세상과 영계는 두 세계가 아니고 하나의 세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가야 할 곳, 우리가 가서 살아야 할 그곳이 어디냐? 물론 우리는 육신생활을 하면서 이 땅에 있지만 영원한 세계를 향해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일반 사람들은 세상에 태어나게 되면 10대․20대․30대․중년․장년․노년시대를 거쳐갑니다. 청춘시대를 지나 장년시대로 들어가게 되면 점점 한 고개를 넘어서 그 다음엔 노년시대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지는 해와 같이 일생을 끝마칩니다.
그러나 영계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일생이라는 것이 잠깐이고, 죽은 다음에 우리가 맞이해야 할 세계가 영원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일생은 영원한 세계를 준비하기 위한 기간입니다. (210-128)
③ 돌아가는 날은 귀한 날
아담이 태어난 날과 성혼한 날 그리고 돌아간 날을 기념하는 세계적인 통일권이 형성되었더라면, 그러한 날들을 기념하는 인류는 한 형제가 되고, 한 백성이 되었을 것입니다. 즉 하나의 세계에 사는 인간이 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아담이 생활하던 모든 풍습은 인류 역사에 계승되었을 것이며, 그때 형성된 문화는 영원히 계승되었을 것입니다. (31-231)
④ 두 가지의 죽음
여러분이 아무리 죽지 않겠다고 해도 죽을 때가 되면 죽는 것입니다. 영계에 가는 사람에도 종류가 있습니다. 자기의 명대로 살고 가는 사람과 자기의 명대로 못 살고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의 명대로 못 살고 가는 사람에도 벌을 받아서 빨리 죽는 사람과 민족이나 세계의 죄를 탕감하기 위해 빨리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만약 어떠한 동네에 손꼽히는 젊은이 세 사람만 죽게 되면, 그 동네에는 복이 온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문중이면 문중에서 기대를 받던 젊은이 세 사람만 죽게 되면, 그 문중에는 복이 온다는 것입니다. 즉 탕감을 치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디에든 그렇습니다. 인과법칙은 어디에도 적용됩니다.
579
하나님이 천 사람의 가치를 지닌 한 존재를 중심적인 자리에 세워서 대신 죽음의 길을 가게 했을 때, 천 사람이 그 사람의 은덕 앞에 감동하여 그 사람을 위하고, 그 사람의 생애를 본받고, 그 사람처럼 살겠다고 하게 되면, 그 민족은 그 사람과 같은 혜택권 내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충신의 사상을 본받으려 하고, 성현의 사상을 본받으려 하는 것도 그들과 같은 혜택권 내에 들어가기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작년에도 여러 사람이 영계에 갔지만 금년에도 여러 사람이 영계에 갈 것입니다. 말은 안 했지만 선생님은 벌써 다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왜 그러냐? 한 단계 넘어갈 때에는 반드시 탕감을 치러야 되기 때문입니다. (33-10)
이 땅 위에 태어난 인간들 가운데는 소망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있고, 소망을 갖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소망은 인간을 중심삼은 소망과 하늘을 중심삼은 소망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는 태어난 그날부터 어머니 품속이 그 무엇보다도 자기에게 제일 좋은 것으로 알고 자라지만, 어머니의 품을 떠나 친구들을 사귀게 되면, 친구들이 제일 좋은 것으로 알고 지냅니다. 그러나 결국 친구들과도 헤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점점 자라면서 사랑하는 부모도 자기 소망의 전체가 못 되고, 사랑하는 부부도 자기 소망의 전체가 못 되고, 더 나아가서는 사랑하는 자녀도 자기 소망의 전체가 못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많은 것을 소망하지만 그 마음이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가정에 대한 소망, 혹은 국가에 대한 소망, 더 나아가서는 세계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지만, 연령이 많아짐에 따라 그 소망하는 마음이 점점 약해져 갑니다.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 중에는 그 소망을 자기 전체 소망으로 자랑하고, 자기의 생명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인간은 그렇게 살다가 최후에는 죽음과 싸워서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에 봉착하게 됩니다.
인간은 일생 동안 온갖 소망을 품고 살지만, 나중에는 죽음에 부딪쳐 자기가 품었던 소망 전부를 다 버린 채, 가고 만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살기를 바라고 내일도 살기를 바라며 새로운 소망을 찾아 헤매고 있으나, 죽음에 부딪치게 될 때에는 소망을 갖지 못한 채 절망하면서 최후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인간이 자기를 중심삼고 볼 때는 소망을 가진 듯하나 죽음의 고개를 넘을 수 있는 소망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소망을 갖지 못한 채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인생의 본으로 알고 죽어갈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죽음도 비웃고 하나의 소망을 찾아갈 것이냐? 이것이 오늘날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중요한 문제입니다.
오늘날 세상만사는 다 지나가 버리고 맙니다. 가정도 지나가고 국가도 지나가고 세계 혹은 어떤 주의도 다 지나가는데, 최후에 남아지는 것은 무엇이냐? 죽음과 싸워 승리할 수 있는 하나의 소망입니다. 우리에게 그런 소망이 없다면 인생의 패배자입니다.
580
반면에 태어나면서부터 세상 사람들이 바라는 일체의 소망을 거부하고, 인간적인 것 일체를 거부하고 하늘의 소망, 영원한 소망을 품고 사는 무리도 있습니다.
하늘은 인간적인 소망을 중심삼고 살고 있는 지상의 인간으로 하여금 새로운 소망을 갖고 죽음의 고개도 넘을 수 있고, 영원한 세계를 흠모하면서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무한히 애쓰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땅 위의 어떤 소망을 품고 살 것이 아니라 죽음까지도 넘어설 수 있는 영원한 소망의 세계를 꿈꾸며 생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6-44)
⑤ 죽음의 의미
죽음이라는 낱말을 쓴 목적은 삶의 뜻을 알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삶의 가치는 누가 잘 아느냐? 살겠다고 하는 사람은 모릅니다. 죽을 궁지에 들어가 생사의 기로에서 하늘을 붙들고 삶의 가치를 타진해 본 사람이 아니고는 모르는 것입니다. (74-243)
오늘 세상에는 수면제 같은 것을 먹고 자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여자가 많겠어요, 남자가 많겠어요? 여자가 많습니다. 왜 여자가 많으냐? 여자는 일방적으로밖에 생각할 줄 모릅니다. 남자는 아무리 못 생겨도 이렇게 저렇게 생각할 줄 압니다. 여자는 결심이 하나밖에 없지만 남자는 이렇게 저렇게 걸러서 죽을 수 있는 길을 피해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자보다 남자가 자살을 덜하는 것입니다. (222-70)
⑥ 죽음은 3세계를 연결하는 과정
나도 하나님 닮고, 하나님도 내가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면 닮게 하고 싶다는 관념을 갖는 것은 필연적입니다. 그러니 나는 하나님을 닮고 싶고, 하나님은 나를 데려가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을 가능케 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다시 하나님과 닮을 수 있는 체(體)를 입고 태어나야 됩니다. 그렇게 태어나는 날을 하나님도 고대할 것이고, 인간도 고대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으로 태어나는 날이 필요합니다. 그게 뭐냐? 죽음입니다.
그러면 인간은 죽음을 환영해야 되겠느냐, 환영하지 말아야 되겠느냐? 환영해야 됩니다. 죽는 데 무엇 때문에 죽을 것이냐 할 때에 '하나님의 참사랑을 위해서 죽겠다.' 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육신을 벗는 것은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의 활동권에 내가 동참하기 위해서요,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를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태어나는 것이 죽는 것인데, 인간세계에서는 '아이구, 죽는다' 하고 야단하는 것입니다. 제한된 사랑권 내에서 무제한의 사랑권 내로 돌입할 수 있는 기쁨을 맞을 수 있는 순간이 죽는 순간입니다. 그러므로 죽는 순간이 제2의 출생의 순간입니다.
581
그렇다면 하나님이 여러분의 육신이 난 날을 기뻐하겠어요, 제2의 무한세계의 사랑을 위해서 활동할 아들로 태어나는 그 시간을 기뻐하겠어요? 왜 이런 얘기를 하느냐? 여러분이 죽음의 공포에서 해탈하지 않고는 하나님과 관계맺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소생․장성․완성시대를 거칩니다. 복중 물세계, 지상 지구성 세계, 천상 공중세계에서 삽니다. 다시 말하면 복중 물시대, 지상에 태어나서 사는 100년 땅시대, 날아가는 공중시대, 이렇게 3시대를 거칩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 제일 깊은 물속에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복중시대는 물속시대입니다. 아기가 어머니 태중에 있을 때는 물 가운데 떠 있습니다. 물 속에서 살기 때문에 물을 들이마시고 내보내는 놀음을 해야 되겠기 때문에 아기는 호스를 배에다가 연결하고 사는 것입니다.
아기가 영양분을 어디로 해서 공급받느냐? 배꼽으로 공급받습니다. 배꼽이 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걸 천대해서는 안 됩니다. '배꼽아, 너 옛날 수고했다.' 하며 두드려 주라는 것입니다. 배꼽을 많이 두드려 주면 건강해집니다. 그렇게 운동하라는 것입니다. 배꼽 운동을 많이 하면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추운 방에서 자더라도 배꼽만 잘 감싸고 자면 뱃증(설사)이 나지 않습니다. 복중에서 여러분의 입은 배꼽입니다. 이 숨쉬는 기관이 배꼽을 딛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 다음의 입은 뭐냐? 이 입입니다. 자꾸 올라갑니다.
그러면 배꼽에 달린 탯줄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 잘라 버려야 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공기의 세상에서는 영인체가 몸뚱이에 붙어 태아처럼 육신을 빨아먹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육신이 늙게 되면 버리고 나가는 것입니다. 태아가 태어나 어머니 아버지 앞에 사랑의 대상이 되는 것처럼 영인체가 영적 아버지인 영원한 하나님과 상대할 수 있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은 원리원칙입니다.
태아가 태어나 어머니 아버지와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이 지상세계입니다. 어머니 아버지와 사랑을 같이할 수 있는 지상세계에 태어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적인 무한한 세계를 통할 수 있는 부모 되신 하나님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영계에 태어나야 합니다.
물 안의 시대가 있고, 육지의 시대가 있고, 날아가는 시대가 있습니다. 오늘날 인간이 날아가는 것을 얼마나 기다렸습니까? 날아간다 하면 세계의 제일 주목거리가 되었습니다.
지상에서 사랑으로 호흡하는 사람은 죽은 것이 아니라 산 것입니다. 복중에서 호흡할 때는 파이프 장치를 통해 했습니다. 살아 있지만 배꼽에 연결된 태를 파괴하고 태어나게 될 때는 새로운 차원, 높은 차원으로 올라갑니다. 높은 차원에서 공급받는 것입니다. 공기를 공급받고 나온다는 것입니다.
복중에서 나와 무엇을 발전시키느냐? 공기가 아니고 사랑입니다. 사랑의 요소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밥만 먹어서는 안 됩니다. 밥 먹는 것은 죽어 가는 것입니다. 물 마시고 다 이렇게 사는 것은 전부 다 주머니, 물주머니입니다. 전부 다 죽어 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제2의 존재입니다. 지상생활에서는 무엇을 채워야 되느냐? 이 기간에는 새로운 사랑의 인격을 형성해야 됩니다.
582
이 땅 위에서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이 사랑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을 못 받은 아이를 왜 고아라고 하느냐? 저 영계와 영원히 연결시킬 수 있는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혼자 독신살이 하는 사람을 불쌍하다고 합니다.
죽는다는 것은 제2의 호흡을 하던 육체에 연결된 기관을 깨뜨리고 사랑의 요소를 이어받는 겁니다. 사랑은 안 보입니다.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의 내적인 구조가 자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법칙대로 태 안에서 정상적인 아기로 자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땅에서 잘 자라야 됩니다.
잠자리가 처음에 유충이 되어 물속에서 헤엄치고 다니다가 땅 위에 올라와서는 한동안 기어다닙니다. 그 다음에는 훌훌 날아다니며 땅에서 기어다닐 때에 먹으리라고 생각지도 못하던 벌레를 잡아먹습니다. 천하를 자기 무대로 삼고 날아다니는 것입니다.
곤충류 가운데는 3단계 세계를 거치는 것이 많습니다. 곤충 하게 되면 대개 날개가 있습니다. 곤충도 물에서, 육지에서, 공중에서 사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우리 인간이 날개가 있느냐, 차원이 높은 날개가 있는 것입니다. 죽음이 제2 출생의 복된 관문입니다.
죽는 것은 무엇이냐? 지상생활은 공기 중에서 '태 안에서 헤엄치고 다니며 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공기 보자기 안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죽는 것이 별다른 것이 아니라 제3의 인생으로 출생하는 것입니다. 그 순간이 죽는 시간입니다. (116-172, 49-285, 139-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