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경 - 제5권 지상생활과 영계 - 제 1 장 유․무형세계에서의 인간의 존재
제 1 장 유․무형세계에서의 인간의 존재
1) 인생 노정
① 인생 노정에 대한 기도문
사랑하는 아버님, 하늘이 수욕을 당하는 부끄러움이 있을까봐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싸워 나온 소자를 지켜 주신 아버지의 은사에 감사드립니다.
이 땅에 그 무엇이 좋다 하더라도 아버지가 운행하시는 본연의 심정에 연결된 것 이상 귀한 기준이 없는 것을 생각할 때, 그 자리를 무한히 그리워해야 되겠습니다. 아버님의 그 사랑에 접하는 사람은 세상만사를 다 잊더라도 미련이 없는 자리에 있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저희는 아버지의 사랑으로 사는 이상세계, 본향을 찾아가야 되겠습니다. 제3의 생의 자유권한을 가질 수 있는 해방아로 출생할 그날을 오늘 이 지상세계에서 준비해야 되겠습니다.
아기가 태중에 있을 때 건전해야만 지상에 태어난 그의 일생이 건전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상생활이 건전해야만 하늘나라의 생활이 건전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늘과 땅이 협조하고, 만우주의 동적인 운세에 박자를 맞출 수 있는 자리에 서려면, 오늘의 세상이 상충적이요 악이 주관하는 세상이기 때문에 죽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저희는 알아야겠습니다. 저희 후손들은 저희들과 같은 자리에 세워져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49-308)
사랑하는 아버지, 지금까지 봄의 환경을 개척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수고하신 아버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저희들은 아버님께 무한히 고마워하고 무한히 반가워하면서 저희 생명과 사랑 전체를 몽땅 옮겨 드릴 수 있는 자신이 못 된 것을 탄식할 줄 아는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저희가 새로운 봄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내 생명이 동화될 수 있는 인연을 갖추어 거기에 완전히 흡수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그래야 비로소 봄을 맞이하여 꽃을 피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일생에서 어느 한때에 봄을 맞이한 적이 있었느냐고 물을 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는, 봄을 맞이하지 못하고 간 불쌍한 영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나의 꽃이 피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여름과 가을을 거쳐야 하듯이, 저희도 하나의 열매로 맺어지기 위해서는 그런 과정을 거쳐야 되겠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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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생명이 투입되어 열매가 맺히기까지는, 여름절기를 거치고 그 뿌리와 줄기와 가지 전체에서 생명요소를 흡수해야만, 완전한 생명력을 지니고 제2의 생을 출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이 몸은 죽더라도 그 마음 가운데 새로운 세계에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생명의 기운이 부풀어 오를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스스로 살필 줄 아는 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무리 세월이 지나가고 폭풍우가 거세게 몰아치더라도, 내적인 생명력은 그 환경의 침범을 받지 않고 꾸준히 발전의 노정을 가야만, 봄을 맞이하여 다시 뿌려질 수 있는, 제2의 생명의 모체인 씨가 되는 것임을 아옵니다.
마찬가지로 저희가 외적으로 모습은 처량하지만 무한한 생명력을 집약할 수 있는 모체요, 결실체로서 다시 무한한 세계에 심어질 수 있는 가치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비참하더라도 비참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옵니다. 그 외적인 모습이 비참해지면 비참해질수록 내적인 가치는 더욱더 충실해지는 것이 보장된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32-37)
아버님, 아버지를 모시고 겸손히 경배드리고 싶은 마음이 없는 사람은 영원한 저나라에서 아버지와 인연을 맺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이제 저희가 마음의 문을 열고 아버지의 심정을 느끼게 하여 주시옵고, 오늘 저희의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당신의 음성을 들어서 잃어버렸던 자신의 몸을 찾을 수 있고, 아버지께서 나 하나를 찾기 위하여 내 배후에서 환난과 수고의 역사 과정을 거쳐온 것을 느껴 스스로 머리 숙일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4-280)
② 사람이 원하는 목적
하나님은 체(體)가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만물을 하나님의 체로, 아담을 하나님의 얼굴로 나타낸 것입니다. 그것이 창조이상입니다.
하나님은 본래 영적인 초점이고, 아담은 본래 육적인 초점입니다. 그 두 초점이 90각도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이요, 사람이 원하는 목적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저나라에 가서 아버지 어머니로 영원히 나타날 것인데, 타락했기 때문에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자기 부모를 하나님같이 모시면, 누구나 다 천국 가게 되는 것입니다. (119- 109)
③ 태어난 이유
오늘날 이 세계는 둥글게 되어 있습니다. 태양도 둥글고, 땅도 둥글고, 별도 둥글고, 입도 둥글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물건이라도 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는 둥글둥글 돌면서 관계를 맺습니다. 그리고 둥글게 있더라도 개별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에 연관성을 맺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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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내가 왜 태어났느냐? 이 대우주와 박자를 맞추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그러니 바다의 물결이 출렁거리면 내 마음도 출렁거리고, 바람이 기분 좋게 불면 내 마음도 기분 좋고, 꽃이 피어서 향기를 풍기면 내 마음도 향기를 풍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104- 122)
사랑에서 태어나고, 사랑에서 자라 가지고, 사랑에서 살다가, 사랑에서 죽게 될 때는 태어나는 것도 감사한 것이요, 사는 것도 감사한 것이요, 죽는 것도 감사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머니 아버지가 지극히 사랑하는 자리에 동참해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동참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모의 사랑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부모님의 사랑이 꽂아 놓은 깃발로 태어났다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깃발이 움직이는 것은 사랑을 표시하기 위해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일생 동안 사랑 때문에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위해서도 사랑의 깃발을 흔들어 주고, 아버지를 봐도 사랑의 깃발을 흔들어 주고, 형제들을 위해서도 사랑의 깃발을 흔들어 주라는 것입니다. (103- 258)
④ 순간(하루)과 일생 관계
여러분의 생활 전체가 영양소를 흡수할 수 있는 발판이 되지 않고는 생명체를 완성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자연현상 세계에서 벌어집니다. 생명의 분기점은 긴 기간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한 순간에 있습니다.
순간을 무시하는 사람은 귀한 것을 가질 수도 없습니다. 위대한 사람도 될 수 없고, 하나님의 왕좌와 왕관을 물려받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순간을 빛내기 위해서 여러분은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주의해야 하고, 생각하는 것도 주의해야 됩니다. 자기의 생활에서 벌어지는 모든 내용이 세계와 관계되는 현상으로 남는다는 신념으로 해결짓는 데에서만이 승리권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승리권이 결정되는 것은 순간입니다. 따라서 역사적인 승리권, 천주적인 승리권도 순간에 결정됩니다. 순간을 빛낼 수 있는 무한한 가치를 느끼며 생활하는 사람은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성인도 될 수 있는 것이며, 하나님의 아들딸도 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생사의 분기점은 순간에 달렸습니다. (31-218)
오늘 우리들의 자세가 문제입니다. 먼저 뜻의 나라가 오기를 바라고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그것보다 자체가 어떻게 하면, 뜻과 더불어 일치되어 나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 시간이면, 한 시간을 어떻게 하면 뜻과 더불어 하나되게 하느냐 하는 것이, 뜻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뜻을 계승할 수 있는 개인적인 환경, 가정적인 환경, 종족적인 환경, 민족적인 환경을 이루어야 뜻의 나라와 관계맺을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루의 생활권 내에서, 한 시간이면 한 시간을 어떻게 뜻과 더불어 관계맺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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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귀섭리역사를 보면 아담 가정에서부터 노아 가정, 아브라함 가정, 모세 가정과 예수님 가정까지 4천 년의 역사가 내려오고 있지만, 그들이 실수하게 된 동기는 어느 한 해를 중심삼은 것이 아닙니다. 아담 가정에 있어서 아담과 해와가 타락한 것도 1년이나 10년 혹은 몇십 년을 계획하여 실수한 것이 아닙니다. 그 실수는 한 순간에 초래되었으며, 한 순간의 실수가 억천만세 이어져 왔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 순간이 얼마나 무섭고 얼마나 두려운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 한 순간의 실수로 역사시대에 도의 길을 갔던 수많은 사람들이 수난의 보응을 받지 않으면 안 되었고, 그 뜻을 따라가지 않은 수많은 민족이 멸망의 구렁텅이로 빠지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것이 엄청난 탕감 제물의 기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생각할 때, 한 시간 똑딱 하는 순간이 무서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한 천국도 한 순간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습니다.
영원한 출발은 내가 죽어서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출발은 내가 뜻을 알고 난 순간부터 계속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한 순간이라도 시간 관계를 두고 비약이 있든가 구렁텅이가 생겨나면 영원은 중단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애노정을 중심삼고 신앙길을 가는데 금년에 못 가면 명년에 가고, 명년에 못 가면 내명년에 가고, 10대에 못 가면 20대에 가고, 20대에 못 가면 30대에 가고, 30대에 못 가면 40대에 가고, 40대에 못 가면 50대에 가고, 이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일생을 이런 식으로 살아간다면, 그는 일생 동안 뜻과 더불어 하나 될 수 있는, 하루의 생활도 가져 보지 못하고 죽을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살았다면 그 사람은 천국에 가지 못합니다.
아무리 자기가 살고 있는 그 나라가 좋다 하더라도, 하루의 승리기준을 갖지 못하면 하늘나라에 갈 수 없으며, 일년의 승리기준을 갖지 못하면 영원한 세계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자는 영원을 꿈꾸고 나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현실에서 어떻게 악을 청산하고 선의 기수가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아담의 순간적인 실수가 억천만세 한을 남겨 놓았던 것입니다. 아담 가정에서 가인과 아벨이 부모의 한을 풀고 형제의 담벽을 무너뜨려 하나의 가정 기원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복귀섭리의 대표로 세워졌던 아벨이 죽었던 것도 순간적인 사건이었습니다.
120년 걸려 방주를 짓던 노아의 수고의 노정에서도 하나님께서 '소원을 성취할 날이 왔으니 배에 오르라!'고 하신 명령도 한 순간에 내려졌습니다. 이 명령에 동조한 사람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영원한 심판권 내에 매장되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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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네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창성(昌盛)하여 만국을 덮고도 남으리라'고 축복하셨는데, 그 축복의 명령도 똑딱 하는 한 순간에 내려졌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제사를 지낸 시간도 몇십 년 동안 제사를 지낸 것이 아니라 단 하루라는 시간권이었습니다. 제물을 쪼개어 제사 드리는 시간은 한 시간 미만이었지만 여기서 역사적인 모든 생사화복의 기원이 짜여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날 신앙자들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끝날에 찾아오는 심판이 아니라, 하루하루의 생활권 내에서 찾아오는 시간을 어떻게 뜻과 일치시키느냐, 어떻게 뜻과 더불어 교차로를 형성하고 나가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37-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