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자녀교육 4). 5). 6) (천성경 - 제4권 참가정 - 제 9 장 참된 자녀교육)

훈독왕 | 20180704082500

천성경 - 제4권 참가정 - 제 9 장 참된 자녀교육


제 9 장 참된 자녀교육


첨부파일 천성경, 참된 자녀교육 4.5.6-1.mp3


4) 부모는 친구 중의 친구요, 스승 중의 스승


사랑이라는 것은 어디서부터 오느냐? 사랑은 자기로부터 오는 법이 없습니다. 사랑이란 상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상대가 없게 될 때는 사랑도 올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을 중심삼고 보면 남자 앞의 여자도 상대적이요, 또 부모 앞의 자식도 상대적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상대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것을 '삼대상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삼대상 사랑을 체휼하지 못한 자는 완전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했다는 자리에 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를 만들어 놓고 좋아했듯이, 나도 아들딸을 낳아 놓고 그만큼 기뻐하자' 이것이 통일교회 원리의 가르침입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를 지어 놓고 '이제부터 세계를 주관하겠구나. 우리 집이 세계의 중심가정이 되겠구나. 어서 커라 어서 커라'하면서, 희망을 가지고 보호 육성하는 가운데 기쁨과 만족을 느끼면서, 그들이 자라서 결혼할 날을 바라시던 것이 하나님의 소망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버지 어머니는 아들딸을 잘 길러 훌륭한 상대를 골라 좋은 부부를 맺어 주어야 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좋은 부부를 맺어 주면 그 집이 흥하는 것입니다. 
친구 중의 친구가 누구냐? 이웃 동네의 더벅머리 총각이 자기 아들딸의 친구가 아닙니다. 친구 중의 친구가 누구냐 하면, 바로 아버지 어머니입니다. 이렇게 돼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친구보다도 더 좋아하는 부모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친구 중의 친구요, 스승 중의 스승이 되어야 합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야야, 너 그렇게 하면 안 돼!'라고 하고, 선생님은 '야 이놈아, 안 하면 종아리 때린다. 그렇게 하면 안 돼' 하면서 교육하면 안 됩니다. 사랑의 교육을 해야 합니다. '야 야, 너 그러면 되겠니?' 하면 '그래, 내가 이렇게 하면 아버지 어머니가 슬퍼하니까 안 되겠지'라고 할 수 있게 교육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모는 자식의 친구 중의 친구요, 스승 중의 스승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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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동산에 있는 아담과 해와에게 친구가 있었어요? 아담에게 친구가 있었다면 해와밖에 없었습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천사장하고는 친구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천사장은 종입니다. 그런데 잘못 친구 삼았다가 망한 것입니다. 그러니 부모는 스승 중의 스승이요, 친구 중의 친구요, 사랑 중의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은 하나님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니까 결국 상대 사랑도 누구로 말미암은 것이냐 하면, 부모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야 야, 너희들이 좋아하는 것은 너희들 때문이 아니라 부모의 은덕으로 말미암은 것이다'라고 할 때 자녀들은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나를 이렇게 길러 이런 상대를 얻어 주지 않았다면 큰일날 뻔했다' 이래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연애결혼은 낙방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교육은 누구로부터 받아야 되느냐? 부모로부터입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하나되어 비둘기같이 재미있게 구구구구 사랑하는 것을 보고, 그것을 본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야,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저렇게 좋아하는 것을 보니까 나 혼자는 외로워. 나도 우리 어머니 아버지같이 구구구구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상대가 필요하다.' 이렇게 돼야 되고, 부모는 그렇게 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 아들딸들이 아버지 어머니가 하던 놀음을 반복하게 되니 세계는 선한 세계가 되는 것이요, 인류역사는 선한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 이것을 하자는 것입니다. (선집 57-119)


 5) 사랑의 채찍


요한계시록에 보면 차든지 덥든지 해야지 미지근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사랑의 세계에서 미지근한 태도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마음을 가지면 매를 들어도 좋다는 것입니다. 자식을 기를 때 사랑을 주었는데도 잃어버렸을 때는 차갑게 대해 줘야 할 때도 있습니다. 잘못했을 때 여러분이 꾸지람을 안 해주면 자식들은 분별력을 잃게 됩니다. 선생님이 좋아 보여도 다른 한편으로는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악에 대해서는 무자비합니다. 그러나 선에 대해서는 몇천 도의 용광로처럼 뜨겁습니다. 
최근에 미국의 어느 학교에서 선생이 학생을 때렸다는 이유로 감옥에 갔다는 말을 들었을 때, '미국은 이제 망했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진해서 때려서라도 선한 방향으로 이끌어 달라고 해야 합니다. 
한국의 속담에 미운 사람에게는 떡 한 개 더 주고, 예쁜 사람에게는 매를 들라는 말이 있습니다. 올바른 전통을 이어가게 하기 위해서는 할 수 없습니다. 부모님의 채찍이 아픈 것을 잊고, 그 사랑 앞에 눈물 흘릴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사람이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상금을 주는 것이 아니고, '이 녀석아, 왜 그랬어?' 하고 도리어 혼을 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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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동네 총각 같으면 잘못해도 모르는 체 하겠지만 자기 자식 같으면 '종아리 걷어!' 해 놓고 때리면서 '이 녀석아 그것 잘한 거야, 못한 거야?'라고 하게 됩니다. 
그것은 때리는 것보다도 더 많이 생각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생각해 주는 것보다 더 때리면 그것은 죄입니다. 자기가 생각해 주는 것보다 더 때리면 원수가 됩니다. 원수 중에도 큰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몽둥이를 든 것보다 더 사랑하지 못하는 자리에서 때렸다가는 전부 다 깨져 나갑니다. 
그렇지만 그 이상 사랑하는 자리에서 때리면 괜찮습니다. 즉 사랑을 열만큼 하고 다섯만큼 채찍으로 때리면, 다섯만큼의 사랑이 남아 있으니까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자식이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자식을 회개시키기 위해서는, 옛날 사랑하던 그 사랑보다도 더 큰 사랑을 갖고 나타나서 사랑하게 되면, 그 불량배 같은 자식이라도 회개하고 돌아설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식에 대해서 자기가 길러온 공을 자랑하면서 자식을 세 번만 나무라면, 그 자식은 보따리를 싸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자식에 대해서 뼛골이 녹아나는 눈물을 흘리며 더 큰 사랑을 가지고 사랑하게 될 때, 그 자식은 돌아서는 것입니다. 더 큰 사랑은 작은 사랑을 전부 다 소화 통합시킬 수 있는 주동성이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자식이 피곤해 한다고 공부하지 말라는 부모는, 진짜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매를 때려서라도 잠자지 말고 공부하라고 해야 합니다. 왜 그런가? 지금 잘되자는 게 아니고 미래에 잘되자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의 미래에 큰 꿈을 걸고 그러는 것입니다.
자녀를 낳고 기르는 데에 있어서 참사랑으로 낳고 길러야 합니다. 그리하여 가정이 하나되고, 가정을 중심삼고 나라를 사랑하면 그를 애국자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는 자식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교육을 시키고 올바르게 크라고 '사랑의 매'를 들기도 합니다. 잘못했다는 이유로 부모에게 꾸중을 듣거나, 매를 맞았다고 하여 불만을 갖거나 항의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을 교훈으로 삼아서 은연중 자중하면서 반성하고 고군분투 노력하여 잘못된 점을 고쳐 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바르게 성장하여 하나님이 계시는 센터에 접근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성약Ⅰ-1027)


 6) 공부는 무엇 때문에 하는 것인가


공부하고 싶어서 학교 가는 학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전부 다 처음에는 할 수 없어서 다니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초등학교 학생들은 부모가 무서워서 할 수 없이 다니는 것이지, 공부하고 싶어서 다니지 않습니다. 맨 처음에는 다 그렇다는 것입니다. 할 수 없이 다니다 보면, 나중에는 그 맛을 알고 배우기 위해서 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머니 아버지가 놀라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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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맛을 느끼고, 그런 자극적인 내용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는, 공부하는 데에 재미를 붙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 재미라는 한 자체를 두고 볼 때는 나쁜 것입니다. 
그렇지만 공부해 보니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기 때문에 거기에 맛을 들여 공부하는 것입니다. 공부하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공부함으로써 자기가 활동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입니다. (선집 36-120)


학교 가는 학생을 대해 부모는 말하기를 '열심히 공부하라!'고 합니다. 그거 쉽지 않은 길입니다. 고통스러운 길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미래를 위해 준비하라는 예고입니다. 교수들이 단에 서서 제자들을 열심히 가르치는 것도 미래를 위한 준비입니다. 농부가 논밭에 나가서 열심히 일하는 것도 미래를 위한 준비입니다. 이 나라에 천국을 건설하기 위한 준비입니다. (선집 147-205)


여러분은 학교에 무엇 때문에 갑니까?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여 어디에 쓰려고 합니까? 그것은 행복을 위해서일 것입니다. 행복은 사랑을 빼놓고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학교에 가는 것은 사랑의 길을 단축시키기 위해서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인간에게 있어 행복의 문이 열릴 때, 그것은 결혼이라는 것입니다. 행복의 문을 열기 위해서 공부를 하는 것은 매우 좋은 방법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공부가 돈을 벌기 위해서, 권력을 갖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면 잘못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공부는 참사랑을 할 수 있도록 배우는 것이어야 합니다. 처녀들이 대학에 가서 학사가 되려는 그 이유가 뭐냐? 좋은 신랑을 얻겠다는 것입니다.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어떤 남자가 아무리 훌륭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그의 가정이 하나되지 않았다면, 그 남자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성약 Ⅰ-372)


공부하는 것도 참된 남성을 만나 참된 어머니가 되기 위해서라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참된 어머니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나라를 위해서 공부해야 하며, 남편을 참된 남편으로 모셔 참된 남편을 모시는 참된 아내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내가 되지 못하면 참된 남편을 모실 수도 없고, 참된 아들을 가질 수도 없는 것입니다. 여자는 참된 아내가 되어 한 가정의 주부로서 남편과 백년해로해야 하는 것입니다. 시집 잘 가기 위해서 공부한다면, 대학 출신들은 전부 다 부부가 백년해로해야 되지요? 
그런데 백년해로하는 사람이 많아요, 이혼하는 사람이 많아요? 알아보나마나입니다. 일자 무식자들이 더 오래 잘 산다는 것입니다. 남자나 여자가 태어나서 오랜 교육기간을 거쳐 성숙한 인격자가 되는 것도 사랑의 이상적 상대자를 만나 행복한 생활을 갖기 위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요즈음 세상에서는 결혼의 상대자를 만나기 위해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결국은 훌륭한 상대자를 갖기 위한 것이고, 상대자와 아름다운 사랑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다 보면, 재물도 따르고 명예도 따르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성약 Ⅰ-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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