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부모의 사랑 4), 5) (천성경 - 제4권 참가정 - 제 8 장 참된 부모의 사랑)

훈독왕 | 20180704081746

천성경 - 제4권 참가정 - 제 8 장 참된 부모의 사랑


제 8 장 참된 부모의 사랑


첨부파일 천성경, 참된 부모의 사랑 4. 5-1.mp3


4) 모든 것을 희생하는 부모의 사랑


사랑은 홀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생명이 투입되지 않고는 사랑이 성립되지 않는 것입니다. 부자관계의 사랑을 두고 보더라도 거기에는 생명의 인연이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생명의 인연이 남아 있는 한, 생명의 인연 속에서 소원을 갖고 있는 한 거기에는 반드시 사랑의 인연이 남아지는 것입니다. 
생명의 인연을 떠나 가지고는 사랑의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에는 반드시 생명의 인연이 투입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 생명을 얼마만큼 투입해 가지고 사랑하느냐에 따라, 보다 가치있게 느끼느냐, 안 느끼느냐 하는 문제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선집 32-15)


예를 들면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그냥 그대로 생활적 인연만을 통해서 하는 사랑이 아닌, 뼛골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인 것입니다.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고, 끊으려 해도 끊을 수 없는, 사랑의 마음을 부모는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의 여력이 남아 있는 한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식과 생명의 인연이 맺어져 있다는 것을 느낄 때, 부모에게서는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자연적으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저 애는 내 아들이니까 사랑하겠다는 의식적인 마음이 앞서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보다도, 그 인연보다도 앞선 자기의 생명력이 자식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들이 가정생활에서 잘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선집 32-15)


그러면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할 때, 천년만년 주고도 또 주고 싶은 그런 마음을 끊임없이 갖고 계신 분입니다. 그런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 것이지, 주고 나서 '야, 요거 몇 냥 몇 전이다'라고 하시는 장사꾼 하나님이라면 그런 하나님은 필요없습니다. 만민은 왜 하나님을 좋아하면서 따라가야 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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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왜 좋아해야 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하나님은 만민을 위하여 모든 것을 주시고 또 주시면서도 부끄러워 하시며 '지금은 이것밖에 안 되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라, 몇백 배 몇천 배 더 좋은 것을 줄 터이니…' 하시면서 오늘 현재에 주신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주면서도 미래에 더 좋은 것을 주겠다는 약속을 하시며 주실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고 계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분과 더불어 있으면 비록 못 먹고 못 살더라도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못 먹는 자리에 들어간다면 미래의 소망 된 자극이 현실권 내에 충격적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도리어 새로운 결심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면서도 부끄러워하는 자리, 그런 부모를 가진 자식이 '엄마'하고 끌어안게 되면 몸만 끌어안겠습니까? 얼마나 고맙겠습니까? 
그 자리는 미래를 위해 서로 위로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자리입니다. 절망이 같이하는 것이 아니라, 내일의 소망을 현재의 자극으로 여기고, 서로 결의하고, 서로가 맞부딪쳐 가지고 격려할 수 있는 폭발적인 자리가 바로 그런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비참한 것이 아닙니다. 
미래에 대한 자극을 끌어들여 가지고 현실권내에서 가치를 찬양할 수 있는 자리는 그러한 사랑권내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랑권내에 사는 사람은 불행이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선집 36-291)


부모는 사랑하는 자식에 대해서 전체를 희생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하나님은 하나님을 위해서 투입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자신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해서 있겠다는, 상대를 위하는 하나님의 자리에 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을 위해서 있겠다고 하면, 그건 참된 사랑이 아닙니다. 자기를 전부 다 자식한테 희생해 가지고 그 자식과 더불어 있겠다고 하는 데서 사랑이, 생명이, 희망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선집 69-62)


5)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절대적이다


선생님이 어렸을 때 새 둥지를 많이 보았습니다. 새 둥지를 보려고 올라가 보게 되면 어미가 와서 쪼아댑니다. 결사적입니다. 한 번만이 아닙니다. 쳐 버리면 맞고 날아가면서도 또 옵니다. 이걸 볼 때, 자기 생명을 넘어서 사랑하는 새끼를 보호하려는 동물세계의 힘이 있는 것을 부정하지 못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을 위해서 생명을 투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참된 사람입니다. 진짜 선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사랑을 뿌리로 해 자기 생명을 던져가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하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거기에는 주체적 선이 있는 것이요, 상대적 선의 논리를 세울 수 있는 겁니다. 이것은 만고불변입니다. (선집 18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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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국 댄버리교도소에 있을 때 재미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비탈길을 테니스 코트로 닦기 위해 매일 불도저로 미는 작업을 했는데, 오랫동안 했습니다. 작업을 하다가 중지하기도 하고, 또 우기(雨期)가 되면 건기(乾期)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한 두서너 주일 우기가 지난 후 작업을 하는데, 거기에 물새가 새끼를 쳤습니다. 그 곳에는 죄수들이 운동 삼아 걷는 코스가 있는데, 거기서 불과 3미터 떨어진 곳에 물새가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 물새 빛깔이 얼른 봐서는 알아볼 수 없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은 모릅니다. 그 보호색이 얼마나 잘 되었는지 모릅니다. 알을 낳아 까기 전까지는 사람들이 다니면서도 몰랐습니다. 엎드린 모습을 옆에서 보면 까만 자갈돌 빛깔 같은 보호색이어서 몰랐습니다. 그러다 새끼가 부화되어 뭘 물어다 먹이다 보니 소리가 '찍찍' 나게 되어 다 알게 됐습니다. 짓궂은 녀석들은 별의별 놀음을 다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 물새가 자기 새끼들에 대해서 얼마나 보호력이 있는가 하면, 먹이를 구해서 물고 올 때 절대 자기 새끼 가까이 날아오지를 않습니다. 딴 곳에 내려서 새끼 있는 곳까지 기어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매일 방향이 다르더라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방향을 달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새끼를 키웁니다.
이 새끼들이 점점 자라게 되면 사람이 그 옆에만 가도 어미가 쪼아대며 야단입니다. 새끼를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누가 그렇게 가르쳤느냐? 그게 우주의 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축으로 하여 모든 물이 평면적 위치에 있기 때문에 위치는 낮지만 그 평행선상의 기준은 변함이 없게 되어 있습니다. (선집 136-23)


꿀벌이 꽃송이를 찾아다니다가 꿀맛을 봤다 하게 될 때에는, 다리로 파고 들어가서 꽁무니를 떡 내밀고 빨아먹습니다. 선생님은 벌에 대해 잘 압니다. 꿀맛을 보는 벌을 핀셋으로 잡아당기게 되면 꽁지가 쑥 빠지더라도 안 떨어집니다. 참사랑은 그런 사랑입니다. 자기 생명까지도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계산해서 얼마 이익이 되니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까지도 버리면서 잊어버리고 갈 수 있는 길이 참사랑의 길입니다. 
부모는 그 길을 갑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는 자식이 사지에 들어가게 되면 자식을 위해서 죽을 자리에 가려고 합니다. 사랑 앞에 자기 목숨을 묻고 가려고 하는 것이 부모 마음입니다. 그 사랑이 참사랑입니다.
어떤 사람이 세상에서 자랑할 수 있는 금은보화를 가졌고, 피땀 흘려서 엄청난 재산을 모았는데, 자식이 죽을 운명에 처하게 되면, 그 자식을 살리기 위해서는 외적인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자기 생명까지 희생시켜서라도 살리려고 합니다. (선집 34-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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