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부모의 사랑 1). 2). 3) (천성경 - 제4권 참가정 - 제 8 장 참된 부모의 사랑) u

훈독왕 | 20190404190322

천성경 - 제4권 참가정 - 제 8 장 참된 부모의 사랑


제 8 장 참된 부모의 사랑



 1) 무엇이든 주고싶어 하는 부모의 마음


자식을 낳아 길러 본 부모들은 알 것입니다. 애지중지하는 그 아들딸을 통하여 복을 받고 싶고 행복도 느끼고 싶을 것입니다. 또한 기뻐하고 복받을 수 있는 기준이 있으면 그 아들딸에게 영원히 남겨 주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한 소망의 마음을 가지고 그 아들딸이 고이 자라, 만국으로부터 추앙을 받고 만세에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기를 타락한 인간도 바라고 있습니다. 
밤이나 낮이나 그 아들딸이 상처를 입을까 보호하고, 애달픈 심정으로 초조해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타락한 부모의 마음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품 안에서 젖을 먹여 키우는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 자식이 똥 싸고 오줌을 싸서 냄새가 나더라도 사랑으로 그 환경을 잊어버릴 수 있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타락한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사랑의 주체 되시는 하나님께서 본연의 심정을 통하여 아담과 해와를 사랑하고 싶었던 그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겠습니까?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애기를 품고 키울 때에 잠자리에서 노래를 불러주고 혼잣말로 얘기도 해주며 잘되기를 바라는 그 마음은, 부모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못나고 부족한 부모라도 그 자식에게 결함이 있으면, 부모의 마음은 그 가슴이 몽땅 젖도록 최고의 고통을 겪는 것이요, 이것이 풀어지면 그 고통에 비례한 만큼 기쁨이 동반되는 것입니다. 타락한 부모의 마음도 그러한데 하나님의 마음이야 어떠하시겠습니까? (선집 20-209)


부모는 아들이 죄를 지어서 감옥에 가면 '이놈의 자식 잘 갔구나' 그러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식을 용서하고 눈물을 흘리며 사랑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부모의 사랑이 귀하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 아들이 사형수가 되어서 죽는 시간이라면, 아들이 사형받는 시간을 어머니가 안다면 통곡할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법을 다 변경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아들을 구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 있다면 무슨 모험이라도 생명을 바쳐 하겠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 변치 않는 사랑을 갖고 있기 때문에, 부모의 사랑은 귀하다는 것입니다. 자기 몸을 치고 자기 몸을 잃어가면서, 자기를 희생해 가면서 자식을 위해서는 죽음까지도 불사하는 것이 부모의 심정입니다. (선집 9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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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는 자식을 사랑해 주게 될 때 '내가 너에게 며칠 날 고무신 사 주고 옷 사 주고 너를 위해서 피땀을 흘렸는데, 그 가치는 몇천 몇백 몇십 원이다'하며 치부(置簿)합니까?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데는, 세상의 왕궁의 왕자 왕녀 이상 해주고 싶지만, 그 이상 해주고 싶은 마음을 느끼는 자리에서, '내가 정성을 다해도 이것밖에 없으니 미안하다'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상 더 좋은 것 해줄게' 하는 마음을 부모는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의 사랑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걸 알아야 합니다. 주고도 부족함을 느끼고, 사랑하고도 덜 사랑한 것이 있지 않겠나 하며 더 사랑하고 싶은 마음, 주고 나서 섭섭하고 안된 마음, 이러한 것이 있기 때문에 이것은 영원한 사랑과 통하는 본질에 속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의 출발의 전통적 동기입니다. (선집 60-84)


부모는 자식을 대함에 자기의 제일 좋은 것을 전부다 주고파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이것은 누구를 닮아서 그러냐 하면, 하나님을 닮아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자식 되는 사람이 진짜로 나타나면 그에게는 자기보다 더 귀한 것을 주고 싶어하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선집 56-147)


 2) 자식이 더 낫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


여기 중년 이상 되시는 여러분에게 '옛날 젊은 시절에 자기의 상대를 구하는 데 있어서 자기보다 못난 사람을 구하고 싶었습니까, 아니면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구하고 싶었습니까?'하고 묻는다면, 대답은 그 누구나 동일할 것입니다. 
못난 사람이 아니라 잘난 사람입니다. 그것은 동서양의 누구를 대해서 물어도 그러한 결론이 내려질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사랑하는 부모가 자식을 대할 때는 그 자식이 부모 된 자기보다도 못나기를 바라는 부모가 없는 것입니다.
어떤 미남 미녀가 결혼을 해서 첫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기의 얼굴이, 그 부모의 얼굴에 비하면 이것은 아무것도 아닌, 생기고 싶은 대로 생긴 얼굴이라 해도, 그 부모에게 당신의 아기는 당신보다도 잘생겼다고 칭찬하면 칭찬할수록 그 부모는 기분이 아주 좋아지는 것입니다.
부모의 심정이란, 아주머니의 얼굴이 잘생겼다고 하더라도 그 아주머니가 안고 있는 아기를 보고 지나가던 사람이 '야! 그 녀석 엄마보다 몇천만 배나 더 잘생겼군'하면 좋아합니다. 그건 엄마는 그 아기보다 몇천만 배 못생겼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말을 듣고 '뭐라고? 나보다 몇천만 배 잘생겼어? 그럼 나는 몇천만 배 더 못생겼다는 얘기 아니야?'라고 하면서 대드는 엄마는 없습니다. 그저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그렇게 하는 마음이 누굴 닮았겠느냐? 어머니는 결과적 존재이지 동기적 존재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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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아버지보다 못하기를 바라는 집안이 있다면, 그 집안은 망하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대통령인데 아들은 그보다 못하게 될 때는 그런 형태로 몇 대를 가게 되면 그 집안은 점점 망하는 것입니다. 맨 나중에는 쥐구멍을 찾는 신세가 됩니다. 그래, 자식이 아버지에게 '내가 아버지보다 못하면 되겠습니까?' 하면 아버지가 '예끼 이놈!'하겠느냐, '오냐 그래라'하겠느냐? 후자를 택하는 것입니다. (선집 41-283)


어떤 부모도 가정의 책임을 맡기기 위해서 자기의 후계자를 내세울 때는 자기보다 못한 자를 후계자로 세우기를 원치 않습니다. 왜 그러냐? 자식이 자기보다 나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부모는 절대로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나라를 중심삼고 볼 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라의 주권자는 자기 이상의 후계자가 나오기를 바라는 주권자가 되어야 합니다. 
가정에 있어서나 국가에 있어서나 그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보다 훌륭하고, 자기보다 모든 것을 더 갖추고 있는 후계자가 나오기를 바라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의 변천을 초월하여 영원에 가까운 요구조건입니다.
부모의 사랑이 영원히 지속되기 위해서는 그 전통을 계승한 누군가가 있어야 합니다. 분명히 자녀들이 상속자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그러한 전통의 상속자가 되도록 교육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전통을 보다 높은 가치로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이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각 세대마다 기존 전통의 중요함을 인식해야 하고, 그 전통을 계승할 뿐만 아니라, 미래를 향해서 발전시켜야 합니다. 
그러한 전통은 항상 자기의 자녀들이 자신들보다 더 낫기를 열망하는 부모들이 있는 참된 가정에서만 출발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열망을 가진 부모들은 끊임없이 자녀들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격려해 줄 것입니다. 
그러한 부모들은 자녀들이 그들보다 더 훌륭하게 될 수 있는 그날을 고대하며, 자녀들에게 가능한 한 최선의 여건을 마련해 주고자 정성을 다할 것입니다. 이러한 부모들은 자녀들의 행복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할 것이며, 심지어는 자녀들을 부모보다 더 훌륭하게 만들어 주는 방향으로 기꺼이 강요하기도 할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이 자기보다 나을 때 행복을 느낍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로 태어났다가 자기보다 못한 아들딸을 낳게 되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면목이 없어집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상 자기 아들딸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자녀도 이러한 생각을 할 때 자동적으로 사랑의 세계는 나타나고 천국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성약 Ⅰ-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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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부모의 사랑은 만고불변의 사랑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사랑의 그 기원적인 동기는 어디서부터 시작했느냐? 남자 여자를 중심삼은 사랑은 변하는 사랑인데, 거기서 태어난 아들딸을 중심삼은 사랑은 왜 변하지 않느냐? 이것은 그 남녀를 중심하는 사랑에서 되어진 사랑이 아닙니다. 변하지 않는 사랑은 횡적인 부부의 인연으로 되어진 것이 아니라, 종적인 어떠한 흐름의 기원을 통하여서 관계되어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 종적인 주체가 누구냐? 그런 주체를 우리는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그 사랑은 부부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랑이 아닙니다. 그 사랑 앞에 내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하는 입장에 서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끊으려 해도 끊을 수 없습니다. 횡적인 인연으로서 어떻게 터치(touch)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그 사랑은 만고불변입니다.
오늘날 민주사회에 있어서, 개인주의 사상이 팽배한 이 때에, 자식들이 하는 말이 신시대와 구시대는 차원이 다르다고 하지만, 자식들은 그렇게 변했지만, 그 부모의 마음은 구시대니 신시대니 부르짖는다고 해서 '너 그러니 나 그러자'하게 되어있지 않습니다. 부모의 사랑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동물도 그렇습니다. 새끼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는 자기의 생명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선집 48-155)


그러면 그런 사랑은 어디에서 왔느냐? 나 자신이 제1의 어떤 상대적인 결과의 존재라면, 그것은 제1의 어떤 힘의 인연 가운데서 온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으로서는 터치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사랑을 혁명하자! 혁명의 기수가 되자!'하는 사람 보았어요? 
만약에 어떤 부모가 이 사랑을 혁명해서 인류역사를 개조해 버리겠다 해 가지고 '나는 부모는 부모지만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나섰다고 합시다. 그렇지만 그 부모는 자식의 배꼽이 떨어지는 순간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자연적으로 발생할 것입니다. 모든 생물은 어떠한 고하(高下)를 막론하고 자기 새끼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데 생명을 투입해서, 생명을 고임돌 삼아 가지고도 하고 싶어하는 작용이 있는 것을 보게 될 때, 만고불변에 가까울 수 있는 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그것은 절대성(絶對性)을 찾아 나가는 데 있어서 절대 그 자체는 못 되지만, 인간 앞에 제일 가까운 고임돌은 될 수 있습니다. 단 하나의 발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이것이 인간세상에 있어서 그래도, 역사를 보게 될 때 영원한 발판이 되어 있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부모의 사랑은 어디에서 왔느냐? 그것은 아버지에게 어떠한 권고를 받아서 배운 것도 아니요, 자기 상대에게 충고를 받아 배운 것도 아니요, 자기 자신이 그래야겠다고 생각해서 나온 것도 아닙니다. 자연히 그리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자연히 그리 되는 데서 성립되는 것입니다. (선집 48-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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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적인 사랑을 분석해 보면 사랑에는 혁명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참사랑에 해당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시조 때부터 사람이 자식을 사랑한 마음이나 수 천 년 후의 후손인 우리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똑같은 것입니다. 또한 수 천 년 후에 우리의 후손들이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도 같을 것입니다. 
사랑에는 발전도 없고, 종식도 없습니다. 혁명의 요건이 필요치 않은 순수한 것이 참사랑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은 어떠한 것이냐? 하나님이 어떤 존재를 절대적인 기준의 자리에 세워 놓고, 그의 존재성을 인정하고, 그를 사랑하신다면, 그 사랑은 더 이상 혁명이 필요치 않는 사랑입니다. (선집 1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