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경 - 제4권 참가정 - 제 6 장 사춘기의 변화와 참된 결혼
제 6 장 사춘기의 변화와 참된 결혼
천성경, 사춘기의 변화와 참된 결혼 5, 6, 7, 8-1.mp3
5) 사춘기에 일어나는 신체적 변화는 무엇 때문인가
소년기에는 막연한 꿈 속에서 건강하게 자라기만 바라지만, 사춘기가 되어 신체적으로 생리적 변화가 생기게 되면 이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눈동자는 호기심과 아름다움으로 반짝 빛나게 됩니다.
몸도 멋을 부리기 위해 옷을 맵시있게 차려입게 되고 얼굴을 보다 예쁘게 하기 위해 다듬기에 여념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때에 입술을 보면 그가 사춘기에 접어들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여자들에게 있어서도 사춘기에 접어들면 월경이 시작되고, 신체적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엉덩이가 커지고, 가슴이 툭 튀어나오고, 입술이 붉어지며, 눈동자가 신비스럽게 빛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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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여자들의 변화는 왜, 누구를 위해서 오는 것이냐? 여자의 신체적 변화는 직행하던 길을 빙글빙글 돌아가기 위한 변화인 것입니다. 빙글빙글 돌아갈 수 있는 운동을 시작하기 위한 변화란 것입니다. 직행하는 길에는 아무런 조화가 없는 것입니다. 직행길은 두 번 왔다갔다 하면 모든 것이 소모되고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직행길을 왔다갔다하고 나면 환경을 파괴할 뿐이지, 환경의 조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환경의 조화와 보존을 위해서는 돌아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돌아가야 합니다. 돌아가는 데는 자기 혼자 돌아갈 수 없으므로 상대를 중심삼고 돌아가야 합니다.
돌아가는 데는 상대와 부딪쳐야 돌아갈 수 있습니다. 상대자와 부딪치면 자동적으로 반작용이 일어나 돌아가는 운동이 시작됩니다. 이것은 천지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여자가 신체적으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상대자와 만나 돌아가기 위해서입니다. 부딪치면 돌아가기 위한 힘이 생겨나게 됩니다. 여자가 화장을 하고 예쁘게 단장하는 것은 자신을 위하기보다 상대를 위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아름답게 차려 입은 여자를 보게 될 것 같으면 남자를 보는 눈이 유달리 빛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자기의 상대를 찾기 위해, 자신을 다듬고, 가꾸기 때문에 자연적 현상의 발로라 하겠습니다. 멋있는 남자를 만나기 위해, 이상적인 남자를 만나기 위해 가슴 조이며 쏘다니게 됩니다.
여러분만한 사춘기의 처녀와 총각이 서로 만나 이야기 할때는 가슴이 뛰는 것입니다. 뛰지요? 뛰어요, 안 뛰어요? 몰라요? 뛴다고 하면 안 뛴다고 할래요? "뜁니다."
그것 보세요. 흥분하지요? 그리고 흥분하게 되면 심장에 변화가 옵니다. 그런데 그 마음이 하나님을 중심삼지 않고 반대의 입장에 서면 악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은 누구를 중심삼느냐?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을 중심삼은 마음과 심정이 하나될 수 있는 자리에 올라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러한 입장에서 한 생애를 지내야 할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은 사랑을 중심한 이상과 희망을 갖지 않고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최후의 자리에서 빛날 수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성약Ⅰ-367)
6) 사춘기의 첫사랑
사춘기에는 사랑을 찾아 몸과 마음이 충동을 일으키게 됩니다.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들 멋대로 돌아다닙니다. 마음의 눈과 몸의 눈이 하나되어 움직입니다. 또 사랑의 코를 가지면 평소에 싫어하던 냄새까지 좋아지게 됩니다. 사랑의 입을 가지면 평소에 싫어하던 맛까지도 좋아지게 됩니다. 밤을 새우면서까지 사랑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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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대상은 만지면 만질수록 더 만지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춘기가 되어 사랑의 감정에 휩싸일 때는 눈이 이상해지고, 모든 것을 좋게 보려고 합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사랑의 총을 쏘면 사랑이라는 탄알이 상대의 심장에 박히게 되는 것입니다. 남자의 그런 사랑, 여자의 그런 사랑을 원하는 사람은 손들어 보십시오. 사랑은 소화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맛있게 먹을 수 있고, 모든 것을 다 소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진실한 사랑을 가졌다면 아무리 추남이라 할지라도 미남으로 보이게 됩니다. 사랑은 놀라운 것입니다. 그래서 잘났든 못났든 사춘기 시절에 맺은 첫사랑을 남자든 여자든 영원히 잊지 못합니다. 죽기 살기로 좋아하는 애인이 있는 여자가 부모의 반대로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갔다면 그 여자는 일생동안 행복하겠어요, 불행하겠어요?
그 여자는 자기가 처음 사랑을 했던 남자가 설령 코가 찌그러지고 눈이 못생겼다 하더라도 꽃과 같이 좋아 보이는 것입니다.
부모가 정해 준 남자는 외모로 보나 학벌로 보나 천 사람이면 천 사람이 다 좋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고, 옛날에 마음속으로 속삭이며 사랑하던 남자는 지지리도 못났는데도 불구하고 그 첫사랑의 남자가 좋은 것입니다.
첫사랑은 몽땅 점령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주체가 누구냐? 하나님입니다. 사랑의 주체가 하나님이기 때문에 사랑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원래 첫사랑은 하나님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타락입니다.
해와가 누구하고 사랑했습니까? 천사장하고 했습니다. 그런데 좋아하면서 사랑해야 하는데 얼굴을 찡그리고 울면서 사랑했다는 겁니다.
여러분, 타락할 때 해와가 '아이구 좋아라! 선악과를 따 먹으니 참 맛있다, 맛있어' 했겠습니까? 해와가 천사장한테 겁탈을 당할 때, 그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양심의 가책을 받고 싫어하면서 천사장의 유혹에 끌려들어갔다는 것입니다. 모든 세포가 기뻐 가지고 꽃이 상춘을 바라듯 사랑해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세포가 사그라지고 심정이 사그라진 자리에서 찡그리고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만일 타락하지 않았다면 첫사랑을 누구하고 했겠어요? 첫사랑을 하나님과 했을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한 첫사랑에는 첫사랑이 전부 다 응어리져 있는 것입니다. 첫사랑을 중심삼은 부모의 사랑, 첫사랑을 중심삼은 부부의 사랑, 첫사랑을 중심삼은 자녀의 사랑,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과 뿌리가 딱 붙어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같이 몇 천 년의 역사적인 거리를 두고 개인복귀니 가정복귀니 하는 단계를 거쳐야 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한꺼번에 왕창 달라붙는 사랑입니다.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이 한꺼번에 다 달라붙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성약Ⅰ-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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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결혼의 적기-사랑은 어느 때부터 연결되는가
전지 전능한 하나님은 인간에게 있어서 화려하게 꽃필 수 있는 시간을 만드셨으니, 그 시기가 청춘시대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청춘시대를 중심하고 자신의 행복을 가꾸어 나가도록 지으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존재하는 동일이상적 인간 세계에 있어 남녀가 화려한 청춘시기에 행복해질 수 있는 관문으로 결혼이라는 축복을 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상대적 이상을 거치지 않으면 존재가치가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있어서 성장한 후에 축복을 받아 결혼을 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섭리인 것입니다. (성약Ⅰ-371)
사랑은 어느 때부터 연결되느냐? 사랑의 힘은 언제부터 밀어 주느냐? 남녀도 사춘기를 맞아 모든 기관이 백 퍼센트 완성권에 도달하게 될 때 정지 상태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포화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운동이라는 것은 반드시 포화선을 거칩니다. 그러한 후에 정지하던가 더 돌던가 하게 됩니다. 그런 포화 상태에 들어가 가지고 정지합니다. 그러면 포화상태로 들어가기 전단계가 뭐냐 하면 사춘기입니다. 사춘기라고 하는 것은 내 육체 발육에 있어서 모든 기관이 왕성한 시기를 말합니다. 기구로 말하면 공기가 없어 찌부러진 상태에서 공기를 집어넣어 팽팽하게 돼 가지고 터지기 직전에 간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조금만 더 들어가면 터집니다.
그 터지는 것이 뭐냐? 그것이 사랑이 완성돼 가지고 터지는 것이면 얼마나 좋겠어요? 마찬가지로 사람도 18세 쯤 되면 고무풍선같이 팽팽해집니다. 그래서 터지기 직전 입장에 가서 거기에서 멋지게 영원히 굴러갈 수 있습니다.
영육이 완전한 일체를 이룰 때는 본연의 사랑이 우리들 가운데 찾아올 때입니다. 타락한 세계에서 인간들의 경우도 사춘기 때란 영과 육체의 세포가 화합하는, 평형선상에서 설 수 있는 시기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춘기 때의 영과 육체의 세포들은 모든 문을 열고 반겨 맞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한 사춘기 때는 인간 세상을 바라보는 데 있어 기쁨과 행복만이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하게 되면 행복해지고, 사랑에 취해서 느끼는 감정은 진짜 요지경이라고 해서 빨리 경험해 보겠다고 달려든다면 그것은 큰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의 문은 때가 되어야 열리는 것이고, 문이 열리는 때를 기다려 들어가야 합니다. 자신이 사랑의 주인이 되었다고 했을 때 당당하게 열어야 하는 것입니다.
결혼 적령기가 언제쯤이라고 보십니까? 마음과 몸이 가장 왕성한 힘을 가질 때가 결혼할 수 있는 최적기라 하겠습니다. 청년기를 넘어서면 점차 기운이 쇠퇴해지기 때문에 아무리 순정을 지녔다고 해도 상대자를 구하기가 힘들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약Ⅰ-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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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완성한 사람, 즉 완성한 남자와 여자가 있게 되는 자리는 어떠한 자리냐? 하늘의 공적인 뜻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고, 마음과 몸이 완전히 하나되어 하나님을 주체로 모실 수 있는 자리입니다.
이런 자리에 있게 될 때, 완성된 아담과 해와의 입장에 서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이 가정을 이루어 출발하는 것이 역사적인 출발인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적인 인생행로의 첫출발이라는 것입니다. (성약Ⅰ-378)
8) 몸과 마음이 일치된 사랑
여러분, 3점 알아요? 3점. 이 3점이 하나될 수 있는 점은 하나님과 아담과 해와가 하나될 수 있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와 하나될 수 있는 자리는 그들의 마음과 몸이 일치하는 자리입니다.
남자는 마음과 몸이 주체와 대상의 관계로 이루어졌는데, 마음과 몸은 종과 횡의 작용을 계속함으로써 존재의 힘을 발생시킵니다.
여자 역시 마음과 몸이 종과 횡의 관계를 이루고 있어서 존재의 힘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남자나 여자 모두 종과 횡의 상대적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그 힘은 사랑인 것입니다. 사랑만이 마음과 몸의 이상적 관계를 영원히 이룰 수가 있습니다.
가난한 촌부로서 시골에서 김을 매고 농사를 짓는 자리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 촌부에게 마음과 몸에 부풀어 오르는 사랑의 정열이 타오르게 된다면 마음의 오관(五官)과 육(肉)의 오관이 완전히 합해져서 더 없는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에게 임할 수 있는 안착점을 여러분이 가지고 있다면, 시계추의 진동처럼 하나님의 가슴이 한 번 출렁하면 여러분 가슴이 한 번 출렁, 그래서 여러분과 하나님이 함께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한 번 돌기 시작하면 자꾸 돌아갑니다. 갈수록 가중된 힘, 원심력이 작용해서 가정을 사랑하라, 사회를 사랑하라, 국가를 사랑하라, 세계를 사랑하라 하고 요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몸과 마음이 하나된 가운데 사랑의 문이 열릴 수 있는 때가 가까워지면, 여러분 자신의 마음이 우주에 공명되어서 소설가나 시인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주제로 시나 소설을 쓸 수 있는 것은 사랑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엮어가는 자질을 발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사랑의 눈을 뜨게 되면, 자신의 몸과 마음은 우주 속에서 입체적인 관계를 맺고 싶어집니다.
그리하여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미소를 짓게 되며, 봄동산에 피어나는 꽃 속에 아름다움을 겨루어 보고 싶어 한 송이의 꽃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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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나 여자가 왜 사랑을 좋아하느냐? 인간의 몸뚱이는 수백조 개나 되는 세포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세포들이 언제 전체가 작동을 하느냐 하면 사랑을 할 때인 것입니다. 인체의 모든 세포를 움직일 수 있는 때가 바로 남녀가 사랑을 하는 때임을 알아야 합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돼 가지고 그리워하는 눈물을 흘리게 되면 뼈가 울어댑니다.
동물의 경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암소가 발정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먹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맙니다. 그때는 모든 신경이 그것 하나만을 원하게 만듭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몸과 마음이 하나된 자리에서 사랑하고 서로 그리워하게 되면 몸 속에 움직이지 않는 세포가 없습니다.
세포 일체가 본래의 방향감각을 잃어버리고 하나로 집중됩니다. 이렇게 해서 상대를 만나게 되면 폭발하게 됩니다. 그 폭발하는 힘은 엄청난 힘이 됩니다.
그렇게 사랑해서 뭐 하자는 거냐? 하나님을 닮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에 동참할 수 있는 자리에 나서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을 같이 느끼자는 것입니다. (성약Ⅰ-3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