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하나님 (천성경 제1권)

훈독왕 | 20170626164052


제1권 참하나님


제 1 장  하나님의 본체


 1) 하나님은 무형의 주체시다


  ① 무형으로 계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어떠한 형체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크다고 하면 무한대요, 작다고 하면 무한히 작은 분이십니다. (10-13)

하나님은 과연 계시는가? 누가 꼬집어서 ‘아야'하고 소리치는 것보다도, 배가 고파 밥을 먹는 것보다 더 사실적으로 느낄 수 있는 하나님이 있느냐? 문제는 거기에 있습니다. 진짜 하나님이 계시다고 할 때, 문제는 다 해결됩니다.
인간에게는 마음이 있습니다. 마음은 보이지 않아 없는 것 같지만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 머리에 있느냐, 심장 가운데에 있느냐? 마음은 내 몸 어디에나 있습니다. 내 몸 가운데 없는 데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도 이 세계가 하나님의 몸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이 세계 어디에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볼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힘이 보여요? 하나님은 에너지의 본체이기 때문에 영계에 가서도 볼 수 없습니다. (105-175)


지혜로운 하나님,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신 하나님은 중앙에서 마음대로 거동할 수 있는 무형적인 존재로 계시면서 주관하는 것이 제일 편리하겠다고 생각하신 겁니다. 하나님은 무형이니만큼 존재세계를 마음대로 뚫고 오더라도 조금도 지장이 없습니다. 여러분, 몸뚱이로 하나님이 와서 마음대로 지나가더라도 여러분은 모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꾸벅꾸벅 졸고 있는 여러분들의 몸뚱이를 마음대로 밟고 지나가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편리합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은 생각 끝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으로 계시는 것이 제일 편리할 것이다 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됐다 하는 논리는 가당한 논리입니다. (138-141)


우리는 공기가 통하는 것을 모릅니다. 공기가 통하고 있지만 그걸 못 느낍니다. 공기가 통하는 것도 못 느끼는데 하나님이 통하는 것을 알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형의 신으로 계시는 것이 최고의 편리한 방법입니다. 그러면서 이 큰 우주를 보자기로 싸고도 남을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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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하나님이 아니면 안 됩니다. 무형의 하나님이지만 하나님의 마음은 이 우주보다 더 큰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138-167)


여러분! 사랑 가지고 있어요? 생명 가지고 있어요? 여러분의 혈통을 이을 수 있는 정자나 난자 다 가지고 있지요? 양심도 가지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사랑을 본 적이 있어요? 생명, 혈통, 양심을 봤어요? 그 존재의 현상은 알지만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직 마음으로 느껴서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같은 논리로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할 때, 또는 하나님을 봤느냐 못 봤느냐 물을 때, 못 봤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음 속에 하나님이 들어와 계시면 마음이 압니다. 하나님이 마음 속에 들어오면 바람벽도 뚫어볼 수 있고, 가만히 앉아 몇천 년 전에 죽은 성인들을 운행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마음 속에 들어오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영원을 시간으로는 포착할 수 없지만 영원 안에 시간이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안 보여도 마음은 압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사랑하느냐 할 때 답변하기 곤란하지요? 하나님은 무형의 신이기 때문에 어디든지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씨의 눈 속에도 들어가고, 심장 속에도 들어가고…. 어디든지 안 가는 데 없이 다 통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디서 사느냐? 집이 어디냐? 하나님이 사는 집은 우리 마음의 한복판입니다. 남자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남성적 심정이 머무르고, 여자의 마음에는 여성적 심정이 들어가 산다는 것입니다. (128-317)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온 천하를 요리하시는 하나님이 여기 있다고 합시다. 힘으로 말하자면 태백산도 날려 버리고 지구성도 구멍을 낼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인데, 그러한 하나님을 여러분의 눈으로 보면서 살라고 한다면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나님이 안 보이길 잘했다는 것입니다. 보이면 여러분은 신경쇠약에 걸려서 한 시간도 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안 보이는 것을 고맙게 생각해야 됩니다. 이건 웃을 얘기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한 얘기는 내가 그러한 문제를 중심삼고 심각하게 겪었던 경험담입니다. 남의 말을 한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까지 더듬어 나온 경력 보고와 같은 이야기입니다. (38-222)


만일 이 세계에 공기가 한 되밖에 남아 있지 않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하나님이 짖궂은 분이라면 세계 통일은 문제없습니다. 아마 5분 이내에 통일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공기를 몽땅 끌어 가면서 ‘너희들 통일 할 거야, 안 할 거야?' 하게 되면 세계 인류가 합창으로 ‘통일하겠습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일시에 통일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이 공기 가지고 그렇게 안 하시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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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고마운 일입니다. 공기가 없으면 우리는 살 수 없습니다. 이렇게 공기는 생명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입니다. 그런데 공기에 대해 고맙다는 생각도 하지 않고 도둑놈같이 먹어치우고 있습니다.
천주의 대주재 되시는 하나님이 인간의 눈에 보이게 된다면 하나님을 서로 빼앗겠다는 싸움을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이 싸움을 막을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 보이기를 잘한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보였다면 미국과 소련이 서로 자기 하나님이라고 싸우겠어요, 안 싸우겠어요? 싸운다는 것입니다. 그 싸움을 누가 말릴 수 있겠어요? 하나님은 전지하사, 이런 싸움이 있을까봐 무형으로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이기를 바라는 것은 망령된 행위입니다. 안 보이기를 잘했다는 것입니다. (41-260)


이 우주는 신비에 싸여 있습니다. 그 크기가 210억 광년이나 되는 대우주입니다. 1광년은 빛이 1년 동안 가는 거리를 말합니다. 1초 동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이나 돌 수 있는 빛인데, 이 빛이 1년 동안 나아가는 것이 1광년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큰 우주를 지배할 수 있는 주인은 얼마나 크겠느냐? 키가 크다면 얼마나 크겠느냐? 하나님이 그렇게 크다면 하나님 자신이 거추장스러운 몸을 끌고 다닐 수 있겠느냐? 철커덕 철커덕 다닌다면 얼마나 불편하겠느냐? 한번 움직이면 우주가 전부 놀라 자빠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혜로운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주인이 되자.'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138-16)


하나님이 얼마나 무거울까요? 그걸 생각해 봤어요? 하나님이 얼마나 무거워요? 근수로 달면 몇 근이나 될까요? 몇 억만 톤이 될까요? 무겁다면 그 몸으로 다니려면 큰일이지만 하나님은 무형이시기 때문에 이상적입니다. 지갑에 넣고 다녀도 무게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또 무형이기 때문에 아무리 좁은 바늘귀로도 오갈 수 있습니다. 마음대로 운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크다 하면 크고 작다면 무한히 작기도 하여 이 우주 어디든 마음대로 운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36-101)


제일 귀한 물건이 있다면 언제든지 가지고 다니면서 한시도 그 물건과 떨어지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최고 보물이라 할 수 있는 하나님을 갖고 있다면, 그분을 어디에 모시고 싶어하느냐? 안전하게 모실 수 있는 창고가 있다면 어디일 것이냐? 그 창고는 바로 우리 마음입니다. 인간의 마음이 하나님을 안전하게 모실 수 있는 창고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형이기 때문에 유형의 존재를 자기보다도 중요시해야 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래야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또, 사람은 자기 몸뚱이보다도 보이지 않는 마음과 하나님을 더 중요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1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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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본래는 자연히 알게 되어 있었다


인류가 타락하지 않고 본성의 선한 부모를 통해 태어났던들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논란은 필요치 않았을 것입니다. 나면서부터 자연히 안다는 것입니다. 아기가 뱃속에서부터 젖먹는 법을 배워 가지고 나옵니까? 나오자마자 눈앞에 젖이 있으면 빨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자동적으로 알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인류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자동적으로 알고, 자동적으로 해결하고, 자동적으로 가야 할 입장인 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전부 다 망각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를 의심하는 결과의 세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참한 사실입니다. (20-306)

사람은 이 우주의 피조만물 가운데에서 걸작품입니다. 얼마나 걸작품이냐 하면, 여러분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고도 멋진 걸작품입니다. 그러면 절대적인 하나님이 계셔 가지고 사람을 만들었다면, 하나님 자신이 말하는 것, 보는 것, 느끼는 것을 사람이 모르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 (53-51)


하나님을 닮은 아담과 해와가 인류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었다면, 그 모습을 통해 언제나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인지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면 하나님에 대해 의심을 가질 수가 없게 됩니다.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언제나 볼 수 있고, 부르면 곧 나타나도록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와 같은 기준이 된다면 누가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인하겠습니까? 부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있다, 하나님이 있다.'하는 것은 말뿐이 아닙니다. 원리를 통해 주체와 대상 관계를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은 불가피하게 있어야 된다는 입장이 아니라 하나님은 내가 생각하기 전에 있었던 분이요, 내 모든 감각, 나의 일체를 주관하는 분이다 하는 입장이어야 합니다.
그것을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알고 인식하는 것이 원칙이 아니라 인식하고 아는 것이 원칙입니다.
우리가 추우면 춥다 하는 것을 알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추운 것을 느껴 가지고 알지 않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신이 계시다면 신이 계신 것을 여러분이 느껴야 되겠습니다. 세포로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 경지가 문제입니다. 다시 말하면, 체휼적 입장을 어떻게 우리가 확정짓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58-291)


여러분이 자다가도 ‘아버지!' 할 수 있고, 혼자말로도 ‘아버지!' 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밥먹는 것을 잊어버리고 잠자는 것을 잊어버리면서 그 생활 이면에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아버지!' 하게 되면, 아버지 손이 잡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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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같은 사실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아버지!'하면 아버지 품에 안깁니다.
이러한 표현적 권에서 체휼적 감정을 어떻게 체득하느냐 하는 것은 신앙생활에서 무엇보다도 귀하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한 체휼의 감도, 느끼는 그 도수, 그 양의 여하가 그 사람의 신앙기준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랑의 심정을 가졌다면 어디에 옮겨 가서 ‘내가 이것을 해야 된다.' 하게 될 때는, ‘하늘이여, 같이해 주시옵소서.'하기 전에 벌써 하나님은 같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여러분이 느끼게 될 때는 ‘고마우신 하나님' 하게 되는 것입니다. (58-299)


통일교회 원리는 하나님을 무형의 절대적 주체로, 이성성상(二性性相)의 중화적 주체로 계시는 분이라고 합니다. 이성성상으로 계시는 하나님 자신의 분성적 실체(分性的實體)로 아담과 해와를 만들어 놓고, 이들이 장성하여 사랑을 중심삼고 횡적으로 연결될 때, 종적인 입장에서 중심이 되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건 무슨 말이냐 하면, 아담과 해와가 성숙하게 되면 하나님의 남성 성품은 아담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여성 성품은 해와의 마음 속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갈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이성성상의 주체로 계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아담과 해와의 마음 속에 임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38-240)


하나님은 이성성상의 중화적 존재라고 말하지요? 중화적 입장에서 사랑을 중심삼은 통일적 존재라는 것은 아직까지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사랑을 중심삼고 통일적 존재라는 그것을 첨부해야 됩니다. (223-249)


 2) 무형의 하나님은 체가 필요하다


  ① 체를 쓰기 위해 아담 해와 창조


하나님은 어째서 아담과 같은 형(形)을 필요로 하는가. 만물은 형상적인 꼴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은 무형의 존재이십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형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크다고 하면 무한대(無限大)요, 작다고 하면 무한히 작은 분이십니다. 그런 분의 어떤 표준적인 형을 형성하고 형체를 나타낸다 하여도 실체를 가진 만물은 그 하나님에게 직접 주관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실체를 가진 피조세계에 는 실체를 가진 주인적 인격과 형을 갖춘 존재가 있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지상 만물의 주관뿐만 아니라 무한한 영계도 주관하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천사장이나 여러 형체를 가진 실체, 그리고 무형의 실체까지도 주관하려면 그 중심적인 타입, 곧 형상(形狀)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35-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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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을 중심으로 영육 양면의 세계, 무형실체세계(無形實體世界)와 유형실체세계(有形實體世界)를 주관하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인간 창조목적입니다. 따라서 하나의 인격적인 실체와 관계를 맺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아담 완성과 더불어 하나님의 형상 완성, 곧 형(形)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지으실 때 그의 형태, 인상(人相), 인격 등이 무형세계의 중심에 계시는 하나님과 같은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아담을 만들었습니다. 형(形)이 없으면 형(形)의 세계를 주관할 수 없는 것입니다. (35-158)


하나님이 왜 아담과 해와를 지었느냐? 하나님은 무형으로 계신 분이기 때문에, 실체의 형상을 가진 아버지 어머니가 안 돼 가지고는 형상의 자녀를 사랑할 수 없기 때문에 체(體)를 입기 위한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의 창조목적은 첫째, 아담이 몸으로써 무형의 하나님이 체를 입는 것이고, 둘째는 체를 입음으로 말미암아 진동적인 충격이 옵니다. 말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충동적인 자극에 기쁨을 느끼는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은 중심축을 가진 수직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면적이 없습니다. 면을 찾자는 것입니다. (232-183)


영계에 가도 하나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안 보입니다. 힘이 보여요? 하나님은 에너지의 본체이기 때문에 영계에 가서도 볼 수 없습니다. 체(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체세계를 지도하고 주관하기 위해서는 실체를 써야 됩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이냐? 아담이 타락하지 않고 완성되어 지상에 살다가 천상에 가면 아담 형상을 입은 하나님이 됩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보이는 아담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담이 ‘하하하' 웃는 것은 하나님이 ‘하하하' 웃는 것이고, 그것은 곧 우주가 ‘하하하' 웃는 것이 됩니다. (105-175)


무형의 신으로 계시는 하나님으로는 이 우주를 상대로 자극을 못 느낍니다. 마음 자체만 가지고는, 아무리 자극을 해도 무형만으로는 감동이 없습니다. 같은 것이니까, 같아서 자극이 안 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서로 상충된 것, 더운 물과 찬물이 합하면 폭발하지요? 그런 자극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141-9)


하나님은 영계에서도 무형입니다. 모형이 없습니다. 그래서 모양을 가진 인간의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모양을 갖지 않으면 중심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222-328)


하나님의 최후의 창조목적은 체(體)를 쓰는 것입니다. 실체세계를 주관하기 위해서는 무형의 하나님으로서는 안 되기 때문에 만민의 아버지로서 어머니로서 체를 쓰고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감각기관을 가지고 자극을 느낄 수 있는 주체와 대상으로 서기 위해서는 체를 입어야 됩니다. (25-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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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세계를 지으신 하나님이 무형이 되어 가지고는 실체세계를 지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체가 필요합니다. 창조하신 목적이 하나님도 실체를 씀으로써 실체의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그 실체가 아담과 해와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완성했더라면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의 마음 자리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중심한 왕권을 이루는 것입니다. 왕권이 성립됨과 더불어 부모권이 성립되는 것이요, 부모권과 더불어 본연의 아담은 장자권이 됩니다. 오늘날의 차자권이 필요없습니다. 아담 자체가 장자 중의 장자이고, 해와도 장녀 중의 장녀입니다. 그렇게 되면 두 아들딸은 인류의 부모 중의 부모가 됩니다. 부모인 동시에 영원한 세계의 왕이 되는 것입니다. (214-7)


왜 하나님이 사람으로 하여금 체를 가지게 했느냐? 체 없는 하나님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혼자 있으면 좋을 텐데, 체를 왜 지어 가지고 문제가 되게 만들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은 무형의 신입니다. 무형의 하나님이 체를 입은 인간 조상이 될 수는 없습니다. 체를 입고 오는 아들딸을 대하려니까 체를 입은 하나님의 자리에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의 몸이 하나님의 몸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담의 마음과 같은 자리보다 한층 더 차원이 높은 세계의 단계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223-128)


하나님은 무형이어서 형체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형체를 입고 나타나야 합니다, 또 형체를 가진 인간과 만물을 주관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의 형체를 입고 나타나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아담과 해와와 하나님이 일체가 되기 때문에 아담과 해와의 마음과 같은 분이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의 마음의 자리에 하나님이 임재해 가지고 하나되었기 때문에 결국은 아담의 내적인 주인, 내적인 아담과 같은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90-187)


왜 사람을 창조했느냐? 이 우주는 실체가 있으니 실체 주인인 아담과 해와를 중심삼고 관리 주도할 수 있는 입장에 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영계에서 무형으로 계시기 때문에 지배할 수 없으니 실체의 탈을 쓰고 실체의 몸을 씀으로 말미암아 저나라에서, 지구성에서 생산되어 오는 자기 아들딸 되는 후손들을 실체를 가지고 지배할 수 있는 왕이 되기 위해 사람을 지은 것입니다.
그 왕의 얼굴이 아담의 얼굴입니다. 왕을 만들었으니 왕후가 필요합니다. 왕후가 누구예요? 해와가 왕후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는 지상의 조상인 동시에 천상세계의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199-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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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아담은 종지조상, 유형의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첫째, 체(體)를 입기 위해 아담과 해와를 창조하셨고, 둘째로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창조하셨습니다. 이러한 아담과 해와가 완성하여 둘이 하나될 수 있는 사랑의 실체가 되면 하나님이 임재하여 인류 앞에 사랑의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형상적 실체부모가 된 아담과 해와가 실체의 자녀를 번식함으로써 이상세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을 통해 영계와 지상세계가 연결되기 때문에 영계와 지상세계를 연결시키기 위한 목적으로도 인간을 지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랑을 중심삼고 아담과 해와에게 임재하심으로써 인류의 참된 부모, 실체의 부모로 계시다가 아담과 해와가 저나라에 가면 영계에서도 아담과 해와의 형상으로 체를 쓰시고 부모의 자리에 현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실체를 쓴 하나님의 몸으로 만든 아담이 인간의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담은 실체의 하나님입니다. 무형의 하나님이 실체의 세계를 주관하기 위해서는, 실체의 몸뚱이가 있어야만 보고 듣고 하겠기에, 하나님의 실체로 지은 이가 아담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해와는 누구냐? 해와는 아담의 아내입니다. 실체의 아내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이 실체를 쓴 하나님이라면 해와는 실체를 쓴 하나님의 아내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이 아내를 얻는다니 기가 막히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아담은 실체를 쓴 하나님의 몸뚱이요, 해와는 실체를 쓴 하나님의 아내로 창조되었던 것입니다. (22-236)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를 필요로 하는 데는 두 가지의 목적이 있습니다. 첫째는 사랑의 이상을 성사하자는 것입니다. 둘째는 무형의 하나님이 형상을 쓰고 나타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형의 하나님이 유형의 형상을 쓰고 유형세계와 관계맺을 수 있는 기초, 그 핵심이 아담과 해와라는 것입니다. (92-145)


하늘나라에 무형의 하나님이 혼자 있어 가지고 뭘합니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 가지고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인간의 부모가 되려면 체를 갖고 느낄 수 있어야 됩니다. 이런 인간과 같은 체를 입어야 되겠기 때문에, 체를 입으려니 부득이 아담과 해와를 이중적 존재로 짓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33-86)


체(體)를 가진 아버지가 됨으로써 보이지 않는 무형과 유형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주가 하나되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그런 체를 갖출 수 있는 모습으로 아담과 해와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담과 해와를 하늘나라의 왕궁에, 왕좌에 오르게 하여, 그 왕과 왕후의 마음 속에 하나님이 계셔서 지상세계와 무형세계를 통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왕국을 만드는 것입니다. 왕국은 사랑의 왕국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만이 영과 육이 합하게 되어 있지 다른 것 가지고는 합할 수 없습니다. (143-74)


해와는 미래에 있어서 하나님의 왕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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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녀인 동시에 장래 하나님의 상대였습니다. 해와를 사랑의 상대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부인이 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사랑을 나눠 주기 위해서는 몸이 필요합니다. 체가 필요한 것입니다. 저나라에 가보면 하나님은 무형입니다. 공중에서 태양 같은 빛이 24시간 언제나 떠 있습니다. 공중에서 하나님이 전부 무형으로 관리하는 것입니다. 그 무형의 하나님이 실체를 가진 인간의 사랑의 대상으로는 허무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형의 하나님이 사랑이상의 절대 작품이요, 파트너로서 체를 가진 아담과 해와를 지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의 모양이냐 하면 아담과 해와의 모양입니다. 하나는 내적인 아버지요, 하나는 외적인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는 내적인 부모요, 하나는 외적인 부모라는 것입니다. (199-294)


하나님은 사랑을 같이하기 위해 천지를 창조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를 무형의 하나님이 영원한 사랑의 실체로 등장시키는 것입니다. 사랑의 중심 실체로 등장시키는 것이 인류의 선한 참조상, 참부모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참부모를 못 가졌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통일교회에는 참부모의 교리가 있습니다. (38-139)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를 왜 만들었느냐? 무형의 신 가지고는 이 실체세계를 주관하지 못 합니다. 무형의 신 가지고는, 보이지 않는 신 가지고는 이 보이는 세계, 창조물, 우주세계를 지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랑을 중심삼고 체(體)를 입어야 됩니다. 그래서 창조를 한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체를 입으면 내적 외적 자극이 벌어집니다. 자극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166-202)


무형의 하나님은 실체가 없으니 그 형체를 대신한 것이 참부모입니다.
참부모는 개인적인 부모요, 가정적인 부모요, 종족적인 부모요, 민족적인 부모요, 국가적인 부모요, 영계에 가서도 앞으로 참부모의 형상으로 하나님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위대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레버런 문이 위대한 것이 뭐냐 하면, 레버런 문의 형상을 하나님이 쓰겠다는 것입니다. (98-196)


하나님은 무형의 하나님입니다. 무형의 하나님이 유형의 하나님으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유형의 하나님이 뭐예요? 타락하지 않은, 우리가 말하는 참부모입니다. (201-83)


궁극적으로 하나님은 영적이고 무형이시기 때문에, 인간은 직접 하나님으로부터 가르침과 중생의 체험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중심인물을 세워 인간이 그를 통해 가르침을 받고 중생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분이 바로 유형, 무형의 참부모입니다. (9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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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아담과 해와를 만든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우리 인간의 형상을 보면 체(體)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무형의 하나님은 체가 없습니다. 체를 입지 않고는, 체를 갖지 않고는 영계나 지상세계를 치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계시더라도 하나님이 인간의 부모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체를 입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 체를 입은 대표가 누구냐 하면 아담과 해와입니다. 타락하지 않은 아담과 해와의 체를 입고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과 해와는 인류의 시조인 동시에 천지를 주재하는 하나님입니다. 실체를 가진 하나님, 즉 영원한 무형세계의 하나님의 형상을 대신 입고 나타난 자리에서, 부모의 자리에서 세계를 통치할 책임이 아담과 해와에게 있었다는 것입니다. (133-86)


하나님은 하나님과 인간이 주체와 대상으로서 종적인 사랑의 관계를 완성하는 것만을 목표로 하시지는 않았습니다. 종적인 사랑을 완성하여 아담과 해와의 횡적 사랑의 결실을 가져오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 순간이 바로 내적 부모이신 하나님이 외적 부모인 아담과 해와와 완전 일체를 이루기 위해 임재하시는 사랑이상 성취의 순간입니다. 무형의 부모이신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의 형상을 쓰고 유형세계에 영존하시는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이때 아담과 해와는 참부모, 참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135-9)



 3) 하나님은 인격적인 신


  ① 하나님은 지․정․의를 가진 인격신


오늘날 많은 기독교 신자들은 하나님은 유일무이하신 분이요, 절대적인 분이요, 창조주요, 지고지선한 자리에 계시기 때문에 피조 인간, 즉 피조물과 창조주는 관계를 가질 수 없다고 봅니다. 피조물은 속된 것이고, 창조주는 절대적이고 신성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개념을 중심삼고 볼 때, 아무리 지고지선하신 하나님이요, 아무리 저속한 피조물이라 할지라도 사랑의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인격적인 내용이 같아야 됩니다. 심정적 내용이 같아야 합니다. 인격을 갖춘 사람과 성품이 같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138-240)


하나님은 어떠한 신이냐? 인격적 신입니다. 지․정․의를 합한 내용을 갖춘 인격적 신입니다. 그런 인격적 신이 최고로 원하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에 그 사랑의 대상으로 우리 인간을 지었다는 것입니다.
이건 놀라운 사실입니다. (143-144)


하나님은 제일원인적인 존재인데 그가 인간을 어떻게 만들었겠느냐? 하나님같이 만들었다는 겁니다. 하나님같이 만드는 데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서 그 형상대로 만들었습니다. 그 말은 무엇이냐 하면 내가 아버지를 닮은 동시에 아버지는 누구를 닮았겠어요? 나를 닮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답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모색해 보게 될 때,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나 같은 분이다 하면 이건 쏙 들어오는 것입니다. (127-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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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누구를 닮았겠느냐.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것이 사랑이라면, 하나님이 사랑하는데 하나님 닮은 것과 사랑하겠어요, 하나님과 닮지 않은 동물과 사랑하겠어요? 하나님은 좋아할 수 있고,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상대적인 것을 필요로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그런 상대라면 인간을 중심삼고 볼 때 신은 인격적인 신이어야 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러면서 인간과는 모든 요소가 백 퍼센트 화합해야 됩니다. 몸과 마음의 소성에 있어 전부가 화합할 수 있는 신이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정의(知情意)를 가진 신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62-258)


하나님이 계신다면 인간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 하나님이 인간과 관계를 갖기 위해서는 인격적 신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인격적 신이 되려면 인간과 같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마음이 있고, 몸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런 소성이 있느니만큼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도 인간과 더불어 공동목적을 가질 수 있는 그 본체라면 인간을 닮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성성상이라는 개념은 거기서 나오는 것입니다. (167-243)


하나님은 사람같은 인격을 가졌을까요? 사람 같으면 하나님이 남성이겠어요, 여성이겠어요? 그러면 남성같이 달린 것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하나님은 무슨 성상이라고 그랬어요? 이성성상의 주체인데 오목 볼록이가 있겠어요, 없겠어요? 그걸 생각해 봤어요?
하나님이 웃겠어요, 안 웃겠어요? 하나님이 웃는 것을 봤어요? 하나님도 눈이 있겠어요, 코가 있겠어요, 입이 있겠어요, 귀가 있겠어요, 몸뚱이가 있겠어요?
기성교회 신자들 가만 보면 엉터립니다. 하나님이 눈이 있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눈 진짜 봤어 하면 모릅니다. 하나님이 누구 닮았어? 누구 닮긴 하나님 닮았지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대답이 어디 있어요. 하나님이 누구 닮았어요? 아들딸 닮았지요. 그래서 하나님은 인격적 신이어야 합니다. 인격적 신으로서 하나님이 나에게 인격적 최고의 기준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인격적 최고의 기준이 뭐예요? 그것은 돈도 아니고 권력도 아니고 사랑입니다. (182-47)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도 인격적 신이어야 됩니다. 사람과 같아야 합니다. 인격적 신이라는 것은 지․정․의(知情意)를 갖추어 감정이라든가 또는 뜻을 중심삼고 목표라든가, 그런 모든 것이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17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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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모르는 게 없습니다. 지식의 대왕이시고, 능력의 대왕이시며, 전지전능하시다는 것입니다. 또, 무소부재합니다. 안 계신 곳이 없습니다. 그분이 필요한 것이 뭐예요? 다이아몬드? 그건 언제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황금? 보석? 아닙니다. 하나님이 필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혼자서 ‘아이구, 나 사랑있어 좋다.'하며 ‘히히히' 그러겠어요? 하나님이 필요한 게 뭐냐? 하나님도 인격적 신이라 하면 입이 있겠지요? 코도 있고, 눈도 있고, 귀도 있고, 손발도 있고, 마음도 있고, 심정도 있을 것입니다. 인격적 신이라면 말입니다. (142-9)


하나님이 도대체 어떠한 분이냐? 전지전능하고, 뭐 무소부재해 가지고 그저 한마디면 세계를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그런 하나님을 우리는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우리 본심은 어떠한 하나님을 원하느냐? ‘사랑을 가지고 내 어머니 아버지 이상 되는 사랑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분이구나. 우리나라에 의로운 국왕이 있으면, 의로운 대통령이 있으면 그 국왕 이상, 그 대통령 이상 되는 분이구나.' 이런 분을 원합니다. 대통령은 4년마다 갈리기 때문에 얼룩덜룩하여 그거 뭐 존경할 것이 못 되지만 말입니다. (147-259)

오늘날 이 세계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이 계시다 할진대, 그 하나님은 지․정․의(知情意)를 갖춘 하나님이심에 틀림없습니다. 왜? 인간이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인륜을 중심삼은 지정의가 아니라 천륜을 중심삼은 지정의입니다. (9-272)


절대적인 하나님이 슬퍼할 수 있겠느냐, 없겠느냐?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슬픈 자리를 피할 수 있겠어요, 없겠어요? 그 슬픔을 상관할 수 있겠어요, 없겠어요? 이거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 같은 사람은 그거 그냥 못 넘어갑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슬픔이 없어야 된다 한다면, 그 하나님은 지․정․의를 가진, 희로애락의 감정을 가진 인간의 아버지가 될 수 없습니다. 논리적으로 모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보다도 더 많은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는 주체가 돼야 됩니다. (203-260)


하나님에 대해 바르게 증거하는 종교 단체는 없습니다. 불교나 유교, 모두 똑같습니다. 하나님이라고 하면, 벌써 어안이 벙벙해집니다. 그들은 인격적인 하나님, 지․정․의(知情意)를 겸비한 하나님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통일교회는 신인일체(神人一體)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게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227-112)


통일교회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잘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똑똑히 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정․의를 갖춘 인격적 신인 동시에 사랑의 주체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똑똑히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랑의 신은 천정(天情)이 중심이다 이겁니다.

천정의 중심자리는 왔다갔다 할 수 없습니다. (21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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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신인일체의 인격신을 요구한다

하나님도 지․정․의(知情意)를 가진 분이시니만큼 나름대로의 소원이 있고 사정이 있고 심정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이고 하나님의 심정이 무엇이고 하나님의 사정이 무엇이냐? 인간의 사정보다도 먼저 이것만 알면 됩니다. 이것만 알면, 자연스럽게 사람의 소원이 무엇인지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왜? 사람의 목적은 하나님이요, 하나님의 목적은 인간이기 때문에 맞먹습니다. 인간의 사정을 잘 알고 소원을 잘 알고 심정을 잘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소원, 하나님의 사정, 하나님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것입니다. (151-177)


사랑을 논하려면 인격적인 신이 아니고는 안 됩니다. 정서와 인격적으로 사람과 같은 소성을 가진 신이어야 되는데 그러한 신을 제시한 종교는 기독교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한 것은 위대한 발견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버지임을 발견했다는 사실은 지금 선생님이 말씀하는, 하나님을 내적 아버지와 외적 아버지로 보고 실체에 일치하는 사랑으로 통일적인 권한을 만들려고 하는 그 기준, 확실히 이 기준까지는 발견 못 했지만 그런 내용을 암암리에 해명할 수 있는 표제를 걸었다는 사실이 놀랍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일신(唯一神)을 논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종교는 세계적 종교요, 세계가 이 종교를 중심삼고 뭉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종교로 말미암아 세계가 하나될 수 있는 길을 세워 나간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139-230)


오늘날 수많은 도(道)가 있지만, 심정을 통과할 수 있는 하나의 도가 역사노정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도가 기필코 나타나야 됩니다. 만일 그것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안 계신 것입니다. 인간이 지켜야 할 사회적인 윤리와 도덕을 가르쳐 주는 도도 있고, 무한한 영계를 가르쳐 주는 도도 있지만, 윤리도덕과 무형세계에 대한 가르침을 통합하여 하나의 심정의 골자 위에 올려 놓는 종교가 있어야 됩니다. 그런 종교를 찾아보니 기독교였습니다. 기독교는 심정의 종교입니다.
인간은 타락함으로써 하나님을 잃어버렸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라는 것을 모르게 되었습니다. 실체를 갖춘 참부모를 잃어버렸는데, 기독교는 그 참부모를 소개해 줄 수 있는 종교입니다. (9-126)


철학의 최후의 종착점은 신을 발견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 신은 어떠한 신이냐? 절대적인 신, 불변의 신, 유일의 신입니다. 신을 발견하는 데 있어 그 신은 우리 인간에게 필요한 인격적 신이어야 됩니다.
우리 인간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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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인간이 생각하는 모든 안팎을 갖추고, 뜻을 갖추고, 이상을 갖춘 인격적 신이어야만 되겠다는 것입니다. 모든 면에서 통할 수 있는, 정서적인 면이나 뜻적인 면이나 혹은 지식적인 면에서 우리 인간과 통할 수 있는, 완전히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신이 아니고는 아무리 신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와는 완전히 상관을 지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인격적 신이 되어야 한다는 표제 밑에서 철학은 신을 숭상하지 않아왔다는 것입니다. (138-141)


하나님이 누구를 닮았어요? 아들딸 닮았습니다. 여러분이 누구예요?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격적 신입니다. 하나님이 두리뭉수리하면 되겠어요? 기독교가 놀라운 것은 인격, 사랑을 중심삼고, 지정의를 중심삼고 정서적인 인격적 신을 논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위대합니다. 그리고 유일신을 논했습니다. (177-232)


하나님이 인격적 신이라면 하나님에게 사랑이 필요하겠어요, 필요하지 않겠어요?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딸로 태어나 하나님을 대해 아버지라 하면, 아버지가 필요하듯이 나도 필요한 것이요, 내가 필요하듯이 아버지도 내가 필요한 것입니다. (184-192)


인격적인 신이 있다면 그 신을 중심삼고 무엇이 연결돼야 되느냐? 여러분, 하나님 하게 되면 높은 걸 말하잖아요? 거기에 내 몸뚱이가 연결되겠어요? 아닙니다. 마음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인격적인 신 되시는 제1 원인이신 존재 하나님을 중심삼고 인간이 수직과 같은 마음을 중심삼고 살아가는 것이고, 지구성이 태양계를 중심삼고 그 각도를 맞추고 축을 이뤄 공전하면서 하루 이틀, 365일을 도는 것과 마찬가지로 돌며 사는 것이다 이렇게 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194-147)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의 섭리를 통해 가지 않으면 세계가 미래의 희망을 남길 아무것도 없다고 하는 논리로서 결론을 짓게끔 되어있습니다.
여기에서 통일교회가 나와서 하나님이 있다고 하는 실존성과 지(知)․정(情)․의(意)의 완성 기준에 선 인격적 신을 인정하고 심정권을 중심으로 한 이상세계를 실현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처음으로 신과 인간의 관계를 확실히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213-212)



 4) 하나님은 아버지시다


  ① 하나님과 인간은 부자의 관계


하나님과 인간은 부자의 관계인데, 어떻게 해서 그런 관계가 맺어졌느냐? 신비스러운 경지에 들어가서 이 우주의 중심이 뭐냐고 묻게 되면, 부자지관계(父子之關係)라는 답을 얻게 됩니다. 우주의 중심이 뭐냐? 한마디로 부자의 관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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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의 중심과 우주의 근본은 무엇입니까 하고 하나님께 기도해 보면 아버지와 아들딸의 관계, 부자의 관계라고 합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육친의 아버지 어머니, 아들딸과의 관계인 줄 알겠지만, 하나님과의 근본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인간을 창조하셨는가 하면, 혼자 있으면 자극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쁨이란 상대 관계에 의해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혼자서는 기쁨의 자극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상대적 위치에 서면 비로소 최고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성상이 그대로 실체화됩니다. 하나님이 슬퍼지면 인간도 슬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제아무리 연구해 보아도 결론은 여기에 도달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부자의 관계라고 했는데, 부자의 관계가 가진 특정한 내용이 무엇이냐? 아버지와 아들이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장소는 사랑이 교차되는 그 중심, 생명이 교차되는 그 중심, 이상이 교차되는 그 중심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랑과 생명과 이상은 한 자리에 있습니다. 그 자리에 가면 하나님도 사랑이요 나도 사랑이요, 하나님도 생명이요 나도 생명이요, 하나님도 이상이요 나도 이상입니다. 그것을 결정할 수 있는 최초의 인연이 부자관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주게 될 때, 얼마만큼 주고 싶어 하겠느냐? 하나님의 사랑은 이만큼이면 됐다 하는 한계를 두고 주는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무한정으로 주고자하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몽땅 주고도 ‘너로 말미암아 네 안에 살고 싶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게 하는 본질이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하나님도 사랑 가운데 들어가서는 종살이를 해도 좋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들이 자신의 밥상 위에 올라가 똥을 싸도 그것을 바라보고 기쁨을 느낍니다. 사랑은 법을 초월합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인간에게 사랑을 주었다고 해서, ‘나는 완전히 다 주었는데 너희는 왜 안 주느냐? 이럴 수 있느냐?' 하지 않습니다. 절대적인 사랑을 가진 하나님은 아직까지도 주고 싶은 사랑을 다 못 주어 안타까워합니다. 자아를 주장할 수 없는 하나님입니다. 완전한 사랑을 주고자했던 것이 하나님의 인간 창조의 목적이라면, 하나님은 지금까지 완전한 사랑을 주지 못했으니 인간세계에 대해 사랑을 주고 싶어하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이기에 생각할수록 좋은 것입니다. ‘나는 다 줬으니 이제는 너희가 가져와라.'하는 하나님이라면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아버지요,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하나님의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 골수 중의 골수를 몽땅 투입하여 창조한 인간이기에 인간이 하나님을 끌면 끌려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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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사랑 때문에 창조했습니다. 사랑 때문에 창조했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보는 것이 더 좋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존재세계 앞에 나타날 때 사랑의 본질로 나타납니다.
자식은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의 실현체요 투입체입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생명의 연장체입니다. 또한 어머니 아버지의 이상의 구현체입니다. 자식은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과 생명과 이상의 기반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부모는 그 자식을 보면 볼수록 사랑스럽고, 보면 볼수록 생명이 약동하고, 보면 볼수록 이상적인 상대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은 절대적인 상대로서 사랑 관계를 중심으로 태어난 존재입니다. 그 자리가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고 우리는 아들딸이 되는 자리입니다. 만일 그 이상의 자리가 있다면 인간의 욕망은 또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할 것입니다. 인간의 욕망은 최고를 추구하기 때문에 그 이상의 것이 있다고 하면 우리 인간에게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응당 하나님은 인류의 아버지고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을 때 무가치하게 짓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가치하게 지었다면 하나님은 이상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분이기에 무엇이든지 다 압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모르고 지었다면 그 하나님은 불완전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분이기 때문에 우리 인간을 지을 때 절대적인 상대로 지었습니다.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지극히 선한 분이요, 모든 만물의 근본이 되는 분이요, 사랑의 주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한 후 온 우주의 귀한 모든 것을 인간에게 주고 싶어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참으로 믿을 수 있고, 사랑할 수 있고,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제일 귀한 것을 고스란히 넘겨주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면 아들딸을 짓는 데에 있어서 시시하게 만들고, 못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전지전능한 하나님과 같은 동등한 자리요, 동위(同位)의 자리에 설 수 있게 만드셨기 때문에 우리의 양심은 최고의 것을 희망하는 것입니다. (53-216)


하나님이 절대적인 분이시라면 그 절대적인 분이 왜 인간을 지었느냐? 돈 때문에 지은 것도 아니요, 지식 때문에 지은 것도 아니요, 권력 때문에 지은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기 때문에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은 아버지이고 인간은 아들딸이라는 것이 하나의 축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 축이 만일 연결됐더라면, 인간과 하나님이 사랑으로 일체된 관계를 그 어떤 것이 작용하더라도 절대 뗄 수 없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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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할 때 완전히 투입함으로써 보다 가치있고 이상적인 완전형으로 전개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를 지어놓고 그들을 위해 있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자기를 위하던 때에서 상대를 위하는 때로 전개되었습니다. 이상적인 존재는 자기를 위하지 않습니다. 이상적인 존재는 남을 위하는 데에, 대상을 위하는 데에 있습니다. 이 원칙이 우주의 근본입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훌륭하고, 아무리 절대자이고, 전지전능한 분이라 하더라도 혼자서는 좋을 수 없습니다. 행복이라는 명사, 혹은 좋다는 말은 혼자서는 성립되지 않는 말입니다. 반드시 상대적 관계를 갖춘 자리에 있어야 좋고 행복하다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혼자 있으면서 행복하다는 사람이 있느냐? 아무리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라도 혼자 있어서는 행복하지 않습니다. 노래를 잘 부르는 성악가가 아무도 없는데 혼자 노래를 불렀다고 합시다. 그래서 행복하겠느냐? 상대가 있어야 합니다. 주고받는 것이 있어야 좋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도 좋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완전히 투입해서 사랑의 대상을 창조했습니다. 그렇게 한 것은 하나님도 사랑의 대상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랑은 혼자서는 못 합니다. 아무리 절대자라도 그 절대자 앞에 사랑의 대상이 있어야 사랑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사랑의 대상으로 인간을 지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을 지을 때 아무렇게나 지은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말씀으로 지었다고 했는데, 아무렇게나가 아닙니다. 천신만고 끝에 자신의 1백 20퍼센트, 몇백 배를 투입해서 지었습니다.
기성교인들은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생각할 때,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니 말씀으로 지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술 부리듯 그렇게 지은 것이 아닙니다. 있는 지성을 다하고 자기 일신을 전부 투입해서 아들딸을 창조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사랑합니다. 우리도 정성을 안 들이고, 피와 살을 투입하지 않은 것은 사랑하지 않습니다. 내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 내 사상 중의 사상, 내 전체 중의 전체를 투입했기 때문에 희망의 대상으로 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의 이상적 출발점을 어디에 두었느냐?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위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너, 나한테 와서 달라붙어라' 하는 흡수가 아닙니다. 투입입니다. ‘달라붙어라'가 아니라 투입입니다. 그 말을 돌이켜 하면, ‘위해 존재하는 원칙'에 이상적 출발점을 두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을 위해 투입했습니다. 하나님 자신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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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나는 사랑이다.'라고 했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밤에도 좋아하고, 낮에도 좋아하고, 일하면서도 좋아하고, 쉬면서도 좋아하고 춤추면서도 좋아하고, 울면서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에게는 사랑이 있다. 몽땅 있다.'고 한 것입니다. ‘몽땅'이라는 말은 그 속에 전부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제일 좋아하는 분이 누구냐 하면 하나님입니다. 그런 사랑을 몽땅 가지고 있는 하나님이기에 그 사랑을 맛보면 죽더라도 놓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분으로서 아까울 것이 없고, 갖추지 못한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갖추고 있지만 그 전부의 가치보다도 귀하게 내세우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입니다. 사랑 이외에는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108-223)

창조이상 완성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그것은 하나님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창조이상 완성이기 때문에 창조물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창조물의 중심은 인간입니다. 때문에 인간의 완성이 없는 한 하나님의 완성은 있을 수 없습니다. 신인일체(神人一體)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신과 일치될 수 있는, 신의 뜻에 일치될 수 있는, 신의 뜻을 중심삼고는 과정적 뜻이 아니라 완성적 뜻의 중심의 핵과 일치될 수 있는 그게 무엇이냐? 그게 하나님의 전능성(全能性)이냐? 전능성가지고도 안됩니다. 전권(全權)이냐? 아닙니다. 그러면 무소부재한 소성이냐? 그것도 아닙니다. 그게 무엇이 돼야 되느냐? 하나님 자신도 살아 가지고 생활하는 것은 물론 영계가 있어서 시공의 관계를 초월한 자리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살아가는 데는 무엇을 중심삼고 살아가느냐? 무한한 힘이 있다, 무소부재하다, 전권적인 권한이 있다, 그게 아닙니다. 하나님도 사랑을 중심삼고 살아간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살아가는 데는 시작도 그렇고, 과정도 그렇고, 영원히 그럴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도 참된 사랑의 대상을 갖추게 되면 기쁘기 때문입니다. (126-219)


하나님은 절대적이요 전지전능하기 때문에 사랑을 그저 주고 주고 또 나누어 주더라도 자꾸 보충할 수 있는 사랑의 창고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창고에서 사랑을 많이 도적질해 가지고서, 밤이고 낮이고 자꾸 사랑을 빼다가 나눠주고 나눠주고 할 때 하나님이 ‘야 이 녀석아! 도둑놈, 사랑 도둑놈!'하며 처벌하겠어요? 전지전능한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래 해라, 해도 좋다. 얼마든지 해봐라. 네가 영원히 해봐라. 네가 들어오고도 남는다. 내가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다. 내가 그렇기 때문에 주체다!' 하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주체이기 때문에 객체에게 주고도 남아야 주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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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 객체 되는 사람에게 주고도 남아야 주체로서의 하나님이지,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못 된다. 내가 그렇다!'하시는 것입니다. ‘내게서 사랑을 도적질해다가 하나님의 사랑 발전소와 같이 자꾸 나누어 준다면 얼마든지 보급해 주겠다.' 그래서 ‘이거 전부 다 없어지면 내가 또 가져오고 싶은데 하나님의 사랑 파이프에 나를 연결하면 어때요?'할 때 ‘그것도 하려면 하라.'한다는 것입니다. (116-229)


  ② 하나님은 제일 가깝게 계신 분


진리 중의 최고의 진리가 무엇이냐? 그것은 부모요, 부부요, 자녀입니다. 그 이상은 없습니다. 그러면 진리의 중심은 뭐냐? 사랑입니다. 이러한 원칙을 중심삼고 볼 때, 최고의 진리의 중심은 무엇이냐? 하나님은 진리의 본체요, 선의 본체요, 사랑의 본체요, 생명의 본체라고 하는데 그것이 무슨 말입니까? 다 같은 말입니다. 진리가 성립되려면 사랑과 생명이 없이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핵심인 생명의 본체, 사랑의 본체, 진리의 본체는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우리 인간의 아버지인 동시에 어머니입니다. 핵심은 부모입니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은 간단한 분이 되십니다. (21-178)


하나님은 흰 수염이 났을 것입니다. 그게 어울립니다. 그 하나님이 수염을 쓱 만지는데 아들이 ‘나 긴 수염이 좋아요.'하게 되면 그 수염이 길어질 것이고, ‘짧은 수염이 좋아요.'하면 짧은 수염이 될 것입니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니까 하나님의 얼굴은 남자를 대할 때는 우락부락하게 보이고, 남성격을 좋아하는 아담에게는 남성같이 보이고 해와 같은 여자에게는 여성이 좋아할 수 있는 모습을 보이고 그랬을 것입니다. (110-276)


하나님은 천지창조 이전부터 있었겠어요, 없었겠어요? 그렇다면 하나님 나이가 몇 살일까요? 그래요. 70밖에 모르는 사람은 70이라고 해도 괜찮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허허, 나 70이다.' 그럽니다. 다섯밖에 모르는 사람이 ‘하나님 몇 살이오?' 하면 하나님도 ‘허허, 다섯 살이다.' 그런다는 것입니다. 그 이상 모르니까요.
수가 아무리 많더라도 그 수로 헤아림을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수 이상의 자리에 있습니다. 그거 기분 좋지요? 우리 하나님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173-239)

하나님도 농을 참 좋아합니다. 유머를 좋아합니다. 유머의 대왕님이 누구냐 하게 될 때, 그게 누구겠어요? 하나님입니다. 전지전능하니까 유머도 잘 하십니다. 웃을 때도 떼굴떼굴 구르며 웃고, 또 떼굴떼굴 구르며 웃고, 틀어지게 웃고 나동그라지게 웃게 만들 수 있는 대왕님이 누구시라구요? 하나님입니다. 그런 대왕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17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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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외적으로 남성을 닮았으면 내적으로는 여성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강하고 전지전능하기도 하지만, 석가모니의 웃는 웃음에 꽃을 수놓을 수 있는 자비의 마음도 있다는 것입니다. 여자 중의 여자 같은 마음도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양면이 다 사는 것입니다. (206-43)


하나님이 우주의 대주재이고 전지전능하셔서 갖지 않은 것이 없는 능력이 많으신 분이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사랑의 인연을 가지고 효자의 자리에 선 아들이 물어보지 않고 가슴을 쓱 헤친다고 해서 ‘에이! 야야! 너 언제 봤다고 그러는 거야?' 그러겠어요? 언제 봤느냐고 말하더라도 모른 척하고 자꾸 헤쳐 가지고 옛날에 자기 아버지 젖 만지듯이 이렇게…. ‘나 옛날에 우리 아버지 젖 만지듯이 만지고 싶어서 그래요.'하면 어떻게 하겠어요? 기분 나빠 하겠어요?
아버지가 참 행복해 할 것입니다. 점점 크면 자기 무릎 앞을 떠나 담 넘어가고, 강 건너가고, 산 넘어 가려고 하는데 넘어갔던 자식이 담을 넘고, 문턱을 넘고, 옷을 넘어 옛날같이 자기 젖 만지려 할 때, 아버지가 기분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곧 죽을 할아버지라도 ‘어서 만져라, 어서!' 기분이 좋아 가지고 그럴 것입니다. (169-45)


하나님은 창조주인데 보탤 게 어디 있고, 끌어당길 게 어디 있어요? 크려면 흡수해 가지고 끌어당기든가 누가 보태 주든가 해야 됩니다. 자기가 흡수하든가 제3의 존재가 갖다 보태 주든가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자체에 있어 붙일 것도 없고 끌어당길 것도 없는데 자체가 어떻게 클 수 있는 개념을 세우느냐 겁니다. 이거 중요한 문제입니다. 내가 그걸 얘기하면 여러분이 함부로 얘기해 가지고 곤란하겠기 때문에 얘기를 안 한 거지, 연구해 보세요. 숙제를 내 주니까 연구해 보라구요. 논문들 써 봐요, 내가 점수 매겨 줄게. (218-227)

본래 절대자 하나님은 어떻게 시작됐겠어요? 왕창 한꺼번에 후닥닥 뛰쳐나와 태어났겠어요? 그거 궁금하지 않아요? 그런 말 하면 기성교인들은 ‘우우-. 창조주는 성스러운 분인데 그 모독도 이만저만한 모독이 아니다.' 수작 그만두라구! 하나님이 생겨났겠나, 그냥 그대로 있었겠나? 궁금하지 않아? 그 문제를 대하려면 논리적 배경을 갖춰야 됩니다.
윤박사? 어떻게 생겨났겠어? 물리학 박사님이 그것 알아야 되잖아? 박사님이 그렇게 얼굴 가리면 창피하잖아? 통일교인도 할 수 없이 ‘자연히 계신다?'하겠지만,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발전해 나와야 됩니다. 그렇게 얘기해야 맞는 것입니다. (218-227)


조화무쌍한 힘을 가진 그것이 무엇이겠느냐? 하나님도 연구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격적인 신으로서 사람과 같다면, 전지전능한 그분도 그것을 대할 때 그 속에 가셔서 안식의 잠을 자고 싶어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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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언제나 눈을 바로 뜨고 ‘이 멍청한 자식아, 밤낮 쉬지 말고 탕감복귀해.' 이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이치가 그렇잖아요? 숨쉬는 이치와 마찬가지입니다. 숨을 내쉬면 들이쉬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일했으면 쉬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일하는 것도 전부 다 쉬는 기쁨을 느끼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 모든 것이 상대적 수수관계의 인연으로 되어 있습니다. (164-67)


그러면 하나님이 계시다 할 때, 그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분이냐? 전지전능한 분, 무소부재한 분, 그것도 좋아요.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하고 능치 못함이 없으신 분….
그러나 아무리 능치 못함이 없는 힘을 갖고 있고, 아무리 모든 것에 무불능통한 이런 입장에 섰다 하더라도 자기만을 위하라고 하는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되겠어요? 천이면 천, 만이면 만 수많은 인류 아마 수천억이 될 텐데, 그 인류들이 모여 사는 그런 영계가 있다면 영계에서 하나님이 ‘아, 나는 전지전능하고, 절대적인 존재이니 너희들은 나를 절대적으로 위해야 된다.'이렇게 전부 다 하나님만을 위해야 되는 입장에 섰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우리 인간의 양심의 본질로 볼 때, 그걸 영원히 환영할 수 없습니다. 그건 반드시 상충됩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어느 때든 안 상충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138-70)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상대는 우리 인간밖에 없습니다. 피조물 가운데 하나님 자신이 또 다른 하나님을 만들 수 없습니다. 왜 그래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니 그 하나님과 똑같은 또 하나의 하나님을 만들어 놓을 것이다, 그것도 가능하다고 보지만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놓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똑같은 하나님이 밥을 먹을 때 같이 밥 먹고, 손질하게 되면 같이 손질하고, 또 일어서게 되면 같이 일어서고 따라다니면서 말입니다,
하나님이 앉게 되면 같이 앉고 이렇게 억천만 년 똑같이 행동하게 되면 살아가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얼마나 기가 막히겠어요? 하루도 안 가서 눈이 뒤집어질 것입니다. 또, 말을 어떻게 해요? 말을 하게 되면 며칠이나 말할 것 같아요? 사흘이나 가겠나? ‘저것, 저, 똑같잖아! 죽겠다.'고 할 것입니다. (141-9)


종교의 중심은 뭐냐? 신(神)입니다. 하나님입니다. 물론 신에 대한 이름은 많습니다. 그렇지만 이름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 신은 둘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근원은 하나이기 때문에 하나의 신입니다. 하나의 신을 두고 말하게 될 때 각 나라의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신을 표시하는 명사는 달리 나타나지만 그 본체(本體)는 하나인 것입니다. (210-197)


하늘과 땅 자체도 스스로 있고 싶어 있게 된 것이 아니라, 반드시 있게 한 동기와 근원을 통해, 어떠한 힘의 원천에 입각하여 생겨났다는 걸 생각하게 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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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도 더 한층 올라가 반드시 중심적인 주체를 갖추어 가지고 하늘땅을 움직이든가, 혹은 여기에 창조를 하든가 하는 힘의 작용체, 근본의 작용체가 계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있는 그분을 우리는 하나님이라고 하는데, 민족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다고 다르게 표현하는 그 호칭이 문제가 아닙니다. 어차피 이 우주에는 중심이 있어야 됩니다. 그 중심은 전체 이 존재세계 앞에서, 존재가 작용하고 이동하더라도 그 이동하는 데에 따라 이동하지 않고, 이 움직이는 상대적인 세계의 중심에서 억천만 년 움직이지 아니하는 중심적인 본체가 있지 아니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154-289)


 5) 법도 안에서의 전지전능이다


  ① 원칙적 기반 위에서 전지전능하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게 된 동기가 뭐냐? 근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돈이 필요 없습니다. 돈 때문도 아닙니다. 지식 때문도 아니며 알고 싶어서 만든 것도 아닙니다. 무슨 권력 때문도 아닙니다.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한 그분은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지혜의 왕이고 능력의 왕이고 황금의 왕입니다. 다이아몬드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에게는 다이아몬드가 필요 없습니다. 언제나 있는데 그것이 필요합니까? 없어야 필요한 것입니다. 또 지식이라는 것 역시 이 우주의 모든 원리원칙을 중심삼고 운동하고 작동하는 하나의 구성체를 전부 컨트롤 할 수 있는 법리, 법도를 만드신 그 지식에 비하면 오늘날 과학자들이 아무리 연구해 봤자 자연계의 법칙 하나 찾아서 그것 가지고 박사 됐다고 야단하고 큰소리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술도 그렇습니다. 예술이라는 것이 딴 데 있는 게 아니고 다 자연에서 배워 온 것입니다. 전부 자연에서 배워 온 것이지, 자연에 없는 것은 없습니다. (182-101)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인데 힘이 뭐 필요해요? 우주를 움직일 수 있는 주체이신데, 안 그래요? 힘의 대왕이시니까 힘이 필요 없는 것입니다. 역사에 제아무리 영웅 호걸이 잘났다 하더라도, 역사에 있어서 대국들을 치리하던 모든 군왕, 제왕들이 흘러갔는데, 그들은 다 하나님의 권위 아래에서 춤추다 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이 필요로 하는 돈도 지식도 필요없습니다. (176-133)


하나님 자신은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무소부재하십니다. 그에게는 모르는 것이 없고, 능치 않음이 없습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갖춘 주체로서 절대적인 자리에 계신 하나님에게 있어서 무엇이 필요하겠느냐? 하나님이 절대적인 주체라고 하더라도 주체 자체가 주체가 되는 동시에 상대가 되고 싶은 마음도 있어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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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래야 되느냐? 사람에게는 동쪽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동쪽이 있으면 서쪽이 필요하고 동서가 있으면 남북이 필요하고 남북이 있으면 전후 상하가 필요해 가지고 하나의 구형을 이루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는 구형을 표준으로 해서 움직입니다. (201-7)


저 별나라에는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다이아몬드 별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우주를 지었다면 다이아몬드 별 하나만 만들어 놨겠어요? (49-255)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는 게 뭐예요? 학자, 유명한 학자? 유명한 학자도 별거 없습니다. 자기가 무엇을 연구하고 뭐 어떻다 해도 하나님이 만든 모든 자연계의 어떤 공식이라든가 원칙을 발표했을 뿐이지 그것 자체를 만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학자도 안 좋아합니다. 그 다음에 대통령? 레이건 미국 대통령을 하나님이 좋아하겠어요? 세계 대통령? 우주 대통령 되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전지전능하신 절대자이신데 뭐가 필요해요? 권력도 하나님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다음에는 뭐예요? 돈이요? 말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141-230)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성이 나서 한번 이 땅을 치시면 옥살박살 다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대통령이고 세계의 잘났다는 사람들도 한번 소리치면 국물도 없이 다 흘러가 버릴 것입니다. 그분에게 권력이 필요해요? 하나님 앞에는 권력이 필요 없습니다. 그거 다 졸개새끼들이 좋아하는 것입니다. 누가 좋아하느냐 하면 악마가 좋아합니다. (210-7)


하나님이 왜 천지를 창조했을까요? ‘힘을 자랑하느라고, 전지전능성을 자랑하기 위해서 한번 만들어 봤지!' 하면 그게 멋져요? 그럴 때 힘에 의해 생겨난 물건들이 ‘하나님 고맙소. 힘으로 쳐갈겨 만들어 줘서!' 이러면서 고맙다고 하겠어요? 하나님이 지혜가 많아서 너를 만들었지` 할 때 기분이 좋아요? 능력이 많아서 너를 이렇게 만들었지` 할 때, 기분이 좋아요? 능력이나 지혜로 만들었으면 내게 기쁨이 뭐고 무슨 상관이 있어? 그게 하나님의 능력이지 내 능력이야? 하나님의 지혜지 내 지혜야? 나를 보면 무력하기 짝이 없는 나인데….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175-143)


오늘날 기독교에서 뭐 ‘하나님 아버지, 전지전능하신 아버지' 하는데, 전지전능한 하나님도 원칙적 기반 위에서 전지전능이지, 무원칙적 기반 위에서 전지전능이 아닙니다. 마음대로 하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법을 세워 놓았으면, 영원하신 분이 제정한 법은 영원한 것입니다. 자기가 세워 놓은 것을 마음대로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에 순응하고 넘어가려는 그 하나님의 권위, 그게 놀라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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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를 세우는 데 있어서는, 다 천리의 원칙에 부합될 수 있는 공법을 세우는 데 있어서는, 절대 하나님이 먼저 밟고 넘어간 후에 만민이 따라가게 되어 있고, 우주가 따라가게 되어 있지, 그것을 제2로 돌릴 수 없습니다. 그러한 인간 창조의 이상적 기준이 있습니다. (162-172)


하나님 혼자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기성교회 목사님들이 생각하기를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창조의 능력을 가진 하나님이 언제라도 마음대로 할 수 있지.' 이럴지도 모르지만 천만에요. 천지의 모든 존재물들은 법칙, 대원칙에 의해서 작용합니다. 제아무리 하나님이라도 이 원칙을 파괴하고 행동할 수는 없습니다. 이 나라의 대통령이라도 헌법을 위주하여 제정한 모든 법, 입법을 통해 제정한 법을 중요시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 있기 때문에 지금 야단 아니예요? (166-94)


이렇게 말하면 좀 이상하지만 하나님이 사랑을 하고 싶으면 만들면 되지 왜 사랑을 못 만들었느냐? 그건 마음대로 만들었다가는 하나님이 설 자리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안 만드니까, 그건 못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게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아이구, 하나님은 전지전능한데 못 만들다니….' 그러면 이원론이나 다신론으로 결론이 떨어질 텐데…. 하지만 의심하면 그렇습니다. (173-190)


요즘 사람들이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말하기를 하나님은 절대적이요,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고, 유일무이하시고, 그 다음에 영원불변하다고 하는데, 절대적이어서 뭘 하는 거예요? 유일해서 뭘 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유일한 것과 우리가 무슨 관계가 있어요? 큰 문제입니다. 전지전능하면 뭘 해요?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영원불변하면 뭘 해요? 하나님 자신에게는 좋지만 우리 인간들에게 하등의 관계가 없다면 그건 헛된 것입니다. 필요없는 것입니다. 맹목적인 신앙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전부 가려 주어야 됩니다. (223-249)


하나님은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전지전능하시고, 전권자이시고, 무소부재합니다. 그게 나와 무슨 관계가 있어요? 나와 무슨 관계가 있냐는 것입니다. ‘아, 전권이 있으니 나를 지배하기에 좋겠구만, 무소부재하니 어디서든지 나를 감찰하기에 좋겠구만, 모르는 것이 없으니 나를 다 세밀히 분석하고 꼼짝못하게 만들겠구만.' 하나님이 나를 전지전능으로 지배만 하신다면 좋을 거 있어요? (130-209)


하나님은 천지를 무엇으로 주관하느냐? 법으로 주관하는데, 그 법도 사랑으로 치리하는 법입니다. 그리고 치리의 방향을 후원하기 위해 우주의 법도 존속합니다. 하나님이 인간 창조를 한 이유는 사랑이 그리워서입니다. 혼자 가만히 있으면 될 텐데 무엇 때문에? 자극적이고 충동적인 사랑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12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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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사랑만이 절대 기준이다


하나님이 한 가지 꼼짝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지요? 전지전능하시지만 한가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뭐 같아 보여요? 금을 못 만들겠어요, 다이아몬드를 못 만들겠어요? 아, 힘이 없나? 전지전능하신 그 분이 한 가지 마음대로 못하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뭐예요? 사랑입니다, 사랑. 선생님 마음에도 사랑이 있겠어요? 있다고 봐요? 여러분의 마음에도 사랑이 있어요? 있기는 있습니다. 있기는 있는데 자기 혼자 ‘내 사랑, 나혼자 내 사랑, 내 사랑!' 이러고 있으면 미친놈이 됩니다. (142-263)


하나님 혼자 사랑을 이룰 수 있어요? 전지전능하시고 유일무이하신 하나님 혼자서 ‘아이고, 기분 좋구나!`' 그러겠어요? 그러면 하나님도 미쳤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레버런 문도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것을 갖고 있다고 해서 혼자서 ‘아이구 좋아라! 아이구, 내 사랑이야!' 그러면 저거 미친 녀석이라고 그러잖아요?
그렇지만 상대되는 종이 짜박지 하나라도, 이런 손수건을 중심삼고라도 ‘사랑하는 그대 손수건!' 이러면 누가 욕을 해요? 우주를 대신하여 등장할 수 있는 상대적 가치와 권위가 사랑의 세계에서만 가능합니다. (142-9)


아무리 절대자 하나님이라 해도 혼자서는 사랑을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반드시 상대적 관계에서만 찾아지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전지전능하신 분이라 하더라도 사랑만은 하나님 혼자 소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랑의 소성을 가지고 있지만 사랑의 자극과 사랑의 신호는 상대를 통해서만이 재현되는 것이지 자체만으로써는 현현할 수 없습니다. 이게 사랑입니다. 사랑의 힘입니다. (138-141)


과부 홀아비를 불쌍하다고 하는데 왜 불쌍하다고 해요? 사랑이 그 속에 있지만 발동할 무언가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한 하나님이라 해도 상대가 없을 때는 사랑이 작용을 하지 않습니다. 천주를 지으신 하나님이 누구를 중심삼고 상대하고 싶어 하느냐? 아담과 해와를 중심삼고 사랑의 작용을 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130-17)


하나님이 사랑을 좋아하는데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는 사랑이 무슨 사랑이냐? 참사랑입니다. 그런데 참사랑이란, 어떤 것이 참사랑이에요? 참사랑이란 사랑의 뿌리를 어디에 두고 얘기하느냐? 그 뿌리를 하나님에게 두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거 이상한 말이지요?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참사랑의 주인공인데도 불구하고 그 사랑의 뿌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사람에게 뿌리를 심겠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177-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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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천지를 누구 때문에 창조했느냐? 하나님 자신 때문에 했느냐, 상대적인 창조물 때문에 했느냐? 하나님은 물론 자기를 위해 지었다고 볼 수 있지만 상대를 중요시하는 데 모든 창조의 기준을 두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 상대의 주체가 누구냐 하면 인간입니다. 인간을 중심삼고, 모든 인간의 행복을 중심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자신이야 뭐 전지전능하신 분이 아닙니까? (109-263)


하나님은 절대적이요, 또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한 하나님인데, 그 하나님이 사랑까지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느냐? 아닙니다. 하나님도 사랑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뭐예요? 하나님이 전지전능 못하지 않느냐? ‘하나님, 당신은 전능하지 못하지 않소?'하면 ‘나는 전능하기는 하지만 사랑에는 전능하지 못하다.' 하십니다. 하나님이 왜 그래요? (98-31)


하나님 혼자서는 하나님 노릇 못 합니다. 그게 무슨 재미예요? 먹을 것이 걱정이에요? 잘 것이 걱정이에요? 입을 것이 걱정이에요? 뭐 든지 마음대로 공급받을 수 있는데 비행기를 타고 공중을 돈댔자 한 시간 돌고 나면 재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전지전능한 하나님이고 아무리 잘났다고 뻐기는 하나님이라도 재미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별 수 없습니다. 자기가 노력해서 귀하다고 하는 것을 창조해 두고 가 보는 재미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161-109)


하나님이 무엇이 그리워서 창조를 했느냐? 절대자인데 그가 무엇이 그리워서 창조를 했느냐 이겁니다. 그분은 황금도 필요하지 않고, 지식도 필요하지 않은 전지전능하신 분인데, 갖추지 않은 것이 없는 분인데, 무엇이 필요해서 사람을 지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창조의 근본 동기가 무엇이냐? 권력도 아니고 지식도 아니고 소유물도 아닙니다. 하나님에게 무엇이 없었겠느냐? 사랑의 기반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역시 혼자 있어 서는 사랑을 못 이루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지 창조의 동기, 알파적 기원도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149-142)


하나님에게 무슨 사랑이 필요하냐? 하나님도 사랑을 갖고 있지만 상대가 있어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 갖고 있어요? 그런데 혼자서 ‘아이고 좋다! 아이고 내 사랑이야!' 그러는게 좋아요? 사랑이라는 것은 상대가 나타나야 작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주의 원칙입니다. 아무리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라도 사랑의 상대가 없게 될 때에는 고독한 하나님이요, 슬픈 하나님인 것입니다. (94-207)


하나님이 아무리 훌륭하시고, 아무리 절대자이시고 전지전능하신 분이라 하더라도 혼자서는 좋은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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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라는 명사, 혹은 좋다라는 말은 혼자 있어 가지고 설정되는 말이 아닙니다. 반드시 상대적 관계를 갖춘 자리에 있어야 좋고 행복하다는 말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라도 혼자 가만히 있다고 한다면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노래를 잘 부르는 음악가가 혼자 노래를 불렀다고 합시다. 그게 행복해요? 상대가 있어야 합니다. 주고 받는 것이 있어야 좋은 것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이 좋으시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 혼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65-9)


하나님 자신을 존재하게 한 기원이 뭐냐? 무엇에서 생겼겠느냐? 하나님이 존재하기 위한 기원이 뭐냐? 전지전능이에요? 절대적 권한이에요? 절대적 권한이 있으면 뭘 해? 혼자 있는데. 혼자 있는 양반이 절대적 권한이 있어서 뭘 해? 아무도 없는데. 혼자 절대자 되어 있으면 지식이 있어서는 뭘 해? 하나님의 본질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게 사랑입니다. 위하라는 사랑이 아니고 위하려고 하는 사랑입니다. (218-227)

전지전능한 하나님도 참사랑 앞에는 꼼짝못합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참사랑의 자리에서는 꼼짝못합니다. 아내를 진짜 사랑한다 할 때는 아내 앞에 경배하고 싶겠어요, 안 하고 싶겠어요? 경배하고도 남습니다.
우주 가운데 어쩌다가 내가 이렇게 참으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아내가 어디서 왔노? 그거 없다고 생각할 때는 사지가 다 마비됩니다. 사실 없다고 생각할 때는 큰일납니다.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좋으니까 대통령인들 할 수 없이 궁둥이를 하늘로 하고 ‘임이여, 사랑하소서! 사랑하나이다!' 합니다. 그럴 때 뭐 조그마한 여자가 앉아서 볼 때 기분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211-71)


하나님이 아무리 전지전능하다 하더라도 사랑을 혼자 마음대로 할 수는 없습니다. ‘전지전능하니까 사랑도 마음대로 할 수 있지.' 할 지 모르지만 그러면 문제가 큽니다. 사랑의 대상이 필요없다는 논리에 봉착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절대적인 중심존재로서 자기 스스로의 사랑, 하나님적 사랑에 대한 자극과 기쁨을 느끼기 위해서는 사랑의 상대가 필요한 것입니다. (208-231)


하나님 자신도 상대가 필요합니다. 하나님도 사랑을 혼자는 못 이룹니다. 내가 사람도 없는데 혼자서 ‘아이고. 오늘 참 좋구만.' 이렇게 열렬히 말한다면 미쳤다고 할 것 아니예요?
그러나 상대가 있어서 열렬히 말해도 그것이 사리에 맞고 환경 여건에 부합되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라도 혼자 ‘좋아, 좋아! 아이고, 내 사랑 좋아!' 하고 춤추면 그게 뭐예요? 이걸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도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는 혼자로는 안 됩니다. 상대를 세워 놓아야만 자극적인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14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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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존재하는 것들 가운데 하나님과 상대가 되는 힘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며 절대적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영원불멸하고 자존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한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돈도 아니요, 지식도 아니요, 권력도 아닌 그 무엇을 바라고 계시겠느냐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절대 필요로 하는 것은 오직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인 동시에 하나님께도 절대 필요한 것으로 참사랑입니다.


  ③ 하나님도 사랑 앞에는 절대복종이다


하나님도 사랑을 좋아하시니까 사랑에 미칠 수 있을까요? 천지를 지으신 전지전능하신 훌륭한 하나님이 사랑에 미칠 수 있어요? 호랑이 같은 할아버지가 집 안에서는 조그마한 할머니에게 꼼짝 못하는 적도 있습니다. 그건 무슨 코에 걸려서 그러느냐? 사랑의 코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사랑에는 위대한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사랑 앞에는 꼼짝을 못합니다. (137-81)


능력이 많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은 어떤 것을 좋아하시겠느냐? 하나님은 인간들보다 낫기 때문에 사랑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이 이론적으로 가장 타당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이 도대체 뭐냐? 영원 전부터 영원히 위하는 사랑을 갖고 계시고, 그러한 사랑을 하려고 하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90-82)

여러분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아들이 되는 데는 무엇을 중심삼고 되고 싶으냐? 돈이에요? 하나님이 ‘내가 전지전능한 하나님인데, 큰 권력을 중심삼고 부자의 관계가 돼야지.' 그래요? 지식? 그건 다 곁다리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중심삼고, 그 사랑과 나는 하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랑만이 제일이다.' 그래야 됩니다. 이 사랑을 완전히 점령하는 날에는 천하에 아무리 권능이 많은 하나님이라도 ‘음, 음' 그런다는 것입니다. (69-174)


제 아무리 하나님이 전지전능하다 하더라도 남자와 여자는 사랑에 절대복종하라고 명령할 수 있어요? 나도 참사랑에는 절대복종하니 나처럼 너희들도 참사랑에 복종해라!' 이래야 아버지 되는 하나님으로서 당당한 하나님이 되지, 하나님은 지키지 않고 ‘야! 아들딸 너희들은 사랑에 절대 복종해라!' 하면 그게 말이 돼요?
참사랑의 자리에 있는 하나님이 독재자의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로 ‘내가 참사랑에 영원히 절대복종 하듯이 아들과 딸도 참사랑을 중심삼고 영원히 복종할지어다!' 할 때, 아들딸이 ‘아멘-!'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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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지 않을 때는 ‘아버지는 제 맘대로 하고 우리만 복종하라고 해? 푸-!'한다는 것입니다. 문제가 벌어집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도 참사랑에는 절대복종한다는 논리를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211-71)


아무리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라도 참사랑 앞에는 절대복종하는 것입니다. 어때요? 그 말이 듣기 좋아요, 듣기 나빠요? 그 참사랑은 동쪽에서 들으면 좋고 서쪽에서 들으면 나쁠까요? 서쪽에서 들어도 좋고 남쪽에서 들어도 좋고 북쪽에서 들어도 좋고, 위에서 들어도 좋고 아래서 들어도 좋습니다. 밤이나 낮이나 사시장철 넘어가서, 청년시대와 노년시대를 넘어서 참사랑은 영원히 듣기에 나쁘지 않다는 것입니다. (211-71)


절대적인 힘을 주장하는 하나님도 사랑이 정착할 수 있는 자리, 사랑이 설 수 있는 자리를 찾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사랑을 중심삼고 절대 좋아하는 것입니다. 절대 좋아하는데 얼마만큼 좋아하느냐? 절대적 전지전능 무소부재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좋아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버리더라도 사랑을 중심삼고 절대 복종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말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아버지라고 그러지요? 그러면 아버지 자신이 사랑을 중심삼고 살지 않으면서 아들딸에게 ‘얘들아, 너희들은 사랑에 절대 복종하고 살아라.' 하는 말을 할 수 있어요? 근원이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자신도 사랑에 절대 복종하며 살 때 ‘내가 이렇게 사니 너희들도 이렇게 살아야 된다.' 하는 교육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207-216)


절대적인 하나님도 ‘아이고 내가 절대적이고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하고 모든 걸 다 가졌지만 나도 절대적인 그 무엇에 순종하고 살면 좋겠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위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 하나님이기 때문에 나를 위하라고 하는 사랑을 하지 않습니다. 위하라는 사랑을 해서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201-110)


하나님이 전지전능하다고 했으니까 전지성을 중심삼고? 지식을 중심삼고? 아닙니다. 그러면 뭣 중심삼고? 힘 가지고? 힘 가지고도 안됩니다. 아무리 봄이 힘이 있다고 하더라도 꽃필 수 있는 환경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아무리 여름이 힘이 있다 하더라도 무성하게 할 수 있는 그런 시기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가을을 맞게 되면 그게 전부 시들해지는 것입니다. 가을이 아무리 결실의 시기라 하더라도 겨울을 극복 못하는 것입니다. 이걸 극복하기 위해서는 태양을 언제나 중심에 모시고 있어야 합니다.
그곳에서 춘하추동을 극복할 수 있지, 그 외에는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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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이 뭐냐 하면 아들딸, 누나, 동생, 형제끼리 싸우고 있는 판국에 부모의 전통 되시는 하나님이 거기에 들어가 중심이 되어서 ‘이렇게 해라!' 할 때, 통일이 안 되겠어요? 통일 안된다고 하는 녀석은 미친 녀석이지. (221-175)


오늘날 현대신학이 망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 뭐냐 하면 ‘하나님은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니 그분은 사랑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 혼자 마음대로 사랑할 수 있어요, 우리 사모님 없이? 할 수 있어요? 할 수 있다는 녀석은 미친 녀석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혼자 사랑할 수 있어요? (209-64)


하나님이 전지전능한데 하나님과 같이 전지전능한 것이 또 있어서 그 둘이 사랑하게 되면, 그 세계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게 밸런스가 안 맞고 도리어 도망가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 둘 가운데 걸려서 가지도 못하고 오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옆으로 빠져 버립니다. 약한 것은 강한 것에게로 가고 강한 것은 약한 것에게로 들어가야 딱 가운데 끼어서 꼼짝못하는 것입니다. 약한 것은 강한 것을, 강한 것은 약한 것을 원합니다.
여자 같은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는 죽어 버려라 이겁니다. 여자 같은 남자를 사랑하겠다는 여자는 죽어 버려도 된다는 것입니다. 여자가 여자 손을 만지면 기분 좋아요? 여자끼리 손을 잡으면 기분 좋아요? 부드러운 여자 손이 부드러운 손을 잡으면 그거 얼마나 기분 나빠요? 두 부드러운 손의 느낌이 얼마나 기분 나빠요? 그건 죽기보다 더 싫습니다. 그러니까 죽어버리라는 것입니다. (167-292)


 6) 사랑으로 무소부재하신다


  ① 사랑만이 경계를 넘나든다


하나님의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 속에도 있습니다. 하늘 땅 어디를 가든지 거기에 하나님의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계시지 않은 곳이 없다, 즉 무소부재(無所不在)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 속에 있기를 원할진대, 여러분이 바라보는 물건 가운데 하나님의 마음이 있으니 그 물건을 내것으로, 천지의 모든 존재물을 내것으로 품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최고의 도(道)를 통한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의 마음에 소유된 사람입니다.
나는 새 한 마리나 향기를 풍기는 꽃 한 포기를 보고도 마음으로 영원을 노래할 수 있는 경지에 들어간 마음을 가진 사람은 만물 가운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 가운데에 있는 것입니다. (8-180)


그러면 하나님의 편재성(遍在性)을 어떻게 느끼느냐? 공기를 하나님의 입김과 같이 느껴라. 태풍이 불어오거든 그것을 하나님이 이 세계를 위해서 수난길을 극복해 나오시면서 흘리신 땀과 같이 느끼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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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를 바라보거든 그 태양이 이 우주 전체의 생명의 요인을 상징하였음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태양에게 배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하는데 하나의 교본이요 교재로 전개시킨 것, 사랑하는 아들딸을 기쁘게 하기 위한 교재로 세워 놓은 것이 자연입니다. 나뭇잎을 보고 자기 아들딸같이 여기고 혼자 중얼거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성인에 가까운 것입니다. (59-102)

하나님께서 무소부재하시니 우리도 무소부재한 것을 닮고 싶고, 하나님께서 전지전능하시니 우리도 전지전능하고 싶고, 하나님께서 유일무이하시니 우리도 유일무이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닮았습니다. 나 자신이 하나님을 닮았기 때문에 나를 하나님 닮게 만들고 싶은 것입니다. 나 자신이 온 천하를 다스리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두 다 비슷비슷하게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26-167)


사랑을 통해 체휼적인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슬퍼하실 때에 내가 슬픔을 느끼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때 자기도 모르게 기뻐지는 것입니다. 효자는 천만리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부모의 사랑은 언제나 그 효자의 곁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편재성에 있어 하나님은 어디에 있느냐? 지식적인 내용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극과 극을 넘어서 편재를 타당하게, 가능하게 하는 것이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입니다. 사랑을 통하는 그 길에 부모의 사랑은 무소부재(無所不在)입니다. 어디나 있지 않은 데가 없습니다. 그것은 사랑만이 가능합니다. 사랑만이 그 아들을 완전히 지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전능한 권한은 거기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59-101)


사랑에는 위대한 속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 불변적인 참사랑과 일치된 입장에 서게 되면 하나님이 계신 곳에 내가 가세할 수 있고, 언제든지 동거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내가 눈을 감지 않고도 하나님을 보게 되고, 하나님의 비통한 심정을 체휼한 자는 길을 가다가도 멈추고 통곡을 하는 그런 체휼적 세계가 있는 것입니다. 타락한 세상에서도 어머니의 사랑은 만일 자식이 외지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하게 되면 느낌으로 알게 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자다가도 ‘아! 아무개야' 하고 소리치고 일어나는 것입니다. (201-339)


그래 동맥(動脈)이 위대하냐, 정맥(靜脈)이 위대하냐? 어떤 게 위대해요? 같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위대하냐? 사람이 위대하냐? 그것 역시 같습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보면 하나님이 동맥적이라면 우리 인간은 정맥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대등할 수 있는 그런 특권을 지닌 인간의 가치가 있습니다.
‘천상천하(天上天下)에 유아독존(唯我獨尊)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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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하고, 나를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그게 무엇을 중심삼고 그러냐? 사랑을 중심삼고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말이 이해된다는 것입니다. (109-118)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하나님은 욕심장이 중에도 대왕 욕심장이입니다. 계시지 않은 곳이 없는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입니다. 계시지 않는 곳이 없으니 얼마나 욕심장이에요? 욕심꾸러기라고 하거나 뭐 욕심장이라고 해서는 안 되겠지만, 하여튼 욕심이 많으시다는 말입니다. (121-62)


하나님은 절대 복종할 수 있는 길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절대 주관하려고 하는 그런 절대, 독재적인 성격을 가진 하나님이 절대 복종할 수 없게 될 때에는 높은 것은 주관할 수 있으되 낮은 것은 주관할 수 없습니다. 무소부재라는 말 자체가 모순된 말이 됩니다. 하나님도 우리 닮았기 때문에…. 어머니 아버지가 자기 아들딸 닮았지요. 그렇잖아요?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합니다. 하나님도 절대 복종하면서 살고 싶어 합니다. 없다 할 때는 하나님이 그 얼마나 고독하겠어요? (192-23)


자기가 그린 작품을 가지고 밤이나 낮이나 취해 바라 보고 눈물을 흘리며 감탄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것을 그린 화가가 기분 나빠하겠어요? 그런 사람이 있으면 데리고 와서 안방에 모시고 ‘왜 그랬소?' 하면서, 사연을 얘기하게 할 것이 아니예요? ‘아이고 좋아. 아이고 그리워, 아이고 같이 있고 싶어.' 한다고 해서 미쳤다고 하겠어요? 여러분이 하나님을 몰라도, 하나님이 만우주에 꽉 차 있는 편재성을 지식적인 주체로 계시기보다는 사랑으로 계시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사랑의 동감권(同感圈)을 각 분야에서 체휼할 수 있느냐? 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재인식하고 재발견해 보라는 것입니다. (59-65)


  ② 우주에는 사랑이 없는 곳이 없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하나님인데, 왜 절대적이냐? 사랑에 절대 복종하기 때문입니다. 기분 좋아요. 나빠요? 또 하나님은 무소부재입니다, 무소부재.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223-208)


하나님의 사랑은 우주를 품고도 남습니다. 중심적인 기반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큰 기반을 포용하는 사랑의 중심자가 하나님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움직인다고 할 경우에는 작은 것도 전부 따라서 움직여야 됩니다. 하나의 큰 원 안에 전부 들어가 있지요? 그래서 하나님이 전세계, 전우주를 커버한다고 해도 이론적인 말이 되는 것입니다. (205-27)


하나님이 없게 될 때는 우주는 다 빈 것입니다. 빈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있게 된다면 우주는 꽉 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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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혼자 있더라도 하나님이 있는 줄 알게 될 때는 우주는 꽉 찬 것입니다. 어디나 계신다는 말입니다. 어디나 계신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랑 가운데서는 무소부재의 감동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을 모르게 될 때는 모든 것이 빈 것입니다.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겁니다. (91-292)


사랑의 주체가 없으면 아무도 없는 것처럼 느낍니다. 그러나 사랑의 주체가 있으면 모든 것이 찹니다. 사랑이 꽉차야 모든 것이 차기 때문에 무한히 줄 수 있고, 참되게 줄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주고받는 것은 이상의 실현이요, 이상의 번식입니다. 사랑의 세계는 거리를 초월합니다. 사랑이 얼마나 빠르냐 하면 빛도 못 따라갑니다. 제일 빠른 것이 사랑입니다. 제일 밝은 것도 사랑입니다. 제일 완전한 것도 사랑입니다. 제일 완전히 차는 것도 사랑입니다.
사랑이란 뭐냐? 돌아갈 수 있는 윤활작용(潤滑作用)과 궤도작용를 해주는 것입니다. 사랑 없이는 윤활역할(軌道役割)이 안 됩니다. 자동차도 움직이게 하려면 기름을 쳐야 합니다. 운동하는데는 윤활작용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운동하려면 윤활작용을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최고의 기쁨의 윤활작용을 하는 것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뿌리가 무소부재한 하나님이기 때문에 없어지지 않습니다.
사랑은 신경과 같습니다. 우리가 머리카락 하나를 당기면 몸 전체가 끌려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만 당기면 우주가 끌려오고, 사랑만 움직이면 우주가 다 화해 돌아가게 됩니다.
이 우주에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채워 줄 수 있는 하나의 주체가 있을 때 그건 어떤 주체냐? 절대적인 하나의 중심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을 어떠한 마음의 자리에도 꽉꽉 채워 줄 절대자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무한한 절대자라야 됩니다. 오늘날 수십 억이 되는 인류의 마음을 다 채워 줘야 할 하나님의 그 사랑의 양이 얼마나 되겠어요? 그건 절대적이어야 됩니다.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라는 말이 그래서 필요합니다. 그 말은 하나님에게 필요한 단어다 이겁니다. (116-229)


 7) 기존 신관들의 문제점


  ① 기성신관은 이율배반적이다


종교의 가르침에 대한 반문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과연 있는가?', ‘하나님이 전지, 전능, 무소부재하고 지선(至善), 지미(至美)하고, 사랑이며, 심판의 주이며, 인류의 아버지 등으로 표현하지만 그렇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가만 있어도 좋을 하나님이 왜 우주를 창조하였는가?',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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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조에는 방법이 있었을 것인데 그 방법은 무엇일까?', ‘절대선(絶對善)인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에 왜 약육강식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가?', ‘인간이 타락해서 죄의 세계가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완전한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이 왜 타락하게 되었는가?' 등이 그것입니다. (122-298)


하나님이 문제가 많습니다. 전지전능하다면서 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해요? 십자가의 도리가 아니면 구원할 수 없어요? 그거 어떻게 대답할 거예요? 전지전능하다면서 십자가상의 예수님을 구원할 수 없다면 그런 하나님은 잔인한 하나님입니다. 인간 앞에서 추방해야 할 하나님입니다. 믿긴 뭘 믿어요? (136-101)


하나님은 인간을 타락하게 해놓고 왜 슬퍼하는가 하는 근원을 파헤쳐서,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떻게 되어 있으며, 또 전지전능하시다는 하나님이 왜 이렇게 무능한 하나님이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을 알려고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133-214)


지금까지 신학자들이나 영계를 통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사탄이 있는 줄은 알았지만, 전지전능한 하나님 앞에 반대하는 사탄을 왜 방어하지 못했느냐 하는 문제는 몰랐습니다. 이것이 영계를 통해 가지고도 문제입니다. 어느 때든지 하나님편으로 가려면 반드시 사탄이 방해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다방면에서, 일방이 아닌 팔방에서 반대하게 되는데, 그걸 왜 하나님이 간섭하지 못하고 제재하지 못하느냐? 이런 문제가 지금까지 수수께끼입니다. 영계를 통해도 그것만은 모른다는 것입니다. (133-86)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지금까지 수만 년 역사를 통해 인류를 이끌어 나왔는데 어찌하여 선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세계로 이끌어 가지 못하고, 종국에 와서는 이와 같이 낙망과 절망의 세계로 향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됐느냐? 이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신이 없다고 단정할 수 있는 내용도 되는 것입니다.
신이 없다면 우리 인간들이 바라는 이상이라든가 혹은 평화의 세계, 인간들이 추구해 나가는 유토피아적 내용이 미래에 가능한 것으로 인간들 앞에 맞아질 것이냐? 지금까지 오랜 역사노정을 통해서 생각하는 사람 혹는 무수한 철인들이 그와 같은 세계를 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미달해서 현재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보게 될 때, 미래에 우리들에게 그런 희망의 세계를 가져다 준다고는 볼 수 없는 것입니다. (130-17)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왜 사탄을 그렇게 두는 걸까요? 하루 저녁에 모가지를 잘라서 처단해 버리면 될 것인데 왜 그냥 둘까요? 그거 왜 둬요? 그게 종교에 있어서 제일 난문제인데, 그게 간단한 내용이예요? (127-79)


지금 수많은 종교인들은 ‘하나님'하면 영광의 보좌에 앉아 계신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분이시다, 또 절대적인 권한을 가진 분이시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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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무슨 고통이니 슬픔이니 그러한 개념과 상관없는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을 어떤 분이라고 하느냐 하면, 하나님 아버지다, 이렇게 부릅니다. 그리고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 모든 신자들은 죄악된 세상에서 회개를 해야 되고 신앙을 해야 된다고 합니다. 부자의 관계에 있는데 하나님과 인간이 이렇게 이율상반(二律相反)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123-150)


오늘날 기독교에서 ‘하나님은 거룩하고 전지전능하신 분으로서 공의의 심판주로 보좌에 앉아서 만민을 심판하는 심판장이다.'라고 하는데, 여러분, 재판장이 좋아요? 재판장을 10년 했다가는 병이 들어 죽습니다. 죽는다기보다 병이 들어 나가 자빠집니다. 병이 안 들면 그건 가짜들입니다. 남의 생명을 빼앗는 사형선고를 내리기도 했을텐데, 자기가 내린 판결이 절대적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논법이, 해설법이 여러 가지 방향이 있는데, 자기 판결에 의해 그 사람의 생사문제를 결정짓는 놀음을 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주의 공법에 비추어 보게 될 때 법이 절대적일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하는 사람은 10년 판사 하면 병이 나야 된다 이겁니다. (198-279)


자, 그러면 이 천지의 대주재 되는 하나님이 있다면 한번 물어 봐야 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오늘날 기성교회에서는 보좌에 앉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심판주로 오셔서 나쁜 놈은 지옥 보내고 좋은 놈은 천국 보내고…. 그거 보고 좋아하는 하나님이라면 미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선악을 초월한 절대선의 자리에 계십니다. (194-9)


기성교회 목사들은 하나님은 보좌에 앉아 가지고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하다고 그러는데, 그거 무슨 재미예요? 보좌에, 왕좌에 몇만 년 그냥 앉아 있으면 궁둥이가 다 물러질 거 아니에요? 여러분, 앉아 있는 걸 좋아하거든 한 3일 동안만 앉아 있어 보라구요. 그래서 하나님은 뭘하고 있느냐? 기독교로 말하자면 하나님은 보좌에 앉아 영원히 영광 가운데…. 혼자 앉아 서 무슨 영광이예요? 영원 전부터 오늘날까지 한 자리에 앉아서 오 내 권력 좋구만. 내 이 전지전능하고 요사스러운…. 그거 뭐해요? 하나님도 사랑을 중심삼고 지금까지 사는 것입니다. 이러한 논리를 부정할 수 없습니다. (191-9)


하나님이 자기 마음대로 할 것 같으면 왜 지금까지 수만 년 역사, 인류역사를 말하게 되면 85만 년에서 150만 년까지 잡고 있는데, 그런 기나긴 장구한 세월 동안 왜 인간을 요꼴로 만들어 왔어요? 그렇다면 하나님이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라는 말도 못하는 것입니다. 이거 다 허황한 논법입니다. 왜 못 하느냐 이겁니다. 왜 못 하느냐? 조건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162-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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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될 것이냐? 오늘날 기성교회에서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고 거룩하신 분이고 우리 인간은 속되다고 하지만, 잘못 알았습니다. 저나라에 가 보라구요. 오늘날 세상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 아버지'라고 자기들도 하면서…. 그 아버지라는 게 뭐예요? 거룩하고 상대할 수 없는 관계에서 아버지란 말이 벌어져요? 그건 벌써 처음부터 논리적인 모순입니다. 모순 투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문총재가 말하는 것은 사리에 닿습니다. (240-164)


내가 이런 얘기를 왜 하느냐? 하나님이 처음으로 인간을 아들딸로 지었는데, 그 아들딸이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노래하고 춤추는 그런 것을 봤겠어요, 못 봤겠어요? 인간이 타락해서 쫓겨났기 때문에 아직까지 그런 날을 갖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인 것을 기성교회 신자들은 모릅니다.
하나님이 영광 중에 있으면서 전지전능해서 무엇이든지 다 할 줄 아는데, 그런 하나님이라면 왜 수천 년 동안 이렇게 인간을 구원 못해 주느냐 이겁니다. 그걸 어떻게 답변할 거예요? 그것은 인간이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죄를 인간이 지었기 때문에 죄를 청산하는 것도 인간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226-292)


하나님이 절대 바라는 것이 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바라는 게 뭐예요?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바라는 게 뭐냐? 능력이에요? 오늘날 기성교회, 기성신학에서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공의(公義)의 심판주로 와서 선한 사람은 천국 보내고 악한 사람은 지옥 보낸다고 합니다. 그런 재판장이 좋아요? 세상에 재판장이 좋아요? 무슨 고약한 하나님이 돼 가지고 지옥으로 보내고 천국 보내게끔 만들었어요? 논리적으로 전부 부당한 처사라는 결론이 되는 것입니다. (211-71)


기성신학에서는 창조주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고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된 피조물은 속된 것이라는 논리를 들고 나옵니다. 이것은 우주 생성의 본성적 원리에 위배되는 논리입니다. 기독교의 전통적 주류 사상이 사랑이라 했는데 속된 죄인과 거룩한 하나님이 어떻게 하나될 수 있어요? 이론적 근거를 대라 이겁니다. 이론을 못 대면 허무한 것입니다. 가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에게도 절대적인 하나님 자신이 절대 복종하고, 절대자인 하나님의 생명을 버리더라도 위하고 싶고 갖고 싶은 상대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204-57)


오늘날, 기성 신학자들이 말하기를 ‘신앙 전체를 우리는 비판해야 할 때다. 지금까지의 신관, 인생관에 대한 모든 것을 재검토할 때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지금까지의 신학사조는 피조물은 ‘거룩하신 창조주와 대등한 자리에 설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사랑은 어떻게 하느냐? 하나님 혼자서 사랑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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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니 행복이니 하는 것은 뭐냐? 하나님 혼자 하겠느냐? 묻게 된다면 대답을 어떻게 할 거예요?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77-308)


기독교에서는 절대적 하나님만 믿으면 무엇이든지 된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재국가가 나왔고, 피를 흘린 것입니다. 사랑이란 논리를 찾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제일이라고 하는 전제 아래서는 아무리 가 봤자 사랑의 하나님 꽁무니만 따라다녀야 될 것 아니예요? 사랑이란 것은 대등한 개념에서 시작되는 것인데, 그런 개념에서는 수평이 안 되고서 수직을 찾을 수 없습니다.
독재 역사가 나오고, 피 흘리는 역사가 기독교를 등에 업고 나옴도 하나님만을 절대시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 대신 칼을 든 것도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이다!'이러는 것입니다. 그러나 통일교회가 위대한 것은 그것을 넘어서서 하나님도 절대자지만, 절대자로서 절대 사랑 앞에 굴복할 수 있는 것을 논의한다는 사실을, 또 하나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염원이 있다는 사실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사랑에 절대 복종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겁니다. (219-127)


이 피조세계가 생겨나게 된 동기가 뭐냐? 하나님도 사랑이 필요해서 천지를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오늘날 기성신학의 신관(神觀)이 그래서 틀렸다는 겁니다. 절대적인 힘의 하나님, 힘만 가지면 다 된다는 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문화가 거쳐가는 데는 피를 흘려 왔습니다. 서구 문명이 기독교문화를 따라 발전해 왔지만 이제 기독교문화는 종말세계에 파탄적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하는 것을 이런 논리에서 예측할 수 있는 것입니다. (209-23)


역사는 과학의 시대로 가고 있습니다. 모든 근원을 파악하고 종의 기원을 탐구해 가지고 근본을 추구하는 과학의 발전시대가 옴으로 말미암아 종교도 거기에 보조를 맞추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거기에 주체적인 관을 가지고 세계가 어떻고 창조의 내용이 어떻다는 것을 설명해 가지고 하나님을 입증할 수 있는 종교가 나와야 할 텐데 그런 종교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살아 있는 한 그런 종교의 내용을 준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211-132)

인간이 절대자에 의해서 창조되고 절대자의 사랑을 실천하도록 지음받았다면 인간의 창조에 동기와 목적이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그 동기와 목적이 밝혀지려면 절대자가 어떤 분인가 하는 문제, 즉 올바른 신관(神觀)이 우선 세워져야 합니다. 올바른 신관이 세워짐으로써 그분의 창조의 동기와 목적이 밝혀질 것이고, 따라서 평화를 위해 절대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이유도 명백해질 것입니다. (110-249)


절대적이며 영원하고, 유일하며 불변하신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러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견지에서 참된 사랑, 참된 이상, 참된 평화, 참된 행복의 기원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볼 때 하나님 자신으로 보는 신관, 하나님 자신으로 보는 인생관, 하나님 자신으로 보는 물질관, 이것을 확실하게 하는 데서부터 비로소 새로운 평화와 새로운 행복의 세계를 우리는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77-257)


종교분쟁의 근본원인도 역시 본체론의 애매성에 있습니다. 절대자는 오직 하나이며 둘이나 셋이 있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각 종교의 지도자들은 자신의 절대자만이 바른 신이며 그 외의 신은 참신이 아니라고 보고 있기 때문에 결국 종교마다 절대자가 있는 셈이 되어 절대자가 여럿이라는 배리(背理)가 성립됩니다.
따라서 모든 종교의 신은 상대적인 신에 불과하였다는 결론이 되어 각 종교를 통해 세워지기로 되었던 절대적 가치관, 즉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에 관한 이론은 상대적인 것에 머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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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이때까지의 종교는 혼란을 수습할 수 있는 절대적 가치관을 세울 수 없다는 결론이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종교가 절대자에 대한 정확한 해명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필연적인 결과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122-298)


각 종교마다 그 교리가 성립되는 근거로서의 절대자가 있습니다. 유대교의 절대자는 여호와신이요, 기독교의 절대자는 갓(God), 즉 하나님이요, 회회교의 절대자는 알라신입니다. 유교나 불교는 절대자를 명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유교의 덕목의 근본인 ‘인(仁)'은 천명과 연결되기 때문에 ‘천(天)'이 유교의 절대자라고 볼 수 있으며, 불교에서는 제법(諸法)은 항상 변화하며  진리는 제법의 배후에 있는 ‘진여(眞如)'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하니 진여가 불교의 절대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122-298)


새로운 종교를 위한 본체론은 종래의 모든 절대자가 각각 별개의 신이 아니라 동일한 하나의 신임을 밝혀야 합니다. 그와 동시에 그 신의 속성 일부를 파악한 것이 각 종교의 신관이었음과 그 신의 전모를 옳게 파악하여 모든 종교는 하나님으로부터 세워진 형제적 종교임을 밝힐 수 있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 본체론은 하나님의 속성과 함께 창조의 동기와 창조의 목적과 법칙을 밝혀 그 목적과 법칙이 우주 만물의 운동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과 인간이 지켜야 할 규범도 결국 이 우주의 법칙, 즉 천도와 일치함을 해명해야 할 것입니다. (122-298)


통일교회 원리가 위대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창조성이 구체적이라는 것입니다. 창조가 어떻게 되었느냐 하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어떻게 타락했느냐 하는 실질적인 논리가 있습니다. 그 다음엔 역사관이 있습니다. 역사과정에서 하나님이 타락한 인간을 방치해 두지 않고 재창조하시기 위해 얼마나 수고하셨는가 하는 것이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목적의 세계에 도달한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일목요연하게 파헤쳤다는 것입니다. (208-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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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하나님과 창조역사


 1) 하나님의 창조 동기는 사랑


  ① 창조의 역사는 완전 투입


하나님의 천지창조는 생명의 접착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상을 동화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188-196)

과학자들은 우주가 힘으로 형성돼 있고, 이 힘에 의해 우주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전기는 힘이 먼저 있어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작용을 통해 전기가 생깁니다. 그리고 작용이 있기 전에 플러스와 마이너스, 즉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작용은 혼자서는 할 수 없으므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결국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있어야 작용을 하고, 그 작용을 통해 전기가 생깁니다. 마찬가지로 힘도 주체와 대상이 작용을 해야 생깁니다. 그러니 오늘날 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힘으로부터 우주가 발생한 것이 아닙니다. 또한 힘이 먼저가 아니라 작용이 먼저입니다.
사랑이 먼저냐, 생명이 먼저냐? 사랑이 먼저입니다. 지구가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나왔다고 생명이 제일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사랑이 제일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천지창조를 생명에서부터 했다고 하더라도 그 생명의 발원지(發源地), 동기는 사랑입니다. 생명이 생겨난 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왜 천지를 창조했느냐? 아무리 절대자라고 하더라도 혼자서는 기쁨을 느낄 수 없으며, 설령 기쁘다 하더라도 기쁨의 자극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창조를 했습니다. 절대자가 아무리 ‘나는 절대자다. 나는 사랑의 주인공이다. 생명의 주인공이다.'라고 한다 해도 절대자 혼자서는 사랑의 자극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요, 천지가 내 몸 속에 있다는 생명의 자극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38-152)


하나님이 자신만 생각했다면 천지를 창조 했겠어요? 창조는 힘의 투입을 말합니다. 예술가는 최고의 걸작품을 만드는 것이 소원입니다. 예술가는 걸작품을 만들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 투입합니다. 다 투입하는 데서만이 완전한 걸작품이 나옵니다. 더 이상 할 수 없다 했을 때 비로소 걸작품이 생겨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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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는 자체를 투입하는 데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힘을 투입해야 창조가 가능합니다. 힘을 투입하지 않고는 어떤 물건도 생겨나지 않습니다. 완전히 투입하는 데서 완전한 대상이 성립한다는 원칙을 두고 볼 때, 하나님은 주체로서 대상을 만들기 위해 완전히 투입했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상을 위해 있겠다고 운동을 시작한 것이 창조입니다.
창조한다는 것은 힘의 투입을 말합니다. 투입을 했는데, 얼마나 투입했느냐? 하나님이 말씀으로 지을 때 ‘이렇게 되어라. 저렇게 되어라.' 하고 장난식으로 창조한 것처럼 알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여기에는 참된 생명을 완전히 투입하고, 참된 사랑을 완전히 투입하고, 참된 이상을 완전히 투입했습니다. 우리도 정성 안 들이고 피와 살을 투입하지 않은 것은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하기 전과 창조하고 난 후가 다릅니다. 창조하기 전에는 자기를 생각했지만 창조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대상을 위했습니다. 내가 있는 것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를 위해서다, 아들딸을 위해서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한다는 것은 자기의 본질을 투입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에너지를 투입했다는 것이고, 에너지를 투입했다는 것은 자기 본질의 감소를 말합니다. 대상세계 창조는 사랑으로 이루어졌는데, 하나님은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자기를 투입했습니다. 투입한 그것이 자기에게 열매 맺히게 한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열매 맺히게 했습니다. 투입함으로써 하나님이 소원(疎遠)함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만족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으로 지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침에 밥을 먹고도 힘든 노동을 하게 되면 배가 고픕니다. 그리고 빨리 피곤해집니다. 왜 그러냐? 힘을 투입하면 소모되기 때문입니다. 세상 만사에 손해 보아 가면서 좋아할 일이 없습니다. 반드시 플러스 되어야 좋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천지만물을 지은 것은 좋기 위해서 반드시 플러스 될 수 있는 무엇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플러스 될 수 있는 것을 언제 찾을 수 있느냐? 여기에 피조물의 완성이라는 표준이 있습니다. ‘이때까지 투입하면 그때부터 돌아온다.'는 것이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뭘 하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노력하여 그 한계점을 밀고 넘어가게 될 때 반드시 결과가 돌아옵니다. 이것이 우주의 법칙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을 지은 것은 하나님의 힘을 투입한 것입니다. 힘을 투입했습니다. 자기 자체를 소모했습니다. 그렇지만 투입할 수 있는 것을 완전히 투입해서 사람을 창조했으면 그 완성된 사람은 어디로 도망가는 것이 아닙니다. 완성되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에게로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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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데 있어서 1백을 투입했는데 1백보다 적은 가치의 것으로 돌아오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의 가치를 더해서 돌아오는 것입니다.
우주가 어떻게 출발했느냐? 하나님을 두고 볼 때 전부가 위하는 데서부터, 투입하는 데서부터 출발한 것입니다. 자기를 소모한 데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를 소모해 가지고 상대를 만들어서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둘 다 소모하는데, 소모하고 얻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만 가지면 아무리 소모해도 좋다는 말입니다. 그러한 개념이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창조를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손해나는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투입하는 것은 손해인데, 하나님이 왜 그렇게 했겠어요? 사랑은 모든 것을 채우고도 남을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에, 소모시켜서 투입했지만 그 대신 사랑을 찾아오는 것입니다. 참사랑은 투입할수록 점점 작아지는 것이 아니고,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커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참사랑이 작아진다는 원리라면 하나님 자체가 투입해가지고 소모되는 것입니다. 반대가 된다는 것입니다. 참사랑은 투입하면 투입할수록 커가는 것입니다. (237-106)


사랑에는 창조능력이 있기 때문에 지치지 않습니다. 사랑의 마음을 가지면, 아무리 투입해도 소모된 에너지 이상 언제나 보충할 수 있는 사랑의 힘이 있기 때문에 지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렵고 고통스럽더라도 싫지 않은 것입니다. 그것이 싫으면 어떻게 가겠어요? 사랑을 위하는 길에는 싫은 마음을 영원히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참사랑을 위하는 길에는 영원히 싫은 마음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본질에는 원수의 개념이 없습니다. 악의 개념이 없다는 것입니다. 참사랑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237-106)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중심삼고 투입, 투입, 투입하라는 것입니다. 투입을 하면 돌고 돌게 됩니다. 공기를 예로 들면, 절대 저기압과 절대 고기압이 있다면 그 중간의 기압이 생깁니다. 누가 부르지 않아도 하늘이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백 퍼센트 이상 투입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항상 하늘이 채워주는 것입니다. 우주의 원칙이 그렇습니다. 완전히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데는 영원한 운동이 연결되기 때문에 그 기준에서 영생의 논리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영생, 영원한 생명, 그렇지 않으면 통일원칙을 어디에서 끄집어 낼 거예요? 위하게 되면 빙빙 돌지요? 빙빙 돌아서 어디로 가요? 점점 작아져서 올라갑니다. 빙글빙글 돌아 넓게 퍼지면 내려가지만, 이것은 점점 올라가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동적으로 아담과 해와의 어깨 위에 양쪽 발을 올려놓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5-27)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왜 지었느냐? 지었다는 말은 힘을 투입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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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의 투입입니다. 힘의 투입이라는 것은 자체의 소모를 말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라도 힘을 잔뜩 뽑아냈는데, 그것이 돌아오지 않으면 소모될 수밖에 없습니다. (65-9)

하나님께서는 만물과 인간의 창조를 위해 온갖 힘을 투입하셨습니다. 전부를 투입하고 또 투입하셨습니다. 다른 것은 투입하면 전부 소모되지만 참사랑만은 투입하면 투입할수록 더 번성하고 생산됩니다. 참사랑은 100을 투입하면 120이 돌아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사랑을 실천하는 자가 망할 것 같지만 망하지 아니하고 영원히 번성하며 영생하는 것입니다. (219-114)

하나님이 왜 계시느냐? 무엇 때문에 계시려고 하느냐? 사랑 때문에 계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상대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사랑의 상대를 창조해야 되었던 것입니다. 본질적 이상으로 사랑을 중심삼고 창조를 시작했다는 것을 그동안 우리가 몰랐습니다. 사랑때문에 모든 피조세계가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208-231)


하나님의 소원은 참되게 줄 수 있는 세계적인 발판을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는 데 있어서도 어느 누가 참소할 수 없고, 받는 데 있어서도 어느 누가 조건을 제시할 수 없는 자유롭고 평화롭고 행복한 자리를 소원합니다. 그러한 자리를 세계적으로 넓혀서 온 만민을 거기서 살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거두려는 소기의 목적입니다.


  ② 사랑을 통한 창조이상 실현


사랑의 실현을 위해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었습니다. 인간과 만물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으로 하나되어 화기애애한 사랑의 세계를 이루는 것을 보고 기뻐하기 위해서, 그리고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으로 참된 부부의 인연을 맺고, 참된 사랑의 가정과 종족, 민족, 세계를 이루는 것을 보시고 기뻐하시기 위해서, 그리고 그러한 인간과 사랑으로 하나됨으로써 사랑의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 피조세계를 창조한 하나님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이상이었던 것입니다.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목적을 중심삼고 사랑할 수 있는 본마음의 바탕, 이것이 바로 심정입니다. 그 가치는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 가치를 논하려면 이 사랑을 붙들고 논해야 합니다. 가치라는 것은 상대적 여건이 이루어진 가운데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기쁨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심정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 목적은 어디에서 이루어지느냐 하면 인간에게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심정이 보이는 인간의 심정에서 현현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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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심정을 지닌 인간이 횡적으로 뻗어 나가 가정을 이루게 되면 그 가정이 세계적으로 뻗어 나가 세계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가정을 이루라고 하나님께서 아담과 해와에게 생육하고 번식하라는 축복을 하신 것입니다. 천주주의는 생육하고 번식해서 만물을 주관하는 그 바탕 위에서 성립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피조세계를 창조하셨겠습니까? 하나님은 피조세계를 통해 기쁨을 누리시고자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절대자라 하지만 기쁨을 홀로 느낄 수는 없습니다. 기쁨은 상대가 있어야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필요로 하시는 것은 지식도 아니요, 돈도 아니며, 권력도 아닙니다. 하나님 자신이 절대적이며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과학이 제아무리 발달해도 하나님이 만드신 것을 따라가거나 넘어설 수는 없습니다. 방대한 우주는 질서 속에 법도에 따라 운행되고 있습니다. 인간의 생각과 과학이 미칠 수 없는 방대한 우주를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또한 운행하시고 계신 것을 생각할 때, 하나님은 절대적인 과학자이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본연의 사랑에다 줄을 매고 그 사랑의 맛을 본 사람이 갈라질 것 같습니까? 꿀을 빨고 있는 벌의 꽁무니를 잡아당기면 그것이 빠지더라도 그 벌은 꿀에서 입을 떼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그 맛을 느낀다면 어떻겠습니까? 가다가도 되돌아와서 또다시 거기에 붙으려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통일교회의 원리에 의하면, 사위기대 완성이라 결론짓습니다. 그렇다면 사위기대 완성(四位基臺完成)이란 뭐냐? 부모의 사랑은 자녀들에게 전달되고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사위기대의 중심인 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자녀와 하나되고,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 하나되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되는 것이 사위기대입니다.
아담은 하나님과 하나가 돼야 합니다. 이를 결부시키는 것은 사랑입니다. 존재세계의 평면적인 대표자는 인간이며, 입체적인 대표자는 하나님입니다. 이것을 영원히 결부시키는 중심점이 바로 사랑이라는 끈입니다. 육체를 가진 인간이 하나님과 일체를 이루게 될 때, 그의 심정과 감정은 무한한 체휼경(體恤境)과 행복감에 취하게 됩니다. 결국 사랑에 의해서 하나님과 인간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에 의해 인간과 세계가 하나 되며, 하나님의 창조목적 이상세계의 실현은 여기서부터 출발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한 새 사랑, 즉 창조 법도에 의한 사랑이 결정된 자리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이상이 출발됩니다.
우리 인간들이 자고 나서 아침에 일어나면 그 다음에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아침에 아침식사를 하는 것이나 나가서 일하는 것, 전세계에 대해 염려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의 마음을 밤이나 낮이나 춘하추동 변함없이, 일생동안 변함없이 갖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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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남성, 그런 여성들이 완전히 수평선을 이루어 종적인 하나님과 더불어 완전히 90각도에 연결될 수 있는, 인정과 천정이 합할 수 있는 그런 자리의 사랑, 그런 사랑의 이상경, 그것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213-156)


하나님이 창조하기를 사랑을 위해 투입하고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본질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상대도 그것을 받기 위해서는 같이 투입해야 되는 것입니다. 위에서 투입하고, 아래에서 투입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해서 천지가 합덕, 하나되는 것입니다. 천지를 품고 움직일 수 있는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위대한 힘이 오는 것입니다. (237-106)


사랑을 점령하려면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려야 됩니다. 왜 그러한 사랑을 가져야 하느냐? 사랑은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작아지는 것이 아니고 커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역학세계에서의 자연현상은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작용하면 작용할수록 작아지지요? 자연계는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작아지지만, 참사랑의 세계는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커갑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참사랑을 중심삼고 창조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237-106)


 2)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


  ①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 지었다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 때문에 지었습니다. 인간은 왜 지음받았느냐? 사랑 때문에 지음받았습니다. 인간이 만물과 다른 것은 하나님의 아들딸로 지음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직계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대상자로 지음받았다 이겁니다. 이게 인간의 특권입니다.
완전한 플러스인 하나님은 완전한 마이너스를 창조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면 우주의 주체 입장에 선 하나님의 대상이 누구냐? 이게 문제입니다. 왜 하나님이 사람을 지었느냐? 사람은 하나님의 무형의 내적인 상대적 실체존재(相對的實體存在)다 이겁니다. (129-121)

사람을 창조하여 길러 가지고 천주의 주인인 하나님 대신 사랑을 가진 자로서 자기보다 높은 자리에 있게끔 해 가지고 주인 만들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204-193)


만유(萬有)의 중심이 누구냐?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어떤 존재냐?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앞에 상대적 가치로 등장한 것이 인간이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인간은 만유의 사랑의 표상체로, 하나의 등대와 같이 빛을 비춰 줄 수 있는 하나의 중심으로 나타난 존재입니다. 그런 존재가 사람입니다. (115-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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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뭐라구요?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이성성상이니 만큼, 플러스 마이너스 이성성상의 주체로 되어 있느니 만큼 그 주체 앞에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플러스 마이너스와 같은 이성성상의 형태가 필요합니다. 그 형태라는 것은 주체의 성품에 반대되는 형태가 아닙니다. 모든 성품의 상대성을 지니고 사랑이라는 본질에 딱 들어 맞을 수 있는 상대적 형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상대존재인데 그것이 딴 것에는 맞지 않습니다. 사랑에만 맞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에게는 무슨 지식이나 딴 것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이 우주의 중심이다 하는 것은 사랑 이상을 이루기 위해 피조세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대신하여 주인 앞에 첫 번으로 중심 자리에서 사랑받을 수 있는 특권을 가지기 때문에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 하는 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132-245)


하나님이 인간을 무엇 때문에 창조했느냐? 아들딸의 생명을 보기 위해 창조한 것이 아닙니다. 그 아들딸과 더불어 사랑을 하기 위해 인간을 창조한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을 창조한 목적은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그 바탕에서 생명이 창조된 것이지 생명을 만들어 가지고 사랑을 유발시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본래 하나님의 마음에 사랑이 싹트기 시작해서 생명이 시작하고, 그 생명이 사랑으로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결과도 사랑으로 되어야 합니다. 시작이 사랑이었기 때문에 끝도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빼면 우리 인간은 불행한 것입니다. (57-22)


하나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은 생명도 필요없습니다. 생명의 주체이신데 그런 것이 왜 필요해요? 그러면 무엇이 필요하냐?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에게 사랑이 필요해요? 사랑이라는 것은 상대적 관계에서 성립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사랑을 필요로 하는 하나님이 안 되어 가지고는 이 창조세계와 인간세계와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랑을 가지고 찾아오지 않고는 존재세계와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랑을 표준으로 정하고 나오는 것입니다. (121-99)


하나님이 사람을 제일 귀하게 여기는데 왜 귀하게 여기느냐? 하나님은 사랑의 대상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제일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사랑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사랑할 대상이 없으면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상대적 관계에서만이 사랑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제일 귀하게 여기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의 자리에, 사랑의 대상의 자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귀하게 여기는 것이 바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143-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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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왜 사람을 지었느냐,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그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로 부터 찾아지는 것입니다. 상대가 없으면 찾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최고의 귀한 것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상대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도 상대가 없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상대를 지은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도 상대로부터 절대적인 사랑을 이룰 수 있게끔 상대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도 사랑을 위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위해서 하나님도 계시는 것입니다. 사랑이 놀라운 것이 이것입니다. (143-310)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있고, 하나님도 사람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사랑이라는 것은 위하는 자리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본래 인간이 태어나기를 어디에서부터 태어났느냐? 하나님의 사랑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사랑 때문에 태어난 것입니다. 사랑이 기원입니다. (143-310)


하나님 자신이 사랑하기 위해 사랑의 대상이 필요해서 사람을 지었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혼자 할 수 없습니다. 대상권이 없으면 사랑이 성립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사랑이 절대 필요하니만큼 피조만물을 짓고 피조만물을 대표한 만물의 영장으로 사람을 지은 것입니다. 사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에 절대적 사랑 대상권의 가치를 준 것입니다.
사랑을 공유하기 위해 그 대상적 존재로 지은 것이 인간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 자체가 하나님의 몸입니다. 하나님의 몸이 된 아담과 해와 둘이 부부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부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상세계에 가서는 아담과 해와의 모습으로 하나님이 인류의 조상이 되어 영계와 지상세계를 치리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138-212)


  ② 사랑과 생명의 핵심을 모두 투입


하나님께서는 온 만물을 지으시고 그 만물의 주인공으로 인간 시조를 에덴동산에 지어 놓으셨습니다. 인간을 지으실 때는 하나님의 어떠한 희롱거리로 지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취미로 지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을 지어 만물을 대표하는 중심으로 세우게 될 때까지의 하나님의 수고와 정성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실 때, 온갖 정성을 다 들이시고, 또한 심혈과 당신의 생명의 핵심을 다 기울여 지으셨으며, 사랑과 애정을 몽땅 퍼부어 지으셨습니다. 어떠한 힘 가지고도 떼려야 뗄 수 없고, 갈라지려야 갈라질 수 없는 인연 가운데서 지으신 것입니다.
이렇게 지으신 인간이기에 그 인간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에게는 비로소 평화가 깃들 수 있는 것이고, 모든 정과 행복은 그 인간을 통하여만이 깃들 수 있는 것입니다. (128-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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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인간의 아버지요,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하나님이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 골수 중의 골수를 몽땅 부어 지은 인간이기에 이런 인간이 하나님을 끌면 안 끌려 오실 수 없는 것이요, 또한 하나님이 인간을 끄시면 안 끌려 갈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인연 가운데서 내용과 목적이 일치할 수 있는 인간으로 지으신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지어 놓은 사람을 보고 하나님이 찬양할 수 있는 어떠한 말씀이나 시가 있다면 그것은 세상의 어떤 시인이나 문인도 표현하지 못하는 최고의 작품이 될 것입니다. 그 대상은 하나님도 아니요, 만물도 아니요, 오직 만물을 대표한 인간입니다. (20-207)


하나님이 피조만물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존재가 우리 인간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을 만들기 위해 전심전력을 다하고 자기의 모든 것을 다 투입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자신의 전체를 투입해서 뭘 하자는 것이냐? 우주에 사랑의 핵을 설정하려는 것입니다. 그것이 창조이상이었습니다. (166-147)


사랑을 말할 때 하나님에게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물에는 있지만 하나님에게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있어도 마음 속에 내적으로 있지 모양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뭘 해요? 그게 누구에게 있느냐 하면 인간인 아담에게 있고 해와에게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보다도 더 귀한 것을 인간이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206-118)


인간이 욕망의 최종착점, 욕망의 최대의 완성기준을 향할 수 있는 방향성이 있는데, 그것이 우리에게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야 됩니다. 성경에는 ‘우리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다.'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무슨 말인지 해석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건 위대한 말입니다. 제아무리 하나님이라 해도 하나님과 내가 사랑을 속삭일 수 있는 사랑의 대상권이 되면, 그 사랑의 대상권과 하나되면 우주를 상속받을 수 있는 권한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라는 원칙기반을 통해서 하나님이 지은 세계, 영계, 무형세계, 실체세계, 이 전부가 우주의 상속권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이 놀라운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137-47)


 3) 아담 해와를 통한 사랑이상


  ① 아담을 무형이신 하나님의 체로 지었다


하나님은 왜 아담과 해와를 필요로 했느냐? 두 가지의 목적이 있습니다. 첫째는 사랑의 이상을 성사하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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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무형의 하나님이 형상을 쓰고 나타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형의 하나님이 유형의 형상을 쓰고 유형세계와 관계맺을 수 있는 그 기초, 그 핵심이 아담과 해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과 해와가 완성해서 영계에 가면,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의 몸과 같고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의 마음과 같은 자리에서 보좌하는 것입니다. 하나의 사람, 하나의 영적 세계에 완성한 사람을 실체세계의 몸뚱이와 마음과 같은 하나의 결과로 이루어 놓자 하는 것이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를 창조하신 목적입니다. (92-147)


하늘나라에 무형의 하나님이 혼자 있어서는 뭘 해요? 보이지 않는 하나님 가지고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부모가 되려면 체를 갖고 느낄 수 있어야 됩니다. 인간과 같은 체를 입어야 되겠기 때문에, 체를 입으려니 부득이 아담과 해와를 이중적 존재로 짓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133-91)


아담과 해와는 왜 이중구조(二重構造)로 만들지 않을 수 없었느냐? 무형의 하나님과 똑같이 되려니 마음과 몸이 일생을 거쳐 살면서 저나라에 갈 때까지 하나되었다는 기준을 세워야 됩니다. 그것이 안 되고는 저나라에 나타나면 그 형상이 하나님과 하나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실체적 왕권을 가진 부모가 무형의 부모인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서 영원한 천상세계에 체를 입은 왕권을 현현시키기 위해서 아담과 해와를 이중구조로 지었습니다.
하나님도 아담과 해와와 연결짓지 않고는 세상과 관계를 맺을 길이 없습니다. 아담과 해와와 관계를 맺어야만 아담과 해와의 아들딸과 관계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133-91)


하나님이 사람을 지은 이유는 같은 부모의 자리에 세우기 위한 것이요, 체를 입기 위한 것입니다. 같은 부모의 자리라는 것은 안팎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외적인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요, 하나님은 내적인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몸적인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이고, 마음적 하나님이 무형의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이 인류의 부모입니다. 본래의 부모입니다. 그 부모가 여러 명 있는 게 아닙니다. 한 분입니다. 한 분이니까 그 한 분이 들어와 계실 수 있는 아담과 해와, 남성 여성의 이성성상을 가진 분성전과 같이 만들어 놓고 하나님이 거기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임재해서 작용해야 아담과 해와 둘이 이상적 작용을 하지, 하나님이 작용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뜻이고 뭣이고 모른다는 것입니다. (133-91)


하나님은 아버지의 자리, 부모의 자리에 선 분입니다. 인간은 땅의 하나님으로 세우고,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하늘의 하나님으로, 종적인 하나님으로 세워 가지고 이것이 천지합덕, 이래 가지고 사랑으로 살아보자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혼자는 외롭습니다. (22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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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주는 종적인 참사랑을 중심삼은 종적인 아버지이고,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인간 조상인 아담과 해와는 완전히 90각도로 하나될 수 있는 자리에 선 완성된 부모, 횡적인 몸의 부모라는 것입니다. 창조주는 참사랑을 중심삼은 마음의 부모요, 아담과 해와는 횡적인 몸뚱이의 부모인데, 이 둘이 합해 하늘 부모와 땅 부모가 하나되어, 천(天), 인(人)이 합해 가지고 아들딸이 나왔더라면 이 땅 위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은 종교가 필요없는 것입니다. 그냥 그대로 하나님의 나라로 가게 됩니다. 타락 때문에 복잡한 이런 문제가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우리의 몸뚱이와 마음이 갈라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210-117)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지으신 목적은 둘이 사랑하여 하나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담은 아담을 위해, 해와는 해와를 위해 만들었던 것이 아닙니다. 아담은 해와를 위해, 해와는 아담을 위해 지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 자신의 사랑과 기쁨을 위해 아담과 해와를 지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를 지은 것은 지식, 권력, 돈 때문이 아닙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그런 것들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오직 사랑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해와를 지은 것은 지식을 주기 위한 것도 아니고 권력을 주기 위한 것도 아니며, 많은 재물을 주어 잘살게 하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그들을 창조한 목적은 사랑의 실체로 세우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가정을 통해 사랑의 기반을 만들고자해서였습니다. 사랑이 없는 피조세계는 지옥이며, 당신 또한 존재가치가 무의미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사랑 때문이었다는 것이 창조의 절대법(絶對法)인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왜 창조했느냐? 남자는 동쪽이요 여자는 서쪽인데, 종적인 하나님을 중심삼고 동서 사방, 평면이 필요합니다. 여기에는 360도이기 때문에 무한한 면이 있는 것입니다. 그 면을 통해 뭘 하려고 하느냐? 하늘나라의 백성을 생산하는 공장, 출발지가 이 지구성(地球星)입니다.
그래서 하늘나라의 백성은 이 지구성에서 살다 간 사람입니다. 가 보라구요, 이 다음에 지구성 외에 딴 나라는 없습니다. 뭐 우주에 사람이 산다고 그러는데 살긴 뭘 살아요? 우주는 전부 다 사람 때문에 지은 것입니다. (266-161)


우리 인간이 하나님보다 나아요, 못해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는 종적인 아담과 해와밖에 못 만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아들딸을 낳게 되면 스무 명도 더 낳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은 못합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 밖에 못 만들었습니다. 왜? 종적인 것은 절대적인 기준이 하나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남자 하나, 절대적인 여자 하나 밖에 못 만든다는 것입니다. (236-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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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의 아들딸로 태어났지만, 하나님의 속에 있던 쌍태가 실체로 나타난 것입니다. 무형의 남성 여성의 쌍태가 유형의 남성 여성의 실체로 나타난 것이 아담과 해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이렇게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무형의 심정권의 내용을 실체 심정권으로 완성시켜 무형과 유형이 하나되기 위한 것이 창조이상입니다. 창조이상은 사랑을 중심삼고 대상권을 이루자는 것입니다. (237-150)


아담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내재적 성품의 절반을 실체로 전개한 표시체다. 해와는 무엇이냐? 여성 성품을 실체로 전개해 놓은 표시체다, 드러낸 존재다. 드러냈다는 것은 실체를 가졌다, 표시체라는 것입니다. 드러내기 전에 드러나지 않은 동기가 있어서 그것을 드러냈다 이겁니다. 그 드러나지 않은 동기가 무엇이냐 하면,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무형의 실체되는 하나님이시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140-121)


1남과 1녀는 무형이신 하나님의 실체대상으로 나타난 아들딸입니다. 남자는 하나님의 플러스(+) 성품을, 여자는 하나님의 마이너스(-) 성품을 대신할 실체대상(實體對象)입니다. 창조이념은 양성(兩性)의 중화체(中和體)로 계신 하나님의 성상(性相)을 이성(二性)으로 분립했다가 다시 하나님의 본성상(本性相)을 닮은 모습으로 합성일체화(合性一體化)하는 것입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는 각각 하나님의 일성(一性)을 닮아 나왔습니다. 따라서 이들 1남 1녀의 결합은 하나님의 플러스(+) 성품과 마이너스(-) 성품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닮은 중화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인간의 두 사람, 즉 부부는 하나님의 전체를 표상하는 결합체입니다. (9-83)


  ② 부부는 제 2 창조주의 자리


부부가 하나되어 아들딸을 낳음으로 말미암아 영속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창조주의 자리에 올라가 아들딸을 낳아 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창조한 기쁨을 평면 세상에서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아내는 아들딸과 같아야 됩니다. 아들딸과 형제의 자리를 합한 것입니다. 그러니 갈라질 수 없습니다. 사랑이 함부로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들딸은 이런 모든 전통을 밟아 거쳐간 후에 낳아야, 하나님이 본래 창조이상으로 바라던 본연적 기준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이 천국 기반이라는 것입니다. (223-7)


이렇게 부부가 아들딸을 낳아 부모의 자리에 올라감으로써 하나님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 얼마나 좋아했는지를 체휼하게 되는 것입니다. 천지의 대주체이신 하나님의 모든 권한을 상속받을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갈 수 있는 체휼적 환경을 체휼적 내용으로 전수시켜 주는 것이 아들딸의 생산입니다. 아들딸을 생산해서 고이 키워 결혼시키기까지가 어머니 아버지의 책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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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아담과 해와를 길러 가지고 결혼시켜야 했는데 못 했습니다. 아담과 해와도 아들딸을 낳아 가지고 결혼을 못 시켰습니다. 이 한을 풀어야 됩니다. 이것이 교육의 원론이 되는 것입니다. 결론은 간단합니다. (223-128)


인간은 횡적인 부모의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는 자식인 동시에 형제입니다. 형제인 동시에 부부요, 부부인 동시에 아들딸을 낳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아들딸을 낳아 가지고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고 기뻐하던 모든 전부를 상속받는 것입니다. (223-249)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를 창조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창조주의 입장에서 그 기쁨을 느끼게 하기 위한 것이 자녀라는 것입니다. 자녀는 아담과 해와로 말미암은 제2 창조물입니다. 무형의 하나님은 유형의 실체로서 아담과 해와를 지었습니다.
아담과 해와가 완성하면 하나님의 유형실체의 완성으로서 사랑의 중심 대표가 됩니다. 그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를 창조하여 기쁨을 느꼈던 것과 마찬가지로 실체적으로 하나님의 창조의 기쁨을 느낄 수 있게, 체험하게 하기 위해서 준 것이 자녀입니다. (238-7)


하나님이 이상적인 우주의 원만한 가정이상을 이루려고 하시기 때문에 자녀와 형제와 부부와 부모의 자리를 갖춰 자기의 사랑을 상속해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가졌기 때문에 나를 제2의 창조주의 자리에 세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들딸입니다. 아들딸이 그렇게 귀한 것입니다. (238-7)


여자들은 아기를 임신하게 되면 새로운 세상이 생겨납니다. 그 아기가 활동하기 시작하면 꿈이 많습니다. 여자는 그래야 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시던 그 꿈, 꿈이 많습니다. ‘앞으로 이 아기가 자라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하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면서 아담과 해와를 준비하던 그 마음자리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여자의 입체적 꿈이 그러는 것입니다. ‘나 혼자가 아니구나. 천하가 내 아들딸의 손아귀에 있고 내 품에서 자라는구나.' 그걸 생각하면서 사랑을 중심삼고 천하를 호흡하고 있는 것입니다. (228-248)


아기를 낳는 자리에 나가는 것은 결혼으로부터 상현세계를 점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자리에 올라감으로 말미암아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 이후에 인간을 얼마나 사랑했다는 내연을 체휼시키는 놀음입니다. (224-7)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과 같이 사랑해야 거기에 하나님이 임재하지, 아담 제멋대로 하고 해와 제멋대로 하면 안 된다 이겁니다. 완전히 하나 돼야 무형의 하나님이 여기에 왕래 한다 이겁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의 감투를, 사랑의 보자기를 씌우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이상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냄새 맡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디를 가도 사랑의 냄새를 킁킁 맡는다는 것입니다. (11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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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하나님도 키스하는 걸 좋아하겠나? 무형의 하나님은 둘이 함께 붙어 있으니 자극을 모릅니다. 사랑할 때도 하나 됐다 떨어졌다 이러지요? 부처끼리 맨 처음에 죽자사자 사랑할 때는 우레 소리가 나고 번개가 번쩍번쩍하는 것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비 온 후에 구름이 개이는 것과 같이 사랑이 한번 불탔다가는 다시 영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224-7)


하나님은 이성성상의 중화체인 동시에 격(格)으로는 남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격 사랑을 대해 상대적 입장에 있는 것이 남자이기 때문에 이것은 수직관계입니다, 수직관계. 여자는 수직관계가 아닙니다. 여자는 뭐냐? 수직의 상대되는 횡적 관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격을 중심삼고 격에 따라 볼 때 남자는 종적 관계인 상하관계이고 여자는 좌우관계인 횡적 관계입니다. 그러면 종(縱)이 먼저예요, 횡(橫)이 먼저예요? 종이 먼저이기 때문에 먼저의 자리에 가까이 하려는 것은 모든 자연의 이치가 추구하고 찾아가는 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딸보다 아들입니다. 이래야 다 정리되는 것입니다. (177-302)


여자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생리가 있지요? 누구 때문이지요? 후손이 얼마나 귀하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아담과 해와를 지은 목적은 하늘나라 백성을 생산하기 위한 것입니다. 영계에는 생산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종적인 사랑의 주인이기 때문에 종적인 것에는 축이 하나밖에 없습니다. 한 점밖에 없습니다. 한 점에서는 생산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횡적인 면적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과 하나되어 하늘나라의 백성을 많이 번식해서 이양하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입니다. (222-55)


하늘나라 백성의 생산지가 부부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인간을 창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게 하늘나라의 아들딸,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엮어질 수 있는 하늘 황족을 중심삼고 연결을 확대해 하늘나라의 백성을, 이 땅 위에 우리 인류 시조의 육신을 통해 가지고 하늘나라의 백성을 생산하기 위한 기지였다는 걸 누가 알아요? (218-12)


아담과 해와 두 사람이 사랑하는 것을 보신 하나님은 외로운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당신 속에 내재된 사랑의 소성이라는 것이 이다지도 강력한 것이었던가 하고 상대적인 기쁨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것을 하나님이 보겠나, 안 보겠나? 천하 시공을 초월하는 하나님이 이 세계 50억 인류가 사랑하는 밤이 되면 눈을 감겠나, 어쩌겠나? 보고 있으면 기분이 어떻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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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부인, 좋은 남편이 얼마나 많아요? 생각해 보라구요. 천만사가 다 벌어질 텐데 말이에요. 할 수 없이 여편네 놀음하고, 할 수 없이 끌려가고, 할 수 없이 비위 맞추고,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게 무슨 사랑이에요? 그게 인생살이에요? 세상이 전부 하나님이 바라던 창조이상대로 꽃향기가 풍기는 에덴동산같이 나비와 벌이 마음대로 날아다니며 천지에 화동하면서 살 수 있는 환경이 돼 가지고 하나님이 거기에 취해 잠이 들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나. 그거 생각해 봤어요? 한번 그렇게 살아 봐요. (222-142)


하나님은 부부의 자리에 못 갔고 부모의 자리에 못 갔습니다. 이것을 복귀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참부모가 와야 됩니다. 참부모가 와서 종적인 부모와 횡적인 부모가 되어야만 하나님이 창조 당시에 이상적 자녀를 번식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모든 전부가 여기에서 열매 맺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종적 창조만 했지만, 영육 실체가 완성된 자리에 있는 아담은 횡적 창조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들딸 둘 밖에 창조를 못했지만, 하나님을 대신하여 실체 부모의 자리에 선 사람은 아담과 해와를 무수히 낳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열 명도 낳을 수 있고, 스무 명도 낳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못 합니다. 이렇게 횡적인 확대의 길을 중심삼고 많은 백성이 태어남으로써 하늘나라의 백성으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236-198)


참부모님은 수많은 종교의 열매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위업을 대표할 수 있는 열매입니다. 역사의 종착점이요, 종교의 목적점이요, 인류의 최고의 희망입니다. 모든 전부가 여기서 귀결되는 것입니다. 여기는 자유입니다. 개인 해방, 천상천하가 다 여기에서 해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사랑으로부터 통일천하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220-157)


 4) 사랑이상은 가정 중심으로 완성된다


  ① 하나님의 창조이상은 4위기대 완성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무엇이냐? 아담과 해와를 지어 놓고 그냥 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를 만든 것은,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늙어 죽게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이들이 장성하여 서로 이성에 대한 상대적인 심정을 통해 하나님을 중심한 참된 지상천국을 건설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한 사랑의 보금자리를 만들도록 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남성인 아담은 하늘을 대표하고 여성인 해와는 땅을 대표합니다. 천지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둘이지만 그들이 횡적으로 하나되면 하늘과 땅이 통일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하고 두 사람이 통일하고 나면 천주(天宙)는 자동적으로 통일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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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해와를 창조하신 그 당시보다도 그를 통해 펼쳐질 미래에 더 큰 뜻을 두셨습니다. 가장 존귀한 것이 오도록 하였습니다. 그것은 창조목적을 완성하는 일입니다. 사랑을 중심으로 한 사위기대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개체의 품성을 중심삼고 플러스적 성품의 대표로 아들인 아담을 지으시고 그 아들을 최고로 사랑하셨습니다. 그 아들을 사랑하는 데는 여성적인 사랑을 합해 가지고 사랑하셨습니다. 또한 딸인 해와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도 남성적인 사랑을 합해 가지고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분립된 둘이 하나됨으로써 제3의 출발의 기원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는 보다 새로운 희망을 촉발시켜 주는 사랑의 대상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의 사랑과 부모의 사랑을 대신한 실체로 태어났습니다. 따라서 그 아들딸들을 하나님도 좋아하고 아담도 좋아하고 해와도 좋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삼대상목적(三對象目的)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삼대상목적이 이렇게 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창조목적을 완성하여 창조이상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창조이상 실현은 남녀가 결혼해서 사랑으로 하나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된 후에는 아들딸을 가져야 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천지 이치는 상하 전후의 관계가 연결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제가 있으면 오늘이 있고 오늘이 있으면 내일이 있는 것입니다. 연결돼야 합니다.
그렇지만 부부끼리만 가지고는 오늘은 있어도 내일은 없습니다. 내일이 없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입니다. 부부가 위라면 아래(자녀)가 있어야 됩니다. 아래가 없으면 끝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지 이치는 상하가 겸해야 좌우가 됩니다.
부모들은 그 아들딸들을 결혼시켜 놓고야 내 책임 다했다고 합니다. 부부된 부모와 그리고 아들딸이 결혼해야 상하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상하관계가 이루어져야만 이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좌우로서 남편과 아내가 합했지만 상하관계의 부모와 자녀가 있어야 종횡이 연결돼 가지고 이 우주의 이상적 구형세계(球形世界)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또, 여기에 형제자매가 겸해야 드디어 구형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이상 실현을 완성하게 되면 횡적으로 종적으로 연결되는 십자적 원형을 그려야 됩니다. 그 두 이상 실현권을 남자와 여자가 느끼게 될 때 비로소 스스로 이상적인 자리에서 산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사위기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이상 완성은 사위기대 완성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사람은 나에게만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나로부터 삼단계를 거쳐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나와 상대와 자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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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중심삼은 나와 상대와 자녀의 관계, 이것이 사위기대입니다. 그리고 이 사위기대를 완성하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입니다.
사위기대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먼저 부부의 심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래야 자녀의 심정을 가질 수 있고 부모의 심정을 가질 수 있습니다.

  ② 창조이상은 가정 완성으로 이뤄진다

인간 조상을 통한 하나님의 이상은 남자와 여자가 결합하여 이상적인 가정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이상적인 가정의 중심은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닙니다. 가정이란 부모와 자녀, 부부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묶음인데, 그 묶어진 중심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가정을 완성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가정은 만고불변의 기원이며 기틀입니다. 이것은 아버지도 고칠 수 없고, 형제도 고칠 수 없으며, 어느 나라 어떤 제도로도 고치지 못합니다. 또한 세계적으로도 고치지 못하며, 하늘 땅도, 하나님께서도 고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이라는 것에는 영원히 혁명이라는 명사가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부자지관계가 있어야 되고, 부부관계, 형제관계가 있어야 됩니다. 즉 이 세 관계가 한 점에 있어야 됩니다. 그 중심점은 하나입니다. 상하, 좌우, 전후의 중심이 달라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중심점이 틀리게 되면 상하, 좌우, 전후관계의 균형이 다 깨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상․하․좌․우․전․후 그리고 하나의 중심점까지 모두 7수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7수를 이룬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중심삼고 완전한 참사랑으로 하나되고 이 모든 것이 전부 완전히 구형을 이루어 조화와 통일을 이루는 가정이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 부부, 그리고 형제자매들이 모두 참사랑을 중심으로 합하기를 원하는 곳이 우리의 이상가정입니다. 여기에서 영원한 세계적 평준화가 시작됨으로써 지상천국이 출발되는 것이요, 또한 천상천국도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사랑의 본체이므로 참사랑과 연결되면 모두가 같은 몸이 됩니다. 부모는 하나님을 대신한 살아있는 하나님이고, 남편과 아내는 서로 다른 한쪽의 하나님이고, 아들딸은 또 하나의 작은 하나님입니다. 이렇게 3대가 참사랑을 중심하고 이루어진 가정조직이 천국의 기반입니다. 그런 기반을 이루지 않고는 천국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가정이란 우주의 중심입니다. 가정 완성은 우주 완성의 기초가 되기 때문에 가정에서 사랑하는 것과 같이 우주를 사랑하면 어디든지 무사통과입니다. 이럴 경우 하나님은 전체 우주의 부모로서 사랑의 복합적인 중심자리에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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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중심한 창조 본연의 가정적 기대에는 남자의 사랑, 여자의 사랑, 아들의 사랑, 딸의 사랑, 부모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이런 소화된 자리에서 부모를 사랑하고, 남편을 사랑하고, 아들딸을 사랑하면 누구나 천국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한 가정은 사회의 윤리적 기반이며, 인간 세계에서 가장 본이 되고, 근원적이고, 일차적인 조직입니다. 이러한 가정에서 사랑이 최선의 자기기준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어느 때냐 하면 태어날 때, 결혼할 때, 죽을 때입니다. 그러면 날 때는 어떻게 나야 하느냐? 잘 태어나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결혼할 때입니다. 결혼이란 살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즉, 사위기대를 이루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우주의 공법을 지구상에 세워 놓아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인간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주의 법도가 지향하는 내용을 갖추고 그 형태를 갖추기 위한 것이 가정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은 인간 시조인 아담과 해와가 선한 자녀를 번식하여 하나님을 중심한 하나의 세계를 이룩하는 것이었습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 하였습니다. 한 가정이 평화로우면 만사가 다 잘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완성한 가정은 평화의 가정이요, 이것은 천국의 기초입니다.
가정의 원동력은 참사랑입니다. 나보다도 하나님을, 그리고 대상을 생명과 같이 사랑하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 이것이 참사랑입니다. 이 우주에 하나님께서는 참사랑의 힘보다 더 큰 힘을 창조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참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219-114)


이 지구상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다면 아담을 중심한 단일문화권(單一文化圈)이 형성되었을 것입니다. 오늘날과 같이 수많은 민족이 각기 다른 문화와 문명을 형성해 온 것이 아니라 아담을 중심으로 한 단일문화, 단일사상, 단일문명을 가진 세계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었더라면 문화․역사․풍습․언어․전통 등이 모두 통일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권 안에서 이상적인 가정을 이루고, 종족을 이루고, 민족과 국가를 형성하고, 더 확대되어서 아담의 이상이 실현되는 하나의 이상적 세계를 이루었을 것입니다.
나무의 뿌리․줄기․잎이 하나의 생명으로 연결되어 있듯이, 사랑을 중심삼고 위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아래로는 만민을 형제와 같이 하나의 생명체, 사랑의 생명체로 화(化)하게 해 가지고 하나님을 중심한 영원한 이상세계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으로 보는 세계관입니다.
이러한 세계의 인간들에게는 구원이 필요치 않고 메시아도 필요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세계에서 사는 인간은 하나님의 선한 아들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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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하나님이 만물세계를 지으신 뜻


  ① 만물을 지으신 목적


본래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놀이거리로 지으신 것이 아닙니다. 취미로 지으신 것이 아닙니다. 목적도 방향도 없이, 어떤 이념적인 내용도 없이 그저 지으신 것이 아닙니다. 크나큰 목적과 대우주의 이념을 두고 지으셨습니다. 그래서 지극히 작은 미물(微物)에서부터 우주에 이르기까지 모든 존재물에는 하나님의 심정을 통한 이념이 깃들어 있는 것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이념을 두고 지으신 목적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이념의 세계, 즉 사랑과 더불어 통하고, 사랑과 더불어 즐기고, 사랑과 더불어 살고, 사랑과 더불어 죽는 세계를 목적하신 것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잠에서 깨어 눈을 뜨면 눈앞에 펼쳐진 만상(萬象)을 보게 됩니다. 보여지는 그 만상을 통해 무엇인지 모를 간접적인 인상을 받고 그 반응되는 감각으로 생활에서의 감각을 높여가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지극히 작은 미물이라도 반드시 우리와 인연되어 있고 관계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무시해도 그 미물은 그날 그날 천륜의 이념에 따라 존재의 가치를 드러내며 인간과 더불어 인연맺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지극히 작은 존재에서부터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만물의 영장이라 하는 인간에 이르기까지 그 존재목적을 중심삼고 보면, 하나님의 대우주의 이념을 통할 수 있는 사랑의 이념권내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작은 것은 대우주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있어서 큰 분야를 맡고 있는 것에 흡수되어 움직이는 것입니다. 작은 것은 큰 것에 흡수되어 그것의 재료가 되고, 한 요소가 되어 대이념을 중심하고 하나의 목적을 향하게 됩니다.
역사는 이렇게 진전되어 나오는 것이고, 존재세계는 천륜이란 원칙의 궤도에 따라 하나의 목적을 위해 움직여 나온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9-164)


하나님이 왜 만물을 지었느냐? 자기가 사랑할 대상을, 대상자를 갖기 위해서입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대상권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가 먹고 살다가 자기의 본연의 세계로 돌아와서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의 본국에 들어와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142-76)


성경을 보면 천지 창조한 것을 간단히 말씀했습니다. 말씀으로써 천지만물을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별이 생겨라' 하면 별이 생겨났고, ‘지구성아, 생겨나라' 하면 지구성이 생겨났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무한한 질서와 법도를 따라 전진적인 원칙을 계승시켜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으로 발전시켜 나온 것임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이 모든 만물을 지어 놓고 만물의 정수로서 집약시켜 이루어 놓은 것이 아담과 해와, 인류의 조상입니다. (6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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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기독교 신자들은 생각하기를 하나님은 전지전능하기 때문에 말 한마디로 ‘이러한 천지가 되라' 해서 이렇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투입했습니다. 있는 정력을 다 투입했다는 것입니다. 있는 사랑의 힘을 다 투입해 가지고 미래에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딸, 자기의 사랑하는 가정을 위한 예물로, 선물로 지었다는 것입니다. 전부 다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관념을 가지고 우리가 만물을 바라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112-289)


창조할 때 무엇으로 했느냐? 처음에 하나님의 뜻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더불어 계획이 있었습니다.
인간을 창조해 가지고 이러이러한 인간세계를 만들겠다는 본래의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76-92)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지을 때는 환경을 먼저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환경 창조를 먼저 했다 이겁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거기는 반드시 주체 대상을 중심삼고 작용하는 세계입니다. 결과가 그렇게 된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이 합해서 작용하는 현상세계로 자연계는 전개되어 있습니다. (131-217)


천지 창조의 이치를 보게 될 때, 핵심을 먼저 만들어 놓고 상대를 만든 것이 아닙니다. 핵심을 만들어 놓기 전에 상대적인 여건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사람을 만들기 위해 흙을 먼저 만들어 놓고…. 외적인 것을 기반으로 하여 내적인 것을 세워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게 천지창조의 이치라는 것입니다. 현재의 것보다 더 큰 것, 무가치한 데서 더 가치있는 것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천지창조의 이치가 그렇다 이겁니다. 인간창조를 보게 될 때에도, 인간을 짓게 될 때에는 몸뚱이를 먼저 만들어 놓고 영을 만들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152-319)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지은 만물을 바라보시고 자랑하고 싶으셨습니다. 모든 피조물을 바라보게 될 때에 무한히 기쁘셨던 것입니다. 그 기쁜 마음을 가지고 ‘선한지라 선한지라.' 하고 거듭거듭 하신 이 말씀은 누구에게 하신 말씀이었느냐. 만물에게 하신 말씀이었다는 것입니다. 만물을 대해 그렇듯 간절한 마음을 품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5-236)


하나님이 피조세계를 지으실 때 거기에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지어 놓고는 보기에 선한지라 하셨습니다. 기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기쁨이 무엇입니까? 어떤 목적을 이루었을 때 느끼는 것입니다.
지으신 만물에 하나님의 목적의식이 내재되어 있기에 창조된 만물을 놓고 하나님은 기쁨을 느끼셨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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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복귀의 세계는 어떠한 세계냐? 한마디로 말한다면 삼라만상의 개체 개체를 보면서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심정적인 인연을 입체적으로 갖춘 사람들이 사는 세계입니다.
하늘이 보시는 인격의 가치는 거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옛날에 성 프란체스코 같은 양반이 동물을 보고, 혹은 새를 보고 설교했다는 말도 거짓말이 아닙니다. 꿈같은 이야기지만 꿈이 아니고 사실입니다. (9-168)


사랑은 혼자 있을 때에도 있지만, 사랑의 작용은 상대가 있기 전에는 생겨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라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는 사랑이지만, 그 사랑은 혼자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혼자서는 사랑의 기쁨을 느낄 수 없고, 사랑의 충동을 느낄 수 없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이 우주를 짓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고 기뻐할 수 있는 상대로 우주를 창조했습니다. 그리고 우주를 창조하고 나서 그 우주의 주인으로 아담과 해와를 창조했습니다.


  ② 신비의 우주, 그 규모와 구조


피조세계의 모든 것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딸이 사랑의 이상을 찾아 나아갈 수 있도록 교재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상대적 구조입니다. 광물도 주체와 대상의 관계로서 작용하고 원자도 양자 전자가 주체와 대상의 관계로서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작용하지 않고는 존속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운동을 하지 않고는 영속과 존속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는 인간을 중심삼고 그 중심점에 도달할 수 있도록 창조된 세계라는 것입니다. (137-59)


우주는 무엇이냐? 하나님의 몸과 마찬가지입니다. 보이는 몸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분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진짜로 사랑할 수 있다는 관념이 성립됩니다. 우주를 사랑한다는 것이 실감난다 이겁니다. 여러분 머리도 이렇게 쓰다듬어 주고 그러지요? 옷도 뭐가 묻으면 털지요? 그거 왜 그럽니까? 내 것이니까, 나와 같이 있기 때문에, 그런 관념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면, 마음 가운데 하나님을 모시고 마음이 하나되고, 몸이 하나되고, 만물이 하나되고, 이런 통일의 세계를 이루어야 합니다. (86-174)


이 우주가 얼마나 크냐 하면 몇억 광년입니다. 빛이 1초 동안에 30만 킬로미터를 가는데, 그 30만 킬로미터가 얼마냐 하면,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을 돌 수 있는 거리입니다. 그 거리를 1초 동안에 달리는 빛이 1년 걸려서 가는 거리를 천문학에서는 1광년이라 합니다. 그런 광년을 단위로 삼아 출발한 빛이 몇억 광년이 되어도 아직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그렇게 큰 우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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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니치 천문대에서는 지금까지 100억 광년 떨어진 저 세계의 별까지 발견했는데, 이제는 150억 광년 떨어진 저 세계 별도 볼 수 있는 시대가 왔고, 그 이상 시대에 들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우주가 얼마나 크냐 하면 그것도 원리적 수입니다. 210억 광년, 그렇게 크다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빛이 여기서 출발해 가지고, 이게 출발해서 1초 동안에 3억 미터, 빛의 속도가 3억 미터 갑니다. 거리로 말하면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을 도는 거리입니다. 일곱 바퀴 반이나 되는 거리입니다. 딱 하면 벌써 일곱 바퀴 반을 돌아요. 그렇게 빠른 빛이 하루 걸려도 허리가 구부러지고, 생각이 다 둔해 가지고 ‘나 모르겠다.'할 텐데 백년이 아니고 백의 몇 만 배입니다. 백의 백만 배, 그게 1억인데 1억 광년. 출발해 가지고 1억 광년이니다. 아직 가고 있는데 사람이 백 살 산다면 백만 사람이 죽어갑니다. 1억 광년이니까 백 사람이 나서 계속해서 백년을 살다 죽어가기를 백만 사람이 죽을 그때에 가서 또 가는 것입니다.
그럼 210억 광년하면 얼마예요? 그 사람들이   이어서 살고 죽고 또 살고, 백 살까지 살고, 백 살까지 살고 이렇게 2억 천만 명이 살아서 그만큼 가는데 또 계속 갑니다. 그 먼 거리가 직선으로 가지 않습니다. 이게 둥글둥글둥글 돌고 있다 이겁니다. 이러한 우주라는 거입니다. (181-195)


도대체 우주의 완성이 뭐냐? 우주를 완성하려면 내가 완성을 해야 됩니다. 아무리 우주가 완성되었다 하더라도 내가 완성 못 하면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좋더라도, 외적 세계가 좋아 춤을 춘다 하더라도 자기가 지금 고통에 사무쳐 있다면 그 모든 외적 세계의 기뻐하는 환경도 나와 관계가 없는 것임을 우리는 아는 것입니다. (166-210)


우주의 완성은 외적인 세계도 좋아야 하지만 내적인 나 자신, 나도 좋아야 합니다. 좋은 데는 마음도 좋고 몸도 좋아야 됩니다. 내 세포로 보면 세포가 다 좋아야 됩니다. 눈의 세포와발바닥에 있는 세포는 다르지요? 다릅니다. 다르지만 그 세포들이 다 좋아하고 손의 세포도 좋아하고 모든 세포들이 좋아하고, 몸과 마음 어디 하나 남기지 않고 전체가 좋아할 수 있는 그것이 그냥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되어 연체적(連體的)인 내용을 중심삼고 공명적(共鳴的)인 사랑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세계라야 우주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166-210)


  ③ 자연은 사랑이상을 가르쳐주는 교재


기도하는 사람들은 자연을 제1의 성경이라고 했습니다. 제2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엮어 온 성경을 보면 내용을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그 내용을 보고 선생님이 얼마나 머리를 흔들었는지 알아요? 그것은 점장이들이 점하는 것처럼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것입니다.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방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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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사실의 내용을 판단하고 전후사정을 가려내려면 힘이 들기에 성경보다는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의 세계가 제일이라는 것입니다. (20-271)


인연(因緣)이란 지극히 작은 데서부터 맺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개체도 4백조 개나 되는 세포로 인연되어 있는 생명체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한 창조이념세계, 즉 대우주의 모든 존재물은 어느 것 하나도 하나님 심정 밖에서 생겨난 것이 없습니다. 이런 것을 느끼는 시인은 위대한 시인일 것입니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천주적(天宙的)인 심정을 느껴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시인이 있다면 그는 우주적인 시인일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우리도 모르게 벌어져 있는 천하만상(天下萬象)이 하나님의 사랑과 더불어 존재하는 것들이라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신령한 경지에 들어가 보면 조그만 모래 한 알에도 우주의 이치가 들어 있고, 하나의 원자(原子)에도 무궁무진한 우주의 조화가 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잘 알 수는 없지만 어떤 복합적인 힘을 통해 나타난 결과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분자를 지나 원자, 원자를 지나 소립자…. 이런 것들이 무의식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의식과 목적을 갖추고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거쳐 나온 것이요, 반드시 하나님과 심정적인 관계를 맺고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철두철미하게 알아야 되겠습니다. (9-168)


도인은 어떤 사람이냐? 풀 한 포기를 붙들고도 ‘하나님!' 할 수 있는, 심정으로 자기의 가치와 동등하게 그 가치를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이 최고의 도인입니다. 그렇게 그 가치를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이 최고의 예술가일 것입니다.
각양각색으로 존재하는 만상을 보고 하나님의 각양각색의 사랑과 심정의 묘미를 발견하고, 그것들과 친구가 되어 더불어 즐길 수 있는 감정을 가진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런 감정으로 세포 하나하나가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는 만우주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만물의 영장(靈長)입니다. 그런데 먹을 것밖에 모르는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 되겠습니까? (9-168)


어린애들을 가만히 보면 강아지 새끼니 무슨 뭐 벌레니 하는, 날짐승이나 들짐승처럼 움직이는 것들을 중심삼고 좋아합니다. 그거 왜 그러냐? 본래 사람은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건 무엇을 말하느냐? 인간이 자연계나 이 지구의 움직임을 보고 흥미를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상대기준이 다를 수 있지만, 그걸 감상하는 데서 인간은 참 재미를 느끼고 흥미를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자기 자체의 사랑의 속성을 다 배우는 것입니다.
벌레들이 살고 곤충들이 살고, 혹은 동물들이 사는 것을 보면 전부 다 쌍쌍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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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볼 때 자연은 뭐냐 하면, 인간 하나를 사랑의 대상으로서 상대이상을 교육시키기 위해서 전개시켜 놓은 교재 박물관입니다.
하나님은 우주를, 피조세계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아들딸이 사랑이상을 찾아나갈 수 있도록 교재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전부 다 상대구조(相對構造)로 되어 있습니다. 광물도 주체와 대상의 관계로 작용합니다. 물질의 구성단위(構成單位)인 원자도 양자와 전자가 주체와 대상의 관계로 작용합니다. 작용하지 않고서는 존속할 수 없습니다. 운동을 하지 않고는 영속하고 존속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작용을 해야 합니다.
인간은 커가면서 자연을 보고 습득합니다. ‘곤충세계가 이렇구나!' 하고 배웁니다. 달빛이 비추고 별이 빛나는 가을 밤에 가만히 들어보면 곤충들의 울음소리가 하나의 오케스트라 연주로 들립니다. 무엇 때문에 곤충들이 그렇게 우느냐? 그것은 상대를 찾아 이상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속삭이는 것입니다. 새나 다른 모든 동물들도 슬픈 소리, 기쁜 소리를 무엇으로 표시하느냐 하면 사랑이라는 공통분모를 따라서 소리를 냅니다. 급은 낮지만, 축에서 먼 거리에 있지만 그 축을 중심으로 평행선을 그리며 돌고 있습니다. 모든 존재는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새들의 노래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배가 고플 때 신호하는 노래가 있고, 다음에는 서로 사랑하는 상대를 위해서 하는 노래가 있고, 그 다음에는 위험할 때 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게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 뭐, 보통사람들은 모르지만 자기들 세계에서는 다 압니다. 배가 고파서 울면 벌써 안다는 것입니다. 매일의 생활이 무엇을 중심삼고 돼 있느냐? 배고픈 그거야 한 번 먹으면 끝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매일같이 위험한 자리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대부분의 노래는 무엇을 중심삼고 하느냐 하면, 상대와 주고받는 관계에서 노래가 오고 간다는 것입니다. (137-211)


인간은 주체와 대상, 즉 상대적인 쌍으로 지은 바 되었고, 또 인간을 위하여 있는 온 만물세계도 사랑의 원리 아래 조화를 이루고, 또 인간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생명과 이상을 실현하게 되어 있습니다. 만물세계는 인간에게 있어서, 특히 자라나는 아담과 해와에게 있어서는 사랑의 교과서요, 사랑의 진수가 무진장으로 진열된 박물관이라는 것입니다. (135-12)

모든 새나 동물은 쌍쌍으로 되어 있습니다. 서로가 사랑을 중심으로 화동합니다. 꽃과 나비는 극(極)과 극이지만 서로 화합합니다. 이것은 천지조화입니다. 우주의 극과 극이 사랑을 중심으로 화동이 벌어집니다. 철새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쪽에 있던 새가 북쪽으로 날아가고, 북쪽에 있던 새가 남쪽으로 날아가서, 지역을 넘나들면서 사랑을 이룹니다. 사랑을 중심으로 해서 영원히 돕니다. 인간은 이와 같은 사랑을 하나님이 지은 박물관의 교재를 통해서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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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하나님이 좋아서 사랑하면 천하의 모든 만물들은 거기에 박자를 맞춰 화동(和動)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고 좋아하면 천사세계도 좋아하고, 이 모든 피조세계가 좋아 박수를 보내고 찬양을 보냅니다. 노래할 줄 아는 새는 노래를 부르며 찬양하고, 아름다운 꽃은 향기를 풍기며 찬양합니다.
최고 사랑의 주인공들이 즐거워할 수 있는 향취의 분위기를 확장시키기 위한 것이 이 피조세계입니다. 보기에 흉측스러운 두꺼비도 사랑을 할 때는 ‘욱욱욱' 합니다. 얼마나 멋집니까? 다리를 척척 치고 뒷다리를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사랑하는 그 모습이 얼마나 근사합니까? 그것은 최고의 예술입니다.
아담과 해와는 성숙해 감에 따라서 ‘아, 저렇게 사랑하는구나!' 하고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만물세계를 인간 사랑의 이상을 성숙시킬 수 있는 교재로 펼쳐 놓았습니다. 그걸 배워 가는 것입니다. 점점점 커감에 따라 ‘아하, 옛날에는 동생과 같이, 오빠와 같이 지냈는데 가만 보니까….' 이렇게 감정이 달라집니다. ‘아, 이렇구나!' 하며 배워 갑니다. 그래서 ‘너와 나는 죽더라도 안 만나면 안 되겠다. 딴 데 못 간다.' 하고 평형선으로 직행하면서 부딪치게 됩니다.
맨 처음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아담과 해와도 하나님의 보호권내에서 어렸을 적부터 자라 올라감에 따라서 점점 커가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지능이 발달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왜 피조세계를 지었는지를 알게 되고, 그 피조세계를 통해 교육해 나오는 것입니다. 피조세계가 움직이는 모든 것은 우리 인간 시조, 본래의 조상이 되어야 할 아담과 해와가 생활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가르쳐 주는 교재였습니다. 완성된 아담과 해와가 아니기 때문에 이상생활을 해 나가는 데 있어 표본이요, 하나의 박물관이었다 하는 사실을 알아야만 됩니다. (137-128)


  ④ 자연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아침에 눈을 뜨고 자연을 바라보면 그 자연이 은은하게 내 본성과 인연되어 새로운 이상의 감정을 싹트게 합니다. 그러나 인간세상은 바라보면 볼수록 절망과 슬픔의 감정을 돋구어 준다는 사실을 잘 알 것입니다. 본래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인간들이 사는 세상이라면, 인간의 가치는 그렇게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슬픔을 느끼게 할 정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풀 한 포기나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와 같은 정도의 가치로 지어진 인간이 아닙니다. 피조만물의 그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인간이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모습으로 천상을 대신하여 나서야 할 인간이었습니다. (9-97)


하나님의 사랑이 깃들어 있는 자연을 바라보고 ‘세상의 왕, 혹은 어떤 유명한 사람이 갖고 있는 훌륭하다는 물건에 비할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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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동품에 비할소냐, 어떤 유명한 부인이 입고 있는 호화로운 옷에 비할소냐'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자연세계 앞에 자신도 모르는 죄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의 생명체를 볼 때, ‘인간이 만든 어떤 물건에 비할소냐.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보다 훌륭하겠는가.'하며, 하나님이 심정을 기울여 지으신 만물을 붙들고 무엇보다도 귀하게 느끼는 자가 있다 할진대, 이는 틀림없이 하나님의 아들딸일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기도가 필요없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사는 사람입니다. 하늘은 인간을 그러한 자리까지 내모는 것입니다. (9-175)


인간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의 것은 무엇이든지 좋아하고 귀여워합니다. 그러면서도 제일 사랑해야 할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은 귀여워할 줄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딸이 돼요? 탄식하는 만물의 한을 해원해 주어야 할 책임을 진 여러분은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에서도 6천년 전 그것들을 지으실 때의 하나님의 심정과 창조의 손길을 체휼해야 됩니다. 그런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길을 가다가 풀 한 포기를 보고도 눈물지을 수 있어야 됩니다. 나무 한 그루를 붙들고 울 수도 있어야 됩니다. ‘주인을 잃어버렸으니 얼마나 외로웠느냐?'하면서 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 사람은 많이 울어 보았습니다. 바위를 붙들고도 울어 보고, 바람이 부는 것을 보고도 울어 보았습니다. 왜 그래야 되는지 이제 말씀을 들었으니 이해할 것입니다. (9-175)


하나님이 지으신 가치있는 만물이,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한 인연을 맺은 귀한 만물이, 오늘날 어떠한 왕궁에서 국보니 보물이니 하며 귀하게 여기는 물건만큼의 취급도 받지 못하는 서글픔을 나는 알아줘야지, 나만은 알아줘야지.'하면서 나왔습니다. ‘이 땅에 사는 세계 인류가 전부 몰라주어도 나는 알아줘야지.'하는 마음을 여러분이 가진다면, 이 민족은 앞으로 세계 인류를 지배할 수 있는 새로운 민족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관념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어느 누가 만물을 놓고, 대대로 내려오는 자기 가문의 보물보다, 세상에서 제일 귀한 보석이라 하는 다이아몬드보다 귀하게 여겨 붙들고 놓지 않으려 합니까?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요? 하나님은 당신께서 지으신 것을 심정적으로 알아주고 그것을 붙들고 눈물짓는 사람을 보고 ‘오냐' 하십니다. (9-175)


자연은 뭐냐? 하나님이 나를 위해, 위하는 사랑을 가진 아들딸이 태어날 때 위할 수 있는 만물이며, 선물받은 전시품입니다. 새소리 하나, 자라고 있는 풀 한 포기라도 사랑의 아들딸들의 생활의 미화를 위해 만들어진 장식품이라는 것입니다. 길거리에 구르는 바위도 아들딸이 나라를 다스리는 주인이 될 것을 알고, 그 나라의 장식품으로 지었다는 것입니다. 흐르는 물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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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미건조하고 단조로우면 안 되겠으니 조화무쌍한 화합의 동산, 사랑을 위하는 그러한 세계를 보고 그것을 상속받을 수 있는 꿈의 왕자, 희망의 왕자를 만들기 위해서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물을 통해서 배우는 것입니다. 수놈과 암놈이 짹짹 거릴 때는, 이것을 주인되는 아주머니도 배우라는 것입니다. 서로 위하는 세계를 향해 자기 일생을 생명을 걸고 사는 본연의 피조세계의 아름다움을 찬양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 집 울타리에 새 새끼까지도 와서 살려고 한다는 겁니다. 새끼를 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175-187)


박물관에 있는 어떤 작품이 아무리 귀중하다고 해도 살아 있는 작품을 당할 수 있어요? 하나님의 작품인 이 지구성 만물 박물관을 누가 하나님 이상 사랑했느냐 이겁니다. 자기 나라의 박물관 이상 사랑했느냐 이겁니다.
길가에서 밟히는 민들레 한 포기가 박물관에 있는 신라시대의 금관에 비할 수 있어요?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건데. 그러한 하나님의 심정을 가지고 ‘너를 본연의 하나님이 위할 수 있는 왕의 자리에서, 사랑을 받던 그 자리에서 사랑을 못 하는 나 자신이 미안하다. 부끄럽다.' 할 수 있는 마음을 지니고 위하는 그런 왕이 있다고 할 때는 풀포기도 그 왕을 따라가서 영원불변 같이 있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야 할 인간입니다. (175-187)


  ⑤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라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할 줄 알아야 됩니다.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고 자연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만물은 하나님의 상징적 존재요 인간은 실체적 존재이기 때문에, 만물과 인간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70-182)


언제나 자연을 사랑해야 됩니다. 자연을 사랑해야 하고, 또 인간을 사랑해야 됩니다. 인간 가운데서도 오색인종 전부를 다 사랑해야 합니다. ‘어, 나는 백인들만 좋아.' 하나님이 그럴까요? 그러면 전부 흰옷만 입어야 됩니다. 백인들은 전부 다 흰옷만 입어야 됩니다. 색깔있는 옷은 다 버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검정옷은 왜 입어요? 색깔이 있는 옷은 왜 입어요? 그건 모순입니다. (133-30)


모든 원소들도, 미물들도 사랑길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일체 될 수 있는 사랑과 직접 접할 수 있는 세포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위해서는 희생해야 되는 것입니다.
투입해야 됩니다. 생명과 재산을 다 투입한 전통이 있기 때문에 급이 낮은 것은 급이 높은 거기에 자기의 모든 것을 투입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윈의 진화론이 아니라 사랑을 중심삼고 흡수하는 논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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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가치적인 내용을 창조하는 데 창조 요소로서 적용될 때는 현재의 미물보다도 얼마나 가치적인 내용이 올라가느냐 이겁니다. (204-57)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존재를 사랑의 대상으로 느껴야 됩니다. 모든 미물까지 사랑하며 사람은 물론이요, 모든 하늘에 있는 무형의 것, 유형의 것을 사랑할 수 있고 사랑 받을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아침에 새가 짹짹짹짹 할 때는 ‘야, 요놈의 참새야, 내가 늦잠 자려는데 왜 짹짹짹 해?'하지 말고, ‘아이고, 너 고맙구나. 아이고, 나를 깨워 주러 왔지 하하, 귀한 손님이 나를 맞으러 오는 걸 네가 알려 주는구나.' 이렇게 생각해야 됩니다. 사상이 다릅니다. 이게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112-171)


하나님께서 인간세계를 지음과 동시에 천사세계를 지었습니다. 그러면 천사세계는 어떠한 세계인가. 인간이 하나의 결실을 위해서 꽃과 같은 존재로서의 미를 다 갖추고 향기를 풍기며 나타나게 될 때 비로소 사랑의 보금자리가 갖추어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생명력은 거기에서부터 출발하게 되고, 모든 생명의 인연을 가진 존재들이 거기에서부터 화동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화동할 수 있게 되는 기원이 바로 인간입니다.
그런 인간을 중심삼고 하늘에 있는 천군천사들이 나비와 벌같이 인간과 서로 주고 받을 수 있는 화동의 주체권을 이루게 되면, 그야말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인간이 기뻐하고 천사가 기뻐하며 온 피조만물이 사랑에 잠긴 화동의 꽃동산이 되었을 것이고 봄잔치가 시작될 것입니다. (3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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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복귀섭리역사와 신관의 변천


 1) 구약시대 하나님은 천사였다


  ① 구약시대는 종의 시대였다


인간이 타락함으로써 무원리권 내에 떨어졌습니다. 어느 정도 떨어졌느냐? 하나님의 종인 천사보다도 더 못한 세계에 떨어졌습니다. 주인되어야 할 왕자 왕녀가 종보다도 못한 자리에 떨어졌으니 다시 올라가야 됩니다.
그래서 종의 종의 도리로부터 시작하여 종의 도리, 양자, 서자, 이래 가지고 직계 자녀까지, 그 다음에 어머니를 통해 아담(아버지)의 자리에 돌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복귀입니다. 구원섭리는 병나기 전의 건강했던 기준으로 다시 돌이키는 것과 같습니다. 병나지 않았던 자리에 돌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섭리(救援攝理)는 복귀섭리(復歸攝理)입니다. 복귀섭리는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조건 ‘믿으면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렇게 안 돼 있습니다. (222-142)


인간은 타락했으나 하나님을 저버릴 수 없기에 종의 종의 자리에서 올라가야 합니다. 그러면 ‘종의 종'이란 무엇을 말하느냐? 주인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타락한 인간은 ‘종의 종'의 자리에서부터 하나님께 충성해야 됩니다. 사탄은 천사장이었으며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그 종 앞에 끌려갔던 인간이기에 인간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종의 종'의 입장에서 하나님 앞에 충성을 다했다는 기준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17-72)


구약시대는 제물을 희생시켜 하나님이 종으로 쓸 수 있는 사람을 찾는 시대입니다. 이것이 구약역사입니다. 사람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꺼꿀잡이가 됐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만물보다 더 낮아졌습니다. 사람이 만물보다 더 악하게 됐으니 하나님 앞에 더 가까운 만물을 둘로 갈라 가지고 네 소유물, 내 소유물로 가려 이런 것을 중심삼고 분별적인 제물을 내세워야 했던 것은 누구 때문이냐 하면 하나님 때문도 아니요, 사탄 때문도 아닙니다. 인간이 책임분담(責任分擔)을 못 했기 때문입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사탄의 핏줄을 이어받은 것은 인간이 책임분담을 못 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136-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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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리적으로 본다면 구약시대 전, 야곱 이전은 종의 종 시대요, 야곱으로부터 예수님까지는 종의 시대요, 예수님 이후는 양자시대요, 재림(再臨)의 시기는 아들의 시대입니다. 아들의 시대가 오기 때문에 아들은 부모가 있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시대를 거쳐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74-112)


구약시대는 종의 시대였습니다. 종의 종 자리에 있는 인간을 종의 자리로 복귀시켜 나온 시대였습니다. 그러기에 아브라함도 종이었지 아들은 못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종의 종을 세워 충성의 도리를 세우셨습니다. 그리하여 이 역사적인 세계 인류를 끌어다가 규합시켜 세계적인 악한 무대를 하늘 편으로 점령하면서 하나님의 섭리를 발전시켜 나왔던 것입니다.
야곱도 하나님의 아들로서 승리한 것이 아니라 종의 입장에서 승리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종의 종으로부터 종의 위치로 복귀시키고, 종의 위치에서 양자의 자리로 복귀시키면서 섭리해 오신 것입니다. (15-321)


역사적인 복귀노정을 총괄적으로 살펴보면, 하나님은 지금까지 소생, 장성, 완성의 3단계를 통해 섭리해 나오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의 종의 시대, 신약시대의 양자의 시대, 성약시대의 참자녀 시대를 넘어 참부모 시대로 들어가는 복귀노정인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전인류에 대한 구원섭리는 종의 입장으로의 구원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이 시대에는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남아 승리할 수 있는 중심을 세우지 않으면 종으로의 복귀기대(復歸基臺)를 세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노아나 아브라함 등 중심인물을 세우시어 4천 년이라는 역사를 이끌어 오시면서 수많은 희생을 치르셨습니다. (15-44)

구약시대에는 뭘 했느냐? 이 세상이 사탄세계가 되었기 때문에 만물을 희생시켜 하늘편 사람을 세워 종을 찾는 놀음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양자도 못 찾습니다. 종의 종을 찾는 것입니다.
사탄세계 사람들이 전부 사탄의 아들딸이 돼 있는데 그것을 빼앗아 올 수 없었습니다. 때문에 사탄세계에서 낙망한 사람을 끌어모아 나오는 것입니다. 처량하지만 폐물을 수습해 나오는 겁니다. 폐물을 수습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냥 되지 않습니다. 희생해야 됩니다. 제물의 과정을 거쳐야 됩니다. (136-198)


하늘은 사탄세계의 종도 못 되는 인간을 데려다가 하나님 세계의 종의 종으로 만들자 이겁니다. 그게 구약역사입니다. 야곱과 에서를 싸우게 한 것도 그겁니다.
노아도 그겁니다. 멀리 다른 나라에 끌어다가 격리된 자리에서, 지쳐 떨어진 그 자리에 하나님은 사탄세계의 종의 종을 데려다가 하나님의 종으로 만든 것입니다. (154-289)


---111---

사탄은 인간을 원수처럼 취급합니다. 인간은 사탄의 종도 못 됩니다. 이러한 인간을 하나님의 종으로 만드는 역사를 한 때가 구약시대입니다. 여기서 다시 종을 양자로, 양자를 직계 자녀로, 자녀를 형제로, 형제를 신랑 신부로 축복하여 참부모의 자리에까지 나아가게 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한 참가정을 잃어버렸으니 이것을 찾는 것이 복귀입니다. 예수를 참부모의 자리에 등장시키는 것이 어린양 잔치입니다. (12-25)


하나님은 종을 세워 내가 네 아버지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종을 시키고 천사를 시켜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한 시대가 구약시대입니다. 다음에는 아들을 시켜서 역사하였습니다. 그 시대가 신약시대입니다. 그 다음에는 성신을 시켜서 역사해 나오셨습니다. (10-182)

지금까지 하나님의 소원은 인간이 만물과 인연을 맺고 하나님과 인연을 맺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간을 종의 자리로부터 시작하여 양자의 자리를 거쳐 자녀의 자리, 그리고 부모의 자리까지 끌어 올리는 일을 해 오셨습니다. 그것은 한스러운 타락의 인연을 끊어버리고 만물과 인간과 하나님이 일체의 인연을 맺어 하나님의 기쁨이 인간의 기쁨이요, 인간의 기쁨이 만물의 기쁨이 되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들딸을 만물세계와 천사세계에까지 자랑하고 보여주고 위해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11-279)


생각해 보면 구약시대는 예수님이 올 때까지 4천 년입니다. 그때에 축복이라는 말이 있었어요? 하나님 이름으로 가정을 축복할 수 있었어요? 종의 시대였기 때문에 종인 천사장권 내에 있는 것입니다. 천사장은 결혼할 수 없습니다. 독신생활 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가정을 못 갖고, 하나님의 아들딸들이 결혼을 못 했는데 종이 결혼을 할 수 있어요?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90-82)


  ② 구약시대에는 천사가 하나님 대신 사역했다


하나님은 더럽혀진 땅을 다시 회복하시려고 천사들을 통해 인간과 관계를 맺는 구원섭리를 해 나오고 계십니다. 타락함으로써 하나님을 배반한 입장에 있는 인간들, 만물에게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여지없이 떨어진 인간들을 하나님께서 다시 대하시기 위해 구원섭리를 해 나오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탄이 지배하고 사탄이 참소하는 인간을 하나님이 주관하시기 위해 다리를 놓아 역사해 나오신 것이 구약시대를 거치고 신약시대를 거쳐서 지금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1-277)


구약시대에는 원래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셔야 하고 하나님의 영광으로써 인간을 대해야 하는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타락으로 말미암아 섭리가 완성되지 못했으므로 슬픔을 품고 제2차로 천사들을 통해 인간들을 대할 수 있는 길을 개척해 나온 것이 구약시대입니다.


---112---

하나님은 천사들을 시켜 역사하실 수 있는 기준을 세우셨습니다. 천사 역시 신적 존재이므로 예수가 오기까지의 방편으로 인간에게 하나님처럼 나타나 중보의 사명을 한 것입니다. (1-277)


구약시대를 보면, 천사들을 심부름꾼으로 세워 하나님의 자유의 동산, 해방의 천국을 건설해 나왔습니다. 종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해방되는 은사권에 들어가려면 생명을 잃으면서도 즐거워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자유의 심정을 가진 사람만이 종의 자리를 넘어서서 아들의 자리를 찾아 들어 갈수 있습니다. (4-314)


여러분, 성경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영계에 있는 천사장을 시키고, 아들을 시키고, 성신을 시켜서 역사해 나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심정을 접속시키는 역사가 아니었습니다. 구약시대에 천사를 시켜서 역사하셨고, 신약시대에는 아들을 세워서 역사하셨습니다. 구약시대는 천적으로 볼 때에 백성을 수습하기 위한 시대요, 신약시대는 자녀를 수습하기 위한 시대였습니다. (10-150)


여러분, 보십시오. 이스라엘 민족을 찾아 세우기 위해서 천상세계의 천사들이 와서 일했습니다. 종이 와서 일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아들이 와서 일했습니다. 이제는 아버지가 옵니다. 여러분, 오시는 주님은 아버지로 오십니다. 참부모로 오셔서 참자녀를 거느리고 사랑할 것이거늘, 그때에는 어떻게 될 것이뇨? 여러분은 한 사람을 붙들고 밤을 지새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한 사람을 타락한 세계의 인류보다 더 사랑하시고, 모세 한 사람을 온 인류보다 더 사랑하시고, 예수 한 사람을 온 인류보다 더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들딸 한 사람이 얼마나 귀한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10-317)


아브라함에게 나타난 여호와 신도 천사였습니다. 본래 하나님은 무형의 하나님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인데, 창세기에 보면 세 사람이 하나님으로 나타나 두 사람은 소돔 고모라의 심판을 위해 가고 남은 한 사람이 하나님이 되어 아브라함과 대화하는 장면이 나옵니다(창 18:1-18). 그러나 그들도 하나님이 보낸 천사들이요, 천사를 세워 방편으로 하나님같이 섭리하신 것입니다. 그걸 몰랐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21년 간 도를 닦아 가지고 한날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세일 땅 형님이 있는 고향산천을 찾아가는데, 21년 동안 그 한날을 기다렸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기쁨으로 ‘잘 가라. 잘 가라.'고 해야 할 텐데 천사를 보내 얍복강가에서 ‘야, 이놈의 자식아!'하고 씨름을 하게 했습니다. 여기서 천사한테 지는 날에는 21년 동안의 고생이 허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이 천사를 악착같이 붙잡고 내 손이 빠지기 전에는 놓을 수 없다고 했던 것입니다. 팔이 꺾어지더라도 못 놓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거 얼마나 지독합니까? (51-304)


---113---

이삭의 손길을 통해 축복해 주신 하나님, 모든 것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가라고 권고하시던 하나님이 어찌하여 야곱이 가는 길을 안내해 주고 가는 길을 평탄하게 해주지 않으셨는가! 또 얍복강가에서 밤을 새워 안타까운 심정으로 하늘앞에 호소하는 야곱에게 권고의 말씀은 해주지 못할망정 오히려 천사를 보내어 야곱을 치게 하는 이러한 비정한 환경이 벌어지게 하셨던가! (3-332)


구약시대에 왔다 갔던 우리의 신앙의 조상들은 어떠한 사람들이냐? 하나님 대신, 하나님은 무형의 신이므로 나타나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을 대신해 그 시대에 알맞게끔 그 역사를 재현시켜 인연을 맺게 하기 위해 보내 준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양자의 자리까지 올라가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의 역사적 인연을 연결해서, 개인적인 세계 대표, 가정적인 세계 대표, 혹은 종족적인 세계 대표, 민족적인 세계 대표, 국가적인 세계 대표, 이와 같은 많은 수를 거쳐 올라와 종착점을 대표하는 하나의 대표자로서 전부 결속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77-127)


  ③ 왜 천사가 인간 구원에 가담하는가?


천사는 어떤 존재인가? 종의 입장에서 하나님 앞에 충성의 도리를 다하고 아담과 해와의 울타리가 되어 주어야 하는 존재입니다. 만세토록 하늘세계에 영광된 분위기를 만들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아담과 해와와 함께 행복하게 살아야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천사장은 아담과 해와를 위해 창조된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천사를 창조한 목적은 아담과 해와를 위해서 였다는 것입니다. (15-232)


천사장이 타락하여 아담과 해와가 인류세계를 이렇게 망쳤기 때문에 천사세계가 그 일을 대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천사세계가 사탄과 대결하고 있습니다. 악한 사탄과 선한 천사가 대결하는 것입니다. 그 싸움에서 선한 천사편이 승리하고 난 후에야 일보 전진이 됩니다.  하나님 마음대로 못한다는 것입니다. 원리가 그렇습니다. (109-9)


하나님이 타락하지 않은 아담과 해와 앞에 종으로 세 천사장을 지어 놓고, 아담과 해와를 천사장에게 맡겨 보육하고 보호하면서 기르도록 했습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주체자와 상대적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땅이 주체이고 천사세계가 상대가 되는 주체와 대상 관계입니다. 이중적인 환경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참사랑 앞에 평형적 상대권을 확대시키기 위한 것이 천상천하를 창조한 하나님의 이상이었다는 것입니다. (208-231)


아담은 누가 교육해야 되느냐? 하나님이 교육하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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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장들이 교육해야 됩니다. 보호 육성해야 됩니다. 시집 장가 갈 때 고이 상처 안 입게끔 관리 지도하고 교육해야 할 책임이 천사장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그 원칙을 통일교회도 따르지 않으면 탕감복귀 완성이 안 되기 때문에 나는 36가정을 세워 내 아들보다 더 사랑했습니다. (121-189)


하나님은 생명의 모체입니다. 부모는 그 아이의 생명을 키워 줍니다. 생명의 모체요, 사랑의 모체요, 보호의 모체입니다. 생명을 보호해 주고 사랑해 주고 키워 준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은 어디에서 나오느냐. 보호권이 성립 안 되면 생명이 위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생명이 위협받으면 사랑도 성립될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죽게 되었는데 사랑이 성립되겠어요? 안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호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호권을 만들었는데 보호해야 할 것이 누구냐 하면 천사장입니다. 아담과 해와는 생명의 기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받고 천사장의 보호를 받으면서 사랑의 교육을 받고 있는 도중이었던 것입니다.


 2) 여호와 하나님의 정체


  ① 여호와 하나님의 속성


모세가 사랑의 하나님을 소개하지 못하고 권세의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 심판의 하나님을 소개한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어 율법으로 하늘 백성을 보육하기 위함이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몰아가기 위한 복귀의 뜻을 성취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35-260)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은 광야에서 십계와 율례를 받고 법궤를 맨 거듭난 사람만이 가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출애급한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재창조하기 위해 주신 것인데 그들이 말씀대로 행치 않을 때 무섭게 초달(楚撻)하고 형벌을 가하는 두려운 신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사탄이 왕노릇하고 있던 구약시대는 메시아가 나타나기까지 마귀가 권세잡은 시대이기 때문에 모세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이 공포의 신, 복수의 신, 질투하는 신으로 나타나 죄의 종이 된 인간을 율법으로 초달하고 법도를 어기면 용서없이 형벌을 가하던 시대가 구약시대입니다.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의 속성을 보면 질투가 강한 신으로 ‘나'이외 다른 신을 섬기면 무서운 질투를 하시는 하나님이었고,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나안 7족을 아낌없이 진멸하라 지시한 잔인한 하나님이었고 율법과 법도를 어긴 이스라엘 백성을 목전에서 쓸어버린 무자비한 하나님입니다. 우주를 창조하신 사랑의 하나님에게 이렇게 질투와 복수와 공포심과 가나안 7족을 무자비하게 진멸시키는 성품이 있을 수 있어요? 구약시대는 천사가 중보가 되어 하나님 노릇을 대신한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115---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 손은 손, 발은 발, 데인 것은 데인 것, 상한 것은 상한 것, 때린 것은 때린 것으로 갚으라고 하는 복수에 찬 율법주의는 창조주 하나님의 성품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입니다.
모세 앞에도 여러 번 하나님이 나타납니다. 호렙산 가시덤불 속에 나타나 모세를 소명했고, 시내산 영봉에서도 나타나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었습니다. 이날까지 모세 앞에 나타난 여호와가 천사인 줄 모르고 있지만, 신약 사도행전 7장에 두루 보면 천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40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산 광야 가시덤불 불꽃 가운데 보이거늘…. 너희가 천사가 전한 율법을 알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이렇게 구약에 나타난 여호와는 천사이지 하나님이 아닙니다. 구약시대는 종의 시대입니다. 하나님은 아들이 아닌 종에게 아버지로서 나타날 수 없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물을 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대답을 했다가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이름을 가르쳐 줍니다. 그러나 민족 앞에 나선 모세는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며 여호와 하나님이 조상의 하나님임을 강조합니다. 여호와는 천사입니다. 구약은 종의 시대였으므로 하나님의 바른 모습을 드러낼 수 없는 시대입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싸움을 하라고 그랬어요, 하지 말라고 그랬어요? 사울왕이 전쟁에서 승리한 다음 여자들과 아이들만 남겨놓고 남자들은 다 죽이라고 했는데, 안 죽였기 때문에 벌받은 거 알아요? 그거 왜 그랬다고 생각해요? 사탄 남자를 놔두면 사탄세계가 다시 침범하기 때문에 그런 놀음 하게 한 겁니다.
사탄 남자가 있으면 자기 여편네를 데리고 가 그 놀음 그대로 하니까 그 제도가 남지만, 맥을 잘라 버리면 아기와 여편네는 하늘편에 속하니까 그 제도가 없어지기 때문에 그렇게 하게 한 것입니다. 안 그럼으로 말미암아 이방신을 섬기고 이방의 모든 음란한 풍이 들어와서 하늘나라가 침범받았기 때문에 사울이 벌받은 것입니다. (124-175)


  ② 종교에는 신부 종교와 천사장 종교가 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짓기 전에 천사를 지었기 때문에, 오늘날 종교라는 것은 뭐냐 하면 천사세계권을 지상에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그것이 종교세계입니다. 그 종교세계권내에서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 아담을 만들어내는 놀음을 해야 됩니다. 그러면 종교 중에서 세계적 중심은 뭐냐? 그것은 유대교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 유대교는 무엇을 하는 종교냐? 신랑을 소개하는 종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메시아 사상이요, 구주사상(救主思想)입니다. (5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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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아담과 해와를 창조하게 될 때까지는 그 전통적 사상을 누가 이어받았느냐 하면 천사장 입장에 있는 분들이 이어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아담과 해와가 생활할 수 있는 새로운 풍조와 전통을 누가 가르쳐 줘야 되느냐 하면, 하나님이 가르쳐 주기 전에 종인 천사장이  주인의 아들딸은 이렇게 이렇게 나가야 된다'고 가르쳐 줘야 되는 것입니다. 주인의 아들딸들이 잘못 나가는 것을 제지하고 잘 나가게끔 선두에 서서 가르쳐 줘야 할 것이 나이 많은 종의 책임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50-181)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은 종교를 세웠습니다. 그 종교가 무엇이냐? 해와의 종교와 천사장의 종교를 세계에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해와와 천사장 때문에 타락했기 때문에 인류는 해와와 천사장의 종교를 가지고 복귀하는 것입니다. 그 길을 통해서 복귀되는 것입니다. 종교는 천사장권의 종교입니다. 백 개, 천 개가 있더라도 다 천사장권에 속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종교가 있지만 그것을 크게 나누면 4대 종교입니다. 그 중심이 기독교인데, 기독교의 주된 사상은 신부(新婦)의 사상입니다. (239-106)


하나님만이 참신이시고 다른 존재는 신적 존재인 천사들입니다. 유일신과 다신에 대한 확실한 구분을 하려면 다종교는 신적인 존재, 천사들이 세운 것입니다. 이들 종교 중에 선한 천사들이 인간의 심령과 정신을 고양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 있는데, 이것들이 고등종교이며 하나님은 이 선한 종교들을 통해 인류의 심전(心田)을 개간해 왔던 것을 알아야 됩니다.
천사장 종교는 근본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말세에도 어떻게 되는지 모릅니다. 단지 외적인 수행 개념만을 중심으로 지도해 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세가 되면 보자기를 둘러싸고 주인집에 시중들러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입장이 되는 것입니다. 명백한 전통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237-180)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따르던 사람들과 신약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따르던 사람들을 생각해 봅시다. 구약시대에는 원시적인 종교 형태를 갖고 나왔고, 신약시대에는 시대적인 종교를 갖고 나왔습니다. 즉, 말하자면 신약시대는 근대의 20세기 문명까지 연결되어 온 그러한 종교시대입니다.
통일교회는 무슨 종교냐? 통일교회는 원시적인 종교, 시대적인 종교보다 새로운 차원의 미래적인 종교가 되어야 되겠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122-9)


 3) 예수님이 부자관계 신관 천명


  ① 신약시대는 양자의 시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은 야곱이 승리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로 승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서 종으로 승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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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종의 종으로부터 종의 위치로 복귀하고, 종의 위치로부터 신약시대에는 양자로 복귀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3절을 보면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양자 되기를 고대한다고 했습니다. 신약시대에 아무리 잘 모시고 잘 믿던 신앙자들도, 목사, 장로, 학박사를 물론하고 전부 다 하나님 앞에서는 양자입니다. 솔직한 얘기입니다. 양자가 되자 그겁니다. 양자라는 것은 혈통이 다르다릅니다. (154-253)


예수가 무엇으로 한 단계 올라가느냐? 이 땅 위에 인간이 타락함하여 인류의 조상이 없어졌기 때문에 조상의 자리로 올라가게 되면 이스라엘 민족은 양자의 자리에서 접붙임을 받아 하나님 앞에 상속권을 대할 수 있는 아들의 명분을 갖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서 8장을 보면,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라고 되어 있고,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양자밖에 못 되는 것입니다. 지금 기독교인들은 양자입니다. 양자는 핏줄이 다릅니다. (154-289)


양자는 직계의 아들과 다른 것입니다. 양자는 만약 직계 아들이 오게 되면, 밤이나 낮이나 어느때나 서슴지 않고 자기의 모든 전체의 소유물을 직계아들에게 갖다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소유물이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양자의 입장에 서 가지고도, 양자로 택정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직계의 아들이 태어나게 되었을 때 ‘요놈의 자식이 왜 태어났노?' 이러면 안됩니다. 이것은 사탄의 근성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지을 때 천사장이 그 아담을 보고 좋아해야 하는 것입니다. 좋아해야 할 텐데 ‘왜 태어났노?'이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양자는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양자는 아들을 보호해야 되는 것입니다. 직계 아들이 복중에 있을 때에도 ‘아이구 안 태어났으면 좋겠는데…'해서는 안 됩니다. (49-118)


양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종보다 나아야 됩니다. 하나님편의 종보다 나아야 되고, 사탄보다 나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사탄은 본래 천사장이었는데 그 천사장은 종이었기 때문에 그 종보다도 낫지 않은 사람은 양자가 될 수 없습니다. 이건 원리적입니다.
그러면 그 양자는 어떤 양자가 되어야 되느냐? 내가 하나님의 상속을 받더라도 그것은 내것이 아니라 당신의 본래의 아들딸 앞에 돌려줘야 할 상속이라는 사상을 가진 양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양자를 만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양자라는 것은 앞으로 올 아들딸을 위해 자기가 죽더라도 생명을 다하고,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시키더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직계의 아들딸이 태어나기를 원하고 그를 위해 준비하는 마음을 언제나 지녀야 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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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의 이름을 세우지 않고는 아들과 상관할 수 없습니다. 천사장보다도 한 단계 높은 중간적인 존재로 출생한 것이 양자다 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염두에 두어야 되겠습니다. (89-202)


양자라는 것은 혈통이 다른 것입니다. 원래 신약의 출발에 있어 양자로 세워진 것이 누구냐 하면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천사장 대표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아담 앞에서 반대한 천사장이 아니라 아담을 끝까지 위할 수 있는 천사장편 땅 위의 대표자로 세운 것이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받들지 못하고, 예수님과 하나되지 못함으로써 비운의 역사가 벌어졌던 것입니다. (48-54)


구약시대와 신약시대가 연결되는 역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구약을 믿고 나오는 사람들은 종으로서 양자의 혜택을 받기를 바라는데, 그것이 메시아가 오기를 바라는 이유입니다. 즉 메시아로 말미암아 종의 서글픈 신세를 넘어 양자권의 자리에 나아가는 것이 그들의 소망입니다. 양자의 자리는 직계 아들딸이 없게 될 때, 부모로부터 상속을 받을 수 있는 인연이 성립되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종의 입장을 초월해서 하나님의 뜻을 맞이할 수 있는 혜택을 받기를 바라면서 나오도록 한 것이 종의 구약시대를 지도해 나오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이 종의 신세를 면하고 하나님의 상속을 받을 수 있는 권내에 들어갈 수 있는 특권적인 한 때를 바라고 나온 것이며 그것이 이스라엘의 선민사상입니다. (42-275)


만물에서부터 양자적 승리권을 거치고 아들의 승리권을 거쳐 부모의 자리까지 복귀해 올라가야 됩니다.
그래서 신약시대에는 아무리 잘 믿어도 하나님의 아들은 절대 못 됩니다. (48-54)


지금까지의 역사를 보면, 구약시대에는 만물을 제물시했습니다. 만물을 희생시켰습니다. 만물을 희생시킨 그 목적을 인간의 해방을 위해서, 인간의 부활을 돕기 위해서였습니다. 만물을 희생시켜 사람들을 찾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만물을 희생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다시 찾기 위해서입니다. 구약시대에는 만물을 제물삼았고, 신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피를 흘리면서 이 세계의 부활권을 향하여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독교를 중심삼은 역사였습니다.
기독교 역사는 예수님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개인, 가정, 혹은 민족, 국가들이 지금까지 희생되면서 제물적 과정을 거쳐 나온 것입니다. (166-275)


구약시대에는 모세를 시켜 능력의 하나님을 증거했습니다. 능력의 하나님으로 믿지 않으면 벌을 내렸습니다. 그 다음에 예수 시대에는 자비의 하나님을 소개했습니다. 병자를 고치고…. 예수가 병자를 안 고쳤으면 몰려서 죽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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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나서 죽는 것은 다 세상의 조상들이 잘못해 그 죄값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걸 왜 살려 놓는 거예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병 고치는 일 했으면 수십만의 병자를 고쳤을 것입니다. 병을 안 고쳐도 우리 말씀 듣고 좋아하게 되면 문둥병도 나을 수 있습니다. 별의별 병이 다 낫는다는 것입니다. (194-299)


  ② 양자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다


구약시대를 지나 신약의 새아침을 맞으면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선언했고, 타락인간들을 양자의 자리로 올려 하나님과 부자의 관계를 지어 주셨습니다. 양자는 핏줄이 다릅니다. 그러나 오신 주님으로 말미암아 접붙임을 받으므로써 아들의 명분을 갖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부자관계의 수립은 예수님이 아니면 그 누구도 이룩할 수 없는 천비(天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때 당시 구약의 관념에 젖은 제사장이나 바리새인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참람한 말로 알아들었습니다. 그만큼 예수님의 아버지 신관(神觀)은 혁명적인 신관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한 단계 높여 하나님의 사랑을 소개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모세가 사랑의 하나님은 소개하지 못하고 권세의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 심판의 하나님만을 소개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랑을 소개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소개했고 사랑의 예수님을 소개했지만 당시의 인간들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35-260)


구약시대는 종의 시대였으므로 하나님의 바른 모습을 드러낼 수 없는 시대입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요, 사랑의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이므로 모든 죄악을 용서하시는 사랑의 아버지입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복수하던 구약시대의 율법은 사라지고 예수님에 의해 원수를 사랑하고 형제의 허물을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시는 사랑의 참모습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어찌 자식의 허물을 용서해 주지 않겠는가 말입니다.
하나님은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며 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는 하나님으로 나타난 존재가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한복음에 "내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가 내 안에 거하시니 나를 보았은즉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하나님을 보여 달라 하느냐?" 하고 하나님과 일체를 주장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도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 - 39)"고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4-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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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받고 하늘이 열린 때부터 승천하기까지는 3년이란 짧은 세월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이 부자지관계의 신관을 천명해 놓고 구체적인 내용은 다 말 못하고 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유대교의 메시아로 와서 세계적 메시아 노정을 개척하다가 죽었다 이겁니다. 그러면 유대교는 어떻게 되느냐? 지금까지 유대교만을 위하는 하나님으로 모시는 그 하나님 가지고는 안 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가르쳐 줘야 할 것이 뭐냐? 구약성경에서 가르쳐준 하나님을 그냥 그대로 가르쳐 줘서는 안 됩니다.
신약시대의 하나님으로 가르쳐 줘야 합니다. ‘국가적 차원의 시대를 넘어서 이제는 세계적 차원의 시대로 들어가기 때문에 세계를 흡수하기 위해서는 세계를 위해 공들이는 터전을 닦아야 되겠다.' 이렇게 가르쳐 줘야 할 것이 이스라엘의 국가적 메시아로 온 예수님의 사명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생애를 바쳐 세계적 메시아의 권위를 찾는 것이 예수님의 생애에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105-202)


 4) 성약 완성시대는 신인 일체의 시대


  ① 참자녀는 혈통 전환, 중생을 거쳐야 한다


복귀도상에서 종의 종 시대에서부터 종의 시대를 거쳐 양자의 시대, 직계의 시대로 올라가야 합니다. 그러면 완전히 종의 종 시대를 거치고, 종의 시대, 양자의 시대를 거쳐 직계시대와 인연을 맺을 수 있느냐? 직계의 시대와 인연을 맺는 데는 그냥 맺을 수 없습니다. 반드시 원리에 의해 믿음의 기대를 거치고 실체기대를 거쳐 메시아를 맞이해야 합니다. 메시아는 하나님의 참아들입니다. 양자와 참아들은 혈통적인 관계가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혈통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55-189)


에덴동산에서 결혼을 잘못한 것이 타락이니, 이제 참부모가 바르게 결혼시켜 줌으로써 다시 뒤집어 놓는 것입니다. 거짓 부모가 저질러 놓은 일을 참부모가 청산함으로써 지옥을 철폐하고 수백, 수천억의 영계의 조상들마저 축복 결혼시켜주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참사랑을 중심한 지상의 후손들의 가정기반을 통해 영계의 조상과 지상의 후손이 종적으로 하나로 합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가정기반을 기점으로 동양과 서양이 서로 연결됩니다.
우리 인간은 혈통적으로 사탄의 핏줄을 받았으니 그 자체로서는 하늘 앞에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 메시아는 절대 혈통복귀를 해서 사탄이 더럽힌 핏줄을 개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걸 전환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메시아는 반드시 와야 됩니다. 메시아가 오지 않고는 혈통복귀가 안되는 것입니다. 혈통복귀를 해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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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부모는 무엇을 해야 되느냐? 사탄세계의 뿌리되는 그릇된 혈통을 바로잡아야 되고, 그릇된 생명을 돌이켜 놓아야 되고, 그릇된 사랑의 길을 바로 열어야 됩니다. 성경에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고 했는데, 그런 역설적인 논리가 왜 나와야 되느냐? 사탄세계는 죽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창조 당시 이상으로 바랬던 참된 사랑, 위대한 사랑을 중심삼고 인간과 사랑관계을 맺어 하나될 수 있는 신인애일체(神人愛一體)의 이상을 이루었더라면, 오늘날 우리들은 천국이니 지옥이니 염려할 것 없이 그냥 그대로 천국으로 다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인류 역사를 보면 구약시대, 신약시대, 성약시대, 이렇게 3시대가 있습니다. 여기서 구약시대는 어떤 시대예요? 제물을 희생삼아 자녀를 구제하는 시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올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신약시대는 예수님이 제물이 되어 부모를 맞이하는 시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림시대를 맞이하여 신랑 신부를 세워 부모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해왔습니다. 성약시대에 선생님이 중심이 되어 참부모라는 이름을 가지고 지금까지 40여 년 간 고생해 온 것은 하나님을 지상에 맞이하기 해서입니다. 그래 가지고 신인일체(神人一體)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여러분은 원래 부자관계입니다. 신약시대에는 인간이 하나님의 양자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부자의 관계이기 때문에 아들이 하는 것은 아버지가 하는 것이며, 아버지가 하는 것은 아들이 하는 것입니다. 같이 하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것이 아들의 것이요, 아들의 것이 아버지의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무서운 것은 이러한 부자의 인연을 가르쳐 주기 때문입니다. (31-295)


구약시대에 물질을 희생시킨 것은 참된 아들이 올 수 있는 길을 닦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는 아들로 와서 희생했는데, 그것은 부모님이 올 수 있는 길을 닦은 것입니다. 부모님이 평면상에 와서 수난길을 가는 것은 하나님을 모셔들이기 위해서입니다. 어느 자리에 오느냐? 본연의 수직의 자리입니다. 천지의 대도의 기원이 여기서 끊어졌기 때문에 이 근본 뿌리를 시정하지 않는 한 평화의 기원이 없는 것입니다. 이건 절대적입니다. (200-7)

여러분이 문총재를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문총재의 사명은 무엇이냐? 구약시대는 만물을 희생시켜 아들딸을 찾는 시대입니다. 신약시대는 아들딸을 희생시켜 부모가 올 길을 닦는 것입니다. 부모가 와 가지고 이 땅에서 뭘 하느냐? 하나님이 올 수 있는 길을 닦는 것입니다. 종적 아버지의 수평세계를 만민세계를 넘어서 닦아야 할 것이 참부모의 사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수평의 아버지 심정권이 벌어지게 될 때는 종적인 아버지 심정권은 자연히 여기에 와서 정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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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가지고 종적, 횡적인 사랑을 품을 수 있는 자리에 가게 되면 비로소 세계를 넘어서 하나님이 핵의 자리에 가서 본연의 이상권한을 재차 편성한 것으로써 ‘다 이루었다' 할 수 있는 시대로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168-156)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한 방법은 시대마다 달랐습니다. 즉, 구약시대에는 제물을 드림으로써, 신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성약시대에는 참부모를 모심으로써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20-340)


여러분의 아들딸은 앞으로 같은 나라 사람끼리 결혼을 못 시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3대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렇지만 3대 이후에 하나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구약시대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의 결혼은 구약시대입니다. 그 다음이 신약시대와 성약시대입니다. 여러분의 아들딸들인 2세가 결혼하여 낳은 3대에서 전통이 설 것이다 이겁니다. (146-264)


성약시대에는 참부모가 희생함으로써 종적인 하나님을 지상에 모셔오는 것입니다. 그게 마지막입니다. 하나님은 인류 앞에 참사랑을 중심삼은 종적인 아버지이고, 참부모는 참사랑을 중심삼고 그 종적인 아버지 앞에 횡적으로 90각도를 맞춘 횡적인 부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횡의 사랑을 중심삼고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생명이 격동되는 것입니다. 신인합덕(神人合德)이 격동되어 참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새로운 혈족이 퍼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됨으로써 인류 역사 가운데 비로소 본연적 원리 기준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출발한 생명의 씨가 지상에 현현하는 것입니다. (208-303)


이제는 소유권을 복귀해야 됩니다. 구약시대에는 만물을 희생하고, 신약시대에는 아들을 희생하고, 성약시대에는 부모를 희생해 하나님을 모셨으니, 이제는 뭘 해야 되느냐? 여러분이 어머니 아버지의 대신 자리에 서야 됩니다. 아들딸은 신약시대이고 만물은 구약시대입니다. 이 구약시대, 신약시대, 성약시대가 몽땅 하나님의 참사랑을 중심삼고 벗어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주인이 됐던 것을 전부 다 탕감해 가지고 본연의 주인에게 돌아와서 이것을 바쳐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208-303)


성약시대는 이루는 시대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루고, 가정적으로 이루고,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으로 이루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혈통을 중심삼고 연결되는 것입니다. 단일 혈통, 단일 사랑, 단일 생명의 전통입니다. 이렇게 되면 사탄이 떠나야 됩니다. 접붙이는 놀음을 함으로써 사탄의 혈통적 인연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226-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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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창세 이래 처음으로 하나님 현현


  ① 비로소 하나님이 모습을 드러내신다


통일교회 시대는 부모님 시대입니다. 하나님이 땅에 임할 수 있고, 하나님이 오실 수 있는 길을 닦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모심으로써 구원을 얻는다는 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역사는 그렇게 발전하는 것입니다. (177-85)


최후에 남아질 것은 뭐냐? 하나님 플러스 인간, 신인(神人), 신인의 삶의 길, 신인 생활관입니다. 인생관도 마찬가지로 신인 인생관, 신인 세계관 그것이 막연하게 하나님을 대해 사람이 알 수 있는 정도의 자리가 아니라 사람이 영원히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자리입니다. 왜? 하나님과 사람은 본래 떨어질 수 없는 자리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떨어질 수 없었던 자리 그 이상의 자리에 도달해야 합니다. 그런 자리에서 신인(神人)이 하나된 생활적인 무대, 세계적인 무대를 요구하고 나서야 하는 것입니다. (65-127)


하나님은 우주의 중심존재이므로 그 앞에 가까이 가면 천년만년 주관받더라도 더 주관받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모심의 도리가 그렇게 돼 있기 때문에 오늘 우리 인간도 그러한 자리에서 주관받을 수 있으며 그 이상의 행복이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습니다. (77-308)


이제부터 여러분은 모심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신앙생활은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지만 앞으로는 모심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본래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을 모심으로써 우리가 갈 길을 가는 것입니다. 모시는 데는 여러분의 생활과 마음으로 더불어 모셔야 됩니다.
하나님은 절대 아버지이고, 절대 참부모이고, 유일․불변․영원한 참아버지입니다. 그런 아버지는 절대 아들 유일․불변․영원한 부부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런 딸들은 절대 부부, 유일 부부, 불변 부부, 영원한 부부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안착하기 위한 가정은 절대 가정, 유일 가정, 불변 가정, 영원한 가정입니다. 그런 가정이 하나님과 같이 살 수 있는 지상천국의 영원한 기지입니다.
시의(侍義)라고 하는 것은 생활화 천국시대를 말합니다. 그래서 시의를 들고 나온 것입니다. 복귀역사는 뭐냐 하면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재현하는 것입니다. (161-218)


하나님을 마음 가운데 모시고, 우리 인간이 몸 자리에서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기원을 만들지 않고는 이 악마의 세계를 청산할 길이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모심의 시대, 시의의 구원시대라고 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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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심으로써 구원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 공중에 동떨어진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 생활권 내의 주체자로서 하나님을 모셔야 됩니다. (144-231)


하나님은 망상적이고 관념적인 하나님이 아닙니다. 추상적인 하나님이 아닙니다. 생활적인 주체성을 지니고 늘 우리가 살고 있는 생활의 주인으로서 함께 있는 것입니다. 모심만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공동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공동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하나님입니다. (168-72)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를 만든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우리 인간의 형상을 보면 체(體)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형의 하나님은 체가 없습니다. 체를 입지 않고는, 체를 갖지 않고는 영계나 지상 세계를 치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계시더라도 하나님이 인간의 부모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체를 입어야 할 텐데, 그 체를 입는 대표가 누구냐 하면 아담과 해와다 이겁니다. 하나님은 타락하지 않은 아담과 해와의 체를 입고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과 해와는 인류의 시조인 동시에 천지를 주재하는 하나님이 되십니다. 실체를 가진 하나님, 즉 영원한 무형세계의 하나님의 형상을 대신 입고 나타난 자리에서, 부모의 자리에서 세계를 통치할 책임이 아담과 해와에게 있었다 이겁니다. (133-86)


무형의 하나님은 실체가 없으니 그 형체를 대신한 것이 참부모라는 것입니다. 참부모는 개인적인 부모요, 가정적인 부모요, 종족적인 부모요, 민족적인 부모요, 국가적인 부모입니다. 앞으로 영계에 가서도 참부모의 형상으로 하나님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위대한 것이 그겁니다. 레버런 문이 위대한 것이 뭐냐 하면, 레버런 문의 형상을 하나님이 쓰겠다는 것입니다. (98-196)


억천만 인간들의 부모가 한꺼번에 살아나더라도 오늘 여러분이 말하는 참부모의 영광을 갖춘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천만대의 선조들이 다 부활해 가지고 부활된 영광을 찬양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타락권을 벗어나지 못한 영광이요 찬양입니다.
그러나 오늘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참부모라는 말은, 여러분의 자리는 비참하더라도 천천만 선조들과 더불어, 혹은 이 땅에 승리를 가져와서 만민 해방권을 갖춘 영광의 자리에서 찬양하는 이상의 가치를 지닌 자랑스러운 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부모님을 만난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이 연결되고, 통일교회를 만난 이 자리는 불원한 장래에 하나님의 나라와 부모님이 원하는 조국을 찾을 수 있는 길이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138-70)


성약의 시의시대는 하나님을 직접 생활가운데 모시고 사는 시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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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가 하나님의 장막이 인간에게 거하는 때이며 하늘에 있는 새 예루살렘이 땅 위에 내려오기 때문에 그때 비로소 참하나님의 모습이 인간들 앞에 나타날 것입니다. 창세이후 처음입니다. 지금까지 아담 타락 이후 미완성급 역사 위에서는 하나님이 나타나실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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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참아버님이 본 하나님


 1) 역사적인 원과 한과 고통의 하나님


  ① 인간 타락으로 부모의 자리를 잃어


우리의 진정한 아버지는 하나님인데, 사탄이 아버지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요한복음 8장 44절에서 예수님은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려 한다."라고 책망하셨던 것입니다. 사탄의 피를 받은 분통한 사실을 알았으면 분한 마음이 솟구쳐 내 몸을 칼로 찔러 더러운 거짓 피를 빼 버리고 싶은 의협심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까? ‘이놈의 고깃덩이!'하며 몸을 치면서 분통해 하는 사람이 하늘의 충신입니다. (11-237)


최후의 심정의 세계를 연결시킬 수 있는 종교라면 하나님이 제일 불쌍하다는 것을 세밀히 가르쳐 주는 종교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좋고 훌륭한 것만은 아닙니다. 불쌍하고 억울한 하나님, 분통하고 한이 넘치는 하나님입니다. 이것을 세밀히 가르쳐 주는 종교가 나와야 됩니다. 그래야 효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151-73)


하나님이 얼마나 분통하냐 하면, 왕좌를 원수한테 빼앗겼습니다. 하나님이 영광의 하나님이 못 되어 설움의 역사를 갖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 나라의 왕으로, 우주의 왕으로 있는데도 불구하고, 왕이 살아 있는데도 죽었다고 천대를 받고 계십니다. 자기의 이상을 겁탈당하고, 자기 사랑하는 아들딸이 다 겁탈당하고 완전히 원수의 농락터로서의 지구성이 돼 버렸습니다. (105-175)


지금까지 하나님이 주관할 수 있는 통일된 민족이나 주권국가가 없었기 때문에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위신을 가려 행차할 수 없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원한을 풀어 드려야 할 것이 통일가의 아들딸의 도리요, 통일가의 효자의 도리요, 통일가의 충신의 도리요, 열녀의 도리인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놓아 줄 것이다! 아는 사람은 해방이다! 이것을 똑똑히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56-235)


여러분이 하나님을 위해 얼마나 눈물을 흘려 봤느냐? 하나님이 하신 수고 앞에 대신 수고하기 위해 사지가 찢기는 길이라도 찾아가려고 발버둥쳐 봤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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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해봤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녀'라는 그 자리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공적인 눈물을 흘려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서 ‘아버지여, 당신의 아들인 나를, 혹은 우리 조상을 잃어버렸을 때 당신의 마음에 얼마나 슬픔이 사무쳤습니까? 그 후손을 통해 지금까지 역사과정에서 당하시던 수욕과 고통과 극난한 일이 얼마나 많았습니까?'라고 위로해 드리면서 무한히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합니다.
전지전능하신 권한으로 온 세계와 사탄까지도 심판해 버릴 수 있는 하나님인데도,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금까지도 그렇게 수고하는 입장에서 손을 대려야 댈 수 없고, 하나님 자신이 가져야 할 환경을 갖지 못한 채 고독단신으로 사탄 앞에 참소받고 사탄세계에 발판을 몽땅 빼앗기고 신음하시는 하나님의 입장을 생각하게 될 때, 기가 막히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입장을 동정하면서 얼마나 눈물을 흘려 봤느냐? 문제는 여기에 귀결되는 것입니다. (51-88)


세상의 부모도 자기 아들딸이 죄를 지어 교수형에 처해지게 된다면 자식이 죽기를 원하는 부모가 없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자식을 살려줄 수 있으면 백 번 천 번 살려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어머니 마음이 더 그렇지요? 타락한 세계의 여인의 마음도 그런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대관절 무엇 때문에 끝날에 가서 심판을 해버려야 되느냐? 하나님이 왜 용서를 못해 주느냐 이겁니다. 하나님은 얼마만큼 사랑하느냐? 예수가 일흔 번씩 일곱 번을 용서한다면 하나님은 일흔 번 씩 칠천 번 이상 용서해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그렇다는 것입니다. (48-200)


하나님의 구원섭리는 복귀섭리인데, 복귀섭리의 출발이 아담과 해와부터였습니다. 아담과 해와가 타락해서입니다. 선생님이 나타나기 전까지 아담 복귀를 못한 것입니다.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 전지전능하고 이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하나의 남자를 찾기 위해 지금까지 수천만 년을 피조세계에 얼굴을 나타낼 수 없었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사랑과 한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237-7)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하면 창조이상 완성인데, 창조이상은 우리 인간세계에 삼대상권 이상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중심삼고 이상이 실현될 때 하나님이 ‘아이고! 나 행복하다.'이러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엇 갖고 행복하다 하겠어요?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보좌 위에 계시는 만군의 여호와는 전지전능하시니 ‘여보게'할 때 ‘예이'하면 만사가 통할 줄 알지만 언제나 혼자이신 하나님이 얼마나 비참해요? (170-61)


사랑하는 아들을 그렇게 죽일 수밖에 없었던 하나님의 딱한 사정을 누가 알았겠느냐? 그것은 성경에 없습니다만, 아들을 죽일 수 있을 만큼 딱한 사정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 기독교의 예수를 믿겠다고 그렇게 아둥바둥 모이는 것도 비참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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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선민의 편이 돼야 할 하나님인데도 불구하고 이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는 곳마다 피를 흘리고 모가지가 떨걱떨걱 떨어지지 않나, 기름에 튀겨 죽이지를 않나…. 이러한 운명에 부딪치는 것을 보고 ‘아이구, 하나님은 막을 수 있지 않소?' 하겠지만 전지전능하면서도 그 권한의 행사를 참아야 하는 하나님은 얼마나 한이 맺히겠어요? 그거 생각해 봤어요? 그런데 어떻게 해서 하나님이 최고로 높으냐 이겁니다. 언젠가 한번 깨끗이 청산해 버리면 좋겠습니다. (64-202)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은 생명을 투입하고서라도 보호하고 싶은 것입니다. 본래 창조이상이 그렇습니다. 하나님 자신도 아들딸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기 생명까지 투입해야 되는 슬픈 하나님이 된 것입니다. (206-7)


타락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이 창조주로서 영원한 주인이 될 것인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주인이 되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사대부의 집 담 안에 숨어 있던 딸이라 하더라도 그 동네의 깡패 자식이 겁탈해서 사랑관계를 맺었다면 그 딸이 누구의 것이 돼요? 깡패 것이 되지요? 딱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하늘나라의 왕이 될 수 있는 아담이었고, 하늘나라의 왕후가 될 수 있는 해와였습니다. 이것을 복귀하는 데는 창조의 원리원칙을 중심삼고 해야 합니다. 원래 아담과 해와를 중심삼고 영원한 사랑의 법도를 세웠기 때문에 그 법도를 따라야 합니다. 그 법도를 부정하게 되면 천리를 파괴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물론 하나님 자체까지 부정당할 수 있는 입장에 들어가게 됨으로 말미암아 할 수 없이 재창조 과정을 통해서 수습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한많은 역사노정을 누가 알았습니까? (207-216)


오늘날 기성교회는 ‘하나님이 영광 가운데 있는 심판주로서 지옥 보내고 천국 보낸다.' 하지요? 세상에 제일 불쌍한 분이 하나님입니다. 제일 비통하게 몸부림치면서도 광명한 천지가 흑암의 지옥으로 떨어질 수 있는 그것을 극복하고 거기에서 몸을 가누어 눈을 뜨고 의식을 갖추어서, 죽었지만 이놈의 자식들을 다시 살려 놓겠다 하는 마음을 가지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창조주의 능력, 절대자의 힘이 있었으니 그것이 가능하다 생각하지, 그렇지 않으면 다 끝장나는 것입니다. (232-59)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하나님은 본연적 참부모의 자리에 있는 분입니다. 그런데 참부모가 되어야 할 하나님이 부모의 자리를 빼앗겨 버렸기 때문에 창조이상의 본연적 기준에서는 없었던 일이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이 창조적 세계에 있을 수 없는 것이 생겨난 것을 창조주되신 하나님은 간섭할 수도 없고 그걸 책임지고 소화할 수 있는 입장에도 서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240-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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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복귀의 한, 자녀 찾아 6천 년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원죄를 뭐라고 그러나요? 사랑을 잘못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혈통이 연결되어야 될 것인데, 악마의 사랑과 악마의 생명과 악마의 혈통이 연결되어 버렸습니다. 아담과 해와가 악마의 생명체가 돼 가지고 악마의 핏줄을 남겼기 때문에 지금까지 한스러운 역사가 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같이 전지전능하시고 천지를 근본부터 창조하여 모든 자주적인 권한을 소유하신 분이 어찌하여 악마 앞에, 역사를 통해 인간을 요모양 요꼴로 만들었어요? 그러니까 신이 없다는 결론은 당연한 것입니다. (211-7)


지난날은 사연이 많습니다. 분하고 억울한 사연이 많다는 것입니다. 내 성격에 참을 수 없었던 기가 막힌 사연이 많았지만, 혀를 깨물고 가인의 세계를 점령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가인의 개인이 아니요, 가인의 가정이 아닙니다. 가인의 세계를 소화해야만 됐습니다. 써! 얼마나 쓰냐 이겁니다. 빙산만한 쓴 것을 녹여야 됩니다. 입에 넣고 하나님을 망하게 하고 인류를 망친 억천만세 원한의 대원수인 악마, 이 악마를 말없이 굴복시켜야 됩니다. (163-126)


타락한 인류의 시조는 악마가 아버지가 됐습니다. 사탄의 사랑, 사탄의 생명을 받았기 때문에 구원역사가 힘듭니다. 기독교에서 전지전능하다는 하나님이 왜 무력한 하나님같이 되어 인류가 망살이 뻗쳤는데도 손 못 대고 있어요? 죽은 하나님의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인간 자신이 그걸 해결할 수 있는 해방권을 갖추지 않고는 하나님은 인간을 해방해 줄 수 없습니다. 해방해 줄 수 있으면 애초에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해와를 쫓아내지 않았습니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하나님이면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해와를 쫓아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쫓아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224-7)


하나님이 찾는 참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참다운 사랑을 찾아오십니다. 구원섭리역사, 복귀섭리역사 전선에서 찾아 나오는 참된 아들로서, 지금까지 때묻고 상처 입고 비통한 하나님의 가슴을 활짝 펴 주고도 남을 수 있는 여유만만한 순결한 사랑이 폭포수와 같이 흘러나와, 하나님이 그를 안고 만사를 잊어버리고 도리어 타락이 있었기에 더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자리는 없겠는가? 남자라면 누구든지 그래야 됩니다. (127-9)


악마는 하나님에 대해서 하는 말이 ‘당신의 창조이상을 중심삼고 사랑의 절대권 이상인 참된 단일 종족권을 만들기 위한 사랑의 혈통권이 이와 같이 다 망해서 파괴상태를 맞았는데도 불구하고 지금도 창조이상적 논리가 적용된다고 하시겠습니까?'하고 비웃고 나온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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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 하나님께서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얼마나 기가 찰 노릇입니까? 본래 주인의 아들이 되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원수의 아들이 되어 벗어나려야 벗어날 수 없는 도탄중에 빠져 있는 인류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이 얼마나 비통해 하시는가를 확실히 아는 기성교회 사람들이 있느냐는 말입니다. (201-339)


인류의 부모로 오셨는데 부모로 모시지 못하고 자기 위해 피흘려 죽으러 왔다는 부모가 있을 수 있어요? 사랑잔치를 베풀어 ‘아이고 내 아들아, 내 딸아! 가정이야 나라야!'하며 천하가 다 화합할 때 하나의 평화와 영광의 한날을 찬양하여야 할 입장에 있는 부모가 잃어버린 자식과 상봉해야 할 텐데, 만나서는 자식의 손에 의해 칼침을 맞아 죽어 갔다니…. 생각해 봐요, 예수님이 얼마나 비통한가. 무지한 이 인류를 대해 가르쳐 줄 수 없는 사연 가운데 묻혀 있는 하나님의 심정이 얼마나 기가 막혔겠는가? (145-127)


분통한 역사적 한이 선생님께 있습니다. 나의 한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노릇을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숱한 사연을 남긴 역사과정에 하나님의 뼛골이 녹아나는 비통한 눈물과 흘린 핏자국이 이 땅에서 함성을 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해원성사해야 할 사명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내가 지금까지 이 놀음을 하고 있습니다. (137-126)


타락한 세계를 책임지고 복귀해 나오시는 하나님은 높고 귀하고 거룩하고 깨끗한 곳에만 계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고, 형용할 수도 없는 비참하고 비통하고 참혹한 배후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21-73)


여러분은 자기보다 더 분한 입장에 있는 사람이 위로하게 될 때는 위안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누구보다도 더 비통함을 겪고 계시기 때문에 그 어떤 사람도 하나님을 위로할 수 있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시작도 하나님 자신이요, 끝도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에 그 마음 가운데 맺혀 있는 원한을 어떻게 풀 것이냐 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하나님의 내정적인 사정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정을 품고 지금까지 복귀섭리를 해 나오신 것입니다. (29-292)


하나님이 보고 싶어서 울어 봤어요? 눈물, 콧물을 흘리며 목젓이 처지도록 울어 봤어요? 그렇게 눈물 나오는 억울하고 비통한 자리에 들어가 봤어요? 이게 다 심정세계를 넘어가는데 한 고개가 되는 것입니다. (49-255)


인간과 영원히 같이 있어야 할 하나님이 인간과 갈라설 때 그 비통함과 억울함과 분함과 서러움이 얼마나 크셨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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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온 우주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사랑의 기지를 바라 성숙해 가지고 평형선상(平衡線上)에서 종횡이 결합할 수 있는 하나의 축을 이룩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랬으면 그것이 기준이 되어 천지의 모든 존재, 모든 만물의 측정 기준이 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냐 이겁니다.
그 사랑에 인연된 모든 것은 어디서나 다 맞게 되어 있습니다. (149-213)


악마는 4대를 유린했습니다. 왕후로부터 그 위로 대비마마, 그 다음에 또 왕의 할머니, 그 다음에는 딸, 이렇게 4대가 전부 살아 있는데, 그들을 왕의 눈앞에서 시퍼런 대낮에 발가벗기고 다 유린해 버렸습니다. 그 다음엔 그들을 다 때려죽였습니다. 딸까지 유린해 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원수를 처단 못하는 하나님의 비통한 사연을 알아야 됩니다. (200-7)

하나님이 원통한 게 뭐냐? 그릇된 핏줄을 받은 것입니다. 거짓 혈통을 여러분이 물려받았습니다. 기원은 사탄입니다. 사탄이란 존재는 모든 피조물을 망쳐 놓는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우주, 그와 같은 소유권, 그와 같은 핏줄이 여러분에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보고, 생각하고, 냄새맡고, 말하고, 만지고 하는 모든 오관의 뿌리는 사탄편에 있습니다.
여러분의 조상들이 아주 나쁜 부모의 열매입니다. 그런 것을 하나님이 구하겠다니 하나님이 참 불쌍하지요? 아담과 해와를 집어치우고 아담과 해와를 다시 왜 못 만들어요? 만들 수 있지만 본래 영원한 참사랑을 중심삼고 영원한 인연으로 지었기 때문에 못하는 것입니다. (216-7)


하나님의 비참함을, 하나님이 얼마나 원통한 자리에 있는지를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내가 만들지 않았으면 저렇게 안되었을 것을, 사랑 찾아서 영광의 천국을 바라 나가던 것이 이럴 수가!'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악마의 피살을 받았습니다.
악마의 사랑이 뿌려졌고, 악마의 생명, 악마의 핏줄이 거기에 있으니 이걸 빼버리지 않고는 하나님이 소유할 수 없는데, 그걸 빼버리면 죽어버립니다. 그걸 놓고 서서히 새로운 혈관과 생명과 사랑을 주입하여 제2의 창조물, 구원물로 하나님과 같은 대신자를 찾아 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원수를 사랑해 주어야 됩니다. 그 원수를 참고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212-14)

하나님이 언제 해가 떠오른다고 쉬고, 기후가 좋고 계절이 좋다고 해서 쉴 때가 있었습니까?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원수를 사랑해야 됩니다. 세상 천지의 배후에 있던 사탄을 사랑하고 가야 됩니다.
하나님 아들의 거룩함을 내가 찬양하고 그 놀라운 가치를 지닌 것을 알진대, 그 가치 앞에 비참하고도 쓰라리고도 원통하지만 가야 할 한 길이 있나니 그것이 대원수를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12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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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들딸 잃은 충격, 슬픔의하나님


  ① 영원한 독자를 잃은 하나님


순수한 본질적인 사랑을 지닌 하나님 앞에 이상적 대상으로 그리던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여 떨어져 나갔을 때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슬펐겠어요? 어떤 인간보다도 지극히 슬펐을 것입니다. 지극히 지극히 비통했을 것입니다. 그 내용이 깊고 가치있는 내용일수록 비참 중의 비참이다 이겁니다. 그런 하나님이 잃어버린 자식들을 다시 찾기 위해 복귀의 길을 더듬어 나서는 것입니다. (127-9)


부모가 사랑하는 자식을 그렇게 믿고 있는데도 자식이 배반할 때, 그 믿음에 비례해서 부모가 받는 충격과 고충, 그리고 비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또한 생명을 걸고 서로 사랑했던 사람이 배반하고 배척하여 불신할 때도 역시 말할 수 없이 비참합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몸부림치며 겪는 고통은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모릅니다. 말만 가지고는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은 세상일을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되어 비참해졌느냐? 하나님은 막연한 하나님이 아닌 구체적인 하나님입니다. 우리 인간과는 최고의 관계를 가진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 있다면, 인간과 더불어 기쁨으로 출발해서 끝이 없는 영원을 향해 계속 나아갈 수 있는 그런 출발의 기점을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출발의 기점을 인간으로 인해 잃어버렸습니다. 그것이 아담과 해와의 타락입니다.
세상에서도 부모가 환갑이 넘어 낳은 만득자(晩得子)인 7대 독자(七代獨子)가 죽는다고 생각하면 절망 중의 절망일 것입니다. 젊으면 또 낳을 수 있지만 만득자로 태어난 7대 독자가 죽는다면 7대권을 계승하려던 조상들의 마음이 얼마나 애가 타겠습니까? 조상들은 자기의 후손, 자기의 핏줄을 통해 세계에 없는 만복을 받고 싶어합니다. 그러니 자식이 죽는다면 부모는 따라 죽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은 7대 독자가 아니라 영원한 독자(獨子)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담을 가정을 이루게 하여 창조의 대업을 이룬 자리에 세우려 하였는데, 그 아담이 죽었으니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이렇게 일이 틀어졌을 때 어떠했겠습니까?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의 타락으로 6천년 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십니다.
원래 창조원칙을 보면, 사랑 일체 이상권 내에 나가게 되면 영원한 소유주가, 사랑을 중심삼은 주체자가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런 중심이 되어야 했는데 사탄이 중심이 되었습니다. 천지(天地)가 지천(地天)이 되고 전부 거꾸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참된 이상으로 바라던 사랑이상, 참된 사랑을 중심삼고 일체된, 한 몸이 된 것은 가를 수 없어야 할 것인데, 그 핏줄도 하나님의 직계 자녀가 되어야 할 것인데 그것이 틀어짐으로 말미암아 반대가 됐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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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비참상을 매일매일 시간시간 바라보는 그 하나님의 심정이 어떻겠느냐? 내 아들이 그렇게 병신이 됐다 할 때, 왕자 왕녀의 영광을 찬양해야 할 존재가 똥구덩이가 돼 가지고 지옥으로 거꾸로 꽂혀 버렸다 할 때, 전지전능하다는 하나님의 위신이 뭐가 돼요? 절대적인 하나님의 위신이 뭐가 돼요? 그 얼굴을 들 수 있겠어요? (218-227)


아들이 희생되면 아버지가 아들을 죽으라고 내버려 두던가요? 이런 관점에서 사랑의 하나님은 사랑의 대상인 우리를 죽을 자리에 내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라면 이상적 세계를 만들어서 부활시켜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두고 볼 때 그것은 가능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럴 수 있는 자리에 계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를 그러한 이상적인 부활권으로 옮겨 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죽을 수 있는 곳, 비참한 곳에 우리 인간을 살도록 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을 고차원의 세계로 데려가기 위한 하나의 관문으로 그런 곳을 두었다면 야, 그거 멋진 일이다 이겁니다. (67-212)


창조주의 위신까지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위신까지도,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하나님의 실존성까지도 잊어버리고, 그런 심정으로 아담과 해와를 사랑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타락한 아담과 해와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했겠느냐, 이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7-285)


오늘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의 아들딸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울어도 본체만체 합니다. 아무리 슬퍼해도 본체만체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사탄의 혈육을 받고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슬퍼하는 것을 보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망하는 것을 보면 좋아하며 웃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인간을 놓고 지도하고 개척의 방향을 가르쳐 주려니 얼마나 수고로우실 것이냐? 하나님에게 위하는 마음,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이 없었더라면 지금까지 섭리역사를 붙들고 나오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42-241)


  ② 하나님의 역사적 비참상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계신다면 얼마나 분개하겠는가? 이 만민은 자신의 혈통적 후손이어야 하는데, 악마가 비참한 경지에 밀어 넣고서 ‘당신의 후손은 이렇게 처참한 입장에 처해 있다.'고 하며 하나님을 대해 조소(嘲笑)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또 ‘전지전능한 하나님인데 이 환경을 어떻게 수습하겠습니까?'라고 할 때 하나님은 침묵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들으면서도 듣지 못한 척하고, 냄새를 맡으면서도 맡지 않는 척하고, 느끼면서도 느끼지 않은 척해야 하는 하나님의 역사적 비참상을 여러분 생각한 적이 있어요?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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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기성교회에서 믿듯이, 전지전능하고 영광의 보좌에 앉은 하나님이라면, 자기 아들딸이 죽어가는데 그 보좌 위에서 ‘야, 이리 올라오너라. 내가 자리를 뜰 수 없다!' 그러겠어요, 보좌고 뭐고 집어던지고 내려가겠어요? 어떤 거예요? 그냥 있겠어요, 내려가겠어요? 왕관을 벗고 뛰어 내려가겠어요? 어떻게 하겠나 생각해 보라구요. (123-150)

하나님이 소리를 질러 울부짖으면서 ‘내 아들아! 내 딸아!' 하고 부르시기를 몇만 년, 몇십만 년, 몇백만 년을 해 나오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런 하나님 앞에 ‘아버지이-!' 하고 목이 쉬도록 불러 봤어요? 혀가 말리고, 숨이 막히고, 눈이 감겨 뜰 수 없을 만큼 간절히 아버지를 불러 봤어요? 생명의 주체되는 그 가치를 품기 위해서 얼마나 뒤넘이쳤느냐 이겁니다. 그 뒤넘이친 비례의 기준으로 여러분의 인격의 기준이 측량되는 것입니다. (184-192)


우리는 전지전능하신 그분을 대할 수 있는 아무런 내용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타락한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의 눈은 속된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오관 감정은 전부 속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도 없지만, 공의의 법을 가지고는 상대할 수 있는 내용이 절대 없지만, 사랑의 법을 가지고는 대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신앙생활에 있어서 연한이 깊어갈수록 사랑의 철학을 가지고 살고, 사랑의 철학을 가지고 모든 것을 분별하면서 사는 신앙인이 돼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10년이 지나고 20년, 30년의 생을 거치면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자동적으로 된다는 것입니다. (149-9)


하나님이 수천 년 동안 복귀섭리를 하시면서 수난길을 거쳐온 것은 하나님이 마음이 좋아서 참고 나온 것일까요? 하나님이 지금까지 인류 역사 수만 년 동안 구원섭리를 해 나오면서도 아직까지 지치지 않고 계속하는 그 원인이 어디 있느냐?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그렇다? 아닙니다. 사랑의 길을 찾아 나오기 때문에, 사랑의 아들딸을 찾아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년을 하루와 같이 수난길을 넘고 넘을 수 있는 위대한 힘은 사랑이었느니라! 그거 맞아요? 맞습니다. (109-263)


하나님이 불쌍해요, 불쌍하지 않아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왜 불쌍하시냐고 하겠지만 아무리 전지전능하다 하더라도 사랑하는 아들딸을 잃어버린 충격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하나님 자신에게 있다면, 하나님은 지금까지 6천 년의 역사노정을 거치시면서 고생하실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35-77)

인간이 죄를 지었다고 해서 ‘야, 이놈아, 왜 죄를 지었느냐?'라고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죄지은 사정을 잘 아시는 하나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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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사정은 생각지 않고, 인간의 사정을 알아주려는 하나님입니다. 슬픈 자에게는 슬픈 사정을 갖고 찾아 오셨고, 고통받는 자에게는 고통의 사정을 갖고 찾아 오셨고, 억울하고 분통한 자에게는 억울하고 분통한 사정을 갖고 찾아 오셨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어느 정도 사정을 통해 보았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생활환경 가운데도 그렇게 찾아 오셨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심정을 갖고 찾아 오셨습니다. 너는 나를 배반해도 나는 네 아버지라는 마음이 있기에 6천 년이란 세월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9-219)


통일교회는 뭐냐? 하나님의 심정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해방하자 하고 있습니다. 기성교회는 그런 말 한다고 우리보고 이단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잘난 대통령이라도 자식이 죽었다면 그 죽은 자식 앞에 대통령의 권위를 가지고 ‘아들이 죽었으나 대통령은 눈물 흘릴 수 없다.' 그래요? 구석에 들어가서 코를 박고 통곡하고 나와서 쓱 쓸고 그러면 통하지만, 그러지 않으면 죽은 아들 영이 ‘애비 이거… 애비가 아니었구만.'할 것입니다. 죽은 영이 살아 있다면 그 애비를 도와주겠어요, 반대하겠어요? 세계 대통령이 됐든 누가 됐든 자기가 사랑하는 자식이 죽었을 때는 눈물을 흘리고 다 그래야 됩니다. (196-9)


인간의 창조본연의 특권적인 가치를 상실해 버리고 타락의 구덩이가 되어 허덕이는 무가치한 인생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내정적 심정이 얼마나 비참하겠어요? 저놈의 자식들이 본래는 내 사랑과 내 생명과 내 혈통을 통해서 직계 자식이 되어 하늘나라의 영광을 차지할 것인데, 패자의 탈을 쓰고 신음과 고통과 탄식과 절망 속에서 허덕이다 생명을 끊는 자리에 있으니 그것을 바라보는 하나님이 얼마나 기가 막히겠어요? 그런 하나님은 슬픈 하나님인 것을 몰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총재는 하나님을 알고 나서 몇날 몇 주일을 통곡했습니다. 통일교회의 출발에는 그런 깊은 사연이 있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211-132)


하나님의 마음 속에 고통이 있는 줄 아무도 모릅니다. 역사상에 나타나시고 지금 여기에 선생님을 통해 나타나셔서 그 깊은 사명을 밝혀 냈으니까 알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모른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예수님도 그것을 몰랐고 알았다고 하더라도 마음에 있는 것을 말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종교 지도자 중 그 누구도 그와 같이 숨겨진 우주의 비밀을 알지 못했습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 앞에 선생님이 나타나서 우주의 비밀이 밝혀진 것입니다. (215-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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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구속되신 하나님, 영어의 하나님


  ① 하나님이 설 자리를 잃었다


나의 한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나님노릇을 못 하고 있습니다. 이런 숱한 사연을 남긴 역사과정에 하나님의 뼛골이 녹아나는 비통한 눈물과 흘린 핏자국이 이 땅에서 함성을 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한을 해원성사해야 할 사명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내가 지금까지 이 놀음을 하고 있습니다. (137-126)


하나님을 해방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지금 사랑을 중심삼고 구속되어 있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해방을 못받았다는 것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우주를 창조한 하나님께서 인간 때문에 사랑을 중심삼고 이루시려던 이상세계를 사탄에게 빼앗겼으니, 하나님도 심정적인 해방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적 해방기반이 이 우주에 생겨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구속당했습니다. 사랑하는 자식이 죽었는데 부모가 편안할 수 없는 것입니다. (138-240)


하나님을 내 손으로 해방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해방된 하나님이 아닙니다. 구속된 하나님입니다. 아들딸을 잃어버린 부모, 더더욱 효자가 죽고 난 후에 부모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그 효자 이상의 모든 면을 갖추어 십 배 이상 공을 들여 효를 하더라도 그 본래의 마음을 해방할 수 없는 것입니다. 레버런 문이 그런 하나님을 해방하려는 것입니다. (135-266)


분통한 하나님, 하나님이 왜 분통할까요? 인간 세계에는 청춘시절에 수고를 하면 반드시 미래에는 희망이 보장되는데, 하나님은 역사 이래 지금까지 고생하고 있는데 언제 희망이 있어요? 언제 하나님의 희망이 이루어지겠어요? 하나님이 젊은 하나님이 됐겠나요? 지금은 늙은 하나님이 됐겠나요? 하나님이 몇 살 됐을 것 같아요? 하기야 하나님은 우주 바깥에 있기 때문에 연령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지구성같이 태양계를 일년에 한 바퀴씩 도나요? 그 바깥에 있으니 셀 것이 없습니다. 계산할 게 있어요? (105-175)


하나님이 얼마나 분통하냐 하면 왕좌를 빼앗겼습니다. 왕좌를 원수한테 빼앗겼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이 못 되어 설움의 역사를 갖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나라의 왕으로, 우주의 왕으로 있는데도 불구하고, 왕이 살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왕이 죽었다고 천대를 받고 계십니다. 자기의 이상을 겁탈당하고, 자기 사랑하는 아들딸이 다 겁탈당하고 완전히 원수의 농락터로서의 지구성이 돼 버렸습니다. (105-175)


만민이 탄식권을 벗어나지 아니하는 한 부모의 입장에 선 하나님은 탄식권내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자식이 근심하고 있는데 부모가 편안한 자리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해방시켜드려야 됩니다.
무엇으로 하나님을 해방시켜드려야 되느냐? 하나님이 만민을 사랑하지 못하는 구속권내에 있기 때문에 만민을 대해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는 해방권을 하나님 앞에 찾아드려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타락한 사람으로 저끄러졌기 때문에 타락선을 넘어선 승리한 아들딸이 되어 해방시켜 드려야 됩니다. (65-9)


인간이 타락함으로써 무엇이 어떻게 됐습니까? 하나님이 자유로운 하나님이 못 됐습니다. 구속의 하나님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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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는 인류 시조가 구속되어 버렸습니다. 그 다음엔 천사세계까지 구속되어 버렸다 이겁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역사적인 수많은 종교인들이 구속권 내에서 허덕이고 있습니다. 인류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79-9)


불효자식을 가진 어버이는 그 불효자식으로 말미암아 구속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어버이를 해방하기 위해서는 불효된 이상의 효성을 다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대중 앞에 공인을 받아야 됩니다. 그래야 옛날의 죄를 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리입니다.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뭐 ‘선생님만 위해서….'하는 것은 다 필요 없습니다. 이웃과 이 나라, 이 민족은 불쌍한 무리들입니다.
5천 년 동안 "초가삼간 집을 짓고 양친부모 모셔다가 천년만년…." 양친부모 모신다는 말은 고맙지만 천년만년 초가삼간에 살아요? 불쌍한 민족이란 것입니다. 이 불쌍한 민족을 올바로 지도해야 됩니다. 돈 없고 갖추지 못한 이 민족이 하나님의 복마저 못 가지면 어디에 가서 살 거예요? (85-224)


  ② 하나님이 하나님 노릇 못하고 있다


통일교회는 언제까지 남아지느냐? 지구성을 해방하고, 영계를 해방하고, 나중에는 하나님을 사랑의 심정으로 해방할 때까지 통일교회는 가야 됩니다. 결국은 인류를 해방하고, 영계를 해방하고, 하나님을 해방해야 됩니다. 이런 말을 처음 듣지요? 하나님이 우리를 해방해 줄 줄 알았더니 하나님을 우리가 해방해야 됩니다. 심정적으로는 하나님이 구속되어 있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85-224)


사랑하는 부모 앞에 불효자식이 있으면, 그 불효자식이 부모님이 바라는 소망의 기준까지 해방될 수 있는 자리에 올라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는, 그 부모의 심정의 해방권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에게 있어서 최고의 사랑의 상대로 지은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의 사랑의 상대인 동시에 종적인 면에서는 부자지관계요, 횡적인 면에서는 부부적인 내연이 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중심삼고 천지의 모든 사랑 이상을 실천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으로 그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까지도 구속의 하나님이 돼버린 것입니다. (210-306)


천국을 이루어서 살지 않는 사람은 천국에 못 가는 것입니다. 내가 감옥에 들어가 쇠고랑을 차는 자리에 서더라도 나를 구속할 수 없는 사랑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허리를 구부리고 잠을 못 자는 자리에 있을 때 밤에 일어나면 손에서 빛이 나더라 이겁니다. 왜 빛이 나요? 하나님이 품어 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걸 알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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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어두운 방에서도 빛이 나더라 이겁니다. 내가 신음소리와 울음소리를 듣고는 감방 저 밑에서 숙연히 있으면 그 다음날 아침에는 전부가 미싯가루 보따리를 나에게 갖다 주더라 이겁니다. 거리를 넘어서 ‘아무 감방 아무개 몇 호한테 네가 이걸 갖다 주지 않으면 이 감방 전체가 편안치 않고 너의 집안이 편안치 않으니 갖다 주라'하는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니 이런 하나님을 박대하는 배은망덕한 통일교회 무리가 돼서는 안 되겠습니다. (137-128)


‘인류 때문에 하나님이 구속을 받고 있구나. 나 때문에 하나님이 구속을 받고 있구나. 나라는 한 개체 때문에 하나님이 사탄의 참소를 받고 있구나. 나 때문에 예수도 죽었구나. 나 때문에 성신이 피어린 투쟁의 역사를 붙안고 뒤넘이쳐 나오는구나. 하나님이시여, 저에게 힘을 주시옵소서. 아버지를 안식시켜 해방의 자리에 옮겨 드리겠습니다. 예수도 성신도 해방의 자리에 옮겨 드리겠습니다.'할 수 있는 신앙에 주린 자, 소망에 주린 자, 사랑에 불타는 자를 하나님이 6천 년 동안 찾아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7-150)


하나님과 사탄이 싸우면 누가 말릴 수 있어요? 그냥 싸움이 끝나요? 하나님 앞에 효자가 없었고, 하나님 앞에 충신의 도리, 성인의 도리, 성자의 도리를 다하면서 하늘 나라를 지킬 수 있는 주류 사랑의 체제가 없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이 설 자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영어(囹圄)의 몸으로 연금상태에 머무른 하나님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완전히 폐허가 되고 비어 있습니다. 그런 아픔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입니다.
그래 하나님이 찾고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 만나 봤어요? 타락했기 때문에 못 만나 봤습니다. 하나님이 찾고 있는 어머니 아버지 만나 봤어요? 하나님이 찾고 있는 아내 남편 만나 봤어요? 하나님이 찾고 있는 아들딸 만나 봤어요? 이 한스러움을 어떻게 풀 것이냐? 이 심정을 구속하는 철망을 누가 끊을 것이냐?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 외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본질적 사랑 외에는 없습니다. (209-64)


하나님은 모든 면에서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분인데, 비법적인 사랑이라는 조건 때문에 손댈 수 없는, 그 한스럽고 슬픈 하나님의 마음, 기가 막히게 지루함을 누가 알아요? (197-275)


기성교회에서는 ‘오! 거룩 거룩하신 하나님, 오! 영광의 하나님, 나에게 복을 주십시오.'하는데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비참한 하나님입니다. 구속 가운데 있는 하나님입니다. 아들을 잘 낳아가지고 해방받아야 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운명은 처량한 운명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하나님을 해방시켜 드려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천도가 바로잡히지 않게 되니, 이 땅 위에 이상세계가 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로잡기 위한 역사가 통일교회의 역사요, 통일교회의 사명입니다. (2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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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회 말씀. 통일교회 내용, 귀로 듣는 내용 가운데에는 뭐가 있느냐? 심정적인 구속을 받고 있는 하나님을 해방시킬 수 있는 내용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탄식하셨다고 했습니다.
탄식의 역사는 출발부터 세계적으로 온 것이요, 세계적이 되었기 때문에 바울은 말하기를 ‘만물이 탄식하고 우리 조상들도 탄식하고 전인류까지 탄식한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뭇아들딸이 나타나기를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탄식권을 벗어날 것을, 가려갈 것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65-9)


 4) 사탄을 처단하지 못하는 이유


  ① 사탄이 참소하는 이유


오늘날 신학적인 입장에서도 본래부터 사탄 마귀가 있었느냐 없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만일에 본래부터 사탄이 있었다면 문제가 크다는 것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6천 년 동안 반항하면서 그것을 막아나온 능수능란한 사탄이 원래부터 있었다면, 이 사탄을 퇴치하고 제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느냐? 문제가 됩니다. (54-56)


사탄이 어디에서 생겨났느냐? 생각할 때 어떤 사람들은 본래부터 있었다고 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반대하고 본연의 인류 시조를 타락시킨 사탄이 본래부터 있어서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면, 사탄이 있는 한 우리 인간의 완전한 구원은 바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이원론이 되고 두 목적을 가진 세계는 영원히 계속된다는 결론이 나오게 됩니다. (53-327)


원래 하나의 뜻으로 세웠던 창조이상 세계를 타락으로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적인 권한을 가진 분이기 때문에 모든 외적인 세상이 변하더라도 스스로는 절대적으로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악마한테 아담과 해와를 빼앗기고 모든 만물은 넘겨주었지만, 하나님은 절대적인 분이기 때문에 본래 천사장인 사탄 마귀까지도 자연굴복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지만 없는 것과 같은 입장에서 절대적인 하나님의 권위를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악한 사탄을 칠 수가 없습니다. 선한 하나님이 악한 사탄을 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210-306)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왜 사탄을 대번에 치워 버리지 못하느냐? 그걸 치워 버리려면 아담과 해와 창조한 것까지 다 치워 버려야 된다는, 사랑 이상권을 폭파시켜야 된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주인에게는 한 번 하겠다고 한 것은 절대적으로 완성시켜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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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요사스러운 악마가 아무리 공격하고 아무리 핍박한다 하더라도 세우신 도리를 회복해 놓기 위해서 역사를 품고 나오시는 주인된 분이 하나님이란 것을 누구도 몰랐습니다. (208-231)


그런데 전지전능하시고 절대적인 하나님께서 왜 지금까지 인류가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하고 사탄의 발 아래 희생시키면서도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행사조차 못하는 하나님이 되었느냐? 이건 심각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치리할 수 있는 나라가 없기 때문이요, 하나님이 다스릴 수 있는 백성이 없기 때문이요, 하나님이 다스릴 수 있는 종족이 없기 때문이요, 하나님이 다스릴 수 있는 가정이 없기 때문이요,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공인할 수 있는 개인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개인이 성립되고, 그 가정이 성립되고, 그 종족이 성립되고, 그 민족이 성립되고, 그 국가 주권이 성립되면 일시에 악한 나라, 악한 국민, 악한 종족, 악한 가정, 악한 개인을 치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선한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권위가 있는 것입니다. (56-235)


여러분, 사탄을 이길 수 있어요? 지혜의 왕이신 하나님도 사탄의 참소에 걸리면 꼼짝 못했지요? 일국의 대통령도 그렇습니다. 어떤 조건에 걸려서 국민이 와와 데모하면 어때요? 모가지 자를 수 있어요? 조건만 걸리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도 꼼짝 못합니다. 장관도 조건만 걸리면 하루 저녁에 모가지가 짤까닥…. 그러니 조건방어(條件防禦)를 해야 됩니다. 조건방어를 어떻게 하느냐 하는 문제가 신앙생활에 있어서 지극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여기에 생사문제가 달려 있습니다. (76-38)


우리 인간들은 사탄의 사랑을 중심삼고 사탄의 생명, 사탄의 혈통으로 인연되어 있습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이런 자리에는 하나님이 계실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간섭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역사 이래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왜 무능력한 하나님이 됐느냐? 원수되는 입장에 사탄이 서고, 원수가 무엇을 빼앗아 갔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빼앗아 갔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권, 하나님의 생명권, 하나님의 혈통권을 유린했다는 것입니다. 이 개념을 언제나 가져야 됩니다. (206-231)


본래 사탄은 천사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천사장이 ‘나는 타락하여 사탄이 됐지만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절대자이므로 당신이 세운 법도를 중심삼고 해결해야 될 것이 아니요? 나는 법을 어겨서 사탄이 됐을망정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절대자이시니만큼 당신이 설정한 법을 중심삼고 실천해야 될 것이 아니오?'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3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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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원수를 사랑하지 않으면 우리의 길을 넘어갈 수 없는지를 설명하겠습니다. 이것은 원리책에는 없지만 아주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알아두어야 합니다. 타락한 천사장이 하나님을 참소하더라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비록 천사장은 타락했더라도 하나님이 세우신 법도를 준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자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사장이 타락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피조물을 그가 세우신 법칙, 또는 규칙에 따라 주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타락 이전의 천사장에게 하시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든지간에 타락 이후에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천사장은 하나님께 ‘하나님, 당신은 저를 완성기까지, 완성기 이후까지라도 사랑하시기로 되어 있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52-60)


아담이 되려면 세 천사장을 거느려야 됩니다. 천사장은 절대 복종해야 됩니다. 절대 복종하고 절대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절대 순종하지 않고 절대 복종하지 못한 사탄은 절대 순종하고 절대 복종해야 할 천리원칙이 남아있는 한, 원리원칙이 남아 있는 한 그 원리원칙을 사탄 마음대로 못합니다. 그 원리원칙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사탄 자신이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전지전능하더라도 원리원칙에 어긋나면 제거할 수 있는 것입니다. 헌법을 통해서 대통령이 행사를 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헌법에 없으면 대통령도 마음대로 못하게 돼 있습니다. (172-45)


통일교회의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심각한 사람입니다. 심각했습니다.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왜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신데 악마를 하루 저녁에 청산해버리지 않고 그냥둬요? 욥기 같은 것을 보더라도 그렇게 무력한 하나님이 어디 있어요? 그걸 다 깨쳐야 됩니다. 그러려니 얼마나 심각해요? 죽기 아니면 살기로 일신을 교수대에 내놓고 투쟁을 해 가려 가지고 찾아온 것입니다. 자기 본연의 생명을 찾아와야 됩니다. (187-104)


욥기 같은 데 보면, 하나님은 왜 악마가 원하는 걸 다 이루어 주느냐? 위하는 사랑을 가진 본체이기 때문에 악마까지도, 악마에 대해서 악마의 행동으로 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참이라는 것입니다. (144-144)


하나님은 하나님의 신비적인 창조력을 활용해 가지고 사탄을 굴복시키지 않습니다. 자연굴복입니다. (207-315)


지금 악마가 세상을 하나님에게로 돌아가지 못하게끔 다 망쳐 놓았습니다. 프리섹스니 뭐니…. 미국을 보면 근친간(近親間)의 성관계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애비가 딸이 세 자매면 세 자매를 다 데리고 삽니다. 그런 게 수두룩합니다. 프리섹스니까 삼촌이 엄마하고도 하나되고, 아들이 자기 어머니하고도 하나되고, 이러고 있습니다. 동물과 똑같습니다. 그러니 사탄이 하나님한테 ‘이런 판국에서 하나님의 창조이상인 사랑이상을 세울 수 있소. 하나님? 하하하!'이러고 있다는 것입니다. (22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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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하나님은 법도를 지키신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라구요? 우주의 마음 같은 분입니다. 이 우주는 몸 같은 것인데, 그 몸 가운데는 누가 들어가 있느냐 하면 악마가 들어가 있습니다. 공중 권세를 잡은 사탄이 이 우주를 지배하는 것입니다. 이걸 소화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힘을 가지고 쳐 버릴 수 없습니다. 우주의 창조의 본질이 사랑이었고, 우주의 역사적 전통이 사랑을 통한 것이었기 때문에 틀린 자가 있더라도, 하나님은 그 원칙의 자리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타락한 이 우주를 회복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본질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창조하셨던 참사랑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투입하던 본연적 기준을 영원히 계속하지 않고는 절대자인 하나님의 권위를 다시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하나님이 기가 막힙니까. (210-197)


타락은 사탄 중심한 사랑의 인연을 부모의 자리에서 맺은 것입니다. 선악과 얘기는 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 사랑, 사탄 생명, 사탄 혈통을 이어받은 혈족이 이때까지 남아져 내려온 것입니다. 사탄은 사랑의 원수입니다.
하나님이 창조이상으로 만년 꿈꾸어 온 사실들을 파탄시킨 것입니다. 사대부 가문의 외동딸을 종새끼가 잡아다가 유린해 버렸으니 그 집 주인이 딸이라고 할 수 있어요? 쫓겨날 수밖에 없지요. 천지 대도의 궤도를 떠난 것은 사랑을 잘못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218-227)


악마의 새끼를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딸 이상 사랑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본연의 창조이상을 실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악마는 ‘나는 타락했기 때문에 이렇게 됐고 내 혈족은 하나님을 배반하지만 하나님만은 천리의 도리를 지키고 가야만 할 하나님 아니오?' 이렇게 제창(提唱)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딱 걸려 있습니다. (208-231)


사탄이 하나님에 대해 참소하기를 ‘당신은 영원불멸의 주체되신 하나님이요, 천지창조의 대주재이신 것을 내가 알아요. 진리의 본체요, 사랑의 본체요, 원칙의 본체이기 때문에 당신은 그 법칙, 그 원칙대로 변할 수 없소. 그렇기 때문에 나는 타락했을망정 당신은 당신이 세워 온 원칙은 실행해야 될 것이 아니오. 그러려면 당신은 원칙적인 존재로서 타락한 천사를 사랑하지 않고는 본연의 세계에 아들딸을 데려갈 길이 없소. 당신이 나를 사랑하고 당신의 아들까지도 나를 사랑하지 않고는 천국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 타락 전 천사장에 대해 당신이 세운 계획이기 때문에, 나는 타락했더라도 당신은 그 원칙을 지켜야 됩니다. 그러니 나를 사랑해야지요. 그러지 않으면 참하나님이 될 수 없고 참아들딸이 될 수 없소.'하고 딱 물고 늘어지는 것입니다. (129-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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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말하기를 ‘하나님! 나는 변하는 악마의 괴수이고 변할 줄 아는 조상이 되어 있지만 당신은 천지의 대주재요, 진리의 본체요, 불변의 주인공이 아니오? 생명의 불변의 원칙을 가질 수 있는 사랑을 지닌 분이 아니오? 나는 타락해서 망나니가 되어버렸지만 당신에게는 당신이 세운 본래의 이상 기준이라는 것을 실천해야 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니 나는 당신의 이 뜻을 이루어 나가는 이상의 문까지…. 그 세계까지 들어가더라도, 거기에서 살지는 못하더라도 들어갔다가 마음대로 나올 수 있습니다. 살지 못하기 때문에 나와야 됩니다.'하는 것입니다. 이게 사탄의 주장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네 말이 옳다'하는 것입니다. (191-211)


사탄 마귀는 우리 인간들이 죄를 하나라도 지으면 하나님 앞에 참소합니다. ‘이 녀석은 죄를 지었으니 지옥에 가야 됩니다.' 당장에 참소합니다. 하나님 앞에 인간의 죄를 참소하는 이 사탄은 죄를 지은 것이 틀림없는데, 이 사탄 마귀의 죄를 하나님 앞에 고소한 사람은 아직까지 안 나왔습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이시여! 당신의 권한을 중심삼고 볼 때, 사탄 마귀는 우리 인류 앞에 용서받을 수 없는 이러이러한 악한 죄를 지었고, 하나님 앞에 용서받을 수 없는 이러이러한 악한 죄를 지었으니, 처벌해 주시옵소서' 할 수 있는 사람만 나온다면 죄지은 사탄을 제거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했는데도 사탄을 제거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 편의 하나님이 아니라 사탄 편의 하나님인 것입니다. (54-131)


사탄은 천사장이므로 아담과 해와가 완성되어서 천국 들어갈 때는 천사장도 아담과 해와를 따라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천사장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아담과 해와의 사랑을 받고 난 다음에 천사장과 더불어 천국 갈 수 있는 것이 원리요, 창조원칙입니다.
사탄은 중간에서 실수했지만 사탄이 ‘나는 종으로서 배반자가 되었지만 주인되는 당신은 천리의 대도를 정하고 그 위에 본질적 전통을 세워서 당신이 세운 원칙 위에서 완성한 아담과 천사장을 사랑하고 나서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원칙인데 당신은 그 원칙을 버릴 수 없지 않습니까?'하면, 딱 걸려 들어가는 것입니다. ‘네 말이 옳다.' 이겁니다. ‘나는 이렇게 되었어도 하나님은 나와 같을 수 없지 않습니까?' 사탄이 이러면서 걸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211-132)


악마는 천사장이기 때문에, ‘본래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아들딸들은 나를 사랑해야 되지 않소? 하나님도, 아담 자신도 나를 사랑하고 나서 천국 들어가는 것이 본래의 창조원리가 아니오?' 악마는 또 그러니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내 참소조건(讒訴條件)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144---

당신은 나를 사랑하고 당신의 아들되는 아담도 나를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워야 하오.'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중심삼고 종교인에게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이 시작된 것입니다. (219-12)


하나님과 부자지관계가 되면 아들이 통곡하는 자리에서는 아버지되는 하나님도 통곡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사탄은 혼비백산해서 도망가게 됩니다. 그 자리에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228-176)


인간으로서 자기 본연의 권위를 찾을 수 있는 사람, 즉 사탄 마귀보다 위에 있는 사람이 나오지 않고는 이 세상을 하늘편으로 돌이킬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사탄을 끌고가서 ‘하나님, 사탄 마귀가 이런 죄를 지었는데 왜 심판해 버리지 않으십니까?'하고 고소할 수 있는 사람이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53-327)


지금까지 우리는 사탄한테 주관을 당해서 끌려왔기 때문에, 반대로 우리가 사탄을 포박해가지고 하나님 앞에 사탄을 끌고 가 참소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세상에서는 사탄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을지라도 사탄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는 모르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전지전능한 하나님 앞에 ‘하나님이여, 이 죄를 지은 사탄을 당신의 전지전능하신 권한을 가지고 처단해 주소서'라고 하며 참소한 사람은 하나도 안 나왔습니다. (51-88)


그러면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데 왜 천사장을 때려잡지 못해요? 왜 사탄 악마를 때려 치우지 못하느냐 이겁니다. 사탄을 때려잡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도 사탄을 사랑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절대자이신 하나님이 세웠던 천사장이 악마가 되었을망정 하나님은 그를 본래 타락하지 않은 입장에서 생각해 줄 수 있는 기준을 언제든지 갖고 나가야 됩니다. 그러니까 천사장을 사랑해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 지음받은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의 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뿐만 아니라 아담과 해와도 사탄을 사랑해야 됩니다. (175-9)


하나님이 6천 년 동안 사랑하는 아들딸의 목을 자르는 것을 수천만 번 자행해 온 사탄을 추궁하지 못하는 것은 천사장 입장에서 그를 완전히 사랑해 주지 못한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누가 잘못하면 ‘하나님! 저 아무개가 이렇게 하려고 합니다.'라고 하면서 참소하는 사탄의 역사가 배후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은 오늘날 통일교회가 나왔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것이지 아무도 몰랐던 내용입니다. (35-77)


만일 사탄 마귀를 끌고 가서 하나님앞에 고소한다면 하나님이 ‘야 이놈아! 그것은 그런 것이 아니야!'라고 하시겠소, 좋아하시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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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두말할 것 없이 ‘오냐, 내 아들아! 하나밖에 없는 내 아들아!'하며 만세에 내세워서 축복해 주시고 싶으실 것입니다. 그러고 싶으신 하나님의 내정이 얼마나 간절하고 그것을 얼마나 바라고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하나님이시요, 전지전능한 하나님이시요, 공의의 심판주이시기 때문에 만일에 사탄 마귀를 고소하고 참소하는 사람이 나오면 하나님은 사탄을 심판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54-56)


아담과 해와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마음대로 못 합니다. 자기 아들딸들이 살인을 했다고 해서 어머니가 대신 책임질 수 있고, 형제가 대신 책임지겠다고 할 수 있나? 없습니다. 그게 하늘의 법입니다. 누구와 더불어 죄를 지었느냐? 사탄과 더불어 죄를 지었습니다.
아담이 죄를 짓기는 지었는데, 사탄이 어떻고 아담과 해와가 어떻다는 걸, 하나님이 아직까지 심판하지 않았다 이겁니다. 쫓아내기는 했지만 하나님이 아직까지 구원섭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사탄의 참소를 받으면서도 심판하지 못했다 이겁니다. 이런 문제는 신학적으로 볼 때 큰 문제들입니다. 왜 처리하지 못하느냐?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왜 악마를 처리하지 못하느냐 이겁니다. (223-297)


하나님은 싸움에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권, 그 이상권 내에는 전쟁, 투쟁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투쟁의 개념이 있으면 이원론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이것은 하나의 이상세계, 절대적인 평화의 세계와는 관계없는 자리에 떨어지기 때문에 하나님의 창조세계권 내에는 투쟁이라는 개념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224-194)


사탄이 어떻게 떨어져 나가느냐? 그걸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사탄은 큰 것, 내려간 것을 전부 갈라놓았지만 하나님은 작은 것, 내려간 것을 다 합해 가지고 크게 만드는 것입니다. 반대의 길입니다. 우주의 원칙, 우주의 생성의 원칙으로 볼 때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면 참된 사랑을 찾겠다는 우주 근본에 입각해서 볼 때 이 근본에 순응하는데 있어 사탄은 근본을 반대했기 때문에 떨어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전지전능하고 유일무이하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모든 본성은 백퍼센트 위해 주는 것입니다. (179-33)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도 역사를 통해 사랑의 원수를 갚는 데 있어 힘과 능권으로 원수를 갚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법도를 통해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원수가 자기 스스로 하나님 앞에 완전히 굴복하여 종의 자리에서 세계 인류에게 심판을 받더라도 감사할 수 있는 자리, 원수를 그런 자리에까지 끌고 나가려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그 죄를 탕감할 수 없습니다. (42-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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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하나님을 해방시켜 드리자


  ① 하나님은 영어에 구속된 입장


악신과 선신의 싸움을 누가 끝내 줄 수 있느냐? 그것은 하나님도 아니요 사탄도 아닙니다. 그럼 누가 할 수 있겠는가? 참사랑에서 출발하여 참사랑을 가지고 가는, 세계 만민이 따라 갈 수 있는 사랑의 주인공이 나오지 않고는 하나님의 싸움과 사탄의 싸움을 끝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싸움에서 해방되지 않는 한 인간역사세계에 있어 평화라는 말은 망상적인 말입니다.
이상이란 말은 추상적이고 감상적인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참사랑의 대표자를 보내는데, 그 주류사상을 메시아사상, 구세주사상이라 합니다. 구세주는 인간만이 아니라 하나님까지 해방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악을 처단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겁니다. 하나님 해방과 악을 결산짓기 위한 총책임자가 구세주입니다. (136-198)


구세주의 사명은 하나님을 해방하는 것이요 사탄을 처단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인간을 물어 제끼면서 참소하던 원한의 이 원흉을 누가 청산하느냐? 하나님이 못합니다. 메시아만이, 구세주만이 할 수 있습니다. (136-198)


우리들이 바라는 통일교회는 무엇이냐? 부모의 종교를 찾아가자는 것입니다. 달콤한 생활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도의적인 관계가 아닙니다. 참부모를 중심삼고 참된 사랑의 도리를 찾아가자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해방하자 이겁니다. 사랑의 원칙조건이 결부되지 않고는 해방이 벌어질 수 없습니다. (136-198)


아버님이 사랑하고 그 아버님이 찾겠다는 나라를 생각해 봤어요? 감옥의 길을 마다 않고 가는 길엔 뭔가 길이 있습니다. 그 생사의 기로를 개척해 나온 것이 민족이 갈 수 있는 길이요, 암흑의 구렁텅이를 넘어 희망이 있는 길이라는 사실을 누구도 모릅니다. 아무도 모른다 이겁니다. 세계만민이 해방될 수 있는 굴을 뚫기 위해서 그러한 사연을 품고 수고한 사연을 누구도 모를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충성을 다하고 내가 이 길을 가는 데는 중심을 모신 가운데 조심하면서, 사랑을 귀히 간직하면서 모셔야 할 분으로 알고 가는 것입니다. 만세에 이 길은 시간이 변하고 세월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단 하나밖에 없는 길이라 생각하고 살아가는 이 사람입니다. (163-184)


하나님을 해방해야 됩니다. 내가 하나님을 구해야 됩니다. 내가 구원받겠다고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해방해야 됩니다. 이것이 구원섭리의 총결산입니다. (136-198)


통일교회는 하나님 해방을 위한 해방군입니다. 세계 해방이 아닙니다. 세계 해방은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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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들이 단결하면 세계 해방은 되지만 하나님의 해방은 심정권을 단결시켜야 됩니다. 사랑권을 단결시킬 수 있는 원리와 사상체계를 갖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 가지고 영계를 풀어 지상에 심정권의 다리를 놓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어떠한 혁명보다 무서운 혁명이요, 어려운 혁명입니다.
인류의 해방은 쉽지만 하나님의 해방은 그래서 어렵다는 것입니다. 세계에 없는 어려운 그 일을 레버런 문이 기수가 되어 오늘날 섭리사의 총결산이라는 표제를 걸고 나섰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136-198)


오늘날 종교 지도자들은 엎드려서 기도하고 복받겠다고 하지만 난 복받겠다고 기도해 본 적이 없습니다. "나 하나 제물이 되어 하나님을 해방하자" 이겁니다.
구약시대는 만물을 세워 하나님의 사람들을 찾기 위한 시대요, 신약시대는 아들딸을 희생시켜 부모를 찾기 위한 시대요, 성약시대는 지금까지 부모님의 가정을 희생시켜 하나님을 해방하기 위한 시대입니다.
본연의 부모를 이 땅 위에 모셔 그분과 천년만년 살고…. 한국 민요 가운데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하는 게 있지요? 계수나무 박혔으니 뭐 어쩌고 저쩌고…. 양친 부모 모셔다가 천년만년 살고 지고. 그것이 다 한민족의 계시적인 얘깁니다. 하늘 부모를 모셔다가 천년만년 살고 지고, 나는 그 노래를 생각할 적마다 언제나 사무친 마음 잊을 수가 없습니다. (137-126)


하나님이 미국에 200년 동안 세계적인 축복을 몽땅 갖다 맡겼는데, 이것을 다 자기들을 위한 복으로 알고, 자기 기독교의 복으로 알고, 미국만의 복으로 알고 있습니다. 미국과 기독교를 희생시켜서 세계 만민을 해방하고 만민의 복지를 건설해 주어야 할 책임을 망각해 버리고 미국 제일주의, 미국 단일주의, 개국주의로 떨어져 나간 것입니다.
세계주의적 미국을 위해 자기 자체 일개국을 희생시키고 일개 기독교를 희생시켜서라도 세계적 기반 판도를 닦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데도 불구하고, 거기에 위배되고 반대된 자리에 나가니 미국 자체도 곤두박질하는 것입니다. 가정이 깨져 나가고, 교회가 깨져 나가고, 나라가 깨져 나가고 전부 엉망진창입니다. 다 병이 났습니다. (143-171)


하나님과 참부모를 해방하고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지옥을 파고 들어가야 됩니다. 지옥 밑창만 뚫고 나가면 천국입니다. 가까운 길이 그것입니다. 지옥 밑창을 뚫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희생하고 봉사하라고 하지요? ‘내가 구원받기 위해서 통일교회 믿는다. 이렇게 간다.'라고 하면 그건 빵점입니다. 그건 절대 세계무대에 못나갑니다. ‘하나님을 해방하고, 참부모를 해방하고, 세계를 구하기 위해 나는 이렇게 간다.'고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내용이 달라요, 내용이. (148-142)


죽으나 사나 이 길을 바로잡지 않고는 못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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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알기 때문에 선생님이 일생 동안 이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핍박을 받고, 감옥을 찾아 다니면서도 이 짐을 지고 가는 것입니다. 감옥에 가는 게 좋아서 가는 거예요?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의 해방을 위해 가는 것입니다. 인류의 해방을 위해, 사탄세계를 해방하기 위해 가는 것입니다. 탕감복귀의 길을 가지 않고는 해방권이 안 나오니, 무사안일 속에서는 사탄을 분립시킬 수 없으니 탕감복귀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148-142)


책임분담 해방권은 심정의 해방권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해방을 받아야 되고, 부모님이 해방을 받아야 됩니다. 악한 부모가 생겼고 악한 부모를 대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있는 하나님이 얼마나 고통스러우냐 이겁니다. 그러니까 참부모를 해방하고 하나님을 해방해야 됩니다. 그러한 효자가 돼야 되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아직까지 고생을 하고 있고…. 하늘 부모를 고통받게 해 놓고 내가 잘살겠다고? 자기 아들딸 잘먹이고 잘살겠다고? 그럴 수 있느냐,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느냐 이겁니다. (148-190)


하나님을 해방해 드려야 할 우리의 생활노정에 있어서 섭리의 뜻을 대하는 하나님을 부를 때는, 통곡에 사무치는 심정을 가지지 않고는 부를 수 없는 하나님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도 광야에서 외치기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한 것입니다. 회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섭리의 뜻을 대하는 입장에서 얼마나 무례했고 얼마나 체면없고 뻔뻔스러웠느냐 이겁니다. 자기만이라도, 세계에 있어서 해방 못하더라도 하나님을 고통으로부터 해방해 줘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161-109)


세계를 통일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고 해방을 어떻게 하느냐? 사탄권을 통일시킬 수 있는 하나님 같은 능력이 있는 사람이 나타나면 영계와 육계로 갈라진 것이 하나됩니다. 해방되는 것입니다. 사탄을 주관할 수 있는 사람만 있게 되면 영계(靈界)도 해방이 벌어지고 육계(肉界)도 해방이 벌어집니다.
하나님에게 해방이 필요해요? 하나님은 이미 해방돼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해방이 필요한 것은 사람을 해방하려니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은 해방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해방 안 되어서 사람을 해방하려니 하나님이 해방조건에 걸려 있을 뿐이지, 하나님 자신이 해방 못받는 분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161-235)


기독교사상은 재림사상입니다. 예수가 재림해서 뭘 할 것이냐? 오늘날 기독교인들 중에는 정신나간 사람들이 많습니다. 뭐 구름 타고 공중으로 올라가 천년 잔치해? 알고 보면 그런 허무맹랑한 것을 믿고 있습니다. 예수가 와서 뭘 할 겁니까? 예수가 와서 자랑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에요? 하나님 앞에 불의를 세워 달라고 항거하는 사탄, 그 녀석을 잘라 버리지 못하면 하나님은 그 영원한 항거를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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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재림주가 와서 할 일이 뭐예요? 기독교인들, 요것 몇 억밖에 안 되는 이 사람들을 잘살게 하기 위한 재림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해방해야 됩니다. 공의의 도리 앞에 서서 하나님을 해방할 수 있는 책임을 하는 주역으로 오시는 분이 재림주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162-172)


  ② 하나님 해방은 인간이 해야 한다


세계를 구하는 데는 먼저 하나님을 해방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해방되어야 세계를 해방하지, 안 그래요? 하나님을 해방해 놓고 세계를 해방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를 땅끝까지 전파해 가지고 심정적 유대를 틀고 말뚝을 박아서 세상을 다 사랑으로 녹여내자 이겁니다. 그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162-192)


하나님을 해방할 수 있는 그 자리까지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부모님이 가는 최후의 종착점을 향해 동조하는 무리가 구름같이 모이게 해야 됩니다. 그럼으로써 개인에서부터 가정이 이어나갈 것이고, 가정에서부터 종족이 이어나가게 될 것입니다.
종족과 민족, 국가가 희생된 제물적 가치를 상대적인 세계, 제2차 부모님을 모신 세계에 재현시킴으로써 역사적으로 희생된 모든 성인들을 부활권의 실체로 대신 탕감복귀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이 땅을 떠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기 때문에 죽어도 이 일을 해야 하고, 이 구덩이를 메워야 합니다. 이것은 숙명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안 갈 수 없습니다. 어서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166-36)


하나님을 해방해야 됩니다. 이 땅 어떠한 모퉁이에도 하나님이 찾아와서 ‘내 창조이상이 밤에나 낮에나 역사를 통해 다 이루어졌구나. 감사하고 놀랍다.'고 찬양할 수 있음과 동시에 어디 가서도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이 세계무대가 되고, 우주가 되고, 영계나 육계도 마찬가지가 되어야 되는데 그렇게 못 되어 있다 이겁니다. 아직까지는 하늘의 보좌 아래까지 사탄의 어둠권세가 점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해방하려면 영계를 해방해야 됩니다. (166-36)


‘나'라는 사람은 해방을 참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보다 더 좋아합니다. 또 통일을 좋아합니다. 얼마나 좋아하느냐? 죽고 못살 만큼 좋아합니다. 통일의 문, 해방의 문은 문 아무개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알고 보니 만유의 대주재 되시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는 것, 뭐 많겠지마는 대충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는 게 뭐요?'하니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 해방이다.' 답변이 간단합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 해방이지!' 이래요. 그래서 ‘그러면 왜 해방을 못합니까?'했더니 ‘혼자는 할 수 없다.' 이러시는 것입니다. 그게 병입니다. 하나님 혼자 할 수 없다 이겁니다. (16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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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사랑했어요? 아들딸을 사랑했어요? 아들딸의 길을 열어 놓고 민족을 사랑했어요? 세계가 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놓고 세계를 사랑했어요? 하늘로 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놓고…. 그럴 수 있는 데서만이 완전한 해방의 동이 터 오는 것입니다. 동이 터 올 때 그 햇살은 골짝골짝 스며들어 죽음 가운데 사로잡혀 있던 모든 구속된 인간들을 완전히 해방하는 것입니다. 자유와 평화를 노래하고 해방과 더불어 통일의 세계가 우리 앞에 왔다고 해야 천년사를 다 무시하고 해방의 왕자가 되고, 통일의 기수가 되어야 하나님 앞에 칭찬받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품에 잠겨 영원무궁한 행복을 누릴지어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자신 있어요? (166-94)


인류의 해방도 필요하지만 인류 해방보다 먼저 하나님을 해방해야 됩니다. 그래야 인류의 해방이 뒤따른다는 사실은 누구도 생각지 않고 있습니다. 기성교회 목사들은 하나님을 영광 가운데 있는 심판의 하나님으로 알고 있습니다.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망권에서 해방해야 됩니다. (166-136)


구약시대․신약시대․성약시대, 그 다음엔 완성시대입니다. 완성은 사랑을 중심삼은 완성입니다. 완성은 부모의 해방, 자녀의 해방, 만물의 해방, 하나님의 해방입니다. 그것이 한꺼번에 이루어져야 됩니다. 타락한 부모로 말미암아 한꺼번에 지옥에 갔던 것을 하늘땅을 걸고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166-275)


민족적 배경과 민족을 대표한 사람, 혹은 단체가 나온다면, 어떤 사람이며 어떤 단체일 것이냐? 민족의 역사적 전통을 지니고 시대상을 대표해서 세계로 넘어갈 수 있는, 시대적인 사명을 미래적인 사명에 연결시킬 수 있는 그런 단체와 그런 사람이어야 됩니다. 그것이 레버런 문과 통일교회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회의 진리에는 침략성이 없습니다. 반면에 구해 주자는 것입니다. 차원 높은 곳으로 끌어 올리자는 것입니다. 해방해야 되는 것입니다. 온 만민을 해방해야 되는 것입니다. 해방을 들고 나오는 것입니다. 영계와 육계가 합해서 하나님을 해방하자는 것입니다. (168-51)


내가 칭찬받고 환영받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않습니다. 통일교의 사상은 통일교를 희생시켜 민족을 구하고, 민족을 구해 가지고 세계 인류를 구하고, 세계 인류를 구해 가지고 하늘땅을 해방하고, 나중에는 하나님을 해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회수한 모든 전체를 다시 투입해서 완전히 타락이 없는 차원 높은 별동세계, 천국 대이동 판국을 원할 것입니다. (227-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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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인류역사가 150만 년이라 하지만, 숱한 역사과정에서 자기의 위신과 권위와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잃어버린 자식을 찾기 위해 몸부림친 불쌍한 부모의 처지를 누구한테 하소연할 거예요? 자식이 나와서 그걸 풀어주기 전에는 그 가슴에 맺힌 한을 풀 수 없고 박힌 못을 뺄 수 없습니다. 못을 빼고 사랑의 눈물로써, 피와 살로써, 그것을 살이 되게끔 풀어드려야 할 하나님의 원한의 심정을 누가 해방해 드릴 거예요? 나의 해방이 앞서기 전에 하나님이 해방되어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종교인들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해방의 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187-213)


행복의 씨가 어디 있는지 알아야 됩니다. 타락해서 잃어버렸으니 그것을 찾아야 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참된 하나님을 찾자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하나님은 복귀의 하나님입니다. 본래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원한에 사무친 하나님, 불쌍한 하나님입니다. 기쁨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낙망의 하나님입니다. 그러기에 원상태로 가기 위해서는 복귀의 하나님을 해방시켜 줘야 됩니다. 돈으로가 아닙니다. 권력으로도 아닙니다. 어떤 사람으로도 아닌 참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174-200)


출발을 고생으로 했으니 고생으로 종착점을 향해 가려고 합니다. ‘레버런 문의 이름은 비참했다.'고 결론을 지으려고 결심한 사람입니다. 내게는 돈이 필요없고 명예도 필요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해방하고 인류를 해방하고 사탄까지도 해방하여 영원한 평화와 사랑의 기지를 만드는 것이 새로운 조국을 찾아가는 희망봉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고, 가는 길에 어떠한 험산준령이 가로막혔다 하더라도 아침을 잊어버리고, 점심을 잊어버리고, 저녁을 잊고, 낮과 밤을 잊으면서라도 그 길을 가려고 몸부림쳐야 되겠습니다. 그런 생애가 길면 길수록 원한을 넘어선 하나님의 이상적 사랑이 여러분과 더불어, 여러분 가정과 더불어, 여러분 일족과 더불어, 여러분 나라와 더불어 같이하는 것이 천리원칙인 것을 알고 그렇게 살아주기를 부탁하는 바입니다. (174-9)


위대하다는 것은 얼굴이 위대한 것이 아니요, 몸뚱이가 위대한 것도 아니요, 사상이 위대한 것입니다. 하나님까지도 움직이지 않을 수 없고 하나님까지도 나를 따라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정신, 그게 위대한 것입니다. 사랑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하나님을 나는 사랑을 가지고 해방하기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목적을 성사하지 못한 한을 가진 하나님이 오늘 레버런 문을 만나 해방됐다는 말은 이론에 의한 것입니다. 망상이 아닙니다. 체계적인 이론, 과학적인 데이타에 의한 실증적 결과에 의해 이걸 주장하는 것입니다. (165-157)


하나님을 해방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 됐지요? 하나님이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전권 전능의 행사 시대가 오기 때문에 여기에는 태평왕국이 아니 될 수 없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그때에 비로소 ‘아-멘'이지요.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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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하나님의 해원성사와 효자의 길


  ① 참아버님이 걸어오신 복귀의 길


하나님 뜻을 이루어 드리겠다고 결의한 것을 내가 잘 압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다는 걸 알고, 무릎을 꿇고 감사하며, 용서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피가 터지더라도 해방의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될 원한에 사무친 하나님임을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나는 고문에 쓰러져 가는 자리에서도 하나님 앞에 기도를 안 했습니다. 나를 구해 달라고, 내가 몰려 다녔지만 하나님 앞에 내 갈 길을 지켜 달라고, 날 구해 달라고 기도 안 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사나이로서의 내 여력을 갖고 있고 내 기백을 갖고 있고 싸울 수 있는 자체력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내 힘이 부족해서 의식을 잃고 쓰러지면 나를 구해 주겠지, 그전에는 내 힘으로…. 내가 가기 전에 하나님은 미리 앞에 준비해 놓고 기다린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138-240)


통일교회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만약에 내가 ‘저놈의 자식 저거!'하며 분을 참지 못해 입을 다물고 ‘두고 봐라. 몇 개월만 두고 봐라.' 그러면 옥살박살되고 터져 나가더라 이겁니다. 그걸 보면 이상하지요? 그래서 혀를 깨물면서 내가 많이 참습니다. 내 입으로 저주를 못 합니다. 참부모의 이름을 가진 내가 내 입으로 저주를 할 수 없어서 입을 물고 있어도 그 원한을 다 하늘이 풀어 주더라 이겁니다. 그걸 보면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 같아요? (162-172)


주인된 국권을 가지고 아시아의 5천 년 문화를 자랑할 수 있는 백의 단일민족의 권위를 갖추어 주권국가의 대통령이 되고, 국회의원이 된 사람이 하나도 없지 않느냐 이겁니다. 해방 후에 나는 그런 국회의원을 만들고 그런 대통령을 만들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건 내 소원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그걸 원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게 될 때 아시아는 우리 손에 놀아나는 것입니다. 세계는 내가 지시하는 대로 하나님이 지향하는 곳을 향해야 한다는 것이 틀림없음을 믿기 바랍니다.
원한의 씨를 품고 있는 내가 안식이 어디 있어요? 갈 길이 바쁩니다. 천년사를 전부 풀며 가야 할 갈 길이 바쁘다는 것입니다. 나는 40평생 눈물의 길을 벗어나지 못한 걸음을 걸어온 사나이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북녘땅이 하나님의 새로운 사랑의 동산을 맞이하여 거기에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젊은이들이 싹터야 될 텐데….


---153---

하나님을 배반한 싹으로 물들어 있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얼굴을 돌리셨는데, 그 얼굴을 돌이킬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모시고 들어가 그것을 다시 정상적으로 회복하겠다는 사상을 가졌기 때문에 그러한 것을 공산세계도 고마워해야 하고, 민주세계는 더더구나 고마워해야 할 것입니다. 그곳을 향해서 전진할지어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어떤 전도부인이 통일교회에 죽자 사자 나오다가 내가 자기 역성대로 안 하니까 떨어져 나가서 ‘잘됐군. 하나님의 아들이 저 꼴이야?'하더라구요. ‘그래, 내가 감옥에서 사라질 사나이가 아니야. 나는 해방의 세계를 향해 도약할 것이다.'했어요. 잊혀지지 않아요, 그놈의 얼굴이. 요전에 다 비참하게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안됐구나 했어요. 나는 그러고 사는 사람입니다. 
5대 주권자들이 나를 어떻게 대했다는 것을 다 압니다. 그렇지만 표시를 하지 않습니다. 복수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모르니까. 내가 한번 만나서 가르쳐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말을 다 하고 나서 청산지어야 되는 것입니다. (204-57)


선생님 자신은 이 땅에 올 때에 어떤 입장에 섰느냐? 하나님의 원한의 심정이 남겨진 아들로서 완성한 사랑을 하지 못한 것, 형제로서 완성한 사랑을 하지 못한 것, 부부로서 완성한 사랑을 하지 못한 것, 부모로서 완성한 사랑을 하지 못한 것을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그 한의 고개를 탕감하여 풀어 주는 자리에 섰습니다. (234-128)


타위적(他爲的)인 것이 아니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타위적인 창조이상을 중심삼고 투입, 투입, 투입해 가지고 참사랑을 번식하게 돼 있는 것입니다. 이럼으로 말미암아 천하를 커버하고 본향 땅으로 돌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돌아가는 데는 원수로서 발길로 차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사랑으로써 자연굴복해야 되는 것입니다. 자연굴복하지 않고는 하나님이 자리를 못잡습니다. 내가 술수를 쓰려면 누구한테 지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걸 알았기 때문에 참아온 것입니다. 불같은 성격에 지금까지 40년 참자니 오죽했겠나? 하나님이 나보다 더할 텐데 오죽했겠나 이말입니다.
한번은 내가 뒤를 돌아보니, 하나님이 나를 품으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당신은 나의 사랑의 중심입니다. 나는 당신에게 복종하겠습니다. 당신을 절대로 따르겠습니다.'하면서 돌아보니 또 그렇게 나를 품으시는 것입니다. 그 자리가 얼마나 위대한 자리냐?
하나님이 나에게 그런 하나님의 자리를 주시듯이 이제 나도 그와 같은 하나님의 자리를 여러분들에게 주는 것입니다. (215-321)


역사를 회고해 볼 때, 40년 전 선생님은 나라에 몰리고 기성교회에 몰리고 전부 몰려 광야에 쫓겨난 고아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이런 자리에서 역사적인 기준을 다시 찾아 세계적인 판도를 만들어야 할 뜻을 앞에 놓고, 이 뜻을 이루어야 하는 선생님의 입장이 얼마나 기가 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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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대전 이후 하늘편으로 확정해 놓은 승리적 기독교 문화권과 자유세계를 통치하는 미국의 기반을 다 잃어버린 자리에 있었습니다. 주인된 입장에서 이걸 잃어버린 비통함과 다시 40년 탕감복귀해야 할 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역사 이래 몇십만 년, 몇백만 년 걸려 가지고도 못한 인간의 역사를 종결지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아는 입장에서 볼 때, 얼마나 기가 막혔겠어요? (135-174)


나는 비가 오고 눈이 오는 것을 모르고, 밤을 아침같이, 새벽같이 느끼면서 밥 먹는 것을 잊어버리고 이 놀음 해온 사람입니다. 편안하게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안 죄, 누구보다도 비통한 하나님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내 일신이 갈갈이 찢기는 한이 있더라도, 가루가 되어 날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이 모든 날아가는 세포는 하나님의 한 점의 세포라고 울부짖을 수 있다면 사나이로 태어나서 보람있는 죽음이라고 하면서 죽음길을 찾아 뒤넘이치고 있습니다. 뒤넘이치다 보니 망할 줄 알았는데, 없어질 줄 알았는데 이렇게 되었습니다. (137-126)


하늘땅의 사무친 원한이 얼마나 컸던가를 알기 때문에 피를 토하는 자리에 들어가더라도 하나님을 위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죽게 되었으니, 하나님, 나를 살려주소.'라는 기도를 할 수 없는 참부모의 입장에 서야 할 비통한 사연을 그 누가 알았어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나님만이 알아 주셨습니다.
아무리 통일교회를 따르는 사람이 많지만 레버런 문의 사상에 하나가 다 안 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통일가라는 것이, 오늘날 해방권에 선 통일가라는 것이 싸구려가 아닙니다. 축복받았다는 패들이 움직이는 그 거동거리가 오늘날 악마의 사촌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내가 압니다. (145-309)


내 싸움이 아직까지 부족하고 내가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자격이 부족하다 하고, 내가 서러워할 때 아버지께서 눈물 흘릴 것을 염려하면서, 내가 매맞는 자리에서 참기 어려운 비통한 자리에 설 때 하나님이 처참한 자리에 설까봐 염려하여 ‘내 비통함은 아무것도 아니요, 내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요, 내 슬픔은 아무것도 아닙니다.'하고 이를 악물고 내 눈물이 떨어질 때 하늘의 눈물이 떨어질까봐 염려하고 울부짖고 원수를 갚기 위한 도상에서 선봉장으로서 승리의 깃발을 들고 나서는 용자가 있다 할진대 그 용자 앞에 하나님이 백배 사례한다는 것입니다. ‘네 이름을 충신이라 할까, 네 이름을 효자라 할까, 네 이름을 열녀라 할까? 지상의 역사상에 어떠한 귀한 자가 있다 하더라도 너 이상 귀한 자가 없을 것이다.'라고 하나님 자신이 머리를 숙여 사례한다는 것입니다. (153-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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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문총재는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외로운 길을 걸어온 사람입니다. 외롭지만 하나님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입니다. 역사시대에 외로운 자리에서 비통한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그곳을 저주하면서 자기에게 복을 빌어 달라고 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걱정 마십시오.'했습니다. 그게 다른 것입니다. 내가 개인적인 시련 때문에 후퇴할 사나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계의 시련을 넘고 하나님을 해방하고 죽겠다는 사나이가 개인적인 과정에서 항서를 쓸 수 없습니다. 비겁할 수 없습니다. 여편네가 반대해도 잘라 버렸습니다. 자식이 반대해도 잘라 버리고, 부모가 반대해도 잘라 버리고, 나라가 반대하는, 4천만, 6천만이 반대하는 길을 간 사람입니다. (175-231)


시간이 너무나 짧습니다. 일생에 이것을 고치고 또 채워 놓기 위해서는 시간이 없습니다. 선생님의 생애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세속적으로 보면 선생님의 생애는 불쌍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선생님이 어떤 분이십니까?'하고 한번 물어 봐요. 선생님은 통곡할 수밖에 없는 아픔을 느끼면서, 심장을 도려내는 것 같은 아픔을 가지고 몸부림치는 것과 같은 비통함을 체휼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지상에서 비참한 남자입니다. 그러한 고생을 누구도 모릅니다. 자기 자신이 훌륭한 사람이라고 다 잘난 체하고 으스대고만 있지, 선생님의 고생을 모릅니다. 어머님도 모릅니다. (213-212)


하나님이 6천 년 간 수고해서 남긴 공적을 다 잃고, 흥남수용소를 찾아간 선생님의 비통한 사연을 여러분은 모릅니다. 고향을 떠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처자가 문제가 아닙니다. 하늘땅의 미래의 소망으로서 해방의 민족이 되어 나를 환영하려 했던 그 무리가 구름속 지옥으로 꺼져 가는, 암흑세계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통곡하면서 다시 만나자고 소리를 지르던 것이 엊그제 같습니다. ‘너희들은 꺼져 갔지만 나는 다시 내 갈 길을 가서 광명한 아침 해를 안고 너희들을 다시 찾아가서 해방해 주겠다!'고 선언한 것이 엊그제 같습니다. 쇠고랑을 차고 소리를 지르던 그 소리를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어려울 적마다 기도하던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220-157)


‘하나님, 당신은 이런 분이셨죠? 내가 아는 하나님은 이런 분입니다.'할 때 하나님이 손을 잡고 통곡을 하며 ‘어떻게 네가 그걸 알았느냐? 내 아들아!'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게 되면 하나님은 통곡을 하게 됩니다. 목을 놓고 통곡하는 그 음성이 얼마나 크겠어요? 그 인연은 천년 역사에 연장시킬 수 없다는 것을 하나님은 알기 때문에 눈물을 닦고, 곡소리를 그치고 ‘내 아들아!'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아들이 필요하고 딸이 필요한 하나님의 입장을 알아야겠습니다. (176-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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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나님의 참용사가 될 것이다. 그 어떤 하나님을 위한 전장이 비참할지라도 나는 그 전선에 참여할 것이다.'하는 것이 선생님의 정신입니다. 아무리 세계의 핍박이 몰려와도. 고독단신의 핍박의 자리, 고통의 자리에서도 나는 하나님에게 불평 한번 안 했어요. 이것이 레버런 문의 자랑입니다. (193-52)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믿어라. 왼쪽으로도 믿을 수 없고, 바른쪽으로도 믿을 수 없고, 동서남북 전후좌우 전부 다 믿을 수 없더라도 절대적으로 믿다 보니 중앙선에 가는 것입니다. 절대적으로 믿게 되면 하나의 자리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자리,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찾아가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모든 것이 풀리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에는 독재성이 많습니다. 의논할 수 없습니다. 틀어져 있으니 강제로라도 각도를 맞춰야 됩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우리 인류가 얼마나 고통스러우냐 이겁니다. (188-185)


  ② 하나님의 해방을 위한 한평생


내가 분하다면 얼마나 분에 사무치겠나요? 역사 이래 나 이상 분에 사무친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통곡하라면 나 이상 통곡할 사람이 없습니다. 이 땅 위에 천년 역사를 품고 잃어버린 슬픔을 안고 통곡하는, 문총재가 가슴으로부터 흘러 나오는 하나님의 심정을 느끼면서 통곡하는 거기에 못 미칩니다. 그런 뿌리를 전부 우겨싸고 앉아 거기서 자기가 잘먹고 잘살겠어요? 그런 간나 자식들이 죽어 자빠진 사체는 개도 안 뜯어먹습니다. (180-9)


언제나 기분 좋은 남자의 모습을 하고 어려운 탕감의 고개를 태연하게 넘고, 하나님을 계속 모시며 하나님을 위로하며 고개를 넘지 않으면 평화의 지상천국은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 대표자, 공적인 사람은 외로운 사람입니다. 누군가 한 사람이 일어서서 ‘문선생님은 이러한 일을 하시고…'라고 한마디 할 때 선생님은 통곡하는 심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 눈물이 모두 메마른 70의 할아버지가 되어 있는데도, 아무도 그 슬픔의 눈물이 흐르는 것을 멈추게 할 수 없는 외로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부모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183-9)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감옥생활을  많이 했습니다. 5년 이상 감옥생활을 했지만 비가 내리는 처마 끝에 물방울이 뚝뚝 떨어져 바위를 뚫는다는 것을 생각할 때, ‘내 사랑의 눈물방울이 하나님의 가슴속에 엉클어진 한의 바위를 뚫을 수 있으면, 그럴 수 있으면…'하면서 그런 물방울을 보고 통곡한 사정을 여러분은 모를 것입니다. 흘러가는 물길을 바라보면서 ‘이 물줄기가 하나님을 모셔 가지고, 그분이 찾아와 목욕할 수 있는 맑은 줄기가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인간으로서 그럴 수 있는 보금자리, 안식처를 하나님께 마련해 드릴 수 있는 자식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런 심정의 깊은 세계를 여러분이 체험 못하면 하나님과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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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을 얼마나 참아 왔어요? 기가 막혀 이 오관이 다 한꺼번에 막혀 통곡한 사실이 얼마나 많아요? 여러분을 만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인류의 주권자들을 굴복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몸뚱이와 총칼이 아닙니다. 사랑의 핏줄을 통해서 그들을 감화시켜 자연굴복시키지 않으면 천지에 하나님이 바라는 평화의 동산이 오지 않습니다. 평화의 왕국 건설이 불가능합니다. (197-275)


이 한 세상을 살 때 얼마나 어려움이 많아요? 이거 오늘 가다가 어떻게 될지 알아요? 그 공포의 환경에서 벗어날 수 없는 불쌍한 인생입니다. 이 공포의 환경과 혼란 가운데 있는 나를 가르쳐 줄 스승이 누구냐? 스승이 없습니다. 여기 서 있는 사람은 그런 문제 때문에 통곡을 하며 몸부림쳤습니다. 하나님이 있다면 왜 스승 노릇을 못 하느냐 이겁니다. 알고 보니 하나님이 사랑을 원칙으로 한 스승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걸 모르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사랑을 중심삼은 스승이라는 것입니다. (203-197)


요전에 한번은 피곤해서 저녁 때 들어와서 잠깐 잠들었다가 일어나 세수하고 면도하니까 그걸 보고 ‘아침에 일어나야 세수하고 면도하는데, 왜그래요.' 그러면서 웃는 것이었습니다.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마음은 하나입니다. 정성도 하나입니다. 하나님한테 선생님이 어떤 분이냐고 기도 한번 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통곡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혓바닥이 나와서 들어가지 않을 만큼 통곡을 하십니다. 그런 사연을 갖고 사는 선생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21-125)


타락한 인간 편에서는 구세주이지만, 하나님의 편에서 본다면 태초에 잃어버린 참사랑의 창조이상을 이룰 참아들이요 참부모가 됩니다. 구세주는 타락으로 초래된 하나님의 한을 풀어 드리기 위해 생애를 바쳐 희생의 길을 개척해 오신 분입니다. 영광으로만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항상 하나님의 심정과 더불어 통곡하고, 사탄을 굴복시키기 위해 노심초사하시는 분입니다. (232-219)


누구의 하나님 만들 거예요? 미국 하나님 만들 거예요, 대한민국 하나님 만들 거예요, 내 하나님 만들 거예요? 어떤 거예요? 욕심들은 많구만. 내 하나님을 만들려면 민족 이상 하나님을 위해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문총재를 좋아한다면 문총재 이상 하면 하나님이 틀림없이 문총재 이상 여러분을 좋아하실 것입니다. 그건 틀림없는 공식이 아닙니까? 거기엔 이의가 없습니다. 나는 나보다 하나님을 더 위로하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 더 봉사하고 공을 세울 수 있는 사람을 원합니다. 만약 나보다 못한 사람을 원한다면 그건 독재자입니다. (184-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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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선수가 스타트 라인에서 80퍼센트 와 가지고 백 미터, 천 미터 앞섰으면 뭘 해요? 거기서 넘어지면 그만입니다. 마라톤 챔피언이 뛰게 되면 관중들이 ‘야, 천천히 뛰어!' 그러겠어요? ‘빨리 뛰어. 빨리!' 쓰러질 때까지 그럽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기록을 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레버런 문이 최고의 기록을 지녀야 하나님이 최고의 상을 줄 때 떳떳할 것입니다. 그때까지 미는 것입니다. (230-171)


출발이 잘못됐습니다. 기가 막힌 것입니다. ‘출생이 잘못되다니! 아이고, 내가 자라나서 보니까 양자도 거지떼 중에서, 고아원에서 거지새끼를 갖다가 길렀다' 이겁니다. 이건 거지새끼보다 더 합니다. 어릴 때는 자기 어머니 아버지인 줄 알았는데, 자라고 보니 내가 거지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거지 출신이라는 걸 알게 될 때 그 집에서 어떻게 돼요? 뒤집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통곡을 하고 뒤집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길러 준 어머니 아버지를 자기 친어머니 친아버지로 알고 있었는데, 고아원에서 자란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면 얼마나 기가 찹니까? 우리 인간세계에서도 이렇게 기가 찬 일인데, 하나님은 그것보다 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왕권, 하늘나라의 왕궁의 황태자가 똥개새끼와 붙어 가지고 이렇게 되다니! 지옥의 왕이 되다니! (216-45)


문총재와 통일교회의 부부 이념은 하나님의 핏줄을 이어받고 태어난 아들딸로서 천년만년 영원한 그 부모를 모시고, 영원히 내 아들 내 딸이라고 찬양할 수 있는 아들의 자격, 딸의 자격을 갖추는 것입니다. 그 자리를 통과해야 하나님 마음 속에 남아 있는 타락의 상처를 풀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붙들고 ‘아버지, 얼마나 수고했습니까?' 해야 그 한마디에 하나님이 통곡을 하는 것입니다. 복장이 터지는 통곡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고맙구나, 내가 수천 년 역사를 이런 놀음했다.'하는 것입니다. 인류 창조역사가 몇천만 년 됩니다. 6천 년이 아닙니다. 그건 성경에서 문화사를 중심삼고 말하는 것이고, 구원섭리를 착수하기 위한 뜻을 중심삼고 말하는 것은 사실 몇천만 년 됐습니다. (232-59)


자기 욕심 중심삼고 통일교회 이용하겠다는 사람, 별의별 짓 다 한 사람을 역사에서 내가 다 보면서도, 다 알면서도 속아 줬습니다. 그거 왜 속아 주느냐? 하나님이 지금까지 그렇게 속아 나왔기 때문입니다. 배신하고 돌아서는 모습을 볼 때 기가 차 ‘저놈의 자식 벼락을 쳐 가지고 모가지를…. 일본도가 있으면 한번에 모가지를 쳐 버리고 싶다.'하는 분통하고 억울한 마음이 폭발되지만, 그들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하늘의 마음이 있는 것을 생각할 때 그러지 못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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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한 하나님을 붙들고 용서하겠다는 마음을 갖고 나오다 보니, 그럴 때마다 마디가 생겨요. 알겠어요? 통일교회의 한 마디가 생깁니다. 참대에 마디가 있는 것처럼 마디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적 매듭, 종족적 매듭, 민족적 매듭을 지어 나가는 것입니다. (197-275)


역사적 스승이 살던 고통, 하나님의 역사적 고통을 흘려보내서는 안됩니다. 내 마음 깊은 사랑을 고이 담고 저나라에서 만나거든 목을 안고, ‘당신이 슬펐던 사정을 다 알고 나도 그 도수를 맞춰 살려고 했지만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것을 용서하십시오.' 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통곡하는 마음이 앞서게 될 때는, 하나님을 붙들고 통곡하더라도 하나님이 같이 울며 붙들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날이 없으면 해방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아내의 사랑이 아무리 크다해도 그 자리에 못미칠 것이고, 부모의 사랑이 아무리 크다해도 그 자리에 못 미치는 것입니다. 그걸 알기 때문에 해방하기 위해서 곁눈을 팔 수 없고 곁길을 더듬을 수 없는 놀음을 한 것입니다. (184-192)


다시 만날 때까지 불철주야, 밥이 먹고 싶거든 선생님을 생각하고, 밥을 안 먹고라도 뜻을 위해 선생님이 하는 일을 해야 되고, 잠이 오거든 잠자지 않는 선생님을 생각하고 뜻을 위해 싸워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욕을 먹으면서도 변명하지 않고, 참고 나가는 스승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상의 마음의 뼈를 가지고 내일의 승리욕을 가지고 자연 굴복하는 원수의 무리를 보기 위해 스스로의 실적을 갖고 나가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한 노력을 해야만 여러분이 살 길이 있는 것이고, 이 민족이 살 수 있는 것입니다. (82-9)


어떤 때에는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연락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에 통일교회 교주된 이 사람이 어떻게 눈물도 없이 밤을 새울 수 있었겠습니까? 불쌍도 하지. 나라는 사람을 몰랐더라면 그렇게는 안 되었을 텐데…. 국경을 넘고 또 넘어 한번도 만나보지도 못한 스승을 따르다가 동녘의 한국을 향하여 ‘나는 갑니다.'하고 축수를 드리며 최후에 길을 가는 그들을 붙들어 주지 못하고 살려 주지 못한 심정을 여러분은 아시겠습니까? 악마 앞에 수난을 당하고 고통을 받고 포로되어 있는 그를 불쌍히 여기는 하늘의 마음을 알면서도 밤이나 낮이나 전진을 해야 한다고 내몰았던 것입니다. (201-137)


내가 통일교회 교주 되겠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내가 교주라는 관념을 갖지 않습니다. 평민입니다. 오늘도 양복을 안 입고 넥타이도 안 맸습니다. 하나라도 부족한 단장을 해야 마음이 편합니다. 왜? 통일교회 식구들은 전세계에 퍼져서 이 시간에도 비오는 거리의 처마끝에서 젖은 옷을 입고 스승을 그리면서 선생님 만수무강하라고 경배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복을 빌고 있는 자리를 유린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눈만 뜨면 잠자지 못하고 이렇게 사는 죄인 같은 교주의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들이 문총재를 무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197-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