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20:29-34
눈먼 사람을 고치시다(막 10:46-52; 눅 18:35-43)
<본문은 킹제임스 번역본입니다.>
29 그들이 여리고를 떠날 때에 큰 무리가 그분을 따르더라.
30 ¶ 보라, 눈먼 두 사람이 길가에 앉아 있다가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소리를 지르며 이르되, 오 [주]여,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소서, 하니
31 그들이 잠잠해야 하므로 무리가 그들을 꾸짖었으나 그들이 더욱 소리를 지르며 이르되, 오 [주]여,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소서, 하더라.
32 예수님께서 멈추어 서서 그들을 불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해 주기 원하느냐? 하시니
33 그들이 그분께 이르되, [주]여, 우리의 눈을 열어 주옵소서, 하매
34 이에 예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눈에 손을 대시니 그들의 눈이 즉시 시력을 받고 그들이 그분을 따르니라.
여기서 예수님이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눈먼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지난번 말씀드렸던 대로 눈먼 사람을 고쳐주는 것은 결코 예수님이 의사로 오셨기 때문이 아니라 당시 믿지 않는 이스라엘 민족을 향해 궁여지책으로 행하셨던 것입니다.
육적인 눈이 먼 것보다 영적인 눈이 먼것을 깨우쳐 주시는 것이 예수님의 더 간절한 소망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심령 수준이 낮은 당시 예수님을 따르던 자들은 병을 낫게 하는 은총을 베풀었을 때만 예수님을 크게 보고 따랐지 실제 심령의 말씀을 통해 믿고 따르는 자는 심히 적었던 것입니다.
재림주님도 우리들을 향해 눈먼 사람들, 청맹과니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주셔도 심령이 급이 낮아 온전히 깨달아 그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우리를 향해 청맹과니라고 하셨지요.
진정 말씀으로 심령의 눈을 뜨게 될 때 예수님이나 재림주님이 소원하시는 바에 부응하는 것일 것입니다.
육신의 병을 고쳐주심도 더 근본적인 심령의 병을 고쳐주시고 싶어하시는 간절한 염원을 담은 사랑의 표징이었음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