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뿌리는 비유를 설명하심(마 13:18-23)

훈독왕 | 20191114072713

마 13:18-23


씨뿌리는 비유를 설명하심(막 4:13-20; 눅 8:11-15)


18 ¶ 그런즉 너희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들으라.

19 어떤 사람이 왕국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그 사악한 자가 와서 그의 마음속에 뿌려진 것을 채어 가나니 이 사람은 곧 길가에 씨를 받은 자니라.

20 그러나 돌밭 속에 씨를 받은 자 곧 그자는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나

21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만 견디는 자니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 그가 곧 실족하느니라.

22 가시나무들 사이에 씨를 받은 자 또한 말씀을 듣되 이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속임수가 말씀을 숨 막히게 하므로 열매 맺지 못하는 자니라.

23 그러나 좋은 땅 속에 씨를 받은 자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그것이 또한 열매를 맺어 얼마는 백 배, 얼마는 육십 배, 얼마는 삼십 배를 내느니라, 하시니라.


위 성경 말씀을 보면 결국 옥토가 아니면 많은 결실을 낼 수 없음을 강조하십니다.

타락한 인간은 위 3가지(길가, 돌밭, 가시떨기)의 심령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듣고 깨달아 많은 결실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심령을 옥토와 같이 가꾸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는 길가와 같고 척박하고 가시떨기와 같은 심령을 옥토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말씀을 30배 혹은 70배 100배 결실할 수 있는 것입니다.


씨 뿌리는 비유 중에 가장 척박한 땅이 바로 길가입니다. 밭이 아니라 아예 길바닥으로 변한 단단한 땅입니다.

즉 자기중심한 기존 지식이 꽉 차 있어서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말씀을 전혀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람을 비유한 것입니다.

원리적 용어로 타락성이 꽉 차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자에게는 말씀을 주어도 전혀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말씀을 새들이 쪼아 먹어버리는 것과 같다고 표현을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새들을 마귀나 사탄 또는 악한 자라고 비유했는데 본인 스스로의 지식에 대한 완고함 때문에 새로운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함을 비유한 것이라 봐야 할 것입니다.

 내 속에 사탄이나 마귀는 바로 타락성에 점철된 교만과 고집, 완고함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람은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복귀의 길을 가지 않고서는 절대 옥토와 같은 심령으로 부활될 수 없는 것입니다.

즉 자기의 기존 지식에 대한 완고함을 벗어던지지 않고는 새로운 진리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옥토와 같은 심령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길가는 사람의 발길이 늘 밟고 다니기 때문에 절대 씨앗이 뿌려지더라도 싹이 날 수 없고 설사 싹이 나더라도 밟혀 죽게 됩니다.

이러한 길가를 옥토로 만들려면 먼저 길을 봉쇄하고 땅을 깊이 갈아엎고 돌을 주워내고 거름을 많이 주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밟고 지나다니게 해서는 절대 옥토로 가꿀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단히 땅을 갈아엎듯이 자기의 심령을 말씀으로 인해 회개와 반성의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즉 기존 사상이나 지식 관념 등을 절대부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원래 갖고 있던 모든 타락성을 절대부정하고 새로운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길가에 뿌린 씨는 새들(마귀)이 와서 쪼아먹는다고 했습니다.

기존 자기주장이 강하고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자는 절대 새로운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스스로 섰다고 하는 자는 바로 이런 길가와 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온유 겸손한 심령을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는 말씀처럼 자기를 절대 부정하고 새로운 진리를 받아들이는 심령을 배양하지 않으면 절대 심령을 옥토로 만들 수 없는 것입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강조하신 것도 바로 이런 연유일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누구나 탕감복귀의 길을 가야한다고 강조하신 말씀도 바로 길가와 같은 우리의 심령을 옥토와 같은 심령을 가꾸어야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렇게 가장 어려운 길가와 같은 사람이 옥토와 같은 심령으로 바꾸려니 절대 자기를 부정하고 죽음의 길을 넘어서는 탕감복귀의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다음 돌밭과 같은 사람은 길가와 같은 사람에 비하면 훨씬 옥토로 가꾸기 쉽습니다.

돌밭은 씨를 뿌리면 씨가 나서 자라지만 그 토심이 얕아 조금만 가뭄이 닥쳐도 쉬이 말라 죽어버리는 것입니다.

이는 말씀을 기쁨으로 받아들이지만 말씀을 오래 지키지 못하고 시련과 역경이 닥치면 말씀을 포기해버리는 심령 상태를 말합니다.

돌밭은 옥토로 만들려면 돌을 주워 내고 깊이 갈아엎어 토심을 깊게 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이런 자는 말씀을 늘 훈독하여 자신의 심령의 뿌리를 깊게 하여야 옥토와 같은 심령을 소유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가시떨기 밭은 가시떨기를 뽑아내야 합니다.

가시떨기란 세상의 욕심이라 했습니다.

이 세상은 타락한 인간이 창조본연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자기중심한 물질 중심한 욕망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기존 세상의 물질 중심한 욕망을 다 뽑아버려야 옥토로 변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자기중심한 물질과 명예와 권력 등은 모두 사탄이 창조 본성으로 가지 못하게 하는 장벽입니다.

이러한 장벽을 무너뜨리는 것이 바로 가시떨기를 다 뿝아 불태워 버리는 것이겠지요.


이렇게 우리는 길가, 돌밭, 가시떨기 같은 심령을 지닌 타락한 인간이지만 말씀을 씨 뿌려 잘 결실할 수 있는 옥토와 같은 심령을 부단히 개간해야 하는 것입니다.


척박한 땅을 옥토로 바꾸려면 기존 모든 타락성을 차단하고 모가 난 돌을 주워내고 가시떨기를 뽑아버리는 결단을 내리고 늘 말씀으로 자신의 심령을 깊이 갈아엎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복귀의 길은 부단히 옥토와 같은 심령을 가꾸는 노정이라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