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대로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 (마 7: 24-29)

훈독왕 | 20190927052457

마 7: 24-29


말씀대로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 (눅 6:47-49)

24 ¶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들을 듣고 그것들을 행하는 자를 나는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다 하리라.

25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그것이 무너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그것을 반석 위에 세웠기 때문이라.

26 나의 이 말들을 듣고 그것들을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자는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으리라.

27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그것이 무너져 그것의 무너짐이 심하였느니라, 하시니라.

28 예수님께서 이 말씀들을 마치시매 사람들이 그분의 교리에 깜짝 놀라니

29 이는 그분께서 권위를 가진 자로서 그들을 가르치시고 서기관들같이 하지 아니하셨기 때문이더라.

  

말씀을 들은 자는 반드시 말씀을 실천해야만 함을 강조하신 말씀을 받았습니다.

이는 바로 믿음과 행함(신앙)과도 연계하여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믿는다고 완전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신앙생활을 통해서 반드시 실천을 해야 완전 구원에 이를 수 있음을 깨우쳐 주신 것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형식과 제도를 중심한 신앙을 질타하시면서 말씀을 실천하여 이루는 신앙을 말씀하시면서 율법을 완전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재림주님도 신앙에 있어서 실천이 중요하며 더 나아가 체휼이 중요함을 강조하셨습니다.


즉 완전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받은 말씀을 절대 진리로 믿고 실천하여 이루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심정과 사랑을 느끼고 체휼하여야 함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재림주님의 말씀>


(정리본)


하늘에 끌려 다니다가는 하늘이 떠나 버리면 지쳐 버리고 맙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하면 체휼신앙의 중요성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생활권 내에서 승리적인 결과, 즉 생활권 내에서 신의 목적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런 결과를 타진시킬 수 있는 가치적인 내용이 내가 대하기 전보다 대하고 난 후에 더 좋은 결과로 찾아진다고 할 때는 아무리 핍박이 와도 그냥 밀고 나가는 것입니다. 절대 굴복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 행한 결과가 마이너스가 될 때는 아무리 힘을 내려고 해도 후퇴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영적인 체험은 못하더라도 생활에서 느껴지는 느낌을 분석하는 도수를 높여 나가야 합니다. 


그런 단계에 이르면 무슨 현상이 벌어지느냐? 삼각적인 관계에서 직접적인 결과를 타진하는 놀음이 많이 벌어집니다. 즉, 제3의 일로서 나와 하등의 관계없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관계를 맺음으로 말미암아 계획적인 것은 아니지만 우연하게 체휼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체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노력하게 되면 제3점의 일로서 나와 관계없는 일이라도 척 느껴지는 느낌을 통해서 관계를 맺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처럼 생활권 내에 있어서 발전할 수 있는 동기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고 체휼적인 감도를 넓혀 가라


그리고 여러분이 아침에 집을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올 때는 절대로 마이너스가 되어 가지고 들어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돌아올 때는 반드시 아침에 나갈 때보다 기쁜 입장, 즉 플러스가 된 입장에 서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집안에 불화가 벌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집을 나갔다 돌아올 때는 아무리 어려운 입장에 처했다 하더라도 반드시 그 어려움을 탕감시켜 놓고 기쁨의 조건을 들고 들어와야 합니다. 만일 직장에서 분하고 기분 나쁜 일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집에 와서 풀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그 자리에서 풀든가, 아니면 다른 일로 대체해서 그 이상의 기쁨의 조건으로 탕감시켰다는 놀음을 해 놓고 집에 들어와야 합니다. (선집 40, 287-288)


(원문)


오늘날 통일교인들은 전부 하늘에 끌려 다니다가 하늘이 떠나 버리면 지쳐 버리고 맙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하면 체휼신앙의 중요성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생활권 내에서 승리적 결과, 즉 생활권 내에서 신의 목적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런 결과를 타진시킬 수 있는 가치적 내용이, 내가 대하기 전보다 대하고 난 후에 더 좋은 결과로 찾아진다 할 때는 아무리 핍박이 와도 그냥 밀고 나가는 것입니다. 절대 굴복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 행한 결과가 마이너스될 때는 아무리 힘을 내려고 해도 후퇴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후퇴할 수 있는 일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피해가 어떻겠습니까? 한 번 후퇴하고 난 다음에 그것을 바로잡기란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한 번 실수하게 되면 그것을 보충하기가 얼마나 힘든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면 떨어질 수 있는, 즉 마이너스 될 수 있는 것은 생각조차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물건은 보려고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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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대하려고 조차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은혜받게 될 때는 사람을 많이 꺼리게 됩니다. 물건도 함부로 이것저것 접하지 못하고 단조로운 것만을 대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일상적으로 욕심을 갖고 움직일 수 있는 물건은 절대 대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렇지 않은 물건, 즉 무관심하게 대하던 물건들만 대하게 합니다. 대하게 되면 욕심이 앞서는 물건들은 절대 못 대하게 합니다. 말도 그렇습니다. 자기를 변명하려고 하는 말은 못 하게 합니다. 실제 신앙생활에 있어서 영적 체험은 그렇게 해 놓고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와 같은 영적인 체험은 못 하더라도 생활에서 느껴지는 느낌을 분석하는 도수를 높여 나가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런 단계에 이르면 무슨 현상이 벌어지느냐? 삼각적인 관계에서 직접 적인 결과를 타진하는 놀음이 많이 벌어집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제3의 일로서 나와 하등의 관계가 없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관계를 맺음으로 말미암아, 계획적인 것은 아니지만 우연하게 체휼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노력하게 되면 제3점의 일로서 나와 관 계없는 일이라도, 척 느껴지는 느낌을 통해서 관계를 맺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처럼 생활권 내에 있어서 발전할 수 있는 동기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고 체휼적인 감도를 넓혀 가라 그리고 여러분이 아침에 집을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올 때는 절대 마이 너스되어 가지고 들어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돌아올 때는 반드시 아침에 나갈 때보다 기쁜 입장, 즉 플러스된 입장에 서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집안에 불화가 벌어지지 않습니다. 만일 마이너스되어 들어온다면 자기 아내든지 아들딸에게도 마이너스 느낌을 주게 됩니다. 그것은 죄입니다. 선을 추구해 나가야 하는 입장에서 볼 때, 이런 입장에 서는 것은 선을 깎아내리는 입장이 되므로 이것은 하나님 앞에 기쁨이 되지 못하고 서러움이 됩니다. 그러므로 집을 나갔다 돌아올 때는 아무리 어려운 입장에 처했다 하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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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휼신앙의 중요성


라도, 반드시 그 어려움을 탕감시켜 놓고 기쁨의 조건을 들고 들어와야 합니다. 만일 직장에서 분하고 기분 나쁜 일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집에 와서 풀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 자리에서 풀든가, 아니면 다른 일로 대체해서 그 이상의 기쁨의 조건으로 탕감시켰다는 놀음을 해 놓고 집에 들어와야 합니다. (선집 40, 287-288)



<2대왕님 말씀>


심오한 신앙(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cafe.daum.net/rainbowKINGDOM/HylH/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