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금식 (마 6: 16-18)

훈독왕 | 20190920182231

마 6: 16-18


올바른 금식


16 ¶ 또한 너희는 금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자기들의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들의 보상을 받았느니라.

17 오직 너는 금식할 때에 네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네 얼굴을 씻으라.

18 그리하여 네가 금식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이지 말고 은밀한 가운데 계시는 네 [아버지]께 보이라. 그리하면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네게 드러나게 갚아 주시리라.


금식을 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슬픈 기색을 나타내지 말고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 누구도 금식을 하는 줄 모르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재림주님께서도 정성은 은밀하게 누구도 모르게 들이라고 했습니다. (말씀 참조)


동장 1-4 절의 <올바른 자선행위>에 대해 가르쳐주신 말씀과 같은 맥락의 말씀입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재림주님 말씀>

정성은 어떤 자리에서 들여야 되느냐? 아무도 없는 곳, 나만이 아는 곳에서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자기의 본심이 하늘을 그리워하게 될 때의 그 마음은 누구나 알아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만이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나만 아는 그 마음을 중심삼고 나만의 터전을 해결하려니 누구나 아는 자리에서는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누구도 모르는 자리, 은밀한 자리에서 정성을 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정성을 들여서 갖추어진 것은 자랑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보게 되면 “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사년 전에 그가 세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고후 12:2-7) 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14년 동안 바울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살았느냐?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정성들인 은사로써 하늘이 보여 준 삼층천의 이념을 두고 볼 때, 그 이념이 나와 더불어 직결되고 내 생활과 더불어 직결돼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내 환경을 다짐하기 위한 실천 과정을 성사시키고 난 후에야 비로소 바울이 그런 사실을 발표한 것이 아니냐는 거예요. 본 것은 본 것으로만 옮겨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본 것을 내 것으로 순화시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천국이 크니만큼 큰 활동이 되도록, 그것이 세계적이면 세계적인 만큼 세계 인류와 더불어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자기 일신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어떤 환경도 기쁨으로 삼층천 이론을 중심삼고 모든 여건을 타개하기 위한 싸움을 해 나온 여기에서 바울의 고귀한 인격이 형성된 것입니다. 바울이 한 행동을 보면, 바울에게는 고귀한 인격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울만이 가질 수 있는 정성의 터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됩니다. 정성을 들이는 데는 누가 알게 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 가운데 계시는 하늘과 내가 관계를 맺고 선한 것과 관계를 맺어야 되는 것입니다. ‘나 ’ 라는 존재는 개체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니 절대적인 존재와 인연을 맺기 위해서는 누구도 동참할 수 없는 은밀한 자리에서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은밀한 자리에서 들여진 정성과 더불어 느끼는 기쁨은 대단한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늘이 기뻐하시는 그 기쁨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 기쁨이 포만하여 제삼자 앞에 감화를 주고 영향을 미치게 될 때 여기서부터 하늘의 명령을 대행할 수 있는 권한이 시작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42권 218-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