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26:17-25
차라리 태어나지 않음이 좋을뻔 했다(막 14:12-21; 눅 22:7-14, 21-23; 요 13:21-30)
<본문은 킹제임스 번역본입니다.>
17 ¶ 이제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그분께 이르되, 선생님께서 유월절 어린양을 잡수시도록 우리가 예비하려 하오니 어디에서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하매
18 그분께서 이르시기를, 도시로 들어가 이런 사람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되,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때가 가까이 왔으니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네 집에서 유월절을 지키겠다, 하시느니라, 하라, 하시매
19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자기들에게 정해 주신 대로 행하여 유월절을 예비하니라.
20 이제 저녁이 되매 그분께서 그 열둘과 함께 앉으시니라.
21 그들이 먹을 때에 그분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배반하여 넘겨주리라, 하시거늘
22 그들이 심히 근심하며 저마다 그분께 말하기 시작하여 이르되, [주]여, 그게 나니이까? 하매
23 그분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와 함께 대접에 손을 넣는 자 곧 그가 나를 배반하여 넘겨주리라.
24 사람의 [아들]은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사람의 [아들]을 배반하여 넘겨주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시니라.
25 그때에 그분을 배반하여 넘긴 유다가 응답하여 이르되, 선생님이여, 그게 나니이까? 하니 그분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여기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배신으로 잡혀가서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예언하십니다.
이 날은 바로 유월절이었으며 최후의 만찬식 때였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배반하여 당신을 팔아먹을 제자(가룟 유다) 그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을뻔하였다는 최악의 저주성 발언을 하셨습니다.
누구나 고귀한 생명으로 태어나지만 이렇게 반섭리적 행보를 하는 자가 될 때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음만 못 하다는 큰 교훈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음만 못한 삶을 살아서는 결코 안될 것입니다.
참고로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시게 파는 행위가 섭리적 도우미 역할을 하지만 도덕적 범죄 행위로 간주하여 하나님의 예정된 섭리가 인간의 도덕적 행위를 무효화시키지는 않는다는 말로 교묘히 둘러댄다.
하지만 정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리는 대속의 제물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예정된 것이라면 가룟 유다는 저주를 받을 것이 아니라 칭찬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섭리가 인간의 도덕적 행위를 무효화시킬 수 없다면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섭리도 인간의 도덕적 행위 아래에서 진행되어야 한다는 모순을 초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섭리와 예정도 인간의 책임분담이 함께 하지 않으면 연장될 수밖에 없다는 뜻성사의 원칙을 모르기 때문에 저런 해석이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