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와 화목하라 (마 5: 21-26)

訓讀王 | 20190918070951

마 5: 21-26


형제와 화목하라 (노하지 말라)
출 20:13; 신 5:17

21 ¶ 옛 사람들이 말한바, 너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는 자는 심판의 위험에 처하게 되리라, 한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까닭 없이 자기 형제에게 화를 내는 자는 심판의 위험에 처하게 되고 누구든지 자기 형제에게, 라가, 하고 말하는 자는 공회의 위험에 처하게 되거니와 누구든지, 너 어리석은 자여, 하고 말하는 자는 지옥 불의 위험에 처하게 되리라.

23 그러므로 네가 네 예물을 제단으로 가져오다가 너를 대적할 어떤 일이 네 형제에게 있음을 거기서 기억하거든

24 네 예물을 거기에, 제단 앞에 두고 네 길로 가서 맨 먼저 네 형제와 화해하고 그 뒤에 와서 네 예물을 드리라.

25 네가 네 대적과 함께 길에 있을 동안에 속히 그와 합의하라. 언제라도 그 대적이 재판관에게 너를 넘겨주고 재판관이 직무 수행자에게 넘겨주어 너를 감옥에 가둘까 염려하노라.

26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네가 마지막 한 푼까지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형제간의 화목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우쳐 주는 귀한 말씀을 받았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으로부터 개성진리체로 태어난다고 배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마다 고유의 특징이 있고 다른 성품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중심으로 상대를 대하다 보면 대립되는 상황을 만들어 상대를 비판하거나 심하면 욕하고 저주하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것을 예수님이 아주 경계하라고 당부하십니다.


더구나 구약율법의 최고 신앙인 예물을 드리는 것도 형제와 불화한 자들은 자격이 없음을 확실히 말씀해주셨습니다.

예물드리는 율법을 완전하게 하는 것(동장 17-20)도 바로 형제간의 화목을 통해 이루어짐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전 기고한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먼저 화목하고 제사를 드리라 (마 5: 21-25)


예수님께서는 형제를 욕하는 자는 살인한 자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형제를 미워하고 비판하고 헐뜯는 자를 엄하게 꾸짖어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단에 예물을 드리다가도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먼저 형제와 화해하라고 하셨습니다.

조금이라도 형제와 앙금을 남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감옥(지옥)에서 나오지 못하리라고 엄하게 경고하고 계십니다. 


형제와 화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우쳐 주시는 귀한 말씀을 대하게 됩니다.

아버님 역시 형제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왕님 역시 형제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부모에게 가장 큰 고통을 안겨드리는 것은 형제의 불화입니다. 

인류 최초의 살인의 비극도 바로 형(가인)이 동생(아벨)을 쳐죽이는 형제간의 참사였습니다.


복귀섭리의 성패는 장자권 복귀, 즉 형제의 화목에서 결정됩니다. 

하지만 종의 근성(타락성)을 극복하지 못한 타락한 인간은 자신도 모르게 형제와 불화하여 섭리를 좌절시켜버렸던 것입니다. 

심하면 형제를 찌르고 헐뜯고 음해까지 하여 영적으로 살해합니다.

이러한 것을 아버님은 인권(심정) 유린이라고 하였습니다. 

천일국 헌법에도 인권(심정) 유린이 제2원리입니다.


타락성에 젖어 사는 타락한 인간은 습관적으로 상대의 잘못을 찾아내고 어떻게 하든지 헐뜯어 끌어내리려 합니다. 

인간 타락 이후 6000년간 혈통을 통해 점철된 철저한 타락성입니다.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은 그러한 타락성이 본성이었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 스스로는 그 타락성이 잘못된 것이라고 분별을 하기가 무척 어렵다는 것입니다. 

즉 근본적으로 타락성을 벗지 못한 자는 자신이 타락성에 의해 언행을 일삼지만 그것이 악이란 사실 자체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유구한 역사 동안 타락한 인간이 신앙생활을 통해 본성을 찾아 헤매었지만 타락성을 온전히 벗지 못하고 죄악 가운데 빠져 사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사드리는 것보다 형제간 화목이 더 중요함을 말씀하셨습니다.  

아버님 역시 아브라함이 비둘기 쪼개지 않은 실수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이스마엘과 이삭, 두 형제가 갈라진 것이 원인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사라가 이스마엘과 하갈을 쫓아내어 장자권 복귀섭리에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말씀 참조)

비둘기를 잘 쪼개어 제물 드리는 것보다 형제간(이스마엘과 이삭)의 화목이 더 중요함을 확실히 말씀하셨습니다.


이렇듯 예수님이나 아버님은 한결같이 형제의 화목이 제사보다 중요하며 섭리의 성패를 좌우함을 분명히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천주사적 형제간 화목을 일궈 복귀섭리를 종결시키신 복귀된 승리한 가인 아벨을 모시고 있습니다.


화목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씀은 영원한 진리인 것 같습니다. 


출처: http://cafe.daum.net/rainbowKINGDOM/H0A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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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된 말씀


그렇기 때문에 제일 비참한 저변에서부터 하늘은 복귀의 기반을 닦아 왔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그랬는데, 하갈이 낳은 아들 이스마엘이 이삭이 태어나기 전에, 아브라함을 중심삼고 이삭이 태어날 때 몇 살이었느냐 하면 열 세 살 때였어요, 열 세 살 때. 그러니 이것을 미워해 가지고, 사라가 미워해 가지고 쫓아내 버린 거예요. 그것을 알아야 돼요.


사라가 하갈과 이스마엘을 형님과 형님의 아들딸로서 인정하고 하나됐더라면 어떻게 됐겠어요? 하나됐더라면 아브라함이 제물 드리는 데 실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거예요.


역사가 탕감복귀의 길을, 신앙 길을 개척하려면 그것을 그 현재의 입장에 서 가지고 타락하던 현상과 일치될 수 있는 기준에서부터 분별해 나오던 복귀역사라는 거예요, 탕감복귀. 알겠어요? (선집 490권 81-82쪽)

아브라함의 처가 누군가? 사라지요. 사라 앞에 첩이 누구인가?「하갈 입니다.」이스마엘 족속의 조상이 하갈이에요, 하갈. 하갈을 쫓아낼 때 얼마나 멸시하고 천대했어요?


아벨을 희생시켜 가인을 사랑하면 원수가 안 생겨나


사라가 하갈을 자기보다도…. 우리 통일교회식으로 아벨을 희생시켜 가지고 가인을 사랑한다는 사랑이 있었으면 하갈을 쫓아내겠어요, 갈라졌겠어요? 갈라지려고 하더라도 울고 문을 닫아 버리고 동네 사람을 동원해서 못 가게 길을 막을 수 있는 놀음을 했으면, 오늘날 이스마엘이라든가 회회교라든가 기독교가 싸울 수 있는 원수가 될 수 있느냐? 없어요. 알겠나? (선집 418권 107쪽)


출처: http://cafe.daum.net/rainbowKINGDOM/GwtW/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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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에 관한 말씀>


참부모가 이 땅 위에 오셔서 아담 해와를 중심삼은 가인과 아벨의 원한을 풀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형제가 형제를 품고, 형제가 형제를 대신하며, 친구를 위하여 죽음의 길로 나설 수 있는 마음들이 생겨나야 합니다. 만민을 구원하겠다는 박애 정신으로 세계 인류와 친할 수 있는 마음들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생활 터전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16, 189)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이고, 부모를 미워하는 것이고, 앞으로 자기의 상대권을 파멸시키고 부정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떼버리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뿐만 아니라 부모나 만물 전체가 싫어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참부모, 피조세계 전체의 원수 자리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225, 215, 92.1.20)


하나님을 자기보다도 더 사랑해야 되고, 하나님같이 남편을 사랑해야 되고, 하나님과 남편보다도 형제를 더 사랑해야 되는 거예요. 또 하나님 편으로 보게 되면 하나님은 대상을 더 사랑하고 아들을 더 사랑한다 이거예요. 자기보다 더 사랑한다는 거예요. 그게 참사랑이라는 것입니다. (89, 82)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는 기준,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한 사람, 어떠한 민족도 품고 형제 아닌 형제를 형제로 여기고 부모 아닌 부모를 땅 위의 어떤 무엇보다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존재가 되지 않는 한, 하늘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8, 111)


그래서 선생님은 “가정을 위해서 희생하라. 부모를 위하고 형제를 네 몸보다 더 위하라” 하는 것입니다. (112, 276)


엄마 아빠는 형제들을 똑같이 대해 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모든 부모는 다 그렇습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어머니를 미워하는 것보다 더 큰 죄다, 이런 결론이 나옵니다. (아버님 교육철학)


형제를 평하는 자는 배를 갈라야 한다. (11, 154)


수많은 종교가 나와 가지고 얼마나 희생을 많이 했는지 몰라요. 그것이 나 하나 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 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선생님이 고생한 것도 그래요. 인류 전체가 형제인데 형제를 구하고 형제, 부모, 친척이 다 지옥에 갔으니 그걸 해방시켜 줘야 할 참부모의 책임이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수난 길을 마다하지 않고 감옥을 자진해서 찾아다니면서 감옥 문을 열고 닫지 못하게 만드는 이 놀음을 해 나온 걸 알아야 되겠다구요. 알겠어요? (403, 76)


통일교회에서는 싸움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곳은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 모인 곳입니다. 사랑을 받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주기 위해 모인 곳입니다. 그러면 사랑하는 방법은 어디에서 배우느냐? 선생님에게 배우는 것입니다. 선생님을 만나 선생님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야 합니다. 그저 서로 보고 싶고 주고 싶은 사랑을 형제들에게 주어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 몇 배로 돌려주시고자 하실 것입니다.


부모는 형제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천국에 가는 길은 형제를 하나님과 같이 사랑하는 데서 열립니다. 여러분들은 선생님을 따라가고자 하는데, 그 마음으로 형제를 따라 같이 가려고 노력해 보세요. 이렇게 볼 때, 천국에 제일 높게, 빠르게, 좋게 인도하는 자는 하나님도 아니요, 선생님도 아니요, 형제라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중략)


자신들이 아벨의 입장이라면 가인을 중심삼고 천국에 가는 훈련을 해야 됩니다. 이것이 못 된 천국은 울 안에 있는 천국이요, 무한히 돌 수 있는 천국이 못 되는 것입니다. 또한 종횡으로 상통할 수 있는 천국이 못 되는 것입니다. (66, 122)


마태복음 5장에 ‘화목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만나면 좋지만, 사탄의 아들은 대하면 대할수록 공포와 불안이 생기게 되는 거예요. 이렇게 볼 때 형제는 나보다 귀한 것입니다. 형제를 위해 사는 사람은 자동적으로 천국에 가는 거예요. 어디서나 환영 받고 추천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형제를 위해서 사는 자는 중심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아야 되겠어요. 부모의 사랑과 부부의 사랑을 재현하는 형제의 사랑을 어떻게 이루느냐 하는 것이 곧 지상천국을 이 땅에 현현시키는 비법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66, 123)


여기 통일교회에 오게 되면 자기의 사랑하는 형제보다도 통일교회 식구가 더 가깝습니다. 자기 어머니나 아버지보다도 선생님이 더 가깝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보다도 하나님이 더 가깝다는 실감이 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156, 89, 65.12.8)


이제는 여러분이 본이 되라구요. 본이 되는 거예요. 위해서 사는 거예요. 절대신앙․절대사랑․절대복종의 실체가 돼 가지고 나라를 믿고, 나라를 사랑하고, 나라 앞에 복종하고, 형제를 믿고, 형제를 사랑하고, 형제 앞에 복종하고, 부모 앞에, 하나님 앞에 마찬가지 도리라구요. 왜 그래야 되느냐? 창조 당시에 하나님 자신이 절대신앙․절대사랑․절대복종했어요. 절대신앙을 붙들게 되면 절대사랑이 찾아와요. 절대사랑과 절대신앙을 하게 되면 절대 복종은 자동적으로 되는 거예요. (394, 129-130)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은 뜻을 위해 출발한 형제들입니다. 여러분들이 진정으로 뜻을 위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형제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부모를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들은 앞으로 자기의 맡은 바의 책임을 다하며,형제 앞에 빚지는 자가 되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형제 앞에 자기의 책임을 전가시키고 가중시키는 생활을 하는 사람이 된다면 그 단체에서는 필요 없는 존재가 된다는 것을 알고 여러분들은 이 시대를 직시하면서 나가 주기를 바랍니다. (92, 144)


천국에 가는 길은 형제를 하나님과 같이 사랑하는 데서 열립니다. 여러분들은 선생님을 따라가고자 하는데, 그 마음으로 형제를 따라 같이 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천국에 제일 높게, 빠르게, 좋게 인도하는 자는 하나님도 아니요, 선생님도 아니요, 형제라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66-125) 천성경 665쪽


출처: http://cafe.daum.net/rainbowKINGDOM/HcXx/1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