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머리와 딸기
책머리에
최근 몇 년간, 많은 사람들은 세련된 양복과 헤어스타일 대신 깨끗이 삭발한 머리에 불교식 전통 법복(法服)을 입고 있는, 변화된 나의 모습을 보아왔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왜 그런 변화가 생겼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그저 “세상에,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지? 갑자기 스님이 되었네” 라든가, “방해하지 말자. 무술을 너무 좋아할 뿐이야, 그저 또 다른 변화이겠지”라는 말들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동안 나는 내게 도전해오는 수많은 어두운 순간들을 묵묵히 통과해오고 있었다. 나의 바로 위 형님인 영진 형 ㅡ나는 그에게 영원한 빚을 졌으며 참회하고 있다 ㅡ의 죽음은 내 인생에 있어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나는 형의 죽음으로부터 뼈아픈 교훈을 얻게 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그가 했던 말들이 내 마음에 공명되어 울리고 있다. 그것이 나를 참회와 고행 그리고 수행의 길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나는 형을 위해서라도 이 모든 것을 해야만 한다.
이것이 나 자신은 물론이요, 내가 살고 있는 '카티지 하우스'(이스트 가든 안에 있음)에 변화를 가져다 준 이유이다. 쓰레기 더미가 썩고 있던 곳에서는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고, 황량했던 오솔길 위로는 풍성한 샘물이 솟구쳐 흐르고 있다. 이스트 가든을 걷노라면 모든 종교와 영적인 전통을 상징하는 성인과 현자들의 조상(彫像)을 만날 수 있을 것인데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놀라울 뿐이리라.
이런 일련의 외적인 변화(법복을 입는다던가, 내 허영심을 머리카락과 함께 면도해버린다던가, 몸을 수련하고 집을 새로 변화시키는 등)는 내가 했던 내적인 언약과 맹세를 일깨워준다. 나는 지금까지 이러한 나의 이야기를 어떤 공적인 자리에서도 한 적이 없었는데, 금년 가을 학기부터 시작될 하바드 신학대학원에서의 '세계종교' 수업을 앞두고 모든 사람들에게 나 자신과 내가 주장하는 것들을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었다. 이제, 이 모든 것을 여러분의 손 위에 올려놓는다.
여기에 펼쳐지는 것은 나의 고백이며, 간증이요, 이야기이며, 또한 삶이다.
무엇에 관한 이야기인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페어필드 대학에서 니체, 마르크스, 헤겔, 포이엘바흐 등 여러 철학자들의 사상을 접하면서 나는 신(神)의 실존에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사회적·문화적 존재이며 한계를 지닌 인간들이, 그들이 바라고 희망하는 어떤 것들을 반영하여 신으로 명명하고 숭배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그동안 아빠로부터 하나님에 대해 너무 많이 들어왔으며(한국어에서 하나님이라는 단어는 말 그대로 해석할 때 하나인 존재가 된다) 솔직히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한번은 예수회 신부이며 철학을 담당하는 교수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교수님, 당신이 지닌 니체나 헤겔 등 많은 철학자들의 사상을 모두 동원하여 생각할 때 진실로 하나님의 존재를 믿습니까?” 그 교수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나는 창 밖의 자연 속에서, 어느 것 하나라도 그저 어쩌다 생겨나 마구잡이로 살며 충돌하는 것을 볼 수 없다. 내가 보는 것은 질서와 아름다움의 운영자이다.” 나는 이 답을 최대한 이해하려고 했다.
어느 날 저녁이었다. 내 방에 앉아있는데 어머님께서 급히 찾으셨다.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 걸까? 왜 그리 급하게 찾으실까? 나는 노크하고 어머니를 부르며 천천히 방문을 열었다. 방은 어두웠고 작은 벽전등만이 구석에서 희미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내가 들어갔을 때 어머님은 창 밖 어두운 밖 하늘을 응시하고 계셨다.
가까이 다가갔을 때에야 나는 어머님의 볼에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음을 보았다. 어머님은 내가 왔음을 아시고 재빨리 눈물을 닦으시면서 내 두 손을 꼭 잡으셨다. 나는 머뭇거리며 천천히 여쭈었다.
“어머님, 괜찮으셔요?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요?”
어머님은 잠시 눈을 뜨시는 듯 했으나, 나를 쳐다보시는 순간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신 채 다시 눈물을 쏟아내셨다. 떨리는 목소리로 하신 어머님의 대답은 나의 인생을 영원히 바꾸어버렸다.
“네 형, 영진이가 승화했단다.”
어머님은 중얼거리듯 말씀하셨다.
“사고를 당했단다.”
나는 순간 얼굴이 굳어지며 반항을 하듯 대꾸했다.
“뭐라고요? 그럴 리가 없어!”
나는 영진 형의 방으로 급히 달려 들어가며 소리쳤다. “형, 어디 있어?” 주먹이 부서질 정도로 벽에 주먹질을 해댔다. 그리고는 지쳐 바닥에 쓰러졌다. 손엔 피가 흥건히 젖어 있었다...
영진 형은 나보다 한 살 위였다. 우리는 함께 자랐다. 대부분 같은 방에서 생활했으며, 함께 도리토 칩을 먹으며 비디오 게임을 하곤 했었다. 마당을 뛰어다니며 괴물과 싸우기도 하고, 외계인을 막아내기도 했으며, 상어가 우글거리는 음침한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기도 하고, 괴물 오크로부터 마을을 지키기도 하고, 그네 뒤에 숨어 있는 장난꾸러기 요정을 잡아내기도 했었다. 우리는 동이 트기도 전에 일어나 스크램블 에그에치즈, 사워 크림과 베이컨을 올린 구운 감자를 찾아 부엌으로 내려가곤 했다. 나른한 여름 일요일이면 영웅과 악당들의 그림을 그리며 함께 ‘던전과 드래곤’ 게임을 하곤 했으며, ‘엑스맨’ 만화의 최신 TV 프로를 보기도 했다. 우리는 이것 저것에 관해 논쟁했으며,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풋볼게임을 보면서 베리 센더스가 2천 야드를 돌파했을 땐 너무 좋아 펄쩍펄쩍 뛰며 주위의 관중들 모두와 포옹하며 하이 파이브를 했었다. 심지어 우리는 같은 날 결혼식을 올리기도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이제는 모두 끝난 일이다.
여러 날을 나는 침대에서 자신을 책망하며 누워 있었다. “내가 조금만 더 형을 이해했더라면... 내가 조금만 더 나은 동생이었다면... 내가 거기에 같이 있었더라면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 텐데... 나는 내 학교에, 형은 또 그의 학교에... 대학을 잘못 선택한 걸까? 우리가 같은 학교에 다녔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텐데... 왜 내가 아닌 그에게...”
영진 형은 언제나 착했다. 부모님께서 말씀하시는 모든 것에 항상 순종했으며 학교 공부는 물론 모든 일에 성공적이었다. 그에 비해 나는 게으른 놈이었다. 학교생활에 충실하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내 멋대로였다. ‘못난이’라고 불리기도 했으며 ‘보잘것없는 사람’이라고 놀림을 당하던 사람이 바로 나였던 것이다.
“만약 하나님이 계신다면 왜 내가 아닌 그를 데려가셨는가? 내가 갔었어야 했는데! 바로 나였어야 했는데, 나였어야!” 나는 중얼거리며 어느새 잠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어린 시절, 나는 흥진 형님과 할머님(대모님)을 잃었다. 그러나 그 때는 너무 어려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 몰고 오는 깊은 상실감과 절망감, 그리고 어찌할 수 없는 상처를 잘 알지 못하였었는데, 영진 형의 죽음을 통해 나는 모든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이제 나는 많은 의문을 새롭게 품게 되었고, 인생에 새로운 우선순위를 매기게 되었다. ‘내게 주어진 한순간 한순간을 최대한 충실히 살자.’ 이것이 첫 번째 우선순위다. 나는 좋은 옷과 좋은 차, 소위 화려한 생활 속에 기쁨이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멋진 외모와 패션에 만족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나는 큰 집에서 큰 규모로 살며, 인기와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생활이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곧 이런 것들이 모두 추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며, 이제 새로운 길을 찾기 시작했다.
차례
책머리에
무엇에 관한 이야기인가?
첫째 이야기
다락방
딸기 이야기
당신은 누구인가?
둘째 이야기
원수들
제발 그만 쳐다보세요
내 생각에 아버님은···
하와이에서의 보석
셋째 이야기
탐구
자신을 계발하기
저 문 뒤에 있는 사탄
자아 성찰
이기적 자아
종교를 공부하면서
넷째 이야기
흩어진 다이아몬드 이야기
하나님과 전화로 대화하기?
우리가 감사해야 할 것들
축복
연못
수련장
이 명상법을 한번 시도해보라
위하여 살기
다섯째 이야기
완성의 8단계
1,000억 원
영광의 왕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