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 이야기 (대머리와 딸기 - 첫 째 이야기)

訓讀王 | 20190630080152

대머리와 딸기 - 첫 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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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이야기

옛날 옛적에 하루 종일 농사일에 매달려 사는 가난한 한 농부가 있었다. 하루는 일을 하다가 깜박 졸았나 싶었는데 깨어나 보니 어느덧 밤이 되어 있었다. 농부는 벌떡 일어나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빨리 집에 돌아가려고 그는 숲을 가로질러 가기로 결심했다. 컴컴한 한밤중에 멀리서 부엉이 우는 소리만이 그의 걸음에 박자를 맞추고 있었다. 무엇인가 그를 무섭게 만들었다. 

농부는 발걸음을 빨리 했다. 점점 숨이 차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그의 뒤에서 무엇인가가 그를 잡아 죽이기 위해서 따라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뛰기 시작했다. 이번엔 뒤에서 육중한 걸음이 쿵쿵거리는 것을 분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무엇인가가 따라오고 있었다. 배고픔에 군침을 질질 흘리며 달려오는 무엇인가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농부는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전력을 다해 필사적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절벽이 나타났다. 뒤에서는 짐승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농부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뛰어내렸다. 그는 굴러 떨어지며 운 좋게도 어떤 식물의 넝쿨 한 줄기를 움켜쥐어 죽음의 순간을 간신히 모면할 수 있었다. 절벽 위를 쳐다 보니 괴물 같은 호랑이 한 마리가 “이리 올라와라. 내 너를 먹어줄 테다”라며 으르렁거리고 있다. 아래를 보니 음침한 골짜기에 또 다른 호랑이 한 마리가 어슬렁거린다. “이리 내려와라. 내 너를 잡아먹을 테니.”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농부 바로 위에서 검은색과 흰색의 생쥐 두 마리가 그의 생명을 지탱해주고 있는 그 넝쿨 한 줄기를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명의 넝쿨을! 그런데 바로 이 절박한 순간, 농부는 눈앞에 탐스럽게 피어 있는 딸기 한 송이를 발견한다. 그는 그 딸기를 따서 입에 넣는다. “아, 이 달콤함이여!”

이 이야기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결론이 다소 비약적이고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이 이야기는 우리 모두를, 말하자면 현재 인간의 상태를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한 줄기 생명줄에 매달려 있다. 검은색과 흰색의 쥐는 밤과 낮의 시간이 우리를 피할 수 없는 죽음이나 고통(먼저 오는 어떤 것)으로 몰아가고 있음을 상징한다. 우리는 언젠가는 죽음의 순간을 맞이할 것이며(적어도 이것은 우리가 확실히 아는 바이다), 또한 여러 절박한 순간들을 경험할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메시지는 우리가 넝쿨 한 줄기에 매달려 있다고 해도 삶 속에서 ‘딸기들’을 인지하라는 것이다. 일요일 오후 해질녘 공원을 산책한다거나, 때론 친구와의 논쟁 속에서도 허전함을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삶은, 지금 이 순간 조그마한 관심을 기울이기만 한다면, 향기롭고, 아름답고 맛 좋은 딸기들로 얼마든지 가득 찰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기만 한다면 인생은 단지 경이롭다거나 그 밖의 많은 동의어를 더한다고 해도 모자랄 만큼 훨씬 더 경탄할 만한 순간들로 가득 찰 수 있다.

내가 이 이야기를 아빠에게 했을 때, 실로 주목할 만한 일이 일어났다. 아빠는 내 이야기를 들으시자마자, “그래, 아들아. 그런데 그때 그 딸기를 그 쥐나 호랑이에게 주었어야 했단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듣는 순간 나는 기절하는 줄 알았다. 그것은 잠시 동안의 생각 후에 나온 답변이 아니라 반사적으로 하신 말씀으로 아빠의 존재 자체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생각할 여유도 없이 나온 아빠의 심오한 동정심(同情心)의 승화, 인생의 ‘딸기’를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는 어떤 것에까지 주는 심정, 자신의 최대 적까지도 완전히 사랑하는 모습은 나를 날려보냈다. 나는 기절했다. 내가 깨어났을 때 내 머리는 빡빡 깎여 있었다.

이러한 내 인생을 뒤흔드는 경험을 한 뒤에야 나는 솔직히 내 자신을 ‘통일교인’ 이라고 간주할 수 있었다. 그 전에는, 아빠는 많은 것을 성취해 내신 존경하는 개인적 아버지에 불과했었다. 그러나 이 순간 이후 아버님은 나의 영적인 스승이요, 안내자가 되었다. 그는 동정(同情)에 대해 단지 말씀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과 완전 일체화되어 있어서 그분의 존재, 본질, 그리고 영성을 그대로 반영하여 어떤 인위적 노력 없이도 그와 같이 반사적으로 반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무척이나 놀라운 일이다. 

나는 성장하면서 우리 모두 참석해야만 하는 지루만 여름 수련회 내내 긴 원리강론을 수천 번이나 될 만큼 많이 들었다. 사랑에 대해서, 하나님의 심정과 고통 등에 대해서 수없이 많이 들었으나, 내 인생과 실질적으로 연관이 있다고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다. 내가 반대할 이유가 없는, 또 내가 특별히 연관되어야 할 필요가 없는 어떤 이론에 불과했다. 나는 가르침에 대한 기대와 흥분보다는 그저 ‘의무감’으로 모임에 참석하였을 뿐이었다.

내가 종교적 전통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 몇 년 동안의 일이었다. 불교의 선(禪)전통에서 우연히 고대의 우화를 접하게 되었다. 나를 감동시킨 ‘진실된’ 선불교의 스님이 전해준 이 ‘딸기 이야기’를 나는 심오한 우화라고 믿게 되었다. 아버님과 나 사이에 진실된 관계가 시작된 것은 아버님께서 내 이야기에 그와 같이 반응하신 이후부터였다.

비록 내 아버지였지만, 보통 사람들은 각자의 아버지에 대해서 느끼는 그런 정다움을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우리는 1년을 통틀어 1주 내지 2주 동안만 부모님을 볼 수 있었으며 그것도 아침 시간에 잠깐 인사드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분들은 나같은 어린아이의 인생에 있어 결코 의미있고 재미있는 부분이 되지 못했다. 나는 여러 번 겁이 나기도 했고, 포기하기도 했으며, 그리고 무시된 느낌을 받곤 했었다. 아버지에게서 가르침을 받고 있을 때에도 나는 결코 그분과 연결되지 못했었다. 나는 별 관심 없이 화내고 또 분개하고 종종 다음과 같이 되뇌곤 했다. “이런 것들은 나이 많고 세련되지 못한 사람들의 몫이야.”

내가 아빠께 딸기 이야기를 했던 무렵 내 삶은 결정적인 순간을 맞고 있었다. 당시 나는 나름대로 인생에 있어 가치있는 종교적 전통이랄까 영적인 삶으로 인도해주는, 이슈가 될 만한 많은 문제들을 다루고 있었다. 그런데 아빠가 내 ‘딸기 이야기’에 그런 식으로 반응하신 이후로 그 모든 것이 아빠에게는 단지 신학 이론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처음으로 아빠가 하시는 말씀은 그 자신의 삶 속에 깊이 녹아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렇게도 자연스럽고 확고하게 말씀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선불교 스승의 스승이었던 것이다.

이 날 이후 나는 모임 때나, 말씀하실 때나, 또 일상의 대화 중에 좀더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나는 종교적⋅영적 스승으로서 아버님에 관해서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는 훈독회에서 사용되는 책들을 읽기 시작했으며 전에는 밀접하게 연관되지 못한 것은 물론 들어보지도 못했던 측면들이 존재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읽은 아버님 말씀 중에 “나뭇잎들을 자녀들이라 생각하고 말을 거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미친 사람이 아니라 성인에 가까운 사람이다. 알겠어? 그 사람은 미친 사람이 아냐.” 라는 구절이 있다. 내가 아버님의 전체 가르침이라고 생각했던 통일원리가 실은 표면을 긁는 수준에 불과했던 것이다. 여기서 나는 통일사상과 창시자의 광대한 가르침에 대해 학문적 관심을 더 크게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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