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머리와 딸기 - 넷째 이야기
수련장
왜 우리는 결혼하는가? 아버님께서는 절대적인 성(性)을 말씀하신다. 이것은 성적인 즐거움을 갈구하라는 말인가? 단지 우리의 욕구만을 만족시키라는 뜻인가? 아니다. 배우자와 함께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완전히 그리고 자발적으로 버릴 수 있다. 우리는 배우자에게 깊은 감사와 존경, 사랑의 느낌을 보낼 수 있으며, 그것은 성적으로 결합할 때에 진정으로 절대적이 되며 고귀한 경험이 된다.
만약 프리섹스를 즐기고 자신의 만족만을 위해 성을 갈구한다면, 그것은 탐욕에 불과하다. 우리는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다른 사람을 소유하고자 한다. 이러한 것으로는 분명히 지속적인 기쁨을 느끼며 고통을 줄여갈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다른 사람을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다면, 근본적으로 자신의 마음에 독을 먹이는 것이다. 그들이 더 이상 만족을 주지 못하게 되면, 우리는 그들에 대해 관심과 애정과 흥미를 잃게 된다. 둘의 관계는 상대방이 얼마나 자신을 즐겁게 해주느냐에 달려 있는 조건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 역시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고통을 피하며 행복을 찾고자 한다는 사실을 근본적으로 무시하는 것이다. 결혼생활에 자신의 즐거움만을 추구한다면, 상대방이 그 기대에 못 미쳤을 경우 그 사람에 대해 쉽게 실망하고 좌절하게 된다. “왜 이렇게, 저렇게 하지 않았지?” “왜 이런, 저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 거지?” 또는 “나는 주체이고, 당신은 대상일 뿐이야” 등등의 반응으로 상호간 존경과 사랑은 점차 식어가게 된다.
부부관계에서 너무 과도한 기대를 갖게 되면 두 사람 모두 큰 중압감을 받게 된다. 첫째로, 우리의 배우자 그리고 그 또는 그녀가 제공하고 있는 그리고 제공해야만 하는 것을 제한하고 틀에 가두게 된다. 둘째로 우리는 자신을 철저히 폐쇄시킴으로써, 모든 사람이 유일하며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인격체임을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우리는 그 사람을 내가 원하고, 내가 필요로 하고, 내가 희망하는 대로 맞추고자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배우자 안에 숨어 있는 보물을 발견하는 데 실패하게 된다.
결혼관계에서의 사랑은 결코 이기적인 것이 될 수 없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도 상대방이 우리의 사랑을 받아들일 때에만 성립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 반대로 사랑을 받는다는 것도 상대가 우리에게 사랑을 줄 때에야 가능한 것이다. 인간은 좋건 싫건 상호의존적인 존재들이다. 절대적인(순결한) 성은 행복과 상호비례적인 관계에 있는가? 육적인 욕망에만 의존해서 끊임없이 그리고 목적도 없이 살아간다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형언할 수 없는 고통뿐일 것이다.
그러므로 내게 있어 절대적인 성에 대한 정의란 배우자와의 총합적관계를 의미한다. 절대적인 성은 두 사람의 결합이며, 친밀한 포용,사랑의 상호 교환이다. 이것은 결혼에 대한 완전한 은유이다. 항상 남편과 아내로서 융합되어 있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배우자에게 더 잘 봉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할 때 이것이 절대적인 성생활이 된다. 우리 자신을 열어 배우자와 교통할 때 서로에게 더 잘 봉사활 수 있으며, 이것 역시 절대적 성생활이 된다.
이 명상법을 한번 시도해보라
편안히 앉아서 두 눈을 감고 당신의 가슴이 열리는 것을 상상하며, 심장의 박동 소리를 들어보라. 상처받기 쉬운 연약함, 가진 것 없이 아무것도 입지 않았다고 느껴보라. 활짝 열어 당신이 가진 것들을 모두 주어라. 당신의 사랑, 심정, 생명까지도. 이 사랑을 당신의 고동치는 심장에까지 스며들도록 확대시켜보라. 따스함과 설레임을 느껴보라. 이것을 당신의 가슴과 등, 목까지, 또 턱, 볼, 눈, 눈썹, 머리에 이르기까지 확대해보라. 이것으로 사랑을 열어 당신의 전신을 채우고, 당신의 마음, 심장까지 채워보라. 더 나아가 당신의 배우자에게까지 충분히 넓히라. 당신의 가족들, 즉 자녀들, 부모, 조부모에게까지 이르게 하라. 그 다음엔 당신의 이웃과 동네, 도시, 그리고 그 인접해 있는 도, 나라, 세계, 우주, 하나님에 이르기까지 한 번에 10피트(약 3미터)씩 넓혀라.
위의 명상 연습을 하게 되면 조금 다른 느낌을 받을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 자신을 닫아놓고 있다. 대부분 방어적이며, 자신을 변명하고 있다. 진정한 관계의 완성을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진정으로 완전히 주도록 노력해야 한다. 배우자와 가장 쉽게 이러한 덕목과 심정을 연습하고 배울 수 있다. 다른 사람과 같이 살게 되면 필연적으로 논쟁하거나 싸우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것 또한 큰 축복이다. 서로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할 수 있는 기회요, 행운인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 선택이 있다. 자신만을 방어하고 정당화시키는 것, 즉 이기적인 자아를 방어하는 것이다. 또는 상대에 대해 듣고, 알아가고, 이해를 깊게 하는 것이다.
결혼생활에 있어 나 자신은, 배우자에게는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문과 같다. 부부란, 배우자로 하여금 나라는 개념을 버리고 초월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자리가 된다. 두 사람 모두에게 시험받기도 하고 또 노력이 요구되는 자리이기도 하다. 우리는 좌절하기도 하며,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기도, 화를 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비참한 감정들에게 먹이를 떨어뜨리게 되면, 우리는 즉시 참되고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영원히 지속되는 관계를 빨리 망쳐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리하여 내가 깨닫건대 결혼은 수련이다. 이기적으로 받고자 함을 최소화시키고 사심 없이 주는 것을 극대화시키는 수련이다. 이 중요한 인간관계에서 자유가 발견된다. 왜냐하면 이곳에서만이 우리 자신과 우리의 취약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며, 그 나약함을 알고 두 사람 모두 서로의 관계를 성숙하게 하고 심정을 계발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며, 그 가운데 서로 사랑하고 협력하는 인격이 창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만을 섬기게 하려는 것에서 해방되어 사랑하고 봉사하고 주는 등 다른 사람을 위해 살도록 변화되는 것이다.
결혼생활에서 우리는 하나인 동시에 둘이다. 그러므로 남편과 아내로서의 영적인 관계를 위해 심신통일수련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각자가 이기적으로 취하는 것을 최소화시키고, 헌신함을 극대화시키는 훈련을 함으로써, 자신들이 참된 배우자가 될 수 있는 힘을 얻으며, 배우자에게 자유와 영원한 참된 기쁨을 줄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배우자뿐 아니라 스스로에게 독을 줄 수도, 참되고 진실된 행복으로의 해답을 줄 수도 있다. 당신 자신과 배우자를 수련장으로 초대하라. 그리고 수련을 시작해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