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머리와 딸기 - 둘째 이야기
20 대머리와 딸기 - 원수들 - 제발 그만 쳐다보세요 1.mp3
원수들
“아빠, 아빠가 감옥에 계셨을 때, 간수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어요?”
“무슨 뜻이지?”
“고문을 당하시면서 그들에게 하신 말씀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고 했지.”
아빠의 대답을 들으며, 나는 본능적으로 피 묻은 몽둥이를 휘두르는 사람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카메라에 잡힌 이 사람은 “에라, 너를 죽이고 말 테다”라고 말하듯 사악한 웃음을 띠고 있다. 그 사람의 손이 한 번, 두 번, 세 번 카메라에 번쩍이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다. 나는 눈을 감았다. 내게 들리는 것이라곤 욕지거리, “쿵” 하고 몸뚱이를 두드리는 소리, 그리고 쓰러지는 소리뿐이다. 나는 상상되는 고통에 몸을 움츠렸다. 눈을 떴을 때, 나는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검붉은 핏방울이 침묵의 공포와 함께 떨어져, 흩뿌리는 예술 작품 마냥 초라한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아버님께서 견디어야만 했던 것을 생각하면, 내가 느끼는 어떤 어려움과 장애물이란 기껏해야 아주 하찮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에 겸허해진다. 아버님께서 당시 어떻게 하셨는지는 알 수 없다. 자신에게 살의를 가지고 욕설을 퍼붓던 사람, 문자 그대로 늘씬하게 때려 남은 음식 버리듯 그를 내동댕이쳤던 사람들에 대해 어떤 용서와 동정의 ‘반응’을 나타내셨는지는 정확히 헤아릴 수 없다.
그분이 겪으신 인생 역경(逆境)은 실로 주목할 만하다. 나는 때때로 아버님께서 지압이나 치료 등을 받으실 때에 몸에 나 있는 상처들을 힐끗 보곤 한다(알다시피 아빠는 그 상처로 인해 동정받는 것을 원치 않는다). 방으로 걸어 들어가실 때면 그 빛나는 상처와 흠들은 불빛 아래에서 반짝이곤 한다.
그것을 볼 때면 ‘저 상처에는 어떤 이야기가 얽혀 있을까? 각기 다른 소름 끼치는 기억을 지니고 있겠지. 하나하나가 찢기는 육신과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는 작은 소설이 될 거야. 아빠는 놀라운 사람이야’ 하는 생각이 가끔씩 든다. 나는 그 상처들을 보면서 이상하게도 어떤 감상적인 내용들을 떠올리곤 했다.
아빠가 경험했던 심리 상태와 과정들은 알 수 없다. 계속되는 고문을 받으실 때마다 느꼈을 감정을 완전히 알 수는 없다. 아빠가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어떤 단어들을 마음속으로 되새기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아빠 마음속에 있는 진실성을 투명하게 볼 수 있다.
나는 아빠의 순진한 웃음과 아기의 눈빛 같은 미소를 보았다. 내 어린 아들을 품에 안으시고 잔잔히 앞뒤로 흔들어주실 때 그 부드러움을 보았다. 상처 입은 손을 뻗어 자신을 죽이려 했던 사람들을 향해 사랑이 가득한 동정을 보내실 때, 형제로서 품어 안으실 때 나는 그에게서 빛나는 광채를 보았다.
이것은 놀랄 만한 용서의 메시지이며, 문자 그대로 신성한 모습인 것이다. 자신을 살해하고자 하는 사람을 용서하고, 심지어 사랑까지 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가장 실행하기 어려운 종교적⋅영적 수행과 성장 과정의 하나인 것이다. 변명과 사과를 요구하지 않고 우리가 원수를 용서하고, 감히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그것은 헤아릴 수 없는 풍성한 가치를 지니게 될 것이다. 사랑이 미움과 원한보다 훨씬 더 힘 있고, 설득력 있고,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서부터 자유가 시작되는 것이다. 내게 묻는다. “어떤 종류의 미움과 원한을 품고 있는가”라고.
제발 그만 쳐다보세요
알다시피 나는 부모님을 항상 진지하게 존경하지는 못했다. 사실 사춘기 시절 대부분 나는 전형적인 화 잘내는 목사의 아들이었으며, 자기숭배나 자아도취 그리고 신성한 아이 신드롬으로 고생하였다. 나는 일곱 번째 아들이며 열한 번째 자식이었다. 나는 1979년 9월 26일 뉴욕의 웨스트 체스터에서 태어났다. 바로 그 날부터 나는 소위 내 위 형제들이 이미 경험하고 있는 세계로 들어갔다. 우리들은 계속하여 식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 물 한 잔을 마시러 부엌으로 내려갈라치면 복도에서 생전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이 마구 사진을 찍고 있다. 나는 이 침입자들을 공격하고 싶었으나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그들을 만족시켜주어야만 했다. “당신들은 누구야? 난 누구도 이곳에 초대한 적이 없는데. 누구에게도 이렇게 뻔뻔스럽게 다가와 자기들의 눈의 즐거움을 위해 사진을 찍도록 허락한 일이 없단 말이야!” 나는 속으로 이렇게 외치곤 했다. “우리에게 숨쉴 공간을 달란 말이야!”
어렸을 때에는 우리가 억지로라도 할 수밖에 없었던 많은 공적인 생활이 그다지 거북한 것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나는 좀더 민감해지기 시작했으며, 공적인 제스처를 취한다는 것에 현기증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당시 스케이트 보드 타기를 좋아했고 긴머리에 헐렁한 큰 사이즈의 청바지를 입곤 했다. 항상 전통적인 정장만을 입는 대부분의 식구들과는 두드러지게 대조되었다. 우리는 온갖 행사 때에 단 위에 서있곤 했는데 사람들이 나를 냉정하게 심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들은 나를 바라보며, 판단하고 착하거나 나쁘다는 꼬리표를 붙이고 있었다(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나는 그들이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음을 실제로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얼굴에 석고칠을 한 듯 불경하고 무관심한 표정으로, 건방지고 참을성 없게 서 있곤 했다. 크고 작은 기대를 가지고 나를 바라보고 있음을 알았기에 오히려 아무렇게나 행동하고 싶었던 것이다.
고통스런 미움이 싹트기 시작했다. 식구(내게는 낯선 사람들이다)들을 볼 때마다 내 속에서 분노와 미움, 원한 등이 끓어오르는 것이었다. “내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된 원인이 바로 저들에게 있다. 부모님이 항상 집에 안 계신 이유도 바로 저들 때문이라구. 저들이 우리에게서 부모님을 빼앗아가버렸어. 더군다나 우리 집에 함부로 들어와 우리가 저들에게, 또는 부모님께까지도 언짢은 표정을 짓는 것을 보며 우리를 나쁜 아이들이라고 비난하겠지. 그러는 동안 우리는 내내 표정을 관리하며 웃음지어야 하고.”
나는 끓어오르는 분노에 여러 날 밤잠을 설치고 있었다. 나는 이러한 모임들이 싫었다. 이 집이 싫었고 공적(公的)인 것과 관련된 모든 것이 싫었다. 심지어 내 자신과 내 인생까지도.
대학에서의 첫 1년 동안 나는 독서를 많이 하였는데, 특히 보편적인 지성파 존재에 대한 주제나 토론에 관한 것이 많았다. 이 문제를 연구하면서, 현대 과학의 놀랄 만한 발견 중 하나인 양자(量子) 물리학을 접하게 되었다. 양자물리학에 따르면,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가장 낮은 단계로 알았던 원자 아래에 그 원자를 구성하는 존재, 즉 양자(quanta: 라틴어의 양(量)에서 유래됨)라는 것이 있다. 이들 양자는 더 이상 쪼개질 수 없으며 모여서 하나의 원자를 이룬다. 하나 또는 여러 개의 원자는 분자를 만들게 된다. 이 분자들이 모여 공기, 나무 또는 이 책을 읽고 있는 당신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양자는 모든 존재의 기본 구성 단위인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것은 어떤 원소라기보다 진동에 가까운 것이다(초현 이론에 의함).
아인슈타인의 에너지는 물질과 똑같다는 상대성이론(E=mc²)은 과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 이론은 기존의, 뉴턴이 ‘당구공’을 이용해 물리학 법칙을 설명해오던 체계를 재구성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우리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들어온 아인슈타인이 스스로를 매우 영적인 사람이라고 여겼다는 것이다. 그는 “과학자는 보편적인 인과관계를 인지할 수 있는 감각을 지니고 있다··· 그의 종교적인 감성은 자연의 조화로운 법칙에 열광적으로 경탄하면서 어떤 초월적인 존재의 지성-이것에 비교하면 인간의 체계적인 사고와 행위는 아주 미미한 반영에 불과하다-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이것은 가장 잘 알려진 천재 과학자가 신에 대한 그의 헌신적인 믿음을 드러낸 말이다! 고등학교 때 이것에 대해 들은 기억은 전혀 나지 않는다. 그 당시 알았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것은 내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다. 학교에서 많이 배웠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배운 것은 기초에 지나지 않았다. 단지 진리의 표면만을 핥았을 뿐이었다. 물리학의 거장들은 한평생을 우리가 알고 있거나 혹은 모르고 있는 것들을 발견하는 데 헌신하였는데, 나보다 훨씬 많이 연구한 이 사람들은 깊고 심오한 영적인 삶을 살았다.‘하나님을 인식함에 있어 내가 정확히 보지 못했던 어떤 타당성이 있음에 틀림없어.’ 나는 이것에 대해, 그리고 물리학과 다른 여러 가지 요소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영적인 소생을 위해 많은 영감을 얻어가면서.
이 연구는 내게 전적으로 새롭게 이해의 수준을 높여주었다. 만약 양자물리학이 옳다면, 보편적 에너지(친숙하게 들리지 않는가?)는 존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물질은 분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또 전자, 양성자, 중성자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들은 결국 양자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까지 생애를 통해 어느 곳에나 있는 보편적 만유원력에 대해서 들어왔는데, 그것은 모든 실재 속에 구체화되어 있고, 심지어 현실 자체를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처음으로 신에 대해 인식적이며 실체적인 증명을 본 셈이다. 나는 놀라는 한편 저항하고 싶은 충동마저 느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자라는 동안 들어왔던 편재(遍再)하는 존재는 과학의 관점에서 볼 때에도 분명히 있는 것이다. 나는 미국적 문화와 학문적인 영향 속에서 과학의 타당성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자라왔다. 그런데, 단지 믿고 싶지 않았던 어떤 존재-신(神)에 대한 증거를 준다는 이유만으로 과학에 대한 신뢰를 창문 밖으로 내던져버릴 수 있을까?
과학에서는 편재한 양자라는 단계가 있다고 말하지만, 내게 있어서는 신에 대한 과학적 호칭에 불과한 것이었다. 나는 분하고 난처하면서도 동시에 이상한 만족감을 얻었다. 나는 이 모든 것이 종교를 향한 나의 미움, 원한, 분노 그리고 감정적 불안정서에 기인한다는 것과 동시에 내가 지닌 의식의 격자(현실을 보게 해주는 필터)가 흐리고 혼탁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부정적이고 비참한 상태는 의식의 필터를 막히게 하고, 물은 들어갈 때보다 훨씬 더 더러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나 자신의 무지와 불신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의식의 필터는 독극물 대신 정화장치로 바뀌기 시작한다. 나는 이제 내 고통의 원인을 알게 되었다. 내게 책임이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듣고 싶지 않았다. 내게 책임이 있다니 그것은 무슨 뜻인가? 지금껏 한번도 식구들에게 우리의 생활을 침해해달라거나 부모님을 나로부터 빼앗아가라고 부탁한 일이 없다. 내가 원해서 지금의 내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왜 내 잘못이라고 할 수 있는가? 나는 이 어항 속에 태어나기를 원치 않았다. 행사 때마다 사진에 찍히길 원치 않았으며, 공적인 생활 속으로 들어가겠다고 부탁한 일도 없다. 그런데 어떻게 내 잘못이라고 하겠는가?
침착하게 그리고 조금 더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면서, 분노와 원한을 느끼던 매 순간마다 내게 선택권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심하게 좌절하고 화내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었으며, 또 한편으로는 그런 감정들이 내게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하게 할 선택권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내 자신 스스로가 고생을 자처했던 것이다.
인도에서 부처의 가르침은 미움, 분노, 회한 등의 독 묻은 화살이 당신을 찌르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어떤 나무로 화살대를 만들었는지 그 깃털이 산비둘기의 것인지 집비둘기의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자신 깊숙이 화살이 박혀 있다는 사실이다. 그 화살이란 부정적이고 공격적인 상태를 나타내며, 우리는 항상 이것 또는 저 사람 때문이라고 비난하거나 얼마나 우리가 화나 있는지를 표현하곤 한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 화살은 내내 거기에 있다.
우리는 이 화살이 얼마나 독성이 강한지, 우리를 얼마나 괴롭히고 상하게 하는지 불평하는 것을 택할 뿐, 화살을 제거하는 것에 대한 선택은 하지 않고 있다. 모든 것이 이 같은 원한과 분노에 대한 집착으로 인한 것이며, 나는 그 압력들을 감당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 순간부터, 세상은 좀더 밝게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가는 곳엔 항상 붙어다니며 내 머리 위를 맴돌던 먹구름이 이젠 사라졌다. 삶에 대해서 보다 편안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보다 잘 대처하게 되었으며, 오히려 조금씩 내가 그렇게 싫어하던 사람들과의 관계를 즐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