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전 - 제1부 하나님과 창조 - 제3장 인생의 목적
기 쁨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삶은 물론, 종교적인 탐구의 토대가 된다. 궁극적 실재와의 합일은 초월적인 기쁨을 누릴 수 있다. 그것은 지복(아난다), 열반, 또는 심지어 신성한 애인과의 혼인으로 다양하게 특징지어진다. 유일신론적인 신앙에 따르면 신은 기쁨을 위해 인간을 창조했다. 신과 그의 피조물들의 합일은 그 기쁨을 완전하게 한다.
이 절은 인간의 심정과 신의 심정이 합일하여 공명할 때 천국의 기쁨을 묘사하는 구절들로 시작된다. 그리고 천국 기쁨의 광활함과 감각을 통한 부분적인 쾌락을 비교하는 구절들이 나온다. 이같은 통찰은 윤리에 대한 논의에서 소홀히 다루어져서는 안 된다. 조지 워싱턴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덕과 행복 사이에는 불가분의 합치점이 있다." 우리는 기쁨이 충만한 삶과 천국의 기쁨 사이에 상승 작용을 묘사하는 구절들로 끝맺는다.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을 나누어 주려는 노력이 수반되는 유쾌하고 낙천적인 자세는 성령의 기쁨을 끌어 당길 수 있다. 이것은 부부의 사랑과 신성한 사랑의 신비한 연관속에서 경험된다. (제19장 '부부사랑'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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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늘의 기쁨
종교 경전
당신께서 나의 인생길을 몸소 가르쳐 주시니,
당신을 모시고 흡족할 기꺼움이,
당신 오른편에서 누릴 즐거움이 영원합니다.
시편 16.11 (기독교)
일월이 인간을 창조한 것은
즐거운 놀이를 보고 싶은 까닭이다.
친필 14.25 (천리교)
행복은 진리와 사랑으로부터 생겨나는 영적인 것이다. 그것은 이기적이지 않다. 그래서 그것은 홀로 존재할 수 없고 모든 인간이 그것을 함께 나누기를 요구한다.
과학과 건강. 57 (크리스천 사이언스)
눈으로 본 적이 없고, 귀로 들은 일도 없고 사람의 마음에 떠오르지도 않았던 일을,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예비해 두셨다.
고린도 전서 2.9 (기독교)
선행에 대한 보상으로 어떤 즐거움이 숨겨져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꾸란 32.17 (이슬람)
나는 여래이니
가장 높은 양족존
세상에 출현함은
큰 구름이 덮이는 듯
바짝 마른 일체중생
흡족하게 비를 주어
괴로움을 다 여의고
안온한 낙을 얻고
세간의 즐거움과
열반의 기쁨을 얻네.
법구경.5 (불교)
카르마의 오염으로부터 자유로운 자는 우주의 구극에 들어가 일체를 관조하여 모든 것을 알며 영원한 지복을 누리느니라.
쿤다쿤다, 판차스티카야 170 (자이나교)
믿음을 가진 자는 하나님을 염원하여 마음의 편안을 찾느니라. 실로 하나님을 염원할 때 마음이 편안하니라.
꾸란13.28 (이슬람)
나의 성모시여! 거룩한 스승과 하나됨으로 내가 지복을 얻었나이다.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그와 하나 됨 속에서 가슴속 깊은 곳에 즐거운 음악이 울려 퍼지고, 주옥같은 선율의 천사들이 내려와 성가를 노래합니다.
그대 모두 찬양하라, 가슴 속에 품었던 주의 노래를!
나나크가 말하노니, 나는 거룩한 스승과 하나 되는 지복을 얻었도다.
아디 그란트, 람칼리, 아난두, M.3,p.917 (시크교)
지고선이 우리의 것이기를!
바라는 대로 복 받기를 원합니다.
보지 못할 곳이 없는 당신의 영으로
오, 주여! 당신이 의로서 주실
선한 마음의 놀라운 기적을 내리소서!
언제나 장수의 기쁨이 충만하기를!
아베스타, 야스나 43.2 (조로아스터교)
말씀 선집
기쁨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심정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목적이 어디에서 이루어지느냐 하면 인간에게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심정이 보이는 인간의 심정에서 현현되는 것입니다. (27.29, 1969.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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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왜 태어났느냐? 하나님하고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났고, 또 만물하고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거꾸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태어났고 만물의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81.334, 1975.12.29)
도대체 신의 창조는 무엇을 목적한 것이냐? 신이 있다면 신이 창조한 그 목적이 무엇이냐? 우리 인간이 바라는 목적과 같은 것이냐? 하나님께서도 기쁘시기 위해서 지으셨던 것입니다. 기쁘고 좋기 위해서 말입니다. 기쁘고 좋은 데는 무엇을 중심삼고 기쁠 것인가? 돈을 놓고 기쁠 것인가? 이 우주의 모든 만상을 놓고 기쁠 것인가? 인간들이 좋아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을 놓고 기쁘시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랑을 놓고 기쁘시기 위해서 만물을 지으셨던 것입니다. 이 모든 것, 만물들을 그런 목적하에 지은 것입니다.
그러면 만물들이 바라는 최고의 소원이 무엇이며 최고의 종착점이 무엇이냐? 이렇게 보게 될 때 사랑을 통해 기쁨을 목적으로 만물을 지었다 할진대는, 피조세계의 만물은 사랑을 통해서 연결될 수 있는 인연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만물은 참다운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이상적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114.63, 1981.05.16)
인정(人情)과 천정(天情)의 합일점이 행복의 출발점이다. (뜻길,p.174)
사람은 자기가 좋을 때는 부모, 형제, 친척을 찾아 함께 즐기고자 합니다. 좋은 것은 행복한 것입니다. 행복은 영원한 것이요, 영원한 것은 심정입니다. 우주의 중심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부모와 자식입니다. 즉 부모와 나입니다. 하나님과 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요, 나는 아들입니다. 인생의 궁극적 목적은 아버지를 찾아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어 기쁨을 느끼는 것입니다. (12.104, 1962.12.16)
어떤 사람이 요런 물건, 요런 물건, 요런 물건을 잔뜩 만들어 놓고 있는데, 다른 한 사람이 '아이고, 좋아! 아이고, 좋아! 사랑한다, 사랑한다' 하게 되면 주인이 그걸 보고 '정말 좋아요? 정말 좋아요? 하고 물어 자기보다 더 좋아한다는 걸 확인하면 주는 것입니다. 나보다 더 사랑하면 주는 것입니다. 그것을 만든 자기보다 더 사랑하게 되면 자기의 것을 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여러분들도 그런 마음 있지요?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쥐새끼를 봐도 '아이고, 하나님이 저걸 얼마나 사랑하시겠느냐?' 하며 사랑하고, 강아지새끼도 사랑하고, 나비를 봐도 사랑하면 하나님이 '그러면 너 줄게, 너 줄게. 너 가져라, 너 가져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해야 주지 그렇지 않으면 안 줍니다. 주인 입장에 있으면 아는 것입니다. 그저 사랑하고 좋아하면 '그래, 너 주마'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를 위해서, 사랑의 자극체로 나를 위해서 만들었다는 말이 맞는 말입니다. 사랑을 유발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러한 만물을 사랑하는 걸 볼 때 하나님이 '그 녀석 나보다 나은데' 하십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팔이 있다면 뒤로 와서 붙들고 안고 '야야, 이 녀석아! 좋구나!' 이럴 판입니다.… 하나님이 좋아서 붙들 때 나도 좋아서 돌아서서 하나님을 붙들면 하나님이 '얘, 그건 안 된다' 그러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좋다고 자꾸 파고 들어가면, 하나님께로 무한히 파고 들어가면 하나님도 '좋다, 좋다, 좋다' 그러십니다. 그러시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 좋아하는 것입니다. 거기서 취해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어쩌겠습니까? 하나님 만나서 사랑의 병이 나서 취해 놀고 있으면 하나님 그걸 보고 좋아하시겠습니까, 나빠하시겠습니까? '아, 내 사랑이 좋긴 좋구만. 하하!' 하고 크게 웃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아-멘' 하는 것입니다. '에이, 고약한 녀석! 에이, 고약한 것' 그러시겠습니까, 그 자리에서 '아이고, 좋다!' 그러시겠습니까? 대단히 좋다, 그 말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 다음에는 둘이 취해서 붙들고 타든 깔든 아무개를 데려가도 좋고, 꽁무니에 그냥 붙여도 좋고, 다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길이 제일 바람직한 길이 아니겠느냐? 하나님도 바라고 인간도 바라고 만물도 바라는 길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결론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111.171-172, 1981.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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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감각적 기쁨을 초월하는 신성한 기쁨
종교 경전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일과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
로마서 14.17 (기독교)
무한자는 모든 즐거움의 원천이며, 덧없이 흘러가는 무상한 것 가운데 찾아지는 즐거움이란 없다. 오직 무한자에게 즐거움이 있나니 그 무한자를 구하여 힘써 정진하라.
찬도그야 우파니샤드 7.23 (힌두교)
하나님이 믿음을 가진 자에게… 영원한 축복이 있는 에덴동산의 아름다운 안식처를 약속하셨도다. 그러나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의 즐거움이니 그것은 더없는 경사이니라.
꾸란 9.72 (이슬람)
이 세상과 천상에서 누리는 애욕의 즐거움도 갈애가 멸진한 즐거움에 비한다면 십육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한다.
우다나 11 (불교)
독거의 맛을 알고 욕망이 잠잠해진 평안을 몸소 체험한 사람은 법열의 맛을 즐기면서 두려움 없이 악에서 떠난다.
법구경 205 (불교)
외계와의 접촉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 안에서 행복을 발견할 때,
그는 신의 요가에 완전히 제어되며
끝없는 행복에 이른다.
감각의 접촉에 기인하는 경험들은
다만 괴로움의 원천일 뿐이다.
그것들은 시작과 끝이 있나니
지혜로운 자는 그것을 즐거워하지 않는다.
바가바드기타 5.21-22 (힌두교)
자존자 브라흐만은 모든 기쁨의 원천이니,… 만일 자비로운 그가 우주에 편만해 있지 않다면, 살 수 있는 자가 실로 누구며 숨쉴 수 있는 자는 또한 누군가? 기쁨을 주는 이는 오직 그뿐이다.
기쁨의 본 모습은 어떠한가?
생각해 보건대, 고귀하고 학식이 높으며, 건강하고 이 세상의 모든 부를 한 몸에 지닌 젊은이가 있다고 하자. 이것이 이 세상에서 한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최상의 기쁨이라고 보자.
그 기쁨의 백배가 간다르바들이 누리는 한 즐거움보다 낫지 않으며, 베다성전에 정통하여 갈애에 끌려 다니지 않는 사람의 즐거움은 또한 이보다 낫다.
간다르바들이 누리는 모든 즐거움의 백배는 천상의 제석천이 누리는 한 기쁨보다 못하며, 베다성전에 정통하여 갈애에 끌려 다니지 않는 사람의 즐거움은 또한 이보다 낫다.
천상의 제석천이 누리는 기쁨의 백배는 낙원의 조상들이 누리는 한 즐거움보다 못하여 천신들의 즐거움,… 제 의식으로 태어나는 신들의 즐거움,…주재 신들의 기쁨,…인드라의 기쁨,…브리하스파티(神主)의 기쁨,…프라자파티(創造主)의 기쁨,… 브라흐마(造物主)의 기쁨의 각각 한 즐거움에 불과하다. 그러나 베다성전에 정통하여 갈애에 끌려 다니지 않는 이의 즐거움은 브라흐마가 누리는 즐거움에 못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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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해진다. 언설로 형용할 수 없고 생각조차도 닿지 못하는 브라흐만의 환희를 아는 자, 그는 두려움을 모른다. 그는 "내가 왜 정의를 행하지 않았던가? 내가 왜 그릇되게 살았을까? 하는 생각들로 괴로워하는 법이 없다. 브라흐만의 환희를 아는 자는 실로 선악의 이원을 넘어선 경계에 노닐고 있기 때문이다.
타잇티리아 우파니샤드 2.7-9 (힌두교)
말씀 선집
우리 인간을 가만히 보면 그저 여기저기 다니다가 눈도 마비가 됐고, 귀도 마비가 됐고, 냄새 맡는 코도 마비가 됐고, 맛보는 입도 마비가 됐고, 두 팔도 마비가 됐고, 전부 마비가 됐다는 것입니다. 내 눈이, 내 귀가, 내 모든 감각기가 일체화되어서, 모든 신경 선까지 전체를 종합해서 나를 하나로 이끌 수 있는 그 길이 어디냐? 도취하고 기쁨을 느끼며 살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것이 어느 길이냐? 그것이 내 개인의 인생길로, 내 하나의 길로, 내가 만족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를 따르는 가정이 만족하고, 내가 속해 있는 종족이 만족하고, 내가 속한 나라가 만족하고, 내가 속한 세계가 만족하고, 내가 속한 하늘땅이 만족하고, 하나님까지도 만족할 수 있는 그런 빛의 길이 어디 있느냐? 이게 문제라는 것입니다. (95.181, 1977.11.13)
개인 생활을 중심삼는 사람들은 잘 못 느끼지만, 은혜로운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늘 보는 만물이 옛날과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늘 새롭다는 것입니다. 아침에 보아도 새롭고, 저녁에 보아도 새롭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사가 서서히 물결쳐 올 때 신비스러움을 입체적으로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감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인 것입니다. (95.134-135, 1970.03.21)
하나님이 있다면 그 하나님과 인간은 어디서 연결되느냐? 생명이 교류하는 곳, 사랑이 교류하는 곳, 이상이 교류하는 곳입니다. 그 점이 어떤 점이냐? 부자의 관계가 아닐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아, 내가 하나님하고 동등할 수 있다니, 그런 기쁨이 얼마나 크겠나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거기서 기도가 필요합니까? '하나님, 나 죄인이오' 하는 기도가 필요합니까? 사랑의 주체요, 생명의 주체요, 이상의 주체인데 기도가 필요합니까? 위신과 체면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서슴지 않고 하나님을 붙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안고 비벼 주고 사랑해 주는 것을 체험한다면 뼈와 살이 녹아날 것입니다.
여기에 종교 지도자도 왔으리라고 보는데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한번 받아봤습니까? 그런 자리에서 숨을 쉬면 세계가 들락날락한다는 것입니다. 아편을 먹고 술을 마시고 취하는 것보다 못하겠습니까? 아편만 못하겠습니까? 술만 못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에 들어오게 되면 채워지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수(4)백조나 되는 세포까지도 춤을 추는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눈은 눈대로, 손은 손대로 전부 다 느끼는 것입니다. 그것 외의 다른 것은 갖다 주더라도 다 싫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에 인간의 최고의 고귀한 욕망이 그것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철저히 알아야 됩니다. (69.79-80, 1973.10.20)
오늘 하루가 기쁨으로 소화하는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이 기쁨을 내일의 기쁨으로 가져가지 못한다면 오늘의 기쁨은 나에게 있어 영영 원수가 되는 것을 알아야 되겠사옵고, 슬픔과 어려움과 탄식의 조건밖에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기쁨이 좋은 것만이 아니며 슬픔이 나쁜 것만이 아닌 줄 아옵니다. 문제는 기쁨과 슬픔을 연결하는 데 있어서 자기의 목적 성사를 위해 내적 투쟁이 그 환경에 얼마만큼 맺어 들어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줄 아옵니다. 이러한 것을 알게 될 때 저희들이 뜻과 더불어 생애노정을 가는데 있어서 뜻과 얼마나 일치되었느냐, 뜻의 가치에 저희들의 기쁨과 슬픔이 어떻게 연결되어 나가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43.10, 1971.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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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즐거운 생활
종교 경전
원한을 품은 자들 가운데 있으면서도 원한을 버리고 즐겁게 살자. 원한을 가진 자들 속에서라도 원한을 떠나 살자.
고뇌하는 자들 가운데 있으면서 고뇌에서 벗어나 즐겁게 살자.
고뇌하는 자들 속에서라도 고뇌를 떠나 살자.
욕정에 사로잡힌 자들 가운데 있으면서 욕정에서 벗어나 즐겁게 살자.
욕정에서 사로잡힌 자들 속에서라도 욕정을 떠나 살자.
아무런 막힘도 없는 우리, 즐겁게 살자. 광음천(光音天)의 신들처럼 즐거움을 먹으며 살자.
법구경 197-200 (불교)
성령은 즐거운 마음을 가진 자에게만 함께 하신다.
예루살렘 탈무드,수코트 5.1(유대교)
북새야, 일어라.
마파람아, 불어라.
나의 사랑하는 임이 이 동산에 오시어
달콤한 열매를 따먹도록,
내 동산의 향기를 퍼뜨려라.
나의 누이, 나의 신부여,
내 동산으로 찾아 왔소.
몰약 같은 향기로운 나뭇가지도 꺾고
꿀도 송이째 따먹으리오.
포도주만 마시랴, 젖도 마시리라.
친구들아, 먹고 마시어라.
흠뻑 사랑에 취하여라.
아가 4.16-5.1 (기독교)
말씀 선집
선생님은 어떤 일에 손대게 되면 '이것 때문에 태어났다!' 라고 생각합니다. 생겨나기를 이것 때문에 생겨났고, 그 다음에 좋아서 합니다. 좋아서 하면서 살아야 됩니다. 깊은 고개를 넘어설 수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자기가 싫어서 하는 데에는 손을 안 댑니다. 마음이 다 압니다. 좋아서 하는 일에는 하나님이 가셔서 복을 빌어 주십니다. (308.214, 1999.01.05)
여러분이 70년 내지 80년을 산다고 볼 때 그 가운데 3분의 3가 슬픈 생활이라고 한다면, 이 3분의 2를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하나님을 중심삼고 기쁜 생활로 만들어야 됩니다. 천국화 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주면서 사는 곳입니다. 하나님도 주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주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주고 나서도 더 좋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또 주고 싶어 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34.141, 1970.08.30)
왜 남자가 여자를 필요로 하고, 왜 여자가 남자를 필요로 하느냐? 하나님의 사랑에 공명되기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면 '아! 좋다!' 하는 것입니다. 먹지 않아도 좋고, 자지 않아도 좋다 하는 것입니다. 여자에게 남자가 필요하고, 남자에게 여자가 필요합니다. 완전한 남자와 완전한 여자의 사랑이 공명되어야만 완전히 하나님의 사랑이 이루어집니다. (102.21, 1978.11.19)
횡적인 부부의 사랑이 하나님의 이상적 사랑으로 완전히 꽃피워서 그 사랑의 향취가 온 천지에 진동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이 가해져서 아버지와 아들딸의 자리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아들딸의 행복을 노래하고, 아들딸의 희망과 아들딸의 만사를 찬양할 수 있고 사랑을 노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가진 그 사랑의 귀한 선물 위에 입체적 사랑을 가해 가지고 이 우주가 '부웅' 부풀게 될 것입니다. 고무주머니(풍선) 알지요? 납작 달라붙은 고무주머니를 '푸' 불면 커지듯이 우주가 부풀어서 존재 세계의 만물이 그 가운데 들어가더라도 남음이 있을 수 있는 우주가 됩니다. 모든 것을 충만시킬 수 있는 사랑의 힘으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101.35, 1978.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