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전 - 제1부 하나님과 창조 - 제3장 인생의 목적
--126--
완전성
종교 경전들은 절대자와 하나 된 사람, 진리로 체현된 사람, 죄 또는 세속적인 타락의 족쇄에서 자유로운 사람, 성스러운 은총의 충만을 드러내 보이는 사람의 공덕들을 묘사한다. 그들은 성자, 현자, 붓다, 또는 신성한 인간이라고 불릴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완전 상태는 우리가 닿을 수 없는 영역 너머가 아니다. 우리가 단지 노력하기만 한다면 성취할 수 있는 목적지이다. 간디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삶은 열망이다. 그것의 임무는 완성, 즉 자기실현을 위해 분투하는 것이다. 그 이상은 결코 우리의 나약함이나 불완전함 때문에 낮추어져서는 안 된다." 여기에 기술된 구절들은 완전 상태를 성취한 사람의 탁월한 품성을 묘사한다. 특히 완전함의 세 가지 품성이 강조된다.
첫째는 몸과 마음의 통일이다. 성자는 이기적인 욕망을 극복하고 성욕, 탐욕 또는 다른 욕망을 정화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주관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오직 하나님의 뜻과 양심의 지시에 따라서 옳은 것만 행하고자 한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에 의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당신의 의도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라는 것이다.
둘째, 완전성은 하나님과의 통일이다. 하나님은 최고의 인간적 열망들의 전형이며 모델이다. 그래서 성자는 하나님 자신의 완전성에 동참하고자 노력함으로써 하나님의 속성들, 즉 절대, 불변, 사랑, 정의 등을 구현하게 된다.
셋째, 완전성은 하나님의 참사랑을 구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 또는 자비는 죄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그의 지칠 줄 모르는 노력에서 나타난 것으로서 하나님 본질의 핵심이다. 그러므로 완전한 남자와 여자는 다른 사람들의 풍요한 삶을 즐거워하며 사회의 이익을 위해 사심 없이 노력한다. 성자의 사랑은 어느 한편으로 치우치지 않으며 그 누구도 적으로 간주하지 않으며 항상 선으로 악을 갚는다.(제13장 '참사랑' 참조)
1. 완전성은 마음과 몸의 일치에서 시작
종교 경전
어떤 사문이 부처께 여쭈었다. "선이란 무엇이며, 또한 무엇을 일러 위대하다 합니까?" 부처께서 대답하셨다. "도를 따르며 참을 굳게 지니는 것, 그것이 선이요, 자신의 뜻이 도에 어긋남이 없을 때 이를 일러 위대하다 하느니라."
사십이장경 15 (불교)
너희의 성향이 내가 가져온 것과 부합될 때까지 너희 중 누구도 진정한 신자라 이를 수 없느니라.
알 나와위 하디스 40선 41 (이슬람)
깨달음에 넉넉한 자는 사악한 행위에 끌려 다니지 않나니, 그는 언제나 진리로 일깨워진 지성에 의해 인도되는 까닭이니라.
아차랑가 수트라 1.174 (자이나교)
깨달음을 얻는 방법으로
마음을 바르게 닦고
집착을 끊고 소유욕을 버리고
항상 편안하고 즐거우며
번뇌가 사라져 빛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열반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법구경 89 (불교)
마부에 의해 잘 길들여진 말처럼
모든 감관이 잠잠하고
교만과 번뇌를 끊어버린 사람은
신들조차도 그를 경애한다.
대지처럼 너그럽고 잘 수양된 사람은
화를 내는 법이 없다…
그는 마치 흙탕에 휘둘리지 않는 호수 같으며
그와 같이 평정심을 지닌 사람에게 윤회는 없다.
바른 지혜를 얻고 오염을 여의었으며
완전한 평온과 부동심을 지닌 자
그의 마음은 고요하고 그의 말은 고요하며
그의 행동 또한 고요하다.
사특한 믿음 없이 절대를 깨달아
윤회의 사슬을 끊어버리고
온갖 유혹을 물리치고 욕망을 버린 사람
그는 참으로 뛰어난 사람이다.
법구경 94-97 (불교)
--127--
아르주나가 말했다. 자신의 존재가 지고자 안에 굳건히 서서 부동의 지혜를 지닌 자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오, 크리슈나여! 그는 어떻게 말하며, 어떻게 앉고, 어떻게 걷습니까?
거룩하신 주 크리슈나께서 말씀하셨다. 일체만유 속에서 자신을 보며, 자신 속에서 일체만유를 보는 자, 모든 이기적인 욕망과 헐떡이는 갈애를 떨쳐버린 자, 그를 일러 확고부동한 지혜의 사람이라 하느니라.
슬픔 속에서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쾌락에 끌려 다니지 않으며, 탐욕과 두려움과 노여움으로부터 자유로운 자, 그를 일러 확고한 통찰을 지닌 성자라 부르느니라.
이기적인 욕망으로 더 이상 흔들이지 않으며, 좋다 하여 의기양양해하거나 슬프다 하여 침통해하지 않는 사람, 그는 진실로 확고한 지혜 속에 머무는 자니라.
거북이가 사지를 갑 속으로 거두어들이듯 감관을 대상들로부터 거두어들이는 사람, 그의 지혜는 확고히 서 있느니라.
수행자가 아무리 애써도, 오, 쿤티의 아들이여! 날뛰는 욕망들은 그의 마음을 채어가 버릴 것이니라. 모든 감각기관들을 통어하며 언제나 내 속에 머물며 나에게 전일하는 자, 그는 진실로 확고한 지혜 속에 머무는 자니라.
바가바드기타 2.54-61 (힌두교)
아부 후레이라가 하나님의 사도가 하는 말을 전하였다. "가장 완벽한 신앙을 가진 자는 가장 훌륭한 성격을 가진 자이다."
아부 다우드 및 다리미 하디스 (이슬람)
마음의 해로운 독을 버리고 생명의 삶을 영위하며, 행해져야 할 모든 것을 행하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목적을 성취했으며, 존재의 속박들을 파괴했으며, 충만한 영지로써 자유를 얻은 비구는 아래의 아홉 가지 규준들을 범할 수 없다.
마음의 해로운 독이 사라진 비구는 의도적으로 어떤 생명을 죽일 수 없으며, 주어지지 않은 것을 의도적으로 훔칠 수 없으며, 음행을 저지를 수 없으며, 의도적으로 거짓을 말할 수 없으며, 속가에서 가장으로 지녔던 지식 등에 대한 기억에서 오는 즐거움을 향수할 수 없다.
마음의 해로운 독을 버린 비구는 애욕 때문에 배회할 수 없으며, 증오 때문에 배회할 수 없으며, 미혹 때문에 배회할 수 없으며, 두려움 때문에 배회할 수 없다.
앙굿타라 니카야 4.370 (불교)
현묘한 도와 하나가 된 사람은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멀리할 수도 없고, 이롭게 할 수도 없고, 해롭게 할 수도 없고, 귀하게 할 수도 없고, 천하게 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세상이(그를) 귀하에 여긴다.
도덕경 56 (도교)
말씀 선집
여러분이 여기서 출발하는 에 있어서 어떻게 가야 되느냐? 각자가 지향하는 양이 100이라 할 때, 거기에서 몸과 마음이 50대50이면 안 됩니다. 그런 사람은 중간 영계에 머물게 됩니다. 완충지대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만일 몸이 60이면 틀림없이 지옥에 갑니다. 지옥은 어떤 곳이냐? 그늘 진 곳입니다. 천국은 어떤 곳이냐? 빛나는 곳입니다. 그렇게 알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반드시 그늘 진 곳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이곳은 내려가면 갈수록 캄캄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항상 '나'라는 존재는 선악의 모체라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선생님도 여러분과 같은 연령일 때 이런 내용으로 고심했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내세운 표어가 뭐냐 하면 '우주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 완성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에 있어서 제1조입니다. 이런 면에서 자아를 완성하여 자아를 주관할 수 있게 될 때, 즉 내 몸을 제어하고 극복할 수 있는 자주성을 갖게 될 때, 비로소 내 몸과 마음의 상충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37.122, 1970.12.23)
--128--
사람은 이중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마음적 사람과 몸적 사람입니다. 그러면 마음은 도대체 뭐냐? 마음은 종적인 기준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몸은 뭐냐? 횡적인 기준을 갖고 있는 것이 몸입니다. 이것이 본래부터 하나님의 이상적 기준에 서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된다면 종적인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이 '땡' 울릴 때 몸적인 모든 것, 횡적인 것을 다 느끼게 됩니다. 마음적, 종적 기준이 존재하는 영인체에 하나님의 참된 사랑이 '땡' 울리면 횡적 기준이 되는 몽뚱이도 '땡' 하고 공명되게 돼 있습니다.…영인체에 참된 사랑이 '땡' 울리게 되면 몸뚱이가 공명될 수 있는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았다면 그런다는 것입니다. 어떤 기준에 의해 그렇게 되어 있습니까? 무엇에 의해 공명이 되는 것인가? 참된 사랑의 울림에 공명되어 있습니다. (177.216, 1988.05.20)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하나 되면 하나님이 임재 한다는 것이 원리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왜 거기에 임재 하느냐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과 마음이 하나 되면 반드시 거기에는, 하나 되는 원칙이 사랑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상대적 사랑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임한다는 논리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성전은 어떤 곳입니까? 성전은 안식처라는 말과 통합니다. 그러면 쉬는 데는 무엇 가운데 쉬는 것입니까? 사랑 가운데 안식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바라는 이상이 있다면 그러한 내심적 기준이 최고의 이상의 기준이 아니겠느냐. 그러한 마음의 사랑을 지닌 곳을 심정세계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솟는 샘터와 마찬가지여서 퍼내고 퍼내더라도 끝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거기에 계시기에 끝이 없다는 논리를 세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91.78, 1977.01.30)
하나님이 순금입니까, 가짜 금입니까? 순금입니다. 하나님이 순금이니 우리가 같이 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가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 몸과 같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5장 48절에 "하나님이 완전한 것같이 너희들도 완전하라"는 말이 나옵니다. (91.321, 1977.03.01)
그렇다면 지상에서 가정천국은 어떻게 이루는 것입니까? 첫째, 가정을 형성하는 모든 요원들은 개인완성을 이루어야 합니다. 타락으로 인해 선택의 여지도 없이 상속받게 된 타락성을 벗고 자신의 인격완성을 보아야 합니다.
즉, 몸과 마음의 갈등과 싸움을 완전히 극복하고 승리하여 일심 일체 일념의 경지에서 완전 일화의 세계가 인격완성으로 열매 맺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경지에 도달한 사람에게서는 시기, 질투, 욕심, 증오 등 모든 악의 요인이 되는 타락성이 다시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443.175, 2004.03.23)
종교의 목적은 심정세계의 법도를 활용하여 생활적인 감정과 대하고 있는 우주 만상의 모든 이치를 관할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그런 인격자를 배양하기 위한 것입니다. (6.349, 1959.06.28)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나라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또한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부모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부모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요, 나라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요, 세계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 주관을 바라기 전에 자아 주관을 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엄청난 사랑의 실체인 개체를 주체적인 입장에 세워 놓지 않고는 가정도 불가능한 것이요, 나라도 불가능한 것이요, 국가도 세계도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완전히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니고는 완전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33.97-98, 1969.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