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과 타고난 선 (세계경전 - 제1부 하나님과 창조 - 제3장 인생의 목적)

훈독왕 | 20180312075355

세계경전 - 제1부 하나님과 창조 - 제3장 인생의 목적


  양심과 타고난 선

양심은 우리가 선을 행하도록 촉구하고 악을 행하려는 성향을 막는 내면의 신적 광채이다. 불교는 이 기능을 '깨달음을 얻은 마음' 또는 '불성'이라고 묘사하는데, 그것은 지혜의 눈을 통해 밝혀질 수 있다. 유교는 그것을 인(仁)으로 간주하는데, 널리 알려진 맹자의 비유에 따르면, 이것은 우물에 막 빠지려는 아기를 보호하려는 측은한 마음의 발로를 말한다. 또한, 이슬람은 인간의 마음을 본래 곧은 것으로 간주하며, 사도 바울은 양심이 심지어 전혀 종교적인 가르침을 받지 못한 사람들조차도 옳고 그름을 구별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양심은 적극적으로 작용하여 자기 향상과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한 이상을 추구하며 고무한다. 양심은 또한 소극적으로 작용하여 우리가 이기적인 행동을 하거나 남을 해치는 행동을 할 때 꾸짖고 타이르기도 한다. 이와 관련하여 문선명 선생은 양심을 부모보다 우리를 더 잘 아는 '보배 같은 스승' 이라고 말한다. 양심은 하나님이 선사한 것이며, 우리가 자기 향상을 가능하게 하며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의도했던 우리 자신의 완전한 목적을 실현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그것은 육신의 자기중심적 욕망과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비뚤어진 양심을 말하기도 하는데, 양심은 본성적으로 천부적인 것이긴 하지만 후천적인 훈육과 교육이 양심의 판단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에 대한 그릇된 판단들로 양심을 세뇌하는 것은 실로 인간의 영혼에 대한 최악의 모독이다. 양심에는 여러 차원들이 있다. 양심의 표면에 있는 차원은 상대적이며 어떤 사람의 진리 개념을 고수한다. 그러나 보다 깊은 차원에는 본심이 있으며, 그것은 절대적인 하나님과 관계를 유지한다. 그러므로 떳떳한 마음으로 기독교인들을 박해했던 타르수스의 사울 같은 사람에게 보다 고차적인 진리의 통찰이 일어날 수 있었으며, 삶의 방향을 바꾸어 사도 바울이 될 수 있었다. 양심의 뿌리에 신성한 본질이 있기에 모든 인간은 결국 구원될 수 있다는 것은 문선명 선생의 낙관적 견해의 기반이 될 것이다.

1. 선에 근거한 본심과 심정

종교 경전 


율법을 가지지 않는 이방사람이 인간 본성에 따라 율법대로 행할 때 그들이 율법을 갖지 않았을지라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됩니다. 그들은 율법이 그들의 마음속에 새겨져 있다는 것을 그 행위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들의 양심이 그 행위를 증언하고 그들의 이성이 그 행위를 서로 고발도 하고 변명도 합니다. 이런 일은 내가 전하는 복음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스스로 예수를 통해 사람들의 비밀을 심판하시는 그날에 있을 것입니다.

로마서 2.14-16 (기독교)

부드러움과 선은 인간 성품의 바탕이다.

예기 38.18 (유교)


--121--
참된 종교란 궁극적으로 인간의 영성에 근거한 덕행이다.
쿤다쿤다 프라바차나사라 7 (자이나교)

보아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

누가복음 17.21 (기독교)

와비사 이븐 마아바드가 말하였다. "내가 하나님의 사도를 만나러 갔을 때, 그가 '덕목에 관해 나에게 질문하려 하느냐?' 라고 나에게 말하기에 '예'라고 내가 대답하였다. 그가 계속하기를 '너의 마음에 물어 보아라. 덕이란 영혼이 안식을 취하고 마음이 평안한 것이니라. 죄란 것은 영혼에 혼란을 가져다주고 사람의 가슴에 고통을 주는 것이니,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종교적 충고이니라'"

알 나와위 하디스 40선 27 (이슬람)

자신의 마음을 알고 자신의 본질을 직관적으로 보는 자,…그는 영웅이며, 신들과 사람들의 스승, 깨달은 자 붓다이다.

육조단경 1 (불교)

네 눈은 몸의 등불이다. 네 눈이 성하면 네 온몸도 밝을 것이요, 눈이 성하지 못하면 네 몸도 어두울 것이다.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않은지 살펴보아라. 네 온몸이 밝아서 어두운 부분이 하나도 없으면, 마치 등불이 그 빛으로 너를 환하게 비출 때와 같이 네 몸은 온전히 밝을 것이다.

누가복음 11.34-36 (기독교)

인간에 대한 당신의 계시 속에서 당신의 영광을 드높이는 유일하시고 참되신 하나님의 목적은 사람들의 참된 내면의 자아의 광산 속에 감춰져 이는 그 보석들을 드러내는 것이다.
바하울라 저서들의 낙수집 132 (바하이교)

일체중생이 불성을 지니는데 이것이 참된 자아이다. 그러나 무시 이래로 온갖 미혹에 덮여 있기에 사람이 그것을 여실히 보여 알지 못한다.
선남자야! 어떤 가난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의 집 어디엔가 숨겨진 황금이 있었지만,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어느 날 낯선 이가 방편으로 그녀에게 "나는 당신을 부려 김을 매게 할까 하오" 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 여인이 말하였다. "지금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소. 그러나 만일 당신이 내 아들에게 황금이 묻힌 곳을 가르쳐 준다면 당신을 위해 일을 하겠소." 그 사람이 다시 말했다. "내가 그 방법을 알고 있으니, 당신의 아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주겠소." 그 여인이 말했다. "우리 집의 남녀노소 그 누구도 묻힌 곳을 알지 못하는데, 당신은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소?" 이에 그 사람은 묻힌 황금을 캐내어서 그 여인에게 보여 주자 그 여인은 기뻐하며 그를 존경하게 되었다.
선남자야, 사람의 불성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아무도 그것을 볼 수 없으니, 이는 마치 그 가난한 여인이 지니고 있으나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던 황금과 같다. 내가 지금 사람들로 하여금 각자 지니고 있는 불성을 보게 하리라. 그러나 그것은 온갖 미혹으로 가려져 있다. 여래는 일체를 중생에게 한 덩어리 빛나는 황금과도 같은 깨달음의 곳집, 곧 불성을 보여준다.

대반열반경 214-215: 숨겨진 보화의 비유 (불교)

사람은 모두 사람을 차마 해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사람이 모두 사람을 차마 해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까닭은 이제 사람이 갑자기 어린아이가 장차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고는 모두 깜짝 놀라고 측은해하는 마음을 가지니, 이것은 어린아이의 부모와 교분을 맺으려 해서도 아니며 마을의 벗들에게 명예를 얻으려고 해서도 아니며, 그 비난하는 소리를 싫어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이로 말미암아 보건대, 측은한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옳고 그름을 따지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122--
측은한 마음은 인의 단서요,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은 의의 단서요, 사양하는 마음은 예의 단서요, 옳고 그름을 따지는 마음은 지의 단서이다.
사람이 이 네가지 단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사체(四體)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으니, 이 네 가지 단서를 가지고 있는 데도 스스로 인의를 행할 수 없다고 말하는 자는 자신을 해치는 자요, 자기 군주가 인의를 행할 수 없다고 말하는 자는 군주를 해치는 자이다.
무릇 사단이 나에게 있는 것을 알아서 모두 넓히고 채울 줄 알면, 마치 불이 처음 타오르며 샘물이 처음 나오는 것과 같을 것이니, 진실로 잘 채우면 족히 사해를 보존할 수 있고, 진실로 채우지 못하면 부모도 섬길 수 없을 것이다.

맹자II.A.6 (유교)

말씀 선집  


인간의 양심은 하나님을 대표하는 마음입니다. 양심은 나를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늘의 의를 위해 존재합니다. 양심은 항상 선을 향해 달리려 합니다. (219.118, 1991.08.28)

석가모니도 하늘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모든 존재는 불심을 가지고 있다 했는데, 그 불심이 뭐냐? 그것은 순수한 본연의 마음을 말합니다. (33.45, 1970.08.20)

'마음의 본원지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서 움직이려고 하는 것이, 그 대상적인 위치에 있는 나다' 하는 이런 평가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162.40, 1987.03.22)

인륜도덕은 인류의 양심을 중심삼고 하늘을 향해 바른 길을 가야 됩니다. 바른 길을 가야 된다고 되어 있습니다. 양심은 고차적인 이상세계를 향해서 이렇게 발전하려고 합니다. (90.161, 1976.12.26)

본래 천법의 도리를 따라가는 인간에게는 자기 자신이 망하는 것을 방비해 주고 보호해 주려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본래 있다는 것은 뭐냐? 하나님에게 본래부터 그러한 마음이 있기에 인간에게도 본래부터 있게 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자기가 만든 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양심아, 내가 이렇기 때문에 이런다' 그럽니까? '내 생각이 그렇기 때문에 그래야 한다' 고 명령한다고 해서 양심이 작용합니까? 어디인지 모르지만 다른 데서 명령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 감정이 자기를 지배하는 것을 볼 때, 이것은 공사문제를 중심삼고 지배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31.241, 1970.06.04)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무리 악한 인간일지라도 악을 버리고 선을 따르려는 본심만은 공통으로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어떤 것이 선이며 어떻게 해야 선을 이룰 것인가 하는 것은 지능에 속하는 것이어서 시대와 장소와 사람에 따라 각각 다르기 때문에 서로 상충되어 투쟁의 역사를 엮어 내려온 것이 사실이지만, 선을 찾아 세우려는 그들의 근본목적만은 모두 동일하다.
그러면 어찌하여 인간의 본심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시공을 초월하여 선을 지향하고 있는가? 그것은 선의 주체이신 하나님이 선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한 선의 실체대상으로 인간을 창조하셨으므로, 비록 타락인간은 사탄의 역사로 말미암아 선의 생활은 할 수 없게 되었으나 선을 추구하는 그 본심만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인간들로써 엮어져 내려오는 역사의 갈 곳은 결국 선의 세계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원리강론, 인류역사 종말론 2.3)

하나님의 창조는 참으로 신비하고 오묘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인간을 당신의 자식으로 창조하시고 만물의 영장으로 세우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양심' 이라는 최고 최선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인간이 지상계에서 일생을 항해하는데 필요한 나침반으로 하사하신 것이 양심이라는 특별한 선물입니다. 흔히들 인생 100년을 얘기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양심의 작용권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123--
그리고 양심의 작용 중 최고 최상의 기능이 바로 참부모 참스승 참주인의 역할 기능입니다. 다시 말해서 양심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참부모 참스승 참주인의 위치에서 우리의 생을 지도하고 교육하는 하나님의 대신자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인도하고 감시하는 책임이 양심의 기능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심은 우리의 모든 언행은 물론 생각까지도 부모보다 먼저 알고, 스승보다 먼저 알고, 하나님보다도 먼저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삶을 지도하고 감시하는 본원적인 기능을 양심에게 전수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수정처럼 맑고 투명해야 할 인간의 양심에 타락성의 때가 끼어 지금까지 각종 죄악과 질병 속에서 본래의 기능을 다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탄 주관권의 이 사악한 세계에서 하루라도 빨리 해방-석방을 받고 싶어 울부짖고 있는 양심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평화신경, 평화메시지 15.277-278, 2007.07.04)

양심의 방향성과 목적의 내용에 있어서 무엇이 되느냐 하면 참사랑이 목적의 내용이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 방향, 양심의 뿌리의 방향과 목적이 무엇이냐 하면 변하지 않는 이런 사랑이 아니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216.311-312, 1991.04.15)

하나님의 사랑은 자기를 100퍼센트, 120퍼센트 투입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타락한 세상에 하나 남아 있는데, 그것이 아버지의 사랑도 아니라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그것이 불씨와 같이 남아 있습니다. 이 불씨가 남아 있기 때문에 잘만 피우면 다시 불을 붙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까지 없으면 구원도 불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본성의 씨가 남아 있기 때문에 구원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199.276-277, 1990.02.20)

2. 자기 양심과의 투쟁

종교 경전 


너는 평소에 스스로 성장하고 있음을 느끼지 못할 것이나, 네가 죄를 지을 때는 그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아칸족의 격언 (아프리카 전통종교)

선한 양심을 가지십시오.

베드로전서 3.16 (기독교)

마음은 이중적이다. 순수한가 하면 또한 불순하다. 욕망과 결합하면 불순하게 되며 욕망을 완전히 여의면 순수하다.

마이트리 우파니샤드 6.34 (힌두교)

나는 자책하는 영혼에 걸어 맹세하노라. 

꾸란75.2 (이슬람)

어떤 사람이 아무런 사랑스런 행동도 하지 않았고, 유익한 행동도 하지 않았으며, 심약한 사람들에게 안식처를 마련해 주지도 않았다. '나는 아무런 사랑스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그는 괴로워했다. '나는 악행을 저질렀다'는 생각에 그는 괴로워했다. 이 두 가지 생각은 양심을 마비시킨다.     이티붓타카 25 (불교)

깨끗한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합니다. 그러나 더럽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깨끗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도리어 그들의 생각과 양심까지도 다 더러워졌습니다.
디도서 1.15 (기독교)

몸에 응혈이 있어 그것이 좋은 상태를 유지하면 온 몸이 건강하고, 그것이 온전치 못하면 온 몸도 그와 같지 않느냐? 이것이 바로 마음이지 않느냐? 
알 나와위 하디스40선6 (이슬람)


--124--
하기야, 나는 육체에도 신뢰를 둘 만합니다… 다른 어떤 사람이 육체에 신뢰를 둘 만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합니다. 나는 난 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서도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 사람 가운데서도 히브리 사람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파 사람이요, 열성으로는 교회를 박해하였고, 율법의 의로는 흠잡을 데가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나에게 이로웠던 것은 무엇이든지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므로, 나는 그 밖에 모든 것은 해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고, 그것들을 오물로 여깁니다.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빌립보서 3.4-8 (기독교)

말씀 선집 

 
사람은 자기 생애의 인연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 자기의 마음을 앞에 모시고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륜의 철칙입니다. 마음의 명령에 복종치 않는 자는 하늘이 때립니다. (4.260, 1958.08.03)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 천법에 걸린다는 것입니다. (17.39, 1966.11.06)

탕자들은 죽어도 고향에 못 찾아갑니다. 양심이 그러합니다. 천국에 가는 것은 다른 누가 도와주지 않습니다. 자기가 가는 것입니다. 형님 앞에 잘못하면 형님 앞에 나서기 싫어집니다. 형님은 모르더라도 양심이 미안한 것입니다. 그러니 형님을 멀리 대해야 되고 그 앞에 굴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천지 이치가 질서를 따라서 돼 있습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둔해서 모르지, 예민한 사람은 다 아는 것입니다.  (400.328, 2003.01.11)

모든 인간은 저마다 자신 속에 가장 소중한 스승을 일생동안 내내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스승을 잘못 대우하고 짓밟고 남용합니다. 그 스승은 바로 인간의 양심입니다. 우리의 양심은 항상 우리 자신에도 도움이 되도록 말을 하며 우리를 참사랑과 연결시켜 주고자 합니다. 부모와 같이 우리의 양심은 우리로 하여금 선하고 비이기적인 사람이 되라고 촉구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동하도록 인도해 줍니다.
그러나 각자의 마음속에는 또한 양심의 소리에 항상 거역하는 반란자가 있습니다. 그 반란자는 바로 육체인 것입니다. 육체는 양심을 비참하게 짓밟고 남용해 왔습니다. 우리가 이를 깨닫게 될 때 우리는 자신의 양심의 적이었던 육체, 우리 자신의 생명과 인성을 크게 손상시킨 육체의 편을 들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양심은 항상 마음속의 스승이요, 부모로서 인류의 궁극적인 부모인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 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어야만 합니다. 이때 양심은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대신자가 되며, 나아가서는 '제2의 하나님' 이라고까지도 불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양심의 적인 육체에 대해 동정적이며 육체를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육체를 통제하고 역제하며 양심의 정당함을 입증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125--
육체는 육체적인 욕망만을 추구할 뿐입니다. 배가 고프면 훔쳐서라도 허기를 면하려고 합니다. 육체는 언제나 편안함을 추구하며 남을 이용하려고 합니다. 육체는 나름대로의 영역을 갖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각자 육체의 영역을 주관해야 하는 엄청난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201.208, 1990.04.09)

하나님은 지혜의 대왕이십니다. 인간이 완성에 이르는 길을 먼 곳에 두지 않았습니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곳, 가장 은밀하고 안전한 곳, 바로 여러분의 양심 속에 그 길을 준비해 놓은 것입니다. 여러분, 양심은 여러분의 주인입니다. 여러분의 스승입니다. 여러분의 부모 대신입니다. 양심은 여러분의 모든 것에 대해 누구보다도 먼저 압니다. 여러분의 생각까지도 속속들이 꿰뚫고 있는 것이 여러분의 양심입니다. 스승보다, 부모보다, 하나님보다 먼저 압니다.

이런 양심이 여러분을 위해 일생 동안 얼마나 많은 충고를 해줬습니까? 밤이나 낮이나 나쁜 생각만 해도, '네 이놈!' 하고 나무라면서 지치지도 않고 여러분을 끌고 강을 넘고 고개를 넘으려고 얼마나 수고했습니까? 양심은 언제나 참된 주인의 모습을 지니고 여러분을 보호하고 도우려 하는데도 번번이 배반한 여러분이 아닙니까? 우주로부터 점지 받은 하나밖에 없는 귀한 스승인 데도 불구하고 이 선생을 여지없이 천대한 여러분의 몸뚱이를 어찌하렵니까? 여러분의 본연적 사랑을 이어줄 수 있게 한 부모 대신 보내 준 양심을 무자비하게 유린한 육신만을 붙들고 그 육신의 욕망에 사로잡혀 한평생을 허송세월로 막을 내리겠습니까? (447.163-164, 2004.05.01)

여러분은, 나는 당당한 하나의 인격자인데 내 양심이 뭐가 잘못되었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여러분의 양심은 자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틀림없이 자고 있습니다. 양심은 누구의 제재나 지배받기를 원치 않습니다. 양심은 쉬지 않습니다. 아무리 캄캄한 밤중에도, 환한 곳에서나 호화찬란한 곳에서도 잘못되게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조금만 잘못하면, '야, 이놈아!' 하면서 몸을 치는 것이 양심입니다. 이러한 스승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여러분의 양심이 자고 있다고 말하는 이 젊은 사람의 말이 사실이냐 하는 것입니다. 자고 있는 양심을 깨웁시다. 하나니의 심정을 모르고 잠자고 있는 민족의 양심을 깨웁시다. 하나님의 심정을 모르고 잠자고 있는 세계 인류의 양심을 깨웁시다. 하늘땅을 품고 하나의 세계를 건설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종말세계를 향해 아니 가려야 아니 갈 수 없는 입장에 처한 인간들의 양심을 깨워 줍시다.

오늘날 우리들이 믿고 있는 종교가 세계 인류 전부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고 잠자고 있는 양심을 깨울 수 있는 종교가 되어 있습니까? 그런 내용을 갖춘 주의나 이념이 있습니까? 양심이 깨어 거기에 들어오는 그 충격, 그 결의, 그 각오는 세상만사를 일시에 밟아 치울 수 있는 힘으로 나타나야 됩니다. 칼이 무서운가, 죽음이 무서운가, 내 양심에서 일어나는 이것을 어느 누가 막을소냐? 아무도 못 막습니다. (10.284-285, 1960.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