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성전 (세계경전 - 제1부 하나님과 창조 - 제3장 인생의 목적)

훈독왕 | 20180314062309

세계경전 - 제1부 하나님과 창조 - 제3장 인생의 목적


하나님의 성전


인간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인간을 창조할 때,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에 사랑, 창조성, 영원의 갈구 등 신성한 품성을 부여하는 특별한 성령을 붙어넣었다. 하나님은 인간 속에 자신의 거처를 짓고자 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의 마음과 공명하여, 마치 하나님이 보는 것처럼 우리의 몸은 보고 듣고 움직인다. 보이지 않는 무형의 하나님을 대신하여 함께 움직임으로써 인간은 신성을 지니게 되고, 하나님은 그 사람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신성하게 할 수 있다.

힌두교나 여타의 동양 종교들에서 이러한 궁극적 실재의 내재를 참된 자아 또는 아트만이란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참된 자아를 모르고 살아가며, 전적으로 이기적인 동기로 삶을 영위한다. 문선명 선생에 의하면 우리는 인간 타락의 비극 때문에 더럽혀진 성전과 같다. 하나님의 영은 타락한 인간 속에 거할 수 없게 되었다.

원래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하나님의 유형적 몸이 되어 이 세계를 아름다운 에덴동산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오신 분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인격 속에 하나님을 드러낼 수 있었다. 하나님의 은총과 복귀를 위한 인간의 노력으로 우리 또한 하나님의 성전의 지위를 되찾을 수 있다. 

종교 경전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 속에 살고 계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고린도 전서 3.16 (기독교)

너희는 모든 사람이 자기의 가슴속에 거룩하신 분께서 거주하고 계시는 것으로 자의식을 갖도록 해 주어라.

탈무드, 타아니트 11b (유대교)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이제 사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20 (기독교)

하늘과 땅은 나를 담고 있지 않지만, 내 신실한 종의 심정은 나를 담고 있다.
수흐라와르디 하디스 (이슬람)

하나님께서 세상을 채우듯이 영이 육체를 채우니라. 하나님께서 볼 수 있으나 당신 자신은 보이지 않는 것처럼, 영은 볼 수 있으나 그 자체는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온 세상에 양식을 제공하듯이 영은 육체에 양식을 공급한다. 하나님께서 순수하신 것처럼 영 또한 순수하다. 하나님께서 (성전의) 지성소에 거주하듯이 영은 육체의 가장 깊은 곳에 머문다.
탈무드, 베라코트 10a (유대교)


--108--
내가 그를 사랑할 때, 나는 그가 듣는 청각이 되고, 그가 보는 시각이 되고, 그가 두드리는 손이 되고, 그가 걷는 다리가 되리라.

알 나와위 하디스 40선 38 (이슬람)

내가 인간에게 내 영혼을 불어넣었도다. 

꾸란 15.29 (이슬람)

주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창세기 2.7 (기독교)

가장 작은 것보다 작으며, 가장 큰 것보다 큰 자아[最高我]는 영원히 만유의 가슴속에 있다. 의식과 감각들이 청정해지고 갈애에 끌려 다니지 않을 때 자아의 영광을 보며 모든 슬픔으로부터 벗어나리라.
그는 앉아서도 아니 가는 곳이 없으며, 누워서도 못 이를 곳이 없나니, 마음이 청정한 이만이 장려한 그의 광채를 보리라. 환희 가운데서도 또한 이를 넘어 서 있는 그를.
그는 형색에 머물면서 형색을 여의었고, 살처럼 덧없이 흘러가는 것들 가운데 있으면서 움직이는 법이 없나니, 우주에 편안하며 지고한 이가 바로 자아라. 그를 진실로 아는 현자는 모든 슬픔을 벗어나 있다. 

카타 우파니샤드 1.2.20-22 (힌두교)

빛나지만 비밀스런 곳에 숨겨진 큰 자아[최고아]는 만유의 가슴속에 산다. 움직이고 숨쉬며 눈을 뜨고 있는 모든 것들이 그 안에 있다. 그는 사랑의 근원이니, 사량 분별로 알 수 있는 바가 아니며, 다만 사랑으로 알 수 있다. 그는 전 존재가 도달해야 할 구극의 경계이니, 이를 얻어라!
빛나는 그는 가슴속에 감추어져 있다. 우주의 크고 작은 일체만물이 그 속에 살고 있다. 그는 생명의 원천이며, 이 세간의 덧없음을 초월한 진리이다. 그는 전 존재가 도달해야 할 구극의 지경이니, 이를 얻어라!

문다카 우파니샤드 2.2.1-2 (힌두교)

부자들은 시바신께 사원을 지어 바치나니
가난한 사람,  나는 무엇을 할까?
오, 나의 주시여!
나의 두 다리는 기둥,
몸뚱아리는 성전,
나의 머리는 황금의 첨탑입니다.  
서 있는 사원은 이내 쓰러지리니
움직이는 나는 영원히 서 있을 것입니다.

바사반나, 바차나 820 (힌두교)

사람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있었으며 예지 곧 진리의 빛은 창조되거나 지음을 받지 아니 하였나니, 참으로 그러할 수 없느니라. 모든 진리는 하나님이 이를 놓아두신 범위 안에서 독립되어 있어 홀로 작용하나니 모든 예지도 그러하도다. 그렇지 아니하면 존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느니라.
보라, 사람의 자유의지가 있나니, 이것이 인간의 정죄를 받는 소이니라. 이는 태초부터 존재하던 것이 명백히 드러났으나 저들이 빛을 받아들이지 아니 하였음이니라. 빛을 받아들이지 아니한 영을 가진 사람은 모두 정죄를 받나니, 사람은 영인 까닭이니라. 원소는 영원하니라. 영과 원소는 떨어질 수 없게 결합되어 있어 충만한 기쁨을 누리느니라.
서로 분리될 때 사람은 충만한 기쁨을 누릴 수 없느니라. 원소는 하나님의 장막이니라. 참으로 인간은 하나님의 장막 곧 성전이니, 어떠한 성전이든지 더러우면 하나님께서 그 성전을 파멸시키느니라.  교리와 성약93.29-35 (예수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109-- 
 말씀 선집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마음과 같고 아담 해와는 보이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몸뚱이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본래 영계에 가게 되면 사람의 하나님은 아담 해와가 되게 됩니다. 영계에 가게 되면 체를 가진 부모의 자리에 선 그분이 아담 해와이기 때문에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몸과 같이 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아담의 마음과 같은 입장에 있는 하나님이 되기 때문에 내 마음에 하나님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큰 하나님이 나를 중심삼은 조그만 마음의 하나님으로서 마음에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작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107.127-173, 1980.04.27)

아내는 남편이 하나님의 몸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고린도 전서 3장 16절에서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했지요? 그러므로 여러분이 영적으로 깊이 들어가면 알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서 '하나님, 어디에 계십니까?' 하면, 하나님이 마음의 근원에서 대답합니다.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야 됩니다.  (362.190, 2001.12.12)

타락하기 전 아담 해와의 얼굴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주인이 없으면 모든 외적인 물건들은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때 아담 해와가 아무리 못났어도 그들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이 계셔서 그들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와 다른 점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분들의 얼굴은 순수한 하나님의 기쁨을 표상할 수 있는 얼굴임에 틀림없었을 것입니다. 또 그들은 눈으로 보는 것도 자기들의 눈을 통해 보는 것보다도 하나님을 대신해서 봤을 것이고, 그들이 듣는 것, 느끼는 것, 말하는 것 등의 모든 것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나타낼 수 있는 표시가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95.247, 1977.12.04)

아담과 해와가 타락한 그 날부터 하나님의 소망이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이 심정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이 거하실 수 있는 성전으로 완성한 사람, 하나님과 일치되는 심정과 심장을 가진 사람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3.298-299, 1958.01.26)

예수님의 마음과 몸은 무엇이었던가? 예수님의 마음은 자기의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누구의 마음이었느냐 하면 아버지의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몸은 자기의 몸이 아니라 아버지의 몸이었다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자기의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대신한 천리 법도요, 만 인간이 지니고 싶은 소망의 말씀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말씀을 통한 실체적인 하늘의 성전으로서 또는 실체적인 하나님의 보좌를 대신한 존재로서 이 땅 위에 나타났던 것입니다.  (3.264, 1958.01.120)

개성을 완성한 인간과 하나님 사이는 몸과 마음의 관계로 비유할 수 있다. 몸은 마음이 거하는 하나의 전(殿)으로서 마음이 명령하는 대로 행동한다. 이와 같이 개성을 완성한 인간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거하시게 되므로, 결국 그러한 인간은 하나님의 성전(聖殿)이 되어 하나님의 뜻대로만 생활하게 된다. 따라서 몸과 마음이 일체를 이루는 것과 같이, 개성을 완성한 인간은 하나님과 일체를 이루게 된다. 그러므로 고린도 전서 3장 16절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라고 하셨고, 요한복음 14장 20절에는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고 말씀하셨다. (원리강론, 인류역사종말론 1.1)

밥 먹는 것은 누구를 위해 먹습니까? 잠자는 것은 누구를 위해서 잡니까? 여러분이 베개를 베고 누울 때, '아! 하나님하고 같이 잔다' 이런 생각 해 봤습니까? '가슴을 휘어잡아 기분이 좋다. 하나님이 주무신다!" 이렇게 해봤습니까? 그리고 또 썩 일어나게 되면 내가 일어났다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이 일어났다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이 일어났다고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일어난 것입니다. (92.153, 1977.04.01)


--110--
사람 가운데 세계가 다 들어가 잘 수 있습니다. 하나님도 들어가 낮잠을 잘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마음 놓고 다리를 쭉 펴고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자유스럽습니까. 아무리 발로 차도 걸리는 게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데도 걸리는 데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같이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성전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고 더욱이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를 모실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125.101-102, 1983.03.13)

우리는 인간의 형상을 보기 바랍니다. 체(體)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무형의 하나님은 체가 없습니다. 체를 입지 않고는, 체를 갖지 않고는 영계나 지상세계를 치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의 부모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체를 입어야 할 텐데, 그 체를 입는 대표가 누구냐 하면 아담 해와라는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의 체를 입고 나타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아담 해와는 인류의 시조인 동시에 천지를 주재하는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실체를 가진 하나님, 즉 영원한 무형세계의 하나님의 형상을 대신 입고 나타난 자리, 부모의 자리에서 세계를 통치할 책임이 아담 해와에게 있었다는 것입니다.  (133.91-92, 1984.07.10)

하나님은 무형입니다. 영계에 가도 안 보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왜 그렇게 사랑을 중심삼고 만들었느냐 하면 이 피조세계는 체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체를 가진 아버지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체를 가진 아버지가 됨으로 말미암아 보이지 않는 무형과 유형이 하나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주가 하나 되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체를 입기 위해서 아담 해와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체를 입는 데는 무엇이 결정하느냐? 사랑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그런 체를 갖출 수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담의 모습과 해와의 모습이 하늘나라의 왕궁에, 왕좌에 오르게 되어 그 왕과 왕후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계셔서 지상세계와 무형세계를 통치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왕국을 만드는 것입니다. 왕국이 어떤 왕국입니까? 사랑의 왕국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만이 영과 육이 합하게 되어 있지, 다른 것 가지고 합할 수 없습니다. 
(143.93, 1986.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