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속성 3 (세계경전 - 제1부 하나님과 창조 - 제2장 진리와 우주 법칙)

訓讀王 | 20191213082713

세계경전 - 제1부 하나님과 창조 - 제2장 진리와 우주 법칙


이중속성


3. 주고 받음을 통해 나타난 이중 속성

종교경전

빗물이 땅에 떨어질 때마다 지구는 그 두 배의 수분을 올려 보낸다. 

창세기 랍바 13.13(유대교)

진실로 하늘과 땅의 창조, 그리고 밤과 낮의 구별은 이해하는 인간들에 대한 징표이니라. 
꾸란 3.190

주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이 얼마나 서로에게 빚지고 있는지 보아라. 낮은 밤에게, 밤은 낮에게 서로를 빚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인간들처럼 서로 고소하지 않는다. .... 달은 별들에게, 별들은 또 달에게 빚지고 있다. 하늘은 땅에게, 땅은 하늘에게, 모든 신의 창조물들은 서로에게 빚지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서로 재판하지 않고 평화를 유지한다. 그러나 인간은 친구에게 빌린 것을 오히려 강탈해 뺏으려고 한다. 

출애굽기 랍바 31.15(유대교)

해가 지면 달이 뜨고 달이 지면 해가 뜬다. 해와 달이 서로 교체하며 밝은 빛이 생긴다. 추위가 가면 더위가 오고 더위가 가면 추위가 온다. 추위와 더위가 서로 교체하여서 세월이 생긴다. 가는 것은 굽히는 것이요, 오는 것은 펴는 것이다. 굽히는 것과 펴는 것이 서로 교감하여 이로움이 생긴다. 인간 마음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인생의 평화가 생기면 인성이 계발된다. 
역경, 계사전 2.5.2-3(유교)

어려움과 쉬움은 서로 이루어지는 데서 있고,     
길고 짧음은 서로 비교하는 데서 있고,      
높고 낮음은 서로 기우는 데서 있고,      
음과 소리는 서로 조화하는 데서 있고, 
앞과 뒤는 서로 따르는 데서 있다. 

도덕경 2(도교)

무엇이나 다 정한 때가 있다. 하늘 아래서 벌어지는 무슨 일이나 다 때가 있다.     
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고 심을 때가 있으면 뽑을 때가 있다.     
죽일 때가 있으면 살릴 때가 있고, 허물 때가 있으면 세울 때가 있다.     
울 때가 있으면 웃을 때가 있고 애곡할 때가 있으면 춤출 때가 있다.     
연장을 쓸 때가 있으면 써서 안 될 때가 있고 서로 껴안을 때가 있으면 그만둘 때가 있다.      
모아들일 때가 있으면 없앨 때가 있고 건사할 때가 있으면 버릴 때가 있다.    
찢을 때가 있으면 기울 때가 있고 입을 열 때가 있으면 입을 다물 때가 있다.      
사랑할 때가 있으면, 미워할 때가 있고 싸움이 일어날 때가 있으면 평화를 누릴 때가 있다. 
전도서 3.1-8(기독교)

하늘과 땅의 음(陰)과 양(陽)의 두 기운이 얽히고 설켜 만물이 화하여 엉기고, 남녀가 정(精)을 맺음에 만물이 화생한다. 역(易)에 이르기를 “세 사람이 가면 한 사람을 덜고, 한 사람이 가면 그 벗을 얻는다”고 하였다. 

역경,계사전,2,4,13(유교)

하늘은 높고 낮으니 건(乾)과 곤(坤)이 정해지고, 낮은 것과 높은 것이 베풀어지니 귀함과 천함이 자리하고 , 움직임(動)과 고요함(靜)이 떳떳함이 있으니 강함(剛)과 유함(柔)이 판단되고, 방향으로써 동류를 모으고 사물로써 무리를 나누니 길함과 흉함이 생기고, 하늘에서는 형상(象)이 이루어지고 땅에서는 형체(形)가 이루어지니 변화가 나탄난다.

이러므로 강함과 유함이 서로 갈리며 팔괘(八卦)가 서로 섞여서 이것을 우레로써 고동하며, 이것을 바람과 비로써 적셔주며, 해와 달이 운행하며, 한 번 춥고 한 번 더워, 건의 도가 남성이 되고 곤의 도가 여성이 되었으니, 건은 큰 시작을 차지하고 곤은 물건을 만들어 완성한다.     
역경, 계사전,1,1,1-5(유교)

서른 개의 바퀴살이 한 바퀴에 꽂혀 있으나 바퀴의 한복판인 빈 곳, 즉 무에 바로 수레를 작용시키는 요인, 즉 유가 있다. 흙을 빚어서 기물을 만들지만 기물의 텅 빈 곳에 바로 기물의 쓸모가 있다. 문이나 창을 뚫어서 방을 만들지만 방의 공간이 바로 쓰이는 곳이다. 그런고로 유의 사물이 이롭게 쓰이는 까닭은 결국 공허한 무가 활용되기 때문이니라. 

도덕경 11(도교)

말씀선집


주고 받는데 있어서 차이가 하나도 없으면 어떻게 되느냐? 그것은 오래 간다는 것입니다. 돌 같은 것도 오래가는 돌이 어떤 것이냐? 완전히 주고받은 것은 오래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불순물이 끼어 있을 때 완전히 주고받지 못하기 때문에 그 차이가 크면 클수록 빨리 붕괴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의 천법이 무엇이냐? 존재의 법칙이 무엇이냐? 그것은 주고 받는 것입니다. 완전히 주고받아야 됩니다. 잘 주고 잘 받으면 오래 존재하는 것이지만 잘못 주고 받으면 붕괴되어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157,266,1967,04,10)

작용에는 반드시 두 작용체, 주체와 대상이 그 과정을 통하여 보다 플러스 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곳에서만 작용을 한다는 사실을 결론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용의 목적을 두고 보게 되면 이는 플러스(주체)보다도 크고 마이너스(대상)보다도 큰 제3의 존재, 결과적 존재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여기에 집회가 있다고 해서 왔는데 이곳에 온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그것은 올 때의 그 마음보다도 더 플러스 될 수 있는 좀 더 나을 수 있는 그 무엇을 찾아서 온 것입니다. 만일 여기에 와서 마이너스될 수 있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그러한 작용은 점점 없어지게 마련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현상세계에서 보이는 모든 작용은 자체를 감소시키기 위해서 작용하는 존재는 하나도 없다는 결론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56,134-135, 1972,05,14)

나 자신을 중심삼고 볼 때, 받고 싶습니까? 주고 싶습니까?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통일원리는 수수작용(授受作用)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수수작용에서 이 ‘수(授)’가 먼저입니까, 이 ‘수(受)’가 먼저 입니까? 주는 것이 먼저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줍니까, 자식이 부모를 위해서 줍니까? 부모가 주지요? 이것을 볼 때, 존재의 최초 기원이 되는 그분으로부터 주는 일이 시작되어서 작용이 연결되었다는 논리를 인정해야 됩니다.  (239,59, 1993,11,23)

세상의 모든 것은 돕니다. 운동을 안 하는 것이 없습니다. 움직이게 될 때, 어디서부터 시작했느냐? 여러분은 다 받기를 바랍니다. 돈을 끌어당기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옳은가 아닌가는 우주의 원칙에서부터 헤쳐 나가야 됩니다. 원칙이 그렇다면 하나님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기 시작할 때 받겠다고 당기는 힘을 가지고 창조했겠습니까? 주는 힘을 가지고 창조했겠습니까? 주는 힘입니다. 투입하는 힘입니다. (239,1992,11,25)

모든 것은 하나에서 많은 것으로 갈라져서 결국 하나의 큰 것으로 종합됩니다. 이렇게 발전하는 것입니다. 하나에서 여러 가지로 갈라졌다가 하나로 통합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또 갈라져서 보다 더 큰 것이 되는 것입니다. 더 큰 하나의 세계 가운데로 전부 들어간다는 얘기입니다. (26,189,1969,10,25)

이 우주에는 상대권이 있기 때문에, 우주가, 천운이 보호하기 때문에 플러스에 플러스가 오게 되면 반발하는 것이고, 또 마이너스에 마이너스가 오면 함께 반발하는 것입니다. .... 이 우주에는 화합력(和合力)과 배척력(排斥力)이 있는데, 상대되는 것은 화합하고 위반되는 것은 배척하는 것입니다. 우주의 천운은 자기를 손상시키려는 것으로부터 스스로 보호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칙적 논리가 부합되는 곳에서만 상대권이 형성되기 때문에, 여기에 다른 것이 올 때 상대권이 상처를 입게 되기 때문에 반발하는 것입니다. 반발하는 힘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우주는 화합과 동시에 반발하는 작용이 있다는 것입니다. 화합력과 반발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상반된 힘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함께 동반하여 마이너스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천운의 완성을 돕기 위한 작용을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작용에 대해서 반작용의 힘이 없다면 걸을 수도 없습니다.  (227,36,1992,02,10)

부인이 죽거나 남편이 죽으면 왜 슬픕니까? 자기의 남편이 죽었다고 왜 부인이 꼴사나운 모습을 하고 정신을 잃고 울고불고 합니까? 우는 정도가 아니라 나자빠져 버리는데, 왜 그렇게 되느냐는 것입니다.     
남자 여자의 상대권을 맺어서 사랑을 중심삼고 영원한 우주의 법권에 들어갔던 것이, 상대권이 흐트러짐으로 말미암아 피부가 빨개지도록 밀려오는 그 힘에 의하여 슬픔과 아픔을 느끼는 겁니다. 

친구 간에도 그 상대권이 없어졌을 경우에는 외롭습니다. 지식도 친구고, 돈도 친구고, 권력도 친구고, 다 친구라는 것입니다. 그 친구 사이에 있어서도 그러는데, 영원의 주류가 되는 사랑의 기준을 중심삼고 이루었던 상대권을 잃은 그 아픔은 우주를 바꾸더라도 사라지지 않을 아픔이라는 것입니다.    


그 원칙에 의해서 수억의 전기의 볼트가 플러스가 되는 데는 상대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플러스가 상대권이 성립되지 않게 될 때 깨지는 겁니다. 한번 플러스의 전기와 마이너스의 전기가 상대권을 만들었을 경우, 여기에 다른 플러스가 오게 되면 그 상대권은 파괴되는 것입니다. 우주 보호권을 침해하는 거와 같은 입장에 서기 때문에 플러스끼리 반발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상대 위치를 보호하기 위한 반발 작용이 제2의 보호 작용인 겁니다. 우주는 그러한 대응 반발이라는 힘에 의하여 균형을 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건 나쁜 힘이 아니라, 작용과 반작용의 평균에 의하여 균형을 잡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해서 오느냐? 시집가기 전의 여자들은 장난도 하고 다니면서 많은 여자들이 서로 껴안기도 하고 할 수 있습니다.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송아지들처럼 뒹굴면서 남자들끼리 마을을 시끄럽게 하면서 돌아다니기도 하고, 서로 뒹굴기도 하면서 하나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남자가 어느 날 결혼을 해서 여자가 왔을 경우에 자기보다 미남인 친구가 자기 옆에 서 가지고 자기 부인 앞에 나타나기를 바라겠느냐? 그걸 바랄 남자가 없습니다. 차 버리는 것입니다. ‘내일부터는 오지 마, 이 자식! 가!’ 하는 것입니다. 

이때, 가라고 하는 것은 나쁜게 아닙니다. ‘너도 나처럼 우주의 법을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서!’ 하고 차 버리는 것은 완성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 됩니다. 이것은 처음 듣는 논리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에 가더라도 플러스와 플러스일 때 상대권이 안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커지게 되면 주위 환경이, 저 사람이 중심에 서 가지고 상대권을 지배해 주지 않나 하고 바라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상대권에 서 있게 될 때 전체가 그렇게 되어가지고 하나의 관계를 중심삼고 상대 이상권을 만들자고 하게끔 되는 것입니다.  (218,335,1991,08,22)

이러한 것이 원칙이라고 하면 진화론은 성립이 안됩니다. 대상의 노정을 통한 아메바로부터 원숭이까지 몇 천,몇 만 번의 사랑의 문을 통한 수컷 암컷의 관계를 무시하게 되면 연결되지 않는 것입니다. 참새도 그렇습니다. 겨울에 상대 같은 것을 모르니 장난을 하고 제각기 다른 프러스가 되어 있지만, 봄이 되어서 집을 만들고 상대권을 만들었을 때에는 절대적입니다. 제3자 참새에 대해서는 수컷과 암컷이 함께 절대적으로 배척하는 것입니다. 암컷이 오게 되면 수컷이 배척하고 수컷이 오게 되면 암컷이 배척합니다. 자기 상대권을 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주 법권의 침략자가 되기 때문에 그걸 배척하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218,339.1991.08.22)

말하자면 변증법적 논거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상호 투쟁 개념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헤겔은 그렇게 본 것입니다. 이것을 해결 못하면 역사의 모든 이상세계나 상하관계의 구조적 조직을 가진 어떠한 조직체의 평화라든가 이상경이라는 것을 찾을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강자는 약자를 무시하고, 잡아먹으려고 하고, 천대하고, 아무렇게나 취급해도 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32,142,1984,05,31)

어떤 사람들은 우주가 힘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물론 모든 존재가 힘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힘이 존재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각각의 존재가 힘 자체는 아닙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상대적인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힘을 인정하기 전에 상대기준을 인정해야 합니다. 상대기준을 인정한다면 주체와 대상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주체란 때에 따라서 변화되는 존재여서는 안 됩니다. 목적을 결정하고 영원한 존재권을 만들 수 있는 존재가 아니면 안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인정할 수 있는 상대적 관계는 주체에 대해 상응할 수 있는 관계여야 하며, 상대적으로 반발하는 관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상대적 관계란 정이라는 기준에 반이라는 것이 서로 맞서서 그것이 하나로 통일된다고 하는 정반합의 관계가 아니라 주체 앞에 대상이 응하는 관계입니다. 즉 주체와 대상이 상응하여 공통의 목적을 중심으로 작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완전한 수수작용을 하여 상대권에 도달하면 힘이 나타나게 되고 그때 비로소 중심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작용하더라도 그것이 반대로 작용하게 되면 세계는 파괴되고 맙니다. (15,13,1965,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