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전 - 2부 죄와 구원 - 제8장 종교

훈독왕 | 20180119073838

세계경전


2부 죄와 구원


제8장 종교
  
종교의 목적
  
모든 종교에는 강조하는 부분은 각각 다소 다를지라도 어떤 공통 목적이 있다. 서양 종교에서 종교의 주된 목적은 구원에 있다. ‘religion(종교)’라는 어원은 하나님과 ‘다시 묶는다’는 의미로서 라틴어에서 유래한다. 인간은 타락으로 고장 났으므로 하나님이 고장 난 곳을 수리하고 근본적인 선으로 복귀시켜 하나님과 다시 관계를 맺게 하기 위한 방편으로 종교를 세웠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동양에서 종교(宗敎)의 의미는 한자에 나타난 뜻처럼 ‘근본적 가르침’으로 이해된다. 이것은 종교가 선한 품성과 덕성을 기르는 궁극적 가르침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문선명 선생은 종교의 두 가지 의미, 즉 타락한 인간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궁극적으로 덕성을 기를 수 없으며, 하나님께 다시 묶일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는 종교의 타당성 측면에서 두 가지 종교로 구별한다. 첫째, 원죄를 청산하고 하나님과 완전한 관계를 회복시켜줄 메시아를 영접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섭리적인 종교(유대교, 기독교)와, 둘째, 덕행의 수련을 주요 목적으로 삼는 일반적 종교가 그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러한 두 가지 종교의 토대 위에 정착될 수 있을 것이다. 
  
종교는 공동체를 기르는 사회적 목적도 지닌다. 종교는 사람들이 평화와 조화 속에 살 수 있도록 사랑의 방법과 화해에 대해서 가르친다. 이를 확대하면 종교의 궁극적 목적은 평화세계를 구현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모든 인류의 부모이기에 종교는 하나님께 우리를 인도하여 부모의 사랑을 중심한 보편적 형제애와 자매애를 느낄 수 있게 한다.
 


1. 구원의 길을 제시하는 종교
    
종교경전 
  
“두 분 선생님,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그들이 말하였다. “주 예수를 믿으십시오. 그러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16:30-31(기독교)
  
그대의 온 존재로써 오직 주만을 귀의처로 삼아라, 오, 바라타의 자손이여, 그의 은총으로 인하여, 그 대는 지고의 평안, 영원한 처소에 이를 것이다.
바가바드기타 18:62(힌두교)
   
진실로 하나님의(진정한)종교는 이슬람(복종)이니라, 이전에 성서를 받은 자들은……. 만일 그들이 너(무함마드)와 논쟁을 한다면 “나는 하나님께 복종하며 또한 나를 따르는 자들도 그러하니라. 라고 말하라. 꾸란 3.19-20(이슬람)
  
두려움에 쫓긴 사람들은 산과 숲 또는 사당으로 들어가 의지할 곳을 찾는다. 그러나 그곳은 안전하게 의지할 곳도, 가장 좋은 곧도 아니다. 그와 같은 의지 처를 찾은 후에도 온갖 고통에서 벗어 날 수는 없다.
붓다(스승)와 담마(가르침)와 승단에 의지할 곳을 찾은 사람은 바른 지혜를 가지고 네 가지 거룩한 진리를 본다. 괴로움과 괴로움이 일어난 원인과 괴로움을 없애는 것과 괴로움의 지멸에 이르는 여덟 가지 바른 길이 있다. 실로 이것만이 안전한 의지 처이며, 이와 같은 의지 처를 얻은 후에야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리라. 법구경 188-192 (불교)
  
실로 여기 두 길이 있으니 하나의 이득을 얻는 길이요, 다른 하나는 열반에 이르는 길이다. 비구여, 이것을 깨달아 세속의 이득을 즐거워하지 말며, 집착에서 벗어나는 길을 가라.
법구경 75 (불교)
  
말씀 선집 
  
우리 사회에 도덕관념이라든가 종교생활이라든가 도의적인 관념이라는 것이 왜 있어야 되고, 왜 그런 길을 가야 되느냐 하면 우리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다시 본연에 갖다 맞추기 위해서입니다. (205.8, 1990.07.15)
  
인간의 본심이 아무리 선을 지향하여 노력한다고 하여도, 이미 악주권 아래 놓여진 이 세계에서는 그 선의 실상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인간은 시공을 초월한 세계에서 그 선의 주체를 찾으려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니, 이러한 필연적인 요구에 의하여 탄생된 것이 바로 종교인 것이다. 이와 같이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모르게 된 인간은, 종교를 세워 끊임없이 선을 찾아 나아감으로써 하나님을 만나려고 한 것이었기 때문에, 설혹 종교를 받들고 있었던 개인이나 민족이나 국가는 망하였다 할지라도, 종교 그 자체만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 남아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원리강론, 인류역사종말론 2.3)
  
결국은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이렇게 됐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타락한 아들딸을 보고 부모 되시는 하나님은 그냥 가만히 계실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 고장 난 라디오 같이 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고치기 위해서는 수리공장을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인류역사 과정에서 인간을 구하기 위한 수리 공장을 만드신 흔적이 있으면 하나님이 없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수리 공장이 뭐냐 하면 종교인 것입니다. 종교는 문화와 역사적 배경이 다르고 종족과 씨족관계의 차이에 따른 것을 전 세계적으로 규합해서, 눈 만들고 코 만들고 손 만들고 발 만드는 공장을 점점 넓혀 나가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몰아 들어와야 되는 것입니다. (54.102, 1972.03.20)
  
하나님이 힘을 가지고 한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이 금방 전 인류를 구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게는 어떤 종교도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에게 종교가 필요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자연굴복을 시키려고 하는 거기에 저절로 머리를 숙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센터가 되어 모든 것을 치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작전입니다. 
(207.21, 1990.10.21)
  
종교를 믿는 것은 본래의 아버지와 본연의 나라를 다시 찾기 위한 것입니다. 종교라는 말은 사람만을 위주로 한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 즉 신을 모체로 한 으뜸 되는 가르침이 종교입니다. 신과 더불어 관계를 맺고 신의에 따라서 사는 방식을 익혀가는 과정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천의를 받들어야 되고 천정을 소개해야 합니다. 참된 종교는 막연한 신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고 신에 대한 인식을 확실하고 강하게 심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과 타협하는 종교는 고차적인 종교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종교는 결국 쇠퇴하고 맙니다. 참된 종교는 사람이 신을 바로 찾아서 신인이 일체를 이루는 본연의 세계로 돌아가자고 가르쳐야 합니다. 종교를 믿는 것은 죄 없는 세계, 하나님과 본연의 관계를 맺는 이상세계를 찾아가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찾고자 하는 것은 종교계가 아니라 이상세계입니다. 종교의 목적은 종교 자체의 뜻을 통한 세계를 말합니다. 여기서 문제되는 것이 창조이상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했으므로 창조이상을 규명하는 일을 매우 중요합니다. (404.299-300, 2003.02.06)
  
여기에는 어떤 교단도, 어떤 모임도, 어떤 교파도 문제가 아닌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께서 알아줄 수 있는 내적인 심정, 아버지 마음을 체휼할 수 있는 간절한 심정을 갖고 나가는 것이 진리의 요체요, 진리의 전부라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4.236, 1958.05.18)
   


2. 착한 성품을 기르는 종교
   
종교 경전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깨끗하고 흠이 없는 경건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보아 주고,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27 (기독교)
  
자신을 하나님에게 복종시키고 선을 행하는 자는 주님으로부터 보상이 있으며 아무런 두려움도 슬픔도 갖지 아니하리라. 꾸란 2.112 (이슬람)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나타났습니다. 그 은총은 우리를 교육하여, 불경건함과 속된 정욕을 버리고, 지금 이 세상에서 신중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게 합니다. 또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복된 소망을 갖게 합니다. 곧 위대하신 하나님과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게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모든 불법에서 속량하시고 깨끗하게 하셔서,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당신의 백성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디도서 2.11-14 (기독교)
       
자비의 모스크, 진실의 기도 매트를, 정직의 꾸란을 만들고 정당한 부를 일구라. 
겸손이 그대의 할례가 되게 하고 바른 행위가 그대의 라마단 단신이 되게 하라.
이로써 그대는 참된 무슬림이 되리라. 선행이 그대의 카아바가 되게 하고,
진리가 그대의 스승이 되게 하며 고결한 덕행을 그대의 칼리마로,
매일 매일의 나마즈로 삼으라. 신을 즐겁게 하는 일로 그대의 염주 되게 하라
마지막 심판의 날에 영광 있으리라. 아디 그란트, 바르마즈, M.1, p.140 (시크교)
   
인생에서 가장 피해야할 것은 동요(우유부단)함과 경솔함이다. 가장 귀중한 것은 경건한 마음이다. 그러므로 우리 유가는 마음의 성실함을 보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며 경건함을 가장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성실함과 경건함은 우리를 천지와 신과 영혼의 짝으로 만들어주는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그들의 인도자로서 불교를 채택한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부처 앞에 절하고 부처의 경전을 암송하며, 항상 경건함과 외경심을 보존하면서 노력을 기울인다. 그들은 결코 마음 너머로 주의 깊게 지키는 경계를 풀어놓지 않을 것이며, 차차로 순수해지고 밝아질 것이고, 악한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선함을 행할 준비가 될 것이다. 이 깨달음은 그들의 가장 행복한 땅이라고 불린다. 그 때 필수적인 것은 불교인들이 너를 믿을 수 없게 만드는 동요(우유부단)함과 경솔함을 유교인들 만큼 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건함과 외경심에 의해 절제된 마음을 항상 유지하라. 그렇지 않다면 불교경전의 암송이나 유가의 담론을 무엇에 쓰겠는가? 음즐문 (도교)
  
말씀 선집 
  
종교(宗敎)라는 글자는 이처럼 이상한 글자인데, 이런 글자는 처음 보지요? 그 뜻이 무엇이냐 하면, 집으로 말하면 마루 되는 가르침이 종교라는 것입니다. (92.309, 1977.04.24)
   
교회는 무엇을 하는 곳이냐? 인격을 형성하고 인격을 기르는 곳입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교회가 필요한 것입니다. 가정과 사회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인격을 복귀하는 데는 그냥 그대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대학을 나와서 무슨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해서 그것으로 인격이 복귀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교회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25.126, 1969.09.30)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오늘날 사랑은 근본적으로 자기중심적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러한 자기중심적인 사랑은 정신에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육체를 중심한 것입니다. 육체는 사탄이 활동하는 곳입니다. 육체는 사탄의 무도장이요, 사탄의 정박지입니다. 정신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 즉 주체의 위치가 됩니다. 그러나 정신의 대상 위치에 있어야만 하는 육체는 또 하나의 주체가 되려고 노력하며 계속해서 정신을 유혹하고 속이고 있습니다. 인간의 삶에서 이러한 관계를 수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을 탕감복귀 시키고자 종교를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종교를 통해 하나님을 중심한 정신을 강화시키는 방법, 삶과 인격에 대한 육체의 지배를 역전시키는 방법, 삶과 인격에 대한 육체의 지배를 역전시키는 방법을 사람들에게 가르치시고 계십니다. 종교가 종종 단식, 희생적인 봉사, 온순하고 겸손한 태도 등을 요구하는 까닭은 바로 이런 데서 연유합니다. 이는 육체의 세력을 감소시키고 육체로 하여금 정신에게 복종토록 하는 방법들입니다. 신앙생활을 통해 육체를 중심한 생활습관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신을 중심한 생활방식을 만들어 내기까지는 통상 3년 내지 5년이 걸립니다.
  
더욱이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성경말씀이 있습니다. 이 역시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사탄은 타락한 세계를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하루 24시간 모든 방향에서 타락한 인간을 유혹하고 괴롭힙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오로지 한 방향에서, 즉 정신의 수직적인 방향에서만 힘을 미치실 수 있습니다. (201.208-209, 1990.04.09)
  
물에 빠진 사람을 구했다는 것은 빠지기 전 상태로 돌이키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사랑이상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이상하였던 그 뜻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인간 자체에게는 종교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사랑의 이상을 찾아가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종교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112.298, 1981.04.25)
  
그곳이 우리 인간이 찾아가야 할 본향입니다. 오늘 우리는 타락한 인생으로서 본향에서 추방당한 인간이 되었기 때문에 본향 땅을 향하여, 본향을 향하여 돌아가야 할 운명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은 인간 자체로서는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이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역사 과정에 설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민족의 문화 배경, 풍습, 혹은 전통이 다름에 따라서 수많은 종교를 세워 사방으로 수습하기 위한 훈련장을 만든 것이 수많은 종교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니 종교는 본향 땅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자격자를 연마시키는 훈련 장소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동서사방의 문화 배경 등의 차이에 따라 하나님은 비준(比準)을 찾아 세우면서 높은 데로 전진할 수 있는 하나의 통일된 종교세계로 이끌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여기서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본향의 땅으로 갈 수 잇도록 지도해야 할 종교이기 때문에 종교는 무엇을 가르쳐 주느냐? 위하여 살라는 것을 가르쳐 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고차적인 종교일수록 위하여 살아야 된다는 원칙을 강조해야 되겠기 때문에 온유겸손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 뭇사람을 높이고 그들을 위하는 자리에 서라는 것입니다. 희생 봉사하라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나라의 법도에 맞을 수 있는 사람을 훈련해야 되겠기 때문입니다. 
(78.117-118, 1975.05.06)
    


3. 우주적 공동체를 촉진하는 종교
   
종교 경전 
  
유대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차별이 없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다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3.28 (기독교)
   
믿는 자들은 형제들이니라. 그러므로 너희들의 두 형제 사이를 화해시키고 하나님을 경외하라. 그러면 너희들에게 하나님의 자비가 있을 것이니라. 꾸란 49.10 (이슬람)
  
이스라엘은 모두가 한 형제 의식으로 연결될 때 비로소 하늘과 만날 수 있다. 
탈무드, 메나모트 27a (유대교)
   
이다지도 좋을까, 이렇게 즐거울까! 형제들 모두 모여 한데 사는 일!
아론의 머리에서 수염 타고 흐르는, 옷깃으로 흘러내리는 향긋한 기름 같구나.
헤르몬 산에서 시온 산줄기를 타고 굽이굽이 내리는 이슬 같구나.
그곳은 여호와께서 복을 내린 곳, 그 복은 영생이로다. 시편 133 (기독교)
  
승단의 화합도 즐겁고 화합한 사람들의 수행도 즐겁다. 법구경 194 (불교)
  
말씀선집 
  
오늘날까지 인류역사를 회고해 볼 때, 어떠한 문명도 그 근본지주는 정신입니다. 시대 시대를 넘고 세기 세기를 지나면서 역사 속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연면히 이어 나오는 정신적인 자주의 입장에 있는 것이 종교라는 것입니다. 어떠한 주의나 사랑이 아닙니다. 불교를 보십시오. 유교를 보십시오. 기독교를 보십시오. 이들은 모두 시대를 변해도 그 창설자의 정신을 이어받아, 변하지 않고 끝날 에 이룰 목적세계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9.277, 1960.06.12)
  
하나님은 사랑과 진리를 인간들에게 전해서 인간을 구제하려고 종교를 세웠습니다. 일정한 때와 지역에 따라서 여러 가지 종교를 세웠습니다. 예컨대 2,400년 전에 인도에 불교를 세웠고, 중국에 유교를 세웠으며, 2천 년 전에 유대에 기독교를 세웠습니다. 
  
따라서 절대적 가치관은 하나님을 신봉하는 종교를 통해서만 세워질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되게 됩니다. 즉, 종교를 기반으로 하지 않은 사람의 사상이나 철학에서는 오늘날의 혼란을 수습할 수 있는 방안은 세워지기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을 다시 바꾸어 말하면, 인류를 혼란에서 구출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을 중심한 종교로써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역사를 돌이켜볼 때, 사실 유교, 불교, 기독교, 회회교 등은 각각 일정한 시대와 일정한 지역에서 사회적 불안과 혼란을 일소하고 평화와 안전의 터 우에 찬란한 문화를 꽃피게 하였던 것입니다. (122.300, 1982,11,26)
    
종교 중의 참된 종교는 어떤 종교냐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부자의 관계를 맺게 하고, 더 나아가서 형제의 관계를 맺게 하고, 하나님을 중심삼고 형제의 가정을 이루려는 그러한 진리의 내용을 갖춘 종교입니다. 그러한 종교가 하나님이 세우신 위대한 종교요, 인간이 주장하는 최고의 종교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91.225, 1977.02.20)
   
저 나라에 가면 다른 사람끼리는 같이 못 있지만, 모든 종교권은 같이 머물 수 있는 것입니다. 종교권은 하나의 세계를 바라 나오고 하나의 신을 믿고 나오기 때문에 같이 머물 수 있는 것입니다.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과 다른 것이 뭐냐 하면, 그들은 일생 동안 영계를 표준하고 생활한다는 점입니다. 종교라는 것은 영원한 세계, 초연한 세계의 내용을 중심삼고 하나님이면 하나님이 계신 곳과 하나님이 사시는 곳을 중심삼고 우리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297.271, 1998.12.19)
  
그들은 비록 피부 색깔이 다르고 생활환경도 다르지만 뜻을 대해서는 한 핏줄로 인연된 형제이오니, 그들이 모이는 곳곳마다 당신이 같이하여 주시옵고 은사의 불길로 품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10.150, 1960.09.25)
  
전 종교의 궁극적 목적은 신의 뜻인 평화이상세계를 이루는 것, 오직 그것입니다. 종교는 종단 안의 자체구원이나 개인구원을 생각하기 전에 세계구원이라는 신의 뜻을 염려해야 합니다. (135.221, 1985.11.16)
  

  
진리에 이르는 다양한 길
   
다양한 경전들을 보면 종교들이 진리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지만 믿음을 공유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든 참된 종교들은 동일한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 꾸란은 유대교와 같은 하나님을 섬기고, 기독교인은 무함마드의 ‘알라’와 같은 하나님을 섬기는 성서를 따르는 사람들임을 자인하고 있다. 시크교의 경전은 무슬림과 힌두교도가 동일한 신을 섬기고 있음을 확인한다. 신도의 경전은 신도의 최고신은 본질적으로 부처와 동일하다고 기술하고 있다. 
  
나아가 여러 경전들은 개별 종교는 동일한 최고 목표에 이르는 하나의 길임을 확인한다. 이것은 마치 많은 강들이 큰 바다로 흘러드는 것과 같으며, 정상에 이르는 많은 등산로가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세계의 종교들은 다양한 문화의 추구, 습관, 환경에 따라 인간성을 고양시키고, 그들의 길이 각각 달리 시작되었지만 더욱 가까워지면서 최후의 한 길로 융합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문선명 선생은 하나님이 위대한 종교의 창시자들에게 그들이 살던 시대와 문화에 적합한 메시지를 주어 그들을 불러 세웠다고 말한다. 문선명 선생의 가르침에 의하면 위대한 종교 창시자들은 인류가 궁극적 목적을 향해 전진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섭리적인 경륜에 따라 이 지상에 보내진 참된 인도자였다는 것이다.
  
확실히 모든 종교는 자기의 길이 최고요 최상이라고 생각한다. 성서에서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에게로 올 자가 없다.”고 말한다. 꾸란은 이전의 계시에 대한 정확하고 유일한 증언이 바로 꾸란이며, 유대교의 율법과 기독교의 복음은 부패와 가필로 얼룩져 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더 높은 하나님의 지혜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의 비유에서 보듯이 각 종교의 길은 전체를 보지 못한 채 진리를 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선명 선생은 인간의 영적 발전 과정에서 각각 다른 시대에 여러 종교가 나타났기 때문에 종교마다 수준이 다르다고 본다. 그러나 종교 사이의 차이 때문에 각 종교가 공통으로 갖고 있는 핵심 진리가 가려져서는 안 된다. 종교인들은 종교의 차이를 관대하게 인정하고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1.동일한 신을 숭배하고 그분의 위대한 뜻을 섬기는 모든 종교
  
종교 경전 
  
힌두와 무슬림은 같은 한 신을 섬기나니, 일개 회교율법학자나 교주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아디 그란트, 바이론, p.1158 (시크교)
  
나의 이름은 해 뜨는 데서 해 지는 데까지 뭇 민족 사이에 크게 떨쳐, 사람들은 내 이름을 부르며 향기롭게 제물을 살라 바치고 깨끗한 곡식 예물을 바치고 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한다. 내 이름은 뭇 민족 사이에 크게 떨치고 있다. 말라기 1.11 (기독교)
  
믿음과 신애로써 다른 신들을 숭배하는 사람들 또한 오, 아르주나여, 정식은 아니지만 또한 나를 숭배하는 것이다. 나는 모든 숭배의 대상이며 그것의 향수자요 주이다.
바가바드기타 9.23-24 (힌두교)
   
하나님은 인도와 광명이 담긴 모세오경(구약)을 내렸노라. 랍비와 사제들이 하였듯이 하나님에게 귀의한 예언자들이 그것으로 유대인을 재판하나니 그것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성전을 보존하도록 위탁되었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인간을 두려워 하지 말고 나를 경외하라. 그리고 나의 말씀을 싼값에 팔지 말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리신 것으로 심판하지 않는 자들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니라…….하나님은 마리아의 아들 예수를 보내어 이전에 내린 모세오경을 확증하기 위해 그들의 발자취를 따르게 하였으며, 또한 하나님은 그에게 인도와 광명을 담은 성경(신약)을 주었노라. 그것은 이전에 내린 모세오경을 확증하는 것이며, 경외하는 자들을 위하여 인도와 훈계를 주기 위함이니라. 그러므로 성경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내리신 것으로 재판하여야 하노라. 하나님께서 내리신 것으로 재판하지 않는 자들은 그들이 곧 거역하는 자이니라.
  
하나님은 이전에 내린 성서를 확증하고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 진리의 성서(꾸란)를 그대(무함마드)에게 내렸노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내리신 것으로 그들을 재판하라. 너에게 내린 진리를 떠나서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따라서는 아니 되노라. 하나님은 너희들 각자를 위해 법과 길을 만들었노라. 만일 하나님께서 원하셨다면 하나의 움마(공동체)로 만드셨을 것이나, 하나님께서는 너희에게 주신 것으로 너희를 시험코자 하시노라. 그러므로 너희는 선한 일에 서로 경쟁하라. 너희 모두는 하나님에게 귀의할지니 그때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달리 사용했던 것에 대하여 밝혀주시리라. 꾸란 5.44-48 (이슬람)
       
여기는 신들의 땅이다. 백성들은 그들을 존경해야 한다. 본질적으로 나(아마테라스)는 비로자나불이다. 나의 백성들은 이것을 알고, 붓다들의 법에 귀의해야 한다.
쇼무천황에게 내린 아마테라스의 계시 (신도)
   
세상의 어느 백성들, 인종이나 종교를 불문하고, 그들이 하나의 하늘의 근원에서 그들의 영감을 받았고 그들이 하나의 신의 백성이라는 것은 틀림없다. 그들이 따르고 지키는 율령의 차이는 그들이 계시 받은 시대의 다양한 요구와 긴급한 사정에 기인하는 것이다. 인간의 고집의 결과인 것을 제외한 모든 율령은 하나의 신에 의해 제정되었고 하나의 신의 의지와 목적의 방영이다. 바하올라 저서들의 낙수집 11 (바하이교)
  
각기 다른 곳에서 흘러오는 모든 강들이 바다에서 그 물을 섞듯이, 오, 주여, 다양한 성향들을 통하여 사람들이 택하는 다양한 길들이 설사 겉으로는 다르게 보일지라도, 굽은 길로 보이거나 곧은길로 보일지라도 모두 당신에게로 통합니다. 범어 찬가 (힌두교)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나에게 나아오든지, 그와 똑같이 나는 그들의 열망을 들어주고 그들에게 은총을 베푼다. 모든 면에서 사람들은 나의 길을 따른다. 바가바드기타 4.11 (힌두교)
   
진실로 믿음을 가진 신앙자들, 유대인들, 사비 사람들, 그리고 기독교인들 중 누구든 하나님과 최후의 날을 믿고 선을 행하는 자들은 그들에게 두려움이 없을 것이며 슬픔도 없을 것이리라. 꾸란 5.69 (이슬람)
  
앞으로 올 세상에 속한 이교도 중에서도 의인은 있도다. 토세프타 산헤드린 13.2 (유대교)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였다. “나는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가리지 않는 분이시고, 그분을 두려워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어느 민족에 속해 있든지, 다 받아 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도행전 10.34-35 (기독교)
  
우리는 ‘기독교인들이오’ 라고 하는 자들은 믿는 자들에 대한 사랑에 가장 가까이 있는 자들이니라. 그것은 그둘 중에 사제와 수도사들이 있으며, 또한 그들이 자만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그들이 예언자에게 내려진 것(계시)을 들었을 때 진리를 깨달은 것으로 인해 그들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을 너희는 보게 되리라. 그들이 말하기를 주여 저희가 믿사오니 저희를 증언자로서 기록하여 주시옵소서. 꾸란 5.82-83 (이슬람)
  
말씀 선집 
  
종교에서 믿는 신은 그 이름이 여러 가지이며 그 표현이 다르지만, 그 종교에서 신봉하는 중심존재는 하나의 신에 귀일되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140.11, 1986.02.01)
  
그러면 여러분도 다 알고 있는 4대성인은 어떠한 사람들이냐? 종주(宗主)들이었습니다. 종교를 중심삼은 교주들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보면, 예수님도 그런 사람이고, 석가세존도 그런 사람이고, 공자님도 그런 사람이고, 무함마드도 그런 사람입니다.
  
어찌하여 이런 사람들이 인류의 길잡이 꾼으로서 추앙의 대상이 됐느냐? ‘그 사람의 말을 절대 믿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의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길잡이 꾼이기 때문입니다. 정상을 향해 전진하는 거기에 있어서 단 하나의 길잡이 꾼, 그는 어떠한 종파를 책임지고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것입니다. 제1봉에서부터 최고의 봉까지 있을 때 제1봉에 올라갔으면, 또 다른 길과 연결시킵니다. 이렇게 창원을 달리해 나가면서 최고의 정상을 향하여 전진해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동쪽 편의 한 길만 가지 않습니다. 그러면 서쪽에 있는 사람은 돌아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와 같은 입장에서 동양의 종교라든가, 서양의 종교라든가, 남방의 종교라든가, 북방의 종교 등, 세계적인 지역을 생각해서 이런 종교를 세우고 이렇게 주류의 상봉을 향해 올라가는 방향을 가리면서, 그 사이에 있는 수많은 민족을 흡수하여 통일의 세계로 진전해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81.181-182, 1975.12.28)
  
하나님이 없다면 우리 통일교회가 필요 없습니다. 4대 성인이 전부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람들인데 성인들의 꼭대기가 무엇입니까? 성인 자체입니까, 하나님입니까? 하나님입니다. 예수님도 성인이지만 그 위는 하나님이요, 석가모니도 무함마드도 공자도 그 위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성인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빼 놓으면 성인이란 말을 가진 사람이 없습니다. 성인 자체가, 성인이 가르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 성인들이 주장한 것이 무엇입니까? 좋은 세계 만들자고 그랬습니까, 싸우는 세계 만들자고 그랬습니까?
  
행복이니 정의니 선이니 하는 것을 중심삼고 보다 세계적으로 확대시키겠다고 주장한 무리들이 성인이라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그것을 천년만년 계속하자고 주장한 사람이 성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몇 천 년 전 성인들의 가르침을 지금도 따라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130.146-147, 1984.01.08)
  
오늘날 이 땅 위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인류가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을 수습하려니 자연히 각 민족에 따른 종교가 필요합니다. 각자 역사와 환경, 문화의 배경과 풍속, 습관이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여러 형태를 하나의 목적으로 수습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종파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강을 보면, 상류에는 수많은 지류가 있습니다. 이 수많은 지류가 내려가면 내려 갈수록 서로 합하여지면서 그 수가 점점 줄어들어서 결국 하나의 강이 되어 대해에 들어갑니다. 마찬가지로 수많은 종교도 하나의 줄기로 합해지면서 최후에는 하나님을 심중에 모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는 곳에 하난가 되어 머무르게 되는 것입니다. (23.127, 1969.05.18)
  
종교라는 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를 찾아가기 위한 훈련 도장입니다. 거기서 한 단계 한 단계 높여 가지고 본연의 자리까지 끌어가는 사명을 분담 받은 것이 세계적 종교들이라는 것입니다. (87.177, 1976.06.02)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선을 위주로 한 세계가 아니라 악주권 내의 지배를 받는 타락한 세계이기 때문에, 이 세계에는 하나님과 선한 신과 관계를 맺을 수 없게끔 장애가 가로놓여 있는 것입니다.
  
이 장애를 헤치는 데 있어서 인간이 중간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으므로 선한 신은 악한 세계를 선한 세계로 만들기 위한 운동을 역사 과정을 통하여 지금까지 ‘쭈욱’ 종교의 배경을 중심삼고 세계적으로 발전시켜 나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세계는 민족 문화의 배경이 다르고 습관과 풍습이 다르지만 거기에 맞는 종교의 판도를 넓혀 나와 지역적인 판도에서부터 세계적인 판도로 종교 형성을 해 나왔던 것입니다.
  
지금 이 세계에는 4대 종교문화권이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문화권, 회회교문화권, 인도교문화권, 극동 유불선 삼도를 중심삼은 문화권이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종교 판도로 하여금 오늘날 악한 세계에 있는 사람들을 선한 세계 사람을 전환시키기 위한 일을 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이 있다면 신에게도 소원이 있을 텐데 그 신의 소원이 무엇이냐? 종교를 중심삼고 여러 종교 자체로 남아질 것이 아니라, 필시 하나의 종교 형태를 세계적인 무대에 전개시키고 싶은 것이 신의 뜻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건 누구나 생각하는 것입니다. 생각뿐만 아니라 신 자체에게 우리가 물어 본다 해도 이 세계에 신의 참 뜻을 대신한 하나의 종교가 있어야만 된다는 대답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113.313, 1981.05.10)
  
아버지, 저희 한 몸이 당시의 손길을 거치지 않은 자가 없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어떤 나라든지 당신의 소원 가운데서 지금까지 이끌림을 받지 않은 나라가 없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만민을 당신이 이상하셨던 본연의 세계로 이끌기 위해 국경을 넘고 넘으면서 현 시점까지 아버지께서 지도하고 있는 것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76.86-87,1975.02.01)
  
     
2. 개별적 차이 배후의 보편적인 것
  
종교 경전 
  
그 때 한 무리의 제자들이 세존께로 다가가 말했다. “스승이시여, 여기 사밧티 거리에는 끊임없이 논쟁하기를 즐겨하는 온갖 유행 자들과 논사들이 살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말하기를, 세계는 영원하고 무한한 것이라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세계란 유한하며 영원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어떤 이들은 육신의 죽음과 함께 영혼도 소멸한다고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육신이 멸한 후에도 영혼은 영원히 존재한다고 하는 등등의 말을 합니다. 스승이시여, 그들에 대하여 당신은 무엇이라 할런지요?
세존께서 답하셨다. “옛날 어떤 왕이 있었는데, 하루는 신하에게 명하였다. ‘여봐라! 가서 사밧티에 살고 있는 모든 소경들을 한 곳에 불러 모아라!...그리고 그들에게 코끼리를 보여주도록 하라!’ ‘예, 폐하!’ 하고 신하가 대답하였다. 그리고 그는 왕이 명한 대로 행하였다. 신하가 그곳에 모인 소경들에게 ‘여기 코끼리가 있다’고 말하며 어떤 소경에게는 코끼리의 머리를 만지게 하고, 어떤 소경에게는 발을, 또 어떤 소경에게는 등을 만지게 하였으며, 어떤 소경에게는 꼬리를, 또는 어떤 소경에게는 꼬리 끝을 만져보게 하였다.”
“소경들이 코끼리의 각 부위를 더듬어보기를 다하였을 때, 왕이 그들 각자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소경들이여, 그대들은 코끼리를 만져보았는가? 나에게 말해보도록 하라! 코끼리란 어떤 것이던가?”
“그러자 코끼리의 머리를 더듬어본 소경들이 말하기를, ‘폐하! 코끼리는 마치 단지처럼 생겼나이다. 하였다. 코끼리의 귀를 더듬어본 소경들은 대답하기를, ‘폐하! 코끼리는 마치 키처럼 생겼나이다’ 하였으며, 코끼리의 이빨을 더듬어본 소경들은 대답하기를, ‘폐하! 코끼리는 마치 쟁깃날처럼 생겼나이다’ 하였다. 코끼리의 코를 더듬어 본 소경들은 대답하기를, ‘폐하! 코끼리는 마치 보습처럼 생겼나이다’ 하였다. 코끼리의 몸통을 더듬어본 소경들은 곡식창고, 다리를 더듬어본 소경들은 베개, 등을 더듬어본 소경들은 회반죽, 꼬리를 더듬어본 소경들은 절구공이, 꼬리 끝을 더듬어본 소경들은 빗자루 같다고 각각 대답하였다.”
“소경들은 ‘코끼리란 이와 같은 것이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고 언쟁하며 마침내 서로 주먹질 하며 다투게 되었다.” “마치 그와 같으니, 외도에 속한 유행자들은 눈이 없어 앞을 보지 못하며 참된 뜻을 알지 못하고…….진실은 이러 이러하다고 우기며 서로 논쟁을 일삼고 있다.”
그때 세존께서는 다음과 같은 우다나를 노래하시며 그 진의를 나타내셨다. 오, 바라문이라 사문이라 스스로 칭하는 자들, 그들은 얼마나 집착하고 싸우는가! 각자의 견해에 탐착하기에 그들이 서로 싸우느니, 그와 같은 무리들은 사물의 한 측면만을 보도다. 
두다나 68-69: 소경과 코끼리의 우화 (불교)
   
인도인 몇몇이 전시용으로 코끼리를 데리고 와서 어두운 집에 가뒀다. 군중이 그 짐승을 보기 위해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눈으로 보는 것이 불가능함을 알고 구경꾼들은 어둠 속에서 한 사람씩 손으로 짐승을 더듬었다. 
한 사람의 손이 코끼리의 코를 만졌다. “이 생물은 물줄기 같군!” 하고 그가 말했다. 또 다른 사람의 손은 코끼리의 귀에 닿았다. 그 사람에게 그 짐승은 분명히 프라이팬 같았다. 또 다른 사람은 코끼리의 다리를 만졌다. “나는 코끼리 모양이 기둥 같구만!” 하고 그가 말했다. 또 다른 사람은 코끼리의 등을 만졌다. “분명히 이 코끼리는 왕좌같이 생겼어”하고 그가 말했다.
감각의 눈은 손바닥과 같다. 손바닥은 짐승 전체를 덮을 방법을 가지고 있지 않다.
바다의 눈은 하나이고 거품은 또 다르다. 거품이 떠가게 배버려 두고 바다의 눈으로 응시하라. 밤낮으로 거품 조각이 바다에서 부서진다. 놀랍지 아니한가! 너희는 바다가 아니라 거품을 주시한다. 우리는 서로 충돌하는 보트와 같다. 우리의 눈은 어두웠으나 깨끗한 물에 있다. 자랄 앗 딘 룻딘, 마스나비 3.1259-1272 (이슬람)
  
한 무슬림과 한 유태인이 서로 다투고 있었다. 무슬림이 말하길, “그분께서 이 세상에 무함마드를 선택하셨도다” 하니, 유태인이 “그분께서 이 세상에 모세를 선택하셨도다” 라고 받아쳤다. 그러자 무슬림이 손을 들어 유태인의 얼굴을 때렸다. 그 유태인이 예언자[무함마드]에게 가서 그와 무슬림 사이에 일어난 경위를 고하자, 예언자가 무슬림을 불러 그 일에 대해 물었다. 무슬림이 말을 하자 예언자가 말했다. “나를 모세 우위에 놓지 말라. 왜냐하면 인류는 부활의 날에 모두 의식을 잃을 것이고 나도 그들과 함께 의식을 잃게 될 것이라. 나는 제일 먼저 깨어나 권좌 옆을 차지하고 있는 모세를 보게 되리라. 나는 그가 나보다 먼저 의식을 잃었다 깨어난 자들 중 하나인지, 하나님이 예외로 두신 자들 중 하나인지 모를 지니... 예언자들 사이에 차이를 두지 말지어다.” 부카리 및 무슬림 하디스 (이슬람)
  
어떤 이들은 주께 ‘라마’라고 외치며, 어떤 이들은 ‘투다’라고 외친다. 어떤 이들은 그를 ‘고사인’으로, 어떤 이들은 ‘알라’로 경배하도다. 그는 토대 중의 토대이며, 아낌없이 주는 자요, 인정 많고 자비로운 이라. 힌두는 그를 얻고자 성스런 물에 목욕하며, 무슬림은 메카를 순례하도다. 힌두는 푸자를 행하며, 다른 이들은 나마즈에 머리 숙여 절하도다. 베다를 낭송하는 자들이 있으며, 다른 이들-기독교도, 유태교도, 무슬림-은 샘족의 경전을 외우도다. 어떤 이들은 푸른 법복을 입고, 어떤 이들은 흰 법복을 입으며, 어떤 이들은 자신을 무슬림이라 칭하며, 또 어떤 이들은 바히사트[무슬림의 천국]을 열망하고, 어떤 이들은 스와가[힌두의 천국]을 간구하도다. 나나크가 말하노니, 주의 뜻을 실현하는 자는 누구나 주의 비밀을 알리라! 아디 그란트, 람칼리, M5, p885 (시크교)
  
고타미드여, 무슨 가르침이든지 그대는 이와 같이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교의들이야말로 마음의 고요함이 아니라 들뜸, 집착에서 벗어남이 아니라 집착에 사로잡힘, 세속적인 것들의 감소가 아니라 증가. 검약이 아니라 탐욕, 만족이 아니라 불만족, 고독이 아니라 벗들과 어울림, 원기 왕성함이 아니라 굼뜸, 선한 일에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악한 일에 즐거워하게 하는 것이다.” 고타미드여, 이와 같은 가르침들에 대하여 이렇게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바른 규준이 아니다. 이것은 수행이 아니다. 이것은 스승의 가르침이 아니다.”
그러나 무슨 가르침이든지 그대는 이와 같이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교의들이야말로 마음의 들뜸이 아니라 고요함에 이르게 하고... 교요함이 아니라 들뜸, 악한 일에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선한 일에 즐거워하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가르침들에 대하여 이렇게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바른 규준이다. 이것은 바른 수행이다. 이것은 스승의 메시지이다.” 비니아 피타카 2.10 (불교)
  
말씀 선집 
  
모든 문화에서 종교는 중심핵이어야 했고 공의의 표준이어야 했습니다. 각 종교들은 자기 자신들의 전통을 끊임없이 지켜온 것에 대해서 긍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각자는 자신의 종교를 다른 모든 종교보다도 우수한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종교적인 가르침은 우주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가르침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습니다. 
(234.222, 1992.08.20)
  
유감스럽게도 오늘에 이르러서는 종교는 종교의 여하를 막론하고 혼란을 수습할 수 있는 기능과 인간정신을 지도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종교는 점점 그 생명을 잃어가고 있으며 신앙은 점점 더 형식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인류는 이제 종교로부터 점점 관심이 멀어져 가고 있으며 열화같이 타올라야 할 신앙본연의 자세는 소수의 예를 제외하고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실로 중대한 사태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류의 정신을 선도해야 할 종교가 그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였을 때, 세계는 무법천지로 화하여 인류는 온갖 폭력과 난행과 살육의 바다 속으로 빠져 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지로 오늘날 그 같은 현상들이 일기 시작하였으며 공상주의의 책략에 의하여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종교적 가치관의 붕괴현상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붕괴의 원인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첫째, 과학기술의 발달과 경제성장 등으로 인간정신이 물질주의로 흐르고 있기 때문이요, 둘째, 공산주의를 위시한 각종의 무신론과 유물론 사상이 급속히 또 광범하게 만연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요, 셋째, 정교 분리의 이름 밑에 국가의 교육 정책에 있어서 종교를 교과목에서 배제함으로써 어렸을 때부터 무신론사상을 주입하는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요, 넷째, 공산주의자들이 적화공작을 위해서 그나마 남아 있는 가치관을 의도적으로 파괴하는 전략을 쓰고 있기 때문이요, 그리고 다섯째, 종교적 가치관을 이론적으로 수호해야 할 확고한 본체론이 결여된 때문입니다.
(122.300-301, 1982.11.25)
      
인간들이 사는 데 있어서 세상에서는 평면적으로 살기 때문에 옆으로 보면 종교는 다 마찬가지로 보입니다. 그러나 종교의 배후를 따져 보면, 복귀섭리를 해 나오는 하나님의 섭리로 볼 때, 종의 종의 종교권이 있었고, 종의 종교권이 있었고, 그리고 양자 서자 직계 자녀 어머니의 종교 아버지의 종교를 거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이 성립됩니다.
  
그렇다면 종교의 그 내용은 무엇이냐? 내용은 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해라 하는 말, 하나님을 절대 주인으로 모셔라 하는 말인데 그 내용은 다 같다는 것입니다. 대동소이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내용을 보고는 그 단계를 구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용은 다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종교를 다 마찬가지로 보고 있느냐?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섭리의 시대를 보면 복귀섭리는 끝 날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시작에서부터 끝 날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종교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시댁 오는 것입니다. (143.75, 1990.12.09)
  
선악이라는 것은 생각 가운데서 결정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선악이라는 것은 생활권내에서 결정되어집니다. 천국과 지옥이 여러분의 관념 세계에서 결정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활무대에서 결정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게 중요한 것입니다. (140.294, 1971.02.07)


  
관용, 종교적 자유, 그리고 종교 일치
  
관용은 ‘다른 믿음을 가진 자를 어떻게 대하느냐’에서 시작한다. 비 신앙인과 신앙인을 같은 관심을 갖고 대하도록 가르치는 경전의 구절을 여기에 모았다. 종교적 논쟁이나 교리적 갈등은 비난할만하다. 그들은 종종 경건으로 위장한 이기주의의 충동을 받아 자신의 신앙에 맞지 않는 것에 적대감을 드러낸다. 
  
이를 확대하면 정부는 종교 자유를 인정하고 신앙 문제에 강제성을 띠지 않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 자유를 현대 민주주의의 유일한 특징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이것은 십자군 전쟁, 종교 재판, 30년 전쟁 등등 전쟁의 잔혹성으로 점철된 오랜 기간의 종교적 편협에서 태동된 것이다. 
  
일부 문명에는 종교적 관용의 시기가 있었다. 관용적인 불교신자였던 아소카 왕(기원전 3세기)치하의 인도, 무갈 제국의 계몽 황제 아크바(16세기), 알-안달루스(무슬림 치하의 스페인, 10세기), 그리고 중국의 송 왕조시대(10-13세기)등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 자유가 지구적 가치로 확고히 자리 잡은 것은 민주주의가 확립되면서였다. 문선명 선생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가장 어렵게 성취한 승리의 하나가 종교 자유를 확립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종교 사이의 화해와 연대는 종교의 관용과 종교 자유를 넘어선 보다 높은 비전이다. 인류가 세계의 여러 종교와 더욱 친밀해지고, 종교 지도자들이 대화를 통해 분쟁과 과거의 편견을 없애려고 노력한 결과, 이러한 현대적 비전이 태동한 것이다. 바하이교는 오래 전부터 종교간 이치를 주장해 왔다. 
   
유대인 대학살의 공포를 겪은 후 기독교인과 유대교인의 관계가 변화하면서 바유대주의적 요소가 들어있는 기독교 교리에 대해 광범위한 재평가가 이행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까지도 세속주의 경향이나 종교적 편협이 언젠가 종교를 과거의 유물로 남게 할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그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견해이다. 종교적 극단주의와 테러리즘이 급속히 번지면서 인류는 세계평화의 구현을 위해서 종교간 협력이 필수적 전제조건임을 깊이 각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문선명 선생은 종교 일치가 하나님 섭리의 주요한 목표 중 하나라는 신념 아래 50년 이상 조금도 과시 하지 않고 묵묵히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진력해 왔다.
 


1. 다른 종교인에 대한 관용
  
종교 경전 
  
자신의 교의를 찬양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교의들을 깔보는 자들은 어떤 문제로 해결할 수 없다. 수트라 크리탕가 1.1.50 (자이나교)
   
가장 좋은 것이(좋은 언어와 예절) 아니라면 성서의 백성(유대인, 기독교도)들과 논쟁하지 마라. 꾸란 29.46 (이슬람)
 

여러분은 이방 사람 가운데서 행실을 바르게 하십시오. 그렇게 해야 그들이 여러분더러 악을 행하는 자라고 욕을 하다가도, 여러분의 바른 행위를 보고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12 (기독교)
  
우리의 스승들은 이렇게 가르치셨다. “이스라엘의 가난한 자뿐만 아니라 이교도의 가난한 자들도 도와라. 이스라엘의 병자만 아니라 이교도의 병자에게도 찾아가라. 이스라엘인의 주검만 아니라 이교도의 주검도 같이 묻어주어라. 평화의 이름으로.” 
탈무드, 기틴 61a (유대교)
  
카파타카가 여쭈었다. “현자는 어떻게 진리를 견지합니까?” 붓다께서 대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믿음을 지녔을 때, 만일 그가 ‘이것은 나의 믿음이다’라고 말한다면, 그때까지 그는 진리를 견지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오직 이것만이 진리이며, 그 외에는 모두 거짓’ 이라는 절대적인 결론에 도달하지는 못한다.” 맛지마 니카야 2.176 (불교)
  
여러 꽃에서 꿀을 모으는 벌처럼, 지혜로운 자는 여러 경전들에서 그 정수를 받아들이며, 모든 종교에서 단지 장점만 본다. 스리마드 바가바탐 11.3 (힌두교)
  
말씀 선집 
  
참부모의 이상과 세계평화의 이상은 직결되어 있습니다. 모든 국가와 민족과 문화와 종교들이 서로 백퍼센트 이상 위하고 관용하면서 화합함으로써 세계평화를 이룩해야 합니다.
(205.159, 1990.08.16)
  
하나님은 어떤 교리로 생활하는 분이 아니며, 종교 의식이나 형식에 얽매인 분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살아 있는 영적 존재로서 우주의 창조자입니다. 종교는 전 인류에 대해 올바른 가르침의 본보기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같은 종교 내의 쟁의에 의한 교파간의 투쟁이나 타종교간의 투쟁을 바라보실 때 하나님의 심정은 가장 고통스럽습니다.
  
본인은 두 개의 일치화 운동으로서 뉴 에라(New Era)와 하나님회의를 창설하고 이들을 통하여 기독교 내의 교파간은 물론 타종교간의 조화와 통일에 대한 가능성과 필요성을 시도해 본 결과, 이러한 조화와 통일은 인내와 희생, 그리고 참사랑의 값진 결실로서 실현된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각 종교간 진지한 대화의 조화를 실현함으로써 지상에 하나님의 뜻을 촉진하고 세계평화를 실현코자 본인은 세계종교의회와 세계종교회합을 설립하였는데, 현재 이러한 기구들은 정체된 종교계에 기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인은 청소년들의 인종분쟁 및 종교전쟁을 마고 하나님의 이름 아래 이상적 평화세계를 세우는 데 적극 기여할 기구를 설립하였는데, 세계청소년회의와 청소년종교봉사단이 그것입니다. 본인은 이러한 모든 기루를 통하여 종교계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167.99, 1987.06.30)
  
하나 되기 위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모든 종교에 대해서 하나 될 수 있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길이 있다면, 교리 상으로 모든 것을 풀어서 설득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던가, 그렇지 않으면 참는 힘이 많아 가지고 관용심이 많아 가지고 그 종교와 하나 되기 위해서 양보하고 나가던가 하는 두 길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103.126, 1979.02.18) 
  
종교를 중심삼고 볼 때 세계가 필요로 하는 종교는 어떠한 종교냐? 보다 평화를 제시할 수 있는 종교입니다. 그러한 종교가 되는 것은 자기를 중요시하고, 또 자기 중심삼은 소유관념이나 소유욕을 가지고는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그냥 그대로, 역사시대에 자기들의 조국을 중심삼고 자기 민족을 중심삼은 주체적 관념에 지배받던 그런 형태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것을 벗어나게 하려고 ‘자기를 희생시켜라! 자기를 희생시켜야만 된다’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세계의 역사를 따라가게 될 때는 전쟁역사 자체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것을 아는 하늘은 ‘자기를 희생시켜라! 자기를 부정해라’ 한 것입니다. 또한 자기가 주체의 자리에 서더라도 주체의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길을 택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희생을 강조하고, 봉사를 강조하고, 자길 자신을 부정하는 길을 찾아 나가는 것이 종교의 길이더라 이겁니다.
(142.14144, 1988.01.10)
  
하나님은 세계를 구하려고 하지 장로교면 장로교, 감리교면 감리교, 성결교면 성결교 그것 하나만을 구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장로교만을 위주로 하는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세계를 위하는 하나님입니다.
  
교회가 참되려면 ‘세계를 위해서 희생하라’ 는 것입니다. 세계를 살리기 위해서는 그 교회가 망하게 되더라도 희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그렇게 가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텐데, 교회를 중심삼고 세계를 심판하면서 ‘우리 아니면 안 된다’고 부정하고 ‘우리들을 위하랴’고 하면서 자기르 절대시하는 교회는 망합니다. (69.87, 1973.10.20)
  
하나님이 이 시대를 경륜하기 위하여 바라시는 종교는 ‘부모 위치에 있는 종교’입니다. 부모의 심정을 품고 사는 종교를 요구하십니다. 본인은 참부모 사상을 교육하고 각자가 그 전통을 닮은 참부모들이 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선 가정에서 참부모가 되고 종족에서 참부모가 되는 종족적 메시아 사명을 다 하도록 지도하고 있습니다. 
  
참부모의 심정을 품은 교인, 참부모의 심정을 실천하는 종교가 되어야 갈등과 증오와 죄악의 세계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다른 종교나 교파를 경멸하고 적대시하는 종교는 세계평화 실현에도 하나님의 섭리에도 유용하지 않습니다.
  
천운은 조화된 평화세계를 지향합니다. 그런데도 현실은 어떠합니까? 냉전시대가 종식되었으면서도 아직 극복해야 할 대결과 분쟁의 소지는 너무도 많습니다. 인종간 분쟁, 종교간 갈등 등의 근본을 해결해서 인류 한 형제, 세계일가의 화합시대를 이루어야 하는 과제는 참부모 주의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260.128, 1994.05.01)



2. 종교 자유
  
종교 경전 
  
너희가 인간들로 하여금 믿는 자가 되도록 강요하려느냐? 하나님의 허락 없다면 아무도 믿을 수가 없노라. 꾸란 10.9100 (이슬람)
  
종교에는 강요가 없느니라. 꾸란 2.256 (이슬람)
  
그런데 율법 교사로서, 온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가말리엘이라는 바리새파 사람이 의회 가운데서 일어나서, 사도들을 잠깐 밖으로 내보내게 한 뒤에, 의회원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스라엘 동포 여러분, 여러분은 이 사람들을 어떻게 다를지 조심하시오. 이전에 드다가 일어나서, 자기를 위대한 인물이라고 선전하니, 약 사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를 따랐소. 그러나 그가 죽임을 당하니,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모두 다 흩어져 없어지고 말았소. 그 뒤에 인구조사를 할 때에 갈릴리 사람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서, 자기를 뒤따라 반란을 일으키게 한 일이 있소. 그가 죽으니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다 흩어지고 말았소. 그래서 지금 내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바는 이것이오. 이 사람들에게서 손을 떼고, 그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시오. 이 사람들의 이 계획과 활동이 사람에게서 난 것이면 망할 것이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면 여러분은 그것을 없애 버릴 수 없소. 도리어 여러분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봐 두렵소. 사도행전 5.339 (기독교)
  
알라의 예언자가 메디나에 당도했을 때 그곳에 있던 유태인과 조약을 맺었다. “바니 아우프 족의 유태인은 무슬림 신자들과 하나의 공동체이다. 유태인은 자신의 종교를 실천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 자신의 부, 재산,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억압을 행하거나 범죄를 저지를 자는 예외이다.” 하디스 (이슬람)
  
말씀 선집 
  
하나님께서 준비하실 또 하나의 일은 메시아가 강림하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된 것은 당시의 제도 하에서는 피치 못할 사정이었다 하겠습니다. 이를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메시아가 다시 오시는 재림 시에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사람을 함부로 잡아 죽일 수 없는 정치제도인 것을 아십니다. 이를 위하여 2천 년 동안 땀 흘려 준비하신 제도가 곧 오늘날의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주의는 인권을 존중하는 제도입니다. 민주주의는 소수파도 다수파 속에 끼어 살아남을 수 있는 제도입니다. 그 자유가 곧 언론의 자유요, 집회의 자유입니다. 그 민주주의의 대표라 볼 수 있는 미국의 헌법을 보면, 자유 가운데 가장 절대적인 자유가 종교의 자유이며, 미국 의회와 정부는 종교를 규제할 수 있는 어떠한 법도 만들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100.246, 1978.10.19)
  
예수님 이후 2천 년간의 영적 복귀섭리는, 그를 위한 사회 조성을 위하여 민주주의 시대를 이루어 놓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그 초림 때에는 유대교의 반역자로 몰려서 돌아가셨지만, 그가 재림하시는 민주주의 사회에 있어서는 설혹 그가 이단자로 몰리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로 인하여 죽음의 자리에까지 나아가게 될 수 는 없는 것이다.
(원리강론, 모세와 예수를 중심한 복귀섭리, 3.3.2)
  
본인이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인류역사상 가장 어려운 시기에 본인을 종교자유 수호를 위한 지도자로서 미국의 영적 각성운동에 점화의 도구로 쓰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133.213, 1984.07.19)
   


3. 종교 공동체와 종교 사이의 유대
  
종교 경전 
  
내게는 이 우리에 들지 않은 다른 양들이 있다. 나는 그 양들도 우리 안으로 인도해야 하겠다. 그리하면 그 양들도 내 음성을 듣고 마침내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 아래 있을 것이다.
요한복음 10.16 (기독교)
  
나의 집은 뭇 백성이 모여 기도하는 집이라 불리리라. 이사야 56.7 (기독교)
  
말씀 선집 
  
본인이 알고 있는 신은 종파주의자가 아니십니다. 지엽적인 교리이론에 얽매이신 신이 아니십니다. 우리들은 교의문자나 의식조건에 융통성 없이 얽매이는 신학적 갈등으로부터 빨리 벗어나서 신과 산 교재를 가져야 합니다. 신도들의 믿음이 생동하고 각자의 영혼이 신과 교통하는 순수한 종교 풍토의 조성이 시급하다고 봅니다.
  
신과 부모의 심정, 그리고 크신 사랑 안에는 민족이나 혈색의 구분이 있을 수 없습니다. 국가나 문화 전통이나 동서양의 벽도 없습니다. 신께서는 오늘도 만민을 같은 자녀로 품기 위해 애쓰고 계십니다. 우리는 종단간의 대화와 화합을 통하여 신의 창조목적이요 인류공망(人類共望)인 단일평화이상 세계를 기어이 실현해야 합니다. (135.221, 1985.11.16)
  
오늘날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한 가지 큰 문제가 수많은 기독교 파들 사이에서, 여러 세계 종교들 사이에서, 그리고 각 세계 종교 내부에서 빚어지고 있는 상호 몰이해의 현상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종교 공동체들 간의 대립과 적대감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수세기 동안에 벌어졌던 종교전쟁은 오늘도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상호일치를 위한 수많은 운동들이 시도되어 왔으나, 독실한 신앙자들 사이에는 아직도 불관용, 종교적 편협 및 종교적 교만의 풍조가 팽배해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종교들이 같은 하나님을 섬기고, 심지어 같은 교리를 갖고 있는 경우가 빈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종교인들은 상호 탄압과 적대행위를 계속해 왔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교단주의나 교리나 파당주의를 초월해 계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언제나 전 인류를 구원하시는 데 있어 왔고, 특정 민족이나 인종이나 종교단체만을 구원하시려는 것이 아니었으며, 이것은 지금 이 시간에도 변함이 없습니다. 종교인으로서 우리가 상호간 싸움과 적대행위를 종식시키지 않는다면,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을 도울 수가 없습니다. 많은 종교지도자들이 이것을 절감하여 왔으나, 여러 복잡한 이유 때문에 이 문제의 해결은 번번이 좌절되어 왔습니다.
  
본인이 강조해 온 것은, 세계평화를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 바로 종교간 화목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어느 한 종교가 하나님을 완전하게 대변하는 일은 불가능하였기 때문에, 종교들이 갖고 있는 다양한 견해들은 필연적인 산물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한 하늘 부모의 자녀들인 연고로, 우리는 한 대가족 안의 형제자매들인 것이며, 따라서 종교간 갈등과 증오는 불필요한 것들입니다. (133.274, 1984.08.13)
  
하나님이 세계하고 전부 다 격리되어 있습니까?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구하려고 합니다. 회회교를 보더라도 말이에요, 무슬림을 중심삼고 자기들 중심삼고 하자 그러는 것입니다. 세계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불교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에 나가서 활동하는 것을 지금까지 안 해 왔습니다. (99.17, 1978.08.27)
  
유대교의 이스라엘을 중심삼고 중동에 있는 나라들이 가인 아벨로 하나 되었다면, 벌써 6세기 전부터 인도와 중국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에 종교가 있었기 때문에 중앙지대를 중심삼고 통일해 자동적으로 하나 될 수 있는 환경을 다 만들어 놓았었습니다.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가 하나 되었더라면 그때는 이미 로마가 부패한 상태였기 때문에 중동이나 어디나 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로마제국의 판도 내에 인도니 중국이니 이 종교 권들이 영계에서 하나 되라는 지시만 있으면 한꺼번에 다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힌두교의 나라가 아니고, 유대교의 나라가 아니고, 기독교의 나라가 아니고, 하나의 나라입니다. (406.23, 2003.03.02)
  
동양에서는 무아경을 찾아 들어가는 것입니다. 조용한 곳,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자리를 찾아갑니다. 그런데 서양에서는 ‘아이고, 돈이 많고 무엇이 많은 데 가자!’ 이러고 있습니다. 서양식은 ‘있는데 가자. 많은 데 가자’고 해서 눈이 커진 것입니다. 눈이 이렇게 커졌습니다. 누이 커져 가지고 ‘아이고 어서 가자, 어서 가자’ 한다는 것입니다. 
  
또, 키가 커 가지고 이렇게 갑니다. 동양 사람은 작습니다. 눈도 작아지고 코도 작아지고 다 작아졌습니다. 다리도 짧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이게 어디가 안이고 어디가 밖이냐? 서양은 밖이고 동양은 안이라는 것입니다. (118.47, 1982.05.02)
   
종교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종교의 목적은 하나의 세계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종교에서 믿는 신은 이름이 여러 가지이며 표현이 다르지만, 그 종교에서 신봉하는 중심존재는 하나의 신에 귀일되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그 종교가 가르치는 방향과 목적은 언제나 하나를 표준으로 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최후에는 모든 종교가 자기 나름의 길을 수습해 가지고 일대 하나의 변혁시대를 맞이해야 됩니다. (140.10-11, 1986.02.01)
  
‘하나님 아래 하나의 세계’는 하나님의 영원, 불변, 절대의 소원이요 목적이니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나 그것은 먼저 종교 통일을 하고야 가능한 것입니다. 한 아버지인 하나님을 모시고 한 메시아 밑에 하나님주의로 굳게 결속하면 하나님이 같이 하실 것인즉 세계복귀, 즉 지상천국 구현은 시간문제입니다. (88.211, 1976.09.18)
   
오늘날 수많은 종교들이 주장하던 세계적인 사조도 지나가 버리고, 최후에 남아질 것은 재림주로 오시는 신랑을 중심삼고 신부들이 만나는, 그런 새로운 세계적 문화권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그 세계는 언어도 통일이요, 생활도 통일이요, 행동도 통일이요, 소원도 통일이요, 심정도 통일된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50.62, 1971.10.31)
    


샤머니즘, 다신교와 애니미즘
  
세계 경전들은 모든 종교가 공통으로 강조하는 보편적인 관점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종교는 각각의 독특한 성격과 주안점을 갖고 있다. 다음 여섯 가지 주제는 종교의 독특한 특징을 드러내면서 특수한 종교적 전통과 그들에 관한 문선명 선생의 가르침을 다룬다. 영성의 충만함을 잃어버리지 않은 채, 하나의 하나님(하나의 궁극적 실재)에 공통으로 합치되는 보편적 성격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다면 자신의 종교적 특징만을 지나치게 강조할 필요가 없다.
  
여기서 모든 종교를 다룰 수는 없고, 다만 문선명 선생이 그의 경험을 통해 언급한 종교에 한한다. 한국은 샤머니즘, 불교, 유교에 뿌리를 둔 종교적 다원주의 국가이다. 한국에는 역동적인 기독교 공동체가 있으며, 소수 그룹으로 성장하고 있는 이슬람 공동체도 있다. 
  
문선명 선생의 샤머니즘에 대한 견해는 그가 주로 한국사회에서 겪은 다양한 경험에서 온 것이다. 샤머니즘은 한국 시골에서 아직도 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으며 샤머니즘을 행하는 사람을 무당이라 부르는데 그 대부분이 여자이다.
  
영과 교통할 수 있는 무당의 능력은 인상적이다. 문선명 선생은 미국에서 생활할 때 알래스카의 에스키모 무당을 사귀기도 하고, 브라질과 파라과이의 원주민과 친구로 지내기도 했다. 문선명 선생은 영계의 현실과 그것과 효과적으로 교통하기 위한 영적 훈련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는 성서 중심의 기독교인처럼 샤머니즘과 물활론에 대해 독선적인 비난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문 선생은 샤머니즘을 인간의 영적 발달 단계 중 낮은 단계이긴 하지만 정식 단계로 인정하고 있다.
  
문선명 선생의 가르침 중 주목할 점은 샤머니즘과 다신교는 본래 타락한 천사를 숭배의 대상으로 하는 ‘종의 종’종교라는 것이다. 다신 사상은 그리스나 힌두 신화에서 확실히 볼 수 있는데, 여러 신들이 세상 여인들과 호색적 활동을 하는 것은 인간 타락 당시 이브에 대한 사탄의 유혹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헌신적인 수행자들에게 그 제신들의 차원을 넘어서서 보다 높은 도덕적 품성을 지니기 위한 권능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가르쳐 왔다. 이런 방법을 통해 인간은 ‘종의 종’의 자리를 넘어 그들의 자리를 격상하면서, 보다 높은 종교로 발전해 왔다. 힌두교와 그 신도의 경전들은 이런 전통이 시대를 거쳐 어떻게 부상하면서 차원 높은 종교로 변해왔음을 기술하고 있다. 
 


1. 자연신 숭배
  
종교 경전 
  
오, 신들이여! 당신들의 모든 이름들은 존중되고 예경되며 숭배되어야 합니다. 천계와 지상에서 생겨난 당신들 모두는 여기 나의 기원을 듣고 계십니다. 
리그 베다 10.63.2 (힌두교)
  
우리는 조상들 고대의 황제들은 처음에 공경과 경외로 신을 숭배함으로써 그 세계를 통치했다. 산과 강의 신을 널리 숭배함으로써 그들은 하늘과 땅과 자연적인 교감을 가졌다. 이런 이유로 여름과 겨울이 때맞추어 바뀌게 되었으며, 창조의 역사도 조화로웠다. 
니혼쇼키 22 (신도)
  
산상 수이라! 내산에 칠봉이요, 외산에 십삼 명승지라. 이 명산과 제석천에 국가의 큰 제단이 장국의 보호를 받는다. 그 중 하나가 최영 장군 아닌가? 대한의 명자, 국민들이 좋아한다……. 오, 나는 대산신이다. 앉으면, 삼천리를 덮고 서면, 구만리를 뻗친다. 명경으로 내려다보면, 만리를 볼 수 있다. 오, 나는 대산신이라. 네가 나를 위해 무엇을 바쳤느냐? 붉은 천으로 둘러싼 통돼지로 충분하냐? 삼색 실타래로 충분하냐? 내게 많은 비단을 바쳐라. 오, 이 집의 부부여. 누가 식량을 주는지 너희는 기억하느냐? 누가 네게 집을 주었느냐? 누가 네게 재물을 주었느냐? 누가 네게 장수를 주었느냐? 나, 산상이 너를 축복했고 필요할 때 도움을 주었다. 산신령의 초대 (한국 무교)
  
일군의 전쟁 주관자들, 나는 당신에게 인사합니다. 그대 선조들이여! 나는 지금 막 영혼들을 위해 담배를 피우려 합니다.
들으소서! 대지의 창조자, 나는 한 줌의 담배를 당신에게 들리려 합니다. 나의 조상 모모씨는 당신에게 그의 마음을 다했습니다. 당신이 그를 축복한 불 피우는 터, 당신이 그에게 허락한 짧은 생애, 당신이 나의 조상에게 준 축복의 네 배를 나는 당신에게 직접 요구합니다. 나의 삶에서 어떤 문제가 일어나지 않기를 원합니다.
서쪽에 사는 천둥새의 우두머리여, 당신은 나의 조상을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나는 한 줌의 담배를 당신에게 드립니다. 당신이 그들의 불 피우는 터에서 그들에게 준 한 쌍의 사슴, 그 양식을 나는 당신에게 직접 요청합니다. 내가 드리는 이 담배를 받으시고 내가 곤란을 당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위대한 검은 매여, 당신 또한 나의 조상을 축복했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담배를 드립니다. 당신이 그들에게 축복한 무슨 양식이든지 나는 당신에게 직접 요구합니다. 내게 걱정거리가 없기를 원합니다…….
맞은 편, 동쪽에 살며 어둠속을 거니는 당신[밤의 영혼]이여, 나는 당신이 피울 담배를 바칩니다. 당신이 나의 조상에게 축복한 무엇이든지 나는 당신에게 요청합니다. 만일 당신이 이 담배를 피우면 나는 결코 약골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남쪽에 사는 질병의 지배자여, 인간처럼 보이는 불사신인 분, 몸의 한 쪽에는 죽음이 어려 있고 다른 쪽에는 생명이 어려 있는 분이여, 당신은 백주대낮에 나의 조상을 축복했습니다. 당신은 음식으로 그들을 축복했고 그가 어떤 일에서나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당신은 그들이 쉽게 양식을 얻을 수 있도록 그 앞에 동물들을 보냈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담배를 드립니다. 이것을 피우시고 그리고 내가 어떤 것으로도 곤란을 당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태양, 빛의 방랑자여…….할머니 달…….들으소서, 나의 조상이 기도드린 모든 영혼이여, 당신들 모두에게 담배를 드립니다. 나의 조상은 그를 축복한 모든 분을 위해 잔치를 열었습니다. 우리 조상에게 준 모든 축복을 우리에게 다시 한 번 베푸십시오. 그러면 우리는 약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당신들 모두에게 인사를 합니다. 
정화의 집에서 위네바고족의 기원문 (미주 원주민 종교) 
  
알라여, 오셔서 콜라 열매를 드십시오. 추쿠여, 오셔서 콜라열매를 드십시오. 조상들이여, 오셔서 콜라열매를 드십시오. 에히림이라 불리는 그뷔디 사람에게서 들은 이야기이다. 아구네스족의 사람이 그의 고구마를 도둑맞았다. 그래서 나는 그 문제를 조사하기 위해 알라의 사제들, 아로 소지자들, 장로들을 소집했다. 바로 조쿠의 사제였던 나의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나는 그들을 불렀다.
이 문제를 재판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중 거짓되게 행하거나, 원고나 피고나 누구든지 거짓말을 하는 증인을 부르는 자가 있다면, 알라, 추구, 조쿠, 그리고 조상들과 오포여, 그들을 벌하소서. 이보족의 법정 기원문 (아프리카 전통종교)
  
소생한 아들 가네샤를 본 파르와티는 기쁨에 넘쳐 그를 포옹했으며, 그에게 새 옷을 입히고 장신구를 달았다. 그의 얼굴에 입맞춤을 한 후 그녀가 말했다. “오 가네샤야, 너는 태어난 이래로 가장 큰 고난을 겪었다. 이제 너는 복되고 만족할 것이다. 너는 모든 신들보다 먼저 예경을 받을 것이다…….”
“꽃, 전단향 가루반죽, 향, 상서로운 음식 봉헌, 등불의 행렬, 빈랑나무 잎사귀, 관대한 선물, 순행, 경의로써 너를 숭배한 그에게 모든 성취들이 분명하게 보장될 것이다. 모든 장애들이 틀림없이 제거될 것이다.”
쉬바, 브라흐마, 비슈누가 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 위대한 신들이여, 우리 셋이 삼계에서 그대들 모두에 의하여 숭배되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네샤 또한, 그대들 모두에 의하여 숭배되어야 할 것이다. 그는 모든 장애들을 제거하는 자이며, 모든 제사의 결실을 부여하는 자이다.”
  
말씀 선집 
  
가장 미개한 인간에게서부터 고차적인 인간에 이르기까지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에 미개한 종교들은 전부 물건을 보고 경배했습니다. 하나님 대신 바위를 섬기고, 이렇게 샤머니즘 같은 것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각 민족의 방향이 전부 다르게 나온 것입니다. 그렇게 가르쳐 줬습니다. (91.271, 1977.02.27)
  
무당이라든가 이런 여자들이 많이 신을 접해 가지고 하는데, 그것이 뭐냐? 타락한 천사장과 해와가 그런 길을 가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 권내에 사로잡혀 영(靈)의 종의 자리, 사랑의 종의 자리에서,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새로운 영적 세계의 길을 통해 지상에 새로운 예언을 하는 것입니다. 이건 맞습니다. 이 지상에는 영계에 접하여 그런 놀음을 하는 무리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76.95, 1975.02.01)
  
영계는 어떤 세계냐? 천사세계입니다. 천사세계에 맞먹는 영계의 신들이 왜 인간세계와 관계를 맺으려고 하느냐 하는 문제를 지금까지 몰랐습니다. 여러분들이 무당이니, 무슨 복술이니, 미신이니 하는 그런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게 뭐냐? 아직까지 선악의 자리를 가려내지 않은 입장에선 종교형태입니다. 하나님이 종교형태를 가주고 나가니 사탄도 종교형태를 갖추어 가지고 방어를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대개 여러분들이 무당이나 복술 하는 사람을 보면, 8할 이상이 여자입니다. 누구하고 접하고 있느냐? 해와가 타락할 때 천사의 지도를 받아 이끌려서 악의 결과를 가져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복귀시대의 길을 다시 재현시켜서 따라가는 이 땅위에서는 반드시 영계의 천사들이 지상에 와서 여자들과 하나 되어 모든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천사들이 가르치는 대로 하는 것이 복술이나 무당들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뭘 하느냐? 타락한 해하와 마찬가지로 영인과 사는 놀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76.95, 1975.02.01)
  
역사 발전과정을 찾아보면 반드시 신앙이라는 것이 언제나 문제가 돼 있습니다. 요즘 말하면 미신이라고 하는 것도 옛날에는 신앙생활의 모체였던 것입니다. 큰 나무를 보면 나무를 섬긴다든가, 혹은 웅장한 산이 있으면 산을 섬긴다든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도 인간들은 모르지만 지키는 신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176.287, 1988.05.13)
  
하나님은 섭리 가운데,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 수많은 곡절의 역사과정을 거쳐 온 것입니다. 역사과정의 수많은 인간들은 문화의 배경이 다르고 풍습과 습관이 다름과 동시에 지역적인 환경 혹은 기후 차이에 의한 환경이라든가 여러 가지 환경에 따른 문화배경을 달리하여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구원섭리를 완성시키기 위해서 이 모든 인류의 배후에서, 우리들 자신으로서는 측량할 수 없지만, 그 문화배경에 합당한 섭리의 길을 가려가면서 그 환경에 살고 있는 개인을 수습하고, 가정을 수습하고 사회 국가를 수습해 나온다고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하나님의 섭리의 뜻 가운데에서 역사가 발전된다고 할 진대는 그 발전되는 역사과정에 하나님의 섭리역사를 이룰 수 있는 주류 혹은 비주류의 섭리노정이 있을 성싶다 하는 것은 당연한 결론인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세계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맨 처음에는 미비한 미신 종교와 같은 역사과정을 거쳐 신을 찾게끔 하면서, 점점 고차원적인 종교로 연합시켜 가지고 최후에는 하나의 종교 이상을 통한 구원섭리의 완성시대로 가게끔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라면 그런 섭리를 해 나오셔야 된다는 결론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121.298, 1982.10.30)
  
지금까지 역사는 동쪽으로 해가 떠올라 올 수 있는 시대를 알기 때문에 서로가 켜 놓은 불빛을 따라서, 등불을 켜 가지고 신을 중심삼고, 잡신을 중심삼고...,무당들도 다 자기 체험이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종교를 안 믿는 사람하고 무당들 중에 누가 낫느냐? 안 믿는 것보다 잡신이라도 섬기는 것이 낫습니다. (197.315, 1989.10.30)



2. 여러 신들을 넘어 승리한 인간
  
종교 경전 
  
신들을 중요하게 마드는 존재는 인간이다. 만일 하나의 영[숭배물]이 너무 말썽을 부리면, 그것을 잘라내 온 나무를 보여 줄 것이다. 우리는 계속 제물을 바쳐야 한다. 그러면 비난이 그 신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아프리카 격언 (아프리카 전통종교)
  
미혹된 자들은 인간의 형상을 띤 나를 멸시한다. 만유의 주인 나의 지고한 본성을 알지 못하는 까닭이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야차나 아수라에 속한 허망한 물질적 본성의 먹이로 떨어지나니 그들의 열망들이 헛되며 그들이 지내는 제사가 헛되며 지혜를 구하려 함도 또한 헛되고 헛된 것이로다. 바가바드기타 9.11-12 (힌두교)
  
자아를 “내가 곧 바라흐만”으로 알아서 범아일여를 실현하는 자는 누구나 일체만유가 된다. 천계의 신들도 그가 그와 같이 되는 것을 막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는 그들의 영원한 최고가 되었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나는 나일뿐 브라흐만과는 다른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자기 신과는 다른 신을 숭배한다면, 그는 무지한 사람이다. 그는 신들에 대하여 마치 가축과 같다. 많은 가축들이 한 사람을 섬기듯이 이와 같이 사람들이 제물을 바치며 신들에게 경배한다. 한 마리 가축을 잃어도 그 주인에게 큰 근심을 안겨주거늘 많은 가축들을 잃어버린다면 그 주인의 근심이 어떠하겠는가! 이런 까닭에 신들은 사람들이 진리를 깨닫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범아일여의 참된 진리를 깨닫는 순간, 그들이 천계의 신들을 떠나게 되는 까닭이다. 브라하드아란야카 우파니샤드 1.4.10 (힌두교)
   
심지어 신들도 브라흐만을 실현함으로써 그들을 압도하려고 애쓰는 요가행자를 시샘한다. 그러므로 만일 그들이 그가 방심한다는 것을 알면, 온갖 방법으로 그를 타락시키려고 애쓴다. 스리마드 바가바탐 11.20 (힌두교)
  
신도란 무엇인가? 진정한 종교는 세속적인 사람들이 공허한 공물이나 바치는 신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선행과 청정한 마음에 있다. 가토 겐치 (신도)
  
거룩한 강에서 목욕하는 그대 형제들이여, 보라. 시내에서 목욕하는 그대 승려들이여, 보라. 그대들의 천한 생각들을 포기하라, 포기하라. 다른 이의 아내에 대한 음심을 버려라. 다른 이의 부에 대한 탐욕을 포기하라. 만일 이러한 것들을 포기하지 않은 채로 강에 몸을 담근다면 바싹 마른 강에 멱을 감는 것과 다르지 않다. 바사반나 바차나 642 (힌두교)
   
진리만이 승리하며 진리만이 영원하다. 진리는 길이요, 진리는 구극의 목표이니, 아만을 여윈 현자들이 이루었던 바로다. 무다카 우파니샤드 3.1.6 (힌두교)
  
말씀 선집 
  
유대민족 역사를 보면 승리했다고 해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야곱시대에 처음 나옵니다. 그러한 시대는 천사장급과 마찬가지입니다. 그건 믿을 수 없어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전에 나왔던 여러 가지 종교, 힌두교라든가 불교라든가 조로아스터교라든가 태양신을 숭배하는 희랍 종교, 그런 것들이 종교적 이름을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그것이 천사장권의 정신적 기반을 통해서 나온 것입니다. (220.52, 1991.10.14)
  
종교 운동은 저 미개한 데서부터 핍박받으며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역사를 시키는 분이 누구냐? 하나님입니다. 여기서 갈라지는 것입니다....종의 종으로부터 단계적으로 갈라져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종의 종 가운데서는, 종이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주인이 종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종이 주인을 부리게 됩니다. 그러려면, 이런 하늘나라의 종의 주인이 되려면 사탄세계를 전부 합한 종의 핍박을 받고 승리해야 됩니다. (124.69, 1983.01.23)
  
무당 중에도 남자무당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도 기원은 대개 좋지 않습니다. 성관계에 대해 문란해서 갈라져 가지고 도의적인 길을 터 나왔습니다. 이것이 종교 권과 연결됩니다. 이것이 도의적인 출발을 중심해서 인간은 이렇게 살아야 된다, 하늘을 중심삼고 인간은 바른 길을 간다, 가정생활의 전총을 바로잡아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 멋대로 살고 사랑의 관계를 제멋대로 하는 사람들은 나쁘다고 하고, 이 사랑의 도리를 세워 나오게 하기 위한 것이 인간세계에 종교로 나타난 것입니다. (295.174, 1998.08.28)
    


불교


문선명 선생은 자신의 고향인 한국의 문화에 깊은 영향을 미친 불교에 대해 최고의 경의를 표하고 있다. 문 선생님은 타락의 수렁에서 참된 본성의 자아를 회복하려는 세계종교의 가르침에서 불교의 가르침, 특히 자기 부정의 실천이 가장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문 선생님은 ‘영점’, 곧 공의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 참된 깨달음이라고 천명하신다.
  
그러나 문 선생님의 견해에 의하면 불교는 근본적으로 두 가지 측면, 즉 인격신으로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참사랑 이상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결여하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부처를 가르친 분도 하나님이며 동양에 빛을 주기 위해 불교를 세운 분도 하나님이었다. 모든 종교인들은 불교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데, 특히 그릇된 자아를 극복하고 참된 자아를 발견하기 위한 자기 부정의 방법에 대해서 그러하다.
 


1. 불교의 가치
   
종교 경전 
  
길 가운데 팔정도가 가장 수승하고, 진리 가운데 사성제가 으뜸이라. 덕행 가운데 무욕보다 더한 것은 없으며, 사람 가운데 박은 눈을 가진 이가 가장 뛰어나다.
이것이 하나 뿐인 길이니, 지견을 청정하게 하는 다른 길은 더 없다. 이 길을 따르라. 이것은 악마를 떨게 하리라.
이 길을 따라 가면 괴로움의 끝에 이르리라. 나는 괴로움의 가시 넝쿨을 없애는 법을 알고 이 길을 열어 선언하노라. 법구경 273-275 (불교)
   
머리장식이나 가문이나 태생에 의해 바라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진실과 정의를 가진 자, 그는 청정하다. 그를 또한 바라문이라 한다.
 
바라문 여인의 태에서 태어나고 바라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이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르지 않는다. 자신의 소유물에 얽매여 있는 자 그는 다른 사람들을 “어르신”이라 불러야 한다. 그러나 아무데도 걸림이 없고 자신에 대한 집착을 여윈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여기 이 세상에서 자신의 괴로움이 다 끝났다는 것을 알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초연한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약한 것이든 강한 것이든 살아있는 것에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죽이거나 죽게 하지 않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적의 있는 무리 속에 있으나 적의를 품지 않으며 폭력을 쓰는 무리 속에 있으면서도 평온하며 집착하는 자들의 무리 속에 있으면서도 집착을 떨쳐버린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탐욕과 성냄과 오만과 위선이 바늘 끝의 겨자씨처럼 떨어져나간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법구경 393, 396, 402, 405-407 (불교)
   
잘 장식된 왕의 수레도 닳아 없어지고 이 몸도 그와 같이 늙어버리지만 선한 이의 가르침은 시들지 않는다. 그리하여 선한 이는 선한 이들 사이에 그것을 드러낸다. 법구경 151 (불교)
  
비구들이여, 연기란 무엇인가? “노쇠와 죽음은 재생에 의하여 조건 지어진다.” 비구들이여, 여래들의 출현이 있든지, 또는 그와 같은 출현이 없든지, 사물들의 이와 같은 본질, 즉 이 인과적 위상들, 이 인과적 질서, 저것에 대한 이것의 상관성은 여전히 타당하다. 
상윳타 니카야 2.25 (불교)
  
나는 반야께 경배하노니, 그는 숭앙되어 마땅하도다. 근 무오청정이며, 온 세상도 그를 물들이지 못한다. 그는 빛의 원천이니, 삼계의 모든 이들로부터 어둠을 몰아내며 오탁과 마상으로 일어나는 무명을 거두어 이들을 제도한다. 그 속에서 우리가 귀의처를 찾으며, 비길 데 없는 것이 그의 일이라. 그는 우리가 깨달음의 나래를 얻어 안락에 들게 하며, 눈먼 자에게 빛을 주어 모든 두려움과 고통이 사라지게 하며...
자신의 공생으로 일체 보살의 어머니가 된다. 그는 모든 불법의 보화들을 나누어 주는 이로서 부처의 십력이 일어나게 한다. 그는 부서질 수 없으며, 자신감의 네 기반의 도움으로 돌보는 이 없는 자들을 돌보는 이로다. 그는 생사윤회의 해독제요, 일체법의 본 모습을 여실히 아는 이니, 이들 가운데 길을 잃고 헤매지 않는다. 부처들의 완전한 지혜 반야께서 법륜을 굴리도다. 팔천송반야경 7.1 (불교)
  
말씀 선집 
  
불교 문화권을 형성한 불교는 고대 문명권 내에서 그 환경권 내의 주체 대상의 관계를 중심삼아 인도를 수습하고 새로운 이상을 제시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 가운데 나왔습니다. 
(144.182, 1986.04.24)
   

  
2. 불자의 각성
   
종교 경전 
  
분투하여 욕망의 흐름을 끊으라. 바라문이여! 욕정을 버리라. 일체법이 멸하여 허망한 것임을 알면 멸함이 없는 아는 자가 되리라. 
법구경 383 (불교)
    
일체법이 우리의 마음에 내재하는 까닭에, 우리가 인도에서 발상된 불교를 보더라도 그 이념은 세계적인 이념입니다. 세계적인 관점을 가지고 현실적인 생활무대를 넘어서서 초자연적인 세계의 이념까지 내포한 종교라야 끝 날까지 남아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9.279, 1960.06.12)
    
불교를 중심삼고 동양 종교가 있는데 불교가 섭리에 제일 가까운 것입니다. 유교도 있지만, 유교는 주류가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한 관이 확실치 않습니다. 그리고 불교에도 영적 세계의 체험이 있기는 하지만 불교에서는 일체법의 논리를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격적 신을 모릅니다. 인격적 신을 모르면 안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유대교를 중심삼은 동양의 종교를 주심삼고 아시아를 통일할 수 있게끔 다 해 놓았습니다. (208.312, 1990.11.21)
   
불교는 신이 있는 것을 가르쳐 주지만 실천의 신보다도 법의 신을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인격적신에 대해서는.... (53.297, 1972.03.04)
   
석가모니는 모든 이치를 법에 귀일시켰습니다. 법의 대상은 인간의 대상적 관계인 환경이지, 인간이 아닙니다. 사랑을 표준한 것이 아니라 법을 표준한 것입니다. 그래서 법문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입산수도를 하며 고독한 생활은 하지만 사랑의 이상세계에 대해서는 역시 모호하다는 것입니다. (50.116, 1971.11.06)
    
진여의 참된 본질을 알지 못 할 이유는 아무 것도 없다. 보디삿트바 실라 수트라에 이르기를, “우리 마음의 본바탕은 본래 무구청정하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아음을 바로 알아 그 본바탕이 무엇인지 그 실상을 여실히 안다면, 모두가 보리를 얻으리라”하였다.
육조단경 2 (불교)
    
부처 여래는 청정 법계신의 신묘한 몸을 지니는 까닭에 모든 중생의 마음속에 아무 장애 없이 드나든다. 따라서 그대가 부처를 깨달았을 때, 그것은 실로 삼십이 상(相)과 팔십수형호(隨形好)를 지닌 그대의 마음이다. 요컨대, 부처가 되는 것은 바로 그대의 마음이다. 아니, 부처는 실로 그대의 마음이다. 모든 부처들의 참되고 원만한 지혜의 바다는 자기 자신의 마음과 생각에 그 원천이 있다. 관무량수경 17 (불교)
    
하늘과 땅에서 오직 나만이 존귀한 자이다. 디가 니카야 2.15 (불교)
  
말씀 선집 
  
우리가 기도하는 목적, 혹은 불교도들이 참선을 통해 무아의 경지를 찾아 들어가는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마음의 핵심이 될 수 있는 요소를 깨우치자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의 기준을 세워, 보고 듣고 느끼는 마음의 중심을 천륜 앞에 세운다면, 하나님 앞에 경배 드리며 할렐루야 영광을 돌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2.193-194, 1957.05.19)
    
불교에는 자성을 밝혀야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천상천하에 유아독존이라고 석가모니가 말했는데, 그게 뭐냐 하면, 내가 나한테 물어 보면 나에게 하나님이 들어와 있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못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마음을 밝혀야 됩니다. 마음이 선생보다 나은 것입니다. 마음은 영원한 주인입니다. 그러므로 삿된 마음을 가지기 말라는 것입니다. 공리에 속한, 공된 자리에 선 마음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133.179-180, 1984.07.10)
    
석가모니만 해도 그가 그 신비의 경지, ‘천상천하에 유아독존’이라고 말한 것은 정상적인 일반 사람의 생각 가운데서 그런 경지에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마음과 몸이 공명할 수 있는 어떤 경지에 투입되어 거기서 부딪치는 자아를 각성하게 될 때, 천하의 전부는 ‘야, 내가 제일이구나!’ 하는 경지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것은 새로운 경지의 인식을 통해서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141.235, 1986.02.26)
    
하나님은 어디 가서 있어야 되느냐? 자기를 중심삼지 않고 완전히 전체를 위한 제로, ‘왕 제로’가 되는 곳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소입니다. 하나님은 왕 제로의 자리에 산다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을 만나려면 여러분들이 ‘제로 포인트’보다 더 낮아져야 됩니다. 그리고 살이 되어서 그 ‘왕 제로’의 자리를 보호할 수 있든지 해야 됩니다. ‘왕 제로’의 자리가 마음의 위치라면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살의 위치이기 때문에 그 ‘제로 포인트’를 보호해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까? 그래서 그 하나님적인 것을 찾기 위해 불교로 말하면 참선이라는 것을 해서 양심이 무엇이냐 하고 마음의 밑을 찾아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230.134, 1992.05.01)



유교
    
유교 윤리는 동아시아 문화의 핵심이다. 오늘날 아시아의 급속한 서구화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유교적 가치와 관례를 경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천 년 동안 유교의 도덕철학은 가정생활을 인도해왔고 자비, 정의, 예의 등으로 국왕의 행동반경을 규정해 왔다. 문선명 선생은 유교의 규범적 가르침을 높이 평가한다. 그는 유교의 가르침이 “하늘의 법도와 가장 가깝다” 고 말한다. 그는 부모와 자녀, 임금과 신하, 남편과 아내, 형제간, 친구 사이의 관계를 유교의 오륜은 모든 인간을 위한 탁월한 윤리라고 믿는다.
  
문선명 선생은 하나님에 의해 고무되어 유교가 생겼다고 주장한다. 그는 유교의 천(天)의 개념이 비록 모호하지만 하나님의 개념을 나타낸다고 말한다. 그가 설명하는 유교의 약점은 하나님에 대한 모호한 이해이며, 그 결과 하늘과 지상의 일상생활을 적절히 연결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그는 유교의 장점을 유효하게 이용할 수 있는 새로운 해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이며, 그것의 윤리는 유교의 ‘효’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부모로 모셔야 하며, 유교 윤리가 모심에 필요한 가장 탁월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1.유교의 윤리
 

종교 경전 
  
위대하도다! 성인 공자의 도여! 양양히 만물을 발육케 하고, 높음이 하늘에 닿았도다.
우우히 크도다! 예의가 삼백이고, 위의가 삼천이로다. 이 모두는 그 사람을 기다려,
비로소 행하게 되리라. 중용 27 (유교)
    
떳떳한 덕이 굽어지지 아니함은 녹을 요구해서가 아니며, 언어를 반드시 미덥게 함이 행실을 바르게 하려고 해서가 아니다. 군자는 법을 행하여 명을 기다릴 뿐이다. 
맹자 VII.B.33 (유교)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모두가 몸을 닦는 일을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그 근본이 어지러운데도 그 말단이 잘 다스려지는 일은 없다. 대학 (유교)
    
측은한 마음은 인의 단서요,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은 의의 단서요, 사양하는 마음은 예의 단서요, 옳고 그름을 따지는 마음은 지의 단서이다. 사람이 이 네 가지 단서[四端]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사체(四體)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으니, 이 네 가지 단서를 가지고 있는데도 스스로 인의를 행할 수 없다고 말하는 자는 자신을 해치는 자요, 자기군주가 인의를 행할 수 없다고 말하는 자는 군주를 해치는 자이다.
    
무릇 사단이 나에게 있는 것을 알아서 모두 넓히고 채워줄 줄 알면, 마치 불이 처음 타오르면 샘물이 처음 나오는 것과 같을 것이니, 진실로 잘 채우면 족히 사해(四海)를 보존할 수 있고, 만일 진실로 채우지 못하면 부모도 섬길 수 없을 것이다. 맹자 II.A. 6 (유교)
    
군자는 근본을 세우고자 애쓴다. 근본이 확고하게 서면 도가 생긴다. 효와 우애는 인을 행하는 근본일 것이다! 논어 1.2 (유교)
   
대저 효란 덕의 근본이고 모든 가르침이 비롯된 것이다. 우리의 몸은 머리카락과 피부에 이르기까지 모두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니, 감히 이를 훼손하거나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 몸을 세우고 도를 행하여 후세에 이름을 떨침[揚名]으로써 부모를 빛나게 하는 것이 효의 끝이다. 대저 효는 어버이를 섬기는 데서 시작하고, 임금을 섬기는 것이 그 다음이며, 몸을 세우는 것[立身]이 그 끝이다. 효경 1 (유교)
   
사람의 도의란 무엇인가? 아버지로서의 자애, 자식으로서의 효, 형으로서의 어짊, 아우로서의 공경, 남편으로서의 의로움, 아내로서의 순종, 어른으로서의 은혜로움, 어린이로서의 유순함, 군주로서의 어짊, 신하로서의 충성, 이 열 가지를 사람의 도의라고 한다.
예기 7.2.1 (유교)
  
말씀 선집 
  
유교에서는 공자의 가르침을 따르는데 공자의 그 가르침을 중심한 예법을 보면 천법에 가까운 것이 많습니다. (31.292, 1970.06.04)
    
유교는 인간의 도리를 가르쳤습니다. 유교는 중심사상이 뭡니까? 원형이정(元亨利貞)은 천도지상(天道之常)이요, 인의예지(仁義禮智)는 인성지강(人性之綱)이라 했습니다. 원형이정이 천도지상이라는 것은 여기에 인격적인 사랑이 없습니다. 법을 말했습니다. 인의예지는 인성기강이인데, 이것은 삼강오륜을 말합니다. (296.272, 1998.1110)
   
길을 가더라도 동양사상은 어르신이 먼저 서야 됩니다. 왜? 먼저 나왔으니까. 그렇게 환경을 맞추려고 그런다는 것입니다. 나중된 사람은 나중에 서고 말입니다. 높은 것은 높은 것으로서 낮으면 낮은 것으로서, 앞의 것은 앞의 것으로서, 뒤의 것은 뒤의 것으로서, 위의 것은 위의 것으로서 전후를 갖추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관이라는 것은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영원히 불변하는 것입니다. (168.252, 1987.09.27)
    
삼강오륜에서 오륜은 부자유친(父子有親),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으로 5대 조건입니다. 삼강은 충·효·열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가야 할 모든 내용입니다. 이 내용을 보면, 하늘의 뜻 앞에 외적 내용을 중심삼고 사탄을 방어할 수 있는 환경적 여건을 이루어 놓은 것이 천사장적 뜻의 선포였다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295.179, 1998.08.28)
   
유교에서는 삼강오륜을 가르쳐 줍니다. 효자가 무엇입니까? 사랑을 중심삼고 생명을 다하여 부모를 모시는 아들을 말하지 않습니까? 그럼 충신이 무엇입니까? 사랑을 바탕으로 해서, 다 바쳐 희생하며 나가는 사람, 곧 애국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143.153, 1986.03.17)
   
역사시대에 우리 한국에는 유교사상으로 말미암아 효자의 도리를 교육했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3년 상을 치러야 된다고 해서 산에 가서 살고 그랬습니다. 그건 진정으로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것입니다.
  
한국 민족이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부모를 위해서 자기의 일생을 전부 매장해 버리고 권위니 무엇이니 출세하여 무슨 좌정승 우정승이 되더라도 그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다 버리고 효의 길을 찾아가게 한 것은 하늘이 한국 백성에게 유교를 세워 교육하기 위한 좋은 전통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의의가 없습니다. 
(181.217,1988.10.03)
  
하나님과 나와 관계를 맺느냐 이것입니다. 부자의 관계가 좋기는 좋습니다. 그게 뭐냐? 종적 관계입니다. 유교의 가르침이 맞는 것입니다. 부자의 관계는 설명을 통해서나 힘으로써 부정할 수 있는 내용이 절대 없습니다. 자기 아버지로 알고 있는데, ‘그건 네 아버지가 아니다’라고 한다고 해서 그것이 설득이 됩니까?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난 내 자신임을 틀림없이 알게 될 때 그것을 부정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198.298, 1990.02.05)
   
개인적으로 효자로, 국가와 민족적으로는 충신의 기개를 갖고 하늘을 대해야 합니다. 동양의 삼강오륜 같은 것이 다 일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르쳐주기 위함입니다. 하늘에 대한 충효도 같은 것입니다. 부모에게 효도하지 못하는 자는 하늘 앞에 효자가 될 수 없습니다. 나라에 대한 충신의 절개를 갖지 못한 자는 도저히 하늘 앞에 충신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7.66, 1959.07.12)
  
    
3. 불교의 지혜
   
종교 경전 
  
수보리여, 참으로 여래가 “나는 법을 설했다”는 생각을 품는다고 말하지 마라. 만일 누가 이와 같이 말하기를 “여래는 법을 설했다”고 한다면, 그는 거짓을 하며, 사실이 아닌 것에 집착하여 나를 비방하는 것이다. 그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설법’이라고 말하지만, 설법의 이름을 얻을 만한 어떤 법도 없기 때문이다. 금강경 21 (불교)
  
여래들에 의하여 이루어졌던 것, 그것이 또한 내 자신이 이룬 것이니, 거기에는 조금의 증감도 있을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자아실현의 세계는 일체의 언설이나 분별에서 자유로우며, 언설의 이원성을 또한 떠나 있는 까닭이다……. 이러한 까닭에 내가 말하기를 여래는 깨달음을 얻은 이래로 적멸 열반에 들기까지 그 동안 한 말이 아무 것도 없으며 영원히 단 한 마디도 하는 법이 없다 하느니라. 능가경 61 (불교)
   
말씀 선집 

동양에 가면 불상이 있는데, 그 불상이 말을 합니까? 불상을 보게 될 때 그 입으로는 말도 안 하고, 욕도 안 하고, 칭찬도 안 하고 ‘쓰윽’ 생각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바라보는 데도 한 곳만 ‘주욱’ 보지, 여기저기 안 보는 것입니다. 보려면 중요한 한 곳만 보면 됐지, 시시하게 잡다한 것은 봐서 뭘 할 것입니까? 금보따리 하난 가지고 그것만 보면 됩니다. 그러니까 복잡한 세계를 수습하는 최고의 왕이 무엇이냐? 침묵이다 이것입니다. (228.77, 1992.03.15)



2. 유교의 하늘 개념
   
종교 경전 
  
하늘이 도와주는 것은 순종하기 때문이요, 사람이 도와주는 것은 신실하기 때문이다. 신실함을 이행하여 순종할 것을 생각하고 또 그것으로 어진 이를 숭상한다. 이 때문에 하늘에서 도와주니 좋아서 이롭지 않음이 없다. 역경, 계사전 1.12.1 (유교)
  
악정자가 맹자를 보고 말했다. “제가 노의 평공에게 말해 올렸고, 평공도 선생님을 만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측근자인 장창이라는 자가 방해했으므로 평공이 끝내 오지 못했습니다.”
이에 맹자가 말했다. “사람이 가는 것은 시키는 무엇이 있으므로 가는 것이고, 멈추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멈추게 하는 것이 있어서 멈추게 되는 것이다. 가는 것이나 멈추는 것이나 사람의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노라의 평공을 못 만나는 것도 천명이다. 장창이라는 자가 어떻게 나를 평공에게 만나지 못하게 방해를 할 수 있겠느냐?” 
맹자 I.B 12 (유교)
   
군자는 나라를 창건하고 전통을 전하여 계승할 수 있게 할 뿐이다. 저 공을 이루는 것은 하늘의 뜻이다. 맹자 I.B 14 (유교)
   
공자께서 광 지방에서 위태로운 지경에 빠졌을 때, 말씀하셨다. “문왕은 이미 돌아가 버렸지만, 그가 남긴 문화는 나에게 전해져 있지 않느냐? 하늘이 그의 문화를 없애버리려 했다면 후세 사람들이 그 문화의 혜택을 받고 동참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듯 하늘이 그 문화를 없애지 않고자 하고 있는 이상, 광 지방의 몇몇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하겠느냐?”
노어 9.5 (유교)
   
하늘의 노여움을 공경하여 감히 멋대로 안일하지 말며 하늘의 변함을 공경하여 감히 멋대로 행동하지 말지어다. 넓은 하늘이 매우 밝으시어 그대와 더불어 나가고 왕래함에 미치시며 넓은 하늘이 매우 밝으시어 그대와 더불어 유유히 놀러 다님에 미치시느니라.
시경 254 (유교)
  
말씀선집 
  
예식에 있어서 인류를 대표할 수 있는 내용을 가르쳐 준 사람이 공자입니다. 공자는 한국 사람입니다. 이상헌 씨의 『영계의 실상과 지상생활』을 보면, 공자가 갓을 쓰고 한국 도포를 입고 대님을 맸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실을 두고 볼 때 공자는 한국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방의 나라를 상당히 추모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분을 통해서 유교는 외적인 인간의 도의적인 면의 모든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공자의 전통적 사상이 뭐냐 하면, ‘원형이정(元亨利貞)은 천도지상(天道之常)이요, 인의예지(仁義禮智)는 인성지강(人性之綱)’입니다. 총평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인격적 인을 몰랐습니다. 인격적이라 하면 지·정·의를 갖춘 것을 말합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지식을 갖추어 뜻을 세울 수 있는, 지·정·의를 중심삼은 뜻이라는 것이 변하지 않는 지식이요, 변하지 않는 정이어야 되는데, 절대적인 신이 아니고는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몰랐기 때문에 인격적 신을 모릅니다. 이치적인 신은 알았지만 인격적인 신을 몰랐습니다. 그것은 천사장형입니다. 그래서 도의적인 면에서 세계 인류에게 영향을 미친 것입니다. 아시아권입니다. 아시아권이 근원이기 때문에 아시아권에 영향 미쳤다는 사실은 놀라운 것입니다. 
(295.174-175, 1998.08.28)
  
유교를 보면 하나님에 대해서는 상징적입니다. 하나님의 인격에 대해서 구체적인 내용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악을 행하며 벌을 받고 선을 행하면 복을 받는다고 행동적인, 윤리적인 면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53.231, 1972.02.28)
    
공자님은 ‘위선자(爲善者)는 천보지이복(天報之以福)하고 위불선자(爲不善者)는 천보이지이화(天報之以禍)니라’라고 했는데 이것은 막연합니다. 천(天)이 뭐냐 할 때 이것은 막연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38.260, 1971.01.08)
   
한국 법에 어른으로부터 뭘 받을 때는 양손으로 받게 돼 있습니다. 그것은 수평이 돼야만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받는 것은 수직을 통해서 90도로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도리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인심은 천심이라 하지요? 우리의 모든 규례는 양심의 도리에 따라서 상대적으로 빚어져 나온 것이기 때문에 수평이 돼야 됩니다. 
(172.237, 1988.01.01)
   
유교사상은 원형이정(元亨利貞)은 천도지상(天道之常)이요···.천도지상이 무엇입니까? 하늘의 뜻이 가는 길입니다. 인의예지(仁義禮智)는 인성지강(人性之綱)이라 하는데, 인(仁)과 의(義)를 행하는 것은 사람이 가야 할 길입니다. 이 둘이 맞아야 됩니다. 하늘(天)을 빼놓고도 안 되고 인의예지(仁義禮智)를 빼 가지고도 안 됩니다. 그것을 연결시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天)이 막연한 천이 되었고, 인의예지가 막연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연결시키느냐를 모릅니다. 그래서 이 두 세계 형태는 역사에 있어서 그 실체적 기준을 형성하지 못 하고 흘러가 버리는 것입니다.
    
통일 원리를 중심삼은 것이 이성성상으로 나와서 어떻게 나와 관계를 맺었고, 사회의 어떤 형태를 중심삼고 실체권을 남기고 있느냐 입니다. 재창조의 실체권입니다. 우리 인간이 바라는 이상이 무엇이냐? 지식도 아니요, 권력도 아니요, 돈도 아닙니다. 사랑의 사제지애, 부자지애, 전부 애(愛)가 아닙니까? 군신지애(君臣之愛)···하늘도 아들이 필요합니다. 천자지애(天子之愛), 혼자는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185.272, 1989.01.17)
   


유대교
    
하나님의 섭리 중 최초의 중요 종교로서 유대교는 세계 종교 가운데 독특한 위상을 확보하고 있다. 오랜 옛날 우상숭배 시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부르시고 그들과 영원한 약속을 맺었다. 오늘날 많은 유대인들은 투철한 믿음과 하나님의 은총과 선민 등 특별한 운명에 대한 두려움 가운데 계약을 지키는데 열성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특색을 지닌 유대교는 보편적 사명을 지니고 있다는 확신에 의해 항상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선지자들은 유대인들이 선택 받은 것은 그들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의 빛을 모든 나라에 비추기 위한 것이라고 선언했다. 유대 역사에 보편주의와 민족중심주의 사이의 긴장이 계속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문선명 선생은 일관되게 유대교는 지구적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대인들은 다른 어떤 민족보다 더 많은 고난을 겪어왔다. 육백만 유대인이 학살당한 홀로코스트에서 보듯이 이 천년 동안 나라 없이 방황하고 억압받고 박해 받아왔다. 그들은 고난의 와중에도 어떻게 하나님과 관계를 계속 맺어왔을까? 하나님의 구원역사에서 유대인의 고난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문선명 선생은 이 질문에 대해 여러 가지로 대답한다. 
    
그것은 유대인을 강하게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훈련 과정이며, 유대인을 하나로 뭉치게 하여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오게 하려는 것이며, 이 세상을 하나님께 인도할 수 있는 지도자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유대교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과의 화해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그럼에도 특히 예수님과 유대인 제자의 맥락에서 볼 때 기독교의 반유대주의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음으로써 자신들의 길을 잃게 됐다고 생각하면서도 유대 형제 돌보기를 그치지 않았던 사도 바울의 순수한 고뇌가 문선명 선생의 가르침에도 드러난다.
    
그러나 바울과 달리 문선명 선생은 유대인의 개종을 강조하지 않는 다. 그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이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면서 세계평화 구현을 위한 종교간 연합을 형성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현재적 의지를 실현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문선명 선생은 현재의 이스라엘 국가를 유대인의 특별한 고향으로 인정하지만, 다만 다른 사람들의 고통의 대가여서는 안 된다고 하신다. 그는 이스라엘의 생존과 번영은 이웃 아랍-이스라엘의 성서적 근원까지 소급하여 역사적 뿌리에 대한 갈등 해소 - 과의 순수한 평화와 화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가르친다. 그는 복귀 역사관의 입장에 따라 유대인과 아랍인 사이에 서로 사랑하고 자기 이익을 넘어설 것을 강력하게 요청한다.
 

 
1.선민
    
종교 경전 
  
이사야 60장 21절에 나오듯이 “네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 영원히 땅을 차지하리니 그들은 내가심은 가지요 내가 손으로 만든 것으로서 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인즉…….” 모든 이스라엘 민족이 앞으로 올 세상에 그들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미쉬나, 산헤드린 10.1 (유대교)
    
이제 너희가 나의 말을 듣고 내가 세워준 계약을 지킨다면, 너희야말로 뭇 민족 가운데서 내 것이 되리라. 온 세계가 나의 것이 아니냐? 너희야말로 사제의 직책을 맡은 내 나라, 내 백성이 되리라. 출애굽기 19.5-6 (기독교)
    
오! 이스라엘의 자손들아! 내가 너희에게 준 은혜를 기억하고 나와 맺은 계약을 이행하라. 내가 너희와 맺은 계약을 이행할지니 나를 경외하라. 꾸란 2.40 (이슬람)
  
거룩한 분이 이스라엘을 귀하게 여기고자 하셨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많은 법과 계명을 내리셨다. 미슈나, 마코트 3.16 (유대교)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몸 바친 거룩한 백성이 아니냐?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세상에 민족이 많지만, 그 가운데서 너희를 뽑아 당신의 소중한 백성으로 삼으신 것이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택하신 것은 너희가 어느 민족들보다 수효가 많아서 거기에 마음이 끌리셨기 때문이 아니다. 사실 너희는 어느 민족보다도 적은 민족이다. 다만 너희를 사랑하시고 너희 선조들에게 맹세하신 그 맹세를 지키시려고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강한 손으로 너희를 이끌어내신 것이다. 그리하여 이집트 왕 파라오의 손아귀에서, 그 종살이하던 집에서 건져내셨다. 그러므로 너희는 알아야 한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분이야말로 참 하나님이시다. 당신을 사랑하여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천 대에 이르기까지 사랑으로 맺은 계약을 한결같이 지켜주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다.
너희는 지난 사십 년간 광야에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어떻게 너희를 인도해 주셨던 가 더듬어 생각해 보아라. 하나님께서 너희를 고생시킨 것은 너희가 당신의 계명을 지킬 것인지 아닌지 시련을 주어 시험해 보려고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너희를 고생시키시고 굻기시다가 너희가 일찍이 몰랐고 너희 선조들도 몰랐던 만나를 먹여주셨다. 이는 사람이 빵만으로는 살지 못하고 여호와의 입에서 떨어지는 말씀을 따라야 산다는 것을 너희에게 가르쳐주시려는 것이었다. 지난 사십년 동안 너희 몸에 걸친 옷이 떨어진 일이 없었고, 발이 부르튼 일도 없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사람이 자기 자식을 잘 되라고 고생시키듯이 그렇게 너희를 잘 되라고 고생시키신 것이니, 이를 마음에 새겨두어라.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가 보여주신 길만을 따라가도록 하여라.
신명기 7.6-9, 8.2-6 (기독교)
    
여호와께서 태중에 있는 나를 이미 부르셨고 내가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에 이미 이름을 지어 주셨다. 내 입을 칼처럼 날을 세우셨고 당신의 손 그늘에 나를 숨겨주셨다. 날카로운 화살처럼 나를 벼리시어 당신의 화살 통에 꽂아두시고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종, 너에게서 나의 영광이 빛나리라.”
“네가 나의 종으로서 할 일은 야곱의 지파들을 다시 일으키고 살아남은 이스라엘 사람을 돌아오게 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나는 너를 만국의 빛으로 세운다. 너는 땅 끝까지 나의 구원이 이르게 하여라.”
  
말씀 선집 
  
역사상에 승리했다는 입장에 서서 ‘우리 민족은 승리한 민족이다’라는 내용을 제창한 종교는 없습니다. 유대교 외에는 없습니다. 야곱 시대에 와서 천사와 싸워 이겼다는 것입니다. 그 천사와 싸운 것입니다. 인간세계와 싸운 것이 아닙니다. 영적 세계입니다, 영적 세계.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의 실체 존재인 천사와 싸워서 이겼다는 것입니다. 
    
지상세계의 사람과 맞붙어 싸워서 이긴 게 아닙니다. 영적 세계와 싸워서 승리한 하나의 대표적인 민족으로 지상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이스라엘 나라였다는 것입니다. 유대교와 유대 나라를 중심으로, 아담으로부터 22대를 거친 이후에 이스라엘 나라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나온 하나님의 선택받은 미족이라는 것입니다. 선민사상이 투철한 민족으로서 2천년동안 유리고객하면서도 자기들의 그 전통적 역사를 상실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환경, 어느 곳에 가든지 하나님 앞에 택함 받은 민족이라는 것을 일변도로 주장하는 것은 역사시대에 어떤 민족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149.85, 1986.11.17)
    
하나님이 이 땅위에 이스라엘 민족을 만민이 찬양하게 하기 위해서 세운 것입니다. 만민이 이스라엘을 본받고, 이스라엘을 하나님과 같이 찬양해 주기를 바랐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은 그러한 전통의 역사를 세우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서 챔피언의 자리인 이스라엘권은 야곱으로부터 시작했지만 그 야곱의 대를 이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섭리를 중심삼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세계의 어떠한 민족보다도 우월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은 어떻게 되었느냐? 자기들이 선민이라는 선민권은 높였지만 하나님의 뜻을 위한 사명과 소명권을 망각했던 것입니다.
    
그들을 선민으로 세운 것은 하나님 대신 세계를 사랑하고, 하나님 대신 사랑의 중심이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소명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그 소명권의 자리에 높이 올라가 그걸 중심으로 만민을 전부 사랑해야 할 민족이 사랑하지 않고 사랑받겠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169.265-266, 1987.11.01)
    
그러면 택해 세운 이스라엘 나라와 이스라엘 교단이 가야 할 길이 뭐냐? 그것은 우주적인 것입니다. 사명이 우주적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특정 민족이 택함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 특정 민족만을 위해 가야 할 것이 아니라 인류를 위해서 가야 할 길이라는 것입니다.
(168.304, 1987.10.01)
   


2. 유대인의 고난
    
종교경전 
  
푸줏간의 양처럼 우리를 넘기시고 이 나라 저 나라에 우리를 흩으시고, 돈벌이도 안 되는 일인데 헐값으로 당신 백성을 파셨습니다. 이웃 백성들에게 욕을 당하게 하시고 조소와 조롱거리로 만드셨습니다. 우리를 이방인들의 이야깃감으로 만드시니 뭇 백성이 우리를 가리켜 손가락질합니다. 모욕당하지 않는 날이 하루도 없고 부끄러움으로 얼굴을 들 수도 없습니다. 욕설과 폭언 소리에 귀가 따갑고 미움과 보복의 눈길이 무섭습니다. 우리는 당신을 잊은 일도 없으며 당신과 맺은 계약을 깨뜨린 일도 없건만 마침내 이런 일을 당하였습니다. 우리는 당신을 배반한 일도 없고 일러주신 길을 벗어나지도 않았건만, 당신께서는 여우의 소굴에서 우리를 부수시었고, 죽음의 그늘로 덮으셨습니다. 아무려니,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였겠으며 다른 신에게 머리를 조아렸으리이까? 마음의 비밀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어찌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셨으리이까? 당신 때문에 우리가 날마다 죽임을 당하며 도살장의 양처럼 찢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시편 44.11-22 (기독교)
    
이스라엘 백성을 올리브 나무에 비유할 수 있다. 올리브가 큰 압력을 받을 때 기름을 내뿜듯이 이스라엘 백성도 고통을 통해서만이 의인의 모습으로 되돌아간다.
탈무드, 메나호트 53b (유대교)
    
“사랑하다가, 나는 그만 병들었다오.”[아가 2장 5절]이스라엘 사람들이 거룩한 주 하나님 앞에서 말하였다. “만 우주의 주인이시여, 내게 주어진 모든 질병이 나로 하여금 당신에게 더 사랑받게 해주었습니다.”
또 다른 구절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거룩한 주,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만 우주의 주인이시여, 나에게 이 나라가 주고 있는 모든 관의 이유도 내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찬송가 랍바 2.5 (유대교)
    
우리 모두 양처럼 길을 잃고 헤매며 제 멋대로들 놀아났지만, 여호와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구나. 이사야 53.6 (기독교)

말씀 선집 
  
이스라엘 종교를 중심삼고 보면 세계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불교가 나와 있고, 유고가 나와 있고, 힌두교가 나와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종교가 많다 하더라도, 이 종교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수습해 가지고 하나의 세계로 가야 되며, 전 세계의 인류가 전부 가라져서 싸울 것이 아니라 하나로 만들어야 되며, 종교와 종교가 싸울 것이 아니라 하나로 만들어야 된다는 사상이 있어야 됩니다. 
  
종교를 하나로 만들 수 있는 사상이 있음과 동시에, 모든 이스라엘 민족이면 민족을 중심삼고 볼 때, 그 민족에게는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민족을 규합해서 하나로 만들어 끌고 갈 수 있는 사상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 실현은 세계적이요 인류적이기 때문에, 그 창조이상에 일치될 수 있는 이러한 사상적 내용을 이스라엘 교단과 이스라엘 민족이 갖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168.304, 1987.10.01)
    
세계 역사노정에 있어서 제일 끈기 있게, 오랜 역사를 가진 단일민족으로서 망하지 않고 버터 나오는 나라가 몇 나라가 되느냐? 총합해서 볼 때, 유대 나라입니다. 2천년 동안 나라 없이 수많은 나라의 말발굽에 밟혀 피를 흘리고, 학살을 당하고, 별의별 천대를 지긋지긋하게 받았지만 아직까지 그 전통과 위신과 자세를 상실치 않고 버젓이 남아 있는, 세계의 유리고객이 되었어도 자기의 주도적인 민족사상을 지니고 남아 있는 민족이 유대 민족입니다. 
    
그 유대 민족이 그렇게 고생해서 무엇을 했느냐? 핍박이 가중되면 가중될수록 그 자극으로 말미암아 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돈이 필요하다는 것, 내적인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언제나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 민족은 거지 생활을 하면서도 자식을 공부시킨 것입니다. 돈을 벌어야 했던 것입니다. 철천지한을 풀기 위해서. ‘내가 감당할 힘의 지팡이는 돈이요 지식이다. 이러니 그 민족이 거기에 모든 것을 집결할 수 있는 입장으로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하나님이 벌을 주사 유대 민족을 그렇게 고생시켰느냐, 아니면 끝까지 참아 남게 하기 위한 민족이 되게 훈련을 시켰느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하나님이 사랑하사 그런 훈련을 시켰다면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축복은 그런 고생을 지긋지긋하게 한 민족이 받을 것이다. 이것은 당연한 결론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볼 때, 하나님이 길잡이를 세운 것은 길잡이를 해 산을 점령해서 점령한 특권적인 권위를 다 갖추게 하는 것이지, 길잡이의 사명만 부여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길잡이 사명만을 하기 위한 특수 민족은 그 민족의 길잡이적인 입장에서만 특수 민족입니다. 그것을 다 필하고 난 후에 만민을 특수적인 가치와 영광의 자리에 세우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구원섭리입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 특수적인 민족의 내용은 어떠해야 되느냐? 만민을 포괄할 수 있는 자주적인 역량을 가져야 됩니다. 그것을 못 갖추면 이 세계를 소화할 수 없을 것입니다. (81.190-191, 1975.12.28)
    
모든 종교를 규합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희생시킴으로 말미암아 세계를 하나로 규합하려 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었습니다. 6백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종교를 하나 만들면 인류가 하나 되어 가지고 하나로 돌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종교를 규합하는 가운데 유대교는 얼마나 단결됐느냐? 제일 강력히 단결된 종교단체입니다. 어떤 종교단체보다도 그들은 직접 당했기 때문에 제일 강력히 하나 될 수 있는 유대교가 되었던 것입니다. 종교를 하나 만드는 데 누가 중심자리에 설 수 있느냐? 유대교가 중심자리에 안 설 수 없습니다. 이것이 섭리적인 관점으로 본 레버런 문이 설명하는 결론입니다. (105.126-127, 1979.10.04)



3. 유대교와 기독교의 관계
    
종교 경전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내양심이 성령 안에서 이것을 증언하여 줍니다. 내게는 내 종족을 위한 큰 슬픔이 있고, 내 마음에는 끊임없는 고통이 있습니다. 나는 육신으로 내 동족 내 겨레를 위하는 일이면, 내가저주를 받아서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내 동족은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이 있고, 하나님을 모시는 영광이 있고, 하나님과 맺은 언약들이 있고, 율법이 있고, 예배가 있고, 하나님의 약속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신 것은 아닙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복음을 따라 판단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러분이 잘 되라고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지만, 택하심을 받은 것을 따라 판단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조상 덕분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선물과 부르심은 철회되지 않습니다. 전에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던 여러분이, 이제 이스라엘 사람의 불순종 때문에 하나님의 자비를 입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지금은 순종하지 않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도 여러분이 받은 그 자비를 보고 회개하여, 마침내는 자비하심을 입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않는 상태에 가두신 것은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려는 것입니다. 
로마서 9.1-4, 11.1, 28-32 (기독교)
  
말씀 선집 
  
오늘날 유대백성들이 땅 위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민족은 하나님의 뜻을 배반한 미족인데 어찌하여 이들을 하나님께서는 버리시지 못합니까? 물론 유대백성들이 곁길로 갔지만 하나님의 택한 선민으로서 하나님을 위하여 변치 않는다는 마음을 갖고 나왔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반대되는 입장에 처해 있으나 어느 한 때 하나님을 찾아들어 가게 될 때에는 어느 민족보다도 하나님의 참으시는 일, 견디시는 일을 맡을 수 있는 민족이기 때문에 섭리의 길을 배반했지만 버리시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역사과정에서 어떤 역경이 부딪쳐 올지라도 하늘을 위하여 섭리역사를 붙들고 나서는 민족이 있다면 그 민족은 세계를 지배할 것입니다. 가령 자기들이 가진 결심과 각오가 하늘을 위하는 마음에 근거되어 있는 한, 한 때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사탄의 심부름꾼 노릇을 했다 할지라도, 끝까지 참을 수 있는 절개를 갖고 나간다면 사탄은 결국 굴복하고 마는 것입니다. 
사탄은 참으려야 참을 수 없고 견디려야 견딜 수 없습니다. 사탄이 참을 수 있고 견딜 수 있다면 하나님을 배반하여 6천년 역사를 거슬러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한 민족이 어떤 역경에 부딪쳐도 자기의 민족이 하늘의 선민이라는 것을 주장한다면, 그 민족은 세계에서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날 유대백성이 세계의 경제권을 쥐고 있고, 그 외 여러 분야에서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도 일리가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4.243-244, 1958.05.18)
  
유대교는 구약을 중심한 뜻의 조상이니 제1세형 맏형이요, 기독교는 신약을 중심한 제2세형 둘째형이라면 통일교는 약속을 이룰 성약의 내용을 갖춘 3세형 막둥이 동생입니다. 이 세 종교는 뜻의 3형제이니 그들의 모태인 이스라엘과 미국과 한국은 뜻의 3형 제국이 되는 바, 유엔에서 사탄편 공산권으로부터 이들 세 나라가 똑같이 몰리고 있는 것은 뜻 적으로 공동 운명에 처해 있는 까닭입니다. 이 세 나라가 일체화하여 손을 잡고 유엔 본래의 사명과 기능을 회복하여 내적으로는 종교를 통일하고 외적으로 세계 통일을 이루어야 합니다. 
(88.211, 1976.09.18)
   


4. 이스라엘 땅
    
종교 경전 
  
시온을 생각할 때, 나는 잠잠할 수가 없다. 예루살렘을 생각할 때, 나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그의 정의가 동터 오고 그의 구원이 횃불처럼 타오르기까지 어찌 잠잠할 수 있으랴? 마침내 뭇 민족이 너의 정의를 보고 모든 제왕이 너의 영광을 보리라. 여호와께서 몸소 지어주실 새 이름. 사람들이 그 이름으로 너를 부르리라. 너는 여호와의 손에 들려 있는 화려한 관처럼 빛나고 너의 하나님 손바닥에 놓인 왕관처럼 어여쁘리라. 다시는 너를 ‘버림받은 여자’라 하지 아니하고 너의 땅을 ‘소박데기’라 하지 아니하리라. 이제는 너를 ‘사랑하는 나의 임’ 이라, 너의 땅을 ‘내 아내’라 부르리라. 여호와께서 너를 사랑해 주시고 너의 땅의 주인이 되어주시겠기 때문이다. 
이사야 62.1-4 (기독교)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너희를 불쌍히 보시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오게 해주실 것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쫓겨 갔던 너희를 비록 하늘과 땅이 맞닿는 데까지 흩어져 갔더라도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너희를 거기에서 모아 데려오실 것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너희 선조들이 차지했던 땅으로 데려오시어 그 땅을 다시 차지하게 하실 것이다. 그리고 너희를 선조들보다 더 잘되게 해주시고 더 불어나게 해주실 것이다.
신명기 30.3-5 (기독교)
    
그리고 하나님이 모세이후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노니, 그 땅에 살라. 그러나 내세의 약속이 임하게 되면 우리는 여러 나라에서 모인 무리로서 너희를 데려가리라. 
꾸란 17.104 (이슬람)
  
말씀 선집 
  
이스라엘은 아무리 어려운 시대와 환경을 거치더라도 자기들이 선민이라는 의식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가는 곳마다 핍박과 서러움이 언제나 그들을 맞아 주었지만 그들은 그 서러움을 통하여 한날의 희망을 표준하고 나갔던 것입니다. 그 서러움이 그들을 낙망하게 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들을 단결하게 하고 어려운 환경을 타개하게 하는 역사적인 투쟁과정을 남기게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슬픔이라는 것은 낙망의 조건이 될 수도 있지만, 목적을 성사시킬 수 있는 내적인 힘을 결성하는 조건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민족이 염원한 것은 무엇이냐? 유일신을 중심삼고 국가와 민족이 심정일치의 이념권 내에 서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추구해 나오면서 그들은 죽더라도 그것을 마음에 품고 죽었습니다. 그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을 한으로 남겼습니다. 그들이 죽을 때 부모로서 혹은 어떠한 지도자로서 후손 앞에 그 뜻을 이룰 것을 유언으로 남겼습니다.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슬픈 역사과정을 거쳐 온 민족일수록 그 역사과정을 통하여 세계적인 승리의 터전을 맞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미루어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나라 없는 가운데 슬픈 운명에 부딪치면 부딪칠수록, 자기 민족에게 나타나는 환경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언제나 국가 관념을 가졌고 동족애를 더하여 갔던 것입니다. 그 슬픔에 부딪치게 됨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국가를 추구하게 되었고, 현재 자기들의 구속된 환경을 타파해 버리고 해방된 새로운 환경을 추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슬픔이 곧 그러한 동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민족은 어느 때, 반드시 승리의 한 때를 맞는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30.247-248, 1970.03.29)
   
이스라엘 민족은 주님을 만나면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천하통일 할 줄 알았습니다. 사랑하는 것에 자기 자신을 투입하고 역사를 재창조하여 사랑의 대상을 찾아 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오시는 주님과 더불어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투입해서 로마와 아시아를 통일하겠다는 하나님의 섭리를 몰랐기 때문에 예수님을 죽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죽임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민족은 2천 년 동안 유리고객이 되어서 말굽에 밟혀 죽고, 총칼에 맞아 죽고, 찢겨 죽는 갖은 수욕을 다 당한 것입니다. 그 후 주님이 다시 올 수 있는 재림시대인 1948년도를 중심삼고 한국의 독립과 같은 그런 이스라엘의 독립이 오는 것입니다. (208.286-287, 1990.11.20)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 무엇이냐 하면 나라를 찾는 것입니다. 종족적 메시아는 예수님이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를 중심으로 해서 나라를 찾아 그것을 이루지 못한 것을 탕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축복가정은 예수님의 입장에서기 때문에 나라를 복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북조10지파와 남조 2지파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레아와 라헬에 의하여 하나가 되어야 했던 것이 전쟁에 의해서 국가적인 기준으로 분할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모세시대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입장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것을 상징하는 것이 오른쪽 강도와 왼쪽 강도입니다.
    
그것이 가인 아벨의 입장으로 세계적인 기준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 기준 위에 재림주가 와서 전환을 하고 승리권을 이루어서 통일해야 하기 때문에 재림주의 사명을 지닌 사람은 공산주의를 정비해야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공산주의를 타도하는 세계 제일의 챔피언으로 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하나 만들어야 하고, 세계를 하나로 만들어야 하고, 미국조차도 수습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종교계와 정치계가 모두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과 기독교가 원수지요? 이스라엘과 이슬람권 중동이 원수 관계입니다. 이것을 평화롭게 만들어야 합니다. (250.331, 1993.10.15)
   


기독교
    
기독교는 문선명 선생이 물려받은 종교이므로, 그는 다른 종교보다 더 깊이 이야기할 수 있다. 그의 주된 가르침도 기독교의 성격과 관련된 기독교의 핵심적 전통, 교회 일치, 기독교의 세계 복음화 등과 직접 관련된 것이다.그리스도의 예에서 보듯이 기독교의 핵심 전통은 사랑과 희생이다. 
    
기독교인은 예수님이 그러했던 것처럼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나 하나님의 뜻을 위해 고통 받는 것을 주저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다라서 기독교는 쉽고 편안한 종교가 아니며, 언제나 헌신과 용기, 그리고 확신이 필요한 종교다. 기독교인의 사랑은 기독교의 근본적인 핵심 전통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원수를 사랑하고 자기를 모함하고 해치는 사람을 용서하라고 가르쳤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기독교인의 친교는 참으로 숭고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사랑이 완전하게 실천되지 않고, 종종 다른 교회 신자와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해서 기독교는 초창기부터 내부 갈등의 문제를 내재하고 있었다. 기독교의 사랑보다 교리의 결벽주의와 교파의 이익을 내세우면서, 교회는 서로 싸우고 핍박하여 전반적으로 기독교에 큰 피해를 주었다. 문선명 선생은 기독교 핵심 진리를 명확히 천명하면서 사랑의 실천과 교회 일치를 위해 헌신해 왔다.
    
기독교는 모든 인류를 구원할 세계적 사명을 지니고 있다. 문선명 선생에 있어서 이것은 복음을 설교하거나 이교도를 개종시키는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 세계의 많은 종교 중에서 지구상의 모든 문명을 민주적 가치와 사랑과 박애의 윤리로 이끈 것은 기독교의 혁혁한 공헌이다. 교회의 궁극적 사명은 이러한 가치의 토대 위에 예수님이 다시 강림할 때 세워질 하나님의 지상천국을 준비하는 것이다.
    
이 항목은 교회의 사명 성취에 대한 성공과 실패의 기록으로서 기독교의 역사를 일별하고 있다. 기독교 역사는 적지 않은 결함을 노정시킨 역사였다. 교회가 권력과 부, 그리고 세상의 권위라는 세속적 가치를 추구했을 때는 계속 실패했다. 반면, 교회가 그리스도의 희생과 전통을 중심삼고 참된 신앙의 자유를 추구할 때는 한결같이 발전하였다. 
    
이러한 역사 과정에서 하나님은 권위 있는 기독교 문명 -초창기에 중세시대의 로마 가톨릭을 통해, 그리고 오늘날에는 미국을 중심삼은 개신교를 통해-을 토대로 하여 하나님 왕국을 세우려고 시도하였다. 그런데 바티칸의 지도자들이 사랑과 희생 등 예수님의 핵심 전통에 따른 삶을 살기보다 권력과 세속적 영광을 더 추구했던 중세 문명은 사라졌다. 오늘날, 이 세계를 하나님 왕국으로 인도할 사명을 지닌 기독교 국가의 대표국인 미국은 중세와 비슷한 시험에 직면해 있다.


  
1. 기독교의 핵심적 전통: 사랑과 희생
    
종교 경전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누가복음 14.27 (기독교)
   
“너희가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터무니없는 말로 온갖 비난을 받으면, 너희에게 복이 있다. 너희는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하늘에서 받을 너희의 상이 크기 때문이다. 너희보다 먼저 온 예언자들도 이와 같이 박해를 받았다.” 마태복음 5.11-12 (기독교)
   
그 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 가운데서도 자랑을 합니다. 우리가 환난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품격을 낳고, 품격은 희망을 낳는 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속에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5.3-5 (기독교)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에 몰두하며, 서로 사귀는 일과 함께 음식을 먹는 일과 기도에 힘썼다. 사도들을 통하여 기이한 일과 표적이 많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에게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면서,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대로 나누어 가졌다. 그리고 날마다 한 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집마다 빵을 떼면서,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서 호감을 샀다. 주께서는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셨다. 사도행전 2.42-47 (기독교)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나님께서 부터 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다 하나님에게서 났고, 하나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드러났으니, 곧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로 말미암아 살게 해주실 것입니다. 사랑은 여기에 있으니,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 주시고, 우리의 죄를 속하여 주시려고, 속죄제물이 되게 해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고, 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7-12 (기독교)
    
기독교는 십자각로 출발하여 가는 곳곳마다 맞았고 피를 흘렸다. 오늘날 기독교는 세계에서 맞는 입장을 취해야 세계를 주관할 수 있다. 보라! 가장 많이 쓰러졌던 바티칸 언덕에 기독교의 궁전이 서지 않았는가? (뜻길, p.319)
  
말씀 선집 
  
오늘날 기독교가 세계적 판도를 이루기까지 얼마만한 희생의 대가를 치렀는지 모릅니다. 순교의 제단에 끊임없이 희생시킴으로써 비참한 그 함성이 지구상에 울려 퍼져 그 울음소리가 안 들린 곳이 없을 만큼 역사를 더럽혀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피의 제단이 연속되어 오늘날 목전에까지 도달한 역사적인 한이 엉클어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을 이어받아 해원해야 할 엄숙한 역사적 과제를 안고 있는 우리는 하나님을 해방하고 기독교를 재차 해방해야 됩니다. (210.361, 1990.12.27)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리며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 골고다를 향하여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의 거룩한 모습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은 하늘을 배반한 배역의 무리가 되었으나 그들을 세우기 위하여 수고하신 하나님의 슬픈 역사가 인계된 것입니다. 이 눈물의 역사, 이 땀의 역사, 이 피의 역사를 상속받은 것이 기독교라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모르는 자는 망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것을 몰라서 망했습니다. 여러분도 그저 성경과 찬송가만 들고 교회에 출입할 것이 아니라, 피 흘리는 하나님을 대신한 예수님을 알고, 눈물 흘리는 하나님을 대신한 예수님을 알고, 땀 흘리는 하나님을 대신한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희생과 죽음으로써 세계를 점령해 나오는 것이 기독교의 전통이요,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오시는 전통적인 노정입니다. (10.281, 1960.11.06)
   
오늘날 기독교가 해야 할 일은 고통이 따르는 일을 어떻게 소화해내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늘의 심정을 끌어들여 ‘아버지여!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통을 늠름히 넘어서 불쌍한 만민을 위하여 복빌 수 있었던 것처럼 저희들도 그런 입장에서 예수님이 가졌던 마음을 가지게 해 주시옵소서’ 할 수 있는 마음을 갖는 것, 문제는 그것입니다. (7.96, 1959.07.19)
   
기독교인들이 즐겨 외우는 성경구절이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지금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를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세상이라는 것은 이 우주 전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예수님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유대교를, 유대인을 이처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잇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냐? 세계의 중심이 되는 존재입니다. 세계를 구하기 위해 온 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그 믿음 가운데는 세계가 다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들어가고, 이 땅도 들어가고, 전체가 들어간다는 개념을 모르고 있습니다.
(124.294, 1983.03.01)
   


2.기독교의 일치
   
종교 경전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한 희망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과 같이, 몸도 하나요, 성령도 하나요, 주님도 하나요, 믿음도 하난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유의 아버지이시며,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하여 일하시고, 만유 안에 계십니다.
에베소서 4.4-6 (기독교)
   
여러분은 외국 사람이나 나그네가 아니요, 성도와 같은 시민이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여러분은 사도와 예언자의 터 위에 세워진 건물이요, 그리스도 예수 스스로가 그 모퉁잇돌이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건물 전체가 서로 연결되어서, 주님 안에서 성전으로 자랍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와 연결되어서 함께 건물을 이루어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거하실 곳이 되어갑니다. 에베소서 2.19-22 (기독교)
    
나는 이 사람들을 위해서만 비는 것이 아니고, 이 사람들의 말을 듣고 나를 믿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빕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어서 우리 안에 있게 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여 주십시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영광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인 것과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은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20-23 (기독교)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거룩하고 사랑받는 사람답게, 동정심과 친절과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을 옷 입듯이 입으십시오.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납하여 주고, 서로 용서하여 주십시오. 주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과 같이,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십시오. 사랑은 온전하게 묶는 띠입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지배하게 하십시오. 이 평화를 누리게 하시려고 여러분을 한 몸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또 여러분은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골로새서 3.12-15 (기독교)
  
말씀 선집 
  
기독교는 ‘교회는 예수의 몸이다.’라는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집이, 교회가 예수의 몸이냐 이것입니다. 예수의 몸이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교인들입니다. 사람입니다. 사람이 예수의 몸이다 이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어찌하여 예수의 몸이라는 말이 됩니까? 예수님의 몸을 중심삼은 그 자리에 내가 대표해서 서게 되면, 그 자리에 같이 서 있는 예수님의 몸은 사람들을 대표해서 선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몸적 자리에 내가 들어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교회가 둘이 있을 수 있습니까? 오늘날 수많은 교파가 있으니 이건 전부 잘된 것이 아니라 그릇된 교회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이런 내용을 두고 볼 때, 오늘날 기독교에 분파가 많다는 사실을 예수님 앞에 가장 슬픈 사실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예수님의 몸뚱이를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2천 년 동안 기독교가 한 것은 제물···. 예수님의 몸과 같은 제물을 다시 한 번 드려 가지고, 승리의 제물 기반을 바쳐 가지고 넘어가야 할 세계적 하나의 종교, 하나의 기독교가 돼야 할 텐데, 이렇게 됐다는 사실은 예수님 앞에 지극히 비통한 것이요, 하나님 앞에 지극히 비통한 사실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마음이라면 오늘날 기독교는 무엇입니까? 몸입니다. 그러면 마음과 몸이 다를 수 있습니까? 다를 수 없습니다. 어떻게 돼야 됩니까? 하나 되어야 됩니다.
    
예수님이 지금까지 기독교를 중심삼고 나온 주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내 하나님이요, 우리 아버지요, 인류는 우리 형제요, 이 땅은 내 땅이라는 그 관념이었습니다. 그 외에는 없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런 사상을 이어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계는 내 세계요, 만민은 우리 형제요,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 그래서 한집안 식구가 돼야 된다는 것이 하나님의 사상이요, 예수의 사상이요, 기독교의 사상이라는 것입니다. 교파가 문제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파를 없애 버리더라도 이 땅을 찾아야 된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93.12-25, 1977.05.08)
    
오늘날 기독교의 수많은 교파는 왜 생겨났느냐? 기독교 가운데 교파가 생겼다는 사실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기도교의 교리와는 다릅니다. 기독교의 교리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교리입니다. 자기 교회 내에서는 사랑할는지 모르지만 기독교인 끼리끼리 싸우고 있습니다. 네 형제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기독교의 형제들은 기독교입니다. 장로교는 감리교, 감리교는 성결교, 전부 형제라는 것입니다. (107.20, 1980.02.21)
    
하나님에게 무거운 짐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하나님에게 무거운 짐이 무엇이겠는가 생각해 봤습니까? 그것은 망하는 기독교와 수많은 종교가 문제다 이것입니다. 종교를 어떻게 하나로 만드느냐 하는 것이 제일 문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종교를 어떻게 하나로 만드느냐 하는 것 때문에 골치를 앓고 계신데 감리교가 ‘아버지 하나님! 다른 기독교는 그만두고 우리 감리교에 복을 주소’ 하면 그게 하나님의 귀에 들어가겠습니까? 400여 종파 가운데 하나 되는 종파인데 말입니다. 
    
그런 것을 볼 때, 하나님은 ‘에이 이놈의 자식들아! 이놈의 교파주의자들아! 너희들을 위해 기도하기 전에 먼저 기독교를 하나 만들어라! 하나 만들어 가지고 기도해라’ 그렇게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내가 한번 기도를 들어 보겠다’ 이렇게 생각하실 것입니다.
    
기독교가 하나 된 자리에서 ‘하나님이여! 우리 기독교를 통해서 당신이 제일 골치 아파하는 무거운 짐인 종교를 하나 만드는 일을 위해 우리에게 힘을 주시옵소서!’ 할 때, 하늘이 ‘오호라, 네 기도가 옳도다’ 하시지, ‘에이 이놈아, 욕심이 많다, 그런 기도는 못 쓴다’ 그러시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교파를 깨뜨릴 수 있는 사람이 나오기를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교파를 깨뜨려서 하나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98.114-115, 1978.05.07)
    
그래서 세계 기독교를 통일하는 데는 뭐냐 하면 신령으로 통일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령협회라는 것입니다. 주먹으로 통일하는 것이 아니고, 총칼로 통일하는 것이 아니고, 신령으로 통일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통일하느냐? 인간의 힘 가지고 안 됩니다. 이것은 영적 세계를 움직여야 가능한 것입니다.
    
기독교를 통일하려면 통일되지 못하였던 기독교의 내용을 완전히 제거시키고 통일될 수 있는 내용만 남겨 놓으면 통일됩니다. 통일하지 못할 것을 제거시키고 통일할 수 있는 것만 남겨 놓으면 통일되게 돼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는 전 세계 기독교가 갖지 못하는 새로운 진리체계, 구약성경으로부터 신약성경으로, 그리고 앞으로 미래에 연결될 수 있는 성경체계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관을 형성해야 된다는 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 관 자체가 하나님이 보는 관이요, 영계가 바라보는 관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영계의 협조를 받으려면 하나님이 협조하겠다고 나서야 됩니다. 하나님이 영계의 왕으로 계시다면 왕이 ‘음’ 하고 있는데 졸개들이 암만 했댔자 그거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왕 되신 하나님이 흥분해 가지고 ‘그러면 그렇지! 내 때가 왔다’ 이렇게 기분이 좋아야 그 졸개 새끼 영계가 다 따라 가지고 하나 될 수 있는 것이지, 하나님이 반대하고 있는데 영계가 협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마음 가운데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내용을 골자로 추린 것을 감정해 보시게 될 때 ‘아, 그 녀석 맞다. 통일교회 그거 괜찮은데’ 하는 이런 뭐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113.97, 1981.05.01)
  
    
3. 세계에 대한 교회의 사명

  
종교 경전 
  
나 여호와가 너를 부른다. 정의를 세우라고 너를 부른다. 내가 너의 손을 잡아 지켜주고 너를 세워 인류의 계약을 맺으니 너는 만국의 빛이 되어라.
이사야 42.6 (기독교)
    
하나님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하나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을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로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요한복음 3.16-17 (기독교)
    
곧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죄과를 따지지 않으시고, 화해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심으로써, 세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와 화해하게 하신 것이다. 
고린도전서 5.19-20 (기독교)
    
예수께서 다가와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아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마태복음 28.18-20 (기독교)
    
사도들이 한자리에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었다. “주님, 주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나라를 되찾아 주실 때가 바로 지금입니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때나 시기는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권한으로 정하신 것이니, 너희가 알바가 아니다.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사도행전 1.6-8 (기독교)
  
말씀 선집 
  
여러분 기독교인,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일반 사회 사람보다도 나쁘다 하는 평을 들어 봤습니까? 그 말은 뭐냐 하면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더 악하다. 더 이기주의다 이것입니다. 미국 사람들이 왜 개인주의가 되었습니까? 예수가 개인주의자입니까? 하나님이 개인주의입니까? 그런데 왜 미국 사람들이, 예수를 잘 믿는다는 미국 사람들이, 예수 믿는 국가를 대표하는 미국 사람들이 왜 개인주의가 되었습니까? 예수를 믿었다면 그런 사람이 안 됩니다. 예수를 믿는데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 말은 단적으로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하나님을 믿는 것을 이용했고, 예수를 믿는 것을 이용했다는 것입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 믿었다는 결론밖에 안 됩니다. (124.294, 1983.03.01)
    
그러면 제물은 어떠한 존재입니까? 받으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만민이 기뻐한 후에 비로소 머리를 드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기 전에 머리를 들었고, 만민이 기뻐하시기 전에 머리를 들었다면 깨어집니다. 기독교가 만민을 위하여 봉사해야 할 사명을 지고 있는데 그러하지 못하고 있다면 개혁해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왕의 왕이요 하늘의 황태자이신 예수께서도 기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물로 오셨었던 연고입니다. 영계에 가서도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지상의 성도는 기뻐하여도 제물이신 예수님은 기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만민이 기뻐한 후에야 비로소 예수님이 기뻐할 수 있는 날이 오는 것입니다. 그 날이 재림의 날입니다. 이것이 제물이 가는 길입니다. (5.79-80, 1958.12.21)
   
예수님 같은 분을 유대교는 물론이요, 이스라엘 나라와 로마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죽음 길로 내 몰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간 길은 천도를 따라서 간 길이요, 가치 없는 인생으로서 간 길이 아니라 숭고하고 무한한 가치의 기준을 가지고 간 길이었습니다. 그
    
가치의 기준은 온 세계가 소망할 수 있는 중심 내용을 지닌 것이기 때문에, 그의 가르침은 기필코 인간이 찾아야 할 소망의 기준이요, 찾아가야 할 참된 길이기 때문에, 그 가르침을 통해서 세계가 규합되어 가지고 오늘날 민주 세계가 창건되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41.70, 1971.02.13)
   
기독교 문화권은 이 세계의 끝 날에 명실 공히 세계적인 문화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전 세계의 국가는 이 문화권을 중심으로 터전을 잡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39.44, 1971.01.09)
    
오늘날 여러분은 그러한 물질적인 투쟁을 밟고 올라서 예수님의 천국의 이념을 받들고 나서야 하겠으며, 나아가 전 세계 기독교인과 힘을 합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위에 건설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과 옛날 이스라엘의 전체적인 가치에 비유할 수 있는 유대교단과 하나 되어 세계를 복귀해야 할 사명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도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민주주의 이념과, 그 민주주의 이념의 기본이 되고 있는 기독교의 이념을 중심삼고 하나로 단결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위에 건설해야 할 사명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3.123-124, 1957.10.13)
   


4. 기독교의 역사 : 승리주의, 부패와 갱신
    
종교 경전 
  
“나도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다. 나는 이 반석 위에다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 죽음의 세력이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마태복음 16.18-19 (기독교)
  
말씀 선집 
  
중세의 로마 교황청을 중심삼고 보게 될 때, 당시에는 이미 부패해서 교권과 교조에 얽매였고 하나님의 뜻이 세계를 구하는 데 있다는 것을 망각해 버렸습니다. 세계는 다 집어치우고 자기들 권력, 자기들이 닦아 놓은 기반이 무너질까봐 눈이 뚱그래 가지고 거기에 반대되는 사람의 모가지를 자르는 놀음을 한 것입니다.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는 자기 종족과 모든 희생을 백 퍼센트 치러야 될 텐데 자기의 위치를, 자기들만이 영광을 취하기 위한 그 자리를 옹호하기 위해서 전부 다 행동을 했습니다. 
   
세계를 구하기 위한 뜻을 가진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걸 그냥 두었다가는 아무것도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공격해 버려야 됩니다. 이것을 깨뜨려 버리든가 혁명을 일으켜야 됩니다. 이래서 신교 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루터 같은 사람이 나와서 정명으로 충돌한 것은 잘했다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믿고 너희들이 사랑하는 하나님을 우리가 너희들보다 더 믿고 더 사랑하겠다. 너희들이 교인을 지도하는 그 이상 우리는 세계적으로, 평등한 자리에서, 자유스러운 자리에서 교인을 지도하겠다’ 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진대 하나님은 서둘러서 협조하실 것입니다.
(69.102-103, 1973.10.21)
    
하나님께서는 섭리의 기점을 잃지 않기 위해서 하늘을 염려하는 한 사람, 루터를 중심삼고 종교개혁을 벌였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하편은 깨뜨리고 한편은 세우는 섭리를 해 나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기독교를 통해 제2의 이스라엘 형을 거치게 하고 문예부흥을 거쳐 일대 혼란을 겪게 한 다음, 인본주의적 이성철학을 중심삼은 계몽사조를 대적해 나설 수 있는 섭리를 해 나오셨던 것입니다.
  
계몽주의자인 볼테르나 루소, 몽테스키외 같은 사람들은 기독교가 파멸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독일에서 청렴한 인물들이 나와 신비성을 고취하면서 하나님의 실제적인 내적 체험을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영국을 거쳐 요한 웨슬레 형제의 부흥운동을 일으키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퀘이커파를 일으켜 신비적인 내적 체험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한편, 인간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인간을 사랑하는 이성도 잃어버리고 물질을 사랑할 줄 아는 유물사조적인 주의까지 도달하였습니다. 타락한 인간일지라도 반드시 본연의 입장으로 돌아가야 되기 때문에 어느 때이든지 간에 그 물질을 중심한 사조를 칠 때가 오게 됩니다. (4.18, 1958.02.16)
  
온 인류의 구원을 표방하고 2천년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성장하여 오늘날 세계적인 판도를 가지게 된 기독교의 역사를 들추어 보라. 로마제국의 그 잔학무도한 박해 속에서도 오히려 힘찬 생명의 불길을 던져, 로마인들로 하여금 돌아가신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게 하였던 기독정신은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는가?
    
이윽고 중세 봉건사회는 기독교를 산 채로 매장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이 무덤 속에서 새로운 생명을 절규하는 종교개혁의 봉화는 들렸었으나, 이 불길도 격동하는 어둠의 물결을 막아낼 수 는 없었다. 에클레시아의 사랑이 꺼지고 자본주의의 재욕의 바람이 유럽의 사회를 휩쓸어 기아에 허덕이는 수많은 서민들이 빈민굴에서 아우성을 칠 때, 그들에 대한 권의 함성은 하늘이 아닌 땅으로부터 들려왔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공산주의다. 
   
하나님의 사랑을 부르짖고 나선 기독교가 그 구호만을 남긴 에클레시아의 잔해로 돌아갔을 때, 거기서 그렇게 무자비한 하나님은 있을 수 없다고 하는 반기가 들렸던 사실은 있을 만하기도 하다. 이렇게 되어 나타난 것이 바로 유물사상이다. 그리하여 기독교 사회는 유물사사의 온상이 되었다.
    
공산주의는 이 온상에서 좋은 거름을 흡수하면서 무럭무럭 자랐다. 저들의 실천을 능가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렸고 저들의 이론을 극복할 수 있는 진리를 제시하지 못한 기독교는, 저들이 바로 자기의 품속에서 싹트고 자라서 그 판도를 세계적으로 넓혀가는 것을 보면서도 속수무책이니 이 어찌 한심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뿐 아니라 온 인류가 한 부모의 후예임을 교리로써 가르치고 또 그와 같이 믿고 있는 기독교 국가의 바로 그 국민들이 다만 피부의 빛깔이 다름을 인하여 그 형제들과 자리를 같이 할 수 없게 된 현실은,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한 실천력을 잃어버리고 회칠한 무덤같이 형식화해 버린 현하 기독교의 실상을 드러내고 있는 그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 (원리강론, 총서)
    
중세 시대에 기독교는 이 종교의 이념을 중심삼고 그 이념 아래 있는 사람들은 상하를 막론하고 흡수하여 융합시켜야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세속적으로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도 치게 되었습니다. 만일 로마 교황청이 부패하지 않고, 자기들이 있음은 세계를 위함이요, 자기들이 있음은 인류를 위해 있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자기들이 좋으면 자기들이 좋기 전에 남이 좋을 수 있게, 즉 나보다는 남을 위해 사는 사상을 제창하였다면 교황청은 붕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로마 교황청이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것을 그냥 두면 안 되겠기에 하나님께서는 외적으로는 문예부흥을 일으켜 치셨고, 내적으로는 종교개혁을 일으켜 구교를 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후 퓨리턴을 중심삼고 미 대륙으로 건너가 거기서 기독교 이념을 중심한 국가를 건설하게 된 것입니다. 즉, 로마의 정치이념, 기독교의 종교이념, 희랍의 지성주의가 융합되어 오늘날 전 민주주의를 지배하는 범미주의(汎美主義)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제 미국이 오늘의 민주주의를 통합하여 천륜과 연할 수 있는 그때까지, 국가적인 사명을 대신하고 소유적인 권한을 대행할 수 있는 책임을 감당 하려면 어떠한 사상을 가져야 할 것인가? 먼저 자기 제일주의 사상을 버려야 됩니다. 이것이 미국 국민에게 그 무엇보다 긴요한 것입니다. (5.22-23, 1958.11.09)
   


이슬람
    
오늘날 이슬람은 하나님이 경륜하신 섭리 가운데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문선명 선생은 기독교가 쇠퇴한 오늘날, 무슬림이 상대주의 시대에 필히 요구되는 확고한 신앙과 도덕적 순수성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무슬림 세계를 서구의 적으로 보는 ‘문명의 충돌’ 각본을 전적으로 거부한다. 왜냐하면 무슬림은 하나님 왕국의 한 기둥으로서 영적 축복을 받은 고등 종교이기 때문이다.
    
이슬람은 정의의 종교이며, 그 점에서 잘못과 위선을 흔히 드러낸 유대교나 기독교보다 우위에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는 인간의 영적 지주인 세 종교가 서로 화해할 것을 요구한다. 
    
문선명 선생은 이들 종교 사이의 갈등의 근원은 교리나 무함마드의 사역을 둘러싼 사건들이 아니라, 현대 세계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갈등의 씨앗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적한다. 예수님 시대의 잘못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역사의 주역이었던 기독교와 유대교, 그리고 이슬람의 후손들이 함께 하는 노력이 요청된다.
 


1. 신앙과 정의의 종교
    
종교 경전 
  
너희들은 인류를 위해 일으켜진 최고의 움마(공동체)이다. 너희들은 바른 일을 권하고 악을 금하며 하나님을 믿노라. 꾸란 3.110 (이슬람)
    
하나님께서는 그대들이 신앙을 좋아하게 하셨고 너희들 마음에 아름답게 보이도록 하시었으며 믿지 않는 것과 사악함 그리고 불복을 혐오하도록 하시었노라. 이러한 자들이야말로 옳은 길을 걷는 자들이니라. 꾸란 49.7 (이슬람)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우리에게 계시된 것과 아브라함과 이스마엘과 야곱과 그의 자손들에게 계시된 것, 그리고 모세와 예수에게 준 것과 주임으로부터 모든 예언자들에게 준 것을 믿노라. 우리는 그들 사이에서 아무도 구별하지 않으며 우리는 그에게 복종하노라.
꾸란 2.136 (이슬람)
    
이것(꾸란)은 하나님이 내린 축복의 성서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따르고 경외하라. 그리하면 너희들은 자비를 받을 것이니라. 
다만 너희가 그 성서는 우리 앞의 두 부류(유대교인, 기독교인)에게 내려진 것이고 우리는 그들이 배운 것을 모르나이다고 말하거나, 만일 성서가 우리에게 내려졌다면 우리가 그들보다 바르게 인도되었을 것이라고 말하지 말거라. 이제 너희들에게 주님으로부터 분명한 증거가 왔으며 인도와 자비가 왔노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징표를 거부하고 그것으로부터 돌아서는 자보다 징표를 거부하고 그것으로부터 돌아서는 자보다 더 부정한 자가 누구인가?
꾸란 6.155-157 (이슬람)
    
진실하게 믿는 자라면 하나님의 이름이 말하여질 때 그들의 가슴이 두근거리며 하나님의 징표가 그들에게 읽혀질 때 그들의 믿음이 더욱 깊어져 그들의 주님에게 의탁하는 자들이며, 예배를 준수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제공한 것을 (자선으로) 사용하는 자들이니라.
그들이야말로 진정하게 믿는 자들이며 이들에게는 주님으로부터의 영예로운 등급과 용서와 명예로운 지급품(파라다이스)이 있을 것이니라. 꾸란 8.2-4 (이슬람)
    
믿는 사람들이여 하나님 앞에서 증언자로서 공정함을 지켜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증오로 공정함을 잃지 말고 공정하라. 그것이 경외심에 가장 가까운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라, 진실로 하나님은 너희가 행하는 것을 다 아시는 분이시니라. 꾸란 5.8 (이슬람)
  
말씀 선집 
  
회회교는 종합적인 종교입니다. 기독교 신·구약을 모두 끄어다가 만든 종합적인 종교이지만 그것도 역시 신을 위주한 것입니다. 아라비아 민족에게 적당한 내용을 밑받침해서 신을 중심ㅇ로 신에 의한 절대적인 참의 인간을 구상하고 찾아 나갔다는 것입니다. 
(39.316, 1971.01.16)
 

무함마드를 중심삼은 회회교는 다른 종교의 경전 내용을 끌어다가 종합해서 만든 종교인 것입니다. 여기에는 성경의 내용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 종교는 천사장격 종교입니다. 종교적인 술어로 천사장격 종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회회교는 공산당과 야합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종교는 앞으로 변해 가는 세계에 불을 지를 수 있는 예언적인 종교가 될 것입니다. (39.42, 1971.01.09)
 

 이슬람과 기독교인은 1천 4백 년 동안 원수입니다. 이슬람교서는 다른 교에 참석하면 사형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시리아의 이슬람 대주교가 말이에요……. 이 사람은 이란의 호메이니와 같은 사람입니다. 로마 교황청으로 말하면 교황과 같은 사람인데, 그 사람이 영계로부터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 사람은 최고의 수도생활을 한 사람인데, 2차 대전 이후에 하늘로부터 유대교와 기독교와 회회교가 하나 안 되면 큰일 난다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40년 전에 그 계시를 받고 그 일을 추진한 것입니다. 그 일을 추진할 때 유대교 사람들은 ‘이놈의 영감, 우리를 꼬여 가지고 말아먹으려고 한다’고, 기독교 사람들은 ‘이놈의 자식들은 우리와 원수인데 그럴 수 있느냐?’ 라고 한 것입니다. 또 자파에서는 ‘이놈의 영감탱이, 유대교라든가 기독교가 우리와 역사적인 원수인데 그들 편 되는 놀음을 하고 있어?’ 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감옥에도 여러 번 드나들었다는 것입니다.
    
종교생활에는 계시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 사람이 그런 사명을 받아서 책임 해야 할 것을 못 하고 있다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세계종교연합운동 비디오를 보고 감동을 받고 ‘아, 이분을 내가 찾아뵈어야 되겠다!’ 라고 한 것입니다. 그때가 이란의 호메이니가 죽기 며칠 전이었습니다. (212.324-325, 1991.01.11)
  
    
2. 기존의 종교를 정정하며 맞서는 종교
    
종교 경전 
  
진실로 하나님의 종교는 이슬람이니라. 성서를 수여 받은 사람들이 다투게 된 것은 지식이 그들에게 들어온 후 서로의 시기심 때문이니라. 하나님의 징표를 믿지 아니하는 자가 있다면 하나님은 계산이 빠르신 분이시니라. 꾸란 3.19 (이슬람)
 

그들은 같은 성서를 읽으면서도 유대인들은 기독교인들은 유대교인들에게 (진리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느니라. 또한 이들은 자기들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처럼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도 이야기 하고 있노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다툼에 대하여 부활의 날에 이들을 심판 하실 것이니라. 꾸란 2.113 (이슬람)
 

그들(이스라엘의 자손)은 단어들의 위치를 바꾸었으며 그들에게 보내진 말씀의 일부를 폐기하였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만 제외하고는 그들로부터의 배신이 계속 일어남을 보게 되리라. 그러나 그들을 용서하고 돌봐주어라. 진실로 하나님께서는 착한 일을 하는 자들을 사랑하시니라.
    
그리고 ‘우리는 기독교인이요’ 라고 하는 자들로부터도 하나님은 성약을 맺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에게 보내진 말씀의 일부를 폐기하였나니 하나님은 부활의 날까지 그들 사이에 증오와 대립이 있게 하였노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행실에 대하여 알려주실 것이니라.
  
성서의 백성들아! 너희들이 성서에 대해 많은 부분을 감추고 빠트린 것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하나님의 예언자가 너희들에게 왔노라. 진실로 하나님으로부터 광명과 명백한 성서가 너희들에게 왔노라. 꾸란 5.13-15 (이슬람)
  
하나님께서 “오, 마리아의 아들 예수여! 네가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아닌 나와 나의 어머니를 두 신으로 섬기라고 말하였느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길, “당신께 영광이 있으라, 말할 권리도 없는 제가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제가 그런 말을 하였다면 당신은 이미 알고계실 것입니다. 당신께서는 제 마음 속에 있는 것을 아시지만 저는 당신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하옵니다. 감추어진 것을 아시는 분은 당신뿐이옵니다.” 
꾸란 5.116 (이슬람)
 

성서의 백성들 가운데 하나님과 최후의 날을 믿지 아니하며 하나님과 하나님의 예언자에게서 금지한 것을 지키지 아니하고 참된 종교를 믿지 아니하는 자에 대항하여 싸우라. 그들이 스스로 인두세를 납부하고 그들이 보종할 때까지.
  
그리고 유대인들이 말하길 ‘에즈라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고 기독교인들은 ‘메시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고 기독교인들은 ‘메시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니라. 그것이 바로 그들이 자신들의 입으로 말하는 것이노라. 그들은 그들 이전에 믿지 아니한 자들의 말을 흉내 내는 것이니 하나님의 저주가 그들에게 있으리라. 얼만 많은 진리를 그들은 속이고 있는가!
  
그들은 하나님이 아닌 그들의 율법학자나 수도사를 그리고 마리아의 아들 메시아를 주로 숭배하고 있다. 그들에게 하나의 신만을 섬기도록 명령되지 않았는가. 그분 외에는 신이 없느니라.···
그분이 인도와 진리의 종교를 지니신 예언자를 보내주신 분이시니라. 우상숭배자들이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종교 위에 우월하게 하시기 위함이니다. 꾸란 9.29-33 (이슬람)
  
말씀 선집 
  
하늘나라에는 아들이 있고, 양자가 있고, 종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평면적으로 전개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메시아는 아들이요, 세례 요한은 양자요, 이스라엘 민족은 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셋이 하나 되어서 누구하고 씨름해야 되느냐? 로마와 씨름해야 됩니다. 
 

 얍복강에서 천사장과 야곱이 싸웠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런 싸움을 해야 됩니다. 그때 로마의 주권이 피폐해 모든 약소민족이 자주 독립 국가를 주장할 수 있는 준비가 싹터 있었는데, 그때 예수님이 그와 같은 운동을 했으면 아랍권이 그때 완전히 통일되었을 것입니다. 
 

원수에게 대항함으로 말미암아 원수를 싫어하는 사람끼리는 통일된다는 것입니다. 큰 원수에게 대항할 때, 큰 원수 앞에 위협받는 무리들, 원수를 반대하는 무리들은 하나 된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그 세 사람이 하나 됐더라면 로는 넘어갔습니다. 완전히 넘어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세례 요한대로 따로, 유대교는 유대교대로 따로, 예수는 예수대로 따로 됐다는 것입니다. (111.151, 1981.02.10)
    
예수님이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기독교가 반대 방향으로 가 버렸습니다. 아시아를 중심삼고 전 세계를 통치해야 하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됨으로써 예수님의 몸뚱이를 사탄이 점령해 버렸습니다. 예수님 대신 바라바를 용서했지요? 
 

예수님이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바라바가 해방되어서 나왔습니다. 그 바라바권이라는 것이 지금의 이슬람권, 회회교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원래 예수님이 죽지 않고 나라를 중심삼고 하나 되었더라면 지금 중동의 무슬림권은 12지파로 분할되지 않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도시가 되었을 것입니다.
(250.216, 1993.10.15)
 

하나님과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기독교의 원수가 누구냐? 미니스타 패러컨입니다. 중국의 원수가 누구냐 하면 소련이고, 소련의 원수가 누구냐 하면 중국이입니다. 그들을 사랑하라고 했으니 사랑해야 됩니다. 레버런 문이 소련과 중국과 미국을 사랑했습니다. 
   
중국이 미국을 사랑하고, 소련이 중국을 사랑합니까? 다 못 합니다. 그러나 레버런 문만이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 앞에 일등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은 원수가 없습니다. 기독교권, 무슬림권, 흑인세계와 백인세계 뿐만 아니라 영계의 지옥까지도 원수가 없습니다. (339.156-157, 2000.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