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의존 (세계경전 - 제1부 하나님과 창조 - 제2장 진리와 우주 법칙)

訓讀王 | 20180309073404

세계경전 - 제1부 하나님과 창조 - 제2장 진리와 우주 법칙


  상호의존

크고작은 모든 존재는 상호 의존적인 관계들의 그물망으로 연계되어 있다. 전체를 떠나서 개체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의 분리된 개체로서 ‘자기자신’을 생각하는 것은 인식의 근본적인 오류이다. 아인슈타인은 그것을 “의식의 시각적 미망,,,,우리를 자신의 개인적인 욕망에 가두고 우리와 아주 가까운 몇몇 사람들에게 한정시키는 일종의 감옥”이라고 불렀다. 그는 우리가 “살아있는 모든 것들과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자연 전체를 포옹함으로써 사랑의 범위를 넓혀 우리 자신을 이 감옥에서 해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불교 경전에 따르면 우주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존재가 인과의 그물, 즉 인연의 사슬에 매여 있다. 이러한 이해는 불교, ‘무아설’ 의 토대가 된다. 모든 존재가 ‘나’요 ‘내’가 곧 모든 존재라는 인식, 그것이 불교의 자비윤리의 핵심이다. 그 윤리야말로 사람들이 ‘나의‘ 구원만을 목표라고 믿는 개인주의의 병폐를 치료하는 치료약이다. 사실 다른 사람들이 고통 속에 있는 한, 그 누구도 궁극적인 평화를 얻을 수 없다. 

종교경전 

이 세상 사람들은 ‘내가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고 ‘남이 한다’는 생각에 붙잡혀 이것을 진실로 알지 못한다. 즉, 그들은 그것이 각자를 다치게 하는 가시임을 깨닫지 못한다. 주의 깊게 이것이 가시라고 깨달은 사람에게는 ‘내가 한다’는 생각이 존재하지 않으며 ‘남이 한다’는 생각도 없다. 
우다나 70 (불교)

우리는 서로 한 몸의 지체들입니다.

에베소서 4.25 (기독교)

일체 만유는 그 자체 스스로의 것이라 할 수 있는 아무것도 지니지 않으며, 태어나는 것도 아니며, 본래 이들은 마치 허공처럼 투명한 것이니, 상의적 관계의 사슬과 분리된 어떤 사물이란 다만 무지한 자의 허망한 차별상에 불과하다.
온 세상이 상호 관계의 사슬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님을 여실히 알게 될 때 마음에 고요함을 얻는다.  

능가경 78 (불교)

어찌하여 나는 다른 이들의 몸을      
‘나’로 여기지 못하는가?     
내 몸이 또한 다른 이의 몸임을 아는 것이     
어려운 일 아니거늘.    
수족이 몸의 지체로 여겨지는 바와 같이   
어찌 육신 쓴 중생들이    
한 생명의 지체로 여겨지지 않는가?    
다만 앎으로 이 의식 없는 육신에 ‘나’라는 생각이 일어나듯이     
어찌 이러한 생각이 다른 중생들에게는 미치지 못하는가?           
내가 남을 위해 이와 같이 행할 때     
자부심이나 뽐내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하리.     
그것은 마치 스스로 도모함과 같으니     
나는 다만 아무런 되갚음도 바라지 않으리.
샨티데바, 보살행의 도 8.112-16 (불교)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아름답게 보이는 것을 아름다운 것인 줄 알고 있지만 이는 추한 것일 뿐이다. 모두 착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착한 것인 줄 알고 있지만 이는 악한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유와 무는 서로를 낳는다. 

도덕경 2 (도교)    


말씀 선집 


우주는 지극히 작은 것에서부터 지극히 큰 것까지 모두 관계와 연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16.119, 1960.01.02)

모든 존재의 중심에는 성상적인 것과 형상적인 것의 두 가지가 있기 때문에, 그 중심이 지향하는 목적에도 성상적인 것과 형상적인 것의 두 가지가 있어서, 그것들의 관계는 성상과 형상과의 관계와 같다. 그리고 성상적인 목적은 전체를 위한 것이고 형상적인 목적은 그 자체를 위한 것이어서, 전자와 후자는 원인적인 것과 결과적인 것,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 주체적인 것과 대상적인 것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체적인 목적을 떠나서 개체적인 목적이 있을 수 없고, 개체적인 목적을 보장하지 않는 전체적인 목적도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삼라만상의 피조물은 이러한 이중 목적에 의하여 얽혀 있는 하나의 큰 유기체인 것이다. (원리강론, 창조원리 1.3.1)

전부 상대성을 중심삼고 공동적인 목적을 위해서 대응하여 화합한 세계에 연결돼야만 완성품이 됩니다. 작으면 작은 대로, 큰 것은 큰 것대로, 우주는 우주대로 대응관계에 밸런스가 되어 있습니다. 왜? 수수작용, 운동하지 않으면 없어집니다.(391.175, 2002.08.21)

천운은 자기를 위하려고 하는 것은 전부 부정하지만 남을 위하려고 하는 것은 자꾸 품어 주는 것입니다. 눈이 1.2라고 얘기하게 되면 ‘야! 기분 좋다. 확실히 보인다’ 하고 눈이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왜 좋으냐? 천운이 보호하기 때문입니다. 천운이 전 우주에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원히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무제한으로 투시되기 때문에 그 영역이 무한정 확대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귀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를 위하게 될 때, 관계성을 가지게 됩니다. 상대를 위하는 것이 관계성을 만드는 힘이라는 것입니다. (244.107-108, 1993.01.31)

인체 가운데서 눈을 두고 보면 간단해 보이지만 복잡하다는 것입니다. 눈 세포도 각각은 전부 복잡합니다. 전부 복잡하지만 하나의 생명체로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이것이 서로 상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협조하며 공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나는 눈이고 뭣이고 다 싫고 손이 제일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안 되는 것입니다. 전후·좌우·상하 관계에 있어서 위치와 계급에 따라 반드시 각각 제약된 법도와 조건에 순응하지 않고는 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통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49.193, 1971.10.10)

인류는 무엇이냐? 하나의 세포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멋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가 하나의 극을 이루는 것입니다. 극을 이루어서 전체의 중심 되는 신과 인간, 인간이 있으면 인간 전체를 합한 것이 서로 상대적 관계를 중심삼고 이 자체가 생명력의 발로체, 이 자체가 사랑의 발로체로서 목적을 성사하는 그 원인과 결과가 맞아떨어지면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원인과 결과가 결합함으로 말미암아 하나의 목적을 완성한 가치체로서 드러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110.73, 1980.11.09)

우리 인간이 추구하는 최고의 이상 요소가 사랑인데, 사랑이 잘 주고 잘 받을 수 있게끔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체를 중심삼고 우주를 연결해 전부 축이 되어 가지고 전기가 연결돼 있는 것처럼, 축을 통해서 잘 주고 잘 받는 나무와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맨 중심뿌리의 끝과 순의 끝은 언제나 상대적입니다. 이것이 잘 주고 잘 받아야 크지, 이것이 미치지 못하면 뿌리도 작아지고 전부 작아진다는 것입니다.  (165.177, 1987.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