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
타락한 인간의 상태는 영혼의 허약과 질병에 비유돼 왔다. 타락한 인간의 심정은 근심과 고통으로 무겁다. 그러므로 구원은 허약한 영혼을 치유하고 참된 잠재성을 실현하여 건강한 상태로 회복시키는 것으로 간주한다. 종교의 가르침은 구원의 측효약으로 간주되고, 진리를 가르쳐준 창시자는 탁원한 의사로 비유된다.
그러나 영혼의 건강과 육체의 건강 사이에는 정신-신체 의학적인 인과관계도 있다. 따라서 육체적 건강은 정신적 건강의 복된 부산물이다. 더구나 하나님의 능력은 기적을 일으켜 늙은 여성이 아기를 낮고 소경이 눈을 뜨고 죽은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 예수님은 기적을 통해 치료하고 마귀를 쫓기도 했다. 부처도 그랬고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많은 종교 성인들도 그랬다.
문선명 선생은 질병의 역적 원인을 하나님과 일치시켜 하나님의 치료 능력을 도모할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한다. 그는 또한 치료 능력의 무분별한 사용데 대해 경고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기적은 대가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1. 육신과 영혼의 치유
종교경전
“너 이스라엘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을 등어 순종하고, 그가 보기에 바르게 살며 그 명령에 귀에 담아 모든 규칙을 지키면, 이집트인들에게 내렸던 어떤 병도 너희에게는 내리지 아니하리라. 나는 여호와, 너희를 치료하는 의사이다.”
출애굽기15.26(기독교)
내가 아플 때 그분께서 치료해주시니라. 꾸란 26.80(이슬람)
내가 눈으로, 가슴으로, 마음으로
받아들인 잘못은 무엇이나,
또는 지나침이 있는 것은 무엇이나
브리하스파티여? 치유하시라.
자비로운 세상의 주시여? 야주르 베다36.2(힌두교)
여러분 가운데 앓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교회의 장로들을 부르십시오. 그리고 그 장로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고, 그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믿음으로 간절히 드리는 기도는 앓는 사람을 낫게 할 것이니, 주께서 그를 일으켜 주실것입니다. 또 그가 죄를 지은 것이 있으면, 용서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서로 죄를 자백하고, 서로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래서 여러분이 나음을 받게 하십시오.야고보서5.14-16(기독교)
오? 위대한 신이여,
나를 창조하신 분,
나에게는 당신밖에 없습니다.
하늘에 계신 신이여,
당신은 오직 한 분,
지금 나의 아이가 병중에 있으니,
나의 간절한 소망을 들어 주소서. 아누아크족의 기도(아프리카 전통종교)
어서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그분은 우리를 잡아 찢으시지만 아물게 해 주시고, 우리를 치시지만 싸매 주신다. 이틀이 멀다하고 다시 살려 주시며, 사흘이 멀다 하고 다시 일으켜 주시리니, 우리 다 그 분앞에서 복되게 살리라. 호세야.6.1-2(기독교)
정각자 부처는 비길 데 없는 의원이니… 억겁을 통하여 거룩한 가르침의 묘약을 찾아 완전하게 하셨다, 이들을 펴실 모든 방편들을 배워 익혔으며, 깨달음을 여는 묘법의 전능을 구족하셨으니, 일체중생의 고뇌를 능히 낫게 할 수 있도다.
대방광불화엄경37(불교)
이분, 거룩한 이는,
의로써 자신의 영혼 속에
만유를 치유하는 능력을 지니고,
맹세한 벗처럼 모두에게 자비를 펴신다.
오, 지혜의 주여! 아베스타 야스나 44.2(조로아스터교)
지금 나의 이 병은 무시이래로 쌓여온 망망전도(茫茫顚倒)와 허망한 번뇌로부터 생겨난 것이니, 궁극적으로 병이라 칭할 실상은 없다. 무엇을 일러 이 병을 구제한다 하는가? 이기심과 소유욕을 여의게 함이다. 유마경5(불교)
무거운 고뇌의 산 제물이 되어
온갖 질병으로 육신은 병들고,
희비의 교차 속에서 가정과 가족의 온갖 문제들에 에워싸인 자여,
평안이나 안식도 없이 사방팔방으로 헤매는 자여-
마땅히 지고한 그를 염하라
그대의 몸과 마음에 평화가 오리니.
아디 그란트, 스리 라가, M.5, p.70(시크교)
율법의 말씀은 완전한 치료약과 같다. 이것은 어떤 사람이 자기 아들에게 큰 상처를 입혀 놓고 그에게 석고붕대를 두르게 하고는 이렇게 말하는 것에 비유될 수 있다. “내 아들아! 이 서거고붕대가 네 상처를 감싸고 있는 한 너는 좋아하는 것을 먹고 마실 수 있고 차거나 더운 물에 목욕할 수 있다. 그래도 너는 해를 입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네가 석고붕대를 제거해 버리면 상처가 악화될 것이다.” 바로 그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백성들아! 나는 너를 죄악으로 기우는 성향을 가지도록 창조하였다. 그러나 나는 죄악을 해소시킬 약으로 율법을 창조하였다. 네가 율법과 함께 하는 한, 죄악성은 결코 너를 점령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네가 율법을 소유하지 않는다면, 그 때는 죄악의 힘에 네 자신이 내동댕이쳐 질 것이다. 그리고 죄악의 행위가 너를 거스르며 너를 괴롭힐 것이다.” 탈무드, 키두신
신에게 순종하고자 하는자,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자, 신에 보다 가까이 가조자 하는자, 그리고 회개하고자 하는 자는 성령의 불에 의한 깊은 영적 정화를 위한 세계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대들은 영적으로, 그리고 집접적으로 그대들의 세 가지 자아를 통하여 참된 빛을 받아야 한다. 그것이 그대들이 치러야 할 대가를 적게 하는 지름길인 것이다. 이 세계는 참 빛의 역사를 통하여 무수한 불안으로부터 구원받을 것이다. 고세이겐(마히카리)
말씀선집
문 총재를 만나서 든 병은 고칠 수 없습니다. 그건 문총재의 진단과 처방 방법을 따라가는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니 세계가 통일이 안 될 수 없습니다. 처방의 그 약재가 뭐냐, 참사랑이라는 약재입니다. (190.57, 1989.06.18)
병이 나면 병언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하고, 주사를 맞아야 하고, 조제한 약을 먹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병원과 약을 공급하는 것이 뭐냐는 것입니다. 그것이 종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를 믿으면 이 싸움판을 말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337.57, 2000.10.22)
지금까지 타락세계에서는 악이 발전하는 시대였습니다. 따라서 악한 사람이 더 잘 살고, 무엇이든지 강한 사람이 더 잘 살 수 있는 때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왕권즉위식과 더불어 절대적인 성령이 역사하는 시대로 들어온 이후에는 절대적인 선이 발전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절대적인 선을 중심하고 원리적인 삶을 사는 자가 잘 살 수 있는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식인 우리가 질병과 고통, 불행, 그리고 죄악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도록 직접 역사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흥진님 영계 메시지, 2002.01.01)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의 생소를 받아가며 기쁘게 살아야 될 인간이 날 때부터 불완전한 개체로서 불안과 질병을 갖고 태어났던 것입니다. 다시 마래서 인간은 날 때부터 죄악으로 출발되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죄악의 혈연과 관계됨으로써 항상 누시엘로부터 침범을 받을 수 있는 요인이 형성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전혀 예상치않았던 병든 모습, 먼저 영적으로 병들고 다음 누시엘의 침범에 의해 육체가 병든 모습이 되었습니다.
모든 병의 70-80페센트가 영적 요인에 의해 생긴 것입니다. 그리고 20-30페센트가 육체의 과로나 환경의 요인에 의해 병이 생기지만 이러한 병들은 인간의 비참한 상태로 몰아가지 않습니다. (영계의 실상과 지상생활, 인류의 범죄자 누시엘2.2, 199903.07)
누구든지 병에 걸렸으면 그 병의 원인을 알고 그 원인을 치료함으로써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이 이론적입니다. 그것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일본의 역사에서 그것을 해결하겠다고 생각해본 사람도 없고, 지금도 생각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세계에도 없습니다. 그러한 결과를 초래한 사탄만이 알고 있을 뿐입니다. 인류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알고 있더라도 바로 잡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류를 대표하는 구세주라든가 종교권이 그것을 밝히지 않으면 인류가 해방될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367.293, 2002.01.24)
병이 났다면 병중에 제일 무서운 병이 무엇이냐? 하나님까지도 제일 무서워하는 병, 이것이 타락병입니다. 타락병, 여러분은 그 타락병에 걸렸습니까, 안 걸렸습니까? 타락병에 걸린 것을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요즈음 ‘암’하면 다 무서워하지요? 그 암에 걸려도 처음에는 모릅니다. 거의 죽데 돼야 아프기 시작합니다. 그대도 이것은 죽기 전에 압니다. 그렇지만 이 타락병은 죽기 전에도 모르는 것입니다. 죽어야 비로소 안다는 것입니다. 이게 사고입니다. 타락병에 걸렸다는 것을 지금까지 그 누구도 몰랐다는 것입니다 p363(92.186, 1977.04.10)
2. 기적
엘리사는 집 안에 들어가 죽은 아이가 자기 침대에 누워 있는 거승를 보았다. 엘리사는 방안에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방안에는 둘 뿐이었다. 그는 여호와께 기도드리고 나서 침대에 올라가 아이 위에 엎드렸다. 그리고 자기의 입을 아이의 입에, 자기의 눈ㄴ을 아이의 눈에, 자기의 손을 아이의 손에 포개었다. 이렇게 아이 위에 엎드리자 아이의 몸이 따뜻해지기 시작하였다. 엘리사는 일어나서 방 안을 이리로 한 번, 저리로 한 번 걷도 나서 다시 침대에 올라가 아이 위에 엎드렸다. 그러기를 일곱 번 거듭하자 아이가 재채기를 하면서 눈을 떴다 열왕기하4.32-35 나(예수)는 맹인과 문둥이를 고치고 하나님의 허락으로 죽은 자를 소생시키노라.
큰 무리가 예수를 에워싸 떠밀면서 따랐습니다. 그리고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고 있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여러 의사에게 보이는 동안 고생을 많이 했고 자기 소유도 다 없앴으나 아무 효력이 없었으며, 도리어 병은 심해졌습니다. 이 여인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로 끼어 들어와 뒤에서 예수의 옷을 만졌습니다. 그것은 예수의 옷만 만져도 나으리라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자 그 여인은 출혈이 그치고 병이 나은 것을 몸소 느꼈습니다. 예수께서는 곧 자기에게서 능력이 나간 것을 아시고 무리를 둘러보시면서 “누가 내 옷을 만졌느냐?”하고 물으셨습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무리가 선생님을 에워싸 떠밀고 있는데 누가 만졌느냐고 물으십니까?”하고 제자들이 반문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둘러보시며 옷 만진 여인을 찾으셨습니다. 그 여인은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알기 때문에 두려워 떨며 예수께 나아와 엎드려 사실대로 다 말했습니다. 예수께서 그 여인에게 “여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평안히 가라. 그리고 이 병에서 놓여 건강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5.24-34(기독교)
오후 세 시, 기도하는 시간이 되어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올라가고 있는데,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을 사람들이 메고 왔습니다. 이 사람은 성전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학 위하여 날마다 아름다운 문이라는 성전 문 곁에 앉혀 두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구걸 했습니다. 베드로는 요한과 함께 그를 눈여겨 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보라”하고 말하니 앉은뱅이는 무엇을 얻으려고 두 사람을 쳐다 보았습니다.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준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그리고 앉은뱅이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그는 당장에 다리와 발목에 힘을 얻어 뛰어 일어나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갔습니다.
모든 이의 길잡이요 대자대비하신 세존께서 아자타사트루 왕을 위하여 월광삼매에 드셨다. 삼매에 들자 비길 데 없는 빛이 쏟아져 나왔다. 청정하고 서늘한 빛이 왕에게로 나아가 그의 온 몸을 비추었다. 온 몸에 두루 퍼져 있던 몹쓸 종기들이 씻은 듯이 나았으며 숨 막히더 s고통도 사라졌다. 화농한 종기의 아픔이 가시고 온 몸에 신선한 원기가 충만함을 느끼며 왕이 부처에게 말하였다. “이 빛이 어디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입니까? 그것은 나를 비추고 아픈 곳을 어루만지며 모든 종기들을 씻은 듯이 낫게 하여 온 몸이 편안해 집니다.” 부처께서 대답하셨다. “오, 위대한 왕이여! 이것은 천상 가운데 천상의 빛입니다. 이 빛은 흘러나오는 근원이 가이없으며… 다만 구제하고자 하는 바람이 있는 곳에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오, 왕이여! 전에 그대가 말하기를, ‘이 세상에 몸과 마음을 모두 능히 고칠 수 있는 의원이 없다’하였습니다. 이러한 연유로 이 빛이 쏟아져 나와 그대의 육신을 낫게 하고 그런 연후에 그대의 마음까지도 낫게 합니다.” 대반열반경 575-576(불교)
예수의 시대처럼 지금의 크리스천 사이언스의 신체 치료는 신성원리의 작용으로 일어난다. 신성원리 앞에서 죄와 질병은 인간 의식 속에서 실재성을 잃고, 마치 어둠이 빛에게, 그리고 죄가 회개에게 자리를 내어 주듯이 자연스럽고, 그리고 필연적으로 사라진다. 그때처럼 지금의 이 능력의 역사는 초자연적이 아니라 최고의 자연적이다. 이 역사는 임마누엘, 또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 곧 인간의시기 속에 나타나기조차 하는 거룩한 영향의 징표이다. 과학과 건강xi(크리스천 사이언스)
아브라함의 아내는 백세에 이삭을 낳았습니다. 그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자신감을 가지면 역적으로 감동을 받아서 대번에 임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적인 힘은 대단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마음과 몸이 하나 되는 그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보지는 못하지만 그 힘은 작용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런 경지에 들어가면 이적이 벌어집니다. 병도 낫고, 무슨 이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거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무슨 사랑을 지녀야 하느냐? 참사랑! 여러분은 참사랑이 뭔지 모릅니다. 참사랑이 뭡니까? 하나 되어서, 절대적으로 하나 되어서 묶어질 수 있는 그런 작용이 참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부부들이 됐습니까?
죽은 사람을 살리는 데는 영인체를 다시 불어넣으면 살아납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시체가 부패해 버리면 안 됩니다. 살이 없어지면 안 됩니다. 3일간이라든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영을 불러들이면 소생합니다. 그것은 취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럴 필요성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한번 영을 불렀으면 그것을 다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가치 있는 것을 보상한다든지, 아니면 그것에 따라 천적 이익을 가져올 수 있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세 사람, 네사람이 죽어야 하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영적 가치를 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일을 하는 데 책임을 지지 않으면 천법에 걸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적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정련의 불
하나님의 은혜로운 사랑은 어려움과 고난 가운데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가짐을 갖춘 사람은 인생의 시련과 도전을 자신의 신앙을 순수하게 하고 결점을 고치며 성격을 수련하는 수단으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시련은 우연히 아니라 자녀를 훈련하고 교육하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제15장 ‘시험’ 참조)이 아닐까?
1. 불 심판
그 하나마저도 불 속에 넣어 찌꺼기를 거르고, 순은과 순금을 갈라내듯 하리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면 내가 대답하고, 내가 그들을 나의 백성이라고 부르면 그들은 ‘여호와께서 우리 하나님이사’고 하리라. 스가랴13.9(유대교) 마치 대화재가 모든 것을 불살라 버릴 수 있듯이 부처의 자비의 장은 모든 번뇌를 불살라 없앤다. 대방광불화엄경10(불교)
타오르는 불꽃이 장작을 재로 만들 듯 지혜의 불은 모든 업을 태워 재로 만드나니, 불같은 지혜보다 이 세상을 정하게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느니라.
순결을 그대의 용광로로 삼고
아무도 이미 닦아 놓은 터 곧 예수 그리스도 밖에 또 다른 터를 놓을 수 없습니다. 누가 이 터 위에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집을 지으며, 각 사람의 업적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 날이 그것을 밝히 보여 줄 것입니다. 그 날은 불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불이 각 사람의 업적이 어떤 것인가를 검증하여 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지은 작품이 그대로 남으면 그는 삯을 받을 것이요, 어떤 사람의 작품이 타 버리면 그는 손해를 볼 것입니다. 그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지만, 마치 불 속을 거쳐서 살아나오듯 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11-15(기독교)
우리가 불로 황금을 시험하고 황금으로 우리의 종복을 시험하도다.
말씀선집 절대신앙·절대사랑·절대복종이 쉽습니까, 어렵습니까? 여러분이 백 번 죽었다가 깨어나도 하기 힘든 것입니다. 여러분이 말로는 절대신앙·절대사랑·절대복종하겠다고 하지만, 용광로에 들어가 가지고 부정한 것은 다 태워 버리고 금만 남아야 되는 것입니다. 동서남북을 통해 360도 회개해서 회개의 눈물과 콧물이 뒤집어씌우더라도 그 속에 있는 나는 아직까지 완전하다고 볼수 없는 것입니다. (320.235, 2000.04.06)
예수님 때도 그가 심판주로 오셔서(요 5:22; 9:39) 불로써 심판하신다고 예언되어 있고, 또 누가복음 12장 49절에는 예수님이 불을 땅에 던지러 오셨다는 말씀도 있다. 그러나 그 당시에 예수님이 불로써 심판하신 아무 흔적도 우리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무엇을 비유하신 것임에 틀림없다. 야고보서 3장 6절에 ‘혀는 곧 불이요’라고 한 말씀에 의하여, 불 심판은 곧 혀의 심판이요, 혀의 심판은 곧 말씀심판을 의미하는 것이니, 불 심판은 곧 말씀심판임을 알 수 있다. (원리강론, 인류역사종말론 3.2.2)
여러분이 알고 잇는 것은 사탄과 관계되어 있는 말씀이요, 지금 여러분이 추구하고 생각하는 사상체계라는 것은 사탄과 관계된 입장을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사탄세계의 모든 구성요소는 어떠한 것이든 인간을 중시하고 나타난 것이기에 타락권내를 벗어나지 못한 것들입니다. 따라서 새 말씀을 가지고 모든 것을 혁신해야 됩니다.
참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절대 투입해야 합니다. 자기이름, 자기모양 사진, 옷까지 전부 불살라 버려야 합니다. (398.328, 2009.12.17)
아버지! 인간적인 사(私)된 것을 제거하여 주시옵소서. 타락의 후손으로 태어나 자기 나름의 탈을 쓰고 자기 나름의 주의 주앙을 가지고 아버지 앞에 나타날 수 있는 모든 여건을 제거하여 주시옵소서. (21.132, 1968.11.17) 2. 하늘의 훈련
종교 경전
아들아, 여호와께서 타이르시는 말씀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그의 꾸지람을 달게 받아라. 여호와께서는 사랑하는 자를 꾸짖으시되 귀여운 아들에게 매를 드는 아비처럼 하신다.
여호와께서도 아시다시피, 사람이 산다는 것이 제 마음대로 됩니까? 사람이 한 발짝인들 제 힘으로 내디딜 수 있습니까? 그러니 여호와여, 화가 나서 매를 드셔도, 죽여 버리셔야 되겠습니까? 그저 법대로 다스려 주십시오.
사람들이 “우리는 믿나이다”라고만 말하면 시험을 받지 않고 (편히) 남겨질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하나님은 이미 그들 이전의 사람들을 시험하였으니, 하나님께서는 진실을 말하는 자와 거짓을 말하는 자들을 아시니라.
우리는 환난 가운데서도 기뻐합니다. 그것은 환난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품격을 낳고, 품격은 소망을 낳는다는 것을 알고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소망은 우리를 실망하게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속에 부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을 여는 길에서 만나는 고통은
메시아 이름 하나를 찾고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힘들었습니까! 레버런 문이 메시아라고 발표하고 나니 세상이 야단입니다. 나라가 야단이고, 세계가 야단이고, 영계로부터 지상 전부가 야단이고, 어머니 아버지 할 것 없이 몽둥이를 들고 나서서 ‘이놈의 자식, 사실이야? 문중에 이런 수치가 어디 있어? 문중에서, 족보에서 잘라 파 버려야 되겟다’하고 야단한 것입니다. 홀로 해 나왔습니다. 메시아는 둘이 아닙니다. 극단의 자리에까지 홀로 그 이름의 실체를 갖춰서 끝까지 부정하지 않고 실낱같은 것이라고 거기에 달려 있어야, 모가지가 끊어지지 안호 달려 있어야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성상대로 빚어주시사 당신의 뜻을 맡을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허락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2.241,1957.06.09) 도움과 구원
1. 고난에 처한 자에 대한 도움 여호와는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누워 놀게 하시고 물가로 이끌어 쉬게 하시니 지쳤던 이 몸에 생기가 넘친다. 그 이름 목자이시니 인도하시는 길, 언제나 곧은 길이요, 나 비록 음산한 죽음의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내 곁에 주님 계시오니 무서울 것 없어라. 막대기와 지팡이로 인도하시니 걱정할 것 없어라. 원수들 보라는 듯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 부어 내머리에 발라주시니, 내 잔이 넘치옵니다. 한평생 은총과 복에 겨워 사는 이 몸, 영원히 주님 집에 거하리이다.
하나님에 대한 의무를 지킨 자에게 그분은 하나의 길을 마련하시고 예상치 못했던 방법으로 양식을 주시리라. 하나님께 의지하는 자 누구든 그분으로 충족하리라. 실로 하나님은 그분의 목적을 온전히 이루는 분이시니라. 하나님은 모든 것에 일정한 한계를 두셨노라.
여호와를 저의 피난처라하고
그것은 권세나 힘으로 될 일이 아니라, 내 영을 받아야 될 일이다.
나와 하나 되라, 그대는 나의 은총으로모든 고난을 이기리라.
힘없고 비천한 사람들
왕들아, 너희가 대군을 거느렸다고
말씀 선집 운명의 길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이 뭐냐. 하나님도 사랑을 인연 맺을 수 있는 그런 무엇이 없다면 보호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돈이 필요합니까? 하나님이 권력이 필요합니까? 지식이 필요합니까? 하나님이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단 하나 가지 필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랑의 길을 가지고 하나님을 조정할 수 있다는 특권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 특권을 가지고서 조정하면 운명의 길도 조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길을 찾아가는 사람은 불행하다고 해도 행복이요, 행복하다고 하면 더 행복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가기 위해서 불행의 세계의 파도를 헤치고 거슬러 가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이 얼마나 멋지게 생각하실 것이냐? 선생님은 그런 생각을 하고, 감옥에서 고문을 받고 매를 맞을 때에도 ‘때려라 이놈의 지식들아, 쳐라 이 지식들아, 그 수가 가해지면 가해질수록 하나미의 사랑이....’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됩니까? 그럼으로 말미암아 모든 생의 운몀 길을, 틀어지는 인생의 운명 길을 우리는 비로소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단 하나가 무엇인가? 우리 인생길은 믿을 수 없는 길이요, 허황한 길이요, 불안한 길이요, 그 다음엔 죽음의 고리를 묶는, 비참한 죽음의 고비를 넘는 길이지만, 이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고, 이것을 바로잡을 수 있고, 이것을 보호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이외에는 없다는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사랑을 가지고 살고 죽는 모든 것을 하나나님과 같이할 수 있는 것이요, 보다 가치적인 내용을 지닌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 길이야말로, 이러한 자리야말로 우리 인생 누구나가 찾아가야 할 길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67.175-176,1973.06.03) 우리의 마음은 찾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전파도 아무 곳에서나 작용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수신기가 있는 곳에서만 작용하는 것입니다. 상대기준이 있으면 어디서든 작용을 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참다운 양심과 참다운 심정적인 기준, 하늘의 심정적인 터전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어디 가든지 어느 때든지 억울하고 슬픈 자리에서도 자기도 모르게 살 길이 생깁니다.
오해받는 자리에서도 살 길이 생깁니다. 그 살 길은 좋은 자리에서는 그렇게 많이 안 생깁니다. 역사적인 혁명, 역사적인 발견, 역사적인 성곡을 했다는 사람 가운데 평탄한 자리에서 성공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죽음과 직면한 자리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늘은 그런 자리에서 여러분을 찾아오고 계십니다.
이 이상도 참겠다고 할 때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야, 아무개야. 더 이상 참지 마라, 그 길을 더 가지 마라’ 하고 정지시키는 것이 복귀의 자리입니다. 감사와 찬송의 마음을 가지고 참고 견디는 날에는 하나님께서 눈물을 흘리며 찾아오셔서 ‘세상 가운데에 너 같은 아들이 어디에 있으며, 딸이 어디에 있겠느냐? 지금 네가 하는 일을 딴 사람에게 시키겠다’ 하시면 그를 안식의 자리, 하늘땅에 없는 복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옮겨놓으려고 하시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협조해 주시는 것은 어떤 지점을 넘어서야 하는 것입니다. 이 지점을 넘어서야만 하나님이 협조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이하에서는 협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공식이 돼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보더라고 은사의 시대가 있었으면 반드시 핍박의 시대가 있었습니다. 반드시 사탄이 공격하는 때가 있었습니다.
당신이 걸어오신 길을 따라와 보니 십자가의 길이었사옵니다. 그러나 남이 알지 못하는 그 길을 개척자의 심정으로몸부림치며 따라와 보니 그길이 망하는 길이 아님을 알았사옵니다. 인간들은 조롱하였으나 당신은 격려하셨사옵니다. 수많은 백성들과 수많은 인간들은 반대하였으나 당신은 앞에 서서 위로해 주셨사옵니다. ‘내가 있고 영계에 있는 천 천만 성도들이 네 갈 길을 옹호한다’ 고 하시며 몇 번이고 권고하셨던 것을 저희는 알고 있사옵니다. 2. 위험과죽음에서 구원
종교경전 오, 너희 믿는 자들이여! 너희에게 베풀어 준 하나님의 자비를 기억하라. 적군이 너희를 공격하여 왔을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너희가 보지 못한 폭풍과 군대를 보냈느니라. 실로 하나님은 너희의 모든 행위를 지켜보고 계시노라. 보라, 그들이 너희의 위와 아래로 공격하여 왔을 때, 눈은 몽롱하여 지고 심장이 목구멍까지 고동쳐 오르자, 너희는 하나님에 대한 무익한 생각들을 일으켰느니라. 그때 믿는 자들은 시련을 받았고 격렬하게 동요되었노라. .. 그리고 하나님께서 격노한 불신자들을 물리치시니, 그들은 아무 것도 얻지 못하였노라. 믿는 자들은 하나님만으로도 전쟁에서 충분하였으니, 하나님은 강하시고 전능하시노라.
그제야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은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불러 여호와를 찬양하였다.
그래서 이 명령을 받은 부하들이 그들에게 매질을 많이 한 뒤에, 감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그들을 단단히 지키라고 명령하였다. 간수는 이런 명령을 받고, 그들을 깊은 감방에 가두고서, 그들의 발에 차꼬를 단단히 채웠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찬미의 노래를 부르니, 죄수들이 듣고 있었다. 그 때에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서, 감옥의 터전이 흔들렸다. 그리고 곧 문들이 모두 열리고, 모든 죄수의 수갑이며, 차꼬가 풀렸다. 간수가 잠에서 깨어서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는, 죄수들이 달아난 줄로 알고, 칼을 빼서 자결하려고 하였다. 그 때에 바울이 큰소리로 “그대는 스스로 몸을 해치지 마시오. 우리가 모두 그대로 있소” 하고 외쳤다. 간수는 등불을 달라고 해서, 들고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면서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렸다. 그리고 그들을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서 “두 분 선생님,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팔이 묶인 채 내가 군중들 가운데 내던져지고, 코끼리는 난폭하게 막대기로 내몰렸도다. 코끼리가 도망쳐 울부짖으며 선언하였다. “이 넘어진 자에게 나는 제물이 되리니, 주여, 당신만이 내게 힘을 내릴 수 있나이다.” 카지는 코끼리 부리는 자에게 코끼리를 몰아대라고 윽박질렀다. “네 이놈! 사정없이 내몰아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를 찢어 발겨놓을 테다!” 그러나 신을 명상하고 있던 코끼리는 조금도 움직이려 하지 않았느니, 그의 가슴에 주가 임하셨음이로다. 사람들이 물었다. “이 거룩한 작 무슨 죄를 저질렀단 말이오? 그대는 곳에 따라 마땅히 응하는 내, 그대를 위하여 간략히 설하리라. 가령 어떤 이가 그대를 해칠 뜻을 내어 혹 큰 바다에 표류하여 혹은 원적에게 포위당해 어쩌다가 국법에 걸려들어 참된 관세음이려! 청정 관세음이려! 오, 더없이 맑고 맑은 지혜의 광명이시여!
말씀 선집 하나님은 절박한 순간, 사망의 자리에 생명의 구조선으로 나타나십니다.
우리는 백 퍼센트 어리석은 자리에 섰지만, 백 퍼센트 이상 지혜로운 하나님이 친구가 되고 무한한 영계의 선조들이 나의 동반자가 되고 후원부대가 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고맙다는 것입니다. 내가 일선에서 모험의 자리, 골리앗 앞에 다윗이 나서는 그 기분을 참 잘 압니다. 당당하다는 것입니다 ‘치면 네가 갈라지지 내가 갈라지지 않는다!’ 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다 보니 진짜 그렇게 됐다는 것입니다. (203.192,1990.06.24)
레이건도 총 맞고, 교황도 총 맞았지만 안 죽었습니다. 그러니 레버런 문도 그럴 것이다, 그럴 수 있는 여건이 마련이 돼 있다는 것입니다.(116..155,1981.12.27)
사탄이 하늘나라 사람을 철망으로 묶어 놓으면... 하나님은 때가 되면 아무리 쇠사슬로 묶어 왔다 하더라도 사탄나라 사람이 아니라 하늘나라 사람이기 때문에, 그 묶어 놓은 모든 책임을 사탄에게 추궁한다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와서 구해 갈 수 있습니다. 때가 오면 하늘이 전부 데려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때가 오면 하늘이 전부 데려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 끊어 버리고 데려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입장에서 죽어라도, ‘나는 태어나기를 하늘나라 백성으로 태어났고, 살기를 하늘나라 백성으로 살았고, 철망은 썼을망정 죽더라도 하늘나라에서 죽는다’ 하게 될 때 틀림없이 영계의 하늘나라로 가는 것입니다. 도리어 모든 사람이 잘 싸웠다고 찬양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최고의 복은 하늘나라에 가서 받는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뜻을 위해서 감옥에가는 날이 희망의 날이요, 쇠고랑을 차도 희망의 날이 라는 것입니다. 휘파람을 불고 가는 날에는 내가 올 것을 미리 알고 다 준비해 놓고, 나를 만나서 가르침을 받을 준비를 다 하고서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배고파하면 먹을 것을 배달해 줄 사람도 다 있다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까마귀를 시켜서 먹었다는 것은 약과라는 것입니다. 공산당을 시켜 가지고 먹을 것을 갖다 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계를 통해서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103.207,1979.02.25)
1950년 8월 1일, 백 대 이상의 B-29기가 총공격하여 흥남공장을 크게 폭격하였습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될 것을 미리 알고 잇었을 뿐 아니라 선생님으로부터 직경 12미터 이내는 하나님이 지켜 주시겠다고 하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가까운 사람들에게 모두 선생님 주위에 있도록 일렀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중에서 가만히 명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폭격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금후의 이상세계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복귀의 사명을 하는 사람을 영계에 데리고 가면 하나님에겐 천주적인 손해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방비해 주고 싶었고,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흥남 감옥에 있었을 때 여러 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매일 감상문을 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쓰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에 있어서는 할 만큼하고 있었으니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공산주의가 좋다고도 쓰지 않았고, 나쁘다고도 쓰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백지를 냈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전법을 취해 왔던 것입니다. (35.189,1970.10.13)
이북에서 유엔군이 제일 먼저 상륙한 곳이 흥남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바쁘게 구해야 할 한 아들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공산당들은 그 전전날 한 감방에 있는 사람들에게 밥을 준다고 꼬여서 전부 데리고 나갔습니다. 이 사람들은 죽이려고 그러는 줄은 모르고 밥을 준다 하니 그것을 얻어먹겠다고 서로 가겠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벌써 그것을 알았습니다. ‘너희들은 마지막 길을 가는구나! 그렇지만, 난 죽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너희들은 다 죽더라도 난 죽지 않는다. 어떠한 참사의 비운이 거쳐 가는 자리에서도, 총살을 당해 쓰러지는 자리에서도 난 결코 죽지 않고 살아남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알았습니다.
역전과 복귀
구원은 경우에 따라 거대한 역전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이 기존의 사회적 정치적 질서를 재편성하려는 의도를 표명할 때, 부자와 권력자들이 더 이상 정직한 사람들과 하나님을 외경하는 사람들 위에 군림하지 못할 때, 우리는 거대한 역전을 목격한다. 내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길은 세속적 길과 반대라는 것을 인식한다. 깨달은 사람은 자신의 방향을 180도 전환해야 함을 깨닫는다. 성서는 이러한 내적 역전을, 생명을 얻기 위해 가지를 죽이는 것이며, 광명을 얻기 위해 흑암을 찾는 것이며, 성스러움을 위해 자신을 낮추는 것이라고 말한다.
1. 대 역전
자기를 낮추는 자는 하나님께서 높여 주시고, 자기를 높이는 자는 하나님께서 그를 낮추신다. 사회적 명성을 추구하는 자에게 사회적 명성은 달아나고, 사회적 명성에 초연한 자에게는 사회적 명성이 그를 찾아다닌다. 환경에 집착하는 자에게는 환경이 그를 귀찮게 얽어매지만, 환경이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자에게는 환경이 제자리를 지키게 된다.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천도는 마치 활시위를 메기는 것 같다.
힘 있는 용사의 활은 꺾이고 비틀거리던 군인은 허리를 묶고 일어나게 되리라.
말씀 선집 섭리노정은 구원노정이고, 구원노정은 복귀노정이고, 복귀노정은 창조노정입니다. 일단 공장만 만들어 놓으면 그 다음부터는 찍어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최초의 피조물이 가지고 잇던 관념은 하나님의 관념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관념은 없었습니다.
제로 관념이었습니다. 우리도 복귀노정, 재창조 노정에 있어서 영점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창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생명을 그렇게 잘라 버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본연의 하나님과 연결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2.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는 복귀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보존 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목숨을 잃는 사람은 보존할 것이다. 누가복음 17.33 (기독교)
구부러지면 도리어 온전할 수가 있고,
오, 캇차나여! 세상 모든 사람들은 갈망과 탐착과 업습에 묶여 있다. 그러나 비구는 갈망하여 탐착하는 일에 매달리지 않으며, 번뇌와 타성을 끊으며 자기를 고집하는 편견에 붙잡히는 법이 없다. 그는 존재에서 일어나는 것이란 다만 악이며, 존재에서 멸해지는 것도 다만 악임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그의 이러한 확신은 다만 그 자신 이외의 아무에게도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 캇차나여! 이것을 일러 바른 믿음이라 한다. 무명을 인연으로 하여 행이 있고, 그러나 무명이 멸할 때 행이 멸한다.
일체만유의 밤에 현자는 빛으로 깨어 있으며, 온 세상이 낮이라 부르는 것이 현자에게는 칠흑 같은 무지의 밤이니라
밝게 나타나는 도는 마치 어두운 듯하고,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는 것들, 마져지는 것들, 의근이 머무는 대상들, 이 모든 것들은 예외없이 즐겁고 유쾌하며 마음을 끄는 것이다. 그들이 있다고 말한다.
말씀 선집 하나님의 뜻 길을 가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희생하는 것입니다. 결론은 여기서 탕감법이 성립된다는 것입니다. 탕감법은 양면이 결부돼야 됩니다. 탕감은 무슨 방법이냐 하면 부정방법입니다. 반대의 방법입니다. 반대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아담이 하나님을 부정하고 사탄에게 돌아갔기 때문에, 우리는 사탄을 부정하고 하나님께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그 본연의 위치와 상태 등을 잃어버리게 되었을 때, 그것들을 본래의 위치와 상태에로 복귀하려면, 반드시 거기에 필요한 어떠한 조건을 세워야 한다. 이러한 조건을 세우는 것을 ‘탕감’이라고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잃어버린 명예나 직위나 건강 들을 원상대로 회복하려면, 반드시 거기에 필요한 노력이나 재력 등의 조건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또 서로 사랑하던 두 사람이 어찌 되어서 미워하는 사이가 되었다고 하자. 여기서 이들이 다시 서로 사랑하던 원상태에로 복귀하려면, 그들은 반드시 서로 사과를 하는 등의 어떠한 조건을 세우리 않으면 안된다. (원리강론. 후편 서론 1.1) 3. 본연의 상태로 복귀
종교 경전 만일 그대가 어떤 매듭을 풀려면, 먼저 어떻게 그것이 꼬이게 되었는지 않아야 한다.
일체중생은 자신의 본심이 하나로 혼용되 본래의 청정한 상태로 돌아가고자 하느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리사욕을 억제하고 예로 돌아감이 인이다. 하루라도 자기를 누르고 예로 돌아가면 천하가 인에로 돌아갈 것이다.”
언제나 법도를 알고 지키는 것을 바로 현덕이라고 한다.
그것은 마치 작은 숲을 지나고 큰 나무가 우거진 숲을 지나가던 사람이 이전 사람들이 지나갔던 오래된 길을 보는 것과 같다. .... 그 사람이 왕자에게 말한다. “주인이시여, 저는 숲을 지나가고 있을 때, 어떤 오래된 길, 이전 사람들이 지나갔던 길을 보았습니다. 그 길을 따라서 저는 오래된 도성의 폐허들과 고대 왕자의 영토를 보았는데, 그곳에는 정원들, 동산들, 우물들, 벽의 주춧돌들, 명승지가 있었습니다. 주인이시여, 그 도성을 회복하소서.” 그때 왕자 또는 그의 신하는 그 도성을 회복하고, 그래서 그 도성은 번창하게 되며, 건강하게 노년에 이를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게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는 고대의 길, 이전 시대에 바른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이 걸어갔던 고대의 길을 보았다. 상윳타 니카야 2.106 (불교)
왜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은 음탕하게 되는가? 그 이유는그런 자들이 시나이 산에서 하나님을 만나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뱀이 하와에게 다가오며 그녀를 유혹하여 성관계를 맺었던 것과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시나이 산에서 마주쳤을 때는 호색적 기질이 사라졌지만, 그러나 시나이 산에 서 보지 않았던 우상 숭배자들에게는 호색적인 기질이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탈무드, 샤바트 145b-146a (유대교)
메시아가 오실 때, 거룩한 그 분은 상처(아담의죄)를 치유해주실 것이다. 나아가 세상의 상처 또한 치유해 주실것이다. 창세기 랍바 10.4 (유대교)
말씀 선집 복귀의 길은 인간 편에서 가는 길이기 때문에, 복귀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탕감을 해야 되는데 하나님이 탕감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이 탕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복귀의 길은 탕감하지 않고는 갈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게 뭐냐 하면, 병이 낫기 위해서는 병난 사람이 싫은 약이라도 그저 입을 악물고라도, 쓰더라도 먹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진짜 약은 대체로 단 약이 없습니다. 쓴것이 진짜 약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의 길은 탕감하지 않으면 못 간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92.254-255,1977.04.18)
이제 새로운 아들딸을 만들어 내야 될 텐데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이냐? 여러분이 태어나는 데는 수많은 조상을 통해서 태어났지만, 거꾸로 전부 올라가야 됩니다. 거꾸로 올라가서 우리 인류의 타락한 조상이 아니라 참된 조상의 문을 통해서 하나님에까지 들어가야 됩니다. 기독교의 사상은 하나님의 구원섭리의 사상을 대표한 것입니다. 그 사상의 골자가 뭐냐 하면, 부활입니다. 다시 사는 것입니다. 중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물에 빠져 버린 입장이 되었기 때문에 전 인류가 똑같은 입장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이걸 정리해 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근본 뿌리까지 내려가서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타락은 인간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그 말씀에 불복함으로써 하나님적 인격과 사랑을 구현한 개인과 세계를 이루지 못하고, 도리어 사탄과 짝하여 그의 말에 굴복함으로써 사탄적 인격과 사랑을 이룬 악의 세계를 형성한 것이었습니다. 그런고로 원상으로 복귀하려면 반대로 사탄을 배척하고 잃었던 하나님을 찾아서 그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천적인 인격과 사랑을 이루어야 합니다. (88.209,1976.09.18)
아버지! 역사적인 모든 사정들이 오늘날 저희의 일신에 엉켜 있사오니, 그것을 끊고 해방의 중심을 갖추어 예수 그리스도의 친구의 입장에 서서 아버지 앞에 경배할 수 있는 기쁨의 한 자체로서 세워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중생
예수님은 “거듭 태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스도 안에서 중생은 세속적 인간을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시킨다. 중생한 사람은 하나님과 친밀함을 경험하고 그리스도의 영이 내재한다. 문선명 선생의 가르침에 의하면 사람이 두 번 태어나야 하는 이유는 인간의 타락 때문이다.
모든 세대가 타락의 부정적 결과를 경험하는 것은 인간 혈통의 자리가 더럽혀졌기 때문이다. 인간 타락으로 인해 사탄은 하나님의 권한을 침해하고 인간의 거짓 아버지 자리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인간생명을 악마가 지속적으로 장악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하나님은 원죄가 없는 남자로 아버지를 대표하는 구세주를 , 어머니를 대표하는 성령을 보냈다. 구세주와 성령의 사랑을 통해 우리는 다시 태어날 수 있게 되었다.
1. 하나님의 아들딸로 새롭게 태어남 바리새파 사람 가운데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유대의회 의원이었다. 이 사람이 밤에 예수께 와서 “랍비님, 우리는 선생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임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같이하지 않으시면, 선생님께서 하시는 그런 표적을 아무도 할수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니고데모가 예수께 “사람이 늙은 뒤에 어떻게 다시 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날 수야 없지 않겠습니까?” 하고 말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다. 내가 네게 다시 나야 한다고 한 말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요한복은 3.1-7 (기독교)
그를 영접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으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스승이라 함은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종교적 의무와 이에 따른 지식을 나누어 주는 자를 일러 말함이니, 그는 마땅히 주의 뜻에 어긋남이 없어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그는 사람들에게 신성한 가르침을 줌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거듭나게 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진리로 거듭남이 지선(至善)이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다만 몸을 주었을 뿐이니라.
비구들이여! 나는 구원에 응하며, 언제나 청정한 손을 지닌, 더 이상 미혹한 생을 받지 않을 마지막 몸을 입은 바라문이다. 더할 나위 없는 내과의원이요 외과의원이다. 너희는 나으 참된 후손들이다. 나의 입에서 태어났고 진리에서 태어났으며, 진리로 만들어진 후손들이다. 진리의 상속자요 영적인 상속자이지, 육적인 상속자가 아니다.
왜, 어째서 우리에게 신생(新生)이 필요하냐? 그것은 타락 때문입니다. 타락이 가져온 선물입니다. 그러면 결국 타락은 무엇이냐? 타락한 부모로부터 내가 이어받은, 그런 출생을 한 것이 타락도딘 입장에 선 것이 됩니다.
타락이 뭐냐? 사랑의 진리를 잘못 가진 것입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 이 서구사회에서는 타락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닙니다. 타락으로 사랑의 핏줄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출발점이 달라졌습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지 않으면 구원섭리니 무엇이니 하는 것이 해석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불완전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절대적인 하나님이 불완전한 하나님으로 서야 되었던 것입니다. (193.53,1989.08.20)
예수님은 자기를 찾아온 유대관원 니고데모에게 중생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요 3:3). 중생이라는 말은 거듭난다는 뜻이다. 그러면 인간은 왜 중생해야 되는 것인가? 우리는 여기서 타락인간이 중생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를 알아보기로 하자.
이와 같이 성신은 참어머니로서, 후해와로 오신분이시기 때문에, 그를 여성신으로 계시 받은 사람이 많다. 그리고 성신이 여성신이시기 때문에 성신을 받지 않고서는 예수님 앞에 신부로 설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성신은 여성신이시기 때문에 위로와 감동의 역사를 하시는 것이며(고전 12:3), 또 해와가 지은 죄를 탕감복귀하시기 위하여 죄를 씻는 역사를 하시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남성이시므로 하늘(양)에서, 성신은 여성이시므로 땅(음)에서 역사하시는 것이다. (원리강론, 기독론 4.1.1) 2. 옛 모습을 단절해야 할 중생
종교 경전 누구든지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여러분은 다시 두려움에 빠지게 하는 노예의 영을 받은 거이 아니라 아들이 되게 하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영에 의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영이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증거 합니다 자녀라면 상속자도 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그와 함께 고난을 받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할 사람이 됩니다.
무릇 육으로 난 인간은 아담이 타락한 때로부터 하나님의 적이요, 성신이 인도하시는 대로 맡겨 육으로 된 자기를 버리고 주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하여 성도가 되며, 어린 아이같이 되어 유슨하고 온유 겸손하며, 인내하며 사랑이 충만하여, 주께서 인간에게 합당하다 여기어 내리시는 모든 것에, 어린 아이가 그 부모에게 하듯 기꺼이 순종하지 아니할진대, 영원토록 하나님의 적이 되리라.
이 동일한 사람들은 이 모든 단점의 장막에 싸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러한 관습에 속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영광의 현시자의 손에 들린 확신의 잔에 담겨 있는 불멸의 믿음을 한모금 마시자마자 변형되어 그들의 동족을 위해, 그들의 본체, 그들의 생명, 그들의 믿음, 그리고 그 위에 하나님을 제외한 모든 것을 포기할 것이다! 하나님을 위한 그들의 양보는 너무 압도적이고, 무아경의 환희에의 도취는 너무 앙양되어서, 세상과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그들의 눈에 무가치한 것으로 변해 버렸다. 이 사람들이 ‘재생’ 의 신비를 예증하는 것이 아닌가?...
말씀 선집 자기를 부정하지 않고는 다시 태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기독교 사상은 성령을 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주류사상입니다. 성령이 찾아와서 혹은 구세주와 관계를 맺어서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는 데 있어서 무엇을 하기 위해서 성령이 필요하고 성령이 와야 되느냐? 결국 하늘로 데리고 가자, 하늘로 데리고 가자는 것입니다. 선한 하나님 앞으로 데리고 가자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회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첫 번째 과제가 회개입니다.
부활은 인간이 그의 타락으로 초래딘 죽음, 즉 사탄 주관권내에 떨어진 입장으로부터, 복귀섭리에 의하여 하나님의 직접 주관권내로 복귀되어 나아가는 과정적인 현상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죄를 회개하고,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좀 더 선하게 되었다면, 우리는 그만큼 부활한 것이 된다. (원리강론, 부활론1.3)
저희는 어차피 악에서 태어난 몸이기 때문에 선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두 번 태어나야 할 운명, 이것은 비참한 것이옵니다. 세상에서도 의붓 부모의 자식으로 생활하는 것은 지극히 억울한 것이 아니옵니까? 우리는 의봇아들의 정도가 아니라, 원수의 자식으로 태어났기에 본연의 부모를 찾아가야 하는데, 그 길은 결코 평탄한 길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저희들은 사탄의 화살과 사탄의 창검의 공격을 무수히 받고 있사옵니다. 3. 예수와 성령을 통한 중생
종교 경전 오순절이 되어서, 그들은 모두 한 곳에 모였다. 그 때에 갑자기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하늘에서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들에게 불길이 솟아오르는 것과 같은 혀들이 갈래갈래 갈라지면서 나타나더니, 각사람 위에 내려앉았다.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해서, 성령이 시키는 대로 각각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고, 순종하지 않고, 미혹을 당하고, 온갖 정욕과 향락에 종노릇 하고, 악의와 시기심을 가지고 살고, 남에게 미움을 받고, 서로 미워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주이신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인류를 사랑하심이 나타났을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우리가 한 의로운 일 때문이 아니라, 그분의 자비하심을 따라 거듭나게 씻어 주심고 성령으로 새롭게 해주심으로 말미암아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성령을,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하게 부어 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은혜로 의롭게 되어서, 영원한 생명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성령과 신부가 “오십시오!”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을 듣는 사람도 또한 “오십시오!” 하고 외치십시오, 목이 마른 사람도 오십시오. 생명의 물을 원하는 사람은 거저 마시십시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인자의 살을 먹지 않고, 또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 속에는 생명이 없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에게는 영생이 있을 것이요.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살릴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있고, 나도 그 사람 안에 있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이것은 하늘로부터 내려운 빵이다. 이것은 너희의 조상이 먹고서도 죽은, 그런 것과는 같지 않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우선 영적으로 하나님과 함께 지상의 수직 사랑인 해와를 중심삼고 관계를 맺었다 하는, 본래의 하나님, 완성된 남자와 일체가 디어 해와와 관계를 맺었다 하는, 사랑의 심정권의 수립에 의해서 처음으로 영적인 기준으로 있으면서 사랑의 관계를 맺게 되었다는 조건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 조건적 사랑에 의해서 우리들은 영적 부활의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활 완성은 아닙니다. 그것이 기독교의 중생, 다시 태어난다는 말의 뜻입니다.
신랑되시는 예수님의 사랑과 신부되시는 성신의 사랑이 일체가 된 사랑이 나의 뼈와 살과 하나 돼야 합니다. 즉, ‘내가 너희 안에 있고 너희가 내 안에 있을 것이다. 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사랑의 심정 기반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중생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에서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 유래를 모르고 지금 야단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피가 무엇입니까? 타락하지 않은 완성된 아버지의 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버지인데 아버지 혼자 혈통을 상속해 줄 수 있습니까? 없으니까 어머니를 찾아오는데 이것이 일들 신부를 찾아오는 어린양잔치의 혼인날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기독교에 있어서 성령은 어머니의 역할을 해 왔습니다. 우리는 어머니 영인 성령을 통과하여 아버지 영, 즉 예수의 영을 통과하여 영적 기준에서 새로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오늘날까지 기독교인들은 어머니의 영인 성령의 힘에 의해 생명의 근원, 즉 생명의 기원인, 아버지이신, 와야 할 그리스도의 앞으로 돌아갈 것을 소망하며 기다려 온 것입니다. 타락하기 전에 이미 아들 딸의 생명은 모두 아버지인 아담의 몸속에서 하나의 씨알로 출발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즉, 아들이나 딸이 될 씨알은 아버지의 몸속에 있는 것입니다. (55.117-118, 1972.04.01) 부활
구세주가 출현하여 사탄을 무리치고 지옥에 가두는 그 날 천상과지상의 모든 여혼들이 부활의 자유와 새 삶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문선명 선생이 분명히 밝힌 것처럼, 첫째 부활은 다른 사람의 노력의 대가로 특정 신앙인에게 영원한 은총으로 부여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거룩한 사람들은 바울이 ‘마지막 물리칠 원수는 사망’ 이라고 말한 것처럼, 한 영혼이라도 죽음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도록 악의 모든 권세를 물리치는 투쟁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종교 경전 외치는 자가 가까운 곳에서 외치는 날에는 귀를 기우리라. 그들이 진리의 소리를 듣게 되는날 그 날이 무업에서 나오게 디는 날이니라. 진실로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기도 하고 죽음에 이르게도 하니 우리에게 돌아오리라.
여호와께서 손으로 나를 잡으시자 여호와의 기운이 나를 밖으로 이끌어내셨다. 그래서 들 한가운데 이끌려 나가보니 거기에 뼈들이 가득히 널려있는 것이었다. 그분이 나를 그리로 두루 돌아다니게 하셨다. 그 들 바닥에는 뼈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그것들은 모두 말라 있었다. 그분이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 사람아, 이 뼈들이 살아날 것 같으냐?” 내가 “주 여호와여, 당신께서 아시옵니다.” 하고 아뢰니, 그분이 또 나에게 말씀하셨다. “이뼈들에게 내 말을 전하여라. ‘마른 뼈들아, 이 여호와의 말을 들어라. 뼈들에게 주 여호와가 말한다. 내가 너희 속에 숨을 불어넣어 너희를 살리리라. 너희에게 힘줄을 이어놓고 살을 붙이고 가죽을 씌우고 숨을 불어넣어 너희를 살리면, 그제야 너희는 내가 여호와임을 알게 되리라.’” 나는 분부하신 대로 말씀을 전하였다. 내가 말씀을 전하는 동안 뼈들이 움직이며 서로 붙는 소리가 났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뼈들에게 힘줄이 이어졌고 살이 붙었으며 가죽이 씌워졌다. 그러나 아직 숨쉬는 기척은 없었다. 여호와께서 나에게 또 말씀하셨다. “숨을 향해 내 말을 전하여라. 너 사람아, 숨을 향해 내 말을 전하여라. ‘주 여호와가 말한다. 숨아, 사방에서 불어와서 이 죽은 자들을 스쳐 살아나게 하여라.’ ” 나는 분부하신 대로 말씀을 전하였다. 숨이 불어왔다. 그러자 모두들 살아나 제 발로 일어서서 굉장히 큰 무리를 이루었다. 그러자 그분은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 사람아, 이 뼈들은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다. 뼈는 마르고 희망은 사라져 끝장이 났다고 넋두리하던 것들이다. 이제 너는 이들에게 나의 말을 전하여라. ‘주 여호와가 말한다. 나 이제 무덤을 열고 내 백성이었던 너희를 그 무덤에서 끌어올려 이스라엘 고국 땅으로 데리고 가리라.
그들이 말하길, 우리가 정말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우리가 이렇게 부서진 뼈가 되었는데도. 그들이 말하길, 그러면 그것은 손해 보는 복귀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한마디 외침일 뿐이다. 그러면 그들은 깨어날 것이니라.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다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나는 믿는다. 나의 변호인이 살아있음을!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 자기의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생에 이르도록 그 목숨을 보존할 것이다.
하나님의 징표를 그대는 황량한 대지에서 볼 수 있노라. 하나님이 그 위에 비를 내리면 곧 생기로 가득 차 약동하노라. 대지를 소생시킨 분은 죽은자도 소생시킬 수 있는 분이시리라. 진실로 그분은 만물을 지배하시는 분이니라.
죽은 사람들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썩을 것으로 심는데, 썩지 않을 것으로 살아납니다. 비천한 것으로 심는데, 영광스러운 것으로 살아납니다. 약한 것으로 심는데, 강한 것으로 살아납니다. 자연의 몸으로 심는데, 신령한 몸으로 살아납니다 자연의 몸이 있으면, 신령한 몸도 있습니다. 성경에 “첫 사람 아담은 산영이 되었다”고 기록한 바와 같이, 마지막 아담은 생명을 주는 영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인간이 목숨이 끊어져서 그 육신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을 타락으로 인한 죽음인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죽음으로부터 다시 살아나는 것을 성서가 의미하는 부활이라고 해석하여 왔기 때문에, 이미 타계한 성도들의 부활은 곧 흙으로 분해되었던 그 육신이 다시 원상태로 살아나는 것으로 이루어지리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창조원리에 의하면 이러한 죽음은 인간 조상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초래된 것이 아니다. 원래 인간이란 노쇠하면 그 육신은 자연히 흙으로 돌아가도록 창조된 것이기 때문에 한 번 흙으로 분해되어버린 육신은 다시 원상태로 부활할 수도 없으려니와, 영계에 가서 영원히 살게 된 영인체가 다시 육신을 쓸 필요도 없는 것이다.
한편, 고린도전서 15장 22절에는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아담으로 말미암아 사탄의 혈통을 이어받게 된 것이 사망이요, 여기서부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늘의 혈통으로 돌아가는 것이 부활이라는 것을 의미한 말씀인 것이다.
그러므로 타락된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기 이전의 인간으로 부활된다 하더라도 그의 외형상에는 아무런 변화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성신으로 중생한 사람은 중생하기 이전에 비하여 분명히 부활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이제 그와 강도를 비교해 본다면, 하나는 하늘편의 사람으로서 중생한 정도만큼 부활한 입장에 있고, 또 하나는 지옥에 가야 할 사람으로서 죽은 입장에 있지만 그들의 회형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는 것이다.
이미 위에서 예증한 바와 같이,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을 믿는 자는 사망으로부터 생명에로 옮겨져서 부활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예수를 믿기 전 사망한 상태에 따라 있을 때나 예수를 믿고 생명에로 옮겨짐으로써 부활한 후나 그의 육체상에는 아무런 변화도 생기지는 않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육신도 부활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악한 일을 위하여 사용되어 왔던 건물이 하나님의 성전으로 사용하게 되면, 그 건물의 외형에 있어서는 하등의 변화도 없는 것이지만 그것은 이미 성스러운 건물로 변화된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인 것이다. (원리강론, 부활론 1.3-4)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 고 한 성경에서 말하는 죽음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영원하고 참된 생명을 죽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세계의 타락한 혈통을 이어받은 생명을 죽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뜻을 위해 죽으려는 사람은 산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역설 같지만 타락과 복귀의 내용을 중심삼고 볼 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복귀의 정상적인 논법입니다. (297.265,1998.12.19) 성경은 결론적으로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했습니다. 타락한 세계에서, 타락권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기 생명을 내버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타락권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걸 부정하면 부활이 벌어집니다. 예수님도 자기 생명을 부정했기 때문에 부활할수 있었습니다. 부활은 예수님이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시켜 준 것입니다. (307.167.1998.11.08) 2. 성인의 부활 : 첫째 부활
종교 경전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실 것이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다음에, 살아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이끌려 올라가서,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을 것입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다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각각 제 차례대로 그렇게 될 것입니다. 첫째는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요, 그 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그 다음에는 마지막이 올 것인데, 그 때에 그리스도께서 모든 통치와 권위와 권력을 폐하시고, 그 나라를 하나님 아버지께 바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원수를 그리스도의 발아래에 두실 때까지,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셔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멸망 받을 원수는 죽음입니다.
또 내가 보니,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서 있었습니다. 그 어린 양과 함께 십사만 사천 명이 서 있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의 아버지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많은 물이 흐르는 소리와도 같고 큰 천둥소리와도 같은 음성이 하늘로부터 울려오는 것을 들었습니다. 내가 들은 음성은 거문고를 타고 있는 사람들의 노랫가락과 같았습니다. 그들은 보좌와 네 생물과 그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땅으로부터 속량을 받은 십사만 사천 명 밖에는, 아무도 그 노래를 배울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여자들로 더불어 몸을 더럽힌 일이 없는, 정절을 지킨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어린 양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다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사람 가운데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드리는 첫 열매로 속량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입에서는 거짓말을 찾을 수 없고, 그들에게는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요한계시록 14.1-5(기독교)
나는 또 한 천사가 아비소스의 열쇠와 큰 사슬을 손에 들고,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용, 곧 악마요 사탄인 그 옛 뱀을 붙잡아 결박하여, 아비소스에 던지고 닫은 다음에, 그위에 봉인을 하여 천 년 동안 가두어 두고, 천 년이 끝날 때가지는 민족들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사탄은 그 뒤에 잠시 동안 플려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또 보좌들을 보니, 그 위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는데, 그들은 심판할 권세를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나는, 예수의 증언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이 베인 사람들의 영혼과, 그 짐승이나 그 짐승 우상에게 절하지 않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표를 받지 않은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살아나서, 그리스도와 하께 천 년동안 다스렸습니다. 그 나머지 죽은 사람들은 천년이 끝날 때까지 살아나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이 첫째 부활입니다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사람은 복이 있고 거룩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인간을 구경하기 위하여 지으셨다면, 그런 하나님은 필요 없습니다. 온 신경을 일ㄴ간에게 기울이고 6천년 기나긴 시련의 세월을 거쳐 오면서 인간을 대하여 섭리해 나온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직접적인 하늘의 가족, 즉 식구의 인연, 부자의 인연을 맺기 위해서입니다.
그러기에 무수한 수고의 고비를 넘고 넘어, 오늘도 이 길을 달음질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들이 바라는 가정 말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정의 식구로서 등장하여 그 식구의 위신과 가치를 아버지 앞에 나타내는 그날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부활의 날이요 재림의 날일 것입니다. (7.265,1959.09.27)
‘첫째 부활’ 이라 함은 하나님의 복귀섭리역사가 시작된 이후 재림역사에 의하여서 맨 처음으로 인간이 원죄를 벗고 창조본연의 자아를 복귀하여 창조목적을 이루게 하는 부활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기독교 신도들의 유일한 소망은 ‘첫째 부활’ 에 참여하는 데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어떠한 사람들이 여기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인가? 재림주님이 강림하시게 될 때, 맨 먼저 그를 믿고 모시고 따라 복귀섭리노정의 전체적이며 또한 세계적인 탕감조건을 세우시는 그의 일을 협조함으로써, 모든 인간에 앞서 먼저 원죄를 벗고 생령체급 영인체를 이루어 창조목적을 완성한 사람들이 여기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2. 사랑: 영생의 토대 종교 경전 우리가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 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이것을 아는 것은 우리가 형제자매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죽음 가운데 머물러 있습니다. 자기의형제나 자매를 미워하는 사람은, 누구나 살인을 하는 사람입니다. 살인을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 안에 영원한 생명이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자기으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자매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요한일서 3.14-16
말씀 선집 사랑은 영원하길 바라지요? 그건 절대적 사랑과 하나되어야 됩니다. 그 절대적 사랑과 하나 되려면 하나님과 하나 되어야 됩니다 근본 하나님의 뿌리에서부터 절대적 사랑이 시작되기 때문에 그 절대적인 사랑에는 영원성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체이며 인간은 상대라면 하나님이 영원히 사니 사랑의 상대, 일체된 인간도 영원히 살아야 되는 것은 이론적이요, 논리적인 결론입니다. 참사람에서만이, 절대적인 사랑에서만이 영생이 존속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251.120,1993.10.17)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과 하나 되어 있으면 세상이야 망하든 뭐하든 걱정을 안 합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칼을 붙들고 하나 못 되게 하더라도 그 칼이 무섭지 않습니다. 죽어서라도 간다는 이런 개념이 있는 것입니다. 현재의 생애를 중심삼은 그 생애만이 아닙니다. 영생이 그렇게 다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연히 바라게 되어 있습니다. 현세의 생활보다도 영생을 바라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저희 자신을 입증할 수 있고, 저희 자신은 아버지의 아들이요 딸이라는 것을 여실히 증거 할 수 있는 신념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신념뿐만 아니라 체휼적인 자리에서 아버지와 나는 전후관계, 좌우관계에 있음을 입증하고 그런 입장에서 영원히 같이 있었고, 영원히 같이 살고 있고, 영원히 같이 살 것이라는, 변함없이 그렇다고 할 수 있는 논증의 기원을 스스로 세울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해야 되겟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가야 할 참된 길인 것을 이제 알았습니다. (40.350,1971/02.11) 우주적 구원
종교 경전 부처께서 설하시는 법은 언제나 한 맛으로 온 세간이 널리 구족함을 얻어 점차로 수행하여 도의 열매를 얻게 하느니라. 법화경 5 (불교)
온 세상 모든 인간들아, 머리를 돌려 나에게로 와서 구원을 받아라. 나만이 하나님, 다른 신은 없다. 내가 나의 이름을 걸어 맹세한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은 틀립이 없다. 내 말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지고야 만다.
이 죄악의 세계는 인간이 서러워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하나님도 서러워하시는 세계인 것이다.(창6:6).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 설움의 세계를 그대로 방치하실 것인가? 기쁨을 누리시려고 창조하셨던 선의 세계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설움이 가득한 죄악의 세계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설움이 가득한 죄악의 세계로 영속할 수밖에 없이 되었다면, 하나님은 창조에 실패한 무능한 하나님이 되고 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기필코 이 죄악의 세계를 구원하시지 않은 수 없는 것이다.
지옥문을 닫더라도 그 영원이 죽어가는 것을 볼때 하나님이 ‘아이고 좋다’ 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벗겨 주려고 안달복달하는 것입니다.그래야 하늘 부모의 입장에서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옥까지 해방해야 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는 것입니다. (62.51,1972.09.10)
그리고 마태복음 8장 29절을 보면, 예수님 당시에 바로 사탄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하였던 것과 같이, 끝 날에 있어서도 때가 이르면 악영인들까지도 각각 동급의 지상의 악인들에게 재림하여 그들이 뜻을 위하여 나아가도록 협조함으로써, 결국 오랜 기간을 경과하면서 점차적으로 창조목적을 완성하는 방향으로 통일될 것이다. (원리강론, 부활론 3.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