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성과 편재성(세계경전 - 제1부 하나님과 창조 - 제1장 하나님) u

訓讀王 | 20191201095318

세계경전 - 제1부 하나님과 창조 - 제1장 하나님


   전지성과 편재성

하나님은 만사를 통찰하므로, 어느 것도 그의 시야를 벗어날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통찰한다. 하나님은 어느 곳에서든 편재하므로, 그의 눈길을 피할 곳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중히 생각하며, 주의 깊게 행동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는 일 모두를 직관할 뿐 아니라, 우리 삶의 고난을 보고 동정한다. 그는 모든 삶의 정황에서 우리의 벗이므로, 우리는 결코 외롭지 않다.
(제11장 ‘예정’ 참조).

종교 경전


동과 서가 하나님께 속하나니, 너희가 어느 방향에 있든지 하나님 앞에 있느니라. 그분은 모든 것을 포용하시고 알고 계시도다. 
꾸란 2.115 (이슬람)

내가 앉아도 아시고 서 있어도 아십니다. 멀리 있어도 당신은 내 생각을 꿰뚫어 보시고, 걸어갈 때나 누웠을 때나 훤히 아시고, 내 모든 행실을 당신은 매양 아십니다. 
시편 139.2-3 (기독교)

오, 주님! 당신은 우리가 숨기는 것과 드러내는 일을 알고 계시나니, 천지간의 일이 하나님께 숨겨질 수 없도다. 
꾸란 14.38 (이슬람)

시경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그대가 거실에 혼자 있을 때를 보면서 그대가 서북쪽에 있는 옥루에도 부끄럽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군자는 동하지 않을 때에도 경건하고 말하지 않을 때에도 성실하다. 
중용 33 (유교)

다음의 세 가지를 유념하여라. 그러면 너는 결코 죄의 덫에 걸리지 않을 것이다. 너를 지켜보는 눈이 있고, 네가 하는 말을 듣는 귀가 있고, 네 모든 행동은 하늘 책에 기록되고 있음을 명심하여라. 
미슈나, 아보스 2.1 (유대교)

참으로 하나님만이 심판날을 알고 계시도다. 누구도 내일 무엇을 얻을 것이며, 어디서 죽게 될 것인가를 알지 못하도다. 참으로 하나님만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시도다.
꾸란 31.34 (이슬람)

이 모든 세계의 위대한 주재자는 몰래 행하노라. 여기는 이를 마치 지척에 있는 것처럼 바라보나니, 신들은 그의 이 모든 것을 아는도다.
우리가 몰래 일어나 걷거나 움직일 때,
또 눕거나 일어날 때,
둘이 앉아 비밀스런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
대왕 바루나는 이미 알고 있도다.
거기를 굽어보는 제3자로서···.


혹 누가 천계들을 뛰어넘어 달아난다 해도
여전히 대왕 바루나를 벗어나지 못하나니,
그의 사자들이 천계에서 내려와 두루 다니며
수천의 눈으로 대지를 지켜보고 있도다.
하늘과 땅 사이에,
또 이들 너머에 있는 것들을.
대왕 바루나가 굽어보고 있네.
사람들의 눈 깜박거림도 그는 세고 있나니,
그는 모든 것을 헤아려 알고 있도다. 
아타르바 베다 4.16.1-8 (힌두교)

그대는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가? 셋 사이에 비밀이 있을 수 없나니, 그분은 그들 가운데 네 번째가 되시며, 다섯 사이의 일이라면 그분은 여섯 번째가 되시리라. 그보다 적든 많든, 그분은 항상 그들 가운데 함께하시리. 
꾸란 58.7 (이슬람)


당신 생각을 벗어나 어디로 가리까? 당신 앞을 떠나 어디로 도망치리까?
하늘에 올라가도 거기에 계시고 지하에 가서 자리 깔고 누워도 거기에도 계시며, 
새벽의 날개 붙잡고 동녘에 가도, 바다 끝 서쪽으로 가서 자리를 잡아 보아도
거기서도 당신 손은 나를 인도하시고 그 오른손이 나를 꼭 붙드십니다. 
시편 139.7-10 (기독교)


도둑질하고자 물속으로 잠수하듯 숨는 자여,
이 세상 어느 왕도 너를 볼 수 없다 해도,
하늘의 왕은 모든 것을 보도다. 
요루바족의 격언 (아프리카 전통종교)

말씀 선집


하나님은 사람을 볼 때 마음을 꿰뚫어 보고 그 다음엔 과거를 보고 현재를 토대로 미래를 보는 것입니다. (100.93, 1978.10.08)


하나님은 시간을 초월한 분이기 때문에 24시간 이상의 자리에 계시는 것입니다. (171.27, 1987.12.05)

하나님의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 속에도 있는 것입니다. 하늘 땅 어디를 가든지 거기에 하나님의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계시지 않은 곳이 없다. 즉 무소부재하다고 했습니다. (8.182, 1959.12.13)

참사랑은 센터에 있는 것입니다. 개인을 중심삼은 센터에 있고, 가정을 중심삼은 센터에 있고, 종족을 중심삼은 센터에 있고, 민족을 중심삼은 센터에 있고, 국가를 중심삼은 센터에 있고, 세계를 중심삼은 센터에 있고, 천주를 중심삼은 센터에 있는 것입니다. 참사랑은 모든 센터에 있습니다. 이 센터에 다 뭉쳐지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도 이러한 사랑의 자리에서 무소부재하신 것입니다. 
(195.244, 1989.12.01)

하나님의 사랑은 우주를 품고도 남습니다. 중심적인 기반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큰 기반을 포용하는 사랑의 중심자가 하나님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움직인다고 할 경우에는 작은 것도 전부 따라서 움직여야 됩니다. 하나의 큰 원 안에 전부 들어가 있지요? 그래서 하나님이 전 세계, 전 우주를 커버한다고 하더라도 이론적인 말이 되는 것입니다. (205.33-34, 1990.07.07)


하나님이 없게 될 때 우주는 다 빈 것입니다. 빈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있게 된다면 우주는 꽉 찬 것입니다. 왜 그러냐? 사랑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혼자 있더라도 하나님이 있는 줄 알게 될 때 우주는 꽉 찬 것입니다. 어디나 계신다는 것입니다. 어디나 계신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을 모르게 될 때, 모든 것이 빈 것이고 없는 것입니다. (91.323, 1977.03.01)

그러면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편재성을 어떻게 느끼느냐? 공기를 하나님의 입김과 같이 느껴라, 태풍이 불어오거든 그것을 하나님의 콧김과 같이 느끼라는 것입니다. 흐르는 물이 있거든 그것을 하나님이 이 세계를 위해서 수난 길을 극복해 나오시면서 흘리신 땀과 같이 느끼라는 것입니다. 

태양을 바라보거든 그 태양이 이 우주 전체의 생명의 요인을 상징하였음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태양에서 배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하는 데 있어서 하나의 교본이요 교재로 전개시킨 것, 사랑하는 아들딸을 기쁘게 하기 위한 교재로 만들어 놓은 것이 자연입니다. 나뭇잎을 보고 자기 아들딸같이 여기고 혼자 중얼거릴 수 있는 사람이 있거든 그는 성인에 가까운 것입니다. (59.102-103, 1972.07.09)

이 우주 전체에 살고 있는 사람의 주인이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죽지 않고 살아서 영원히 바라보는 부모가 있다면, 영계나 육계에서나 언제나 바라볼 수 있는 부모가 있다는 것을 한번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살아 있는 지상생활은 물론 영원한 세계까지 전부 다 볼 수 있는 부모가 있다고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118.38, 1982.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