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월적 실재(세계경전 - 제1부 하나님과 창조 - 제1장 하나님) u

訓讀王 | 20191128153529

세계경전 - 제1부 하나님과 창조 - 제1장 하나님



초월적 실재

초월성은 절대자의 본질적 속성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세계에 충만하게 드러나며, 다함이 없다. 하나님은 존재의 토대이며, 모든 피조물의 원자와 생명 속에 내재한 에너지의 원천이다. 그는 우주의 중심이며, 만물의 질서를 유지하도록 한다. 그러나 세계 속에 관여하는 하나님의 초월성과 절대성은 결코 제한되거나 훼손되지 않는다.

어떻게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초월적인 하나님과 결부될 수 있는가? 어떤 구절들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대함에 있어, 국가와 민족의 한계들을 극복함으로써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나타난 초월의 의미를 적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어떤 구절들은 우리가 절대적 존재 자신이 거할 곳으로 선택한, 우리 마음의 가장 깊은 내면세계와 접촉해야 한다고 말한다.

종교 경전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여호와, 그의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하시다. 이사야 6.3(기독교)

하나님 이외에 신은 없나니, 살아 계시고 영원하신 분이시다. 그분에겐 졸음도 잠도 없나니,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그분에게 속하도다. 그분의 허락 없이 어느 누가 그분에게 중재할 수 있으랴? 그분은 그들의 앞뒤에 있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시니, 그분의 뜻이 아니면 그분 지혜의 일부라도 헤아릴 수 없도다. 그분의 권좌가 천지에 펼쳐져 있어도 그것을 유지하는 데 조금도 피곤을 모르시도다. 그분은 지고하시고 영광으로 가득한 분이시다.
꾸란 2.255(이슬람)

누가 바닷물을 손바닥으로 헤아리겠느냐? 하늘을 장뼘으로 재었겠느냐? 땅의 모든 흙을 되에 담아 보았겠느냐? 산을 저울로 달고 언덕을 천칭으로 달았겠느냐? 누가 여호와의 뜻을 좌우할 수 있었으며 좋은 의견으로 그를 가르칠 수 있었겠느냐? 누가 과연 그에게서 자기를 깨우쳐 달라고, 올바른 인생길을 가르쳐 달라고, 현명한 처세의 길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을 받았겠느냐?
보아라, 민족들은 두레박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요, 천칭에 덮인 가는 먼지일 뿐, 섬들도 고운 가루보다 더 무겁지 않도다. 레바논 산 수풀은 장작으로 쓰기에도 모자라고 거기서 뛰노는 짐승들도 번제물로 바치기에 모자란다. 민족들을 다 모아도 하나님 앞에서는 있으나마나, 허무하여 그 자취도 찾을 수 없도다. 
이사야 40.12-17(기독교)

지고한 이 푸르샤는 천 개의 머리와 천 개의 눈과 천 개의 발을 가졌다네. 그는 모든 방면에서 대지를 감싸고 있으며, 또한 시방을 초월하여 있도다. 그의 장려함은 이와 같도다. 이미 있었던 것들과 앞으로 있을 이 모든 것이 푸루샤요, 또한 불사계를 지배하도다.
그의 장려함은 이와 같도다. 그러나 푸루샤는 이보다 더 강대하니, 만유는 그의 사분의 일이요, 그의 사분의 삼은 천상의 불사계로다. 푸루샤의 사분의 삼은 하늘 높이 떠올랐으며, 그의 사분의 일은 하계에 태어났나니, 이로부터 그는 모든 곳으로 퍼져 나갔도다. 생명 있는 것, 생명 없는 것들 속으로 
리그베다 10.90.1-4(힌두교)

그대는 불이다.
그대는 태양이다.
그대는 바람이다.
그대는 달이다.
그대는 별이 빛나는 하늘이다.
그대는 브라흐마이다.
그대는 물이다. 그대, 만유의 창조자여!
그대는 여자요. 또한 남자로다.
그대는 젊은 미장부요. 앳된 소녀라.
그대는 지팡이를 짚고 비틀거리는 늙은이.
그대는 모든 방면으로 마주해 있나니.

그대는 암청색 나비.
그대는 붉은 눈, 초록빛 날개의 앵무새.
그대는 천둥·먹구름·사계요, 푸른 바다라.
시작이 없는 이여,
시공을 여의어 있는 이여!
삼계가 그대로 말미암아 일어나도다. 
스베타스바타라 우파니샤드 4.2-4(힌두교)

영원한 자아는 유일무이요. 영원히 고요한 부동자로되, 생각보다 쾌속하며 느낌보다 민첩하다. 움직임이 없되 모든 움직임을 앞질러 나아가도다. 그를 여의어 살아 숨 쉴 수 있는 것은 아무도 없다. 영원한 자아는 움직이는 듯 적정 속에 머물며, 먼곳에 있는 듯 지척에 있나니, 언제나 만유 가운데 거하되 또한 이들을 떠나 있다.
영원한 자아는 어느 곳에나 두루 있나니, 그는 곧 빛이요, 나누어질 수 없고, 죄악에 물들지 않으며, 모든 것을 아는 초월자요, 내재자이며, 우주를 지탱하고 있는 자존자니라.
이샤 우파니샤드 4-8(힌두교)

혼돈하면서도 이루어지는 무엇인가가 천지보다도 먼저 있엇다.
그것은 소리가 없어 들을 수도 없고, 형태가 없어 볼 수도 없으나, 홀로 우뚝 서 있으며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고, 두루 어디에나 번져 나가며 절대로 멈추는 일이 없어, 천하 만물의 모체라 할 수가 있다.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하겠다. 억지로 글자를 지어 도(道)라고 부르고, 억지로 이름을 지어 대(大)라고 할 뿐이다.
그것은 크므로 어디에나 번져 나가고, 어디에나 번져 나가므로 안 가는 곳이 없이 멀리 가고, 멀리 가므로 결국은 되돌아오게 마련이다. 
도덕경 25(도교)

신격은 천계와 지계가 나타나고 그들에게 형태가 주어지기 전에 존재했다. 그것은 음과 양을 초월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둘의 속성을 지닌다. 그래서 신격은 전체 우주를 주관하는 절대 존재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모든 존재들 속에 살며, 거기서 그것은 영이라 불린다. 인간 속에 편재하는 그것은 마음이라 불린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마음은 천지의 지배자이신 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에 있다. 인간의 마음과 신은 완전히 하나이다.
신은 천지의 근원이며, 만물 영성의 근본이며, 인간 운명의 원천이기도 하다. 그분 자신은 무형이지만 만물에게 체계를 부여한 것도 다름 아닌 신이다. 
요시다 가네토모, 신도의 대의(신도)

오관을 넘어선 경계에 마음이 있고, 마음을 넘어서 지성이 있으며, 지성보다 더 높은 경계에 위대한 아트만이 있다. 아트만보다 더 높은 경계에 미현현자가 있으며, 이보다 더 높은 곳에 지고·편만 불사의 하신 이, 푸루샤가 있느니라. 
카타 우파니샤드 2.3.7-8(힌두교)

부처는 무한자 속에, 존재의 구극에 거하며, 허공에 거하며, 불생불사의 진여에 거하며, 때에 맞추어 의식 있는 존재들에게 현현하며, 과거의 서원들로 한결같으며, 다함이 없고, 모든 중생들과 모든 나라들과 모든 현상들을 버리지 않으며···.
깨달음에 드는 자들이 어떻게 법신을 볼 것인가? 그들은 무한한 거처에서 법신을 보리라. 왜냐? 그들은 별개의 사물이나 현상, 또는 별개의 몸, 또는 별개의 나라, 또는 개별 존재에서 부처를 보지 않으며 모든 곳에 두루 있는 그를 보는 까닭이다.
비유하여 마치 형체 없는 허공이 나아가거나 돌아옴도 없이 생물 무생물의 일체 만유에 두루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바와 같아, 부처도 또한 만유에 편재하여 모든 장소, 모든 생물·무생물, 그리고 모든 나라들에 두루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그러나 그곳으로 나아가거나 그곳에서 떠나오는 일이 없는 것은, 법신이란 다만 중생을 위해 스스로 몸을 현현할 뿐 본래 형체가 없는 까닭이다. 
대방광불화엄경 37(불교)

도는 텅 비어 있지만
쓰고 또 써도
항상 차는 일이 없고,
깊고 깊어서, 만물의 근원 같도다!
모든 날카로움을 꺾어서,
모든 세상의 어지러움을 풀고,
그 밝은 빛을 조화시켜서
세상의 티끌과 뒤섞이니,
깊고 깊어서 영원히 존재하는 것만 같도다. 
도덕경 4(도교)

말씀 선집


하나님은 초월한 자리에 있는 분입니다. 세계적이요, 우주적인 분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주적이요, 세계적인 것으로서 초월한 자리에서 가치의 내용을 지닌 것임을 알아야 됩니다. (94.282-283, 1977.10.09)

절대적 신이 있다면 그 신은 이 태초의 우주의 기원이 되시는 분입니다. 그로 말미암지 않은 것이 없다 이겁니다. 그에 속해 있기 때문에 그에 속한 전체는 그와 더불어 느끼고, 그와 더불어 인연을 갖고 지내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 인간은 4백조개가 되는 세포를 갖고 있는데 모든 세포 자체가 어떤 분야에서건 느끼기만 하면 직접 두뇌에 연락되는 것입니다. 태초의 창조주를 중심삼고 연결되는 모든 존재들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더구나 인간으로 태어나서 의식하고 살고 있고 선하고 보다 차원 높은 가치를 추구하면서 비애를 느끼는 전부가 인간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내 생명은 부모나 사회나 민족, 국가를 통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초월한 하나의 기원, 즉 절대자,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해야 합니다. 동기를 절대적인 입장에 있는 초월적인 동기와 결부시켜야 합니다. 시대적인 인연이라든가, 환경적인 인연, 혹은 사회적인 여건에 결부시켜서는 안 됩니다. 초월적인 원인에 결부시키고, 초월적인 목적에 결부시켜야만 비약하고 초월하고 탈출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 생명을 초월적인 동기에 결부시켜야 합니다. 내 생명의 출발은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절대자, 하나님으로부터 출발되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초월적인 동기에 결부시키게 되면 죽더라도 초월적인 과정에서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죽게 되는 것입니다. (36.64, 1970.11.15)

하나님을 중심하고 완성된 피조세계는 마치 마음을 중심하고 완성한 인간 하나와 같아서, 하나님의 창조목적대로만 동하고 정하는 하나의 완전한 유기체인 것이다. 따라서 이 유기체도 성상과 형상을 갖추어야 할 것이니 그의 성상적인 존재가 하나님이시오, 그 형상적인 존재가 피조세계인 것이다. (원리강론, 창조원리 1.1.1)

모든 것은 돌게 마련입니다. 공기나 모든 소립자를 보더라도 전부 다 둥급니다. 분자면 분자, 전자면 전자도 역시 양자를 중심삼고 돌고 있는 겁니다. 가만히 앉아 있는 놈을 중심삼고 돌게 마련입니다. 태양을 중심삼고 태양계도 돕니다. 은하계도 전체가 하나의 핵을 중심삼고 돌게 마련입니다. 그런 연관관계를 중심삼고 이 우주는 하나의 천태만상의 큰 보따리입니다. 큰 보따리 우주라고 하면 다 들어갑니다. 큰 보따리 우주도 전부가 하나의 핵을 중심삼고 도는 것입니다. 그건 누굴 닮아서 그러냐 하면 주인을 닮아서 그렇습니다. 그 주인이 누구냐 하면 만유의 근원이신 하나님이십니다. (173.134-135, 1988.02.14)

그분은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요, 오늘날 이 세상의 존재의 기원이 되는 가장 모체이신 분입니다. 그분은 존재가치의 기원입니다. 그분이 계시므로, 오늘날 이 현상세계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절대적인 분은 어떤 시대에 변화가 있다고 해서 변하는 분이 아닙니다. 절대적인 것은 변화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시간이나 공간에 제한 받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제한을 초월한 자리에서 모든 제한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21.249, 1968.11.24)

인간은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 되어야만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비록 작은 하나의 개체이지만 전체의 역사를 대신한 존재요, 미래의 모든 인연을 대신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천주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면 인류역사는 무엇을 이루기 위하여 지금까지 흘러왔는가? 우리의 수많은 선조들, 선지 선열들은 무엇을 바라고 나왔는가? 타락한 인간이었기 때문에 먼 곳으로부터 인연되어서 중심으로 찾아들어오고 있습니다. 즉, 씨족주의 시대로부터 부족, 민족을 거쳐서 국가시대와 국제시대, 세계적인 연맹시대를 거쳐 나오고 있는데, 여기에서 하늘은 하나의 대표적인 사람, 즉 역사적인 인연과 시대적인 인연과 미래의 인연을 겸한 터전 위에 하나님의 심정을 결부시킬 수 있는 한 사람을 찾아 나온다는 것입니다.

제1차 대전 당시에는 물질을 중심한 투쟁시기였습니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을 뒷전에 두고 오직 물질만 찾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전 세계가 물질만능주의를 부르짖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모든 시대에 다 통하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은 자기 생애의 인연을 찾아 가는데 있어서 자기의 마음을 중심에 모시고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륜의 철칙입니다. 마음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자는 하늘이 칩니다. 지금까지 하늘은 역사노정에서 인간에게 자신의 마음을 중심으로 선편에 속하여 양심대로 살되 어떤 물질적인 악의 조건에 걸리지 말고 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인간의 양심 기준은 천륜의 심정을 백퍼센트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어 있는가? 그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수많은 장벽이 가로막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바라는 희망봉, 즉 천국의 관문 앞에 곡절의 문이 가로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적으로 말하면 이것은 심판의 관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공포와 불안과 혼란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중심을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물질을 많이 가지고 있어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사람을 지을 때 물질인 몸뚱이를 먼저 지은 후에 영을 불어놓어서 우리는 영과 육으로 되어 있는데, 영이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계가 물질적인 권한을 중심삼고 하나로 움직일 때 무슨 투쟁시기가 나타날 것인가? 사상투쟁시기가 나타날 것입니다. 실제로 그러한 현상이 제2차 대전 이후로 농후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중심하는 사상의 시대가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면 사상은 어떠한 사상이어야 할 것인가? 물질을 뚫고, 마음을 뚫고 영을 중심한 사상이어야 할 것입니다. 영을 중심한 사상의 시대를 찾아나가는 것이 복귀노정입니다. 인간들은 이것을 잃어버린 상태에 아직도 머물러 있고, 영과 양심과 몸의 조화를 잃어버린 상태에 아직도 머물러 있다는 것입니다. (4.268-269, 1958.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