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전 - 제1부 하나님과 창조
제5장 죽음 이후의 삶과 영계
불멸의 영혼
영 또는 혼은 불멸의 인간 본질이다. 영혼은 영원한 하나님께서 온 것이므로 그것은 마침내 하나님에게로 돌아간다. 한편, 흙으로 만들어진 육신은 영혼을 감싸는 옷에 불과하다. 사소한 차이는 있으나 모든 종교에서 발견되는 일반적인 관념이다. 영혼은 천국으로 올라가거나, 지옥으로 떨어지거나, 신성과 하나 되거나, 부활의 날까지 잠들어 있거나, 또 다른 육신으로 환생한다. 이러한 차이와는 무관하게 영혼의 존속은 모든 신앙체계에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종교 경전들은 내세에서 영혼을 감싸고 있는 ‘영적 몸’에 대한 묘사를 포함하고 있다. 어떤 경전들은 그 자체의 형태와 구조를 지닌 영혼을 상징한다. 그것은 지상생활 동안 육신과 함께 있다가 사후에 분리되어 영계로 올라간다. 문선명 선생은 어떻게 지상사람들이 영혼과 육신의 공명에 응해 두 세계에 살고 있는가에 관한 이해를 돕는다. 이것은 영적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 어떻게 지상생활을 하면서 영계를 지각할 수 있는가를 말한다.
영혼이 더 이상 육신에 묶여 있지 않고 의지대로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을 때, 실로 사후에 그 날개를 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상의 삶은 천국에서 요구되는 완전한 영혼의 성품을 훈련하는 수련장소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다음 절에서 이 주제를 다룰 것이다.
1. 육신과 영혼
종교경전
여호와 하나님께서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 코에 입김을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창세기 2.7(기독교)
육체는 영혼의 집이다.
탈무드, 산헤드린 108a(유대교)
그분은 흙에서 인간을 창조하신 후 평범한 액체의 추출물에서 그의 후손이 있게 하셨으며, 그런 후 그의 형상을 만들고 그 안에 그분의 영혼을 불어넣었도다.
꾸란 32.8-9(이슬람)
영혼은 지혜와 통찰의 주체요, 무형상의 행위자이며, 그 자신의 육신과 동일한 크기를 지닌다. 영혼의 또한 카르마의 과보들을 향수하는 자이며, 삼사라의 세계에 거하지만 밝히 아는 자이며, 언제나 지고한 경지를 지향하고 있다.
네미찬드라, 드라브야상 그라하 2(지나이교)
재아가 물었다. “저는 귀신이란 말을 들었으나 무엇을 말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 공자가 대답했다. “ 기는 신이 성한 것이고 백은 귀가 성한 것이다. 귀와 신을 합쳐서 제사를 지냄은 성인의 가르침의 지극함이니라. 모든 중생은 반드시 죽는다. 죽으면 반드시 흙으로 돌아간다. 그것을 귀의라고 한다. 사람이 죽으면 뼈나 살이 땅 밑에 묻혀 스러지고 들의 흙으로 변한다. 그러나 그 기는 하늘위로 솟아올라가 귀의라고 한다. 사람이 죽으면 뼈나 살이 땅 밑에 묻혀 스러지고 들의 흙으로 변한다. 그러나 그 기는 하늘 위로 솟아올라 소명(昭明)한 신이 된다. 기가 증발해 나타나서 사람을 처연하게 느끼게 하는 것은 만물의 정이며 신이 나타난 것이다.”
예기 21.2.1 (유교)
그러나 “죽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나며, 어떤 몸으로 옵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이여! 그대가 뿌리는 씨는 죽지 않고서는 살아나지 못합니다. 그리고 뿌리는 것은 장차 생겨날 몸 그 자체를 뿌리는 것이 아닙니다. 밀이든지 그 밖에 어떤 곡식이든지, 다만 씨앗을 뿌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뜻하신 대로 그 씨앗에 몸을 주시고, 그 하나하나의 씨앗에 각기 고유한 몸을 주십니다. 모든 살이 똑같은 살은 아닙니다. 사람의 살도 있고. 짐등의 살도 있고, 새의 살도 있고, 물고기의 살도 있습니다. 하늘에 속한 몸도 있고, 땅에 속한 몸도 있습니다. 하늘에 속한 몸들의 영광과 땅에 속한 몸들의 영광이 저마다 다릅니다.
고린도전서 15.35-40(기독교)
말씀선집
이 몸은 하나님께서 있는 정성을 다 들여 흙덩이와 같은 것을 수습하여 영원한 이념의 생명체, 즉 영인체가 자랄 수 있도록 만드셨습니다. 예술품도 이 이상의 예술품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야’일어나라’ 고 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최대의 정력을 기울여서 만드신 몸입니다. 거기에 영인체를 불어넣어 하나의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유.무형세계에서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그런 형상을 만들어 축복해 주셨습니다.
(8.80,1959.11.08)
영인체는 인간의 육신의 주체로 창조된 것으로서 영감으로만 감득되며, 하나님과 직접 통할 수 있고, 또 천사나 무형세계를 주관할 수 있는 무형실체로서의 실존체인 것이다. 영인체는 그의 육신과 동일한 모습으로 되어 있으며, 육신을 벗은 후에는 무형세계에 가서 영원히 생존한다. 인간이 영존하기를 염원하는 것은 그 자체 내에 이와 같이 영존성을 지닌 영인체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 영인체는 생심과 영체의 이성성상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생심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영인체의 중심부분을 말하는 것이다. 영인체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소와 육신으로부터 오는 생력요소의 두 요소가 수수작용을 하는 가운데서 성장한다. 그리고 영인체는 육신을 터로 하여서만 성장한다. 그러므로 영인체와 육신의 관계는 마치 열매와 나무의 관계와 같다.
(원리강론,창조원리 6.3.2)
사람은 이중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마음적 사람이 있고, 몸적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마음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마음은 종적인 기준을 갖고 있습니다. 몸은 무엇입니까? 횡적인 기준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이 본래부터 하나님의 이상적 기준에 서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된다면 종적인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이 울릴 때 횡적인 몸은 다 느끼게 됩니다. 종적 기준에 존재하는 영인체에 하나님의 참된 사랑이 울리면 횡적 기준이 되는 몸도 공명되게 되어 있습니다.
(177.216, 1988.05.20)
사람에게는 영적 사람,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영인체가 있고 육신이 있습니다. 영인체 세포, 그것이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은 똑같다는 것입니다. 영계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합니다.
그러면 영인체와 육신이 언제 하나 됩니까?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은 음차와 마찬가지로 공명되어야 합니다. 음차의 하나를 울리면 다른 쪽을 진동수가 같게 공명시키는 것과 같은 이치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작용이 우리의 마음에 오면 자동적으로 몸이 반응해야 합니다. 몸과 마음을 백 퍼센트 공명시키고 되게 할 수 있는 권내로 몰아넣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도 아니요, 능력도 아니요, 힘도 아니요, 오직 사랑입니다.
(138.225, 1986.01.24)
몸과 마음의 세포가 있습니다. 영적 오관이 있고 영인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내적 인간과 외적 인간의 세포가 공명해야 합니다. 영원히 살 수 있는 우리의 내적 사람과, 지상천국에 살 수 있는 외적 사람이 사랑을 중심삼고 공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영인체와 육신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공명되어 울리게 될 때 비로소 영적 세포와 육적 세포가 완전히 작동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눈이 그 작동을 할 때 눈을 뜨게 되면 천상천하 지상천하가 다 보이는 것입니다. 완전 작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영육을 중심삼고 사랑의 힘에 몸 전체가 일치해서 폭파될 수 있는 경지가 되면 거기서 비추어 나오는 하나의 힘과 빛에 의해 천상세계 지상세계 하나님 할 것 없이 다 공명하게 됩니다.
(171.103,1987.12.13)
2. 죽음: 새로운 생명으로 전환
종교경전
그렇게 되면 티끌로 된 몸은 땅에서 왔으니 땅으로 돌아가고, 숨은 하나님께 받은 것이니 하나님께로 돌아가리라.
전도서 12. 7(기독교)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시고 또 생명을 앗아가시니 결국 하나님께로 돌아가리라.
꾸란 50.43(이슬람)
이제 나의 숨은 영혼은 불멸자에게 가며 이 육신은 재가 되어 끝난다.
음, 오, 의근(意根)이여, 기억하라. 그 행위들을 기억하라. 그 일들을 기억하라.
이샤 우파니샤드 17(힌두교)
인간의 본성이 지향하는 것은 영적 삶이다.
이 영적 삶은 육신이라는 고치를 만들어
그 속에 자신의 영혼을 담기 위하여
마음이라는 실을 짜는 것과 같다.
그때에 비로소 영은 육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분명히 알라.
고치가 누에일 수는 없다는 것을.
마찬가지로 육신이 바로 사람일 수는 없다.
단지 인간을 담고 있는 고치일 뿐이다.
누에가 고치를 깨고 자유롭게 날게 되듯이
사람도 그의 육신이라는 고치를 벗어버리고
때가 되면 영계로 상승하게 되는 것이다.
결코 육신의 죽음이 인간의 죽음이라 생각하지 말라.
왜냐하면 인간이란 생명을 뜻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죽음이란 없는 것이다
감로우 법우(생장의 집)
그[자아]를 죽이는 자로 생각하거나. 그를 죽임 당하는 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둘 다 무지한 자들이니, 실로 죽이는 자도 죽임을 당하는 자도 없다. 그는 결코 태어남이 없으며 죽음도 없다. 그는 변하지 않으며 변할 수도 없다. 그는 불생불사로 영원히 있는 자니라. 육신이 죽임을 당할 때에도 그는 죽지 않는다. 그는 불멸하며 연원하나니, 오, 파르타의 아들이여! 어떻게 누구를 죽이거나 죽게하겠는가?
사람이 낡은 옷을 벗어버리고 다른 새옷을 갈아 입는 것처럼, 그와 같이 몸의 주인도 낡은 육신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육신들로 옮겨 가느니라.
그는 칼로도 베지 못하며, 불로도 태우지 못하며, 물로도 또한 적실 수 없으며, 바람으로 말려 버릴 수도 없나니, 버어질 수도 없고 태워질 수도 없으며, 적셔질 수도 말려질 수도 없는 이가 바로 그이니, 그는 나타나 보이지도 않으며, 모든 사량분별을 넘어 있으며, 변화를 초월하여 있느니라. 이와 같이 그를 안다면, 아르주나여, 그대는 슬퍼하지 말라.
바가바드기타 2.19-25(힌두교)
그래도 너희는 현세의 삶을 더 선호하는가.
내세가 더 좋으며 영원하리라.
이것은 옛 성서에도 계시되어 있으며
아브라함과 모세의 성서에도 그러하니라.
꾸란 87.16-19(이스람)
오냐메는 죽지 않는다. 따라서 나도 죽기 않을 것이다.
아칸족의 격언 (아프리카의 전통종교)
조상들을 만나라, 야마를 만나라. 그리고 최고의 천계에서 모든 바람을 이루어라.
불순함을 떨쳐버리고, 그대의 거처를 새롭게 찾아서 빛나는 몸을 받아라.
리그 베다 10.14.8(힌두교)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고 있으나 속사람은 나날이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당하고 있는 일시적인 가벼운 환난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원하고 큰 영광을 우리에게 가져오기 때무입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은 순간적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집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 집은 우리의 손으로 지은 집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입니다. 지금 욱신의 장막을 쓰고 사는 우리는 이 하늘에서 오는 우리가 살 집을 덧입기를 사모하면서 이 장막 집에서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입을 때에 우리는 벌거벗은 사람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장막 집에서 사는 동안 우리는 무거운 짐에 눌려 신음합니다. 그것은 이 장막을 벗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위에 덧입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바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이루어지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는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마음이 든든합니다. 우리가 육을 따라 살고 있는 동안 주에게서 떠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보는 것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이 튼튼하며 차라리 육신을 떠나서 주와 함께 살기를 원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난 선한 일이든 악한 일이든 우리가 육신으로 행한 모든 행위에 대해 그대로 보응을 받아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4.16-5.10(기독교)
말씀선집
한국말에는 재미있는 표현으로 ‘죽는다’는 것을 ‘돌아간다’는 말로 사용합니다. 어디로 돌아간다는 말입니까 ? 이는 단지 공동묘지로 가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원래 인생이 출발하였던 본래의 처소로 되돌아간다는 뜻입니다. 멀고 먼 역사의 기원을 넘어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국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한국 사람으로 돌아간다는 뜻이 아닙니다. 즉, 창조주가 계시다면 그 창조주가 계시는 곳으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거기에서 출발했으니 거기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주도 순환작용을 합니다. 예를 들어 산에 쌓여있던 눈이 녹게 되면 그 물이 조그만 계곡을 통해서 흐르게 되고 더 나아가서 여러 강들을 통해서 대해로 흘러 들어갑니다. 대해로 흘러 들어가게 된 그 물은 수증기가 되어서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순환운동을 통해서 보다 더 높을수 있는 곳으로, 보다 더 좋을 수 있는 곳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299.61, 1999.02.04)
하나님이 인간의 부모이시면 우리 인간을 ‘어떻게 왜 지었느냐?’ 할때, 하나님의 마음에서 출발하여 하나님의 사랑의 품에서 자라서, 하나님의 사랑의 품에서 성숙해서 가정을 이루어 이 땅 위에서 세계적인 사랑과 연결시킬 수 있는 성숙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사랑의 품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인생길입니다.
(135.267-268, 1985.12.15)
인간의 본질은 영적인 것입니다. 저 나라에 가면 그러한 인간의 본질이 남을 위하도록 되어 있는 것임을 더욱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2.138, 1957.03.17)
사람은 지상에서 이상적인 가정을 이루어 살면서 그 속사람인 영인체를 완성시켜 천상세계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영인체가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영원히 사는 천상천국이 우리의 본향입니다. …
인간은 동물과는 달리 영인체가 있고, 또 반드시 가야 할 천상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343.196,2001.01.29)
이제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영원한참사랑 자리에 동참한 것입니다. 바같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한국 어디를 가더라도 이 영생 개념은없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나는 영원한 생명으로 태어났으니 죽어서 영계에 가 보십시오. 일순간에 비약 합니다.
제한된 이 지구의 삶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제한된 곳에서는 자유로이 움직일 수 없지만, 저 세계는 차원이 높은 세계이기 때문에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시간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무엇이든 바라기만 하면 언제 어디서나 다 얻을 수 있습니다. 무궁무진합니다.
우리가 영생체로 지음 받았다는 것을 이제 알았습니다. 영생의 참사랑을 중심한 대상체인 나는 영원한 생명체라는 결론이 자동적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영계에 가기만 하면 우리는 자유로운 것입니다.
(216.116.1991.03.09)
심판
사후 세계로 통하는 첫 통로 다음에 또 다른 덜 편안한 관문이 있다. 각 개인은 가감 없이 정직하게 자신의 삶을 되짚어보아야 하는 심판을 겪는다. 모든 행위와그것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 결과들을 기록하는 장부가 있다. 이제 그 장부가 펼쳐지고 읽힌다. 그 사람의 삶을 기록한 영화가 그 마음의 스크린에 투사된다. 모든 것이 숨김없이 드러나게 된다.
심판의 주요 기준은 자신의 행위들인 것 같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더 많이 살았는가. 아니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이용했는가? 종교경전들은 그 심판 장면을 묘사한다. 여기서 하나님은 심판자로, 예수 또는 무함마드는 변호인인데, 때로는 악마가 죄를 참소하는 자로서 등장하기도 한다. 신은 증거에 의거해 심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점에 대해 문선명 선생은 독특한 통찰을 제시한다. 심판에서 사탄의 참소를 면하기 위해, 우리는 지상생활에서 우리를 가장 미워하고 헐 뜯는 사람들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들을 사랑스러운 ‘가인’이라고 부른다.
경전들은 오직 의로운 자만 들어갈 수 있는 문, 의로운 자만 건널 수 있는 ‘격리의 다리’ , 모든 거짓을 불태우고 오직 참인 것만 남기는 불을 언급한다. 영계는따라 영혼을 받아들이는 여러 영역들과 천국, 그리고지옥들로 구성된다. 영혼들은 분류되어 자신에게 합당한 장소로 스스로 간다.무자격자를 막기 위한 어떤 문지기도 없으며, 교통을 통제하는 어떤 경찰도 없다. 각 사람은 저절로 자신의 품격과 지난 삶에 가장 적합한 장소로 가기 때문이다.
1. 생의 회고
종교경전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심지아 남몰래 한 일까지도 사람이 한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는 심판에 붙이 신다는 사실을 명심하여라
전도서 12.14(기독교)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덮어둔 것이라 해도 벗겨지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라 해도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
마태복음 10.26(기독교)
나는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분을 보았습니다. 따와 하늘이 그 앞에서 사라지고, 그 자리마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나는 또 죽은 사람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할 것 없이 다 그 보좌 앞에 서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책들을 펴놓고, 또다른 책 하나늘 펴놓았는데, 그것은생명의 책이었습니다. 죽은 사람들은 그 책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자기들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요한계시록 20.11-12(기독교)
대지간 지진으로 격렬하게 흐들리고 대지가 그 짐을 내던지고
인간들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말할 적에
그날 대지가 소식을 전하리라.
너의 주님이 계시는 내렸기 때문이니라.
그날 인간들은 흩어진 집단으로 되어 자기가 행한 것들을 보게 되리라.
티끌만한 선을 행한 사람도 그것을 보게 될 것이고 티끌만한 악을 행한 사람도 그것을 복게 되리라
꾸란17.13,(이슬람)
너희가 이승을 떠난 후 신은 너희를 행업을 헤아려 셈하리니,
이 모두가 그의 장부에 낱낱이 적혀 있도다.
순종치 아니한 자들은 소환되리니,
죽음의 사자인 아즈라엘이 그들의 머리 위에 배회하리라.
캄캄한 좁은 길에서 덫에 걸린 그들은
도망칠 곳을 알지 못하리라.
나나크가 말하노니,
거짓말 쇠망하고 마침내 진리가 우세하라라.
아디 그란트, 람칼리 키 바르 13M.1.p. 953(시크교)
인간이 세상을 뜰 때 육신은 분해되고 영혼이 떠날 채비를 한다. 그날 비로소 인간은 육신이 강건 했을 때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보도록 허락받는다. 세 명의 사자가 그 앞에 서서 그의 삶과 지상에서 했던 모든 것을 말한다. 그러면 자기 입으로 모든 것을 인정하고 자기 손으로 거기를 서명한다. .. 이를 마치 욥기 37장 7절의 ““ 모두가 자신의 과업을 인정해야 한다.””고 적혀 있는 것과 같다.
조하르 1, 79a(유대교)
말씀선집
이 땅 위에 왔다가 운명의 순간을 맞이하는 최후의 자리에서 과거를 뉘우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마음에는 과거의 모든 사실들이 영상으로 지나갈 것입니다. 이러이러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스스로 알 것입니다. 선조로부터 이어받은 생명체를 가지고 지금까지 인연된 환경과 남겨 놓은 사연 등, 지난날의 모든 것이 일생의 최후의 순간에 자기의 마음에 영상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 가운데 ‘ 참이 있었다, 내 생명보다도 귀한 그 무엇을 남겼다’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비록 이땅에 왔다가 가더라도 보람 있는 한 때를 남기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왔다 가는 이 인생행로가 행인과 같이 그냥 지나가는 것이었다’ 하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모든 과거의 사연을 회상해 볼 때, 그 모든 사연ㅇ이 머리를 흔들며 회상하면 회상할수록 자기 얼굴에 환희가 넘치며 자기의 모든 문제가 이상에 잠길 수 있다면 죽음의 공포도 그에게는 위로의 한 장면으로 장식될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과거를 회상하는 순간이 공포의 순간이 아니고 다른 그 무엇을 남겼다면 그의 과거도 죽기 않은 것이요, 현실도 죽지 않는 것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과거를 지닌 사람든 반드시 민족이 따라올 수 있는 인연을 가닌 사람이요, 세계 만민이 따라오지 않을 수 없는 인연을 남긴 사람이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생애노정에서 자기를 위해 죽음의 자리까지 가는 것보다 형제면 형제, 친족이면 친족, 남이면 남을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다 바쳐서 그들을 구했다면, 그들을 구하기 위해 부딪친 때가 있었다면 그러한 사실들이 최후의 운명의 자리에서 그의 마음 선상에 영상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 될 것입니다. 아무리 자기를 중심삼은 행복한 때가 있었고, 수 많은 군중으로부터 환영받고 자기가 영광스럽게 찬양받는 거룩한 때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 순간에는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선하였느냐,참되었느냐, 하나님 앞에 홀로 설 수 있었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볼 때, 참과 선은 자기로부터 시작하여 자기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로부터 시작하여 남에게서 결과를 맺게하든가, 남에 의해서 시작되어 나에게 결과를 가져올 수 있아야만 선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원리에서 천지의 모든 존재는 주고받는 인연을 거쳐야 된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과거의 생활이 주는 생활이 었으면 죽음 길에도 공포가 없을 것입니다. 남을 위해 모든 것을 다 주고 남을 위해 희생햇으며, 참에 가까운 생활을 하면서 눈물도 남으로 말미암아 흘렸고, 내 생명도 남으로 말미암아 투입했고, 내 소원도 남으로 말미암은 것이기에 내 맥박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생명력을 끌어 모아 남을 취해서 투입했다고 할 수 있다면 그 과거는 빛나는 과거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험상스런 환경을 갖춘 이 타락권내에서 여러분 자신이 가는 모습을 도표로 그려 보게 될 때, 1년은 이렇게 가고 1년은 저렇게 갈 것이다, 혹은 10년은 이렇게 가고 10년은 저렇게 갈 것이라며 자기 나름대로 자기의 일생 행로를 계획하면서 높고 낮음을 예측할 것입니다. 그 높고 낮음이 자기를 중심삼아 가지고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는 사람은 최후의 운명을 맞이하게 될 때, 자기를 위해 살면서 남을 희생시킨 그 모든 것이 자기를 얽어맬 것입니다.
(31.308-310, 1970.06.07)
2. 천국과 지옥의 구별
종교경전
무덤 속에 있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온다. 선한 일을 한 사람은 부활하여 생명을 얻고, 악한 일을 한 사람은 부활하여 생명을 얻고, 악한 일한 한 사람은 부활하여 심판을 받는다.
요한복음 5.28-29(기독교)
사악한 사람도, 의로운 사람도, 그리고 선과 악이 섞여 있는 사람도 모두 현재적 실존의 법에 따라서 에누리 없는 방식으로 행하는 심판자를 만날 것이다.
아베스타, 야스나 33,1 (조로아스트교)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이 악의가 있는 신체적 형성을 의도하고, 악의가 있는 언어적 형성을 의도하고, 악의가 있는 정신적 형성을 의도한 후에 악의가 있는 세계에 태어납니다. 악의가있는 세계에 태어났으므로, 악의가 있는 감각적 접톡에 의해 시달리며 악의 있는 느낌들을 경험합니다.
그는 마치 뭇 삶들이 지옥에 있는 것처럼 오로지 고통스러움을 경험합니다. 이와 같이, 존재의 태어남은 존재에 기인합니다. 그는 행위 그대로 태어 납니다. 태어나면 감각적 접축이 그를 접촉합니다. 그러므로 존재란 행위의 상속자라고 나는 말 합니다.
맛지마 니카야 1. 389-90, 쿠쿠라와티카 숫타(불교)
인자가 자기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자기 천사들을 거느리고 올 터인데, 그때에 그는 각 사람에게 그행실대로 갚아 줄 것이다.
마태복음 16.27(기독교)
자연히 모든 호피는 그가 사랑했던 죽은 사람의 영혼과 접하기를 원한다. 그러한 목적으로 그는 자신의 심정을 순수하게 유지하고 타인에게 친절하고 관대하다.
호피가 아닌 자로 알려진 나쁜 사람이 죽었을 때, 그의 운명은 매우 다르다. 그의 숨이 몸에서 빠져 나가자마자 ‘두 마음을 가진 자’로 불리는 마법사들이 손으로 그를 잡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를 그들의 나라로 데리고 간다. ‘두 마음을 가진 자’의 나라는 그들이 악한 것처럼 그렇게 악하다
호피족의 전승(미주 원주민 종교)
나팔소리가 울리면 하나님의 뜻을 받은 자들을 제외한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자들이 정신을 잃게 되느니라. 그런 다음 나팔소리가 다시울리면 그들은 일어나서 주위를 보게 되리라.
땅은 주님의 빛으로 빛나고 행위의 기록이 놓이며 예언자들과 증인들이 참석할 것이며 그들은 진리에 의해 심판받으며 부당한 처벌을 받지 않으리라.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행위에 대한 응보를 받으리라. 그분은 그들이 행한 일을 다 알고 계신분이니라.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행위에 대한 응보를 받으리라. 그분은 그들이 행한 일을 다 알고 계신 분이니라.
불신의 무리는 한 무리가 되어 지옥으로 쫒겨 갈 것이니라. 거기에 도착하면 문이 열리며 문지기가 그들에게 ‘너희 중에서 선책된 예언자가 너희에게 주님의 징표를 읽어 들려주고 이날이 올 것을 이미 경고하지 않았는가? ’라고 말한 것이니라. 그들은 대답하길 ‘사실입니다. 불신자들에 대한 형벌의 말씀이 사실로 나타난 것이옵니다. ‘ 하리라.
너희는 지옥의 문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여원히 살리라는 말이 들릴 것이다. 교만한 자의 거처가 얼마나 거련한가!
주님을 경외한 자들은 집단을 이루어 낙원으로 인도되리라. 그들이 그곳에 도착하면 문이 열리면서 문지기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그대들에게 평안함이 있으리라. 낙원으로 들어가서 영원히 살리라’고 할 것이니라.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라.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하신 약속을 이행하셨고 우리에게 살 땅을 주셨고 낙원 속에서 우리가 원하는 곳에서 살게 하셨노라고 대답할 것이니라. 주의 경외하는 자들에 대한 보답이 얼마나 훌륭한가 !
꾸란 39.68-74(이슬람)
죽음이 세상 문턱에서
너는 심판관을 보는 앞을 통과할 것이다.
그의 심판은 진실하여 너의 두 팔을 보리라.
비록 가죽에 덮여 보이지 않는다 해도
그는 모든 추함을 알 것이라
네가 타락한 적이 있다면 그가 알리라.
시판관이 너의 발에서
아무런 얼룩을 보지 못한다면
배를 열어 기뻐하라,
너는 모든 것을 이기고
깨끗한 배를 가졌기 때문이라.
팡족의 노래(아프리카 전통종교)
말씀선집
어떤 사람이 악한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선한 사람인지 무엇으로 측정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간단한 것입니다. 그 사람이 아무리 종교인이라도 그가 천국에 갈 것이냐, 지옥에 갈 것이냐 하는 것을 무엇으로 측정할 수 있느냐? 나를 위해서 살아온 생애가 많으면 그는 지옥행입니다. 남을 위해서 산 생애가 많으면 그는 지옥행 입니다. 남을 위해서 산 생애가 자기를 위해 산 생애보다 1퍼센트라도 많으면 그는 지옥을 넘어서 천국을 향할 수 있는 길에서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기를 위해서 비율이 높을 때는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75.330, 1975.01.16)
그러면 인간의 양심 기준은 천륜의 심정을 100퍼센트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어 있는가? 그렇게되어 있지 않고 수많은 장벽이 가로막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바라는 희망봉, 즉 천국의 관문 앞에 곡절의 문이 가로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적으로 말하면 심판의 관문입니다
(4.269, 1958.08.03)
영생으로 가는 공식적 노정은 같은 것입니다. 거기에는 위해서 살던 사람들만이 통과할 수 있는 정문이 있고, 거기에 문지기가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거기를 통과할 수 있는 자격자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 선생님이 부탁하는 것임을 잘 아시고, 오늘 돌아가서 과거를 반성하면서 새롭게 되기를 바랍니다.
(203.193, 1990.06.24)
영계에 가보면 영계는 방대한데 3단계로 되어 있습니다, 누가 꼭대기에 올라가겠습니가? 보다 위한 사람입니다. 거기에 법이 그렇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여기서 출발해 가지고 저기에 가더라도 좋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라며 환영받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위하는 사람에게는 반대의 세계가 벌어집니다. 그것도 마찬가지로 세 단계입니다. 여기서는 전부 ‘흥! 우리는너 같은 것은 싫어!’하고 반대한다는 것입니다. 두 종류입니다. 두 종류인데 그걸 분석해 보니까. 자기를 위해서 살던 사람은 전부 반대 받고, 남을 위해서 살던 사람은 전부 반대 받고, 남을 위해서 살던 사람은 전부 환영을 받습니다. 이것은 틀림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천국에 들어갈 무리인지 지옥에 들어갈 무리인지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영계를 잘 아는 사람입니다. 두 세계가 있습니다. 여기서 별의별 사람드리 살다가 가는 것입니다.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여기서 살다가 가는데 나를 위한 사람은 이 세계로 가서 지옥으로 가는 것이고, 남을 위해 산 사람은 천국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 두세계가 죽음에서 갈라지는 것입니다.
(203.100-101,1990.06.17)
3. 심판의 법정
종교경전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을, 누가 감히 고소하겠습니까? 의롭게 하여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누가 감히 그들을 정죄하겠습니까? ㅣ그리스도 예수는 죽으셨을 뿐 아니라, 오히려 다시 살아나셔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계시며 우리를 위해 대신 간구하여 주십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 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로마서 8.33-35(기독교)
내가 죽는다면 나의 죽음은 너희에게 자비와 은총이 되리라. 사후에 너희의 행동이 나에게 보내져 내가 그것을 보게 되리라. 옳은 일을 한 자를 위해서 하나님께 찬미드릴 것이며, 악을 행산 자를 위해서는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리라.
이븐 사드 하디스(이슬람)
태어난 자는 결국 죽게 되어 있다. 죽은 자는 다시 새 삶을 얻는다. 살아 있는 자는 결국 심판받음을 알게 되고, 알려지고, 거룩하신 그분 하나님을 알게 되어 있다. 하나님은 제작자, 창조자, 전지자, 심판자, 증거자, 고발자이시다. 그분이 계신 곳은 어디에도 불의, 용서 못할 일, 깔보는 일, 뇌물 받는 일이 있을 수 없다. 모든 것은 순리에 맞게 돌아간다는 것을 명심해라. 무덤이 피난처가 되줄 것이라는 헛된 희망을 갖지 마라, 네가 태어나고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전부 다 그러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훗날 왕의 왕 되신 사랑하는 거룩한 그분 앞에서 지상 삶을 심판받을 것이다.
미슈나, 아보스 4.29(유대교)
말씀선집
예수님이 저 나라에 가서 변호사 노릇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 이 사람은 내 이름을 믿고 선한 일을 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 선하려고 했고 공리의 법도를 지킨 그 사람은 악마도 데려가지 못한다는 것은 악마와 하나님이 협정한 조약이 아니요?’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하나님도 옳다고 하는 것입니다.
(149.98, 1986.11.17)
나의 몸과 마음을 터로 하여 하나님이 최후의 심판을 하게 될 때, 내 개인이 심판의 성경이 되고 법전이 되어 심판을 하여도 걸리지 않는 절대적인 자리를 닦아야만 개인복귀가 완결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개인완성 위에 가정을 완성해야 할 때입니다. 가정의 역사는 전부가 심판의 재로가 되는 것입니다. 가정의역사는 전부가 심판의 재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판받게 될 때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순결의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가정적인 복귀를 이루고 민족적인 터전을 완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민족적인 승리의 기반을 완전히 닦으면 사탄세계의 만민을 심판할 수 있는 것이고, 하나님이 친히 재판장의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변호사가 되시고 사탄은 검사가 됩니다. 전 세계에 널여 있는 민족들이 사탄을 공격하게 될 때 항의를 받지 않는 절대적인 승리의 기반을 닦아야 민족적인 복귀의 길을 갔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국가,세계,하늘과 땅, 온 인류가 구속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영계와 육계를 통합할 천주세계에서 엄청난 역사적인 전체의 탕감기준을 완결해 놓고, 하늘땅을 중심한 억천만세의 대심판장을 마련해 놓은 후 창조주이신 아버지를 모셔 놓고 지금까지 하늘땅을 저끄러 나온 원수를 무자비하게 심판하게 될 때, 배신자로부터 졸장부까지 전부 항의하지 못하고 당연하다고 할 수 있는 기준을 세워야 천지복귀노정이 완결되는 것입니다.
(13.211, 1964.03.15)
여러분은 가인을 사랑합니까? 가인은사탄입니다. 사탄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 영적 사탄,실체사탄이 대드는 것입니다. 죽이고 싶어 하고, 통일교회가 미워 죽겠다고 이를 부드득 부드득 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밥을 달랬나, 떡을 달랬나, 가만히 있는 데도 그러는 것입니다. 여기에 여러분이 걸리지 않으려면 가인을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끝까지 가인을 사랑해야 됩니다. 그런 사람이 아니고는 가인을 구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천국에 가려면 사탄의 영수증을 받아야 됩니다. 사탄의 영수증이란 무엇입니까.? 죄인이 석방되려면 먼저 검사를 통하고, 그 다음에 변호사를 통해서 판사에 의해 석방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으로 볼 때 ,사탄은 검사이고 하나님은 판사이고 예수님은 변호사 입니다.
사탄이 ‘너 이렇게 했지?’라고 하면서 올가미를 쒸워 하나님한테. ‘이 사람은 이렇게 해야 되겠고’하면 하나님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변호사 입장에서 ‘하나님이여, 이 사람의 선조는 이런 일을 했습니다. 본래 혈통이 나쁘지 않은 사람입니다. 이러이러한 조건에 걸렸으니 그 조건에 해당된 창감조건을 세워 가지고 죄를 벗겨 주어야 됩니다.’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해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천국에 가려면 사탄의 영수증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탄을 사랑했다는 영수증을 받지 않고는 영영 천국에 못갑니다.
(48.316-317, 1971.09.26)
4. 자신의 심판
종교경전
자아는 만드는 자이며 만들지 않는 자이다. 행복을 만드는가 하면 슬픔을 만든다. 스스로 친구인가 하면 또한 적이기도 하다. 스스로 좋고 나쁜 처지를 결심한다. 스스로 자신의 베야라나강(지옥의 존재들이 고통을 당하는 강)이다.
마다기히슐로카(자이나교)
제관과 마법사들은 사람들에게 멍에를 씌워
그들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였고,
악행을 일삼아 자신을 파멸케 하였으니,
그들은 자신의 영혼과 양심에 의해 고문당할 것이요,
마침내 분립의 다리에 이르면 영원히 악마의 집에 갇히게 되리라
아베스타, 야스나 46.11(조르아스터교)
이제 당신과 동시에 태어났던 선령이 와서 하얀조약돌로 당신의 선행을 셀 것이며, 또한 당신과 동시에 태어났던 악령이 와서 검은 조약돌로 당신의 악행을 셀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크게 놀라고 두려움에 떨 것이며 ““ 나는 어떤 악행도 저지른 적이 없다.”” 고 거짓말을 하려 할 것이다.
그러면 염라대왕이 ““나는 업의 거울에 비추어볼 것이다.””고 말할 것이다. 그는 거울 속을 들여다 보게 되는데, 그 속에는 모든 선행과 악행이 생생하게 나타나며 거짓말은 아무런 소용도 없을 것이다.
이제 염라대왕의 사자가 당신의 목에 밧줄을 매어 끌고 갈 것이다. 그는 당신의 목을 베고, 심장과 내장을 꺼내고 뇌수를 햝아먹으며, 피를 마시고 살을 먹으며 뼈를 갉아먹는다. 그러나 당신은 죽을 수가 없을 것이다. 설사 당신의 몸은 조각조각 잘라진다 할지라도 그것은 되살아날 것이다 거듭된 난도질은 고통과 통증을 더욱 심하게 만든다.
그 조약돌이 세어지는 순간에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며, 거짓말을 해서도 안 되며, 염라대왕을 두려워해선도 안 된다.
심체인 당신의 몸은 설사 참수되고 네 갈래로 찢어진다 할지라도 죽을 수가 없다. 사실 당신의 몸은 본질적이고 공이다. 당신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염라대왕들은 당신 자신의 망상들이다. 욕망으로 이루어진 당신의 몸은 성향들의 몸이며 공이다. 공은 공에게 상처를 입힐 수 없다. 속성없는 것이 속성 없는 것에게 상처를 입힐 수 없다. 우리 자신의 망상들 외에 염라대왕,신,악마와 같은 우리 바깥에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티베트 사자의 서 (불교)
말씀선집
천국이든 지옥이든 영인체가 그곳에 가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시는 것이 아니라 영인체 자신이 정하는 것이다. 인간은 원래 완성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호흡할 수 있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범되행위로 인하여 생긴 허물로 말미암아 이 사랑을 완전히 호흡할 수 없게 된 영인체는 완전히 사랑의 주체되시는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도리어 고통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이러한 영인체는 하나님의 사랑과 먼 거리에 있는 지옥을 자진하여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원리강론, 창조원리 6.3.2)
여러분이 하늘과 땅의 경계선입니다. 지옥과 천국의 경계선입니다. ‘세상으로 가느냐, 하늘로 가느냐?’ 가 확정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여기에 가는 것입니다. ‘한 발짝 가느냐, 두 발짝 가느냐, 세 발짝 가느냐’ 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 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옥 보내고 천국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자기가 찾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아는 곳에가기 때문에 불평할 수 없습니다. 지옥에 가서 ‘하나님, 나를 왜 지옥에 보냈소?’라고 하지 못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에 대한 불평할 수 없습니다. 자기가 갈 곳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내 자신이 ‘천국갈 수 있느냐, 지옥 갈 수 있느냐?’하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201.225-226, 1990.04.22)
그렇다면 천국과 지옥행은 어디에서 결정됩니까? 나에게서 결정되어진 것입니다. 몸의 오관을 통하여 느끼는 조건들 속에서 양심의 가책을 받는 생활을 하는 자는 지옥에 있는 것입니다. 마음을 중심삼고 마음이 즐길 수 있는 생활을 하는 사람은 천국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사람은 물용과 악심을 버리고 양심을 중심삼고 천륜을 바라보는 것이 지당한 일입니다. 이것은 여러분들도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7.238.1959.09.20)
천국은 누가 가르쳐 주서 가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양심적으로 사는 사람은 자동적으로 가게 돼 있는 곳이 천국입니다. 보십시오. 태양빛이 올라오면 모든 나무의 순은 태양을 향하지요? 미물인 초목까지도 스스로 방향성을 발견해 돌아가거늘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 인간이 자기의 갈 길을 모를 리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75.42, 1975.01.01)
영계
영계란 무엇인가? 그것은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없으며 쉽게 인지할 수 없지만, 인간 존재의 생생한 일부이며 언젠가 모두가 가야 할 곳이다. 문선명 선생은 영계에 대해 아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 다음으로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영계에 대한 세 가지 주제가여기서 제시된다.
첫째, 영계를 아는 것은 지상생활에서 올바른 방향을 발견하고 유지하는 데 핵심이 된다. 둘째, 영계는 닮음의 관계로 지상세계와 상응하며 지상생활에서 가꾼 삶의 질과 사랑을 유지한다. 영계에서의 조화 또는 부조화는 지상 삶에서 온갖 성향과 편견 속에 삶을 꾸려온 사람들(영계의 시민들)의 사랑 또는 사랑의 결여에 기인한다. 셋째, 영계는 다양한 사회와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오늘날에는 하나의 전체적인 천국으로 통일되는 중이다.
1. 영계와 육계의 조응
종교경전
나(바울)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압니다. 그는 십사년 전에 셋째 하늘이랄까 가장 높은 하늘에까지 끌려 놀라간 일이 있습니다. 몸채 올라갔는지 몸을 떠나서 올라갔는지 나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내가 이 사람이 낙원으로 이끌려 올라갔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몸채 올라갔는지 몸을 떠나서 올라갔는지 나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그는 입으로 표현할 수 없는 말, 인간에게는 말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은 말을 거기서 들었습니다.
고린도 후서 12.2-4(기독교)
하나님 외에는 하늘이나 땅에 감추어진 것을 아는 자 없으며, 또 죽은 후 그들이 언제 부활될지 아는 자 없느니라. 내세에 대한 지식이 있는가 하면 그들은 의심하리라. 아니 그들은 그에 관해 장님이로다.
꾸란 27.65-66(이슬람)
여기[현상계]에 있는 것은 무엇이나 저기[브라흐만]에 있으며, 저기에 있는 것은 무엇이나 또한 여기에만 있다.
카사 우파니샤드 2.1.10(힌두교)
광화한 허공 너머에 있는 그대, 자신의 장려함과 강대한 마음의 권능으로 우리를 위해 그대의 영광을 닮아 난 대지를 지어냈다.
리그 베다 1.52.12(힌두교)
우리에게는 이와 같은 대제사장이 계십니다. 그는 하늘에 계신 가장 크신 이의 보좌 오른편에 앉으셨으며, 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시는 분입니다. 이 장막은 주께서 세우시는 것이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율법에 따라 예물을 드리는 제사장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늘에 있는것들의 모형과 그림자를 섬깁니다. 그것은 모세가 장막을 세우려고 할 때에 “너는 명심하여 산에서 네게 보인 그 본을 따라 모든 것을 만들라” 하신 하나님의 지시를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8.1-5(기독교)
역의 구성은 우주 천지에 준거했다. 따라서 역은 천지이 도리를 다 포괄하고 또 일치하고 있다. 우러러 천문을 관철하고, 굽어서는 지리를 살피고 역을 만들었다. 그러므로 역은 천지간의 유현(幽玄)과 명현(明顯)의 일체의 연고를 알게 해준다. 또 역은 사물의 처음으 추량(推量)하고 종말을 근원에 되돌려 맺는다. 그러므로 역은 죽음과 삶의 이치를 알게 한다. 또 역에서는 순수한 정기에 응집하여 모든 물체로 형성되고, 떠도는 혼에 의해서 변화하게 된다. 그러므로 역은 귀신의 정상을 알게 된다.
역의 도리는 천기의 도리와 같으므로 조금도 어긋남이 없다. 역의 지혜는 천지 만물을 두루 감싸고 있으므로, 천하 만민을 두루 제도할 수 있으며 과실이 없다. 역의 도리는 임기응변하여 널리 융통성 있게 시행되지만 방자하게 옆으로 흐르지 않고, 언제나 정도를따라 천도를 즐기고 천명을 알고 따른다. 그러므로 역을 터득하면 근심하지 않게 된다. 또 역의 도리는 땅 위에서 저마다 안처하며 인덕을 돈독히 한다. 그러므로 역을 터득하면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된다.
역은 천지의 모든 변화를 규범화해서 포괄하고 밖으로 나가지 않게 하며, 또 역은 만물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생성케 하여 빠뜨리는 것이 없다.
역경,계사전 1.4.1-4(유교)
말씀선집
사람의 생명은 지상에서 육신의 죽음으로 다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천상세계, 즉 영계에서는 다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천상세계, 즉 영계에서는 성인 현철들은 물론이요, 우리 선조들이 육신과 다른 인격체인 영인체로서 살아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근원의 세계, 즉 무한 영원한 세계세 비교할 때 우리 육신이 살고 있는 이 자연계는 아주 작은 한 부분에 불과합니다.
(411.151-152,2003.07.10)
하나님을 알고 영계를 알아야 됩니다. 타락한 세계의 모든 것을 잊어버리더라도 하나님을 똑똑히 알고 영계를 알아야 합니다. 영계는 영원한 본향입니다. 영원한 본향의 나라입니다. 그 본향의 나라가 영계부터 이루어진는 것이 아니라 지상부터 이루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398.145.2002.12.09)
성경에 보면 바울이 14년 전에 본 3층천을 말했지요? 14년 동안 바울이 어떻게 살아왔습니까? 3층천 본 것을 힘으로 삼아 14년 동안을 닦아 나왔습니다. 바울은 그 이상의 것을 알았기 때문에, 바울은 3층천을 말하고 또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62.47. 1972.09.10)
영계의 모든 것이 지상세계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어디를 초점으로 하고, 무엇을공통분모로 하고 그 주류적 관계가 연결됩니까. 그것이 뭐냐하면 참사랑입니다.
(137.54, 1985.12.18)
지상에는 내면적으로 확대된 생활이 있는 것이지만, 내면적으로 확대된 그 기준은 영계에 가면 표면화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중심이지요? 사랑이 내면화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인류가 한 몸의 세포와 마찬가지 입니다. 자기 자신이 그 세포들 중의 하나가 되는 세계가 영계입니다. 그런경지에 들어가면 하나님이 틀림없이 자기의 마음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하나님!’하고 부르면, 자기의 마음에서 ‘누가 나를 불러? 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세계입니다.
(218.129, 1991.07.14)
영계가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의 몸 밖에 있습니까, 몸 안에까지 들어와 있습니까? 몸 안에 있습니다. 그러니 영계를 지고 다니고, 모시고 다니는 것입니다. 영계를 품고 다니고, 안고 다니는 것입니다.
(162.116, 1987.03.30)
2. 영계의 여러 계층과 영역
종교경전
신은 수많은 지옥과 천국을 지어내고 인간은 이들을 탐험하느라고 기진맥진한다.
아디 그란트, 자푸지 22,M.1.p.5(시크교)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할 곳이 많다.
요한복음 14. 2(기독교)
하늘에 속한 몸도 있고땅에 속한 몸도 있습니다. 하늘에 속한 몸들의 영광과 땅에 속한 몸들의 영광이 각각 다릅니다.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드르며 별들의 영광이 다르고 이 별과 저 별의 영광도 다릅니다.
고린도 전서 15.40-41(기독교)
그들은 장차 교호의 회원이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그들의 손에 맡기신 자니라. 그들은 제사장과 왕이요 그의 충만하심과 영광을 받은 자요 가장 높으신 이의 제사장들이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자요 에녹의 반차를 따른 자요 독생자의 반차를 따른 자니라. 그런고로 기록된 바와 같이 그들은 신들이니 곧 하나님의 아들들이니라.
그들의 몸은 해의 영광에 속하며 저들의 영광은 태양의 광채와 같으니, 곧 하나님의 영광이요 모든 것 중에 가장 높은 것이니, 하늘의 해가 그 영광의 상징으로 기록되어 있느니라, 또 우리가 달의 영광의 세계를 보았더라. 보라, 이들은 달의 영광에 속한 자라. 아버지의 충만하심을 받은 장자의 교회의 회원의 영광과는 다르니, 마치 하늘과 달과 해가 서로 다르듯 다르더라.
보라, 이들은 율법 없이 죽은 자니라…. 이들은 육체로 있을 동안 예수의 간증을 받지 아니하였으나 후에는 받아들인 자니라. 이들은 세상에서 존경을 받으나 인간의 간사한 재주로 눈이 먼 자니라. 이들은 주의 영광을 받기는 하였으나 그 충만함을 받지 못한 자니라. 이들은 아들의 임재하심은 받았으나 아버지의 충만하심을 받지 아니한 자니라. 그러므로 그들은 달의 영광에 속한 몸이요, 해의 영광에속한 몸이 아니니, 달과 해가 다르듯 그 영광이 다르도다.
우리가 달의 영광에 관해 본 시현은 이것으로 끝이나라. 주께서 우리가 영으로 감동되어 있는 동안 기록하라 명하셨느니라. 또 우리는 별의 영광을 보았나니, 그 영광은 별들의 광채가 하늘에 있는 달의 광채와 다르듯 더 적은 것이더라.
이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이나 예수의 간증을 받아들이지 아니한 자니라. 이들은 성령을 부인하지는 아니한 자니라. 이들은 지옥에 던지운 자니라. 이들은 마지막 부활 때까지 곧 주 그리스도 어린 양이 자기 일을 완성하시기 전까지는 마귀로부터 구속을 받지 못할 자니라.
이들은 영원한 세상에서 주의 완전하심을 받지못하였으나 달의 영광에 있는 자의 성역을 통해 성령을 받은 자이니라. 달의 영광에 있는 자들은 해의 영광에 있는 자의 성역을 받게 되는니라. 또한 별의 영광에 있는 자는 그들을 가르치며 인도 하기로 임명된 천사의 성역 또는 드들을 위한 수호신으로 임명된 천사의 가르침과 인도로 성령을 받나니, 이는 그들이 구원의 상속자가 될 것임이니라.
교리와 성약 76.54-88(예수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솔로몬 왕이 “호두 밭 깊숙이 들어갔을 때” [아가6.11]그는 호두 껍데기 하나를 주워 들고 그것을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는 호두 껍데기 속에 보이는 층상을 바라보면서 감각적인 추구욕이 솟구치는 것을 느끼면서 인간이란 존재를 유추하였다…..인간의 두뇌가 수많은 얇은 막으로 둘러싸인 것과 같은 모든 존재들이 영원성을 갖도록 하기 위해 어떤 조치를 해야 한다는 것을 하나님은 아셨다. 그래서 온 세상에 층상의 심오하고 신비스러운 곳에서부터 가장 외부의 겹에 이르기까지 높고 낮음이 있는 것은 이런 원리에서부터 비롯되었다. 모든 것은 덮게를 가진다. 머리 속에 머리가 있고, 영 속에 영이 있고, 껍질 속에 또 다른 껍질이 있다.
최초의 중심지는 가장 깊숙한 곳으로 빛이 있고 투명하고 불가사의하며, 우리의 상상을 넘어선 지극히 청정한 성질을 가진다. 가장 깊은 한 점이 중심을 에워싸는 ‘궁전’을 형성하며, 이것은 또한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투명한 광채이다. 구체적으로 지적할 수 없는 가장 깊은 한 중심의 의복과 같은 이 궁전은 그 자체가 알 수 없는 빛이다. 그러나 이 궁전은 원초적인 점보다는 적게 투명하고 덜 오묘하다. 이 궁전은 그 자체 스스로 처음의 광채와는 또 다른 옷을 입게 된다. 그래서 마치 얇은 막이 두뇌를 감싸는 것처럼 각 조직은 그 이전의 조직을 감싸게 된다, 처음에는 보호막의 역할을 하던 것이 다음 단계의 조직에 대해서는 두뇌와 같은 위치를 갖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런 조직은 아래로도 진행된다. 이 세상의 사람은 천주의 중심 되는 두뇌의 역할을 하면서 영과 육을 보호하는 보호막을 형성하게 된다. 그래서 모든 것은 보다 완전한 질서로 진행이 된다.
조하르(유대교)
모든 왕국에는 저마다. 하나의 율법이 있나니 왕국은 많도다. 이는 왕국이 없는 공간은 없고 큰 왕국이거나 작은 왕국이거나 공간이 없는 왕국은 없음이니라.
어떠한 왕국에나 제각기 한 율법이 있고 율법에는 다 어떠한 한계와 조건이 있어, 이 조건을 감당하지 못하는 자는 모두 의롭다함을 얻지 못하느니라.
예지는 예지와 결합하며, 지혜는 지혜를 받아들이며, 진리는 진리를 품으며, 덕은 덕을 사랑하며, 광명은 광명과 결합하며, 자비는 자비를 측은히 여겨 스스로 자비를 주장하며, 정의는 제 지니대로 나아가 스스로 정의를 주장하며, 심판은 보좌에 앉으사 만물을 다스리시며, 모든 곳을 집행하시는 이를 앞서 가느니라
교리와 성약 88.36-40(예수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말씀선집
영계에 가 보면 영계 전체가 사람 하나로 보입니다. 주체되는 하나님과 이 전체, 큰 한 사람과 하나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온 영계와 육계가 다 흐물흐물해집니다. 하나님이 뛰면 땅도 뛰고, 하나님이 웃으면 땅도 웃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들은 어떻게 중심이 될 수 있습니까? 나와 이 세포를 두고 보면 전부 연결되어 있습니다. 손가락세포를 보게 될 때, 세포가 나에게 전부 달려 있습니다. 그런 의미의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내 손끝을 볼 때, 손끝은 나와 1대1입니다. 전부 나에게 머물러 있습니다. 인간이 우주의 제일 중심이 됩니다. 한 세포와 같은 입장에서 상대할 때는 중심적 자격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 세포를 통하던 피기 발바닥 세포를 통하던 피에게 ,아이고, 머리로 오지 말라’고 할 수 있습니까? 이런 경계선이 있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흑인, 백인, 황인의 구별이 없습니다. 살이 이것은 하얗고, 이것은 노랗고, 색깔이 전부 드릅니다. 눈색깔도 다르고, 머리칼도 다르고, 전부 다릅니다.
그렇다고 ‘아,너는 나하고 다른데 너는 별종이야’그럴 수 있습니까?
영계에 가 보면 한 사람과 같은 조직이 돼 있습니다. 성인들이 눈의 역할을 하고, 귀의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91.280, 1977.02.27)
영계는 하나님을 중심한 한 센터를 중심삼고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지상에는 그것이 안 돼 있습니다. 센터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센터가 아니라. 악을 중심삼은 센터가 돼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상반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영계는 전부 통일입니다. 같은 계급이 아니라도 급이 높은 것도 있고, 물론 지역도 다르지만 모든 것이 하늘을 따라가야 된다는 걸 안다는 것입니다. 낮은 급의 영인들도 하나님을 중심삼고 따라가야 된다는 것이 신앙 관념과 같이 생활의 목표가 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원한 생활목표로 돼 있습니다.
(161.220, 1987.02.15)
지상생활의 인간완성의 기준에 따라 지옥과 천국이 생겨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보면 수천 계급이 생길 수 있습니다. ….. 땅 위에 흩어져 있는 이 계급, 여기에 머물러 있는 급과 같은 것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땅위에 이와 같은 계급이 생기면 영계도 이와 같은 계급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 영계도 많은 모임으로 되어 있고, 계급적으로 분열이 되어 있습니다.
(91.269-270, 1977.02.27)
영계에 가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꽃밖에 없습니다. 어디에 가더라도 꽃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그 꽃이 웃고 춤을 춥니다. 자기의 사랑 가치관의 완성 기준에 따라서 각각 소리 내고 춤추든가, 소리내지 않고 춤추든가, 여러 모습으로 맞이해주는 것입니다. 그때서야 ‘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사랑이라는 것이 이렇게 위대한 것이었구나. 아, 그때진작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하겠지만, 그때가 되면 이미 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그 세계에 합격시키기 위해, 그 주파수를 맞춰주기 위해서 지상에서 교육하고 지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227.100, 1992.02.10)
영계가 완성됐습니까? 영계는 아직까지 미완성입니다. 왜 미완성입니까? 본래 영계의 계급 체계는 하나님과 참부모를 중심삼고 참된 자녀를 중심삼고 전영계가 연결되어야 되는데 그것이 안 돼 있습니다. 지상ㅇ도 역시 안 돼 있습니다. 이 내용만 갖추면 영계는 자동입니다.
다시 말하면, 타락하지 않은 아담주의, 하나님을 중심삼은 아담주의, 아담주의인 동시에 참부모을 중심삼은 계급 조직이 영계인데, 그것이 안 돼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 중심 안에는 불교를 중심삼은 석가모니 모임이 있고 , 공자 모임이 있고, 이슬람 모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영계는 참부모주의와 아담주의가 나타나기를 무슬림이나 공자의 무리나 석가의 무리나 다 바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통일적인 방향을 거쳐야 되기 때문에, 지상에도 참부모의 역사가 세계적인 기준을 찾아 올라가게 될 때 모든 종교의 경계선은 없어지고, 통합운동이 영계의 움직임을 따라 자동적으로 그 결과가 지상에서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161.223, 1987.02.15)
지금까지 영계는 전부 담이 막혀 있습니다. 나라는 없습니다. 세상의 나라 같은 나라는 영계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불교 믿던 사람들은 불교권에 전부 들어가고, 유교 믿던 사람들은 불교권에 전부 들어가고, 기독교 믿던 사람은 기독교권, 이슬람 믿던 사람은 이스람권에 들어갑니다.
이렇게 전부종교 계열 영계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세계적인 한 때, 메시아가 올 때까지 자기 단체를 위해서 준비해 나오기 때문에 지금까지 담을 쌓고 나오는 것입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생긴 하나님의 한과 예수님의 한과 선생님의 한을 전부 영계와 육계에서 풀 수 있는 기준이 되기 전에는 그 담을 헐수 없습니다.
(89.101-102, 1976.10.04)
영생을 위한 준비
종교는 내생의 모습을 단순히 사별한 사람들에게는 위안으로, 혹은 현생에서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진정제로 말해질 수 없다. 오히려 내세의 삶은 지상생활의 목적을 고양시키고 그 의미를 분명하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 지상에서 어떻게 사느냐가 그 자신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영생을 지향하는 안목을 갖고 이 땅에서 산다.
사실 지상의 삶이야말로 우리가 내세의 삶을 준비해야 하는 유일한 기회라는 것이 널리 알려졌다. 행위와 그 응보에 대한 연결고리는 죽음에 의해 분리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영원한 세계에서 자신이 현생에서 행한 행위들의 결실들을 거둔다. 지상생활에서 어떤 사람이 열심히 일하거나 게으르고 , 관대하거나 인색하며, 용기 있거나 겁이 많으며, 관용적이거나 질투심이 많은 것처럼, 그의 내생에서도 그 상태대로 지속된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죽기 전에 종교적인 가르침을 따르고 그릇된 행위를 참회하며 모든 잘잘못을 깨끗이 정화함으로써 영생을 바라보는 눈을 갖고 산다. 준비된 자에게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부주의하고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 죽음은 회한을 남기며 무시무시하고 갑자기 닥쳐온다. 문선명 선생은 영계에서 영혼들은 사랑의 공기로 숨쉰다고 가르친다. 지상에서 사랑하는 능력을 가꾸지 않으면 그 영계가 숨 막히는 곳임을 알게 된다. 영원한 세계에서 인간이 누릴 행복의 척도는 지상생활에서 닦은 사랑의 능력이다.
1. 영원의 시간에서 찰라 와 같은 지상생활
종교경전
너희가 회당에 들어가기 전에 자신의 옷 매무새를 가다듬는 것처럼 현세는 앞으로 도래할 세계의 현관과 같다.
미슈나, 아보스 4,21(유대교)
귀매(歸妹): 군자는 (이 괘를 보고)끝을 영원하게 살펴서 한 때의 감정이 무상함을 깨닫는다.
역경 54(유교)
이 세상에서 선행을 베풀고 한 시간 동안이라도 회개하는 것이 저 세상에서의 모든 삶보다도 훨씬 좋다. 그리고 저 세상에서 한 시간 동안 평온을 가지는 것이 이 세상에서의 모든 삶보다도 낫다.
미슈나, 아보스 4.22(유대교)
오랜 시간의 과정 속에서 사람의 생을 받는 것은 매우 드문 기회이다. 어렵고 또 어려운 것은 업보이다. 가우타마여, 항상 주의하라!
웃타라디야야나 수트라 10. 4(자이나교)
그리고 우리는 사망, 곧 앰율레크가 말한 사망이 인류에게 임함을 보나니, 이는 현세적 사망이라. 그러할지라도 사람에게는 회개할 기간이 주어졌나니, 그러므로 이 생은 시험의 상태요, 아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는 시간이요, 우리가 말한 바 죽은자의 부활 이후에 있는, 저 끝없는 상태를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 되었느니라.
몰몬경, 앨마서 12,24(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
일시적 현세의 것을 바라는 자가 있다면, 하나님은 원하는 사람에게 원하는 것을 주실 것이니라. 그러나 종국에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지옥을 마련하셨으니, 그곳에서 불타고 더럽효지고 버려지리라. 내세의 것을 추구하여 인내로써 노력하고 신앙을 가진 자는 그들의 노력이 하나님께 받아 들여지리라.
꾸란 17.18-19(이슬람
우리는 이 세상에서 장보기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장바구니를 채우든 못 채우든 시간이 되면 집으로 가야만 한다.
이보족의 노래(아프리카 전통종교)
비유하여 수명을 다한 낙엽이 땅 위에 떨어지듯 사람의 삶도 또한 그러하나니, 고타마여, 늘 삼갈지니라!
풀잎 끝에 매달린 이슬방울이 다만 한순간에 사라져버리듯 사람의 삶도 또한 그러하나니, 고타마여, 즐 삼갈지니라!
인생은 흐르는 물과도 같이 또는 시위를 떠난 화살과도 같이 순식간에 흘르가며 현존은 불확실하나니, 그대가 지은 온갖 죄악들을 서둘러 씻어 버리라. 오, 고타마여, 늘 삼갈지니라!
웃타라드야야나 수트라 10.1-3(자나이교)
저녁에 다음날 아침까지 살아 있기를 기대하지 말며, 아침에는 저녁까지 살아 있기를 기대하지 말라. 아침에는 저녁까지 살아 있기를 기대하지 말라. 너희가 건강할 때 아플 때를 준비하고 살아있을 때 죽음을 준비하라
알 나와위 하디스 40선 40(이슬람)
오! 사람들이여, 무슨 일을 하든 하나님을 두려워 하고 죽음을 예기하여라. 일시적이고 부질없는 현세의 부귀와 권력, 쾌락을 대신해서 영원한 은총을 얻도록 하여라.
쏜살 같은 과정을 준비할지니, 이곳은 너희가 잠시 쉬어가는 곳이니라. 항상 죽음을 준비해야 하느니, 당신들은 한갓 죽음의 그림자 아래 살고 있을 따름이라. 하나님의 복음을 들은 사람처럼 현명하게 처신하고 그 복음으로부터 경고의 의미를 새길지어라.
현세는 당신들이 영원히 살 곳이 아님을 깨우쳐야 되나니, 당신은 그 삶을 내세에서 바꾸게 되리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지니, 그분께서는 목적없이 당신을 창조하지 않으셨고 의무나 책임도 지우지 않고 내버려두시기 않으셨도다….
당신은 내세에서 당신들에게 유용하고 도움이 되는 수확을 현세에서 거둘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하느니라.
나흘줄 발라가, 설교67(이슬람)
말씀선집
우리들은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이 세상만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영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세상과 영계는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세상과 영계는 두 세계가 아니고 하나의 세계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가야 할 곳, 우리가 가서 살아야 할 곳이 어디입니까? 물론 우리는 육신 생활을 하면서 이 땅에 있지만 영원한 세계를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세상에 태어나게 되면 일생 동안 10대를 지나, 20대를 지나, 30대를 지나 중년을 지나고 장년, 노년시대를 거쳐 갑니다. 이렇게 지는 해와 같이 일생을 끝마칩니다.
그러나 영계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을 일생이라는 것이 짬깐이고 죽은 다음에 우리가 맞이해야 할 세계가 영원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일생이라는 것은 영원한 세계를 준비하기 위한 기간이라는 것입니다.
(140.121, 1986.02.09)
육신과 영인체를 중심산고 볼 때 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육이 아니라 영입니다. 육은 70-80년의 시간권, 한계권 내에서 살다가 사라지고 말지만 영은 시간권을 초월하고 공간권까지 초월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역사적인 책임을 깨닫고 책임을 다하는 것이 인간의 본의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육신을 중심삼고 잘 살더라도 결국은 죽게 됩니다. 어차피 육신은 죽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적인 기준과 육적인 기준 중에 어느 것이 보다 중요한 것이냐? 육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육은 영을 위하여, 영은 육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입니다.
(20.326, 1968.07.14)
영계에 가게 되면 사랑하지 못한 사람은 질식합니다. 호흡에 맞지 않습니다. 지상생활은 무엇입니까? 지상세계는 저 세계에 들어가서 호흡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훈련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아내보다도 남을 사랑해야 합니다.
(121.294, 1982.10.29)
어머니의 복중에는 태교를 잘 받아야만 건강하고 선한 애기로 태어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형상을 본받고, 하나님의 심정을 본받고, 하나님의 거룩한 신성을 본받으며 자라야 됩니다. 자라서 또 생명을 걸고 넘어가야 됩니다.
(14.17, 1964.04.19)
지상에 천법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훈련시키기 위한 무대가 종교입니다. 종교는 본향에 돌아가게 될 때 그 고향 법을 살아생젅에 지상에서 훈련 받아서 그 법도에 적응할 수 있는 인격을 갖추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종교생활의 도리입니다.
고차적인 종교일수록 자신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고차적인 종교일수록 온유 겸손을 강조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희생 봉사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됩니까? 본향의 법칙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어차피 본향을 찾아가는 나그네와 같은 신세이므로 본향에 가서 살 법도에 알맞게 훈련시키려니, 고차적인 종교일수록 희생하라고 가르쳐온 것입니다.
(77.189, 1975.04.06)
이 땅 위에 있는 생활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한 번 밖에 없습니다. 지상생활을 영생에 비유하면 한 점에 불과하고 너무 짧은 순간입니다. 나의 육신 생활을 넘어 영계를 위해서 준비를 해야 합니다. 항상 그런 주류사상을 지니고 일체를 주관하고 정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개성 완성을 이룰 수 없습니다.
(207.99, 1990.11.01)
‘내가 젊으니 이제부터 적어도 사십 년, 오십 년은 산다’는 욕심을 갖고 있지요? 하나님에게 보증 받고 있습니까? 될 수 있는 대로 짧게, 일년 이내에죽을 것으로 생각하십시요. 이 짧은 기간에 준비를 다 해야 합니다. 이 관념을 갖고 사십시오, 될 수 있는 대로 짧게 잡을수록 행복합니다. 짧게 잡을수록 손해 안 봅니다. 그 기간에 참되게 준비 하는 내용이 자기의 영원한 생명의 집을 짓는 것 입니다.
2년 후에 진짜 죽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심각하겠습니까? 공동묘지에도 가 보고, 장사 나가는 데도 가 보십시오, 이것은 신앙생활에 절대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살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죽는 것이고, 죽겠다고 하는 사람은 사는 것입니다. 원리가적용되는 것입니다. 내가 빨리 죽고자 하면서 짧은 기간에 뜻을 위해서 죽겠다고, 하늘을 위해서 죽겠따고 생각하면 영원히 살게 됩니다.
(102.122, 1978.11.27)
2. 하늘 나라에 보물을 저장하라.
종교경전
너희는 자신을 위해 재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땅에서 는 좀이 먹고 녹이 슬어 못쓰게 도며 도둑이 뚫고 들어와 훔친다. 그러므로 너희 재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좀이 먹거나 슬거나 해서 못쓰게 되는 일이 없고 도둑이 뚫고 들어와 도둑질 하지도 못한다.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는 것이다.
마태복음 6. 19-21(기독교)
젊어서 재보를 마련하지 못하고 수행을 하지 않은 이는 고기 없는 못가의 늙은 왜가리처럼 쓸쓸히 죽어 가리라.
젊어서 재보를 마련하지 못하고 수행을 하지 않은 이는 부러진 활처럼 쓰러져 누워 지난날을 탄식하리라.
법구경 155-156(불교)
오, 빈틈없는 상인이여, 이익 있는 장사만 하라. 죽어서도 그대와 동반할 그런 상품들만 다루라.
아디 그란트, 스리 라가. M.1,p.22(시크교)
여자와 자손, 축적된 금과 은 명마 가축, 그리고 전답으로부터 얻는 기쁨에 대한 사랑이 인간들에
게 아름답게 보일지라도 그것들은 현세의 기쁨에 불과하니라.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 가장 좋은 안시거이니라.
말하라, 내가 너희에게 그것보다 더 좋은 곳을 알려주리니. 주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그 아래에 강물이 흐르는 낙원이 있으며, 그곳에서 영원히 살 것이며, 순결한 배우자와 하나님의 기쁨이 함께 할 것이니라.
꾸란 3.14-15(이슬람)
오랜 세월 객지를 떠다니다가 아무 탈 없이 고향에 들어온 이를 친척과 친구들은 흔쾌히 맞아들인다. 이와 같이 선 공덕을 쌓고 저 세상으로 가는 이는 선한 과보를 환영받으리. 사랑하는 이가 돌아온 것을 반기듯이.
법구경 219-220(불교)
죽은 육신은 나무토막처럼 땅에 버려지고 친척들은 모두 고개를 돌리며 떠난다. 오직 영적 공덕만이 영혼을 따른다.
그러므로 죽은 후에도 그를 따르는 벗이 되도록 그로 하여금 항상 차근차근 공덕을 쌓게 하라.
벗으로서 공덕이 없다면 그는 건너기 어려운 고난을 통과해야 할 것이다.
그 벗은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 고행을 통해 죄를 씻은 자를 빛나는 에테르체로 단장하여 저 세상으로 곧바로 데려간다.
마누법전 4.241-243(힌두교)
그리고 그들에게 비유를 하나 말씀하셨다. “ 어떤 부자가 밭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그래서 그는 속으로 ‘ 내 소출을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떻게 할까?’ 하고 궁리하였다. 그는 혼자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겠다. 내 곳간을 헐고서 더 크게 짓고, 내 곡식과 물건들을 다 거기에다가 쌓아 두겠다. 그리고 내 영혼에게 말하겠다. 영혼아,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너는 마음을 놓고, 먹고 마시고 즐겨라’.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 어리석은 사람아,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네게서 도로 찾을 것이다. 그러면 네가 장만한 것들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자기를 위해서는 재물을 쌓아 두면서도 하나님께 인색한 사람은 바로 이와 같이 될 것이다. “
누가복음 12.16 – 21
나는 세상에서 재물을 모아 부자가 된 사람들을 아는데, 미혹에 사로잡혀 그들은 다른 이들에게 베풀 줄 모르네.
탐욕에서 부를 축적하며 다만 감각적 쾌락을 갈망할 뿐이라네….
상속자들은 그의 재물을 앗아가네.
그러나 그 존재는 업을 따라갈 뿐이다.
재물도 죽어가는 그를 따라가지 않고, 자식이나 아내도, 부나 왕국도 그를 따라가지 않네. 장수는 재물로 얻어지지 않으며, 늙음도 재산으로 몰아낼 수 없네.
현자가 말하노니, “ 인생은 덧없도다.”
영원하지 않으며 변화무쌍하도다.
부자든 가난한 자든 죽음의 손길을 느끼며 어러석은 자나 현명한 자도 마찬가지라네.
그러나 어리석은 자는 마치 우둔함에 얻어맞은 것처럼 엎어지지만,
현명한 자는 죽음의 손길이 닿아도 떨거나 두려워 하지 않네,
그러므로 지혜는 재물보다 나아서 여기 우리의 성취를 분명하게 약속하도다.
맛지마 니카야 2.72 – 73(불교)
말씀선집
저 나라의 부자가 별건 아닙니다. 그만큼 사랑을 위해 투입한 사람이 부자입니다.
(205.347, 1990.10.02)
죽을 때 다 놓고 가는 것입니다. 가지고 가야 할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가 나를 사랑하고, 본질적 사람인 나를 세우기 위해서 수고하고, 나와 상대의 부부의 사랑, 가정의 사랑을 중심삼고 이 사랑을 세계에 확대하기 위해서 노력한 것입니다. 인류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최후에 남아 저 나라에서 소유권 결정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127.38, 1983. 05.01)
여러분들은 천국 갈 때 예물로 싸가지고 갈 것이있습니까? 영계에 가면 순교당한 공신들이 앞에 쭉 늘어서 있는데, 그들 앞에 여러분들이 싸가지고 간 보따리를 펼쳐 놓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거지발싸개 같은 것 을 펼쳐 놓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통일교회가 무슨 고생을 했으며, 여러분이 무슨 고생을 했습니까?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한다고 하면서, 그만한 고생도 안 해 가지고 어떻게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한다고 하겠습니까? ‘고생을 하긴 했지만 나는 고생했다고 생각 안 합니다.’ 그래야 당연한 것입니다. 아직도 갈 길이 남아 있습니다. 영계에 가서 보따리를 풀어 놓고 ‘ 이것은 일생 동안 제가 장만한 선물이오니 받으시옵소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자들이 시집 갈 때 한보따리씩 해 가면서, 천국 갈 때 달랑달랑 몸만 갈 수 있습니까
(32.71, 1970.06.21)
일생 동안 자기가 하는 모든 일들은 전부가 참사랑을 위한 실적으로서 내 뒤에 영원히 고착되어 있기 때문에 저 나라에 가서 살 때에 남겨진 공적을 중심삼은 영광의 급에 자연히 가서 머무는 것입니다.
(211.288, 1990.12.30)
위하는 사람들이 가는 세계가 천국입니다. 자기를 위하는 사람은 절대 못 가는 곳입니다.
(91.173, 1977.02.06)
인생 최후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늘의 중심이 되는 그분과 만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분과 같이 사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그분과 만나는데 어떤 자리에서 만나느냐, 사는데 어떤 자리에서 사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분과 중심의 자리에서 만나고 중심의 자리에서 살자는 것인데 그 중심의 자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의 양심이 지향하는 최고의 목표는 천운을 따라가서 하나님과 일치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내 것으로 하자는 것입니다. 결론은 그것입니다.
(24.17, 1969.06.22)
영계에 갈 때, 돈을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통일교회 이름을 가지고 가는 것도 아닙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이 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아들딸을 얼마만큼 많이 만들어 가지고 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지금 복귀 과정에서 거쳐 가야 할 것이 뭐냐 하면, 여러분이 사탄세계를 중심삼고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아들딸을 많이 만들게 될 때 그 공로는 선조와 연결되고, 또 선조를 해방시킬 수 있는 길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노정에서 자기가 취할 수 있는 최대의 선물입니다.
교육해서 제자를 많이 가진 것과 마찬가지로 땅에서 출어 가지고 저 나라에 가게 되면, 영계에서 풀 수 있는 상대적 관계가 돼 있는 만큼 방대한 활동 기반이 됩니다. 그것이 영계에 가서 자기 영적 기준에 해당할 수 있는, 부처 전부가 자기 소유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활동하는 무대는 그 기준을 중심삼고 전 영계로 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없게 되면 코너에 몰려서 활동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밤에 잠을 자고 세월 보내며 쉴 사이가 없습니다. 밥 먹고 살고, 자기의 아들딸 먹여 키운 것은 저 나라에 가게 되면 대단한 게 아닙니다. 하늘나라의 백성을 찾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늘나라에서는 자기 소유가 됩니다.
(230.25, 1992.04.15)
3. 지상생활 방식대로 사는 천상생활
종교경전
계로가 귀신 섬기는 일에대해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사람도 제대로 섬기지 못하는데 어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느냐?” “감히 또 묻겠습니다. 죽음은 어떤 것입니까?” “삶도 아직 모르는데 어찌 죽음에 대해 알겠느냐? ” 라고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논어 11-11 (유교)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하낟.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마태복음 18.18(기독교)
사람은 스스로 이 세상에서 지은 업이 무엇인가에 따라서 자신을 만들어 간다. 그가 이생을 떠날 때 바로 그와 같이 되리라.
샹카라, 베단타 수트라 1.2.1(힌두교)
고행을 행하며, 청정계율을 닦아 구족하는 자는 이승에서나 저승에서 모두 훌륭한 과보를 얻으리니, 살아서는 영예를 얻고 죽어서는 또한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누린다.
그러나 죄악을 탐믹하는 자의 삶이나 죽음은 모두 악한 과보를 얻나니, 살아서는 원한을 쌓고 죽어서는 어둠 속에 내던져진다.
다르마다사가닌, 우파데사말라 443-444(자이나교)
약한 짓을 일삼는 자는 이 세상에서나 저 세상에서도 근심한다. 스스로 지은 더러운 행업을 보고 그는 슬퍼하고 괴로워한다.
선한 일을 즐거워하는 자는 이 세상에서나 저 세상에서도 기뻐한다. 스스로 행한 청정행을 보고 그는 기뻐하고 또 기뻐한다.
못된 짓을 즐거워하는 자는 이 세상에서나 저 세상에서도 고통당한다. “내가 못된 짓을 저질렀구나” 하고 뉘우치며 괴로워하고 지옥에 떨어져 거듭 괴로워한다.
선한 일을 즐거워하는 자는 이 세상에서나 저 세상에서도 행복하다. “선한 일을 했구나”라고 여기며 기뻐하고 좋은 세상에 태어나 거듭 행복하다.
법구경 15-18(불교)
하나님은 지상에서 해악을 구하지 않고 타락하지 않은 자를 위해 내세의 안식처를 마련하셨도다. 축복받은 종말은 악함을 멀리하는 자들을 위해 있느니라. 선행을 실천하는 자, 그들은 그 이상으로 보답을 받게 되며, 악행을 행하는 자는 단지 그들이 행한 것으로 징벌을 받으리라.
꾸란 28.83-34(이슬람)
말씀선집
생애의 가치적인 내용이 어디에서 결정되느냐 하면 생애를 다 살고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루하루 삶의 그 날들이 결정하기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잘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197.186, 1990.01.14)
여기서 그렇게 살던 사람이 저 세계에 가서 갑자기 변할 수 없습니다. 세 살 버릇이 여든 살까지 간다는 말이 있잖습니까? 타고난 성격은 고치기 힘든 것입니다. 저 나라에 가 있는 영인체는 지상에서 살던 것과 갑자기 달라질 수 없습니다. 여기서 살던 그 모양 그대로 수확되어 가는 것입니다. 영계에 가 있는 모든 영인체는 결국 지상에 살던 사람들의 영인체입니다. 그렇게 보게 되면 오늘날 이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과 별다름이 없는 세계라는 것입니다.
(141.268, 1986.03.02)
영인체의 모든 감성도 육신생활 중 육신과의 상대적인 관계에 의하여 육성되는 것이므로, 인간은 지상에서 완성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체휼해야만 그 영인체도 육신을 벗은 후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체휼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이 영인체의 모든 소성은 육신을 쓰고 있는 동안에 형성되기 때문에 타락인간에 있어서의 영인체의 악화는 육신생활의 범죄행위에 유인하는 것이며, 마찬가지로 그영인체의 선화도 또한 육신생활의 속죄로 인하여서만 이루어진다. 죄악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육신을 쓰고 지상에 오셔야 했던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느 지상에서 선한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며, 따라서 구원섭리의 제1차적인 목적이 지상에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천국문의 열쇠를 지상의 베드로에게 주셨고, “땅에서 매고푸는 대로 하늘에서도 매이고 풀린다.”(마 16:19)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원리강론, 창조원리 6.3.2)
여러분의 습관성을 어떻게 타도하겠습니까?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사탄세계에서 자기 중심삼고 ‘내가 잘나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습관성을 지니고 살았는데, 그 습관서이 고질적인 것입니다. 그렇게 고착되어 버린 그 습관성이 김치 된장 고추장 습관성보다도 더 하겠습니까, 약하겠습니까?
이것은 역사성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악마가 출발한 그날부터 뿌리가 박힌 이러한 전통적 습관성을 지니고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빼 버리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늘날 타락한 세계에서 선생님으로 말미암아 원리를 배웠다고 큰소리 말라는 것입니다. 구덩이를 파고 뿌리까지 묻으려해도, 이것이 내 키보다 더 커서 저 나무에 올라가서 빼려고 해도 못 뺄 정도로 긴데 앉아 가지고 뺐다고 큰소리를 하겠습니까? 이것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하늘나라에 갈 자신 있습니까? 하늘나라에 가려면 하나님을 중심삼은 전통적 습관성이 있어야 됩니다.
(213.20.1991.01.13)
일생동안 하늘 뜻을 위하여 얼마나 살았느냐가 천국에서 그이 자리를 결정한다. 고로 천국 가고안 가는 것은 자기 자신이 잘 안다. 먹고, 자고, 좋고, 나쁘고, 오고, 가고 하는 것이 무엇을 위하여 하였느냐에 의하여 천국 가고 못가는 것이 결정된다.
(뜻길,p.167)
위해서 존재한다는 원칙으로 구성된 세계가 인간이 바라는 천국이라고 여러분이 단적으로 알아도 그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한 곳이 우리의 본향입니다. 우리는 싫든 좋든 어차피 그곳에 가야 할 운명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인생길입니다. 우리는 나그네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일생을 두고 문제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자기를 위새서 살았느냐, 남을 위하는 생활을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차이에 따라, 남을 위해 산 것이 크다 할 때는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이요, 그 반대가 되게 될 때는 지옥에 간다는 것입니다. 이 원칙은 여러분이 이 자리에서는 믿어지지 않겠지만 죽어 보면 알 것입니다 .
(74. 51, 1974.11.27)
4. 죽음의 종착지
종교경전
너는 산에 올라갈 수 있고 다시 내려올 수도 있다. 계곡 주위를 이리저리 돌아디니다가 되돌아올 수도 있다. 그러나 신에게서 갈 수도 돌아올 수도 없다.
누페족의 격언(아프리카 전통종교)
믿지 못할 죽음의 신은 일의 완성이나 미완성을 가려 기다리지 않으며, 내가 병상에 누웠거나 혹은 건강한 중에도 언제고 도망치듯 사라질 이 목숨은 예측할 길 없어라. 모든 것, 모든 이를 남기고 홀로 떠나야 하리.
내가 이를 낱낱이 깨닫지 못하였던 까닭에 벗을 위한다는 죄악은 얼마였으며 적을 위한다는 죄악은 또 얼마였던가. 결국 나의 적들이 허망하고 나의 벗들이 무상하며 나 또한 덧없으리니 일체만무가 헛되고 무상하여라.
마치 꿈속의 일처럼 내 즐거웠던 모든 일들이 마침내 기억이라 불리리니 흘러간 것은 다시 보이지 않으시
이 짧은 한 토막 생에도 수많은 벗과 적들이 스쳐지나간다. 그러나 이들에게 지은 나의 죄악은 나를 앞세워 몰아가리. 내가 침상에 누워 있고 나의 벗들과 친척들이 둘러서 있지만 호된 해의 체험들은 마침내 홀로 삭여내야 하리.
죽음의 사자가 내 옷깃을 잡아 끌 때, 내 형제 내 친척들이 무엇을 줄 수 있을까? 내 공덕만이 나를 막아 지키리, 그러나 나는 이를 믿지 못하였느니.
샨티데바, 보살행의 도 2.33-41(불교)
말씀선집
이 길은 친구도 없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부모도 없는 길이요, 사랑하는 형제도 없는 길이요, 사랑하는 부부, 사랑하는 자녀도 없는 길입니다. 오로지 혼자 가야 하는 길입니다. 다시 가볼 수도 없고, 갔다가 올 수도 없는 길, 한번 가면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길인데, 한번 가면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길인데, 이 길을 가게 될 때 여러분은 어떠한 마음을 갖고 갈 것인가. 여러분이 죽음에 봉착하는 그 순간에 그 죽음을 넘어설 수 있는 소망이 없다면 거기에서 마지막입니다.
오늘날까지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하나님의 뜻을 세워 나온 수많은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들이었느냐 하면, 죽음의 길 앞에서 후퇴한 자들이 아니라 죽음을 비웃고 죽음을 늠름히 넘어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하늘의 길을 세워나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잘 아는 바입니다.
여러분은 각자가 죽음에 봉착하게 되더라도 이것을 넘어설 수 있는 소망을 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길을 넘고나면 하늘 앞에 떳떳이 서게 될 것이라는 소망과, 마음으로 동경하던 세계, 그 본향을 향해 기쁨으로 달음질 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상세계를 소망하는 마음이 간절하여야만 죽음을 이길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6.53. 1959.03.22)
영계를 잘 알아야 한다는 말은 막연히 영계의 실존만을 믿고 살라는 뜻이 아니고, 좋든 실든 영원히 살아야 할 영계에서의 생을 위해 우리가 지상계에서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느가를 알고 철저히 준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복중에는 문제가 있는 어린애는 태어나서도 잘못하면 평생을 불구자로 살 수밖에 없듯이, 우리가 짧은 지상계의 삶 속에서 하늘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여 죄를 짓거나 악을 행하면, 결국 인과응보의 우주 법칙에 따라 영계에 가서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입니다.영계에 들어간 영인체가 형언할 수 없는 고통과 탕감을 치러야 한다는 뜻입니다.
일단 육신을 벗고 나면 늦습니다. 육신은 죽으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고 말지만, 우리의 생명, 우리의 마음, 우리의 심정, 그리고 우리의 소망까지 묻히고 마는 것입니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백년 일생은 하나님이 설치해 놓은 영인체라는 슈퍼컴퓨터에 어김없이 기록이 되고 촬영이 되어 자동적으로 평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상계에서는 누구나 생을 영위하는 동안가는 걸음을 붙잡아 놓고, 움직이는 마음과 기울어진 심정을 부추기며 ‘너는 어디로 가느냐? 고 수없이 자문자답을 해 보는 것입니다.
(447.159-160, 2004.05.01)
영적 오류와 비술
세계의 주요 종교에는 영들과 그들의 영적 교신에 대한 깊은 불신이 있다. 영들은 궁극적 실재에 비교될 수 없으므로, 최상의 진리에 내밀히 관여하지 못한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은 천사들이 잘못 되고 죄를 저질렀다고 가르친다. 불교는 심지어 창조신(힌두교의 브라흐마)을 이와 같은 종속적인 신 중의 하나이며, 붓다로 현신한 담마에 종속되는 것으로 간주한다.
영들은 이기적인 목적에 이끌려 잘못을 저지르며, 그들을 안내자로 의지하는 사람들을 잘못 인도하기 쉽다. 더욱이 영계는 악령들, 악마들과 타락한 천사들뿐만 아니라(이슬람 신화의 신령)을 포함하는 영적 중개자들은, 죽은 자들의 영들, 다양한 등급의 유령들이 거주하는 것이다. 영매, 마법사, 샤먼들로부터 영계에 대한 어떤 정보를 구하는 등 비술의 의례들은 저급한 영역에 있는 영들과의 교제를 통해 사람들을 이리저리 헤매게 할 수 있다.
문선명 선생은 이것을 샤머니즘이 여전히 널리 퍼져 있던 한국에서 경험했다. 그느 또한 이브가 영의 힘에 복종했기 때문에 비술과 인간 타락 사이에 은밀한 관련이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시된 보다 고차적 진리의 권위를 빌어서 ““영들이 과연 신적인가를 검토””해 보아야 한다고 권고한다. 믿음, 순결 , 계시된 고수, 그리고 선행을 실천하는 것 등은 최상급의 영적 존재들과 교제를 보장하는 훌륭한 방편들이다.
1, 타락한 혼령들은 거짓 안내자들
종교 경전
오, 크리슈나여! 신이나 마귀들이 어찌 당신의 장려함의 정도를 알 수 있겠습니까? 오직 당신만이 당신의 가장 내밀한 본성의 빛으로 당신의 있는 그대로를 낱낱이 압니다.
바기바드기카 10.14(힌두교)
그의 종들 가운데 믿을만한 자 없고 그의 심복들 가운데도 허물없는 자 없도다.
욥기 4..18(기독교)
인간의 아들 중에 맹인들이 얼마나 애처로운가. 이 세계가 얼마나 기묘하며, 보이지 않는 것들과 숨겨진 위험들로 가득 차 있는지그들은 알지 못한다. 이를 안다면 지상에서 생명을 부지하고 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할 것이다.
조하르 1.55a(유대교)
하나님께서 신들을 모으시고 그 가운데 서시어 재판을 하신다. 언제까지 너희는 불공평한 재판을 하려는가? 언제까지 악인에게 편들려는가?
약한 자와 고아를 보살펴 주고
없는 이와 구차한 이들에게 권리 찾아주며
가난한 자와 약자들을 풀어 주어라.
악인의 손에서 구해 주어라.
그들은 분별력도 없고 깨닫지도 못하여
어둠 속을 헤매고만 있으니
세상이 송두리째 흔들린다.
““나의 선고를 들어라.
너희가 비록 신들이요,
모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들이나
그러나 너희는 보통 인간처럼 죽겠고
여느 군주처럼 넘어지리라.”” 시편82(기독교)
말씀 선집
영적인 현상에 있어서도 도깨비라든가 악령의 활동이 라든가 하는 이런 현상이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신과 인간과의 관계, 이것은 해결돼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해결해야 됩니다. 이론적으로 해결해서, 신이 주체냐 인간이 주체냐, 악한 영이 주체냐 인간들이 주체냐 하는 이러한 모든 것을 설정해 주지 않고는 이 우주가 자리를 못 잡는 것입니다.
(191.11,1989.06.24)
영계는 가인적이요, 지상은 아벨적입니다. 35 지금까지는 가인적인 입장에 있는 영계가 인간들을 지배해 나왔습니다. 영통인들이 모든 인간들을 지배해 나왔습니다. 지상에 있는 인간들을 사령(使令)해 가지고 자기가 혜택을 받는 놀음을 해왔습니다. (83.15, 1976..02.05)
요즈음 노이로제 현상이 있어서 괜히 혼자 쭝얼쭝얼하는데, 그거 왜 그러는지 압니까? 그거 다 영계에서 …… . 이와 같은 관계, 이와 같은 계급에 있는 사람들이 혼자는 못 올라가니까 이 인간 세계를통해서 그 놀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악한 영은 관이 없습니다. 선한 영은 방향성이 뚜렷합니다. (91.274-275, 1977.02.27)
2. 비술의 위험
종교 경전
무지한 사람들은 아귀와 귀신들의 무리에게 제사 드린다. -바가바드기타 17.4 (힌두교)
너희는 죽은 사람의 혼백을 불러내는 여인이나 점쟁이들에게 가서 무엇이든지 알아봄으로서 부정을 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나 여호와가 너희 하나님이다. - 레위기 19.31. (기독교)
공자는 괴이함과 용력과 어지러움과 귀신을 말하지 않았다. - 논어 7.20 (유교)
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은 주술이나 마법의 수련을 배우지 않는다. 그는 꿈이나 잠 속에서 어떤 징후 또는 황도대에서의 움직임을 분석하지 않는다. - 숫타 니파타 927 (불교)
하루는 우리가 기도하는 곳으로 가다가 점을 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났는데, 그는 점을 쳐서 주인들에게 큰 돈벌이를 해주는 여자였다. 이 여자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오면서, 큰 소리로 “이 사람들은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종들인데 여러분에게 구원의 길을 선포하고 있다”하고 외쳤다. 그 여자가 여러 날을 두고 이렇게 하므로, 바울이 귀찮게 생각하고 돌아서서 그 귀신에게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네게 명하니 이 여자에게서 나오라” 하고 말하니, 바로 그 순간에 귀신이 나왔다. -사도행전 16.16-18 (기독교)
아이샤가 말했다. 어떤 이들이 하나님의 사도에게 점쟁이에 대해 질문을 던졌을 때 그는 대답했다. “그들은 대수롭지 않은 자들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사도여, 때때로 그들은 진실을 말합니다”고 말했다. 그가 대답했다. “그것은 정령이 우연히 얻은 소식을 암탉이 그렇게 하듯이 친구의 귀에 큰소리로 떠드는 진실의 일부일 뿐이라. 그리고 그들은 그것에 백 개 이상의 거짓을 보탠다.” - 부카리 및 무슬림 하디스 (이슬람)
악한 귀신이 어떤 사람에게서 나와 쉴 곳을 찾아서 물 없는 곳을 해맸으나 찾지 못하고, “내가 나온 집으로 되돌아가겠다.”하고 말한 후에 돌아와서 보니, 그 집은 비어있고 말끔히 청소되어 있었고, 잘 정돈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 귀신은 가서, 자기보다 더 악한 딴 귀신 일곱을 데리고 와서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살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비참하게 된다. 이 악한 세대도 그렇게 될 것이다.
- 마태복음12.43-45 (기독교)
말씀 선집
인간은 뭔지 모르게 무엇을 믿고 싶은데 그것을 자의로 할 수 없으니 미신을 중심삼고, 혹은 무당을 중심삼고 푸닥거리를 한다든가 뭘 해 가지고 자기들끼리 모색하고 추구하는 것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인간에게는 그런 경향이 있는 것입니다. (101.90. 1978.10.22)
여러분이 지방에 가게 되면 무당이라든가 복술하는 사람이 있어서 점을 치고 미래를 예언하는 것도 보통 사람이 모르는 그 배후의 신과 관계를 맺어서 전부 밝힘으로 말미암아 그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176.286. 1988.05.13)
영통인들은 모두 제각기 통하고 있는 영계의 계위(階位)와 계시의 내용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고전 15:41), 피차가 상충적인 혼란 속에 빠지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영통인들은 사실상 모두 동일한 영계를 찾아 나아가고 있는 것이지만, 그것을 대하고 있는 각자의 환경, 위치, 특성, 영계도 각각 다른 모양으로 인식되어 상충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원리강론. 부활론 2.2.6)
영계는 어떤 세계냐? 천사세계입니다. 천사세계에 맞먹는 영계의 신들이 왜 인간세계와 관계를 맺으려고 하느냐 하는 문제를 지금까지 몰랐습니다. 여러분이 무당이니, 무슨 복술이니, 미신이니 하는 그런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아직까지 선악의 자리를 가려내지 않은 입장에 선 종교형태입니다. 하나님이 종교형태를 갖추고 나가니 사탄도 종교형태를 갖추어 가지고 방어를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대개 여러분들이 무당이나 복술하는 사람을 보면, 8할 이상이 여자입니다. 누구하고 접하고 있습니까? 해와가 타락할 때 천사의 지도를 받아 이끌려 가지고 악의 결과를 가져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복귀시대의 길을 다시 재현시켜 가지고 따라가는 이 땅 위에서는 반드시 영계의 천사들이 지상에 와 가지고 여자들과 하나 되어 모든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천사들이 가르치는 대로 하는 것이 복술이나 무당들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무엇을 합니까? 타락한 해와와 마찬가지로 영인과 사는 놀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76.95. 1975.02.01)
오늘 세상에 있어서 점쟁이라든가 복술가들의 말을 중심삼아 가지고 굿을 하고 뭘 하고 해서 그 굿하는 결과로 말미암아 일시에는 그 모든 환경적 여건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 굿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임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295.173. 1998.08.28)
3. 혼령을 다루는 지혜
종교 경전
사랑하는 이들이여, 어느 영이든지 다 미디 말고 그 영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가! 시험해 보시오. 많은 거짓 예언자가 세상에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1 (기독교)
형제들이여, 성령께서 주시는 선물에 대해 여러분이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대로 여러분은 이방 사람이었을 때 끌리는 대로 말 못하는 우상에게 끌려갔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여러분에게 알게 하는 것입니다만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사람은 누구나 “예수는 저주 받으라”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으면 아무도 “예수는 주이다”라고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1-3 (기독교)
악령들은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힘을 발휘하지만 두려움 없는 사람들을 어지럽히지 못한다.
-유마경의 거룩한 가르침 7 (불교)
무슬림은 예언 때문에 어떤 것에서 발길을 돌리지 않는다. 그가 불행을 암시하는 것을 보았을 때 이렇게 말해야 한다. “하나님이시여, 당신만이 선한 것을 가져올 수 있으며, 당신만이 악한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외에는 어떤 힘이나 세력도 없습니다.”
- 아부 다우드 하디스 (이슬람)
악령의 존재를 주장하는 것은 다만 불행을 야기 할 뿐이다. 악령의 비존재를 이해하는 것은 붓다의 길이다. 영혼과 실재가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은 열반의 길이다.
영혼과 실재가 모두 우리의 부모라고 아는 것은 바른 이해이다.
영혼은 바로 자기 마음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은 자고한 영광이다. -미라레파 (불교)
말씀 선집
타락인간은 하나님도 사탄도 모두 대할 수 있는 중간 위치에 있기 때문에 선신의 역사인 경우에도 악신의 역사를 겸행하는 때가 있다. 또 악신의 역사도 어느 기간을 지나면 선신의 역사를 겸행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원리를 모르는 입장에서는 이것을 분별하기가 곤란하다. 오늘날 많은 교역자들이 이에 대한 무지에서 선신의 역사까지도 악신의 것으로 몰아, 하늘 ‘뜻’에 상반되는 처지에 서게 되는 것은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영적인 현상이 점점 많아지는 오늘날, 선신과 악신의 역사를 잘 분간하여 분립할 수 없는 한 영통인들을 지도할 수는 없는 것이다. (원리강론, 타락론 4.4)
내가 누구, 아주머니, 할머니, 영계 통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주먹구구식으로 이 놀음 하는 줄 압니까? 천만에, 그들은 모릅니다. 그들은 현재 증거해 주니 알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모릅니다. (68.276. 1973.08.05)
영통인들은 서로 방향과 자기 위치가 다릅니다. 자기가 중심점이 아니면 안 된다고 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깁니다. 영통인들 백이면 백사람 전부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자기 중심삼고 제일주의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중앙을 중심삼고 제일주의가 돼야 합니다.
(325.289. 2000.07.02)
지금까지 영계가 무당들을 통하든가 영통하는 무리나 별의별 점쟁이들을 통해 가지고 이 땅 위의 사람들을 다 이용해 먹었습니다. 앞으로 그것은 안 됩니다. 땅의 인간들이 영계를 지배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219.78. 1991.08.25)
저 세계로의 통로
죽음의 순간에 내생으로 가는 통로는 거의 투시할 수 없는 신비에 싸여있다. 임상적인 죽음에서 되살아난 사람들에 의해 의사죽음의 체험들에 관한 서적들은 어떤 실마리를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어떤 터널을 지나 다른 세계로 가는 것, 빛의 존재를 만나는 것, 아주 따뜻함을 느끼는 것, 사랑을 받는 것 등을 말하고 있다. 이 사람들은 문자적인 의미에서 죽은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에 이르는 길의 첫 단계를 체험했을 것이다. 그 통로가 어떻게 끝나는지 주가 알 수 있겠는가?
어느 정도 확실하게 알려진 것은 사후에도 무언가가 존속한다는 것이다. 사실 어떤 죽은 사람들은 처음에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계속하여 스스로 의식적이고 지각력을 갖고 잇는 육체적인 죽음은 보다 때문이다.
육체적인 죽음은 보다 고차적인 존재인 단계로 옮겨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마치 번데기에서 허물을 벗고 나비가 되는 것처럼, 그것은 새로운 몸을 입은 것이다. 편안한 자궁의 세계를 떠나야 하는 태아의 출생에 비유하여, 문선명 선생은 그것을 두 번째 출생이라고 부른다. 출생 전까지 자궁이 태아를 양육하지만 자궁이 파괴되고 태아가 지상의 삶을 위해 그곳을 떠나는 것처럼, 죽음 이전까지 육신은 영혼을 양육하지만 육신이 그 수명을 다할 때 영계에서 태어나기 위해 지상계를 떠난다.
그러므로 삶의 세 단계, 즉 자궁의 수중 세계, 지상 존재의 공기 세계, 사랑의대기를 숨쉬는 영계가 있다. 그러므로 죽음은 두려워해야 하는 어떤 것이 아니다.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영혼의 생일로 기념되어야 한다. 핵심 문제는 과연 우리가 그 세계에서 편안하게 존재할 수 있는 영적 품성을 지닌 영혼을 합당하게 준비했는가 하는 점이다. 거기서 중요한 것은 오직 사랑하는 우리의 능력 뿐이다.
1. 제2의 탄생
종교경전
썩을 몸이 썩지 않을 것을 입어야 하고, 죽을 몸이 죽지 않을 것을 입어야 합니다. 썩을 이 몸이 썩지 않을 것을 입고, 죽을 이 몸이 죽지 않을 것을 입을 그때에, 이렇게 기록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죽음을 삼키고서 승리를 얻었다.”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에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에 있느냐?”
고린도전서 15.53-55(기독교)
자신의 영혼이야말로 참된 자아임을 아는 자는 죽음을 자신의 영혼의 육체적인 환생으로 여긴다. 마치 헌 옷을 새 옷으로 갈아입는 것처럼 생각한다.
푸자파다 사마디샤타카 77(자이나교)
삶을 군살이나 혹이 매달린 것처럼 생각하며 죽음을 종기를 짜거나 터진 것처럼 여긴다.
장자6(도교)
너희는 너희가 방출하는 정액을 보았느냐.
그것을 너희가 창조하였는가, 아니면 하나님이 창조하였는가.
하나님은 너희 가운데 누구에게라도 죽음을 이르게 할 수 있으되 좌절하지 아니하며
너희의 양상을 바꾸어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상으로 재창조하시니라.
너희는 최초의 창조를 알고 있으면서도 왜 그 일을 교훈으로 삼지 않는가
꾸란 56.58-62
삶이 있고 죽음도 있으며, 나감이 있고 들어옴도 있다. 들어오고 나감이 있지만 그 형체를 볼 수 없는 것을 일러서 천문(天門조물의 문)이라고 한다.
장자 23(도교)
이 세계가 모태에서 평혼했던 동안 태아의 세계와 다른 것처럼 천상세계는 이 세계와 다르다. 하나님이 그 영혼에 임재하실 때, 그 영혼은 불멸에 가장 어울리고 천상에서 거주하기에 적합한 형태를 가지게 되리라.
바하울라 저서들의 낙수집 81(바하이교)
은사슬이 끊어지면 금그릇이 떨어져 부서진다. 두레박 끈이 끊어지면 물동이가 깨진다. 그렇게 되면 티끌로 된 몸은 땅에서 왔으니 땅으로 돌아가고 숨은 하나님께 받은 것이니 하나님께로 돌아가리라.
전도서 12. 6-7(기독교)
사람이 꿈을 꾸다가 각성상태로 깨어나는 것처럼 그는 이생에서 내생으로 나아간다. 사람이 막 죽으려 할 때 지성으로 이루어진 자아를 태운 미세신은 신음하며 괴로워한다. 마치 무거운 짐을 실은 달구지가 그 짐에 줄려 신음하듯이, 노쇠하거나 질병 때문에 그이 몸이 야윌 때, 죽어가는 그 사람은 자신을 사지에서 분리한다. 마치 망고나 무화과 또는 반얀 열매가 가지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그가 왔던 마찬가지 방식으로 그는 자신의 새로운 거처로 서둘러 가며, 거기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또 다른 몸을 받는다.
그의 몸이 차츰 약해지고 분명히 의식을 잃어가고 있을 때, 죽어가는 그 사람은 그에 관한 자신의 감각들을 모으고, 감관들의 힘을 완전히 끌어들이면서 자신의 심장 속으로 내려간다. 그는 더 이상형태나 색깔을 볼 수 없다.
그는 보지도 않고 냄새 맡지도 않으며 맛을 보지 않는다. 그는 말하지도 듣지도 않는다. 그는 생각하지 않으며 인식하지 않는다. 육신에서 분리된 모든 감관들이 그의 미세신과 결합하기 때문이다. 그때 신경들이 모이는 심장의 한 점이 자아의 빛으로 밝아지며, 그 빛에 의해 그는 눈을 통하여 또는 정수리의 문을 통하여 또는 몸의 다른 어떤 틈새를 통하여 떠난다. 이와 같이 그가 떠날 때 생명이 떠난다. 생명이떠날 때 활력의 모든 기능들이 떠난다. 생명이 떠날 때 활력의모든 기능들이 떠난다. 자아는 의식적인 생태로 남으며, 죽어가는 그는 자신의 거소로 간다. 이생에서 한 행위들과 그들이 남긴 잠재인상들이 그를 따라간다.
한 풀잎 끝에 도달한 자벌레가 다른 하나의 풀잎을 자신에게로 끌어당기는 것처럼 의식 없는 몸을 떠난 자아는 다른 한 몸을 자신에게로 끌어당긴다.
금세공장이가 오래된 금장신구를 녹이고 두드려서 보다 새롭고 아름다운 다른 장신구를 만드는 것처럼, 몸을 버리고 그것을 의식 없는 상태로 남겨둔 자아는 새롭고 더 나은 형태, 즉 조상들의 형태, 천계 약사들의 형태, 신들의 형태, 또는 천계나 지상의 다른 형태를 취한다.
브리하드아린야카 우파니샤드 4.3.34-4.4.4(힌두교)
말씀선집
나도 하나님 닮고 싶고, 하나님도 내가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면 닮게 하고 싶다는 관념을 갖는 것은 필연적 입니다. 그러니 나는 하나님을 닮고 싶고, 하나님은 나를 데려가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을 가능케 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할 것입니다. 그래거 사람은 다시 하나님과 닮을 수 있는 체를 입고 태어나야 됩니다. 그렇게 내어나는 날을 하나님도 고대할 것이고, 인간도고대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으로 태어나는 날을 하나님도 고대할 것이고, 인간도 고대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으로 태어나는 날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죽음닙니다.
그러면 인간은 죽음을 환영해야 되겠느냐, 환영하지 말아야 되겠느냐? 환영해야 됩니다. 죽는 데 뭣 때문에 죽을 것이냐 할 때 ‘하나님의 참사랑을 위해서 죽겠다.’ 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육신을 벗는 것은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의 활동권에 내가 동참하기 위해서요,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를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태어나는 것이 죽는 것인데, 인간세계에서는 ‘아이구,죽는다’하고 야단하는 것입니다. 제한된 사랑권 내애서 무제한의 사랑권 내로 돌입할 수 있는 기쁨을 맞을 수 있는 순간이 죽는 순간입니다. 그러므로 죽는 순간이 제2의 출생의 순간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육신이 난 날들 기뻐하겠습니까, 제2의 무한세계의 사랑을 위해 기뻐하겠습니까. 제2의 무한세계의 사랑을 위해서 활동할 아들로 태어나는 그 시간을 위해서 활동할 아들로 태어나는 그 시간을 기뻐하겠습니까, 제2의 무한세계의 사랑을 위해서 활동할 아들오 태어나는 그 시간을 기뻐하겠습니까? 왜 이런 얘기를 하느냐? 여러분들이 죽으늬 공포에서 해달하지 않고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116.172, 1982.01.01)
사람은 소생,장성,완성시대를 거칩니다. 복중 물세계, 지상 지구성 세계, 천상 공중 세계에서 삽니다. 다시 말하면 복중 물 시대, 지상에 태어나서 사는 100년 땅 시대, 날아가는 공중시대, 이렇게 3시대를 거칩니다.
(297.257, 1998.12.19)
복중에서 탯줄로 숨쉴 때와 마찬가지로 공기 파이프린 콧구멍을 준비해 가지고 터져 나올 때 바뀌서숨쉬는 것입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이제이 세계에서 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태어나서 해야 할 것은 사랑을 체휼하는 일입니다. 사랑이라는 공기를 들이마셔야 됩니다. 어머니로부터,아버지로부터 사랑의 공기를 들이마셔야 됩니다. 사랑의 공기를 공급받아서 다 거쳐 가야 됩니다.
사랑의 공기를 공급받아서 다 거쳐 가야 됩니다. 한 가정에 애기로 태어났다가 사인 커브와 마찬가지로 올라갔으면 다 꺼져 가는 겁니다. 아기로태어났다가 커서 그다음에는 분해되어 가는 것입니다. 아기로 태어났다가 아기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어떻게 되느냐? 제2복중세계를 차버리고 제3사랑의 호흡기관에 연결돼야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 형제의 사랑을 차 버리고 대우주의 하나님 본체에 화한 사랑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영계는 사랑의 공기입니다. 사랑의 공기로 꽉 찼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려분은 지금 이 지상세계에서 사랑의 숨을 쉴 수 있는 파이프 장치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계의 체험이 필요하고 영적 사랑을 느낄 수 있고 호흡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39.213-214, 1986.01.31)
여러분들이 어머니 복중에서 나올 때 얼마나 힘들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왜 아기를 낳을 때 이렇게 낳게 했을까요? 그저 쉽게, 말하듯 쉽게, 맛있는 음식을 먹듯 쉽게, 향수 냄새가 나듯 쉽게, 그저 좋아서 입을 벌리고 ‘하하하’하고 아기를 낳게 하고, 땀을 흘리며 죽는다,산다 하는 경계에 서서 낳게 했습니까? 빛나는 사랑을 보기 위해서 입니다.
여러분들이 태어날 때에 얼마나 힘들었습니까? 생명 보따리가 태인체, 거기에 달린 줄을 다 파탄 시키고 차 버리고 집어 던지고, 끊고 나올 때 어떨까 하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럴 때 ‘나 죽는다.나 죽었다. 나,다 파괴되는 구나. 나 죽었다’하는 게 불행이 아니라 행복입니다. 불행의 경계선이 아니라 행복의 출발이었다 하는 것을 태어나서 압니다.
그러나 아기가 죽는 줄 알게 되면 배 안에서 영원히 살려고 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사람들 중에는 오늘날 지상에서 영원히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다는 겁니다. 안 죽겠다고 한다는 겁니다. 이걸 걷어차고 다시 한 번 요동이 벌어지고 ‘아이구, 나 죽는다!’ 이러다 보니 후다닥 뛰쳐나오는 겁니다. 그 다음에는 영계, 무한한 세계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시간적 공간적 차원의 세계를 탈출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내가 무한한 하나님의 힘이 있는 끝에서부터 끝까지 순식간에 왕래합니다. 태양빛보다도 빠르고 무엇보다도 빠릅니다.
(107.42-44,1980.01.20)
그러면 배꼽에 달린 탯줄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 잘라 버려야 됩니다. 마찬가지 입니다. 공기의 세상에서는 영인체가 몸뚱이에 붙어 태아처럼 육신을 빨아먹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육신이 늙게 되면 버리고 나가는 것입니다. 태아가 태어나 어머니 아버지 앞에 사랑의 대상이 되는 것처럼 영인체가 영적 아버지인 영원한 하나님과 상대할 수 있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은 원리원칙입니다.
태아가 태어나 어머니 아버지와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이 지상 세계입니다. 어머니 아버지와 사랑을 같이할 수 있는 지상 세계에 태어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적 무한한 세계를 통할 수 있는 부모되신 하나님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영계에 태어나야 합니다.
(297.258-259,1988.12.19)
영계는 어떤 곳입니까? 우리가 영계에 들어가면 머리 위에 있는 숨구멍과 세포로 호흡하게 됩니다. 영계에서의 공기는 지상의 공기가 아니고 사랑입니다. 호흡을 통해서 사랑의 요소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상에 살 때도 밥만 먹어서 는 안 됩니다. 밥만 먹고 물만 마시고 산다는 것은 밥주머니와 물주머니를 채우는 일일뿐입니다. 결국 그러다가 죽어간다는 말입니다.
지상에서 사는 동안의 우리의 모습은 제2의 우리의 존재입니다 우리가 이기간에 해야 할 일은 새로운 사랑의 인격을 형성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서 우리들이 가정 필요로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고아가 무엇입니까?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왜 고아라고 부릅니까? 영계와 영원히 연결시킬 수 있는 사랑이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외로운 것입니다. 그래서 독신으로 사는 사람은 불쌍하다고 합니다. 우리가 죽는다는 것은 제2의 호흡을 하던 육체에 연결된 이 기관을 깨뜨려버리고 사랑의 요소를 이어받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형제의 사랑, 자녀의 사랑, 이 모든 사랑을중심삼고 우리의 내적인 구조가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법칙대로 살 때에만, 어린아이가 복중에서 정상적인 아기로 자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땅에서도 잘 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함부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297.260, 1998.12.19)
잠자리가 처음에 유충이 되어 물속에서 헤엄치고 다니다가 땅위에 올라와서는 한동안 기어 다닙니다. 그 다음에는 훌훌 날아다니며 땅에서 기어 다닐 때 먹으리라고 생각지도 못하던 벌레를 잡아 먹습니다. 천하를 자기 무대로 삼고 날아다니는 것입니다.
곤충류 가운데는 3단계 세계를 거치는 것이 많습니다. 곤충하게 되면 날개가 있습니다. 곤충도 물에서, 육지에서, 공중에서 사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우리 인간이 날개가 있느냐, 차원이 높은 날개가 있는 것입니다. 죽음은 제2출생의 복된 관문입니다.
(297.261-262, 1998.12.19)
2. 사후 생의 첫 순간
종교경전
지금 당신이 지니고 있는 몸은 성향과 기질로 이루어진 심체라고 부른다. 당신은 피와 살로 이루어진 육체를 지니지 않으므로, 어떤 소리가 들리든 어떤 빛이나 광선이 오든, 또는 이 셋이 오든, 그것은 당신을 해칠 수 없다. 당신은 죽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환영들은 당신 자신의 사유 형태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이것이 곧 사후의 바르도(사후의 중간 영계)임을 인식하라
티베트 사자의 서 (불교)
세상을 떠날 때 영혼은 어떤 여정이 앞에 기다리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선택받은 영혼들을 위한 찬란한 그 길이 모두에게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승에서 행업이 영혼의 갈 길을 결정한다. 그러므로 언제나 거룩한 그분을 향하고 주를 향한 갈구함으로 가득 찬 사람은 영혼이 길을 떠날 때 이승에서 주어진 힘에 따라 더 높은 권을 향해 이끌릴 것이다.
조하르 1.99 a-b(유대교)
영생을 준비시킬 목적으로 주어진 이생이 지나며, 보라! 우리가 생을 누릴 동안 시간을 활용하지 아니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어두운 밤이 다가오느니라.
너희가 간박한 위기에 처하고 난 뒤에는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가겠다고 할 수 없으리라. 참으로 너희는 그렇게 할 수 없으리니, 이 생애에서 너희 육신을 다스린 그 영이 영원히 세상에서도 너희 몸을 다스리리라.
몰몬경, 앨마서 34.33-34(예수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죽음의 순간에 나만을 염하는 이들은 나에게 오리니, 이를 의심치 말라. 마지막 순간에 마음속에 기리는 것, 그것이 죽는 자의 운명을 결정하나니, 이는 그들이 언제나 그 상태에 젓어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나를 염하라…
죽음의 순간에 나를 염하라. 모든 감각의 문을 닫고 의근을 가슴속에 가두라. 명상에 잠겨 모든 생명력을 정수리에 집중시키라. 이러한 상태에서 거룩한 소리 ‘옴’을 반복하라. ‘옴’은 불멸의 브라흐만을 의미하느니라. 죽음의 순간에 나를 염하라. 그대는 육신을 벗고 궁극의 경지를 얻으리라.
바가바드기타 8.5-7, 12-12(힌두교)
말씀선집
가다가 자동차 사고가 나서대번에 즉사했을 때 자기가 죽은 줄 모릅니다. 영계면 가고 ‘아이고, 이상한 곳에 왔는데? 여기가 우리 동네보다 더 낫네. 없는 것이 없고 모든 것이 있네’ 그러는 겁니다. 광활한 천지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죽은 줄 모른는 것입니다. 자기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보고 싶어야 나타나지 부르지 않으면 안 나타납니다. 혼자 있는 것 같은 생각이많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계에 가게 되면 영계에서 안내하는 사람들이 와서 가르쳐 줍니다. ‘당신이 저승에 왔다. 죽었다,죽었다.’ 그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죽음이 인식되지 않습니다. 꿈같이 아스라이 자동차하고 부딪친 것은 느껴지는데 죽었다는 생각은 안 하게 됩니다. 거기 가서 죽은 것을 모르고 있으니 벙벙합니다. 감을 못 잡습니다. 자기 집에 가려고 ‘자 고향에 가야 할 텐데’하면서 고향에 가려고 합니다. 지상 고향에 갈 수가 있습니까? 고향에 갈래야 갈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때문에와서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자기의 몇 대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가 와서 ‘너는 지상세계가 아니고 영계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아, 영계가이런 데로구나’ 하는 것입니다.
(194.41-42, 1989.10.15)
우리의 인생살이가 비단70년 일생으로 끝난다면 별 문제지만, 영원한 문제를 중심삼고 살아 나간다 할 때에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그러면 영계가 있고, 사후에 영계에가게 된다면 무엇을 가지고 생각할 것입니까? 그 세계는 광대한 세계입니다. 그런 세계에 들어가면 대번에 느끼게 됩니다.
이 땅에서 민족간에 차별이 있고, 배후에 문화적인 격차라든가 상충적인 생활상, 부대끼며 살고있는 거기서도 자기를 내세워 가지고 모든 것을 수습하고 싶고, 자기의 주장과 자기의 가치를 남기고 싶었던 좌거지사가 그 옛날에 지나간 것이 아니라. 그 세계에 가서도 생생하게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 환경이 자기가 측정하고 자기의 생각권 내에 자유로이 흡수할 수 없는 방대한 세계면 세계일수록 더더욱 그리워지는 것이 고향 땅, 혹은 지구성의 살림이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저 영계에 가서 영원한 세계를 그려 가는 생활을 하게 될 때, 언제 가서 그것을 잊어버리겠습니까?
그 세계에 가서 만나는 사람은 전부 생소한 사람입니다. 그런 생소한 환경에서 내가 만일 홀로 섰다고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거기서 생각하게 될 때 자기가 그리는 사람, 지난나의 마음 가운데 뺄 수 없는, 정서적인 면의 관계를 맺었던 모든 인연들을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의영계에 들어갔다고 한다면, ’ 어머니 아버지는 어떻게 되고, 각 할아버지 할머니는 어떻게 됐겠느냐?’는 그런 생각을 할 것입니다.
(187.285-286, 1989.02.12)
내가 만일 사랑의 길을 찾아가다가, 그러한 사랑의 주체를 중심삼고 찾아가는 길에서 불행히 죽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그것이 죽는 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죽을 때 ‘나는 사랑의 길을 찾아가다가 죽습니다.’라고 생각할 겁니다.
‘내가 이 사랑을 인해 죽기 때문에 이 사랑은 내 원수로다’ 이렇게 생각 안 한다는 겁니다. 죽으면서 죽음을 잊고라도 사랑을 품고 죽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품에서 죽는다고 생각하게 될 때 그것은 불행한 죽음이 아닙니다.
그러면 죽음으로 말미암아 사랑이 깨진 것이냐? 아닙니다. 사랑의 주체인 하나님이 ‘너는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랑을 위해서 죽었구나’ 하며 그 가치를 보다 나은 가치로 인정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약에 하나님이라면, 자기를 위해서, 자기를 사랑하기 위해서, 서로 사랑해야 할 길을 위해서 죽은 사람들 만났을 때 어떨 것 같습니까? 부부끼로도, 남편 위해서 죽은 아내를 남편이 만났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혹 형제기간에 형이 동생을 위하고, 동생이 형을 위해서 죽었다 할 때, 그 죽었던 형과 동생이 만났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살아서 만나 사랑하고 좋아하는 그것보다 덜 좋아하겠느냐, 더 좋아 하겠느냐? 죽기 않고 만나서 사랑하던 것과 서로가 주기 위해 죽어 가지고 만났을 때 사랑의 강도가 같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죽지 않고 만나서 사랑하는 차원을 초월할 수 있는 사랑이 아니겠느냐?’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위해서, 선생님 때문에 죽었는데, 선생님이 그 사실을 알고 이 다음에 죽어서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반갑겠습니가?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사랑의 길을 찾아가는 길에 있어서 죽음이 문제가 되겠느냐? 죽음까지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죽음의 길을 찾아 간다고 해서 그것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차원높은, 보다 가깝고 보다 영원할 수 있는, 보다 하나 될 수 있는 사랑의 세계로 돌입하는 하나의 관문이 된다고 행각하게 될 때, 그 죽음이 무서운 것이냐?
그런 경지를 찾아가는 사람은 죽음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한 자리를 발견하고, 그러한 길을 확정지어 가는 사람은 불행하지 않습니다. 행복한 사람입니다. 행복한 사람이면 그 행복한 사람에게 동정 받아야 되겠습니까, 동정해야 되겠습니까? 그 사람을 동정해 줘야 되는 건 틀림없는 것입니다.
(67.173-174, 1973.06.03)
죽은자의 영혼
죽은 영들은 사실 우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들은 기억 이상으로 우리와 함께 남아 있다.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들의 영들은 지상에서 계속하여 우리의 복지를 위해 최대한 노력한다. 지상에서 우리가 잘못을 저질렀던 영들은 우리에게 분노를 보이며, 기회가 주어진다면 복수를하고자 할 것이다. 그러므로 죽은 자는 실로 죽은 것이 아니다. 그들은 아마 우리와 함께 살고 있을 것이다. 기독교 성서에서 사울이 예언자 사무엘의 영을 불러내기 위해 영매를 이용했던 것처럼, 때로는 영민한 사람들은 죽은자의 영을 지상으로 불러낼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에 대한 영계의 영향을 감지하지 못하지만 그것은 실재한다.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의 영혼은 이 삶에서도 영적 세계의 비물질적인 본질들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인간의 영혼은 영적 본질과 상호 작용하며 영감을 남기며 그들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그들은 죽은자의 영뿐만 아니라 자연의 정령, 도깨비, 요정과 그 일족을 포함한다.
고대인들은 영들을 잘 알고 있었으며, 샤먼은 그들의 존재를 감지할 수 있도록 훈련되고 인간의 이익을 위해 그들을 이용했다. 위대한 예술을 창작할 때, 영감이나, 과학적 발견과 발명을 할 때 섬광 같은 통찰력처럼, 그 영들의 영향은 길운을 주거나 유익할 수 있다. 또한, 과거의 뿌리 깊은 갈등이 오늘날의 종족적 폭력 사태를 유발할 때 분노에 불을 지르는 것처럼, 영들의 영향은 또한 무시무시하게 파괴적일 수도 있다.
천상과 지상의 상호 관계는 두 가지 방식으로 일어난다. 영들은 의로운 명분을 갖고 지상의 사람들을 돕기 위해 동원될 수 있지만, 역으로 영들은 자신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지상 사람들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여러 종교는 산 자가 죽은자의 유익을 위해 공물을 바쳐야 한다는 생각을 장려한다.
심지어 말일성도들은 종말에 천당에 더 가깝게 데려가기 위한 방법으로 죽은 자들의 침례를 권장한다. 이와 관련하여 문선명 선생은 ‘재림부활’을 가르친다. 죽은 자들의 영은 산 자들을 돕기 위해 내려오며, 산 자들은 죽은 자들이 완성하지 못한 일을 짊어지고, 그것을 해결함으로써 그들을 돕는다는 것이다.
1. 산 자와 함께 하는 영혼
종교경전
하나님의 길 위에서 죽음을 당한 사람들을 죽었다 말하지말라. 그들은 살아 있으되 너희가 알지 못할 뿐 이니라. 꾸란 2.154(이슬람)
사카기 잎들의 냄새가 향기로워라.
가까이 끌어당겨서, 나는
모두 함께 모인
무수한 친척들을 보네. 가구라(신도)
이 [과거 성인들의] 영혼들이 발하는 비은 세상의 진보와 그 국민들 발전의 원인이 된다. 그들은 존재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효소 같고, 세상의 예술품과 경이로운 것이 분명히 드러나도록 하는 활력이 된다. … 이러한 초월적인 영혼과 상징물은 존재세계에서 지고의 동력을 제공해 왔고 계속 제공할 것이다. 바하올라 자서들의 낙수집 81(비하이교)
그러자 여인이 물었다. “누그를 불드릴까요?” 그가 대답하였다. “사무엘을 불러다오.” 그 여자는 사무엘이 나타는 것을 보고 놀라 소리치며 사울에게 물었다. “어찌하여 저를 속이셨습니까? 당신은 사울 임금님이 아니십니까?” 왕이 말하였다. “두려워 마라. 무엇이 보이는지 말만 하여라.” 그 여자는 “지하에서 유령이 올라오는 것이 보입니다.”하고 대답하였다. 사울이 다시 그 여자에게 “어떤 모습이냐?” 하고 묻자 “도포를 입은 노인이 올라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이 말에 사울은 그가 사무엘인 줄 알고 얼굴을 땅에 대고 절을 하였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물었다. “무슨 일로 나를 불러내어 성가시게 구느냐?” 사울이 대답하였다. “매우 어려운 일이 생겼습니다. 불레셋 군이 저를 치려고 진을 쳤는데, 하나님께서는 저를 떠나셨는지 예언자로도, 꿈으로도 저의 물음에 대답해 주시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말씀을 듣고자 선생을 모신 것입니다.”
사무엘 상 28.11-15(기독교)
죽은 자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들은 깜깜한 어둠 속에 있다.
죽은 자들은 땅속에 있지 않다.
그들은 사랑거리는 나무속에 있고,
그들은 소리나는 숲속에 있고,
그들은 흐르는 물에 있고,
그들은 잔잔한 물에 있고,
그들은 초막에 있고,
그들은 군중속에 있다.
죽은 자들은 결코 죽은 것이 아니다.
죽은 자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들은 여자의 가슴에 있고,
그드은 울부짖는 아이 속에 있고,
불타는 횃불속에 있다.
죽은 자들은 땅속에 있지 않다.
그들은 꺼져가는 불속에 있고,
그들은 눈물 젖은 풀밭에 있고,
그들은 흐느끼는 바위에 있고,
그들은 숲 속에 있으며 집안에 있다.
죽은 자들은 결코 죽은 것이 아니다.
비라고 디오프(아프리카 전통종교)
“헤쿠라의 길은 볼 수 있고 빛이 난다. 그것으로부터 공기를 무겁게 하고 거의 숨쉴 수 없게 만드는 불타는 숨결 같은 어떤 것이 일어난다. 우리는 헤쿠라를 보지 못하고, 그들이 움직일 때 일으키는 바름을 느낀다. 내가 방금 돌아온 사냥에서, 나는 내 안에 있었던 헤쿠라를 흩어버렸다.”
“보통사람은 그들을 알아 볼 수 없다. 그러나 바람은 그들이 거기에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내가 눈을 감았을 때 나는 어둠속에서만 그들을 본다.”
“우리는 그들을 그 때에만 볼 수 있다.”
“그들의 길은 내게 분명해진다. 나는 잠자고 있다. 그들이 갑자기 내 팔을 흔들고 발목을 잡아강겨 나를 깨운다.”
“ 참된 무당이 아닌 사람은 그들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 참된 무당은 잠자는 동안 ‘부우…’하는 울음 소리와 이 소리가 창공에서 반향되어 나는 소리를 듣는다. 그는 눈을 뜨고, ‘나는 지금 그들을 보고자 한다.’라고 자신에게 말한다. 앵무새가 ‘브레, 브레, 브레,…’ 라고 노래하면, 그는 그것이 헤쿠라인 것을 알아차린다. 그때 시원한 바람이 그의 다리를 따라 미끄러지듯이 지나간다.”
“나는 헤쿠라가 삭정이 위에서 걷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바로 그 아래를 지나가고 있었다.”
“사실 그것이 헤쿠라였다. 그러나 그들은 나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모닥불 가까이의 연기나는 석쇠의 강한 냄새, 그을린 털에서 나는 냄새, 불에 탄 고기에서 나는 냄새가 그들을 쫓아버렸다. 그러나 그들은 너에게 접근하려는 마음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 그들은 취할 듯한 향기를 풍겼다. 그 향기는 그들이 가져온 염료와 마술나무에서 났다. 갑자기 냄새 맡는 것이 중단되었다. 나의 코는 더 이상 그들을 지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사람이 성인 입회식의 말기에 있을 때, 사냥을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만일 한 떼의 큰 부리새가 날아가다가 그중의 한 마리가 너무 가까이에 내려 앉으면 나머지 모든 새가 즉시 그 새를 따른다. 그들이 놀라지 않게 하여라. 뚫어지게 그들을 응시하고 네 갈 길을 계속가라. 그들이 헤쿠라인 것을 명심하라. 물론 거기에는 사냥 중에 네가 쫓아버렸던 새들이 있다. 그러나 너무 관심 쓰지 말라. 나는 그들은 좋은 새들이 아니라고 예측한다. 나머지 중에 네가 해먹에 누워있을 때 네 가슴에 내려앉는 새들이 있다. 그들이 진실로 너의 것이고 네게 속한다. 야노마미족 무당의 가르침(미주 원주민 종교)
최후의 얼굴 붉은 사람이 사라지고 우리 부족에 대한 기억이 백인들 사이에 하난의 전실이 될지라도 이 해안은 우리 부족의 보이지 않는 영혼들로 가득 찰 것이다. 그대의 후손들이 들판에서, 가게에서, 고속도로 위에서, 또는 길 없는 숲의 고요속에서 혼자라고 생각할 때 그들은 혼자가 아닐 것이다. 이땅의 어디에도 쓸쓸한 곳은 없을 것이다. 밤이 되어 그대의 도시와 마을의 거리가 고요해지면 그대는 횡량하다고 생각할지라도 그곳에는 한때 충만했고 여전히 이 아름다운 땅을 사랑하는 영혼들이 돌아와 들끓을 것이다. 백인들은 결코 혼자이지 않을 것이다. 시에틀 추장(미주 원주민 종교)
말씀 선집
여러분은 창조본연의 삶의 내용을 모르고 하늘의 뭇영인과 땅의 피조만물과 창조주 하나님 앞에 자신을 가지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존재는 못 되어 있지만, 하늘의 뭇 영인은 이 시간도 여러분을 위하여, 땅도 역시 여러분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일하고 계십니다.(8.43, 1959.11.01)
여러분들의 심령상태가 최고에 달했을 때 그런 결심을 하고 하늘을 위해 움직여 주면, 영계에서 선한 영들이 내려와서 여러분을 협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의 심령상태가 떨어지면 그렇게 협조하던 영들이 하나 둘 떠난다는 것입니다. 떠나게 될 때 그 영들이 얼마나 슬퍼하는지, 가서 언제 또 지상에 와서 협조하겠느냐는 것입니다. 한번 떠났다가는 다시 여러분들에게 오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일단 영인들을 점점 불리어 갈 수 있는 자신의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야 여러분들이 하는 일이 일사천리로 발전해 나갑니다. 천운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161.273-274 1987.02.26)
영계는 지금까지 수많은 주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전부 선을 중심삼고 연결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대로 여기 와서 일할 수 없습니다. 이만하게 일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내려와 일할 수 없습니다. 막혀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재림하려면 다리를 놓지 않으면 특정 한 사람 외에는 재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102.29-30 1978.11.19)
선조들이 전부 책임분담과 탕감조건에 걸려 가지고 영계에 가서 갈 길을 못가고 그길을 여러분들이 남겨서는 안되겠다는 것입니다. (146.224 1986.07.01)
과거에는 기도를 하고 정성을 들여도 종교의 교주와 요때 밖에는 못 만났습니다. 만났다가는 다 갈라져야 합니다. 그래서 또 올라가야 됩니다. 그랬지만, 이제는 전부 종교권을 중심삼고 지상에 재림할 수 있는 때가 왔습니다.
(161.200, 1987.02.03)
2. 영혼의 보살핌과 영적 공적
종교경전
길일을 택해 정결히 하고 술밥을 지어 이것을 효도로서 조상에게 올리려고, 봄,여름,가을,겨울 사철마다 제사를 선공과 선왕들께 드리는데…….
선군(先君)께서 와서 그대에게 보답을 만수무강으로 하노라,
시경 2.1.6(유교)
자신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네거리와 문간을 지나 벽 바깥에 그들이 서 있다. 그러나 음식이며 술이며 풍성한 식사가 마련될 때, 아무도 그들 (죽은 자들)을 기억하지 않는다. 그러기 마련이다.
죽은 일가친적에 대한 연민을 지닌 자들은 철마다 때맞추어 음식과 술을 장만하여 합당한 제물을 마련하고 말한다. ““이 제물이 죽은 조상들데 대한 합당한 제물이 되게 하시고, 이 제물이 그들에게 기쁨이 되게 하소서!”” 그러면 지상을 떠나지 못한 영혼들이 음식과 술이 마련된 곳에 모여 감사의 말을 잊니 않는다. ““우리 일가친척들이 모두 장수하소서, 이 제물을 마련한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우리에게 이 제물이 주어졌으며, 우리에게 제물을 마련한 이들에게 풍성한 결실이 없지 않기를 !””
영혼들이 사는 곳에는 가축을 기르는 일이나 논밭을 쟁기질을 하는 일도 보이지 않는다. 지상ㄷ에서 보는 장사도 없으며 금을 거래하는 일도 없다. 거기를 떠난 우리 영혼들은 여기서 주어진 것으로 산다. 물이 높은 곳에서 흘러내려 늪에 고이듯이, 지상의 제사에서 제물들이 영혼들에게 주어진다.
진실 중에 하나는, 슬퍼하거나 통곡하는 것은 전혀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친척들이 그와 같이 울부짖으며 서 있는 것은 죽은 영혼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욱이 이 연민의 선물이 교단에 주어진다면, 그것은 세세토록 영혼들에 대한 시물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일가친척에게 행해진 이 의무가 설해졌다. 제사를 지내는 것은 영혼들에게 하찮은 것이 아니다. 교단의 비구들에게 그것은 약속된 힘이다. 그대들의 경우에는 적지 않은 공덕이 얻어졌다.
쿳다카 파타, 티로쿳타 수트라(불교)
밥과 물이 더 이상 제공되지 않으며, 그 조상들 또한 천계의 가정에서 명예롭지 못한 곳으로 떨어져야 한다.
바가바드기타 1. 42(힌두교)
이 모든 사람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좋은 증언을 받았지만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더 좋은 계획을미리 세워 두셨기 때문에, 그들은 우리가 없이는 완성에 이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구름떼와 같이 수많은 증인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우리도 갖가지 짐과 얽매는 죄를 벗어 버리고 우리 앞에 놓인 달음질을 참으면서 달려갑시다.
히브리서 11.39-12.1(기독교)
이 경우 이 사실을 앎으로써 족한 줄로 아나니, 곧 선조와 자손 사이에 어떠한 사항에 있어서 굳게 연결하는 중이 없을 때 이 세상은 저주를 받는다 함이니, 보라, 대저 그 사항이란 무엇인고! 이는 곧 죽은 자를 대신하는 침례니라. 이는 죽은 자 없이 우리가 완전해 질 수 없고 우리 없이 죽은 자들이 완전해질 수 없음이라. 저들이나 우리가 다 복음 안에서 죽은 자 없이는 완전해질 수 없느니라. 이는 때가 찬 경륜의시대를 맞아들이기에 필요불가결의 것임이라. 이 경륜의 시대는 이제 맞들이기 시작되었으니, 이때 온전하며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통함과 경륜의 시대와 열쇠와 권능과 영광이 결합되어야 한다.
교리와 성약, 128.18 (예수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말씀선집
창조원리에 의하면, 인간의 영인체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는 생소와 육신으로부터 공급되어지는 생력요소의 수수작용에 의하여서만 성장하도록 창조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영인체는 육신을 떠나서는 성장할 수 없으며, 또한 부활할 수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이미 지상의 육신생활에서 완성하지 못하고 타계해 버린 영인들이 부활하기 위하여는, 지상에 재림하셔서 자기들이 지상의 육신생활에서 이루지 못하였던 그 사명 부분을, 육신생활을 하고 있는 지상의 성도들을 협조하여 그것을 이루게 함으로/써 지상인들이 육신을 통하여 대신 이루어 맞추어야 하는 것이다. 유다서 1장 14절에 끝 날에 주님과 함께 수만 성도가 임하리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면 영인들은 어떤 방법들로써 지상인들로 하여금 뜻을 이루도록 협조하는가? 지상의 성도들이 기도 및 기타 영적인 활동을 하는 가운데 영인들의 상대가 되면, 그 영인들은 재림하여서 그 지상인들의 영인체와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역사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 영인들은 지상인들로 하여금 불을 받게 하고 병을 고치게 하는 등 여러 가지의 능력을 행하게 된다. 그뿐 아니라 입신상태에 들어가서 영계의 사실을 보고 듣게도 하고, 혹은 계시와 묵시에 의하여 예언을 하기도 하며, 그심령에 감명을 주는 등 여러 면에 걸쳐 성신의 대신 역사를 함으로써, 지상인으로 하여금 뜻을 이루어 나아가도록 협조하는 것이다.
(원리강론, 부활론 2,.3.1)
저 나라에 가면 어떻겠습니까? 살인한 자, 죽임을당한 자가 전부 한 곳에 모여 있는데 복수하려고 칼 들고 싸우려 할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수많은 담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한 영들이 원수 자식들에게 가서 급살 맞게 사고내서 데려가는 일이 벌어집니다. 이것을 다 풀어야 됩니다.
이것을 풀기 위해서는 지상세계를 풀어야 합니다. 풀기 위해서는 더 좋은 것을 줘야 됩니다. 죽는 것보다 더 좋은 것, 원수지었던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지 않으면 풀리지 않습니다. 무엇을 가지고 영계를 해방하고, 하나님을 해방합니까? 인간 조상이 이것을 맺히게 했고 천상세계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었으니, 오늘날 후손들은 조상들의 모든 잘못을 해결해야 합니다. 참된 효자의 전통을 이어받은 자식이라면 부모의 빚을 갚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계의 조상의 모든 담을 누가 헐어야 되느냐> 그 운동을 해야 됩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조상들이 여기에 와서 여러분을 직접 만날 수 있게 해야 하고, 와서 가프쳐 줄 수 있게 해야 됩니다. 꿈 같은 얘기인데 사실입니다. 우리 같은 사람은 혼자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을 쓱 보면 저놈의 조상은 어떤 사람인지, 뭘 해먹던사람인지 내가 다 압니다. 얼굴이 쓱 보였다가 휙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악한 영, 선한영을 가리는 것입니다.
(191.205-206, 1989.06.24)
예수님 때 예수님이 땅 위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그 이전의 선한 조상들이 영형체급 영계에서 생명체급 영계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의 조상들도 지상 위에 있는 여러분을 조건으로 하여 재림할 수 있는 특별한 혜택권 내로 들어 왔습니다. 여러분들은 수천 대의 선한 조상들이 재림할 수 있는 터전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땅 위에서 재림부활을 일으킬 수 있는 일을 하면 얼마나 거룩하겠습니까? 여러분 조상 가운데 충신이 있다든가 열녀 혹은 효자들이 있으면 여러분이 기도로 그들을 부르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조상들이 여러분을 협조해야 되겠습니다.
(14.22-23, 1964.04.19)
내가 알지 못하는 영계의 영인들을 동원하여 증거하게 할 수 있는 기준이 나에게 서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영계도 그런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영계는 하나님의 심정을 알고 있기 때문에 땅 위에 그러한 사람이 있어 호소하면 영인들을 동원하여 천국이념의 실현을 위한 지상의 일에 협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영계의 영인들이 이 땅에 오지 못하는 원인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 땅이 탄식의 울타리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나 자신이 머물러 있는 환경이 탄식의 조건을 벗어날 수 있고, 자신의 몸을 통하여도 탄식의 조건을 벗어날 수 있고, 또 사탄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공포를 느끼지 않는 안식권내에 들어섰다면 하나님은 나를 협조해 주시게 됩니다. 즉, 하나님의 슬픔을 체휼하는 심젱에는 사탄도 침범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위하여 슬퍼하고 염려하며 눈물짓는 사람을 붙잡기 위해서는 사탄도 그와 같은 입장에 서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사탄의 세력도 근본적으로 붕괴됩니다.
(4.60-61, 1958.03.02)
지옥
어느 누구도 자신 혹은 사랑하는 사람이 지옥에 떨어지도록 운명 지어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이 대부분 하나님의 본래적인 사랑의 기준에서 동떨어진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이런 상황은 아주 흔하다. 즉, 우리는 자신의 생각과 욕망이 육신의 의지에 따르도록 허용하며, 우리의 정신은 끊임없이 이기적으로 흐른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양심의 소리를 묵살한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배신하고 그 책임을 회피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에 관한 진실까지도 외면해 버린다. 이와 같이 70년 넘게 살았다면 수정처럼 맑은 천국공동체에 적합할 수 있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지옥이란 무엇인가? 어떤 종교전통들은 그것을 유황불이 흐르는 강이 있는 땅속 깊은 곳으로 묘사한다. 그리고 어떤 전통들은 지옥이란 단지 마음의 상태라고 말한다. 그러나 혹독한 고독, 후회, 부끄러움, 죄책감이나 상실의 고통을 경험했던 사람이라면 아는 것처럼, 그와 같은 마음의 상태들은 참기 어려울 정도로 생생한 법니다.
더욱이 우리가 육신 생활을 하는 동안 대개 망각, 자기합리화, 감각적 쾌락이나 음주에 빠져 회피하는 것처럼, 그런 느낌들을 피하는 것은 영계에서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불쾌한 느낌들로부터 유예는 있을 수 없고, 그 느낌들은 불행한 영혼을 끊임없이 괴롭히며 지속된다.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을 묘사하기 위해 종교경전들은 훨훨 타는 불, 펄펄 끓는 물, 혹독한 추위, 온 몸이 으깨짐, 사지가 찟어짐 , 짓밟혀 뭉개짐, 불태워짐, 산 채로 먹힘 등의 구체적인 이미지들을 사용한다.
우리는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여러 구절들로 끝맺는다. 동양의 종교들은 지옥의 모든 상태를 일정 기간 동안 벌을 주기 위해 고안된, 악업이 불태워지고 영혼이 참된 도를 찾을 수 있는 미래의 기회를 지니는 연옥으로 간주한다. 문선명 선생은 하나님이 지옥을 창조하지 않았다고 분명하게 가르친다.
사실 지옥의 존재 자체는 하나님의 절대선에 대한 모욕이며, 사랑이 충만한 그의 가슴에 못을 박는 것이다. 우리가 충분한 사랑을 지닌다면, 다른 사람들이 이옥으로 향해 가는 길을 막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것이다. 심지어 우리는 무덤속에서 사흥동안 지옥을 정복했던 예수그리스도나 힌두교 영웅 비스파치트처럼 지하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구출 할 것이다.
1. 지옥의 고통
종교경전
지옥에서는 그들을 파먹을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
마가복음 9.48(기독교)
비겁한 자와 신실하지 못한 자와 가증한 자와 살인한 자와 음란한 자와 마술쟁이와 우상숭배자와 모든 거짓말쟁이들이 차지 할 곳은 불과 유황이 타오르는 못이다. 이것이 둘째 사망이다.
요한계시록 21.8(기독교)
맹독의 불꽃이 치솟는 불의 바다
자아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불바다의 물결이 천파만파로 굽이치며
죄인들이 그 속에서 불타고 있다.
아디 그란트, 마루 솔라혜, M.1.p.1026(시크교)
지옥이 그들 앞에 있어 그들은 피고름의 물을 마시리라. 그것을 들이켜려 하나 삼킬 수 없도다. 죽음이 사방에서 그에게 다가오나 아직 죽지 아니하니 그 앞에는 고통스러운 징벌뿐이니라.
꾸란14.16-17(이슬람)
지옥은 숨어서 잠복하고 있으니 오만한 무리들을 위한 거처이리라.
그들은 그곳에서 장고한 세월을 보내리라.
그들은 그곳에서 어떤 시원함도 마실 물도 맛보지 못하니
오직 펄펄 끓는 열탕과 메스꺼운 악취만 있으리니,
이것이 그들이 받을 적절한 응보이니라.
그들은 그들의 행위에 대한 어떤 응보도 결코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부정하였으니, 하나님은 모든 것을 기록하였도다.
그리하여 이제 너희가 그 결과들을 맛보라니,
하나님께서는 다만 너희에 대한
응벌을 더하여 주시리라.
꾸란 78.21 - 30 (이슬람)
어떤 죄인들은 마치 화목처럼 톱으로 잘리며, 또 어떤 죄인들은 땅에 패대기쳐져서 도끼로 토막 토막 잘ㄹ게 쪼개진다. 몸의 절반이 진흙탕에 묻힌 어떤 죄인들은 화살로 머리가 관통된다. 압착기에 들어간 어떤 죄인들은 마치 사탕수수처럼 줘어짜진다. 어떤 죄인들은 타오르는 숯불에 가까이 놓여 횃불에 둘러싸인 채 철광석처럼 용해된다. 어떤 죄인들은 펄펄 끓는 버터속으로 던져지고, 또 어떤 죄인들은 튀김 솥에 던져지는 과자처럼 끓는 기름 솥에 던져진다. 어떤 죄인들은 성난 큰 코끼리가 달려가는 길바닥에 던져지며, 어떤 죄인들은 손발이 묶인 채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다. 어떤 죄인들은 깊은 우물속에 던져지고, 또 어떤 죄인들은 높은 곳에서 집어던져지고 또 어떤 죄인들은 벌레들이 우글거리는 구덩에 던져져서 그들에게 먹힌다 … 정해진 순서에 따라 고통을 겪는 후에 그들은 정화되어 다시 여기에 나온다. 가루다푸라나 3.49-71(힌두교)
죄악을 지은자는 해충들이 사는 물 안에서 괴롭힘을 당한다. 나오려 해도 언덕이 없다. 그 가마솥은 둘레가 모두 매끄럽고 둥글기가 한결같기 때문이다. 그 후 그는 팔다리가 잘린 채 날카로운 칼잎으로 이루어진 숲속에 들어간다. 낚시 바늘로 혀를 꿰어 지르고 또 찌르면서 괴롭힌다. 또한 예리한 면도날이 있는 건너기 어려운 베타라니강에 다다른다. 악행에 저지르는 어리석은 무리들은 죄악을 범하고 그곳에 떨어진다. 그곳에는 갈가마귀, 검은 개, 점박이 개, 승냥이 떼들이 있어 울부짓는 사람들을 뜯어먹는다. 또한 독수리와 까마귀들도 사을 쪼아 먹는다. 죄악을 지은자는 만나는 이 세상의 삶은 참으로 바참하기 그지없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목숨이 살아 있는 동안, 사람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하며 방일하지 말아야 한다. 숫타 니파타 672 - 676(불교)
지구 표면 곳곳의 움푹 꺼진 곳에는 다양한 지역이 있는데, 우리가 사는 곳보다 어떤곳은 더 깊고 더 넓고, 다른 곳은 더 깊고 좁게 열려 있고, 어떤 곳은 더 낮고 더 넓습니다. 모두 지하에 있는 넓기도 하고 좁기도 한 많은 구멍과 통로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데 그 곳을 통해 물이 흘러 들어가고 나갑니다. 그리고 지하에는 영원히 흐르는 거대한 강이 있고 뜨겁거나 찬 물이 솟아납니다. 그리고 거대한 불과 거대한 불의 강들도 있고 묽거나 진한 진흙의 강도 있고 … 불타고 있는 큰 지역으로 쏟아져서 지중해보다 더 큰 호수를 형성하는데 이것은 물과 진흙으로 끓어오르고, 진흙과 흙탕물을 이루며, 그리고 … 지하로 여러번 감돈 다음 타르타로스로 흘러 들어갑니다 … 죽은 자가 각자의 수호신이 데리고 가는 곳에 이르면 먼저 그들은 훌륭하고 경건하게 살았거나 그렇지 못하거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죄가 커서 치유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이는 자들, 즉 여러차례 끔찍스러운 신전 절도, 살인, 이와 유사한 범죄를 저지를 자들, 그들은 그 들에게 마땅한 운명에 따라 타르타로스에 던져지는데 그들은 결코 나오지 못합니다.
비록 잘못을 저질렀으나 교정할 수 있는 자들, 이를테면 울컥하는 마음에서 아버지나 어머니를 폭행했으나 뉘우치고 새롭게 살아가는 자들, 이들은 타르타노스에 떨어집니다. 이들은 일 년 동안 고통을 당하고, 일 년이 지나면 파도가 그들을 밖으로 내던지는데… 그리고 그들은 아케루시아스 호수에 오게 된다. 거기서 그들은 소리 높여 그들을 죽이거나 해를 끼친 희생자들을 불러 자신들을 불쌍히 여겨 받아들이고 그 강을 벗어나 호수로 들어가게 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래서 일단 그들이 설득하면 그때 그들은 밖으로 나와 고생을 끝마치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면 그들은 타르타로스로 다시 되돌려져 그들이 해친 자들로부터 자비를 얻을 때까지 거기서 끊임없어 강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벌은 그들의 심판자들에 의해 그들에게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플라톤, 파이돈(헬레니즘)
거기서 사람들은 “이것을 당신에게, 이것은 나에게” 라고 말하며, 각각의 사지를 잘라서 서로 분할 되고 있다. 이에 관하여 물으면 그들은 대답한다. “다른 세계에서 그들이 이런 방식으로 우리를 다루었으며, 차례로 이제 우리는 똑같은 방식으로 그들을 다룬다.”
샤타파타 브라흐마나 11.6.3(힌두교)
말씀선집
지옥이 무엇입니까? 어떤 곳이 지옥입니까? 사랑도 없고 생명도 없고 혈통도 관계없는 입장에서 자기를 중심삼고 천하제일이라고 서로 주장하고, 이마를 맞대고 얼굴을 맞대고 행동을 맞대어서 분쟁으로 결과된 것이 지옥입니다.
(360.185 2001.11.16)
지옥은 무엇입니까? 악마의 사랑권내를 말합니다. 악마는 증오와 질투와 시기와 분열과 파탄만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마권은 그런 것만 성행하는 곳입니다. 그것이 전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214.282.1991.02.03)
지옥은 어떤 곳이냐, 지옥은 권력을 자랑하는 곳이요, 돈을 자랑하는 곳이요, 자기를 자랑하는 곳이요, 우리의 본심은 사랑을 받고 싶고 선을 요구하는데 그 반대의 성질이 백방으로 부딪치는 곳이 지옥입니다. 그렇지만 지옥에 가 있다고 해서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는게 아닙니다. 그것이 더 강합니다. (102.160 1978.12.17)
저 나라에 가서 뭘 할것이냐? 먹을거에요, 안 먹을거에요? 먹으면 좋겠어요, 안 먹었으면 좋겠어요? 먹는데 무엇을 중심삼고 먹느냐? 사랑을 중심삼고 먹게 되어 있기 때문에 사랑을 갖지 못하는 사람은 가서 먹으려고 해도 입이 벌어지지 않습니다. 그게 법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만 있고, 전체를 사랑하는 마음이 중심이 안 돼 있으면 입이 벌어지지 않습니다. 젓가락으로 먹을 것을 집어서 입으로 가져가려고 해도 젓가락이 딴 데로 간다는 것입니다.… 그거 얼마나 기가 막혀요! 그 세계는 참사랑의 개념을 가져야 모든 것이 가능한 세계이지 참사랑의 개념을 안 가지면 모든 것이 불가능한 세계입니다. (207.95. 1990.11.01)
영계에 가 보면, 영계의 모든 사람들이 지옥의 수많은 단계적 부처에 머물고 있는데, 그 사라들이 어떻게 그렇게 됐습니까? 사랑 질서의 도리를 중심삼고 효자 효녀가 되어야 할 텐데 불구하고 효자 효녀가 되지 못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나라를 중심삼고 충신이 돼야 할 것인데 그렇게 못 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서 세계를 중심삼고 성인들이 되어야 할 텐데 거기에 박자가 안 맞아서 그 비례적 도수의 차에 해당하는 자리에 머물고 있는 것입니다. (147. 188 - 184 1986.09.21)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얼마나 비판받아요, 역사시대에! 그렇게 여러분들을 후손들이 심판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제일 무서운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러분들을 불러서 이 고귀한 것을 상속 시켜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것을 실패하는 경우에는 모든 영계가 참소할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것을 압니다. 얼마나 무서운 거에요! 선생님은 잘 압니다.
선생님의 과거의 생애노정이 아무리 어려웠더라도 그게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 어려움보다 영계의 참소가 더 무서운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핍박을 받더라도 그것이 쉬운 길임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어느 것이 가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을 압니다.
(189.247. 1989.04.09)
천상세계는 빛의 세계요, 지옥은 어둠의 세계입니다. 그 세계에 가면 갈수록 아무리 자기가 기쁘다고 하더라도 순간에 기쁠 수 있는 모양은 됐지만 대번에 어둠이 점령해 버립니다. 술을 먹고 좋다고 하지만 돌아서면 탄식이 벌어집니다. 양심이 충고하는 것입니다.
너는 어디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양심이 좋아하는 자리가 아니고 양심이 싫어하는 자리에 있는 인간은 어둠의 세계에 속해 있지, 하나님과 본성의 세계, 빛의 세계와는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400.104. 2002.12.28)
세계는 혼란입니다. 그러면 영계는 어떠합니까? 그러한 혼란된 인간상들이 영계에 가서 사니, 그런 사람들이 뭉펴 있으니 영계는 혼란하지 않다는 말이 성립됩니까? 도둑질을 한 전과자는 언제나 도둑질을 해먹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지구성에서 도적질을 해먹던 것들이 천상세계에 가서 공짜를 바라고 그러고 있습니다. 그래서 처치가 곤란하니 지옥이라는 것이 생겨났습니다.
지옥은 하나님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지옥은 생겨난 것입니다. 쓰레기통을 만들어 놓고 집을 짓습니까? 집 짓고 살다보니 쓰레기통이 생겼지요. 마찬가지입니다.
(148.28. 1986.10.04)
천국에서 바로 아래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뚜렷하면서도 다양한 영계의 계층이 펼쳐집니다. 지상인간들이 생각할 때 영계는 천국과 지옥의 두 계층으로만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데, 사실은 수많은 계층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선한 곳에서부터 악한 곳까지 다양하게 형성되어 있습니다.
영계가 이렇게 다양하게 계층화되어 있어도 천국 이외의 자리에서는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여기서는 생활하기가 매우 힘듭니다. 악을 놓고 서로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며 다투고 있습니다. 영계의 각 계층에서는 똑같은 성품을 가진 영인들끼리 모여 살기 때문에 재미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지상에서 도둑질을 많이 했던 영인들이 사는 세계는 항상 주변 영인들이 무엇인가를 훔쳐갈 것 같아서 의심하게 되고 서로 불신하는 생활을 하게 되니 항상 불안해합니다. 또한 싸움을 많이 했던 영인들이 사는 곳은 항상 싸움판이 벌어져 있습니다.
지금까지 땅에서 살다온 연인들은 대부분 중간 영계와 지옥에 와 있습니다. 영계는 지상에서 어떤 생활을 했느냐에 따라 영계의 생활이 결정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옥이나 고통 받는 자리의 영계에 머물지 않기 위해서는 원리적인 삶에서 벗어나지 말고 절대신앙 절대사랑 절대복종의 길을 가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성품은 선이요 사랑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품을 닮기 위해서 노력해야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중간급의 영계를 지나 더 아래로 내려오면 사방이 어둡고 침침하고 답답한 지옥이 나타납니다. 이곳은 소름이 오싹오싹 들고 지저분한 냄새도 많이 납니다. 흉학한 모습을 한 영인들도 나타납니다. 서로 물어뜯고 혈기를 부리고 미워합니다. 어떤 영인이 한마디 하면 옆에 있던 다른 영들이 덤벼들고 소리 지르고 난리입니다. 시체 썩는 냄새보다 더 지독하고 고약한 냄새도 납니다.
어떤 곳은 불구덩이처럼 되어 있는데, 화를 잘 내는 영인들이 이곳에 모여 삽니다. 가장 무서운 지옥 밑창에는 자살한 영인이나 지상에서 음란한 생활을 했던 영인들이 살고 있는데 뱀들이 우글거리고 있으며 무섭고 흉측한 모습을 하고 있어서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는 곳입니다.
영계는 천국에서부터 지옥까지를 색깔로도 각 영계권의 차이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천국은 투명하고 흰색이며 밝은 색상입니다. 때가 묻어 얼룩덜룩한 면이 전혀 없고 백옥처럼 흠이 하나도 없이 깨끗합니다. 하지만 낮은 영계로 가면 갈수록 색깔이 점점 탁해지며 우중충한 미색이나 어둡고 탁한 보라색의 중간색 계통이 나타납니다.
더 낮은 단계로 가면 엷은 밤색이 나타나고 회색계통이 나타나고, 이어서 재색 계통, 검정색, 짙은 검정색 순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천국은 밝고 환하며 천국 가까이 갈수록 밝은 색 계통이 나타나고 지옥으로 갈수록 어둡고 혼탁한 색깔이 나타납니다. 지상에서 죄를 많이 짓고 영계에 온 영인들일수록 그 색깔이 어둡고 탁해 보입니다. 지은 죄에 따라 영인체 각 부위가 색깔로 표시되어 나타나게 됩니다. (흥진님 영계메시지, 2002.01.01)
2. 지옥에 관한 경고
종교경전
세속적 재산 축적이 너희를 벗어나게 할 것이니라.
너희가 무덤에 이르기까지 오만하려 하느냐
그러나 너희는 곧 알게 되리라.
반복하나니, 결코 아니니라, 너희는 곧 알 게 되리라.
너희가 분명한 지식이 있다면 너희는 알게 되리니
너희는 지옥의 불을 볼 수 있을 것이라.
너희는 분명히 눈으로 그것을 목격할 것이라.
그날 이후 너희는 너희가 탐닉하던 향락에 대해서 힐문을 받을 것이라.
꾸란 102.1-8(이슬람)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그런데 그 집 대문 앞에는 나사로라 하는 거지 하나가 헌데 투성이 몸으로 누워서,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배를 채우려고 하였다. 개들까지 도와서 거의 헌데를 핥았다. 그러다가 그 거지가 죽어서 천사들에게 이끌려가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고, 그 부자도 죽어서 땅에 묻히게 되었다. 부자가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다가 눈을 들어서 보니, 멀리 아브라함이 보이고 그의 품에 나사로가 있었다.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기를 ‘아브라함 조상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나사로를 보내서,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서, 내 혈르 시원하게 하도록 해주십시오. 나는 이 불 속에서 몹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뒤돌아보아라. 살아 있을 때에 너는 온갖 복을 다 누렸지만, 나사로는 온갖 불행을 다 겪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통을 받는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가로놓여 있어서, 여기서 너희에게로 건너가고자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로 건너오지도 못한다.’ 부자가 말하였다. ‘조상님, 소원입니다. 그를 내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나는 형제가 다섯이나 있습니다. 제발 나사로가 가서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고통 받는 이곳에 오지 않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부자가 말하였다. ‘아닙니다. 아브라함 조상님,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누가 살아나서 그들에게 가면,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에게 말하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누가 살아날지라도 그들은 그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누가복음 16.19-31(기독교)
슈쉬센시의 채소밭 부근에 판키라는 사람이 사악한 짓을 하며 살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서로 반목하며 송사하고, 남의 것을 강제로 빼앗고 남의 아내나 딸을 욕보이도록 꾀었다. 자기의 사악한 목적을 쉽사리 이루지 못했을 때 그는 가장 교활한 술수를 썼다.
어느 날 그는 갑자기 숨을 거두었으나, 스물네 시간이 지나 다시 깨어나서 아내에게 친척이나 이 옷을 불러 모으도록 부탁했다. 모든 친척과 이웃이모였을 때 그는 그가 명부의 대왕을 만나서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다고 이야기했다. “죽은 자들은 여기서 자기들의 사악한 행위에 대해 벌을 받게 된다. 죽은 자들은 그들이 지은 범죄와 동료에게 끼친 해악의 분량에 따라 뜨겁게 달아오른 숯 불 구덩이에 던져진다.”
모인 사람들은 열에 떠 있는 환자의 말에 따라서 이러한 보고를 들었으나 의심하면서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판키는 죄를 상당히 지었다. 그래서 지옥의 염라대왕은 그를 본보기로 만들어 사악한 길에 있는 사람들을 경고하기로 했다. 염라대왕의 명령에 따라 판키는 “이것은 내가 사람들을 방탕한 생활로 유인한 것에 대한 벌이다.” 라고 말하면서 칼로 자신을 절단했다. “이것은 내가 성내며 부모를 바라보고, 흑심을 품고 남의 아내나 딸을 바라본 것에 대한 벌이다.” 라고 말하면서 그는 자기의 두 눈을 파내었다. “이것은 수많은 동물을 죽인 것에 대한 벌이다.”라고 말하면서 그는 오른손을 잘랐다. “이것은 내가 남들이 고통속에 죽어가도록 한 것에 대한 벌이다.”라고 말하면서 그는 자신의 몸을 가르고 심장을 도려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거짓말과 남을 비방한 것에 대한 벌로 자신의 혀를 잘랐다.
이 사건에 대한 소문이 멀리 퍼지자 이 불행한 사람의 잘려진 신체를 보고자 사방에서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의 아내와 자식들은 슬픔과 부끄러움에 휩싸인 채 호기심 어린 군중을 차단하기 위해 문을 닫아버렸다. 그러나 아직도 염라대왕의 시련 가운데 살아 있는 판키는 희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남들에게 경고가 되도록 내 스스로 벌을 내리기를 원하는 지옥대왕의 명령을 이행하고 있는데, 무슨 권리로 나를 보고자 하는 사람들을 막고 있느냐?” 육일 동안 그 사악한 사람은 가장 소름끼치게 괴로워하며 땅바닥에서 뒹굴다가 최후를 맞아하였다. 태응감응편(도교)
말씀선집
지옥은 한번 걸려들면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기의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친척이 지옥에 간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합니다. 그저 ‘어떻게 되겠지’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부모가 진짜 지옥에 간다고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감옥에만 들어간다고 해도 울고불고 하면서 별의별 짓을 다 해서라도 빼내려고 하는 것이 인정이거늘, 하물며 친정으로 맺어진 아들딸이 자기의 부모와 친척, 형제자매가 영원히 나올 수 없는 감옥에 간다는 것을 안다면 그런 생각을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까지 아무것도 모릅니다. 지옥이 있는지 없는지, 있긴 있는 것 같은데 어떤 것인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확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죽어보면 아는 것입니다. 죽어 보면 대번에 알겠지만 그때는 이미 늦다는 것입니다. (34.267. 1970.09.13)
하늘나라의 법도를 모르고 하늘나라의 구조적인 이상권을 모르는 사람들이 천국에 가서 어떻게 할 것입니까? 곤란한 것입니다. (390.260. 2002.08.13)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 지구성은 사탄이 지배하게 되었고, 영계에 지옥이 생겨난 것입니다. 지옥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이 지배할 수 있는 판도는 지상지옥세계와 천상지옥세계까지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해방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해방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해방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타락이 없었으면 지상지옥도 천상지옥도 생겨나지 않고, 하난의 이상적 천국으로서만 귀착될 것이었는데 타락으로 말미암아 두 세계에 사탄이 지배할 수 있는 세계 형태가 나타났기 때문에 이것을 해소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넘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168.303-304 1987.10.01)
지금까지 인간에 있어서 완성이 무엇이냐? 그것은 사랑의 자리에 나가는 것입니다. 사랑의 자리에서 하나님하고 셋이 하나 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사랑의 자리에서 하나님과 남자와 여자가 하나 됩니다. 그런 원리가 있어야 하 것 아닙니까? 타락한 이후 이런 자리에 나간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나다. 그러면 여기에 떨어진 사람의 소원이 무엇이냐? 여기를 지나 이 뜻을 이루어야 되지요? 최괴의 기준에 이르러야 하는데 최하의 기준에 가 있기 때문에 그 간격에 대한 고충과 허무함과 비참함이 고통을 주고 있는데, 이곳이 지옥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92.197. 1977.04.10)
3. 지옥의 영혼 구제
종교경전
그리스도께서도 죄를 사하시려고 단 한 번 결정적으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곧 의인이 불의한 사람들을 위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것은 그가 육으로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셔서, 여러분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려는 것입낟. 그는 영으로 지옥에 있는 영들에게도 가셔서 선포하였습니다. 베드로전서 3.18-19(기독교)
불행한 자들은 불길 속에서 있을 것이고 그 속에서 한숨짓거나 눈물 흘리리라.
그들은 그곳에서 주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한, 하늘과 땅이 존재하는 동안 영원히 머물리라. 너희의 주님께서는 원하시는 것을 행하시는 분이시니라.
행복한 자들은 낙원에서 주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한, 하늘과 땅이 존재하는 동안 영원히 머물리라. 이는 사라지지 않는 선물이니라. 꾸란11.106-108(이슬람)
알라께서 사람들 사이에서 심판을 끝내실 때, 자비로 지옥에서 구해 줄 이는 누구든 취할 것이라…그들은 지옥 불에서 꺼내져 완전히 탄 후 그들 위로 생명의 물이 부어지리라. 그들은 급류의 진흙속에서 나온 씨앗과 같이 그 아래서 자라리라….
그들은 진주처럼 나와 (금)목걸이를 지니고 천국에 들어가리라. 그리고 천국에 거주하는 이들이 말하리라. “이들은 자비로 구원받은 자들이라. 이들은 아무런 선한 일도 하지 않았고 자신들을 위해 어떤 좋은 일도 하지 않았으나 그가 천국으로 들어오게 하셨도다.”
부카리 하디스 9.93.532(이슬람)
“이보시오! 야마의 사자여! 말해보시오. 내가 무슨 죄를 저질렀기에 그 고통 때문에 두려움에 떨어야 하는 이 깊디깊은 지옥에 떨어지게 되었소? 비파스치트 왕으로 알려진 나는 정으로써 대지를 수호했습니다. 나는 누구를 화나게 한 적이 없으며, 손님을 서운한 기분으로 돌려보낸 일도 없소. 또한 나는 조상들, 신들, 고행자들 또는 심지어는 나의 하인들의 마음을 거스른 적도 없소. 나는 다른 이들의 아내나 재물 또는 그들에게 속한 여타의 어떤 것을 탐한 적도 없소. 그런데 어찌하여 이 무시무시한 지옥에 떨어지게 되었소?
야마의 사자가 말했다. “ 자, 우리는 다른 곳으로 갑니다. 지옥을 보았으므로, 당신은 이제 모든 것을 보았습니다. 이제 우리 다른 곳으로 갑시다.”
그래서 비파스치트 왕은 그를 따라가게 되었다. 그런데 고통스런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로부터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비를 베푸소서! 오, 왕이여! 단지 잠시만 머물다가 가소서. 그대의 몸을 감싸고 있는 공기는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우리의 몸에서 타는 불과 모든 고통을 몰아냅니다. 오, 범 같은 이시여! 자비를 베푸소서! 오, 왕이시여!”
비파스치트 왕이 말했다. “천계나 심지어 브라흐만의 세계에서도, 사람들이 고통 받는 존재들에게 축복을 베푸는 일에서 오는 것과 같이 기쁜 경험을 하지 않는다. 만일 내가 여기 머무는 동안에 고통이 이사람들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면, 나는 산처럼 꿋꿋하게 여기 남겠소.”
야마의 사자가 말했다. “자 왕이시여, 우리 이제 갑시다. 당신의 공덕으로 얻는 즐거움을 향유하소서. 악행자들은 그들의 응보대로 고통을 받게 여기 내버려두십시오.”
비파스치트 왕이 말했다. “이 사람들이 여기서 이와 같이 혹독한 고통을 겪고 있는 한, 나는 가지 않을 것이요. 내가 여기 있음으로써 지옥에 있는 자들이 점차 행복해질 것이오. 설사 불공대천의 원수라 할지라도, 고통 속에 있는 사람에게 아무런 호의도 보이지 않는 사람의 안락을 구걸하는 사람은 역겹소! 고통 받는 자들의 구제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 희생제의나 공물 또는 고행은 아무런 소용도 없소. 내가 생각하기에, 이 사람들의 구제를 돕는 것은 천계의 즐거움을 능가하오. 만일 단지 내가 고통을 겪는 동안에 고통속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다면, 실로 나는 그것을 택해야 하지 않겠소?”
다르마(이법)가 말했다. “이 악행자들은 그들 자신의 업에 따라서 지옥에 왔습니다. 오, 왕시여, 당신 또한 자신이 쌓은 공덕에 따라서 반드시 천계로 가야만 합니다. 내가 당신을 천겨로 인도하겠습니다. 주저하지 말고 천계로 가는 이 수레에 오르십시오. 어서 갑시다.”
비파스치트 왕이 말했다. “오, 다르마여! 수많은 사람들이 여기 지옥에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극심한 고통을 당하면서 그들은 나에게 구해 달라고 울부짖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떠나지 않겠습니다.”
다르마가 말했다. “오, 왕이시어, 당신의 공덕은 실로 헤아릴 수 없습니다. 지금 여기 지옥에서 보여주신 이 자비심으로 인하여 당신의 공덕은 한 층 더 켜졌습니다. 불멸자들의 세계에서 행복을 누리소서, 이 불쌍한 자들은 자신들의 행동에서 야기된 죄를 이 지옥에서 탕감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소서!”
비파스치트 왕이 말했다. “오, 삼십 신들의 주시여, 나에게 속한 모든 선업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고 있는 죄인들이 지옥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인드라가 말했다. “그러할지어다. 오, 왕이시어! 그대는 더욱 높은 지위를 얻었다. 또한 이 죄인들이 지옥에서 구제되는 것을 보게 되리라!”
마르칸데야 푸라나 13-15(힌두교)
말씀선집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저 보좌에 계신다 하면 지옥에 가서 죽겠다고 하면서 ‘나를 살려주소!’하는 영인들을 볼 때 하나님이 ‘ 야! 너는 그래도 싸다!’하고 생각 하시겠어요, ‘저것들 불쌍하다’라고 생각 하시겠어요? 불쌍하다고 생각하신다는 것입니다. 지옥을 해방해야 됩니다. (98.116. 1978.05.07)
사랑으로만 지옥을 천국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가지면 지옥을 천국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90.314 1977.01.15)
사람이 백년을 못사는 걸 생각할 때, 50억 인류중에 1년에 5천만이 영계로 갑니다. 지옥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사탄이 뿌려놓은 씨를 전부 하늘로 거두기를 하나님이 바라는데 이것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지금까지 40년 동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지옥에 갔습니까? 수십억이 갔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심각한 것입니다.
저 나라에 가서 그 영들을 만나게 되면 ‘선생님이 재세 당시에 우리에 대해 책임 못하지 않았소!’ 하면 뭐라고 할 것입니까? 마음으로라도 해야 됩니다. 마음으로라도 식구들에게 얘끼하고, 미래에 대해서도 책임지겠다는 소행을 중심삼고 가게 될 때 ‘당신은 놀라우신 분입니다. 우리를 생각해 주셨소!’ 한다는 것입니다. (205.356 1990.10.02)
역사를 더듬어 보면, 메시아를 중심삼고 가롯 유다와 네로 황제를 비롯하여 공산당이 이제 하늘을 배반하고 나가고 있사옵니다. 오늘 이 시간, 천주에서 승리한 하나의 인연을 갖추어서 총 해원하는 이 시간, 이들을 하늘의 심판대에서 쓸어버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이들에게 참부모의 이름을 가지고 당신이 세우신 존엄하신 우주의 승리적인 권한을 가지고 이들까지도 당신의 이름으로 인연맺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참부모님 앞에 기여하고, 수많은 종교와 수 많은 양심적 인사앞에 기여할 수 있는 하난의 길을 모색해 주지 않으면 안도리 것을 아오니, 아버지여, 영원히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간 당신의 심정 앞에 못을 박고 당신의 아들 예수를 죽인, 당신의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물어뜯고 죽이던 그 원한의 원수였지만, 원수를 사랑하는 자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천지의 문을 여시어서 당신의 후덕하신 사랑의 마음을 펴시옵소서, 이들을 해방함으로 말미암아 지옥의 문이 열릴 것이고, 지옥 철폐의 길이 서서히 닦에 질 줄 알고 있습니다. (78.18-19 1975.05.01)
천계
천당과 지옥에 대한 개념은 세계 종교들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된다. 이 영역들에 대한 묘사는 흔히 지상인들의 일상적인 생활에서 경험할 수 없는 실재를 상징화하여 회화적이고 환상적인 구성들로 가득 차 있다. 이 영역들은 객관적으로 샐재하는가? 종교경전들은 이구동성으로 이 영역들이 실재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영역들은 어떤 물리적 위치를 지니지 않는다. 그곳의 ‘위’ 또는 ‘아래’는 영적 위상의 문제이지, 천문학이나 지질학적 위치가 아니다. 어떤 경전들에서 발견되는 견해, 즉 천당이나 지옥은 우리의 마음 상태에서 파생되었다는 견해는 결코 그것을 비실재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윤리적인 삶에서, 드러나는 행태들에 의해 감추어질 수도 있는 우리 마음 속의 태도들과 욕망들은 영계의 내용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세계 경전들은 천당을 하나님의 은총으로 충만한 안식처 혹은 고귀한 영적 상태로 묘사한다. 천당의 거주자들은 하나님과 교감하며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생활한다. 수많은 경전들은 그곳을 죽은 자들의 영혼이나 성자들과의 친교 장소로 묘사한다.
보다 회화적이고 세속적인 광경으로 묘사하여 즐거움이 넘치고 온갖 부와 진귀한 보물이 넘치는 곳으로 묘사한 구절들도 있다. 천당에 관한 문선명 선생의 다채로운 묘사는 경전의 이 주제들과 일치한다. 더욱이 그는 천당이란 가족들이 완전한 사랑을 향유하면서 함께 사는 곳임을 확인하며 강조하는 말을 덧붙인다.
우리는 천당의 광경들이나 여행으로 이 절을 끝맺는다. 여기에는 문선명 선생 자신의 묘사뿐만 아니라 불교의 정토에 대한 묘사, 무함마드의 일곱 천당을 거치는 밤 여행, [멋진 호수의 법전]에 나오는 이러쿼이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여행이 포함된다. 이 구절들은 모든 소망이 이루어지는 영원한 젊음과 건강이 넘치는 세계, 진동하는 색조와 감미로운 곡조로 감각들이 생기에 넘치는 낙원 같은 세계로 그것을 묘사한다.
1. 은총의 세계
종교 경전
선행을 하는 어느 누구도 이생에서나 다음 생에서나 결코 나쁜 결말에 이르지 않는다. 그와 같은 사람들이 죽을 때 그들은 의로운 자들이 사는 다른 세계로 간다.
-바가바드기타6.40-41(힌두교)
진실로 믿으며 올바른 일을 행하는 자들은 가장 선한 자들이니라.
그들에 대한 보상은 아래에 강물이 흐르는 낙원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인해 기뻐하시고 그들은 하나님께 만족하리라. 이는 주님을 경외하는 자들에 대한 보상이니라. - 꾸란 98.7-8(이슬람)
랍비 조셉이 ... 병에 걸려 의식을 잃었다. 다시 회복되었을 때 그의 아버지가 물었다. “무엇을 보았느냐?” 그가 대답했다. “지금 세상과 정반대의 세상을 보았습니다. 위에 있는 자가 아래에 있고, 아래에 있는 자가 위에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대답했다. “아들아, 바로잡히 세상을 보았구나.” - 탈무드, 페사힘50a(유대교)
도래할 세상은 지금의 세상과 다르다. 새로운 세상이 되면 먹고 마시는 일이 없을 것이다. 아이를 낳는 일도 없을 것이며 상거래도 없을 것이다. 질투나 증오나 경쟁이 없을 것이다. 새 세상에는 의인이 존경받을 것이며, 그에게 왕관이 씌워질 것이며, 그는 신성한 광채를 즐길 것이다. - 탈무드, 베라코트17a(유대교)
아무런 미혹도 없는 세계, 영생과 더할 나위 없는 권능과 빛나는 광채를 지니며, 자신의 형상을 임의대로 바꿀 수 있으며, 언제나 첫날처럼 아름다우며, 수천의 태양이 발하는 광휘를 지닌 신들이 거하는 세계, 이와 같이 비길 데 없는 구극의 세계는 자기통어와 고행으로 얻나니, 모든 이기적인 욕망을 벗어나 해탈에 든 범부와 고행승들이 얻는 바의 경계이니라.
- 웃타라디야야나 수트라5.26-28(자이나교)
은총의 세계는 드높은 곳에 있나니, 신 의식으로 충만된 영웅들, 지고한 권능의 영웅들이 아니고는 아무도 다가갈 수 있는 자가 없도다. 지극히 아름답고 더할 나위 없는 찬양을 받았던 시타와 같은 수많은 여신들이 그 세계에 사느니라. 신과 하나된 이들은 모든 죽음과 미망에서 자유롭도다.
그 세계에는 도처에서 모인 거룩한 신애자들이 살며, 가슴에 숭엄하고 영원한 신을 품었도다. 영원한 지복으로 무형의 지고자가 영원의 세계에 거하며, 일체만유에 가없는 은총을 내리도다.
그 세계는 모든 대륙과 나라를 품고 있으며,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도다. 그 안에 거하는 모든 삼라만상이 그의 뜻을 받들도다. 그는 다시없는 기쁨으로 그들을 굽어보며 낱낱이 가슴속에 품어 안도다. 나나트가 말하노니, 실로 형언할 수 없는 것이 그 세계의 장려함이라.
- 아디 그란트, 자푸지37M.1.P.8
말씀 선집
하나님이 이러한 중심존재이신데, 그러면 하나님이 계시는 저 천국, 하나님이 계시는 저 영계는 어떠한 조직으로 돼 있습니까? 그 조직 구조는 간단합니다. 천국에 갈 수 있고 극락에 갈 수 있는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서 살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못 가는 것입니다. 전체를 위해서 태어나서 전체를 위해서 살던 사람이 가는 곳이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영계를 체험한 경험이 없을는지 모르지만 본인은 하늘의 은사로 말미암아 숱한 영적 세계를 체험하였습니다. 천국에 들어가게 되면, 자기를 위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위하고 인류를 위해 살던 사람들이 전부 다 그 세계에 가 있는 것입니다.
- 77.189-190. 1975.04.06
하나님을 옹위하고 하나님 앞에 가까이 오면 올수록 기쁘다는 것은 원리가 그렇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영계라는 것은 하나님을 중심삼은 이상세계로서 하나님의 사랑의 박자와 그 파동에 의해 움직이는 세계입니다. 그래서 내가 거기에 어울릴 수 있는 요소를 지상에서 닦고 가지 않으면 거기에서 화합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녀의 사랑, 부부의 사랑, 부모의 사랑 이 세 사랑을 완성해야 됩니다. (19.335. 1968.03.29)
천국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있습니다. 그 마음이 머무는 자리는 어떤 자리냐? 사망의 모든 요소를 내포하고 있는 자리가 아니라 그것을 극복하여 하나의 생명이 파급될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천국은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세상을 이긴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환경적으로 천국이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내 마음이 악하고 그것을 그릴 수 없고, 거기에 동할 수 없는 입장에 있다면 그 천국은 쓸데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을 맞이할 수 있는 터전이 되는 것은 환경이 아니라 나 자신입니다. 나 자신이 문제입니다. 천국을 유지할 수 있는 지주, 지지하는 그 지지점이 어디냐 하면 환경이기에 앞서 내 마음입니다. (46.23-24, 1971.07.18)
천국은 늘 푸른 산하와 넓은 초원지대가 펼쳐져 있으며, 그곳에는 새들이 노래하고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해 있으며 동물들이 정겹게 노닐고 있는 모습입니다. 주변의 공기는 라일락 향기와 같은 냄새로 가득 차 있습니다. 또한 보석보다 더 밝은 광채가 비추어져 있고 수정처럼 투명한 세계가 나타나며, 서 있기만 해도 마음이 시원하고 편안함을 느낍니다. 천국은 깊은 사랑의 감동을 느끼게 되며 자유와 행복과 기쁨이 저절로 느껴지는 세계입니다. 지상생활과 달리 천국은 마음속에 느껴지는 깊은 감동이 지속되는 세계입니다.
천국에는 근심과 걱정과 괴로움이 없이 표정이 아주 밝고 평화로운 모습입니다. 서로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스스로 느껴서 위해주고 사랑해주는 곳입니다. 싸움도 없고, 미움이나 시기,질투, 교만과 같은 타락성도 없습니다. 위해서 사는 참사랑만이 가득 찬 세계입니다.
(흥진님 영계 메시지, 2002.01.01)
2. 성인과 조상의 친교
종교 경전
선한 마음으로 선을 행하는 자들이 환호하며 몸의 질병을 여의었고, 사지에 아무런 결함도 없으며, 불구로부터 자유로운 곳, 천계, 그곳에서 우리가 조상들과 자식들을 바라볼 수 있게 하소서! - 아타르바 베다 6.120.3(힌두교)
하나님과 선지자께 복종하는 자, 그들은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시는 자들이라. 예언자들과 진실한자들, 순교자들 그리고 선을 행하는 의로운 자들과 함께하니, 얼마나 훌륭한 동반자니가! -꾸란 4.69(이슬람)
여러분이 향해 나간 곳은 시온산, 곧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시인 하늘의 예루살렘입니다. 여러분은 수많은 천사들과 하늘에 등록된 장자들의 집회, 곧 그들의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 하나님과 완전하게 된 의인들의 새 영과 새 계약의 중보자이신 예수 앞에 나온 것입니다.
- 히브리서12.22-24(기독교)
네가 죽을 때 너는 네가 사랑한, 이미 죽은 사람과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네가 죽는 날에 늙고 기력이 없었을지라도 너는 다시 젊고 강해질 것이다. 영혼의 땅에서 옥수수는 자라고 그들이 생존시 선했든지 악했든지 간에 모두 행복할 것이다. 그래서 죽음은 두려워할 것이 아니다. - 유마족의 전승(미주 원주민 종교)
(신앙에) 가장 앞서는 자는 (내세에서도) 가장 앞서는 자가 되리라. 이들은 하나님께 가장 가까이 있는 자로서 축복의 천국에서 기거하리라. 그곳에는 옛 선조들은 많으나 후세 사람들은 소수이리라.
그들은 금좌에 앉아 서로 마주보고 기대고 영원한 젊을 가진 소년들이 주위를 돌며, 술잔과 빛나는 주전자와 깨끗한 물이 흐르는 샘에서 뜬 물이 가득 찬 잔들로 시중을 들리라.
그것으로 그들은 두통을 앓지도, 취하지도 않으며, 또한 그들은 취향에 따라 과일을 선택하고, 원하는 종류가 고기를 먹으며, 크고 빛나는 아름다운 눈을 가진 배우자가 함께 하니, 그녀들은 잘 보호된 진주와도 같도다. 이것들이 그들이 행한 것에 대한 보상이라.
- 꾸란 56.10-25(이슬람)
조상들을 위해 소마가 길러지고
어떤 이들은 제사에 쓸 기름을 장만하도다.
그를 떠나게 하라, 벗에게로!
꿀이 그에게로 흐르도다.
고행으로 무적이 된 자들이 벗에게
고행으로 천계에 오른 자들이 벗에게
위대한 영혼의 불을 댕긴 자들에게로
그를 가게 하라!
격렬한 싸움터에서 용감하게 싸웠던 자들,
생명을 바쳐 싸웠던 영웅들의 벗에게,
수천의 선물을 마련하였던 자들에게로,
그를 가게 하라!
천칙을 준행하며 이를 진작시키고,
그 안에서 확고부동했던 태고의 사람들에게,
신령한 불 속에서 위대했던 조상들에게로
야마여! 그를 가게 하라!
시성들과 수천 무리의 우두머리들에게,
태양을 수호하는 자들에게
으뜸가는 고행을 닦았던 성자들에게
고행으로 태어난 자들에게로
야마여! 그를 가게 하라.
-리그 베다 10.154.1-5(힌두교)
말씀 선집
하늘 하게 되면 두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다 그렇습니다. 전부 상대적입니다.
(92.309. 1977.04.24)
천국은 가정생활의 확대이다. (뜻길. P.164)
영계는 사랑의 마음에 취하는 이런 최고의 자리이기 때문에 늙지 않습니다. 우리 어머니도 늙었지만, 언제나 내가 보기에 제일 좋을 때의 모양입니다. (201.103. 1990.03.11)
천국은 어떤 곳입니까? 천국이라는 곳은 사랑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천국은 사랑을 받고 싶은 곳, 받아도 또 받고 싶은 그런 곳입니다. 우리가 ‘좋다’ 하는 한마디가 ‘좋다’ 하는 천 마디가 될 수 있는 곳이 천국이라는 곳입니다.
사랑에 접하게 되면 잠이 오다가도 잠이 어디로 도망갔는지 모르게 도망가고, 들리지 않던 귀가 사랑의 마음에만 접촉하게 되면 들리게 되고, 안 통하는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24시간, 천 년, 만 년 속삭이더라도 말을 계속할 수 있는 사랑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세포나 모든 감각이 100% 이상 움직일 수 있는 곳입니다. (102.160-161. 1978.12.17)
영계에 가면 산 같은 데도 그냥 쓱... 안 통하는 데가 없습니다. 영계의 움직임을 막을 물건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늘의 본성품의 존재성인데 그걸 막게 안 돼 있습니다. 다 통하게 돼 있습니다. 시공을 초월해 있으니까 몇 억 년 전에 있던 사람이 지금도 있습니다. 그 사람들도 다 젊은 사람으로 자기가 원하는 연령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94.133-134. 1989.10.17)
에덴동산에서 하나님 앞에 최고의 기쁨과 영광의 인사가 뭐냐 하면, 하나님과 더불어 사랑하는 것입니다. 만나서 하나님에게 면사포를 쓰고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서 사랑 관계를 맺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일체 될 수 있는 그 자리가 인사하는 자리입니다.
(314.25. 1999.12.30)
천국이란 인간이 타락하지 않고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품에서 성혼을 해서 하나님이 좋아하는 아들딸,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손자들을 맞아 하나님의 사랑을 받다가 그 가정이 모두 함께 들어가는 곳입니다. 자식이 못 들어가고 부모만 들어간다면 그곳은 천국이 아닙니다. 부모를 모시고 온 가족이 들어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주고받을 수 있는 그 세계가 천국입니다. (19.104. 1967.12.31)
천국은 상대적 개념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가정이 전부 들어가야 되고, 자기 종족과 나라가 전부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천국이 건설되는 것입니다. (18.331. 1967.08.13)
그래서 천국은 혼자 가는 곳이 아닙니다.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 전부 함께 가는 곳이 천국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목적으로 본 천국은 그런 곳입니다. 어머니는 지옥에 가서 ‘야! 아무개야 나 좀 살려다오!’ 하는데, 혼자 천국에 있을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가 지옥에 가서 죽겠다고 하는데 혼자 천국에서 ‘야! 좋다!’ 하면서 ‘아버지는 거기 있어도 싸지요’ 하는 곳이 천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인 천국은 부모와 처자와 더불어 가족 전부가 같이 가는 곳입니다. 가정만 가서도 안 됩니다. 친척도 같이 가야 되고, 민족도 같이 가야 됩니다. 나라 전체가 가는 곳이요. 세계 전체가 가는 곳입니다. (15.265. 1965.10.17)
영계에 들어가게 되면 인사가 필요 없습니다. 척 만나게 되면 압니다. 벌써 알아요, 몇 천 년 전의 사람이라는 것을 압니다. 몇 백만 년 전의 사람이라는 것을 압니다. 오늘날 성격 역사가 6천년 이라고 하는데, 그들은 영계를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역사는 몇 백만 년, 몇 천만 년입니다. 그 시대의 우리 조상을 부르면 대번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척 보면 얘기하지 않아도 벌써 알게 돼 있습니다. 자기의 모든 것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마가 넓어야 됩니다.
이마가 넓으면 복 받는 것입니다. 대번에 알게 돼 있습니다. 높여 주어야 할 사람인지 낮추어도 될 사람인지. 그렇기 때문에 인사가 필요 없습니다. 자동적으로 질서가 유지되는 것입니다. 모든 질서는 무엇으로 이루어지느냐? 사랑으로 이루어집니다. 사랑으로 위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인간세계와 같이.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지 않고는 하늘날에 갈 수 없는 것입니다. (208.142-143. 1990.11.17)
3. 천국의 환희
종교경전
천국에 들어가는 이는 풍족한 환경에 있을 것이며 궁핍하지 않으리라. 그의 의복은 닳지 않을 것이며 그의 젊음은 끝이 없으리라. - 무슬림 하디스(이슬람)
정토는 온갖 달콤한 냄새로 가득 차 있으며, 온갖 꽃과 과일이 풍성하며, 보석 나무들로 장엄되어 있으며,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온갖 새들이 날아다닌다. 이 모든 것들은 여래의 신통력으로 만들어졌다. 보석 나무들은 온갖 색깔을 지니며 수백 수천의 다양한 색깔을 지닌다. 그 나무들은 칠보, 즉 금, 은, 유리, 파리, 마노, 거거, 산호의 여러 조합들로 이루어져 있다. ... 이 나무들의 뿌리, 줄기, 가지, 잎. 꽃, 열매는 감촉이 유쾌하며 향기롭다. 그 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릴 때 거기서는 아무리 들어도 지루하지 않은 달콤하고 즐거운 소리가 나온다.
이 정토에는 여러 가지 강들이 흐른다. 그 강둑에는 온갖 향기로운 보석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으며, 이 나무들에는 온갖 꽃들과 잎들과 가지들이 달려 있다. 사람들이 그 강둑에서 천계의 즐거움이 충만한 놀이를 즐기고자 할 때, 그들이 강에 뛰어드는 순간 강물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발목이 잠길 만큼, 무릎이나 엉덩이가 잠길 만큼, 허리나 귀가 잠길 만큼 금방 차 오른다. 만일 사람들이 물이 차가웠으면 하고 바라면 그들을 위해 그것은 금방 차가워지며, 만일 사람들이 물이 더웠으면 하고 바라면 그들을 위해 그것은 금방 더워진다.
만일 그들이 물이 미지근했으면 하고 바라면 그것은 금방 미즈근 해져서 그들의 바람대로 이루어 진다. 그 강들은 최고의 향내를 지닌 물로 가득 차 있으며, 백합, 연꽃, 등 온갖 아름다운 꽃들로 장엄되어 있으며 공작, 참새, 앵무새, 오리, 거위, 왜가리, 두루미, 백조 등의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또한 새떼들이 살고 있는 작음 섬이 있으며 건너기 쉬운 여울이 있다. 바닥에는 전혀 진흙이 없으며 황금 모래로 덮여 있다. 뭇 중생이 무엇이든 바라기만 하며, 만일 그것이 바른 것이라면 모두 이루어진다. -무량수경 15-18(불교)
하나님의 사도가 이르기를 “내가 메카에 있을 때, 집 지붕이 열리고 가브리엘이 들어왔다. 그는 나의 가슴을 열고 잠잠의 물로 나를 씻은 다음 신앙과 지혜로 가득 찬 황금 대야를 가져와 나의 가슴속에 쏟아 부었다. 그리고 가슴을 닫은 후 내 손을 잡아 하늘의 가장 낮은 층으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 당도하자 가브리엘이 문지기에게 ‘문을 열라’고 했다. ‘누구시오’ 하고 문지기가 물었다. ‘가브리엘’이라고 천사가 대답하자 다시 ‘당신과 함께 한 이가 있느냐’고 문지기가 되물었다. ‘그렇다’ ‘무함마드가 곁에 있다’고 가브리엘이 대답했다. 문지기는 ‘그가 명을 받았느냐’고 또 물었다. 천사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문지기가 우리에게 문을 열어주자 우리는 하늘의 최하층에 다다랐다. 그곳에서 갑자기 한 남자를 보았는데, 일부 영혼은 그의 오른편에, 나머지는 왼편에 자리잡고 있엇다. 그는 오른쪽을 볼 때마다 미소지었지만,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자마자 눈물을 흘렸다. 그가 말했다. ‘어서 오시오, 성스러운 예언자여! 성스러운 자손이여.’‘이분은 누구십니까?’하고 가브리엘에게 물었다. 그가 대답하길 ‘이분이 아담이다. 그의 오른편에 있는 영혼들은 지옥으로 떨어지리라. 그래서 그가 오른쪽을 볼 때면 미소를 짓고 왼편을 볼 때면 우는 것이다.’ 하였다.
그러고 나서 가브리엘은 나를 두 번째 하늘로 데리고 가서 문지기에게 ‘열어라’ 하고 말했다. 처음과 같은 질문을 한 후 문이 열렸다. 예언자는 여러 층의 하늘에서 아담 이드리스, 모세, 예수, 아브라함을 발견했다. 그러고 나서 천사는 날개짓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높이까지 나를 데려갔다. 그러고 나서 가브리엘은 나를 경계의 로테나무로 데리고 갔는데, 그곳은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다운 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리고 나는 천국에 들어갔다. 그곳에는 진주로 만든 돔이 있고, 태양은 사향으로 만들어졌다. - 부카리 하디스(이슬람)
그러고 나서 그들은 좁은 길로 나갔고 멀리 가지 않아 밝은 빛이 나타났다. 그때 그들은 그길을 따라 펼쳐진 꽃들의 향기를 맡게 되었다.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과일들이 길가에서 자라고 있었고 각종 새들이 공중에서 그들 위로 날고 있었다. 가장 기이하고아름다운 것이 각각의 손에 있었다. 이 모든 것이 하늘 길에 있었다. 에니아이에훅.
그들은 여행을 계속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서 그들은 휴식처에 도착했다. 그때 메신저들이 말했다. “이곳은 그 샘이라고 불린다. 그리고 그것은 휴식의 공간이다.” 그때 보라, 그는 그 샘을 보았으며 그는 그렇게 아름답고 맑은 샘물을 결코 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 4존재들이 “이곳은 원기회복의 장소이다.”라고 말했다. 4존재 중의 하나가 자신의 품에서 병을 꺼내었다. 꺼낸 것처럼 보였고 실제로 그랬다. 그리고 그것을 샘에 담갔다. 그때 그는 “너는 먼저 마셔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그것을 들어올렸다. 그러나 그가 그것을 보았을 때 그는 그것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나는 이것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이렇게 말했을 때, 그 메신저들은 서로 바라보고서 미소를 지었다. 그 중 하나가 “진실로 그것은 충분하다. 그것이 부족하다면, 아직도 샘이 있으니까 그 병에 다시 채울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모두 물을 떠서 마셨다. 그리고 모두가 원했던 모든 물은 그 병에 있었다. 에니아이에훅.
그들은 여정을 진행했다. 그리고 단지 짧은 거리를 갔을 때 그들은 무엇이 그들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오래지 않아 그들은 그것과 만났다. 그는 그것이 한 마리의 개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가까이에서 보았을 때, 그 개는 꼬리를 흔들기 시작했고, 그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그때 그는 그 동물이 신년제의 희생물로 꾸몄을 때 바로 그 모습을 한 자기 개라는 것을 알았다. 그때 4존재가 “이것은 창조주에게 바친 우리의 감사 제물의 가치를 입증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그들은 말했다. 에니아이에훅.
그들은 다시 다시 여행을 떠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휴식처에 도착했다. 그들 앞 멀리서 한 남자가 나타나 다가왔다. 그는 곧 더 가까이 왔다. 그때 그는 그 남자가 다른 두 사람을 양쪽에 대동하여 인솔하고 있음을 보았다. 그가 보니, 한 사람은 가이안 타카의 딸이었다. 그 소녀는 체구가 큰 아이로 보였다. 그녀와 함께 있는 어리아이는 가니오 다이이오 자신의 아들이었다. 그 아들과 딸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인사를 했다. 그들이 우호적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낯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은 알 수 있었다. 더구나 네 번재 사람이 그들 모두를 인솔하고 있었다. 에니아이에훅.
이제 그 사람은 “사람이 죽었을 때 더 낮은 세계의 사람들이 여기에 온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나는 나와 같이 그들을 데려왔다.”라고 이야기 했다.
- 핸섬 레이크의 법전 112-116(미주 원주민 종교)
천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곳에서 먹고 마실 것이나 침을 뱉거나 용변을 보거나 감기로 고생하지 않으리라. - 무슬림 하디스(이슬람)
말씀 선집
저 나라의 생활은 어떠합니까? 먹을 것 걱정 없습니다. 살 것 걱정 없습니다. 입을 것 걱정 없습니다. 자기의 심령상태대로 원하는 모든 것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저 나라에서도 먹습니다. 저 나라에서도 자기를 만져 보면 핏줄이, 맥박이 뛰는 것을 다 압니다. 영적인 몸이지만 육신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먹고 싶다고 하면 대번에 이루어집니다. 자기 기준에서 욕구하는 식물이라든가 먹을 것을 먹고 싶다고 생각하면 대번에 나타납니다. 그것이 어디서 오겠습니까? 근원 세계를 동원할 수 있는 능동적 자주성을 행사할 수 있는 주체적 능동권을 가진 것이 무엇입니까? 권력도 아니요, 지식도, 아니요, 돈 가진 세력도 압니다.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높다 해도 ‘하나님!’ 하고 사랑의 마음으로 부르면 대번에 ‘오냐’ 하고 자기 마음속에서 대답합니다. ‘하나님 어디 계시오’ 하면 ‘어디 있기는 어디 있어 내 마음 근본에 있지’하고 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본래 근본 아닙니까? 저 마음의 근본 뿌리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루 저녁에 연회가 몇 십만 번, 몇 백만 번이라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사랑에 취해서 직감으로 느끼는 것을 실현하기 위해 명령하면 그것이 그냥 그대로 벌어지는 것입니다. (194.42. 1989.10.15)
이제는 개도 천국으로, 모든 만물도 천국으로 갈 수 있습니다. 주인이 가는 곳에는 어디든지 따라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78.337. 1975.06.10)
저 나라에 빵 공장이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코카 콜라나 주스를 만드는 공장이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거기에 자동차를 만드는 공장이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저 나라에 가서 ‘나, 좋은 차를 타고 다닌다’ 하면서 이러고 다닐 것입니까? 여기서는 벤츠를 타고 다니고 뭐 어떻고 어떻다고 자랑하고 하지만 말입니다. 거기선, 그것이 다 필요 없습니다.
저 세계에서는 누구든지 상상만으로도 ‘나, 다이아몬드차가 필요하다’ 하면 그것이 쓱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것을 안 타고도 1초 동안에 수십억만리, 수십억 광년의 거리를 갈 수 있습니다. 차가 뭐 필요하겠습니까? 사랑하는 마음, 참사랑의 마음만 있으면 됩니다.
‘나는 몇 억만 년 전 이런 타입의 미인이 보고 싶다.’고 할 때 거기에 100퍼센트 그대로 들어맞는 사람이 없다고 하더라도 100퍼센트의 모양을 갖추어 가지고 나타나는 것입니다. 참사랑을 중심삼고 모든 것이 상상으로 가능한 곳입니다. 그것이 주류의 관념입니다. 그 관념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합니다. (207.94-95 1990.11.01)
하나님이 창조한 이 거대한 우주! 그곳에는 자동차도 없고 음식도 없습니다. 우리는 영계에서 마치 창조주이신 하나님같이 온갖 종류의 것들을 참사랑의 개념을 중심삼고 창출해 낼 수 있듯이 사랑을 중심삼고 원래의 힘을 발휘하여 모든 거을 만들 수 있습니다.
(217.293. 1991.06.02)
영계에 가면 소변보겠습니까? 안 보겠습니까? 이 다음에 가보십시오. 나는 소변 본다고 하는데 안 본다고 하는 사람 가보십시오. 그러면 소변보다 더 큰 것 하겠습니까? 안하겠습니까? 다합니다. 다 하지만 즉각적으로 원소로 돌아갑니다. 원소를 압니까? 우주의 근본 원소가 107개 라고 하는데, 그 원소로 돌아갑니다. 그러므로 청소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손짓을 하게 되면 깨끗이 본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212.30. 1991.01.01)
천사
천사들과 영적 은혜를 베푸는 자들은 모든 종교들에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그들은 여러 신들, 데와들, 카미, 동물이나 산들의 영들(샤머니즘), 또는 옥황상제 같은 고관(중국)들이나 불교의 보살들로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 지상에서 훌륭하게 살다가 신격화 되어서 천사의 임무가 부여된 자들도 있다. 그럼에도 유일신론 신앙 전통에서 이와 같은 영적 은혜를 베푸는 자들은 아무리 높이 고양되더라도 유일한 궁극적 실재에 종속되는 종으로 간주된다.
여러 종교전통에서 이 은혜로운 영들은 인간세계에 축복을 베풀고 인간이 해를 입지 않게 보호한다. 가브리엘 천사가 무함마드와 성모 마리아게게 말했던 것처럼, 천사로 오는 자들은 하나님의 가르침들을 전달한다. 그래서 천사들은 하나님에게 봉사하고 하나님의 자녀인 인간을 돕는 ‘하인 영’의 역할을 한다.
천사들은 능력을 지니며, 따라서 흔히 숭배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유대교, 이슬람, 기독교 전통 안에는 인간이 천사보다 우월하다는 가르침들이 있다. 이런 전통에 따라서 문선명 선생은 천사들이 인간을 창조한 하나님의 목적이 실현될 때 까지 창조의 모든 단계에서 하나님을 도왔다고 가르친다.
하나님은 아담과 이브를 교육하고 돕기위해 에덴동산에 천사들을 두었다. 그들은 어린아이에서 성인으로 성숙하여 창조 이상을 실현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천사들 중 우두머리는 루시퍼였지만 타락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인간타락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었다.(제 6장 ‘악마와 그 활동’ 참조)
이 일로 인해, 인간이 천사들을 심판하고 그들의 상실된 자격을 회복해야 하는 날이 아직까지 남아있다.
1. 천사의 정체와 사명
종교 경전
천사를 시켜 명령을 전하시고 번갯불에게 심부름을 시키시며. 시편 104.4(기독교)
그분은 진흙으로 도자기를 만들 듯 인간을 창조하시고 연기 없는 불로 진(정령)을 창조하셨느니라. 꾸란 55.14-15 (이슬람)
천사들은 모두 구원의 상속자가 될 사람들으 섬기도록 보내심을 받은 영들이 아닙니까?
히브리서 1.14(기독교)
천사들은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고 땅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용서를 구하노라.
꾸란 42.5(이슬람)
‘우리의 주는 하나님이시오.’라고 말하고 올바른 길을 걷는 자들에게는 천사들이 내려와 말하길 ‘두려워 말라. 슬퍼하지 말라. 너희에게 약속된 낙원 안에서 기뻐하라. 우리는 이 세상과 저 세상에서 너희의 친구이니라. 그곳에서는 너의 영혼들이 갖고 싶으것 구하는 것 모두를 얻으리라.’ 꾸란 41.30-31(이슬람)
주께서 너를 두고 천사들을 명하여 너 가는 길마다 지키게 하셨으니, 행여 너 돌부리에 발을 다칠세라. 천사들이 손으로 너를 떠받고 가리라. 시편 91.11-12(기독교)
나(샅만타브다라 보살)는 모든 악한 세계에 있는 존재들의 고통을 덜어주며, 또한 그들에게 행복을 줍니다. 나는 억겁의 세월을 통해 시방세계에서 계속 그렇게 할 것입니다. 일체중생의 유익함이 영원하며 동시에 어디에나 존재합니다. 화엄경39(불교)
모든 악한 것을 행하기를 그만두라. 모든 선한 행위를 하라. 그러면 그대는 악의 별의 영향력으로부터 영원히 놓여나게 될 것이며, 항상 졶은 수호 천사에 의해서 둘러싸여져 있게 될 것이다. 음즐문(도교)
헌 남자가 대로를 걸어갈 때, 무리의 천사가 그 앞에 나타나 다음과 같이 외쳤다. “거룩한 분의 형사잉 거할 길을 열어라.” 시편 미드라시 17.8(유대교)
그것은 내린 계시가 틀림없너라.
강한 권능을 가지신 분이 그를 가르치셨으며
그분은 힘을 가지신 유일한 분이시니라. 그것을 나타내어 보이셨노라.
지평선 가장 높은 곳에, 그리고 내려와 가까이 다가왔노라.
활 두 개의 거리보다 더 가까이 다가와 그분의 종에게 계시를 내렸노라.
꾸란 53.4-10(이슬람)
여섯 달 만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께로부터 갈릴리 지방의 나사렛 동네로 보내심을 받아서, 다윗 가문에 속한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로 갔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천사가 안으로 들어가서 마리에게 말하였다. “은혜를 입은 사람아,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마리아는 이말을 듣고 몹시 놀라 ‘이 인사말이 대체 무슨뜻일까?’ 생각하였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 두려워하지 말라. 마리아야, 너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 보아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니, 너는 그의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누가복음 1.26-31(기독교)
문창제군(文昌帝君)이 말했다. “17세대 동안 나는 고위 정치가로서 화현(化現)해 왔고, 나는 결코 나의 백성들을 억압하지 않았고 부하들을 학대 하지도 않았다. 나는 불운 속에서 그들을 도왔다. 나는 그들을 가난으로부터 구제했다. 나는 고아들을 불쌍히 여겼다. 나는 그들의 죄를 용서했다. 나는 천상(天上)과 조화되는 비밀스러운 덕을 널리 실천했다. 내가 내 마음을 유지하는 것처럼 그대가 그대의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면, 하늘은 틀림없이 그대에게 축복을 내려줄 것이다. 음즐문(도교)
말씀선집
천사세계는 이 우주가, 즉 피조세계가 창조되기 전에 지음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천사세계를 지은 다음 천사의 협조를 받아 만물이라는 물질을 통해 가지고 인간을 태어나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천사, 물질을 통해 가지고 태어난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이 원하는 목적, 하나님이 창조하신 목적, 천사가 창조에 협조한 목적, 만물이 인간 앞에 투입된 목적, 인간이 생겨난 목적, 이것은 다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전체가 종합돼 가지고 넷이 다 좋다고 해야 됩니다. 하나님도 좋고, 천사도 좋고, 만물도 좋고, 인간도 좋고, 이런 좋을 수 있는 공통적인 내용이 제시되어야 합니다. (83.155 1976.02.08)
모든 존재는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되었다. 따라서 천사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천사세계를 다른 어떤 피조물 보다도 먼저 창조하셨다. 창세기 1장 26절에 기록된 천지창조의 기록을 보면, 하나님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스스로 복수로 부르셨는데, 이것은 지금까지의 많은 신학자들의 해석대로 삼위신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인간보다도 먼저 창조되어 있었던 천사들을 놓고, 그들을 포함시킨 입장에서 하신 말씀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피조세계의 창조와 그의 경륜을 위하여 먼저 천사를 사환으로 창조하셨다.(히1:14) 천사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중대한 축복의 말씀을 전하였으며(마 1:20,눅 1:31),옥중에서 쇠사슬에 묶여 있는 베드로를 풀어 성 밖으로 인도 하였던 것이다.(행 12:7-10) 이밖에도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천사가 활동한 예는 성서에서 무수히 찾아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22장 9절에는 천사가 자기 자신을 ‘종’이라고 하였고, 또 히브리서 1장 14절에는 천사를 ‘부리는 영’이라고 기록하여 놓았다. 그리고 천사는 하나님에게 송영을 드리는 존재로서 창조 되었다는 증거를 성서 가운데서 많이 찾아 볼 수 있는 것이다.(창1:28)
인간은 천사도 주관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6장3절을 보면, 인간에게 천사를 심판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영계를 통하는 모든 사람들은 수많은 천사들이 낙원에 있는 성도들을 옹위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이것도 역시 천사가 인간에 대하여 시종적(侍從的)인 관계를 말해주는 하나의 좋은 예라 하겠다. (원리강론, 타락론 2.1)
천사는 어떤 존재입니까? 종의 입장에서 하나님 앞에 충성의 도리를 다하고 아담 해와의 울타리가 되어 주어야 하는 존재입니다. 만세토록 하늘 세계에 영광된 분위기를 만들어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아담 해와와 함께 행복하게 살아야 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천사장은 아담 해와를 위해서 창조된 것입니다. 아담 해와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천사를 창조한 목적은 아담 해와를 위해서였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천사장이 창조된 목적인 것입니다. (15.239 1965.10.17)
지금까지 영계에서 천사세계에 해당하는 것인 누구냐? 오늘날 지상에 왔다 갔던 선한 영들은 천사 사명권 내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건 왜 그러냐 하면 아담을 만들기 전에 천사를 만들었던 것과 마찬가지의 입장이기 때문에 땅위에 아담 완성을 이루기 전의 선한 사람들을 천사의 입장에 돌아갈 수 있다는 조건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76.324 1975.03.15)
남자는 무엇이냐면, 천사장입니다. 천사장인데, 하늘을 반대해서 타락시킨 천사장이 아니라 복귀된 천사장입니다. 에덴에서 아담을 절대 협조하여 보호 육성해서 가정 이상을 이루어 하늘나라로 들어갈 수 있게 책임져야 하는 것이 천사의 사명이었습니다. 이러한 천사의 사명을 못했기 때문에, 이것이 전부 깡패가 된 것입니다. 지옥 왕이 돼 버렸습니다.
(281.313 1997..03.09)
그렇기 때문에 천사는 앞으로 올 메시아가 통치할 그 나라 사람들을 위해서 지상에 와서 희생하는 것입니다. 천사들이 땀을 흘려 가지고 복귀하는 것입니다. 천사들이 땀을 흘려 가지고 복귀하는 것입니다. 영계는 천사세계이며 육계는 아담세계이지요? 타락권의 확대된 세계가 사탄권 내에 있으니 그것을 빼내오는 일을 누가 해야 되느냐? 영육의 실체 천사들이 해야 합니다. 마귀의 세계가 돼 있기 때문에 영계와 천사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실체 천사세계를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62.247 1972.02.25)
2. 천사의 싸움
종교경전
그때에 하늘에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미가엘과 미가엘의 천사들은 용과 맞서서 싸웠습니다. 용과 용의 부하들이 이에 맞서서 싸웠지만, 댕해내지 못하였으므로 하늘에서는 더 이상 발 붙일 자리가 없었습니다. 요한계시록 12.7-8(기독교)
말하라 나에게 계시가 내려왔노라. 한 무리의 진(정령)이 듣고 말하길 우리는 진실로 놀라운 꾸란의 말씀을 들었노라
이것은 올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것인, 우리는 그것을 믿으며 그 어느 것도 우리의 주님과 대등하게 견주지 않으리라.
우리의 주님은 숭고한 분이시며 배우자의 자식들도 취하지 않으셨노라.
우리들 중에 어리석은 자가 하나님에 대해 어처구니 없는 소문을 내고 있나니
우리는 인간과 진(정령)은 하나님에 대해서 거짓말을 하지 않노라고 생각했었는데
인간 가운데 어떤 이들은 진의 어던 자들에게 보호 요청하는 자들이 있어 진의 오만함을 증가 시키고 있노라.
그들은 그대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그 누구도 부활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노라. 우리가 하늘에 오르려 했을 때 우리는 하늘에 강력한 파수꾼과 빛나는 유성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을 알았노라.
우리는 그곳에 자리 잡고 앉아 엿들으려 하였으나 그렇게 엿들으려 하는 자는 빛나는 유성이 그를 기다리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노라.
우리는 주님께서 땅 위에 사는 자들에게 재난을 내리고자 하시는지 아니면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시려고 하시는지 알지 못하노라.
우리들 가운데는 올바른 자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도 있어 여러 길로 갈라져 있노라. 그리고 우리는 지상에서 하나님의 벌을 피할 수도 그로부터 도망 갈 수도 없다고 생각했노라.
진실로 우리는 인도하시는 말씀을 들으면 곧 그것을 믿었노라. 주님을 믿는 자는 재산을 잃거나 죄에 대한 처벌의 증가에 대해 두려움이 없노라.
우리들 가운데는 귀의하는자(무슬림)들도 있고 또, 어떤 자들은 올바른 길을 벗어난 자들도 있노라. 귀의한 자들은 바른 길을 모색하노라.
올바른 길을 벗어난 자들은 지옥의 땔감이 되리라. 꾸란 72.1-5(이슬람)
말씀선집
천사장이 타락하여 아담 해와 이 인류 세계를 이렇게 망쳤기 때문에 천사가 그 일을 대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천사세계가 그 일을 대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사세계가 사탄과 대결하고 있습니다. 악한 사탄과 선한 천사가 대결하는 것입니다. 그 싸움에서 선한 천사편이 승리하고 난 후 에야 일보 전진이 있습니다. (109.18. 1980.10.26)
하나님의 본연의 이상세계, 타락이 없었던 본연의 인간이 갈 수 있는 이상적 선권을 향해서 가는 데 있어서 선한 영들은 그곳으로 전진하려고 하고 악한 영들은 그곳을 막고 있다는 것입니다. 악한 영계하고 악한 세계라는 것은 무시로 통합니다. 무시로 연락됩니다. 선한 영은 악한 세계에서 대립되어 가지고 반대 받는 자리에서 살다 간 영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종교를 믿고 간 영인들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134.10. 1985.01.01)
싸움을 하면 반드시 선한 편과 악한 편으로 나뉘어 싸웁니다. 선한 편은 하나님이 조정하고 악한 편은 사탄이 조정하지만 언제나 선한 편이 이겨 나옵니다. 선한 편이 이겨 나오는 것입니다. 결국 이 싸움의 역사는 타락한 이후 인간의 전쟁역사 이지만 그 배후에서 악신과 선신의 전쟁 역사로 엮어져 왔다는 것을 인류는 몰랐던 것입니다. (161.13 1987.01.01)
3. 천사에 대한 인간의 우월성
종교경전
우리는 천사들도 심판 하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지 못합니까? 고린도전서6.3(기독교)
보라. 그대 주님께서 천사들에게 “내가 지상에 대리자를 두리라.” 하시니, 이에 천사들이 말하기를 “주님께서는 그곳에서 혼란을 일으키고 살상할 자를 두려고 하시나이까? 우리는 당신을 찬미하고 당신의 거룩한 이름을 영광되게 하나이다.” 이에 그분이 말씀하시길 “실로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것을 모두 알고 있도다.”
그리하여 그분은 아담에게 만물의 이름을 다 가르쳐 주고 난 후 천사들 앞에 그것들을 내놓으시며 말씀하시길, “만일 너희가 옳다면 너희가 이들의 속성을 말해 보거라.” 하시니라.
그들이 말하기를 “당신께 영광이 있으소서. 저희는 당신이 가르쳐 준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라니, 실로 당신은 진지하시고 지례로 충만하시도다.”
하나님께서 “오, 아담아. 그들에게 이들의 이름을 일러주라.” 하셨다. 그가 천사들에게 일러 주니, 하나님께서 천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천지간의 비밀과 너희가 드러내거나 감추고 있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너희에게 말하지 않았느냐?” 꾸란2.30-33(이슬람)
모세가 높이 올라갔을 때,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수호천사가 말하였다. “우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우리들 사이에 있는 여인이 낳은 한 인간이 있음은 어인 일이옵니까?” 하나님께서 대답하셨다. “그는 율법을 받으러 왔다.” 그러자 천사들이 대답하였다. “지극히 비밀스런 보배, 하나님 당신께서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에 974세대 동안 숨겨오셨던 그 비밀을 인간에게 주시려 하십니까! 당신이 마음속에 담고 계시는 사람이란 무엇입니까? 그리고 당신을 방문한 이 사람의 아들은 어떤 존재 입니까? 오, 주 하나님, 당신의 뛰어나신 이름음 온 땅에 넘치나이다.! 누가 당신의 영광(율법)을 하늘에다 달아놓았습니까!”
거룩하신 분께서 모세에게 “네가 대답해 주어라.” 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모세가 하나님 앞에서 천사들에게 대답하였다. “우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당신께서 저에게 주신 율법, 그 율법 속에는 무엇이 적혀 있었습니까?”
“나는 너희 하나님, 주 여호와다. 내가 너희를 애집트 땅에서부터 이끌어 내었다.”(출애굽기 20:2)
모세가 천사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들이 이집트로 가서 파라오의 노예가 되었습니까? 그렇다면 마땅히 율법은 당신들의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또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율법에는 무엇이 기록되어 있습니까? ‘너희는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출애굽기20:3)라고 되어있습니다. 당신들은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 속에서 살고 있습니까?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출애굽기 20:8)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휴식을 필요로 하는 때에 일을 한다고 해서 능률이 오르겠습니까? … 또 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살인 하지 못한다. 간음하지 못한다. 도둑질 하지 못한다’(출애굽기 20:13-15)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무슨 질투가 있습니까? 악마가 여러분 속에서 함께 어울릴 수 있습니까?”
그러자 곧바로 천사들은 거룩하신 하나님께 자신들의 패배를 인정하였다. 그래서 “누가 당신의 영광을 하늘에 달아놓았습니까?” 라는 구절은 없지만 “여호와, 우리의 주여! 주의 이름이 온세상에 어찌 그리 크십니까!”(시편8:9)라는 구절은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탈무드, 샤바트 88b-89a(유대교)
말씀 선집
천사는 하나님을 섬기는 신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있게 되면 아들에게 지배 받아야 됩니다. 천사를 지배해야 할 것이 인간의 권위입니다. (84.98, 1976.02.22)
미완성기에 있었던 인간에게 이러한 계명을 주셨던 것은, 단순히 그들로 하여금 타락하지 않도록 하시기 위하여서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그 밖에 또 인간이 그 자신의 책임분담으로서, 그 말씀을 믿고 스스로 완성함으로써, 하나님의 창조성을 닮게 하여 만물에 대한 주관성을 가지게 하시기 위함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 계명을 천사장에게 주시지 않고 인간에게 주셨던 것은, 하나님의 자녀의 입장에 천사까지도 주관해야 할 인간의 창조원리적인 자격과 위신을 세워주기 위함이었다.
(원리강론, 타락론 3.2)
하늘과 땅의 결합
인간은 영인체와 육신으로 창조되었다. 이로써 우리는 영계와 육계 양쪽에 설 수 있다. 이러한 특별한 자질로 우리는 두 세계를 중재할 수 있다. 우리는 영계를 공포의 대상으로 대하는 대신, 두 세계 모두를 지배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성자와 현인들은 정의로운 동기를 갖고 인간들을 돕기 위해, 하늘의 주인(인간)들을 권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물의 주인이자 하나님의 대신자라는 인간의 위상 덕택에 평범한 신자일지라도 이러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원주민들은 이것을 오래 전부터 알았다. 의식과 춤을 통해 그들은 두 세계의 살아 있는 관계를 실감한다. 집중적 영적 훈련을 통해서 힌두교 요가 수행자와 여러 전통의 고행자들은 영으로 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고, 불가사의한 묘기를 보인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과 땅을 지배할 수 있음을 알고 있으며, 그의 죽음에 대한 승리는 구원의 기반이 되었다. 문선명 선생은 하나님의 왕국이 영적 존재세계와 물리적 존재세계가 광대한 통일을 통해 구현될 것이라고 가르친다.
종교 경전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하나님의 신비한 뜻을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경륜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통일시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1.9-10 (기독교)
그의 움직임은 하늘과 같고 그의 고요함은 땅과 같다. 하나의 마음이 안정되면 천하의 왕이 된다. 그 몸은 손상되지 않고 그 정신은 피폐함이 없다. 하나의 마음이 안정되어 만물이 복종한다. 텅 빈 마음의 고요함을 천지에 밀고 나가 만물에 두루 통하게 함을 말한 것이다. 이것을 일러서 하늘의 즐거움이라고 한다. 하늘의 즐거움이란 성인의 마음으로 천하를 기르는 것이다. - 장자 13 (도교)
하늘이 내게 은총을 내리고,
땅이 내게 복을 준다.
위로는 하늘에서 영들이 나로 인해 춤을 춘다.
땅에서는 사람들이 나로 말미암아 춤을 춘다.
- 크리족의 원무가 (미주 원주민 종교)
나라가 임하게 하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시옵소서.
- 마타복음6.10 (기독교)
고행자는 불을 갈무리하며 물을 간직한다.
고행자는 땅과 하늘을 지탱한다.
고행자는 욕망의 모든 장면들을 안다.
고행자는 빛이라 불린다.
바람 허리옷을 두른 성자는
황색 염의를 입는다.
그들은 신들이 이전에 갔던
바람의 길을 따라간다.
“성자의 황홀경에서
우리는 바람 위로 떠올랐으며
단지 우리의 이 몸들은 그대 필멸자들이
항상 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네.”
그 성자가 여러 형태들을 보는 동안 공중을 날며,
그는 각각의 신
선행을 하는 동료 같은 이라네.
- 리그 베다 10.136.1-4 (힌두교)
오직 천하의 지극한 정성됨만이 그 성을 다 발현 시킬 수 있다. 일단 그 성을 다 발현시킬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의 성을 다 발현시킬 수 있다. 만약 다른 사람의 성을 다 발현시킬 수 있다면 만물의 성을 다 발현시킬 수 있다. 만물의 성을 다 발현 시킬 수 있다면 천지의 변화와 생성을 도울 수 있다면 천지와 함께 하나가 될 수 있다. -중용 22(도교)
하나에 통하면 모든 일이 다 잘되고, 무엇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 없으면 귀신도 굴복한다.
-장자 12(도교)
이 자녀들은 피와 살을 가진 사람들이기에, 그도 역시 피와 살을 가지셨습니다. 그것은 그가 죽음을 겪으시고서, 죽음의 세력을 쥐고 있는 자 곧 악마를 멸하시고, 또 일생 동안 죽음의 공포 때문에 종노릇 하는 사람들을 해방하시려고 한 것입니다.
- 히브리서2.14-15 (기독교)
말씀 선집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영계에서만 살도록 지으신 것이 아니라 이 땅위에서 실체를 갖추고 영과 육이 조화를 이루는 생활을 하도록 지으셨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영이 영으로 계신 하나님과 통하여 영과 육이 화합할 수 있게 만드신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의 법도입니다.
환생
환생에 대한 믿음은 불교,힌두교, 자이나교 등 인도에서 발생한 종교에 공통된다. 이것은 개별 영혼이 한 생의 삶에서다른 생의 삶으로 옮겨가며, 각각의 삶은 전생의 행위들에 의해 조건지어진다는 믿음이다. 재산과 행운,사회적 지위, 유산상속 등이 사람마다 차이가 나는 것은 전생의 행위에 따른 결과일 뿐이다. 우주고 순환하는 것처럼, 윤회의 수레바퀴는 우리 각자가 끊임없이 죽고 살기를 반복 하면서 때로는 인간으로, 때로는 동물로 삼자어 곤충으로 다시 태어나면서, 일어나고 사라지게 한다.
한편, 기독교는 대체로 환생을 부정하며, 하나님은 모두 사람에게 한 번의 생애 동안 구원의 기회를 준다고 주장한다. 붓다도 악행을 일삼는 죄인이 두 번째 기회를 무난하게 얻을 수 있다고 위안함으로써 환생에 쉽게 기대려는 것을 비판한다.
환생 교의에 따르면 영혼들은 오직 인간으로 환생했을 때 완성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지닌다. 그래서 영혼들은 잘못을 바로잡고 영적 완성의 길을 마련하려는 희망에서 환생할 수 있는 인간의 육신을 원한다. 문선명 선생도 영혼들이 오직 육신을 입었을 때에만 성장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육신에서 다른 육신으로 환생하는 영혼들 대신에 문 선생님은 지상의 사람들과 협조하기 위해 재림하는 영혼들의 과정을 묘사하며, 이 과정을 ‘재림부활’이라고 부른다. 영혼들은 자신과 유사한 어려움에 처한 지상의 사람들을 협조함으로써 자신이 완성하지 못한 임무를 해결할 수 있으며, 그때 비로소 해방되어 더 높은 차원으로 올라간다.
가끔 이것은 지상의 사람들에게 고통스럽고 심지어 벌을 받는 것 같은 만남이 될 수도 있는데, 그들은 결코 상상할 수 없는 고통스런 조상들의 경험들을 다루어야 한다. 환생을 믿는 사람들은 단지 그 영혼들의 생각들을 잘못 이해하여 마치 그 생각들이 전생에 자신들의 행위인 것처럼 경험한다. 어떤 가르침이 참이냐의 문제와 관계없이, 자신을 먼 과거로부터 무한한 미래에 이르기까지 타자들의 삶과 얽혀 있다고 보는 것은 우리를 겸손과 인내의 자세로 인도한다.
종교경전
그의 행위(업)들에 따라서 체화된 자는 계속하여 여러 상황의 형태들을 띤다. 체화된 자는 자신의 속성들에 따라서 거칠고 미세한 수많은 형태들을 선택한다. 그 형태들과 그의 결합의 각 후속 원인은 그의 행위들의 속성과 자신 때문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스베타스바타라 우파니샤드 5.11-12(흰두교)
세계에는 전에 행한 다양한 행동들에 따라서 이생에서 다양한 가문과 계급으로 태어난 여러 유형의 존재들이 살고 있다. 때로는 그들은신들의 세계로 가며 또한 때로는 지옥으로 간다. 때로는 자신들의 행위에 따라서 악마들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그들은 전사가 되기도 하며 아웃카스트나 불촉천민, 또는 벌레나 나방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거듭하여 환생하는, 악행을일삼은 존재들은 환생을 역겨워하지 않으며, 그들은 마치 전사들 처럼 삶의 전투를 지겨워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악행의 영향으로 미혹되고, 고통을 당하며, 그들은 인간 이외의 생을 받으며 불행을 당한다.
그러나 우연히 업의 지멸에 의해 살아 있는 존재들은 때가 되면 청정한 상태에 도달하여 사람으로 태어날 것이다.
웃타라디야야나 수트라 3.1-7(자이나교)
“종종 나는 높은 가문에 태어났으며, 또한 종종낮은 가문에 태어났다. 나는 비천하지도 않고 고귀하지도 않으며, 또한 나는 사회적인 높은 지위를 원하지도 않는다.” 이와 같이 생각할 때, 누가 자신의 가문이나 그의 영광에 대해 자랑할 것이며, 또는 그와 같은 것을 원하겠는가?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자신의 운명에 대해 기뻐하거나 노여워하지 않아야 한다. 그는 모든 중생의 행복을 알고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한다. 조심스럽게 처신하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해야 한다. ““나는 항상 소경, 귀머거리, 벙어리를 경험할 것이며, 애꾸눈이며 곱사등이며, 눈멀고, 검둥이요 흰둥이이며, 또한 모든 피부색의사람일 것이다. 나의 부주의 때문에, 나는 여러 생을 받아 태어나며 온갖 느낌을 경험한다.
아차랑가 수트라 2.50-55(자이나교 )
나는 말한다. 애꾸눈 거북이가 백년마다 한번씩 바다 위로 떠올라서 구멍 하나 뚫린 멍에에 목을 끼워 넣는 것이, 한번 타락한 어리석은 자가 사람의 지위를 얻는 것보다 더 빠를 것이다.
상윳타 니카야 5.455(불교)
말씀선집
우주는 원인 없이 생겨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게 자연발생적이다.’ 라고 말하지만 자연이 그냥 나오지 않았습니다. 자연 가운데는 그 원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연 가운데는 방향성이 있습니다. 또, 자연 가운데는 결과를 추구하면서 순회하고 운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방향성을 반드시 가지고 운동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합적인 방향성이 결집돼 가지고 하나의 완성된 물건으로서 발전되었고, 그런 결과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주가 돌아가는 운세이므로 돌아간다고 하고 역사도 발전하여 돌아간다고 말합니다. 춘하추동도 돌아간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보게 된다면, 진화하는 모든 단계는 왜 돌아가지 않느냐? 왜 발전만 해야 되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순환하는 세계를 두고 볼 때, 여기 윤회설 같은 것도 나오지 않았나 봅니다. 사람이 동물로도 돌아가고 나무로도 돌아가고 , 무엇으로도 돌아간다고 보는 그런 관도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94.11-12, 1977.06.19)
오늘날 인간세계에 살고 있는 여러분들은 인간세계를 중심삼고 영적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어느시대나 어떤 때나 종교인은 물론이고 그 외의 사람들도 영계의 인연을 따라서 영계와 혼합된 생활권에서 살고 있는 것은 역사적 실증입니다. 역사과정을 통해서나 그렇게 생활해 나왔다는 사실은 우리가 종교를 믿지 않더라도 꿈을 통해서라든가 여러 가지 신비로운 체험을 통해서 알고 있는 것입니다.(131.167, 1984.05.01)
왜 재림해야 되느냐 하면, 땅에서 맺혔기 때문에 땅에서 풀어야 됩니다. 불교 같은 데서는 이런 현상을 윤회설 이라고 합니다. 누가 재림했다. 공자가왔다, 석가가 왔다 하는 것은 한 순간의 일입니다. 그 사람이석가가 아닙니다. 재림해서 어떤 분야의 책임을 그 사람을 통해서 이루려고 할 때 그런 현상이벌어집니다. 그래서 이만큼 오라갔다면, 또 여기서 더 올라가려면 다른 선지자를 통해서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91.276-277, 1977.02.27)
영계에 있는 영인들은 지상의 인간을 통해 가지고 자신이 혜택받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영인들의 요구입니다. 타락하지 않은 본래의 사람은 천사세계와 우주를 주관할 수 있는 가치적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런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몇 단계 밑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다시 그 자리까지 올라가야 됩니다. 올라가는 데도 한꺼번에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단계를 거쳐 올라가야 됩니다. 단계를 거쳐 가지고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천주까지 복귀해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본연의 세계를 찾아가야 됩니다. 그런데 인간이 이 세계를 찾아가는 데는 한꺼번에 올라갈 길이 없기 때문에 한 단계 한 단계를 개척하면서 개인에서 가정으로, 가정에서 종족으로, 종족에서 민족으로, 이렇게 단계를 거쳐 나가야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두고 보면 구약시대, 즉 개인을 구할 수 있는 개인적인 섭리시대 이전에 죽은 영인(靈入)들은 그 시대에 들어가서 혜택을 받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단계를 올라가기 위해서는, 올라가서 한 단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탕감이 벌어집니다. 여기에는 가인 아벨의 경우와 같은 탕감역사가 반드시 벌어집니다.
다시 말하면 갑이라는 영인이 이 시대를 거쳐 나오면서 여기까지 협조해 왔더라도 한 단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그냥 못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탕감기간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루 이틀에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때는 원리적인 수, 즉 7년이라든가 40년, 70년 혹은 몇 세기를 거쳐가는 때가 있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여기서 협조하던 영인은 그 탕감기간이 끝나기 전에는 계속해서 올라갈 수 없으므로 영계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 영인은 여기서 상대하던 지상에 있는 갑이라는 사람이 기반을 다 닦아 주기를바라는데, 그 사람이 그 기간내에 탕감을 못 하고 죽게 되면 그 영인은 제2차로 을이라는 사람을 택하여 을에게 재림하기를 고대합니다. 그러니까 을에게 재림하는 영인은 갑에게 재림했던 영인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영인이 바울이라면 그 바울이 시대적으로 단계 단계 올라가기 위해서는 제1차로 재림했던 갑이라는 사람이 탕감기간 내에 탕감을 하지 못하고 죽게 되면 제2차로 을이라는 사람에게 재림하여 협조해 가지고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탕감기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탕감기간은 원리적인 기간을 중심삼고 단기간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2차로 택한 을이라는 사람이 탕감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 다음에는 병이라는 사람을 취해 가지고 재림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병이라는 사람에게 바울이 재림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때에 을이 어떤 글을 써 놓든가 무엇을 하게 되면 '나는 바울 영의 협조를 받아 지금 역사한다'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시대에 병이라는 사람에게 있어서도 어떤 글을 쓰게 되면 그도 역시 '바울 영의 협조를 받아 가지고 역사한다. 내가 바울이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니 결국은 전세계에 바울의 영이 을에게 나타나고 다시 병에게 나타난 거와 같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기 때문에 이것만을 보고서 윤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윤회 현상과 같은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전체를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 시대도 마찬가지이고, 세계 천주시대까지 나타나는 것입니다.
본래의 인간은 사탄의 지배를 받지 않고 하나님의 직접주관권 내에서 살아야 할 것인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타락권에 살게 되었으므로,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개인으로 탕감하고 가정으로 탕감하고, 이것을 탕감하지 않고는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영인은 반드시 그 시대 시대 마다 재림 현상을 거쳐서 나타나기 때문에, 그 단계 단계가 윤회, 즉 환생하는 현상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으로 볼 때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개인적으로 그냥 믿다가 죽게 되면 가정을 못 가졌기 때문에 가정 기준, 종족 기준, 민족 기준, 국가 기준, 세계 기준 등, 이런 단계를 다 넘어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몇억만 년이 걸릴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한에 해당합니다.
예수님도 나라의 기준을 못 넘었기 때문에, 나라의 고개를 넘기 위해서 다시 와서 나라의 고개를 넘어야 비로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낙원에 있는데,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예수님이 여기 어떤 사람에게 재림해서 그 사람을 직접 지도하게 되면 예수님이 임재한 그 사람은 자기가 예수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만 보게 될 때는 옛날의 예수님이 자기로 환생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윤회설과 같은 그런 현상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영적 세계를 잘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사람은 본래 하나님이 직접 주관하시는 선주권내에서 살아야 할 텐데, 타락권내에 살기 때문에 악주권을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적으로 그 일을 했습니다. 기독교도 영적으로 그 일을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통일교회의 부활론은 영계의 사실과 그대로 들어맞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통일교회의 부활론은 영계의 공식을 여러분에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수많은 종교인들이 그런 미지의 영계의 사실을 체험은 했지만, 그것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그 사실을 몰랐다구요.(54.277-280, 1972.03.26)
희망의 세계
이 세계와 저 세계 사이에 꿈의세계가 있다. 모든 꿈이 영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 중 몇몇은 분명히 영적이며, 영적인 꿈들은 흔히 매우 생생사고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그와 같은 영적 꿈을 ‘꾸는 동안에 영혼은 잠시 육신을 떠나서 영계로 올라가며 거기서 여러 가지 현상을 경험한다. 이들 가운데 어떤 것은 하나님과 관련되며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받는다.
그 외의 꿈들도 있는데, 저급한 영혼또는 악령들과 조우하는 꿈이나. 악몽에 시달리거나 성적인 꿈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 구절들은 꿈을 꾸는 영적인 과정들을 설명하며, 어떤 꿈이 하나님으로부터의 계시인가를 구별하는 방법에 대한 가르침들이다. 기독교 성서에서 하나님이 야곱과 요셉에게 했던 것처럼, 하나님은 꿈을 통해 인생의 전환을 가져오는 정보와 지침을 계시할 수 있다. 따라서 의미심장한 꿈들에 관해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종교적인 삶에서 중요한 훈련 중 하나이다.
종교경전
야곱은…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을 향해 가다가 한 곳에 이르러 밤을 지내게 되었다. 해는 이미 서산으로 넘어간 뒤였다. 그는 그곳에서 돌을 하나 주워 베게 삼고 그 자리에 누워 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다. 그는 꿈에 땅에서 하늘에 닿는 층계가 있고 그 충계를 하나님의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고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그의 옆에 나타나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여호와, 네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네 아버지 이사악의 하나님이다. 나는 네가 지금 누워 있는 이 땅을 너와 네 후손에게 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를 가든지 너를 지켜주다가 기어이 이리로 다시 데려오리라.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어 줄 때까지 나는 네 곁을 떠나지 않으리라.” 야곱은 잠에서 깨어나 “참말 여호와께서 여기 계셨는데도 내가 모르고 있었구나”하였다.
창세기 28.10-16(기독교)
사람이 잠자리에 들면, 영혼을 그를 떠나 저 위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육신에는 심장소리 담을 그릇 정도의 흔적만 남겨 놓는다. 나머지는 점점 위로 올라가려 한다. 올라가는 동안에 밝지만 불투명한 어떤 실체에 부딪힌다. 순수하며 낮 동안 더렵혀지지 않은 영혼은, 그것을 뛰어넘어 올라간다. 그렇지 못한 영혼은 그 실체 사이로들어가 때를 묻혀 동화되고 더 이상 오르지 못한다. 그안에서 그 실페는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일을 보여준다. 때로는 거짓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것은 잠에서 깰 때까지 밤새 계속된다.
하나님이 꿈속에 나타나 당신의 비밀을 보여주는 의인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다. 그리하여 죄를 범할 수 없게 된다! 자기 육신과 영혼을 더럽히는 불쌍한 죄인들이여! 낮 동안 더럽히지 않은 이는 밤에 잘 때 영혼이 승천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같은 단계로 들어간다. 하지만 그들은 그 불확실한 실체에 동화되지 않고 더 위로 올라간다. 그러므로 이택함 받은 영혼들은 마침내 하늘 왕궁 문 앞에 도달하고, 왕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의성지에 들어갈 것을 열망한다…….. 이사야서 26절 9절에 “나의 영혼이 밤에 주님을 사모합니다.”라고 적혀 있는 것과 같다. 그릇된 힘에 유혹받지 않고 주님을 따르겠다는 말이다 조하르 1.83a(유대교)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의 영혼과 죽지 않고 잠을자는 영혼을 거두어두시니라. 죽음이 정해진 영혼은 거두어 두시지만 그 밖의 영혼은 정해진 시각까지 보내어 주신다. 이것은 진실로 회개하는 자들에게 대한 징표이니라. 꾸란 39.42(이슬람)
우리가 꿈을 꾸고 있는 동안에, 황금빛으로 스스로 빛나는 존재, 내면의 자아는 몸이 잠들게 한다. 그러나 그 자신은 영원히 깨어 있으며 자신의 빛으로 마음에 남겨진 잠재인상들을 자신의 빛으로 지켜보고 있다. 그 후 감관들의 의식과 그 자신이 다시 결합함으로써 자아는 몸이 깨어나게 한다.
우리가 꿈을 꾸고 있는 동안에, 황금빛으로 스스로 및나는 존재,내면의 자아, 불멸의 일자는 생기의 도움으로 몸집을 살아 있게 하지만, 또한 동시에그는 이 몸집 바깥으로 걸어 나간다. 이 영원한 일자는 원하는 어느 곳이든 간다.
스스로 빛나는 일자는 꿈의 세계에서 높고 낮은 온갖 형태를 띤다. 그는 사랑의 유희를 즐기고 있는 것 같은가 하면, 친구들과 웃고 있으며, 무시무시한 광경을 보고 있는 듯도 하다. 누구나경험들을 알고 있지만 경험하는 자를 아는 자는 아무도 없다.
어떤 사람들은 꿈이란 깨어 있는 또 다른 하나의 형태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이 각성상태에서 하는 경험들이 꿈속에서 다시 경험되기 때문이다. 그럴지도 모느지만, 실로 자아는 꿈속에서 그 자신이 빛에 의해 빛난다.
꿈속에서 감각의 즐거움을 겪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선과 악을 경험한 자아는 그가 출발했던 각성상태로 서둘러서 돌아옵니다.
브리하드아란야카 우파니샤드 4.3.11-16(힌두교)
언제인가 장주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꾸었다. 그는 나비가되어 펄펄 날아다ㅏ니면서 유쾌하게 즐겼다. 그러면서도 자기 자신이 장주임을 알지 못하였다. 갑자기꿈을 깨니 틀림없는 장주였다. 그러나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었던 것인지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되어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장주와 나비에는 반드시 구별이 있다. 이러한 것을 ‘물화(物化)’라 부른다.
장자2(도교)
너희 가운데 예언자가 있다면 나는 그에게 환상으로 내뜻을 알리고 꿈으로 말해 줄 것이다. 민수기 12.6(기독교)
하나님의 사도가 말했다. “믿음을 가진 자의환시는 예언의 46번째 부분이며, 예언에 속해 있는 것은 틀리지 않는다.” 그는 환시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고 생각했다. 바로 내부에서 나오는 생각, 악에서 기인한 무서운 꿈, 하나님에게서 오는 좋은 소식이 그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싫어하는 어떤 것을 보게 되면 그는 그것을 누군가에게 말하지 말고 일어나 기도해야 한다. 무카리 및 무슬림 하디스(이슬람)
환시는 해석되지 않는 한 인간을 두근거리게 한다. 그러나 해석되면 그것은 가라앉는다. 오직 그것을 사랑하는 이나 판단을 할 수 있는 이에게만 말하라 아부 다우드 하디스(이슬람)
파라오는 요셉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꿈을 하나 꾸었는데 아무도 풀 사람이 없다. 그러던 중에,너는 꿈 이야기를 듣기만 하면 푼다는 말을 내가 들었다”. 요셉이 파라오에게 대답하였다. “저에게 무슨 그런 힘이 있겠습니까? 폐하께복된 말씀을 일러주실 이는 하나님뿐이십니다.”
파라오는 요셉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하였다. “ 나는 꿈에 나일강 가에 서 있었다. 난데 없이 살이 찌고 잘생긴 암소 일곱 마리가 강에서 나와 갈대풀을 뜯는 것이었다. 이어 암소 일곱 마리가 뒤 따라 나왔는데 나는 이집트 온 땅에서 그렇게도 볼품없는 그 소들이 먼저 나온 살진 일곱 마리 소를 잡아먹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잡아먹고도 여전히 볼품없어서 그것들이 다른 소를 잡아 먹었으려니 짐작할 수도 없었다. 그때 마침 나는 깨어났다가, 다시 꿈을 꾸었는데 이번에는 줄기 하나에서 이삭 일곱이 돋아난 일곱 이삭은 샛바람에 말라 여물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건데 그 마른 이삭이 잘 여문 일곱 이삭을 삼켜 버렸다. 내가 이 이야기를 마술사들에게 했으나 그 뜻을 일러주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폐하의 꿈은 결국 같은 내용입니다. ” 하고 요셉이 파라오에게 말하였다. “앞으로 될 일을 하나님께서 폐하께 미리 알려주신 것입니다. 잘생긴 암소 일곱마리는 일곱 해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 꿈은 결국 같은 내용입니다. 뒤따라 나타난 볼품없는 일곱 암소나 샛바람에 말라비틀어진 일곱 이삭도 도 일곱 해를 말합니다. 이것은 흉년이 일곱해 계속 될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폐하께 이미 말씀드린 것같이 폐하께서 하실 일은 하나님께서 미리 보여 주신 것입니다. 앞으로 일곱 해 동안 이집트 온땅에는 대풍이 들겠습니다. 그러나 곧 뒤이어 흉년이 일곱 해 계속 될 것입니다.
이집트 땅에서 언제 배불리 먹은 일이 있었냐는 듯이 옛일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이런 흉년으로 나라는 끝장이 납니다. 이렇듯이 뒤따라오는 흉년은 하도 심해서 배부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조차 아는 사람이 없게 될 것입니다. 폐하께서 같은 꿈을 두 번씩이나 꾸신 것은 하나님께서 이런 일을 어김없이 하시기로 정하셨고 또 지체 없이 그대로 하시리라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창세기 41.15-32(기독교)
말씀선집
영계에서 가르쳐 줄 때는 꿈 가운데서 가르쳐 줍니다. 그래서 꿈이 문제입니다. 그리고 비몽사몽간에, 계시 가운데, 묵시로, 그리고 영계에 들어가서 전부 가르쳐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꿈 가운데 맞는 꿈이 있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됩니까? 우리 인간은 타락함으로 사탄의 혈통을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움직이게 될 때는 이 악한 피가 동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유리관 같은 데 넣어둔 흙탕물과 같습니다. 잠을 자면 육신이 쉬기 때문에 무거운 것은 가라앉고 맑은 물이 뜨는 것과 같습니다. 본래의 맑은 마음은 하늘과 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에 여기서 상징적이라든가 형상적으로 앞으로 갈 수 있는 것을 꿈 가운데 하늘이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 꿈이 개꿈인지, 사탄이 가르쳐 주는지, 하나님이 가르쳐 주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압니까? 사탄이가르쳐 주는 것은 꿈의 방향성이 없습니다. 흘러가는 것입니다. 얼른 잊어버립니다. 그렇지만 하늘이 가르쳐주는 것은 체계가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전번 꿈과 다음 번 꿈이 연관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 번의 몽시 가운데서 연관성이 있을 때는 하늘의 계시인 줄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것이 왜 안 잊혀지느냐 하면 본래 하늘과 인간은 영원히 하나 되게 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 되어 있는 것은 잊을 수 없습니다. 사탄과의 관계는 얼른 잊어버립니다.
이렇게 영계의 지도를 받는 사람들은 전부 그런 사실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악한 자리에 갈래야 갈 수 없습니다. 사탄세계에 가더라도 그것이 나타나고, 그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심리학자와 같은 사람들이 꿈에 대해서 말하기를 ‘잠재의식의 재현이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은 얼른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생각지 않는데 잊혀지지 않는 꿈은 영적인 현상입니다.(91.272-275,1977.02.27)
체휼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도해야 되고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거기서 나타나는 계시나 몽시를 절대 무시하지 마십시오, 그것을 조정해서 현실적 생활권 내에, 실천무대에 어떻게 적용시키느냐 하는 것이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76.153, 1975.02.02)
암시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슨 말입니까? 내가 길을 무심코 가는데 어떤 집 담벽에 앉아 있던 새가 날아가는 것을 보았을 때, 새는 날아갔지만 퍼뜩 새가 날아가는 그 자체를 통해서 암암리에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는 일들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단계를 지나가게 되면 몽시 같은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꿈 가운데 일어나는 일인데 꿈도 깊은 잠 가운데서의 꿈이 아닙니다. 바울도 비몽사몽간에 3층천을 체험했습니다. 그런 것을 무심코 흘려보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종합해 어떤 방향의 인연을 나에게 연결시키기 위해 나타나는가 하는 것을 과학적인 면에서 분석해내라는 것입니다. 반드시 그 결과가 나타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잊을 수 없는 몽시 같은 것은 100퍼센트 적중하게 됩니다. 그런 체험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 단계가 높아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계시라든가 지시라든가 이런 것이 벌어집니다. 계시라는 것을 우리가 분석해야 됩니다. 지시라는 것은 직접 가르쳐주는 것이지만, 계시는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반드시 해석을 해야 됩니다.
무엇을 가르쳐 주는데는 음성으로 들려주기도 하지만 환상으로도 보여 줍니다. 좋은 봄날을 맞이하여 사슴 한 쌍이 시냇가에서 물을 마시면서 먼 산을 바라보는 이러한 환상은 지극히 행복스러운 소망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런 모든 현상이 벌어집니다. 내 마음의 밭을 개발하기 위한 하늘의 역사입니다.
계시의 단계를 지나게 되면 묵시 단계입니다. 하루 종일 영계에 들어가서 체험을 한다든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 세계까지 연결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생활적인 감정권까지 도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체율적인 신앙을 안 가지고는 위대한 하늘 뜻의 결과 세계를 우리의 생활무대에 적용할 수 없습니다. 체율적인 신앙을 안 가지고는 위대한 하늘 뜻의 결과 세계를 우리의 생활무대에 적용할 수 없습니다. 체휼적인 신앙이 고귀하기 때문에 계발해 나가야 됩니다.
여러분이 그런 체휼 단계에 들어가면 여러분의 마음이 명령합니다. 누구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려고 하는데, 말을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혹은 내가 좋은 말로 그 사람을 위해서 말해야 할 텐데 책망의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이 벌어집니다.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가끔 벌어집니다.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가끔 벌어집니다.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가끔 벌어지기 때문에 이것을 조정할 줄 알아야 됩니다. 잘못하다가는 미치광이로 취급받기 쉽기 때문에 그것을 조정할 줄 모르면 안 됩니다. (76.130-135, 1975.02.02)